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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짓고 남은 자리에 정원을 꾸미는 게 아니라 원래 있었던 자연에 건물이 앉혀진다면 어떤 모습일까.’ 서울 성동구에 10일 문을 연 ‘아모레 성수’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서울의 브루클린 ‘성수’에 있어서도, 오래된 자동차 정비소를 리모델링한 ‘인스타 성지’여서도 아니다. ‘힙스터’는 물론이고 건축가도 주목하는 공간은 중정에 자리 잡은 231m²(약 70평) 넓이의 ‘성수가든’이다. 쓰고 남은 여백을 채우거나 건축물을 보조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정원의 반전은 뭘까? “개구리가 밤새도록 울어대는 공원. 도시에서 쫓겨난 생명이 돌아오는 공간. 그런 곳이 저의 꿈입니다.” 성수가든을 만든 ‘더가든’의 김봉찬 대표(54·사진)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성수가든은 공간에 식물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식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서식처’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쪽동백, 노각나무, 꼬랑사초, 나도히초미 등 자생식물이 공존하고, 바닥에는 푸른 이끼가 덮여 숲을 그대로 옮겨온 풍경이다. 녹색, 갈색, 회색의 그러데이션은 인위성 없는 자연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아모레 성수’에는 뷰티 체험 공간과 카페가 들어섰다. 디귿(ㄷ)자 형태의 건축이 중정을 감싸안고, 통유리창을 통해 정원을 사방에서 감상할 수 있다. 따뜻한 날엔 창을 열어 두어서 스프링클러의 물이 뿜어질 때 풀내음이 솔솔 들어온다. 정원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으니, 이 공간의 주인공은 정원이다. 이처럼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 식물의 환경을 고려하는 것이 ‘생태정원’이다. 생태정원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김 대표는 대학에서 생태학을 공부하고, 제주 여미지식물원에 근무하며 식물의 생태를 익혔다. 제주 토박이로 다양한 식생을 접했고 40대 때까지 자연에 심취해 한국의 산, 도서 지방, 압록강 두만강 유역 등을 답사했다. 1990년대에는 해외 잡지를 보며 독학으로 조경 기술을 익혔고, 고산식물을 위한 암석원 조성 기법을 개발해 ‘평강식물원’에 적용했다. 김 대표는 그간 국내의 정원에서 다양한 식물의 어우러짐을 보기 힘들었던 것은 국내 조경의 기준이 ‘잘 견디는 식물’에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성수가든 속 식물 대다수는 기존 조경 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더 가든’에서 직접 기른 것들이다. “국내에서는 안 좋은 조건에서 잘 견디는 식물, ‘하자’가 나지 않는 식물을 선호해 왔어요. 그런데 사실 모든 식물은 ‘하자’가 없습니다. 단지 잘못 다루거나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거죠. 낯선 서식처에서도 식물이 잘 살게 해주는 것이 정원의 기술입니다.” 미국 뉴욕의 명소 ‘하이라인파크’도 도시의 악조건에서 식물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준 것이 핵심인데, 국내에서는 겉모습만 가져오려 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진단했다. 그 기저의 원인은 연구와 기술 개발 등 ‘기초 체력’ 부족이다. “식물원은 기본적으로 사진 찍는 곳이 아니라 식물 생태 연구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야 해요. 뉴욕 식물원은 약초를 연구하려 아마존에도 베이스캠프를 두고 있죠.” 생태정원도 감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도시 속 생명 공존 방법으로 봐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자신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인간이 멸종위기종 1순위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생명과 공존하는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 아닐까요?”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여리여리한 몸매에 싱그러운 미소, 부드러운 곱슬머리를 휘날리는 그를 향해 수많은 팬들이 절박하게 손을 뻗었다. 어떤 이들은 그를 가까이서 보려고 전날 밤부터 노숙하며 대기 줄을 형성했다. 이달 초 부산국제영화제, 미국 남자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참여한 신작 ‘더 킹: 헨리 5세’의 야외 무대 인사 현장 풍경이다. 야성적으로 넘겨 붙인 옆머리,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지미 헨드릭스처럼 전기기타를 후려갈기는 그를 향해 수많은 팬들이 환호를 질렀다. 여자 보컬 겸 기타 황소윤이 이끄는 밴드 ‘새소년’의 지난달 야외 음악 페스티벌 출연 장면이다. 터질 듯한 상체 근육을 뽐내며 무대를 부술 듯 뛰어다니던 남자 가수, 공주 드레스를 입고 수줍게 웃는 여자 배우에게 이성 팬들의 헌신적 팬덤이 모이던 시대는 갔다. 예쁜 남자, 멋진 여자에 대한 열광. 아름다움과 매력의 관념에 관한 성별 차이의 붕괴…. 이른바 ‘노 젠더 팬덤’의 탄생이 이어지고 있다.●중성 바비인형의 탄생… 젠더에 유연한 Z세대 성별과 성적 매력에 관한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물결은 지상파 방송에까지 다다랐다. 최근 방영 중인 KBS2 드라마 ‘조선로코-녹두전’. 여장남자 캐릭터로 화제다. 과부촌에 여장을 하고 잠입한 ‘전녹두’(장동윤)와 기생이 되기 싫은 ‘동동주’(김소현)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남자 배우 장동윤은 여자 배우 김소현과 미모 대결을 벌일 정도의 화사한 여장으로 화제를 모은다. 서두에 언급한 샬라메는 2017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나이 많은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열연을 선보인 뒤 강력한 팬덤을 구축했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 ‘Z세대’(1995년 이후 태어난 세대)에서 젠더 통념이 무너지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유명 조사 기관 ‘퓨 리서치 센터’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지난해 설문 조사에 따르면, Z세대 세 명 중 한 명은 중성적 인칭대명사에 친숙하다. 이들은 정치적 성향처럼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속성으로 젠더를 본다. 열 명 중 여섯은 각종 양식의 성별란에 ‘남성’과 ‘여성’ 이외의 선택지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흐름을 포착한 미국의 바비 인형 제작사 ‘마텔’은 지난달 ‘중성 바비인형’을 처음 출시했다. 여성 캐릭터 ‘바비’, 남성 캐릭터 ‘켄’의 이분법은 깨졌다. 중성 바비인형은 성별에 관계없이 다양한 헤어 스타일과 패션을 아이들이 취향대로 고르도록 만들었다. 패션에서도 ‘논 바이너리’(이분법을 거부하는), ‘젠더-플루이드’(성별이 유연한)가 트렌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남자 배우 빌리 포터가 드레스 형태의 가운을 입고 레드 카펫에 올랐다. 가수 셀린 디옹은 지난해 성별 구분이 없는 아동복 라인을 출시했다.●“남녀는 아웃오브안중… 한 인간의 예쁨과 멋짐에 반할 뿐” 영화 ‘신비한 동물 사전’ ‘저스티스 리그’로 이름난 미국 남자 배우 에즈라 밀러는 여장의 선두 주자다. 레드카펫마다 화제를 뿌렸다. 그가 이끄는 밴드 ‘선즈 오브 언 일러스트리어스 파더’는 음악 정체성을 ‘장르 퀴어’로 소개한다. 4월 1만석 규모의 체조경기장 공연을 매진시킨 호주 팝스타 트로이 시반은 성소수자로서 뮤직비디오나 무대에서 셔츠 아래로 앙상한 쇄골을 드러내며 매력을 뽐낸다. 공연 예매 사이트 ‘예스24’에 따르면, 시반의 4월 공연 예매자 중 여성이 89.3%였다. 밀러가 속한 ‘선즈…’의 5월 내한공연은 예매자의 94.2%가 여성. 시반과 샬라메를 좋아한다는 30대 직장인 김지민 씨는 “성별을 떠나 그들이 인간 자체로서 가진 멋짐, 예쁨, 매력에 빠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엠넷 ‘퀸덤’에서 여성 그룹 AOA는 남성복과 단화 차림으로 등장한 뒤 후반부에 긴 머리와 하이힐이 돋보이는 남성 댄서들을 출연시키는 식으로 마마무의 ‘너나해’를 변주해 화제를 모았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동아방송대 교수)는 “크로스 섹슈얼리티는 몇 년 전만 해도 ‘아기 같은 인상의 근육질 남성’이나 ‘터프한 걸크러시 여성’처럼 남녀 매력 요소가 조금씩 섞인 절충적 형태로 나타났다. 하지만 미투운동 이후 여성주의가 강하게 대두하며 최근엔 급속히 극단화하는 추세다. 이런 경향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영국의 유전역학 교수이자 전 세계 논문 인용 상위 1%의 과학자. 화려한 타이틀의 주인공인 저자는 이탈리아에 있는 해발 3100m 보르미오 산정에 오르려다 뇌졸중을 겪는다. 