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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속살’은 어떻게 생겼을까. 다 그린 그림을 덩어리째 떼어내 ‘물감의 속살’을 드러낸 독특한 작품이 있다. 다음 달 1일부터 열리는 전시에서 정의철 작가(41·사진)가 선보이는 자화상들이다. 고유의 시각언어로 주목받는 정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낯설다’ 연작을 선보인다. 겉만 보면 붓으로 덧칠한 아크릴화 같지만 화법은 전혀 다르다. 작가는 반들반들한 아스테이지 판 위에 먼저 형체를 그리고 마지막에 배경을 칠한다. 물감이 굳으면 전체 덩어리를 떼어낸 뒤 앞뒤를 뒤집어 패널에 붙인다. 처음 칠한 색과 마지막 칠한 색의 위치가 뒤바뀌는 ‘거꾸로 그린 그림’인 셈이다. 정 작가는 “거울 속 낯선 내 모습을 표현할 방법을 연구하다 ‘물감을 뜯어내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런 작업 방식은 하나의 ‘과정 미술’이라고 볼 수 있다. 과정 미술이란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주제로 삼는 걸 일컫는다. 펠트 천을 일정 간격으로 잘라 만든 로버트 모리스(88)의 설치 작품이 대표적. 주로 설치나 조각 위주였던 ‘과정 미술’을 정 작가는 회화에 적용했다. 인물화를 선호하지 않는 국내 미술시장에서 드물게, 정 작가는 묵묵히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 자화상에 풀어낸다. 러시아 유학생활도 한국인으로서의 자아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완성된 그림은 뒤집힌 거울 속 모습이지만 보는 사람은 평범한 자화상으로 받아들이는 점이 흥미롭다”며 “익숙한 형태에 숨어 있는 낯선 감각을 찾아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정 작가는 불의의 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이를 언급하며 “보이는 눈만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최근까지도 프랑스 파리국제아트쇼와 터키 국립이즈미르박물관, 중국국제아트페스티벌 등 국제 그룹전에 참가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황의록 한국화가협동조합 이사장은 “정 작가의 그림을 보고 펑펑 우는 관람객도 있을 정도로 직접 마주하면 큰 감동을 받는다.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생각을 용감히 펼쳐 곧 대중에게도 인정받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 달 13일까지. 서울 서초구 갤러리쿱.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그림의 ‘속살’은 어떻게 생겼을까. 다 그린 그림을 덩어리째 떼어내 ‘물감의 속살’을 드러낸 독특한 작품이 있다. 다음달 1일부터 열리는 정의철 작가(41)의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자화상들이다. 고유의 시각언어로 주목 받는 정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낯설다’ 연작을 선보인다. 얼핏 보면 붓으로 덧칠한 아크릴 화 같지만 화법은 전혀 다르다. 작가는 반들반들한 아스테이지 판 위에 먼저 형체를 그리고 마지막에 배경을 칠한다. 물감이 굳으면 전체 덩어리를 떼어낸 뒤 앞뒤를 뒤집어 패널에 붙인다. 처음 칠한 색과 마지막 칠한 색의 위치가 뒤바뀌는 ‘거꾸로 그린 그림’인 셈이다. 정 작가는 “거울 속 낯선 내 모습을 표현할 방법을 연구하다 ‘물감을 뜯어내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런 작업 방식은 하나의 ‘과정 미술’이라고 볼 수 있다. 과정 미술이란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주제로 삼는 걸 일컫는다. 펠트 천을 일정 간격으로 잘라 만든 로버트 모리스(88)의 설치 작품이 대표적. 주로 설치나 조각 위주였던 ‘과정 미술’을 정 작가는 회화에 적용했다. 사실 국내 미술시장은 인물화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 작가는 묵묵히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 자화상에 풀어낸다. 러시아 유학생활도 한국인으로서의 자아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완성된 그림은 뒤집힌 거울 속 모습이지만 보는 사람은 평범한 자화상으로 받아들이는 점이 흥미롭다”며 “익숙한 형태에 숨어 있는 낯선 감각을 찾아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정 작가는 불의의 사고로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이를 언급하며 “보이는 눈만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최근까지도 프랑스 파리국제아트쇼와 터키 국립이즈미르박물관, 중국국제아트페스티벌 등 국제 그룹전에 참가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황의록 한국화가협동조합 이사장은 “정 작가의 그림을 보고 펑펑 우는 관람객도 있을 정도로 직접 마주하면 큰 감동을 받는다.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생각을 용감히 펼쳐 곧 대중에게도 인정받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달 13일까지. 서울 서초구 갤러리쿱.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붓대 들고 있다 씩 웃고 간다.” 한묵 화백(1914∼2016·사진)은 2012년 백수(白壽·99세)에 생애 처음 발간했던 화집에서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정리했다. 당시 그는 화가로서 행복했냐는 질문에 “난 죽음 가운데에 있고, 그러면서 살고 있다. 때가 오면 가는 것이고 심각할 게 없다”고 했다. 4년 뒤 2016년 11월 한 화백은 프랑스 파리 생투앙 병원에서 숙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한 화백의 첫 유고전 ‘한묵: 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가 열리고 있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연대기별로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인다. 1970∼90년대 드로잉 37점은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작품. 10년에 한 번가량 개인전을 열 정도로 노출이 적었던 한 화백은 이번 유고전이 개인전으로 최대 규모다. 한 화백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동양화를 배우고, 10대 후반부터 서양화에 관심을 가졌다. 만주,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금강산에도 머물며 작업을 했다. 이때 이중섭 화백과도 절친하게 지내, 그가 병상에 있을 때 마지막까지 곁을 지켰다고 알려진다. 