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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사진)가 미국 현지에서 드라마로 제작된다. 미 엔터테인먼트 에이전시 WME의 에이전트인 테리사 강은 18일 “최근 드라마 등 콘텐츠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미 애플은 최근 시리즈 제작을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애플은 이 같은 내용을 25일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서 열리는 키노트 스피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소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한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으로 간 이민자의 처절한 삶을 다룬다. 2017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 등으로 선정됐다. 8부작으로 제작되는 드라마 역시 아시아계 배우가 대부분 캐스팅될 예정이며 대사도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로 구성한다. 애플이 제작을 결정한 오리지널 콘텐츠 중 예산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계 작가인 수 휴가 시나리오를 맡아 지난해 8월부터 집필에 들어갔으며 저자인 이민진 역시 드라마의 총괄 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한다. 에이전트 테리사 강은 “애플이 첫 시즌을 제작하기로 결정한 것은 제작진뿐 아니라 전 세계의 한국인, 한국인을 가족으로 둔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라고 전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과 브라질의 수교 60주년을 맞아 올해 브라질의 예술인들이 잇달아 한국을 찾는다. 브라질 교민화가 전옥희 씨(61)의 개인전을 출발로 5월에는 브라질 현대 미술가 10여 명이 참여하는 그룹전이, 9월에는 브라질 구성주의 예술가 잭 라이너의 개인전이 열린다. 10여 년 만에 한국을 찾는 세계적 기타리스트 아사드 듀오의 공연도 7월 예정되어 있다. 전 씨의 개인전 ‘우리는 하나’는 서울 종로구 주한 브라질대사관 내 브라질홀에서 20일부터 열린다. 전 씨는 1994년 브라질 주재원으로 근무하게 된 남편을 따라 이주했다 2009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사우바도르 여행을 하던 중 전통 의상을 입은 바이아주 여인들의 모습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열정적이고 화려한 색감이 고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그림에도 화려한 색상의 옷과 두툼한 입술이 강조된 바이아 여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작품 35점이 공개되며 전시는 5월 19일까지 무료로 열린다. 5월에는 한국과 브라질의 현대 미술가 17개 팀의 그룹전 ‘인류세 프로젝트: 디어 아마존’이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미술관 비데오브라질과 협업하는 전시는 인류가 자연환경에 일으킨 변화를 주제로 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지구의 역사 중 인간이 지배하는 시대를 ‘인류세’라고 본 것이다. 환경 문제가 중대한 이슈로 떠오르는 가운데 여러 주제를 통해 서구 세계의 관점과 구분되는 남미와 아시아 문화만의 독자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브라질에서는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브라질관 대표 작가였던 신시아 마르셀을 비롯해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작가 11명이 참가한다. 또 2020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개최에 맞춰 한국 작가 10여 명이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에서 순회 교류전도 선보일 예정이다. ‘디어 아마존’은 5월 31일부터 8월 11일까지 열린다. 9월에는 브라질 구성주의 작가 잭 라이너(58)의 개인전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라이너는 가치가 떨어진 지폐, 빈 담뱃갑 등 일상의 물건을 활용한 설치 미술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다. 브라질 구성주의는 유럽의 아르테 포베라(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전위적 예술운동)와 미국의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은 사조를 가리킨다. 7월에는 피아졸라가 ‘현존하는 최고 기타리스트’라고 격찬한 ‘아사드 듀오’가 콘서트를 연다. 브라질 출신 기타리스트인 세르지우와 오다이르 아사드 형제로 구성된 듀오는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첼리스트 요요마 등 세계적인 연주가와도 자주 협업했다. 피아졸라의 탱고 연주 앨범 등으로 라틴 그래미상도 여러 차례 수상했다. 아사드 듀오가 한국을 찾는 것은 10여 년 만이다. 루이스 엔히키 소브레이라 로페스 주한 브라질대사는 “축구와 삼바 외에도 브라질에는 파울루 코엘류 작가, 영화 ‘시티 오브 갓’ 등 한국과 친숙한 문화자산이 적지 않다”며 “다채로운 문화 행사를 통해 양국이 더욱 가까워지길 바란다”고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영국의 컴퓨터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대기업 ICL의 1970년 8월 사보. 사내 각종 소식을 전하는 지면 한편에 ‘여성’란이 있다. 그 코너 속에는 천공 테이프를 두른 여성이 활짝 웃는 사진이 보인다. 앤 데이비스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결혼을 앞두고 동료들이 열어 준 ‘퇴직 파티’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당시 여성 직원들에게 결혼 후 퇴직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성 대부분에게는 발전 가능성이 없는 하급 일자리만 주어지는 상황에서, 결혼은 경제적으로도 여성에게 나은 선택이었다. 결국 결혼한 앤 데이비스는 활짝 웃는 사진만을 남긴 채 영국 정보기술(IT) 업계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저자는 이처럼 여성 인력을 배제한 영국의 보수적 관행이 20세기 컴퓨터 산업의 몰락 원인이라 지적한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무렵, 미국이 애니악(ANIAC)을 완성하기도 전에 콜로서스 컴퓨터를 만들어 작전에 활용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도 이 덕분이었다. 