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치료가 가능하겠습니까?” 2015년 이한열기념관에서 밑창이 부스러져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타이거’ 운동화 한 짝을 들고 왔다. 1987년 최루탄을 맞고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 씨가 당시 신고 있던 신발이었다. 쉽지 않은 작업이 예상됐지만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의 김겸 대표(50)는 “예, 가능합니다”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집중 치료가 시작됐다. 1980년대 판매된 타이거 운동화의 소유자를 찾아 전국을 헤맸고, 조각나 있던 운동화 밑창에 에폭시 수지를 주입하는 작업 등이 이어졌다. 3개월의 치료 끝에 타이거 운동화는 새 생명을 얻었고, 지금도 이 운동화는 이한열기념관 상설전시관에 온전한 모습으로 전시돼 있다. 최근 미술품 복원가의 세계를 다룬 에세이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문학동네)를 출간한 김 대표를 경기 고양시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치료 이듬해인 2016년 이한열 운동화의 복원 과정을 담은 소설 ‘L의 운동화’(민음사)가 출간됐고, 지난해에는 영화 ‘1987’에서 다시 다뤄졌다”며 “책 제목처럼 유물 복원은 단지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를 되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백남준, 이성자….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김 대표의 손을 거쳤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름난 유명한 작가의 작품만을 복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한열의 운동화뿐 아니라 동네 주민의 인형, 길거리에서 산 미술품처럼 일상의 문화유산들이 모두 그의 치료 대상이다. 김 대표는 미술품을 자동차에 비유하며 복원에도 애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동차에 대한 애정이 큰 우리나라에서 만약 자신의 차량이 긁히기라도 하면 비싼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수리·복원을 합니다. 관련 산업 역시 크게 발달해 있죠. 하지만 미술품이나 유물에 대한 애정이 한국 사회에서 크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자기 소유의 미술품을 복원하는 게 일상이 된 프랑스나 일본 등 이른바 문화 선진국과 확연히 구분되죠. 우리도 미술품에 대한 애정이 커지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나라 복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세계 어느 곳보다 ‘빠름’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영국 유학 시절 참여한 런던의 링컨대성당(1280년 완공) 작업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의 복원 세태에 일침을 가했다. “링컨대성당은 지금도 70년째 복원 공사를 진행 중입니다. 수백 년 동안 같이 살아왔는데 고작 수십 년 정도 건강 진단하고, 치료하는 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거죠. 3년 만에 복원을 끝낸 숭례문을 보고 100년 후 후손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요.” 고양=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치료가 가능하겠습니까?” 2015년 이한열기념관에서 밑창이 부스러져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타이거’ 운동화 한 짝을 들고 왔다. 1987년 최루탄을 맞고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 씨가 당시 신고 있던 신발이었다. 쉽지 않은 작업이 예상됐지만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의 김겸 대표(50)는 “예, 가능합니다”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집중 치료가 시작됐다. 1980년대 판매된 타이거 운동화의 주인을 찾아 전국을 헤맸고, 조각나 있던 운동화 밑창에 에폭시 수지를 주입하는 작업 등이 이어졌다. 3개월의 치료 끝에 타이거 운동화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지금도 이 운동화는 이한열기념관 상설전시관에서 건강하게 전시돼 있다. 최근 미술품 복원가의 세계를 다룬 에세이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문학동네)를 출간한 김 대표를 경기 고양시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치료 이듬해인 2016년 이한열 운동화의 복원 과정을 담은 소설 ‘L의 운동화’(민음사)가 출간됐고, 지난해에는 영화 ‘1987’에서 다시 다뤄졌다”며 “책 제목처럼 유물 복원은 단지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시간과 이야기를 되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백남준, 이성자….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김 대표의 손을 거쳤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름난 유명한 작가의 작품만을 복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한열의 운동화 뿐 아니라 동네 주민의 인형, 길거리에서 산 미술품처럼 일상의 문화유산들이 모두 그의 치료 대상이다. 김 대표는 미술품을 자동차에 비유하며 복원에도 애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동차에 대한 애정이 큰 우리나라에서 만약 자신의 차량이 긁히기라도 하면 비싼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수리·복원을 합니다. 관련 산업 역시 크게 발달해 있죠. 하지만 미술품이나 유물에 대한 애정이 한국 사회에서 크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자기 소유의 미술품을 복원하는 게 일상이 된 프랑스나 일본 등 이른바 문화 선진국과 확연히 구분되죠. 우리도 미술품에 대한 애정이 커지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나라 복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세계 어느 곳보다 ‘빠름’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영국 유학 시절 참여한 런던의 링컨대성당(1280년 완공)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의 복원 세태에 일침을 가했다. “링컨대성당은 지금도 70년째 복원 공사를 진행 중입니다. 수백 년 동안 같이 살아왔는데 고작 수십 년 정도 건강 진단하고, 치료하는 게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거죠. 3년 만에 복원을 끝낸 숭례문을 보고 100년 후 후손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요.”유원모 기자onemore@donga.com}

“이곳에서 노닌 지 오십 년, 젊었을 적 봄날에는 온갖 꽃 앞에서 취했었지. … 훗날 호사가가 묻는다면 말해주오, 퇴계 늙은이 앉아 시 읊었다고.” 16일 경북 안동시 봉정사에 들어서자 퇴계 이황(1501∼1570)이 가장 먼저 반긴다. 사찰 입구 계곡에 있는 정자인 ‘명옥대(鳴玉臺)’에서 퇴계가 이 시를 남긴 것. 열여섯 살 퇴계가 이곳에서 3개월가량 머물며 공부를 하고, 놀기도 했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물이 떨어지는 곳’이란 뜻의 ‘낙수대(落水臺)’였지만 귀향 후 50년 만에 다시 찾은 퇴계가 ‘옥구슬 소리가 나는 정자’라는 이름으로 바꿔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봉정사는 ‘선비의 고장’에 자리한 덕분에 불교뿐 아니라 유교의 색채도 짙게 배어 있다. 서애 류성룡(1542∼1607)을 기리는 병산서원과 퇴계를 모신 도산서원이 사찰과 가까우니 함께 둘러보면서 한국 정신문화의 뿌리를 같이 즐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본격적으로 사찰에 들어서면 2층 누각인 만세루를 마주한다. 누각의 주춧돌을 자세히 보면 자연석 그대로를 활용하고, 기둥 돌 아래쪽과 자연스럽게 접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그랭이’ 공법으로,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했던 선조들의 숨은 코드인 셈이다. 만세루를 지나면 두 개의 주전(主殿) 중 하나인 대웅전(국보 제311호)이 정면에,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무량해회 건물이 양 옆에 위치한다. 조선 초 건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다포계 건물(지붕을 받치는 공포가 여러 개인 양식) 중 가장 오래된 대웅전에는 독특하게도 건물 전면에 툇마루가 설치돼 있다. 이날 동행한 명법 스님(문화재위원)은 “전통 한옥식 구조를 사찰에 적용해 산사(山寺)라는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려 한 것”이라며 “대부분 독립된 건물로 존재하는 ‘칠성각’이 대웅전 내부에 있는 등 봉정사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건축 요소가 많다”고 설명했다. 화엄강당 뒤편으로 이동하면 국내 최고(最古) 목조건물인 극락전(국보 제15호)이 나타난다. 12세기에 지은 극락전은 주심포 양식과 맞배지붕 등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유행한 다포식, 팔작지붕을 갖춘 대웅전과 비교해서 보면 한국 전통 건축의 변천사를 한곳에서 즐길 수 있다. 