건강한 중년 남성에서 2주 만에 환자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재점검의 시간, 약을 줄이고 건강해질 확률을 높이는 음식을 탐구한 과학자는 수많은 엉터리 식이요법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전문가의 관점에서 식단을 분석하기로 했다. 음식에 관한 각종 영양소로 분류된 19개 챕터를 통해 식이요법의 기본인 영양학부터 다룬다. 식품산업계의 검증되지 않은 홍보와 유사과학의 이면도 지적한다. 체중 감량만을 위해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배제하는 ‘환원주의적 사고’를 꼬집고, “모든 신선한 과일과 채소는 사실상 슈퍼 푸드”라며 마케팅의 허점을 짚어주기도 한다. 결론은 자연 식품의 구성 성분과 장내 미생물의 상호 작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 저자는 장내 미생물에 관한 저술, 블로그, 미디어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과학 저술의 본보기’라는 찬사와 함께 2015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김지아나 작가가 벨기에 보고시앙 재단의 후원을 받아 브뤼셀 아트로프트 갤러리에서 개인전 ‘흙의 연금술사’를 열고 있다. 보고시앙 재단은 레바논 출신의 아르메니아 보석상이었던 로베르 보고시앙과 그의 아들 장, 알베르가 설립해 지역정부와 협력하며 미술교육, 전시 및 작가 후원과 작업 공간 지원을 하고 있다. 도예를 기반으로 가전제품 디자인 협업 등의 작업을 해온 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흙을 재료로 한 회화, 설치 작품 연작을 선보였다. 흙이 생명과 소멸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고, 이를 소재로 삶 속에서 사회적 관계에 관한 해석을 시도했다. 설치 작품 ‘기억을 담은 순간’은 구(球) 형태의 자기(포슬린 볼)를 벽면과 천장에 매달았다. 불안하고 가녀린 심성을 의미하는 얇은 도자기 조각과 그 조각에 담긴 빛이 서로 어우러져 커다란 형상을 만든다. 전시장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포슬린 볼’이 대조를 이루며 설치됐다. 김 작가는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흙이 지닌 조형적 가능성에 매료돼 흙과 빛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작품에 표현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아트로프트 갤러리는 한국인 이민영 큐레이터와 길 바우웬스가 2012년에 설립했다. 한국 작가를 유럽에 소개하는 전시를 여러 차례 개최했다. 전광영, 윤성필, 남궁환, 김준, 심문필, 정윤경, 김구림, 민성홍, 남춘모 작가도 이곳에서 전시를 했다. 16일부터 20일까지 열린 프랑스의 아트페어 ‘아시아나우 파리’에서 김지아나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김 작가의 전시는 다음 달 9일까지 열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경기 안양시 평촌중앙공원에 거대한 ‘공기정화탑’이 생겼다.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 단 로세하르더의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7m 높이의 탑이다. 로세하르더의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는 정부, 학교, 청정 기술 산업과 협력해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도심의 스모그를 없앨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그중 하나가 거대한 공기청정기를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스모그 프리 타워’다. 이 타워가 네덜란드와 중국을 거쳐 한국을 찾은 것은, 17일 개막한 제6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6) 때문이다. 공공예술을 주제로 하는 국제 트리엔날레인 APAP는 올해 ‘공생도시’를 주제로 7개국 47팀의 작가를 초청해 공공장소에서 100여 점의 작품과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전시는 크게 ‘안양’ ‘함께하는’ ‘미래도시’의 3개 주제로 나뉘어 열린다. ‘안양’은 ‘지상낙원’을 뜻하는 지명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과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안양예술공원 내 상가와 지역 작가 프로젝트,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여기에 해당된다. 조르주 루스 작가의 ‘삶’ 글씨가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작품은 ‘함께하는’ 섹션에서 볼 수 있다. 소통과 교감을 전하는 싱가포르 리원 작가의 둥근 탁구대, ‘핑퐁 고 라운드 프로젝트’도 안양예술공원 벽천광장 에어돔 내부에 전시된다. 로세하르더의 ‘스모그 프리 타워’는 ‘미래도시’ 섹션에 포함됐다.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해 ‘공생도시’ 주제를 해석한 전시 ‘내일보다 나은’이 안양 파빌리온 내부에서 열리며, 공공미술의 의미를 돌아보는 국제심포지엄이 26일 안양 블루몬테에서 열린다. 전시는 12월 15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가톨릭 사제이자 화가인 김태원 신부(67)가 다음 달 13∼19일 서울 강남구 갤러리원에서 ‘15번째 전시회’를 연다. 이번 전시는 1979년부터 시작된 40년의 화업을 정리하는 의미의 회고전이다. 파리 유학 시절 그렸던 드로잉과 동판화, 1995년부터의 유화, 2006년부터 그려 온 옻칠 그림 등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 작품 중 ‘인간의 한계 1, 2’는 어떤 때는 꽃이 되고 어떤 때는 다투기도 하는 세상사를 담았다. “때로는 화를 분출하고, 또 다른 때는 선함을 분출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붉은 흔적을 보고 피를 연상하더군요. 그렇게 보일 순 있겠지만 피를 형상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간이 생각하고 뿜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김 신부는 1979년 프랑스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그림을 접했다. 어릴 때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신부라고 그림을 그리지 말란 법이 있나요. 신학 공부를 하면서도 길거리의 그림이 자꾸 눈에 들어 왔어요. 그러다 파리국립미술학교에 다녔죠.” 옻칠 그림은 강원 원주에 정착하고 시작됐다. 1995년 원주 풍수원 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며 방문한 장익 주교로부터 옻칠을 알게 됐다. 무형문화재 12호 김상수 장인과 부산 신라대 권상오 교수가 저술한 책 등을 보면서 기법을 알아 나갔다. 그는 건조한 은행나무 위에 삼베, 참숯가루, 황토를 일정한 비율에 맞춰 바탕을 만든다. 이 위에 안료 가루를 붙이는 ‘건칠분’ 그림을 그린다. 이런 방식의 작업을 하면 작품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선 ‘내 방 안에 있는 범고래’와 ‘내 방 안에 있는 상어’도 선보입니다. 양면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인데, 원래는 제 방 수족관에 넣어 전시했던 것이죠. 그만큼 옻칠 회화는 내구성이 뛰어납니다.” 신부이자 화가로 살아 온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생명 존중, 인류애가 저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주제입니다. 그런 사랑을 전하려고 그림도 이젠 애착을 갖지 않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살리에리는 정말 모차르트를 죽였을까?’ 모차르트 독살설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은 러시아 문호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다. 그런데 이에 관한 루머는 모차르트의 사망 직후 빈 음악계에 풍문으로 떠돌았다고 한다. 로시니도 살리에리를 만난 자리에서 반농담으로 ‘이 소문’을 언급했다. 루머에 스트레스와 시달림을 받은 살리에리는 죽기 2년 전 치매로 요양소에 실려가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혼잣말도 했다. 그런데 모차르트의 편지를 살펴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모차르트가 ‘황제의 눈에 든 인물은 살리에리뿐’이라고 불평을 늘어놓거나 질투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오히려 살리에리는 1788년 궁정 카펠마이스터로 임명된 뒤, 자신의 곡이 아닌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무대에 올렸다. 관계가 좋아진 두 사람은 공동으로 칸타타를 작곡하기도 했다. 어쩌면 ‘모차르트 독살설’은 너무 이른 나이에 떠난 천재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낸 상상일지 모른다. 