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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7년에 사망한 마키아벨리는 죽은 지 40년쯤 지났을 때부터 이미 ‘공공의 적’으로 규정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권모술수와 이중 전략의 미덕을 찬양한 ‘악의 교사’로 규정했고, 독재자를 위한 지침서를 쓴 사악한 정치 이론가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정치공학적 시각이나 처세술 책으로 바라본 기존의 편견을 걷어낼 것을 주문한다. 그는 10여 년간 마키아벨리의 수많은 저작과 편지를 입체적으로 연구한 끝에 마키아벨리의 역사적, 인문학적 면모를 새롭게 재해석해냈다. 마키아벨리가 “철저하게 약자의 시선으로 권력의 속성을 파헤치고, 약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려 했던 ‘약자들의 수호성자’였다”는 시각이다. 그는 우선 마키아벨리의 삶 자체가 ‘마키아벨리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마키아벨리의 아버지는 평생 가난했던 ‘스페치오(세금미납자)’였다. 그도 늘 가난에 쪼들렸으며, 공직에서 해고당할까 두려워했고, 공직에서 파면된 뒤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했으며, 실업자로 무려 15년 동안 빈둥거리는 삶을 살았던 불쌍한 인물이었다. 마키아벨리가 외교정책을 총괄했던 피렌체 공화국은 이탈리아에서도 최약체국이었다. 프랑스 샤를 8세의 침공 때 가장 먼저 항복을 선언했던 피렌체는 체사레 보르자(1475∼1507)와 교황 율리우스 2세(1443∼1513)의 이탈리아 정복전쟁 당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말년에는 신성로마제국, 스페인 군대의 침략도 목격해야 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의 인생 최악의 시기에 쓰였다. 1512년 피렌체 공화국이 무너지고 메디치가가 복귀하면서 공직에서 해임된 그는 투옥돼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이후 15년간 실업자로 은둔 생활을 하면서 낙심과 절망 속에서도 ‘군주론’ ‘로마사 논고’ ‘전쟁의 기술’ 같은 명저를 남겼다. ‘군주론’은 “군주란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 편하다” “군주는 사자의 사나움뿐 아니라 여우의 교활함도 갖춰야 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오해를 받아 왔다. 그러나 이는 분열된 이탈리아의 소국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법을 역설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말년의 마키아벨리는 청년들에게 ‘로마사’ 등 고전을 가르치고, 약자들을 응원하는 ‘만드라골라’라는 코미디 작품을 써 대성공한다. 저자는 “마키아벨리는 약자들에게 ‘더이상 당하고 살지 마라’며 스스로의 힘을 키워 살아남고, 희망을 갖는 법을 가르친 인문학자”라고 평가했다. 연세대 신학과 교수인 저자는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가의 이야기를 다룬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르네상스 창조경영’ 등의 책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에도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집, 피렌체 시뇨리아 정청의 집무실, 마키아벨리가 외교여행을 떠났던 프랑스, 로마냐 지역 등을 직접 답사해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어 흥미를 더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 책은 그렇게 작은 책이 아닙니다. 우선 서가 여기저기에 앉은 동물들이 저마다 책을 한 권씩 읽거나 찾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요. 표지를 열고 책장을 넘기면 원래 책보다 작은 크기의 속표지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 작은 책을 펼쳐 봐.’ 자, 펼쳐보세요. 그 장을 펼치면 그보다 작은 종이가, 그 다음 장에는 또 그보다 작은 종이가 반복해서 나온답니다. 무당벌레는 개구리가 나오는 초록색 그림책을 읽습니다. 개구리는 주황색 그림책에 실린 토끼 이야기를, 토끼는 노란 꿀색 곰 이야기를 읽어요. 아이가 책을 ‘읽게’ 되는 맨 처음 함께 반복해서 읽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글을 배우지 않고 학교에 가는 어린이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글자는 알지만 문맥을 이해하기엔 조금 서툰 1학년 아이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제각기 크기가 다른 색색의 책장을 넘기며 동물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이유도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독후활동 ‘내 작은 책을 펼쳐 봐’준비물: 8절 도화지, 사인펜, 색연필, 크레파스 등 필기도구, 색종이(둥근 색종이도 가능), 풀, 가위, 스테이플러1. 읽은 책을 잘 살펴보고 준비한 색종이의 색깔과 크기에 맞춰 동물이나 사물의 배열 순서를 정한다.2. 색종이 중 제일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까지 순서대로 배열한다.3. 색종이 가운데를 잘 맞춰 반으로 접고 배열한 순서대로 끼워 스테이플러로 고정한다.4. 표지가 될 8절 도화지를 반으로 접어 3의 크기보다 조금 크게 잘라낸다.5. 책을 가로로 만들지, 세로로 만들지 정한다.6. 1에서 정한 순서에 맞춰 책장을 하나씩 펼치며 이야기를 만들어 적어 나간다.7. 책 제목은 ‘내 작은 책을 펼쳐 봐’로 쓰고, 표지를 꾸민다.8. 또 다른 그림책은 어떤 것을 펼쳐 볼지, 우리 집 책장을 살펴보거나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찾아본다.김혜진 어린이도서교육연구가}

유명 도서의 특별판은 고급 양장본으로 표지만 바뀔 뿐 내용은 별 차이가 없어 가격만 비싼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 발행된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이방인’ 출간 70주년 기념 특별판은 세계적인 일러스트 화가가 재해석한 ‘그래픽 노블’로 눈길을 끌고 있다. ‘일러스트 이방인’(책세상)은 1942년 출간 후 750만 부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이방인’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가 새롭게 편집했다. 카뮈 탄생 100주년, ‘이방인’ 출간 70주년을 기념해 나온 이 책은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 호세 무뇨스가 일러스트 작업에 참여했다.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인 무뇨스는 카뮈의 텍스트를 형상화하기 위해 두 차례나 알제리를 방문했으며, 흑과 백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숨 막히는 부조리로 가득 찬 실존주의 소설 속 현실을 재현해 냈다. 이 책의 백미는 작열하는 태양을 향해 겨누어진 권총과 그것을 쥔 주인공 뫼르소의 손이 알제리 건축과 미술작품 특유의 모자이크 양식으로 표현된 그림이다. 책은 기존 책의 두 배 크기의 대형 판형(가로 18.8cm, 세로 25.7cm)이다. 날카롭고 묵직한 70여 점의 삽화가 작가의 건조한 문체와 어우러져 긴장감을 더한다. 텍스트로만 읽던 ‘이방인’과는 시각적 배열과 물리적 공간감이 다른 편집본으로 소장용으로 인기가 높을 법하다. 책세상 김지연 편집팀장은 “하드보일드풍의 선 굵은 그림체 때문에 남성 독자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이 책은 발간 1주일 만에 초판 2000부에 대한 추가주문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문학동네는 스테디셀러인 ‘꼬마 니콜라’ 1∼5권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합본호(855쪽) 초판 2000부를 ‘특별 한정판’으로 내놓았다. 르네 고시니의 글과 일러스트레이터 장자크 상페의 그림이 어우러진 ‘꼬마 니콜라’는 1959년 벨기에 만화잡지 ‘필로트’에 연재되면서 대성공을 거두었던 작품. 하드케이스로 선물처럼 포장돼 있는 ‘꼬마 니콜라’ 합본호에는 장자크 상페의 일러스트가 곳곳에 그려져 있는 양장노트 한 권도 함께 들어 있다. 줄이 없는 노트는 상페의 그림처럼 주변의 인물이나 사물을 스케치할 수 있고, 메모를 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문학동네 안나영 책임편집자는 “‘꼬마 니콜라’의 오랜 팬들도 합본호와 노트를 구하기 위해 다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출판계의 불황 속에서도 잘 만든 ‘한정 스페셜 에디션’은 수집가 소장용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07년 11월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암병동 대기실. 췌장암 말기 환자인 어머니(73)의 화학치료에 동행한 중년의 아들(50)은 긴장된 마음을 달래려고 어머니에게 묻는다. “요즘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 어머니는 퓰리처상 수상작인 윌리스 스테그너의 ‘안전함을 향하여’를 읽고 있다고 답한다. 