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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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문화 일반51%
인사일반20%
문학/출판10%
기획7%
무용3%
사고3%
칼럼3%
기타3%
  • 좀비 영화의 레전드 ‘28’시리즈, 18년 만에 돌아왔다

    “이 영화를 다시 만든 건 팬들의 사랑입니다. 하하.” 19일 국내 개봉하는 좀비 영화 ‘28년 후’를 연출한 영국 감독 대니 보일(69·사진)은 18일 한국 언론과의 화상간담회에서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약 20년 동안 다양한 관객이 이전 작품(‘28일 후’)을 보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참 뿌듯했다”며 “이번 영화가 다시 만들어진 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식지 않는 팬들의 애정 덕분”이라고 했다. 좀비 영화의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되는 ‘28’ 시리즈가 다시 돌아온다. 1편 ‘28일 후’(2002년)는 ‘달리는 좀비’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공포를 넘어 좀비와 싸우는 인간의 선악을 성찰하는 이야기는 이후 영화 ‘월드워Z’(2013년), ‘부산행’(2016년) 등 많은 좀비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 이번 신작은 2편 ‘28주 후’(2007년) 이후 18년 만에 돌아오는 세 번째 이야기. 1편 연출자였던 보일 감독과 각본가 앨릭스 갈런드가 다시 뭉쳤다. 신작은 ‘분노 바이러스’가 영국에 퍼진 지 28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홀리 아일랜드’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태어난 한 소년이 난생처음 섬을 떠나 바이러스에 잠식된 본토에 발을 디디며 벌어지는 생존 여정이 이번 작품의 뼈대. 전작보다 더욱 깊어진 절망감과 고립된 세계가 돋보인다. 특히 영국이 해상 봉쇄로 유럽 대륙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됐다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보일 감독은 “세계가 팬데믹을 겪으며 거리와 도시가 텅 빈 모습을 보지 않았나. 그 장면이 ‘28일 후’의 이미지와 겹쳤다”며 “브렉시트(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같은 현실적인 요소도 반영됐다”고 했다. 좀비는 더 다양하고 지능적으로 진화했다. 벌레를 먹고 사는 비대한 좀비, 무리를 지어 인간을 사냥하고 분배하는 좀비까지 등장한다. 보일 감독은 “그동안 너무 많은 좀비 영화가 나와 더 독창적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이번 작품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그 본질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강조했다. 시리즈의 3편 격이지만 ‘28년 후’는 그 자체로도 3부작으로 기획됐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는 3부작의 1편이다. 내년에 공개되는 2편에는 ‘28일 후’에서 주인공 ‘짐’을 연기했던 배우 킬리언 머피가 출연한다. 머피는 ‘28년 후’ 3부작의 총괄 프로듀서도 맡았다. 보일 감독은 “머피는 앞으로 개봉할 영화들과 새로운 시리즈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 고리”라고 귀띔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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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들 사랑 덕분에 돌아온 ‘28’ 시리즈…‘28년 후’ 내일 개봉

    “이 영화를 다시 만든 건 팬들의 사랑입니다. 하하.”19일 국내 개봉하는 좀비 영화 ‘28년 후’를 연출한 영국 감독 대니 보일(69)은 18일 한국 언론과의 화상간담회에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약 20년 동안 다양한 관객이 이전 작품을 보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참 뿌듯했다”며 “이번 영화가 다시 만들어진 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식지 않는 팬들의 애정이었다”고 했다.좀비 영화계의 이정표로 꼽히는 ‘28’ 시리즈가 다시 돌아온다. 1편 ‘28일 후’(2002년)는 ‘달리는 좀비’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해 세계적으로 흥행한 작품. 단순한 공포를 넘어서 좀비와 싸우는 인간들의 선악을 성찰하는 이야기로 이후 영화 ‘월드워Z’(2013년), ‘부산행’(2016년) 등 많은 좀비 영화에 영향을 줬다. 이번 신작은 2편 ‘28주 후’(2007년) 이후 18년 만에 돌아오는 세 번째 이야기다. 1편의 연출자 보일 감독과 각본가 앨릭스 갈런드가 다시 뭉쳤다.신작은 분노 바이러스가 영국에 퍼진 지 28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홀리 아일랜드’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홀리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난생처음 섬을 떠나 바이러스에 잠식된 본토에 발을 디디며 벌어지는 생존 여정을 그린다. 전작보다 더욱 깊어진 절망감과 철저히 고립된 세계가 돋보인다.특히 영국이 유럽 대륙과 해상 봉쇄로 완전히 고립됐다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보일 감독은 “전 세계가 팬데믹을 겪으며 거리와 도시가 텅 빈 모습을 보지 않았나. 그 장면이 ‘28일 후’의 이미지와 겹쳤다”며 “브렉시트(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같은 현실적인 요소도 반영됐다”고 했다.좀비는 더 다양하고 지능적으로 진화했다. 벌레를 먹고 사는 비대한 좀비, 무리를 지어 사냥한 인간을 분배하는 좀비까지 형태도 네 가지로 확장됐다. 보일 감독은 “그동안 너무 많은 좀비 영화가 나와 더 독창적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이번 작품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그 본질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강조했다.‘28년 후’는 총 3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의 시작점이다. 내년 공개될 2부에는 1편의 주인공 ‘짐’을 연기했던 배우 킬리언 머피가 출연한다. 머피는 3부작의 총괄 프로듀서도 맡았다. 보일 감독은 “머피는 앞으로 개봉할 영화들과 새로운 시리즈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 고리”라고 귀띔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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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참사 현장 달려간 故 김관홍 잠수사… 우리는 그를 잊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잊은 것 같아요.” ‘경수’(이지훈)는 심리상담사 앞에서 담담히 말한다. 그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시신을 수습했던 민간 잠수사다. 사건 이후 매일같이 교복 입은 학생들이 나오는 악몽에 시달렸다. 수면제를 먹고 소주를 마셔도, 유가족의 울부짖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25일 개봉하는 영화 ‘바다호랑이’(사진)는 고(故) 김관홍 잠수사(1973∼2016)를 다룬 작품이다. 김 잠수사는 세월호 참사 직후 민간 잠수사로 자원해 구조 활동에 나섰으나, 잠수병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다 2016년 세상을 떠났다. 원작은 김탁환 작가의 장편소설 ‘거짓말이다’(2016년·북스피어). 영화 ‘말아톤’(2005년)의 정윤철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참사 이후 김 잠수사의 삶을 회상 형식으로 풀어낸다. 참사 당일 잠수사들끼리 술을 마시던 그는 침몰 소식을 듣고 곧장 바다로 향한다. 이미 아수라장이 된 사고 현장, 위험하다는 동료의 만류에도 주저 없이 바다로 뛰어든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실제 바다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은 모두 ‘파란 조명’이 비치는 실내에서 촬영됐다. 물 한 방울 없이 조명과 음향, 그리고 배우의 몸짓만으로 잠수사의 시선을 재현한 연출은 실험적이면서도 강렬하다. 물론 제작비 약 7000만 원으로 만든 작품이다 보니 다소 거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참사의 기억을 민간 잠수사의 시선에서 생생한 날것으로 풀어내 더 가슴을 파고든다. 배우 이지훈은 16일 간담회에서 “누구나 각자의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타인에게 그 아픔이 사소해 보일 수 있어도, 당사자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며 “김 잠수사의 고통을 거짓 없이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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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롭고 좌절한 사람들, 나를 보고 희망 얻었으면…