봉정사에서 놓치면 아까운 곳이 있다. 대웅전에서 동쪽으로 200여 m를 올라가면 나타나는 영산암(靈山庵)이다. 19세기에 지은 이 암자는 조선 후기 사대부 집안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마음을 바라보는 집’을 뜻하는 ‘관심당(觀心堂)’, ‘꽃비가 내리는 누각’의 ‘우화루(雨花樓)’ 등 예쁜 이름을 가진 건물에 둘러싸인 미음(ㅁ)자 구조다. 내부 정원에는 봉선화와 옥잠화처럼 수수한 꽃들이 주를 이룬다. 화려하기보다는 푸근한 매력을 선사하는 한국 정원의 미학을 대표하는 곳이다. 1999년 4월 방한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곳을 찾기도 했다. 명법 스님은 “조선의 선비와 한국 전통 불교는 소탈하며 끊임없이 도를 추구하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 매력을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봉정사”라고 말했다. 안동=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이곳에서 노닌 지 오십 년, 젊었을 적 봄날에는 온갖 꽃 앞에서 취했었지.(중략) 훗날 호사가가 묻는다면 말해주오, 퇴계 늙은이 앉아 시 읊었다고.” 경북 안동시 봉정사에 16일 들어서자 퇴계 이황(1501~1570)이 가장 먼저 반긴다. 사찰 입구 계곡에 있는 정자인 ‘명옥대(鳴玉臺)’에서 퇴계가 이 시를 남긴 것. 16살 퇴계가 이곳에서 3개월 가량 머물며 공부를 하고, 놀기도 했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물이 떨어지는 곳’이란 뜻의 ‘낙수대(落水臺)’였지만 귀향 후 50년 만에 다시 찾은 퇴계가 ‘옥구슬 소리가 나는 정자’라는 이름으로 바꿔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봉정사는 ‘선비의 고장’에 자리한 덕분에 불교 뿐 아니라 유교의 색채도 짙게 배어있다. 서애 류성룡(1542~1607)을 기리는 병산서원과 퇴계를 모신 도산서원이 사찰과 가까우니 함께 둘러보면서 한국 정신문화의 뿌리를 함께 즐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본격적으로 사찰에 들어서면 2층 누각인 만세루를 마주한다. 누각의 주춧돌을 자세히 보면 자연석 그대로를 활용하고, 기둥 돌 아래쪽과 자연스럽게 접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그랭이’ 공법으로,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했던 선조들의 숨은 코드인 셈이다. 만세루를 지나면 두 개의 주전(主殿) 중 하나인 대웅전(국보 제311호)이 정면에,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무량해회 건물이 양 옆에 위치한다. 조선 초 건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다포계 건물 중 가장 오래된 대웅전에는 독특하게도 건물 전면에 툇마루가 설치돼 있다. 이날 동행한 명법 스님(문화재위원)은 “전통 한옥식 구조를 사찰에 적용해 산사(山寺)라는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려한 것”이라며 “대부분 독립된 건물로 존재하는 ‘칠성각’이 대웅전 내부에 있는 등 봉정사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건축 요소가 많다”고 설명했다. 화엄강당 뒤편으로 이동하면 국내 최고(最古) 목조건물인 극락전(국보 제15호)이 나타난다. 12세기에 지은 극락전은 주심포 양식과 맞배지붕 등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유행한 다포식, 팔작지붕을 갖춘 대웅전과 비교해서 보면 한국 전통 건축의 변천사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다. 봉정사에서 놓치면 아까운 곳이 있다. 대웅전에서 동쪽으로 200여m를 올라가면 나타나는 영산암(靈山庵)이다. 19세기에 지은 이 암자는 조선 후기 사대부 집안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마음을 바라보는 집’을 뜻하는 ‘관심당(觀心堂)’, ‘꽃비가 내리는 누각’의 ‘우화루(雨花樓)’등 예쁜 이름을 가진 건물에 둘러싸인 미음(ㅁ)자 구조다. 내부 정원에는 봉숭화와 옥잠화처럼 수수한 꽃들이 주를 이룬다. 화려하기보다는 푸근한 매력을 선사하는 한국 정원의 미학을 대표하는 곳이다. 1999년 4월 방한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곳을 찾기도 했다. 명법 스님은 “조선의 선비와 한국 전통 불교는 소탈하며 끊임없이 도를 추구하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 매력을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봉정사”라고 말했다. 안동=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모든 사람에게 약간의 생활수단으로 줌으로써 도둑으로 시작해 시체로 끝나는 끔찍한 필연성을 아무도 겪지 않게 하는 것.” 토머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1516년)는 기본소득이 있는 사회를 이같이 표현했다. ‘아무데도 없는 곳’이란 유토피아의 뜻처럼 기본소득은 유럽 선진국조차 실험 끝에 폐기되거나 도입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기본소득에 대한 주요 반대논리 13가지를 정리한 뒤 이를 치밀하게 재반박하며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대표적으로 부자에게도 돈을 나눠주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논리가 있다. 하지만 저자는 사회적 부(富)는 과거 세대에게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시민이 혜택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한다. 똑같이 지급되더라도 경제적 약자에게는 상대적 값어치가 훨씬 커 가난한 사람을 선별하는 기존 복지제도의 행정비용보다 효율적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한국어판에서 “보편주의적 사회보장의 전통이 있고,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제적 수단이 있다”며 한국이 논의를 주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홍역을 치르는 우리 사회가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구학문으로 말하면 오장육부에 정신보가 빠졌다 할 만하고 신학문으로 말하면 뇌에 피가 말라 신경이 희미하다 할 만한….” 이해조(1869∼1927)의 소설 ‘빈상설(빈上雪·1908년)’에는 간교한 첩에게 홀린 주인공 정길의 상태를 이같이 표현했다. 서양 의학을 본격적으로 수용하던 개화기 당시의 인식이 문학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개화기 사람들이 서양의학을 수용해 가는 모습을 조명한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린다. 서울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의 기획특별전 ‘나는 몸이로소이다―개화기 한글 해부학 이야기’. 이번 전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인 ‘제중원―해부학’(1906년) 3권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을 비롯해 213점의 유물이 한꺼번에 출품됐다. 전시는 3부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1부 ‘몸의 시대를 열다’에선 몸에 대한 우리나라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 서양의학의 관점 차이를 비교한다. 해부학이 수용되기 전 조선에서 사인(死因) 분석에 활용했던 검시(檢屍) 제도 등이 자세히 소개된다. 1902년 강릉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내용을 담은 ‘이운지 이경화 시신 검시 문안’ 원본 문서 등을 볼 수 있다. 2부 ‘몸을 정의하다’는 몸을 가리키는 우리말의 변화상을 살펴본다. 마음과 생각이 심장에 있다고 여긴 전통의학과 달리 서양의학이 수용되면서 뇌, 신경 등이 강조된 표현을 각종 서적과 사진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시의 백미는 3부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 일본의 ‘실용해부학’ 서적을 1906년 제중원 의사였던 김필순(1880∼1922)이 번역하고, 교수였던 애비슨(1860∼1956)이 교열해 완성시킨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인 ‘제중원―해부학’ 3권의 실물을 확인할 수 있다. 10월 14일까지.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몇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주 부석사다.”(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 중에서)장마 끝에 맑게 갠 날씨를 선사한 16일. 경북 영주시 소백산국립공원에 있는 부석사(浮石寺)에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여느 유명한 산사 입구처럼 피서를 온 인파로 북적거리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산세가 험하고, 계곡이 없는 이곳은 취락시설이 거의 없어 조용한 경관을 자랑한다. 고요한 산사(山寺)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부석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찰의 정중앙에 위치한 범종루와 안양루 등 일렬로 배치돼 있는 누각들이다. 