하이퍼론 출판사 편집장인 아들은 ‘읽지도 않은 책을 읽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장기인 직업을 가졌지만, 어머니에게 그 책을 아직 읽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집에 돌아와 읽은 이 책은 초반부터 주인공이 암으로 죽어가는 소설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날 이후 아들과 어머니는 병원 대기실에서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책을 추천하고, 함께 읽은 책에 대해 토론을 했다. 회원이 단 둘뿐인,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북클럽이 탄생한 것이다. 이 책은 암에 걸려 죽어가는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나눈 대화와 용서, 화해의 기록이다. 신비스러운 책의 힘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혼돈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 아름다운 가치를 발견하고,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췌장암 말기 환자의 평균 생존수명은 6개월. 어머니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2년 가까이 살아남았다. 이 기간에 두 사람은 거의 50권에 이르는 고전 시 소설 희곡 미스터리 논픽션 등 광범위한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처럼 얇은 책을 골라 읽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마이클 토머스의 ‘추락하는 남자’ 같은 두툼한 소설도 읽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 결코 아프지 않은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 어머니와 아들일 뿐이었다. 처음엔 얇은 책을 읽다가 긴 책을 읽기로 했다는 것은 어쩌면 희망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장편소설을 읽으려면 우리 앞에 남아 있는 시간이 아주 길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어머니와의 북클럽 대화에서 가장 꺼렸던 주제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책은 어머니가 죽음으로 향하는 여행을 준비할 수 있게 도왔고, 아들에겐 당신이 없는 삶을 꾸려갈 채비를 갖출 수 있게끔 이끌어주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책 한 권을 다 읽어냈다는 데서 살아있음을 확인했고, 아들은 다음에 함께 읽을 책을 고르면서 삶의 희망을 발견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들은 어머니의 침대에서 메리 와일더 타일스턴의 책 ‘하루하루 살아가는 힘’을 발견한다. 1884년 출간된 이 책은 표지가 떨어지고, 곳곳에 얼룩이 지고 누렇게 퇴색돼 있었다. 아들은 “읽기는 실천하기의 반대말이 아니란다. 그건 죽음의 반대말이야”라는 어머니의 말을 기억해낸다. 어머니인 메리 앤 슈발브는 젊은 시절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하버드대 입학처장, 뉴욕 돌턴스쿨의 대학 진학 전문지도교사를 역임한 교육자였으며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미얀마 등 전 세계 27개국을 돌며 난민구조활동을 한 맹렬 여성이었다. 어머니는 병상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 도서관을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탈레반에 억류된 뉴욕타임스 기자가 무사히 풀려나도록 기도하길 멈추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화학치료를 받는 암환자가 죽는 날까지 책을 읽고 토론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무의미한 연명치료와 과도한 슬픔 끝에 맞는 허망한 죽음에 비하면 부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해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 책을 읽는 소중한 기회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소통할 책이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찾아보면 분명히 있을 것이다. 7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해 초중생 자녀가 읽어드릴 수 있는 ‘어른을 위한 동화책’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저자는 “우리가 읽는 각각의 책은 늘 삶의 마지막 선정 도서가 될지 모르며, 각각의 토론 역시 마지막 대화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내 인생의 마지막 북클럽’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새해가 왔습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한국을 둘러싼 나라들의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일본은 일본대로 왜곡된 애국심으로 우리에게 상처를 줍니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미명 아래 고구려나 발해 같은 우리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리랑이나 씨름조차도 자신들의 문화유산이라고 우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사건들이 신문에 나면, “나는 학생이니까 몰라도 돼” 하면서 외면하고 있지는 않나요? 우선 발해가 배경인 동화를 읽으며 관심을 가지기 바랍니다. 이 책은 발해의 수도인 상경성에서 커다란 상단을 이끌며 무역을 하는 ‘홍라’의 이야기입니다. 상단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목숨을 잃을 위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좌절하고 비틀거리면서도 홍라는 일어납니다. 자존심 때문입니다. 과연 자존심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합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옛사람들의 행동반경에 놀라게 됩니다. 말을 타거나 걷거나 하는 방법만으로 로마에서 서라벌까지 가봤다는 이야기는 입이 딱 벌어지게 합니다. 화석화된 역사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숨소리가 느껴지는 책입니다.○ 독후 활동: 발해 발견하기 준비물: 발해를 다룬 책, 종이, 필기도구대상 학년: 초등 고학년, 중학생방법 1. 책 뒤편에 실려 있는 발해 지도와 현재 세계지도를 비교해 그리고 홍라가 이동한 도시들을 찾아 표시한다. 가능하면 이동한 거리를 계산해 본다. ‘생활사박물관 6’(사계절) 참고.방법 2. 주변 박물관에서 발해 유물을 찾아본다. 특히 책 181쪽에 등장하는 불상을 찾아본다. 본 것 중에 가장 맘에 드는 유물 하나를 세밀화로 그린다. 발해 유물이 있는 대표적인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속초시립박물관이다.방법 3. 신문과 인터넷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에 관한 자료를 찾아 읽어 본다. 김혜원 어린이도서교육연구가}

‘문 옆의 악어(The Crocodile by the Door)’를 쓴 셀리나 기네스는 기네스 맥주로 잘 알려진 기네스 가(家)의 후손이다. 셀리나의 가족은 대대로 더블린 외곽에 있는 티브래든 저택과 주변의 120에이커(약 48만6000m²)에 이르는 땅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왔다. 작가 또한 어린 시절 티브래든에서 할머니및 삼촌 찰스와 함께 생활했던 즐거운 추억을 갖고 있었다. 옥스퍼드대에 진학한 이후 줄곧 학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04년 어느 날 중병에 걸린 삼촌 찰스에게서 연락을 받는다. 삼촌은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그에게 농장을 물려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아일랜드의 경제가 활성화되고 부동산 붐이 일면서 땅들은 모두 부동산개발업자들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농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이 없던 그와 남편에게도 수많은 부동산 개발업자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는 땅을 팔라고 회유하는 부동산업자들의 제의를 모두 물리치고 농사꾼이 되기로 결심한다. 농장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는 평범한 학자였던 셀리나와 남편 콜린 앞에는 무수히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부는 삼촌이 오랜 기간 병으로 농장을 돌보지 못해 다 쓰러져가는 농장을 복구해야 했고, 유럽연합의 농업 및 환경 정책을 공부해야 했다. 인터넷 같은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나이 많고 고지식한 고용인들을 설득하는 지루한 작업도 해야 했다. 부유한 기네스 가문의 후손이 왜 고루한 농사일 따위에 신경을 써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기네스 가문의 직계가 아닌 방계에 해당하는 그의 가족에게는 이 거대한 토지 외에 어떠한 재산도 없었다. 이쯤 되면 끊임없는 부동산업자들의 구애에 넘어갈 법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땅에 애착을 갖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남편과 끈끈한 애정을, 주위의 농사꾼들과는 진한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서 ‘악어’란 탐나는 땅을 끊임없이 노리는 부동산개발업자들, ‘문’이란 티브래든 저택을 뜻한다. 그는 결국 탐욕스러운 악어들로부터 땅을 지키는 데 성공했고, 이 작품은 승리의 회고록이다. 지난해 코스타 상 심사위원들은 “젊은 나이에 다 쓰러져가는 오래된 집을 상속받은 여인의 감동적인 분투기”라며 만장일치로 이 작품을 수상 후보로 추천했다. 2012년 코스타 상 수상작은 이달 29일 발표된다.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