이후 미대 교수 생활을 하다가 1961년 프랑스로 떠나 조용히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목격한 무렵 작품세계에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1972년 판화 공방에서 동판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컴퍼스와 자를 이용한 기하학적 추상화를 그렸다. 우주에 관심이 많았다는 한 화백은 “2차원인 화폭에 3, 4차원을 담는 고민을 했고 그것이 일생의 화두가 됐다”고 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1970년대 대규모 작품들이다. 작품만 보면 1960년대에도 있었던 ‘옵아트’와 큰 차이가 보이진 않는다. 옵아트는 보색대비나 규칙적인 기하학적 형태의 배열을 통해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예술. 대표적인 작가로 브리짓 라일리가 꼽힌다. 다만 한 화백 작품에선 타지에서 고유의 시각언어를 찾으려는 절실함이 배어난다. 전시를 기획한 신성란 큐레이터는 “한국에서의 활동이 많지 않아 대다수 관객은 이런 작품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신선하게 느낀다”며 “돈이나 명예와 상관없이 작업했던 작가이기에 ‘맑은 기운’을 받아간다는 반응도 많았다”고 전했다. 3월 9일 열리는 학술 심포지엄에서는 한 화백 작품의 미술사적 의미를 짚어 보는 시간도 갖는다. 3월 24일까지. 무료. ▼ 佛서 함께 활동한 이응노 30주기… 인사아트센터 ‘원초적 조형본능’전 ▼ 한편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는 또 다른 화가 고암 이응노 화백(1904∼1989)의 ‘원초적 조형본능’전이 열린다. 이 화백은 올해 프랑스로 건너간 지 60년, 작고 30년을 맞는다. 1957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을 통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작품이 소장된 것을 계기로 이듬해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번 전시는 1960, 70년대 ‘문자 추상’ 작업을 중심으로 70여 점을 선보인다. 이 화백은 프랑스로 간 직후 파리 화단에서 유행했던 콜라주 기법을 활용해서 폐자재에 수묵 담채로 그림을 그렸다.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려 한자와 한글을 접목한 수묵, 유화, 태피스트리 등 ‘문자 추상’으로 발전시킨 것이 특징이다. 전시는 장르와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든 이 화백의 열정을 보여준다. 다음 달 10일까지. 3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요즘도 ‘처녀성’이라는 단어가 불편하다고 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여성기구 및 유엔인권사무소는 ‘처녀막 검사를 포함한 어떤 테스트도 여성의 섹스 여부를 검증할 수 없다’고 성명서를 냈다. 여전히 전 세계 최소 20여 개국에서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처녀성 검사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도 ‘처녀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단어를 검색해봤더니 국제결혼을 위해 배우자의 처녀성 검사를 원한다는 글이 나왔다. 이 책은 수백 년을 넘게 여성을 억압해 온 ‘처녀성’의 무의미함을 추적한다. 중세 로맨스 소설부터 발리우드, ‘트와일라잇’ 사가 등 최근 대중문화까지 여러 문화 현상 속에 나타난 처녀성의 문제적 특성을 파헤친다. 전통적 학문에서 배제되어 온 처녀성은 관행이자 이데올로기이며 종교적 신념에 가깝기에 비교문화의 맥락에서 고찰된다. 이 때문에 학술적 성격이 강하다. 실체가 없는 판타지에 불과함에도 끈질기게 일상에 남아 있는 ‘처녀성’의 문제는, 결국 개인의 몸이 가부장적 정치체제 아래 통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불편한 억압에서 벗어나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몸의 주인은 나라는 걸 깨닫는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최근 뜸했던 코미디 영화가 하나둘 개봉하더니 박스오피스까지 점령했다. 9일 개봉한 ‘말모이’와 ‘내 안의 그놈’이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극한직업’과 ‘기묘한 가족’ 등이 연달아 개봉해 흥행을 노리고 있다. 선두 주자는 연초부터 꾸준히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영화 ‘말모이’. 유해진이 주연을 맡아 소소한 웃음이 담긴 드라마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택시운전사’의 각본을 썼던 엄유나 감독이 ‘말맛’을 살리는 유해진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자극적인 액션이나 무거움은 덜고 웃음과 감동을 주는 ‘순한’ 영화다. 20일 현재 관객 220만 명을 넘었으며 손익분기점은 280만∼300만 명이다. ‘내 안의 그놈’은 개봉 12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50만 명을 넘었다. 영화는 우연한 사고로 고등학생 동현(진영)과 엘리트 건달 판수(박성웅)의 몸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린다. 겉모습은 학생이지만 속은 ‘아재’인 동현의 모습에서 생기는 오해, ‘왕따’를 당했던 동현이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을 평정하는 모습이 유쾌하고 통쾌하다는 반응이다. 사실 ‘내 안의 그놈’은 개봉 전 우여곡절이 많았다. 총 제작비가 45억 원으로 예산 150억 원대 대작들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졌다. 장르도 최근 그다지 타율이 좋지 않은 코미디인 데다 스타 캐스팅도 없어 2017년 촬영을 마친 뒤에도 한참 동안 배급사를 찾지 못했다. 신생 배급사인 ‘메리크리스마스’가 배급을 결정한 뒤, 1년 동안 오로지 관객 웃기기를 목표로 편집하며 꼼꼼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는 후문이다. ‘내 안의 그놈’ 홍보대행사 ROSC 김태주 실장은 “대규모 모니터링으로 어디서 웃음이 터지는지 관객 반응을 확인하고 그에 맞춘 편집 과정을 거쳐 철저히 웃음에만 집중했다”며 “코미디 문법에 충실한 점이 관객에게 통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연달아 개봉을 앞둔 영화 ‘극한직업’과 ‘기묘한 가족’도 과거 코미디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웃다가 울리는 신파나 조직폭력배가 등장하는 슬랩스틱 같은 기존 코미디 공식을 벗어난다. 기발한 소재나 판타지적 설정으로 색다른 웃음을 추구한다. ‘극한직업’은 잠복 수사를 위해 경찰 수사팀이 차린 치킨집이 전국구 ‘맛집’이 되어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렸다. ‘기묘한 가족’은 시골마을에서 갑자기 나타난 좀비와 살게 되는 가족의 이야기. 좀비에게 물리면 ‘회춘’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시끄러워진 동네를 그렸다. 