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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장수처럼 미쳤다’와 ‘삼월 산토끼처럼 미쳤다’는 말은 캐럴 당시에 흔히 쓰이던 말이었다. 캐럴이 이 두 캐릭터를 만든 이유도 물론 그것이다. …모자장수들이 최근까지 실제로 미쳤다는 사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페놀 수지를 경화시켜 펠트를 만들 때 사용하는 수은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체셔 고양이가 근처에 모자장수와 삼월 산토끼가 산다고 소개하는 대목에 달린 주석이다. 여러 수수께끼와 말장난, 상징이 숨어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루이스 캐럴(1832∼1898) 전문가인 마틴 가드너(1914∼2010)가 370개의 주석을 달았다. 가드너는 “‘앨리스’에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건과 관습을 반영한 위트가 많다. 옥스퍼드 주민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농담도 많다”며 “그 모호함을 최대한 명료하게 밝히고자 했다”고 했다. 원저가 나오기까지 수십 년에 걸쳐 세 번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1960년 처음 ‘주석 달린 앨리스’를 낸 가드너는 30년이 지난 1990년 ‘더 많은 주석 달린 앨리스’를 펴냈다. 1999년에는 ‘최종판…’을 냈는데 그의 사후인 2015년 추가 작업을 담은 ‘앨리스 출간 150주년 기념 디럭스 에디션 주석 달린 앨리스’가 다시 나왔다. 이 책을 번역한 책이다. 문학평론가인 역자의 주 386개도 추가됐다. 존 테니얼(1820∼1914)의 오리지널 삽화를 비롯해 전 세계 작가들의 삽화 400여 컷도 눈길을 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많은 이들이 거론했던 죽산 조봉암(1898∼1959)과 동농 김가진(1846∼1922)의 서훈 필요성을 최근 이 지면을 통해 다시금 촉구한 바 있다. 이달 초 국가보훈부는 두 인물의 서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환영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목의 뿌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국가 정체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해야 할 또 다른 일이 있다. 푸대접받는 제헌절을 제대로 기리는 일이다. 75년 전인 1948년 단군 이래 처음 민주적으로 선출된 제헌국회는 7월 12일 전문과 10장, 103조로 구성된 대한민국 헌법을 통과시키고 17일 공포했다. 아직 정부 수립은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헌법이 마련된 이상 한국인은 이날부터 처음으로 민주공화국에 살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역시 정치 경제 사회 어느 것 하나 제헌헌법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다. 당대의 학자로 초대 감찰위원장을 지낸 위당 정인보 선생(1893∼1950)은 제헌절 기념곡 가사를 지으며 “이날은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라고 했다. 그러나 5대 국경일 가운데 유일하게 공휴일이 아닌 날이 제헌절이다.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된 탓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년 그렇게 바꿨다. 주 5일 근무제 시행에 따른 근로시간 감소 우려 때문이었다지만 당시 대통령의 헌법 경시와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 15년이 지난 지금 제헌절은 거의 잊힌 날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과 학교에 가야 하는 이들에게 정부와 국회의 제헌절 기념행사는 딴 나라 얘기인 게 당연하다. 과거에도 제헌절의 의미를 모르는 청소년이 적지 않았는데, 15년 새 그런 학생들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헌절의 위상 하락은 또 다른 문제도 낳았다. 국경일이 5개나 있는데, 대한민국의 탄생을 경축하는 날은 대체 언제인가. 8·15 광복절은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1948년 정부 수립을 동시에 경축하는 날이지만 다수 국민이 가진 광복절의 심상은 해방의 의미가 9할 정도다. 과거 일각에서 ‘광복절을 건국절로 기리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논란만 낳았다. 3·1절은 거족적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이고, 개천절과 한글날 역시 거리가 멀거나 무관하다. 순수하게 대한민국의 탄생과 관계됐다고 인식되는 날은 사실상 제헌절뿐인 것이다. 근로시간 감소 우려 역시 제헌절을 공휴일에서 제외하는 근거가 되긴 약하다. 최근 빠른 속도로 줄긴 했지만 한국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2021년 기준 연간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다섯 번째로 많다. 하루 쉬어 8시간 노동을 덜 한다고 해도 5위인 건 그대로다. 제헌절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 놀아야 이날이 뭔가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국경일이 뭔가.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이니 의미를 되새기면서 축하하고 놀자는 날이다. 해마다 제헌절에 서울 여의도 등에서 불꽃 축제가 펼쳐지고, 공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함께 즐기며 민주공화국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옛날에 지은 아파트는 같은 평수라도 왜 좁아 보일까? 실제로 좁기 때문이다. 1998년 이전에는 벽체 중심선을 기준으로 전용면적을 측정했지만 이후 벽의 안쪽 선으로 기준이 변경됐다. 벽 두께만큼 이득을 보게 된 것. 관련 연구에 따르면 기준 변경 뒤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경우 실제 면적이 전보다 평균 6.7㎡ 증가했다. 우리나라 아파트 수명이 왜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짧은지부터 층간소음의 원인까지, 한국인들이 유난히 사랑하는 아파트와 관련된 과학을 과학 칼럼니스트가 알기 쉽게 풀어 썼다. 저자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새집증후군’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건 아이러니하게도 당시부터 집을 지을 때 빈틈없이 외풍을 막은 탓이다. 전에는 의도치 않게 실내 공기가 외부로 순환했는데,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단열과 기밀 성능을 강화하자 실내 공기 오염이 심각해진 것이다. 