그런데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 에이다 바이런 러브레이스를 배출했지만, ‘구글’을 갖지 못한 나라”라는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의 추천사처럼 1974년을 기점으로 영국의 컴퓨터 산업은 멸종의 길을 걸었다. 여성 기술인의 배제가 산업의 멸종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책에 따르면, 사실상 영국 컴퓨터 산업의 발전은 여성 없이는 불가능했다. 2차대전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블레츨리 파크 암호해독 작전에도 여성 프로그래머들이 대거 투입됐다. 남성들이 군인으로 차출돼 부족한 노동력을 영국 정부는 여성을 동원해 해결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이다. 여성들은 남성보다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줬지만 정부는 이들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고자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1950년대 여성공무원노동조합은 동일 임금 청원을 의회에 제출하는 운동을 벌인다. 그러자 재무부는 여성이 대부분인 직군을 남성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억지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성이 하는 일은 단순 노동에 불과하다는 논리였다. 지금도 역사는 남성만을 기억한다. 이를테면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남성 암호해독학자 앨런 튜링을 영웅으로 그리면서, 그와 함께 일했던 수많은 여성의 성과는 서사에서 생략했다. 분명한 건 앤 데이비스를 쫓아낸 ICL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IBM과의 경쟁에 밀려 몰락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뒤늦게 공개된 정부 문서와 인터뷰, 주요 컴퓨터 회사의 아카이브에 남은 기록물을 통해 숨겨진 역사를 꼼꼼히 파헤친다. 그의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건, 성과 인종차별 없이 사람을 대하는 것이 단순한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수자는 약자라서 보호돼야 할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산업과 사회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구성원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세계적인 동화 ‘어린 왕자’를 예술로 재해석한 ‘나의 어린왕자에게’전의 전시 기간이 연장됐다. 서울 강남구 K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현재까지 관객 7만여 명이 찾아 이달 31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전시는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집필할 때 마음에 드는 삽화가를 찾지 못해 직접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에서 출발한다. 국내외 젊은 작가 20여 명이 ‘어린 왕자’에게 받은 감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참여하며 즐길 만한 요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예쁘게 사진 찍기 좋은 전시” “어린 왕자의 구절을 만날 수 있는 전시” “어린 왕자를 테마로 한 포토 스폿이 많은 전시”라는 평가가 나온다. 관람객이 직접 자기만의 양(羊)을 그려 전시 공간에 붙이거나, 조이스틱을 이용해 우주 공간을 탐험하는 체험형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책 속 문구를 네온사인으로 재현한 ‘포토존’도 인기다. 8000∼1만5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그룹 하이라이트의 멤버 용준형(30)이 정준영이 보낸 불법 촬영 성관계 동영상을 봤다고 시인하고 그룹에서 탈퇴했다. 음주운전과 사건 무마 청탁 의혹이 불거진 밴드 FT아일랜드 멤버 최종훈(29)은 연예계 은퇴를 발표했다. 용준형은 14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동영상을 받은 적이 있고 그에 대한 부적절한 대화도 했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몰카를 찍거나 유포하는 범법 행위는 하지 않았다”며 “과분한 사랑에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팀을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용준형은 13일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같은 날 최종훈의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는 입장문을 통해 “본인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불법 행위와 관련돼 추가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어 이번 주 내로 성실하게 경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라며 “최종훈은 팀에서 영원히 탈퇴하고 연예계를 은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소속사는 사건 초기 의혹을 부인하고 법적 대응을 거론하며 거짓 해명을 했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게 됐다. 용준형의 소속사 어라운드어스 엔터테인먼트는 “섣부른 판단으로 혼란을 야기시킨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FNC엔터테인먼트도 “정확하지 않은 입장 발표로 혼란을 일으켜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80년대 격동의 시기를 은유한 ‘바보 예수’로 잘 알려진 화가 김병종(66·사진)이 개인전을 연다. 14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이번 전시 주제는 ‘송화분분(松花粉粉)’. 봄을 맞아 대기에 분분히 날리는 송홧가루를 담아낸 회화 등 신작 30여 점을 공개한다. 12일 전화로 만난 김 작가는 이번 작품이 “유년의 기억을 소환해낸 것”이라고 했다. “요즘 회색 도시의 분위기와 달리 유년 시절은 대기의 청량감이 높았고, 낙락장송도 많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연과 하나가 된 경험을 담고자 했습니다.” 어린 시절 봄날이면 “노란 구름 떼가 일어나는 것처럼 송홧가루가 휘날리는 광경을 바라보곤 했”던 만큼, 이번 작품에서 색채에 신경을 썼다. 