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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가 또다시 출토될까. 이르면 이달 말부터 시작될 제8차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조사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만월대 공동조사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7차례에 걸쳐 진행되다가 2016년 1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중단됐다. 3년 만에 재개되는 이번 공동조사는 애초 2일 착수식을 열고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북측에서 조사단 인력 구성 미비 등을 이유로 날짜 변경을 요청해 일정이 변경됐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9일 “북측의 조사단 규모가 이전 조사 때까진 20여 명 수준이었는데 이번에는 40여 명 규모로 확대한다고 밝히면서 인력 구성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실무적인 준비로 인해 늦춰진 만큼 이번 달 말부터는 조사가 재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동조사 계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려 황궁의 공식 문서 생산·보관을 담당한 임천각(臨川閣) 일대가 조사 대상에 포함돼 금속활자 출토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점이다.○ 구텐베르크보다 한 세기 앞선 금속활자 2015년 11월 개성 만월대에선 말 그대로 ‘보물’이 나왔다. 가로 1.36cm, 세로 1.3cm, 높이 0.6cm의 금속활자가 출토된 것. ‘전일할 전(嫥)’과 유사해 보이지만 크기가 작아 정확한 글씨를 판독하기는 어려웠다. 만월대가 홍건적의 난으로 소실된 1361년까지 황궁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1455년 제작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최소 한 세기 앞선 것으로 학계에선 평가했다. 기존에 출토된 금속활자가 남과 북에 각각 1개씩만 존재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발굴 성과로 여겨졌다. 손톱만 한 크기의 금속활자를 찾아내기 위해 당시 조사단은 “흙도 유물이다”라는 구호 아래 일일이 체에 흙을 걸러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금속활자뿐 아니라 고려 황실에서 사용된 반지와 못, 바둑돌 등 희귀 유물도 다수 발견됐다. 7차례의 공동 발굴조사에 모두 참여했던 박성진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금속활자는 크기가 너무 작아 대규모 인력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앞으로 안정적인 공동 발굴조사가 진행된다면 더 많은 금속활자 출토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했다. 2016년 남북 공동 발굴조사가 중단된 이후 북측에서 진행한 단독 조사에서 추가로 4점의 금속활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만월대 출토 금속활자들은 올해 12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고려 건국 1100주년 특별전 ‘대고려전’에서 직접 관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대국민보고에서 “‘대고려전’에서 북한 문화재를 함께 전시할 것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의했고, 김 위원장은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은 만월대 금속활자 등 북한 문화재 17점의 목록을 북한에 보냈고, 현재 유물 대여 절차를 협의 중이다.○ 발굴을 넘어 보존·복원으로 이번 조사에서는 만월대의 중심 전각인 회경전 서측 축대에 대한 보존 작업도 예정돼 있다. 2015년 진행한 안전진단 결과 붕괴 위험성이 있다는 판정이 내려져 해체 후 보수·복원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안병우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위원장(한신대 교수)은 “회경전 축대 보존은 고고학·역사학 분야를 넘어 남북 건축문화 교류의 본격적인 신호탄이 되는 셈”이라며 “만월대 출토 유물에 대한 보존센터 건립 등도 문화재청, 북한 측과 협의해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한국과 일본이 공동 등재한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을 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열린다. 한일문화교류회의(이사장 정구종)는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일 문화교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장제국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공동 추진위원장(동서대 총장)은 “조선통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중앙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고 부산과 시모노세키 등 양국 지방 도시와 민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더 뜻깊다”며 “한일 양국의 보기 드문 ‘긍정의 기억’을 계승해 건전한 한일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파리에서 열린 제13차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IAC)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신청한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 