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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국빈 방문 중 인도네시아어(語)로 잘못된 인사를 한 것에 대해 “현지어 인사말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발생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문제 제기는 없었다”고 20일 밝혔다. 하지만 누적된 외교 결례에 대한 후폭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의전 실수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한두 번도 아니고 누적된 실수는 청와대의 의전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의미”라는 말이 나온다. 가장 큰 이유로 비(非)전문가의 중용이 꼽힌다. 정부 출범 이후 조한기 제1부속실장, 김종천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이 의전을 맡아 왔지만 모두 대선 캠프 출신으로, 외교·의전 분야의 경험은 없다. 대통령 국내외 행사 실무를 맡았던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역시 행사 기획 경험은 많지만 의전 분야에 몸담은 적은 없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이날 대정부 질문에서 계속된 의전 실수에 대해 “뭔가 집중력이 없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직원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가욋일’에 집중하는 것이 영향을 미친다는 말도 있다. 청와대는 지난주 문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에서도 디지털미디어소통센터 직원들을 대거 투입해 고민정 부대변인의 하루를 담은 동영상, 공식 사진이 아닌 이른바 ‘B컷 사진’ 등을 SNS에 올렸다. 돌발, 파격을 선호하는 현 청와대의 기류가 반영된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정상 행사를 준비하는 의전팀이 가장 기피하는 것이 돌발과 파격”이라며 “외교 의전은 형식을 잘 갖춰서 국격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 내외도 아닌 청와대 직원들이 밥 먹는 모습, 행사 준비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며 ‘우리가 이렇게 고생합니다’라며 홍보하는 게 맞는 일인지 내부적으로 우려가 상당하다”고 전했다. 또 수행단 규모가 한정된 상황에서 SNS 담당 인력 등이 늘어나면서 의전, 외교, 기록 등 꼭 필요한 업무를 맡는 인력이 줄어든다는 불만도 있다. 청와대는 처음으로 정통 외교 관료 출신인 박상훈 의전비서관을 최근 임명했다. 이번 동남아시아 순방에서는 박 비서관이 아닌 조 부속실장이 문 대통령 옆에 탔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옆자리는 부속실장이 타고, 의전비서관은 바로 뒤에 있는 차를 탄다"고 설명했다. 여권 관계자는 “외교부의 뿌리 깊은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청와대의 기류가 의전 프로토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며 “계속된 의전 결례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의전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탁 전 선임행정관의 후임에 홍희경 전 MBC C&I 부국장(49)을 임명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홍 선임행정관은 MBC 자회사인 C&I에서 이벤트 PD 등으로 일하며 공연 전시 축제 등 각종 행사를 기획·연출했다.한상준 alwaysj@donga.com·신나리 기자}
정부가 남북 경협을 위해 개발도상국에 대한 무상 공적개발원조(ODA) 방식까지 검토하는 것은 하노이 합의 결렬 이후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을 비핵화 궤도에 묶어 두고 북-미 간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겠다는 의도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압박 속에 남북 경협을 위한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 지금까지 논의되지 않았던 ODA 방식으로 북한 비핵화를 이끌 유인책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 실제로 정부 여당은 지난해 비핵화 대화 분위기가 이어지자 북한의 경제개발 사업을 위한 재원 조달 방식과 법률적 검토 작업을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은 ODA 방식으로 북한을 지원하면 일회성 지원에서 탈피해 지속 가능하고 효과적인 지원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무상 ODA 방식의 대북 지원은 여러 법적, 정치적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현행법상 ODA 대상인 개도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의 개발원조위원회가 지정한 ‘국가’인데 헌법상 영토조항과 남북교류협력법 등을 감안하면 북한을 ODA의 지원 대상 국가로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지난해 8월 ‘남북 간의 거래는 민족 내부의 거래’로 규정한 남북교류협력법을 ODA에는 적용하지 않도록 해 ODA 방식 대북 지원의 법적 근거가 될 국제개발협력기본법 개정안까지 발의한 상태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북 ODA 사업 추진은 걸림돌이 여러 가지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국제개발협력기본법 개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개별 사업별로 통일부 장관의 사업 승인, 사업인력 방북과 북한 주민 접촉, 물품의 반출·반입 등 개별사업 추진 전 과정에 걸쳐 통일부 장관의 추가 승인도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무상 ODA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망을 흔들 수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등 국제사회의 우려를 넘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해 남북협력기금 800만 달러(약 90억3300만 원)를 의결했지만 대북제재 기조를 완화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의식해 아직 집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장관석 jks@donga.com·신나리 기자}

외교부 산하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무상 공적개발원조(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형태로 대북 지원에 나서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식량 등 일시적인 대북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농업개발 등 체계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 ‘하노이 노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빅딜과 ‘토털 솔루션’을 강조하며 남북 경협을 통한 대북제재 이완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핵화 해법을 놓고 한미 간 간극이 더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올해 정부의 총 ODA 규모는 3조2003억 원이다. 19일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실에 따르면 코이카는 12일 작성한 ‘대북 무상 ODA 연구계획안’ 문건에서 “국내외 대북 ODA 동향 및 방식과 독일 사례를 종합해 향후 무상 ODA를 통한 코이카의 실질적인 대북 지원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며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연구 용역을 제안했다. 