《2008년 가을, 미국 출장길에 들렀던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IT 개발자로 일하던 정진호 씨(42)의 눈에 한 외국인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는 창밖을 보며 작은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정 씨는 그림을 슬쩍 훔쳐보았다. 이륙을 준비 중인 비행기의 모습이었다. ‘아, 부럽다’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휘감았다.》출장길 공항에서 그를 설레게 했던 예술가를 만나고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회사 근처 대형서점에 들렀다가 ‘그림 그리기’에 관한 책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었다. 초등학교 미술시간 이후로 미술을 배운 적도 없었던 그였다. 그런데 불혹을 넘긴 나이에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불쑥 찾아왔다. “왜 그리기 시작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을 못하겠어요. 화가가 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입시를 위한 그림도 아니에요. 그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잊었던 나를 찾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깨운 것 같습니다.” 2011년 봄, 그는 몰스킨 노트와 펜 한 자루를 사서 무작정 그리기 시작했다. 책상 주변에 있는 컵 전화기 휴대전화 지갑 같은 작은 사물을 스케치했다. 30분 이내로 그릴 수 있는 A5용지 크기(148×210mm)의 그림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미술학원을 다녔던 아들이 그에게 붓질하는 법, 물감 섞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는 1년 반 동안 ‘매일매일 그리기’에 도전했다. 출퇴근길 지하철, 버스 안에서, 카페에 앉아 그림을 그렸고, 연필과 펜으로 시작한 그림은 색연필, 수채화로 발전해갔다. 아들과 함께 ‘서울드로잉’ 수업을 받으며 도심 곳곳의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책 ‘철들고 그림 그리다’(한빛미디어)에는 그가 좌충우돌 그림을 그리며 일상의 행복을 깨달았던 기록이 담겨 있다. “누구나 어릴 때는 종이만 주면 본능대로 맘껏 그림을 그리죠. 그런데 점점 자라면서 남의 눈을 의식해 그림의 즐거움을 잃어버려요. 매일 아침 한 시간 일찍 출근해 그림을 그리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지루했던 내 삶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린 지 1년 반 만에 책을 썼고, 서울 명동에 있는 성바오로딸서원 서점 내 갤러리에서 수채화 60여 점으로 개인전도 열었다. 전시된 작품 중 절반이 작품당 5만∼7만 원에 팔렸다. 정 씨는 “내 그림이 좋아서 집에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출장길 공항에서 마음을 설레게 했던 비행기 그림을 자신도 완성했을 때였다. 이 그림은 그의 지인이 홍익대 앞에 오픈한 막걸리 레스토랑에 대형벽화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레스토랑 주인이 막걸리 집과 공항그림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며 평생 술과 안주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는 식사권을 그림값으로 주었다”고 했다.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 ‘덕의 기술’과 페이스북 ‘매일매일 그리기’ 사이트에는 그처럼 그림을 따라 그리기 시작한 수많은 사람의 사연이 올라온다. “철들어 시작한 그리기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수단입니다.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을 뜻한다는 것은 알아도, 세 잎 클로버가 ‘행복’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행운은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지만 행복은 스스로 직접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최근 발간된 ‘탈냉전사의 인식’(한길사)은 현재 우리 사회의 기원으로 1990년대 초반 옛 소련 해체를 전후로 시작된 ‘탈냉전’과 ‘세계화’를 주목했다. 필자들은 냉전 종식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와 글로벌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했고, 사회적으로는 개인주의가 자리 잡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탈냉전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 내부의 이념 대결은 더욱 증폭됐다. 진보와 보수이념이 다양하게 진화하고 세분됐다. 특히 이번 대선은 “좌우 이념 진영 간 총력전”(장훈 중앙대 교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대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탈냉전 시대의 이념 대결 양상은 문화이슈에서도 첨예하게 부각됐다. 과거사 인식, 언론정책, 예술정책 등을 놓고 전면전을 벌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단체의 낙하산 인사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정권 실세의 누나, 형수가 예술단체장이 되는가 하면, 전 정권이 임명한 문화계 ‘코드 인사’를 끌어내려다 ‘역(逆)코드 인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박근혜, 문재인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성명이 잇따랐다. 공연예술계만 보더라도 박명성 신시뮤지컬컴퍼니 대표가 박근혜 캠프에서 문화특보로 활약했고, 연출가 이윤택, 기국서, 채승훈 씨 등 연극인 50여 명은 문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또한 캠프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많은 소설가, 시인, 배우 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치인들보다 더욱 선동적인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렇듯 문화계 인사들이 선거에 목숨을 걸게 된 것은 ‘문화권력’의 패권주의 때문이다. 최근 10여 년간 정권에 따라 특정 성향의 예술인들이 점령군처럼 각종 인사와 지원금을 독차지해왔기 때문이다. 반면 낙선한 후보 측에 섰던 예술인들은 창작지원금에서 소외돼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박근혜 당선인이 비판했던 ‘무늬만 공모제’의 폐해는 문화계에서 가장 심했다. 문화단체장 인사 때마다 전문성과 예술성보다는, 정권 실세와의 인맥이 화제로 떠오르곤 했다. 학문에 관심 없이 선거판에 기웃거리는 교수를 ‘폴리페서(polifessor)’로 부르듯이, 예술계에도 창작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권에 줄을 대 문화권력을 장악하려는 ‘폴리아티스트(poliartist)’가 판을 쳤다. 이제 문화계에서 정치 갈등의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 박 당선인이 롤 모델로 꼽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관용과 통합’의 상징이었다. 그는 개신교(영국 성공회)의 도움으로 여왕에 올랐지만, 자신을 탄압했던 가톨릭에 대한 복수를 하지 않고 ‘종교통합령’을 반포해 대영제국의 기틀을 닦았다. 새해 출범하는 정부는 누가 당선되더라도 전문 예술인이 인정받고, 창작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예술정치꾼이 사라진다. 그제야 예술계에서 언젠가부터 볼 수 없던,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어른’과 미래를 열어나갈 ’신진’이 함께 떠오를 것이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높은 굽의 하이힐이 그려진 표지. 