책은 차이콥스키의 음악적 유서로서의 ‘비창’, 말러가 죽고 난 뒤 그의 삶을 왜곡했던 아내 알마의 모습 등 서양 음악사의 뒷이야기를 파헤친다. 클래식 음악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저자가 일반적 개설서에서는 만날 수 없는 20개의 화제를 엄선했다. 눈 밝은 클래식 팬이라면 알 법한 이야기라도 새롭게 들여다보려고 했다. ‘예술은 어렵다’는 막연한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성전’처럼 지어진 콘서트홀에서 만나는 음악이 때로는 박제된 성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책은 그 음악 속에 담긴 시공간을 넓게 펼쳐 보여준다. 그 속의 소소하지만, 그래서 더 중요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클래식 음악 또한 인간의 사소한 일상에서 출발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곰국처럼 깊은 정보를 반듯하고 정갈하게 차려낸 문장도 매력이 넘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14년 ‘러버덕’으로 화제를 모은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 이번엔 우주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3일부터 시작한 ‘루나 프로젝트’는 디자이너 그룹인 ‘스티키몬스터랩(SML)’과 협업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러버덕 프로젝트 이후 석촌호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국내 작가가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고 높이 16m의 초대형 풍선 작품을 포함해 7개의 우주 몬스터가 호수에 띄워졌다.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한 캐릭터들은 아폴로 10호와 우주 행성의 모습을 단순하고 귀엽게 구성했다. 양말 한쪽을 벗어 던지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푸른색 캐릭터는 ‘지구몬’, 옆의 보라색 동그란 캐릭터는 달, ‘루나몬’이다. 아폴로 10호를 표현한 ‘솔라몬’ 위에는 만화 ‘피너츠’에 등장하는 유명 캐릭터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이 타고 있다. 스누피는 재활용 플라스틱 섬유를 이용해 제작했다. 루나 프로젝트는 27일까지 이어진다. 루나 프로젝트의 스누피는 17일 개막하는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의 ‘To the Moon with Snoopy’로 이어진다. 스누피를 매개로 우주를 돌아보는 전시다. 출발점은 미국 ‘찰스 엠 슐츠 뮤지엄’에서 열린 특별 전시 ‘To the Moon: Snoopy Soars with NASA’. 스누피 탄생 70주년과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한 전시다. 특히 1968년 시작한 ‘우주비행사, 스누피’ 프로그램과 스누피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안전 마스코트’가 된 과정이 눈길을 끈다. ‘우주비행사, 스누피’는 1967년 우주비행사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폴로 1호의 비극적 화재로 시작됐다. 이 사건이 미국의 우주 계획과 직원들의 사기에 엄청난 타격을 주자, 공보실에서 대중에게 친숙한 스누피를 ‘안전 마스코트’로 채택해 위기를 타개하려 한 것. 이 과정에 관한 자료를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찰스 엠 슐츠 뮤지엄의 특별전을 볼 수 있는 첫 전시 공간을 지나면 현대 미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스누피를 표현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세계적인 드로잉 아티스트 김정기가 스누피의 달 착륙 순간을 표현한 ‘무제’도 공개한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백남준은 미디어아트의 선구자로 알려졌지만, 국경을 넘나든 그의 행적은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다. 전시는 이러한 백남준의 ‘탈국가’적인 면모를 부각한다.” 17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 ‘백남준’전이 개막한다. 프랜시스 모리스 테이트모던 관장은 도록에서 전시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또한 “백남준은 문화권을 초월하는 협력을 중요시 여긴 유목민적 연결자”라고 덧붙였다. 테이트모던은 영국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미술관으로 지난해에만 590만 명이 방문했다. 이곳에서 한국 출신 예술가가 대규모로 조명되는 것은 처음이다. ‘백남준’전은 그의 초기부터 말기까지 주요 작품과 기록 200여 점을 소개한다. 사전 입수한 도록과 이숙경 테이트 시니어 큐레이터(50)와의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전시 내용을 살펴봤다. 》○ ‘국제인’ 백남준의 연대기 이번 전시는 테이트모던에서 주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하는 ‘에얄 오퍼 갤러리’에서 열린다. 넓은 전시장은 총 12개의 섹션으로 나눠졌다. 섹션은 순서대로 ‘소개’, ‘TV정원’, ‘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백남준 첫 개인전), ‘실험’, ‘존 케이지와 머스 커닝햄’, ‘자아성찰’, ‘전파(Transmission)’, ‘플럭서스(fluxus·백남준이 참여한 전위예술운동)’, ‘샬럿 무어먼’, ‘요제프 보이스’, ‘촛불 하나’, ‘시스틴 채플’로 나뉘어졌다. 처음 세 방은 백남준의 대표작과 초기 활동을 짚었다면, 중간부터는 연대기와 상관없이 주요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특히 존 케이지, 샬럿 무어먼, 요제프 보이스 등 백남준이 협업한 작가들도 비중 있게 다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숙경 큐레이터는 협업에 집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백남준은 한국인으로 태어나 일본으로 망명하고, 그 뒤에는 독일로 유학을 갔으며 미국에서도 활동했다. 그는 항상 네 국가의 미술계와 밀접한 연계를 갖고 활동했다. 예술가로서 아시아와 유럽, 미주를 연결한 셈이다. 백남준은 국경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예술로 보여줬다.”○ 재현 과정만 1년이 걸리기도 백남준의 50여 년에 걸친 활동을 망라해 전시에선 그간 쉽게 볼 수 없었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세 번째 섹션 ‘Exposition…’은 1963년 백남준이 독일 부퍼탈(Wuppertal)에서 열었던 첫 개인전을 재현했다. 갤러리 3개 층을 가득 채웠던 이 전시는 초창기 백남준의 야심만만함을 보여준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던 ‘관객 참여’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이 큐레이터는 “아주 어렵게 빌려온 작품”으로 ‘로봇-K456’(1964년)을 꼽았다. 백남준이 최초로 만든 로봇 형태의 작품이다. 후기에는 영상을 보여주는 로봇 형태의 작품이 많았는데, 이 작품은 백남준의 ‘대리인’처럼 조종하면 움직이며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961년 독일 비스바덴에서 했던 유명한 퍼포먼스 ‘머리를 위한 명상(Zen for Head)’의 결과물도 전시한다. 플럭서스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백남준은 자신의 손과 머리카락에 물감을 묻히고, 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작품은 그 퍼포먼스의 흔적을 담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재현 과정에만 1년이 걸린 ‘시스틴 채플’(1993년)이다. 그해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참가해 선보이고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25년 만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은 34대의 프로젝터로 벽면과 천장에 영상을 투사한다. 영상 속에는 존 케이지, 데이비드 보위, 재니스 조플린이 등장한다. 베니스에서 함께 전시했던 ‘몽골리안 텐트’도 눈여겨볼 만하다. 몽골족이 사용하는 텐트를 구매해 그 속에 TV부처와 자신의 얼굴을 본뜬 브론즈 가면을 놓아둔 설치 작품이다. 한민족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의 연결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 큐레이터는 “국가주의가 세계 곳곳에 등장하는 우려스러운 상황에서, 기술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자 했던 백남준의 철학이 중요한 접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테이트모던과 미국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백남준’전은 내년 2월 9일까지 열린다. 