이날 동행한 문화재위원인 명법 스님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겹치는 험준한 지형에 위치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누각 밑의 계단을 지나야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는 ‘누하(樓下)진입’ 구조를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찰의 아래쪽에선 한눈에 파악하기 힘든 부석사의 전경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조금씩 얼굴을 내비친다. 부석사의 법당인 무량수전(無量壽殿·국보 제18호) 앞에 위치한 안양루에 올라서면 봉황산을 포함한 소백산맥의 수려함이 눈앞에 펼쳐진다. 선선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와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임에도 기분 좋은 시원함을 선물한다. 안양루의 벽면에는 이곳을 방문하거나 시주한 이들의 이름이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있구나” 이곳에서 조선 후기의 방랑 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1807∼1863)이 남긴 수려한 시 한 수를 감상하는 여유를 즐겨 보자. 안양루 뒤편에는 부석사의 자랑이자 한국 건축의 백미 무량수전이 위치한다. 특징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배흘림기둥. 가운데가 볼록하게 보이는 시선의 왜곡 현상을 활용해 배 부분을 더 두껍게 강조하는 엔타시스 기법을 사용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도 볼 수 있는 기법으로 당나라를 거쳐 우리나라에까지 유입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건축 기법을 동아시아의 사찰에서 만난다는 점에서 시공간이 무한하다는 무량수전의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온다. 무량수전 바로 옆에는 부석사의 창건설화와 관련된 큼지막한 너럭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625∼702)와 그를 흠모한 중국의 선묘낭자의 애틋한 로맨스를 간직하고 있다. 선묘낭자는 당나라로 유학 온 의상대사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깨닫고, 대신 용이 돼 신라로 귀국하는 스님을 수호한다. 이후 사찰을 짓기 위해 토착세력과 갈등을 겪던 의상대사를 돕기 위해 뜬 바위(부석)로 변해 반대 세력을 무찔러 준 것이다. 실제로 바위의 밑부분은 떠있는 것처럼 가파르게 꺾여 있다. 의상대사는 한국 불교의 화엄종을 집대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안양루 아래쪽에 위치한 ‘장경각’은 고려 시대 때 화엄사상의 내용을 적어 놓은 ‘화엄경판’ 500여 판을 보관 중이다. 마침 이날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진이 경판을 인쇄하는 인경(印經)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먹 냄새 가득한 곳에서 경판을 인쇄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고려시대 불교 수행자의 흔적이 내 눈앞에 얼핏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부석사의 숨은 매력은 사찰 동쪽 끝에 위치한 식당이다. 미리 예약한 일부 방문객에 한해 허용되는 식당은 소백산맥을 바라보며 식사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건강한 음식과 풍경을 함께 즐기고 있으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모두 홀가분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영주=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올해 4월 전북 익산시 쌍릉(사적 제87호)의 대왕릉에서 발견된 인골의 정체가 서동요(薯童謠)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641)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18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익산 쌍릉 대왕릉 내부에서 나온 인골함의 뼈 102점을 분석했다”며 “인골의 주인공은 50대 이상 60, 70대 노년이고 키는 161∼170.1cm, 사망 시점은 620∼659년으로 산출됐다”고 밝혔다. 대왕릉과 소왕릉으로 구성된 익산 쌍릉은 백제 무왕과 그의 부인인 선화공주가 각각 묻혔다고 알려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이다. 그러나 2016년 국립전주박물관이 일제강점기 당시 대왕릉에서 수습된 치아를 분석한 결과 20∼40세 여성이라고 밝히면서 피장자의 정체를 둘러싼 논쟁이 커졌다. 이에 지난해 문화재청과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등이 1917년 조선총독부의 발굴 이후 100년 만에 쌍릉 재발굴을 진행했고 대왕릉 내부 관대(棺臺·관을 얹어 놓는 넓은 받침)에서 인골 102점이 담긴 상자를 발견했다. 이후 문화재청은 고고학과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등 관련 전문가들을 참여시키는 연구진을 꾸렸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가톨릭대 의대 응용해부연구소가 참여한 연구진이 팔꿈치 뼈의 각도와 목말뼈(발목뼈 중 하나) 크기 등을 조사한 결과 남성일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우영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2년 전 전주박물관의 치아 조사는 논리적 접근 방식으로는 합당했지만 치아만으로 성별과 연령을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며 “뼈 길이와 두께 등을 고려해 봤을 때 전주박물관이 분석한 치아도 남성 노인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피장자의 키다. 161∼170.1cm로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 조선시대 성인 남성 평균 키도 161.1cm밖에 되지 않는다. 이상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삼국사기에서 무왕에 대해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고 표현한 기록과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가속질량분석기(AMS)를 이용해 정강뼈의 방사성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피장자의 사망 추점 시점이 620∼659년인 것으로 추정했다. 이성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무덤 구조와 규모, 유물 품격과 당대 백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대왕릉은 왕의 무덤”이라며 “600년에 즉위해 641년에 사망했다는 무왕의 재임 기록과 7세기 초에 익산에 관심을 기울이며 생을 마감한 유일한 임금이라는 점에서 쌍릉의 주인공이 무왕일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무덤 주인을 무왕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인골의 부식이 심해 유전자(DNA) 분석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또 쌍릉은 고려 충숙왕 때인 1327년 도굴됐다는 기록이 있는 등 일제강점기까지 지속적으로 훼손된 점도 고려해야 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몇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주 부석사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2’에서) 부석사(浮石寺)에 대한 이런 묘사처럼 장마 끝에 맑게 갠 날씨를 선사한 16일. 경북 영주시 소백산국립공원에 위치한 부석사에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웬만한 유명한 산사 입구처럼 피서 인파로 북적거리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산세가 험하고, 계곡이 없는 이곳은 취락시설이 거의 없어 조용한 경관을 자랑한다. 고요한 산사(山寺)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부석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찰 정중앙에 위치한 범종루와 안양루 등 일렬로 배치된 누각들. 함께 동행한 문화재위원인 명법 스님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겹치는 험준한 지형에 위치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누각 밑의 계단을 지나야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는 ‘누하(樓下)진입’ 구조를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찰 아래쪽에선 한 눈에 파악하기 힘들었던 부석사의 전경이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조금씩 얼굴을 내비친다. 법당인 무량수전(無量壽殿·국보 제18호) 앞에 위치한 안양루에 올라서면 봉황산을 포함한 소백산맥의 수려함이 눈앞에 펼쳐진다. 선선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와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도 기분 좋은 시원함을 선물한다. 