    “외로움을 느끼고 좌절했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도 이 영화를 보고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죠.”18일 국내에 개봉하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영화 ‘엘리오’를 공동 연출한 매들린 샤라피언 감독은 17일 국내 언론과 가진 화상간담회에서 이런 소망을 내비쳤다. 지구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한 소년이 외계 생명체와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샤라피언 감독은 “지구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이들이 ‘나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위안을 얻었으면 한다”며 “한국 관객들도 이 영화를 통해 위로를 받고 ‘이 세상에서 내가 있을 자리는 바로 여기다’라고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영화 ‘엘리오’는 부모를 잃고 군인 고모와 함께 살던 열한 살 소년 엘리오가 외계 생명체들 사이에서 지구 대표로 오해받으며 겪는 모험을 그린 픽사 애니메이션이다. 지난해 6월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로 세계에서 17억 달러(약 2조3172억 원)의 흥행 수익을 벌어들인 디즈니·픽사가 1년 만에 야심차게 선보인 신작. 가족의 따뜻함과 우주 모험의 짜릿함을 함께 담아 눈길을 끈다. 뭣보다 눈에 띄는 건 이 작품이 공상과학(SF) 장르를 다루는 방식이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외계 행성은 직선과 금속으로 가득한 기존 SF와 사뭇 다르다. 화면은 곡선과 화려한 색감으로 가득하고, 모든 사물은 젤리처럼 말랑말랑해 보인다. 샤라피언 감독은 “엘리오가 그 세계에 첫눈에 반해야 하고, 관객도 ‘저기서 살고 싶다’고 느껴야 했기 때문에 시각적 질감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공동 연출자인 도미 시 감독도 “많은 SF 영화가 차갑고 건조한 분위기를 내는 반면, ‘엘리오’는 정반대의 따뜻하고 유기적인 세계를 그렸다”고 했다. 등장인물들은 따뜻하면서도 엉뚱하다. 외계 생명체 ‘글로든’은 이빨이 날카롭고 덩치가 커서 처음엔 무서워 보인다. 하지만 막상 말을 시작하면 부드럽고 다정한 성격을 드러낸다. 여러 SF 영화에서 외계인은 공포를 상징하지만, 주인공 엘리오는 “나 좀 데려가 줘!”라며 외계 세계로 기꺼이 발을 들인다. 메리 앨리스 드럼 프로듀서는 “픽사의 과거 SF인 ‘월·E’(2008년)나 ‘버즈 라이트이어’(2022년)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깜짝 요소들이 들어간 재미있는 스페이스 어드벤처”라고 했다. 가족 구성도 익숙한 공식을 깨뜨렸다. 엘리오가 함께 사는 이는 엄마가 아니라 고모다. 시 감독은 “엘리오는 고모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고모는 갑작스럽게 부모 역할을 맡게 된 상황이라 당황해한다”며 “둘이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영화의 중심적인 감정선”이라고 했다. 드럼 프로듀서는 “모자 관계는 이미 많은 영화에서 그려졌지 않나. 예상 가능한 구도를 피하고, 더 진짜 같고 예측 불가능한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에선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의 명언인 “이 드넓은 우주에서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엄청난 공간 낭비(an awful waste of space) 아닌가”가 두 차례 등장한다. 이 말을 빌려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 넓은 우주에서 정말 혼자일까. 다른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을까.“우주는 너무 커요. 언젠가 외계인이 지구를 찾는다면, 우리가 지닌 따뜻함을 먼저 봐줬으면 좋겠어요.”(샤라피언 감독) “예술로 표현하면,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어요. 그게 우리가 이 이야기를 만든 이유입니다.”(시 감독)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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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수사의 눈으로 본 세월호…물 한방울 없이 그날의 바다를 되살리다

    “사람들은 다 잊은 것 같아요.”‘경수’(이지훈)는 심리상담사 앞에서 담담히 말한다. 그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시신을 수습했던 민간 잠수사다. 사건 이후 매일같이 교복 입은 학생들이 나오는 악몽에 시달렸다. 수면제를 먹고 소주를 마셔도, 유가족의 울부짖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25일 개봉하는 영화 ‘바다호랑이’는 고(故) 김관홍(1973~2016) 잠수사를 다룬 작품이다. 김 잠수사는 세월호 참사 직후 민간 잠수사로 자원해 구조 활동에 나섰으나, 잠수병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다 2016년 세상을 떠났다. 원작은 김탁환 작가의 장편소설 ‘거짓말이다.’(2016년·북스피어) 영화 ‘말아톤’(2005년)의 정윤철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영화는 참사 이후 김 잠수사의 삶을 회상 형식으로 풀어낸다. 참사 당일 잠수사들끼리 술을 마시던 그는 침몰 소식을 듣고 곧장 바다로 향한다. 이미 아수라장이 된 사고 현장, 위험하다는 동료의 만류에도 주저 없이 바다로 뛰어든다.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실제 바다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은 모두 ‘파란 조명’이 비치는 실내에서 촬영됐다. 물 한 방울 없이 조명과 음향, 그리고 배우의 몸짓만으로 잠수사의 시선을 재현한 연출은 실험적이면서도 강렬하다. 물론 제작비 약 7000만 원으로 만든 작품이다보니 다소 거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참사의 기억을 민간 잠수사의 시선에서 생생한 날것으로 풀어내 더 가슴을 파고든다.배우 이지훈은 16일 간담회에서 “누구나 각자의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타인에게 그 아픔이 사소해 보일 수 있어도, 당사자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며 “김 잠수사의 고통을 거짓 없이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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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 극장가 열전… 브래드 피트-이민호-조정석 “날 보러와요”

    레이싱 카를 몰고 트랙 위를 질주하는 브래드 피트, 현실이 된 웹소설 속에서 싸우는 이민호, 좀비가 된 딸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조정석…. 올여름 극장가에 ‘흥행보증 수표’로 통하는 스타들이 출연한 대형 작품들이 몰려온다. 모터스포츠부터 판타지, 코믹물에 이르기까지 장르도 다양해 팬데믹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못한 극장가에 모처럼 활력이 돌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브래드 피트-이민호-조정석 3파전여름 시장의 포문은 이달 25일 개봉하는 레이싱 영화 ‘F1 더 무비’가 연다. 한때 유망한 드라이버였지만 끔찍한 사고 이후 추락한 주인공이 최하위 팀에 합류해 재기를 노리는 이야기다. 국내에서 모터스포츠 영화는 그리 인기 있는 장르는 아니다. 미국 포드와 이탈리아 페라리의 1960년대 스포츠카 경쟁을 다룬 영화 ‘포드 V 페라리’(2019년)가 관객 137만 명을 동원한 정도다. 하지만 국내에서 ‘빵 형’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브래드 피트의 스타파워에 2억5000만 달러(약 34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제작비가 기대감을 높인다. 톰 크루즈 주연 ‘탑건: 매버릭’(2022년)으로 국내에서 관객 823만 명을 동원한 조지프 코신스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점도 기대할 만하다. 아찔한 트랙 위 질주와 함께 피트가 그리는 ‘중년의 질주’가 관전 포인트. F1 경기 마니아층 외에 일반 관객의 반응이 흥행 성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7월 중순에는 누적 조회수 1억 회 이상의 동명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전지적 독자 시점’이 개봉한다. 웹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된 가운데 등장인물들이 겪는 우여곡절을 그린 K판타지다. 배우 이민호, 안효섭, 채수빈과 함께 블랙핑크 멤버 지수가 출연하는 화려한 라인업이 눈길을 끈다. 제작비가 300억 원 이상 투입된 작품이다.7월 중엔 코믹물 ‘좀비딸’도 관객을 찾는다. 동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좀비로 변한 딸을 지키려는 아빠의 이야기를 그렸다. 조여정, 이정은 등 조연진도 탄탄하지만 주목받는 건 주연 배우 조정석. 지난해 7월 영화 ‘파일럿’에서 유쾌한 웃음을 안기며 471만 명 관객을 동원한 조정석이 또 한 번 코믹 연기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좀코’(좀비+코미디)라는 낯선 장르지만, 여름 극장가에서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이 나온다.● 기대작 몰린 여름 극장가, 반등 계기 마련할까 이 밖에도 가족 관객을 겨냥한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오’(6월 18일), 마니아 층을 겨냥한 18년 만의 시리즈 ‘28년 후’(6월 19일)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대형 시리즈 작품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7월 2일), DC 유니버스 ‘슈퍼맨’(7월 9일)처럼 큰 화면으로 볼만한 기대작도 적지 않다. 봉준호 감독 ‘기생충’(2019년)의 북미 흥행 기록을 넘어선 한국 애니메이션 ‘예수의 생애’(영어 제목 ‘The King of Kings’)도 7월 국내 개봉한다. 원래 7, 8월은 극장가의 전통적인 대목이었다. 여름방학과 무더운 날씨에 가족 및 연인 관객이 시원한 극장으로 몰리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여름 ‘텐트폴’(거액의 제작비와 유명 배우를 동원해 흥행을 노리는 작품)이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을 내며 고전했다. 2023년 8월 김용화 감독 ‘더 문’은 관객 51만 명, 지난해 8월 전도연 주연 ‘리볼버’는 24만 명 동원하는 데 그쳤다. 이달 27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3가 공개되는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대작이 여름에 공개되는 상황은 극장가에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영화계에선 단순히 시기에 의존하기보다는 극장가를 되살릴 제대로 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성수기와 비수기가 사라진 현 극장가에서 더 이상 여름 텐트폴 전략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며 “OTT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극장에 가야 할 이유’를 다시 느낄 수 있도록 콘텐츠 기획과 상영 전략의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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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래드 피트-이민호-조정석 ‘빅 3파전’…여름 극장가 후끈