그 다음엔 미국과 네덜란드, 싱가포르에서 순회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7일부터 열리는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백남준’ 전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독일관 대표 작가로 참가한 백남준의 작품을 25년 만에 처음으로 재현해 선보인다. 당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귀국한 백남준의 기고가 같은 해 9월 26일자 동아일보 ‘나의 길’ 코너에 게재됐다. 이 글에서 백남준은 “비디오예술이란 예술이 고급화되던 당시 정서에 반해 만인이 즐겨보는 대중매체를 예술형식으로 선택한 예술깡패”라고 자신의 예술을 소개했다. 또 자신이 황금사자상을 받게 된 것에 대해서는 “유네스코에서 주는 피카소상도 타보았고 독일정부의 카이저상도 타보았는데 모두 특별상이었다. 특별상이란 조선 사람에게 대상을 주기 아까우니 이름으로 때우는 경우”라며 “독일정부에 의해 천거된 한국인이어서 대상을 받게 된 것이 진기하다”고도 말했다. 자신의 배경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나의 조부가 섬유회사 경영자로 별로 돈 걱정을 안하던 사람이지만 예술가 노릇을 하며 넉넉했던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일제하 학창시절에 마르크스주의자로 분배의 정의 없이는 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생각을 치열하게 했고, 그것이 냄새나는 예술을 거부하게 만든 힘”이라고 털어 놓는다. 또 “존 케이지가 완전 성공하기 전에, 요셉 보이스가 거의 무명시절이 만나 놓은 것이 내 인생의 행운”이라고도 언급했다. 테이트모던 전시가 조명한 ‘국제인’으로서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백남준은 “외국에 살면서 조국에 애국하면 망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며 “외국에 살려면 그 나라에 적극 도전해 그들과 싸우고, 그래서 그들보다 우수하게 되었을 때 조국에 대한 애국이 저절로 성취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예술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일본인은 개미처럼 집단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한국인은 모래처럼 흩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한국인이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국수주의적 발상이나 적어도 예술분야는 개미보다 독립적인 모래알이 낫다. 나는 그래서 한국예술계의 앞날을 낙관한다.”아래는 백남준이 기고한 “재미없으면 예술이 아니다”의 전문이다. “재미없으면 예술이 아니다” (백남준. 1993년 9월 26일 동아일보 기고) 84년 정월, 그 해가 되면 세상이 망하게 될 거라는 예언을 남긴 조지 오웰에게 한바탕 야유를 보내고 오랜만에 고국에 들렀다. 1950년 7월에 한국을 떠나 34년만에 처음 공식적으로 한국에오는 길이었으니 감회도 깊었으려니와 ‘굿모닝 미스터오웰’로 내 이름이 한껏 알려진 터라 무슨 금의환향이나 하듯 공항에서부터 법석을 떨었다. 공항에서 어느 기자가 내게 “예술이 뭐냐”고 물었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술이나 한잔 마시고 푸념조로 넋두리하듯 예술가들끼리 하는 질문이지만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예술은 사기야” 다음날 한국의 굵직한 신문들이 모두 큰제목으로 白南準(백남준) 왈 “예술은 사기다”라고 대서특필했다. 예술을 사기로 몰아붙인 것 같아 내심 가슴도 아팠으나 예술이 사기란 말은 내가 개발한 꽤 괜찮은 반어법 중 하나라서 웃고 지나갔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지났는데 아직 내게 이 말에 대하여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예술은 정말 사기이거나 아니면 정반대인 모양이다. 예삿일이 아니다. 나는 자서전을 쓸만한 위인도 아니고 또 그럴 나이도 아니며 앞으로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니 너절한 얘기는 안 하는게 상책인 것 같다. 다만 몇 가지 생각나는 일만 그림 그리듯 써놓고 독자들은 그것을 비디오 보듯 봐주면 그만이다. 내가 획책하는 예술이란 늘 관람객이 즐기고 잘 봐주면 족한 것이니…. 내 일생은 태어나서 열여덟까지 한국에서 산 것을 제외하고는 늘 외지 생활이다. 그것이 팔자소관 아니고는 나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일본에서 7년, 독일에서 7년, 미국에서 29년, 모두 43년간 외국생활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외지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나 다만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생각은 떠나지 않는다. 나는 간혹 한국에 갈 때면 옛 동창생들을 만난다. 白寅洙(백인수) 廉普鉉(렴보현) 崔景漢(최경한) 朴漢洙(박한수), 徐載雄(서재웅)등 코흘리개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은 대개 경기보통중학 동창생들인데 옛날에는 서로 시간이 없어 못 만났지만 이제는 목소리만 들어도 반갑다. 6·25 직전에 이들과 보낸 시간이지금도 머리에 선하지만 요즘 만나면 모두 환갑이 넘어 세월이 무상함을 느낀다. 모두가 묘자리를 봐둬야 할 나이다.나는 86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도 이제 쉰에서 다섯이 넘었으니 차차 죽는 연습을 해야겠다. 예전 어른이면 地官(지관)을 데리고 이상적인 묘자리를 찾아다닐 나이가 됐으나 나는 돈도 없고 요새는 땅값도 비싸졌으니 그런 국토 낭비 계획은 없애고 오붓하게 죽는 재미를 만드는 것이 상책이다. 내 인생의 행운은 존 케이지가 완전 성공하기 전에, 조셉 보이스가 거의 무명시절에 만나 놓은 것이다” 나의 조부께선 國喪(국상)이 났을 때 만조백관의 상복을 마련하던 섬유회사 경영자였으며 선친은 태창방직 설립자였으니 나는 꽤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별로 돈 걱정을 안 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예술가 노릇을 하면서부터는 넉넉했던 적이 없다. 일제하 학창시절에는 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했었고 분배의 정의 없이는 義(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매우 치열하게 다가왔었다. 이 생각은 내 예술가로서의 전체 노정에 크게 작용했으며 냄새나는 예술을 거부하게 만든 힘이기도 했다. 그래서 예술은 이 냄새의 종류를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관건이며 그에 따라 사기도 되고 혹여 진실도 되는게 아닐까. 1963년 독일 부퍼탈의 파르나스화랑에서 비디오예술의 첫 탄생을 알리는 전시회를 가질 때 나는 가진 돈 모두를 TV 13대를 사는데 탕진했다. 집에서 마지막 송금해온 돈을 다 써버린 셈이었다. 존 케이지는 50년대 말 독일 다름슈타트의 국제하계음악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났지만 독일의 영웅 조셉 보이스는 비디오 예술 첫 탄생일에 직접 내방하여예기치 않았던 퍼포먼스까지 해주었다. 그 친구는 내가 애지중지하던 이바흐(IBACH)피아노를 때려 부숴버리는 퍼포먼스를 해줌으로 해서 내 인생에 끼어들었다. 비디오예술이란 예술이 고급화되던 당시의 정서에 반하여 만인이 즐겨보는 TV라는 대중매체를 예술형식으로 선택한 일종의 예술깡패였다. 그 안에는 동양사상이나 한국의 고유한 이야기 등도 내포되어 있었지만 서양인에게는 독특한 것으로만 보일뿐 눈치 채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기존미술에 대한 항거, 예술의 대중성회복이란 때 이른 목표를 내걸었던 내게는 당시「동양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라는 딱지만 붙었었다. 내가 미국에 정착하게 된 것은 실은 의외적인 것이다.1964년 일본에서 로봇과 비디오연구에 근1년을 보내고 다시 독일로 돌아가는 길에 미국을 구경삼아 들렀다. 뉴욕에 처음 도착했을때 거리는 몸서리쳐지게 지저분했고 이런 곳에서 어떻게 팝아트가 나왔으며 부자나라 소리를 듣는가 의아했다. 당시 뉴욕에서는 뉴욕아방가르드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으며 나는 샬럿 무어맨이란 여자에게 걸려들어 이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되었다. 내가 참가했던 퍼포먼스는 이미 독일에서 했던 것이었고 뉴욕 리바이벌은 독일에서 했던「동양인 출신의괴짜역」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샬럿 무어맨과는 그가 저세상으로 가기 전까지 예술적 동지애를 유지하게 되었다. 미국정착은 이러저러한 일이 생기고 슬슬 재미가 붙어 눌러앉은 것이 30년이 다 되었다. 인생이란 앞일을 모르기 때문에 재미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퍼포먼스를 통해 수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때려 부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서양은 물론 동양에서조차 음악의 상징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며 음악의 한계를 그것으로 고정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또 TV를 통해 재미만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부처의 모습과달, 물고기, 컴퓨터그래픽 등을 넣어 재미를 방해했다. 