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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처음 상태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 목숨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승객을 버리고 도주한 세월호 선원 중 조기장 전모 씨(64)가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그가 재판을 받던 2014년 11월경 광주 광산구 서정교회의 장헌권 목사(60)에게 보낸 ‘옥중 편지’다. 세월호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28일 현재 전 씨는 징역형이 선고된 세월호 선원 중 유일하게 형기를 마친 사람이다. 약 2년 5개월 만에 공개된 편지에서 전 씨는 참사 당시 자신의 행동을 크게 후회했다. 그는 “청천벽력 같은 암담한 현실이 너무도 두렵고 무엇으로도,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큰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적었다. 참사 당시 자신이 죽었어야 한다고도 했다. 부모의 심정에서 참회한다는 취지의 글도 썼다. 전 씨는 “자식이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때같은 어린 자식들의 처절한 절규가 내 심정을 시커멓게 오열하는 그 가족들의 원망과 눈물이 피눈물로 흘려 내리고 있습니다”라고 속죄했다. 이는 그의 딸이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경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전 씨는 “자식 중에서도 정이 갔던 딸자식이 못난 아비를 대신하여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사고 당시 상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전 씨는 당시 상황을 “세월호가 복원성을 잃고 급속히 좌현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사법당국이 판단한 세월호 침몰 과정과 같다. 이어 그는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며 “기도해 달라”고 장 목사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조기장인 전 씨는 세월호의 각종 기관을 관리하는 조기수들을 감독하며 문제가 발생하면 1등 항해사에게 보고하는 역할이다. 2015년 대법원은 유기치상과 유기치사,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전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세월호 승무원 가운데서는 가장 가벼운 처벌이었다. 그는 항소 과정에서 “세월호 소유주인 청해진해운과 실제 계약을 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구조 의무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준석 선장은 살인죄가 인정돼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전 씨는 현재 부산에서 노모를 모시고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인 그의 노모는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28일 편지를 공개한 장 목사는 “전 씨의 편지가 세월호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황성호 hsh0330@donga.com·구특교 기자}

후회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었다. 승객을 버리고 도주한 세월호 조기장 전모 씨(64)가 옥중에 있었던 2014년 10월경 광주 광산구 서정교회의 장헌권 목사(60)에게 보낸 참회의 편지가 뒤늦게 공개됐다. 그는 세월호 관계자들에게 때늦은 미안함을 절절히 표시했다. 전 씨는 편지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자신의 행동을 크게 후회한다고 했다. 그는 “청천벽력 같은 암담한 현실이 너무도 두렵고 무엇으로도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큰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사죄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처음 상태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 목숨대(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라며 뒤늦게 짙은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참사 당시 자신이 죽었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부모의 심정에서 참회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전 씨는 “자식이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때같은 어린 자식들의 처절한 절규가 내 심정을 시커멓게 오열하는 그 가족들의 원망과 눈물이 피눈물로 흘려 내리고 있습니다”라고 속죄했다. 이는 그의 딸이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경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전 씨의 딸은 결혼해 남편과 자녀도 있었다. 전 씨는 “자식 중에서도 정이 갔던 딸자식이 못난 아비를 대신하여 영정을 가슴에 품으면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전 씨는 참사 당시 상황을 “세월호가 복원성을 잃고 급속히 좌현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사법당국이 판단한 세월호의 침몰과정과 같다. 