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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인하의 여파로 은행 정기예금의 평균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연 1%대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3% 밑으로 하락했다. 2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지난달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정기예금 평균금리는 연 1.90%로 전달인 2월(2.02%)에 비해 0.12%포인트 하락했다. 정기예금 금리가 평균 1%대로 내려간 것은 금리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96년 이후 처음이다. 금리 수준별 분포도를 봐도 3월에 새로 가입한 정기예금 중 금리가 2% 미만인 상품이 전체의 3분의 2인 66%에 달했다. 나머지 34%는 금리가 2%대였고 3% 이상 이자를 주는 상품은 하나도 없었다. 정기 예·적금, 상호부금, 양도성예금증서(CD) 등을 합친 저축성 수신 상품의 평균금리도 3월에 1.92%로 전달보다 0.12%포인트 하락했다. 이런 예금 금리 인하는 지난달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아직 한은 통계로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시중은행의 예금 금리는 이달 들어서 더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만 해도 2%대는 유지했던 주요 시중은행의 대표적 정기예금 상품의 금리가 지금은 일제히 1%대 중반까지 내린 상태다. 신한은행의 ‘신한S드림 정기예금’(1년 만기)은 작년 말에 2.07%의 금리를 줬지만 29일 현재는 1.55%로 0.5%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국민은행 ‘국민수퍼정기예금’(2.15%→1.62%), 우리은행 ‘우리유후정기예금’(2.10%→1.75%), 하나은행 ‘고단위플러스정기예금’(2%→1.6%) 등도 비슷한 낙폭을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예금상품 담당자는 “저금리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도 예금을 유치해봤자 마땅히 굴릴 곳이 없다”며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증시로 가는 자금을 애써 막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금 금리와 함께 대출 금리도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3월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는 연 2.97%로 2월(3.24%)에 비해 0.27%포인트 떨어졌다. 전체 대출상품의 평균금리도 3.61%로 전달보다 0.25%포인트나 급락하며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강준구 한은 금융통계팀 과장은 “예금 금리보다 대출 금리의 하락폭이 더 큰 것은 지난달 24일 출시된 안심전환대출의 영향이 일부 반영됐기 때문”이라며 “안심대출로 인해 4월 대출 금리도 평소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르면 내년부터 정맥이나 홍채 인식 등을 통해 은행 자동화기기(ATM)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금융회사들과 함께 이와 관련한 기술 도입 방안 및 보안 대책 등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29일 펴낸 ‘신종 전자지급서비스의 확산 및 제약 요인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은 민관 협의체인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를 통해 전자금융의 바이오 인증 분야에 대한 기술 표준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한은 관계자는 “바이오 인증은 우선 정맥이나 홍채 인식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과거에도 지문 인식을 통한 인증을 일부 은행에서 도입한 바 있지만 비용 문제 등으로 인해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는 조만간 생체정보 인증을 위한 금융권의 기술표준안을 만들고 시중은행들과 협의를 거쳐 연내 시범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손바닥의 정맥 등으로 ATM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됐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생체정보 저장에 대한 거부감과 보안 우려 등으로 도입이 지체되고 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기준금리 인하의 여파로 은행 정기예금의 평균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연 1%대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3% 밑으로 하락했다. 2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지난달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정기예금 평균금리는 연 1.90%로 전달인 2월(2.02%)에 비해 0.12%포인트 하락했다. 정기예금 금리가 평균 1%대로 내려간 것은 금리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96년 이후 처음이다. 금리 수준별 분포도를 봐도 3월에 새로 가입한 정기예금 중 금리가 2% 미만인 상품이 전체의 3분의 2인 66%에 달했다. 나머지 34%는 금리가 2%대였고 3% 이상 이자를 주는 상품은 하나도 없었다. 정기 예·적금, 상호부금, 양도성예금증서(CD) 등을 합친 저축성 수신 상품의 평균금리도 3월에 1.92%로 전달보다 0.12%포인트 하락했다. 이런 예금 금리 인하는 지난달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아직 한은 통계로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시중은행의 예금 금리는 이달 들어서는 더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 연말만 해도 2%대는 유지했던 주요 시중은행의 대표적 정기예금 상품의 금리가 지금은 일제히 1%대 중반까지 내린 상태다. 신한은행의 ‘신한S드림 정기예금’(1년 만기)은 작년 말에 2.07%의 금리를 줬지만 29일 현재는 1.55%로 0.5%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국민은행 ‘국민수퍼정기예금’(2.15%→1.62%), 우리은행 ‘우리유후정기예금’(2.10%→1.75%), 하나은행 ‘고단위플러스정기예금’(2%→1.6%) 등도 비슷한 낙폭을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예금상품 담당자는 “저금리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도 예금을 유치해봤자 마땅히 굴릴 곳이 없다”며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증시로 가는 자금을 애써 막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금 금리와 함께 대출 금리도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3월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는 연 2.97%로 2월(3.24%)에 비해 0.27%포인트 떨어졌다. 