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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들어 코스피가 뜨거운 불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개미투자자들로선 아쉬운 부분도 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움직임이 미지근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6∼8월 3개월 연속으로 순매도를 했다. 국민연금이 밀어줬으면 주가가 더 올랐을 텐데, ‘코스피 5,000 시대’도 빨리 올 텐데.‘개미 중에 좀 큰 개미’였다는 이재명 대통령도 의문을 제기했다.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연기금들은 국내 주식투자 비중이 왜 그렇게 낮으냐”며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들어도 모르겠다던 설명은 이랬다. 20∼30년 뒤에 기금 잔액이 줄어든다. 그때 현금화를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하는데 주가가 폭락할 염려가 있다. 대통령은 이상하다고 했다. “그때 안 팔기 위해 지금 주식을 아예 안 산다? 30년 뒤 일 아닌가.”“韓 주식 더 사라” 난감한 요구 이 대통령은 “국내 시장에 대한 불신 때문”일 것이라 했지만 사정이 있다. 국민연금은 2048년 적자로 전환되고, 2064년 기금이 소진된다. 먼 훗날처럼 보이지만 주식·채권 등을 팔아야 하는 시기는 훨씬 빠르다. 장부상 흑자라도 당장 이달 연금 줄 돈이 부족한 시점, 보험료 수입보다 연금 지급액이 커지는 때부터다. 2027년부터로 예상됐던 ‘보험료 수지 적자’는 다행히 3월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늦췄지만 그래 봐야 5, 6년 남았다. 장기적 관점의 적절한 ‘엑시트 플랜’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적게 사는 것도 아니다. 6월 말 현재 전체 자산 1269조2000억 원 중 14.9%인 189조1000억 원을 국내 주식으로 들고 있다. 전체 주식 중 29.8%가 국내 주식인데, 글로벌시장에서 한국의 비중이 2%도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자국 편향’이다. 이미 웬만한 대형주의 7∼10%를 들고 있는데 지분율을 더 높이면 진짜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될 판이다. 국내 주식 비중을 점점 낮추는 추세지만 투자액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전체 적립금 자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순수한 의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기자회견에서 밝힌 건 적절치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국민연금이 압박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외부의 성화에 운용 원칙을 바꾼 적이 있다. 2021년 ‘동학개미’들이 연기금의 국내 주식 매도 중단을 청와대에 청원하자 그해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보유 한도를 확대했다. 정부와 정치권도 호시탐탐 노린다. 국민연금을 활용해 기업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려 하거나, 공공임대주택이나 정책 펀드에 동원하려는 시도가 많았다.외풍 차단하고 연금 곳간 지켜야 외압을 견뎌내기엔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전문성은 취약하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정부 당연직 6명, 사용자·근로자 대표 각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등 20명으로 구성돼 있어 정부가 손쉽게 과반을 점할 수 있다. 직능대표 성격이 강해 투자 전문가도 찾아보기 힘들다. 회의록엔 “국내 노동자 돈으로 왜 해외투자를 하냐”는 등의 황당한 발언도 있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처럼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한 투자 전문가 중심으로 기금운용 지배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최근 2년도 안 돼 총리가 네 명이나 사임하고,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한 프랑스의 위기는 2023년 연금개혁을 둘러싼 갈등에서 시작됐다. 국민연금이 파탄에 이르면 한국도 피할 수 없는 혼란이다. 그런데도 4월 발족한 국회 국민연금개혁특별위원회 활동은 지지부진하다. 수익률과 구조적 안정성을 높여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을 제대로 지키는 것에 최우선 목표를 둬야 한다. 국민연금을 다른 목적을 위한 종잣돈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져선 절대 안 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속이 구린 사기꾼일수록 겉으로 보기엔 때깔이 좋은 경우가 많다. 온몸에 명품을 휘감고 좋은 차를 몰면서 성공한 사업가 행세를 한다. 그럴듯한 명함을 뒷받침하는 화려한 사무실도 운영한다. 갈취형을 벗어나 기업형으로 진화한 조폭(조직폭력배)들도 도심에 멀쩡한 사무실을 두고 있다. 경기 침체로 빈 사무실이 남아돌다 보니 싸게 빌려 범죄의 아지트로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투자사기를 전담으로 수사하는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정상적인 회사인 양 사무실을 운영하며 비상장주식 및 코인 거래, 가짜 주식 사이트 운영 등으로 투자사기를 벌인 8개 범죄단체를 검거했다. 서울 강서, 인천, 경기 고양 부천 등 역세권 및 도심지역에서 이들이 임차한 사무실만 24곳에 달했다. 서울 강서구에선 한 건물에서 두 개의 범죄조직이 연달아 적발되기도 했다. 주로 단기 임대를 활용한 ‘떴다방’ 수법을 썼다. 보증금 없이 몇 개월 치 임차료를 한 번에 미리 내는 ‘깔세’로 사무실을 빌리고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한몫 챙긴 뒤 잠적했다. ▷서울 강남의 화려한 빌딩 숲속에도 범죄의 소굴이 생겨나고 있다. 강남 테헤란로 일대를 중심으로 단기 임대 사무실을 이용한 불법 금융 다단계 행위가 기승을 부려 5월 서울시가 피해 주의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깔끔한 사무 공간과 전문 강사를 내세워 유망 스타트업처럼 꾸미고 투자한 사람들에겐 ‘센터장’, ‘지점장’ 등 직책까지 줬다. 은퇴자, 주부, 고령층 등 피해자들은 강남 한복판에 사무실을 둔 멀쩡한 회사가 사기 집단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처럼 도심 사무실을 활용한 ‘범죄 떴다방’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경기 침체와 오피스 공급 증가, 온라인 중심의 소비문화 등으로 인해 상가 공실률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안정적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건물주들은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단기 임대로 사무실을 돌린다. 올해 2분기(4∼6월) 집합상가 공실률은 10.5%로, 집계가 시작된 2022년 4분기(10∼12월) 이후 가장 높았다.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리며 한때 수익형 부동산으로 각광받던 지식산업센터는 전국에 40%가량이 공실로 남아 있다. ▷범죄 심리학에 ‘깨진 유리창’이라는 이론이 있다. 도시 변두리에 유리창이 한 장 깨진 집을 방치하면 행인들이 버려진 집으로 생각하고 돌을 던져 나머지 유리창까지 모조리 깨뜨린다는 것이다. 상가 공실을 방치하면 생활과 주거가 밀집한 도심 한복판에서 각종 범죄조직이 똬리를 틀고, 강력범죄 등 2차 범죄도 늘어날 수 있다. 트렌드에 맞게 상업시설을 리모델링하거나 주거시설로 전환하는 등 다양한 활용법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정치 분열과 양극화가 심화됐다. 몇 년 새 재정 상황이 나아질 전망이 안 보인다.” 긴축재정에 대한 반발로 내각이 붕괴되는 등 ‘국가 마비’ 위기를 겪고 있는 프랑스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12일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낮췄다. 독일 등 다른 유럽 선진국은 물론 한국(AA-)보다 낮다. 충격적인 성적표에도 재정 개혁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신임 총리는 ‘공휴일 이틀 축소’ 정책을 여론에 밀려 결국 포기했다. ▷최근 프랑스 정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는 총리가 너무 자주 바뀌어 이름을 기억할 수 없다”고 했던 제3공화국 시절을 연상케 한다. 지난해 1월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사임을 시작으로 9월 가브리엘 아탈, 12월 미셸 바르니에, 이달 8일 프랑수아 바이루 등 개혁을 추진하던 총리들이 줄줄이 물러났다. 7월 정부 지출 동결, 공휴일 이틀 축소 등으로 440억 유로(약 72조 원)를 절감하는 내년도 긴축 예산안을 내놨던 바이루 전 총리는 야당과 갈등을 빚다가 8일 하원의 불신임을 받았고, 내각은 해산됐다. ▷프랑스 정치 혼란을 부른 재정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지난해 기준 3조3000억 유로(약 5200조 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에 이른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50%대 수준이었지만 금융위기와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며 급격하게 증가했다. 