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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이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씨름’의 가치를 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열린다. 한국문화재재단은 12일 강남구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 ‘민족의 공동유산, 씨름’을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한다. 박상미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문화유산 공유성과 유네스코 공동등재’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심승구 한국체대 교수가 ‘한국 씨름의 정체성’, 곽낙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이 ‘남북한 씨름의 지역적 분포’를 발표한다.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전통 레슬링의 등재를 추진 중인 조지아와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한 터키, 키르기스스탄 등 3개국의 전통 레슬링 사례도 소개한다. 특별 세션으로 이태현 용인대 교수가 손기술, 다리기술, 허리기술, 혼합기술 등 4가지로 구분되는 씨름 기술을 직접 선보인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32회 인촌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 크리스털볼룸에서 열렸다. 이 상은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 인촌 선생의 뜻을 잇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이사장 이용훈)와 동아일보사는 매년 인촌 선생의 탄생일(10월 11일)에 맞춰 시상식을 열고 있다. 이날 수상자인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설립자(교육) △한태숙 연극연출가·극단 ‘물리’ 대표(언론·문화) △이정식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인문·사회) △황철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는 각각 상장과 기념메달, 상금 1억 원을 받았다. 이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올해도 인촌 선생이 사업을 벌인 각 분야에서 누구보다도 업적을 많이 낸 분들을 찾아냈다”며 “남다른 열정과 신념으로 업적을 쌓으며 사회에 보탬이 된 수상자들이 더 큰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백완기 고려대 명예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는 축사에서 “인촌 선생은 전 생애를 통해 국권회복과 자주독립을 위한 국력 배양을 추구했다. 선생의 정신이 빛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승주 인촌상운영위원회 위원장이 수상자 선정 경위를 보고했다. 앞서 인촌상운영위는 외부 심사위원 16명을 위촉하고, 7월부터 회의를 열어 최종 후보를 선정한 뒤 수상자를 확정했다. 23년 동안 학교폭력 예방과 피해자 치유에 헌신한 교육 부문 수상자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청소년폭력예방재단) 명예이사장(71)은 “이번 수상은 존경하는 청예단 임직원과 후원자, 자원봉사자의 덕”이라면서 “사람의 가슴과 가슴을 따듯하게 이으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비정부기구(NGO)의 소임과 본질을 명심하겠다”고 말했다. 연극인으로서는 처음 인촌상을 수상(언론·문화 부문)한 한태숙 극단 ‘물리’ 대표(68)는 “삶의 본질을 묻는, 성가신 질문을 계속하는 게 연극이라고 생각한다”며 “내 질문을 계속하도록 격려해 주셔서 감사하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민하며 진실을 향해 나아갔던 소중한 시간들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인문·사회 부문 수상자인 이정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87)는 “우리 겨레가 외세의 속박에 놓여 있던 시절, 민족이 가야 할 길을 가리키고 이끈 인촌 선생의 공로는 길이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좌표라고 생각해 왔다”며 “인촌 선생을 기념하는 상을 받게 돼 무척 감사하다”고 말했다. 과학·기술 부문 수상자인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54)는 “반도체 과학과 기술에 대한 내 연구가 후손의 삶에 긍정적 기여를 해달라는 격려라고 생각한다”며 “더욱 정진하고 노력해 인류의 미래에 작은 기여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각계 인사 약 300명이 참석했으며, 바리톤 서정학 씨가 축하 공연을 펼쳤다.조종엽 jjj@donga.com·유원모 기자 주요 참석자 명단▽정·관·법조계=고건 이홍구 전 국무총리(이하 가나다순) 김경근 전 주요르단대사,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 양성철 전 주미대사,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 이세중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정성진 대법원 양형위원장,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최광식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학계·교육계=공정식 고려대 관리처장, 국양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 권기붕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원장, 권순달 수원대 교수,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 김경성 서울교대 총장, 김동기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김동환 고려대 그린스쿨 대학원장, 김병수 전 연세대 총장, 김병준 강남대 교수, 김성훈 동국대 교수, 김승환 포스텍 교수, 김용덕 서울대 명예교수, 김용학 연세대 총장, 김용호 인하대 교수, 