특히 노란색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전통 동양화는 먹이 중심이 되고 색은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김 작가는 “이번에 ‘애기똥풀’ 색을 공부하며 탐미적인 부분을 알아가게 된 것이 소득”이라며 “먹과 색을 동등한 위치에 놓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의 이력에 비하면 이번 작품들은 다소 편안하면서도 가벼워 보인다. 과거 그는 1980년대 교정에서 마주친 격렬한 집회 속 최루탄과 화염병을 보고 눈물 흘리는 ‘바보 예수’를 그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생명의 노래’는 연탄가스에 중독돼 생사를 넘나든 경험을 담는 등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이런 의견에 작가는 “30년 세월이 지나니 자연스레 작고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게 된 것 같다”며 “대작이 많고 그 뼈대를 이루는 먹을 중심으로 한 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교수였던 그는 지난해 정년퇴임 후 다시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다. 비교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한국화의 위치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도 과제다. 그는 “작가도 전통의 아름답고 훌륭한 재료를 참신한 방식으로 제시해야 하고, 사회도 한국적 아름다움에 대한 확고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 한국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국학 진흥 차원에서라도 연구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 도쿄예술대의 일본화과는 일본적 미의식의 산실입니다. 중국 명문 미술대의 ‘국화과’도 중국적 미의식의 토대이고요. 우리도 작가와 정책이 양면에서 함께 노력을 해서 토대를 이뤄 가야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문학성을 좀 더 수용하고자 했다는 그는 새 책 ‘도시를 걷다’도 집필하고 있다. 서울과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등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시리즈 원고를 준비 중이다. 미술평론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문인이기도 한 김 작가는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중국회화연구’나 ‘화첩기행’ 등 여러 저서를 집필했다. “준비 중인 책은 단순한 여행 가이드가 아닌 도시에 관한 명상을 담을 겁니다. 그림을 그리다 공허함이 찾아오면 글을 쓰고, 또다시 그림으로 돌아가고 있지요.” 전시는 다음 달 7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야생화 사진작가 고홍곤의 8번째 개인전 ‘그대, 다시 꽃으로 피어나리’가 21∼27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시는 흔들림, 위로, 극복, 희망 등 4개의 테마로 구성된다. 야생화 사진 80점이 글과 함께 포토 에세이 형식으로 전시된다. 작가는 어려운 환경에서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추운 겨울을 견디고 피어나는 꽃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작가는 2003년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졸업했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예술가로서 권리를 따지는 것을 예술가답지 못하다고 여기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 관심이 전혀 나쁜 것이 아니라고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극과 극의 영역으로 오해 받는 법과 미술의 관계를 쉽게 풀어낸 책이 나왔다. 김영철 법무법인 정세 대표변호사(60)의 책 ‘법, 미술을 품다’(뮤진트리·1만8000원·사진). 김 변호사는 22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고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까지 지냈다. 1987년 목포지청 근무를 계기로 미술에 관심을 갖고 서울대 미대 최고경영자(CEO)과정에서 미술을 배우며 법 강의까지 하게 됐다. 책은 김 변호사가 2012년부터 강의한 ‘미술법’을 토대로 한다. 강단에 처음 섰을 때 미대 학생 대부분은 법을 ‘나와 관련 없는 일’로 여겼다. 민사법과 형사법의 개념조차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현대 법은 권리를 스스로 주장해야 하기에 기본은 알아야 최소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책 속에는 19세기 영국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한 작가 휘슬러와 비평가 존 러스킨의 소송사건부터 현대미술 작가 댄 플래빈까지 풍부한 사례를 담았다. 이는 7년 동안 강의를 하며 학생들과 함께 쌓아온 자료라고. 이 덕분에 미술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미술계 주요 사건을 곁들여 법을 이해하는 교양서적으로 읽을 만하다. 미술인을 위한 책인 만큼 기초를 사례와 다룬 것이 특징이다. 김 변호사는 “향후 몇 년간 법적 문제가 될 만한 대부분의 사례가 담겨 있다”며 “미술계에서 실질적으로 많이 부딪칠 만한 문제가 궁금하다면 기본 원칙을 다룬 1장과 2장을 추천한다”고 했다. 책을 쓰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쉽게 쓰느라 진땀을 뺐다는데, 왜 바쁜 변호사가 미술에 관심을 가질까 궁금했다. 그는 “무미건조한 형사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미술 공부를 통해 행복을 얻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성장 가능성이 많은 한국 미술계에 보답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회 수준이 높아질수록 미술에 대한 관심도 많아질 겁니다. 특히 감정의 중요성이 커질 거예요. 제 강의를 듣고 미술법 논문을 쓰거나 감정을 배우러 유학하는 학생이 늘어났어요. 향후 공신력 있는 기관이 감정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신뢰와 투명성을 제고해야 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친 듯이 돈 많은 사람들의 결혼식이니 교회에 정원을 만들어 버렸어요. 그런데 그 장면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4일 반밖에 없었답니다.” 