용역비 4360만 원이 투입돼 올해 8월 완료 예정인 이 연구는 △대북 개발 원조 효과성 제고 △코이카의 구체적 지원 방식을 제시하는 게 주제다. 코이카는 ODA 연구계획안에서 “단순 지원이 아닌 ODA 방식은 ‘북한 개발 협력’으로 전환돼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다”며 “교육 보건 의료 및 식량난 극복을 위한 농업개발 환경 지원은 (단순한) 경제적 지원보다 큰 효과가 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북-미가 하노이에서 대북제재 완화 이슈를 놓고 충돌한 뒤 비핵화 대화 이탈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무리하게 ODA 방식까지 동원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망을 흔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상 ODA 방식은 ‘남북한 간 거래는 국가 간 거래가 아닌 민족 내부 거래로 본다’는 남북 교류협력법률과도 상충한다. 이종명 의원은 “대북제재 국면에서 대북 ODA 사업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실질적 비핵화는 없는 상황인데도 정부가 북한 지원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장관석 jks@donga.com·신나리 기자}
2015년 5월 4일, 주시카고 총영사관은 불법체류 중이던 우리 재외국민 S 씨가 이틀 전부터 관내 교도소에 구금돼 있다는 사실을 미국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통보받았다. 그러나 총영사관은 구금 사유를 파악하지도, S 씨에 대한 면담을 진행하지도 않았다. 아무런 보호조치를 받지 못한 S 씨는 결국 석 달 뒤 강제 추방됐다. 네덜란드에서도 유사 사례가 발생했다. 지난해 8월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은 주재국 법무부로부터 절도 혐의로 적발된 A 씨에 대해 구금 사실을 통보받았지만 인적 사항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1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재외공관 예산집행 및 공관원 복무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과 2017년 매년 한 차례 개최하는 공관장회의 참석을 전후해 재외공관장 10명이 외교부 장관의 허가도 받지 않은 채 무단으로 국내 또는 제3국에 추가 체류했다. 이 가운데 3명은 무단 휴가를 내거나 본인이 직접 ‘셀프 결재’해 휴가를 떠났다. 대사나 총영사들이 공관장회의를 전후해 앞뒤로 휴가를 붙이는 관행이 있지만 회의 기간이 아닌 때에 공무 외 목적으로 체류할 경우엔 반드시 외교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A 총영사는 공관장회의 후 부임지로 귀임하면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연가 신청 없이 나흘간 체류했고 B 대사는 회의가 끝난 뒤 허가 없이 국내에 이틀 더 머물렀다. 한편 주후쿠오카 총영사관과 주호찌민 총영사관은 입국 금지 또는 거부 대상인 사증발급 규제자 4명에게 관광비자와 결혼비자를 내 주기도 했다. 주상파울루 총영사관은 현지 검찰에서 횡령 및 돈세탁 혐의로 기소한 주지사를 명예영사로 임명한다고 외교부 본부에 통보하기도 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위를 헌법상 국가수반으로 명시하기 위해 개헌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을 내놨다. 태 전 공사는 17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김정은이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현상은 북한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이라며 “다음 달 초 열릴 제14기 1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을 새로운 직위로 추천하고 이와 관련한 헌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앞서 조선중앙TV는 12일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 당선자 687명을 발표하면서 김 위원장 이름을 빼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최고지도자가 대의원에서 빠진 것은 북한 정권 수립 이래 처음이다. 현재 북한의 최고 통치자는 김 위원장이지만, 헌법상 대외적인 국가수반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다. 태 전 공사는 김 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명시하려는 것에 대해 “향후 다국적 합의로 체결될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에 서명할 김정은의 헌법적 직위를 명백히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공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영남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직은 폐지함으로써 1970년대 김일성의 주석제를 다시 도입하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8일 미국이 단계적으로 대북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해 다시 한번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과 유엔 대북제재 중 핵심 5개를 맞교환하자는 북한의 제안에 “완전한 비핵화 후 대북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강 장관의 발언은 청와대가 전날 빅딜과 스몰딜의 중간인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한 수준의 합의)’과 ‘조기 수확(early harvest)’ 개념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한미 간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대북제재 단계적 이행방안 미 측 입장” 강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북제재 해제의 단계적 이행방안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후에도 살아 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이수혁 의원의 질의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 의원이 재차 “단계별 상응조치에 제재완화도 포함됐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강 장관은 앞서 같은 당 추미애 전 대표와의 질의응답에선 “미국 측도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진다면 완전한 제재 해제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며 사뭇 다른 말을 했다. 강 장관의 이날 발언은 단순 실언일 수도 있지만, ‘빅딜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측이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2차 하노이 정상회담 전의 미국 입장과 섞여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혼동을 빚은 것으로 이해한다”고 평가했다. ○ 비핵화 해법 두고 남북미 ‘동상삼몽’ 강 장관의 발언처럼 한국 정부가 하노이 회담 후 내놓는 해법과 제안들이 남북미의 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가 17일 내놓은 비핵화 대화 재개 해법인 ‘굿 이너프 딜’과 구체적인 접근 방식으로 제시한 ‘조기 수확’이 대표적이다. 이는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영변 핵시설을 포함한 모든 핵시설 폐기는 물론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전체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괄하는 합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북-미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절충점을 찾자는 것. 