김원희 고려사이버대 총무처장, 김재욱 고려대 기획예산처장, 김재호 고려중앙학원 감사,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 김종필 중앙고 교장, 김주선 중앙교우회 사무총장, 김준영 전 성균관대 총장, 김진성 고려사이버대 총장, 김흔 전 중앙고 행정실장, 명순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 문세준 고려중앙학원 사무국장, 박길성 고려대 교육부총장, 박만섭 고려대 교무처장, 박명식 고려중앙학원 상임이사, 박연정 고려사이버대 교학처장, 박종웅 고려대 의무기획처장, 박찬욱 서울대 총장직무대리, 박찬종 중앙교우회 회장, 서성규 고려대 기획처장, 서영준 서울대 교수, 손혁상 경희대 교수, 송창범 고대부중 교감,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 신현석 고려대 교수, 양재룡 우송대 교수, 염재호 고려대 총장, 오정소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이사장, 유병현 고려대 대외협력처장,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 이경호 고려대 정보전산처장, 이관영 고려대 연구부총장,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이남진 고대부고 교감, 이민영 고려사이버대 입학대외처장, 이용균 중앙고 교감, 이의길 고려사이버대 연구개발처장, 이재열 서울대 교수, 이재호 동신대 교수, 이종찬 국민대 교수,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 장승문 중앙중 교장, 전호환 부산대 총장, 정진곤 한양대 명예교수,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조관수 성균관대 명예교수,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 최덕 명지대 교수,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최종택 고려대 교학처장, 한금선 고려대 간호대학장, 한상복 서울대 명예교수, 허도영 고대부고 교장, 허순자 서울예대 교수,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경제계=강병원 인지컨트롤스 부회장, 권영민 전 태영건설 상무, 권이상 전 경방 감사, 김명하 김앤에이엘 회장, 김병휘 삼양염업사 회장, 김선휘 삼양염업사 고문, 김정환 호텔롯데 대표이사, 민병성 민스파닷컴 대표, 박승구 GKL그랜드코리아레져 감사, 안병모 유창건축사무소 사장, 오세정 한국금융투자협회 본부장, 이병연 세화애드컴 대표, 이용수 서울낫도 대표, 장재훈 TCK인베스트먼트 상무, 홍성훈 삼양홀딩스 감사 ▽언론·출판·문화·체육계=고승철 나남출판 사장, 고연옥 극작가, 고의홍 전 국민일보 전무, 김광희 전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김기경 한국오리엔티어링연맹 명예회장, 김달수 울산김씨대종회 회장, 김복수 전 동아일보 관리국 부국장, 김상준 울산김씨대종회 부회장,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김은 인촌기념회 이사, 김일동 동우회 상임이사, 김정일 전 동아애드넷 대표,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김종태 평화의마을 대표, 김지하 시인, 김태선 동우회 명예회장, 김헌곤 호암재단 상무, 남시욱 화정평화재단 이사장, 박문두 전 동아일보 사진부장, 박정자 배우, 박진오 동아일보 감사, 배인준 EBS 감사, 성낙연 청암재단 상무, 성낙오 전 영남일보 사장, 손병두 호암재단 이사장, 손인석 청암재단 부장, 송상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장, 송대근 전 스포츠동아 사장, 신행식 동우회 이사, 심규선 전 동아일보 상무, 안평선 한국방송인회 회장, 양철화 전 동아일보 관리국장, 어경택 화정평화재단 감사, 예수정 배우, 오동호 청암재단 이사,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이규민 한국시장경제포럼 운영위원장, 이기웅 도서출판 열화당 대표, 이대훈 전 동아일보 이사, 이두환 전 동아일보 출판영업국장, 이승열 아리랑국제방송 사장, 이연택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이영근 전 동아일보 국장, 이종세 한국체육언론인회장, 전만길 전 서울신문 사장, 전용호 한국어문언론인협회 부회장, 정구현 화정평화재단 감사, 정복근 극작가, 정준기 전 동아일보 광고국장, 조강환 동우회 회장, 조천용 동우회 이사, 천진환 화정평화재단 이사, 최규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최동욱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장, 최명우 안전신문 주필, 홍공선 동우회 이사, 홍성훈 동아꿈나무재단 이사, 홍인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문화재 절도범에게 빼앗긴 ‘익안대군 영정’(사진)이 18년 만에 전주이씨 종중으로 돌아간다. 문화재청은 2000년 전주이씨 종중에서 도난당한 ‘익안대군 영정’(충남 문화재자료 제329호) 1점을 지난달 환수했다고 10일 밝혔다. 충남 논산시 연산면 전주이씨 종중의 영정각 내부에 모셔져 있던 익안대군 영정은 2000년 1월 절도범이 훔쳐갔고, 국내의 한 문화재 브로커가 구입해 일본으로 밀반출했다. 이후 재구입하는 방식으로 위장해 국내로 반입됐다. 지난해 이 같은 첩보를 입수한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이 1년여간 수사한 끝에 지난달 영정을 회수했다. 회수된 익안대군 영정은 태조 이성계의 셋째아들 이방의(李芳毅·1360∼1404)의 초상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말년(末年)이와 모지리(毛知里), 소똥(牛屎)이.’ 조선왕조실록은 흔히 왕과 고관대작의 권력다툼을 비롯해 주요 정치적 사건들을 다뤘을 거라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실록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와 같은 노비들의 이름도 꽤 등장한다. 이런 이름들은 조선 사회의 어떤 면을 반영하고 있는 걸까. 지난달 출간된 ‘한뼘 한국사’(푸른역사·사진)는 여타 역사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주제가 가득하다. 광복 직후 월남한 자신의 할아버지 삶을 통해 굴곡진 대한민국 현대사를 솜씨 좋게 풀어내기도 하고, 여전히 사회적 편견의 대상인 성소수자를 추적한 연구도 있다. 때론 당돌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책은 최근 주목받는 젊은 역사학자 모임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가 엮었다. 