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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계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여전히 인문학, 그중에서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는 영국의 서점을 방문해 보면 금방 안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로 자기계발 및 경제 경영 관련 도서가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영국의 서점에서는 역사책이 단연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도 세계사, 영국사, 아시아사, 세계 대전사 등 다양한 종류로 세분돼 있으니 영국인들이 얼마나 역사에 관심이 많은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책 코너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책은 BBC 정치부의 앤드루 마 기자가 9월 말 출간한 ‘세계의 역사(History of the World)’다. 저자는 일간지 인디펜던트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BBC로 옮겨왔으며 2005년부터 BBC에서 ‘앤드루 마 쇼’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지난 5년간 ‘앤드루 마의 현대 영국의 역사’와 ‘앤드루 마의 현대 영국을 만든 것’ 등 굵직한 역사 프로그램을 선보여 많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동명의 역사서들을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세계의 역사’도 출간과 동시에 8부작 TV 다큐멘터리로 제작됐으며 BBC를 통해 방송돼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책은 7만 년 전의 고대 마야인으로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베냉 왕국, 폴란드 왕국, 몽골 제국, 아프리카인들의 대이동 등 다채로운 문명의 역사를 담고 있다. 유럽인이 쓴 역사서가 대체로 유럽 중심의 세계관에 따라 기술되는 것에 비해 마 기자는 이 책에서 유럽뿐 아니라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의 다양한 문명을 그곳 사람의 시선에서 담으려 노력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과 같은 세계사적 사건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페루나 우크라이나, 중미에서의 문명의 시작을 다루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저자는 실패하고 사라진 문명들, 이른바 ‘승자’라고 불리는 나라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며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가질 법한 의문들에 답한다. 역사를 바꾼 인물들, 예를 들어 클레오파트라, 칭기즈칸, 갈릴레오 갈릴레이나 마오쩌둥과 같은 거물들을 다루면서 어떻게 몇몇 지도자들은 현실 감각을 잃었는지, 어째서 혁명은 때로는 행복보다는 독재자들을 낳는 것인지, 왜 일부 지역은 다른 곳보다 부유한지 등을 설명한다. 가디언지는 “마 기자의 새 책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은 사건과 인물을 뛰어난 이야기 능력으로 풀어놓았다”고 평가했다.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

책 한 권이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아나운서 손미나 씨(40)가 2006년 스페인 연수를 다녀와서 쓴 ‘스페인, 너는 자유다’. 당시 KBS ‘도전 골든벨’을 진행했던 발랄했던 모습의 그는 1년 만에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에 긴 생머리를 하고 돌아왔다. 이 책은 수많은 여성독자들의 호응 속에 20만 권 넘게 팔렸다. 그는 이듬해 KBS에 사표를 던지고 본격적인 작가로 나섰다.그로부터 6년간 일본 도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프랑스 파리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그는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 태양의 여행자’,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아르헨티나’, 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등을 펴내며 치열한 작가의 삶을 살아왔다. 누구나 선망하는 아나운서라는 직종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살아온 그는 요즘 20∼30대 여성들이 닮고 싶어 하는 롤 모델 중 하나다.“파리에 있을 때 바스티유 광장 근처의 철학카페에 자주 갔어요. 일요일 오전 10시마다 머리 희끗한 아저씨, 주방에서 막 튀어나온 아주머니 같은 분들이 에스프레소 한 잔과 수첩을 놓고 이야기하는데, 대학 강의실 못지않은 진지한 분위기였어요. 우리는 철학이 어렵고 특권층만 즐기는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의 당당함과 여유가 부러웠죠.”손 씨는 3년간의 파리 생활을 마치고 올해 7월 귀국했다. 당분간 국내에 머무르며 내년에 출간할 프랑스에 관한 책을 쓸 작정이다. 그는 최근 ‘파리의 철학’(봄바람)이란 테마로 다이어리를 출시하기도 했다. 그는 ‘책의 향기’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몽각 씨의 사진집 ‘윤미네 집’(포토넷)을 권했다. 큰딸 윤미가 태어나서 시집가기까지의 모습을 아버지가 흑백사진에 담아낸 기록이다. 손 씨는 “이 책은 글 없이 사진만 보아도 따뜻한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을 볼 때마다 올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버지 생각이 난다. “병실에서 아버지는 고향(개성)이 같아 가장 좋아했던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아버지가 남기신 수백 통의 편지와 글을 모아 아버지의 역사를 추억하는 책을 쓰고 싶어요.”그의 두 번째 추천 책은 ‘카우치 서핑으로 여행하기’(이야기나무). ‘카우치 서핑’이란 해외 배낭여행자들에게 인터넷 신청을 거쳐 무료로 자신의 집 소파를 잠자리로 제공하는 것. 손 씨는 “집주인은 여행자들과 만나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여행자들은 돈이 없이도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여행문화”라며 “이 책을 읽고 나도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손 씨는 연말에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펭귄클래식코리아)을 골라줬다. 그는 “이 책에서 베르테르는 호메로스의 시를 읽으면서 사랑의 슬픔을 다독인다”며 “현재의 내가 200여 년 전의 괴테, 기원전의 호메로스를 만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고전의 힘”이라고 말했다.손 씨는 “내년에는 페루의 마추픽추에 가서 몇 달간 머무르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고 전했다. 그 전에는 팟캐스트 ‘손미나의 여행사전’을 진행하며 젊은 여성들과 고민을 함께 나눌 계획이다. “많은 이들이 프랑스 여성들을 부러워하는 데 날씬하고 스타일리시한 모습 말고, 그들의 실용적이고 검소하고 독립적이고 자기주도적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워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에 가보면 절반 이상이 한국의 30대 여성들이라고 합니다. 30대가 되면 인생이 끝나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젊은 여성들에게 힘을 주는 힐링 캠프를 준비할 계획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신병훈련소에 8주간 있으면서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과자봉지 뒷면에 쓰인 영양성분 표시나, 행군하다 길에서 주운 신문 조각을 정신없이 읽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규하 병장은 지난해 초 강원 화천군에 있는 최전방 부대 육군 제27사단(이기자부대) 통일선봉대대에 배치되던 첫날 깜짝 놀랐다. 험준한 화악산(1468m)과 곡운구곡(谷雲九曲)의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 부대에 수천 권의 책이 꽂혀 있는 작은 병영도서관을 보고서다. “밖에서도 읽지 못했던 신간도서가 가득한 걸 보고 세상과 단절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희망을 느꼈습니다.”