나는 매스미디어가 독재자의 수중에 장악되어 민중의 눈을 가려 세상이 망하게될 것이라는 조지 오웰의 생각에 도전장을 냈다. 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해 주는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이며 그것은 정보단절의 시대에 대중의 눈을 일깨우는 이른바「전자초고속도로」라며「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만들었다. 따라서 84년 정월에 방영된 이 프로는 망하지 않고 건강하게 생존해있던 우리들이 조지 오웰에게 보내는 새해인사였다. 내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상을 받게 되었을때 한국에서 온 어느 여기자가 큰 상을 몇 번째 받느냐고 물었다. 사실 나는 유네스코에서 주는 피카소상도 타보았고 독일정부의 카이저상도 타 보았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특별상이었다. 특별상이란 경우에 따라 조선 사람에게 대상을 주기 아까우니까 특별상이란 이름으로 때우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니스 비엔날레는 독일정부에 의해 천거된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대상을 받는데 일조를 했다는 사실이 진기하다. 나는 외국에 살면서 조국에 애국하면 망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외국에 살려면 그 나라에 적극 도전하여 그들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그들보다 우수하게 되었을때 조국에 대한 애국은 저절로 성취된다. 참다운 민족주의는 드러내지 않는데 있으며 참다운 민족주의가 생명을 갖기 위해서는 더욱 더 활발한 해외교류가 이루어져야한다. 국수주의가 횡행하는 곳에는 문화와 삶의 다양성이 없고 진취적 지식인들을 살인하게 된다. 사대주의는 망국병이지만 국수주의도 이에 못지않다. 일본인들은 개미처럼 집단으로 열심히 일하고 여행도 개미처럼 집단으로 한다. 한국인은 모래처럼 흩어져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일본인은 실수를 저질러도 집단으로 저지르며 한국인은 모래알 하나가 저지른다. 17년 전 결혼한 나의 아내는 일본인이니 우리 집안의 실수는 절충식인 셈이다. 그렇다고 한국인이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국수주의적 발상이나 적어도 예술분야는 개미보다 독립적인 모래알이 낫다. 나는 그래서 한국예술계의 앞날을 낙관하는 사람이다. 예술 한답시고 건강은 돌보지 못한 덕에 오래전부터 당뇨에 시달리고 산다. 나는 내가 쓰러져 못 쓰게 되면 네덜란드로 보내달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네덜란드는 안락사를 허락하는 곳이니까. 이제 광케이블 시대가 오면 예술도 한층 다양해지리라. 나의 미래작업은 광케이블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확장, 삶과 예술과 과학이 더 이상 은유가 아닌 실재의 정보로 다가오는 삶의 예술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케이블에 의한 정보시대를 역설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나의아이디어를 훔쳤다. 아마도 나는 다시 태어나면 예술보다 물리학에 더 관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게는 감상적인 추억보다 오늘하루의 일이 더 바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혁신적’, ‘선구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국제적 예술가 백남준(1932~2006)의 회고전이 17일(현지시간)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열린다. 테이트모던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이 공동기획한 전시는 백남준의 작품 20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다. 영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장소로 꼽히는 테이트모던(지난해 관객 590만 명)에서 한국 출신의 예술가가 집중 조명되는 것은 처음이다. 전시를 담당한 이숙경 박사·테이트 시니어 큐레이터(50)에게 직접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0여 점이 넘는 방대한 규모다. 어떤 구성으로 백남준을 조명했는가? “전시의 기본적인 목적은 백남준의 탈국가, 초국가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초기 작업부터 연대기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12개의 방으로 구성했다. 백남준의 아이디어나 그가 협업을 많이 했던 예술가들의 관계 등으로 분류됐다. 관객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방에는 TV부처(1974)와 TV정원(1974/2002)이 전시된다. 푸른 이파리 사이에 텔레비전이 놓인 대형 설치작품인 ‘TV정원’은 자연과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을 예견한 작품이다. 그 다음에는 백남준의 첫 개인전인 ‘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의 일부를 복원한 공간이 뒤를 잇는다. 당시 선보였던 작품 상당수가 모여 한 방을 차지하고 있다. 위성 중계 프로젝트를 다룬 방도 있다. 백남준이 협업한 예술가인 샬롯 무어만,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를 다룬 방도 마련됐다.” ―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에서 선보이고 대상을 받은 ‘시스틴 채플’도 26년 만에 처음으로 재현했다. “재현하는 과정에 1년이 걸렸다. 베니스에서 백남준의 작업 보조를 했고, 지금은 백남준의 유작을 관리하는 큐레이터인 존 허프만의 조언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백남준이 당시 작업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아 사진과 증언에 의존해야 했다고 한다.) 시스틴 채플을 전시한 공간에는 빔 프로젝터 36개가 설치됐다. 프로젝터들이 벽면뿐 아니라 천정에도 영상을 투사하기 때문에, 구조물의 설계나 프로젝터의 위치 등 고려할 사항이 많았다. 1993년 당시에는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의 양쪽 날개 건물 중 하나를 완전히 채웠는데, 그곳은 층고가 굉장히 높다. 그래서 프로젝터 40개를 사용했는데, 갤러리 공간은 그보다 층고가 낮아 36개를 사용했다. 프로젝터 기술이 진화를 거듭해, 당시에는 크고 무거운 것을 설치하느라 고생했는데 이번엔 작고 가벼운 프로젝터를 사용했다. 시각적 이미지를 표출하는 데 집중해 현대적 기계를 사용했다.― 프로젝터 얘기가 흥미로운데, 백남준이 늘 기계를 사용했기 때문에 기술적 문제가 항상 발생한다. CRT 모니터를 구하는 데에도 애를 먹진 않았는지? ”작품마다 그에 맞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만약 작품의 외형적인, 조각적인 측면이 중요하다면 화면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그대로 전시했다. 반면 영상의 내용이 중요한 작품이라면, 작가가 남긴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큐레이터의 선택이 필요했다. 다만 백남준도 작업마다 매번 다른 방식으로 기술적 접근을 했기에, 큐레이터로서 기술적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접근하려 했다.“― 눈여겨봐야 할 작품을 꼽는다면?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전시됐던 작품인 ‘몽골텐트’가 정말 보기 힘든 작품이다. 독일 뮌스터뮤지엄에서 대여해 온 작품으로, 몽골과 유라시아, 시베리아에 관심이 많았던 백남준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한민족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접점을 알고 싶어 했다. 작품은 1980년대 말 몽고족이 쓰는 텐트를 직접 구매해 집처럼 꾸민 형태다. 내부에 TV부처와 자신의 얼굴을 브론즈 가면으로 만든 것을 안에 놓았다. 아주 어렵게 빌려온 작품으로는 ‘로봇-K456’(1964)을 꼽을 수 있다. 백남준이 1980년대 로봇 형태의 작품을 자주 제작했는데, 이 작품은 최초의 로봇이다. 후기에는 영상을 보여주는 형태의 로봇이 많았는데, 이 때는 백남준의 ‘대리인’처럼, 그가 조종하면 움직이면서 퍼포먼스를 하는 로봇이었다. 또 하나는 1961년 백남준이 독일 비스바덴에서 했던 퍼포먼스 ‘머리를 위한 명상(Zen for Head)’의 결과물이다. 백남준이 당시 플럭서스 페스티벌에 참가해서 자신의 손과 머리카락에 물감을 묻히고 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 흔적을 그대로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다.“―2010년 테이트리버풀에서도 ‘백남준’ 전시를 연 것으로 알고 있다.