역사 연구는 기존 인식이나 견해에 대한 도전이 없다면 ‘고인 물’이 될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흐르는 물이 되고자 하는 이 모임의 신진 학자 4명을 7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났다. ‘만인만색…’은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역사 전공 대학원생과 신진 연구자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결국 국정교과서 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오히려 이들은 ‘역사학의 위기’를 뼈저리게 느낀 뒤 조직적인 활동에 나섰다. “역사학계에선 기존의 견해를 뒤집는 관점과 새로운 인물·단체에 대한 발굴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어요. 그러나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역사는 교과서 속 정답만을 강조한 독점적인 해석뿐이었죠. 젊은 학자들이 직접 다양한 역사의 모습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김동주 고려대 한국사학과 석사·만인만색 공동대표) 연구자 50여 명이 참여한 ‘만인만색…’은 기존 학술단체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팟캐스트팀’이나 ‘출판콘텐츠팀’ 등을 구성해 시민들과 직접 소통에 나섰다.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매주 진행하는 팟캐스트 ‘역사共작단’은 매회 조회수 수만 건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최대 팟캐스트 포털 ‘팟빵’에서 교육 분야 인기순위 10위권에 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역사 분야에서 대중성은 설민석, 최태성 씨처럼 입시학원 강사들의 활약이 훨씬 파급력이 높다. “요식업에 비유하자면, 그분들은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두루두루 입맛에 잘 맞는 프랜차이즈 식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원로학자들은 5성급 특급호텔 레스토랑으로 볼 수 있죠. 저희는 요리학교를 다닌 뒤 이제 막 창업한 골목식당 정도랄까요. 어느 정도 깊이가 있지만 문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전문성에 기반한 대중성’이 강점이라고 봅니다.”(임동민 고려대 한국사학과 박사 수료) 이 책의 부제는 ‘한국사 밖의 한국사’다. 평범한 사람들이나 미신·근친혼 등 금기시된 주제, 한반도의 국경선 경계에 놓였던 존재들처럼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뤘던 주제들이 많다. 앞으로 다채롭게 펼쳐져야 할 한국 역사학계의 미래가 엿보인다. “1925년 ‘예천 형평사 공격 사건’은 본질적으로 당시 가장 하층민으로 여겨진 백정과 머슴들의 다툼이었습니다. 이른바 ‘을들의 전쟁’이죠. 지금 우리 사회도 최저임금이나 난민 등의 이슈에서 약자 간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어요.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최보민 성균관대 사학과 박사 수료) “6·25전쟁은 이승만과 김일성, 스탈린의 전쟁이었을까요. 당시 전쟁 속에서 고통받았던 평범한 시민들의 삶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문미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박사 수료)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가 또다시 출토될까. 이르면 이달 말부터 시작될 제8차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조사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만월대 공동조사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7차례에 걸쳐 진행되다가 2016년 1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중단됐다. 3년 만에 재개되는 이번 공동조사는 애초 2일 착수식을 열고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북측에서 조사단 인력 구성 미비 등을 이유로 날짜 변경을 요청해 일정이 변경됐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9일 “북측의 조사단 규모가 이전 조사 때까진 20여 명 수준이었는데 이번에는 40여 명 규모로 확대한다고 밝히면서 인력 구성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실무적인 준비로 인해 늦춰진 만큼 이번 달 말부터는 조사가 재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동조사 계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려 황궁의 공식 문서 생산·보관을 담당한 임천각(臨川閣) 일대가 조사 대상에 포함돼 금속활자 출토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점이다.○ 구텐베르크보다 한 세기 앞선 금속활자 2015년 11월 개성 만월대에선 말 그대로 ‘보물’이 나왔다. 가로 1.36cm, 세로 1.3cm, 높이 0.6cm의 금속활자가 출토된 것. ‘전일할 전(嫥)’과 유사해 보이지만 크기가 작아 정확한 글씨를 판독하기는 어려웠다. 만월대가 홍건적의 난으로 소실된 1361년까지 황궁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1455년 제작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최소 한 세기 앞선 것으로 학계에선 평가했다. 기존에 출토된 금속활자가 남과 북에 각각 1개씩만 존재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발굴 성과로 여겨졌다. 