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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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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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6~202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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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트 프린트’… 명화의 감동 고스란히

    서울 마포구의 평범한 베이커리 ‘베이크 앤 메이크’에는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작품 ‘Now‘s the Time’이 걸려 있다. 바스키아는 1980년대 미국 뉴욕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담아 ‘검은 피카소’란 상찬을 받은 작가. 작품은 찰리 파커의 동명 곡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28세에 요절한 바스키아의 작품은 별로 많지 않아 원화의 경우 수천억 원까지 호가한다. 그런데 이 베이커리에 걸린 그림은 10만 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짜는 아니다. 작가 재단으로부터 정식 라이선스를 취득한 인쇄물, ‘아트 프린트’이기 때문이다. 최근 고가의 예술 작품을 직접 소장하는 대신 ‘아트 프린트’나 ‘포스터’를 수집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베이크 앤 메이크를 운영하는 이홍기 씨(31)는 지난해 2월 카페를 오픈하면서 지인으로부터 ‘열정’의 의미를 담은 바스키아의 아트 프린트를 선물로 받았다. 이 씨는 평소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2년 전부터 아트 프린트와 포스터를 모으고 있다. “저렴한 가격에 좋아하는 작품을 소장할 수 있어 매력적이에요. 저에게 좋은 추억과 의미가 있는 작품을 사거나, 지인에게 그 사람의 분위기에 맞는 그림을 선물해요. 예술 작품에 정해진 답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즐기는 거죠.” 국내에서 아트 프린트를 판매하는 ‘오픈 에디션’은 2017년 서비스를 시작한 후 매출이 5배 이상 늘었다. 주로 20대보다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30대 중반 이상이나 신혼부부가 인테리어를 위해 찾는다. 앙리 마티스, 마크 로스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 인기 있다. 최근 ‘데이비드 호크니’전에 전시된 대표작 ‘더 큰 첨벙’도 10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서울 중구 시청역 지하상가의 작은 갤러리인 ‘스페이스mm’에서는 포스터만 전시하는 ‘포스터 모더니즘’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기획사를 운영하는 강욱 CCOC 대표(51)가 2013년부터 수집한 포스터 중 20여 점을 전시한다. 김태수 스페이스mm 대표(55)는 “예술 작품보다 대중적 반응은 더 좋다”며 “쇤베르크, 칸딘스키, 청기사파 전시 포스터나 러시아 디자이너 알렉산드르 로드첸코의 포스터를 지나가던 행인이 알아보고 구매했다”고 말했다. 전시 중인 포스터 가격은 1만∼20만 원 선이다. 강 대표는 “해외에서는 이미 디자인적 가치가 있는 포스터가 활발히 거래된다”고 말했다. 인기 전시는 판매 당시보다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2013년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에서 열린 ‘David Bowie Is’전의 포스터는 당시 3파운드(약 4000원)에 판매됐지만 현재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는 260달러(약 31만 원)에 매물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포스터와 프린트 대부분은 투자보다 소장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유림 독립큐레이터는 “최근 경제적 여유는 없어도 작품 자체를 즐기는 경향을 두고 투자가 아니라 ‘아트 소비’라고 부른다”며 “역사적 가치가 있는 포스터는 투자가치가 있지만 대부분은 좋아하는 작품을 소장하는 데 만족하는 쪽”이라고 했다. 소은진 오픈에디션 대표(35)는 “원작자의 허락 없이 출력된 작품은 불법”이라며 “정식 라이선스를 거친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 원작을 최대한 가깝게 느낄 수 있으며, 원작자를 존중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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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에 황토집 지은 일흔의 ‘떠돌이 예술가’