검은색 바탕으로 된 아랫부분에는 빨간 네모 칸 안에 ‘19.0’이란 숫자가 눈에 띈다. ‘19.0’은 21세기북스의 새로운 임프린트(독립 출판 브랜드) 이름이다. ‘19금(禁) 소설’을 전문으로 펴내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일까?실제 19.0에서 펴낸 실비아 데이의 ‘크로스 파이어-유혹’(사진)은 성인용 로맨스 소설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아성을 무너뜨릴 기세다. 2012년 아마존 최고의 로맨스 소설로 선정된 이 책은 국내에서도 최근 교보문고와 예스24의 전자책 종합베스트셀러 목록 1위에 올랐다. ‘그레이…’ 시리즈가 변태적인 섹스 묘사에 중점을 뒀다면, ‘크로스…’의 경우 에로틱 스릴러처럼 운명적 사랑과 과거의 덫으로 갈등하는 두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0’은 앞으로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에서 선호도가 높은 스릴러, 판타지, 추리, 로맨스, 무협의 장르문학을 전문으로 펴낼 예정이다. 김성수 21세기북스 편집실장은 “19금 작품만 전문으로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19금까지도 자유롭게 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자책의 초기 대중화에는 ‘에로틱 소설’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20∼80쪽 분량의 ‘싱글 e북’ 등 다양한 형태의 전자책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한때 ‘○○북스’ ‘△△하우스’ 등이 유행하던 출판사 이름에 숫자가 등장하게 된 것은 올해부터다. ‘8.0’이라는 임프린트가 펴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책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다. ‘8.0’은 문학을 전문으로 출판하던 세계사가 새롭게 만든 경제경영서 전문 브랜드였다. 이 책이 50만 부 이상 팔리는 소위 ‘대박’이 나면서 ‘8.0’은 세계사의 임프린트에서 에이트포인트라는 회사로 독립했다.허윤정 8.0 기획편집팀장은 “8.0은 독자들에게 비즈니스와 관련된 8가지 비전과 기회를 제공하며, 8이란 숫자가 옆으로 보면 무한대란 의미를 갖고 있는 브랜드”라면서 “최근 숫자로 된 이름이 미래학, 테크놀로지, e북 등에서 각광받고 있다”고 전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연말이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내가 불필요하게 화를 내고, 남에게 상처 준 일은 없었는지 생각해본다.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왜 무시당해야 하는지 화를 내는 사람도 많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루키우스 안나에우스 세네카(기원전 4∼기원후 65)가 쓴 이 책은 2000년 전에 쓴 ‘화’에 대한 최초의 철학서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화를 폭발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도 충분히 공감할 만큼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력과 철학적 사색이 가득하다. ‘마음의 평정심’을 강조하는 이 책은 16∼18세기 몽테뉴, 흄, 루소뿐만 아니라 19세기 ‘월든’의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후기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알려진 세네카가 화를 잘 내는 동생 노바투스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의 서간집이다. 동생은 ‘화란 무엇인가’ ‘우리는 화를 왜 내는가’ ‘화는 우리 인생에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어떻게 하면 화를 가라앉힐 수 있는가’를 물었다. 세네카가 살던 로마의 제정은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부터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에 이르기까지 관용을 망각하고 적의와 분노가 소용돌이치던 시대였다. 세네카는 네로 황제의 스승이자 정치적 자문관이었으나 결국 네로에게 죽음을 당한 인물이다. 이 책은 독재자의 적의와 광기가 폭발하고 잔혹정치가 세상을 위협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 서간집은 개인의 마음 다스리기뿐 아니라 정치가나 조직의 리더에게 던지는 충고로도 읽힌다. 남에게 화를 내거나,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두려워한다고 해서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혐오스러운 것도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고 말한다. 화를 폭발시키거나 억제함으로써 다른 평가를 받았던 칼리굴라 황제, 알렉산드로스 왕, 캄비세스, 플라톤 등 역사적 인물들의 예화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인터넷 서점 예스24(대표 김기호)가 주최하는 ‘예스24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이 올해로 10회째를 맞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도서 관련 온라인 투표로 자리잡은 ‘올해의 책’ 행사에는 2003년 이후 약 100만 명 가까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10년 동안 240권이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올해에는 총 9만463명의 누리꾼이 참여해 △문학 △인문·교양 △비즈니스·자기관리 △가정·실용 △아동·청소년 등 5개 분야 120권의 후보작 가운데 24권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20일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로 ‘2012 올해의 책’ 1위를 수상한 혜민 스님을 비롯한 출판 관계자 300여 명이 참석했다. ‘2012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문학 작품을 보면 9권 중 7권이 시나 소설이 아닌 에세이였다. 지난해에는 베스트셀러 에세이의 키워드가 ‘청춘’이었다면 올해는 ‘힐링’이었다. 혜민 스님을 비롯해 법륜, 정목 등 스님들의 인생 해법을 담은 에세이들이 잇달아 인기를 끌었다. 젊은 독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병률 시인의 여행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와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에세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도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스트레스와 경쟁에 지쳐 있는 독자들이 자신을 성찰하고,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게 해주는 힐링 에세이가 독서시장에서 강세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총 3만2294표를 얻어 3만612표를 얻은 ‘안철수의 생각’을 1682표 차이로 따돌리고 올해의 책 1위를 차지했다. 이 책은 올해 1월 출간 후 예스24 주간 베스트셀러에서 총 26주간 1위를 기록해 2012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혜민 스님의 책은 여성(63%)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반면, ‘안철수의 생각’은 남성(50.1%)과 여성(49.9%) 구분 없이 고른 지지를 받았다. ‘안철수의 생각’은 올해 7월 출간된 다음날에만 1만2000권이 팔리며 1분에 8.3권씩 판매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최근 10년간 일일 판매량이 가장 높았던 ‘스티브 잡스’의 7500권보다 1.6배 많은 수치다. 시상식에 참석한 혜민 스님은 “사실 작품성으로 따지면 내 책은 1등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오랜 경륜을 가진 훌륭한 작가 분들이 많이 계신데, 저의 부족한 책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도 ‘2012 올해의 책’ 1위로 선정된 것도 모두 너무나 송구스럽다”며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혜민 스님은 “제 책을 읽고 자살하려던 마음을 다시 잡았다고 하는 젊은이도 있었다”며 “제가 쓴 짧은 메시지에도 사람들이 위로받는 것을 보고, 우리 사회가 그동안 서로 인정해주고 사랑을 나누는 데 얼마나 인색했는지를 알게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 기간 중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에 대해 미움을 표현하는 글들이 많았는데, 이제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끼리도 서로 화합하고 통합할 수 있도록 새 대통령께서 국정을 잘 이끌어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올해의 책 3위에는 주진우 기자의 권력과 부패에 관한 심층 추적 취재기 ‘주기자’가 뽑혔으며,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인생 멘토링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여성 독자(63.2%)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4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허전한 마음에 주목한 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은 5위에 올랐다. 