안양루 벽면에는 이곳을 방문하거나 시주한 이들의 이름이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江山似畵東南列)/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있구나(天地如萍日夜浮).” 조선 후기 방랑 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1807~1863)이 남긴 수려한 시 한수를 마주하면 청량한 여유가 젖은 땀을 식혀준다. 안양루 뒤편에는 부석사의 자랑이자 한국 건축의 백미 무량수전이 있다. 극락전, 대웅전 등의 이름을 가진 절은 많지만 ‘무량수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법당은 오직 부석사뿐이다. 무량수는 아미타 부처를 뜻하는데, 시간과 공간이 무한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특징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배흘림기둥. 가운데가 볼록하게 보이는 시선의 왜곡 현상을 활용해 배 부분을 더 두껍게 강조하는 엔타시스 기법을 사용했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도 볼 수 있는 기법으로 당나라를 거쳐 우리나라까지 유입됐다. 고대 그리스의 건축 기법을 동아시아 사찰에서 만난다는 점에서 시공간이 무한하다는 무량수전의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온다. 무량수전 옆에는 부석사 창건설화와 관련된 큼지막한 너럭바위가 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625~702)와 그를 흠모한 중국의 선묘낭자의 애틋한 로맨스가 전해진다. 선묘낭자는 당나라로 유학 온 의상대사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연인 대신 용으로 변신해 신라로 귀국하는 스님을 수호했다고 한다. 이후 사찰을 짓기 위해 토착세력과 갈등을 겪던 의상대사를 돕기 위해 뜬 바위(부석)로 변해 반대 세력을 무찔러 주기도 했다. 실제로 바위의 밑 부분을 살펴보면 마치 떠있는 것처럼 가파르게 꺾여 있다. 부석사에는 의상대사를 기억하는 공간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무량수전에서 100m 가량 더 높은 곳에 있는 조사당(祖師堂·국보 제19호)을 꼽을 수 있다. 조사당 앞에는 선비화(禪扉花)라고 불리는 골담초 한 그루가 피어나고 있다. 의상대사의 지팡이를 꽂은 후 지금껏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재밌는 설화가 녹아 있다. 의상대사는 한국 불교의 화엄종을 집대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안양루 아래에 위치한 ‘장경각’에서 고려 때 화엄사상의 내용을 적어 놓은 ‘화엄경판’ 500여 판이 보관 중이다. 마침 이날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진이 경판을 인쇄하는 인경(印經)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먹 냄새 가득한 곳에서 경판을 인쇄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고려시대 불교 수행자의 흔적을 얼핏 발견할 수 있었다. 부석사의 숨은 매력 하나 더. 사찰 동쪽 끝에 위치한 식당은 꼭 들리길 권한다. 미리 예약한 방문객에 한해 허용되는 식당은 소백산맥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건강한 음식과 풍경을 함께 즐기고 있으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모두 홀가분해진다. 1400여년을 이어 온 설화와 빼어난 자연, 뛰어난 한국 전통 건축의 매력을 한 곳에서 느낄 수 있는 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부석사다. 영주=유원모 기자onemore@donga.com}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고대 인도왕국에서 건너온 허왕후의 로맨스를 담은 이색적인 축제가 열린다. 김해문화의전당은 ‘제5회 허왕후신행길축제’를 27일부터 29일까지 경남 김해시 해반천과 가야의거리 일대에서 진행한다고 17일 밝혔다. 허왕후는 인도 아유타국 출신으로 기원후 48년 가야로 건너와 김수로왕과 결혼해 가야의 첫 왕비가 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인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삼성전자 인도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에서 “이곳 우타르프라데시주에는 2000년 전 가야를 찾아온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의 고향 아요디아가 있다”며 한국과 인도의 오랜 인연을 상징하는 인물로 언급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축제는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만남을 형상화한 결혼축하 퍼레이드와 댄스파티, 김해 전통의 석전(石戰)놀이를 현대화한 수전(水戰)놀이, 인도 영화제 등으로 구성됐다. 축제의 백미인 퍼레이드경연대회는 28일 김해 해반천 수상무대에서 열린다. 경연대회에 참가할 팀은 일반부(20세 이상)와 청소년부로 나누어 20일까지 신청을 받는다. 문의는 김해문화의전당 홈페이지나 전화.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2005년 서울 용산구로 이전한 뒤 한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고가 17일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는 각종 국보·보물을 비롯해 20만여 점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어 말 그대로 우리나라 ‘보물 창고’다. 유물 종류에 따라 21개 수장고에 분리 배치돼 있는데, 이날 도자기를 보관하고 있는 3수장고를 공개했다. 박물관 사무동 1층 로비에서 대형 금고처럼 생긴 거대한 철문을 지나면 약 100m 길이의 복도와 마주한다. 유물 보호를 위해 덧신을 신은 뒤 복도 끝 수장고 입구 전실(前室)에 도착하니 다시 2개의 보안 문이 나타났다. 박진우 유물관리부장은 “지금까지 총 7개의 보안장치를 거쳤고, 앞으로 2차례 더 추가로 거쳐야 한다”며 “총 9개의 보안장치를 설치해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수장고에는 나무로 짠 수납장 218개가 가득했다. 미송나무와 오동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수납장은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짜 맞춰 조립하는 결구(結構)방식으로 제작했다. 각각 고유번호가 매겨진 7만2000여 개의 도자기가 격납장을 메우고 있었다. 외부에선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수장고 내부는 선선했다. 16∼24도의 온도와 50%의 습도를 1년 내내 유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각 수장고는 유물 종류마다 보존 환경이 다르다. 종이류는 습도가 높으면 마르는 탓에 60%의 습도를, 금속유물은 녹을 방지하기 위해 40∼45%의 습도를 항시 유지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 비율은 약 80%. 수장 공간 확보를 위해 내년부터 4개 수장고를 복층으로 바꾸는 작업을 2020년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이날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도 함께 개최한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세계문화관’ 신설 등을 담은 박물관 개편 방안도 공개했다. 배 관장은 “세계와 함께하는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콜롬비아 엘도라도나 카자흐스탄 등 다양한 문명의 유물을 가져와 소개할 예정”이라며 “상설전시관에서 기증관 면적을 줄이고 2020년까지 세계도자실과 세계문명실로 이뤄진 세계문화관을 새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남북 문화재 교류 추진 상황도 소개했다. 배 관장은 “12월 4일부터 열리는 대 고려전 특별전에 왕건상과 금속활자를 비롯해 북한에 있는 고려 유물 17건을 대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통일부를 통해 북측에 전달했다”며 “왕건의 스승인 희랑대사 모습을 조각한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을 왕건상과 함께 전시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요즘 직장인 신혜영 씨(24)는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캔버스 앞에 앉아 붓을 든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그가 손에 든 건 스마트폰.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삼성 갤럭시 노트 S펜으로 그린 그림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더니 반응이 나쁘지 않아 더욱 자신을 갖게 됐다. 그는 “S펜으로 그린 그림을 업로드하는 모바일 앱 ‘펜업(PENUP)’에 올리면 다양한 평가도 받고, 수준 놓은 아티스트의 테크닉도 배울 수 있어 더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미술이나 문화재 등 순수 예술에 대한 관심이 첨단기술과 조우하면서 새로운 문화 향유의 트렌드가 번지고 있다. 바뀐 모바일 환경 덕에 그간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작품을 어디서든 관람할 수 있는 데다 실물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큼 생생한 화질의 관람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지난달 구글이 공개한 사이트 ‘코리안 헤리티지’가 대표적 사례. 