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흔적을 훑어보며 백남준에 대해 느낀 바가 있다면? ”수년간 연구를 해왔지만 더욱 절실히 느낀 건 지금 시대에 백남준의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점이다. 디지털환경이 변화해 대중문화도 국가의 경계가 없어지고, 이 문화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국가에서 국가주의적인 경향이 등장하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기술과 통신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본 백남준의 철학을 이 시점에서 다시 돌아보게 됐다. 정말 서로 ‘접속’돼 있는 세계가 도래했다. 백남준은 당시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미래를 당시 미리 봤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협업’을 조명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와의 협력에 상당한 공간을 할애했다. ”백남준은 한국인으로 태어나 일본으로 망명하고, 그 뒤 독일로 유학을 가고 나서 나중엔 미국에서도 활동했다. 그러면서 네 국가들의 미술 커뮤니티와 항상 밀접한 연계를 갖고 활동했다. 예술가로서 아시아와 유럽, 미주의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이는 결국 백남준이 국가간의 경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예술을 통해 보여줬음을 시사한다. 테이트모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미술관이다. 지난해부터는 영국의 모든 장소 중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은 곳이기도 하다. 또 미술관 관객의 절반은 국제적 방문객으로, 이곳은 영국인만의 것이 아닌 세계적인 장소다. 여기서 백남준을 이 시점에 조명하는 이유도 결국은 그가 ‘탈국가’와 ‘연결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세계가 격변하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에 백남준이 중요한 회고의 접점이 되길 바란다.“영국 테이트모던의 ‘백남준’전은 내년 2월 9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이숙경 박사·테이트 시니어 큐레이터와 루돌프 프릴링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SFMOMA) 미디어 큐레이터, 발렌티나 라바글리아(테이트), 안드레아 니체-크루프(SFMOMA)가 큐레이트 했다. 테이트모던과 SFMOMA가 공동 기획해 미국, 네덜란드, 싱가포르에서 순회전이 열릴 예정이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가면을 벗읍시다!” 한국에서 첫 성적소수자 단체로 알려진 ‘초동회’의 소식지 1호에 실린 문구다. 1994년 1월 25일 발간한 이 소식지에서 초동회란 “‘초록은 동색이다’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흩어진 그룹을 연결해 동성애자로서 떳떳하게 살아갈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단체”라고 적혀있다. 원본이 한 장밖에 남지 않은 이 자료의 복사판을 서울 마포구 ‘합정지구’에서 열리는 전시 ‘퀴어락’에서 볼 수 있다. ‘퀴어락’ 전시의 출발점은 2009년 정식으로 문을 연 ‘한국퀴어아카이브(퀴어락)’다. 2002년 설립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 수집한 2000여 편의 국내외 성소수자 관련 도서, 문서, 영상을 열람할 수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강승 작가는 퀴어락에서 우연히 발견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일기장을 보고 전시를 기획했다. 일기장 속 자기혐오와 희망을 보며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젠더 차원이 아닌 역사의 일부로 다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아카이브 자체를 전시 소재로 삼았다. 참여한 작가 최하늘, 이경민, 문상훈&아장맨, 루인, 김세형(AJO)은 수개월 동안 퀴어락의 자료를 조사한 결과물을 작품으로 내놓았다. 퀴어락 자료들을 담는 책장과 선반, ‘선데이서울’에 보도했던 성소수자 이미지를 활용한 패션 디자인 등이 있다. 지하 공간에는 서울 마포구 ‘별관’에서 열렸던 ‘레즈비언’ 전시 영상 기록물도 상영한다. 가장 흥미로운 건 전시장 속 아카이브에서 만나는 개인의 이야기들이다. ‘성소수자’에 관한 추상적 정의가 아닌 구체적 사례가 펼쳐지면서, 그것이 승인·거부의 문제가 아닌 실존하는 사실임을 담백하게 드러낸다. 다음달 2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민족주의와 반일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을 벗어나 역사를 보려는 과감한 시도가 돋보이는 책이다. ‘임진전쟁’이라는 제목이 보여주듯이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서 이 전쟁을 바라본다. 국내 학계가 애국심의 프레임으로 임진왜란을 파고들 때, 그는 개인으로서 조선인들이 겪었을 심리를 파고들며 외세와의 충돌로 인해 민족 개념이 비로소 탄생했다고 분석한다. 눈길을 끄는 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본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문제라는 사실의 발굴이다. 임진왜란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토 기요마사에게 내린 명령 중 ‘서비스 여성’, 혹은 ‘첩’을 의미하는 ‘쓰카이 메’를 요구하는 특이한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전쟁에서 점령지의 여성이 유린당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일본의 경우 여성 동원을 제도화한 것이 최상위 기구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목한다.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를 거쳐 컬럼비아대 한국학 석좌교수를 지낸 저자는 서구학계의 주류에서 활동한 몇 안 되는 한국학자였다. 그는 16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계기로 형성된 조선의 민족담론에 관한 연구를 지속했지만 2011년 69세로 갑작스레 별세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남편인 윌리엄 하부시 교수가 자신의 동료, 제자들과 함께 연구를 보완했고 책은 2016년 컬럼비아대에서 출간됐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57·여)와 오스트리아 소설가 페터 한트케(77)가 2018년과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각각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해 한림원 미투 파문으로 수상자를 내지 않아 10일(현지 시간) 올해 2명을 함께 발표했다. 한림원은 토카르추크에 대해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열정과 서사적 상상력을 갖췄다. 소소한 일상을 파고드는 동시에 멀찍이서 삶을 바라보는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트케에 대해서는 “소설, 에세이, 단편,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했다. 언어학적 독창성을 지닌 작품으로 인간 경험의 특수성과 그 경계를 탐구했다”고 설명했다. 파문을 겪은 한림원의 수상자 선정을 놓고 문학계에서는 “동유럽권의 여성 작가와 소수자성을 지향하는 작가의 조합”이라고 해석했다. 심하은 은행나무 해외문학팀 편집장은 “폴란드 수상자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96년) 이후 20여 년 만이다. 지역 안배 기준에는 적합하지만 비교적 젊은 나이라 의외”라고 했다. 안장혁 동의대 문학인문학부 교수는 “한트케의 정체성은 ‘시대의 비주류’다. 전위적 문학을 추구하는 논쟁적 작가지만 한림원이 저항 정신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여성 작가로는 15번째 수상자인 토카르추크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인정받고 있다. 바르샤바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1993년 장편소설 ‘책의 인물들의 여정’을 출간했다. 심리치료사로도 활동하다 시로 데뷔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주의에 신화와 전설, 비망록 등 다양한 장르를 덧입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평을 받는다. 대표작으로는 장편 ‘E.E’ ‘태고의 시간들’ ‘낮의 집, 밤의 집’ ‘방랑자들’과 단편집 ‘옷장’ ‘여러 개의 작은 북 연주’가 있다. ‘방랑자들’로 2018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국내에는 여성의 삶을 충실히 복원해낸 장편 ‘태고의 시간들’이 올해 처음 출간됐다. 