    레이싱 카를 몰고 트랙 위를 질주하는 브래드 피트, 현실이 된 웹소설 속에서 싸우는 이민호, 좀비가 된 딸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조정석….올여름 극장가에 ‘흥행보증 수표’로 통하는 스타들이 출연한 대형 작품들이 몰려온다. 모터스포츠부터 판타지, 코믹물에 이르기까지 장르도 다양해 팬데믹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못한 극장가에 모처럼 활력이 돌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브래드 피트-이민호-조정석 3파전여름 시장의 포문은 이달 25일 개봉하는 레이싱 영화 ‘F1 더 무비’가 연다. 한때 유망한 드라이버였지만 끔찍한 사고 이후 추락한 주인공이 최하위 팀에 합류해 재기를 노리는 이야기다.국내에서 모터스포츠 영화는 그리 인기 있는 장르는 아니다. 미국 포드와 이탈리아 페라리의 1960년대 스포츠카 경쟁을 다룬 영화 ‘포드 V 페라리’(2019년)가 관객 137만 명을 동원한 정도다.하지만 국내에서 ‘빵 형’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브래드 피트의 스타파워에 2억5000만 달러(약 34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제작비가 기대감을 높인다. 톰 크루즈 주연 ‘탑건: 매버릭’(2022년)으로 국내에서 관객 823만 명을 동원한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점도 기대할만 하다. 아찔한 트랙 위 질주와 함께 피트가 그리는 ‘중년의 질주’가 관전 포인트. F1 경기 마니아층 외에 일반 관객의 반응이 흥행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7월 중순에는 누적 조회수 1억 회 이상의 동명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전지적 독자 시점’이 개봉한다. 웹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된 가운데 등장인물들이 겪는 우여곡절을 그린 K-판타지다. 배우 이민호, 안효섭, 채수빈과 함께 블랙핑크 멤버 지수가 출연하는 화려한 라인업이 눈길을 끈다. 제작비가 300억 원 이상 투입된 작품이다.7월 중엔 코믹물 ‘좀비딸’도 관객을 찾는다. 동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좀비로 변한 딸을 지키려는 아빠의 이야기를 그렸다. 조여정, 이정은 등 조연진도 탄탄하지만 주목받는 건 주연 배우 조정석. 지난해 7월 영화 ‘파일럿’에서 유쾌한 웃음을 안기며 471만 명 관객을 동원한 조정석이 또 한 번 코믹 연기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좀코’(좀비+코미디)라는 낯선 장르지만, 여름 극장가에서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이 나온다.●기대작 몰린 여름 극장가, 반등 계기 마련할까이밖에도 가족 관객을 겨냥한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오’(6월 18일), 마니아층을 겨냥한 18년 만의 시리즈 ‘28년 후’(6월 19일)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대형 시리즈 작품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7월 2일), DC 유니버스 ‘슈퍼맨’(7월 9일)처럼 큰 화면으로 볼만한 기대작도 적지 않다. 봉준호 감독 ‘기생충’(2019년)의 북미 흥행 기록을 넘어선 한국 애니메이션 ‘예수의 생애’(미국명 ‘The King of Kings’)도 7월 국내 개봉한다.원래 7, 8월은 극장가의 전통적인 대목이었다. 여름 방학과 무더운 날씨에 가족 및 연인 관객이 시원한 극장으로 몰리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여름 ‘텐트폴’(거액의 제작비와 유명 배우를 동원해 흥행을 노리는 작품)이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을 내며 고전했다. 관객을 2023년 8월 김용화 감독 ‘더 문’은 51만 명, 지난해 8월 전도연 주연 ‘리볼버’는 24만 명 동원하는 데 그쳤다. 이달 27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3가 공개되는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대작이 여름에 공개되는 상황은 극장가에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영화계에선 단순히 시기에 의존하기보다는 극장가를 되살릴 제대로 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성수기와 비수기가 사라진 현 극장가에서 더 이상 여름 텐트폴 전략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며 “OTT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극장에 가야 할 이유’를 다시 느낄 수 있도록 콘텐츠 기획과 상영 전략의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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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우주서 지구를 본다는 건, 아이가 처음 거울을 보는 것”

    검은 바다 위에 파란 구슬 하나가 고요히 떠 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내려다본 지구다.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가 그 풍경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지구는 익숙한 별이 아니다. 빛과 색, 느낌마저 낯설다. “오늘 네 번째 궤도를 돌며 맞이한 새 아침, 사하라 사막의 흙먼지가 수백 마일 띠를 이뤄 바다로 쓸려 간다. 뿌옇게 담녹색으로 반짝이는 바다, 뿌연 주황빛 땅, 빛이 울리는 이곳은 아프리카다. 우주선 안에 있어도 빛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을 지난해 수상한 영국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ISS에 머무는 우주비행사 6명이 하루 동안 겪는 감각을 그렸다. 읽는 동안 미국 우주과학자 칼 세이건의 천문학서 ‘창백한 푸른 점’(사이언스북스)이 떠오를 만큼 아름답고 기이하다. ISS는 시속 약 2만8000km로 지구 궤도를 돈다. 그 덕에 ISS에선 하루에 해가 16번 뜨고 진다. “90분마다 아침이 찾아오는” 환경 속에서 비행사들은 시간의 경계조차 흐릿하게 느낀다. 실험과 운동, 우주유영이 반복되지만, 비행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늘 창 너머의 지구다. 저자는 비행사들의 감각을 시적 언어로 풀어낸다. 무중력 공간에서 육체는 방향을 잃고 시간도 모호해진다. ISS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정물화처럼 고요하다. “왼발 아래는 프랑스, 오른발 아래는 독일, 손끝으로는 중국 서부를 가린다”는 표현처럼 지구는 작게 느껴진다. 지구는 때때로 빛과 색의 흐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구는 빛으로 만들어진 환영 같았다.” ISS에서는 국경도, 이념도 사라진다.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비행사들은 협력해 움직인다. “하나의 유기체처럼” 행동한다. 작은 우주정거장 안의 조화는 국가 간 이해관계로 위기를 겪는 지구의 모습과 대비된다.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에 길게 쭉 뻗은 빛의 자취. 문명의 분열을 보여주는 것은 그뿐이다.” 특별한 사건은 펼쳐지지 않는다. 외계인의 침략도, 기계의 고장도 없다. 사건보다 감각, 서사보다 분위기를 좇는다. 마치 종교 경전이나 철학서처럼 느껴진다. 작품에서 한 비행사는 묻는다. “우주에서 신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이 책이 지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낯선 곳으로 떠나는 문학을 통해 자신을 겸허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지 않았던가. “세계를 낯설고 새롭게 만드는 기적”(부커상 심사위원단)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실제로 얼마나 작은지”(미국 잡지 뉴요커)에 대한 통찰이 작품 안에 담겨 있다. 저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기간에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제공한 방대한 영상과 사진 자료, 우주비행사들의 회고록과 인터뷰를 참고해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저자는 부커상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은 마치 아이가 처음으로 거울을 보고 그 속 존재가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것과 같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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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히어로의 우주최강 초능력은… 가슴을 후벼 파는 ‘신파’