미국이 주장하는 ‘토털솔루션’ 대신 북-미가 합의할 수 있는 비핵화 및 상응조치부터 먼저 결과물을 내놓으면서 신뢰수준을 높여 비핵화를 달성하자는 얘기다. 청와대는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반영해 완전한 비핵화 과정을 잘게 쪼개는 대신 크게 2, 3개 단계로 나눠 합의하는 방식을 내세웠다. 문제는 북-미가 이를 받아들일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비핵화 로드맵’ 합의를 위해선 핵시설의 포괄적 신고 계획이 포함돼야 하지만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이상의 조치는 내놓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일각에선 조기 수확 개념에 대한 미국 조야의 거부감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기 수확은 2005∼2007년 6자회담 당시 미국이 북한에 제안했던 방식이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청와대가 제시한 ‘조기 수확’은 현 상황에선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입장에서도 초기 조치로 핵무기, 핵물질 반출 등 뒷단계에 있는 조치를 앞으로 당기는 식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평가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문병기·한기재 기자}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위를 헌법상 국가수반으로 명시하기 위해 개헌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을 내놨다. 태 전 공사는 17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김정은이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현상은 북한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이라며 “다음달 초 열릴 제 14기 1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을 새로운 직위로 추천하고 이와 관련한 헌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앞서 조선중앙TV는 12일 제14기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선거 당선자 687명을 발표하면서 김 위원장 이름을 빼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최고지도자가 대의원에서 빠진 것은 북한 정권 수립 이래 처음이다. 현재 북한의 최고 통치자는 김 위원장이지만, 헌법상 대외적인 국가수반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다. 태 전 공사는 김 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명시하려는 것에 대해 “향후 다국적 합의로 체결될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에 서명할 김정은의 헌법적 직위를 명백히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공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영남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직은 폐지함으로써 1970년대 김일성의 주석제를 다시 도입하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북한이 “핵·미사일 발사 재개를 조만간 결단할 것”이라는 폭탄 선언을 내놓으면서 북-미가 ‘하노이 결렬’ 2주 만에 양보 없는 ‘강(强) 대 강’ 대치 국면에 들어섰다. 북한은 ‘날강도’ ‘기이한 계산’ 등 미국을 향한 말 폭탄을 쏟아내며 비핵화 협상 전면 중단은 물론이고 핵·미사일 도발 재개로 비핵화 협상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새로운 길’에 나설 수 있다며 반격을 한 것. 특히 모든 핵무기·핵시설 폐기를 전제로 한 미국의 ‘빅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미국의 대응에 따라선 비핵화 협상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빅딜’ 압박에 핵·미사일 실험 재개 경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15일 오전 평양 주재 외교관과 외신 기자를 대상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15개월 중단한 데 대한 상응조치를 미국이 취하지 않으면 대화를 지속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최 부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께서 조만간(a short period of time) 핵실험·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유예)과 외교적 대화를 지속할지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핵실험·미사일 발사 중단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3월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며 내놓은 약속. 당시 김 위원장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재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빅딜’ 요구를 철회하지 않으면 사실상 대화 파기로 보고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하겠다는 것. 최 부상은 이날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미국과 타협할 의도도, 이런 식의 협상을 할 생각이나 계획도 결코 없다”고 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귀국길에 ‘우리가 이런 기차여행을 왜 해야 하느냐’고 했다”며 “미국의 날강도 같은(gangster-like) 태도는 결국 상황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했다. 북한이 미국의 비핵화 요구를 ‘날강도’라고 비난한 것은 지난해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3차 방북 이후 8개월 만이다.○ 김정은 성명 예고하면서도 협상 여지는 열어둬 김 위원장의 공식성명 발표도 예고됐다. 성명의 내용과 형식은 밝히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 구상이 담길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대응을 지켜본 뒤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단계적으로 긴장 수위를 높이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다만 북한 특유의 ‘블러핑(엄포)’ 전략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이 대화의 판을 깨지 않으면서 미국에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얘기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김 위원장 공식성명이 바로 발표된 게 아니라 최 부상의 예고로 그친 건 아직 방향성이 결정된 건 아니라는 뜻”이라며 “실은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잠정 중단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면서도 “대화 판은 깨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부상은 이날 폼페이오 장관과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 “불신과 적대적인 회담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비난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두 최고지도자의 관계는 매우 좋다”며 정상 간 협상 여지를 남겨뒀다.