공기청정기도 가스성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환기가 최고다. 최근엔 아파트가 점점 더 높아지면서 고강도 콘크리트의 수요가 늘고 있다. 2016년 완공된 롯데월드타워에 쓰인 초고강도 콘크리트는 1㎠가 1.5t의 하중을 견딘다. 성인 손바닥 넓이에 중형 승용차 100대를 쌓아 올려도 버틸 수 있는 강도다. 아파트 단지에서 매미가 유독 시끄럽게 우는 까닭, 아파트 평면도에서 ‘X’자로 표시된 공간의 정체, 한국인의 남향 선호가 아파트에 미친 영향 등 매일같이 보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아파트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풀어 준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중국은 미국을 따돌리고 21세기 세계질서를 주도하게 될까?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인 저자는 ‘팍스 아메리카나’가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정치·사회학적 요인 때문이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와 소수민족 문제, 인권 문제 등을 안고 있다. 창조나 혁신을 이끌지도, 다른 나라의 롤 모델이 되지도 못하고 있다. 성공한 중국인들은 여전히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 역시 패권주의나 제국주의적 DNA를 갖고 있지만 옛 소련이나 중국보다는 세련된 제국을 운영하고 있다.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고대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보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안미경중(安美經中)’ 같은 줄타기 전략은 시효가 지났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한다. 미국 민주주의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을 거치며 퇴보했듯이 우리 민주주의 역시 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후퇴했다고 본다. 정치가 진영 논리에 따른 선과 악의 진흙탕 싸움터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이는 자유주의의 빈곤과 포퓰리즘화 탓이다. 지난해 봄부터 올봄까지 ‘신동아’에 연재한 글을 토대로 ‘민주주의와 리더십’, ‘자유주의와 안보’, ‘다양성과 혁신’, ‘문화와 미래’ 등으로 나눠 민주주의의 의미와 전망을 탐구했다. 부제 ‘대립과 분열의 시대를 건너는 법’.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테너 김성호(33·사진)가 15일(현지 시간) 영국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2023’에서 가곡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인이 우승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김성호는 영국 웨일스 카디프 세인트 데이비드 홀에서 열린 결선 무대에서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채 무대에 올랐다. 이번 콩쿠르에서 그는 랠프 본 윌리엄스의 ‘렛 뷰티 어웨이크(Let Beauty Awake)’, 김성태의 ‘동심초’ 등을 불렀다. 상금은 1만 파운드(약 1700만 원)이다. 이 대회는 1983년 세인트 데이비드 홀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돼 2년마다 열린다. 아리아와 가곡 부문의 우승자를 각각 뽑는다. 한국인 중에서는 1999년 바리톤 노대산이 처음 우승(가곡 부문)했다. 김성호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와 독일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2018년 벨베데레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020년 독일 도르트문트 오페라극장 앙상블 멤버가 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산은 굳건하고 물은 흐른다. 곧 장마가 지고 나면 풍수지리상으로 서울의 서백호인 인왕산 암벽 아래 수성동(水聲洞)은 그 이름처럼 올여름도 계곡물이 철철 흐를 것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한여름의 한낮에도 한기가 느껴지는 계곡 위쪽 좁은 바위틈에서는 누군가가 자리를 틀고 책을 펼칠 것이다. 계곡 아래쪽에선 이제 걸음마를 뗀 아기가 앙증맞은 발바닥으로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찰박이며 생애 첫 물놀이를 할 것이고, 좀 머리가 굵은 아이들은 올챙이를 좇아 반바지가 젖는 줄 모를 것이다. 기자는 운 좋게도 이 동네에서 어린 자식들과 몇 년을 살았다. 겸재 정선(1676∼1759)이 인왕산 남쪽 기슭에서 백악(북악)계곡에 이르는 장동 일대의 뛰어난 풍경을 그린 장동팔경첩에도 수성동이 나온다. 이 그림에는 작은 돌다리(기린교)를 막 건넌 선비들과 동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다리는 1960년대 옥인시범아파트 건설 당시 망가져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2009년경 돌연 다시 ‘발견됐다’. 사실 기린교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오래도록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잊혔을 뿐이었다. 관심이 없어지면 있는 것도 보이지 않으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울에 근대에 들어 잊힌 대표적인 것이 ‘물의 기억’이다. 외국인들이 서울의 산을 보고 놀란다지만 물은 산과 함께 한양이 도읍으로 정해진 가장 큰 이유였다. 조선시대 한양 지도를 보면 물길이 거미줄처럼 도성 안을 지난다. 작은 다리도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생활하천이었으므로 계곡에서 멀어질수록 그렇게 깨끗하진 않았겠지만 둑에는 꽃이 피었을 것이고, 아기자기한 다리를 건너는 운치가 넘쳤을 것이다. 큰 물(한강)은 너무 커서 잊을 수가 없었지만 이제 작은 물(개천)은 거의 잊혔다. 장동팔경첩엔 백운동(白雲洞)의 그림도 담겨 있다. 청계천의 발원지 중 가장 긴 것으로 알려진 백운동천은 경복궁을 감싸 안으며 흐르기에 도성 풍수의 득수처(得水處)로 꼽힌다. 수성동의 계곡물도 백운동천과 만나 청계천으로 흘러든다. 그러나 백운동천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복개되면서 지금은 기억하는 이가 별로 없다. 일제가 마을이름 청풍계(淸風溪)와 백운동을 더해 지은 청운동이라는 이름에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백운동천이 시작되는 곳이자 대동단 총재 동농 김가진(1846∼1922)이 지내며 활동했던 옛 백운장 터가 매각될 상황이라는 소식을 최근 들었다. 시간을 내 찾아가 보니 산딸기가 지천이었다. 인왕산과 북악산으로 오를 수 있는 길이지만 사유지인 탓인지 발길이 뜸해 보였다. 