    “네가 꼬부랑 할머니가 돼도 ‘아빠’ 하고 외치기만 해. 아버지가 히어로처럼 ‘짠’ 하고 나타나서 다 해결해 줄 거야!” 아빠 종민(오정세)은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출신. 하지만 지금은 허리 한번 펼 때마다 끙끙댄다. 예전 같은 발차기는 꿈도 못 꾼다. 그래도 딸 완서(이재인)에겐 세상 든든한 ‘딸 바보’다. 악당 수십 명이 들이닥쳐도 “네가 무슨 힘이 있다고. 무슨 일 있으면 맡겨”라며 큰소리를 뻥뻥 친다. 실은 완서는 심장 이식으로 괴력을 얻은 초능력자. 하지만 눈치채지 못하게 악당을 물리친 뒤 아빠의 기를 팍팍 살려 준다. “아버지, 아직 쓸 만하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하이파이브’는 평범한 다섯 사람이 의문의 장기 기증자로부터 심장·폐·신장·간·각막을 이식받은 뒤 초능력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다. 뻔한 공상과학(SF) 슈퍼히어로물을 넘어 “능력보단 감동 서사로 관객을 사로잡았다”는 호평. 12일 기준 124만 명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하고 있다. 아이언맨(마블)도 떠나고 슈퍼맨(DC코믹스)도 주춤한 사이, ‘K히어로’가 영화와 드라마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올 4월 개봉한 영화 ‘썬더볼츠*’가 국내에서 92만 명밖에 보지 않았을 정도로 성적표가 바닥. 하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 슈퍼히어로들은 공감을 무기로 선전하고 있다. 가족애와 효(孝), 공동체 정서 등을 잘 짚어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특징은 역시 ‘소박함’이다. 초능력자들이 모여 세상을 구하는 장대한 전투가 벌어지는 게 아니다. 스크린엔 애틋한 부녀의 눈빛과 정 많은 이웃들의 온기가 가득 차 있다. ‘하이파이브’를 연출한 강형철 감독은 지난달 29일 언론 인터뷰에서 “동네 사람들이 초능력이 생긴다면 뭘 할 것인지를 상상했는데 아마 지구를 구하진 못할 거고, 주변 사람들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겠나 싶었다”며 “히어로를 우리 주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로 묘사하려 했다”고 했다. 뻔하디뻔한 ‘신파’를 적절하게 버무린 것도 특징. 2023년 강풀 작가의 웹툰이 원작인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은 서로를 돕는 초능력자들의 따뜻한 서사를 그려 흥행에 성공했다. 학교 폭력 피해자가 초능력을 얻은 뒤 악귀에게 맞서는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1·2편(2020·2023년)처럼 마음 짠한 ‘울보 히어로’도 인기를 끌었다. 마블도 최근 여성 초인들이 여럿 등장했지만, 설득력 있는 여성 캐릭터는 ‘K히어로’가 훨씬 낫다는 평이다. 드라마 ‘힘 쎈 여자 강남순’(2023년)은 ‘어마무시’한 괴력을 타고난 3대 모녀를 통해 가족의 연대감을 잘 담아냈다. 영화 ‘마녀’ 1·2부(2018·2022년)는 충무로에서 여성 슈퍼히어로가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물론 K히어로가 늘 성공했던 건 아니다. 손익분기점(730만 명)에 한참 못 미치는 297만 명에 그친 영화 ‘외계+인’ 1·2편(2022·2024년)처럼 쓴맛을 본 작품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이 커진 만큼, 공감대를 충분하게 만든다면 ‘하이파이브’ 같은 성공 사례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신파라는 건 결국 사람을 웃고 울게 하는 드라마와 영화의 핵심 요소고, 결국 가슴을 흔드는 건 화려한 액션보다 공감과 감동 서사”라며 “K히어로는 이제 단순한 액션물이 아니라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K컬처의 장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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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호재]마흔 둘에 증명한 ‘해피엔딩’… 예술엔 나이도 경력도 없다

    ‘박천휴’는 일반인에겐 그리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국내 뮤지컬계에선 이미 상당한 인지도를 쌓은 작가지만, 배우들만큼 유명하진 않았다. 많은 이들이 8일(현지 시간) 미국 공연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토니상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6관왕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박 작가의 이력과 작품을 찾아볼 정도였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55)나 2019년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56)이 이미 대중적인 유명인이었던 것과는 차이가 난다. 하지만 박 작가의 성과는 놀라울 정도로 기록적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토니상에서 △작품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음악상 △무대디자인상을 휩쓸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첫 토니상 수상이다. 그 덕에 한국은 에미(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그래미(소프라노 조수미), 아카데미(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 토니라는 미국 대중문화 최고상 4대 트로피를 모두 품에 안은 나라가 됐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버려진 로봇 두 대가 사랑과 우정을 통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감정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다. 소규모 무대지만, 감정의 밀도와 서사의 정교함으로 브로드웨이 관객을 사로잡았다. 2016년 한국 초연부터 “인간의 외로움과 유대의 힘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아름다운 음악에 담아냈다”는 호평이 많았지만, 한국 순수 창작극으로 토니 6관왕을 거머쥘 줄은 쉽사리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박 작가는 한국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뒤 대중음악 작사가를 거쳐 뮤지컬계에 뛰어든 인물이다. 기존 뮤지컬 흥행 공식과 거리를 두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해 왔다고 한다. 2013년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번지점프’로 최우수 작사·작곡상을 수상했지만, 거장이라 불릴 만한 인물은 아니다. 박 작가가 42세에 토니상을 받은 건 젊은 편일까. 적어도 역대 최연소는 아니다. 영국 작곡가 토비 말로(31)는 28세인 2022년 토니상 음악상을 수상했다. 반면 미 작곡가 겸 작사가 아돌프 그린(1914∼2002)은 77세 때인 1991년에야 토니상 음악상을 받을 정도로 말년에 투혼을 발휘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나이나 경력이 아니란 점이다. 한강이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을 때 문학계에선 “아직 다른 한국 거장 문인들이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예측은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8년 만에 그는 한국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한국 문화계는 여전히 ‘연차주의’와 ‘권위주의’라는 벽과 싸운다. 데뷔 몇 년 차인지, 어느 계보에 속하는지가 평가 기준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박 작가의 토니상 수상은 나이와 경력의 경계를 무색하게 했다. ‘예술엔 선후배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줬다. 예술의 본질은 결국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새롭고 깊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느냐에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더 자주 이름 모르는 예술가가 뉴스에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보는 건 어떨까. 부족한 내 상식에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름을 모르는 예술가의 이름을 검색해보고, 뒤늦게라도 작품 세계에 빠져드는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되길 꿈꿔 본다.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관객석으로 향하고 싶다. 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

    • 202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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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윅’인가 ‘마석도’인가… 어둠의 광장 휩쓴 호쾌한 복수액션[선넘는 콘텐츠]