○ 북-미 대치 장기화되나 하지만 북한이 예상밖의 강수를 두면서 북-미 대치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미가 기 싸움을 넘어 김 위원장이 모라토리엄을 접겠다고 밝히게 되면 상황은 장기적으로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도 “현재로선 대화의 틀을 깨는 수순이라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북한 입장에선 강 대 강 대치가 장기화될수록 도발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계산된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영변 핵시설에서 무기급 플루토늄(Pu) 생산을 재개해 영변이 여전히 북핵 핵심시설이라는 점을 과시하려 하거나, 민간 위성발사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과시하려 할 수 있다는 것. 아예 실체가 공개되지 않은 신형 ICBM인 ‘화성-13형’ 발사를 시도해 충격 효과를 도모할 수도 있다. 청와대는 “진의 파악이 우선”이라며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한 중재 의지를 강조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캄보디아 총리와의 정상회담 도중 (기자회견 내용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며 “국가안보실에서도 (최선희가) 정확하게 무슨 발언을 했고, 그 발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각도로 접촉해 진의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목적지까지 도달해 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도 있고 어려움과 난관도 있지 않겠느냐”며 “(남북) 물밑 접촉은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 프놈펜=한상준 기자}

“한국 정부가 북-미 사이에서 해야 할 것은 중재가 아닌 촉진(facilitating)이다. 성공적인 ‘중매쟁이’가 되려면 이젠 빠져나와야(get out of the way)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 중 한 명인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사진)은 12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하노이 노딜 이후 한국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종연구소와 CFR의 ‘서울-워싱턴 포럼’ 참석차 방한한 그는 우리말로 ‘중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한국이 메신저가 될 순 있겠지만 중재자가 되려고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원인에 대해 “북한도 오판했고, 미국도 오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국내 정치 문제로 자신들과의 거래에 매우 절박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만나 보니 트럼프 대통령은 절박하지 않았다. 미공개 핵시설까지 구체적으로 요구했으니 더욱 놀랐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역시 실무협상에서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둘러싼 북-미 간의 확연한 입장 차를 확인했지만 두 정상이 그걸 채울 수 있다고 기대했다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스나이더 연구원은 “북한도 미국도 오판했지만 하노이 회담의 주목할 만한 결과 중 하나는 회담에 앞선 한국 정부의 (상황) 평가가 정확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한국 정부는 하노이 회담 결과로 대북 제재 면제(exemption)를 예상했지만 사실상 제재 해제(removal)를 원했던 북한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하반기 한때 성사될 것으로 거론됐던 종전선언도 남북미 간 입장이 명확히 전달되지 않아 좌절됐다고 덧붙였다. ‘일괄 타결’을 앞세운 미국의 대북 기조가 바뀐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지금 미국의 비핵화 입장은 진화(evolution)를 거치고 있다”고 답했다. 합리적 성향의 대화파 인사로 분류되는 스나이더 연구원은 “톱다운은 비록 실패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는 실무협상을 조속히 열어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노이 회담 결렬도 길게 보면 양측의 관계가 성숙해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감사원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적 사용 의혹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려 “청와대 면죄부 감사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감사원이 13일 공개한 ‘업무추진비 집행실태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대통령비서실이 공휴일과 주말, 심야(오후 11시 이후) 등 이른바 ‘사용제한 시간’에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총 2461건이다. 감사원은 전수조사를 통해 영수증과 증빙서류를 대조해 사용이 적정했는지, 휴일 및 심야 사용이 불가피했는지 검토했지만 “긴급 현안 대응 및 국회, 기자 등과의 업무 협의 과정에서 집행된 것이 대부분으로 사적 사용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쟁점은 크게 네 가지였다. △주점에서 사용해도 됐는지 △사용 명세 중 누락된 업종의 사유는 무엇인지 △고급 일식점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한 것은 아닌지 △영화관이나 백화점 등 사용 목적이 불명확한 곳에서 쓰인 것은 문제가 없는지 등이다. 대통령비서실이 주점에서 업무추진비를 집행한 81건의 경우 “단란주점 및 유흥주점 등 제한 업종이 아닌 집행이 허용되는 업종에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고 영수증 허위 작성 등 부당 사례도 적발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설명했다. 업종 누락 건은 ‘카드사의 시스템 오류’ 때문이라고 했다. 감사원은 일부 정부 구매 카드사가 업종 코드를 전송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대통령비서실이 1인당 9만 원부터 시작하는 고급 일식당에서 업무추진비를 쓴 사례에 대해서는 “지침을 위반했다는 기준이 없어 문제 삼지 않았다”고 밝혔다. 비서실이 건당 50만 원 이상 지불한 내역은 총 43건, 2794만 원 상당으로 파악됐다. “업무 특성상 보안 유지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손님들이 물리적으로 분리돼 있는 일식당을 업무 협의 장소로 주로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일식당에서의 집행이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청와대가 접대하는 게 아니라 업무를 추진하고 집행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감사 대상에서 제외시켰다”고 해명했다. 영화관이나 백화점에서 집행된 업무추진비도 행사 관련 티켓이나 음료, 기념품, 행사 진행에 필요한 식자재 등을 구입한 것으로 적합하게 사용됐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이 적발한 청와대 업무추진비 감사의 부당 사항은 비서실 3건, 대통령경호처 1건 등 총 4건이었고 이마저도 주의 또는 제도 개선 통보로 그쳤다. 