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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발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의 희생자들은 6.6m²(2평) 안팎의 좁은 방에서 지내면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단란한 가정을 이루겠다며 착실히 돈을 모으던 30대 남성도, 자녀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50대 가장도 새벽에 덮친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월급 절반 적금 들며 버텼는데…” “아이고…아, 아….” 11일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조모 씨(34)의 어머니 A 씨의 통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흘 내내 눈물을 쏟아낸 어머니는 목소리마저 갈라졌다. A 씨는 아들의 시신이 담긴 관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슬픈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있겠나.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려서 어떻게 하느냐”며 오열했다. 헝클어진 머리에 흰 수염이 길게 자란 아버지 조덕휘 씨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뒷짐을 졌다. 조 씨는 아들의 마지막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내 고개를 돌렸다. 삼형제 중 장남인 조 씨는 전북 완주군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2009년 우정사업본부에 임시직으로 취직했다. 주로 배달 물건을 분류하는 작업 등을 했다고 한다. 2015년경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조 씨는 성실하게 일했고 돈을 무척 아꼈다고 가족과 지인들은 전했다. 식사는 구내식당에서만 했다. 보통 직원들이 2500원짜리 식권을 10장 단위로 사는 데 반해 조 씨는 2, 3장씩만 구입했다. 큰돈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은 데다 혹시라도 식권이 남을까 걱정했던 것. 옷은 늘 작업용 유니폼을 입었고, 머리도 가장 싼 스포츠 스타일을 고집했다. 직장동료 B 씨는 “돈을 아껴야 하니까 선배들이 사주는 경우가 아니면 늘 구내식당에서만 먹었다”며 “일주일 전에 이 친구가 ‘형 식권 2장만 줘’라고 하길래 ‘야, 돈 가지고 와’라고 농담조로 말한 게 너무 마음에 걸린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조 씨가 유일하게 자신에게 허락한 소비는 야구와 조조영화 관람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절반가량을 모아 적금을 들었고, 반려자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꿈을 꿨다. 이를 위해 고시원에서의 삶을 택했다. 직장동료들이 오피스텔을 얻어서 편하게 쉬라고 권유했지만 ‘부담이 된다’며 거절했다. 조 씨는 저렴한 거주지를 찾아 올해에만 2차례 이사했다고 한다. 아버지 조 씨는 “좁은 방에서 생활하는 게 불편했을 거다. 돈이 많으면 아파트를 한 채 사주든지, 전세를 한다든지 (할 텐데) 먹고살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부모를 잘못 만난 탓에 고생하다가 이렇게 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족들의 기억 속에 조 씨는 책임감이 강하고 과묵한 사람이었다. 조 씨의 고모부 C 씨는 “말수는 적었지만 얘기하면 잘 웃었다”며 “동생이 두 명 있어서인지 책임감이 아주 강했다”고 기억했다. 조 씨의 작은아버지(55) 역시 “정말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다. 2평에 30만 원짜리 고시원이었지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조 씨는 인사성이 밝아 직장 동료와 상사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직장상사 최모 씨(48)는 “지나가다가 만나면 반갑다고 환하게 웃으며 껌 하나씩을 손에 쥐여주던 게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빈소가 차려진 사흘 동안 100명이 넘는 친지와 직장동료들이 찾아와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운구는 동료 8명이 했다. 조 씨의 시신은 서울 서초구의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고향으로 옮겨졌다. ○ 장애인-기초수급자도 참변 희생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은 대체로 조용했다. 이모 씨(62)는 소아마비 탓에 다리를 절었다. 젊은 시절엔 경기 과천시의 목장에서 젖소를 기르는 일을 했다고 한다. 누나 D 씨(65)는 “동생이 원래 가족과 함께 살다가 집 나간 지 몇 년 됐다. 한참 동안 연락이 없어서 어떻게 지냈는지 몰랐다”고 했다. 장모 씨(72)는 서울 종로구 인근에서 오락실 사업으로 한때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사업에 실패한 뒤 24시간 사우나에서 청소를 하며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냈다. 사망자 중 일본인 E 씨(53)는 아내, 자녀와 떨어져 살며 S일본어학원에서 회화 강사로 일했다. 틈틈이 일본어 일대일 개인과외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아빠같이 되고 싶다! 아이들한테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나의 남은 인생의 목표’라고 적혀 있었다. 서울대병원에 안치됐던 조모 씨(78)는 유족의 뜻에 따라 조용히 고향으로 옮겨져 빈소를 차렸다. 가족과 2년간 연락이 끊겼던 양모 씨(57)의 경우 유족을 찾는 데 하루가 넘게 걸리기도 했다. 윤다빈 empty@donga.com·김자현 기자}
술을 마시고 시민을 폭행한 대통령경호처 직원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대통령경호처 소속 5급 공무원 유모 씨(36)를 폭행 및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유 씨는 10일 오전 4시경 서울 마포구의 한 술집에서 30대 남성 A 씨를 주먹과 발 등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폭행을 당한 A 씨는 코뼈가 부러지는 등 상해를 입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유 씨가 자신을 청와대 경호팀이라고 소개한 뒤 ‘북한에서 가져온 술을 같이 마시자’며 옆자리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며 “이후 자리를 옮겼더니 따라와 갑자기 때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행 2명과 함께 온 유 씨는 혼자 있던 A 씨를 옆자리에 앉게 했고, 중간에 A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따라 나와 때렸다고 경찰은 밝혔다. 2층에 위치한 술집에서 1층으로 내려가려던 A 씨는 유 씨에게 주먹으로 맞은 뒤 뒷덜미를 붙잡혀 2층으로 끌려올라갔다고 한다. A 씨는 ‘내가 쓰러지자 유 씨가 내 얼굴 부위를 축구공을 차듯 10여 차례 걷어찼다’고 진술했다. 술집 주인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한 뒤에도 유 씨의 난동은 계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유 씨는 현행범으로 붙잡힌 뒤에도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며 욕설을 하면서 행패를 부렸다. 연행 과정에서 팔을 휘둘러 경찰관의 얼굴을 가격하기도 했다. 경찰은 유 씨에게 공무집행 방해 혐의도 적용했다. 유 씨는 경찰 조사에서 “술에 많이 취해서 정확한 기억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신분이 확실해 도주 우려가 없다고 보고 유 씨를 집으로 돌려보냈다”며 “이후 추가 조사를 진행할 방침” 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10일 유 씨를 직위해제했고,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9일 발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희생자들은 6.6㎡(2평) 안팎의 좁은 방에서 지내면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단란한 가정을 이루겠다며 착실히 돈을 모으던 30대 남성도, 자녀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50대 가장도 새벽에 덮친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 결혼 자금 모으려고 안간힘 쓰던 34세 우체국 직원 “아이고…아, 아….” 