손톱만 한 크기의 금속활자를 찾아내기 위해 당시 조사단은 “흙도 유물이다”라는 구호 아래 일일이 체에 흙을 걸러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금속활자뿐 아니라 고려 황실에서 사용된 반지와 못, 바둑돌 등 희귀 유물도 다수 발견됐다. 7차례의 공동 발굴조사에 모두 참여했던 박성진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금속활자는 크기가 너무 작아 대규모 인력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앞으로 안정적인 공동 발굴조사가 진행된다면 더 많은 금속활자 출토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했다. 2016년 남북 공동 발굴조사가 중단된 이후 북측에서 진행한 단독 조사에서 추가로 4점의 금속활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만월대 출토 금속활자들은 올해 12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고려 건국 1100주년 특별전 ‘대고려전’에서 직접 관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대국민보고에서 “‘대고려전’에서 북한 문화재를 함께 전시할 것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의했고, 김 위원장은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은 만월대 금속활자 등 북한 문화재 17점의 목록을 북한에 보냈고, 현재 유물 대여 절차를 협의 중이다.○ 발굴을 넘어 보존·복원으로 이번 조사에서는 만월대의 중심 전각인 회경전 서측 축대에 대한 보존 작업도 예정돼 있다. 2015년 진행한 안전진단 결과 붕괴 위험성이 있다는 판정이 내려져 해체 후 보수·복원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안병우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한신대 교수)은 “회경전 축대 보존은 고고학·역사학 분야를 넘어 남북 건축문화 교류의 본격적인 신호탄이 되는 셈”이라며 “만월대 출토 유물에 대한 보존센터 건립 등도 문화재청, 북한 측과 협의해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한국과 일본이 공동 등재한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을 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열린다. 한일문화교류회의(이사장 정구종)는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일 문화교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장제국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공동 추진위원장(동서대 총장)은 “조선통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중앙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고 부산과 시모노세키 등 양국 지방 도시와 민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더 뜻깊다”며 “한일 양국의 보기 드문 ‘긍정의 기억’을 계승해 건전한 한일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파리에서 열린 제13차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IAC)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신청한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 111건 333점(한국 측 63건 124점, 일본 측 48건 209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나카오 히로시(仲尾宏)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일본학술회의 회장(교토조형예술대 객원교수)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대국이던 독일과 프랑스는 전후 ‘엘리제 조약’이라는 화해협력 조약을 체결해 우호를 쌓아갔다”며 “한국과 일본은 조선통신사와 엘리제 조약 등을 참고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동아일보가 9일 제572돌 한글날을 맞아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 해례본 표기에 따른 우리말 제호를 선보입니다. 해례본에 따르면 한글의 모음은 천지인(天地人) 원리를 토대로 하늘을 뜻하는 아래아(ㆍ)와 땅의 평평한 모습을 표현한 ‘ㅡ’, 사람이 꼿꼿이 서 있는 듯한 ‘ㅣ’ 등 3가지 기본자로 구성돼 있습니다. ‘동’과 ‘아’ ‘보’에 사용된 아래아(ㆍ)는 천지인 원리를 따른 것입니다. ‘동’의 종성에는 옛이응(ㆁ)을 활용했습니다. 중세국어에서는 유성음(有聲音·울림소리)으로 사용되는 옛이응(ㆁ)과 무성음 이응(ㅇ)을 구분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28개의 자모음이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 ‘ㆆ’(여린히읗) ‘ㅿ’(반잇소리) ‘ㆁ’(옛이응) ‘ㆍ’(아래아) 등 4글자가 사라져 현재는 24개만 사용합니다. 동아일보는 그동안 3·1절, 창간기념일(4월 1일), 어린이날, 추석,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에도 이색적인 제호를 선보였습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동아일보가 9일 제572돌 한글날을 맞아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 해례본 표기에 따른 우리말 제호를 선보입니다. 해례본에 따르면 한글의 모음은 천지인(天地人) 원리를 토대로 하늘을 뜻하는 아래아(ㆍ)와 땅의 평평한 모습을 표현한 ‘ㅡ’, 사람이 꼿꼿이 서있는 듯한 ‘ㅣ’등 3가지 기본자로 구성돼있습니다. ‘동’과 ‘아’ ‘보’에 사용된 아래아(ㆍ)는 천지인 원리를 따른 것입니다. ‘동’의 종성에는 옛이응(ㆁ)을 활용했습니다. 중세국어에서는 유성음(有聲音·울림소리)으로 사용되는 옛이응(ㆁ)과 무성음 이응(ㅇ)을 구분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28개의 자모음이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 ‘ㆆ’(여린히읗) ‘ㅿ’(반잇소리) ‘ㆁ’(옛이응) ‘ㆍ’(아래아) 등 4글자가 사라져 현재는 24개만 사용합니다. 동아일보는 그동안 3·1절, 창간기념일(4월 1일), 어린이날, 추석, 2018 평창겨울올림픽 기간에도 이색적인 제호를 선보였습니다. 평창올림픽3.1절동아일보 창간기념일(4월 1일)어린이날 현충일광복절유원모 기자onemore@donga.com}