서울의 개천들은 백운동천처럼 근대 들어 대개 복개돼 도로가 됐다. 누구의 땅도 아니었기에 수용이 간편했던 탓이다. 그렇게 만든 도로를 통해 서울이 발전을 이뤘으니 그 역시 잘못됐다고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이제 잊은 것을 돌아보며 다른 도시를 상상할 때가 됐다. 서울시는 중학천(삼청동천)과 함께 백운동천의 물길을 되살릴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실현된다면 지금의 청계천에 자연 하천으로서의 가치를 일부나마 보탤 수 있을 것이다. 백운동천 발원지를 백운장의 역사와 연계해 생태·역사공원으로 만들자는 의견도 나온다. 물과 산이 어우러진 진짜 서울의 묘미를 느끼고 싶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영어에서 ‘멍청이(idiot)’라는 단어는 ‘공적인 일에 관심이 없는 자’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디오테스(idiote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의 시민들이 공동체에 대한 참여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두 책은 각각 서구 문명의 준거가 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 사회, 문화에 관한 입문서다.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마셔야 했을까. 소크라테스는 도덕적으로 거의 완벽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와 잔인했던 참주정에 모두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관계돼 있었다. 저자는 어떤 식으로든 소크라테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테네 시민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일종의 정치범이자 희생양이었다는 것이다. 로마는 무엇보다 상무국가였다. 그러나 그리스 문화를 존경했기에 그리스에 대해서만은 관대했다. 처음으로 그리스 땅을 정복한 로마 장군은 마치 어려운 친척을 찾아온 손님처럼 굴었다고 한다. 뒷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테네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뒤 “너희들이 조상들 덕분에 관대한 처분을 받는 것이 도대체 몇 번이나 될까”라고 했다. 로마는 그리스를 정복했지만 그리스는 로마의 정신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도 간명하게 설명한 것이 책의 큰 장점이다. 카툰 형식의 위트 있는 일러스트도 이해를 돕는다. 중간중간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관련 고전을 소개해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조선민족대동단 총재 동농 김가진 선생(1846∼1922)이 지내며 활동했던 서울 백운장(白雲莊) 터가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팔릴 처지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계천 물길이 발원하는 곳으로 조선 시대부터 명승지로 꼽혔던 이 터를 공공이 나서 역사·생태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종로구 백운장 터는 인왕산 자락의 자하문터널 남쪽 입구 주변에 있다. 이 터를 소유한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 관계자에 따르면 교회는 수년 전부터 교회 건물 등이 있는 이 부지의 매각을 추진해왔다. 백운장 터는 총 3만2000여 ㎡로 교회가 약 1만4000㎡를, 서울시와 정부 등이 나머지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매각 협상이 구체적으로 진전됐고, 매수자 측은 연립주택을 지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모르몬교회 관계자는 “여러 이유로 매각을 보류하고 재검토 중이지만 여전히 팔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백운장의 역사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우여곡절이 그대로 담겨 있다. 고종의 대신이었던 김가진은 1890년대부터 이곳에 별서(별장) 터전을 잡은 것으로 보이며, 1904년 창덕궁 비원의 중수를 마친 뒤 고종의 권유로 백운장을 짓고 살게 됐다고 전한다. 그러나 1916년 집사가 인장을 도용하면서 백운장의 소유권은 헐값에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어갔다. 김가진은 소송을 벌이던 중 3·1운동을 맞았고, 대동단 총재로 추대돼 활동하다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진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광복 후 후손들이 적산이 된 백운장을 불하받으려 했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2년 교회에 매각됐다. 김가진이 1903년 백운동천(白雲洞天·백운 계곡 하늘이 열린 곳)이라고 써서 새긴 바위가 여전히 터에 그대로 있다. 조선시대부터 명승지로 꼽힌 곳이기도 했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장동팔경첩 중 ‘인왕산 백운동’을 그린 그림이 유명하다. 풍수적으로는 한양 도성의 주산인 북악산과 서백호인 인왕산을 잇는 곳이다. 환경적 가치도 높다. 백운장 터에서 시작되는 백운동천(白雲洞川)은 청계천 수원(水源) 중 가장 길어 청계천의 발원지로 꼽힌다. 20세기 초 복개됐지만 여전히 도로 아래로 물이 흐른다. 서울시는 지난해 중학천과 함께 백운동천의 옛 물길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단 개발되면 돌이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서울시 등 공공이 나서 공간이 지닌 역사, 인문지리, 생태적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기덕 전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백운장은 경화사족(조선 후기 한양의 양반)의 별서(별장) 공간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고,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장소로 활용될 수 있다”며 “역사공원으로 만들면 주변 문화자원과 연계해 서울시 문화벨트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포 문화비축기지를 설계했던 허서구건축사사무소 허서구 대표(전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시가 물길 복원과 연계해 백운장 터를 기부받거나 매입한 뒤 생태공원으로 조성하면 청계천의 자연 발원지가 회복되고, 물과 공존하는 도시로서 서울의 환경적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원을 통해 시민들이 인왕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폭포처럼 이어지는 검은빛의 향연 속에서 관대(棺臺)의 아래쪽 중앙에 문카치의 옆모습이 금박으로 장식된 대형 흰색 부조가 눈에 띄었다. …부다페스트의 길거리에 불이 켜졌다. 