11일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조모 씨(34)의 어머니 A 씨의 통곡이 울려 퍼졌다. 사흘 내내 눈물을 쏟아낸 어머니는 목소리마저 갈라졌다. A 씨는 아들의 시신이 담긴 관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슬픈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있겠나.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려서 어떻게 하냐”고 오열했다. 헝클어진 머리에 흰 수염이 길게 자란 아버지 조덕휘 씨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뒷짐을 졌다. 조 씨는 아들의 마지막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내 고개를 돌렸다. 삼형제 중 장남인 조 씨는 전북 전주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2009년 우정사업본부에 임시직으로 취직했다. 주로 배달물건을 분류하는 작업 등을 했다고 한다. 2015년경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조 씨는 성실하게 일했고 돈을 무척 아꼈다고 가족과 지인들은 전했다. 식사는 구내식당에서만 했다. 보통 직원들이 2500원 짜리 식권을 10장 단위로 사는 데 반해 조 씨는 2, 3장씩만 구입했다. 큰 돈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은데다 혹시라도 식권이 남을까 걱정했던 것. 옷은 늘 작업용 유니폼을 입었고, 머리도 가장 싼 스포츠 스타일을 고집했다. 직장동료 B 씨는 “돈을 아껴야 하니까 선배들이 사주는 경우가 아니면 늘 구내식당에서만 먹었다”며 “일주일 전에 이 친구가 ‘형 식권 2장만 줘’라고 하길래 ‘야, 돈 가지고 와’라고 농담조로 말한 게 너무 마음에 걸린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조 씨가 유일하게 자신에게 허락한 소비는 야구와 조조영화 관람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절반가량을 모아 적금을 들었고, 반려자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꿈을 꿨다. 이를 위해 고시원에서의 삶을 택했다. 직장동료들이 오피스텔을 얻어서 편하게 쉬라고 권유했지만 ‘부담이 된다’며 거절했다. 조 씨는 저렴한 거주지를 찾아 올해에만 2차례 이사했다고 한다. 아버지 조덕휘 씨는 “좁은 방에서 생활하려다 보니까 불편해했다. 돈이 많으면 아파트를 한 채 사주든지, 전세를 한다든지 (할 텐데)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부모를 잘못 만난 탓으로 고생하다가 이렇게 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족들의 기억 속에 조 씨는 책임감이 강하고 과묵한 사람이었다. 조 씨의 고모부 C 씨는 “말수는 적었지만 얘기하면 잘 웃었다”며 “동생이 두 명 있어서인지 책임감이 아주 강했다”고 기억했다. 조 씨의 작은아버지(55) 역시 “정말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다. 2평에 30만 원짜리 고시원이었지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조 씨는 인사성이 밝아 직장 동료와 상사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직장상사 최모 씨(48)는 “지나가다가 만나면 반갑다고 환하게 웃으며 껌 하나씩을 손에 쥐어주던 게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빈소가 차려진 사흘 동안 100명이 넘는 친지와 직장동료들이 찾아와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운구는 동료 8명이 했다. 조 씨의 시신은 서울 서초구의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고향으로 내려갔다. ● “아빠처럼 되고 싶다”는 말 듣고 싶었는데…. 희생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은 대체로 조용했다. 이모 씨(62)는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다. 젊은 시절 경기 과천시의 목장에서 젖소를 기르는 일을 했다고 한다. 누나 D 씨(65)는 “동생이 원래 가족과 함께 살다가 집 나간 지 몇 년 됐다. 한참 동안 연락이 없어서 어떻게 지냈는지 몰랐다”고 했다. 장모 씨(72)는 서울 종로구 인근에서 오락실 사업으로 한 때 큰 돈을 벌기도 했지만 사업에 실패한 뒤 24시간 사우나에서 청소를 하며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냈다. 사망자 중 일본인 E 씨(53)는 아내, 자녀와 떨어져 살며 S일본어학원에서 회화 강사로 일했다. 틈틈이 일본어 일대일 개인과외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아빠같이 되고 싶다! 아이들한테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나의 남은 인생의 목표’라고 적혀 있었다. 서울대병원에 안치됐던 조모 씨(78)는 유족의 뜻에 따라 조용히 고향으로 이동해 빈소를 차렸다. 가족과 2년 간 연락이 끊겼던 양모 씨(57)의 경우 유족을 찾는데 하루가 넘게 걸리기도 했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9일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을 덮쳤다. 통상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유가족들은 뉴스를 접하는 즉시 시신이 안치돼 있다는 병원을 전전하며 가족을 애타게 찾곤 한다. 하지만 7명이 숨진 이번 화재에서는 이런 장면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화재 발생 13시간이 지난 오후 6시경 국립중앙의료원에 안치된 1명의 가족이 찾아온 게 처음이었고, 빈소도 이 병원에만 차려졌다. 오후 10시 30분 현재 고려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에 안치된 6명은 빈소조차 없는 상태다.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사망자는 모두 남성이고 6명은 50∼70대, 1명은 34세다. 사망자 중에는 학원강사로 알려진 일본인 1명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약 5∼10m²(약 1.5∼3평) 크기의 방에서 월세 28만∼38만 원을 내며 살았다고 한다. 서울의 한 구청 복지 담당자는 “고시원이나 쪽방에 거주하는 중년·고령자는 사망해도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락이 닿아도 장례를 원하지 않는 가족도 있다”고 전했다. 고시원 원장 구모 씨(68)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많아) 불쌍해서 반찬도 주고 국도 끓여줬는데 어쩌면 좋으냐”며 오열했다. 부상자들도 대부분 홀로였다. 탈출하다 다쳐 치료를 받는 이들 옆에 가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3층에 거주하는 부상자 김모 씨(59)는 “옆방에 살아도 다들 서로 얼굴만 알지 이름도 몰랐다”고 했다. 20년간 서울에서 혼자 지내며 보증금을 아끼려고 고시원에 살았다는 부상자 정모 씨(62)는 “가족들이 부산에 있다. 손에 화상을 입었지만 당분간 치료받으면서 일해야 한다”고 했다.최지선 aurinko@donga.com·김자현 기자}