111건 333점(한국 측 63건 124점, 일본 측 48건 209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나카오 히로시(仲尾宏)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일본학술회의 회장(교토조형예술대 객원교수)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대국이던 독일과 프랑스는 전후 ‘엘리제 조약’이라는 화해협력 조약을 체결해 우호를 쌓아갔다”며 “한국과 일본은 조선통신사와 엘리제 조약 등을 참고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동아일보가 9일 제572돌 한글날을 맞아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 해례본 표기에 따른 우리말 제호를 선보입니다. 해례본에 따르면 한글의 모음은 천지인(天地人) 원리를 토대로 하늘을 뜻하는 아래아(ㆍ)와 땅의 평평한 모습을 표현한 ‘ㅡ’, 사람이 꼿꼿이 서 있는 듯한 ‘ㅣ’ 등 3가지 기본자로 구성돼 있습니다. ‘동’과 ‘아’ ‘보’에 사용된 아래아(ㆍ)는 천지인 원리를 따른 것입니다. ‘동’의 종성에는 옛이응(ㆁ)을 활용했습니다. 중세국어에서는 유성음(有聲音·울림소리)으로 사용되는 옛이응(ㆁ)과 무성음 이응(ㅇ)을 구분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28개의 자모음이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 ‘ㆆ’(여린히읗) ‘ㅿ’(반잇소리) ‘ㆁ’(옛이응) ‘ㆍ’(아래아) 등 4글자가 사라져 현재는 24개만 사용합니다. 동아일보는 그동안 3·1절, 창간기념일(4월 1일), 어린이날, 추석,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에도 이색적인 제호를 선보였습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동아일보가 9일 제572돌 한글날을 맞아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 해례본 표기에 따른 우리말 제호를 선보입니다. 해례본에 따르면 한글의 모음은 천지인(天地人) 원리를 토대로 하늘을 뜻하는 아래아(ㆍ)와 땅의 평평한 모습을 표현한 ‘ㅡ’, 사람이 꼿꼿이 서있는 듯한 ‘ㅣ’등 3가지 기본자로 구성돼있습니다. ‘동’과 ‘아’ ‘보’에 사용된 아래아(ㆍ)는 천지인 원리를 따른 것입니다. ‘동’의 종성에는 옛이응(ㆁ)을 활용했습니다. 중세국어에서는 유성음(有聲音·울림소리)으로 사용되는 옛이응(ㆁ)과 무성음 이응(ㅇ)을 구분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28개의 자모음이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 ‘ㆆ’(여린히읗) ‘ㅿ’(반잇소리) ‘ㆁ’(옛이응) ‘ㆍ’(아래아) 등 4글자가 사라져 현재는 24개만 사용합니다. 동아일보는 그동안 3·1절, 창간기념일(4월 1일), 어린이날, 추석, 2018 평창겨울올림픽 기간에도 이색적인 제호를 선보였습니다. 평창올림픽3.1절동아일보 창간기념일(4월 1일)어린이날 현충일광복절유원모 기자onemore@donga.com}

귀여운 외모에 뒤뚱거리며 걷는 판다. 짝짓기에 서툴고, 대나무 잎만 쉼 없이 씹어대는 그들의 모습은 덩칫값을 못하는 ‘진화가 저지른 실수’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같은 애처로운 판다의 이미지에 대해 저자는 “현대판 미신”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후각이 발달한 덕분에 짧은 배란기에도 번식에 전혀 지장이 없었고, 대나무를 즐겨 씹는 식습관은 사자와 재규어 같은 육식동물만큼 강한 근육을 선사했다. 판다만이 아니다. 영화 ‘라이온 킹’에서 비겁한 겁쟁이로 그려진 하이에나는 사실 평균적인 육식동물보다 똑똑한 뇌를 가졌다. 남성 중심적인 야생의 세계에서 암컷이 누구와 언제 어디서 짝짓기 할지를 선택하는 ‘페미니즘’적인 특징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본 동물의 세계관을 뒤집어 본다. 정치·사회·도덕적인 이유로 동물들에 덧씌워진 갖가지 신화와 미신을 걷어내고 동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저자는 옥스퍼드대에서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를 사사해 동물학 석사 학위를 받은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가다. 동물에 관한 오해를 풀기 위한 저자의 특별한 경험도 펼쳐진다. 하마의 땀을 피부에 바르고, 독수리와 함께 절벽에서 뛰어내리는가 하면 술에 취한 말코손바닥사슴의 뒤를 쫓기도 했다. 박제된 모습이 아닌 실제 동물의 생생한 숨결을 들려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제572돌 한글날(9일)을 앞두고 한글로 쓴 가장 오래된 문헌인 ‘용비어천가’의 새로운 목판본이 공개됐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조선 초기인 16세기에 간행된 ‘용비어천가’ 초간본 후쇄본을 경북 영천시의 한 문중에서 기탁받았다고 4일 밝혔다. 후쇄본은 초간본이 간행(1447년)된 후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뒤 같은 목판으로 찍은 책이다. 이번에 공개된 용비어천가는 전체 10권 5책 중에서 2번째 책인 권3, 4에 해당한다. 고문헌은 2권을 1책으로 분류한다. 조선 초기 악장 문학을 대표하는 용비어천가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에서 태종에 이르기까지 6대조와 중국 역대 제왕의 사적을 읊은 노래에 주석을 붙인 것이다. 정인지, 안지, 권제 등이 짓고 성삼문, 박팽년, 이개 등이 주석을 달았다. 책의 전래 과정이 분명해 15세기 국어학과 서지학 연구에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국학진흥원은 “기존에 보물(제1463호)로 지정돼 있는 용비어천가 판본이 부분적으로 훼손돼 있는 것과 달리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며 “국가지정문화재로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2000번째 보물이 나왔다. 