전체 대출상품의 평균금리도 3.61%로 전달보다 0.25%포인트나 급락하며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강준구 한은 금융통계팀 과장은 “예금 금리보다 대출 금리의 하락폭이 더 큰 것은 지난달 24일 출시된 안심전환대출의 영향이 일부 반영됐기 때문”이라며 “안심대출로 인해 4월 대출 금리도 평소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르면 내년부터 정맥이나 홍채 인식 등을 통해 은행 자동화기기(ATM)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금융회사들과 함께 이를 위한 기술 도입 방안 및 보안 대책 등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29일 펴낸 ‘신종 전자지급서비스의 확산 및 제약 요인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은 민관 협의체인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를 통해 전자금융의 바이오 인증 분야에 대한 기술 표준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한은 관계자는 “바이오 인증은 우선 정맥이나 홍채 인식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과거에도 지문인식을 통한 인증을 일부 은행에서 도입한 바 있지만 비용 문제 등으로 인해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는 조만간 생체정보 인증을 위한 금융권의 기술표준안을 만들고 시중은행들과 협의를 거쳐 연내 시범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손바닥의 정맥 등으로 ATM 기기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됐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생체정보 저장에 대한 거부감과 보안 우려 등으로 도입이 지체되고 있다.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 최근의 ‘엔저 쇼크’는 올해 한국경제의 최대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원-엔 환율의 향후 추이에 따라 현재 3%대 초중반에 형성돼 있는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성장률 전망치가 2%대로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 외환당국은 “시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간헐적으로 내보내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엔화 약세가 워낙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어 기준금리 인하 등 개별적인 정책들의 효과도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권의 운명을 걸고 엔화 약세 정책을 밀어붙이는 일본에 한국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 과거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4차 엔저’ 현재의 엔화 약세는 오랫동안 큰 규모로 진행된 것만 따졌을 때 1980년대 이후 한국경제가 경험한 네 번째 현상이다. 지난 1차(1988∼1990년), 2차(1995∼1997년), 3차(2004∼2007년) 엔저는 수출 감소와 경상수지 적자 확대, 금융권의 외화 부족 사태를 촉발하면서 실물과 금융 양면으로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전문가들은 2013년 일본의 아베노믹스로 시작된 지금의 4차 엔저가 1∼3차 때와 비교해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한국에 큰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엔화 대비 원화가치 상승률을 보면 1995∼1997년은 약 30%, 2004∼2007년은 47%였지만 2012년 6월 초부터 현재까지 2년 11개월 동안은 68%나 됐다.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기간도 길다. 과거의 엔저 국면은 한국에 무역적자 확대와 금융불안 가중이라는 이중고를 안긴 뒤 2, 3년을 고비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의 통화 완화 정책이 앞으로도 한참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수출과 수입이 같이 줄어드는 한국의 ‘불황형 흑자’로 인해 원화 강세 현상도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결국 2013년에 시작된 이번 엔저가 앞으로 최소 2, 3년은 더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일본 중앙은행이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할 때까지 양적 완화를 지속하겠다고 밝힌 만큼 2017년까지는 현재의 통화 완화 정책을 이어 나갈 것”이라며 “현 추세대로라면 내년에 원-엔 환율 800원대를 지키는 것도 불안해 보인다”고 말했다.○ 수출 감소 폭 점점 확대 정부는 엔화 약세가 한국경제의 위험 요인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국가적인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글로벌 자금의 유입이 가파른 원화 강세를 일으키면서 수출이 이미 급감하는 와중에, 미국의 출구전략으로 자본 유출까지 현실화될 경우 경제 펀더멘털이 좋은 한국도 안심할 처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전년 동월 대비 수출액은 올해 들어 3월까지 석 달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점점 감소 폭이 커지면서 4월에는 7∼8%까지 급감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엔화 약세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는 업종은 자동차다.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펼치며 가격 경쟁에 나서고 있다. 2011년 대지진 여파로 0.9%에 불과했던 도요타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9%를 넘어섰다. 반면 현대·기아자동차는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현대차와 기아차를 합친 올 1분기(1∼3월)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4%, 21.5%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대응책에 따라 원-엔 환율의 하락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박정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금리인상이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자본 유입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원화 강세는 대세적인 흐름이 될 것”이라며 “금리인하나 해외투자 확대 등의 정책 대응을 한다면 엔화 약세는 다소 누그러질 것”이라고 말했다.유재동 jarrett@donga.com·정세진 기자}
외환시장에서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원-엔 환율이 7년 2개월 만에 100엔당 800원대로 떨어졌다. 원-달러 환율도 장중 1070원대 밑으로 내려가면서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28일 외환은행이 고시한 오후 3시 기준 원-엔 환율은 898.56원으로 전날(902.29원)보다 3.73원 하락(원화가치는 상승)했다. 이날 원-엔 환율은 오전 한때 896원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원화와 엔화는 외환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원-달러 및 엔-달러 환율을 이용한 재정(裁定)환율로 산출한다. 원-엔 환율이 900원 선 이하로 내려간 것은 2008년 2월 29일(895.57원) 이후 처음이다. 엔화 대비 원화 가치는 2012년 6월 4일(오후 3시 기준 1512.28원) 이후 3년도 안 돼 68% 폭등했다. 이날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도 전날보다 3.0원 내린 1070.0원으로 마감됐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장중 한때 1069원까지 떨어졌다가 당국의 시장 개입에 대한 경계감으로 간신히 1070원 선을 지킨 채 거래를 마쳤다. 