    “오래 걸리는 거 봤냐? 갔다 올게.” 2010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 앞. ‘기준’(소지섭)은 동생 ‘기석’(이준혁)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한 뒤 싸움터로 걸어 나간다. 광장엔 적이 가득하지만 기준의 표정은 무심하다. 상대를 얕보는 듯 검은 장갑을 낀 채 주먹만으로 상대를 때리고, 던지고, 제압한다. 한 조폭이 쓰러지자 다른 조직원들도 달려들지만 기준은 망설임 없이 맞선다.● “한국판 스타일리시 액션” 반응6일 공개된 넷플릭스 7부작 드라마 ‘광장’은 스스로 조폭 세계를 떠났던 기준이 조직의 2인자인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11년 만에 돌아오는 이야기다. 죽음의 배후를 파헤치고 복수를 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이 두드러지는 누아르 작품. 드라마 속 기준은 ‘천하무적’이다. 주먹 하나로 조폭 세계를 지배한다. 가끔 상대에게 맞기도 하지만 대체로 머뭇거림 없이 나아간다. “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전설적인 킬러를 연기한 ‘존 윅’ 시리즈가 떠오르는 스타일리시한 액션”이라는 시청자 반응들이 나온다.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의 마석도(마동석)를 연상케 하는 화끈한 액션이란 반응도 적잖다. 2020∼2021년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동명 원작 만화는 사뭇 달랐다. 웹툰 속 기준은 ‘처절한 싸움꾼’이다. 다리를 저는 탓에 상대에게 더 많이 맞으면서도, 이기기 위해서라면 다소 거칠고 때론 비열한 방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만큼 필사적이었다. 드라마 액션 장면이 호쾌한 분위기로 각색된 데에는 글로벌 시청자를 의식한 전략이 숨어 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소수의 원작 팬보다 다수의 시청자를 겨냥한다. 원작의 처절함을 덜어내더라도 해외 시청자 확보에 유리한 액션을 강조한 것. 드라마 해외 배급명이 ‘Mercy for None’(자비는 없다)으로 핏빛 복수란 점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눈빛으로 내뿜는 ‘소간지’ 액션 드라마는 ‘광장’의 개념도 확장시켰다. 원작 웹툰에선 이야기의 핵심 싸움이 벌어졌던 국회의사당 앞 광장을 가리켰다. 드라마는 ‘광장 결투’를 1화 오프닝에 짧게 등장시킨 뒤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광장은 ‘어둠의 세계’를 통칭하는 은유가 됐다. 최성은 감독은 5일 제작발표회에서 “원작의 스토리 외연을 확장하고 재해석하는 느낌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기준의 직업도 바뀌었다. 원작에서 기준은 조폭 세계에선 빠져나온 뒤 주류 배달원으로 일하며 속세에서 산다. 반면 드라마에선 깊은 산속 캠핑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설정됐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숨어든 ‘은둔자’ 기준의 심리가 두드러진다. 소지섭 배우는 “기준이는 말보다는 행동, 눈빛으로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다. 행간을 잘 채우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긍정적이다. 9일 기준 글로벌 OTT 순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글로벌 TV쇼 부문 3위에 올랐다. 베트남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홍콩에선 1위를 차지하는 등 동남아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대중문화 전문 매체 ‘콜라이더’는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 근접 격투로 밀착감과 현실감을 높여 영화 ‘올드보이’의 복도 싸움 장면이 떠오른다”며 “격투 장면은 생생하고 피투성이이며 강렬하다. 소지섭은 내면의 ‘마이클 마이어스’(영화 ‘할로윈’ 시리즈의 살인마 캐릭터)를 불러내 수십 명의 적을 제압한다”고 평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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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스24 이틀째 먹통 “해킹 당해 접속 오류”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9일 새벽 해킹을 당해 이튿날인 10일까지 접속이 되지 않으며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예스24는 10일 오후 입장문을 내고 “접속 오류로 불편과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며 “9일 오전 4시경부터 랜섬웨어로 인한 장애로 접속 오류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랜섬웨어는 해커가 사용자의 컴퓨터 시스템을 암호화한 뒤 금전적 대가 등을 요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악성 프로그램이다. 예스24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은 10일 오후 6시 현재 접속이 불가능해 종이책과 전자책(e북) 구매는 물론이고 공연 표 예매도 할 수 없는 상태다. 예스24 측은 해커가 금전을 요구했는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예스24의 접속 오류가 랜섬웨어로 인해 발생한 사실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수진 의원(국민의힘)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등을 통해 알려졌다. 이전까지 예스24는 홈페이지 등에 올린 공지에서 “더 나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 현재 시스템 점검 진행 중”이라고 안내했다. 예스24는 이후 입장문에서 “사고 발생 직후 보안 강화를 조치했고, KISA 등 관계 당국에 신고했다”며 “원인 분석 및 피해 여부 파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번 해킹으로 2023년 알라딘 e북 해킹 사건처럼 저작권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스24는 “회원 개인정보는 유출 및 유실이 없는 점을 확인했다. 주문 정보를 포함한 모든 데이터 역시 정상 보유하고 있다”며 “서비스 접속 정상화와 함께 구체적 피해 범위별 보상안을 안내하겠다”고 밝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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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스24, 랜셈웨어 공격에 이틀째 접속 장애…“개인정보 유출 없어”

    해킹을 당한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접속 불능 상태가 10일에도 전날에 이어 이틀째 이어졌다.예스24는 이날 “9일 오전 4시경부터 랜섬웨어로 인한 장애로 접속 오류가 발생했으며,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랜섬웨어는 해커가 사용자의 컴퓨터 시스템을 암호화한 뒤 금전적 대가를 요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악성 프로그램이다. 예스24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은 10일 오후에도 접속이 안 돼 종이책·전자책(e북) 구매는 물론 공연 표 예매도 불가능한 상태다. 해커가 금전을 요구해 왔는지에 관해 예스24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예스24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서비스 일체 접속 오류로 인해 큰 불편과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사고 발생 직후 보안 강화 조치를 했고, 당일 오후 1시경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 관계 당국에 신고했으며, 원인 분석 및 피해 여부 파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이번 해킹으로 2023년 알라딘 e북 해킹 사건처럼 저작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스24는 “회원 개인정보는 일체의 유출 및 유실이 없는 점을 확인했다. 주문 정보를 포함한 모든 데이터 역시 정상 보유하고 있다”며 “서비스 접속 정상화와 함께 구체적 피해 범위별 보상안을 안내 드리겠다”고 밝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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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툰보다 호탕하다…존 윅·마석도 잇는 소지섭표 액션 [선넘는 콘텐츠]