8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실탄사격장. 전날 실탄 2발을 도난당해 한바탕 소동을 빚은 곳이다. 건물 3층에 위치한 이 사격장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정상 영업 중이었다. 사격장으로 들어가자 안내데스크 뒤로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 쓰인 홍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 10여 명이 전날의 소동을 모르는 듯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중국 국적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은 사격을 마치고 나와 방탄조끼를 입은 상태로 가짜 총을 들고 사격자세를 취하며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이곳은 외국인 전용이고, 한국인은 회원등록을 한 경우에 한해 출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국 관광을 온 일본인 피트니스 트레이너 A 씨(24)는 전날 사격을 마친 뒤 옆 사로에 10발짜리 실탄 묶음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손님의 입장을 앞두고 직원이 준비 차원에서 놓아둔 것이었다. 준비를 마친 직원은 손님을 안내하려 사로 밖으로 나갔고, A 씨는 자신을 담당하는 직원의 눈을 피해 옆 사로의 총알 2발을 훔쳤다. 마음만 먹었다면 10발을 모두 가져갔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9시간 만에 경찰에 검거된 A 씨의 범행 동기는 ‘소장 욕구’.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에 총알을 좋아했는데, 옆 사로에 놓인 실탄을 보고 장식용으로 쓰려고 충동적으로 훔쳤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A 씨에게는 관광 기념품이었지만 그로 인해 경찰들은 명동 일대를 다 뒤지고 다녀야 했다. 이날 취재진과 만난 사격장 관계자는 “안전관리는 규정에 따라 철저하게 하고 있다”며 “A 씨에게도 총알의 외부반출을 금지한 내용을 교육했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여권정보를 바탕으로 출입자 명부를 작성하고, 주의사항을 안내받은 뒤 방탄조끼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사로에 입장했다. 관리자 없이 실탄 10발이 놓여 있었던 것에 대해 사격장 관계자는 “잠깐 놔뒀을 뿐인데 A 씨가 훔쳐간 것이다. 우리는 바로 신고했다”고 말했다. 잘못한 게 없다는 취지다. 현재 전국에는 실탄사격장 14곳이 운영되고 있어서 관리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A 씨는 경찰 조사를 마치고 8일 오후 2시 30분경 석방됐다. A 씨에게는 절도 혐의만 적용됐다. 경찰 관계자는 “실탄이 모두 회수돼 추가 위험성이 없고 증거 수집 등이 완료된 점을 고려해 풀어줬다”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경찰이 직원과 아내의 지인을 폭행하고, 직원들에게 살아있는 닭을 석궁으로 쏘게 하는 등 엽기행각으로 물의를 빚은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47)의 자택과 사무실, 펜션 등 10곳을 2일 압수수색했다. 양 회장은 검찰 수사와 고용노동부 조사도 곧 받게 된다. 이날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위디스크 사무실 유리 정문은 불투명 테이프가 붙여져 내부가 보이지 않았고, 직원들은 ‘폐문’이라 적힌 쪽문을 이용했다. 본보 취재팀이 직원들에게 최근 사태에 대해 묻자 “죄송하다” “드릴 말씀이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 “교수 폭행하며 가래침 뱉고 핥게 해”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양 회장의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혐의는 상해, 폭행, 강요, 정보통신망법 위반, 성폭력특별법 위반, 동물보호법 위반 등 최소 6가지다. 양 회장은 2015년 4월 위디스크 전 직원 A 씨를 사무실로 불러 뺨과 뒤통수를 때리며 무릎을 꿇게 했다. 전·현직 직원들은 양 회장의 엽기적인 가혹행위가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다. 양 회장이 회사 워크숍에서 직원들에게 석궁으로 살아있는 닭을 쏘거나 일본도로 베어 죽이도록 강요했다고 직원들은 폭로했다. “중년인 직원들의 머리카락을 빨강, 초록색 등으로 염색하게 하고 술자리에서 화장실에 보내지 않은 채 토할 때까지 음주를 강요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양 회장은 이 같은 가혹행위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임원들과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경찰은 양 회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웹하드 사이트 ‘위디스크’ ‘파일노리’ 등을 통해 몰래카메라 음란물 등이 다수 유통되는 것을 알고도 방치한 혐의로 수사해왔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일본도와 활 1개, 화살 20개 등을 확보했다. 직원들이 폭로한 동영상에 나오는 도구들이다. 경찰은 3일 양 회장에게 폭행을 당한 A 씨를 조사할 계획이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양 회장이 2013년 대학교수 B 씨가 자신의 아내와 외도한 것으로 의심해 B 씨를 사무실로 불러 집단폭행한 혐의(상해)를 직접 수사하고 있다. B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양 회장이 동생 등과 돌아가며 폭행했으며, 내 얼굴에 가래침을 뱉은 뒤 침과 구두를 핥게 했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반을 구성해 위디스크 운영사인 이지원인터넷서비스, 한국미래기술 등 양 회장 소유 회사 5곳의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를 2주 동안 조사하기로 했다.○ 불법 영상물 유통으로 축재…형사처벌 전력 업계에선 양 회장이 불법 음란물 유통을 방치해 막대한 부를 축적해왔다고 보고 있다. 양 회장은 2003년 ‘위디스크’를 만들어 포르노와 드라마 등 불법 영상 중개서비스를 시작했다. 양 회장은 2007년 ‘파일노리’를 추가로 만들었다. 웹하드 업계 1, 2위인 두 사이트의 회원수를 합하면 약 1000만 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위디스크가 210억 원, 파일노리가 159억 원이었다. 영업이익은 각각 53억 원(영업이익률 25%), 98억 원(61%)으로 수익성이 높았다. 2011년 불법 저작물을 유통시키고 불법 촬영 영상물을 저작권자 허락 없이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양 회장은 2013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이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양 회장이 저작권자로부터의 손해배상 청구나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대리인을 대표로 앉혀놓고, 핵심적인 사항은 직접 통제했다고 판시했다.김자현 zion37@donga.com·김정훈 / 성남=이경진 기자}
1980년 5월 19일 여고생 A 양은 ‘서둘러 귀가하라’는 담임교사의 말을 듣고 학교를 나섰다. 버스를 타려다 계엄군에게 잡혀 군용트럭에 강제로 태워진 A 양은 계엄군들에게 잔혹하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는 지금도 정신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반복하고 있다. 5·18기념재단이 펴낸 ‘부서진 풍경’이라는 책에 적힌 A 양의 피해 내용이다.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문헌 검토 과정에서 이 사례를 발견했으며, 관계자 진술 등을 받아 성폭행 피해 사례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공동조사단이 공개한 조사 결과에는 1980년 5월 계엄군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뒤 38년이 지나도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는 피해자들의 심경이 담겼다. 피해자들은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 “스무 살 그 꽃다운 나이에 인생이 멈춰 버렸다”고 호소했다. 6월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국방부가 공동으로 구성한 공동조사단은 이날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17건의 성폭행 등 다수의 여성인권 침해 행위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중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조사하고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성폭행 피해자 대다수는 총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2명 이상의 군인들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5·18 초기인 1980년 5월 19∼21일 피해를 당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추행, 성고문 등 여성인권 침해 행위도 43건이나 있었다. 