외환시장에서 엔화 대비 원화가치가 계속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통한 돈 풀기를 지속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풀린 돈이 주식시장 등으로 계속 유입되면서 원화의 상대적 가치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기업들이 엔화 약세를 무기로 수출품의 가격을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국내 수출기업들의 마진이 앞으로 계속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국내 증시에서는 엔화 약세에 대한 우려로 삼성전자(―2.08%) 현대자동차(―1.99%) 기아자동차(―3.47%) 등 대형 수출기업의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최근의 ‘엔저 쇼크’는 올해 한국경제의 최대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원-엔 환율의 향후 추이에 따라 현재 3%대 초중반에 형성돼 있는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성장률 전망치가 2%대로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 외환당국은 “시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간헐적으로 내보내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엔저가 워낙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어 기준금리 인하 등 개별적인 정책들의 효과도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권의 운명을 걸고 엔저 정책을 밀어붙이는 일본에 한국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4차 엔저’ 현재의 엔화 약세는 오랫동안 큰 규모로 진행된 것만 따졌을 때 1980년대 이후 한국경제가 경험한 네 번째 엔저 현상이다. 지난 1차(1988~1990년), 2차(1995~1997년), 3차(2004~2007년) 엔저는 수출 감소와 경상수지 적자 확대, 금융권의 외화 부족 사태를 촉발시키면서 실물과 금융 양면으로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전문가들은 2013년 일본의 아베노믹스로 시작된 지금의 4차 엔저가 1~3차 때와 비교해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한국에 큰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엔화 대비 원화가치 상승률을 보면 1995~1997년은 약 30%, 2004~2007년은 47%였지만 2012년 6월 초부터 현재까지 2년 11개월 동안은 68%나 됐다.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기간도 길다. 과거의 엔저 국면은 한국에 무역적자 확대와 금융불안 가중이라는 이중고를 안긴 뒤 2, 3년을 고비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의 통화 완화 정책이 앞으로도 한참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수출과 수입이 같이 줄어드는 한국의 ‘불황형 흑자’로 인해 원화 강세 현상도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결국 2013년에 시작된 이번 엔저가 앞으로 최소 2, 3년은 더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일본 중앙은행이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할 때까지 양적 완화를 지속하겠다고 밝힌 만큼 2017년까지는 현재의 통화 완화 정책을 이어나갈 것”이라며 “현 추세대로라면 내년에 원-엔 환율 800원대를 지키는 것도 불안해 보인다”고 말했다.○수출 감소 폭 점점 확대 정부는 엔저가 한국경제의 위험 요인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국가적인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글로벌 자금의 유입이 가파른 원화 강세를 일으키면서 수출이 이미 급감하는 와중에, 미국의 출구전략으로 자본 유출까지 현실화될 경우 경제 펀더멘털이 좋은 한국도 안심할 처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전년 동월 대비 수출액은 올해 들어 3월까지 석 달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점점 감소 폭이 커지면서 4월에는 7~8%까지 급감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엔저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는 업종은 자동차다.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펼치며 가격 경쟁에 나서고 있다. 2011년 대지진 여파로 0.9%에 불과했던 도요타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9%를 넘어섰다. 반면 현대·기아자동차는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현대차와 기아차를 합친 올 1분기(1~3월)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4%, 21.5%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대응책에 따라 원-엔 환율의 하락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박정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금리인상이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자본 유입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원화 강세는 대세적인 흐름이 될 것”이라며 “금리인하나 해외투자 확대 등의 정책 대응을 한다면 엔저는 다소 누그러질 것”이라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엔화 약세에 달라진 소비 패턴…일관 관광 늘어▼엔화 약세(엔저)로 한국과 일본 간 상품·서비스의 상대적인 가격이 달라지면서 소비 패턴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일본 면세점의 제품 가격이 한국보다 10~30%가량 싸졌다. 28일 롯데인터넷면세점에서 이른바 ‘갈색병’으로 불리는 에스티로더의 ‘어드밴스트 나이트리페어 싱크로나이즈드 리커버리 콤플렉스 II(100mL)’ 가격은 19만8536원인 반면 일본 나리타공항 인터넷면세점에서는 같은 제품이 1만6600엔(약 14만9400원)이었다. 한국 면세점 가격이 약 33% 비싼 셈이다. 또 이브생로랑의 ‘루즈 볼립떼’ 립스틱은 한국 면세점에서 3만5607원, 일본 면세점에서 3400엔(약 3만600원)으로 한국 가격이 16% 비쌌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원-엔 환율이 900원 밑으로 떨어지면서 일본과 한국 면세점의 가격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 이 추세가 장기화하면 중국인 관광객이 일본으로 쏠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엔저로 인해 한국인의 일본 관광은 이미 크게 늘었다. 올해 들어 4월 27일까지 하나투어를 통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23만3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7.8% 증가했다. 반면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 수는 줄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3월에 방한한 일본인은 50만115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0만9061명)과 비교해 17.7% 감소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일본 제품 직접구매(직구)도 늘고 있다. 해외 배송대행업체 몰테일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 22일까지 일본 배송대행 건수는 58% 증가했다. 엔저 때문에 원화로 환산한 일본 제품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한국인의 구매 수요가 커진 것이다. 유통업계는 다음주 어린이날 장난감 선물도 일본 제품이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픈마켓 옥션은 최근 한 달(3월 24일~4월 23일) 동안 일본 장난감 ‘파워레인저’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3% 급증했다고 전했다. 