이어 그는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며 “기도해달라”며 장 목사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전 씨는 2014년 법정에서도 “어리석은 짓을 했다”는 말을 하며 가족과 국민들에게 사죄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발생 당시 별다른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탑승객을 버리고 도망쳤다. 대법원은 전 씨에게 유기치상, 유기치사,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2015년 확정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세월호 승무원 가운데서는 가장 가벼운 처벌이었다. 항소 과정에서 그는 “세월호 소유주인 청해진해운과 실제 계약을 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구조 의무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최근 복역기간이 끝나 출소한 상태다. 전 씨는 현재 부산에서 노모를 모시고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노모는 고령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편지를 공개한 장 목사는 28일 “전 씨의 편지가 세월호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학부모님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아래 항목을 체크해 20일까지 담임선생님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들고 온 가정통신문을 읽던 손모 씨(36·여)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학교에서 요청한 학부모 활동 내용 탓이다. 도서실 도우미, 급식 도우미, 화단·텃밭 관리 도우미, 학급 청소 도우미, 체험활동 도우미, 김장 행사 도우미, 벼농사 체험 도우미, 안전 등·하굣길 도우미 등 종류도 다양했다. 맞벌이인 손 씨로서는 어느 하나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22일 손 씨의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총회가 열렸다. 손 씨는 눈치를 보며 회사에 연차를 내고 학교를 찾았다. 손 씨는 교실 뒤쪽에 앉았다. 앞쪽에는 학부모 활동에 평균 3개 이상 참여하는 엄마들이 앉았다. 이른바 ‘A학점’으로 불리는 학부모들이다. 손 씨처럼 뒤쪽에 앉은 엄마들은 학부모 활동 1개를 겨우 체크한 엄마들이다. 자연스럽게 D학점으로 불린다. 역시 맞벌이인 안모 씨(37·여)도 날마다 아이가 가져오는 가정통신문을 보는 게 두렵다. 안 씨는 “담임선생님이 전화해서 (어머니회) 활동을 부탁했는데 거절했다”며 “가정통신문이 올 때마다 일종의 권고사직서처럼 느껴질 정도로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워킹맘들에게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은 1년 중 육아 스트레스가 가장 심한 때다. 각양각색의 학부모 활동 요청에 결국 퇴사를 결심하는 워킹맘도 많다. 이맘때 초등학교에선 ‘녹색어머니회’ ‘명예교사회’ ‘학교폭력방지회’ ‘급식 도우미회’ 등 다양한 이름의 학부모회 가입을 권유한다. 워킹맘의 비율이 느는 현실과 달리 활동의 종류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방과 후 운동 도우미, 교육활동 모니터링, 독서 도우미, 학예회 도우미 등을 운영 중이다. 최근 한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는 “학교 일 때문에 연차를 더 내는 것도 눈치 보인다. 퇴사를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글이 하루 평균 5건씩 올라오고 있다. 본보가 최근 일주일 동안 서울 성동구와 영등포구 일원에서 만난 워킹맘 20여 명 가운데 상당수가 “3월까지만 일할 생각이다”라거나 “이제는 아이의 학교와 회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업 엄마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워킹맘들이 등·하굣길 도우미 등 아침, 점심 특정 시간대의 활동에 몰리다 보니 학급 청소, 급식 도우미 등 반나절 이상 노동력이 드는 활동은 자연스레 전업 엄마들의 몫이다. 전업 엄마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지면서 맞벌이 엄마들의 참여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바꾸는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이모 씨(43·여)는 “워킹맘들이 모인 카톡방에서는 3, 4월만 버티자는 말이 유행어일 정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교 문화의 변화를 촉구했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부모를 학교 행사에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을(乙)’로 보는 의식이 여전하다”며 “전문성을 가진 워킹맘이 많은 현실을 반영해 학부모회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단비 kubee08@donga.com·구특교 기자}