귀여운 외모에 뒤뚱거리며 걷는 판다. 짝짓기에 서툴고, 대나무 잎만 쉼 없이 씹어대는 그들의 모습은 덩칫값을 못하는 ‘진화가 저지른 실수’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같은 애처로운 판다의 이미지에 대해 저자는 “현대판 미신”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후각이 발달한 덕분에 짧은 배란기에도 번식에 전혀 지장이 없었고, 대나무를 즐겨 씹는 식습관은 사자와 재규어 같은 육식동물만큼 강한 근육을 선사했다. 판다만이 아니다. 영화 ‘라이온 킹’에서 비겁한 겁쟁이로 그려진 하이에나는 사실 평균적인 육식동물보다 똑똑한 뇌를 가졌다. 남성 중심적인 야생의 세계에서 암컷이 누구와 언제 어디서 짝짓기 할지를 선택하는 ‘페미니즘’적인 특징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본 동물의 세계관을 뒤집어 본다. 정치·사회·도덕적인 이유로 동물들에 덧씌워진 갖가지 신화와 미신을 걷어내고 동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저자는 옥스퍼드대에서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를 사사해 동물학 석사 학위를 받은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가다. 동물에 관한 오해를 풀기 위한 저자의 특별한 경험도 펼쳐진다. 하마의 땀을 피부에 바르고, 독수리와 함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가 하면 술에 취한 말코손바닥사슴의 뒤를 쫓기도 했다. 박제된 모습이 아닌 실제 동물의 생생한 숨결을 들려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제572돌 한글날(9일)을 앞두고 한글로 쓴 가장 오래된 문헌인 ‘용비어천가’의 새로운 목판본이 공개됐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조선 초기인 16세기에 간행된 ‘용비어천가’ 초간본 후쇄본을 경북 영천시의 한 문중에서 기탁받았다고 4일 밝혔다. 후쇄본은 초간본이 간행(1447년)된 후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뒤 같은 목판으로 찍은 책이다. 이번에 공개된 용비어천가는 전체 10권 5책 중에서 2번째 책인 권3, 4에 해당한다. 고문헌은 2권을 1책으로 분류한다. 조선 초기 악장 문학을 대표하는 용비어천가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에서 태종에 이르기까지 6대조와 중국 역대 제왕의 사적을 읊은 노래에 주석을 붙인 것이다. 정인지, 안지, 권제 등이 짓고 성삼문, 박팽년, 이개 등이 주석을 달았다. 책의 전래 과정이 분명해 15세기 국어학과 서지학 연구에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국학진흥원은 “기존에 보물(제1463호)로 지정돼 있는 용비어천가 판본이 부분적으로 훼손돼 있는 것과 달리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며 “국가지정문화재로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2000번째 보물이 나왔다. 문화재청은 단원 김홍도(1745∼?)가 1801년 순조의 수두 완쾌를 기념해 그린 8폭 병풍 그림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를 보물 2000호로 지정한다고 4일 밝혔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56년 만이다. 문화재청이 분류하고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 종류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로 나뉜다. 유형문화재 가운데 중요한 것을 보물로,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가치가 크고 드문 유물은 국보로 지정한다. 문화재청은 1962년 12월 국보 제1호 서울 숭례문을 비롯해 116건을 국보로, 이듬해 1월 서울 흥인지문(보물 제1호) 등 423건을 보물로 일괄 지정했다. 이후 56년 동안 총 336건의 국보와 2132건의 보물을 지정했다. 보물의 번호보다 실제 지정 건수가 많은 이유는 비슷한 유물을 묶어 가지번호로 지정하기 때문이다. 보물 419호 삼국유사의 경우 삼국유사 권2는 419-2호로, 권4∼5는 419-3호로 지정돼 있다. 반면 보물 지정번호 중에는 중간중간 빠진 것도 있다. 보물로 지정됐다가 국보로 승격하거나 가치를 재평가해 보물에서 탈락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보물 제218호 충남 논산시 은진면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등은 올해 국보가 되면서 번호가 사라졌다. 반대로 보물 제5호였던 안양 중초사지 삼층석탑은 1997년 시도유형문화재가 되면서 이 번호가 비게 됐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보물 1998호), ‘대구 동화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보물 1999호), ‘자치통감 권129∼132’(보물 제1281-6호)를 함께 보물로 지정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9일 한글날을 앞두고 세종대왕과 인연이 깊은 경복궁 ‘영추문(迎秋門)’을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문화재청은 3일 “그동안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의 통행이 제한돼 개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며 “인력 배치와 소방, 전기 시설 등의 실무 작업을 마무리한 후 11월부터 시민들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전면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다음 달 본격적인 영추문 개방에 앞서, 9일 한글날 제572돌을 기념해 7일 한시적으로 먼저 빗장을 푼다. 세계문자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세계문자심포지아 2018’의 폐막식 행사로 이날 오전 11시부터 문을 연다. 영추문은 우리 역사의 주요 장면에서 자주 등장한다. 특히 세종대왕과 인연이 깊다. 세종은 1397년 현재 종로구 통인동 근처인 준수방(俊秀坊)에서 탄생했다. 준수방은 영추문 맞은편 의통방(義通坊·현재 통의동 일대) 뒤를 흐르는 개천 건너편이다. 또 집권 뒤엔 영추문에서 가까운 경회루 남쪽 집현전(현 수정전)을 설치해 훈민정음 창제를 지휘했다. 