코미디 영화의 연이은 흥행은 연말 개봉했던 대작들의 실패로 인한 반작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초만 해도 박스오피스 1위 영화는 ‘신과 함께―죄와 벌’이었지만, 올해는 뚜렷한 대박 영화가 없다. 그 빈자리를 남녀노소 누구나 무난히 볼만한 영화가 채웠다는 것이다. 무거운 스릴러나 대작 위주로 쓴맛을 본 영화계에 다시 가벼운 영화 바람이 분다는 예측도 나왔다. 김대희 CGV 홍보팀 부장은 “영화 ‘완벽한 타인’ 흥행 이후 코미디가 잘 버무려진 영화가 주목받고 있다”며 “가볍고 즐거운 ‘소확행’ 영화의 흥행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작품 가격 폭락이 심해 상어를 담은 탱크가 피바다가 될 지경.” 최근 미술품 컬렉터들에게 충격을 준 뉴스가 있다.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가 2008년 경매 사상 최고가로 판매한 작품들의 가치가 최근 꾸준한 하락세라는 소식이다. 전문 매체 아트넷에 따르면 2008년 810만 달러(약 90억 원)에 팔렸던 작품 19점이 반 토막에 가까운 520만 달러(약 58억)에 팔렸다. 거래 수수료까지 감안하면 엄청난 손해다. 허스트의 하락세는 예술작품의 가치 기준을 고려하면 예측된 결과다. 작품의 가치는 사회, 경제, 대중과의 소통 등 여러 기준이 복합 작용한다. 그중 가장 지속성 있는 가치는 시대정신과 역사다. 인상파를 태동한 미술사적 가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보여준 밀레의 ‘만종’이 변함없는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반면 허스트를 비롯한 ‘yBa(young British artists·영국 출신 젊은 미술가들)’에겐 ‘거품’ 지적이 늘 있었다. 이들이 스타덤에 오른 ‘센세이션’전은 제목처럼 충격요법에 의존했다. “이것도 예술이냐”고 대중을 경악하게 만들며 논란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 배후에 있었던 유명 화상 찰스 사치는 세계적 광고회사 오너로 마케팅의 귀재라는 것도 미술계에선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제적으로 의구심이 제기되지만, 놀랍게도 국내에선 yBa를 내세우는 분위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일부 국내 갤러리는 여전히 ‘yBa 출신’을 강조하며 억대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한 미술평론가는 “작품 가치를 주체적으로 따져보지 않고 ‘타이틀’에 의존하는 무책임한 태도가 경악스럽다”고 한탄했다. 미술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터너 상’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도 터너 상 수상 작가를 내세운 전시가 꾸준히 이어졌다. 정작 영국에서는 발표 때마다 논란이다. 킴 하월스 전 영국 문화장관도 “엉망진창”이라고 공개 비판한 바 있다. 영국 작가를 위한 상이기에 유럽 대륙으로만 가도 별 관심이 없다. 유독 국내에서만 권위 있는 상으로 대접을 받는다. 심지어 터너 상 ‘후보’ 출신이라는 것까지 홍보를 한다. 이런 촌극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서양미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일까. 여기에 마치 올림픽 금메달을 좇는 것처럼 국내외에서 수상 경력만 따지고 드는 풍토도 문제다. 우후죽순 늘어난 국내의 ‘터너 상 유사품’에 같은 작가가 여러 번 상을 받는 ‘웃픈’ 일도 일어난다. 자체적 기준이 없으면 남의 평가를 절대적인 양 추종할 수밖에 없다. 가장 안타까운 건 안목 없는 갤러리스트에 의해 소외된 국내 작가와 컬렉터들이다. 좋은 작품을 발굴하고 고유의 미학을 보여주는 ‘진짜’ 갤러리스트들이 없다면 국내 미술 시장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최근 뜸했던 코미디 영화가 하나 둘 개봉하더니 박스오피스까지 점령했다. 9일 개봉한 ‘말모이’와 ‘내안의 그놈’이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극한직업’과 ‘기묘한 가족’ 등이 연달아 개봉해 흥행을 노리고 있다. 선두주자는 연초부터 꾸준히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영화 ‘말모이.’ 유해진이 주연을 맡아 소소한 웃음이 담긴 드라마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택시운전사’의 각본을 썼던 엄유나 감독이 ‘말 맛’을 살리는 유해진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자극적인 액션이나 무거움은 덜고 웃음과 감동을 주는 ‘순한’ 영화다. 20일 현재 관객 220만 명을 넘었으며 손익분기점은 280~300만 명이다. ‘내안의 그놈’은 개봉 12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50만 명을 넘었다. 영화는 우연한 사고로 고등학생 동현(진영)과 엘리트 판수(박성웅)의 몸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린다. 겉모습은 학생이지만 속은 ‘아재’인 동현의 모습에서 생기는 오해, ‘왕따’를 당했던 동현이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을 평정하는 모습이 유쾌하고 통쾌하다는 반응이다. 사실 ‘내안의 그놈’은 개봉 전 우여곡절이 많았다. 총 제작비가 45억 원으로 예산 150억 원대 대작들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졌다. 장르도 최근 그다지 타율이 좋지 않은 코미디인데다 스타 캐스팅도 없어 2017년 촬영을 마친 뒤에도 한참 동안 배급사를 찾지 못했다. 신생 배급사인 ‘메리크리스마스’가 배급을 결정한 뒤, 1년 동안 오로지 관객 웃기기를 목표로 편집하며 꼼꼼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는 후문이다. ‘내안의 그놈’ 홍보대행사 ROSC 김태주 실장은 “대규모 모니터링으로 어디서 웃음이 터지는지 관객 반응을 확인하고 그에 맞춘 편집 과정을 거쳐 철저히 웃음에만 집중했다”며 “코미디 문법에 충실한 점이 관객에게 통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연달아 개봉을 앞둔 영화 ‘극한직업’과 ‘기묘한 가족’도 과거 코미디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웃다가 울리는 신파나 조직폭력배가 등장하는 슬랩스틱 같은 기존 코미디 공식을 벗어난다. 기발한 소재나 판타지적 설정으로 색다른 웃음을 추구한다. ‘극한직업’은 잠복 수사를 위해 경찰 수사팀이 차린 치킨집이 전국구 ‘맛집’이 되어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렸다. ‘기묘한 가족’은 시골마을에서 갑자기 나타난 좀비와 살게 되는 가족의 이야기. 좀비에게 물리면 ‘회춘’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시끄러워진 동네를 그렸다. 코미디 영화의 연이은 흥행은 연말 개봉했던 대작들의 실패로 인한 반작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초만 해도 박스오피스 1위 영화는 ‘신과함께-죄와벌’였지만, 올해는 뚜렷한 대박 영화가 없다. 그 빈 자리를 남녀노소 누구나 무난히 볼만한 영화가 채웠다는 것이다. 무거운 스릴러나 대작 위주로 쓴 맛을 본 영화계에 다시 가벼운 영화 바람이 분다는 예측도 나왔다. 