○ TV, 스마트폰 대신 책을 읽는 군인들 이 부대에 병영도서관이 생긴 것은 2010년 10월. 신막사를 지으면서 병영생활관 3층에 작은 도서관을 마련했다. 책꽂이에는 시민단체와 국방부, 문화체육관광부, 지역 주민, 부대원들이 기증한 책 8700권이 비치됐다. 병영도서관은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렸던 청춘들의 군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게임을 할 수 없는 군대 환경에서 장병들은 처음 맛보는 책의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장재호 상병은 이등병 때 병장의 손에 이끌려 도서관을 처음 찾았다. 선임병은 그에게 군 생활에서는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며 ‘삼국지 인생전략 오디세이’를 추천했다. 그는 이후 병영도서관에서 매주 1, 2권씩 1년간 50권이 넘는 책을 꾸준히 읽었다. “군 생활을 하다 보면 바깥세상으로부터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되죠.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고 불안감의 정체를 알고 나니 거기서 벗어나게 되더군요.” 안경을 낀 앳된 얼굴의 한민기 상병은 요즘 ‘야생화 백과사전’과 구병모의 소설 ‘아가미’를 재밌게 읽고 있다. 한 상병은 “강원도 산골에서 훈련을 받다 보면 야외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데, 도심에서는 볼 수 없던 꽃들의 이름을 알아가는 기쁨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최근 국방일보가 장병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병영도서관을 이용하는 군인들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은 2.4권이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독서량(한 달에 0.8권, 1년에 9.9권)의 세 배 가까이 되는 수치다. 지난해 병영독서 우수 부대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던 이기자부대도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분기별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독서왕’과 독후감 경연대회 수상자에게는 3박 4일의 포상휴가를 준다. 또한 지난해 11월에는 강원대 국문학과 정성미 교수를 초청해 병사들과 ‘논어’ ‘징비록’ 등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 책을 읽으면 더 강한 군대가 된다 예전의 군대에서는 내무반에서 최고참 병장이 TV를 보고 있으면 모두들 TV를 봐야 했다. 그러나 올해 8월 말 ‘계급별 병영생활관’ 제도가 시범 실시된 이후 막사의 풍경은 달라졌다. 이 제도는 오후 5시 반 일과시간이 끝난 이후부터 취침시간까지 이등병은 이등병끼리, 병장은 병장끼리 별도의 생활관을 사용하는 제도다. 장병들은 내무반에서도 선임병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여가시간에 자유롭게 자기계발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정훈장교 이상엽 중위는 “요즘 군대에서는 이등병의 얼굴 표정은 크게 밝아진 반면 병장들은 어두워졌는데 이는 제대 후 취업 걱정 때문”이라고 전했다. 일부 장병들은 여가시간에 부대 내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인터넷으로 3학점짜리 대학 강의를 듣는다. 병영도서관에 구비된 900여 권의 수험서를 활용해 국가검정기술자격증을 딴 이도 많다. 장건 일병은 지난달 양식조리사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일병이라 내무반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잠을 줄여 도서관에서 밤 12시까지 남아 2주간 공부해 필기시험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정문홍 병장은 제대 후 일본에서 타투(문신) 아티스트로 활동하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봉근주 대대장은 “책을 통해 국가와 역사에 대한 의식을 갖고, 전우들과 좋은 생각을 나누고, 미래의 삶에 대한 계획을 실천하는 장병들이라면 더욱 강한 군대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국방부와 문화부는 올해 전군 50개 부대를 대상으로 독서 지도사 파견, 작가 초청 강연, 북콘서트 등을 여는 병영독서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내년에는 130개 부대로 확대할 예정이다. 문영호 문화부 도서관정보정책기획단장은 “대한민국 60만 장병이 21개월간의 복무기간 중 책 읽는 문화에 익숙해진다면 제대 후에도 독서 습관을 유지하면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살아야 하는 이유’라. 오늘날 이 물음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풍요 뒤의 장기 침체 탓일까. 미래는 이제 꿈과 희망만이 아니라 불안이자 공포이기도 하다. 수명이 길어진 사회에서는 일찍 죽는 위험보다 장수에 수반되는 위험이 더 커졌다. 1998년 일본에 귀화하지 않은 재일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된 저자는 서문에서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따른 비통함과 회한을 토로한다. 이어 발생한 3·11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는 일본인들에게 일상에 널려 있는 견고한 광경이 액체처럼 녹아내리는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은 자연은 ‘제어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인위적으로 만든 법률, 국가, 사회, 정치, 경제 제도 등은 ‘바꿀 수 없다’는 이중적 오류를 행해왔다”며 “대표적 결과가 3·11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라고 지적했다. 그는 “근대 이후 발명된 ‘행복 방정식’은 그 한계를 속속들이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이제 ‘보통의 행복’은 특권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심리학자 빅토르 프랑클 등의 통찰을 되새기며 그동안의 ‘행복 방정식’을 근본부터 성찰해 간다. “자본주의는 점점 스포츠 게임을 닮아간다. 우승자만 행복의 축배를 들 뿐, 패배자는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당하고 경기장 밖으로 쫓겨나는 신세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들은 ‘진짜 자기’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러나 이는 ‘불안’의 냄새를 이용한 자본주의의 상술에 불과하다. 행복하기 위해선 자기 찾기에 집착하는 것보다, 자기를 잊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윌리엄 제임스의 ‘거듭나기(twice born)’ 개념이다. “‘거듭나기’란 생사의 갈림길을 헤맬 정도로 마음의 병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빠져나간 지경에 도달하고, 새로운 가치나 인생의 의미를 포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건전한 마음’으로 보통의 일생을 끝내는 ‘한 번 태어나는 형(once born)’보다 ‘병든 영혼’으로 두 번째 삶을 사는 ‘거듭나기’의 인생이 더욱 중요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아동문학가 고정욱 씨(52)가 200번째 동화책 ‘가슴으로 크는 아이’(자유로운상상)를 펴냈다. 1급 장애인인 그가 지금까지 쓴 동화와 소설 200권은 모두 305만 부 이상 팔렸다. 그만큼 다작(多作)을 내놓고 이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동화작가는 전 세계에서도 보기 힘들다. 소설가로 등단했던 그가 동화를 쓰기 시작한 건 1999년부터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동화를 쓰게 됐다. 뇌성마비 장애아가 주인공인 데뷔작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은 70만 부가 판매됐다. 시각장애아와 안내견의 이야기를 다룬 ‘안내견 탄실이’는 30만 부, 지체장애아와 친구의 우정을 그린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100만 권이 나갔다. 그는 돌 무렵 소아마비를 앓고 1급 장애인이 됐다. 고교 시절 의대 진학을 꿈꿨지만 “장애인을 받아주는 의대는 없다”는 교사의 말에 크게 낙담했다. 진로를 바꿔 성균관대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년이 넘도록 여러 대학에서 강사생활을 하다가 아동문학가의 길로 들어섰다. 