    “오래 걸리는 거 봤냐? 갔다 올게.”2010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 앞. ‘기준’(소지섭)은 동생 ‘기석’(이준혁)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한 뒤 싸움터로 걸어 나간다. 광장엔 적이 가득하지만 기준의 표정은 무심하다. 상대를 얕보는 듯 검은 장갑을 낀 채 주먹만으로 상대를 때리고, 던지고, 제압한다. 한 조폭이 쓰러지자 다른 조직원들도 달려들지만 기준은 망설임 없이 맞선다.● ‘존 윅’인가 ‘마석도’인가6일 공개된 넷플릭스 7부작 드라마 ‘광장’은 스스로 조폭 세계를 떠났던 기준이 조직의 2인자인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11년 만에 돌아오는 이야기다. 죽음의 배후를 파헤치고 복수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이 두드러지는 누아르 작품.드라마 속 기준은 ‘천하무적’이다. 주먹 하나로 조폭 세계를 지배한다. 가끔 상대에게 맞기도 하지만 대체로 머뭇거림 없이 나아간다. “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전설적인 킬러를 연기한 ‘존 윅’ 시리즈가 떠오르는 스타일리시한 액션”이라는 시청자 반응들이 나온다.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의 마석도(마동석)을 연상케 하는 화끈한 액션이란 반응도 적잖다.2020~2021년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동명 원작만화는 사뭇 달랐다. 웹툰 속 기준은 ‘처절한 싸움꾼’이다. 다리를 저는 탓에 상대에게 더 많이 맞으면서도, 이기기 위해서라면 다소 거칠고 때론 비열한 방식도 마다 않는다. 그만큼 필사적이었다.드라마 액션 장면이 호쾌한 분위기로 각색된 데에는 글로벌 시청자를 의식한 전략이 숨어 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소수의 원작 팬보다 다수의 시청자를 겨냥한다. 원작의 처절함을 덜어내더라도 해외 시청자 확보에 유리한 액션을 강조한 것. 드라마 해외 배급명이 ‘Mercy for None’(자비는 없다)로 핏빛 복수란 점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눈빛으로 내뿜는 ‘소간지’ 액션 드라마는 ‘광장’의 개념도 확장시켰다. 원작 웹툰에선 이야기의 핵심 싸움이 벌어졌던 국회의사당 앞 광장을 가리켰다. 드라마는 ‘광장 결투’를 1화 오프닝에 짧게 등장시킨 뒤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광장은 ‘어둠의 세계’를 통칭하는 은유가 됐다. 최성은 감독은 5일 제작발표회에서 “원작의 스토리 외연을 확장하고 재해석하는 느낌으로 만들었다”고 했다.기준의 직업도 바뀌었다. 원작에서 기준은 조폭 세계에선 빠져 나온 뒤 주류 배달원으로 일하며 속세에서 산다. 반면 드라마에선 깊은 산속 캠핑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설정됐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숨어든 ‘은둔자’ 기준의 심리가 두드러진다. 소지섭 배우는 “기준이는 말보다는 행동, 눈빛으로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다. 행간을 잘 채우려고 노력했다”고 했다.드라마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긍정적이다. 9일 기준 글로벌 OTT 순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글로벌 TV쇼 부문 3위에 올랐다. 베트남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홍콩에선 1위를 차지하는 등 동남아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대중문화전문매체 ‘콜라이더’는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 근접 격투로 밀착감과 현실감을 높여 영화 ‘올드보이’의 복도 싸움 장면이 떠오른다”며 “격투 장면은 생생하고 피투성이이며 강렬하다. 소지섭은 내면의 ‘마이클 마이어스’(영화 ‘할로윈’ 시리즈의 살인마 캐릭터)를 불러내 수십 명의 적을 제압한다”고 평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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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징어게임, 4년9개월만에 마침표… “인간의 선악관, 최후 격돌”

    “시즌2에서 기훈(이정재)과 프런트맨(이병헌)이 나눴던 ‘인간에 대한 믿음’에 대한 대화가 시즌3에서 어떻게 마무리될지 지켜보면 재미있을 겁니다.” 9일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 호텔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시즌3 제작발표회. 시리즈 시즌 1∼3의 각본·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53)은 ‘피날레’를 장식하는 시즌3의 주요 관점 포인트로 인간의 선(善)을 믿는 기훈과 악(惡)을 옹호하는 프런트맨의 본격 대결을 꼽았다. 황 감독은 “시즌2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기훈이 죄책감과 절망감으로 바닥에 떨어졌다가 어떻게 (위기를) 다시 헤쳐 나가는지를 담았다”며 “인간에 대한 믿음의 대결이자 가치관 승부가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4년 9개월 만의 ‘피날레’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이달 27일 드디어 시즌3를 공개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2021년 9월 첫 공개 뒤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미상’ 6관왕에 오른 시즌1 이후 4년 9개월 만이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시즌2 이후로 치면 6개월 만이다. 시즌3는 시즌2에서 프런트맨을 향한 반란에 실패했던 기훈이 절망에 빠졌다가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공개된 예고편에서 기훈은 “왜 날 안 죽였냐. 왜 나만 살려 둔 거냐”고 절규하고 생존을 위한 게임에 내던져진다. 배우 이정재는 “기훈은 친구의 죽음, 게임장에 들어온 사람들을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절망감을 딛고 이 게임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결정하고, 결국엔 결심하며 변모한다”고 했다.반란을 진압한 프런트맨과 다시 게임에 던져진 기훈의 본격 대결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예고편엔 검은색 턱시도를 입은 기훈과 프런트맨이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이 나온다. 배우 이병헌은 “프런트맨과 기훈의 본격적 대립이라고 볼 수 있는 스토리”라며 “시즌3는 클라이맥스와 결말이 있어 드라마적으로 강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즌1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시즌2 ‘둥글게 둥글게’에 이어 시즌3에서도 한국 전통 놀이가 변형된 게임들이 등장한다. 황 감독은 “높은 다리를 건너다가 줄에 발목이 걸려 떨어지는 게임과 미로 같은 곳에서 술래잡기, 숨바꼭질, 경찰과 도둑 등 여러 게임의 요소가 조금씩 들어간 새로운 게임이 등장한다”며 “마지막에는 숨겨진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에미상, 또 받을 수 있을까 엄청난 기대감 못지않게 우려도 적지 않다. 시즌2는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시간 1위를 유지하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미 골든글로브 TV드라마 작품상 수상 불발에 “시즌1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상당해 시즌3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시즌3가 메시지에 짓눌릴 수 있단 평가도 나온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부작용에 대한 질문”이란 황 감독의 자평처럼 너무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려다가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불안이다. 황 감독이 너무 많은 부담을 껴안은 것도 위험 요소다.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한 명이 각본과 연출을 3개 시즌 연속으로 이끄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신선한 게임과 잔혹한 연출로 화제를 모았던 시즌1과 달리, 시즌2는 넷플릭스의 천문학적인 ‘마케팅 폭탄’의 반사적 효과를 받았던 게 사실”이라며 “처음 시즌1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창의성과 유기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변수”라고 했다. 올 9월 미 에미상이 시리즈 전체를 최종 평가할 갈림길이 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올해 에미상은 그해 5월까지 방영된 작품이 대상이라 시즌2가 해당되지만, 시즌3 공개 직후인 8월 결선 투표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시즌3에서 멋지게 완성되는 피날레를 보여주면 다시 한번 에미상에서 ‘오징어 게임 신드롬’을 재현할지도 모른다. 미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4일(현지 시간) “에미상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 부문 유력 후보는 (HBO 드라마) ‘화이트 로터스’인가, ‘오징어 게임’인가”라며 관심을 표명했다. 시즌3의 흥행 여부는 K콘텐츠의 글로벌 지속성에 대한 시험대로도 꼽힌다. 성과에 따라 넷플릭스와 한국 제작사의 협업 향방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마니아들의 충성도, 신뢰감 등 긍정적 요소와 기존 서사의 반복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라며 “시즌3가 작품을 어떻게 끝낼지, 관객에게 어떤 새로움을 줄지에 따라 K콘텐츠의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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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날레 앞둔 오겜…“이정재와 이병헌, 본격적인 가치관 대립”