공동조사단은 관련 문헌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속옷 차림의 여성을 대검으로 희롱하거나 성고문을 한 내용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일부 피해자는 유방과 성기에서 자창(刺創·날카로운 물건에 찔린 상처)이 발견됐다는 내용도 있다. 학생과 임산부 등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도 다수 확인됐다. 성폭력 가해자들이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지만 부대 투입 시기, 작전 동선, 복장 등을 봤을 때 7공수, 3공수, 11공수 등 3개 부대에 가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독립기구로 출범할 예정인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공동조사단의 자료를 넘겨받아 추가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성폭력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계엄군에 의해 일가족의 삶이 완전히 파괴된 경우도 적지 않다. ‘광주5월민중항쟁 사료전집’에 따르면 고교 졸업 뒤 취업 준비 중이던 손모 씨(당시 20세·여)는 1980년 5월 22일 온몸에 멍이 들고 골반과 흉부 등에 총상을 입은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충격으로 손 씨의 아버지는 1년 뒤, 어머니는 6년 뒤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들은 밝혔다. 이윤정 오월민주여성회장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아직도 5월만 되면 ‘머리가 아프다’ 등의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며 “이제라도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자현 zion37@donga.com·광주=이형주 기자}

“이번 판결 외에도 미쓰비시중공업의 책임을 묻는 소송처럼 해결되지 않은 문제 또한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해결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30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승소 확정 판결을 받는 데 도움을 준 일본인 나카타 미쓰노부(中田光信·64) 씨는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일본제철의 배상과 일본 정부의 태도 전환을 촉구했다. 일본재판지원회의 사무국장인 나카타 씨는 우에다 게이시(上田慶司·60) 씨와 함께 1997년 일본 법원에 처음 소송을 낼 때부터 지금까지 21년간 피해자들과 함께했다. 나카타 씨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일부 승소한 2013년을 떠올리며 “그해 7월 기자회견장에는 여운택, 이춘식 할아버지가 함께 계셨다. 그땐 소송에 참여한 네 분 모두 살아 계셨는데 지금은 한 분만 있다. 시간이 정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나카타 씨는 “일본 인터넷에서 소송에 대해 비난 댓글이 많다는데, 피해자들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피해자들은 정말로 엄혹하고 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일본 교토시와 오사카시 공무원이었던 나카타 씨와 우에다 씨가 신일본제철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기 시작한 건 1997년부터다. 그해 크리스마스 무렵, 한국에서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가 도움을 요청한 것이 계기였다. 일본에서 한국인 피해자를 돕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날 본보 기자와 만나 “한국 사람들이 겪었던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오래도록 한국과 일본이 가까이 지내지 못할 것 같았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어려움이 커졌다. 일본의 정권이 바뀌고, 배상 문제에 소극적인 아베 신조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부터는 두 사람을 반일 인사로 보는 주위의 시선이 강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양국 사이의 갈등을 잘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힘을 냈다고 했다. 두 사람은 21년간 재판을 도우면서 한국과 일본을 30∼40여 차례나 오갔다. 비행기와 숙박 비용은 모두 자비로 충당했다. 이들 외에 일본 현지에서 소송을 도운 일본인도 있다. 약 20년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소송을 도와온 일본 시민단체 ‘강제연행·기업 책임추궁 재판 전국네트워크’의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사무국장은 30일 본보 기자와 만나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이제는 신일본제철이 나서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 도쿄=김범석 특파원}

“내가, 재판 이겼는데 오늘 나 혼자 나와서 내 마음이 슬퍼. 눈물이 많이 나고 울고 싶어요. 나하고 재판을 넷이 넣었는데 같이 옆에 있었다면, 같이 살아서 왔으면 좋았을텐데….” 30일 오후 2시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전범 기업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자 소송을 제기한 원고 4명 중 유일한 생존자 이춘식 씨(98)가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2005년 처음 소송을 제기한 뒤 이날까지 13년이 흐르는 동안 이 씨와 함께 소송을 제기했던 강제징용 피해자 고 김규수, 여운택, 신천수 씨는 숨졌다. 김 씨는 이 씨와 함께 ‘끝까지 살아서 억울함을 풀자’고 다짐했지만 올 6월 세상을 떠났다. 이 씨는 김 씨가 작고한 사실을 이날 법정에 혼자 들어가면서 알게 됐다. 100세를 바라보는 이 씨는 거동이 불편하고 청력도 안 좋지만 대법원이 선고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날 광주에서 서울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선고 1시간 전 대법원에 도착한 이 씨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대법정으로 휠체어를 타고 들어간 그는 선글라스를 벗고 연신 눈물을 훔쳤다. 그는 “(다른 피해자들과) 같이 살아서 왔다면 마음이 안 아픈데, 나 혼자 와서 눈물이 나와 서러와. 안 울라 그랬는데 눈물이 나와”라며 격하게 흐느꼈다. 이 씨와 함께 대법정에서 선고를 들은 김 씨의 부인 최정호 씨(85·여)는 “감회가 깊다. 기왕이면 일찍 좀 서둘러 주셔서 본인이 그렇게 한이 되었던 게 마무리된 것을 봤더라면…. 조금만 일찍, 가시기 전에 판결이 나왔더라면…. 이런 좋은 일을 맞았을 텐데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고교시절이었던 1941년 충청남도 대전에서 보국대로 동원돼 일본으로 건너가 구 일본제철(신일본제철의 전신)의 가마이시제철소로 강제 동원됐다. 강제동원된 이 씨를 비롯한 한국 청년들은 공장의 기숙사에서 훈련생처럼 같이 살았다. 아침 6시 30분부터 화로에 석탄을 넣고 깨뜨려서 뒤섞거나 철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서 석탄 찌꺼기를 제거하는 노역을 했다.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버티지 못해 도주하다 발각되면 구타를 당했다. 일본이 패전하자 이 씨는 겨우 고향으로 돌아왔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이 씨는 77년 만에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됐다. 이 씨는 “일본에서도 인정하지 않았던 그들의 만행과 내 어린 시절의 고역을 역시 내 나라의 법원에서 알아줬다”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2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A아파트의 한 경비실. 