    ‘노마디즘 예술가’ 김주영(71)은 평생 떠돌아 다녔다. 1986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 갔고, 1988년에는 인도, 몽골, 티베트, 일본과 유럽 곳곳에서 퍼포먼스와 설치 등 현장 작업을 했다. 이런 그가 충북 청주시립미술관에 4m 높이 흙집(사진)을 지었다. 황영자 작가와 함께한 여성 작가 2인전 ‘놓아라!’(9월 15일까지)에 내놓은 신작 가운데 하나다. 이 흙집은 충북 음성의 ‘전국 흙집 짓기 운동본부’와 협력해 만들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여행하다 고려인의 흙집을 보고 받은 감동이 계기가 됐다. 문에는 ‘그땐 그랬지’라는 팻말이, 안에는 가마솥과 쌀 한 줌이 놓여 있다. 작가는 “파리에서 배고픈 시절 아꼈던 쌀이 내겐 가장 신성하다”고 했다. 그를 길 위로 내몰았던 데에는 아버지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아야 했던 혼란이 자리 잡고 있다. 6·25전쟁 때 아버지가 사회주의자였기에 어머니는 딸이 피해를 볼까 봐 이름과 생일을 모두 바꿨다. 성인이 돼 내막을 알게 된 그는 교수직도 박차고 해외로 떠돌아 다녔다. 무전여행 중 캄캄한 밤 낯선 마을에 도착해 느낀 막막함과 희망은 20m 길이의 작품 ‘밤의 미로’에 구구절절 녹아 있다. 사람들과 손으로 흙을 문지르며 이제야 따뜻함과 ‘함께’의 의미를 느낀다는 그는 “현대미술은 액자에 넣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도 관객도 공간 속에 뛰어 드는 것”이라고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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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평범해서 특별한… 작가로 사는 법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에 침대를 정리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귀가 쫑긋한다. “나는 게을러서 틀렸어”라거나, “부지런한 사람이 되자”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고 당장 매일 아침 침대를 정리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닌데. 간단한 명제들이 주문처럼 다가오곤 한다. 이 책도 첫눈에는 “성공한 소설가는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명제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저명 문학잡지인 ‘파리 리뷰’의 유명 작가 3030명 인터뷰에서 핵심 답변 919개를 추렸다. ‘어떻게 글을 쓰십니까?’에 대한 답변을 보면 많은 작가들이 정신이 맑은 아침에 작업했던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새벽 4시부터 대여섯 시간 일하고 오후에는 달리기나 수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럼 성공한 작가는 아침에 글을 썼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예외도 많다. 엘윈 브룩스 화이트는 “일을 미루는 것은 모든 작가의 본능”이라고 했다. 필립 로스는 한술 더 뜬다. “작가들이 작업 습관을 묻는 건 ‘과연 저 사람이 나만큼 미쳤나’를 알아보기 위해서죠.” 어니스트 헤밍웨이, 귄터 그라스, 존 스타인벡, 오르한 파무크…. 쟁쟁한 작가들이 솔직히 털어놓은 삶의 면면을 보며 인간사만큼이나 작가의 삶도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다. 부지런한가, 게으른가, 아침형인가, 저녁형인가는 중요치 않다.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의 여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때로는 정직하게, 때로는 감미롭게 풀어낸 글들이 감동을 안겨줬다. 편집자 니콜 러딕도 서문에서 “매우 다양한 생각이 담긴 것이 책의 핵심이다. 작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글을 쓰는 방법은 하나가 아님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다음 말을 인용했다. “완벽한 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일단 시를 쓰면 세상이 마무리해줄 것입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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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 화제작 ‘레인 룸’… 미술 불모지 부산 흠뻑 적시다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한 예술가 그룹 ‘랜덤 인터내셔널’의 작품 ‘레인 룸’이 15일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MoCA)에서 선보였다. 2012년 런던 바비컨센터에서 처음 공개한 ‘레인 룸’은 전시장 속에 비가 내리지만, 관객이 지나가면 비를 맞지 않는 설치 작품이다. 영국 전시 첫날 1000명 이상이 몰리고,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중국 상하이 유즈미술관 등을 순회하며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 전시 마지막 날엔 관람 대기 시간만 8시간에 이르렀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레인 룸’처럼 올해 하반기 가장 많은 기대를 모은 전시 중 하나가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일반인에게 부산은 ‘미술’이라 했을 때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도시는 아니었다. 심지어 부산 출신인 작가 A 씨도 “제주도는 관광객이 미술관을 찾지만, 지금까지 부산은 불모지에 가까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불모지’인 부산에서 미술의 에너지가 꿈틀대고 있다.○ 개관 두 달 만에 28만 찾은 MoCA 랜덤 인터내셔널의 전시 ‘아웃 오브 컨트롤’에선 설치작품 ‘레인 룸’과 영상 작품 ‘Swarm Study’를 선보인다. ‘레인 룸’은 기술 특성상 한 번에 12명만 관람할 수 있어 10분 단위로 예매를 받는다. 전시 첫날 960명분의 티켓이 매진됐다. 지난해 개관한 부산현대미술관은 문을 열기 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부산시립미술관, 벡스코를 비롯해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밀집한 동부가 아닌 서부 을숙도에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완공 뒤에도 밋밋한 외관 때문에 “대형마트처럼 보인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독립 기획자 김성연 씨(55)가 2017년 관장으로 취임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개관전에서 파트리크 블랑의 ‘수직정원’으로 외관을 장식하고,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토비아스 플레이스’를 설치해 미술관을 산뜻하게 바꿨다. 스위스 작가 치문의 ‘사운드 미니멀리즘’ 등 쉽고 유쾌한 작품 위주로 전시를 구성해 개관 두 달 만에 관객 28만 명이 몰렸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전이 넉 달 동안 35만 명이 찾은 것을 비교하면, 지방에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기획자가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선을 타는’ 것이 무척 어려운데 그 접점을 잘 찾았기에 관객이 반응했다”며 “제도권 밖에서 ‘야전사령관’처럼 전시를 지휘한 관장의 경험이 잘 녹아들었다”고 말했다. 부산 경남 지역사회가 그만큼 미술 분야에 대한 갈증이 컸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14일 부산 해운대에 개관한 미디어 전문 미술관 ‘뮤지엄 다’도 문을 연 지 이틀 만에 관객 2000명이 찾았다.○ 지역 미술 생태계의 회복이 주요 과제 사실 부산 미술계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갤러리와 대안공간이 적지 않았다. 국내 대표적인 중견 작가 중에도 부산 출신이 많다. 30대까지 부산에서 활동한 안창홍 작가(63)는 “당시만 해도 미술 잡지나 화보 등이 부산을 거쳐 서울로 올라갔다”며 “유명한 평론가들도 부산에 와서 서적을 구입하는 등 지역 미술계가 활발했다”고 회상했다. 그 덕분에 부산만의 강렬하고 직설적인 시각 언어를 특징으로 하는 미술 경향도 생겨났다. 미광화랑의 김기봉 대표도 “6·25전쟁 때 타 지역 사람들을 품었던 부산은 다양성이 살아있는 도시”라며 “서울과 교류하지 않는 특유의 고집이 있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고유한 화풍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전후로 국내 미술계가 침체되면서 부산 지역의 미술 생태계도 축소됐다. 부산에 ‘큰손’ 컬렉터는 많지만, 대부분 서울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입하는 실정이다. 그 때문에 부산의 잘 갖춰진 인프라와 시스템은 새로운 미술 거점으로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콘텐츠를 채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출신인 정복수 작가(62)는 “제도나 교육도 중요하지만 좋은 작가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지역을 기반으로 독창적인 작가가 나와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했다.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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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용운 ‘친필시고’-정지용 시집 초판본… 희귀자료 ‘눈에 띄네’