김대희 CGV 홍보팀 부장은 “영화 ‘완벽한 타인’ 흥행 이후 코미디가 잘 버무려진 영화가 주목받고 있다”며 “가볍고 즐거운 ‘소확행’ 영화의 흥행을 기대해볼만하다”고 말했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작가 23명이 같은 주제의 그림을, 모두 같은 가격에 내놨다. 개성과 자존심이 강한 예술가들이 어떻게 모였을까 싶지만 그 취지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침체된 한국 화단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의기투합한 것. ‘소망을 기약하는 새해 첫 해돋이전’이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된 작품은 모두 먹으로 그린 수묵화로 서울 도심부터 강원 강릉, 전남 해남 등 작가들이 직접 찾은 국내 명소들의 해돋이 장면을 담았다. 한국화 대중화를 위해 ‘한 집 한 그림 걸기’ 차원에서 6∼8호의 소품을 모두 30만 원에 판매해 눈길을 끈다. 젊은 관객도 한국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을 책정했다. 이 때문에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전시 부제처럼 개막 이틀 만에 작품 상당수가 판매됐다고 한다. 채색화가 노진숙은 높은 아파트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추상화처럼 표현했다. 수묵화가 박창수는 좋은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도봉산을 여러 차례 오르다가, 사람들에게 익숙한 광화문을 배경으로 해돋이 풍경을 그렸다. 진리바 작가는 좀 더 전통적인 풍경에 산 뒤로 떠오르는 해를 그려 넣었다. 해돋이전은 22일 마무리된다. 이어 같은 작가들이 개성을 발휘한 작품으로 구성된 2부 ‘한국화의 불씨전’이 23일부터 29일까지 열린다.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개개인의 기량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을 출품한다. 작품 가격도 작가별로 다르게 책정되며, 수익 일부를 수묵화 발전을 위해 기부한다. 김명진 김형준 남군석 노진숙 박경묵 박종걸 박창구 박창수 박태준 신재호 신희섭 오광석 우용민 이명효 이준하 임채훈 위진수 장정덕 정옥임 정은경 정헌칠 조양희 진리바 작가가 참여한다. 2부에는 류숙영 작가도 참여한다.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아프리카 흑인 소녀가 주인공인 판타지 소설이다. 나이지리아계 미국인인 저자는 ‘해리포터, 신비한 동물사전, 반지의 제왕까지 유명한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은 왜 모두 백인 남성인가?’라는 어쩌면 당연한 의문에서 출발해 새로운 판타지를 썼다. 핍박받는 종족의 소녀 제일리는 어릴 때 부모와 마법 능력을 잃어버렸다. 없어진 마법 능력을 되찾기 위해 성물을 모으는 여정을 그린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사파리 맹수를 타고 다니는 독특한 아름다움의 전사들, 그들의 역동적인 전투와 기발한 마법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미국에서 스티븐 킹, 록산 게이의 극찬을 받으며 43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 20세기폭스사에서 영화로 만들 예정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현대미술은 어디까지 난해해지는 걸까. 100년 전 예술가가 사인한 변기는 걸작이 됐고, 통조림에 담은 예술가의 배설물도 엄청난 가격의 작품이 됐다. 그렇다면 독설과 막말도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자신들을 ‘살아있는 조각’이라고 주장하는 예술가들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율곡로 리만머핀 갤러리에서 10일부터 열리고 있다. 결성 52년째를 맞는 길버트 앤드 조지(G&G)다.G&G는 이탈리아인 길버트 프루슈(75)와 영국인 조지 패스모어(77)가 결성했다. 이들은 수십 년간 영국 런던의 한 동네에 살며 그곳에서 마주친 이미지를 가공해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는 갖가지 기이한 형태의 수염을 담은 ‘수염 그림’ 연작 5점을 선보인다. 최근 이들과 e메일 인터뷰를 했다. 수염을 소재로 선택한 이유를 묻자 “턱수염부터 아래쪽의 수염까지 모든 수염을 사랑한다”는 거침없는 답이 왔다. 작품 속에는 수염과 뱀, 철조망, 폐허 등 여러 이미지가 합성되어 있다. 매일 산책하는 두 사람은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인 동네에 수염을 기른 사람이 많아진 걸 보고 새 작업의 영감을 얻었다. 종교적 이유로 수염을 기르는 무슬림, 유행을 따라가는 힙스터 등 수염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스스로를 ‘살아있는 조각’이라 주장하는 건 작품뿐 아니라 사람도 살아있는 예술이라는 의미다. 현대미술의 거장 요제프 보이스도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했다. 예술의 창조적 힘을 모든 이의 삶과 사회에 활용해야 한다고 본 보이스는 누구나 강의를 듣는 대학을 세우기도 했다. G&G도 자신들의 모든 행동을 예술이라 말한다. 이들에게 ‘살아있는 조각’의 의미를 묻자 “우리는 매일 눈뜰 때 보편성을 고심한다. 그 보편성은 ‘죽음, 희망, 삶, 공포, 섹스, 돈, 종교, 개 같은(Shitty), 벌거벗은, 인간과 세상’이다”라고 했다. 한데 이들의 말과 행동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독설로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과거 인터뷰에서 “파시즘은 삶의 원동력(life-force)”이라고 해 충격을 줬다. 1987년에는 아시아인이 담긴 작품에 ‘파키(Paki·백인들이 파키스탄인을 경멸적으로 이르는 말)’라는 제목을 붙여 논란이 됐다. 최근에는 테이트 미술관이 작품을 걸어 주지 않는다며 ‘편협한 진보주의자’로 가득하다고 비난했다. 두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포착하기 위해 도덕적 측면을 제거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우리 작품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것이고 도덕적 측면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보편성이란 혹시 백인 중심 사회를 그리워하는 보수적 영국인에게만 통용되는 건 아닐까. 인종차별이나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위한 예술이 가능하냐고 물었지만 이 질문에는 답이 없었다. 3월 16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임권택 감독의 영화 ‘짝코’(1980년·사진)가 다음 달 7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제69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클래식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클래식 부문은 최근 디지털로 복원된 세계 유수의 고전 영화를 상영하는 섹션. 