에리크 롱바르 재무장관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개입 위험을 경고할 정도다. 지난해 12월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내렸고, 12일 피치에 이어 S&P도 신용등급 강등을 저울질하고 있다. ▷1시간마다 1200만 유로(약 200억 원)씩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프랑스 정치권은 ‘우리는 희생할 수 없다’며 ‘네 탓’ 공방만 하고 있다. 증세에는 우파가 반대하고, 복지 축소, 노동 개혁엔 좌파가 반대한다. “더 열심히 일해서 위기를 넘자”는 공휴일 축소와 연금 동결 호소에는 좌우파 모두 등을 돌렸다. 10일부터 프랑스 전역에선 긴축 재정에 반대하며 ‘모든 것을 막아라’는 구호를 내세운 ‘국가 마비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파멸적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재정 적자 확대→금리 급등→긴축 재정→국민 반발→포퓰리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번 늘린 복지 지출은 여간해선 줄일 수 없는 구조적 경직성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도 40년 뒤에는 현재의 3배인 156.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마약 같은 재정 포퓰리즘의 지독한 끝을 경계해야 한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이래서는 안 되겠죠? 불공정의 대명사 아닙니까?” 9일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일부 노동조합의 노조원 자녀 우선 채용 요구에 대해 작심 비판했다. “취업시장은 어느 분야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이 필수”라고 했다. 산업재해와 임금 체불에 대한 엄벌을 강조했던 대통령이 노조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노와 사 사이에 균형 맞추기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KG모빌리티 노조가 사측에 ‘고용 세습’을 요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나왔다. 이 회사 노조는 1968년 이후 출생한 기술직 직원이 자진 퇴사하면 해당 직원의 ‘아들’이 같은 직군에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기술직 트레이드’를 제안했다. 불공정한 고용 대물림이자 성평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노조의 요구를 수용해 시행을 준비하던 회사는 결국 제도를 전면 백지화했다.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우선·특별채용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완성차업체 등 산업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2022년 고용노동부는 100인 이상 사업장의 단체협약 1057개를 조사했는데 기아, 현대제철, STX엔진, 현대위아 등 63곳에서 고용 세습 조항이 확인됐다. 정년퇴직자, 장기근속자 등의 직계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공채 시 정년퇴직자 자녀나 형제·자매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노조·직원의 추천자를 채용하는 기업도 있었다. 시정명령을 받은 기업 대부분은 관련 조항을 고치거나 없앴다. ‘노조 탄압’이라며 거부하던 기아는 형사입건된 이후에야 2023년 해당 조항을 삭제했다. ▷고용 세습 외에도 노조의 지나친 요구나 불법 행위가 사회적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노조의 채용 강요, 공사 방해, 월례비 등 금품 요구 등이 발생한 건설 현장에 대해 정부가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일부 노조의 ‘깜깜이 회계’도 문제로 지적됐다. 최근에는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상식에 어긋나는 요구도 적잖다. 기본급의 17배에 달하는 성과급도 너무 적다며 반대하거나, 회사가 적자가 났는데도 성과급을 달라고 하는 노조도 있다. 퇴직한 이후에도 계속 차량 할인을 해주는 ‘평생사원증’을 요구한 경우도 있었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불안감이 큰 데는 전투적 강성 노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한몫한다. ▷이 대통령은 4일 양대 노총 위원장을 만나 기업과 노동 모두 중요하다며 “노동존중 사회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충분히 양립할 수 있고, 양립해야 된다”고 했다. ‘양 날개론’이 성공을 거두려면 노사 모두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자면 국민 상식에 맞지 않는 낡은 관행부터 끊어내야 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의 취임식. 첫 일정으로 보이스피싱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순간, 박 본부장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서울중앙지검 김민석 검사입니다. 박성주 님 명의의 통장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된 사실이 확인돼….” 실제 상황은 아니고 경찰이 제작한 홍보 영상의 일부다. 누구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AI) 전문가인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쓰레기 무단 투기를 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악성 링크를 누를 뻔한 적이 있다고 털어봤다. ▷최근 보이스피싱은 어눌한 목소리로 실소를 자아내는 수준이 아니다. 개인정보를 탈취해 정교하게 시나리오를 짜고, AI 딥페이크 기술로 가족의 얼굴과 목소리까지 복제하니 여간 주의를 기울여도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 이에 28일 정부는 은행 등 금융회사도 보이스피싱 피해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강력한 처방을 내놨다. 금융사의 고의나 과실이 없어도 배상하는 ‘무과실 배상책임제’다.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등 전문성과 인프라를 갖춘 금융사가 좀 더 책임감을 갖고 대응해 달라는 주문이다. ▷금융사들이 지난해부터 자율배상이란 이름으로 피해 보상을 시작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금융사들이 예방 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했을 때만 가능했는데 비밀번호·인증서가 위·변조된 경우, 제3자가 피해자 몰래 송금·이체한 경우 등 몇 가지로만 제한됐다. 피해자가 사기나 협박에 당했더라도 직접 송금했다면 구제받을 수 없었다. 영국은 소비자가 속아서 송금한 경우에도 최대 8만5000파운드(약 1억6000만 원)까지 은행의 피해 배상을 의무화했다. 싱가포르는 과실 정도에 따라 은행, 통신사, 소비자가 책임을 나눠 진다. ▷금융사의 책임을 강화할 필요는 있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소비자가 주의하지 않아도 금융사가 배상해 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보이스피싱에 대한 경각심이 무뎌질 수 있다. 보험사기처럼 보이스피싱 피해를 위장한 허위 신고 범죄가 늘어날 수도 있다. 정부와 금융권이 긴밀하게 협의해 배상 요건 및 한도, 금융사 면책 기준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고된 보이스피싱 피해는 2006년 5월 인천에서 국세청 직원을 사칭한 전화로 돈을 가로챈 사건이다. 800만 원으로 시작된 피해는 올해 상반기에만 7766억 원에 이를 정도로 급증했다. 철저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로 뿌리를 뽑아야 한다. 정부, 금융사, 통신사 등이 공조해 예방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보이스피싱은 개인과 가정을 파탄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신을 조장하는 참 나쁜 범죄다. ‘오죽 허술하면 속느냐’는 식으로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때는 이미 지났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역대 정부마다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은 일자리 창출이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했다. 문 정부를 ‘가짜 일자리 정부’로 칭한 윤석열 정부는 민간 주도 경제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며 노동 개혁의 기치를 들었다. 의도한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정부가 고용주 역할을 자임했던 문 정부는 단기 일자리와 공공 일자리만 만들다 끝났고, 윤 정부는 구체적 실행 없이 노동 개혁 구호만 되풀이하다 마쳤다.