그 그림자 속에서 와인에 취한 도시의 밤 에너지가 생기를 되찾고, 요란하며 시큼한 소음이 밤공기의 틈새를 메웠다. 방금 지나간 이상한 휴일의 감상, 뒤늦은 애도의 감정이 흘렀다.” 아무리 봐도 소설의 문장 같지만 역사책의 도입부다. 책은 1900년 5월 1일 사망한 헝가리 화가 문카치 미하이(1844∼1900)의 국장(國葬)으로 시작한다. 한때 위대했던 이 화가의 죽음은 낡은 시대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 역사학자인 저자(1924∼2019)가 1900년 전후 10년 정도 기간을 대상으로 부다페스트라는 도시의 물리적 변화, 사람, 정치, 예술과 지적 삶, 정신의 성향 등을 그려냈다. 유럽의 변방이었던 부다페스트는 1900년엔 손꼽히는 역동적인 도시였다. 25년 동안 인구는 3배로, 건물은 2배로 늘어났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문화도 만개했다. 문학과 미술, 철학, 과학 등에서 이른바 ‘부다페스트 세대’가 출현해 낡은 관습과 편협한 전통에서 벗어나려 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봉건적 요소가 있는 부르주아 문화, 시골의 특징이 담긴 도시적 요소 등 이질적이고 얼핏 모순돼 보이는 것들이 섞여 요동쳤다. 저자가 주목한 작가 크루디 줄러(1878∼1933)는 부다페스트를 두고 이렇게 썼다. “봄이면 이 도시는 페스트 쪽 강변을 산책하는 부인들의 향내와 제비꽃 냄새로 가득 찬다. 가을에는 부다 쪽이 이런 분위기다. 왕궁 벽 산책로에 떨어지는 밤송이 소리, 약간은 쓸쓸한 적막 속에 저쪽 간이 판매점에서 조각처럼 바람에 실려 오는 군악대의 음악. 가을과 부다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1946년 봄 부다페스트대에서 유럽 외교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소련의 위성 정권 수립을 예상하고 그해 여름 미국으로 이주, 필라델피아에 정착했다. 그리고 체스트넛힐 칼리지에서 역사학 교수로 일했다. 아름답고 쉬운 문체로 아름다운 시절, 아름다운 도시의 단면을 소개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미중 대립이 심화하는 가운데 세간에서는 중국 명청교체기인 17세기 조선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패권을 쥘 쪽에 ‘줄을 잘 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신흥 제국 명나라와의 갈등을 피하지 않고 여진족을 정벌하는 등 적극적 대외정책을 펼쳤던 15세기의 조선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몽골제국 붕괴 조짐에 요동 정벌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소천한국학센터와 한국역사연구회 중세국제관계사반, 중국 푸단대 한국학연구중심은 9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중화제국의 성쇠와 한반도의 대응’ 학술회의를 연다. 조선 초 대외정책의 뿌리는 고려 공민왕에서 찾을 수 있다. 정동훈 서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발표문 ‘몽골제국의 붕괴와 한반도의 군사화, 그리고 왕조 교체’를 통해 고려 말 급속한 군사화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따르면 ‘팍스 몽골리카’(몽골제국이 가져온 유라시아의 안정)로 인한 오랜 평화가 공민왕(재위 1351∼1374년) 즉위 전까지 고려를 비무장 상태로 만들었다. 제국의 붕괴가 가시화되자 공민왕은 빠르게 군비를 강화했다. 안보와 직결된 요동의 동녕부(東寧府)를 1370년, 1371년 공격해 점령하고 1374년에는 제주도에서 몽골 잔당이 일으킨 난을 평정했다.● 국익 지키는 선에서 사대(事大)이 같은 기조는 정벌에 참여했던 이성계와 정도전 등을 통해 조선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여진 문제다. 노영구 국방대 교수의 발표문 ‘중국 위협론의 역사적 실체와 한국의 역할’에 따르면 명은 몽골과 고려, 여진의 연결을 끊기 위해 요동 서부의 통제권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조선 태조 이성계는 요동 및 두만강 유역의 여진을 적극 위무해 조선화 정책을 추진했다. 세종 대에는 여러 차례의 여진 정벌로 영토를 확장했을 뿐 아니라 만주 남부 지역에 대한 영향력까지 확보했다. 이는 명목상 이 지역을 지배했던 명과의 충돌을 감수하는 결정이었다. 이규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는 “조선은 국익을 위협할 경우 사대의 대상이었던 명일지라도 단호하게 대처했다”고 설명했다.(발표문 ‘15∼16세기의 조선은 부국강병을 꿈꾸었는가?’)● 영향력 행사로 지역 안정 도모독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외 전략이 동아시아의 안정에 기여하기도 했다. 노 교수에 따르면 1449년 명 정통제가 몽골의 일파인 오이라트의 포로가 되고, 수도 북경은 1년 동안 포위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조선이 만주 남부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했기에 명은 방어에 힘을 집중할 수 있었고, 몽골의 공격을 격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추후 조선은 국제 정세에 대한 감각을 잃고 왜란과 호란을 겪었다. 15세기 말부터 정벌보다 국경 방어만 강화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명 이외의 세력을 무시하고 명과의 관계만을 의식한 탓이다. 노 교수는 “강대국과 중견국들이 함께 만들어온 것이 동아시아 역사의 보편적 모습”이라며 “오늘날에도 ‘어느 세력과 손잡느냐’ 대신 ‘어떻게 현상을 변경시킬 것인가’에 논의가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술회의에서는 이 밖에도 ‘전근대 한중관계의 해석이 갖는 현재적 의미’(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16세기 조선의 예의지국 위상과 중화’(구도영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조선 군신의 청 정세 인식’(김창수 전남대 교수), ‘청제국의 주변 상실과 조선의 부상’(손성욱 창원대 교수) 등의 발표가 진행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자원은 풍부하지만 내전이 벌어지는 나라가 있다. 반군이 자원을 팔아 전비를 충당하려 한다. 자원이 채굴되기는 할까, 운송은 할 수 있을까, 얽히고설킨 국제 역학관계 속에서 팔 수나 있을까. 웬만한 기업이라면 엄두가 안 날 것이다. 그러나 극도의 고위험에도 주판을 두드린 뒤 이익이 날 것 같으면 계약을 맺고 고수익을 올리는 이들이 있다. 글로벌 원자재 중개업체들이다. 석유, 금속, 곡식, 면화, 원두…. 당연한 얘기지만 원자재가 없으면 경제는 굴러가지 않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출신의 베테랑 저널리스트들이 오랜 취재를 바탕으로 국제 원자재 시장을 주무르는 중개업체들의 내막을 다뤘다. 