    ‘제7회 동아옥션 경매’가 21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사옥 18층 동아옥션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7회 경매에는 △근현대 발행도서 △근현대생활사 자료 △동서양미술품 △도자기/민속품 △고서화/고문서/간찰 등 총 236점의 예술품과 자료가 선보인다. 출품목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의 시집과 자료다. 만해 한용운의 ‘친필시고(親筆詩稿·출품번호 236)’, ‘정지용’의 시집 초판본(출품번호 26) 등이 경매에 나온다. 100부만 출간됐던 ‘장만영’의 첫 시집 ‘양(羊)’도 출품된다(출품번호 38). 조선시대 서적과 각종 자료도 다수 출품된다. 조선 영조 때와 순조 때 만들어진 돈유첩 총 2책(출품번호 213), 정조 때 편찬된 제중신편 8권 4책(출품번호 223)이 출품된다. ‘돈유’는 정승이나 유학자에게 노력을 권하는 임금의 말을 뜻한다. 제중신편은 1799년 편찬된 의서로 왕명에 의해 내의원 수의가 편술했다. 한글로 표기한 약물명이 수록되어 있다. 동서양 미술품도 다채롭게 채워진다. 스페인 화가 호안 미로의 작품 1점(출품번호 122),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작품 1점(출품번호 123)도 나온다. 권옥연 화백의 1979년 작품 ‘소녀’(출품번호 89)도 나왔다. 원색을 거부하면서 회색으로 대표되는 중간색조의 미묘한 변화를 추구한 권 화백의 작품세계가 그대로 투영된 그림이다. 동아옥션은 경매 일주일 전인 14일부터 21일까지 경매품 236점을 동아옥션갤러리에서 전시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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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에 녹아든 건축물… 고국서 꽃피운 이타미 준의 예술혼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1937∼2011·사진)의 대표작인 제주 ‘포도호텔’은 게스트하우스 26채가 수평으로 연결된 낮은 건축이다. 수익을 추구했다면 고층 건물을 올렸겠지만, 나지막한 오름이 굽이치는 제주의 지형에 맞춰 겸허히 자리한다. 제주 민가가 자연 발생하듯, 이곳의 객실도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 모습을 위에서 보면 알알이 맺힌 포도송이 같다. 주변의 자연환경을 양분으로 탄생하는 건축, 대지를 이기려 들지 않고 그곳에 살포시 안기는 건축을 이타미 준은 추구했다. 수풍석박물관(제주), 방주교회(〃), 구정아트센터(충남 아산시) 등 국내 곳곳에 아름다운 건축을 남겼지만, 여전히 ‘일본인 건축가’로 잘못 소개되기도 한다. 그런 그를 기억하기 위해 ‘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을 설립한 딸 유이화 ITM건축연구소장(45)을 2일 만났다. 이타미 준의 회화를 선보이는 ‘심해’전이 서울 종로구 웅갤러리에서 7일 개막해 9월 7일까지 열린다. 유 소장은 아버지에 대해 ”한국인으로 치열한 건축가의 삶을 살았다”고 했다. 이타미 준은 2005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상했을 때도 “나를 외부인으로 보던 일본 건축계가 충격을 받았다. 날 뭐라 부르든 나는 한국인”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평생 귀화하지 않고 한국 여권을 들고 다닌 그는 대학 졸업 후 출판물에 기고를 하려다 이름 ‘유동룡’ 중 유(庾)의 활자가 없어 ‘이타미 준’이라는 필명을 짓고 활동했다.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한국 이름으로 학교를 다녀 차별도 많이 받았다. 유 소장은 “아버지가 학창 시절에 이지메(집단따돌림)를 당해 ‘복서의 마음’으로 살았다”고 했다. 이런 태도가 항상 치열하게 사는 자세를 만들었다. “외국인 관리 차원에서 5년마다 하는 손가락 지문도 찍었죠. 범죄인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불쾌한 일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오기가 생겨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로 다짐했다고 해요.” 각종 불이익에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은 건, “어렵게 살아도 한국인의 자긍심을 잃지 말라”고 강조했던 부모의 교육 때문이었다. 장남인 그에게 부모는 “너는 유금필 장군의 후손이고 무송 유씨의 43대손이니 집에 불이 나도 족보는 챙겨라”고 늘 당부했다. 그런 그의 건축은 이우환으로 잘 알려진 ‘모노파’를 공간에서 구현한다. 인위를 배제하고 자연과 주변의 맥락, 재료의 물성을 있는 그대로 살리기 때문이다. 이는 재일 한국인 화가 곽인식(1919∼1988)을 스승처럼 따르며 받은 영향이다. 지난해 재단을 설립한 것은 그의 유언에서 시작했다. 그는 생전 입버릇처럼 “내가 죽으면 두 번째 서랍의 유언을 봐라”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떠나고, 가족들이 긴장한 마음으로 펼친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타미 건축문화재단과 건축상, 건축기념관을 만들어라.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내 그림을 팔아서 써라. 이 모든 책임은 내 딸 유이화에게 있다.’ 5초간 정적이 흐른 뒤 온 가족이 웃으며 유 소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의 통역사 역할을 하며 자신의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그가 맡아주길 바라던 마음이 담긴 유언이었다. 유 소장은 “제주 지역을 기반으로 어린이 건축학교나, 지역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해 후배 양성과 건축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디지털이 범람하는 시대에 ‘손’의 힘도 일깨우고 싶다고 덧붙였다. “손의 감각과 신체에서 나오는 행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싶어요. 어떤 형태이든 이타미 준을 우상화하진 않을 겁니다. 그 정신만 전해지면 충분하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겁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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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 노래한 작가들… 현실서도 사랑꾼이었을까

    책은 아름다운 소설을 읽다 보면 흔히 떠올리는 환상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 소설을 써내려간 작가의 삶도 틀림없이 황홀하거나, 고상하고, 깊이 있을 거란 환상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쓴 스콧 피츠제럴드는 평생 아내와 앙숙처럼 싸우며 지냈다. 오죽했으면 헤밍웨이에게 스콧이 “내 사이즈 때문에 어떤 여자도 만족시켜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 털어놨을까.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이 고민을 들은 헤밍웨이는 스콧을 화장실로 데려가 확인(?)한 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젤다(아내)가 미친 여자”라고 토닥여 줬다고 한다. ‘위대한 개츠비’의 세련된 화려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다. 저널리스트인 두 저자는 전작 ‘소설기행’을 위해 자료조사를 하다 이 책을 쓰게 됐다. 소설기행은 역사적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를 모은 책이다. 작가들과 얽힌 장소나 개인사를 추적하던 두 사람은 그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연애와 결혼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 이야기들은 ‘사랑과 전쟁’ 못지않은 “지어낼 수도 없고, 지어내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삼각관계, 사각관계, 불륜은 물론이고 무려 55세 차이가 나는 연상연하 커플(아서 밀러)이 있는가 하면, 연인이 재능을 인정받는 것을 질투하고 방해하거나(헤밍웨이), 음담패설을 즐기는 고약한 취미(제임스 조이스)를 가진 작가도 있었다.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는 ‘세계 3대 악처’로 꼽히지만, 그녀의 일기를 보면 가족을 조금도 부양하지 않으려는 남편의 태도에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던 기록이 있다. 두 저자는 “더 분개할 만한 사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예술가 타입에게 이유 없이 관대하다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그렇다고 문학가들의 방탕한 성 관념을 비판하거나 예술가에게 관대한 태도를 지적하는 선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101명의 세계적 작가들과 그 연인의 삶, 사랑에 관한 사실만을 나열한다. 문학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깨뜨리지 않고 싶은 독자라면 마음을 굳게 먹고 책장을 넘겨야 할 듯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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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방문 5번째… 자갈치시장과 영도 매력에 푹∼”