장애를 딛고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 그에게 학교와 관공서, 기업에서 강연 요청이 쏟아진다. 그는 1년에 20권 이상의 책을 쓰고, 매년 200여 차례 강연을 다닌다. 독서의 계절인 요즘은 한 달에 29일을 강의하기도 한다. 그에게 어떻게 그런 다작과 강연 활동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소아마비 장애인에게는 포스트 폴리오 신드롬이라는 게 있어요. 몸의 근육 가운데 3분의 2가 하체에 몰려 있는데 이를 쓰지 않으니 심폐, 내장, 심장 기능이 60세가 넘으면 급격히 떨어집니다. 그래서 소아마비 장애인 가운데 장수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저는 목숨을 걸고 씁니다. 언제 삶이 끝날지 모르니까요.” 그의 작품 30여 개는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번역돼 소개됐다. 그는 “내 책을 읽은 아이들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걸 볼 때 내가 이 세상에 장애인으로 살게 된 소명의식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며 “죽는 날까지 500권의 동화책을 쓰고, 내 책이 전 세계 100개 언어로 번역되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라는 주제는 세계인이 모두 공감할 것으로 생각해요. 마지막 꿈은…장애인 문학으로 노벨 문학상을 타는 겁니다. 하하.”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최근 전자책 단말기를 활용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출퇴근할 때 심심풀이로 읽기 위해 인터넷 서점에서 더글러스 케네디의 소설 ‘빅 픽처’와 수전 콜린스의 ‘헝거게임’을 다운로드했다. 너무 재밌어서 지하철과 화장실 등에서 틈틈이 읽었는데도 며칠 만에 다 읽어버렸다. 남들은 내가 태블릿 PC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주변의 시선도 느낄 필요도 없었다.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의 전자책 매출액은 2007년 킨들 첫 출시 이후 매년 400% 정도씩 성장해왔다. 올해 아마존은 종이책 100권을 팔 때, 전자책을 114권이나 팔았다. 국내에선 전자책 붐이 아직 미미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선 전자책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9일 영국 피어슨그룹의 출판사 펭귄과 독일 베텔스만그룹의 랜덤하우스가 합병을 발표했다. 전세계 출판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출판사의 탄생이었다. 이번 합병은 전자책 붐이 얼마나 빠르게 기존 출판산업을 격동시키고 있는가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35년 창립된 펭귄은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출판사다. 기하학적 수평선 무늬와 펭귄 로고, 장르별 컬러로 표시하는(오렌지는 소설, 그린은 범죄물, 블루는 자서전, 핑크는 여행서적 등) 표지 디자인은 펭귄만의 독특한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랜덤하우스는 올해 E L 제임스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전 세계에서 4000만 부 이상 팔리는 대히트를 쳤다. 펭귄과 랜덤하우스는 이번 주 미국 도서시장에서 톱 순위 25위 안에 드는 베스트셀러 중 10여 개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강력한 브랜드와 베스트셀러를 갖춘 두 회사가 경영난도 아닌데 왜 합병해야 했을까. 두 회사의 합병으로 인쇄, 창고, 물류, 생산 시설을 공유함으로써 비용절감과 콘텐츠 시너지 효과는 클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전자책 협상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아마존과의 한판 승부를 위한 출판계의 몸집 키우기로 봐야 한다. 그동안 인터넷 서점은 종이책을 팔면서도 각종 가격 할인 정책으로 수많은 오프라인 서점의 문을 닫게 했고, 출판사들의 경영을 어렵게 했다. 앞으로 전자책 시대를 맞아 아마존, 애플, 구글 등 거대 온라인 기업은 작가들과 직접 계약을 맺고 ‘e-출판’까지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시장에서 출판사의 역할은 없어진다. 이 때문에 출판사는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활을 건 싸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펭귄랜덤하우스가 아무리 공룡이라고 해도 매출액은 아마존의 6%, 구글의 8%, 애플의 2%에 불과하다. 하퍼 콜린스, 아셰트, 맥밀런, 사이먼&슈스터 등 남은 거대 출판사들까지 연합전선을 펴지 않는 한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온라인 기업을 이기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출판사가 무작정 몸집을 키우는 데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펭귄은 결국 정체성을 잃게 될 것” “거대 출판사가 작가들을 싹쓸이할 것”이라는 우려다. 한국에서도 인터넷 서점들의 할인판매로 인해 실질적으로 도서정가제가 무너져 출판시장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또한 전자책 판매방식과 가격 설정에 대한 시장의 합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국내 출판사들도 언젠가는 아마존, 애플, 구글같은 글로벌 기업이나 KT, SKT 같은 통신대기업과 전자책을 놓고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문화 콘텐츠의 주춧돌이 되는 출판시장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대선 기간인데도 후보자들이 문화정책을 내놓았다는 소식은 아쉽게도 들리지 않는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세계 각국의 신화는 우주론과 관계가 있다. 신화 속 우주는 대부분 신들의 세계, 인간이 사는 지상, 지하 세계로 나뉜다. 북유럽 신화는 위드그라실이라는 거대한 물푸레나무 주위에 아홉 개의 세계가 있다고 본다. 이와 달리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 신화는 세상을 ‘아이예’(물리적 세계)와 ‘오룬’(보이지 않는 세계)으로 간단히 나눴다. 그리스, 로마, 아메리카, 중남미, 아프리카 등 신화의 상징세계를 풍부한 도판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꿀, 젖, 피, 소금, 독수리, 뱀 등 키워드로 접근한 신화 해석도 흥미롭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현대 사회의 기본 인프라는 법치주의입니다. 공(公) 사(私) 영역에서 광범위한 법치가 자리 잡지 못한다면 성장 발전의 기반인 민주주의 체제가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설립자인 김인섭 명예 대표변호사(76·사진)가 자서전 ‘추풍령에서 태평양까지’(나남)를 펴냈다. 책에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판사 변호사 시민운동가로 치열하게 살아온 저자의 인생 역정을 담았다. 부제는 ‘법치주의를 추구했던 한 법조인의 초상’. 그의 법관 생활 18년간은 박정희 대통령의 압축성장 기간과 맞물리고 이후 변호사 생활 22년은 민주화 시절과 겹친다. 그는 “법조인은 판결문으로만 말한다는 전통이 있는데, 한 시대를 살아온 법조인의 회고록도 중요한 현대사 자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책에서 김 변호사는 1967년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의 주심판사로서 피고인 이창희(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차남)의 병보석을 불허한 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 회원들을 간첩으로 조작하려 했으나 이 회원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일 등 정권의 압박과 회유에 맞섰던 판사 시절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또 1964년 한일회담 반대 데모로 구속된 고려대 재학생 이명박(현 대통령)의 신원보증을 서준 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 저자에게 정치 입문을 강권했던 비화도 공개했다. 김 변호사는 1961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이후 18년간 판사로 재직했다. 그는 1977년 부장판사로 승진한 뒤 단독 집무실과 운전사가 딸린 관용차를 제공받고는 스스로 ‘빚꾸러기(빚을 많이 진 사람)’라는 자각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후 1986년 법무법인 태평양을 설립해 국제적인 로펌으로 키워냈다.