온라인 예술작품 전시 플랫폼인 ‘구글 아트 앤드 컬처’는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중앙도서관, 국립무형유산원 등과 협력해 조선 왕실 유물 2500여 점과 민속 유물 2만8000여 점을 제공한다. 구글이 자체 개발한 ‘아트 카메라’로 10억 픽셀 이상의 고화질로 피사체를 정밀하게 담아냈다. 심지어 직접 육안으로 봐도 분별이 어려운 붓 터치나 질감까지도 즐길 수 있다. 자그마한 휴대전화 화면으로 성이 차지 않을 경우에는 TV로 연결해 볼 수도 있다. 스마트TV로 화면을 송출할 수 있는 ‘크롬 캐스트’를 설치하면 집 거실의 대형 화면으로 예술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라이프 스타일 TV ‘더프레임’은 55∼65인치 초대형 화면을 통해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집 안의 미술관’으로 불린다. 주변 환경에 따라 작품의 명암과 색감을 자동 조정하는 ’조도 센서‘까지 탑재돼 현장에서 작품을 마주하는 기분을 전해준다.이미 더프레임은 미술계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6월 열린 현대미술축제 ‘유니온 아트페어 2017’에서는 전시작 일부를 이 새로운 TV로 선보이는 ‘컬래버레이션’으로 관심을 끌었다. 구본창 박형근 이완 등 국내 유명 아티스트 19명의 작품을 더프레임을 통해 선보였는데 어떤 이질감도 없었다. 이완 작가는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 방식에 더프레임은 좋은 표현 매체가 되어줬다. 기술의 발전은 작가에게 표현의 자유와 역량을 준다”고 기대했다. 예술과 더프레임의 조우는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 ‘아쿠아리오 치비코’에서 열려 현지에서 관심이 드높았다. 5월에는 시민들이 S펜으로 직접 그린 ‘내 아이의 방에 걸고 싶은 그림’을 공모했는데 1846점의 응모작이 쏟아졌다. 입상작은 더프레임의 ‘아트 스토어’에 올려져 TV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더프레임은 TV가 꺼져 있을 때는 내장 프로그램을 이용해 ‘아트 스토어’에 올려져 있는 그림을 전시해 주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같은 걸작 명화는 물론이고 가족사진도 띄울 수 있어 집 안 거실에 갤러리 같은 분위기를 던져준다. 지난해 전시회에서 대표작 ‘백자’를 선보였던 구본창 작가는 “이런 시도는 예술의 대중화를 위한 좋은 도전이다. 일상의 순간이 아름다워지면 그만큼 예술에 대한 감수성도 높아진다. 더프레임이 생활 속에서 예술의 영감을 일깨우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정양환 기자}

1938년 처음으로 상업용 TV를 제작했고, 1946년엔 미국 최초로 TV 전용 방송국을 만들었던 발명가 앨런 듀몬트(1901∼1965). 그가 만든 듀몬트 연구소는 1947년 최첨단 TV를 활용한 획기적인 발명품을 개발했다. 조종 장치를 이용해 점으로 표현되는 가상의 발사체를 쏘아 맞히는 비디오 게임기인 ‘음극선관 놀이 장치’를 만든 것. 물론 악당의 모습을 한 그래픽도, 긴장감을 높이는 음향도 없었다. 하지만 이 게임기의 등장 뒤 ‘비디오 게임’은 세계 대중문화와 정보기술(IT)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은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그래픽노블’로 친절하게 소개한다. 게임 소재에 만화 형식이라고 해서 결코 가볍지 않다. 전자공학과 컴퓨터의 발전, 비디오 기술의 확장 등 게임을 이루는 각 요소에 대한 역사도 함께 다루고 있는 교양서다. 비디오 게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전자기기의 소형화를 이끈 트랜지스터의 발명과 함께 비디오 기계의 대중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초창기 비디오 게임은 오락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기였다. 동전을 많이 넣어야 수익이 나는 구조라 대부분 짧고 어려운 것이 한계였다. 하지만 1980년대 개인용 PC보급과 함께 게임의 내용 역시 혁명적으로 바뀐다. 자신의 컴퓨터에서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는 PC게임은 롤플레잉(RPG)과 가상 도시 건설 등 또 한번 게임의 신세계를 열었다. 역사·문화적 배경 역시 빼놓을 수 없다. 20세기 중반의 냉전과 우주선 경쟁은 ‘스페이스 인베이더’(1978년)처럼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하거나 미국과 소련의 갈등을 다룬 ‘힘의 균형’(1985년) 같은 게임을 등장시켰다. 1990년대부터 반(反)권위 흐름과 놀이문화가 확산되면서 도시를 파괴하는 과격한 게임인 ‘GTA’(1997년) 시리즈 등이 인기를 끌었고, 최근엔 ‘포켓몬 고’(2016년)처럼 모바일 플랫폼과 증강현실을 활용한 게임까지 등장했다.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게임을 하는 풍경이 익숙해진 시대다. 게임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문화의 일부분이 됐는지 흥미롭게 배울 수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 “남한강변의 요충지인 고지에 마련된 고대산성으로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包谷式)으로 이루어졌고 성벽의 축조 양식은 내외를 높게 축조해 올린 협축성(夾築城)이다.” 2. “불사리 신앙을 바탕으로 발생한 불교 특유의 조형물로서 흔히 대웅전 앞마당의 자오선상에 일탑 또는 상탑으로 배치된다.” 이 설명을 보고 과연 어떤 문화재인지 맞힐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일단 정답부터 보자. 1은 경기 여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성곽 파사성(사적 제251호)이고, 2는 보물 제250호인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문화재 전문가도 알기 힘들다. 어디 문제가 이것뿐인가. 전국에 1만여 건이 설치된 문화재 안내판은 그동안 오랫동안 끊임없이 원성을 들어왔다. 한자 투가 많은 데다 친절하지도 않았다. 상대적으로 전문용어가 많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외국인도 많이 찾는 21세기 현재에 걸맞은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문화재청은 대대적인 문화재 안내판 실태조사와 1차 정비 사업을 내년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청와대 경내에 있는 ‘침류각(枕流閣·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3호)’의 안내판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글도 어렵고 딱히 알고 싶은 내용도 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간 끊임없이 수정을 요구해온 시민들의 목소리보단 대통령의 한마디가 더 ‘세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물론 그간 관련 당국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화재청은 2006년부터 문화재 안내판 가이드라인을 지방자치단체에 보급하고, 2016년에는 국립국어원과 함께 지침서를 발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펼쳐왔다. 하지만 시민들은 왜 이런 변화를 그다지 체감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여전히 시민의 눈높이보단 관의 시각에서 일을 진행하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곱씹어볼 대목이다. 누구 덕이건 기왕지사 대대적인 정비에 나선다고 하니 하나만 부탁드린다. 시일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꼼꼼히 고쳐나가자. 많은 전문가들은 국민이 살아있는 역사를 느낄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식 안내를 지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디지털 환경을 활용하는 방법 역시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안내판이 안내를 해야지, 혼란을 주는 상황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 7곳이 지난달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사찰들은 1000년 넘는 역사를 이어오는 신앙·수도·생활 기능이 이어진 종합승원이자 각종 문화재가 가득한 문화유산의 보고다. 동아일보는 한국의 13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찰 7곳의 아름다운 모습과 숨은 역사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 장맛비가 오락가락 내린 9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 입구에 들어서자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다.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라는 이름처럼 바람이 춤추고 서늘한 소나무가 가득한 길. 시끌벅적한 바깥세상과 단절되는 듯한 오묘한 기분을 선사한다. 길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통도사에 시주한 이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바위 조각들이 오른쪽에 쌓여 있다. 쉽사리 지나치기 쉽지만, 단원 김홍도(金弘道·1745∼?)와 그의 스승인 김응환(金應煥)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역사 속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숲길을 지나 일주문을 건너 사천왕문 사이로 들어섰다. 