경호처 직원들의 사우나 이용에 대해서는 사용제한 업종임에도 결제가 된 건 카드사의 잘못이라고 돌리면서 “평창 올림픽 준비 경호팀을 격려하기 위해 이용한 것으로 잘못 집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지훈 기자}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주(駐)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담벼락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타도하자는 내용의 낙서가 그려졌다. 1일 김정은 체제 전복을 기도하며 북한을 대표하는 임시정부 건립을 주장했던 단체 ‘자유조선’의 로고와 글씨도 함께 등장했다. 지난달 22일(현지 시간) 괴한 10여 명이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을 습격한 지 17일 만에 북한 외교공관이 또다시 수난을 겪은 것이다. 11일(현지 시간) 수미샤 나이두 채널뉴스아시아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정남 암살사건 재판 재개와 한국 대통령 방문을 앞둔 상황에서 일어난 일로 지난밤에 처음 포착됐다”며 영상과 사진 2장을 올렸다. 사진에는 ‘자유조선 우리는 일어난다!’ ‘김정은 타도 련대(연대) 혁명’ 등이 공관 외벽에 파란 글씨로 크게 쓰여 있고 위쪽으로 향하는 화살표를 그린 자유조선 마크도 선명하다. 이날 오전 4시 57분경에는 자유조선 홈페이지에 ‘쿠알라룸푸르 용기’라는 제목으로 “조용히 자유를 갈망하는 지금은 비록 외롭습니다. 그러나 용기로 인하여 한 명 한 명 우리는 만나게 될 것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자유조선은 2017년 2월 암살당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을 구출해 보호했다고 주장해온 ‘천리마민방위’가 이름을 바꾼 단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정부가 이르면 다음 달 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8일 정식 서명한 10차 방위비 분담금 협상액(1조389억 원)을 한미 양측의 서면 합의로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1+1’안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분담금 총액부터 원점에서 새롭게 협의해야 하는 11차 협상 개시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 총액부터 원점에서 다시 협상할 듯 복수의 정부 소식통은 10일 “다음 달 초 10차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국회 비준 동의를 받고 발효되면 곧바로 차기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11차 협상팀의 규모는 물론이고 협상 개최 시기나 운영 방식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0차 협상팀을 진두지휘했던 장원삼 외교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가 물러나고 신임 협상특별대표가 임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도 티머시 베츠 협상대표의 대표직을 연장할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협상 개시는 두 정부가 새 협상팀을 언제 꾸리느냐에 따라 한두 달 순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차기 협상의 핵심 쟁점은 우리가 내야 할 분담금 총액이다. 미국의 끈질긴 증액 요구와 정부의 반발로 11개월의 진통 끝에 10차 분담금을 겨우 정했지만 미국은 벌써부터 내년도 방위비 분담금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수준에서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향후 동맹국들에 전체 미군 주둔 비용보다 50% 증액된 금액을 부담하게 하는 방안을 구상했다고 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른바 ‘주둔비용 플러스 50’이라고 부르는 공식은 그가 참모들과 사적인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동맹국들이 자국 방어에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는 ‘최대의 청구(maximum billing)’ 차원에서 나온 것이지 공식 정책 제안은 아니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일부 당국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주둔비용+50’ 공식은 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을 압박하는 주요한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WP는 “내년에는 한국이 ‘주둔비용+50’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청구’ 전략에 부딪힐 첫 번째 동맹국으로 한국을 꼽았다. ‘주둔비용+50’ 공식을 적용하면 현재 우리 정부의 분담액이 대략 전체 주한미군 주둔비의 절반으로 추산되는 만큼 1조389억 원에서 2배인 전체 비용에 또다시 1.5배를 곱한 3조1167억 원짜리 청구서를 받아 들 수 있다.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관한 워싱턴 풍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이 새 협상을 앞두고 검토(review)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전체 주둔 비용의 150%를 협상 출발점으로 삼게 되면 깎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익명의 외교 소식통은 “11차 협상이 또 올해 말까지 타결되지 않으면 막판에 1조389억 원의 1년 연장 카드를 쓸 수 있다는 건 워싱턴 기류와는 무관한 희망이 담긴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전략자산 전개 비용 부담 요구 일단 11차 협상이 개시되면 미국이 내놓을 분담금 총액을 깎을 수 있는 촘촘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중 ‘작전지원’ 항목 신설 요구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지난해 10차 협상 과정에서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우리에게 일부 부담하게 하려고 이 항목을 신설하려 했다가 철회했다. 정부가 “미군 주둔경비를 분담하는 방위비 분담금 협정 취지와 목적에 맞지 않다”며 강경하게 반대한 결과다. 현재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이 부담하는 몫으로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각종 미군기지 내 건설비용, 군수지원비 등의 명목으로 쓰인다. 하지만 올해 독수리훈련처럼 핵추진 항공모함, 전략폭격기 등을 전개하는 대규모 연합훈련이 폐지 및 축소된 만큼 전략자산 전개에 따른 ‘별도 추가 비용’을 또다시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준비와 불안한 북-미 관계도 분담금 증액 변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이 도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증액 욕구를 부추길 수 있다. 한편 미 행정부는 11일 7500억 달러(약 852조7500억 원)에 달하는 2020년 회계연도 국방예산을 공개한다고 CNN 등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여기에는 기본방위예산(5440억 달러)과 해외 비상운영예산(1640억 달러), 국경장벽 건설 등 긴급자금(90억 달러)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국방예산은 올해 예산보다 4.5% 늘어난 것이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문재인 대통령이 공석인 주중 대사에 장하성 전 대통령정책실장, 주일 대사에 남관표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을 내정한 것으로 4일 알려졌다. 주러시아 대사에는 ‘러시아통’ 외교관인 이석배 주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가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전문성보다는 청와대의 코드 인사라는 비판도 나온다. 