해외 석학의 소문난 강의를 활자로 옮긴 책도 큰 인기를 끌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에 몸담고 있는 협상전문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8위와 11위를 기록했다. 세계적인 석학 제러미 리프킨의 ‘3차 산업혁명’(20위)은 인터넷 기술과 재생에너지 기술이 결합한 강력한 산업혁명의 도래를 전망했다.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부 이상이 팔린 영국작가 E L 제임스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14위에 올랐다. ‘엄마들의 포르노’라는 평가를 얻은 19금 소설인 이 책은 국내에서 올해 전자책 판매 붐을 일으켰다. 또한 우리 몸이 원하는 최적의 식사법으로 하루 한 끼를 먹으라고 권하는 ‘1日1食’, 웹툰으로 사랑받으며 책으로도 출간된 인기 만화작가 윤태호의 ‘미생’, 국내 1호 정리 컨설턴트 윤선현에게 배우는 ‘하루 15분 정리의 힘’, 스타 영어강사 박현영의 ‘말문이 빵 터지는 세 마디 영어’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김기호 예스24 대표이사는 “책이란 단순한 출판물이 아닌 역사와 트렌드 그리고 시대상을 담는 결정체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며 “10회째를 맞은 ‘올해의 책’이 앞으로도 ‘책 읽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올해의 책, 어떻게 뽑았나… 후보작 120권 대상으로 독자가 온라인·모바일 투표 ▼예스24의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은 전년도 12월부터 1년간 출간된 도서들 가운데 예스24가 후보작 120권을 추리면 이를 대상으로 독자들이 온라인, 모바일 투표를 통해 최종 24권을 선정하는 행사다. 후보가 되는 작품들은 문학 인문·교양 비즈니스·자기관리 가정·실용 아동·청소년 등 5개 분야별로 24권씩이다. △도서 내용과 편집이 우수하고, 기획력이 돋보이는 책 △올해의 상황과 맞는 시의성과 한국인에게 화제가 됐던 책 △오랜 기획과 저술의 노고 등으로 발간의 의미가 깊은 도서를 기준으로 선정한다. 예스24에 연간 등록되는 도서가 8만 권이 넘으므로 ‘올해의 책’ 경쟁률은 약 3333 대 1이 된다. 투표에는 매년 9만 명이 넘는 독자들이 참여해왔다. 올해의 책에 작품이 선정된 작가에게는 상패를 수여하는데, 2007년에는 방한한 앨빈 토플러가 직접 이 상패를 받기도 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혜민 스님(사진)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쌤앤파커스)이 인터넷 서점 예스24(대표 김기호)가 진행한 ‘2012 올해의 책’ 1위에 선정됐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 행사에는 총 9만463명의 누리꾼이 투표에 참여해 각 분야 24권의 도서를 뽑았다. 20일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혜민 스님은 “사실 작품성으로 따지면 제 책은 1등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각박한 삶 속에서 스스로 성찰하고 위안을 얻는 ‘힐링’이 사회 전반적인 트렌드로 부각되며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기 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는 회복할 것인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한 미국과 시진핑 체제로 접어든 중국의 G2는 세계 정세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 2013년의 세계 경제와 트렌드를 예측한 책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대부분의 예측서는 내년의 글로벌 경제가 낙관적이지 않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기회는 있는 법. 2013년 트렌드 예측서를 통해 생존 비법을 알아볼 만하다. 미국 경제예측연구소 HS덴트의 설립자인 헤리 덴트와 로드니 존슨이 펴낸 ‘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청림출판)는 2013∼2015년 초반 사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재정위기로 인한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미국 경제에 다시 한 번 위기가 닥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다우지수는 3,800까지 하락하고, 한국의 코스피도 950 부근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새로운 호황기가 시작될 것이며 글로벌 경제호황기의 주역은 중국이 아니라 인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2013 세계경제대전망’(한국경제신문)도 유럽이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대신 떠오르는 신흥대국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꼽았다. 2013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가장 높을 국가로는 인구 300만 명의 몽골을 꼽았다. 고비사막에서 구리와 금을 채굴하는 몽골 최대 투자사업인 오유톨고이 프로젝트는 석탄, 은, 우라늄 등 각종 자원개발 사업을 통해 몽골의 경제성장을 이끌 것으로 예상했다. ‘2013 세계, 기회와 도전’(알키)을 펴낸 KOTRA는 인구 4억 명의 거대시장인 남미를 한국이 바라봐야 할 기회의 땅으로 꼽았다. 페루, 칠레, 콜롬비아, 브라질 등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이 한국의 음식, 패션, 상품에 대한 열광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33인의 칠레 매몰 광원 구출에도 국내 기업들이 비중 있는 조연 역할을 했다. 당초 구조작업 기간을 4개월에서 7주로 단축시키는 데 기여한 굴착기의 핵심 부품인 ‘공압 해머’를 제조한 것은 국내 중소기업이었다. 지하 662m 아래에 매몰됐던 광원들은 한국산 휴대전화에 저장된 가족사진을 보면서 용기를 잃지 않았다.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는 ‘2013 한국 경제 대예측’(청림출판)에서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자동차, 전기·전자, 정보기술(IT), 부동산, 금융, 공공부문 등 6개 산업의 전망을 분석했다. 이 연구소는 “2013년은 사양산업으로 여겨지던 한국의 백색 가전산업이 새롭게 발돋움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전제품은 스마트화 열풍, 고유가 시대에 에너지 절약기술 경쟁, 프리미엄 디자인 경쟁을 타고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뱀’의 해인 2013년 승리의 필살기가 될 키워드로 ‘코브라 트위스트(Cobra Twist)’를 꼽는다. ‘트렌드 코리아 2013’(미래의창)에서 그는 내년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불확실성 속에서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엄혹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 교수는 개인들이 서로를 경계하는 날 선 사람들의 도시(City of hysterie), 난센스에 열광하는 시대(OTL Nonsense!), 스칸디 맘(Bravo Scandimom), 물질주의자의 무소유(Redefined ownership), 나 홀로 라운징(Alone with lounging), 미각의 제국(Taste your life out), 시즌 개념의 상실(Whenever U want), 디톡스가 필요한 시간(It's detox time), 소진 사회(Surviving burn-out society), 적절한 불편(Trouble is welcomed) 등의 트렌드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가운데 가장 희망적인 키워드는 ‘스칸디맘’이다. 자녀의 입시위주 교육에 모든 것을 헌신하던 전 세대 엄마와 달리 자녀와의 정서적 교감을 중시하고, 친환경적이고 실용적이며 합리적인 북유럽식 교육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30대 엄마들이다. 저자는 “코브라 트위스트는 프로레슬링에서 사용하는 치명적인 기술”이라며 “2013년을 헤쳐 나갈 나만의 필살기를 갖췄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키워드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정치인들을 뜻하는 배가 뒤집히지 않도록, 그 배를 나아가게 해줄 넉넉하고 잔잔한 물, 바로 국민을 정치인들이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백성은 물, 임금은 배’라는 책을 보낸 시민) 서울 마포구 합정동 ‘국민의 서재’ 운동본부에는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책들이 쌓여 가고 있다. 19일 탄생하는 제18대 대통령이 꼭 읽어 보길 권하는 책들이다. 