지난해 할리우드를 깜짝 놀라게 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아트 디렉터 넬슨 코츠를 싱가포르에서 7일 만났다. 영화의 모든 세트 디자인을 총괄한 코츠는 1994년 TV 시리즈 ‘더 스탠드’로 에미상을 수상한 베테랑. 이번 영화로도 ‘할리우드 아트 디렉터 조합’의 프로덕션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코츠는 ‘2019 싱가포르 디자인 위크’에서 마련한 ‘브레인스톰 디자인’의 연사로 이날 참석했다. 영화 속 화려함의 극치였던 결혼식 장면의 뒷이야기는 아슬아슬했다. 싱가포르의 유명한 성당인 ‘차임스’에서 촬영한 장면은 세트 설치부터 촬영, 철수까지 정확히 4일 반의 시간이 주어졌다. 압권인 버진 로드에 물이 흐르는 장면은 테스트 없이 진행해야 했다. “결혼식장의 화려한 꽃 속에 물을 뿜는 제트와 댐이 숨어 있었어요. 물이 필요 없는 장면을 촬영한 다음 존 추 감독과 손을 붙잡고 물을 틀었죠. 운 좋게 모든 장치가 잘 돌아갔고, 아름다운 장면이 탄생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충분한 돈과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고 하자 “작은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블랙팬서’ 같은 영화라면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 영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시아인이 주인공이라는 설정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그 자신도 이번 작업으로 다양성의 힘을 믿게 됐다고 했다. 그가 함께 일한 디자인팀만 해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인도, 태국 등 12개국 출신으로 구성됐다. 제작진은 우스갯소리로 자신들을 ‘유엔’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카메라 앞뒤에 다양한 구성원이 있어 더 힘 있는 콘텐츠가 나올 수 있었다고 코츠는 자신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만큼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지 못해 아쉽다는 의견도 많았다. 아카데미 회원인 코츠는 “전통적으로 로맨틱 코미디가 진지한 장르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할리우드에 뜸했던, 키스하고 사랑하는 아시아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영화가 성공했으니 이제 시작이다”라고 했다. 그는 삶의 모든 것이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의 시각을 이해하고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디자인입니다. 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으니 의사나 엔지니어만큼 가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해요.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하길 바랍니다.” 싱가포르=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20년 핀란드에서 무지(무인양품)가 만든 자동주행 셔틀버스 ‘가차’가 운행될 예정입니다.” 더 리츠칼턴 밀레니아 싱가포르 호텔에서 7일 열린 ‘브레인스톰 디자인 2019’. 각국 기업인 40여 명을 초청한 이날 행사에서 일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지가 대중교통 사업에 진출한 계기를 밝혔다. 행사는 싱가포르 디자인청(DSG)이 주관하는 ‘2019 싱가포르 디자인 위크’의 일환으로 열렸다. 4일 개막한 디자인 위크는 세계 디자인 산업을 소개하는 다양한 행사로 구성돼 17일까지 열린다. 2014년부터 매년 개최해 올해로 6회째를 맞는다.○ 젊은 디자이너 밀어주는 ´싱가플루럴´ 국립디자인센터에서는 싱가포르 가구산업협회(SFIC)가 주최하는 디자인 전시 ‘싱가플루럴’이 열렸다. 젊은 디자이너와 기성 업체를 연결시켜서 실험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도록 하는 컬래버레이션 전시다. 젊은 건축가 롄시안유와 인도네시아의 대리석 업체가 협업해 만든 소라 모양의 테이블 ‘그레이스풀 피그’ 등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건축가가 피보나치수열을 이용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작한 것으로 고객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제작이 가능하다. 당장의 실용성이나 판매에 집중하려는 기성 업체와 젊은 디자이너의 연결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 싱가플루럴 전시의 의도다. 마크 융 가구산업협회장은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서 사람들은 점점 늙어가고, 공간은 작아진다”며 “이 밖에 많은 경제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기업도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에 새로운 활로를 찾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창의성의 원천, 디자인이 미래 먹거리 싱가포르 정부는 기존 정보소통예술부(MICA)에 소속됐던 디자인청을 4월 경제개발부(EDB)로 이관한다. 마크 위 디자인청 전무는 “2019년부터 디자인을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먹거리로 보고 경제적인 드라이브를 걸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온라인에 수많은 정보가 공개되는 지금은 단순한 정보 제공보다 매력적 어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2025년까지 디자인을 통해 산업을 변화시키는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 그는 “과거 싱가포르가 투자 주도형 발전을 이룩했다면 이제는 ‘혁신 주도형’ 발전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무지의 ‘노 에이지, 노 젠더’ 전략 앞서 가구나 생필품을 판매해 온 무지가 대중교통 사업에 뛰어든다는 소식은 파격이었다. 지난해 셔틀버스의 프로토타입을 공개했을 때도 화제가 됐다. 그런데 ‘브레인스톰’ 연사로 참석한 마쓰자키 사토루 료힌케이카쿠(무지의 모회사) 대표는 “지금까지 일상의 기본이 되는 제품만을 만들어온 무지 철학의 연장선”이라며 “세계 고령 인구가 많아지고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대중교통과 자동주행이 필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마쓰자키 대표는 그간 무지가 ‘고객의 자유’에 집중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고객의 직업이나 배경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최소한의 필요만을 충족시키는 제품을 제공하고 나머지는 고객의 자유에 맡긴다”고 했다. 