장 전 실장은 소득주도성장 전도사로서 현 정부의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게 주된 발탁 요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실장이 중국 런민대, 상하이 푸단대 교환교수를 지냈고,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 국제자문위원을 8년간 지낸 경험도 감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장 전 실장은 전임 대사였던 노영민 현 대통령비서실장처럼 중국어를 잘 모르고 외교 경험도 없다. 이수훈 주일 대사의 후임으로 낙점된 남 전 차장은 위안부 문제와 초계기 갈등 등으로 악화일로인 한일 관계를 관리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하지만 남 전 차장은 1990년대 주일 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한 게 일본과 사실상 유일한 인연이다. 이 때문에 일본 측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남 전 차장의 대사 지명으로 한일 관계를 복원시킬 의사가 별로 없는 것 아니냐는 시그널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석배 총영사는 주카자흐스탄 대사관, 주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 등 러시아어권 공관에서 10여 년을 근무한 외교부 내 최고의 러시아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정부는 4일 주유네스코 대사에 김동기 현 주미 공사, 주시드니 총영사에 홍상우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 주시카고 총영사에 김영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주호놀룰루 총영사에 김준구 국무조정실 외교안보정책관을 각각 임명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하노이 회담의 성과 중 하나라면 최선희가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가 결렬된 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사진)을 두고 외교가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있다. 최선희는 회담 후 대단히 이례적으로 하노이에서만 3차례 기자들을 만났다. 회담 결렬 직후인 1일 0시 15분 ‘심야 회견’을 시작으로 1일 오후, 다시 2일 오전 잇달아 미국 측을 작심 비판한 것. 특히 “조미(북-미) 거래에 의욕을 잃지 않으시나 하는 느낌” “생각이 좀 달라지신다는 느낌”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심기까지 공개한 것은 김 위원장의 승인이 없다면 불가능한 대목. 핵 담판이 어그러지자 최선희가 사실상 북한의 대변인을 자처한 셈이다. 최선희가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북측 실무대표 자리를 김혁철 대미특별대표에게 넘기면서 핵심에서 밀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과의 북핵 협상이 어렵고 복잡해질 때마다 해결사로 나섰던 최선희가 ‘하노이 노딜’ 이후 다시 전면에 나서면서 이런 관측도 없던 일이 됐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최선희가 대미 협상의 산증인인 만큼 미국을 제일 정확하게 보고 누굴 건드려야 하는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을 북한이 내세운 것”이라고 평가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1일 새벽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요구한 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의 일부 해제였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면 해제 요구” 주장을 반박했다. 리용호는 “유엔 제재 총 11건 중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5건을 먼저 해제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5개 제재가 석유 수입 제한이나 석탄, 철광석 금수 조치 등 북한의 핵심 경제 봉쇄 요소들을 담고 있어 사실상 경제 제재 전부를 풀어 달라고 요구한 것과 다름없다는 게 중론이다. ○ 제재 5건이 북한 경제 봉쇄의 핵심 리용호가 언급한 2016년 이후 제재 5건은 기관 및 개인에 대한 제재(2356호)를 뺀 2270, 2321, 2371, 2375, 2397호로 추정된다. 안보리가 북한의 도발 강도에 비례해 제재 강도를 높였기 때문에 고강도 제재들이 이 시기에 집중돼 있다. 북한이 4, 5,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 등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자 안보리는 북한산 석탄 철광석 수산물 수출을 전면 금지했고(2371호), 북한에 사상 첫 원유 공급 제한과 석유제품 금수, 해외 노동자 신규 허가 금지 조치(2375호)를 결정했다. 2017년 12월 가장 마지막으로 통과된 결의 2397호는 북한산 식품과 농산물, 전기장치의 수출을 금지해 사실상 북한의 주요 수출 품목을 다 막았다.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중 하나인 해외 북한 노동자들도 올해 말까지 모두 귀환시켜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대북제재는 북한의 수출을 틀어막아 경제적 고립을 가져오는 데 의의가 있다. 경제 제재 중 수출 관련 제재가 가장 먼저 도입된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의 외화벌이를 줄이고 나아가 국내 산업 생산을 위축시켜 돈의 순환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게 하는 것.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달 발표한 대북 경제 제재 분석 보고서에서 “가장 마지막 제재인 2397호가 완전히 작동할 경우 제재 이전보다 북한 수출액이 90% 이상 감소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정부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기본적으로(basically)’ 북한이 대북제재 전면 해제를 요구했다고 말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며 “제재 결의 숫자로는 북한의 말처럼 ‘일부’가 맞으나 제재의 효과 측면에서 보면 북한 경제의 95%를 틀어쥐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 제재 해제부터 시작하자는 북한, 미국은 “No” 대북제재 해제 시점과 기준을 둘러싼 북-미 간 인식 차도 하노이 선언의 결렬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리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일부 대북제재를 해제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미국 전문가 참관 아래 영변 핵물질 시설 영구 폐기 △핵·미사일 실험 영구 중단을 약속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완전한 비핵화로의 노정에는 반드시 이런 첫 단계 공정이 필요하다”며 제재 해제가 비핵화 논의의 입구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영변+α, 즉 다른 지역의 핵시설 폐기까지 요구한 미측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필리핀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일 “(북한이) 이 제재들은 미국의 제재가 아니라 모든 국가가 찬성표를 던진 유엔 안보리의 결의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북한의 비핵화 실행 조치 제안들이 충분치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1일 오후 기자들을 만나 “유엔 제재들은 (미사일 발사 등) 그런 행동이 행해지지 않는 경우엔 해제하도록 되어 있다”며 “15개월간 계속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있는데 유엔 제재를 해제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응당 (해제) 프로세스가 진행되어야 할 유엔 제재들이 (우리가) 영변 핵 폐기를 해도 안 된다고 이러니까 이런 계산법이 혼돈이 온다”고 말했다.