문화재청은 단원 김홍도(1745∼?)가 1801년 순조의 수두 완쾌를 기념해 그린 8폭 병풍 그림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를 보물 2000호로 지정한다고 4일 밝혔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56년 만이다. 문화재청이 분류하고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 종류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로 나뉜다. 유형문화재 가운데 중요한 것을 보물로,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가치가 크고 드문 유물은 국보로 지정한다. 문화재청은 1962년 12월 국보 제1호 서울 숭례문을 비롯해 116건을 국보로, 이듬해 1월 서울 흥인지문(보물 제1호) 등 423건을 보물로 일괄 지정했다. 이후 56년 동안 총 336건의 국보와 2132건의 보물을 지정했다. 보물의 번호보다 실제 지정 건수가 많은 이유는 비슷한 유물을 묶어 가지번호로 지정하기 때문이다. 보물 419호 삼국유사의 경우 삼국유사 권2는 419-2호로, 권4∼5는 419-3호로 지정돼 있다. 반면 보물 지정번호 중에는 중간중간 빠진 것도 있다. 보물로 지정됐다가 국보로 승격하거나 가치를 재평가해 보물에서 탈락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보물 제218호 충남 논산시 은진면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등은 올해 국보가 되면서 번호가 사라졌다. 반대로 보물 제5호였던 안양 중초사지 삼층석탑은 1997년 시도유형문화재가 되면서 이 번호가 비게 됐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보물 1998호), ‘대구 동화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보물 1999호), ‘자치통감 권129∼132’(보물 제1281-6호)를 함께 보물로 지정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9일 한글날을 앞두고 세종대왕과 인연이 깊은 경복궁 ‘영추문(迎秋門)’을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문화재청은 3일 “그동안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의 통행이 제한돼 개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며 “인력 배치와 소방, 전기 시설 등의 실무 작업을 마무리한 후 11월부터 시민들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전면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다음 달 본격적인 영추문 개방에 앞서, 9일 한글날 제572돌을 기념해 7일 한시적으로 먼저 빗장을 푼다. 세계문자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세계문자심포지아 2018’의 폐막식 행사로 이날 오전 11시부터 문을 연다. 영추문은 우리 역사의 주요 장면에서 자주 등장한다. 특히 세종대왕과 인연이 깊다. 세종은 1397년 현재 종로구 통인동 근처인 준수방(俊秀坊)에서 탄생했다. 준수방은 영추문 맞은편 의통방(義通坊·현재 통의동 일대) 뒤를 흐르는 개천 건너편이다. 또 집권 뒤엔 영추문에서 가까운 경회루 남쪽 집현전(현 수정전)을 설치해 훈민정음 창제를 지휘했다. 한재준 서울여대 교수는 “영추문은 세종의 탄생과 훈민정음 반포의 역사가 교차하는 뜻깊은 장소”라며 “이러한 역사 콘텐츠를 활용해 경복궁이 조선 법궁(法宮)을 넘어 한글 탄생의 산실임을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1536∼1594)이 지은 ‘관동별곡’에서도 영추문을 언급한다. “연추문(延秋門·영추문의 옛 이름)으로 달려 들어가 경회루 남문 바라보며 임금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물러나니”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처럼 영추문은 임진왜란 전까지 관료들이 왕궁을 드나들던 주요 출입구였다. 1896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던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아픈 역사와도 이어진다. 당시 고종이 가마에 숨어 궐을 빠져나갔던 통로가 영추문이었다. 그간 경복궁을 찾은 시민들은 영추문이 닫혀 있어 불편한 점이 많았다. 경복궁은 현재 남쪽 광화문(光化門), 동쪽 국립민속박물관과 주차장 연결통로, 북쪽 신무문(神武門)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추문이 폐쇄돼 서촌 쪽에서 경복궁으로 들어가려면 국립고궁박물관 출입구까지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2011년 바깥으로 일방통행을 허용했으나 이마저도 관리가 어려워 2014년 중단됐다. 문화재청은 “이번에는 양방향 출입이 모두 가능한 전면 개방으로 진행해 시민들 불편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영추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1926년 일제가 경복궁 전각(殿閣)들을 헐어낼 때 무너졌다가 1975년 원형대로 복원했다. 