또 “우리는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사용 가능한 제품이 목표”라며 “그것이 오히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서 그가 발표한 주제도 ‘단순함을 판매하다’였다.싱가포르=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현대 미술은 매체의 구분이 없다고 하지만, 미술 시장에선 여전히 ‘회화’가 주류로 꼽힌다. 이런 흐름에도 조각을 꾸준히 고수하고 있는 작가들의 그룹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에서 열리는 ‘현대조각의 구상과 추상 사이’는 원로 작가 전뢰진(90)과 유영교(1946∼2006) 등 작가 10여 명의 작품을 소개한다. 서양 조각처럼 해부학에 충실하기보다, 박수근의 회화처럼 네모나게 각진 얼굴들은 푸근함을 자아낸다. 유영교는 푸른색이 나는 대리석인 ‘청석’을 재료로 주로 작업했다. 단단해서 조각이 쉽지 않지만 손가락 표현에서 유영교만의 특색이 드러난다.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는 “유영교의 작품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좋아했다”며 “고인의 유작도 이 회장의 두상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밖에 나무, 흙, 유리, 한지는 물론 동전까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작품도 등장한다. 독특한 재료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려는 작가들의 면면이 보인다. 다만 기술적 측면에만 몰두하다 보니 예술로서의 새로운 가능성보다 장르의 테두리에 갇히는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전시 기회조차 많지 않기에 여러 작품을 한데 모아 보는 의미가 작지 않다. 16일까지. 무료. 서울 용산구 갤러리조은에서는 프랑스 출신 그라피티 작가 탕크(40)의 개인전이 열린다. 탕크는 16세 때부터 스프레이 캔을 들고 파리 거리에서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에서도 그라피티는 불법이기에 그림을 그리다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수차례. 그럼에도 살아있는 거리의 맛을 잊지 못해 작가는 종종 그라피티를 그린다고 한다. 그런 그가 선보이는 작품들은 그라피티 기법을 캔버스로 옮긴 것들이다. 캔버스에서 그라피티를 그리는 것은 뉴욕 출신 유명 작가인 장미셸 바스키아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바스키아 작품만큼 공간 구성이 탁월하거나 이미지가 신선하진 않지만, 탕크의 작품에서는 그라피티의 특성인 즉흥성이 두드러진다. 그의 작품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씨가 새겨진 것이 특징. 이 글씨들은 스프레이 물감을 캔버스에 뿌리며 캔으로 표면을 긁어서 만들었다. 작가 나름대로 즉흥성을 캔버스에 구현하기 위해 고안한 기법으로 보인다. 그 결과 보이는 이미지도 유럽 거리에서 본 그라피티가 떠오른다. 2011년 한국인 사진가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 그는 “한국이 아침의 나라임을 생각하며 일출 장면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22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임명을 받은 입장에서 외부적인 요인을 언급하기 난감하지만 역량이 부족해 생긴 일이라 생각합니다. 훌륭한 미술관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 성과로 답하겠습니다.” 윤범모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68)이 취임 한 달 만에 공모 과정에서 일어난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윤 관장은 5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코드 인사’와 논란에 대한 질문에 이처럼 답했다. 또 “1980년대 초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미술 평단에 나온 이래 30여 년간 미술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언론의 여러 반응에 놀랐지만 격려의 채찍으로 생각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윤 관장은 선임 과정에서 역량 평가를 두 번 치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과거 관장 공모에서 역량 평가 통과자가 없을 경우, 재공모를 실시한 적은 있지만 ‘재시험’은 전례가 없어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규정상으로는 재평가가 가능해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윤 관장은 민중미술 전시를 열 계획에 대해서는 “민중미술의 장점을 비교적 이해하는 입장이지만 그동안 1000편 정도 발표한 글에서 민중미술 관련은 10%도 안 된다”며 “전시 계획은 없지만 필요하면 열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남북미술 교류협력을 기반으로 분절된 한국미술사를 복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윤 관장은 “남북 문제는 정치 환경과 직결돼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전에 필요한 부분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다만 이러한 내용에 관해 “정부로부터 미션을 받은 부분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윤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공동 연구 및 전시를 추진할 계획도 내비쳤다. 그는 “식민지와 분단 상황으로 인해 ‘우리 미술의 골간’을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며 “과거 역사와 현대미술을 연결짓는 공통분모를 찾겠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도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제대로 다룬 책이 없다고 봅니다.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연구를 확대 심화하겠습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움직이는 몸과 소리, 빛의 향연이 매혹적으로 펼쳐질 것입니다.”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5일 열린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김현진 예술감독(44·사진)이 올해 한국관의 전시 계획을 설명했다. 