덴마크의 카를 테오도르 드레위에르 감독이 연출한 ‘오레트’(1955년)와 헝가리 메사로시 마르터 감독의 ‘양지’(1975년) 등 총 6편을 상영한다. ‘짝코’는 6·25전쟁에서 빨치산과 토벌대장으로 만난 백공산(김희라)과 경찰 송기열(최윤석)의 30년에 걸친 악연을 추적한다. 한국의 어두운 근현대사를 냉철한 시선으로 포착한 영화로, 임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시대감각과 비판 정신이 치열한 작품으로 꼽힌다. 한국영상자료원은 1990년에 수집한 35mm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을 2K 디지털로 복원해 지난해 7월 블루레이로 출시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여러 명이 합심한 ‘협동조합’ 코미디. 주연 5명뿐 아니라 악역 신하균이나 오정세, 여기에 잠깐 한마디 하는 배우조차 다 재밌는, ‘코믹망’이 촘촘한 영화입니다.” 지난해 1월 ‘염력’ 이후 또 한번 코미디 영화로 돌아온 배우 류승룡(49). 그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극한직업’에서 경찰 마약반을 이끄는 ‘고 반장’ 역할을 맡았다. ‘극한직업’은 마약반 형사들이 거대 범죄조직을 잡기 위해 치킨 가게를 위장 창업했다가 ‘전국구 맛집’이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느끼한 듯 능청맞은 류승룡 특유의 ‘말맛’은 이 영화가 지닌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심각하게 수사를 논의하다 주문전화가 걸려오면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며 고정 홍보문구를 읊조리는 연기는 웃음을 참기 힘들다. 역시 포인트는 류승룡이 목소리를 잔뜩 깔아 내뱉는 사뭇 진지한 악센트. 1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대본을 받자마자 읽었던 운율”이라며 “연습 때 이병헌 감독도 좋아해 그대로 이어진 ‘운명처럼 다가온 대사’다”라고 했다. 수사반 팀원인 배우 이하늬와 진선규, 이동휘, 공명과의 호흡도 최고였다고. 영화를 처음으로 함께 본 시사회 현장에서도 서로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넘쳤단다. “같이 촬영하지 않은 장면을 보며 ‘나 없을 때 저런 고생을 했구나’ 생각했죠. 상상하며 읽었던 장이 구현되고, 음악 선곡이나 교차 편집이 신선해서 무척 재밌었습니다.” 공명은 처음엔 류승룡을 보고 바짝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나중엔 “형이라고 부를지, 선배님이라 부를지 고민”에 빠졌단다. 현장에서 서로 돈독해진 매개체는 뜻밖에도 마시는 ‘차’였다. 다도가 취미인 맏형 류승룡이 가져온 차를 나눠 마시면서 친해졌다. “차는 알고 마셔야 해요. 직접 강의도 들으며 배웠죠. ‘일상다반사’라는 말처럼 예전에는 밥과 차를 매일매일 마셨다는데, 일제강점기에 괜히 어려운 퍼포먼스와 예를 넣으면서 대중이 멀어지게 만들었어요.” 류승룡이 경남 하동군 등을 돌며 사온 차를 현장에서 공유하며 ‘차 전도사’를 자처한 덕분에 다른 배우들까지 차에 흠뻑 빠졌다. 이하늬도 하동에 가서 차를 구매했고, 진선규는 ‘차 문화대전’을 찾아갔을 정도다. 의외로 섬세한 취미는 다도뿐만이 아니다. 목공이나 트레킹 등 자연 친화적인 취미가 많다. 왠지 끈끈한 술자리가 더 어울려 보이지만, 이런 취미는 모두 그의 연기와도 맞닿아 있다. 배우는 “감정을 이성적으로 다듬어야 하는 ‘감정의 세공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래 제주 올레 길을 좋아했는데, 사람이 너무 몰려 정취가 예전만 못해요. 요즘엔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울릉도도 해마다 가고 있고. 배우는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또 배우면서, 민첩하게 세상을 담을 준비를 해야 하잖아요. 육체뿐 아니라 마음도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에 설치된 대형 모빌 작품으로 국내에도 친숙한 프랑스 설치조각가 그자비에 베양(56·사진)이 국내 상업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사진, 영상, 회화, 설치 등 여러 매체로 작업하는 베양은 세부적 묘사를 생략한 각진 형태의 인물 조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 성북구 313아트프로젝트에서 10일 개막한 베양의 개인전은 인물 조각과 대형 설치를 통해 선보였던 선(ray) 시리즈의 소품 등 20여 점으로 구성됐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설치 작업 ‘스튜디오 베네치아’를 작은 사이즈로 기록한 작업도 볼 수 있다. 개막식에서 만난 베양은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갤러리 공간을 고려해 제작한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베양은 파리국립고등장식예술학교(EnsAD)를 졸업했으며 유명한 독일 작가 게오르크 바셀리츠의 아틀리에 출신이다. 베양의 작품은 개인적 표현을 배제하고 단순화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조각가 브랑쿠시처럼 20세기 예술가들이 찾으려 했던 새로운 보편성을 탐구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개인적 미학보다 보편성, 즉 보는 사람의 공감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디자인적 특성이 강하다. 강렬한 색감과 깔끔한 형태로 ‘포토제닉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러시아 예술가 카지미르 말레비치를 오마주해 르코르뷔지에, 리처드 노이트라 등 모더니즘 건축가가 지은 집에 설치한 ‘아키텍톤’ 시리즈도 건축과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프랑스의 유명 밴드 ‘에어’ 등 음악가와도 자주 협업한다. 2015년에는 유명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펑크가 헬멧을 벗고 선글라스 낀 모습을 조각해 화제가 됐다. 당시 베양이 음악 제작 과정에서 가수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는 프로듀서를 형상화하는 전시를 기획해 다프트펑크를 작품화하기로 했다. 이에 다프트펑크가 제작자로서 일상적 모습을 표현해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조각들은 작가의 지인이나 동료 작업자, 베네치아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2월 15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표지는 알록달록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저자는 욕망과 중독을 자양분으로 꽃피는 산업자본주의 체제를 마약산업과 연결지어 설명한다. 이를테면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코카콜라의 출발도 코카인이다. 1886년 존 펨버턴이 처음 발명한 코카콜라는 L당 10g의 코카인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펨버턴이 모르핀 중독으로 사망하고, 그의 아이디어를 인수한 아사 캔들러가 코카콜라를 천재적 상술로 포장해 히트 상품으로 만들었다. 1903년부터 코카콜라는 코카인이 아닌 코카잎 추출물이 들어간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은행을 버티게 만든 것도 코카인 밀거래다. 