오직 이익만 좇는 이들 업체에는 선악이 중요하지 않다. 아프리카 내륙국 차드의 독재자 이드리스 데비 장군은 2013년 중앙아프리카에서 세력을 키운 이슬람 민병대와 맞설 자금이 부족했다. 돈을 융통할 곳이 막힌 데비의 손을 잡아준 곳이 세계 3대 원자재 중개업체 가운데 하나인 글렌코어였다. 글렌코어는 차드의 원유 수출 권리를 담보로 그해에만 6억 달러를 지원했다. 데비 정부는 잔인한 학살과 고문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복잡한 정치 갈등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정부는 2014년 이라크 정부와 이슬람국가(IS)가 싸우는 틈을 타 키르쿠크의 유전을 장악했다. 이라크 정부는 해당 석유의 수출 권리가 중앙정부에 있다며 법적 대응을 거론했지만 원자재 중개업체들은 쿠르드 정부와 손을 잡았다. 이들은 이라크 북부에서 지중해 연안까지 뻗은 송유관으로 석유를 운송하며 석유 수출을 숨겼다. 2017년 한 유조선에 실린 석유가 쿠르드족의 ‘장물’이라며 이라크 정부가 소송을 냈지만 유조선은 무선 표지를 꺼버리고 아예 사라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의 투자은행들이 몸을 사리면서 원자재 중개업체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규제를 우습게 알고, 부정한 거래를 서슴지 않으며, 막대한 이익을 올려도 세금을 피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화를 돋우는 한편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지상이 멸망한 뒤 지하에 갇혀버린 인류. 한정된 공간에서 인구가 포화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해 출산도 주거도 통제한다. 정체불명의 약을 매일 먹지 않으면 정신재활원에 잡혀간다. 열다섯 살이 된 소년 마르코는 인간 복제 연구소를 지키는 용역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어느 날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간 마르코는 같은 용역회사에서 일하는 동갑내기 소녀 은희를 만나 첫사랑에 빠진다. 깊은 지하층의 재즈 바에서 나이를 속이고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꼭 거대한 고래의 울음소리처럼 매력이 있다. 마르코는 갑자기 출근을 하지 않는 은희의 집을 찾아간다. 은희는 겨우 팔 하나 정도 너비의, 좁은 집에서 몇 년 전 치매가 온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한편 회사 선배들은 원청회사와 용역업체의 계약서를 공개하고 임금을 인상하라고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하고 은희는 파업에 힘을 보태겠다고 나선다. ‘조급하고, 초라하고, 두려운’ 세계에서 마르코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은희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지켜질 수 있을까. 책에 담긴 ‘우주늪’, ‘이끼숲’ 등 연작 소설 3편 가운데 첫머리에 실린 ‘바다눈’의 줄거리다. 기술이 발전했어도 인류 사회의 모습은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영생에 실패했고, 뇌 정복에 실패했어. … 고작 똑같은 인간 만들고 땅이나 파고 있다니”라는 은희의 말처럼 인간은 ‘닫힌 세계’를 되풀이할 뿐이다. 같은 설정 아래 쓴 나머지 2편에서도 주인공들은 이 같은 세계와 반목하면서 성장하고, 자신들만의 길을 헤쳐 나간다. ‘천 개의 파랑’(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나인’(2022년 SF어워드 장편 부문 우수상) 등을 썼던 저자는 이번 책 ‘작가의 말’에서 “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조금 더 뚜렷하게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현실 세계를 옮긴 듯한 전개로 별다른 진입 장벽 없이 읽히는 것이 소설의 장점이지만 SF 장르에서 즐길 수 있는 비유의 맛은 다소 덜한 듯하다. 슬픔의 힘으로, 슬픔의 세계를 걷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간절한 마음이 형태를 갖춰 천 년이 넘은 뒤까지 전한다는 건 참 놀라운 일입니다. ‘명작: 흙 속에서 찾은 불교문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불교중앙박물관(서울 종로구)에 다녀왔습니다. 2015년 강원 양양 선림원지(禪林院址)에서 출토돼 오랜 보존처리를 마치고 공개된 9세기 금동보살입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보살상에 입혀진 금박의 광채는 폐허에 그 오랜 시간 묻혀 있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눈이 부셨습니다. 하나하나 따로 만들어진 광배와 보관(寶冠), 목걸이, 정병(淨甁) 등도 당대 문화의 찬란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불상은 개인의 원불(願佛·개인이 일생 섬기는 부처)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살은 천 년 동안 땅속에서 매미처럼 꿈을 꾸고 있었을까요, 원소장자의 염원을 간직하고 있었을까요. 금빛에 넋을 잃다가 ‘금입택(金入宅)’이 떠올랐습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말로 ‘금을 입힌 집’ 또는 ‘금이 들어간 집’이라는 뜻입니다. 신라의 전성시대 경주에는 금입택이 35채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진골 귀족들의 부유함과 사치스러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헌강왕(재위 875∼886년) 때에는 성 안에 초가집이 하나도 없었으며 추녀가 맞붙고 담장이 이어져 노래와 풍류 소리가 길에 가득 차 밤낮 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불상이 만들어진 때가 대략 그즈음입니다. 하지만 풍요의 정점에 이른 신라는 속으로는 썩고 있었습니다. 진골 귀족이 부(富)와 권력을 독점한 탓입니다. 학자들은 제작기술의 뛰어남으로 보아 선림원지 보살상이 경주에서 제작돼 양양으로 보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불상의 화려함 뒤에는 점차 말기로 다가가는 체제의 모순이 있었던 셈입니다. 달리 볼 수도 있습니다. 임영애 동국대 교수는 불상이 홍각선사(?∼880)의 원불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인 도의선사의 제자가 염거화상(?∼844)이고, 염거화상의 제자가 홍각선사입니다. 선림원지에서 나온 홍각선사탑비 비문에는 그가 말년에 설악산 억성사(億聖寺)로 돌아와 중창(重創)에 힘썼다고 나옵니다. 선림원지에 화엄종 사찰이었다가 선종의 요람이 된 억성사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근거입니다. ‘왕이 곧 부처’라는 논리로 왕권을 뒷받침했던 교종과 달리, 참선과 깨달음을 강조하며 기존 권위를 부정한 당대 선종은 호족과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억성사 터에서 나온 이 불상을 선종이라는 새로운 사상의 확산과 떼어놓고 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정점에 이른 불상의 화려함은 한 세계의 파국을 내포한 것이 아닐지요. 