안쪽 탁자 위에 피자 상자가 놓여 있었고, 피자 냄새가 물씬 풍겼다. 5분 정도 지나자 한 초등학생이 와서 피자를 가져갔다. 경비원 B 씨(70)는 “예전 같으면 배달 음식까지 받아주지는 않았지만 이제 주민들에게 밉보이지 않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나흘 전인 19일 경비인력 감축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올해보다 10.9% 오른 최저임금(시급 8350원) 적용을 2개월가량 앞두고 경비인력 감축을 논의하는 아파트가 늘고 있다. 9월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이 거주하는 서울 송파구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에서 경비원 52명을 감축하는 안을 두고 주민투표를 한 데 이어 10월에는 A아파트에서도 경비원 10여 명을 줄이는 것에 대해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의 한 아파트는 11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인력 감축을 논의할 예정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비원 인건비 증가에 대비하는 것이다. 본보 취재진은 지난해부터 경비인력 감축 논의가 있었거나 감축이 이뤄진 서울과 경기 아파트 10곳을 둘러봤다. 경비원들은 ‘언제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필요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주민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서글픈 서비스 경쟁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C 씨(64)는 올해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동 입구에 우산을 갖다놓는다. 깜빡 잊고 우산을 안 가지고 내려온 주민들에게 빌려주기 위한 것이다. 경비실에 맡긴 택배를 집까지 배달해주는 일도 잦아졌다. 지난해까지는 택배가 왔다는 알림 스티커만 우편함에 붙였다. C 씨는 “이렇게라도 해서 주민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올해 1월 경비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경비원 20명을 줄였다. 주민들이 차를 타기 쉽도록 차를 대고 빼주는 발레파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비원도 있다. 주민들의 퇴근시간에 맞춰 엘리베이터를 1층에 대기시키기도 한다. 경비원 D 씨(57)는 주민의 자녀 이름까지 외워 “○○야 안녕”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고 했다.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생존비법이다. ○ 감축 위협은 진행형인력 감축안이 부결된 아파트라고 해도 투표 내용을 보면 경비원들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의 경우 인력 감축에 찬성한 가구(599가구)가 반대한 가구(451가구)보다 많았지만, 찬성 의견이 전체 1356가구의 과반(679가구)이 되지 않아 가까스로 감축이 무산됐다. 22일 투표 결과가 나온 A아파트에선 1162가구 중 235가구가 감축에 찬성했다. 2019년 1월부터 인상된 최저임금이 적용돼 주민들이 인건비 증가를 체감하면 경비인력을 줄이자는 논의가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 경비원들로서는 살얼음판 같은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16.4% 급증하자 근무시간을 줄여 경비원 인건비를 동결시킨 아파트도 있다. 점심, 저녁에 1시간씩 쉬던 것을 각각 2시간으로 늘리고, 0시부터 시작하던 야간 휴무시간을 오후 11시로 앞당기는 식이다. 그렇다고 실제로 쉬는 시간이 늘어나지도 않는다. 휴무시간이라고 자리를 비웠다가는 ‘일을 안 한다’는 민원이 제기될 수 있는 만큼 그냥 계속 일을 하는 게 낫다는 경비원이 많다. 경비원 D 씨는 “임금 더 달라고 안 할 테니 자른다고 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2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A 아파트의 한 경비실. 안쪽 탁자 위에 피자 상자가 놓여 있었고, 피자 냄새가 물씬 풍겼다. 5분정도 지나자 한 초등학생이 와서 피자를 가져갔다. 경비원 B 씨(70)는 “예전 같으면 배달 음식까지 받아주지는 않았지만 이제 주민들에게 밉보이지 않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나흘 전인 19일 경비인력 감축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올해보다 10.9% 오른 최저임금(시급 8350원) 적용을 2개 월 가량 앞두고 경비인력 감축을 논의하는 아파트들이 늘고 있다. 9월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이 거주하는 서울 송파구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에서 경비원 52명을 감축하는 안을 두고 주민투표를 한데 이어 10월에는 A 아파트에서도 경비원 10여 명을 줄이는 것에 대해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의 한 아파트는 11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인력 감축을 논의할 예정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비원 인건비 증가에 대비하는 것이다. 본보 취재진은 지난해부터 경비인력 감축 논의가 있었거나 감축이 이뤄진 서울과 경기 아파트 10곳을 둘러봤다. 경비원들은 ‘언제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필요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주민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서글픈 서비스 경쟁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C 씨(64)는 올해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동 입구에 우산을 갖다놓는다. 깜빡 잊고 우산을 안가지고 내려온 주민들에게 빌려주기 위한 것이다. 경비실에 맡긴 택배를 집까지 배달해주는 일도 잦아졌다. 지난해까지는 택배가 왔다는 알림스티커만 우편함에 붙였다. C 씨는 “이렇게라도 해서 주민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올해 1월 경비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경비원 20명을 줄였다. 주민들이 차를 타기 쉽도록 차를 대고 빼주는 발렛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비원도 있다. 주민들의 퇴근시간에 맞춰 엘리베이터를 1층에 대기시키기도 한다. 경비원 D 씨(57)는 주민의 자녀 이름까지 외워 “○○아 안녕”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고 했다.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생존비법이다. ● 감축 위협은 진행형 인력 감축안이 부결된 아파트라고 해도 투표내용을 보면 경비원들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의 경우 인력 감축에 찬성한 가구(599가구)가 반대한 가구(451가구)보다 많았지만, 찬성 의견이 전체 1356가구의 과반(679가구)이 되지 않아 가까스로 감축이 무산됐다. 22일 투표 결과가 나온 A 아파트에선 1162가구 중 235가구가 감축에 찬성했다. 2019년 1월부터 인상된 최저임금이 적용돼 주민들이 인건비 증가를 체감하면 경비인력을 줄이자는 논의가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 경비원들로서는 살얼음판 같은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16.4% 급증하자 근무시간을 줄여 경비원 인건비를 동결시킨 아파트도 있다. 점심, 저녁에 1시간씩 쉬던 것을 각각 2시간으로 늘리고, 자정부터 시작하던 야간 휴무시간을 오후 11시로 앞당기는 식이다. 그렇다고 실제로 쉬는 시간이 늘어나지도 않는다. 휴무시간이라고 자리를 비웠다가는 ‘일을 안 한다’는 민원이 제기될 수 있는 만큼 그냥 계속 일을 하는 게 낫다는 경비원이 많다. 