    “영도, F1963, 40계단, 자갈치시장, 항구와 연결된 산업지대…. 짧은 기간이지만 부산의 여러 지역을 돌아보고 있어요. 항구에 정박한 배와 로프, 산업지대를 보니 ‘이주(migration)’의 분위기가 풍겨 흥미로웠죠.” 2020 부산 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선정된 야콥 파브리시우스(49·덴마크)는 부산의 다양한 이미지를 흡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F1963은 복합문화공간이며 중구에 있는 40계단 주변은 6·25전쟁 당시 피란민이 몰려 판자촌을 이뤘던 곳이다. 열흘 여정으로 부산을 찾은 그를 5일 초량동과 부산역이 내려다보이는 산복도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파브리시우스는 “도시의 공간과 그것이 촉발하는 감각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파브리시우스 감독은 국내외 약 50명(팀)이 지원한 공개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지원자 중에 국제적으로 저명한 큐레이터도 있었지만 지역과의 연결성이나 부산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탈락했다. 파브리시우스는 부산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려는 강한 의지가 호평을 받았다. 그는 “부산을 다섯 번 방문했고, 세 번은 비엔날레를 보러 왔다. 도시의 아름다운 측면은 물론 어두운 부분까지, 캐릭터를 알아가는 데 흥미가 있다”고 했다. 내년 전시의 방향성도 ‘도시 공간’에 초점을 뒀다. 그는 “핵무기나 난민, 경계 등 특정 주제보다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벌써 부산에 머무는 동안 새로운 것이 보인다. 와인이 숙성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전시의 주제도 무르익는 과정에서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파브리시우스는 현재 덴마크의 현대미술관 ‘쿤스탈 오르후스’의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공공장소에서 사회적 맥락에 대해 질문하고,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프로젝트로 호평받았다. 2017년에는 영국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질리언 웨어링과 TV쇼 ‘진짜 덴마크인 가족(The Real Danish Family)’을 진행했다. 덴마크 14개 마을에서 지원을 받아 오디션 형태로 가장 덴마크다운 가족을 뽑는 프로그램이었다. 한부모 가정, 아내 1명에 남편 2명이 아이 8명과 사는 가족, 농사를 짓는 노년의 게이 부부 등이 후보에 오른 끝에 최종 선정된 가족의 동상을 코펜하겐에 세웠다. 부부와 딸이 1명 있는 가족이었다. 그는 “코펜하겐에는 왕이나 정치인, 혹은 추상 조각이 대부분인데 가장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이 된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내외 미술계에서 지적되는 ‘비엔날레 포화상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국내만 해도 10개가 넘는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마켓에 가면 다양한 상점이 있죠. 비슷해 보여도 내부는 조금씩 달라요. 누군가는 결국 한 곳을 고르게 되고요. 비엔날레도 주제, 예술가, 개최되는 도시 등 관심을 끄는 다양한 요소가 있어요. 이를 적절히 활용해 매력적 비엔날레를 만들고 싶습니다.” 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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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괴한 괴물로 돌아온 ‘예쁜 쓰레기’

    형형색색의 촉수를 드리운 괴물, 이병찬(32)의 작품 ‘크리처’가 움직인다. 현란한 빛과 거대한 크기가 눈길을 끌지만, 가까이서 보면 라이터로 지져 이어 붙인 비닐봉지다. 손으로 쥐면 꺼져버리는 덧없는 형상. 소비 그 자체로 마음의 안정을 얻는 현대인의 기이한 모습을 대변하는 ‘예쁜 쓰레기’가 기괴한 형태의 괴물이 돼 돌아온 것만 같다. 이 작가의 개인전 ‘표준모형’이 10월 29일까지 열리고 있는 곳은 경기 부천시 ‘부천아트벙커 B39’. 1992년 지어진 쓰레기소각장을 개조했다. 부천 중동 신도시 건설로 하루 쓰레기 200t을 처리하다 다이옥신 파동이 일어나고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2010년 폐쇄됐다. 버려진 공간은 지난해 6월 문화예술공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작품이 설치된 벙커는 깊이 39m의 사각형 공간으로, 쓰레기를 던지는 깊은 구덩이였다. 작가는 이곳을 “자본의 결과물인 상품이 쓰레기로 한데 모여 해체되는 공간”이라고 봤다. 크레인이 있던 곳에는 ‘크리처’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던 바닥에는 파이프 비계(건물을 지을 때 근로자들이 높은 곳으로 이동하도록 설치하는 가설물)와 흰 커튼으로 만든 설치 작품 ‘사라진 양말’이 자리한다. 소각장 전시를 제안 받은 그는 처음에 죽음을 다룰까도 생각했다. 그는 “작업은 물론 생활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하기에 내가 ‘고독사’할 거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죽음을 표현하기엔 나이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자본과 질량과 시간을 이야기했다. ‘사라진 양말’은 작업실에서 빨래를 널 때마다, 불쾌하게도 ‘한 짝씩’ 사라지는 양말을 보며 빠져든 공상에서 출발했다. ‘싸구려라서 그 가격만큼 시공간을 사용하고 소멸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은 왜곡된 시간에서는 양말이 거대 질량을 가질 수 있다는 상상으로 이어졌다. 작품은 양말의 질량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공간 한쪽에 놓인 스피커에서 메트로놈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울린다. 휘날리는 흰 커튼이 불안을 고조시키고, 쨍한 음색의 금관악기 소리가 엇갈린다. 다른 흐름들이 순간 일치되며 고조되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가짜와 진짜가 혼재된 정보가 쏟아지고, 그 가운데 이리저리 쏠리는 자본의 흐름, 주식 시장이나 비트코인이 떠오르는 광경이다. 이 작가는 자본주의 도시 속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을 추적한 작업으로 최근 주목을 받았다. 신도시 개발 광풍이 부는 가운데 학교를 다닌 경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시대를 살아온 세대의 감정을 표현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이 끊임없이 만졌던 비닐봉지를 소재로 만든 ‘크리처’는 밀라노 디자인위크에서도 소개됐다. 부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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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훈 ‘후라질맨 시리즈’ 신작전… 대체 무슨 일이죠?