불상은 10세기 초 동해안 해일과 홍수, 그에 따른 산사태에 휩쓸려 억성사와 함께 순식간에 파묻힌 것으로 보입니다. 신라도 천 년 역사를 다하고 935년 멸망했습니다. 다시 약 1100년이 흐른 오늘날 우리 사회는 단군 이래 최대의 풍요를 누리는 동시에 전쟁이 벌어지는 나라와 같은 수준인,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달은 찼으니 기울까요, 아니면 새로운 사상에 힘입어 다시 차오를까요. 부처님오신날이 코앞입니다. 비록 불자는 아닙니다만 독자 여러분들의 가내 평안을 빕니다.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질소는 생물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단백질 골격의 절반이 질소다. 공기의 80%가 질소일 정도로 널려 있지만 생물은 직접 활용하기 어렵다. 질소 원자 2개가 결합해 질소 분자(N₂)가 만들어지는데 원자끼리 3개의 팔로 강하게 결합돼 깨기 힘들기 때문이다. 질소의 결합은 산소 분자나 수소 분자보다 두 배 가까이 강하다. 자연에서 질소 분자의 결합이 깨져 생물이 이용하기 쉬운 형태로 바뀌는 경로는 사실상 번개, 그리고 콩과 식물의 뿌리에 기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뿐이다. 19세기 남미에서는 부족한 천연 비료를 쟁탈하려는 국가들이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중화학공업을 통해 질소 분자의 결합을 깨고 비료를 대량 생산하지 못한다면 현존하는 세계 인구 80억 명 중 적어도 30억 명은 굶어 죽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로 ‘김상욱의 양자공부’ 등을 냈던 저자가 공저를 제외하면 5년 만에 출간한 교양과학서다. 계간지 ‘스켑틱’에 연재한 칼럼을 보강해 썼다. 책은 원자와 별, 생명과 인간을 다룬다. 물리학에서 화학, 생물학, 인간학을 넘나들며 물질과 지구, 에너지의 근원, 우주와 빅뱅, 생명의 복제와 진화 등을 설명한다. 인간이 만든 물건과 인간이 포함된 생물 전체는 지구를 이루는 원자와 동일한 원자로 이뤄져 있다. 11, 12세기 페르시아의 천문학자이자 시인인 오마르 하이얌은 “흙이 말한다. 왜 당신은 나를 건드리는가? 그대와 나는 둘 다 같은데. …우리는 모두 단지 흙일 뿐이다”고 썼다. 이 글은 시적 표현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인 셈이다. 책의 제목은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따왔다. 저자는 “나에게 하늘은 우주의 법칙, 바람은 시간과 공간, 별은 물질과 에너지로 다가온다”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의 경이로움을 담아보려 했다”고 했다. 부제(원자에서 인간까지)처럼 ‘거의 모든 것’을 다루는데, 각각의 분량이 길지 않음에도 알차서 눈길이 간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혹시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 앱을 사용하는지? 도로 정체가 생기면 앱은 사용자들이 특정 경로에 몰리지 않도록 여러 서로 다른 길을 추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누군가는 편한 대로로 가고, 다른 누구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로 가게 된다. 당신은 인공지능(AI)에 위치 정보를 제공하고 도움을 받을 뿐 아니라 이미 사실상 행동을 통제당하는 세계에 사는 셈이다. ‘AI 이후의 세계’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 대니얼 허튼로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슈워츠먼컴퓨팅대 학장 등 저명인사들이 AI가 가져올 세계의 변화에 대해 함께 논의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책에 따르면 AI는 세계 안보 질서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냉전 시대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았던 까닭은 간단하다. 쐈다가는 남아있는 상대방의 핵전력으로 보복당해 자신도 절멸할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상호 확증 파괴’ 전략이 받아들여지면서 핵 사용은 억제됐다. 그러나 군사 분야에 AI 사용이 전면화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자율성과 비인간적 논리에 바탕을 둔 AI에 권한이 위임되면 전쟁의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은 극도로 커진다. 일부 AI 기반 무기의 위력은 실전에서만 확인 가능할 수도 있다. 실제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 한 특정 국가가 군비 경쟁에서 앞섰는지 아니면 뒤처졌는지를 모를 수 있다는 뜻이다. 힘의 균형에 의한 평화가 성립하려면 일단 균형이 잡혔는지 아닌지가 파악돼야 하는데, 계산 착오로 분쟁이 발발할 소지가 크다. 책은 이 같은 변화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AI 기반 전쟁의 특징을 참작해 전략적 기조를 세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구글이나 바이두 등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의 AI는 전례 없는 편익을 줬지만 그에 따른 위험도 크다. AI는 이용자에게 콘텐츠와 관계를 추천하고, 정보와 개념을 분류하고, 이용자의 취향과 목적을 예측하면서 개인적, 집단적, 사회적으로 특정한 선택을 부추길 수 있다. 당신의 생각을 조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존에도 악의적으로 허위정보를 퍼뜨리려는 시도를 완벽히 제압하기는 힘들었지만 만약 생성 AI가 혐오와 분열을 조장할 목적으로 악용된다면 인간의 힘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저자들은 AI 발전의 역사를 일별한 뒤 “아직은 인간이 미래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며 “우리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잡지 에스콰이어의 수석 저널리스트가 쓴 ‘1%를 보는 눈’은 AI의 시대에도 당분간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본다. 넷플릭스 같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예측하고자 하지만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최첨단 알고리즘이라고 해도 우리 욕망의 변화를 수치화하기란 어렵다는 것. 책은 의사와 기업 임원, 운동선수, 기상학자, 디자이너, 작가 등의 창의적 발견의 사례를 소개한다. 