한재준 서울여대 교수는 “영추문은 세종의 탄생과 훈민정음 반포의 역사가 교차하는 뜻깊은 장소”라며 “이러한 역사 콘텐츠를 활용해 경복궁이 조선 법궁(法宮)을 넘어 한글 탄생의 산실임을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1536∼1594)이 지은 ‘관동별곡’에서도 영추문을 언급한다. “연추문(延秋門·영추문의 옛 이름)으로 달려 들어가 경회루 남문 바라보며 임금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물러나니”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처럼 영추문은 임진왜란 전까지 관료들이 왕궁을 드나들던 주요 출입구였다. 1896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던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아픈 역사와도 이어진다. 당시 고종이 가마에 숨어 궐을 빠져나갔던 통로가 영추문이었다. 그간 경복궁을 찾은 시민들은 영추문이 닫혀 있어 불편한 점이 많았다. 경복궁은 현재 남쪽 광화문(光化門), 동쪽 국립민속박물관과 주차장 연결통로, 북쪽 신무문(神武門)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추문이 폐쇄돼 서촌 쪽에서 경복궁으로 들어가려면 국립고궁박물관 출입구까지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2011년 바깥으로 일방통행을 허용했으나 이마저도 관리가 어려워 2014년 중단됐다. 문화재청은 “이번에는 양방향 출입이 모두 가능한 전면 개방으로 진행해 시민들 불편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영추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1926년 일제가 경복궁 전각(殿閣)들을 헐어낼 때 무너졌다가 1975년 원형대로 복원했다. 광화문만큼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겹처마 구조와 지붕 위 취두(鷲頭), 용두(龍頭), 잡상(雜像) 등이 얹혀져 있어 소담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학창시절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이들이라면 한 개쯤 기념품으로 갖고 있을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이 기와가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와 경북 군위군 법주사 괘불도, 충남 예산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 경북 상주시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경선사’명 청동북, 장철 정사공신녹권 등 6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2일 밝혔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일제강점기 때 경주 영묘사 터(현재 사적 제15호 흥륜사지)에서 출토됐다. 1934년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인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가 경주의 한 골동상점에서 구입하면서 일본으로 반출됐지만 고 박일훈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의 끈질긴 노력으로 1972년 10월 국내로 돌아온 환수문화재다. 틀을 이용해 일률적으로 찍는 일반적인 기와 생산 방식과 달리 손으로 직접 빚었다. 지름 11.5cm, 두께 2cm 크기로 왼쪽 하단 일부가 사라졌지만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 잔잔한 미소가 두 뺨의 턱 선과 조화를 이룬다. 수막새는 추녀나 담장 끝에 기와를 마무리하기 위해 사용한 둥근 형태의 와당이다. 문화재청은 “기와 유물이 단독으로 보물로 지정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의 정밀 조사를 통해 새롭게 가치가 알려진 괘불도 3건도 눈에 띈다. 괘불도는 영산재, 천도재 등 대규모 야외 불교의식을 위해 만든 대형 불화다. 1750년에 제작된 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에 두고, 문수·보현보살 등을 상하로 그려 넣은 오존(五尊)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세기 이전에 그린 비로자나불 불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오존 구도 또한 유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사찰 의례 때 사용한 ‘경선사’명 청동북은 13세기 고려시대의 청동북 중 기년명(紀年銘·제작 연대를 밝힌 명문)이 있는 독특한 유물이다. 경선사는 고려 때 지어진 절이지만 이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평정에 공을 세운 중추원부사 장철(1359∼1399)에게 발급한 공신녹권은 지금까지 유일하게 확인된 정사공신(定社功臣)녹권으로 역사·국어학·서지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저항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1904∼1944)의 친필 원고(사진)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 군대였던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1888∼1957)이 쓴 일기가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이육사의 시 ‘바다의 마음’ 원고와 지청천의 친필 일기, 전남 광양시 옛 진월면사무소 등 3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1일 밝혔다. ‘바다의 마음’은 3행 3연으로 구성됐으며 이육사가 직접 만년필로 원고지에 썼다. 이육사의 친필 시 원고는 매우 희귀하다. 문화재청은 “올해 5월 등록문화재가 된 ‘편복(편복)’ 외에는 바다의 마음이 유일하게 전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청천 일기는 그가 1951∼56년 기록한 국한문 혼용의 친필본 5책으로 구성돼 있다. 광복 뒤 제헌의원을 지낸 그의 정치 활동 등이 담겨 있어 한국 현대 정치사의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채널A 예능프로그램 ‘하트시그널’ 시즌1에 출연한 카레이서 서주원(24)이 모델 겸 방송인 김민영(27·여)과 11월 11일 결혼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하트시그널 패널로 출연했던 슈퍼주니어 신동과 작사가 김이나의 소개로 시작됐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데이트 사진을 올리며 공개 연애를 해왔다. 