주택을 담보로 한 부실 대출로 은행이 무너져갈 때, 일반 투자자들은 돈을 빼갔지만 마약상만 유일하게 은행의 유동자산을 늘렸다. 마약 밀매로 얻은 수익을 세탁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에도 세계 경제는 여전히 코카인의 추출 변형 매매로 만들어진 돈으로 돌아가고 지탱된다”고 주장한다. 영미권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는 통찰은 미셸 푸코 등을 배출한 프랑스 지식사회 특유의 분위기도 느껴진다. 벨기에 브뤼셀브리예대학에서 법이론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철학자 질 들뢰즈와 법의 실천을 다룬 책은 물론 가미카제, 에로티시즘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차세대 지성인으로 꼽히고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조시를 처음 봤을 때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한국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기에 ‘그럼 한국에 가지 왜 영국에 있나’ 싶었죠.” 구독자 300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의 올리 켄들(32)은 동료 조시 캐럿(30)의 첫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영국남자’는 2013년 시작해 영국인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고, 한국어로 영국 문화를 알리는 영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에서 한국을 외국에 알린 인물에게 주는 ‘2019 한국이미지상’을 받은 두 사람을 10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서울코엑스 호텔에서 만났다. 두 사람이 ‘영국남자’ 채널을 만든 건 조시의 어린 시절 덕분이다. 조시는 12세 때 중국으로 이사를 가면서 다닌 국제학교에서 한국인 친구들과 가깝게 지냈다. “당시 학생의 90%가 한국인이었는데, 저는 한국어를 못 해 친구가 없었어요. 그때 한국 친구들이 저를 위해 영어로 얘기해 주고, 집에도 초대해 주고, PC방에 가서 놀자고 했죠. 18세 때까지 한국 문화 속에서 자라 영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사람이 되었어요(웃음).” 조시는 영국 런던대 소아스(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며 올리를 만났다. 조시의 영향으로 2008년 한국을 찾은 올리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음식과 문화를 경험하면서 조시가 왜 그렇게 한국에 대해 많이 얘기했는지 알게 됐다”며 “숨겨진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어 “한국 음식이 중국과 일본 음식만큼 유명해져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할리우드 영화배우들과 한식 먹방을 찍고, 영국인에게 수능 영어 문제를 풀어 보게 하는 등 한국 음식과 교육, 관광 명소, 최신 유행을 흥미로운 방법으로 소개한다. 해외의 한인타운을 방문해 외국에서 한국 문화가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도 알렸다. 조시와 올리가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은 ‘불닭볶음면 도전’. 극도로 매운 볶음라면을 영국인이 먹는 모습을 담은 이 영상은 ‘영국남자’를 많은 사람에게 알렸다. 올리는 “팬들이 보내준 불닭볶음면으로 만든 영상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국 음식이 됐다”며 “미국 ‘버즈피드’에서 일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너희 불닭볶음면에 도전해 봤니?’라고 물어봐서 신기했다”고 말했다. 조시는 2016년 한국인 요리 연구가 국가비와 결혼해 런던에서 살고 있다. 조시에게 도전하고 싶은 과제를 묻자 사무실 화이트보드가 이미 아이디어로 꽉 찼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랑받아서 너무나 감동적인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재미있는 영상을 기대해 주세요.”(조시)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스크린을 가득 채운 사이보그 소녀 ‘알리타’의 얼굴. 클로즈업한 화면에는 피부의 미세한 주름과 솜털, 모공까지 생생히 보여 실물을 촬영한 영상 같다. 그러나 ‘알리타’는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해 창조된 가상 이미지.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 그렸고, 눈동자는 ‘반지의 제왕’ 골룸보다 320배 자세히 표현했다. 영화의 CG를 책임진 웨타디지털의 김기범 CG감독(41)은 “배우의 치아와 잇몸까지 모든 데이터를 담아내 구현했다”고 말했다.》 다음 달 개봉하는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은 26세기 기억을 잃어버린 사이보그 소녀의 성장기를 그렸다. 일본 만화 ‘총몽’이 원작으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아바타’를 만들기 전부터 구상했던 작품이다. 기술이 부족해 제작을 미루다 ‘씬 시티’의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시나리오를 받았다. 캐머런은 제작자로 참여한다.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7일 만난 김 감독은 ‘알리타’의 구현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캐릭터의 피부와 근육을 완벽히 구현했는데도 어색함을 지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CG가 사람과 어설프게 닮을수록 불쾌한 기분이 들게 하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현상이었다. “사람은 평생 타인을 관찰하기에 미세한 구조만 달라도 어색함을 느낍니다. 여러 고민 끝에 ‘알리타’를 연기한 배우 신체의 해부학 데이터를 삽입해 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죠.” 김 감독이 참여한 작품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아이언맨 2’, ‘혹성탈출: 종의 전쟁’ 등으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국내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스타워즈’를 보고 CG 기술자의 꿈을 키웠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묻자 뜻밖에도 심형래 감독의 ‘디 워’라고 답했다. “촬영 소품도 직접 만들고, 동료와 단둘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관광객인 척 도로 한복판에서 영상도 찍었어요. ‘포졸’ 역할로 엑스트라 출연도 했죠. 