경비원 D 씨는 “임금 더 달라고 안 할 테니 자른다고 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9일 오전 6시 11분경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열차가 고장나 월요일 출근길에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하철 4호선 당고개행 열차가 이촌역으로 진입하던 중 전력공급 차단으로 역사 내 터널에 멈춰 섰다. 이 사고로 이촌역에서 신용산역 방향 4호선 상행선 열차의 운행이 1시간 15분가량 중단됐다.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공사는 주회로 차단기가 동작하면서 전력공급이 차단됐다고 설명했다. 지하철은 1시간 15분여 만인 오전 7시 26분경 복구됐다. 하지만 1시간 넘게 열차 운행이 지연된 만큼 평소 출근길처럼 정상적으로 운행되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전망이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이른 아침부터 전화 수십 통이 쏟아지는 바람에 아침 먹을 때를 놓쳤네요.” 평생 과일장사를 하며 악착같이 모은 4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고려대에 기부한 김영석(91), 양영애 씨(83·여) 부부는 본보 보도로 기부 사실이 알려진 26일 지인들의 전화를 받느라 아침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동안 이 부부에게 “억척스럽다”고 말하던 아파트 주민들과 시장 상인들이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뜻을 전해 왔다. 이날 여러 언론사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지만 부부는 “할 만한 일을 했을 뿐인데 주변에서 너무 관심을 보여 부끄럽고 부담스럽다”며 완곡히 거절했다고 한다. 부부는 이날 집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았다. 부부는 전날 서울 성북구 고려대 본관 인촌 챔버에서 기증식을 마치고 귀가해 서로를 바라보며 뿌듯해했다고 한다. 양 씨는 지인들에게 “초등학교도 못 나온 내가 대학생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게 어색하면서도 기쁘다. 이제야 ‘노랑이’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돼 후련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노부부의 기부에 대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고파스’ 게시판에는 이날 관련 게시물이 10여 건 올라왔다. 댓글도 200개 넘게 달리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게시물 중에는 ‘저도 나중에 돈을 벌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등 감동을 받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게시물 아래에는 ‘과일 장사를 하며 어렵게 번 돈을 기부하다니 대단하십니다’ ‘귀한 돈을 받은 만큼 학교가 값지게 써야 한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명예학장으로 모시자’ ‘김영석 양영애 관을 짓자’는 제안도 나왔다. 고려대 국문과 4학년 김예슬 씨(23·여)는 “학교 식당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내내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를 했다. 내가 그분들의 자녀라면 싫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가족들도 기부에 동참하신 거 같다”고 말했다. 한국사학과 4학년 한순천 씨(26)는 “할머니가 기부하신 큰 뜻에 어긋나지 않게 학교에서 잘 활용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제학부 1학년 이종원 씨(19)는 “앞으로 공부할 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든다”고 말했다. 기부 사실을 알린 본보 기사(2018년 10월 26일자 A12면)에도 부부를 향한 존경을 표현한 댓글이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존경스럽습니다. 노부부님의 뜻대로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꼭 써주세요’ ‘소중한 피와 땀과 눈물의 세월은 아름다운 천사가 되어 각박하고 냉정한 세상에서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거예요’ ‘이런 분이 계시다니 아직 살 만한 세상이네요’ ‘행복하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기원합니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고려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은 역대 최대 규모인 400억 원의 기증액을 학생들을 위해 효과적이고 투명하게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고려대는 기부금 집행 전 기부자들에게 활용 방안을 사전 보고하고, 집행 후에는 사용 명세를 정기적으로 보고한다. 기부금 용처를 상세히 밝히는 기부백서를 매년 발간하고 있다. 고려대 관계자는 “부부의 소중한 뜻을 잘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는 장학금으로 우선 사용하고, 학생들의 주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도록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유흥주점 매출을 일반음식점 매출인 것처럼 속여 세금을 탈루한 서울 강남구의 유흥주점 업주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주범인 유흥주점 업주 A 씨(50)를 구속하고, 공범인 유흥주점 업주 등 1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과 역삼동에 위치한 일반음식점 2곳을 타인 명의로 운영하면서 해당 업소의 신용카드 이동식 단말기를 인근 유흥주점들에 빌려줬다. 이후 2014년 4월경부터 올해 10월까지 신용카드 단말기를 빌려준 대가로 55개 유흥주점 매출액 356억원에서 10~15% 가량의 수수료 37억원을 받아 챙겼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와 유흥주점 업주들은 세금을 탈루하기 위해 유흥주점 매출을 일반 음식점 매출로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흥주점의 경우 매출액의 10%를 특별소비세로 추가로 내야하고, 연 소득이 5억원이 넘으면 소득세 세율이 42%로 높다는 점을 파악하고 세금을 적게 내기위해 유흥업소 소득을 분산한 것이다. A 씨는 이 과정에서 브로커를 통해 노숙자들에게 900만 원을 주고 산 명의를 이용했다. 사업자등록을 위한 각종 서류와 함께 휴대전화, 통장을 제공받아 대포폰 84대, 대포통장 177개를 만들어 범행에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같은 범죄를 저지른 유흥주점과 명의 대여자가 더 있는 것으로 확인돼 추가로 검거할 예정”이라며 “관련 자료를 국세청에 보내 세무조사를 통해 탈루 세금을 추징하라고 통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쑥스러워요, 내가 쓰다 남은 돈을 기부한 것뿐인데….” 25일 오후 5시 서울 성북구 고려대 본관 인촌챔버. 취재진 앞에 선 양영애 씨(83·여)는 부끄럽고 어색하다는 듯 연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날 김영석(91)·양영애 씨 부부는 고려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에 200억 원 상당의 서울 동대문구 소재 토지 5필지와 건물 4동을 기증했다. 노부부가 젊은 시절 과일장사를 하면서 한 푼 두 푼 절약해 모은 재산이다. 앞으로 200억 원 상당의 토지와 건물 등을 추가로 기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역대 고려중앙학원에 기부한 금액 중 가장 많은 액수다. 기증식에서 감사패를 받은 양 씨는 남편과 감사패를 번갈아 바라보며 함박미소를 지었다.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앉은 김 씨의 눈빛에도 오랜 꿈을 이뤘다는 감격이 스쳐 지나갔다. 본보는 24일 동대문구 소재 부부의 자택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낡은 소파에 사치품 하나 보이지 않는 검소한 거실. 벽 한편에 걸린 단출한 가족사진과 창가에 놓인 화분 옆에서 노부부는 주름이 굵게 팬 양손을 꼭 잡았다. “된장이랑 꽁보리밥만 10년 넘게 먹었지요.” 양 씨가 회고하는 것처럼 부부는 혹독한 가난을 겪었다. 6·25전쟁이 끝난 뒤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결혼했다. 