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실현한다는 그의 굳은 소신은 변치 않았다. 2002년 현역 법조인에서 은퇴한 후에는 법치주의를 내건 시민운동 ‘굿소사이어티’ 활동을 해왔다. “적어도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압축성장 시대의 변칙적 법 운영을 마감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도 변칙의 잔영이 이곳저곳에서 어른거립니다. 제가 은퇴한 후 법치주의 시민운동을 벌이는 것은 이런 자각 때문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우리는 자기 몸에 대해 얼마나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요. 여기 황당하지만 집요하게 우리 몸의 한 부분을 관찰한 책 ‘나의 엉뚱한 머리카락 연구’(이고은 글·그림)가 있습니다. 심심해서 시작한 관찰이랍니다. 하지만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머리카락과 그 주변에 관한 기록들이 세심합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그림까지 곁들여 친절하고 진솔하게 표현했습니다. 매일 보고 만지는 머리카락으로 많은 생각과 연구를 한 이 책은 제목처럼 엉뚱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일상을 이토록 살피고 돌아보는 방식이 신선합니다.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알아채지 못한 것들에게 애정 갖기, 우리도 함께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독후활동-나의 엉뚱한 ☆☆연구 스크랩북 만들기준비물: 카메라, 8절 혹은 3절 스케치북, 사인펜, 색연필, 크레파스 등 필기도구, 가위, 풀, 신문, 잡지, 각종 스티커, 테이프 등 스크랩북 만들기에 적합한 모든 것. 1. 자신의 몸에서 무언가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찾아본다. 2. 모두 함께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3. 거울을 보거나 사진을 찍어 유심히 관찰한다. 녹음이나 녹화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함께 한다. 4. 밖으로 나가 그 부분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는 대상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는다. 5. 돌아와 관찰한 것을 그리거나 사진을 출력해서 스크랩한다.6. 관찰한 대상과 관련된 사진이나 그림을 각종 인쇄물에서 찾아 오려붙인다.7.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자료들을 첨부한다. 8. 적당한 제목을 정해 표지를 꾸민다. 8.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김혜진 어린이책교육연구가}

‘작은 회사’가 뜨고 있다. 불황에 빠진 세계경제 상황 속에서 ‘안정적이고 큰 회사’란 공상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높은 연봉의 대기업, 철밥통 공기업의 좁은 문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취업난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이제 눈을 돌려보자. 두 권의 책은 톡톡 튀는 크리에이티브로 먹고사는, 작은 회사에서 프로직업인으로서의 꿈을 꾸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일의 즐거움이 삶의 즐거움으로” 스토리텔링 회사에 다니던 김정래(30) 전민진 씨(29)는 이십대 후반에 직장을 그만뒀다. 30대에 새로운 삶을 도전하기에 앞서 두 사람은 또래의 청춘들이 어떤 일을 하고 사는지 궁금했다. 둘은 젊은이 13명을 만나 얘기를 듣고 그들이 작은 회사에 다니는 이유와 고민을 책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에 솔직하게 담아냈다. 부엉이 안경, 나뭇잎과 꽃을 넣어 만든 안경, 만화 캐릭터 조로 안경 등 기발한 안경테를 만들어내는 젠틀몬스터 그래픽의 안경디자이너 우빛나, 강원 횡성군에서 신선한 우유를 만들어 대기업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하는 서울F&B 기획관리부 과장 박현정, 인디밴드 전문 기획사 붕가붕가레코드 매니지먼트 팀장 김설화, 저소득층도 쉽게 살 수 있는 보급형 보청기를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 딜라이트 전략기획실장 김정현…. 한국 사회에는 작은 회사에 다니면 스펙이 모자라거나, 불안한 미래를 가진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작은 회사에 다니는 매력은 간판이나 급여, 사회적 평가로 잴 수 없는 ‘일과 삶’의 즐거움에 있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로움”(김설화 팀장)이 있고, “개인의 개성이 곧 회사의 색깔이 되는 짜릿한 경험”(디자인 서점 땡스북스 점장 김욱)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작다’라기보다는 ‘깊은’ 회사”(디자이너 우빛나)라고 해야 맞다는 전언이다. 저자 김정래 씨는 “우리 사회는 대학을 졸업하면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취업해야 하고, 취업하면 결혼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등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직업과 일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한지에 대해 깊은 사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민진 씨는 “우리 세대는 선배가 없다. 학교 선배들은 모두들 취업준비에 바쁘고, 교수님들도 논문 쓰시느라 바빠 물어볼 사람이 없다”며 “작은 회사 중에는 일의 재미뿐 아니라 보수나 조건도 좋은 회사가 많은데 취업지망생들이 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만의 생존법·프로의식 얻는다” 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41)는 “20대 시절 작은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가장 좋은 창업 인큐베이팅 과정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작은 회사에서는 1인다(多)역을 맡아 회사와 함께 밑바닥부터 성장해가며, 정글 속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는 “대기업을 수십 년 재직하다 나오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막막하지만, 작은 회사에서는 10∼15년만 버티면 이직이나 창업을 하더라도 두렵지 않은 나만의 프로의식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만난 13명의 창조적인 작은 기업 창업자의 스토리를 담은 ‘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를 펴냈다. 정 대표도 7년간 공연과 이벤트 기획을 하는 콘텐츠기업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그는 지난해 안식년을 얻어 통영에 내려갔다가 새로운 지역 비즈니스 시장을 발견하고 두 번째 회사인 ‘남해의봄날’을 차렸다. 지역의 작은 기업, 문화예술가들과 함께 남해안 곳곳에 숨겨진 풍부한 콘텐츠를 문화상품으로 개발하는 회사다. 정 대표는 “요즘 출간되는 책들이 ‘너무 힘들지, 힘들지’라고 위로만 하니까 청춘들이 ‘그래, 나 힘들어’ 하고 주저앉는 것 같다”며 “내가 배우고 싶을 정도로 훌륭하고 똑똑하게 앞날을 개척해나가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그런 묻혀진 젊은이들을 조명해 용기를 북돋워주고 싶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누구나 꿈을 꾸면 이룰 수 있는 것일까. 모든 사람의 꿈을 들어주는 마법사가 있어서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가도록 해준다면 얼마나 신날까. 그러나 아쉽게도 만화 속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대부분 그럴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일에 대한 꿈을 크게 꾸되, 한 손에 꿈과 함께 다른 한 손에는 ‘땀’과 ‘열정’을 들고 있다. 