정부 핵심 정책에서 사라진 ‘고용’과거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는 것인지 현 정부와 여당의 일자리 접근법은 다르다. 일자리 창출 목표를 강하게 내걸지 않고 잘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관심은 일자리 지표가 아니라 주식 시세표에만 쏠려 있다. 지난달 말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 강화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발칵 뒤집혔다. 의기양양하던 여당 내에서 처음으로 ‘정책 재검토’란 말이 나왔다. 하지만 ‘1분기 일자리 증가 폭 역대 최소’, ‘그냥 쉰 청년 역대 최대’ 같은 참담한 고용 지표엔 별다른 언급이 없다.일자리 정책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에서도 ‘고용’은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부처 명칭이 현재처럼 바뀐 이래 약칭은 늘 고용부였는데, 현 정부 들어 부처 보도자료에선 노동부라 칭한다. 민노총 위원장 출신의 김영훈 고용부 장관은 산재 근절에 직을 걸고, 노란봉투법 등 노동 현안에만 몰두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에서도 일자리는 후순위다. 96번째 과제가 ‘통합과 성장의 혁신적 일자리 정책’인데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각론은 불분명하다.일자리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이해도 부족해 보인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반기업 법안 통과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이탈 우려에 대해 “기업이 해외에 투자하는 게 꼭 불리하다고 볼 수 없다. 국내 노동의 질이 더 좋아질 수도 있고 일자리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는데 왜 국내 고용이 좋아진다는 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22일 정부가 발표한 ‘경제성장전략’에도 일자리 고민은 빠져 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인공지능(AI) 대전환 과정에서 고용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정부의 대답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분도 있고 늘어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마찰적 실업 문제는 대안을 만들어 보겠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반드시 가야 할 길’은 일자리 창출오히려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은 일자리 감축을 부추기고 있다. 센 상법에 더 센 상법, 더 더 센 상법까지 몰아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이 제대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근로자 개인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노란봉투법은 기업들을 경영 불가 상태로 내모는 ‘검은봉투법’이 됐다. 정부가 주시하는 개미투자자들의 집단지성은 노란봉투법의 본질을 꿰뚫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자동화 확대와 일자리 감소를 예상하고 로봇 관련주에 투심이 쏠렸다.정부와 여당이 주식 시세표만 들여다보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정책 발표에 대해 시장이 즉각적으로 반응해 정책 효능성이 좋고 단기간에 큰 성과를 보일 수 있다. 반면 일자리 정책은 열심히 해도 당장 표가 나지 않고, 오히려 노동시장 개혁 과정에서 반발과 저항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진짜 ‘반드시 가야 할 길’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5년 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수시로 오르내릴 주가가 아니라 일자리 성과로 판가름 날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을 6억 원으로 제한한 6·27 대출 규제 이후 주택 거래가 급감하며 과열 양상이 진정되고 있다. 정부는 사업자 대출 등 우회로까지 틀어막으며 바짝 돈줄을 죄고 있다. 하지만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고 정작 새는 곳은 따로 있었다. 해외 은행에서 자금 조달이 가능해 대출 규제에서 자유로운 외국인들이 아파트를 쓸어 담고 있다. 외국인의 자금 출처나 가구원 파악이 어렵다는 허점을 노린 탈세도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세청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용산구 등에서 고가 아파트를 편법 취득한 외국인 49명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대부분 미국·중국 국적이고, 대상자의 약 40%가 한국계,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 이들이 산 주택 230여 채 가운데 70%가 강남 3구에 몰려 있고, 시세 100억 원이 넘는 아파트도 있다. 외국 국적자들은 거래 과정에서 외국인등록번호와 여권번호를 섞어 쓸 수 있어 과세 감시망을 피하기 쉬웠다. 금융·과세 당국이 해외 계좌에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악용했다. ▷국내 사업체에서 탈루한 소득으로 부동산을 사들인 경우가 많았다. 국내에 전자부품 무역업체를 설립한 외국 국적의 A 씨는 해외에 만든 페이퍼컴퍼니로부터 물품을 매입해 대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꾸며 법인 자금을 해외로 빼돌렸다. 이후 조세회피처에 숨긴 돈을 국내로 들여와 서울 용산구의 최고급 아파트, 토지 등을 사들였다. 해외 은닉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자금 출처를 숨기기 위해 가상자산이나 불법 환치기를 한 경우도 있었다. ▷‘아빠 찬스’ 역시 빠지지 않았다. 미국 국적의 B 씨는 국내에 사는 부친의 분양전환권을 무상으로 넘겨받아 본인 명의로 수십억 원대 아파트를 샀지만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 아파트를 사서 외국계 회사 주재원 등에게 임대해 수억 원의 임대료를 받고도 신고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외국인은 전입신고를 잘 하지 않고 소득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노렸다. 허위 양도 계약으로 1주택자로 위장하거나, 외국에 살면서도 국내 거주자에게 적용되는 세금 감면을 받기도 했다. ▷적발된 사례는 극히 일부일 수 있다. 2022년부터 올해 4월까지 외국인은 국내에서 총 2만6244채, 거래금액으로 7조9730억 원어치의 아파트를 매입했다. 특히 서울 강남 3구에선 외국인 집주인이 실제 거주하는 비율이 40% 정도에 그쳐 투기로 의심되는 사례가 많다. 최근 정부와 국회는 내국인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는 외국인 부동산 쇼핑을 규제하기 위한 입법을 논의하고 있다. 규제 사각지대의 외국인 투기 자금이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지 않도록 허점을 메워야 할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관세 협상이란 큰 산을 넘은 뒤 돌이켜 생각하니 이런 막무가내 협상이 어디 있나 싶다. 뒷골목에 끌려가 양쪽 호주머니 탈탈 털렸는데 그래도 남들보단 덜 뜯겼다고, 양말 속에 숨겨둔 돈은 지켰다고 안도해야 하는 처지가 씁쓸하다. 미 백악관이 공개한 단체 기념사진은 상징적이다. 한미 각각 5명씩 10명이 ‘엄지 척’을 하고 있는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 3명, 모두 미국 측이다.미국에선 원팀, 돌아오니 남남 한국 협상 대표단은 “전쟁과 같은 협상 과정” “피가 마른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했다. 수틀리면 “그냥 관세 25%로 가자”며 자리를 박차는 미국 측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어야 했다. 다행히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카드 등을 앞세워 물꼬를 텄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재계도 총출동해 힘을 보탰다.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 관세 협상 과정에서 정부·여당과 기업은 ‘원팀’이었다. 하지만 워싱턴에서 돌아오자마자 원팀은 해체됐다. 국가대표 소집이 끝나고 각자 소속팀으로 돌아간 선수들처럼 갈라섰다. 완고한 미국을 상대로 진땀 흘리던 정부·여당이 우리 기업을 상대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상법 개정에 이은 ‘더 센 상법’, 노란봉투법, 법인세 인상 등을 쉴 새 없이 몰아치고 있다. 어떤 읍소나 설득도 통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할 때만큼이나 막막한 벽 앞에 서 있는 심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타국을 바라보는 태도와 더불어민주당이 기업들을 대하는 방식은 묘하게 닮아 있다. 핵심 지지세력의 이익이 우선이다. 