서울 청량리의 무허가 판자촌의 집에서 15년을 살았다. 비가 내릴 때마다 머리맡으로 빗물이 떨어졌다. 1960년대 초부터 부부는 젖먹이를 등에 업고 리어카로 과일을 떼다 팔았다. 전국에서 과일을 싣고 오는 트럭은 오전 1시 가까운 시간에 종로5가의 시장에 도착하곤 했다.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지만 부부는 매일 통금을 뚫고 청량리부터 종로5가까지 1시간을 걸었다. 품질 좋은 과일을 다른 상인들보다 3, 4시간 먼저 받겠다는 생각에서다. 가는 도중에 경찰에게 붙들리기도 했지만 매일같이 나오는 부부의 근면함에 경찰들도 두 손을 들었다. 부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을 팔겠다’는 신념으로 일했다. 노력은 곧 입소문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하루에 10짝 남짓 팔았지만 몇 년 지나자 70∼80짝을 가져다 놔도 3시간이면 동이 났다고 한다. 돈이 모이는 대로 저축을 한 끝에 부부는 1976년에 처음으로 청량리에 상가건물을 살 수 있었다. 부부는 티끌도 아꼈다. 새벽에 과일을 받아놓은 뒤 근처 해장국집에서 아침까지 일했다. 그 대가로 아침·점심밥을 그 식당에서 먹었다. 장사를 끝내고 돌아올 때는 종로에서 청량리를 잇는 전차를 탈 수 있었지만 요금 50전을 아끼기 위해 걸어서 왔다. 생일도 여행도 없었다. 주변 상인들 중에는 “죽으면 가져가지도 못할 돈인데 뭐 그리 억척스레 사느냐”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다. 부부는 “다 계획이 있어서 그런다”라고 대꾸하곤 했다. 부부가 말한 ‘계획’이 바로 장학금 기부였다. “우리 아버지가 미워 죽겠어요. 나 공부시켜 줬으면 참 잘했을 텐데.” 초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양 씨에게 공부는 평생의 한이었다. 과일가게 앞을 지나는 대학생들을 바라볼 때마다 부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첫아들의 모교인 고려대를 운영하는 고려중앙학원에 기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양 씨는 “두 아들에게도 우리가 기부를 한다는 걸 알리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기증식에서 부부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사람이 기부를 할 수 있어 기쁘다”며 “기부한 재산은 어려운 학생들이 훌륭한 인재로 자랄 수 있도록 마음껏 공부할 환경을 만드는 데 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재호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염재호 고려대 총장 등이 참석해 부부에게 감사를 표했다.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쑥스러워요, 내가 쓰다 남은 돈을 기부한 것뿐인데….” 25일 오후 5시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 인촌 챔버. 취재진 앞에 선 양영애 씨(83·여)는 부끄럽고 어색하다는 듯 연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날 김영석(91)·양영애 씨 부부는 고려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에 200억 원 상당의 서울 동대문구 소재 토지 5필지와 건물 4동을 기증했다. 노부부가 젊은 시절 과일장사를 하면서 한 푼 두 푼 절약해 모은 재산이다. 앞으로 200억 원 상당의 토지와 건물 등을 추가로 기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역대 고려중앙학원에 기부한 금액 중 가장 많은 액수다. 기증식에서 감사패를 받은 양 씨는 남편과 감사패를 번갈아 바라보며 함박미소를 지었다.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앉은 김 씨의 눈빛에도 오랜 꿈을 이뤘다는 감격이 스쳐지나갔다. 본보는 24일 동대문구 소재 부부의 자택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낡은 소파에 사치품 하나 보이지 않는 검소한 거실. 벽 한편에 걸린 단출한 가족사진과 창가에 놓인 화분 옆에서 노부부는 주름이 굵게 팬 양손을 꼭 잡았다. “된장이랑 꽁보리밥만 10년 넘게 먹었지요.” 양 씨가 회고하는 것처럼 부부는 혹독한 가난을 겪었다. 6·25전쟁이 끝난 뒤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결혼했다. 서울 청량리의 무허가 판자촌의 집에서 15년을 살았다. 비가 내릴 때마다 머리맡으로 물이 떨어졌다. 1960년대 초부터 부부는 젖먹이를 등에 업고 리어카로 과일을 떼다 팔았다. 전국에서 과일을 싣고 온 트럭은 오전 1시 가까운 시간에 종로5가의 시장에 도착하곤 했다.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지만 부부는 매일 통금을 뚫고 청량리부터 종로5가까지 1시간을 걸었다. 품질 좋은 과일을 다른 상인들보다 3, 4시간 먼저 받겠다는 생각에서다. 가는 도중에 경찰에 붙들리기도 했지만 매일같이 나오는 부부의 근면함에 경찰들도 두 손을 들었다. 부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을 팔겠다’는 신념으로 일했다. 노력은 곧 입소문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하루에 10짝 남짓 팔았지만 몇 년 지나자 70~80짝을 가져다 놔도 3시간이면 동이 났다고 한다. 돈이 모이는 대로 저축을 한 끝에 부부는 1976년에 처음으로 청량리에 상가건물을 살 수 있었다. 부부는 티끌도 아꼈다. 새벽에 과일을 받아놓은 뒤 근처 해장국집에서 아침까지 일했다. 그 대가로 아침·점심밥을 그 식당에서 먹었다. 장사를 끝내고 돌아올 때는 종로에서 청량리를 잇는 전차를 탈 수 있었지만 요금 50전을 아끼기 위해 걸어서 왔다. 생일도 여행도 없었다. 주변 상인들 중에는 “죽으면 가져가지도 못할 돈인데 뭐 그리 억척스레 사느냐”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다. 부부는 “다 계획이 있어서 그런다”라고 대꾸하곤 했다. 부부가 말한 ‘계획’이 바로 장학금 기부였다. “우리 아버지가 미워죽겠어요. 나 공부시켜 줬으면 참 잘했을 텐데.” 초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양 씨에게 공부는 평생의 한이었다. 과일가게 앞을 지나는 대학생들을 바라볼 때마다 부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의 모교인 고려대에 기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양 씨는 “두 아들에게도 우리가 기부를 한다는 걸 알리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기증식에서 부부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사람이 기부를 할 수 있어 기쁘다”며 “기부한 재산은 어려운 학생들이 훌륭한 인재로 자랄 수 있도록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재호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염재호 고려대 총장 등이 참석해 부부에게 감사를 표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22일 오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현장 앞. 피해자 신모 씨(20)를 추모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 옆쪽에는 작은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다. 테이블에 흰 국화를 올려놓은 신 씨의 중학교 후배 박모 군(18)은 “정말 본받고 싶은 형이었는데, 이제 연락조차 할 수 없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 씨는 후배들을 늘 잘 챙기는 ‘형아’였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기 용돈을 마련하면서도 동생들에게 이것저것 잘 사줬다고 한다. 박 군은 “신 씨는 늘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바쁘게 생활했다”고 기억했다. 신 씨는 선생님들의 기억에 남는 학생이기도 했다. 중학교 때 담임교사를 맡았던 한 교사는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학생”이라며 “내가 정말로 아끼는 착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하늘나라에서는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키 193cm에 몸무게 88kg의 훤칠한 외모를 갖고 있던 신 씨의 꿈은 모델이 되는 것이었다. 