    “시즌2에서 기훈(이정재)과 프런트맨(이병헌)이 나눴던 ‘인간에 대한 믿음’에 대한 대화가 시즌3에서 어떻게 마무리될지 지켜보면 재미있을 겁니다.”9일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 호텔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시즌3 제작발표회. 시리즈 시즌 1~3의 각본·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53)은 ‘피날레’를 장식하는 시즌3의 주요 관점 포인트로 인간의 선(善)을 믿는 기훈과 악(惡)을 옹호하는 프런트맨의 본격 대결을 꼽았다. 황 감독은 “시즌2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기훈이 죄책감과 절망감으로 바닥에 떨어졌다가 어떻게 (위기를) 다시 헤쳐나가는지를 담았다”며 “인간에 대한 믿음의 대결이자 가치관 승부가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4년 9개월만의 ‘피날레’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이달 27일 드디어 시즌3를 공개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2021년 9월 첫 공개 뒤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미상’ 6관왕에 오른 시즌1 이후 4년 9개월 만이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시즌2 이후로 치면 6개월 만이다.시즌3는 시즌2에서 프런트맨을 향한 반란에 실패했던 기훈이 절망에 빠졌다가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공개된 예고편에서 기훈은 “왜 날 안 죽였냐. 왜 나만 살려 둔 거냐”고 절규하고 생존을 위한 게임에 내던져진다. 배우 이정재는 “기훈은 친구의 죽음, 게임장에 들어온 사람들을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절망감을 딛고 이 게임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결정하고, 결국엔 결심하며 변모한다”고 했다.반란을 진압한 프런트맨과 다시 게임에 던져진 기훈의 본격 대결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예고편엔 검은색 턱시도를 입은 기훈과 프런트맨이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이 나온다. 배우 이병헌은 “프런트맨과 기훈의 본격적 대립이라고 볼 수 있는 스토리”라며 “시즌3는 클라이맥스와 결말이 있어 드라마적으로 강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시즌1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시즌2 ‘둥글게 둥글게’에 이어 시즌3에서도 한국 전통 놀이가 변형된 게임들이 등장한다. 황 감독은 “높은 다리를 건너다가 줄에 발목이 걸려 떨어지는 게임, 미로 같은 곳에서 술래잡기·숨바꼭질·경찰과 도둑 등 여러 게임의 요소가 조금씩 들어간 새로운 게임이 등장한다”며 “마지막에는 숨겨진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에미상, 또 받을 수 있을까엄청난 기대감 못지않게 우려도 적지 않다. 시즌 2는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시간 1위를 유지하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미 골든글로브 TV드라마 작품상 수상 불발에 “시즌1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상당해 시즌3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일각에선 시즌3가 메시지에 짓눌릴 수 있단 평가도 나온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부작용에 대한 질문”이란 황 감독의 자평처럼 너무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려다가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불안이다.황 감독이 너무 많은 부담을 껴안은 것도 위험 요소다.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한 명이 각본과 연출을 3개 시즌 연속으로 이끄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신선한 게임과 잔혹한 연출로 화제를 모았던 시즌1과 달리, 시즌2는 넷플릭스의 천문학적인 ‘마케팅 폭탄’의 반사적 효과를 받았던 게 사실”이라며 “처음 시즌1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창의성과 유기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변수”라고 했다.올 9월 미 에미상이 시리즈 전체를 최종 평가할 갈림길이 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올해 에미상은 그해 5월까지 방영된 작품이 대상이라 시즌2가 해당되지만, 시즌3 공개 직후인 8월 결선 투표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시즌3에서 멋지게 완성되는 피날레를 보여주면 다시 한번 에미상에서 ‘오징어 게임 신드롬’을 재현할지도 모른다. 미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4일(현지 시간) “에미상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 부문 유력 후보는 (HBO 드라마) ‘화이트 로터스’인가, ‘오징어 게임’인가”라며 관심을 표명했다.시즌3의 흥행 여부는 K-콘텐츠의 글로벌 지속성에 대한 시험대로도 꼽힌다. 성과에 따라 넷플릭스와 한국 제작사의 협업 향방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마니아들의 충성도, 신뢰감 등 긍정적 요소와 기존 서사의 반복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라며 “시즌3가 작품을 어떻게 끝낼지, 관객에게 어떤 새로움을 줄지에 따라 K-콘텐츠의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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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냥 똑똑한 사람보다 상처 품은 천재 캐릭터에 끌려”

    “만화 ‘명탐정 코난’요? 저도 어릴 때 정말 재밌게 봤어요. 하하.” 4일 종영한 디즈니플러스 11부작 드라마 ‘나인 퍼즐’에서 주인공 이나 역을 맡은 배우 김다미(30)는 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뜨렸다. 말투와 의상, 추리 방식까지 만화적인 설정이 강했던 이나를 두고 시청자들은 “한국판 코난 같다”며 좋아했다. 김다미는 “그런 반응이 너무 재밌었다”며 “우리가 만든 캐릭터의 방향이 잘 전해졌다는 뜻”이라고 했다.“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인물이지만, 오히려 그 모순이 인간적으로 느껴지길 바랐어요. 그게 이나의 매력이죠.”‘나인 퍼즐’은 살인 사건 현장마다 퍼즐 조각을 남기고 사라지는 범인을 쫓는 미스터리물이다. 한 경찰이 자택에서 살해되고, 그의 조카 이나가 유일한 목격자로 퍼즐 조각 하나를 발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건은 끝내 미제로 남고, 10년 뒤 프로파일러가 된 이나는 다시 퍼즐이 배달되는 연쇄 살인 사건과 마주한다. 촘촘한 트릭과 인물 간 긴장감이 맞물리며 ‘쫀득한 추리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나는 천재적인 추리 능력을 지닌 프로파일러지만 감정 표현이 서툴고 말투는 어딘가 아이 같다. 강렬한 색감의 옷차림에 독특한 넥타이를 매는 등 외양도 평범하지 않다. 김다미는 “시각적으로도 강렬한 포인트가 필요했고, ‘이건 이나가 입을 법한 옷’이란 느낌을 주고 싶었다”며 “옷차림과 캐릭터 설정에 대해 감독님께 여러 아이디어를 적극 제안했다”고 했다. 지난달 21일 1∼6화가 공개됐을 때만 해도, 이나 캐릭터는 다소 낯설다는 반응도 있었다. 살인 사건 현장에서 계속 웃는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 이나가 “오글거린다”는 반응이었다. 김다미는 “고민도 있었지만 이나는 원래 그런 인물이라고 믿고 밀어붙이기로 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시청자분들도 점점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느꼈다”고 했다. 극에서 이나는 타인과 감정을 쉽게 나누지 못한다. 어린 시절 유일한 보호자였던 삼촌이 눈앞에서 숨진 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김다미는 “이나는 겉으로는 무심한 척하지만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며 “케이크를 챙기거나 선물로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그런 이나의 속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나는 김다미가 연기했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2020년)의 조이서와도 닮은 점이 있다. 두 캐릭터 모두 뛰어난 두뇌를 지녔지만, 감정적인 결핍을 안고 있다. 김다미는 “그냥 똑똑한 사람보다 상처를 안고 있는 천재 캐릭터에 더 끌리는 것 같다”며 “두 작품 모두 감정선을 섬세하게 조율해야 해서 연기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김다미는 영화 ‘마녀’(2018년)로 충무로에 등장한 뒤 드라마 ‘그해 우리는’(2021년) 등으로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 왔다. 하지만 출연 작품은 비교적 많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거의 없다. 내향적인 성격 때문일까. 그는 “하나에 몰입하면 에너지를 다 쓴다. 쉬는 시간이 있어야 다음 작품도 진심으로 할 수 있더라”며 웃었다. 배우로서의 목표를 묻자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조곤조곤 답했다.“그냥 ‘연기 잘한다’는 말이나 저에 대한 이미지보다 ‘그 캐릭터 기억나’라는 말이 훨씬 좋아요. 이번 드라마에서도 사람들이 ‘김다미’보다 ‘이나’를 먼저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엔 아주 어두운 인물도 도전해 보고 싶네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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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덕에… 1년 걸릴 영화, 카메라 없이 8일만에 완성”