통도사 전각과 영축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통도사는 크게 상·중·하 노전으로 나뉜다. 646년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중건·중수되면서 규모가 계속해서 커졌기 때문이다. 동서로 이어지는 이동 축을 따라 가장 먼저 하노전이 등장한다. 오른편에 위치한 극락보전에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이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승려와 백성이 배를 타고 극락세계로 떠나는 모습을 담았다. 자세히 보면, 뱃사람 가운데 한 명만 뒤를 돌아보고 있다. 속세에 미련이 남아 이승을 바라보는 것. 사찰은 이런 ‘숨은 코드’를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하노전의 중심 전각인 영산전(보물 제1826호)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보물 제1041호)가 걸려 있다. 통도사는 팔상도를 비롯해 불교회화 작품만 600여 점을 소장한 보물창고. 이날 동행한 문화재위원회 위원인 명법 스님은 “통도사에는 예부터 유명 화승(畵僧)들이 계보를 이을 정도로 문화·예술의 가치를 중시했던 사찰”이라고 설명했다. 본당에 들어서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不二門)을 지나면 사찰의 가운데 공간인 중노전이 등장한다. 여기엔 스님들이 실제 수행을 하는 공간인 ‘원통방(圓通房)’이 있다. 매일 오전 6시 통도사 스님들이 다같이 발우공양을 드리고, 경전 공부 등을 진행한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사찰의 가장 큰 어른인 방장(方丈) 스님부터 막내 스님의 자리까지 벽면에 위치가 표시돼 있다. 명법 스님은 “일본의 산사들은 외형적 전통은 유지하고 있지만 승려들이 출퇴근을 하면서 생활 기능을 잃었고, 중국은 문화대혁명 등 굴곡진 현대사를 거치면서 전통 불교의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며 “통도사는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통적인 신앙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불교의 살아있는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상노전으로 가면 통도사의 대표 문화재인 대웅전과 금강계단(국보 제290호)을 만날 수 있다. 통도사 대웅전은 다른 사찰의 중심 전각과 달리 불상이 없다.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 놓은 금강계단을 바라볼 수 있게 한쪽 벽면을 뚫어놨기 때문이다. 사각형 2중 기단으로 구성된 금강계단은 소나무 숲과 대웅전에 둘러싸여 아늑하다. 볼록한 종 모양으로, 고대 인도의 부도와 같은 모습이다. 잠깐 발걸음과 숨소리를 멈췄다. 소나무 숲에선 딱따구리가 ‘똑똑똑’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정각마다 수행을 알리는 목탁소리도 함께 퍼져나갔다. 자연과 문화유산, 살아있는 신앙의 어울림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 세계유산의 품격을 지닌 통도사다. 양산=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 지난달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등 7곳이다. 이들 사찰은 1000년 넘는 역사를 이어오는 신앙·수도·생활 기능이 이어진 종합승원이자 각종 국보·보물이 가득한 문화유산의 보고다. 동아일보는 우리나라의 13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7곳 사찰의 아름다운 모습과 숨은 역사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1회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인 명법 스님과 함께 경남 양산시 통도사를 찾았다.‘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 문자 그대로 바람이 춤추고 서늘한 소나무가 반긴다. 장맛비가 오락가락 숲을 적신 9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 입구엔 수백 년 된 금강송 수천 그루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시끌벅적한 바깥세상과 단절되는 듯한 오묘한 기분을 선사한다. 길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통도사에 시주한 이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바위 조각들이 오른쪽에 쌓여 있다. 자세히 보면 여성 이름이 많다. 일제강점기 당시 부산 지역 기생들이 시주를 많이 했기 때문이란다. 답답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들의 염원은 얼마나 통했을까. 역사책에 등장하는 유명인사도 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단원 김홍도(金弘道·1745~?)와 그의 스승인 김응환(金應煥)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찬찬히 이들의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숲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사찰의 세계에 들어간다. 일주문을 건너 사천왕문 사이로 대웅전을 비롯한 사찰 전각과 통도사를 감싸고 있는 영축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 속이지만 비교적 평탄한 지대라 평면 가람배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 기법이자 자연의 풍경을 빌려 쓴다는 ‘차경(借景)’ 통도사는 조경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통도사는 크게 상·중·하 노전으로 나뉜다. 646년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뒤 고려와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중건·중수되면서 규모가 계속해서 커졌기 때문이다. 동서로 이어지는 이동 축을 따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은 하노전. 가운데에 위치한 극락보전의 한쪽 벽에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이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수십 명의 승려와 백성이 배를 타고 극락세계로 떠나는 모습을 담았다. 자세히 보면, 뱃사람 가운데 한 명만 뒤를 돌아보고 있다. 속세에 미련이 남아 이승을 바라보는 것. 눈을 크게 뜨고, 사찰이 지닌 ‘숨은 코드’를 찾아보는 즐거움을 누려보자. 하노전의 오른편에 위치한 중심 전각인 영산전(보물 제1826호)에는 석가모니 일생을 8장면으로 나눠 그린 팔상도(보물 제1041호)가 있다. 조선 후기 통도사 소속 화승들이 직접 그렸다. 통도사는 팔상도를 비롯해 전통 불교회화 작품만 6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을 만큼 불교 예술 자료가 풍부하다. 명법 스님은 “통도사에는 예부터 화승들이 계보를 이을 만큼 수행과 신앙 뿐 아니라 문화·예술의 가치를 중시했던 사찰”이라고 설명했다. 본당에 들어서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不二門)을 지나면 사찰의 가운데 공간인 중노전이 등장한다. 중노전의 중심 전각인 대광명전(보물 제1827호)에는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비로자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앞쪽 용화전 앞뜰에는 밥그릇 모양의 봉발탑(보물 제471호)이 있는데, 석가모니가 미래의 부처인 미륵을 위해 준비한 공양을 뜻한다. 미륵과 화엄 사상 등 한국 불교의 변천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중노전의 특징은 스님들이 실제 수행을 하는 공간인 ‘원통방(圓通房)’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 매일 새벽 통도사 스님들이 다같이 발우공양을 드리고, 경전 공부 등을 진행한다. 내부로 들어가 보면 사찰의 가장 큰 어른인 방장(方丈) 스님부터 막내 스님의 자리까지 벽면에 스님들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입구 근처에는 독특하게도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다. 스님들의 찬상(반찬 그릇)을 옮기는데 쓰인다. 명법 스님은 “일본의 산사들은 외형적 전통은 유지하고 있지만 승려들이 출퇴근을 하면서 생활 기능을 잃었고, 중국은 문화대혁명 등 굴곡진 현대사를 거치면서 전통 불교의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며 “통도사는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통적인 신앙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불교의 살아있는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상노전으로 가면 통도사 대표 문화재인 대웅전과 금강계단(국보 제290호)을 만날 수 있다. 통도사 대웅전에는 다른 사찰과 달리 불상이 없다.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 놓은 금강계단을 바라볼 수 있게 한 쪽 벽면을 뚫어놨기 때문이다. 사각형 2중 기단으로 구성된 금강계단은 소나무 숲과 대웅전에 둘러싸여 아늑한 기분을 들게 한다. 볼록한 종 모양으로, 고대 인도의 부도와 같은 모습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통도사 입구에는 고승들의 부도를 모아놓은 부도전이 있다. 금강계단의 모습을 빌려 종을 형상화한 부도가 많은 게 특징이다. 대웅전 뒤편도 빼놓으면 아쉽다. 통도사 창건 설화가 깃든 연못인 ‘구룡지(九龍池)’가 나온다. 