트럼프에게 ‘미국’과 ‘백인’이 중심이라면, 한국엔 ‘개미’와 ‘노조’가 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상대가 입을 타격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관세가 자유무역을 위축시키고 결국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기업 경영이 위축되면 경제 성장이 어려워진다” 같은 교과서적인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피 말리는 기업 심정도 알아주길 한편으론 잦은 변주로 ‘희망고문’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때론 “나는 관대하다”며 양보할 듯했지만 사실은 답은 정해져 있었다. 우호적인 협상 분위기에 방심하던 인도와 스위스가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기업이 성장의 중심’이라며 스킨십을 확대하는 정부·여당에 경제계는 ‘혹시나’ 하고 기대를 걸었지만 ‘역시나’였다. 6월 30일 민주당은 경제단체들과 상법 개정안 간담회를 갖고는 사흘 뒤에 바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14일에도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경제단체들의 우려를 경청한 뒤 다음 날 “늦어도 내달 처리”를 공언했다. 관세 25%가 15%로 되니 뭔가 이득을 본 것 같지만, 기업들 입장에선 0%에서 15%로 부담이 커진 것이다. 2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거두고도 영업이익은 급락한 현대차·기아처럼 하반기 전 산업을 강타할 관세 폭풍의 여파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권 불안과 자금 경색(상법), 노사 관계 불안(노란봉투법), 비용 증가(법인세) 등까지 한꺼번에 얻어맞으면 웬만한 기업은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 각국의 관세 협상이 얼추 마무리되면서 기업들은 각자 받은 관세 성적표를 들고 글로벌 시장에서 전쟁을 펼쳐야 한다. 훌륭한 군대는 병참으로 이긴다는데, 지금으로선 본국으로부터 보급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금부터라도 기업의 과도한 부담을 줄이고 불합리한 규제를 해소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미국과 마주했던 답답한 심정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와 여당은 막무가내 트럼프 정부와 달라야 한다. 그럴 거라고 믿고 싶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반노동 정책 폐기를 촉구하며 16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근로조건의 결정과 관계없는 정치적 요구를 앞세운 파업은 불법이다. 하지만 이번이 민노총의 마지막 불법 파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노총의 투쟁 기조가 변해서가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는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현실화하면 파업의 대상과 명분이 크게 확대돼 불법 파업이 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불법 파업 족쇄 풀어줄 노란봉투법 경제계는 사용자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노조법 2조 개정에 따른 후폭풍을 특히 우려한다. 현행 노조법에선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로 한정하지만, 노란봉투법은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넓혔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노란봉투법 법안은 5건인데, 그중에선 단순히 업무를 위탁한 경우에도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법안까지 있다. 사용자 범위가 무한정 확대되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이 통과하면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이게 다 원청 책임”이라며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원·하청 구조가 복잡한 조선, 철강, 건설, 자동차 등의 업종에서 특히 갈등이 커질 것이다. 많게는 수천 개의 협력사를 둔 대기업들은 1년 내내 교섭 요구에 시달릴 수 있다. 공공부문 노조들은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 기업들은 사용자성 여부를 가려달라며 법원으로 달려갈 것이다. ‘진짜 사장’을 가리는 솔로몬식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법적 불확실성으로 기업 경영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노조법 2조 개정의 진짜 폭탄은 노동쟁의 개념의 확대다. 노동쟁의가 있어야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현행 노조법은 노동쟁의를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정의하는데, 노란봉투법은 ‘결정’이라는 표현을 뺐다. 단 두 글자지만 차이는 엄청나다. 지금은 임금 협상 등 단체교섭 대상에 대해서만 파업을 할 수 있는데 근로조건 전반으로 분쟁이 확대되면 해고자 복직, 부당 노동행위 철회 등을 이유로도 파업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면 정부 정책 등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안이 파업의 명분이 될 수 있다. 물론 사용자의 처분 권한 밖인 정치파업은 법원에서 불법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노조엔 큰 부담이 없다. 노조법 3조가 개정되면 불법 파업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으로 하청노조가 원청과 교섭할 수 있게 되면 불필요한 분쟁과 파업이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함부로 휘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구두 약속만 믿고 무작정 칼자루를 쥐여 줄 순 없다.최저임금처럼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하청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막고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는 노란봉투법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법적 정합성과 현실 적합성이 부족한 채로 처리하기는 곤란하다. 시기도 좋지 않다.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지난해 기준으론 경제성장률이 0.4%포인트 정도 하락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성장률 0.2%포인트를 끌어올리려고 1,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합쳐 45조 원을 쏟아부었는데 더 이상의 경제적 도박은 무리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노란봉투법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1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장관이 되면 곧바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이지 노란봉투법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17년 만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노사공 합의로 결정한 것처럼 노조법 개정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좋게 봐도 수단일 뿐인 노란봉투법을 절대화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짧은 장마가 지나고 예년보다 빨리 더위가 덮쳤다. 이른 아침 출근 시간대부터 기온이 30도를 넘어 숨이 막혀 온다. 8일 경기 광명과 파주에선 낮 기온이 한때 40도를 넘었다.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7월 초순이 이렇게 덥기는 117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20세기 최악의 더위’였던 1994년에서 ‘21세기 최악’이라던 2018년까지 20여 년이 걸렸는데, 이젠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치명적 여름이 연이어 찾아오고 있다. ▷체온보다 높은 불볕더위에 사람이 온전할 리 없다. 일사병, 열사병 등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8일 하루 환자가 200여 명에 달했고, 올해 누적으론 1200명을 넘어서 지난해의 배가 넘는다. 본격적 한여름 더위가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온열질환으로 8명이 사망했다. 7일 경북 구미의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베트남 국적 일용직 근로자가 앉은 채로 숨을 거뒀다. 8일 충남 공주와 서산에서는 논에서 일을 하던 노인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젠 ‘살인 더위’가 단지 비유적 표현이라고만 보긴 어렵다. ▷폭염에 쓰러지는 건 작업장의 근로자나 노약자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서울에선 상대적으로 선선한 오전 시간에 야외에서 운동하던 30, 40대 청장년층 온열질환자가 더 많았다. 