이렇게 ‘맨땅에 헤딩’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안 되는 걸 되게 만들어야만 했던 경험은 이후 작업에 원동력이 됐다. 이방인이지만 능력을 바탕으로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감독의 자리에 오르자 다시 서양인들의 일하는 방식을 배워야 했다. “처음에는 한국인 특유의 ‘눈치’로 인정받았지만 관리자가 되니 불리했어요. 직원들이 알아서 일할 줄 알았는데, 일일이 소통을 해야 하더군요. 그때부터 한국과 서양의 문화를 나름대로 융합하려 노력했습니다.” 국내 영화의 CG에 대한 의견이 궁금했다. 그는 “영화 ‘신과 함께’의 작업자와 작업 과정을 잘 알고 있다”며 “한정된 여건과 기간, 예산에 비해 나온 결과물은 수준급으로, 대단함을 넘어 경이롭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한국과 외국의 비교가 무의미하도록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이런 질문을 많이 했어요. ‘국내 소프트웨어를 외국 제품으로 다 교체하면 될까? 외국 사람을 데려오면 될까?’ 만약 우리 영화가 아카데미 비주얼이펙트 부문 후보가 된다면 한국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어떤 방법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한국 CG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꼭 이루어내고 싶습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스크린을 가득 채운 사이보그 소녀 ‘알리타’의 얼굴. 클로즈업한 화면에는 피부의 미세한 주름과 솜털, 모공까지 생생히 보여 직접 촬영한 영상 같다. 그러나 ‘알리타’는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해 창조된 가상 이미지. 머리카락은 한 올 한 올 그렸고, 눈동자는 ‘반지의 제왕’ 골룸보다 320배 자세히 표현했다. 영화의 CG를 책임진 웨타디지털의 김기범 CG감독(41)은 “배우의 치아와 잇몸까지 모든 데이터를 담아내 구현했다”고 말했다. 다음달 개봉하는 영화 ‘알리타’는 26세기 기억을 잃어버린 사이보그 소녀의 성장기를 그렸다. 일본 만화 ‘총몽’이 원작으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아바타’를 만들기 전부터 구상했던 작품이다. 기술이 부족해 제작을 미루다 ‘씬 시티’의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시나리오를 받았다. 캐머런은 제작자로 참여한다.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7일 만난 김 감독은 ‘알리타’의 구현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캐릭터의 피부와 근육을 완벽히 구현했는데도 어색함을 지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CG가 사람과 어설프게 닮을수록 불쾌한 기분이 들게 하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현상이었다. “사람은 평생 타인을 관찰하기에, 미세한 구조만 달라도 어색함을 느낍니다. 여러 고민 끝에 ‘알리타’를 연기한 배우 신체의 해부학 데이터를 삽입해 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죠.” 김 감독이 참여한 작품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아이언맨 2’, ‘혹성탈출: 종의전쟁’ 등으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국내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스타워즈’를 보고 CG 기술자의 꿈을 키웠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묻자 뜻밖에도 심형래 감독의 ‘디 워’라고 답했다. “촬영 소품도 직접 만들고, 동료와 단 둘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관광객인 척 도로 한복판에서 영상도 찍었어요. ‘포졸’ 역할로 엑스트라 출연도 했죠. 이렇게 ‘맨 땅에 헤딩’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안 되는 걸 되게 만들어야만 했던 경험은 이후 작업에 원동력이 됐다. 이방인이지만 능력을 바탕으로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감독의 자리에 오르자 다시 서양인들의 일하는 방식을 배워야 했다. “처음에는 한국인 특유의 ‘눈치’로 인정받았지만, 관리자가 되니 불리했어요. 직원들이 알아서 일할 줄 알았는데, 일일이 소통을 해야 하더군요. 그 때부터 한국과 서양의 문화를 나름대로 융합하려 노력했습니다.” 국내 영화의 CG에 대한 의견이 궁금했다. 그는 “영화 ‘신과 함께’의 작업자와 작업 과정을 잘 알고 있다”며 “한정된 여건과 기간, 예산에 비해 나온 결과물은 수준급으로, 대단함을 넘어 경이롭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한국과 외국의 비교가 무의미하도록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이런 질문을 많이 했어요. ‘국내 소프트웨어를 외국 제품으로 다 교체하면 될까? 외국 사람을 데려오면 될까?’ 만약 우리 영화가 아카데미 비주얼이펙트 부문 후보가 된다면 한국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어떤 방법이 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한국 CG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꼭 이루어내고 싶습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디지털’ ‘몰입형 미디어’ 같은 전시로는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눈을 가까이 갖다 댔을 때 보이는 화면의 질감과 세세한 표현은 원화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프랑스 파리의 화려한 시절에 활약한 화가들의 유화를 직접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파리시립근대미술관 소장품 90여 점을 소개하는 ‘피카소와 큐비즘’전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1906년 시작된 입체파 시대 110주년을 기념해 3년 전 기획됐다. 시기별로 구성된 전시는 폴 세잔의 풍경화 두 점으로 시작한다. 서양화의 전통적 원근법을 무시하고 해체하듯 그린 세잔의 풍경은 후대 화가들에게 충격을 줬다. 세잔 회고전을 본 피카소와 브라크도 그의 영향으로 한 그림에 여러 시점을 넣은 ‘입체파’ 그림을 그린다. 입체파의 기원을 소개하는 첫 번째 전시관은 피카소는 물론이고 앙드레 드랭, 라울 뒤피 등 그의 영향이 뚜렷이 보이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피카소는 “세잔은 우리 화가들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전시 총감독인 서순주 박사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꼽은 두 번째 전시관은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파 회화를 만날 수 있다. 