자장율사가 연못 속에 살던 용 9마리를 내쫓고, 한 마리만 남긴 채 연못을 메워 통도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론 지금 연못에 가들 용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물위로 비친 대웅전 처마 끝이 이동하는 이의 시선을 따라 함께 움직이는 모습이 꽤나 신기하다. 상노전 가장 안쪽에는 참선을 수행하는 선원들이 모여 있는 ‘보광전’이 있다. “생각하기 어려운 경지를 볼 수 있다”는 뜻의 ‘능견난사문(能見難思門)’ 안쪽에 위치한다. 오직 선(禪)을 위해 정진하는 스님들만이 머무르는 공간이다. 어렴풋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스님들의 심정이 그려진다. 잠깐 발걸음과 숨소리를 멈췄다. 소나무 숲에선 딱따구리가 ‘똑똑똑’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정각마다 수행을 알리는 목탁소리도 함께 퍼져나갔다. 자연과 문화유산, 살아있는 신앙의 어울림을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 세계 유산의 품격을 지닌 통도사다.양산=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 “남한강변의 요충지인 고지에 마련된 고대산성으로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包谷式)으로 이루어졌고 성벽의 축조 양식은 내외를 높게 축조해 올린 협축성(夾築城)이다.” 2. “불사리 신앙을 바탕으로 발생한 불교 특유의 조형물로서 흔히 대웅전 앞마당의 자오선상에 일탑 또는 상탑으로 배치된다.” 이 설명을 보고 과연 어떤 문화재인지 맞출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일단 정답부터 보자. 1은 경기 여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성관 파사성(사적 제251호)이고, 2는 보물 제250호인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문화재 전문가도 알아먹기 힘들다. 어디 문제가 이것뿐인가. 전국에 1만 여 건이 설치된 문화재 안내판은 그동안 오랫동안 끊임없이 원성을 들어왔다. 한자 투가 많은 데다 친절하지도 않았다. 상대적으로 전문용어가 많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외국인도 많이 찾는 21세기 현재에 걸맞은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문화재청은 대대적인 문화재 안내판 실태조사와 1차 정비 사업을 내년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청와대 경내에 있는 ‘침류각(枕流閣·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3호)’의 안내판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글도 어렵고 딱히 알고 싶은 내용도 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간 끊임없이 수정을 요구해온 시민들의 목소리보단 대통령의 한 마디가 더 ‘세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물론 그간 관련 당국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화재청은 2006년부터 문화재 안내판 가이드라인을 지방자치단체에 보급하고, 2016년에는 국립국어원과 함께 지침서를 발간하는 등 나름 노력을 펼쳐왔다. 하지만 시민들은 왜 이런 변화를 그다지 체감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여전히 시민의 눈높이보단 관의 시각에서 일을 진행하고 있는 건 아니었던지 곱씹어볼 대목이다. 누구 덕이건 기왕지사 대대적인 정비에 나선다고 하니 하나만 부탁드린다. 시일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꼼꼼히 고쳐나가자. 많은 전문가들은 국민이 살아있는 역사를 느낄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식 안내를 지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디지털환경을 활용하는 방법 역시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안내판이 안내를 해야지, 혼란을 주는 촌극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지하철이 피서지? 노출 너무 심해 난감합니다 여름이 되니 출근길부터 난감한 시선 처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지하철을 타면 양 어깨를 드러낸 오프 숄더를 입은 여성부터 겉옷인지 수영복인지 헷갈리는 탱크톱을 입은 대학생까지 곳곳이 노출의 연속입니다. 더워서 그런다지만 애꿎게도 제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아요. 괜히 드러난 몸매를 쳐다본다고 오해받을까 싶어 제 시선은 오늘도 휴대전화에 고정됩니다. 전 그래도 ‘양식 있게’ 갖춰 입었다고 생각하는데 사무실에 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쿨비즈(Coolbiz·시원하고 간편한 비즈니스 복장)’가 대세인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부장님은 넥타이 없이 출근했다는 걸 에둘러 훈계하듯 “요즘 회사가 편하지?”라고 한마디하시더라고요. 자외선이 눈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해서 선글라스를 끼고 출근했더니 건물 입구에서 절 본 동료 과장은 “연예인이냐”고 비웃고요. 여름철 복장, 대체 어디까지 벗고, 어디까지 입어야 하는 걸까요. ■ 때-장소 맞는 의상 매너 지키는 게 멋쟁이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얼마 전 난감한 상황을 겪었다. 언뜻언뜻 속옷이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은 학생에게 한마디 했더니 “대학생인데 옷도 맘대로 못 입어요?”라고 톡 쏘아붙이더라는 것. 그는 “해가 갈수록 학생들의 여름 옷차림에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개성’과 ‘예절’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여름철 대학가는 노출과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대표적인 곳이다. 대학생 장수민 씨(26)는 “교양 수업 때 ‘브라렛 패션’(브라톱을 겉옷처럼 입은)을 한 신입생이 들어왔는데 강의실에 있던 남학생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며 “패션 코드 자체가 몸매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게 대세가 되다 보니 여자가 보기에도 난감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대학생들보다는 보수적인 여름 옷차림을 선택하지만 이 역시 세대차가 있다 보니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시원한 소재와 캐주얼한 스타일의 ‘쿨비즈 룩’이 도입되면서 난해한 상황이 더욱 많아졌다. 권고된 ‘허용기준’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직원이 늘어난 것. 2015년부터 쿨비즈를 도입한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정모 씨(33)는 몸에 착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거나 트레이닝복과 다름없는 옷차림으로 출근하는 동료를 볼 때마다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정 씨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로마시대 무사 같은 샌들을 신고 온 후배를 볼 때면 한마디 할까 싶다가도 꼰대라는 지적을 받을까 봐 참는다”며 “치마 없이 레깅스만 입은 여사원을 보면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단정함을 중시하는 성당이나 교회 등 종교시설도 여름철만 되면 신도들에게 ‘노출 자제’를 요청하느라 진땀을 뺀다. 천주교서울대교구는 매년 7, 8월이 되면 주보를 통해 ‘여름철 미사 때의 복장’을 공지한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교회법에서 옷 규정을 엄격히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심한 노출 패션으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신자가 증가해 슬리퍼와 소매 없는 옷 등은 피해야 한다고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여름철에도 단정한 정장 차림을 요구하는 법원 등 특정 업계에서는 ‘의상 자유’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법원에 협조 공문을 보내 ‘여름철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했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관행과 분위기 때문에 넥타이를 매는 변호사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여름 옷차림 선택은 자신의 취향·개성과 상황별 의상규칙 사이에서 조율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청청 디자이너는 “이슬람 문화권에선 여성들이 수영장에서도 온 몸을 가리는 수영복을 입듯이 어떤 상황에서 이상한 일이 어떤 상황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며 “직장과 종교시설, 학교 등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의상 매너를 숙지하고 지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직장인들의 경우 업무와 관련한 외부인을 만날 상황이 많은 만큼 사내에서뿐만 아니라 회사 바깥에서도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을 ‘비즈니스 드레스 코드’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언영 장안대 스타일리스트과 교수는 “남성의 경우 유두점이 드러나는 얇은 셔츠나 통이 너무 좁거나 넓은 반바지 등은 글로벌 복장 매너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덥더라도 속옷을 갖춰 입고 남들이 언짢아할 만한 복장은 피하는 게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직장인의 경우 속옷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소재나 가슴골이 너무 드러나는 옷 등은 피해야 한다. 