그리고 인간의 적응력과 창의성은 기계의 예측력을 능가한다고 강조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가 말기로 치닫던 1986년의 남아공. 농장주 가족의 일원인 아모르는 사춘기 소녀다. 어느 날 아모르의 엄마 레이첼이 병을 앓다가 죽는다. 아프리카너(남아프리카에 사는 네덜란드계 백인)인 아모르의 고모와 고모부는 유대교로 개종한 레이첼의 죽음을 오히려 반기는 것 같다. 엄마의 영구(靈柩)를 마주하기 싫었던 아모르는 집 밖 멀리서 엄마의 방을 지켜본다. 엄마의 방에서 일하고 있는 흑인 하녀 살로메를 보고 살아있는 엄마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땅과 함께 사들였던’ 살로메는 엄마의 병시중을 정성스레 도맡았다. 생전 엄마는 살로메에게 보상을 해 주자며 살로메 가족이 얹혀사는 작고 낡은 판잣집을 주라고 남편 마니에게 부탁했다. 아모르는 아빠에게 ‘약속을 지켜달라’고 하지만 마니는 제대로 듣지 못한다. 군인인 오빠 안톤은 시위를 벌이던 여성을 총으로 쏴 죽이고 마음이 동요하던 와중에 어머니 레이첼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집으로 향하던 그는 시위대의 돌에 머리를 맞아 다친다. 그리고 자신이 어머니를 총으로 쏴 죽였다는 착란에 시달린다. 레이첼의 시신을 염하는 동안 다른 한쪽 방에서는 유족들이 말싸움을 벌인다. 마니는 아내가 유대교로 개종한 것이 다른 유대인 가족들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심지어 아내는 마음속으로까지는 진정한 유대인이 아니었고, 단지 남편을 괴롭히려고 개종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농장은 오빠가 물려받지만 가족의 죽음과 장례식은 뒤에도 이어진다.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지켜지는 걸까. 등장인물은 모두 다른 꿈을 꾼다. 죄책감과 혐오, 지워지지 않는 상처, 비밀스러운 욕망을 가지고 각자의 세계를 산다. 몰이해와 차별, 억압으로 점철된 세계에 구원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포스트아파르트헤이트 세대 작가로 주목받은 저자는 이 소설로 2021년 영국 부커상을 받았다. 역사와 개인적 도덕, 실존을 매끄럽게 한데 버무리는 전개와 문체가 매력적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어쩌다 시골에서 버스를 탈 일이 있으면 맨 앞자리에 앉는 걸 좋아한다. 전면 통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충북 괴산군에서 버스를 모는 저자의 눈에는 다른 것이 들어온다. 시골 사람들의 삶이다. 시골에는 노인들이 많다. 2019년 저자가 처음 버스를 몰기 시작했을 때는 기사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노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기사가 예뻐 보여서가 아니었다. 글을 몰라 버스 행선지가 적힌 안내판을 읽지 못하는 이들이 낯익은 기사 얼굴을 보고 집으로 가는 버스 노선을 알아봤던 것. 저자는 이 같은 사정을 알게 된 뒤로는 얼굴을 빤히 보는 노인분들에게 행선지를 먼저 여쭤본다고 했다. 시골 버스에서는 별별 사람을 다 만난다. 상의는 두툼한 파카를 입었지만 하의는 꽃무늬 사각팬티 하나만 걸친 채 버스에서 욕설을 경 읽는 것처럼 내뱉는 남자,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빨리 가자”며 버스 기사를 재촉하는 사람…. 그래도 승객은 대부분 유쾌하고 기사는 친절하다. 주고받는 농담에 차 안에 웃음꽃이 핀 날, 너무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음을 터뜨린 노인이 있었는지 버스에서 틀니가 분실물로 발견되기도 한다. 기사는 무거운 개 사료 포대나 깨 자루 등을 지닌 승객이 타고 내릴 때 짐을 옮겨 준다. 추운 겨울 터널을 걸어서 지나가는 요양보호사를 위해, 조금이라도 바람이 덜 미치도록 버스를 천천히 몰기도 한다. 시골 버스는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다. 장날을 기다린 노인들이 첫차를 타고 장 구경을 간다. 시골 버스 운행 횟수가 늘어나면 노인의 우울증 지수가 낮아진다는 논문이 있다고 한다. 또한 주민들의 ‘생존권’이기도 하다. 노선이 없어질까 봐 ‘오늘은 몇 명이나 탔는지’ 되풀이해 물어보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버스에 의지해 직장에 다니는 아주머니에게 버스는 곧 생계다. 저자는 “시골 버스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소시민들의 생활공간”이라고 했다. 미문의 외피를 띤 교언이 넘쳐나는 시대, 독자를 시골 버스로 이끄는 질박한 에세이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해외 문화계에서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열풍이 거세다. 기존 창작물의 경우 작품 서두에 독자나 시청자가 볼 수 있도록 일종의 경고문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출판사 팬맥밀런은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년) 최신판 서두에 “문제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 역사의 충격적이던 시절, 노예제의 공포를 낭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글을 실었다. 디즈니도 고전 애니메이션 ‘피터 팬’(1953년)과 ‘아기 코끼리 덤보’(1941년) 등에 흑인 노예, 아메리카 원주민, 아시안 등을 비하한 내용이 담겼다며 경고 문구를 붙여 내보낸다. 아예 원작을 수정하기도 한다. 퍼핀 출판사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비롯한 로알드 달의 소설에서 외모 관련 비하 논란이 일 수 있는 표현을 대거 수정했다. ‘뚱뚱하다’는 표현은 ‘거대하다’로 바꿨고, 마녀를 ‘가발 아래 대머리를 숨기고 있다’고 묘사한 부분에는 별도로 “여성이 가발을 쓰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별도 설명을 달았다. 하퍼콜린스 출판사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미스 마플’ 등에 있는 인종차별적 표현을 통째로 삭제했다. 새로운 창작물에서는 흑인 등 소수자를 전면에 배치하는 작품이 늘고 있다. 디즈니는 신작 실사 영화 ‘인어공주’ 주인공에 흑인인 핼리 베일리를 캐스팅했다. 앞서 넷플릭스는 ‘트로이: 왕국의 몰락’에서 신들의 왕 제우스 역에 흑인 배우를 내세웠다. ‘아르센 뤼팽’을 모티브로 한 시리즈물 ‘괴도 뤼팽’에서는 흑인 주인공뿐 아니라 서사에서도 세네갈 출신 이민자였던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복수하는 내용을 그렸다. 하지만 ‘억지스럽다’는 반발도 일고 있다. 영화에서 칭기즈칸 역을 백인이 맡았던 것은 인종차별임이 명확한데, 백인이 자연스러울 역할을 흑인 등이 맡는 것이 맞느냐는 주장이다. 과거 아시안 등 비(非)백인 역할을 백인이 연기했던 관행을 두고 ‘화이트 워싱’이라고 비판했던 것을 뒤집어 ‘블랙 워싱’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콘텐츠에서는 논란이 더욱 거세다. 