햇볕이 뜨거운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최대한 야외 활동을 피하고, 30분마다 10분 이상 그늘에서 휴식해야 한다고 질병관리청은 권고한다. 전국 시도교육청과 대구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양산 쓰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양산을 쓰면 체감온도를 최대 10도까지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찍 시작돼 더 길게 영향을 미칠 폭염은 우리 일상을 짙게 할퀸다. 폭염에 농작물이 타들어 가면서 수박 등 여름 과일·채소류 가격이 벌써 들썩이고 있다. 가축이 쓰러지고 양식장 어류도 폐사하니 축산물과 수산물 가격도 걱정이다. 에어컨 사용이 늘면서 시민들은 벌써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하고 있다. 일일 최대 전력 수요가 이미 7월 말∼8월 중순 수준인 90GW(기가와트)를 넘어서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자칫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폭염에 따른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 배달 기사, 건설 근로자, 농민 등은 아무리 더워도 땡볕에 일손을 놓기가 어렵다. 냉방기 가동이 쉽지 않은 쪽방촌 주민, 홀몸노인, 장애인, 노숙인 등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는 무더위는 생존의 위협이 된다.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높을수록 온열질환자 밀도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폭염이 살인 무기가 되지 않도록 야외 근로자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경기 화성시를 떠올릴 때 이젠 누구도 ‘살인의 추억’을 언급하지 않는다. 음울한 분위기의 농촌은 역동적인 반도체, 모빌리티 도시로 거듭난 지 오래다. 지난해 7200명이 태어나 전국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가장 많이 들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경기 평택시는 지명 유래처럼 ‘평평한 땅과 연못밖에 없는’ 지역이 아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단지인 이곳으로 청년들이 몰리고 있다. 기업이 지역을 살린다는 말을 실증하는 사례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 연구팀과 이슈·임팩트 연구기업 트리플라잇이 전국 229개 시군구 기초자치단체 경쟁력을 평가해 보니 주요 기업의 유무가 지역의 성패를 갈랐다. 인구 성장, 경제 활동, 생활 기반 등 분야별로 55개 세부지표를 점수화해 ‘지역자산역량지수’를 매긴 결과 평택시가 1위를 차지했고 화성시, 경기 용인시 수원시 시흥시가 뒤를 이었다. 모두 반도체, 자동차, 바이오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 포진한 ‘기업도시’들이다. ▷평택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메카다. 2015년 삼성전자가 이곳에 반도체 공장 첫 삽을 뜬 이후 100조 원을 쏟아부었다. 수출 전진기지인 평택항을 바탕으로 수소, 미래차 등 첨단산업 육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화성은 동쪽엔 삼성전자 ASML 등 세계적 반도체 기업들이, 서쪽엔 현대자동차 기아 등 모빌리티 기업이, 남쪽엔 바이오 기업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수도인 용인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480조 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사업이 진행 중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인구 감소로 골치를 앓고 있지만 기업도시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청년들에 힘입어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화성시는 2001년 시 승격 이후 20여 년 만에 인구가 5배로 불어났다. 시민 평균 연령은 39.6세로 전국 평균(45.6세)보다 6세 젊다. 결혼과 출산도 활발하다. 화성(1.01명), 평택(1.00명), 충남 당진(1.08명) 등 기업도시들의 합계출산율은 전국 평균(0.75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일자리를 따라 인구와 소비가 늘어나고, 세수 증가로 지방 재정이 튼튼해져 인프라와 복지도 확충되는 선순환 구조가 갖춰지고 있다. ▷세계 각국 도시들은 기업과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테슬라 본사를 비롯해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밀집해 ‘실리콘힐스’로 불리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이 대표적이다. 파격적인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로 기업들을 끌어모았다. 소멸 위기에 몰려 있는 한국 지방 도시들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좋은 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도시의 운명을 바꿀 출발점이 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미국과 중국의 통상전쟁을 봉합한 10일 제2차 고위급 무역협상은 겉보기엔 사이좋게 하나씩 주고받은 모양새였다. 중국은 전기차 반도체 스마트폰 등에 필수적인 희토류 수출 제한을 해제했고, 대신 미국은 중국인 유학생 비자 취소 조치를 풀었다. 하지만 뜯어보면 미국의 판정패다. 희토류 수출 재개는 6개월의 한시적 조치일 뿐이고, 미국은 국가 안보 사항이라 절대 협상 불가라던 기술 수출 통제를 테이블에 올려야 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희토류가 협상 규칙을 크게 바꿔 놓았다”고 평가했다. ▷4월 미국이 중국에 145%의 초고율 관세를 물리자 중국은 곧장 보복관세와 함께 희토류 수출 금지에 들어갔다. 중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디스프로슘, 사마륨 등 7종의 중(重)희토류를 틀어막았다. 당장 미국 제조업에서 곡소리가 났다. 전기차 모터가 돌아가지 않아 공장이 문 닫을 위기에 몰렸고, 휴머노이드 로봇의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제공권 장악의 핵심인 F-35 전투기도 뜨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교역 대상국들에 “최선의 제안을 가져오라”며 고자세를 보였던 미국도 다급해졌다. 협상의 물꼬를 튼 5일 미중 정상 통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요청해 성사됐다. ▷희토류(稀土類·Rare Earth Elements)는 사실 이름처럼 희소하진 않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광물과 섞여 있어 분리·정제가 어렵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 오염도 유발한다. 1980년대부터 선진국들이 손을 떼기 시작하자 막대한 매장량을 보유한 데다 환경 규제, 노동 인권 문제에서 자유로운 중국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정제·가공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당시 일본을 상대로 처음 희토류 수출 통제에 나섰다. 일본이 단 3일 만에 굴복하면서 전략무기로서 희토류의 힘을 실감했다. 이후 중국은 전략자원 공급망을 적극적으로 무기화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1기 무역전쟁 당시도 희토류 수출 금지를 만지작거렸던 중국은 이번에는 참지 않고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미국도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 내 채굴·가공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호주, 캐나다 등과 함께 탈중국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우크라이나와 광물협정을 맺고 그린란드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도 희토류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공급망 전환이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희토류를 얻으려고 심해와 달까지 노리는 시대다.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공급처 다변화, 희토류 저감·대체 기술 개발 등 공급망 독립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코스피 5,000 시대’를 공언한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한국거래소를 방문했다.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 거래소를 찾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1999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증시 폐장식에, 지난해 1월 윤석열 전 대통령은 증시 개장식에 참석했다. 