검도 유단자이기도 했지만 성격은 “순진하다 싶을 정도로 순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싸움에 휘말리는 일이 별로 없었고, 혹시라도 시비가 붙으면 먼저 사과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박 군은 살인 피의자 김성수(29)에 대해 “PC방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우울증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며 “심신미약으로 가벼운 형을 받으면 형이 너무 억울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이른바 ‘동덕여대 알몸남’ 박모 씨(28) 사건으로 ‘음란 야외노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온라인상에는 다양한 음란 야외노출 사진과 동영상이 게재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박 씨가 알몸 사진을 올리며 썼던 해시태그(#) 내용인 ‘야외노출’을 트위터에 검색하자 야외노출 관련 계정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계정 이름부터 야외노출을 대놓고 홍보하거나, 계정을 소개하는 글에 야외노출을 포함시킨 경우가 많았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노출 사진들도 있었다. 계정을 클릭하자 선정적인 사진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음란 야외노출은 주로 공원이나 아파트 계단 등 공공장소에서 성기까지 노출한 채 사진을 찍는 식으로 이뤄졌다. 어린이들이 찾는 캐릭터 조형물이 있는 공원에서 노출을 한 경우도 있었다. 게시자들은 “낮에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는 곳이라 떨렸다” “스릴 있었다”는 등 경험담을 덧붙였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편의점에서 실수인 척 숙이며 노출하면 된다” 등 야외노출 경험과 팁을 공유했다. 하지만 음란 야외노출을 일일이 수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 경찰관은 “장소나 노출인이 특정되지 않는 음란 노출이 많고, 외국에 서버를 둔 사이트에 올린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불안감과 불쾌함을 호소했다. 재학생 이모 씨(22)는 “더럽고 끔찍하다”며 “강의실을 지나다닐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측은 음란행위가 벌어졌던 강의실을 당분간 폐쇄하고 살균소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서울북부지법 김병수 영장전담부장판사는 17일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등 혐의로 경찰이 박 씨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 부장판사는 “증거들이 모두 확보돼 있어 증거 인멸의 염려가 없고,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경기 파주시의 한 어린이집 이사장이 등원시키던 7살 여자 어린이에게 음란물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기 파주경찰서는 6일 피해신고가 접수돼 아동과 보호자에 대한 조사를 마쳤고 15일 어린이집 이사장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경찰은 이사장의 휴대전화와 등원 차량 블랙박스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피해 아동의 부모 A 씨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해당 어린이집 이사장을 처벌해 달라는 청원 글을 올렸다. A 씨는 청원 글에서 “딸을 등원시켜 주던 이사장이 한 손으로는 운전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들고서 음란물을 보여줬다”며 “때로는 졸려 하는 아이를 깨워 보여주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해당 청원에는 12일 오후 11시 현재 1만7000여명이 참여했다. 경찰은 어린이집 이사장을 15일 불러 조사한 뒤 A 씨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면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8일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의 한 잉어빵 노점. 기자는 잉어빵 2000원어치를 사면서 “계좌이체도 가능하냐”고 물었다. 가게 주인 A 씨는 “당연히 된다”고 화답했다. 이 가게에는 ‘계좌이체 가능’이라는 안내 문구까지 붙어 있었다. 기자는 토스(Toss)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2000원을 바로 이체했다. A 씨는 “요즘 손님들이 현금을 잘 안 들고 다니지만 계좌이체가 쉽게 되니까 걱정이 없다”며 “나도 괜히 현금을 잃어버릴까 하는 걱정을 덜었고 매출도 늘었다”고 말했다. 바로 옆 떡볶이 노점에는 ‘현금 없어도 한방에’라는 문구와 함께 간편송금 앱(송금 앱)을 통한 결제 방식이 친절하게 소개돼 있었다. 같은 날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걷고 싶은 거리’의 한 옷가게. “지갑을 안 가지고 나왔다”며 당황하는 손님에게 가게 주인이 계좌번호가 적힌 노트를 건네며 말했다. 계좌번호를 받은 손님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카카오페이 앱을 이용해 몇 차례 화면을 클릭하자 ‘3만5000원 송금 완료’라는 알림이 떴다. 주인도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 입금이 확인됐다는 알림을 확인한 뒤 밝게 웃으며 손님을 배웅했다. 손님과 주인이 계좌이체를 통해 티셔츠 값을 주고받는 데 걸린 시간은 20여 초.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보다 크게 번거롭지 않았다. 최근 카카오페이, 토스 등 송금 앱 사용자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나타난 모습이다. 일반 상점은 물론이고 노점에서 물건을 살 때도 현금이나 카드 없이 휴대전화만 있으면 손쉽게 결제가 가능하다. 최근에는 계좌번호를 일일이 입력하지 않아도 모바일로 QR코드를 인식시키고 금액만 입력하면 전송이 되는 결제 방식이 생겨나 지갑을 꺼낼 일이 점점 더 없어지고 있다. 카드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 덕분에 계좌이체 방식의 거래를 선호하는 상인도 늘고 있다.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더치페이 문화가 정착되는 데에도 송금 앱들이 한몫하고 있다. 식사 자리에서 사람마다 돈을 걷거나 줄을 서서 한 명씩 자기 몫의 금액을 카드로 결제하며 어색해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있다. 그 대신 한 명이 먼저 결제한 뒤 앱을 통해 송금을 받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송금 앱에서 총 결제금액을 입력한 후 돈을 낼 친구들의 목록을 선택하면 사람 수에 맞춰 송금액이 배분되고, 바로 송금을 받을 수 있다. 송금 앱 사용자들끼리는 상대방 계좌번호를 모르더라도 송금이 가능하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 씨(27·여)는 “전에는 송금받는 게 번거로워 현장에서 돈을 걷어 결제하느라 불편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는데 이제 손쉽게 더치페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간편송금 이용 금액은 빠르게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6년 2조4413억 원이던 간편송금 이용 금액은 2017년 11조9541억 원으로 5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현 추세대로라면 올해 간편송금 이용 금액은 27조 원을 넘길 것으로 금감원은 추산했다. 전문가들은 송금 앱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체 받은 돈의 세금 납부, 신용카드산업과의 충돌 가능성 등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규제로 막아서는 안 된다”며 “새로운 결제 트렌드를 어떻게 잘 키워 나갈 것인가 고민하고 보완책을 차근차근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