화려한 꿈 뒤로 눈물과 노력, 도전과 고통이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공상 과학만화 속의 용감한 여자 용사를 동경하던 소녀는 우주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고, 태권도를 배우고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마침내 세계 49번째,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 여성 우주인이 된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그의 우주도전기 ‘꿈을 쏘아라, 미래를 열어라’(샘터사)를 보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고난 능력도 중요하지만 남다른 노력과 땀, 지치지 않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환경이 열악한 사람들은 또 어떻게 했을까. 그들 모두는 남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지치지 않고 달려간다. 아니 쓰러져도 일어나서 달려간다. 방송인 김병만의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실크로드)는 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잘 곳이 없어서 무대 위에서 자고, 공중화장실에서 세수하고, 개그맨 공채에서도 7번이나 낙방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가슴 뭉클하게 전해 준다. 그는 이 책에서 작은 키가 지금도 콤플렉스지만 키를 탓하기보다는 키 때문에 더 노력한다고 말하고 있다. 새로운 프로그램에 도전하느라 타박상이나 멍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고, 어려운 연기를 한 날에는 몸이 아파서 똑바로 눕지도 못하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 큰 행복이라고 이야기한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꿈을 이룬 또 다른 모범사례로 축구선수 박지성이 있다. 그는 작고 왜소한 데다 발은 평발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일기장에 ‘고달프고 힘이 든다. 다른 사람도 참는데, 내가 못 참으랴. 힘들지만 참아서 목표를 달성하겠다’라고 쓰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고 결국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되었다. 박지성은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다’(중앙북스)에서 절망을 극복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출발이 더디고, 삐끗했다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성취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세운 목표를 향해 얼마나 꾸준히 걸어가느냐에 달렸다’고.오길주 경민대 독서문화콘텐츠과 교수}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크고 화려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쉽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시시하고 하찮은 작은 것들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림책은 우리 주위에 있는 무수한 가치들을 발견하게 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온 세상이 반짝반짝’(이윤우 지음·비룡소)은 마음에 위로와 기쁨을 주는 주변의 반짝이는 것들을 보여준다. 밤중에 고개를 들면 볼 수 있는 작은 별, 텅 빈 길을 비추는 가로등, 이른 새벽 하나둘 나타나는 불빛들, 반짝이는 이슬, 반짝이는 물고기, 엄마 눈 속에서 반짝이는 아이…. 기대하지 않던 선물과 같은 세상의 반짝임을 두세 가지 색으로 보여준다. 직선과 곡선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그림과 운율을 살린 단순한 문장의 리듬감은 그림책이 안내하는 또 다른 세상을 향해 흔쾌히 마음을 열게 한다. 시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1초라는 짧은 시간은 누구의 마음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찰나의 순간이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인 시간이 될 수 있다. ‘단 1초 동안에’(스티브 젠킨스 지음·토토북)는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가 단 1초 동안에 얼마나 다양하고도 많은 일을 하는지 보여준다. 하늘의 제왕 독수리가 1초에 날갯짓을 한 번 하는 동안 벌새는 50번, 호박벌은 200번 날갯짓을 한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짧은 1초의 시간에도 자연은 변화하고 생태계는 살아 움직인다. 아이들은 늘 시간을 시계를 통해서만 감지하지만, 이 그림책은 단 1초라는 짧은 시간부터 100만 년이라는 긴 시간까지 지구 생명체의 다양한 활동과 변화를 보여준다. 1초라는 시간만큼이나 먼지도 작고 하찮게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먼지가 지구 한 바퀴를 돌아요’(윤순창 글·소복이 그림)를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만화 스타일의 먼지 캐릭터를 따라가다 보면 먼지가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막에서 만들어진 먼지는 2주일이면 지구를 한 바퀴 돈다. 바람과 합치면 어마어마한 모래 폭풍이 되어 집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가축을 묻어버리기도 한다. 아프리카나 인도에선 수많은 사람이 오염먼지 때문에 죽어간다. 오염된 먼지는 지구 온도를 높여서 남극과 북극 히말라야만큼 높은 산꼭대기에서 얼음이 빠르게 녹아내리게도 한다. 이런 먼지가 생기는 과정, 먼지가 이동하는 과정, 먼지들이 일으키는 온갖 문제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음을 깨우쳐 준다. 세상이 무엇에 의해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모두 알 수는 없지만 하찮게 여기는 작은 것들이 우리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그림책들이다. 조월례 아동도서 평론가}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이 2012년 최종 후보작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이 놀랐다. 마틴 에이미스, 존 밴빌, 팻 바커 등 쟁쟁한 작가들을 물리치고 신출내기 작가 앨리슨 무어의 ‘등대(The Lighthouse)’가 최종 후보작에 올랐기 때문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인 작가의 데뷔작인 데다 노퍽의 소규모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작품이 최종 후보작에 오른 데 대해 영국 문단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러나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훌륭한 결정을 내린 심사위원들에게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자’라는 평으로 심사위원들을 칭찬했다.(참고로 2012년 맨부커상은 본지 글로벌 북카페 6월 2일자에 소개된 힐러리 맨틀의 ‘시체를 대령하라’에 돌아갔다) ‘등대’의 주인공인 퓨스는 이혼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의 모국인 독일로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여행 중에 갖가지 상처와 아픔을 가진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인연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들을 퍼즐 맞추듯 끼워나간다. 퓨스의 어머니는 퓨스가 아주 어렸을 때 가출했고, 어린 퓨스에게 남겨진 것은 어머니와의 짧은 추억과 제비꽃 향이 나는 등대 모양의 독일제 향수병뿐이었다. 그 직후부터 퓨스는 향기에 이상할 만큼 집착하게 된다. 독일을 여행하던 퓨스에게 예전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게 만드는 것도 바로 단편적 향기들이다. 한편 홀로 남은 아버지는 퓨스에게 냉정하고 난폭하게 굴었고, 이는 퓨스의 전반적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퓨스로 하여금 여자를 무서워하고, 여자 곁에 있으면 뭔가 모자라는 사람처럼 굴게 만든다. 작가 앨리슨 무어는 날카롭고 직설적인 글 솜씨로 퓨스의 굴욕적인 삶(결혼 첫날밤 혼자 잠을 자고,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의 부인과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도하고, 불혹이 다 된 나이에 이웃집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아버지에게 얻어맞는다)을 표현한다. 과연 퓨스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인디펜던트지는 이 소설을 가리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만남-뮤리엘 스파크로 시작하였으나 스티븐 킹으로 끝난다’고 평했다. 향기에 이끌려 과거의 트라우마를 기억해내는 장면은 순수문학적으로 묘사된 반면, 퓨스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벗겨나가는 부분은 스릴러 못지않다는 설명이다. 이 작품은 결국 맨부커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작가의 향후 행보에 대한 큰 기대를 모으며 영국 서점가의 인기작으로 떠올랐다.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