광화문만큼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겹처마 구조와 지붕 위 취두(鷲頭), 용두(龍頭), 잡상(雜像) 등이 얹혀져 있어 소담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학창시절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이들이라면 한 개쯤 기념품으로 갖고 있을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이 기와가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와 경북 군위군 법주사 괘불도, 충남 예산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 경북 상주시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경선사’명 청동북, 장철 정사공신녹권 등 6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2일 밝혔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일제강점기 때 경주 영묘사 터(현재 사적 제15호 흥륜사지)에서 출토됐다. 1934년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인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가 경주의 한 골동상점에서 구입하면서 일본으로 반출됐지만 고 박일훈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의 끈질긴 노력으로 1972년 10월 국내로 돌아온 환수문화재다. 틀을 이용해 일률적으로 찍는 일반적인 기와 생산 방식과 달리 손으로 직접 빚었다. 지름 11.5cm, 두께 2cm 크기로 왼쪽 하단 일부가 사라졌지만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 잔잔한 미소가 두 뺨의 턱 선과 조화를 이룬다. 수막새는 추녀나 담장 끝에 기와를 마무리하기 위해 사용한 둥근 형태의 와당이다. 문화재청은 “기와 유물이 단독으로 보물로 지정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의 정밀 조사를 통해 새롭게 가치가 알려진 괘불도 3건도 눈에 띈다. 괘불도는 영산재, 천도재 등 대규모 야외 불교의식을 위해 만든 대형 불화다. 1750년에 제작된 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에 두고, 문수·보현보살 등을 상하로 그려 넣은 오존(五尊)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세기 이전에 그린 비로자나불 불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오존 구도 또한 유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사찰 의례 때 사용한 ‘경선사’명 청동북은 13세기 고려시대의 청동북 중 기년명(紀年銘·제작 연대를 밝힌 명문)이 있는 독특한 유물이다. 경선사는 고려 때 지어진 절이지만 이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평정에 공을 세운 중추원부사 장철(1359∼1399)에게 발급한 공신녹권은 지금까지 유일하게 확인된 정사공신(定社功臣)녹권으로 역사·국어학·서지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저항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1904∼1944)의 친필 원고(사진)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 군대였던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1888∼1957)이 쓴 일기가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이육사의 시 ‘바다의 마음’ 원고와 지청천의 친필 일기, 전남 광양시 옛 진월면사무소 등 3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1일 밝혔다. ‘바다의 마음’은 3행 3연으로 구성됐으며 이육사가 직접 만년필로 원고지에 썼다. 이육사의 친필 시 원고는 매우 희귀하다. 문화재청은 “올해 5월 등록문화재가 된 ‘편복(편복)’ 외에는 바다의 마음이 유일하게 전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청천 일기는 그가 1951∼56년 기록한 국한문 혼용의 친필본 5책으로 구성돼 있다. 광복 뒤 제헌의원을 지낸 그의 정치 활동 등이 담겨 있어 한국 현대 정치사의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채널A 예능프로그램 ‘하트시그널’ 시즌1에 출연한 카레이서 서주원(24)이 모델 겸 방송인 김민영(27·여)과 11월 11일 결혼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하트시그널 패널로 출연했던 슈퍼주니어 신동과 작사가 김이나의 소개로 시작됐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데이트 사진을 올리며 공개 연애를 해왔다. 서주원은 2008년 카트레이스 데뷔 후 2010년 코리아 카트 챔피언십 최연소 우승을 했고, 2013년에는 한국인으로 처음 일본 카트 시리즈 챔피언을 차지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던 서울 성북구 의릉(懿陵·사적 제204호) 내부의 옛 중앙정보부 강당이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문화재청은 ‘서울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등록문화재 제92호·사진)을 다음 달 13일부터 문화예술공간으로 재단장해 공개한다고 27일 밝혔다. 의릉은 조선 제20대 임금인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가 묻힌 곳이다. 옛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강당은 1962년 건축가 나상진(1923∼1973)이 설계한 2층 콘크리트 건물로, 1962년에 지은 강당과 1972년에 세운 회의실로 구성돼 있다. 일반 공개를 맞아 12월까지 역사 강좌와 영화 상영을 함께 진행한다. 강좌와 영화 관람 신청은 다음 달 1일 오전 9시부터 조선왕릉관리소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할 수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단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준다. ‘계집’의 변천사를 보자. ‘부녀를 낮후어 일컫는 말’(1940년 문세영 수정증보 조선어사전)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1957년 한글학회 큰사전)으로 바뀐 후 지금은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 됐다. 