    비행기가 불시착하고, 자동차가 뒤집어진 사고 현장. 고깔 모양의 러버 콘을 머리에 쓴 인물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때로는 방호복을 입고 자신을 숨기는 그림 속 인물은 작가가 만들어낸 ‘후라질맨(fragile man)’. 문명의 발달 속에서 점점 더 소외되고 나약해져만 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김지훈 작가는 이 ‘후라질맨’ 시리즈 신작으로 묵으로만 표현한 작품을 새롭게 공개한다. 7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대체 무슨 일이죠?’는 김 작가의 개인전이다. 전시된 작품은 후라질맨이 우리 사회의 사건 사고 현장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그려, 사회 문제에 관심은 가지지만 본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강조한다. 2010년 서울대 우석갤러리의 ‘기억’전 이후 9년 만의 개인전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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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갤러리로 변신한 특급호텔 98개 객실

    특급호텔 객실을 부스로 활용하는 ‘아시아호텔아트페어(AHAF)’가 8일부터 11일까지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다. 올해로 19회를 맞는 AHAF는 호텔의 4개 층 98개의 객실을 활용한다. 국내외 갤러리 62곳과 작가 350여 명의 작품 3000여 점이 판매될 예정이다. 올해는 객실 부스 전시 외에도 다양한 특별전이 열린다. ‘건축가 특별전’에서는 승효상 우경국 최두남 등 한국의 건축가 11명의 드로잉 60여 점이 선보인다. ‘마스터피스전’에는 ‘LOVE’ 조각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1928∼2018), 줄리언 오피, 쿠사마 야요이, 이우환 등 세계적 작가의 작품도 전시된다. 같은 기간 열리는 ‘ART ASIA 2019’와 협력해 코엑스에서 열리는 ‘미디어아트 특별전’에는 김창겸 문준용 한승구 작가 등이 신기술을 응용한 인터랙티브 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국내 갤러리는 금산갤러리, 박여숙화랑, 표갤러리 등이 참가하며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등 10개국의 해외 갤러리도 참가한다. 과거 페어가 진행되면서 작품을 침대 위에 놓는 등 훼손 우려가 지적된 부분도 보완했다. 객실 내 추가로 가벽을 설치해 좀 더 격식을 갖춘 분위기에서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라고 페어 관계자는 밝혔다. 국내에서는 2009년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에서 처음 열린 AHAF는 특급호텔 객실에서 그림을 판매해 화제가 됐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호텔 아트페어로, 호응이 일자 홍콩에서도 같은 형태의 페어가 열리기도 했다. AHAF는 신라호텔, 웨스틴조선호텔, JW 메리어트호텔 등 특급 호텔을 돌아가며 매년 열리고 있다. 입장료 1만5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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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차별과 싸우고 폭력에 저항한 시몬 베유의 삶

    유럽 통합을 위해 힘썼던 프랑스 여성 정치인 시몬 베유가 2017년 90세로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국민의 청원으로 그녀는 프랑스 파리 판테옹에 묻혔다. 판테옹은 프랑스를 빛낸 위인들을 안치하는 국립묘지이자 성전이다. 베유가 안장되던 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는 당신과 당신의 투쟁을 사랑한다. 당신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당신의 싸움이 우리 혈관에 계속해서 흐르길 바란다.” 마크롱의 말처럼 베유의 삶은 지금 같은 때 세계인에게 더 많은 울림을 준다. 경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관용의 폭이 줄고 있으며,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는 국가주의의 망령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지금이기 때문이다. 이 자서전에서 베유는 자신의 삶을 시작부터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1927년 프랑스 니스에서 유대인 건축가의 딸로 태어난 베유는 17세에 아우슈비츠에 수용됐다. 여러 명을 단체로 끌고 가 벌거벗긴 채 물과 소독약을 끼얹고, 낙인을 찍는 행태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특정 민족에 대한 증오가 만든 인간의 비이성적 행위가 자아내는 끔찍함은 이 시대의 많은 이가 경계해야 할 모습이다. 전쟁이 끝나고도 베유는 끔찍한 말을 견뎌야 했다. 그녀의 팔뚝에 낙인찍힌 번호를 보고 “사물함 번호냐”고 농담을 한 사람 때문에 한동안 긴 소매 옷만 입고 다니기도 했다. 수용소에 끌려갔다 살아남은 사람들 대부분은 스스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꺼리지만 베유는 고통을 다시 대면했다. 그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증언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특히 1947년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가 나왔을 때는 “어떻게 이런 책을 빨리 쓸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프리모 레비는 즉각적으로 완전한 명료함에 다다랐지만 이 명료함이 그를 자살로 몰고 갔다는 점에서 비극적이었다”고 돌아본다. 7만8000여 명의 프랑스계 유대인 중 2500명만이 살아남았다. 베유도 가족을 잃었고, 그곳의 화장터에서 풍기던 악취와 연기, 끔찍한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담담한 증언 속에서 드러나는 건 그가 처절한 고통을 가슴에 품고, 그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용감하게 맞섰다는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여성도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교정 행정국의 판사가 된다. 실제 강제수용을 겪었기에 “인간사에서 타인의 존재를 모욕하고 격하시키는 모든 것에 극도로 민감해진” 그녀는 수감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발로 뛴다. 또 481명의 남성 의원이 둘러싼 의회장에서 임신 중단 합법화를 요청하고, 보건부 장관으로서 관련법을 통과시킨다. ‘20세기의 목격자’이자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인 그녀의 삶은 고통이 피워낸 아름다움 그 자체임을 느끼게 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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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달음식의 눈높이에서 본 한국사회

    “전시장 구조를 가만히 보니 피자 조각 같았어요. 제가 어마어마한 배달앱 사용자이기도 한데, 배달 음식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면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구동희 작가(45)의 개인전 ‘딜리버리’는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려 노력한다. 구 작가는 미술관 2층 전시장 전체를 피자 한 조각처럼 변형한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작가는 “일반적인 관점과 다른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 다르게 보이는 것들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은 두 가지 갈림길을 마주하게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된다는 정답은 없다. 그저 관객의 기호대로 입구를 선택하고 각기 다른 공간을 탐험하며 작품 전체를 마주한다. 통상 전시장을 한번 훑어보고 나가는 동선을 탈피하고 싶었던 작가는, 한눈에 작품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면 음식을 배달할 때 사용되는 일회용품이나 박스, 페퍼로니 모양을 본뜬 플라스틱 조형물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그리고 구석진 곳에 가면 배달 전단 형태로 제작한 전시 팸플릿도 숨겨져 있다. 전단 뒷면에는 작가가 수집한 그간 배달과 관련된 여러 뉴스가 콜라주 형태로 프린트됐다. 여기에는 배달원들의 노동에 관한 기사도 포함됐다. “비판적 시각을 피하려고 했다”고 작가는 말하지만, 은밀하게 숨겨 놓은 메시지들을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이번 전시는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수상 이후 5년 만에 국내에서 선보이는 대규모 설치전이기도 하다. 전시는 9월 1일까지. 5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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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력 ‘스펙’ 요구하는 미술품 감정기준 논란[현장에서/김민]