책의 속표지 첫 장에는 책을 보낸 사람들이 새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빼곡히 적혀 있다.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시공사)를 보낸 주부는 “아이들에게 마음 놓고 맛있는 음식을 주고, 아이들을 마음 놓고 교육시킬 수 있는 대한민국이었으면 합니다”라고 적었다. 김명신 씨는 “세상의 반은 여자인 만큼 여성을 폄하하고 나약하게 보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셨으면 한다”는 글귀와 함께 ‘여성 마케팅’(위즈덤하우스)이란 책을 보내왔다. ‘청춘을 반납한다’(인물과사상사)란 책을 추천한 익명의 참가자는 “빛나는 청춘을 온전히 즐기면서 하루하루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 힘들지만 살아 있는 것이 가슴 벅차게 느껴지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지금까지 모인 책은 350권이 넘는다. 기업인 주부 대학생 농부 등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취업 문제, 사교육 문제, 남녀 평등, 인터넷 중독증 대책 등에 대한 다양한 바람을 속표지에 적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느티나무 도서관, 아름다운가게 등이 참가한 ‘국민의 서재’ 운동본부(www.peoplebooks.kr)는 19일까지 모인 책을 청와대로 보내 국정에 참고할 수 있는 도서관 또는 서재를 만들도록 청원할 계획이다. ‘국민의 서재’는 9월 초 몇몇 청년과 대학생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이 이벤트를 기획한 조혜민 디자인 회사 유니버드 대표(27·여)는 “사람들이 정치인에게 의견을 표출하는 수단으로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블로그도 있겠지만 책은 무게가 다르다”며 “‘책은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세계’라는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말처럼 생각과 철학을 담은 책을 매개로 국민과 정치권이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건강한 정치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는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걸려 있다. 1830년 왕정복고에 반대해서 봉기한 7월 혁명 당시의 거리를 그린 그림이다. 가슴을 드러낸 자유의 여신, 정장 차림의 신사, 죽어 있는 왕당파 군인들…. 오른쪽 끝에는 권총을 든 모자 쓴 부랑아 소년이 눈길을 끈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이 소년을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이름은 가브로슈.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의 제목처럼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은 도둑, 창녀, 사기꾼, 부랑아들이다. 모두들 가난하고, 상처 입고, 사랑을 잃고, 억울하고, 외로운 사람들이다. 이달 10일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NRW트로피 대회에서 우승한 김연아의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동영상으로 보다가 눈물을 흘릴 뻔했다. 1년 8개월간의 공백을 깨고 빙상에 다시 선 김연아의 모습이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어우러져 울컥하는 감동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김연아의 프리 프로그램은 뮤지컬을 축약해 놓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시작은 2막 하이라이트 장면인 ‘바리케이드에서’였다. 박력 있는 팀파니 소리가 이끄는 강렬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맞춰 김연아는 고난도 트리플 점프를 잇달아 성공시켰다. 이어서 음악은 짝사랑하는 연인에게 고백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에포닌의 테마인 ‘나홀로(On my own)’로 바뀌었다. 피아노와 첼로로 연주되는 애잔한 선율에 맞춰 김연아는 특유의 발레동작 스핀을 선보이며 찬란한 이슬처럼 빛나는 연기를 해냈다. 그러다 결국 힘이 빠진 듯 빙판에 쓰러졌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다시 일어섰고, 당당한 모습으로 경기를 마쳤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들은 넘어져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김연아도 밴쿠버 올림픽에서 최고의 영광을 얻은 이후 목표를 상실하고 방황했다. 평범한 대학생처럼 강의도 듣고, 교생실습도 하고 ‘CF의 여왕’이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대중의 시선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아직도 젊고 재능이 넘치는 그가 새로운 도전을 해주길 바랐다. 결국 김연아는 다시 운동복을 입었다. 그가 복귀작으로 ‘레미제라블’을 택한 것은 의미심장했다. 인생의 영광과 상처, 실패와 좌절, 외로움까지 맛본 사람이 아니면 표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빙판에서 넘어진 그의 실수는, 그래서 더욱 인간적이었다. 그것은 극 중에 나오는 수많은 시련과 죽음을 상징하는 연기처럼 보였다. 또한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일어선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 나가는 민초들의 강인함을 표현한 것이리라. 완벽한 기술의 김연아가 이번 시즌을 통해 ‘레미제라블’의 감정선까지 완성해 낸다면 누구나 울컥 증상을 겪을 것임에 틀림없다. 올 연말에는 ‘레미제라블’이 뮤지컬, 영화, 책으로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불황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고전의 힘이다. 19일에는 아카데미 영화상의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영화 ‘레미제라블’이 개봉한다. 국내에서는 첫 한국어 버전의 뮤지컬 ‘레미제라블’도 전국 순회공연 중이다. 펭귄클래식, 민음사에서 나온 5권짜리 완역본 소설도 2400여 쪽이 넘는 분량의 압박에도 잘 팔린다는 소식이다. 한 해도 저물어 간다. 모레는 대선일이다. 지난주 송년회에서 만난 대학 동창들과 한 해를 힘겹게 보낸 소회를 나누며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아내가 넷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처음엔 놀라움을 표시하던 친구들은 “모처럼 듣는 희소식”이라며 축하의 건배를 나눴다. 고통 속에서도 내일의 꿈은 피어난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한라산 백록담 근처에만 살고 있는 구상나무는 멸종 위기 식물입니다. 100년도 훨씬 전에 이 나무를 본 영국인 식물 분류학자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쓰기에 딱 알맞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몇 번의 종자 개량을 거쳐 구상나무는 해외에서 가장 비싼 크리스마스트리용 나무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데요. 종자권 역시 우리 것이 아닙니다. 전나무라고도 불리는 구상나무의 운명이 안타깝습니다. 오늘은 전나무 이야기와 함께 크리스마스의 참의미를 일깨워주는 그림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깊은 숲 속에 우뚝 서서 모든 동물을 품어 안는 전나무와 그들을 돌보는 한 노인이 있습니다. 눈 덮인 겨울 숲은 적막하고 쓸쓸하지만 담백한 이야기와 밀도 있는 그림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따뜻합니다. 우리는 이미 아름답고 화려하게 빛나는 크리스마스 풍경에 익숙합니다. 선물이며 파티에 그날은 정신없이 지나갑니다. 그 풍경 뒤로 남은 짙은 그늘이 얼마나 춥고 어두운지 깜빡 잊기 십상이지요. 소박하고 계산 없는 나눔과 배려가 절실한 때,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마음으로 전해지는 전나무 숲의 이야기를 함께 읽으세요. 이 책은 아이들이 직접 뽑은 이탈리아 볼로냐국제도서전 엘바상 수상작입니다. ○ 독후활동: 작은 전나무 만들기 준비물: 흰 도화지 혹은 남은 종합장, 색연필, 사인펜, 가위, 셀로판테이프 등1. 손바닥 크기로 전나무를 그린다. 한 사람이 여러 개를 그려도 좋다. 전나무를 그리는 동안 책에 나온 전나무나 할아버지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눈다.2. 색연필과 사인펜 등으로 마음껏 꾸미되 나무 아래에 받고 싶은 선물이 아니라 나누고 싶은 것을 그린다. 나는 어떤 것을 나눌 수 있는지 이야기하면서 그린다.3. 다 그린 전나무를 가위로 오린다.4. 바깥 풍경이 보이는 유리창에 테이프로 줄지어 붙인다. 너무 일렬로 줄을 딱 맞출 필요는 없다.5. 눈 소식이 많은 요즘이다. 눈 내리는 날이나 눈이 그친 후 눈 쌓인 바깥 풍경을 배경으로 각도를 잘 조절하여 촬영을 하면 삐뚤빼뚤 그려 붙인 전나무들이 눈 위로 자라난 듯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김혜진 어린이도서교육연구가}