이처럼 우리말 사전의 역사를 조명하는 이색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훈민정음 반포 572돌을 맞아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진행되는 특별전 ‘사전의 재발견’이다. 국내에서 사전을 주제로 한 첫 전시로 ‘노한사전’(露韓辭典·1874년) 이후 140여 년에 걸친 근대 한국사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2부로 구성됐다. 1부 ‘우리말 사전의 탄생’은 주시경(1876∼1914) 등이 집필한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 ‘말모이’(사진)와 조선어학회가 1929년부터 13년 동안 작성한 ‘조선말 큰사전 원고’ 등을 소개한다. 2부 ‘우리말 사전의 비밀’에서는 1920, 30년대 유행어인 ‘모던뽀이’와 1990년대 사전에 오른 ‘엑스세대’ 등 시대별 사전의 낱말 뜻풀이 변화를 알 수 있다. 12월 25일까지.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47년 건국을 준비하고 있던 이스라엘은 전쟁이 나면 고작 6일 정도 버틸 수 있는 총알 600만 개만 남아있었다. 키부츠(집단농장)에서 양떼를 기르던 20대 청년 시몬 페레스(1923∼2016)는 조국을 위해 서방으로 무기를 구하러 나선다. 당시 서방 국가들은 복잡한 중동 정세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 위해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페레스는 기지를 발휘해 위조 여권을 들고 무기 밀수업자 등을 통해 체코로 건너갔다. 특정 종류의 소총이 가진 사소한 결함부터 거대한 전함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무기를 운반하는 데 필요한 연료량까지 무기에 관한 모든 내용을 숙지한 그에게 체코 정부는 무기를 제공했다. 이듬해 5월 이스라엘이 건국하며 중동 국가들과 전쟁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숨겨놨던 압도적인 화력과 전술을 바탕으로 독립국가로 거듭났다. 이 책은 70여 년간 10번의 장관, 3번의 총리, 7년 동안 대통령으로 재직한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의 자서전이다. 현대사의 굴곡진 역경을 거쳐 온 그의 인생과 굵직한 정치 군사 경제 분야 사건들의 숨은 이야기를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스타트업 천국이라 불리는 이스라엘의 벤처 생태계를 조성한 저자의 경험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투자에 대한 위험은 정부가 부담하고, 보상은 철저하게 투자자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벤처캐피털 프로그램을 1990년대부터 도입했다. 벤처 창업의 물꼬를 튼 이스라엘은 2016년 미국 나스닥에 90개 스타트업이 상장됐다. 지금도 해마다 수백억 달러의 투자를 받고 있다고 한다. 끊임없는 전쟁의 위협과 천연자원 없이 인재 육성을 통한 경제 성장 등 한국과 비슷한 모습이 많은 이스라엘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제공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단원 김홍도(1745∼?)가 그린 ‘산사귀승도(山寺歸僧圖)’에 등장하는 사찰은 어디일까. 최근 이 그림 속 산사가 황해 해주시의 ‘신광사(神光寺)’라는 분석이 나왔다. 고미술품 전문 경매사인 마이아트옥션은 18일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산사귀승도에 표현된 사찰이 신광사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그림은 가을철 깊은 산속 계곡에 있는 산사를 향해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스님을 표현했다. 겸재 정선(1676∼1759)과 달리 실경(實景)을 거의 남기지 않은 단원의 특성상 희귀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작품 상단 4행의 시문이 많이 훼손돼 그간 제작 배경과 시기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최근 남아 있는 글씨를 고문헌과 비교 분석한 작업 끝에 석주 권필(1569∼1612)이 ‘신광사’를 주제로 쓴 시 “落月疎鐘古寺樓(지는 달빛에 성근 종소리는 옛 산사에서 들리네)”와 같은 구절로 확인됐다. 산사귀승도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덕아트갤러리전관에서 열리는 제29회 마이아트옥션에서 공개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조부-증조부… 어느 분까지 해야 하나요 추석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긴 연휴에 설레면서도 한편으로 심란합니다. 벌초 때문입니다. 올해 초 돌아가신 아버지를 유언에 따라 선산에 모셨습니다. 지난 주 추석을 앞두고 생전 처음 벌초를 하러 갔죠. 차로 4시간을 달려 선산에 도착했는데, 풀이 어찌나 우거졌는지 산소로 올라가는 길을 못 찾겠더군요. 겨우겨우 풀숲을 헤집고 올라가서는 경악했어요. 아버지 묘는 물론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그리고 이름 모를 조상님들 묘가 온통 잡초더미로 엉망이더라고요. 도저히 혼자 벌초할 규모가 아니었어요. 외동이라 형제도 없고 연락할 친척도 마땅치 않아 막막했습니다. 벌초 대행업체에 문의하니 우리 선산 규모면 100만 원 이상 든다더군요. 어쩔 수 없이 아버지 묘만 겨우 벌초하고 내려왔는데 기분이 영 찜찜했어요. 저는 어디까지 벌초를 해야 예를 다하는 걸까요? 내년 추석이 벌써 걱정입니다. ■ 사위는 처가 묘 벌초하면 안되나추석 때면 집집마다 벌초 고민이 적지 않죠? 