동물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교감을 경험해 본 일이 있나요? 이 책은 ‘재복이’라는 주인공 아이와 ‘태양이’라는 망아지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둘은 똑같이 부모를 잃었고, 외로운 시간을 서로 의지하며 조금씩 커 갑니다. 세상이 조용했다면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따뜻하게 살아갔겠죠. 그런데 시대적 배경이 조선 말기, 일본이 우리 땅을 침략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던 때입니다. 둘이 살던 곳은 구룡포, 일본에서 배를 타고 아주 쉽게 올 수 있는 곳입니다. 게다가 태양이는 조선 군대에서 쓰는 말을 키우는 ‘장기목장’ 소유의 망아지입니다. 당시 이 목장에서 키우는 군마는 힘이 좋아서 일본인들이 탐냈다고 합니다. 재복이는 태양이를 장기목장을 대표할 아름다운 말로 키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 손에서 일하는 말이 되어 버린 태양이는 점점 그 아름다움을 잃어갑니다. 구룡포와 장기목장이 일본인 손에 넘어가니, 재복이와 태양이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도 더는 이 땅에 머물 수 없게 됩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꿋꿋이 살아가려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영일만, 구룡포, 장기목장 등을 배경으로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이야기의 실제 배경을 찾아가 보면 이야기가 한층 더 생생하게 느껴질 것입니다.○독후활동-책 속 배경 따라가 보기1. 이야기 속에 나오는 장소를 간단히 지도로 만들어 본다.2. 실제 장소(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일대)를 인터넷, 구글 지도 등을 확인해 찾아본다. 3. 1과 2를 비교해 여행할 장소와 경로를 계획한다. (구룡포 일본인거리, 목장성, 까꾸리께, 돌문 등은 꼭 살펴보고 오세요. 가끔 ‘목장성길 따라 걷기 행사’를 여러 단체에서 열기도 한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4. 계획한 대로 실제 장소에 가서 중요한 곳들은 사진으로 남긴다.5. 돌아와서는 사진을 바탕으로 책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자신의 책을 만든다.김혜원 어린이도서교육연구가}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흐름출판)이 첫 출발점이었다. 지난해 8월 출간된 ‘마흔에…’는 원래 인문학 서적으로 기획된 손자병법을 40대를 위한 자기계발서로 재구성한 책이었다. 큰 기대 없이 틈새시장을 노렸음에도 1주일 만에 초판이 다 나갔다. 현재까지 20만 부가 팔렸다. 이어 두 달 뒤 출간된 신정근 교수의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1세기북스)도 15만 권이나 팔렸다. 이 두 권이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마흔 살’과 ‘고전’을 엮는 것이 출판계의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올해 교보문고에서 판매된 도서 중 제목에 ‘마흔’이 들어간 책은 모두 42종.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위즈덤하우스)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21세기북스) ‘마흔셋, 묵자를 만나다’(예문) ‘마흔에 다시 읽는 수학’(예인) ‘마흔 인문학을 만나라’(행성:B잎새) ‘마흔 살의 정리법’(이아소)…. 나이 마흔에 공부해야 할 것이 갑자기 많아졌다. ○ 마흔 살의 고전 읽기 “20대에 읽던 손자병법과 40대에 다시 읽는 손자병법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손자병법은 싸움의 전략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도 승부하는 법, 즉 ‘공존의 철학’을 이야기한다.”(‘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사십대라면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철학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묵자를 읽으며 버림으로써 넉넉해지고, 사랑함으로써 성취하는 인생론을 찾아야 한다.”(‘마흔셋, 묵자를 만나다’) 출판계는 지난해 하반기에 일기 시작한 ‘마흔 살 고전 읽기 붐’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2차 베이비부머’로 불리는 30대 후반∼40대 초중반은 가장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이 세대에 대해 출판계는 “직장 다닐 때도 고민이 있으면 책을 사 보는 콘텐츠의 세대”라고 부른다. 교보문고와 YES24에 따르면 40대 독자의 비율이 전체의 25% 이상을 차지해 책을 많이 사 보는 20대나 30대 독자의 수에 밀리지 않는다. 김성수 21세기북스 기획실장은 “이들은 10년 전부터 성공학, 재테크, 경제경영서를 많이 읽어 온 세대이지만, 경제위기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지속되면서 좀더 권위 있는 고전에서 본질적 해답을 찾으려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의 저자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말하는 인간관계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마흔 살 이상의 나이가 필요하다”며 “40대 독자들은 진보적 색채가 강하지만 현실적 감각도 있어 올해 대선에서도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마흔 살의 즐거움 마흔 살을 타깃으로 한 책 중에는 고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처럼 중년 남자의 외로움과 위기를 다룬 에세이도 인기다. 이의수 남성사회문화연구소장의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절묘하게 패러디한 제목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책은 치솟는 물가, 감당하기 어려운 자녀교육비, 각종 스트레스와 질병, 집이 있어도 가난한 하우스푸어로 바뀌어버린 내 집 마련의 꿈 등으로 울어버리고 싶은 40대 가장을 위로한다. ‘마흔에 읽는 동의보감’의 저자인 한의사 방성혜 씨는 “허준도 ‘동의보감’에서 마흔은 본격적으로 몸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규정했다”며 “생(生)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노병사(老病死)는 내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마흔 살 이후에는 마음의 건강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한다. 독일의 40대 기자인 티투스 아르누가 쓴 ‘남자는 헛발질이 필요해’(뜨인돌)는 남자들이 왜 불혹의 나이에 기괴한 짓을 하기 시작하는지 그 이유를 유쾌하게 설명한다. 갑자기 보디빌딩을 시작하고, 두 층만 계단으로 올라가도 헉헉대는 주제에 8000m 봉우리 정복을 계획하고, 마라톤을 넘어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신청하고…. 저자의 해석은 이렇다. “남자들이 불혹의 나이에 기괴한 도전을 시작하는 것은, 아직은 고집불통의 늙다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어 중년에 찾아든 위기를 단시간에 겪어 내려는 나름의 몸부림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0여 년 전 몽골을 방문했다. 한 목동이 내게 “저기에 말을 탄 사람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평선 끝까지 샅샅이 훑어봤지만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두 시간쯤 흘렀을까. 그가 말했던 사람이 정말로 나타났다. 몽골인의 시력은 2.0이 넘는다더니 과연 대단했다. 그는 단순히 지평선 끝에서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을 알아본 것이 아니라 두 시간 뒤의 미래를 내다본 것이다. 