“중독성 강한 떡볶이를 ‘마약떡볶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이런 작은 표현부터 바꾸고 싶습니다.” 21일 충남 천안시 남서울대 소강당 무대에 선 김시경 씨(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3학년)의 다짐이다. 김 씨는 이날 발족한 국내 최초의 마약 퇴치 및 예방을 위한 학생 동아리 ‘마그마’의 회장이다. 마그마는 ‘마음을 다잡고 그만합시다. 마약’의 줄임말이다. 남서울대는 이날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와 ‘마약 중독 예방 및 치료를 위한 협력의 장’을 마련하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첫 번째 결실이 마그마 발족이다. 남서울대는 대학원에 개설된 중독재활상담학과를 통해 국내외에서 약물 예방을 위한 교육 활동을 진행 중이다. 마그마는 이주열 보건행정학과 교수의 지도를 받는 대학생 대학원생 등 35명으로 구성됐다. 앞으로 회원들은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마약 예방 교육 및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김은실 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는 “마약의 위험성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다 보니 해외에서 대마초 등을 문제의식 없이 피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석 남서울대 부총장은 “두 기관이 국내 최초로 ‘마약 없는 세상’ 실현을 위한 동아리 1호를 열게 돼 뜻깊다”며 “앞으로 상호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 나온 사람들로 도심이 가득했던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인근. 가수 이효리 씨의 친오빠 이국진 씨(44)는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A 씨(62)가 60대 여성의 배낭에 손을 넣는 모습을 목격했다. 국진 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볼일을 보러 잠시 외출을 나온 참이었다. 지갑을 손에 넣은 A 씨가 인파 속으로 사라지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국진 씨는 “지금 뭐하는 거야. 도둑이다! 경찰 불러요”라고 소리치며 A 씨를 붙잡았다. 그 순간 A 씨는 한쪽 손에 든 지갑을 다른 손으로 재빠르게 넘긴 후 은밀히 배낭에 다시 집어넣었다. 이어 그는 착용했던 틀니를 갑자기 입에서 빼고는 “젊은 사람이 나를 때리려 한다”며 오히려 국진 씨를 모함했다. 상황은 국진 씨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주변이 어수선해서인지 국진 씨가 되레 A 씨를 폭행했다는 거짓말도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국진 씨는 도망가지 못하게 A 씨를 꼭 부여잡고 있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국진 씨와 A 씨를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국진 씨가 소매치기 현행범 체포에 도움을 준 공로를 인정해 상금과 함께 감사패를 최근 전달했다고 19일 밝혔다. A 씨가 다시 지갑을 배낭으로 집어넣는 모습을 피해자의 친구가 목격했던 것이다. 다른 목격자들도 잇달아 나타났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A 씨도 그제야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 경찰은 “A 씨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신문지와 태극기를 들고 소매치기를 한 것으로 봐서 용의주도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진 씨는 “당시 곁에 있던 어머니가 굉장히 놀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며 “당연한 일을 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을 받으려고 한 행동도 아니고 해서 동생에게 이번 일을 따로 말하지는 않았다. 받은 상금은 기부할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황성호 hsh0330@donga.com·구특교 기자}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할 경우 박 대통령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사저를 매각하고 경기도 모처의 새 사저로 옮길 방침인 것으로 8일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에 1990년부터 2013년 2월 25일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약 23년 동안 거주했다. 삼성동 사저 인근 주민들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청와대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사저와 주변 건물의 매물 시세를 파악하고 갔다.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30, 40대 남성 3명이 사저 등 인근 건물 5곳의 가격을 묻고 갔다”면서 “그중 매물로 나와 있는 한 곳은 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 경호동으로 쓰였던 건물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주로 사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3층 이상 건물을 찾았다. 중개업소 사장은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왔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고 전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탄핵심판의 결론은 알 수 없지만 청와대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준비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청와대는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인용될 경우를 대비해 삼성동 사저의 거주 및 경호 여건을 검토했는데 박 대통령이 사저로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결론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엔 대통령이 파면될 경우 비서관 채용이나 연금 등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돼 있지만 경호·경비는 예외다. 