대중목욕탕은 누구나 맨몸을 드러내고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면 더없이 ‘시원함’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아이가 어른들에게 손 잡혀 간 목욕탕은 뜨겁고, 시끄럽고. 맵고, 숨 막히는 곳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림책이 있다. 책읽는곰에서 펴낸 ‘장수탕 선녀님’(백희나 글, 그림)과 ‘지옥탕’(손지희 글, 그림)이다. 백희나는 점토 인형을 오물조물 주물러 낡고 오래된 목욕탕 풍경을, 수많은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해 낸다. 인형들의 리얼하고 유머러스한 표정과 몸짓들이 펼쳐가는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무서운 목욕탕을 다시 가고 싶은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덕지가 엄마를 따라 간 ‘우리 동네 목욕탕’은 그리 끌리는 곳이 아니었다. 스스로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님이라는 장수탕 할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토끼 귀를 닮은 머리 모양에, 푸른색 아이섀도, 빨간색 립스틱, 그리고 값싼 모조 귀걸이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할머니는 폭포수 아래서 버티기, 바가지를 튜브 삼아 물장구치기, 물속에서 숨 참기 등 ‘냉탕에서 노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스스로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님은 주름진 얼굴에 볼 살도 뱃살도 축축 늘어진 퉁퉁한 동네 할머니 같은 모습으로 덕지 마음을 홀딱 빼앗고 만다. 그래서 덕지는 뜨거운 탕도, 때를 밀리는 고통도, 온몸이 벌겋게 익어가는 고통도 꾹 참은 결과로 엄마에게서 받은 귀한 요구르트를 기꺼이 할머니에게 건넨다. 손지희는 철저하게 아이들 시각에서 바라본다. 목욕탕을 ‘지옥탕’이라고 하는 데서부터 어른의 개입을 배제한다. 엄마에게 잡혀간 동네 목욕탕에서 뜨겁고 숨 막히는 경험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과정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생생하게 묘사하여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전반적으로 붉은색으로 표현한 그림은 아이의 불안한 심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아이 마음과 달리 엄마는 뜨거운 물이 가득한 탕에 목까지 몸을 담그란다. ‘시원하게.’ 그뿐이 아니다. 자기보다 오만 배나 넓은 등을 내밀며 때를 밀란다. 그리고 양손에 때수건을 끼고 아이 몸을 벅벅 문지른다. 터져 나오는 아이의 비명, 아랑곳하지 않는 엄마. 아이들에겐 분명 지옥탕이다. 한바탕 전쟁이 휘몰아치고 나니 몸은 보송보송 개운하다. 두 작가는 아이들 관점에서 목욕탕 실전기를 그려 보인다. 그 안에서 아이들이 바라고 꿈꾸는 따뜻함과 유머와 위안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조월례 어린이도서평론가}

>동아일보 ‘책의향기’팀은 ‘2012년 올해의 책’ 선정위원들에게 추가 질문도 던졌다. △제18대 신임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책의 내용은 좋은데 독자나 평단으로부터 과소평가된 책 △반대로 과대평가된 책 △디자인이 좋은 책 등 4가지였다. 새 대통령에게 권하고 싶은 책으로는 ‘대한민국 만들기’(그렉 브라진스키·책과함께) ‘최선의 결정은 어떻게 내려지는가’(토머스 대븐포트·프리뷰) ‘정약용의 목민심서’(동서문화사)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애쓰모글루·시공사) 가 꼽혔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일자리와 연결시켜야 한다는 정책기조를 국정운영에 반드시 반영했으면 한다”며 자신의 저서인 ‘이분법사회를 넘어서’(다산북스)를 추천했다. ‘과대평가된 책’으로는 몇몇 베스트셀러가 꼽혔다. 김난도 교수의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오우아)는 “가벼운 힐링을 유행시켜 한국사회를 마취시킨 책” “한국 베스트셀러의 허상” “잘못된 진단과 주제넘은 충고, 제목부터가 폭력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선정위원은 ‘안철수의 생각’(김영사)에 대해 “그 생각의 책임성을 읽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공지영의 ‘의자놀이’에 대해 “책의 출간 의도는 선하지만 여러 사람의 자료를 적당히 짜깁기해 놓고 르포르타주라고 과대포장한 책”이라고 지적했다. ‘과소평가된 책’에는 올해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한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네치카’(비채)가 꼽혔다. 최연순 김영사 주간은 “광대한 스케일과 사실적인 문체로 삶의 의미와 구원의 문제를 다뤄온 울리츠카야는 러시아의 박경리로 불릴 만하다”고 평했다. ‘디자인이 좋은 책’으로는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남해의봄날) ‘경성 카메라 산책’(아카이브북스)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휴머니스트)가 추천됐다. 박맹호 민음사 회장의 자서전 ‘책’도 정병규의 단순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표지디자인이 인상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올해의 책 선정위원(가나다순)=강규형(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고영(문학의전당 대표) 고운기(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곽효환(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권영민(문학평론가) 김기봉(경기대 사학과 교수) 김기중(더숲 대표) 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김병호(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김선식(다산북스 대표) 김병희(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윤태(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김형찬(고려대 철학과 교수) 박재환(에코리브르 대표)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석영중(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손택수(실천문학사 대표)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렬(더난 출판 대표) 신승철(비채 주간)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윤평중(한신대 철학과 교수) 이권우(도서평론가) 이인식(지식융합연구소장) 이현우(한림대 연구교수) 임진택(삼성경제연구소 출판팀장) 장은수(민음사 대표) 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천진기(국립민속박물관장) 최연순(김영사 주간)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허병두(‘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현길언(소설가)■ 자기착취 ‘성과사회’에 대한 통찰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 철학과 교수가 현대 자본주의의 새로운 착취형태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저자는 “21세기는 타인에 의한 ‘규율사회’에서 자기착취에 의한 ‘성과사회’로 변모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피로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세상에서 피로하게 만드는 주체가 자신임을 설명함으로써 욕망의 노예가 된 현대인의 고뇌를 제대로 분석했다”고 평했다.■ 녹색 산업시대를 대비하고 준비하라‘엔트로피’ ‘노동의 종말’로 유명한 저자의 신작. 5월 방한했던 저자는 “석탄과 석유를 원료로 한 1, 2차 산업혁명은 끝났으며 이제 협력과 수평적 권력체계로 움직이는 녹색산업시대를 향한 3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에너지와 정보기술(IT) 혁명,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새로운 분산 자본주의를 주도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영 문학의전당 대표) “대안에너지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예고하는 책이다.”(김윤태 고려대 교수)■ 자식 잃은 고통속에 써내려간 행복론일본 국민작가 소세키와 독일 사회학자 베버의 통찰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한 삶을 응시하며 살아야 할 이유를 짚어주는 인문교양서. “현대사회의 병폐에 대한 수많은 진단서 중 단연 돋보이는 행복론이다. 일본이라는 구체적 거울을 통해 한국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손택수 실천문학사 대표) “자식을 잃은 참척(慘慽)의 고통 속에서 써내려간 책.”(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자본주의에서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20세기 전 세계를 지배했던 유럽의 근대문화는 어떻게 형성됐을까. 