이때만 해도 두 화가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입체파 회화를 연구했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서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화풍이 비슷하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감에 모래를 섞거나 신문지를 오려 붙이는 등 그 나름의 실험을 한 흔적이 엿보인다. 뒤로 이어지는 전시관은 후대 입체파 화가들의 경향을 보여준다. 마르셀 뒤샹의 맏형인 자크 비용, ‘입체파’ 책을 쓴 알베르 글레이즈와 장 메챙제의 작품 등을 선보인다. 입체파의 영향 아래 각 작가가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에 전시된 로베르 들로네, 소니아 들로네 부부의 대형 회화 4점은 80년 만에 파리시립근대미술관 밖으로 나온 작품들이다. 거대한 규모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어 지게차를 동원했고, 설치를 위해 보존 전문가 2명이 투입됐다고 한다. 이 그림들은 1938년 튈르리 살롱전 조각실을 장식하기 위해 전시 조직위원회가 의뢰한 것들로, 이듬해 파리시에 기증돼 파리시립근대미술관의 소장품이 됐다. 피카소 작품보다는 입체파의 다양한 면면을 알고 싶은 관객에게 적합한 전시다. 3월 31일까지. 1만∼1만5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디지털’, ‘몰입형 미디어’ 같은 전시로는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눈을 가까이 갖다댔을 때 보이는 화면의 질감과 세세한 표현은 원화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프랑스 파리의 화려한 시절 활약한 화가들의 유화를 직접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파리시립근대미술관 소장품 90여 점을 소개하는 ‘피카소와 큐비즘’ 전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1906년 시작된 입체파 시대 110주년을 기념해 3년 전 기획됐다. 시기별로 구성된 전시는 폴 세잔의 풍경화 두 점으로 시작한다. 서양화의 전통적 원근법을 무시하고 해체하듯 그린 세잔의 풍경은 후대 화가들에게 충격을 줬다. 세잔 회고전을 본 피카소와 브라크도 그의 영향으로 한 그림에 여러 시점을 넣은 ‘입체파’ 그림을 그린다. 입체파의 기원을 소개하는 첫 번째 전시관은 피카소는 물론 앙드레 드렝, 라울 뒤피 등 그의 영향이 뚜렷이 보이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피카소는 “세잔은 우리 화가들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전시 총감독인 서순주 박사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꼽은 두 번째 전시관은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파 회화를 만날 수 있다. 이 때만해도 두 화가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입체파 회화를 연구했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서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화풍이 비슷하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감에 모래를 섞거나 신문지를 오려 붙이는 등 나름의 실험을 한 흔적이 엿보인다. 뒤로 이어지는 전시관은 후대 입체파 화가들의 경향을 보여준다. 마르셀 뒤샹의 맏형인 자크 비용, ‘입체파’ 책을 쓴 알베르 글레즈와 장 메챙제의 작품 등을 선보인다. 입체파의 영향 아래 각 작가들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에 전시된 로베르 들로네, 소니아 들로네 부부의 대형 회화 4점은 80년 만에 파리시립근대미술관 밖으로 나온 작품들이다. 거대한 규모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어 지게차를 동원했고, 설치를 위해 보존 전문가 2명이 투입됐다고 한다. 이들 그림은 1938년 튈르리 살롱전 조각실을 장식하기 위해 전시 조직위원회가 의뢰한 것들로, 이듬해 파리시에 기증돼 파리시립근대미술관의 소장품이 됐다. 피카소 작품보다는 입체파의 다양한 면면을 알고 싶은 관객에 적합한 전시다. 3월 31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는 피아니스트다. 미국 뉴욕 카네기홀의 펜트하우스에 살며 포크와 나이프 없이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그의 운전사 토니 발렐롱가(비고 모텐슨)는 가진 것이라곤 허풍과 주먹뿐. 운전할 때 한 손으론 프라이드치킨을 뜯어먹고 남은 뼈는 창문 밖으로 휙 던져 버린다. 돈 셜리는 흑인, 토니는 백인이다. 1962년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린 북’은 돈 셜리가 남부로 투어를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당시 미국 남부는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길에서 얻어맞는 곳이었다. 위험한 상황에도 투어를 결심한 돈 셜리는 자신의 보디가드 겸 운전사로 토니를 고용한다. 두 사람의 여정은 고정관념의 정반대 그 자체다. 토니는 흑인 밑에서 일하는 게 어색하고, 돈 셜리도 토니를 의심하긴 마찬가지다. 토니가 기념품 가게의 물건을 슬쩍하다가 발각되는가 하면, 이탈리아 억양이 섞인 영어를 쓰다가 돈 셜리에게 지적을 받는다. “연주회에서 함께 소개할 때 그런 억양으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흑인의 억양이 교정 대상이다. 토니는 도로에서 화장실을 찾는 돈 셜리에게 “그냥 길에서 해결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며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던 토니는 돈 셜리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점차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공연장에서는 귀족이지만 길거리에서는 ‘깜둥이’에 불과한 혼란스러운 삶 속에 놓인 돈 셜리의 외로움도 보이기 시작한다. 흑인인데 치킨도 안 먹고, 재즈도 연주하지 않는 희한했던 돈 셜리는 사실 백인 사회에도 흑인 사회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두 인물의 인간적 우정을 그린 수작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아라곤 역할을 맡았던 모텐슨의 완벽한 연기 변신도 돋보인다. 발에 붙은 먼지를 손으로 쓱쓱 닦고 침대에 눕는 생활 연기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알리는 돈 셜리의 귀족 같은 외양 안에 숨겨진 고독을 절제된 연기로 보여줘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린 북’은 각본상, 영화-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까지 받으며 골든글로브 3관왕에 올랐다. 9일 개봉. ★★★★(★ 다섯 개 만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