민속문화 전문가이자, 유교 전문가이자, 장례 전문가이자, 벌초 전문가인 저 ‘추성묘’가 지금부터 여러분들의 고민을 시원하게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벌초가 무엇인지 봅시다. 사실 벌초는 틀린 용어입니다. 성묘가 맞아요. ‘살필 성(省)’에 ‘무덤 묘(墓)’, 말 그대로 묘를 살핀다는 뜻이죠. 여름엔 풀도 많이 자라고 비도 많이 오잖아요. 추석 전에 친지들이 모여 조상의 묘에 우거진 풀을 뽑고 무너진 흙을 정비하던 풍습에서 유래했죠. 효심을 표하고 가족 간 정을 다질 수 있는 좋은 전통입니다. 문제는 저출산 핵가족으로 요즘은 어느 집이나 벌초할 자손이 적다는 점입니다. 친척들에게 연락해 함께 벌초할 가족공동체를 되살리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 만약 벌초 대행업체에 맡길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부모님뿐 아니라 자신이 추억을 가진 조부모나 증조부모 묘까지 벌초를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조상님들도 그 마음은 이해하실 거예요. 딸만 있는 집은 걱정이 더 많죠? 얼마 전 제가 만난 주부 한정숙(가명·41) 씨는 벌초 문제로 남편과 한바탕하셨더군요. 남편에게 친정아버지 묘 벌초를 부탁했더니 남편이 “한국 문화에선 처가나 외가의 벌초는 안 하는 게 불문율”이라고 했다는군요. 자신은 매년 남편 집 제사상을 차리는데 이렇게 말하는 남편이 얄미운 것도 당연하죠. 더욱이 우리 문화에 ‘처가나 외가 벌초를 안 한다’는 룰은 전혀 없습니다. 어떤 일을 대충할 때 ‘처삼촌 묘 벌초하듯 한다’는 속담이 있죠? 마음은 없을지 몰라도 그만큼 예전엔 처삼촌 벌초를 많이 했다는 방증입니다. 유교가 들어오기 전 한국은 처가살이 문화였습니다. 심지어 조선시대 문헌에도 퇴계 이황 선생이 장인어른의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벌초 방식을 두고 부모와 자식 세대가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얼마 전 직장인 김정현(가명·36) 씨는 벌초 때문에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녹다운이 됐다더군요. 김 씨 어머니는 벌초 대행은 불효라며 “네가 안 하면 내가 직접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답니다.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벌초 날짜를 잡아 며느리랑 손주의 대동을 명했다는 겁니다. 이에 아내는 “벌도 있고 뱀도 있는 땡볕 산에 왜 세 살짜리를 데려가야 하느냐”며 버텼대요. 이런 갈등, 요즘 흔하죠. 이건 서로 이해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 세상 부모님들, 요즘 젊은이들이 워낙 바쁘기도 하지만 초보에게 벌초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예초기가 워낙 무겁고 위험해 하루 종일 벌초를 하고 나면 다음 날 팔이 덜덜 떨려 숟가락질도 못해요. 벌에 쏘이는 사고도 많고요. 그래서 벌초 대행이 이제는 일반화됐어요. 지난해 농협·산림조합의 대행 건수만 5만5000건에 달해요. 5년 전의 2배예요. 사설 업체도 500곳이 넘어요. 벌초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가족이나 문중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해요. 선산 일부를 팔거나 돈을 모아 묘를 개장한 뒤 가족 납골당을 만들거나, 관리를 대신 해주는 공원묘지로 옮기는 거죠. 우리 문화에서 가장 큰 불효는 ‘묵뫼’(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거칠게 된 묘)를 만드는 건데, 앞으로 상당수 묘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농촌에 젊은이가 없어 벌초 대행도 오래 못 가요. 앞으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잘 의논해 공원묘지 안에 가족 단위로 조성이 가능한 선산 형태의 장지를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국토 관리의 숙제인 ‘무덤 산’이 줄어들어요. 화장(火葬) 문화가 일반화된 만큼 자기 집 화단이나 자투리 땅 등 가까운 곳을 장지로 활용하는 것도 좋아요. 일본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요. 어차피 죽음은 삶의 일부니까요.임우선 imsun@donga.com·유원모 기자 <도움말 주신 분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박복순 전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사무총장 △박종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 △방동민 성균관 석전대제보존회 사무국장 △이필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 △정혁인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정책기획부장 △농협중앙회 △산림조합중앙회 △벌초대행업체 H사, M사}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대인 ‘한국광복군’에 있다는 학계의 연구가 나왔다. 17일은 제78주년 한국광복군 창설 기념일이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근현대사연구’에 실은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 어디서 찾아야 하나’라는 논문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한 교수는 “대한민국 건군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한국광복군 출신 대원들이었다”며 “일본군 출신이 주도했다는 등의 잘못된 사실과 오해를 불식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국군의 창설은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부터 미국 군정의 주도하에 시작됐다. 