산업혁명 이후 유행했던 음악과 신문, 소설, 연극부터 20세기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게임까지 총망라한 유럽문화통사. “근년에 나온 가장 풍부한 문화사.”(이현우 한림대 교수) “유럽이라는 공간과 200년간의 시간의 문화를 씨실과 날실로 엮은 역작.”(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하는 방대한 저작.”(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 등단 50년 작가 황석영의 자기반추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은 황석영이 작가 생활 반세기를 돌아보며 쓴 책. 19세기 전국 각지를 떠돌며 천지도(동학)에 심취했던 이신통이라는 이야기꾼을 그린 소설이지만, 작가는 방북과 해외 체류, 투옥으로 이어진 자신의 삶을 투영시켰다. 현길언 소설가는 “변하지 않는 문학적 감수성과 인간에 대한 인식의 치열함”을 장점으로 꼽았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은 “새로운 서사와 이야기 구조, 특유의 입담이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말했다.■ 한 해를 요동치게 만든 ‘철수 인터뷰’올해 대선의 큰 변수였던 ‘안철수 현상’을 불러온 책. 발간 첫날 1분에 11권씩 팔려 역대 하루 최다 판매, 이틀 만에 종합베스트셀러 1위 등 국내 출판계의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정치적 견해를 차치하고, 정치인 인터뷰 집 한 권이 국가와 사회를 요동치게 했다.”(한성봉 동아시아 대표) “한때 공급 부족으로 애를 먹었을 만큼 판매 속도나 비판 서적의 속간까지 올해 책 중에 화제성 면에서 당할 책이 없었다.”(백원근 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눈여겨봐야 할 인지심리학의 역작심리학자이면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의 행동경제학 교양서.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경제학 이론에 의문을 던진다. 임진택 삼성경제연구소 출판팀장은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는 ‘생각’에 관한 이론을 설명하는 실험사례를 내게 적용해보는 것이 묘미”라고 말했고, 김기중 더숲 대표는 “평소 어렵게 느껴오던 행동경제학, 인지심리학 이론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역작”이라고 평가했다.■ 과학-인문학을 가로지르는 통섭의 힘세계적인 석학 44인이 5년간에 걸쳐 인문학과 과학에 관해 지적인 수다를 펼쳐놓았다. 진화철학, 시간, 꿈, 자유의지, 프랙털 건축, 소셜네트워크 등의 주제를 놓고 매혹적인 대화를 나눈 ‘통섭의 현장’이다. 백원근 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각각의 주제를 가로지르는 통섭의 출판 기획력이 돋보이는 책”이라고 평했다. 권영민 문학평론가는 “새로운 통합과 학제적 연관성을 통해 세계적 변화와 삶의 방향을 반성하게 한다”고 말했다.■ 젊은 감수성의 분투, 이젠 아름답구나문단의 ‘기대주’에서 ‘대세주’로 도약한 김애란의 소설집. “문장과 서사의 완벽한 결합이다. 세대의 내면의식을 미학적으로 구축했다.”(김병호 협성대 교수) “한국소설의 현장과 그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가의 작품집.”(권영민 문학평론가) “세대 간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소통과 고립을 통해 자기를 만들어가려는 젊은 감수성의 분투가 아름답다.”(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평을 받았다.■ 겨울 만해마을 호젓한 詩 내리는 밤‘눈 내리는 밤/물음이 내려오는 밤/서성이는 밤’. 2년 전 겨울 머물렀던 백담사 만해마을의 풍경을 담은 시집. 겨울밤, 눈, 민들레, 담장, 돌을 관조하며 깊은 사유를 하는 ‘호젓함’이 살아 있는 시어들이 매력적이다. 김병호 협성대 교수는 “장 시인은 불가에서 말하는 건달에 가깝다”며 “삶의 행간을 수묵의 농담으로 그려내는 데 능한 시인인데, 이번 시집은 서늘한 절정에 놓여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겨울방학이 다가옵니다. 방학이 되면 무엇을 하나요? 대부분의 친구들이 공부를 하겠죠. 혹은 부모님과의 여행 계획을 짜기도 합니다. 여행 계획을 짜다 보면 늘 내가 사는 곳과 먼 곳, 차로 몇 시간 혹은 비행기로 몇 시간 가야 하는 곳을 생각하곤 합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내가 사는 이곳은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일부러 여행을 오는 곳입니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내가 사는 이곳을 하루하루 여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책에는 서울, 부산, 공주, 전주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도시 열 세 곳이 소개됩니다. 그 도시의 역사와 가볼 곳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와 견주어 생각해 볼 만한 다른 나라의 도시도 소개합니다. 우선 자기가 사는 곳과 가장 가까운 도시를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도시를 자세히 읽어 보세요. 내가 아는 만큼 그 도시를 잘 소개하고 있나요? 나라면 이곳에 관해 이런 이야기를 할 텐데, 이런 이야기는 왜 안 했을까 하는 점은 없나요? 어쩌면 여러분이 사는 그 도시에 관해서는, 책을 쓰신 분보다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책 따라 여행하기준비물: 책, 사진기(혹은 휴대전화) 1. 책에 소개된 도시 중 자신이 사는 곳과 가장 가까운 곳을 골라 꼼꼼히 읽고 갈 곳을 딱 한 곳 정한다. 2. 그곳을 소개한 다른 책이 있는지 도서관에서 찾아본다. 3. 그곳에 가는 교통편을 알아본다. (이런 계획 세우는 것을 어른들께 맡기지 마세요. 하지만 먼 길은 어른들과 함께 가세요.) 4. 그곳에 가서 책에 소개된 사진과 똑같은 사진을 찍는다.(이 책에는 사진자료가 충분하지 않아요. 다른 책에 더 좋은 사진이 있다면 그 사진을 따라 찍어 보세요.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서처럼 똑같이 찍어 보는 거예요.) 5. 아무도 소개하지 않을 것 같은 장소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사진을 찍는다. 6. 한 곳에서 딱 두 장의 사진만을 남긴다. 짧은 코멘트를 써서 각자의 방법으로 모은다. 김혜원 어린이도서교육연구가}

얼마 전 TV 오디션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 기타리스트 신중현이 출연했다. 씨스타의 효린이 ‘커피 한 잔’(1964년)을 부르고, ‘노브레인’이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1969년)를 리메이크해서 연주했다. 노브레인은 “한국 록의 창시자 신중현 선생님이 없었다면 오늘날 저희 같은 밴드도 없었을 것”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대중가요뿐만 아니라 1960년대는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오늘의 한국’을 만든 기원이 되는 시기다. 국문학과 교수인 두 저자는 잡지와 문학 작품에 비친 1960년대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탐구한다. 저자는 “‘자유’로 상징되는 1960년의 4·19와 ‘빵’으로 표상되는 1961년의 5·16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뤄온 한국현대사의 갈등과 대립의 출발점”이라고 규정한다. 1960년대 지성계는 ‘자유주의’보다는 한국적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관념이 본격화하던 시기였다. 저자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책으로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박정희의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 최인훈의 ‘회색인’을 꼽았다. 이념적 양극(兩極)이었던 박정희와 함석헌을 비롯해 서로 다른 지적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민족주의에 관한 한 서로 마음이 잘 통하는 동시대인이자 상호보완적 동지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1960년대 개발시대에 불어닥친 교양주의, 자기계발 붐도 살펴본다. ‘고전읽기 운동’으로 상징되는 박정희 정권의 문화정치는 독서시장의 확대를 가져왔다. ‘고전 100선’ 같은 전집, 총서, 신서 등의 교양기획물이 발간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전혜린의 자살은 소녀들의 문학열과 실존에 대한 고민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또한 1950년대 ‘자유부인’으로 상징되던 여성들의 성해방 물결이 4·19와 5·16 이후 어떻게 남성 주도의 시대로 넘어갔는지 해석하는 부분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1960년대 사상계, 청맥 등 지식인 잡지를 중심으로 분석한 탓인지, 역사를 바라보는 폭넓은 시각의 사료 인용이나 TV, 가요, 민중문화 등 ‘아래로부터’의 문화현상 탐구 부분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