인기 직구 상품으로 꼽히는 ‘요괴워치’는 최근 한 달 판매량이 350% 늘어났다. 옥션 관계자는 “엔저 현상으로 일본 장난감 가격이 내려가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백화점에서도 일본 의류와 상품이 주목받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 관계자는 “일본 패션 브랜드 ‘주카’는 올 3월부터 가격을 5~10% 인하했다”며 “최근 청담동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한국에 수입되는 일본 자동차는 엔저의 영향으로 다소 벗어나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6840대(렉서스 브랜드 제외)를 판매한 한국토요타의 수입 물량 중 절반가량은 미국에서 수입됐다. 일본에서 전량 생산되는 렉서스 역시 달러 결제를 통해 들여오고 있다. 결제가 미국 달러로 이뤄지기 때문에 엔화 가치가 떨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국내 판매가격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으로 들어오는 일본차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 본사가 달러를 다시 엔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엔저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 나온 도요타 ‘프리우스V’ 가격이 이보다 크기가 작은 ‘프리우스’와 거의 비슷한 3880만 원에 정해진 것도 일본 본사에 가격 인하 여력이 생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의 금융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엔저를 이용한 환테크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엔화 값이 지금처럼 내려갔을 때 대량으로 매수했다가 오를 때 되파는 직접투자다. 하지만 환리스크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데다 환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엔화로 대출받은 기업들은 엔저로 빚 상환 부담이 줄어들게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의 엔화 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현재 49억3000만 달러(약 5조2790억 원)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외환시장에서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원-엔 환율이 7년 2개월 만에 800원대로 떨어졌다. 원-달러 환율도 장중 1070원대 밑으로 내려가면서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28일 외환은행이 고시한 오후 3시 기준 원-엔 환율은 898.56원으로 전날(902.29원)보다 3.73원 하락(원화가치는 상승)했다. 이날 원-엔 환율은 오전 한 때 896원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원화와 엔화는 외환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원-달러 및 엔-달러 환율을 이용한 재정(裁定) 환율로 산출한다. 원-엔 환율이 900원 선 이하로 내려간 것은 2008년 2월29일(895.57원) 이후 처음이다. 원-엔 환율은 2012년 6월 4일(오후 3시 기준 1512.28원) 이후 3년도 안 돼 40.6% 폭락했다. 이날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도 전날보다 3.0원 내린 1070.0원으로 마감됐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장중 한 때 1069원까지 떨어졌다가 당국의 시장 개입에 대한 경계감으로 간신히 1070원 선을 지킨 채 거래를 마쳤다. 외환시장에서 엔화 대비 원화가치가 계속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통한 돈 풀기를 지속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풀린 돈이 주식시장 등으로 계속 유입되면서 원화의 상대적 가치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기업들이 엔저(円低)를 무기로 수출품의 가격을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국내 수출기업들의 마진이 앞으로 계속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국내 증시에서는 엔저에 대한 우려로 삼성전자(-2.08%) 현대자동차(-1.99%) 기아자동차(-3.47%) 등 대형 수출기업의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24일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통과한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사진)이 29일 NH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한다. 농협금융은 27일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잇달아 열고 김 전 행장을 차기 회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김 전 행장은 29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충정로1가 농협 본관에서 취임식을 갖고 2년간의 임기를 시작한다. 농협금융은 올해 2월 말 임종룡 전임 회장이 금융위원장으로 임명된 후 이경섭 부사장이 회장 직무 대행을 맡아 왔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사진)가 24일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심사를 통과했다. 김 내정자는 27일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29일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김 내정자는 2011∼2014년 한국수출입은행장으로 재직하면서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청탁을 받아 경남기업에 무리하게 대출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날 공직자윤리위는 김 내정자의 경력이 농협금융 회장 직무와 업무 연관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간에도 격론이 벌어졌지만 수출입은행장 직무가 농협지주와 밀접한 업무 연관성이 없고, 취업 이후 영향력 행사 가능성도 낮다는 판단이 우세했다”고 설명했다. 수출입은행장 재직 당시 경남기업 지원 문제와 관련해서는 “(검찰이 조사에 들어간다 해도) 법원 판결이 나기 전에는 고려 사항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날 열린 공직자윤리위 취업심사에서는 2급 이상 공무원은 소속 부서가 아닌 소속 기관에 따라 업무 연관성을 따지도록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이 처음 적용됐다. 취업 심사를 진행하는 공직자윤리위는 정부와 민간 출신 인사들로 구성되지만 민간 위원들이 과반수를 차지한다. 3월 말 농협금융 차기 회장에 내정될 때만 해도 김 내정자가 취업 심사를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성완종 게이트’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통과가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수출입은행의 경남기업 부실 대출 의혹이 검찰 수사로 번지고 대출 개입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향후 농협금융의 지배구조에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공직자윤리위가 이런 부담을 고려해 김 내정자의 심사 자체를 한두 달 보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취업 심사를 통과한 김 내정자가 농협금융 회장에 취임한 뒤에도 검찰 수사 진전에 따라 한동안 잡음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 내정자가 행장으로 있던 수출입은행은 채권은행들 중 경남기업에 대출해 준 돈이 가장 많았다. 