    “이상한 일이다. 요즘 들어 유독 더 많은 방문자가 ‘이곳’을 찾는 느낌이 든다.”얼굴은 늑대, 몸은 사람인 ‘반인반수(半人半獸)’가 묵묵히 하얀 방을 지킨다. 반인반수의 직업은 ‘문지기’. 다양한 동물들을 맞이하고 상담한 뒤, 붉은 문으로 이끈다. 동물들은 왜 이 방을 찾아올까. 반인반수는 왜 문을 지키고 있는 걸까.지난달 30일 발표된 제1회 CGV AI 영화 공모전 대상작인 단편영화 ‘더 롱 비지터(The Wrong Visitor)’는 이승과 저승 사이를 연결하는 공간을 다룬 작품. 11분이란 짧은 분량에 죽음과 존재에 대한 기묘한 상상, 반인반수라는 상징적 캐릭터, 기괴한 아름다움을 담은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 영화가 대부분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2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현해리 감독(35)은 “카메라 없이 영화를 만든다는 건 예전엔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라며 “이젠 컴퓨터 앞에 앉아 상상한 걸 바로 영상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방송국 시사교양 프로그램 PD 출신인 그는 ‘계약직만 9번 한 여자’, ‘폭락’ 같은 독립영화를 연출했다. 미국 뉴욕국제필름어워드, 캐나다 토론토 국제 여성영화제에서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영화를 만든 과정은 이렇다. 먼저 그는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로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어색한 문장이나 표현을 챗GPT나 클로드 같은 AI로 다듬었다. 현 감독은 “여러 명의 페르소나와 함께 글을 쓰는 기분”이라고 했다.영상을 만드는 과정도 AI의 도움이 컸다. 먼저 의자에 앉은 남성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사진을 AI에 입력해 간단한 ‘콘티(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사람 얼굴에 늑대나 양 같은 동물 이미지를 합성한 뒤 ‘이미지 투 비디오(Image to Video)’ AI를 통해 움직이는 장면으로 바꿨다. 현 감독은 “AI가 마치 촬영감독처럼 장면을 찍어주는 셈”이라며 “급속도로 발달한 AI 기술 덕에 촬영 현장 없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물론 쉽기만 한 건 아니었다. AI가 만들어준 캐릭터는 입 모양이 음성과 맞지 않았다. 성우가 녹음한 목소리에 맞춰 입 모양을 다시 AI로 조정해야 했다. 색감도 장면마다 달라서 사람이 직접 하나하나 보정해 통일감을 줘야 했다. 하지만 AI를 통해 단 8일 만에 최소한의 인력으로 고품질의 단편영화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었다.“보통 이런 영화는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수년까지 걸리죠.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AI 덕분에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었어요.”현 감독은 현재 AI 기술을 활용한 장편 영화도 기획하고 있다. 올해 안에 완성해 관객에게 선보이는 게 목표다. 그는 AI가 영화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볼까.“AI가 때론 내가 원하지 않은 장면을 만들어 오기도 하는데 오히려 좋기도 했습니다. 저는 AI와 함께 일하는 ‘공동작업’을 했다고 생각해요. 같은 현장에서 일한 또 한 명의 스태프처럼요. ‘Film by AI(AI에 의한 영화)’가 아니라 ‘Film with AI(AI와 함께하는 영화)’의 시대가 이미 왔다고 생각합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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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나리오서 영상까지…카메라 없이 AI로 8일만에 영화 뚝딱”

    “이상한 일이다. 요즘 들어 유독 더 많은 방문자가 ‘이곳’을 찾는 느낌이 든다.”얼굴은 늑대, 몸은 사람인 ‘반인반수(半人半獸)’가 묵묵히 하얀 방을 지킨다. 반인반수의 직업은 ‘문지기’. 다양한 동물들을 맞이하고 상담한 뒤, 붉은 문으로 이끈다. 동물들은 왜 이 방을 찾아올까. 반인반수는 왜 문을 지키고 있는 걸까.지난달 30일 발표된 제1회 CGV AI 영화 공모전 대상작인 단편영화 ‘더 롱 비지터’(The Wrong Visitor)는 이승과 저승 사이를 연결하는 공간을 다룬 작품. 11분이란 짧은 분량에 죽음과 존재에 대한 기묘한 상상, 반인반수라는 상징적 캐릭터, 기괴한 아름다움을 담은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 영화가 대부분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2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현해리 감독(35)은 “카메라 없이 영화를 만든다는 건 예전엔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라며 “이젠 컴퓨터 앞에 앉아 상상한 걸 바로 영상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방송국 시사교양 프로그램 PD 출신인 그는 ‘계약직만 9번 한 여자’, ‘폭락’ 같은 독립영화를 연출했다. 미국 뉴욕국제필름어워드, 캐나다 토론토 국제 여성영화제에서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영화를 만든 과정은 이렇다. 먼저 그는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로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어색한 문장이나 표현을 챗 GPT나 클로드와 같은 AI로 다듬었다. 현 감독은 “여러 명의 페르소나와 함께 글을 쓰는 기분”이라고 했다.영상을 만드는 과정도 AI의 도움이 컸다. 먼저 의자에 앉은 남성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사진을 AI에 입력해 간단한 ‘콘티(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사람 얼굴에 늑대나 양 같은 동물 이미지를 합성한 뒤 ‘이미지 투 비디오(Image to Video)’ AI를 통해 움직이는 장면으로 바꿨다. 현 감독은 “AI가 마치 촬영감독처럼 장면을 찍어주는 셈”이라며 “급속도로 발달한 AI 기술 덕에 촬영 현장 없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물론 쉽기만 한 건 아니었다. AI가 만들어준 캐릭터는 입 모양이 음성과 맞지 않았다. 성우가 녹음한 목소리에 맞춰 입 모양을 다시 AI로 조정해야 했다. 색감도 장면마다 달라서 사람이 직접 하나하나 보정해 통일감을 줘야 했다. 하지만 AI를 통해 단 8일 만에 최소한의 인력으로 고품질의 단편영화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었다.“보통 이런 영화는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수년까지 걸리죠.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AI 덕분에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었어요.”현 감독은 현재 AI 기술을 활용한 장편 영화도 기획하고 있다. 올해 안에 완성해 관객에게 선보이는 게 목표다. 그는 AI가 영화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볼까.“AI가 때론 내가 원하지 않은 장면을 만들어 오기도 하는데 오히려 좋기도 했습니다. 저는 AI와 함께 일하는 ‘공동작업’을 했다고 생각해요. 같은 현장에서 일한 또 한 명의 스태프처럼요. ‘Film by AI(AI에 의한 영화)’가 아니라 ‘Film with AI(AI와 함께하는 영화)’의 시대가 이미 왔다고 생각합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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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채색 옷 투표’ BTS-아이유… 정치논란 차단

    “여러분, 오늘 꼭 투표하세요.” 가수 겸 배우 윤은혜는 3일 오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함께 제21대 대통령 선거 본투표를 마친 뒤 팬들에게 투표를 독려한 짤막한 글을 올렸다. 투표 ‘인증 사진’은 신중을 기했다. 옷은 무채색으로 입었고, 투표소 현수막을 가리키는 손은 이모티콘으로 가렸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 지지로 오해받을 여지를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이날 연예인 등 많은 유명인은 이전 선거와 마찬가지로 투표에 적극 참여하며 소셜미디어 인증샷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복장과 제스처 등 외적 요소에 더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모양새다. 최근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가 올린 사진 때문에 벌어졌던 ‘색깔 논쟁’으로 정치적 표현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배우 변정수 역시 “그냥 쉬는 날이 아니라는 것, 귀찮다고 포기하지 말아 달라”며 소셜미디어에 투표 장려 메시지를 올렸다. 방송인 곽정은도 오전 6시경 손등에 찍은 투표 도장 사진을 공개하며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모두 정치적으로 해석될 만한 표현이나 사진은 없었다. ‘엄지 척’이나 ‘V’ 포즈 등 손가락 제스처도 지양하는 분위기였다. 배우 박보영·김소현, 가수 이은미·선미 등도 이날 투표에 참여한 사실을 차분하게 알렸다. 사전투표 기간에 올린 게시물도 엇비슷했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은 지난달 29일 사전투표소 앞에서 찍은 셀카에서 검은색 티셔츠와 마스크, 모자를 착용했다. 가수 아이유는 지난달 30일 회색 계열 옷차림으로 사전투표 인증 사진을 올렸다. 배우 김고은은 사전투표소 안내 문구만 공개했고, 배우 한예리는 사진을 흑백으로 처리했다. 배우 이제훈은 영화 ‘소주전쟁’ 간담회에서 손가락 제스처 없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포즈를 취했다. 최근 연예계에선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으로 곤욕을 치른 이들이 적지 않다. 카리나는 지난달 27일 숫자 2가 적힌 빨간색 점퍼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가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는 비난이 커지자 “앞으로는 더욱 주의 깊게 행동하겠다”고 공개 사과했다. 래퍼 빈지노도 빨간색 의상을 입은 사진을 공개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반면 몇몇 연예인은 일부러 파란색이나 빨간색 옷을 입고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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