다음 달 10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퀸 클레오파트라’는 실제로는 흑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낮은 클레오파트라 배역을 흑인이 맡았다. 한 이집트의 사학자는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계였다. 넷플릭스는 이집트 문명의 기원이 흑인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고 반발했다. 픽션이나 드라마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이니 역사 왜곡 논란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들이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하는 건 차별적 인습을 무신경하게 되풀이하다가는 콘텐츠를 계속 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커진 소수자들을 마냥 무시했다가 자신들이 의지해 있는 사회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본다. 콘텐츠에서 특정 집단에 대해 비하하거나 왜곡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건 소수자에게 보이지 않는 펀치를 날리는 것과 같다. 사실 한국인이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수전노 같은 모습으로 왜곡됐던 것도 얼마 안 됐다. 구부러진 막대를 펴려면 반대쪽으로 힘을 줘 구부릴 수밖에 없는 법이다.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전형적인 포유류 종은 100만 년 정도 존속했다. 그러나 인류는 추상적 사고 능력을 갖고 있기에 미래에 대비할 수 있고, 기존 종의 한계를 넘어설 수도 있다. 태양은 앞으로 50억 년 동안 타오를 것이고, 태양계는 그보다 훨씬 전에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이 되겠지만 인류가 다른 별로 이주할 수 있다면 까마득히 먼 미래까지 존속하지 말란 법도 없다. 발전, 정체, 퇴보 또는 소멸. 인류의 미래는 이 가운데 어떤 궤적을 그릴 것인가. 서산대사는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도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고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같은 가르침처럼 장기적 미래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 우리 시대에 도덕적으로 가장 우선해야 하는 일이라는 이른바 ‘장기주의’를 설파한다. 저자는 미래는 필연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소수의 행동이 장기적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오늘날 노예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죄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의 등장 이후 인간의 10%는 노예였다. 이를 깨뜨린 건 우발적 변화였다. 18세기와 19세기 초 일부 퀘이커교도의 운동이 노예제 철폐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노예제가 체제에 이익이 됐지만 가치관의 변화는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전혀 다른 운명을 이끌어냈다. 책은 기후변화나 핵전쟁으로 인한 문명의 붕괴, 유전자 조작 병원체로 인한 인류의 멸종, 발전 속도의 정체 등 여러 시나리오를 그리면서 인류가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쁜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은? 생각보다 크다. 기술 발전이 지속된다면 이론적으로는 집에서도 바이러스를 설계하고 생산하는 일이 가능해질 수 있다. 이번 세기에 멸종 수준의 전염병이 발생할 확률을 1% 정도로 보기도 한다. 저자는 행동의 결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효율적 이타주의’를 정립해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지금의 세계를 ‘녹은 유리’ 상태에 비유한다. 아직은 뜨거워서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는 굳기 전의 유리처럼 단일한 가치관이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얘기다. 유리가 일단 굳으면 깨지느냐 마느냐만 남는다.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세계의 운명이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짙은 남산의 푸르른 소나무를 올려보면서…맑은 한강의 여울을 멀찌가니 바라보면서…빛나며 번성하길 가르침이여.” 평범한 교가(校歌) 같지만 1908년 경성고등여학교(경성고녀, 후에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로 개칭) 개교식에서 부른 노래다. 이 학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다녔던 조선 제일의 엘리트 여학교였다. 식민 통치와 여성에 관해 연구한 일본 홋카이도정보대 명예교수가 경성고녀에 다녔던 이들을 인터뷰해 식민지 조선에서의 경험과 인식을 조명했다. 구조적 강자였던 일본인 소녀들의 삶은 풍요로웠다. 대지주 등 조선에 와서 부유해진 집안의 여식으로 부족한 게 없었다. 학교에서는 영어와 미술, 수영, 구기, 음악 등 다양한 과목을 배웠다. 성대한 운동회와 음악회가 열렸고, ‘내지’(일본 본토)로 호화로운 수학여행을 갔다. ‘현모양처’라는 규범에 갇혀 억압적인 본토와 달리 학교 분위기는 개방적이었고, 진취적이었다. 여성 비하적 발언을 하는 교사에게 집단 항의를 하기도 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따로 있었다. 조선인과는 생활권 자체가 분리돼 있었고, 접점은 ‘오모니(어머니)’나 ‘기지배’로 불렸던 식모 등 고용인이 거의 전부였다. 모두가 ‘너무나 맛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는 김치를 제외하면 조선의 문화도, 조선인도 깔봤다. 조선인이 일본어를 하는 것에도, 창씨개명에도 의문을 갖지 않았다. 조선을 그냥 일본이라고 여겼고, 식민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패전 직후 태극기와 만세 소리의 물결을 접하고 나서야 조선인이 얼마나 강렬하게 독립을 열망했는지, 일본의 지배가 얼마나 조선인을 괴롭혔는지 깨달았다. 풍요로운 생활 기반을 뿌리째 잃어버리고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는 냉대에 직면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독립을 빼앗은 후 언어와 문자 등 문화까지 빼앗아 간 식민정책 속에서, 부끄러울 정도로 무지한 채로 살았다”고 반성했다. 저자는 “일본에서 이러한 자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존재 의의를 생각하고 싶었다”고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