또 성 회장이 접촉했던 금융권 인사 목록에도 그의 이름이 들어있다. 김 내정자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출입은행장을 맡아보니 이미 경남기업에 3000억∼4000억 원의 보증이 있었고, 이후 이뤄진 추가 대출도 채권단에서 보증비율에 따라 자금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나간 것일 뿐”이라며 부당대출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또 “성 회장을 만나고 통화한 적이 있지만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과 수출입은행장으로서 금융 전반에 대한 논의를 했을 뿐 경남기업 대출 관련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경남기업에 대한 금융권의 부당대출 의혹과 관련해 아직까지 뚜렷한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이와 관련한 정황이 드러나면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경남기업 워크아웃 과정에서 금융감독원 간부들이 채권은행에 지원 압력을 행사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와 최수현 전 금감원장을 비롯해 당시 금융당국의 기업 구조조정 담당 라인에 대한 검찰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김 내정자는 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무부 기획관리실,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 금융감독위원회 증권감독과장,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거쳤다. 김 내정자의 임기는 2017년 4월 28일까지다.유재동 jarrett@donga.com·우경임·신민기 기자}

저금리, 저유가 등 일부 긍정적인 경제 환경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소비의 빙하기가 이어지면서 한국 경제의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되고 있다. 경제가 좀처럼 활력을 찾지 못하는 배경에는 우선 내수 부진과 함께 원화 강세에 따른 기업들의 수출 채산성 악화가 주요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성완종 게이트’ 같은 국내 정치적 요인들로 인해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분야 4대 구조개혁 등 정부의 국정동력이 크게 훼손된 것도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을 주는 상황이다. 정부는 조심스럽게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경기부양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내우외환 한국 경제 기업들의 매출액이 2009년 이후 5년 만에 뒷걸음질친 데에는 무엇보다 900원 선 붕괴를 목전에 둔 원-엔 환율이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수출품 유사성을 나타내는 양국의 ‘수출 경합도’는 2008년 45%를 밑돌았지만 2013년 50%를 넘어섰다. 한국 수출품의 절반이 일본 제품과 경쟁한다는 뜻이다. 일본 기업들은 이미 엔화 약세를 무기로 수출품 가격을 낮추면서 해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올 1분기(1∼3월) 현대·기아자동차의 미국 내 시장점유율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일본 도요타는 판매량을 10% 이상 늘렸다. 수출 증가율은 올 들어 계속 마이너스 행진을 거듭하면서 전체 경제성장률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3.1%로 잡고 있지만 일부 연구기관과 경제전문가들은 전망치가 조만간 2%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잇단 금리 인하와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살아나기에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대 수출시장 중 하나인 중국 경제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경제난을 극복할 만한 돌파구를 외부에서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성완종 게이트’로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는 등 국정 난맥상도 향후 경기 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정치·사회의 혼란이 세월호 참사 1주년과 맞물려 내수에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달부터 공직사회가 부정부패 척결 등 사정 정국으로 흐르면서 정부의 경제 활성화에 대한 의지가 상대적으로 퇴색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가의 관심사가 온통 ‘게이트’ 등 정·관계 비리 의혹에 집중되다 보니 정부의 경제정책이 추진력을 잃어버린 상황”이라며 “정치가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재정·통화 등 추가 부양책 만지작 경제 전문가들은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과감한 재정·통화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현재 우리 경제는 금리 인하와 추경 편성이 동시에 필요하다”며 “특히 한은은 금리 인하와 함께 앞으로도 통화정책을 계속 적극적으로 펴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도 하반기에 경기부양 재원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상반기 경기 흐름을 지켜보고 하반기에 필요하다면 경기 보강 수단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기재부가 공식적으로 하반기 성장률 전망치를 내리면 세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추경을 포함한 모든 재정대책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엔화 약세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고민만 거듭하고 있다. 원-엔 환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다가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은 당분간 시장을 모니터링하면서 이달 말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회의 결과를 주시할 예정이다. 한 당국자는 “원-엔 환율이 ‘최소 어느 수준은 돼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며 “엔화 절상 속도나 자금의 쏠림현상 등을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현 추세가 이어지면 상반기뿐 아니라 하반기 수출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일본의 양적완화 때문에 한국이 피해를 보는 점을 미국 등 국제사회에 알려 한국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유재동 jarrett@donga.com·홍수용 기자}