    “작품성과 시대성 이야기는 없네요. 학력으로 미술작품의 ‘등급’이 매겨진다니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미술품 가격 결정 모형’을 보고 A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발언에 공감하는 미술계 관계자가 적지 않았다. 협회가 발표한 가격 결정 계산식에 국내 화랑가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항목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많은 반발을 산 대목은 작가의 학업, 전시활동, 인지도를 통해 ‘통상가격’을 산출한다는 내용이었다. 학업 항목에는 미술 비전공(1점), 미술대학 졸업(2점), 미술대학원 졸업(3점)의 차등을 뒀다. 이 밖에 전시 개최 횟수, 수상 및 소장 이력도 따졌다. A 작가는 “작품 외적 요소를 ‘객관적’이라고 포장하는 것이 전형적 공공기관의 행정편의적 방식”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 계산식은 협회가 국립현대미술관(국현)의 의뢰로 국현 산하 미술은행의 소장품 가격을 재산정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 방식에 따르면 현재 1000억 원대에 거래되는 미국 작가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작품도 낮은 등급을 받는다. 그는 미술 비전공자인 데다 28세에 요절해 경력이 짧기 때문이다. 협회는 “통상가격은 기준에 불과하다. 감정위원들의 ‘정성 평가’로 보정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바스키아라면 거래 실적 등에 가점을 줘 수천억 원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성 평가’ 기준도 명쾌하진 않다. 김영석 협회 감정위원장은 “첫째는 형태, 둘째 색채, 셋째 기법, 넷째 재료를 본다”고 설명했다. 변기로 만든 마르셀 뒤샹의 ‘샘’이나 캔버스에 사각형만 그린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이 기준에선 가치가 떨어진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외국 작가는 ‘우리’ 계산식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국제 미술시장은 작품을 최우선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원칙이 확립돼 있다. 작가의 학력과 전시 경력은 참고할 뿐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술사가 전하현 씨에 따르면 국제 미술계는 작품의 미술사적, 미학적 가치를 가장 중요시한다. ‘샘’과 ‘검은 사각형’이 수천억 원의 가치를 지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미술품 가격에는 이유가 있다’의 저자 허유림 독립큐레이터는 “국내 작가와 소장자를 위해서라도 국제적 흐름을 반영한 기준 정립이 시급하다”고 했다. 협회는 정부 요청으로 축적된 자료를 참고해 만들다 보니 이런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협회뿐 아니라 국내 미술계가 작품 가치에 관한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미술은행 관계자는 “협회의 계산식을 적용할지는 미정”이라고 했다. 기왕 예산을 들여 하는 일이라면 미술계에 기여할 수 있는 선진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화가들이 ‘스펙 쌓기’에나 열을 올리는 촌극을 조장할 뿐이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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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 첫 외국인 예술감독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홍콩 출신 융 마 프랑스 퐁피두센터 큐레이터(40·사진)가 선임됐다. 2000년 설립돼 20주년을 맞는 비엔날레에 외국인 감독이 선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취임 직후 비엔날레 태스크포스를 꾸렸고 기존의 비엔날레를 분석한 결과, 감독의 연령과 국적을 개방하고 추천 과정을 더 세밀하게 설계하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추천위원회와 1, 2차 선정위원회, 3차 후보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마 감독을 선정했다. 예술감독 선정위원회에는 김성원 국립아시아문화원 전시예술감독과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배형민 서울시립대 교수, 안미희 경기도미술관장 등이 참여했다. 마 감독은 중국 동시대 미술가를 지원하는 K11예술재단의 협력으로 2016년부터 퐁피두센터 큐레이터로 재직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홍콩 M+ 미술관에서 무빙 이미지(영상, 애니메이션, 비디오아트, 설치) 큐레이터로 소장품 구축을 담당했다. 마 감독은 “동아시아 주요 비엔날레인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기획하는 기회를 얻어 매우 기쁘고 영광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큐레이터의 전략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탐구하겠다”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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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임 4개월 서울시립미술관장 “‘호크니’ 같은 현대미술전 2년마다 운영할 것”