당시 ‘뱀부 계획(Bamboo Plan)’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건군 작업은 그해 11월 미 군정 법령 제28호를 통해 국방부 격인 ‘국방사령부’를 설치하고, 이듬해 1월 15일 군사조직인 ‘조선경찰예비대(남조선국방경비대)’를 만들면서 구체화됐다. 당시 건군 과정에 참여한 우리나라의 인사들은 국방사령부의 명칭을 조선시대 말 군사 조직이었던 통위영에서 따와 ‘통위부(統衛府)’로 바꿔 불렀다. 주목할 점은 건군 과정에 참여한 인물들이다. 미 군정은 통위부의 수장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모총장을 지낸 유동열(1879∼1950)을 임명했다. 당시 유동열을 추천한 인물이 일본군 출신으로 미 군정의 군사 고문으로 활동했던 이응준(1890∼1985)이란 사실이 흥미롭다. 이응준은 “어제까지도 일본군 고급 장교 신분이었던 사람이 조국이 해방되었다 해서 표면에서 날뛴다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라며 “임시정부 요인들께서 말씀하시는 법통을 우리나라 군대로 하여금 계승하는 일이 숭고한 사명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유동열을 설득했다. 국군 양성을 책임질 조선경비사관학교에도 광복군 출신이 대거 유입됐다. 사관학교 설립 초기만 하더라도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광복군 대원들이 참여를 꺼렸다. 그러나 사관학교 교장으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편련처장을 지낸 송호성(1889∼1959) 등이 임명되면서 광복군 출신들이 국군 양성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군사권이 통위부에서 초대 국방부 장관이었던 이범석(1900∼1972)에게 이양됐다. 이범석은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장을 지낸 인물이다. 한 교수는 “광복군에서 광복군으로 군사권을 이양한 역사적인 장면으로, 건군 과정에서 광복군의 역할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현재 10월 1일로 지정돼 있는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1956년 대통령령 제1173호에 의해 국군의 날로 제정·공포된 10월 1일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육군 제3사단이 38선을 돌파해 북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짜로 알려져 있다. 한 교수는 “기념일은 정체성을 담고 있어야 하는데 10월 1일은 국군의 창설과는 연관성이 떨어진다”며 “국군의 날 변경과 관련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추석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긴 연휴에 설레면서도 한편으로 심란합니다. 벌초 때문입니다. 올해 초 돌아가신 아버지를 유언에 따라 선산에 모셨습니다. 지난 주 추석을 앞두고 생전 처음 벌초를 하러 갔죠. 차로 4시간을 달려 선산에 도착했는데, 풀이 어찌나 우거진지 산소로 올라가는 길을 못 찾겠더군요. 겨우겨우 풀숲을 헤집고 올라가서는 경악했어요. 아버지 묘는 물론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그리고 이름 모를 조상님들 묘가 온통 잡초더미로 엉망이더라고요. 도저히 혼자 벌초할 규모가 아니었어요. 외동이라 형제도 없고 연락할 친척도 마땅치 않아 막막했습니다. 벌초 대행업체에 문의하니 우리 선산 규모면 100만 원 이상 든다더군요. 어쩔 수 없이 아버지 묘만 겨우 벌초하고 내려왔는데 기분이 영 찜찜했어요. 저는 어디까지 벌초를 해야 예를 다하는 걸까요? 내년 추석이 벌써 걱정입니다. 추석 때면 집집마다 벌초 고민이 적지 않죠? 민속문화 전문가이자, 유교 전문가이자, 장례 전문가이자, 벌초 전문가인 저 ‘추성묘’가 지금부터 여러분들의 고민을 시원하게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벌초가 무엇인지 봅시다. 사실 벌초는 틀린 용어입니다. 성묘가 맞아요. ‘살필 성(省)’에 ‘무덤 묘(墓)’, 말 그대로 묘를 살핀다는 뜻이죠. 여름엔 풀도 많이 자라고 비도 많이 오잖아요. 추석 전에 친지들이 모여 조상의 묘에 우거진 풀을 뽑고 무너진 흙을 정비하던 풍습에서 유래했죠. 효심을 표하고 가족 간 정을 다질 수 있는 좋은 전통입니다. 문제는 저출산 핵가족으로 요즘은 어느 집이나 벌초할 자손이 적다는 점입니다. 친척들에게 연락해 함께 벌초할 가족공동체를 되살리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 만약 벌초 대행업체에 맡길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부모님뿐 아니라 자신이 추억을 가진 조부모나 증조부모 묘까지 벌초를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조상님들도 그 마음은 이해하실 거예요. 딸만 있는 집은 걱정이 더 많죠? 얼마 전 제가 만난 주부 한정숙(가명·41) 씨는 벌초 때매 남편과 한바탕 하셨더군요. 남편에게 친정아버지 묘 벌초를 부탁했더니 남편이 “한국 문화에선 처가나 외가의 벌초는 안하는 게 불문율”이라고 했다는군요. 자신은 매년 남편 집 제사상을 차리는데 이렇게 말하는 남편이 얄미운 것도 당연하죠. 더욱이 우리 문화에 ‘처가나 외가 벌초를 안 한다’는 룰은 전혀 없습니다. 어떤 일을 대충할 때 ‘처삼촌 묘 벌초하듯 한다’는 속담이 있죠? 마음은 없을지 몰라도 그만큼 예전엔 처삼촌 벌초를 많이 했다는 반증입니다. 유교가 들어오기 전 한국은 처가살이 문화 였습니다. 심지어 조선시대 문헌에도 퇴계 이황 선생이 장인어른의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벌초 방식을 두고 부모와 자식 세대가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얼마 전 직장인 김정현(가명·36) 씨는 벌초 때문에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녹다운이 됐다더군요. 김 씨 어머니는 벌초 대행은 불효라며 “네가 안하면 내가 직접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답니다.