엔화 약세로 인한 수출 둔화와 내수 침체 등의 여파로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역대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올 1분기(1∼3월) 성장률도 4개 분기 연속 0%대에 머물며 저성장이 장기화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국은행은 23일 국내 1731개 기업의 작년 매출액 증가율이 전년도 0.7%에서 ―1.5%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전년에 비해 매출액이 줄어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0.1%) 이후 처음이다. 기업들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매출액 영업이익률도 지난해 4.3%로 하락해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낮았다. 한은은 이날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기(前期) 대비 0.8%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분기별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에 1.1%로 올랐지만 이후 4개 분기 동안 0%대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1분기에 2.4% 성장에 그쳐 2013년 1분기 이후 2년 만에 가장 낮았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엔 재정 환율은 장중 한때 100엔당 902원 선까지 하락(원화 가치는 상승)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저금리, 저유가 등 일부 호의적인 경제 환경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소비의 빙하기가 이어지면서 한국경제의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되고 있다. 경제가 좀처럼 활력을 찾지 못하는 배경에는 우선 내수 부진과 함께 원화 강세에 따른 기업들의 수출 채산성 악화가 주요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성완종 게이트’와 같은 국내 정치적 요인들로 인해 4대 구조개혁 등 정부의 국정동력이 크게 훼손된 것도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을 주는 상황이다. 정부는 조심스럽게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경기부양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내우외환 한국경제 기업들의 매출액이 2009년 이후 5년 만에 뒷걸음질친 데에는 무엇보다 900원 선 붕괴를 목전에 둔 원-엔 환율이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수출품 유사성을 나타내는 양국의 ‘수출 경합도’는 2008년 45%를 밑돌았지만 2013년 50%를 넘어섰다. 한국 수출품의 절반이 일본 제품과 경쟁한다는 뜻이다. 일본 기업들은 이미 엔저를 무기로 수출품 가격을 낮추면서 해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올 1분기(1~3월) 중 현대·기아자동차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일본 도요타는 판매량을 10% 이상 늘렸다. 수출 증가율은 올 들어 계속 마이너스 행진을 거듭하면서 전체 경제성장률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3.1%로 잡고 있지만 일부 연구기관과 경제전문가들은 전망치가 조만간 2%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잇단 금리인하와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살아나기에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대 수출시장 중 하나인 중국 경제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경제난을 극복할 만한 돌파구를 외부에서도 찾지 못 하는 상황이다. ‘성완종 게이트’로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는 등 국정의 난맥상도 향후 경기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정치·사회의 혼란이 세월호 참사 1주기와 맞물려 내수에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달부터 공직사회가 부정부패 척결 등 사정 정국으로 흐르면서 정부의 경제 활성화에 대한 의지가 상대적으로 퇴색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가 관심사가 온통 ‘게이트’ 등 정관계 비리 의혹으로 집중되다보니 정부의 경제정책이 추진력을 잃어버린 상황”이라며 “정치가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재정·통화 등 추가 부양책 만지작 경제 전문가들은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과감한 재정·통화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현재 우리 경제는 금리인하와 추경 편성이 동시에 필요하다”며 “특히 한은은 금리 인하와 함께 앞으로도 통화정책을 계속 적극적으로 펴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도 하반기에 경기부양 재원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상반기 경기 흐름을 지켜보고 하반기에 필요하다면 경기 보강 수단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기재부가 공식적으로 하반기 성장률 전망치를 내리면 세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추경을 포함한 모든 재정대책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엔저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고민만 거듭하고 있다. 원-엔 환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다가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은 당분간 시장을 모니터링하면서 이달 말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회의 결과를 주시할 예정이다. 한 당국자는 “원-엔 환율이 ‘최소 어느 수준은 돼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며 “엔화 절상 속도나 자금의 쏠림현상 등을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현 추세가 이어지면 상반기 뿐 아니라 하반기 수출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일본의 양적완화 때문에 한국이 피해를 보는 점을 미국 등 국제사회에 알려 한국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엔저(円低)로 인한 수출 둔화와 내수 침체 등의 여파로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역대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올 1분기(1~3월) 성장률도 4개 분기 연속 0%대에 머물며 저성장이 장기화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국은행은 23일 국내 1731개 기업의 작년 매출액 증가율이 전년도 0.7%에서 -1.5%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전년에 비해 매출액이 줄어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0.1%) 이후 처음이다. 기업들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매출액 영업이익률도 지난해 4.3%로 하락해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낮았다. 