하노이=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유엔 (대북)제재 총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결의된) 5건을 먼저 풀어 달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1일 새벽 밝힌 요구사항에는 다소 ‘낯선’ 숫자들이 등장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총 결의 개수가 널리 알려진 10개보다 1개가 더 많다. 민생 경제와 관련된 부분이라고 한정했지만 2016년 이후 2017년 12월까지 채택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도 5개가 아닌 6개다. 북한의 이런 ‘기묘한 계산법’에는 어떤 의도가 숨어 있을까.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북한이 ‘제재 11개 중 5개를 풀라’고 한 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제재 숫자보다 분모를 키우고, 분자를 줄인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미국에 요구한 유엔 대북제재 요구가 “숫자로 보면 그리 과한 수준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려 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유엔 대북제재는 북한의 1차 핵실험 후 2006년 10월 통과된 1718호를 기점으로 세기 때문에 총 10건으로 통용된다. 그런데 북한은 1718호보다 3개월 앞선 그해 7월 결의된 1695호를 포함시켜 세고 있다.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 직후 내려진 미사일 관련 물자 및 기술 이전 금지 결의이지만 강제성이 없어 제재 총 건수에서 제외돼 왔다. 북한이 우선 해제를 요구한 민생경제 관련 제재 ‘5건’은 숫자로 보면 10개든 11개든 절반 수준이지만 석유 수입과 석탄 수출 등을 제한하는 핵심적 경제 제재들이 담겨 북한 경제의 숨통을 직접 죄는 것들이다. 5건 외에 다른 유엔 대북제재들은 경제 제재라기보단 미사일 도발 등을 직접 규제한 것이라서 북한 경제를 옥죄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요구한 것은 사실상 대북제재를 전면적으로 풀라는 말과 다름없다”고 평가했다.하노이=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북-미 정상의 ‘하노이 노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북한이 이례적으로 심야 기자회견을 열어 반박하고, 이를 미 국무부가 재반박하자 다시 북한이 반박하면서 협상 무산의 책임을 놓고 북-미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것.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리용호 북한 외무상 등 북-미 외교수장이 상대방의 협상 카드를 공개하는 폭로전 양상까지 보이면서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리 외무상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1일 0시 15분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긴급 회견을 열고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 유엔 제재결의 총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 중 민수경제,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만 먼저 해제하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전면적인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는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 리 외무상은 또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 핵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라며 미국에 제안한 비핵화 조치 내용을 공개했다. 미국은 곧바로 재반박에 나섰다. 하노이 회담을 마치고 필리핀을 방문 중인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은 기본적으로 전면적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국무부 고위 관계자도 브리핑에서 리용호의 제재 관련 언급에 대해 “이런 말들은 말장난(parsing words)”이라고 일축한 뒤 “북한이 우리에게 제의한 것은 영변 핵시설의 일부(a portion)였다”고 밝혔다. 그러자 최선희는 이날 오후 또다시 하노이에서 기자들과 만나 “왜 미국이 이런 거래 방식을 취하는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의아함을 느끼고 계시고 (비핵화 협상에 대해) 생각이 좀 달라지신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런 회담을 계속해야 될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앞서 최 부상은 새벽 회견에선 “위원장 동지(김 위원장)께서 이런 조미(북-미) 거래에 대해 좀 의욕을 잃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다만 북-미가 대화의 판 자체를 뒤엎을 정도로 충돌을 이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아직은 더 많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담판 과정에서 김 위원장에게 “더 통 크게 하라(go bigger). (완전한 비핵화 조치에) 올인해라. 우리도 마찬가지로 올인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국무부 관계자가 1일 전했다. 김 위원장은 2일 오전 특별열차로 귀국길에 오른다.하노이=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 전채은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에 억류됐다가 2017년 6월 식물인간 상태로 미국으로 송환된 뒤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웜비어 사건에 대한 김 위원장의 입장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 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과 웜비어 사건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며 “김 위원장은 ‘사건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지만 (웜비어 사건을)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사람이 감옥, 수용소에 있다 보니 일일이 모른다. 김 위원장은 구체적인 인물에 대해 몰랐다”고 덧붙였다. 이날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확대 정상회담 과정에서 한 기자로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인권 문제도 논의하고 있느냐”는 ‘돌직구’ 질문도 받았다. 공식적인 기자회견도 아닌 상황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질문이 튀어나오자 배석한 북측 인사들 면면에 당혹감이 흘렀다. 김 위원장의 통역 담당인 신혜영 통역사는 질문을 듣고 잠시 멈칫했고, 김 위원장은 통역까지 듣고 나서도 못 들은 척하며 답하지 않았다. 이를 본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인권을 포함해) 모든 것을 다 논의하고 있다”며 수습에 나섰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이제 기자들 내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하노이=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가진 두 번째 핵 담판이 결렬됐다. ‘영변+α’와 대북제재 전면 해제를 둘러싼 줄다리기 끝에 정상회담이 파행된 것. 