서주원은 2008년 카트레이스 데뷔 후 2010년 코리아 카트 챔피언십 최연소 우승을 했고, 2013년에는 한국인으로 처음 일본 카트 시리즈 챔피언을 차지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던 서울 성북구 의릉(懿陵·사적 제204호) 내부의 옛 중앙정보부 강당이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문화재청은 ‘서울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등록문화재 제92호·사진)을 다음 달 13일부터 문화예술공간으로 재단장해 공개한다고 27일 밝혔다. 의릉은 조선 제20대 임금인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가 묻힌 곳이다. 옛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강당은 1962년 건축가 나상진(1923∼1973)이 설계한 2층 콘크리트 건물로, 1962년에 지은 강당과 1972년에 세운 회의실로 구성돼 있다. 일반 공개를 맞아 12월까지 역사 강좌와 영화 상영을 함께 진행한다. 강좌와 영화 관람 신청은 다음 달 1일 오전 9시부터 조선왕릉관리소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할 수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단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준다. ‘계집’의 변천사를 보자. ‘부녀를 낮후어 일컫는 말’(1940년 문세영 수정증보 조선어사전)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1957년 한글학회 큰사전)으로 바뀐 후 지금은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 됐다. 이처럼 우리말 사전의 역사를 조명하는 이색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훈민정음 반포 572돌을 맞아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진행되는 특별전 ‘사전의 재발견’이다. 국내에서 사전을 주제로 한 첫 전시로 ‘노한사전’(露韓辭典·1874년) 이후 140여 년에 걸친 근대 한국사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2부로 구성됐다. 1부 ‘우리말 사전의 탄생’은 주시경(1876∼1914) 등이 집필한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 ‘말모이’(사진)와 조선어학회가 1929년부터 13년 동안 작성한 ‘조선말 큰사전 원고’ 등을 소개한다. 2부 ‘우리말 사전의 비밀’에서는 1920, 30년대 유행어인 ‘모던뽀이’와 1990년대 사전에 오른 ‘엑스세대’ 등 시대별 사전의 낱말 뜻풀이 변화를 알 수 있다. 12월 25일까지.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47년 건국을 준비하고 있던 이스라엘은 전쟁이 나면 고작 6일 정도 버틸 수 있는 총알 600만 개만 남아있었다. 키부츠(집단농장)에서 양떼를 기르던 20대 청년 시몬 페레스(1923∼2016)는 조국을 위해 서방으로 무기를 구하러 나선다. 당시 서방 국가들은 복잡한 중동 정세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 위해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페레스는 기지를 발휘해 위조 여권을 들고 무기 밀수업자 등을 통해 체코로 건너갔다. 특정 종류의 소총이 가진 사소한 결함부터 거대한 전함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무기를 운반하는 데 필요한 연료량까지 무기에 관한 모든 내용을 숙지한 그에게 체코 정부는 무기를 제공했다. 이듬해 5월 이스라엘이 건국하며 중동 국가들과 전쟁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숨겨놨던 압도적인 화력과 전술을 바탕으로 독립국가로 거듭났다. 이 책은 70여 년간 10번의 장관, 3번의 총리, 7년 동안 대통령으로 재직한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의 자서전이다. 현대사의 굴곡진 역경을 거쳐 온 그의 인생과 굵직한 정치 군사 경제 분야 사건들의 숨은 이야기를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스타트업 천국이라 불리는 이스라엘의 벤처 생태계를 조성한 저자의 경험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투자에 대한 위험은 정부가 부담하고, 보상은 철저하게 투자자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벤처캐피털 프로그램을 1990년대부터 도입했다. 벤처 창업의 물꼬를 튼 이스라엘은 2016년 미국 나스닥에 90개 스타트업이 상장됐다. 지금도 해마다 수백억 달러의 투자를 받고 있다고 한다. 끊임없는 전쟁의 위협과 천연자원 없이 인재 육성을 통한 경제 성장 등 한국과 비슷한 모습이 많은 이스라엘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제공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단원 김홍도(1745∼?)가 그린 ‘산사귀승도(山寺歸僧圖)’에 등장하는 사찰은 어디일까. 최근 이 그림 속 산사가 황해 해주시의 ‘신광사(神光寺)’라는 분석이 나왔다. 고미술품 전문 경매사인 마이아트옥션은 18일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산사귀승도에 표현된 사찰이 신광사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그림은 가을철 깊은 산속 계곡에 있는 산사를 향해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스님을 표현했다. 겸재 정선(1676∼1759)과 달리 실경(實景)을 거의 남기지 않은 단원의 특성상 희귀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작품 상단 4행의 시문이 많이 훼손돼 그간 제작 배경과 시기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최근 남아 있는 글씨를 고문헌과 비교 분석한 작업 끝에 석주 권필(1569∼1612)이 ‘신광사’를 주제로 쓴 시 “落月疎鐘古寺樓(지는 달빛에 성근 종소리는 옛 산사에서 들리네)”와 같은 구절로 확인됐다. 