단편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가 수록된 동명의 단편집도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한트케는 소설, 희곡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논란을 일으켰다. 오스트리아 그라츠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한트케는 첫 소설 ‘말벌들’(1965년)이 출간되자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트케는 기존의 문학적 가치와 방법을 거부하며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쓴다. 시에 미학적인 문구를 넣는 것은 구역질이 난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읽힌 책은 1972년 발표한 ‘소망 없는 불행’으로 어머니가 자살한 후 쓴 작품이다. 전쟁과 가난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자 목숨을 끊은 어머니를 보며 한 인간이 자아에 눈뜨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감독 빔 벤더스와 함께 ‘베를린 천사의 시’(1987년) 각본을 썼다. 줄거리 없이 배우들이 관객에게 욕설을 퍼붓는 희곡 ‘관객모독’(1966년)은 국내에서도 자주 공연된다. 소설 ‘페널티 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반복’ 등이 국내에 출간됐다. 한편 한트케는 2006년 세르비아의 독재자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서 그를 옹호하는 연설을 발표해 비판을 받았다. 한트케는 “밀로셰비치는 영웅이 아닌 비극적인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14년에는 오스트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벨상은 문학의 잘못된 성역화”라며 “폐지돼야 한다”고 했다. 한림원은 그가 “훌륭한 예술성으로 숨겨진 영역과 경계를 탐험했다”고 평가했다.이설 snow@donga.com·김민·김기윤 기자}

“‘젠탱글’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명상에 빠져드는 손쉬운 방법입니다.”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10일 만난 릭 로버츠와 마리아 토머스 부부는 ‘젠탱글’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두 사람은 단순한 패턴을 그리며 명상하는 젠탱글을 미국에서 처음 창립했다. 국내에서도 젠탱글은 소규모 클래스로 전파되고 있다. 이에 로버츠와 토머스가 9, 10일 서울을 찾아 직접 워크숍을 열었다. 두 사람이 젠탱글을 시작한 것은 16년 전. 캘리그래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토머스가 대형 작품 속 작은 패턴을 그리다 4시간 동안 집중한 경험에서 출발했다. 토머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한 느낌이 좋아 설명하자, 릭이 ‘그게 바로 명상의 상태’라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단순한 패턴 그리기를 통해 집중에 도움을 주는 수업을 열게 됐다. 토머스는 과거 캘리그래퍼로 저명인사들의 초청장에 손글씨를 썼다. 배우 캐서린 제타존스와 마이클 더글러스의 ‘세기의 결혼’ 때 청첩장, CNN 설립자 테드 터너의 70세 생일 파티 초청장도 그녀가 디자인했다. “캘리그래퍼 때는 정해진 도안을 따라가는 데 정신없었어요. 그런데 젠탱글에서는 손이 가는 대로 패턴을 완성하며 자유로움을 느낀답니다.” 남편인 로버츠는 17세 때 삶의 이유를 찾고 싶어 대학을 떠나 힌두교도들이 수행하는 곳인 아슈람과 인도를 오가며 명상을 배웠다. 두 사람은 “한 명은 예술을 알고, 다른 한 명은 명상을 알기 때문에 젠탱글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어느 정도 미쳐 있기에 가능했다”며 웃었다. 일상의 고민을 던지고 손가락에만 집중하는 젠탱글로 심신의 안정을 얻는 사람들이 많다고 부부는 말했다. 최근에는 미 공군 대령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에 젠탱글을 활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향후 계획을 묻자 순간에 충실하는 젠탱글의 미학처럼, 이들은 한국 방문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창덕궁 후원에서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고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당분간은 이것을 소화하는 데 시간을 보내겠죠. 확실한 건 언제가 한국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겁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젠 탱글’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명상에 빠져드는 손쉬운 방법입니다.”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10일 만난 릭 로버츠와 마리아 토마스 부부는 ‘젠 탱글’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두 사람은 단순한 패턴을 그리며 명상하는 ‘젠 탱글’을 미국에서 처음 창립했다. 국내에서도 ‘젠 탱글’은 소규모 클래스로 전파되고 있다. 이에 로버츠와 토마스가 9, 10일 서울을 찾아 직접 워크숍을 열었다. 두 사람이 ‘젠 탱글’을 시작한 것은 16년 전. 캘리그래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토마스가 대형 작품 속 작은 패턴을 그리다 4시간 동안 집중한 경험에서 출발했다. 토마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한 느낌이 좋아 설명하자, 릭이 ‘그게 바로 명상의 상태’라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단순한 패턴 그리기를 통해 집중에 도움을 주는 수업을 열게 됐다. 토마스는 과거 캘리그래퍼로 저명 인사들의 초청장에 손글씨를 썼다. 배우 캐서린 제타 존스와 마이클 더글라스의 ‘세기의 결혼’ 때 청첩장, CNN 설립자 테드 터너의 70살 생일 파티 초청장도 그녀가 디자인했다. “캘리그라퍼 때는 정해진 도안을 따라가는 데 정신없었어요. 그런데 ‘젠 탱글’에서는 손이 가는 대로 패턴을 완성하며 자유로움을 느낀답니다.” 남편인 로버츠는 17살 때 삶의 이유를 찾고 싶어 대학을 떠나 힌두교도들이 수행하는 곳인 아슈람과 인도를 오가며 명상을 배웠다. 두 사람은 “한 명은 예술을 알고, 다른 한 명은 명상을 알기 때문에 젠 탱글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어느 정도 미쳐있기에 가능했다”며 웃었다. 일상의 고민을 던지고 손가락에만 집중하는 ‘젠 탱글’로 심신의 안정을 얻는 사람들이 많다고 부부는 말했다. 최근에는 미 공군 대령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에 젠 탱글을 활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향후 계획을 묻자 순간에 충실하는 ‘젠 탱글’의 미학처럼, 이들은 한국 방문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창덕궁 후원에서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고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당분간은 이것을 소화하는 데 시간을 보내겠죠. 확실한 건 언제가 한국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겁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파시즘의 광풍이 낳은 비극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예술가들은 모든 것을 원점에서 생각했다.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1928∼1962)은 1958년 텅 빈 전시장을 ‘허공’이라 이름 붙여 전시했고, 이탈리아 화가인 피에로 만초니(1933∼1963)는 자신의 배설물을 통조림에 담아 만든 작품 ‘예술가의 똥’을 1961년 발표했다. 이들처럼 과거와 결별하고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자는 염원을 담은 독일 미술운동 ‘제로’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포항시립미술관과 제로파운데이션이 공동 기획한 전시 ‘제로 ZERO’는 주요 참여 작가의 대표작 48점을 소개한다. ‘제로’는 1950년대 후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동한 ‘국제미술운동’으로 독일 출신 미술가 하인츠 마크, 오토 피네, 귄터 위커가 주축이었다.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미술 잡지 ‘제로’를 발간하고, 국제적 미술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전시를 열었다. 제로는 전통 회화나 상업 예술과 거리를 둔 것이 특징이다. 빛이나 움직임 등의 비물질적인 재료나 기술을 활용했다. 