따라서 사저 옆엔 경호동이 있어야 하고 사저 자체도 주변 민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삼성동 사저의 경우 지금 상황으로는 재건축 수준의 공사를 하지 않으면 경호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근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박 대통령이 여기로 돌아오면 시위로 주변이 시끄러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주민 우모 씨는 “사저 주변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경호동으로 지정되면 억지로 방을 빼야 하는 것 아니냐’며 술렁이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 있는 충청 지역 등에 새 사저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주로 생활해 온 박 대통령이 서울에서 먼 지방으로 거처를 옮기는 게 어렵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경기도 모처에 새 사저를 마련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를 매각하고 새 사저로 옮기기 전까지 천주교나 불교 등 종교 시설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만약 탄핵소추안이 기각되면 청와대는 삼성동 사저 자리에 새 건물을 짓기로 한 기존 계획을 그대로 실행할 방침이다. 청와대는 1983년에 지어져 노후화된 삼성동 사저를 허문 뒤 박 대통령과 비서관들이 머물 방과 사무실이 있고 전직 대통령 경호·경비에 적합한 새 사저와 경호동을 신축할 계획이다. 청와대는 내년 2월 박 대통령 퇴임에 맞춰 입주할 수 있도록 예산과 설계도를 마련해 뒀다. 삼성동 사저는 박 대통령과 정치 일생을 함께했다. 박 대통령은 1990년 서울 중구 장충동 집을 매각하고 삼성동 사저로 이사한 뒤 1997년 정계에 입문했고 2012년 대통령에 당선됐다.최지연 lima@donga.com·구특교 기자}

“중학교 간 지 며칠이나 됐다고…. 애가 학교를 안 가겠대요.” 3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은 한 엄마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옆에는 이틀 전 중학교에 입학한 자녀가 서 있었다. 엄마는 의사 앞에서 “아이가 왜 이러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며 하소연했다. 의사는 학교폭력을 의심하며 아이에게 이유를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카톡방 때문에요.” 아이는 “친해지고 싶은 친구들이 있는데 나만 빼고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을 만들었어요. 그룹 페이스북 신청도 거절당했고요. 중학교에선 친구가 없을 것 같아요”라며 울먹였다. 중고교생은 물론이고 초등학생까지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즐기면서 학기 초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온라인 소통에 익숙하다 보니 새로운 학교나 학급에서의 오프라인 소통에 서툰 탓이다. 처음 SNS로 관계 맺기에 실패하면 아예 친구 사귀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낯선 환경에서 친구 맺기를 두려워하는 이른바 ‘프렌드십 포비아(friendship phobia·친구 사귀기 공포)’다. ○ ‘단펨’ 끼지 못할까봐 전전긍긍 올해 6학년이 된 윤모 양(12)은 새 학기 첫날 페이스북에 접속해 같은 반 친구 이름을 한 명씩 검색했다. 이어 친해지고 싶은 7명에게 ‘친구 신청’을 했다. 그러나 일주일째 답이 없자 불안해졌다. 윤 양은 “다들 바쁜가 보다 했는데 친구들끼리 이미 페이스북 메신저를 주고받고 있었다. 일부러 따돌리는 것 같아 말 걸기도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프렌드십 포비아를 겪는 건 주변에서 ‘사이버 왕따’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보기 때문이다. 박모 양(13·중1)은 “학기 초반 맘에 안 드는 친구는 단펨(단체 페이스북 메신저)에 끼워주지 않더라. 친구들 간 메신저 연락이 뜸하면 나 모르게 단펨이 만들어졌을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한모 군(16·고1)은 “요즘엔 페북, 카톡으로 먼저 말을 트고 교실에서 대화를 이어가는 편이다. 메신저로 얘기하지 않은 친구에게 말을 거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불안하다. 6일 서울의 한 심리상담센터를 찾은 박모 씨(40·여)는 “새 학급에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딸아이 얘기를 듣고 예비소집일에 만난 엄마들을 급히 불러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내기로 약속했다”고 털어놨다. ○ 학교와 가정 공동의 노력 필요 지난해 서울의 한 지역학생상담지원센터에서 친구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한 학생은 초등생 4476명, 중학생 1452명, 고교생 777명이었다. 학교폭력 관련 상담 건수(329건)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SNS 이용 연령이 낮아지고 혼자 크는 아이가 많아지면서 오프라인 사회성이 점점 더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충남 홍성군의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인 이모 씨(27)는 최근 자기 반 아이들에게 ‘친구 집 다녀오기’ ‘친구와 사진 찍어오기’ 같은 숙제를 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대신 얼굴을 보고 친구와 소통하라는 뜻이 담겼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친구에게 물어볼 내용이 있으면 SNS보다 통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도록 하고, 서로의 집에서 함께 놀 수 있도록 하는 등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김단비 kubee08@donga.com·구특교 기자}