상대방이 눈 둘 곳을 고민해야 하는 짧은 치마나 슬리퍼 등도 비즈니스 매너와는 거리가 멀다. 이 교수는 “여름철엔 회사 내에 격식을 갖춘 신발이나 정장을 따로 준비해 두는 것도 요령”이라며 “출퇴근할 때는 편한 복장을 하더라도 보고나 회의에선 바꿔 입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당신이 제안하는 이 시대의 ‘신예기’는 무엇인가요. ‘newmanner@donga.com’이나 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이 느낀 불합리한 예법을 제보해 주세요. 카카오톡에서는 상단의 돋보기 표시를 클릭한 뒤 ‘동아일보’를 검색, 친구 추가하면 일대일 채팅창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여름이 되니 출근길부터 난감한 시선처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지하철을 타면 양 어깨를 드러낸 오프 숄더를 입은 여성부터, 겉옷인지 수영복인지 헷갈리는 탱크톱을 입은 대학생까지 곳곳이 노출의 연속입니다. 더워서 그런다지만 애꿎게도 제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아요. 괜히 드러난 몸매를 쳐다본다고 오해받을까 싶어 제 시선은 오늘도 휴대전화에 고정됩니다. 전 그래도 ‘양식 있게’ 갖춰 입었다고 생각하는데 사무실에 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쿨비즈(Coolbiz·시원하고 간편한 비즈니스 복장)’가 대세인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부장님은 넥타이 없이 출근했다는 걸 에둘러 훈계하듯 “요즘 회사가 편하지?”라고 한 마디 하시더라고요. 자외선이 눈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해서 선글라스를 끼고 출근했더니 건물 입구에서 절 본 동료 과장은 “연예인이냐”고 비웃고요. 여름철 복장, 대체 어디까지 벗고, 어디까지 입어야 하는 걸까요.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얼마 전 난감한 상황을 겪었다. 언뜻 언뜻 속옷이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은 학생에게 한 마디 했더니 “대학생인데 옷도 맘대로 못 입어요?”라고 톡 쏘임을 당한 것. 그는 “해가 갈수록 학생들의 여름 옷차림에 당황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개성’과 ‘예절’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여름철 대학가는 노출과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대표적인 곳이다. 대학생 장수민 씨(26)는 “교양 수업 때 속옷처럼 보이는 브라렛(브래지어 모양의 겉옷)을 입은 신입생이 들어왔는데 강의실에 있던 남학생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며 “패션 코드 자체가 몸매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게 대세가 되다보니 여자가 보기에도 난감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대학생들보다는 보수적인 여름 옷차림을 선택하지만 이 역시 세대차가 있다보니 나름 고충이 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시원한 소재와 캐주얼한 스타일의 ‘쿨비즈 룩’이 도입되면서 난해한 상황이 더욱 많아졌다. 권고된 ‘허용기준’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직원들이 늘어난 것. 2015년부터 쿨비즈를 도입한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정모 씨(33)는 몸에 쫙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거나 트레이닝복과 다름없는 옷차림으로 출근하는 동료를 볼 때마다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정 씨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로마시대 무사 같은 샌들을 신고 온 후배를 볼 때면 한 마디 할까 싶다가도 꼰대라는 지적을 받을까봐 참는다”며 “치마 없이 레깅스만 입은 여사원을 보면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단정함을 중시하는 성당이나 교회 등 종교시설도 여름철만 되면 신도들에게 ‘노출 자제’를 요청하느라 진땀을 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매년 7, 8월이 되면 주보를 통해 ‘여름철 미사 때의 복장’을 공지한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교회법에서 옷 규정을 엄격히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심한 노출 패션으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신자들이 증가해 슬리퍼와 소매 없는 옷 등은 피해야 한다고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여름철에도 단정한 정장차림을 요구하는 법원 등 특정업계에서는 ‘의상 자유’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법원에 협조공문을 보내 ‘여름철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했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관행과 분위기 때문에 넥타이를 매는 변호사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여름 옷차림 선택은 자신의 취향·개성과 상황별 의상규칙 사이에서 조율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청청 디자이너는 “이슬람 문화권에선 여성들이 수영장에서도 온 몸을 가리는 수영복을 입듯이 어떤 상황에서 이상한 일이 어떤 상황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며 “직장과 종교 시설, 학교 등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의상 매너를 숙지하고 지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직장인들의 경우 업무와 관련한 외부인들을 만날 상황이 많은 만큼, 사내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 바깥에서도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을 ‘비즈니스 드레스 코드’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언영 장안대 스타일리스트과 교수는 “남성의 경우 유두점이 드러나는 얇은 셔츠나 통이 너무 좁거나 넓은 반바지 등은 글로벌 복장 매너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덥더라도 속옷을 갖춰 입고 남들이 언짢아 할만한 복장은 선택하지 않는 게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직장인의 경우 속옷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소재나 가슴골이 너무 드러나는 옷 등은 피해야 한다. 상대방이 눈 둘 곳을 고민해야 하는 짧은 치마나 슬리퍼 등도 비즈니스 매너와는 거리가 멀다. 이 교수는 “여름철엔 회사 내에 격식을 갖춘 신발이나 정장을 따로 준비해 두는 것도 요령”이라며 “출퇴근할 때는 편한 복장을 하더라도 보고나 회의에선 바꿔 입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정사(正史)의 대표 선수로 여겨졌던 김부식(1075∼1151)의 ‘삼국사기’와 달리 승려 일연(1206∼1289)이 쓴 ‘삼국유사’는 야사(野史)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삼국사기가 객관적인 사실 위주로 나열된 데 비해 삼국유사에는 신화와 설화, 향가 등 문학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민족의 문화유산을 남기기 위한 별개의 아카이브로서 간행됐다”며 삼국유사의 신화적 요소에 숨겨진 우리 고대사회의 모습을 풀어낸다. 삼국유사를 새롭게 해석한 부분이 눈에 띈다. 단군신화로 알려진 ‘고조선조’는 총 437자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단군에 대한 내용은 191자이고, 환웅과 관련된 서술은 246자로 오히려 환웅에 대한 소개가 많다. 저자는 단군이 아닌 ‘환웅신화’로 접근해야 고조선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허황된 이야기로만 여겨진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 신화. 김알지가 알에서 깨어났다는 기존 견해와 달리 철제 제련이 발달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해 ‘금함’에서 나온 아이로 해석하는 부분 역시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서양문화의 근간이듯이 삼국유사에 실린 건국·시조신화가 우리 민족문화의 근간”이란 저자의 말처럼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활용 가능한 삼국유사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