김 감독은 “예술을 통해 한국과 동아시아 근대화의 역사를 다시 상상하는 원동력은 젠더 다양성”이라며 “서구 중심, 남성 중심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서사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 주제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로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을 인용했다. 재일교포를 통해 동아시아 난민과 여성을 역동적으로 묘사한 ‘파친코’는 이번 전시의 맥락과 맞아 떨어졌다. 한국관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도 남화연(40), 정은영(45), 제인 진 카이젠(39) 등 모두 여성. 제인 진 카이젠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한국계 덴마크인이다. 공교롭게도 세 작가의 작품은 모두 영상이다. 각국의 다양한 작품이 쏟아지는 비엔날레 특성상 관람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영상은 돋보이기 어려울 수 있다. 김 감독은 “비디오 장르를 일부러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초대하고 보니 모두 비디오를 매체로 했다”며 “영화적인 서사보다는 시각적 리듬이나 미학적 볼거리를 강조할 예정”이라고 했다. 랄프 루고프 영국 헤이워드갤러리 관장이 총감독을 맡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5월 11일 공식 개막해 11월 24일까지 약 200일간 펼쳐진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의 역사를 보면 시기별로 흐름을 주도한 ‘종주국’이 있다. 19세기는 인상파를 태동시킨 프랑스 파리가 중심지였다면, 20세기 후반은 추상표현주의를 유행시킨 미국 뉴욕이 그 자리를 꿰찼다.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빌럼 더코닝 등 세계 유수 미술관을 장식하는 작가들이 추상표현주의의 주역이다. 백남준이 ‘왜 뉴욕에서 활동하느냐’는 질문에 “뉴욕이 미술사를 쓰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미술사의 중심지는 독일로 이동했고, 뉴욕의 화려한 시절은 역사가 됐다. 로버트 마더웰(1915∼1991)은 이 화려한 시절이 시작할 무렵 뉴욕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작가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명 미술사가에게 그림을 배우며 유럽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를 미국에 연결해 주는 역할도 했다. 그의 ‘스페인 공화국에의 비가’ 연작과 판화 등 작품 23점을 국내에서 만날 수 있다. 마더웰의 개인전 ‘로버트 마더웰―비가(悲歌)’가 서울 종로구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추상표현주의 회화는 특정 형태를 표현하지 않는, 의미가 없는 그림으로 이해되곤 한다. 이는 미국의 유명 미술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미학에서 시작된 오해다.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 진영과 대립하던 냉전 상황에서 추상화를 ‘자유’의 대표 이미지로 내세웠다. 그 가운데 폴록의 다양한 액션 페인팅 작품이 있다. 당시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정치적 선전을 위한 리얼리즘 회화가 유행했다는 점이 대조적이다. 1층 전시장에 걸린 마더웰의 그림들은 그린버그의 지적과 달리 뚜렷한 감정을 표현한다. ‘비가’ 연작은 1948년부터 시작된 마더웰의 대표작으로 이 무렵 마더웰은 첫 번째 부인 마리아와 이별하고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우울증에 시달렸다. 흰 대형 캔버스에 굵직하게 그어 내린 검은 선이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슬픔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림 속 커다란 사각형과 원형이 반복되는 것은 그가 읽은 시에서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영감을 얻었다. 제목에 ‘스페인’을 언급한 것은 피카소의 영향으로 보인다. 당시 피카소는 세계적 거장이었고, 스페인 내전을 비판한 ‘게르니카’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게르니카’는 독재로 박해받는 시민들을 돕기 위해 미국에서 순회 전시된 적도 있다. 정작 ‘비가’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스페인에 가본 적이 없던 마더웰은 그림을 그린 후 “나의 멕시코인 아내, 멕시코로의 여행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언급했다. 스페인과 멕시코를 동일선상에 두고 이야기할 정도로 마더웰에게 스페인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간 뜸했던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의 전시를 통해 작품을 보고 당시 뉴욕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어 흥미롭다. 마더웰의 개인전이 국내에서 열리는 것도 처음이다. 5월 12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영화 속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의 발전이 눈부시다. 이제는 실사인지 그래픽인지 헷갈릴 정도로 현란한 그래픽이 스크린을 장식한다. 그런데 잊고 지냈던 따스한 손맛이 듬뿍 느껴지는 애니메이션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고사카 기타로 감독이 연출한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 영화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12세 초등학생 ‘옷코’의 이야기를 그린다. 혼자가 된 옷코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여관인 ‘봄의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도시에 살다 시골에 간 옷코는 애벌레와 도마뱀을 보고 기겁한다. 어릴 적 왠지 유령이 나올 것 같았던 할머니 집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다. 옷코는 할머니 집에서 여러 유령을 마주하게 된다. 옷코는 학교생활과 여관 일을 돕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다. ‘신이 내려준 온천물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옷코가 할머니 집에서 만나는 유령들은 그의 조력자가 된다. 영화는 어린 관객들에게 전통에 대한 사랑을 일깨운다. 