“죽어라!” “총살 0순위!” 섬뜩한 말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요란한 꽹과리 소리에 경찰 호루라기 소리까지 더해져 귀를 막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이 열린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의 상황이다. 탄핵 찬반 세력의 고성과 욕설에 각종 시위도구가 동원되면서 말 그대로 난리 통이었다. “물러서라”는 경찰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고 삿대질을 했다. 일부 시위대는 막아서는 경찰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등 위협하기도 했다.○ 아수라장 된 역사의 현장 이른 아침 헌재 주변은 어느 때보다 긴장된 분위기였다. 해가 완전히 뜨지도 않은 오전 6시. 헌재 주변을 도는 경찰의 수가 부쩍 늘었다. 경찰은 출근하는 헌재 직원들의 신분을 꼼꼼히 확인했다. 오전 7시경 최종 변론 방청권을 받기 위해 시민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방청권은 오후 1시부터 선착순으로 배부한다. 대학생 이하림 씨(23)는 “아침 날씨가 춥지만 역사적인 현장이라 꼭 와보고 싶었다”며 “많이 기다리더라도 꼭 재판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헌재 주변은 이내 탄핵 찬반을 외치는 고성으로 채워졌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소속 20여 명은 이날 기자회견에 ‘탄핵, 일도양단(一刀兩斷)’이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었다. 일도양단은 한칼로 쳐서 두 동강이를 낸다는 말로 머뭇거리지 말고 행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체 없는 탄핵을 요구한 것이다. 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특검 수사기간 연장 거부를 비판하며 “공범인 황교안도 탄핵하라”고 주장했다. 이들과 약 20m 거리에 있던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빨갱이들이 나라 망친다”며 큰 소리를 쳤다. 분위기가 격해지자 참가자 사이에서 “재판관들 사형하라” “이정미는, 심근경색으로 죽어라” 등 별의별 말이 쏟아졌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현장을 찾아 “3인의 안위가 어떻게 지켜지냐”면서 “살해압박? 벌벌 떨고 있는 게 무슨 재판관이냐”며 조롱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날 헌재에는 경찰 기동대 4개 중대가 투입됐다. 경찰이 수시로 “헌재 앞 100m 안에서 집회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방송했지만 일부 참가자는 “경찰이 왜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오히려 삿대질을 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탄핵 반대를 주장하던 한 남성이 헌재를 향해 기습적으로 돌진하다가 경찰에게 제지당한 일도 있었다.○ 3·1절 집회 때 충돌 우려 온라인에서도 “기각되면 싹 다 죽이자. 박사모들하고 전쟁 함 치르자” “할배들 사라져야 한다” “내가 좌파라도 니들처럼 개새끼나 버러지처럼은 안 산다” 등 도를 넘은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종 변론기일 이틀 뒤 열리는 3·1절 집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탄핵 찬반 측이 대규모 집회와 함께 청와대 방향으로의 행진을 계획 중이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는 1일 오전 11시 평소 촛불집회가 열리던 광화문 일부 지역에 집회를 신고한 상태다. 정광용 탄기국 공동대표는 “이날 많게는 700만 명이 모일 것”이라며 “전국 버스 3000대의 좌석이 꽉 찰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진영 갈등이 심해져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는 건 막아야 한다”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고 통합을 위한 노력을 함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정지영 jjy2011@donga.com·구특교·신규진 기자}
25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선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에 불복해야 한다는 선동이 등장했다. 또 박 대통령 탄핵과 무관한 주장과 구호가 쏟아졌다. 탄핵심판의 박 대통령 대리인단 소속 김평우 변호사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인근에서 열린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집회 단상에 올라 “여기가 조선시대냐. (헌법재판소가 판결에) 복종하라면 복종하는 노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2일 헌재 탄핵심판 변론에서 ‘사기극’ ‘대역죄’ ‘내란’ 등의 막말을 쏟아낸 데 이어, 탄핵이 인용될 경우 불복해야 한다고 선동한 것. 집회 참가자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박수를 치며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이었다. ‘폭압 특검 해체하라’고 쓰인 빨간색 깃발도 펄럭였다. 헌재를 압박하는 발언도 나왔다. 정광용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악마의 재판관 3명 때문에 탄핵이 인용되면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과 강일원 탄핵심판 주심에 대해 “(우리는) 당신들의 안위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위협 섞인 발언을 했다. 김 변호사는 “원로들과 일부 국회의원이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탄핵안이) 사기라는 걸 알고 하는 소리냐”라고도 했다. 같은 시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7차 촛불집회에서는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 석방” “비정규직 철폐” “사드 배치 철폐” 등 탄핵과 관련이 없는 구호와 주장이 한동안 이어졌다. 권기범 kaki@donga.com·구특교 기자}