    취임 4개월을 맞은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이 29일 언론간담회를 열고 서울시립미술관의 새로운 목표와 추진방향을 설명했다. ‘여럿이 만드는 미래, 모두가 연결된 미술관’을 목표로 밝힌 미술관은 ‘다양성’과 ‘연결성’에 방점을 찍는 모양새였다. 이날 간담회에서 백 관장은 “서울은 이미 세계의 사회문화적 중심이 되고 있고, 이제는 현대미술을 매개로 세계의 도시와 서울을 연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미술관은 소장품 정책, 비엔날레 재설계, 국제교류 등 태스크포스팀 등을 운영하며 실천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했다. 내년 열리는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인 예술감독을 선임하기도 했다. 감독으로 선정된 융 마는 현재 파리 퐁피두센터의 큐레이터. 2011년부터 2016년까지는 홍콩 M+ 미술관 큐레이터를 지냈다. 2009년과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홍콩관 협력 큐레이터로도 참여했다. 백지숙 관장의 일문일답. ―‘관습적인 명화전이나 대중문화전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범을 제시하는 특별전을 기획하겠다’고 밝혔다. 미술관을 찾는 관객이 가장 궁금한 것이 향후 전시 방향인데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가 8월 4일까지 진행 중이다. 호크니 전은 제가 관장으로 오기 전에 기획됐지만 진행하며 여러 가지 새로운 데이터를 축적했다. 기존 명화전을 찾는 관객과는 다른 형태의 관객이 출연했음을 확인했다. 표본 1000명 정도의 관객 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분석 중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한 대관전이 아니라 미술관 큐레이팅 인력이 초기 단계부터 기획에 참여했고 결과로 나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새로운 관객의 요구와 미술관의 큐레이터십이 결합된 차원의 걸작 전시를 2년마다 운영할 계획이다. 매년 운영하는 것은 미술관 시스템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짝수연도에는 비엔날레를 통해 미술의 전문성을 확대하고, 국제도시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지점에 초점을 둔다면, 홀수연도에는 호크니의 결과를 토대로 관객 수요에 맞는 걸작 전을 기획하고자 한다. 미술사적인 전시보다 현대미술 현장과 결합해 관객 요구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호크니 전시 관객으로부터 어떠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나. “아직은 데이터 분석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경험이나 감각으로 느낀 것은, 통상 명화전이라고 하면 교육적 기능을 갖고 부모와 아이가 같이 관람하는 형태였는데 이와 달랐다는 점이다. 준비 과정에서는 20대나 젊은 층이 전시를 좋아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결과를 놓고 보니 굉장히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의 20대 혹은 10대 말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객이 찾았다. 또 평균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이상 전시장에 머물며 진지하고 열정적인 태도로 전시를 관람한다는 지점이 굉장히 새롭고 격려가 됐다. 미술관 입장뿐 아니라 문화상품인 ‘굿즈’ 판매율도 초반에는 입장권과 매출액수가 거의 동일해 놀랐다. 관객들이 단지 전시만 보는 게 아니라 상품을 구입해 일상 속으로 경험을 확장하고자 하는 열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비된 것은 굳이 언급을 안 해도 잘 아실 것이다. 그런 경험적 수치가 있는데, 정확한 분석 결과는 데이터를 보고 말씀드리겠다.” ―소장품 정책 TF를 꾸렸는데, 소장 구입의 방향에 정해졌는지, 예산 확보는 어떻게 진행되나. “미술관의 대표적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 소장품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지난해 소장품 액수가 16억 원이다. 지속적으로 양질의 소장품을 확보하기에는 부족한 조건이라는 의견이 당연히 있다.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시 예산이 한정돼 쉽지 않다. 소장품 중장기 계획이 2020년까지 수립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올해 말부터 소장품 방향과 공유 시스템 등을 고민할 예정이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첫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는데, 비엔날레의 향후 성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지난해 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당시 집단 기획자 중 한 명인 최효준 전 관장이 성희롱 의혹을 받아 직무 정지 상태에 있었고, 1명이 추가로 사임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오자마자 제일 먼저 비엔날레 TF를 꾸렸다. 기존의 비엔날레 경험과 역사를 분석하며 논의된 것은, 외국인 감독을 뽑자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연령과 국적을 개방하고 추천 과정을 더 세밀하게 설계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추천위원회와 1,2차 선정위원회를 거쳤고 3차에서는 후보들의 프리젠테이션을 받아 최종 선정했다. 시립미술관 입장에서는 주요 사업임에도 별도로 운영되는 감이 있어서, 미술관과 결합해 조직적 연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계속 지적됐다. 다만 이 부분은 인력이나 예산 조직이 수반되어야 해서 서울시 측에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서소문 본관 안에서만 주로 비엔날레가 이뤄지다보니 그 성격보다 미술관의 국제교류 성격에 제한되는 느낌이 있어서, 이번에는 서울시에 산포한 여러 문화시설, 유휴시설 미술관 분관들을 통합해 감독에게 중요한 장소로 제안하고, 그 장소를 재해석하고 연결시키는 작업을 조정 중이다. 융 마 감독은 올해 12월에 기자간담회를 마련할 예정이며 이 때 구체적인 내용을 더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3월에는 1차 작가 리스트가 발표된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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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조와 화성’ 주제로 한 10인 작가 기획전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했고,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며 개혁의 정당성을 입증해야만 했던 조선 시대의 왕. 정조(재위 1776∼1880년)를 주제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면? 그의 개인적 삶에서부터 18세기 조선의 상황까지 무수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조선의 번영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수원화성’ 또한 마찬가지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11월 3일까지 열리는 ‘셩: 판타스틱 시티’는 정조와 수원화성이라는 거대한 두 가지 주제를 중심에 둔 기획전이다. 1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는 민정기와 서용선의 회화로 시작한다. 민 작가의 회화는 수원 도심의 현재 모습이나 역사의 기록을 재현한 풍경화다. 도심 풍경에는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초점을 맞춰서 묘사했다. 전시장을 돌아 나오면 서용선의 ‘정조와 화성 축성’과 ‘화성 팔달문’이 보인다. 바닥에는 한옥을 지을 때 사용하는 주춧돌이 놓여 있다. 건축물이 있었던 흔적을 의미하는 주춧돌 앞에서, 정조가 지은 화성의 이면에 도사린 이야기를 더듬어 보는 재미가 있다. 11세 때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임금(장조)으로 추대하고, 화성으로 왕릉을 모시려고 했던 ‘개인’ 정조의 복잡한 심정이 그림에 녹아 있다.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안상수는 정조의 이름과 수원, 화성에서 글자를 추출해 만든 문자도를 선보인다. 사진가 김경태는 수원화성의 군사시설물 ‘서북공심돈’을 포커스 스태킹 기법으로 촬영한 작품을 내놨다. 포커스 스태킹은 기존 사진의 심도를 벗어나 모든 영역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건축의 견고함이 강조된다. 이 밖에 참여 작가 김도희 김성배 나현 박근용 이이남 최선이 화성과 정조를 주제로 신작을 내놨다. 주제가 워낙 방대해 전시의 맥락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정조’와 ‘화성’은 박물관이나 대중 매체에서 수차례 다뤘던 주제인 만큼, 구체적 방향성이 제시됐더라면 관람객의 이해도 돕고 신선함도 줄 수 있었을 것 같다. 연계·도슨트 프로그램이 빈자리를 메우길 기대한다.수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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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랄하게 비틀고 꼬집은 부조리… ‘척추를 더듬는 떨림’ 10월 5일까지

    ‘겉모습은 유쾌한데 속엔 칼을 품고 있네….’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밀레니얼’ 작가들의 작품이 삼청동에 온다.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삼청’에서 10월 5일까지 열리는 그룹전 ‘척추를 더듬는 떨림’은 솔 칼레로(37), 카시아 푸다코브스키(34), 페트리트 할릴라이(33), 조라 만(40)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 작품들은 화려한 색채와 아기자기한 형태가 유쾌함을 자아내지만, 그 속엔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 흥미롭다. 푸다코브스키의 설치 작품 ‘지속성없음(Continuouslessness)’은 2011년부터 이어지는 미완성 연작이다. 스크린처럼 연결된 패널은 분해가 가능해 전시 때마다 배열이 달라진다. 첫 패널 ‘젠더 벤더’는 남성성, 여성성을 상징하는 듯한 요철을 엇갈리게 배치해 젠더 구별을 유머러스하게 꼬집는다. 또 새롭게 선보이는 ‘범죄를 찾는 처벌’은 낡은 대합실 의자를 배치해 국가가 개인을 통제, 감시하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표현한다. 이 시리즈는 유명 현대미술가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이 큐레이터를 맡은 15회 이스탄불 비엔날레에서도 선보였다. 알록달록하고 탐스러운 형태가 돋보이는 칼레로의 작품은 ‘라틴아메리카’의 의미를 돌아보는 작품이다. 남미를 상징하는 전형적 이미지를 차용하고 변주해 국가나 문화에 관한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할릴라이의 ‘철자법 책’은 전쟁으로 고통 받는 코소보 지역의 한 학교 교실 책상 위의 낙서를 대형 설치물로 만들었다. 아이들이 일상에서 끼적인 가냘픈 낙서가 단단한 철로 만든 조각 작품이 되면서 상처를 보듬는 듯하다. 만의 ‘코스모파기’는 케냐의 해변에 버려진 플라스틱 슬리퍼를 활용해 블라인드로 만들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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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기 없는 피서” 수저-텀블러에 그릇까지 챙겨 출발∼