말을 탄 사람이 칭기즈칸 시대의 전사였다면 나는 꼼짝없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속도가 공간을 지배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거꾸로 공간을 장악하면 시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SBS ‘런닝맨’에는 ‘시간을 지배하는 자’, ‘공간을 지배하는 자’와 같은 초능력 캐릭터가 나온다. 문화 분야에도 이런 도구가 있다. 바로 번역이다. 국내에는 번역사업을 지원하는 두 개의 공공기관이 있다. 한국문학을 번역해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문학번역원(KLTI)과 우리의 고전작품을 한글로 번역하는 한국고전번역원(ITKC)이다. 전자가 우리 문학의 ‘공간적 확장’을 지원한다면, 후자는 우리 고전의 ‘시간적 영속성’을 가능케 하는 기관이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중국 작가 모옌으로 발표되자 일부 미국 언론은 “번역가 하워드 골드블랫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썼다. 미국 노터데임대 중문과 교수인 골드블랫은 1970년대부터 모옌의 ‘붉은 수수밭’, ‘술의 나라’, ‘생사피로’ 등을 비롯해 중국 현대 작가의 작품을 번역해 서방에 소개해 온 독보적 존재였다. 그는 번역에서 양보다 질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다. 그는 “중국어는 잘 모르면 작가에게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영어 표현”이라고 말한다. 그는 “번역가가 최우선시할 대상은 작가가 아닌 독자”라고 선을 그었고, 모옌도 “번역된 작품은 더는 작가가 아닌 번역자의 것”이라고 화답했다. #요즘 나는 한국고전번역원이 한글로 번역한 ‘고전종합DB’의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가을, 한강 등 관심 키워드만 치면 역사 문헌이 줄줄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계기로 찾아보니 신라시대 최치원이 쓴 ‘강남녀(江南女)’란 시가 튀어나왔다. “강남의 풍속은 예의범절이 없어서/딸을 기를 때도 오냐오냐 귀엽게만/화장하고는 둥둥 퉁기는 가야금 줄/배우는 노래도 남녀의 사랑을 읊은 유행가가 대부분/(중략)/그러고는 하루 종일 베틀과 씨름하는/이웃집 여인을 비웃으면서 하는 말/베를 짜느라고 죽을 고생한다마는/정작 비단옷은 너에게 가지 않는다고,” 이 시에서 강남은 중국 양쯔 강 남쪽 지방이지만, 강남 여자에 대한 풍자는 요즘과 통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또한 가난한 여자가 자신이 짠 비단옷을 입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카를 마르크스보다 1000년이나 앞서 ‘노동소외론’(생산물로부터의 소외)를 설파한 것 같아 흥미롭다. #한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우선 좋은 콘텐츠를 창작하고, 해외에 적극 알려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이 수천 년간 쌓아 온 지식문화의 보고인 고전이 한문으로 돼 있어 제대로 창작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조선왕조실록은 완역했지만 승정원일기는 9.6%, 일성록은 14.6%밖에 번역해 내지 못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해외에 번역지원한 문학작품은 800여 종에 불과하다. 일본의 2만250종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두 기관의 올해 예산은 각각 127억 원, 78억 원에 불과하다. 내년에 4조 원대에 육박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적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카메라가 등장하고 나서 세밀화가 사라질 줄 알았어요. 카메라 렌즈보다 더 정확하게 식물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세밀화가 살아남은 비결입니다.” 40년 넘게 식물원예학을 연구해 온 윤경은 서울여대 명예교수(69·사진)가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야생화의 생태와 약효, 재배법을 담아 책 ‘세밀화로 보는 한국의 야생화’(김영사)로 펴냈다. 서울여대 총장을 지낸 그가 정년퇴임 후 경기 이천 8264m²(약 2500평) 규모의 농장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고 관찰하며 기록해 온 결과물이다. 잡초와 돌투성이였던 불모지는 그동안 꽃과 채소, 포도원과 온실이 있는 작은 낙원으로 바뀌었다. 사시사철 다른 꽃이 피어나는 그의 농장엔 구절초와 벌개미취가 한창이다. “식물학을 연구하면서 독일, 영국 등에서 펴낸 세밀화 도감을 많이 봐 왔어요. 1980년대 초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갔더니 복도에서 한 여성이 직접 그린 꽃그림을 팔고 있더군요. 부러워서 그 뒤 저도 세밀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윤 교수는 세밀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관찰력’을 꼽는다. 세밀화를 그리다 보면 평소에 안 보이던 꽃잎의 방향, 겨울눈 모양 하나하나까지 새롭게 보인다는 설명이다. 그는 “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세밀화를 배우는 것이 필수”라고 말했다. “카메라는 초점이 한 곳입니다. 접사로 촬영하다 보면 한 부분만 잘 보이고, 다른 부분은 흐릿하게 나와요. 또한 꽃잎 속의 수술은 안 보이는 경우도 많죠. 반면 세밀화는 꽃의 속 부분 단면도까지도 보여줄 수 있고, 땅속의 뿌리도 그려 넣을 수 있어요. 요즘에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창조적인 세밀화가 유행입니다.” 그는 2007년 11월 세밀화를 그리는 사람들과 한국식물화가협회를 창립했다. 회원 수는 200명. ‘한국의 야생화’에는 협회 회원들이 함께 그린 야생화 세밀화 그림 100컷이 나온다. “일반인들도 백화점이나 대학 부설 아카데미에서 세밀화를 배우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세밀화는 수채 색연필만 있으면 집안, 공원 등 어디에서나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우울증에 시달리던 주부들도 그림에 몰두하다 보면 정서적 안정을 찾게 된다고 말해요.” 국내 세밀화의 유행은 1990년대 말 ‘보리어린이 동식물도감’ 시리즈에서 시작됐다. 갯벌도감, 나무도감, 곤충도감 등을 펴낸 보리출판사는 최근에는 ‘약초도감’을 발간했다. 2002년 감옥에서 길렀던 야생초를 그린 엽서를 모아 펴냈던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도솔)도 감성적인 글과 예술성 높은 세밀화로 큰 인기를 끌었다. 윤 교수는 “어린이들도 세밀화를 배우면 자연에 대한 관찰력과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식물 중에는 음지에서는 정말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데 양지에 옮겨 심으면 비실비실해지는 것들이 있어요. 어린아이가 크는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지에 어울리는지, 양지에 어울리는지 배려하지 않고 부모 마음대로 끌고 나가다 아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꽃과 나무를 관찰하다 보면 우리의 인생살이를 배우게 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세종 때에는 고차 방정식(方程式負)을 풀고, 세제곱근을 구하는 방법도 알았는데, 요즘 삼사(三司)의 사람들은 곱하고 나누는 법(乘除法)만 조잡하게 익힐 뿐이니 수학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라.” (세조실록 6년 6월 16일) 이장주 성균관대 수학교육과 겸임교수(55)는 올해 7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수학교육대회(ICME)를 앞두고 한국 고유의 수학 전통을 외국 참가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인터넷 고전종합DB서비스(db.itkc.or.kr)에서 ‘수학’ ‘산학’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니 수학 관련 문헌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이 교수는 여기서 ‘조선수학 24개 장면’을 뽑아내 8폭 병풍으로 만들어 국제수학교육대회장 입구에 전시했다. 참가한 외국인 교수들은 세종 대왕이 수학을 배웠다는 내용과 산학자 홍정하(1684∼?)가 그린 파스칼의 삼각형과 비슷한 그림 앞에서 “원더풀!”