산사귀승도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덕아트갤러리전관에서 열리는 제29회 마이아트옥션에서 공개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조부-증조부… 어느 분까지 해야 하나요 추석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긴 연휴에 설레면서도 한편으로 심란합니다. 벌초 때문입니다. 올해 초 돌아가신 아버지를 유언에 따라 선산에 모셨습니다. 지난 주 추석을 앞두고 생전 처음 벌초를 하러 갔죠. 차로 4시간을 달려 선산에 도착했는데, 풀이 어찌나 우거졌는지 산소로 올라가는 길을 못 찾겠더군요. 겨우겨우 풀숲을 헤집고 올라가서는 경악했어요. 아버지 묘는 물론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그리고 이름 모를 조상님들 묘가 온통 잡초더미로 엉망이더라고요. 도저히 혼자 벌초할 규모가 아니었어요. 외동이라 형제도 없고 연락할 친척도 마땅치 않아 막막했습니다. 벌초 대행업체에 문의하니 우리 선산 규모면 100만 원 이상 든다더군요. 어쩔 수 없이 아버지 묘만 겨우 벌초하고 내려왔는데 기분이 영 찜찜했어요. 저는 어디까지 벌초를 해야 예를 다하는 걸까요? 내년 추석이 벌써 걱정입니다. ■ 사위는 처가 묘 벌초하면 안되나추석 때면 집집마다 벌초 고민이 적지 않죠? 민속문화 전문가이자, 유교 전문가이자, 장례 전문가이자, 벌초 전문가인 저 ‘추성묘’가 지금부터 여러분들의 고민을 시원하게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벌초가 무엇인지 봅시다. 사실 벌초는 틀린 용어입니다. 성묘가 맞아요. ‘살필 성(省)’에 ‘무덤 묘(墓)’, 말 그대로 묘를 살핀다는 뜻이죠. 여름엔 풀도 많이 자라고 비도 많이 오잖아요. 추석 전에 친지들이 모여 조상의 묘에 우거진 풀을 뽑고 무너진 흙을 정비하던 풍습에서 유래했죠. 효심을 표하고 가족 간 정을 다질 수 있는 좋은 전통입니다. 문제는 저출산 핵가족으로 요즘은 어느 집이나 벌초할 자손이 적다는 점입니다. 친척들에게 연락해 함께 벌초할 가족공동체를 되살리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 만약 벌초 대행업체에 맡길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부모님뿐 아니라 자신이 추억을 가진 조부모나 증조부모 묘까지 벌초를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조상님들도 그 마음은 이해하실 거예요. 딸만 있는 집은 걱정이 더 많죠? 얼마 전 제가 만난 주부 한정숙(가명·41) 씨는 벌초 문제로 남편과 한바탕하셨더군요. 남편에게 친정아버지 묘 벌초를 부탁했더니 남편이 “한국 문화에선 처가나 외가의 벌초는 안 하는 게 불문율”이라고 했다는군요. 자신은 매년 남편 집 제사상을 차리는데 이렇게 말하는 남편이 얄미운 것도 당연하죠. 더욱이 우리 문화에 ‘처가나 외가 벌초를 안 한다’는 룰은 전혀 없습니다. 어떤 일을 대충할 때 ‘처삼촌 묘 벌초하듯 한다’는 속담이 있죠? 마음은 없을지 몰라도 그만큼 예전엔 처삼촌 벌초를 많이 했다는 방증입니다. 유교가 들어오기 전 한국은 처가살이 문화였습니다. 심지어 조선시대 문헌에도 퇴계 이황 선생이 장인어른의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벌초 방식을 두고 부모와 자식 세대가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얼마 전 직장인 김정현(가명·36) 씨는 벌초 때문에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녹다운이 됐다더군요. 김 씨 어머니는 벌초 대행은 불효라며 “네가 안 하면 내가 직접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답니다.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벌초 날짜를 잡아 며느리랑 손주의 대동을 명했다는 겁니다. 이에 아내는 “벌도 있고 뱀도 있는 땡볕 산에 왜 세 살짜리를 데려가야 하느냐”며 버텼대요. 이런 갈등, 요즘 흔하죠. 이건 서로 이해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 세상 부모님들, 요즘 젊은이들이 워낙 바쁘기도 하지만 초보에게 벌초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예초기가 워낙 무겁고 위험해 하루 종일 벌초를 하고 나면 다음 날 팔이 덜덜 떨려 숟가락질도 못해요. 벌에 쏘이는 사고도 많고요. 그래서 벌초 대행이 이제는 일반화됐어요. 지난해 농협·산림조합의 대행 건수만 5만5000건에 달해요. 5년 전의 2배예요. 사설 업체도 500곳이 넘어요. 벌초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가족이나 문중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해요. 선산 일부를 팔거나 돈을 모아 묘를 개장한 뒤 가족 납골당을 만들거나, 관리를 대신 해주는 공원묘지로 옮기는 거죠. 우리 문화에서 가장 큰 불효는 ‘묵뫼’(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거칠게 된 묘)를 만드는 건데, 앞으로 상당수 묘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농촌에 젊은이가 없어 벌초 대행도 오래 못 가요. 앞으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잘 의논해 공원묘지 안에 가족 단위로 조성이 가능한 선산 형태의 장지를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국토 관리의 숙제인 ‘무덤 산’이 줄어들어요. 화장(火葬) 문화가 일반화된 만큼 자기 집 화단이나 자투리 땅 등 가까운 곳을 장지로 활용하는 것도 좋아요. 일본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요. 어차피 죽음은 삶의 일부니까요.임우선 imsun@donga.com·유원모 기자 <도움말 주신 분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박복순 전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사무총장 △박종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 △방동민 성균관 석전대제보존회 사무국장 △이필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 △정혁인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정책기획부장 △농협중앙회 △산림조합중앙회 △벌초대행업체 H사, M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