이번엔 취임 후 일주일 만의 첫 외부 일정으로 주식 시장을 찾은 것이어서 기대감이 더 컸다. 이날 코스피는 3년 5개월 만에 2,900 선을 돌파했다. ▷이 대통령은 거래소에서 가진 현장 간담회에서 주식을 부동산에 버금가는 대체 투자 수단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중간 배당도 받고 생활비도 벌 수 있게 하면, 기업의 자본 조달도 쉬워지고 국가 경제에도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배당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와 제도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했다. 주식 시장을 교란하는 불공정 거래는 부당 이득을 환수하고 엄단하겠다며 한 번이라도 주가 조작에 가담하면 다시는 발을 들일 수 없도록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꾸준히 주식 시장에 관심을 보여 왔다. 한때 자신이 ‘슈퍼개미’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개미’ 정도는 되는 개인투자자였다고 했다. 이른바 ‘잡주’에 투자해 손해를 보기도 했고 선물·옵션에 손을 댔다가 전세금만 빼고 전 재산을 날린 적도 있다. 이후엔 우량주 장기 투자로 수익도 좀 남겼다고 한다. 대선 후보 때인 지난달 28일엔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4000만 원어치 사들이며 “1400만 개미와 한배를 탔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저마다 증시 부양 의지를 피력했다.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잡고 경제 성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내외 경제 상황에 따라 성과는 크게 달랐다. 직선제 대통령 시대 이후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건 노무현 정부 때다. 저금리와 중국 특수에 힘입어 184.8% 상승했다. 이어 김대중(19.4%) 이명박(18.1%) 문재인(15.0%) 노태우(5.9%) 박근혜(4.4%) 정부 순이다. 반면 외환위기를 겪은 김영삼 정부 때는 주가가 17.5% 떨어졌고, ‘밸류업’을 외친 윤석열 정부는 별다른 위기가 없었는데도 5.1% 하락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주식 시장에선 ‘허니문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 취임 직전과 비교하면 코스피는 5거래일 만에 7.7%나 올랐다. 과거에도 대선 직후엔 대체로 올랐지만 뒷심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장기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려면 부양책으론 부족하고 기업들이 도전과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기업 성장이 뒤따르지 않는 주가 상승은 결국엔 신기루로 끝나기 십상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반년 동안 서민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 건 부쩍 홀쭉해진 장바구니다. 특히 라면 빵 햄버거 과자 아이스크림 커피 맥주 냉동식품 등 가공식품의 경우 오르지 않은 품목을 찾기 어렵다. 외식물가도 덩달아 뛰면서 집에서 해 먹기도, 배달시키거나 나가서 먹기도 부담스러워졌다. 그동안 정부 압박에 가격 인상을 자제해온 식품·외식업체들이 계엄·탄핵 정국의 정치적 공백을 틈타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가공식품 74개 품목 중 53개 품목(72%)의 소비자물가지수가 비상계엄 선포 전인 지난해 11월보다 상승했다. 반년 새 5% 넘게 오른 품목이 초콜릿 커피 양념소스 식초 젓갈 빵 햄 등 19개에 이른다. 1년도 안 돼 두 차례 이상 가격을 올린 업체들도 있다. 업체들은 원-달러 환율 급등과 원재료 비용 상승 등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환율과 원재료값이 안정을 찾은 뒤에도 가격 인상은 그치지 않았다. 커피믹스 제품은 대선 나흘 전 기습 인상에 합류해 막차를 탔다. ▷이 같은 가격 인상 러시는 2년 전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서슬 퍼런 윤석열 정부 초기였던 2023년 상반기에 경제부총리가 직접 나서 술값과 라면값을 압박하자 주류업체는 인상 계획을 접었고, 라면업체들은 가격을 낮췄다. 정부는 ‘빵 과장’ ‘라면 사무관’ 식으로 품목별 물가 담당자를 지정해 밀착 관리에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 담합 조사를 명목으로 업체들을 압박했다. 하지만 가격 통제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올해 들어 정부가 업체들을 만나 인상 자제를 요청했지만 말발이 먹히지 않았다. 2년 전 눌렀던 주류, 라면 가격은 다시 튀어 올랐다. ▷식품·외식업체들이 정치적 상황을 보며 인상 시점을 저울질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식품업체들의 가격 인상 릴레이가 이어졌고, 당시 농축수산물 소비자물가는 예년의 두 배 수준인 7.5%나 뛰었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 눈치를 보던 기업들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치킨, 버거 가격 등을 올렸다. 2022년 대선 전에도 2021년 하반기부터 식품업체들의 도미노 가격 인상이 이어졌다. ▷업계 안팎에선 당분간 식품·외식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나서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올릴 기업은 다 올린 데다 새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임기 초반 민생 회복과 물가 안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임 정부가 하던 식으로 가격이 오른 품목을 쫓아다니며 누르는 ‘두더지 잡기’ 식 대응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일본을 ‘편의점 왕국’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한국을 ‘편의점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하다. 양국의 편의점 점포 수는 5만여 개로 비슷하지만, 인구 대비론 한국이 배가 넘는다. 한국은 ‘커피 공화국’이기도 하다. 한국의 스타벅스 매장 수는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지만 국토 면적 대비론 단연 세계 1위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치킨집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 ‘치킨 공화국’이란 표현도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계속 늘어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평균 커피음료점 수는 9만5337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3개 줄었다. 1분기 기준으로 커피음료점 수가 줄어든 것은 2018년 통계 집계 이후 처음이다. 2018년 4만5000여 개에서 2023년 9만3000여 개로 5년 만에 배로 늘며 무섭게 성장하더니 감소세로 돌아섰다. 4만7800여 개에 이르는 치킨 피자 등 패스트푸드점, 5만3000여 곳의 편의점도 1년 전보다 숫자가 줄었다. ‘창업 3대장’ 모두 폐업의 칼바람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자영업 대표 업종들이 부진한 것은 경기 침체에 따른 내수 부진이 장기화한 영향이 크다. 1분기 소상공인 업체 1곳당 평균 매출은 전 분기보다 13% 줄었다. 하지만 내수가 살아나면 자영업 위기가 저절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 한 사람이 이미 하루에 커피 1.1잔, 한 달에 닭을 2.2마리 소비하는데, 더 많이 먹고 마시길 기대하긴 어렵다. 소비 패턴의 변화, 온라인 시장 확대 등의 문제도 있다. 근본적으론 포화상태에 이른 자영업의 구조조정 없이는 위기 해소가 쉽지 않다. ▷한국은 취업자 5명 중 1명이 자영업자일 만큼 자영업 의존도가 높다. 이른 퇴직에 내몰린 뒤 재취업이 어려운 사람들, 은퇴 후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이 자영업으로 몰린다. 프랜차이즈 초기 창업비용이 적어 진입장벽이 낮은 것도 한몫한다. 앞으로도 문제다. 한국은행은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7년 뒤에는 60세 이상 고령 자영업자가 25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충분한 준비 없는 생계형 창업이 증가하면 과당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고 창업과 폐업의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생존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들에 대해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채무조정이나 탕감, 대출 지원 확대 등을 약속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폐업을 고려하는 자영업자들에게 퇴로를 터주고, 막막한 예비 창업자들에겐 좋은 일자리 대안을 찾아주는 등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고민해야 한다. 