영화를 연출한 고사카 감독은 ‘귀를 기울이면’, ‘원령 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지브리스튜디오 대표 애니메이션의 작화를 탄생시켰다. 감독의 첫 연출작인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은 제56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도 그림이다. 옷코가 슬플 때 굵은 눈물을 펑펑 떨구는 모습이나 뜨끈한 온천물에서 김이 나오는 모습 등 생생한 표현이 CG 부럽지 않다. 지난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부문 우수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으로부터 “훌륭하다. 몇 번을 울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고사카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배려’를 통한 ‘성장’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는 “온천은 전통이 사라지는 지금 선조의 지혜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라며 “옷코는 이곳에서 혼자 상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치유받는다”고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화려한 비주얼의 ‘인스타그램’용 카페와 식당이 가득한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 이 길 끝 가파른 언덕 위 윈도 갤러리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음산하게 퍼져 나온다. 이병찬 작가(32)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P21이다. 갤러리에는 괴물 ‘키메라’ 같은 모양을 한 형형색색의 물체가 숨을 쉬듯 부풀었다 꺼지고 있다. 동네 아이들에게 최고 화제가 되고 있다는 이 기괴한 물체는 이 작가의 작품 ‘크리처(Creature·생명체)’다. 무당의 알록달록한 옷을 연상케도 하는 ‘크리처’는 비닐이 주재료다. 작가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온갖 정크 푸드를 담는 비닐을 가깝게 느꼈다. 비닐을 모아 라이터로 지져 연결시키고 형태를 만들며 작업을 시작했다. 서낭당의 분위기를 내려고 싸구려 구슬 조각이나 발광다이오드(LED) 호스도 늘어뜨렸다. 전시 제목 ‘흰 코끼리’는 경제 용어로 ‘유지를 위해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지만 실상은 무용한 존재’를 뜻한다. 인천 출신인 작가는 송도국제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며 겉만 번지르르한 도시의 모습에 박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모습을 품은 작품은 겉은 화려하지만 손으로 쥐면 푹 꺼져버려 허무하다. 3월 31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해군 항공기지였던 태평양 미드웨이섬. 지금은 폐허가 된 군사시설만 남았지만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과거의 전쟁이 인간들 간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아름다운 새 앨버트로스가 플라스틱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국 사진가 겸 영화감독 크리스 조던(56·사진)은 2009년 이 섬을 처음 찾았다. 섬에서 그는 배 속이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앨버트로스의 사체를 발견한다. 새들은 바다로 떠내려 온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해 삼키고 있었다. 조던은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진에 담았고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의 참혹한 결말을 강렬한 이미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조던은 이후 8년에 걸쳐 미드웨이섬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사진 작품과 영화를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아름다움 너머’에서 만날 수 있다. 20일 한국을 찾은 조던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의 거대한 힘에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며 “인류가 이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어떻게 일으키느냐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 아래 조던의 작품은 우리가 잊고 사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5월 5일까지. 6000∼1만 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4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4개 부문을 휩쓸었다.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배우 라미 말렉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편집상, 음향효과상, 음향편집상 트로피까지 가져갔다. 말렉은 수상 소감에서 “동성애자, 난민인 스스로를 긍정하며 살았던 남자의 이야기가 상을 받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원한다는 증거”라고 했다. 추락하는 시청률 걱정에 ‘오스카’는 모험 없이 안정적인 길을 택했다. 1989년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사회자 없이 진행된 시상식은 다양한 작품에 골고루 상을 나눠 줬다. ‘미투’ 운동 지지 소감이 쏟아졌던 지난해에 비해서도 차분한 분위기였다. 넷플릭스가 제작해 관심을 모은 ‘로마’는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촬영상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작품상 트로피는 영화 ‘그린북’에 돌아가 넷플릭스의 독주를 견제했다. ‘그린북’은 1960년대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와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의 우정을 그렸다. ‘그린북’ 역시 각본상과 남우조연상(마허샬라 알리) 등 3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그린북’은 개봉 후 여러 논란에 시달렸다. 주연 비고 모텐슨이 홍보 중 흑인 차별적 단어를 사용해 비판을 받는가 하면, 돈 셜리의 실제 삶을 왜곡했다는 유족의 항의도 받았다. 