을 외치며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동문선, 반계수록, 지봉유설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쓰인 우리 고전은 문화 콘텐츠의 보고(寶庫)이지만 한문으로 돼 있어 전문 연구자들만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1년 1월 번역원이 고전을 한글로 번역해 고전종합DB서비스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한문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쉽게 고전을 활용해 연구나 창작 활동에 이용하고 있다. TV 드라마 작가로 활동해온 김시연 씨는 6년간 조선 철종에 대한 자료를 섭렵한 끝에 소설 ‘이몽(異夢·은행나무)’을 펴냈다. 그는 “고문헌을 직접 읽어 보니 철종은 우리가 알고 있던 바보 멍청이거나 무능한 왕이 아니었다”며 “5개월간 계속된 왕의 장례식 장면 등을 생생히 재연하는 데 자료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남현동 주민자치센터 서예강사인 신춘희 씨(51)는 강의 시간에 수강생들과 함께 고전종합DB에서 ‘효(孝)’나 ‘학(學)’ 등으로 검색되는 좋은 문장을 찾아내 쓴다. “예전에는 중국 고전에서 따온 문장으로 작품 활동을 했어요. 당연히 우리 정서와 맞지 않고, 식상하기까지 한 문구가 많았죠. 요즘은 율곡 이이의 ‘학교모범’, 이인로의 ‘화귀거래사’ 등 우리 고전 속에서 발견해낸 참신한 문장으로 작품 활동을 합니다. 그 덕분에 올해 수강생들의 작품 20점이 서울메트로미술대전 등 각종 서예대전에서 수상했습니다.” 한국식품연구원의 권대영 박사와 부인 정경란 씨(한국학중앙연구원)는 ‘고추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통설에 의문을 품고 한국 고추의 유래를 알기 위해 고전종합DB를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부부는 일본에서 들여온 ‘왜개자’는 한국 고추가 아니며, 고추의 어원은 우리말 ‘고쵸’로 삼국시대 문헌에도 나온다는 내용을 담은 ‘고추이야기’(효일)를 지난해 출간했다. 수필가 이은영 씨(51)는 생활 속 지혜를 담은 수필을 쓸 때면 늘 고전종합DB를 활용한다. 그는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나온 응급 처치법을 인용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작은 건강법’이란 수필을 쓰고, ‘모기’를 주제로 한 글에 다산 정약용의 시 ‘증문(憎蚊)’을 끌어다 썼다. 이동환 한국고전번역원장은 “최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승정원일기를 토대로 제작됐듯 고전은 캐낼수록 빛나는 우리 지식문화의 화수분”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문학 오래된 뿔 1, 2(고광률 지음·은행나무)=1980년 5·18민주화운동부터 30년 넘게 달음박질한 한국 사회의 갈등과 모순적 모습을 국회의원, 조폭, 기자, 기업인 등 다채로운 인물들을 통해 퍼즐 맞추듯 그려낸다. 각 권 1만2000원. 땅거미가 질 때까지 기다려(생 박 지음·문학동네)=엄마를 잃은 슬픔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열여섯 소년 새뮤얼. 그는 외딴집에서 기괴한 형상을 한 세 쌍둥이를 본 뒤 삶과 죽음, 가학과 피학에 대한 번민에 휩싸인다. 1만2000원.○ 인문·경제 문명 기행 내 안의 이집트(강인숙 지음·마음의 숲)=건국대 명예교수이자 영인문학관 관장인 저자가 4년 동안의 현지답사와 자료조사를 토대로 이집트 문명의 다양한 면모를 들여다본다. “공정함과 정의와 아름다움이 의미를 갖고 있던 나라.” 저자가 본 이집트의 모습이다. 1만5000원. 유인호 평전(조용래 지음·인물과사상사)=민중의 삶과 현장에 초점을 맞추며 독재정권이 낳은 고도성장을 비판한 민중경제학자 유인호(1929∼1992)의 삶을 담은 평전. 2만 원. 불굴혼 박정희(고정일 지음·동서문화사)=의식혁명, 경제발전, 조국근대화, 핵개발, 민주주의, 조국통일이라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국가중흥 마스터플랜을 실천해간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를 총정리했다. 총 6권. 각 권 1만5000원. 시진핑(가오샤오 지음·삼호미디어)=차기 중국 지도자로 꼽히는 시진핑 국가 부주석의 삶을 통해 중국의 정치현대사를 정리했다. 2만 원.○ 실용 기타 최선의 결정은 어떻게 내려지는가(토머스 대븐포트 외 지음·프리뷰)=‘중요한 결정은 지도자 한 명이 아니라 조직에 맡기라’고 역설한다. 학교, 병원, 기업 등의 사례 12가지를 소개한다. 1만5800원. 국회에서 바라본 미국의회(임재주 지음·한울아카데미)=국회 사무처에서 20년 넘게 일한 저자가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3년간 파견근무를 하며 살펴본 미국 의회의 생생한 모습. 3만6000원. 인터넷, 그 길을 묻다(한국정보법학회 지음·중앙북스)=대한민국 인터넷 도입 30년을 계기로 인터넷의 과거 현재 미래를 진단한다. 법학 언론학 경제학 경영학 등 한국정보법학회의 16년간의 융합연구를 집대성했다. 3만6000원.}

올여름 동북아는 일본의 영토분쟁 ‘시리즈’로 뜨거웠다. 7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의 쿠릴열도 방문,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9월 일본 정부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국유화 조치 이후 벌어진 중국의 대규모 반일 시위…. 일본 베테랑 외교관 출신인 저자가 일본의 영토분쟁에 대한 해법을 책에 담았다.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센카쿠열도, 독도, 쿠릴열도 분쟁에 관한 일본인의 감각, 계산, 전략을 소상히 알 수 있어 한국인도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 저자는 “일본인은 영토문제에 대해 일본의 입장만 알 뿐 상대방이나 관련 국가의 견해를 너무 모른다”고 일침을 놓는다. “1870년대 이전에 센카쿠열도는 명백하게 일본의 영토가 아니었다고 설명하면 일본인들은 대부분 깜짝 놀란다. 또한 일본인은 독도, 센카쿠열도, 쿠릴열도를 놓고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미일안보조약으로 미군이 나서 싸워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절대 그럴 일 없다.” 1945년 7월 26일 일본이 수락한 포츠담선언에 따르면 ‘일본국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와 우리(연합국)가 결정한 기타 도서로 국한한다’로 돼 있다. 그는 2008년 7월 미국의 지명위원회가 독도를 한국령으로 표기한 데 대해 일본이 그냥 넘어간 것은 ‘큰 실수’였다고 썼다. “당시 방한을 앞두고 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검토를 지시해 국적 표기가 없던 독도를 한국령으로 표기했다. 미국의 판단은 독도 귀속에 큰 영향을 미친다. 포츠담선언에서 일본의 영토는 4개 본섬 이외의 ‘우리(연합국)가 결정한 기타 도서지역’이라고 돼 있다. 여기서 ‘우리’의 중심은 미국이다. 미국이 독도를 일본령이 아니고 한국령이라 한다면, 그것은 일본령이 될 수 없다.” 최근 동북아의 영토분쟁이 격화된 현상은 ‘잃어버린 20년’의 상실감에 젖어 있는 일본과 경제력 및 군사력에서 떠오르는 중국의 충돌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이 책의 한계는 분명하다. 저자가 일본의 국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외교관이기 때문이다. 그는 독도에 대해 한국이 주장할 근거가 많다고는 하지만, 선뜻 돌려주자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또한 센카쿠, 독도, 쿠릴열도 문제를 모두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고 싶다는 일본의 전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독일의 나치 극복과 영토문제 해결에서 배우자’는 내용이다. 일본처럼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막대한 영토를 잃었다. 동부의 11.2km²에 이르는 땅을 폴란드에 넘겨주어야 했고 알자스로렌 지방은 프랑스에, 항만도시 칼리닌그라드는 소련에 할양했다. 그러나 독일은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빼앗긴 것을 유럽 공동 소유로 만드는 제도를 구축해나갔다. 알자스로렌의 중심지인 스트라스부르에는 유럽의회의 본부가 설치됐다. 오랫동안 독-프랑스 간 전쟁의 씨앗이었던 루르지방의 지하자원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가 관리하게 됐으며,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유럽연합(EU)으로 발전했다. 저자는 “독일은 ‘영토수호’라는 전통적 목표 대신 ‘영향력 확대’라는 길을 택했다”며 “이는 독일이 유럽연합을 이끄는 최강대국이 된 비결”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일본의 영토분쟁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대한 전환이 없다면 지구상 최대 경제블록으로 꼽히는 ‘동북아 공동체’의 탄생은 요원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