한은은 또 이날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기(前期) 대비 0.8%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분기별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에 1.1%로 올랐지만 이후 4개 분기 동안 0%대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1분기의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2.4% 성장에 그쳐 2013년 1분기 이후 2년 만에 가장 낮았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엔화에 대한 원화 재정 환율은 장중 한 때 902원 선까지 하락(원화가치는 상승)했다. 2012년 6월만 해도 100엔 당 1500원 선을 넘었던 원-엔 환율은 3년도 안 돼 40% 이상 폭락하면서 한국 수출기업의 실적과 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서비스업 등 내수 활성화가 제대로 안 되는 가운데 수출마저 좋지 않아 저성장세가 이대로 굳어버리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노무현 정부 마지막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김용덕 고려대 초빙교수(65·사진)가 그동안 대학에서 강의해 온 국제금융 분야 이슈를 정리해 책으로 펴냈다. 22일 금융계에 따르면 김 교수는 국제금융 분야 저서인 ‘금융이슈로 읽는 글로벌 경제’를 최근 발간했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롯해 수십 년간 국제금융계의 현안이 됐던 문제들을 주제별로 정리하고 한국경제가 직면한 현실을 진단해 해결책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국제금융시장은 나름대로 규칙과 심판이 있지만 이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정해진 트랙도 없고 출발점도 제각각인 야생마들의 경주장이 된다”며 “이 시장에서 승자의 축배를 들기 위해서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원-엔 환율의 900원 선(100엔당)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2008년 3월 초 900원대로 올라선 원-엔 환율은 그 후 7년 1개월여 동안 한 번도 800원대로 내려간 적이 없다.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재정 환율은 이날 오후 한때 902.47원까지 하락(원화가치는 상승)했다가 903원 안팎에서 움직였다. 원-엔 환율은 원화와 엔화가 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및 엔-달러 환율을 통해 간접적으로 계산한다. 전문가들은 지난 일주일간 14원가량 급락한 원-엔 환율이 조만간 800원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엔 환율의 하락은 외국인 자금이 한국에 유입되며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데 반해, 엔화는 일본 통화완화책의 영향으로 약세 국면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의 금리인상이 당초 예상보다 늦춰지면서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경제동향실장은 “최근 국제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으로 돈이 유입되고 있다”며 “반면 안전자산으로서의 엔화 가치는 떨어지면서 원화의 상대적 강세를 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화 대비 원화 강세는 국내 수출기업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올해 연평균 900원으로 떨어지면 기업들의 총수출이 작년보다 8.8%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최근 설문에서 453개 수출기업의 손익분기점 원-엔 환율은 평균 972.2원으로 조사됐다. 산업별로는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기계류와 석유화학, 선박 등을 비롯해 대(對)일본 수출 비중이 많은 문화콘텐츠 업종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됐다. 금융시장을 둘러싼 국제 정치 환경도 한국에 호의적이지 않다. 엔화 약세를 극복하려면 원-달러 환율 상승을 통해 원화 약세를 유도해야 하지만 미국이 이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미 재무부는 환율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게다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도움이 절실한 미국은 아베노믹스는 묵인하면서 엔화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이러다가는 ‘환율 하락-경상수지 악화-자본 유출’의 ‘위기 사이클’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일단 환율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미세조정에 주력하면서 추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일본 통화 정책과 그리스 문제 등 국제금융시장 흐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유재동 jarrett@donga.com / 세종=손영일 기자}

원-엔 환율의 900원 선(100엔 당)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2008년 3월초 900원 대로 올라선 원-엔 환율은 그 후 7년 1개월여 동안 한 번도 800원 대로 내려간 적이 없다.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재정 환율은 이날 오후 한때 902.47원까지 하락(원화가치는 상승)했다가 903원 안팎에서 움직였다. 원-엔 환율은 원화와 엔화가 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 및 엔-달러 환율을 통해 간접적으로 계산한다. 전문가들은 지난 일주일 간 14원 가량 급락한 원-엔 환율이 조만간 800원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엔 환율의 하락은 외국인 자금이 한국에 유입되며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데 반해, 엔화는 일본 통화완화책의 영향으로 약세 국면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의 금리인상이 당초 예상보다 늦춰지면서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경제동향실장은 “최근 국제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으로 돈이 유입되고 있다”며 “반면 안전자산으로서의 엔화 가치는 떨어지면서 원화의 상대적 강세를 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화 대비 원화 강세는 국내 수출기업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올해 연평균 900원으로 떨어지면 기업들의 총 수출이 작년보다 8.8%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최근 설문에서 453개 수출기업의 손익분기점 원-엔 환율은 평균 972.2원으로 조사됐다. 산업별로는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기계류와 석유화학, 선박 등을 비롯해 대(對) 일본 수출 비중이 많은 문화콘텐츠 업종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됐다. 금융시장을 둘러싼 국제 정치 환경도 한국에 호의적이지 않다. 엔저를 극복하려면 원-달러 환율 상승을 통해 원화 약세를 유도해야 하지만 미국이 이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미 재무부는 환율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게다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도움이 절실한 미국은 아베노믹스는 묵인하면서 엔화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이러다가는 ‘환율 하락-경상수지 악화-자본유출’의 ‘위기 사이클’이 현실화될 수 있다”며 “원-엔 환율 900원은 한국경제에 대한 경고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일단 환율 쏠림현상을 막기 위한 미세조정에 주력하면서 추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일본 통화정책과 그리스 문제 등 국제금융시장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미국의 금리인상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감내 가능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총재는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 지속, 외환보유액의 증가, 단기외채 비중 감소 등으로 기초 경제여건이 건실한 상태”라며 이같이 전망했다. 