지난해 싱가포르 1차 회담 후 비핵화 진전을 위한 261일간의 협상 노력이 무산되면서 한반도 정세는 다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28일(현지 시간) 오전 하노이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확대 정상회담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예정돼 있던 오찬과 공동합의문 서명식을 취소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회담 시작 4시간 반 만이다. 합의 무산 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선언문이 준비돼 있었지만 (서명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언제라도 회담장을 박차고 나올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제재 문제 때문에 (합의가) 결렬됐다. 북한은 전면 제재 완화를 원했지만 미국은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영변이 대규모 핵시설인 것은 분명하지만 영변 해체만으로는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영변 외의) 고농축 우라늄 시설과 기타 핵 시설에 대한 해체도 필요했지만 김 위원장은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했다. 북한에 우라늄 농축시설 등 모든 핵시설 폐기와 포괄적 신고 등 ‘영변+α’ 조치를 요구했으나 김 위원장이 거부해 합의가 결렬됐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 후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타고 워싱턴으로 떠났다. 북-미 정상은 이날 회담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독회담 모두발언에서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no rush)”고 5차례에 걸쳐 강조하며 장기전을 예고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우리에겐 시간이 제일 중요하니까”라며 조속한 대북제재 완화를 촉구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은 동력이 급속히 떨어지게 됐다. 특히 현대 외교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정상회담 합의 결렬로 북한이 고수해 온 정상 간 ‘톱다운(Top-down)’ 방식의 협상도 당분간 적용하기 어렵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오래 시간이 지나야 될 수도 있다. 조만간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귀국길 기내에서 취재진에 “북한과 다음 실무협상 날짜를 잡지는 않았다”면서 “양측이 조직을 재정비하기까지는 꽤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경협은 물론이고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고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대화해서 그 결과를 알려주는 등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하노이=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

2차 북-미 정상간 합의가 결렬되자 하노이 외교가에선 “며칠 전부터 불안한 시그널이 감지됐는데 현실이 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견은 명확했고 간극을 좁힐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양보 없는 치킨게임을 펼친 두 정상은 유례없는 정상회담 합의 결렬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빅딜 아니면 합의 없다” 양보 안 한 美 정상회담 직전인 28일 오전(현지 시간) 하노이에서 만난 미 정부 관계자는 “오전 8시 45분 현재 북-미가 비핵화 합의를 전혀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합의 여부는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했다”면서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비관적 전망은 5시간여 만에 현실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에서는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원했지만 저희는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비핵화 의지가 없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던 김 위원장은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내걸고 전면적인 대북제재 해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외 고농축우라늄 시설 등 모든 핵시설과 미사일에 대한 포괄적 신고와 폐기를 요구했다.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과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좁힐 수 없는 간극을 재확인한 것. 미국은 지난달 21일부터 진행된 실무협상 초기부터 ‘영변+α’에서 양보(back-down)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고 한다. 21일부터 닷새간 이어진 실무협상에서 영변 핵시설 동결과 종전선언 등 초기 조치들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도 정작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 도착한 26, 27일엔 실무협상을 중단한 이유다. 현지 소식통은 북-미 정상의 첫 대면을 앞두고 “비핵화를 어디까지 합의하느냐에 따라 다 될 수도, (기존 합의가) 모두 무너질 수도 있다”고 했다.○ 톱다운 고집하며 ‘살라미 전술’ 편 北의 오판 하노이 합의 무산을 두고 비핵화 조치를 잘게 쪼갠 ‘살라미 전술’로 나선 김 위원장의 오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 등은 지난해 9월 남북 평양공동선언과 11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당시 이미 북한이 공개한 카드다. 미국이 모든 핵시설의 폐기와 포괄 신고를 내걸면서 ‘빅딜’의 조건이 달라졌는데도 김 위원장이 영변 외 핵시설과 핵무기를 남겨두고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핵군축’ 카드를 내밀었다가 65시간 40분의 열차 행군의 소득도 없이 돌아가게 된 셈이다. 시간 부족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주도권을 유지하려던 북한은 지난해 하반기 미국의 잇따른 고위급·실무급 회담 제안에 응하지 않다가 지난달 6일에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새로운 카운터파트로 지명된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평양에서 첫 실무협상을 가졌다. 1차 실무협상으로부터 정상회담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0일로 ‘빅딜’을 추진하기엔 턱도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미 회담에 대한 불신이 커진 미국 국내 정치 상황도 합의 무산의 원인으로 꼽힌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르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한 건 북한에 좀 더 요구해 보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번엔 서명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깔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분석했다.하노이=신나리 journari@donga.com·문병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