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벌초 날짜를 잡아 며느리랑 손주의 대동을 명했다는 겁니다. 이에 아내는 “벌도 있고 뱀도 있는 땡볕 산에 왜 세 살짜리를 데려가야 하느냐”며 버텼대요. 이런 갈등, 요즘 흔하죠. 이건 서로 이해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 세상 부모님들, 요즘 젊은이들이 워낙 바쁘기도 하지만 초보에게 벌초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예초기가 워낙 무겁고 위험해 하루 종일 벌초를 하고 나면 다음날 팔이 덜덜 떨려 숟가락질도 못해요. 벌에 쏘이는 사고도 많고요. 그래서 벌초 대행이 이제는 일반화됐어요. 지난해 농협·산림조합의 대행 건수만 5만5000건에 달해요. 5년 전의 2배예요. 사설 업체도 500곳이 넘어요. 벌초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가족이나 문중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해요. 선산 일부를 팔거나 돈을 모아 묘를 개장한 뒤 가족 납골당을 만들거나, 관리를 대신 해주는 공원묘지로 옮기는 거죠. 우리 문화에서 가장 큰 불효는 ‘묵뫼(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묘)’를 만드는 건데, 앞으로 상당수 묘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농촌에 젊은이가 없어 벌초 대행도 오래 못 가요. 앞으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잘 의논해 공원묘지 안에 가족단위로 조성 가능한 선산 형태의 장지를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국토 관리의 숙제인 ‘무덤 산’이 줄어들어요. 화장(火葬) 문화가 일반화된 만큼 자기 집 화단이나 자투리 땅 등 가까운 곳을 장지로 활용하는 것도 좋아요. 일본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요. 어차피 죽음은 삶의 일부니까요.<도움말 주신 분들>△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박복순 전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사무총장 △박종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 △방동민 성균관 석전대제보존회 사무국장 △이필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 △정혁인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정책기획부장 △농협중앙회 △산림조합중앙회 △벌초대행업체 H사·M사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유원모 기자onemore@donga.com}

“한번만 부모라 생각하시고 마음을 열어주세요.” 지난해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서진학교) 설립 관련 주민토론회에서 장애인 자녀를 둔 학부모가 무릎을 꿇고 호소한 말이다. 최근 우여곡절 끝에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합의를 이뤄냈지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거부감은 여전하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장애인은 몸이 조금 불편할 사람일 뿐 배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척추장애를 가지고도 좌·우의정을 역임한 허조(1369∼1439)나 청각장애 탓에 필담으로 대화해야 했지만 형조판서 등을 지낸 이덕수(1673∼1744)처럼 고위관료로 활약한 장애인이 적지 않았다. 이처럼 최근 역사학계에선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이 책은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활동하는 역사학자 63명이 쓴 70편의 글을 모았다. 신진학자부터 중진학자까지 참여한 이 책을 통해 한국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와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여타 역사책과 달리 현대사부터 시작해 근대-조선-고려-고대사로 이어지는 순서 역시 흥미롭다. 시간의 변화뿐 아니라 공간과 인간 등 새로운 역사해석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역사심리학의 관점에서 안창호와 이광수의 활동을 비교분석하고, 공문서가 아닌 한시(漢詩) 등 문학 자료를 통해 과거를 재구성하는 등 한국사의 최신 연구 현장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가 사적이 된다. 문화재청은 부산 서구 부민동의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관저’를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13일 밝혔다. 이 건물은 일본식과 서양식 건축양식이 섞인 2층 규모로, 1926년 경남도지사 관사로 처음 지어졌다. 1950년 8월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자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됐고 1984년부터는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활용됐다. 6·25전쟁 당시 국방·정치·외교 등의 주요 정책이 결정된 역사적 현장으로, 옛 모습이 잘 보존돼 있다. 한편 동국대 석조전(명진관)과 충남대 옛 문리과대학 건물은 각각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1958년에 지은 동국대 석조전은 고딕풍으로 좌우 대칭을 강조한 평면 구성과 석재로 마감한 외관이 특징이다. 1958년 준공된 충남대 옛 문리과대학은 건물 출입구가 정면이 아닌 오른쪽 기둥 쪽에 설치돼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