피터 패럴리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사랑하라는 것,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았다”고 했다. 그러나 작품상이 발표되는 순간 ‘블랙클랜스맨’의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가 항의하듯 시상식장을 떠나려다 스태프의 설득으로 돌아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보헤미안…’ 제작 도중 성추문으로 하차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이름도 시상식에서 들리지 않았다. 여우주연상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올리비아 콜먼이 받았다. 콜먼은 욕망에 휩싸여 때로는 아이처럼, 때로는 폭군처럼 행동하는 여왕 앤을 연기해 찬사를 받았다. 콜먼의 수상으로 ‘더 와이프’의 글렌 클로스는 일곱 번째 도전한 오스카에서 또다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콜먼이 이를 인식한 듯 웃으며 “이렇게 되길 바라지 않았다”고 하자 객석에서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 짓는 클로스의 얼굴이 포착됐다. 동성애 비하 발언으로 하차한 사회자 케빈 하트의 빈자리는 여러 분야의 인물들로 채워졌다.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는 영화 ‘스타 이즈 본’을 소개했다. 존 루이스 하원의원은 ‘그린북’을 소개하며 “당시 흑인은 2등 시민으로 대우받고 생계에도 위협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계 배우 아콰피나도 단편 애니메이션 시상을 맡아 무대에 올랐다. 올해 시상식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발언은 빠지지 않았다. 각색상을 받은 스파이크 리 감독은 “2020년 대선에서 힘을 모아 역사의 바른 편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그라피티처럼 화려하고 복잡하게 얽힌 그림 가운데 한 여인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의 옷엔 수인번호와 이름이 한자로 적혀 있다. 서대문감옥에 수감되기 직전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다. 그녀의 주변엔 조선인들이 총칼을 든 일제 순사와 엉겨 붙어 이들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이 그림은 프랑스 작가 파비앵 베르셰르의 작품, ‘독립기념일’이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의 ‘불멸사랑’전은 책 속의 역사가 아닌 예술가들이 몸으로 겪은 역사를 보여줘 눈길을 끈다. 국내외 작가 6명이 참가해 일민미술관 1∼3층은 물론이고 신문박물관 5층에도 작품이 전시된다. 글이 곧 권력이었던 과거, 역사는 승자의 기록과 마찬가지였다. 한편 이번 전시는 외국인이 체화한 한국의 이미지, 기록에 남지 않은 역사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과거 역사의 의미에 의문을 던진다. 일상의 수많은 기록이 온라인에 남겨지는 지금, 역사의 주인공은 곧 개인이라는 의미다. 1층 전시관을 장식한 베르셰르는 서울, 부산, 제주도에 머물며 신화, 전통문화, 역사를 조사한 뒤 이를 이미지로 풀어냈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빨간 십자가가 인상 깊었다”는 그는 한국인에겐 익숙하지만 자신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끄집어낸다. 번화가에서 자주 보이는 풍선 기둥이 현대적 장승으로 느껴졌다는 베르셰르는 흰 풍선 기둥에 그림을 그려 전시장 한가운데에 놓았다. ‘독립기념일’을 그릴 때 기분은 어땠을까. 베르셰르는 한국과 프랑스의 신화, 역사의 유사성이 흥미로웠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역사에서 일제는 프랑스가 생각하는 나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속 ‘비행기’는 일제를 암시한다고도 하는데, 나는 나쁜 의미를 좋게 포장하거나 정치적 의미를 담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단종애사’ 등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표현한 작가 서용선은 신문박물관에 작품을 설치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딱딱한 활자로 적힌 신문지 위에 강렬한 색채로 그려진 이미지가 놓여 마치 ‘승자의 역사’에 저항하는 듯하다. 박물관에 놓인 커다란 윤전기 뒤에도 대형 회화 작품이 놓였고 ‘호외’ 신문들 앞에는 조각 작품 ‘감시 08’이 있다. 전시장 곳곳에 숨겨진 드로잉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권하윤 작가는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다. 비무장지대(DMZ)에서 근무했던 병사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489년’은 가상현실(VR)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또 작가의 스승인 다니엘의 기억을 3차원(3D)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한 작품 ‘새 여인’의 스크리닝 버전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 밖에도 휴대전화 속 그림을 만화나 웹툰의 형식으로 다시 그려 일상을 기록한 이우성 작가의 작품, 조은지 작가의 퍼포먼스 설치와 영상, 강이연 작가의 영상 설치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4월 13일에는 이인범 상명대 조형예술학과 교수, 서용선 작가, 조주현 일민미술관 학예실장 등이 참가하는 ‘동시대미술과 미디어, 진실과 탈―진실’ 학술세미나도 열린다. 전시는 5월 12일까지. 5000∼7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구 중심의 패러다임은 조만간 전 세계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인 미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 브렉시트를 앞둔 유럽도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런 급격한 변화를 예측하는 데 지정학의 이해가 필수라고 말한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쓰인 책은 지정학의 이해를 돕는 학술적 가이드북에 가깝다. 서두에서는 지정학의 다양한 정의를 시간순으로 소개한다. 이어 현 시점의 지정학적 주요 문제와 지정학적 도발, 주요 분쟁과 위기, 또 구조적 경향과 지정학적 문제 제기를 소개한다. 다양한 이슈를 간략한 글로 소개해 세계 정치의 흐름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도 추천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