탄핵심판 결정이 가시권에 접어들면서 주말 집회 현장의 분열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태극기를 든 시민과 촛불을 든 시민 모두 과격한 구호를 앞세우고 있다. 헌법재판소 압박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이하 탄기국)와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은 18일 오후 2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과 청계광장에 모였다. “특검 무효” “계엄령 선포” 등 구호가 반복됐다. 특히 이날 집회에선 ‘사즉생(죽으면 살리라)’ ‘결사항쟁’ 같은 표현이 등장하고 “국민저항권을 행사하겠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사모 정광용 회장은 “더러운 남창 게이트로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평화적 방법을 고수했지만 무시됐다. 법 테두리 안에서 평화적 방법을 넘어설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집회 중 물리적 마찰이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백모 씨(43)는 “탄기국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폭력적인 행위라도 선두에 서서 동참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모 씨(56·여)는 “어떤 움직임에도 적극 동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무단횡단을 제지하던 경찰에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50대 남성이 입건됐다. ‘대구 선글라스 아재’로 소개된 오모 씨는 퇴임한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을 겨냥했다. 그는 “박한철이 탄핵 선고일을 3월 13일로 못 박았다. 그 이유가 이정미 퇴임일 때문이라는데 재판관 임기가 대한민국 운명보다 더 중요한가”라며 비난했다. 주최 측은 이날 태극기집회에 약 25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탄핵에 찬성하는 촛불집회도 이날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주최 측은 전국에 약 84만 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탄핵심판 결정까지 나머지 일정이 구체화되면서 찬성 진영에서도 헌재에 영향을 미치려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퇴진행동 측 권영국 변호사는 “탄핵안이 소추돼 헌재에 넘어간 지 두 달이 넘었다. 헌법 유린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탄핵은 인용될 것이다. 주권자의 명령이다”라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촛불은 타오르고 병신년은 꺼졌다”고 외쳤다.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이 직접 탄핵심판을 둘러싼 정치권 움직임에 우려까지 표명했지만 이날도 대선 주자와 국회의원들은 경쟁하듯 발언을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조기 탄핵이 국민들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태극기집회엔 자유한국당의 김진태 의원과 이노근 전 의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이 참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으로 “탄핵 인용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집회 현장에 돌자 김 의원은 “만약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 조사 기한 연장을 승인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국회의원 중에 뇌물수수범과 강도범까지 있다. 이런 쓰레기들이 모인 집단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양을 떨던 이들이 탄핵까지 가결시켰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선거 때 삼성에서 30억 원을 받아 감옥도 갔다 온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군중의 위세로 헌재를 압박하자는 식의 집회 참가자들의 태도와 정치권의 개입이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이라며 “탄핵심판이 임박할수록 ‘죽기 살기 식’ 분위기로 전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요일인 19일에도 김 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강원 춘천시에서는 탄핵 찬반집회가 열렸다. 탄기국 강원본부는 이날 오후 2시 동내면 거두사거리에서 ‘춘천 애국시민 탄핵기각 태극기 집회’를 열었다. 오후 5시에는 근처에서 퇴진행동 측 촛불집회가 열렸다. 양측은 각각 집회 후 행진에 나섰지만 우려했던 충돌은 없었다.김단비 kubee08@donga.com·구특교 / 춘천=이인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