카페가 포화상태면 대신 스터디카페를 창업하면 된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식 접근으론 고질적인 자영업 위기를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은퇴 후에 일해서 소득이 생기면 연금이 깎인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 해에만 13만7061명이 2429억7000만 원을 덜 받았다. 1인당 월평균 19만 원 정도 깎였다. 어르신들 사이에선 “나이 들면 일하지 말고 놀라는 거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대선 후보들도 맞장구를 쳤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감액 제도의 개선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제도 폐지를 공약했다. ▷‘재직자 노령연금 감액 제도’는 은퇴 후 재취업을 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생기면 국민연금(노령연금) 수령 첫해부터 최대 5년간 수급액을 삭감하는 제도다. 연금을 깎는 커트라인은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최근 3년 평균 소득인데, 올해 기준으론 월 309만 원이다. 기준선을 넘는 소득액에 따라 삭감액이 달라진다. 초과 소득이 100만 원 미만이면 초과한 액수의 5%를 깎는다. 초과 소득이 많아질수록 깎이는 돈도 커져 연금액의 최대 50%까지 줄어든다. ▷이 제도는 특정인에게 소득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을 막고 연금 재정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1988년 국민연금 제도 시행 당시부터 도입됐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늘고 고령층의 경제활동이 중요해진 현실에 맞지 않을뿐더러 근로 의욕을 꺾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초과 소득 산정 기준이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많다. 근로·사업소득만 반영하고 배당·이자소득 등은 빠지기 때문이다. 연금액에 대해 소득세를 내는데 감액까지 하는 건 이중과세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무엇보다 열심히 보험료 내봐야 소용없다는 실망감이 퍼져 연금 제도 자체의 신뢰를 훼손한다는 게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소득에 따라 연금을 깎는 곳은 한국을 포함해 일본 그리스 스페인 등 4개국뿐인데, 최근 일본도 감액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다. 2022년 OECD는 한국 정부에 노후 소득 보장 강화를 위해 감액 제도 완화를 권고했다. 정부는 2023년 10월 국회에 제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에서 폐지 방침을 밝혔지만, 올해 3월 국회를 통과한 연금개혁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재직자 감액 외에도 다양한 감액 제도가 있다. 부부 모두 기초연금을 받을 경우 연금액이 20% 깎이는데, 위장 이혼을 부추긴다는 불만이 있다. 국민연금을 받으면 기초연금이 줄어드는 연계 감액 제도 역시 원성이 높다. 문제는 이런저런 감액 제도를 모두 없애려면 재정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대충 땜질식으로 손댈 것이 아니라 기초연금, 국민연금, 직역연금, 퇴직연금 등을 모두 고려해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재설계하는 구조 개혁의 큰 그림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은행 예금이 전 국민의 기본 재테크인 이유는 안전하고 쉽기 때문이다. 소중한 원금을 날릴까 걱정할 필요 없이 꾸준히 모으면 목돈을 쥘 수 있다. 하지만 예금 금리가 갈수록 추락하면서 “뭐니 뭐니 해도 은행 이자 따박따박 받는 게 최고”라는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을 통해 가입한 정기예금은 지난해 말 기준 2314만7000계좌로, 1년 전보다 595만 계좌가 줄었다. 2년 사이에 해지된 정기예금은 1000만 계좌가 넘는다. ▷예금이 외면받는 것은 금리가 낮아도 너무 낮기 때문이다. 은행의 대표 금융상품인 1년 만기 정기예금은 최근 연 1%대 금리 상품까지 나왔다. 올해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넉 달 연속 2%를 웃돌고 있고, 여기에 이자소득세를 감안하면 실질적인 예금 금리는 제로를 넘어 마이너스 상태다. 경기 침체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낮출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 예금 금리는 앞으로 더 떨어질 수 있다. ▷은행 계좌를 빠져나온 돈은 주식, 금, 가상자산, 외화 등 다른 투자처를 찾아 이동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거래 금액은 1510억 달러(약 214조 원)로, 1년 전 980억 달러(약 139조 원)보다 54% 급증했다. 은행의 단기 대기성 자금은 줄고 증시 투자자 예탁금은 늘었다. 은행을 떠난 자금도 대박의 기회와 쪽박의 위험 사이에서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 등에 따라 시장 변동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은 부동자금으로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 ▷은행 예금이 전체적으로 줄어든 것과는 반대로 고액 예금 계좌는 오히려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은행의 저축성 예금 가운데 잔액이 10억 원을 넘는 계좌가 처음으로 10만 개를 넘어섰다. 고액 계좌의 잔액도 815조81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44조 원 증가했다. 예금주는 대부분 법인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비상계엄과 탄핵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유보하고 은행에 여윳돈을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요즘 시대, 특히 젊은 세대에겐 은행에 한푼 두푼 저축해 목돈을 만든다는 생각은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주식, 부동산, 코인 투자로 대박을 치는 모습을 보면 은행 등 기존 금융상품의 수익률은 우스워 보인다. 물론 저금리 시대에는 다양한 상품에 투자를 해야 쥐꼬리 수익을 벗어날 수 있고, 특히 적립금의 80% 이상이 정기예금 등에 쏠려 있는 퇴직연금은 좀 더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다만 은행 예금의 퇴조 현상이 인생은 ‘뚜벅뚜벅’이 아니라 역시 ‘한 방’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하진 않을지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차기 대선 후보감으로 이 사람 어떤가.” 야당에 마땅한 주자가 안 보이던 2020년 6월 김종인 당시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불쑥 이 사람을 소환했다.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없더라”라며 높이 평가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곤 각 정당의 영입 경쟁이 붙었고, 12·3 비상계엄 하루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돌연 내놓은 약속은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해 이 사람 1000명을 키우겠단 것이었다. ‘요리 멘토’ ‘장사의 신’ ‘자영업자들의 구세주’로 불리던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두고 한 말들이었다.갑질, 위법 논란에 추락한 ‘장사의 신‘ 안티가 거의 없던 백 대표에 대한 신뢰는 최근 들어 산산이 부서졌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발굴해 낸 맛집을 프랜차이즈로 만들었는데, 예상 매출액과 수익률을 부풀려 점주들을 모집했다는 논란이 지난해 불거진 게 시작이었다. 지난해 11월 증시 상장 이후부터는 재료 품질 논란, 원산지 허위 표시, 식품위생법 위반, 허위광고 의혹 등 각종 논란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왔다.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인 것만 14건에 이른다. 결국 백 대표는 이달 초 방송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방송 활동과 전통시장 프로젝트 등으로 쌓은 정직, 신뢰, 진정성 등의 이미지가 오히려 백 대표에겐 독이 됐다. 사실 백 대표는 유난히 선하지도, 유독 악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업가일 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는 과도한 기대를 했고 실망은 비난과 분노로 이어졌다. 본질적으론 백 대표가 몸담고 있는 한국의 프랜차이즈 사업이 ‘선한 사업가’를 만들기 어렵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결국엔 이미지와 현실의 충돌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프랜차이즈 사업의 본질은 공동사업자 간의 공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본사와 점주의 공생은 대개 가게를 여는 초기에 끝난다. 