마크는 알루미늄을 이용해 빛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위커는 무한하게 반복되는 기계의 움직임 자체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조명장치를 활용해 우주적 공간을 연출한 피네는 제로 운동이 중단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로 재직하며 환경 미술, 키네틱 예술 등의 전개에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활동은 최근 영미권 중심의 미술사를 다시 돌아보는 흐름과 맞물려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014년에는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새로운 출발을 모색했던 예술가들의 흔적을 포항에서 소개하는 이유도 곱씹을 만하다. 김석모 학예실장은 “한국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포항도 벌써 시 승격 70주년을 맞는다. 철강산업이 포항을 이끌어왔지만 산업 전환으로 도시가 혼란기를 겪는 상황이다. 예술가들처럼 미래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 기획 의도”라고 설명했다. 추석 연휴 4일간 예년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3000여 명의 관객이 미술관을 찾았다고 한다. 내년 1월 2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소설가 황석영, 시인 안도현 등 문학인 1276명이 7일 조국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고 검찰 개혁 완수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조국 지지 검찰 개혁을 위해 모인 문학인’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조국을 지지한다. 검찰 개혁 완수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블랙리스트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데 다시 자의적인 공권력의 폭주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 불안과 분노를 느낀다”며 “검찰 개혁은 시대적 과제이자 촛불 민심의 명령임을 확인하기 위해 서명에 나섰다”고 밝혔다. 또 “‘조국 사태’는 그야말로 국민 관심 돌리기의 일환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판단”이라며 “우리 문학인들은 검찰 개혁의 기수로 나서 수모를 당하는 조국 장관의 곁에서 그를 응원하고 검찰 개혁을 지지함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소설가 황석영 정도상 공지영과 시인 안도현 이시영 장석남이 대표 발의한 서명은 지난달 25일부터 온라인으로 추진됐다. 서명에는 시인 정양 이상국 이동순 함민복 이윤학 이정록 나희덕 박성우 문신 김성규 박준, 소설가 이경자 양귀자 최인석 이병천 김연수 김현경 박문구 이기호 이만교 정찬 권여선 오수연, 평론가 신형철 하응백, 방송작가 송지나 등이 참여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내 최대 미술장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의 관객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화랑협회에 따르면 올해 관객은 8만2000명으로 지난해보다 30% 늘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VIP 프리뷰로 지난달 25일 문을 연 키아프는 닷새 동안 17개국 갤러리 157곳에서 미술품 1만여 점을 선보인 후 29일 막을 내렸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은 미국 작가 제임스 터렐의 ‘아틀란티스’(70만 달러·약 8억 원)와 ‘최고가 작품’인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프린세스 X’(739만 달러·약 87억5000만 원)였다. 페이스갤러리에서 선보인 ‘아틀란티스’는 발광다이오드(LED) 패널 12장을 겹쳐서 만든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에서도 볼 수 있는 터렐의 작품은 대규모 설치로 유명하지만 키아프에서는 장소 특성상 작은 규모로 설치됐다. 브랑쿠시의 작품은 독일계 디갤러리가 선보였다. 군더더기 없이 감각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브랑쿠시는 현대 조각의 아버지로 불린다. 프랑스 보나파르트 가문의 공주가 고개를 돌린 옆모습을 표현한 조각은 8개 에디션 중 하나다. 역사적 가치를 지닌 만큼 해당 조각 대부분은 파리 퐁피두센터 등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가 처음 참여해 제프 쿤스, 도널드 저드, 앨리스 닐 등 동시대 ‘핫한’ 작가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던 것에 비하면 올해는 한결 차분한 분위기였다. 미술 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화려한 작품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주최 측도 관객 친화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이었다. B홀 내부에 새롭게 토크 라운지를 조성해 11개 강연을 했다. 전문가 강연은 물론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김찬용 도슨트와 ‘방구석 미술관’의 저자 조원재의 토크가 인기였다. 일부 강연에서는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관객이 서서 듣기도 했다. 1950년대부터 1979년 사이 국내 구상 작품을 선보인 ‘한국근대회화, 역사가 된 낭만’ 특별전도 미술 초심자에게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권옥연 김환기 박생광 박수근 변관식 이중섭 임직순 황용엽 등 작가 26명의 작품 38점이 판매와 상관없이 전시됐다. 전시 기간에 방탄소년단의 RM과 뷔, 배우 전지현 소지섭, 가수 나얼이 찾은 것도 화제가 됐다. 판매액도 310억 원으로 지난해(280억 원)보다 10.7% 증가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놀지 않고 일만 하면 바보가 된다(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책장을 넘기다 보면 스탠리 큐브릭의 공포 영화 ‘샤이닝’ 속 섬뜩한 장면이 떠오른다. 국내에서 많이 읽히는 ‘90년생이 온다’가 조금은 부드럽게 젊은 세대를 분석했다면, 이 책은 같은 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그 뿌리부터 짚어가며 암울한 전망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1988년생인 저자는 언론이나 기존 저술이 밀레니얼 세대를 다루는 방식이 지극히 단편적이라고 지적한다. 밀레니얼 세대에 관한 기존 서술은 두 가지 측면을 주요 관심사로 삼는다고 분석한다. 첫 번째는 “지적 수준이 하락한 젊은이들을 직장에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이며 두 번째는 “젊은이들이 새로운 기술(유튜브 등)을 사용해 발생시킨 문화에 대한 서술”이다. 이런 지적은 흥미롭다. ‘90년생이 온다’ 역시 기업에서 젊은 세대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또 그들이 소비자로서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인 저자는 자신의 세대를 관리 대상이나 소비자로 한정하길 거부한다. 밀레니얼이 ‘불안정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게으르다’는 베이비붐 세대의 시각에도 반박한다. 그러면서 출생부터 교육, 대학 입학, 직장 생활까지의 과정을 추적하고 이들 세대가 출발부터 ‘인적 자본’으로 관리되어 왔음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그의 말처럼 지금도 어린이의 능력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된다. 영어유치원이든, 영재학원이든 아이의 적성을 빠른 시간에 찾아 그것을 돈으로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이렇게 자란 밀레니얼 세대를 저자는 “자기의 시간을 누려본 경험이 전에 없이 부족하고 스스로 자아를 쌓아나갈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당해온 아이들”이라고 설명한다. 놀지 않고 일만 해서 바보가 된다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비극은 계속된다. 좋은 일자리를 갖기 위해 대학을 갔지만 눈앞에 놓인 것은 무급 인턴, 학자금대출, 그리고 과거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만 제자리인 임금이다. 이쯤 되면 밀레니얼은 ‘줄임말을 즐겨 쓰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며, 솔직한’이라는 한가한 말로만 정의되기에는 너무나 불안하고 분노하는 세대인 것만 같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 시스템을 무턱대고 비판하는 데 그치지는 않는다. 냉정한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이 겪는 불안과 격차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흐름을 그저 따라가기보다는 더 늦기 전에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당부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