    푸른 바다와 눈부신 태양이 기다리는 곳, 강원 강릉시로 향하는 KTX 열차 안 모습은 그들이 목적지에서 기대하는 풍경과 판이했다. 승객 앞 테이블에는 종이컵과 먹고 남은 플라스틱 도시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바닷가에 도착해도 이어지는 답답한 정경. 전날 피서객들이 먹고 마신 맥주 캔, 배달 음식의 포장재, 일회용 수저가 뒹구는 모래밭은 마치 실패한 인공정원처럼 황량해 보였다. 인간의 휴가철이 자연에게는 되레 전쟁 시즌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해양환경공단에 따르면 매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해양 쓰레기는 14만5000t. 이 중 수거되는 쓰레기는 60%에 불과하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최근 휴가철을 맞아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즉 쓰레기 없는 삶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들을 만나봤다.○ 개인 수저 들고 떠나는 ‘제로웨이스트 투어’ 매거진 ‘SSSSL(쓸)’ 배민지 편집장(30)은 최근 강릉으로 ‘제로웨이스트 투어’를 다녀왔다. 매거진 ‘쓸’은 작지만 천천히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생활(Small Slow Sustainable Social Life)의 약자다. 기존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을 알리는 계간지. ‘쓸’ 팀원들과 ‘제로웨이스트 투어’를 떠나기 전 배 편집장은 텀블러, 에코백, 개인용 수저, 간식 담을 다회 용기부터 챙겼다. 여행 도중 생길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준비물이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고 음식은 다회용기에 담았다. 음식은 해변 테이블에 앉아 개인용 수저를 이용해 먹었다. 호텔에서는 제공되는 일회용 욕실용품을 쓰지 않았다. 호텔 카페에서 텀블러에 물을 받아 마시고, 비치된 욕실용품에는 ‘재활용해 달라’는 포스트잇을 붙여뒀다. 배 편집장은 “익숙하지 않다면 번거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텀블러와 에코백, 개인 수저, 다회 용기만 챙겨도 쓰레기를 많이 줄일 수 있다”면서 “같은 음식도 일회용 포장지에 담긴 채로 먹으면 인스턴트 느낌이 나지만 다회 용기에 담아 먹으면 격식 갖춰 먹는 기분까지 들어 좋다”고 했다.○ 일상서도 ‘플라스틱프리’ ‘제로웨이스트’ 늘어 최근 쓰레기 대란으로 일회용품에 대한 경각심이 늘어나면서, 일상에서도 소소하지만 동시다발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이 특히 많았던 카페들이 ‘플라스틱프리’를 선언하고 나서고 있다. 여성환경연대와 ‘쓸’이 만든 ‘플라스틱없다방’ 지도에 따르면 서울 전역 카페 중 14곳이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카페 ‘딥블루레이크 커피&로스터스’는 최근 테이크아웃용 컵과 비닐봉지, 빨대를 모두 옥수수 전분을 원료로 한 PLA(polylactic acid·폴리락트산) 제품으로 바꿨다. 카페 관계자는 “뜨거운 음식을 담거나 아기가 입으로 물고 빨아도 환경호르몬과 중금속이 검출되지 않는 친환경 수지”라면서 “일반 플라스틱 제품보다 2배 비싸서 ‘이게 잘하는 짓인가’ 싶지만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일회용 포장지를 전혀 쓰지 않는 ‘제로웨이스트 숍’도 있다. 서울 동작구의 카페 겸 상점 ‘지구’는 스테인리스·유리 빨대와 천연 수세미, 화학 성분 없는 비누, 재생지 문구, 생리컵 등을 판매한다. 시리얼과 파스타 같은 음식도 포장되지 않은 상태로 살 수 있다. 국내에 처음 생겨난 ‘제로웨이스트샵’인 서울 성동구 ‘더 피커’도 일상용품부터 다회용 랩, 설거지 비누 등 주방용품과 친환경 생분해성 요가 매트까지 판매한다. 장바구니를 가져오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에코백도 판매한다. 단골손님들은 집에서 쓰지 않은 유리병이나 장바구니를 기부하기도 한다. 배민지 편집장은 “지난해 2월 ‘쓸’이 처음 발간됐을 때만 해도 반응이 크지 않았는데 ‘쓰레기 대란’ 이후 30, 40대 여성을 중심으로 호응이 많다”며 “700∼800명이 ‘쓸’을 찾고 있어, 환경에 대한 염려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김민 kimmin@donga.com·임희윤 기자}

    •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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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쓰고, 줄이고, 다시 쓰고… 나머지는 썩힙시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아무렇지 않게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쓰는 사람을 보면 힘이 빠진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노력이 확산돼야만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로웨이스트샵’ 플랫폼을 도입한 서울 성동구 ‘더 피커(The Picker)’로부터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더 피커가 제작한 ‘제로웨이스트학 개론’에 따르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는 ‘제로’나 ‘쓰레기(waste)’의 의미를 실천하는 사람이 스스로 정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모든 쓰레기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며, 불가피한 중에서도 쓰레기의 질을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때도 우선순위를 정하고, 플라스틱을 일단 쓰면 최대한 다시 활용한다. ‘제로’의 의미도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차원이 아닌 소비 생활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자는 것이다. ‘예쁜 쓰레기’라는 신조어처럼, 불필요한 소비로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지는 않은지, 대안이 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 이런 고민 끝에 플라스틱 칫솔 대신 대나무 칫솔을 활용하고, 화학 세제가 아닌 ‘소프 넛’을 사용하는 해결책이 탄생했다. 제로웨이스트 운동을 세계적으로 전파한 운동가 비 존슨은 ‘5R’ 법칙을 제시하기도 했다. 필요하지 않는 것은 거절한다(Refuse), 거절할 수 없는 것은 줄인다(Reduce), 거절하거나 줄일 수 없는 것은 재사용한다(Reuse), 재사용마저 불가능하면 재활용으로 분류한다(Recycle), 나머지는 썩힌다(Rot)는 것이다. 새 물건을 살 때 5R를 고르는 팁으로 활용해도 좋다. ‘제로웨이스트학 개론’은 ‘더 피커’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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