점주는 장사가 잘돼 ‘매출’을 늘리는 게 중요하지만, 본사는 가맹점에 많이 납품해 ‘매입’을 늘리는 데 치중한다. 가맹점에 식자재, 포장재 등 원·부재료를 공급하며 붙이는 마진인 ‘차액가맹금’이 본사의 주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본사로선 기존 가맹점을 잘 키우는 것보단 가맹점을 하나라도 더 늘리는 게 득이 된다. 이른바 ‘떴다방’ 식으로 브랜드를 마구 찍어내는 것도 이런 이유다. 본사가 가맹점을 대상으로 영업하니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본사로부터 필수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품목을 과도하게 지정하거나 광고비, 수수료 등을 점주에게 전가하는 관행이 계속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1만2000개 가맹점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점주 54.9%가 본사로부터 불공정 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몸집을 불려 사모펀드에 매각하고, 상장을 하면 매출과 이익을 개선하라는 주주들의 요구가 더해져 이해관계가 더 복잡해진다.프랜차이즈 상생 모델 고민해야 미국 유럽 등 해외 프랜차이즈는 수익 구조가 다르다. 가맹점의 매출이나 이익에 따라 일정한 로열티를 받는 구조여서 본사와 가맹점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물론 해외 모델이 무조건 답은 아니다. 본질적으론 부동산 회사인 맥도널드 모델을 쉽게 따를 순 없다. 차액가맹금 구조가 초기 비용을 낮춰 창업 경험 없는 자영업자들이 손쉽게 창업을 할 수 있게 해준 측면도 있다. 방송을 내려놓고 기업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백 대표는 “이제부턴 단 한 분의 점주님도 두고 갈 수 없다”고 했다. 약속을 실천해야 하겠지만 선한 의지를 강조한다고만 해서 될 일은 아니다. 본사와 가맹점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한국형 모델을 찾기 위해 프랜차이즈 업계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백종원이 퇴장한 자리에 또 다른 백마 탄 초인이 나타나길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면세점이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경기 침체와 고환율, 달라진 외국인 관광 성향 등의 복합 위기에 휘청이며 좀처럼 업황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롯데 신라 신세계 현대 등 ‘면세점 빅4’는 모두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최근 신라면세점은 비공개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앞서 현대면세점은 지난달 초부터, 롯데·신세계면세점은 이미 지난해부터 희망퇴직이 시작됐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면세점 업계는 엔데믹 이후에도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2019년 24조 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국내 면세점 시장 규모는 지난해 14조 원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면세점 빅4’의 영업손실을 합치면 2850억 원에 달한다. 업황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현대면세점은 올해 7월을 끝으로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점을 폐점하기로 했다. 신세계면세점 부산점은 올해 1월 폐점했다. 롯데면세점도 매장을 축소하고 실적이 나쁜 해외 점포를 철수할 계획이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면세점은 세계 1위의 경쟁력을 자랑했다. 백화점, 대형마트의 성장이 주춤한 가운데 유독 면세점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游客·유커)의 폭발적인 증가세에 힘입어 고공 질주를 이어갔다. 유통업계에선 ‘노다지’인 면세점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2015년 정부가 서울 시내 면세점 3곳을 신설하기로 하자 대기업 7곳을 포함해 20여 개 기업이 뛰어들어 ‘면세점 대전’이 벌어졌다. 대기업 오너들까지 전면에 직접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2017년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으로 ‘큰손’이던 유커가 급감하며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곧이어 2020년 코로나19의 악재가 덮쳤다. 엔데믹 이후 하늘길이 다시 열렸지만 돌아온 관광객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면세점보단 올리브영, 다이소 같은 로드숍에서 주로 지갑을 열었고, 쇼핑보단 한국 문화를 즐기는 체험형 관광이 인기를 끌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며 면세점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된 것도 악재가 됐다. ▷거위의 배를 가른 정부 역시 면세점 위기에 한몫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면허를 남발해 과당경쟁을 초래했다. 대기업 독점을 막는다며 2013년 면세점 면허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였는데, 이 규제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도 발목을 잡고 있다. 출국 여행객 수에 비례해서 임대료가 늘어나는 구조인데, 여행객이 늘어도 씀씀이는 그만큼 커지지 않기 때문이다. 유커가 다시 오길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다. 관광 패턴 변화에 맞춘 차별화된 전략을 찾아내야 험난한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 것 같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하루만 한눈을 팔아도 이 롤러코스터를 따라잡을 수 없다. 11일 미국 정부는 스마트폰, 노트북 등을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13일 전자제품 관세 예외는 없고 다른 방식으로 바꾸는 것일 뿐이라 했다. 다음 날인 14일엔 자동차 부품 관세 면제 가능성을 시사했다. 강경과 유연의 냉온탕을 오간다. 엘리자베스 워런 미 민주당 상원의원은 “대통령이 관세를 가지고 ‘신호등(red light, green light)’ 게임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어지러운 변덕엔 패턴이 있다. 일단 질렀다가 미국이 손해 볼 것 같으면 거둬들인다. 미국을 얕잡아 본다 싶으면 다시 공세로 돌아선다. ‘미국 해방의 날’이라며 상호관세를 밀어붙이더니 미 국채 가격이 급락하자 90일 유예 카드를 꺼냈다. 중국 생산 비중이 높은 애플 아이폰 값 급등 우려에 스마트폰 관세를 접었다가 ‘중국에 대한 양보’라는 평가가 나오자 다시 예외는 없다고 했다. 자동차 부품 관세 면제를 거론한 것도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완성차 3사가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미국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건 중국의 대응이다. 2018년 1차 무역전쟁 때처럼 엄포를 놓으면 꼬리를 내리며 협상에 나설 줄 알았더니 결사항전의 태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1기의 경험으로 기술 자립과 내수 진작에 공을 들여 맷집을 키웠다. 세 자릿수 관세에 곧바로 보복관세로 응수하고, 전략물자인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까지 꺼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4일부터 동남아 순방에 나서 대미 공동전선을 모색하고 있다.▷동맹국들의 반발과 미국 소비자들의 불만도 고민거리다. 처음엔 동맹국들을 상대로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이 먹혔지만 시간이 갈수록 트럼프 대통령을 ‘양치기 소년’으로 보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총리가 날아가 투자와 방위비 증액 보따리를 내밀었던 일본조차 이젠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태도다. 미국 내에선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애덤 포즌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은 “트럼프가 ‘경제적 베트남전쟁’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했다.▷1968년 북베트남의 ‘구정 대공세’는 작전 자체는 실패였지만, 베트남전의 운명을 가르는 전환점이 됐다. 미국대사관이 공격받는 모습을 TV로 지켜본 미국인들은 충격에 빠졌고 반전 여론이 고조됐다. 트럼프 지지자들 중엔 ‘관세는 중국 기업이 내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실제론 미국 소비자가 최종적으로 부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들이 깨닫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설 자리가 크게 좁아지게 될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