이 총재는 “최근 미국의 고용지표 부진 등으로 금리인상 시기가 당초 예상했던 올 6월보다 다소 늦어질 것이라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며 “시장의 기대대로 금리인상이 9월 이후에 완만하게 이뤄진다면 국제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 총재는 “미국의 금리인상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거나 그리스 문제 등 다른 위험 요인들과 맞물릴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환율·금리·주가의 급등락 등으로 한국 경제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또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서는 추이를 예의 주시하면서 잠재적인 위험을 조기에 파악해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의 금리인상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감내 가능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주열 총재는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 지속, 외환보유액의 증가, 단기외채 비중 감소 등으로 기초 경제여건이 건실한 상태”라며 이 같이 전망했다. 이 총재는 “최근 미국의 고용지표 부진 등으로 금리인상 시기가 당초 예상했던 올 6월보다 다소 늦어질 것이라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며 “시장의 기대대로 금리인상이 9월 이후에 완만하게 이뤄진다면 국제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 총재는 “미국의 금리인상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거나 그리스 문제 등 다른 위험 요인들과 맞물릴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환율·금리·주가의 급등락 등으로 한국 경제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또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서는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잠재적인 위험을 조기에 파악해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머리가 다섯 개쯤 달린 뱀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 중견 건설업체 A사의 구조조정 작업을 마친 정부 당국자는 이렇게 푸념했다. 그는 “부실기업을 처리하면서 이렇게 온갖 군데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그나마 큰 탈 없이 마무리된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국회의원 지위를 이용해 자기 회사의 워크아웃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한국의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기업의 생사나 금융회사의 지원 여부가 경제 논리가 아니라 로비, 인맥 등 정치력에 좌우되고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채권단이 경남기업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는 과정에 금융당국과 국회의원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설이 금융권에 파다하다. ‘정치(政治) 금융’의 폐해가 금융회사의 인사(人事)에 이어 부실기업 구조조정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좀비 기업’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기업 생사, 로비·인맥이 좌우 현재의 부실기업 처리 과정은 채권단이 회생 가능성을 ‘자율적’으로 판단해 구조조정 방식을 결정하되, 채권단 내부에 이견이 생겨 조율이 필요하면 금융당국이 개입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산업은행 우리은행 등 지분을 갖고 있는 채권은행들을 통해 ‘자금줄’을 틀어쥐고, 이를 얼마든지 ‘관치 금융’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의원과 이익단체, 지역 유지 등의 압력과 로비에 채권단이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경남기업은 이런 시스템의 부작용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다. 금융권을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이던 성 회장은 경남기업이 3차 워크아웃에 돌입한 2013년 10월을 전후해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고위 간부들을 거의 매일같이 접촉했다.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경남기업을 지정감사제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민원이 여러 경로로 들어왔지만 결국 무산됐다”고 귀띔했다. 지정감사제란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을 선정해 금융당국이 지정한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도록 하는 제도. 즉 기업의 부실을 숨겨 채권단의 지원을 더 끌어내기 위해 민원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경남기업 구조조정을 지휘한 김진수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주채권은행이던 신한은행에 지원을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권이나 정치권의 핵심 인사들이 ‘윗선’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금융권 안팎에서는 신한금융 최고위층과 지연, 학연으로 얽혀 있는 중진 의원이 청탁을 넣었다는 소문도 돈다.○ 기업 부실 키우는 정부와 정치권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권과 정치권이 개입하는 일은 과거에도 많았다. 금융당국이나 채권단 관계자들은 이 과정에서 권력자를 등에 업은 로비, 청탁이 없었던 사례가 오히려 드물다고 말한다. 한 정부 당국자는 “기업은 ‘생물’과 같아서 죽이려고 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발버둥을 친다”며 “그래서 당국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업무가 구조조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치 금융’ 관행은 국가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2013년 STX그룹의 구조조정 때도 정부가 전년도에 있었던 대선을 피해 구조조정을 늦추다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여파로 산업은행은 그해에 13년 만에 대규모 적자를 냈다.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은 지금 경남기업에 빌려 준 5200억 원을 대부분 떼일 위기에 처해 있다. 경남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2013년 수출입은행의 대출 규모는 전년 대비 9배로 급증했다. 당시 재임 중이었던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은 NH농협금융 회장에 내정된 상태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한국에서는 기업이 쓰러질 때 그 파급효과를 우려해 금융당국이 적극 개입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좀비 기업이 더 양산되고 있다”며 “금융사의 위험을 줄여야 하는 당국이 오히려 잘못된 구조조정으로 금융 부실을 키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송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