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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난 듯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입구에 있던 흙과 부서진 바위 등은 물에 젖은 비누처럼 우수수 흘러내렸다. 굉음에 이어 하늘로 솟아오른 연기는 시야를 가렸다. 뿌옇게 사방을 둘러싼 연기는 해발 2000m가 넘는 만탑산의 자태까지 순간 가렸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24일 폭파했다. 폭파에 앞서 갱도 내부까지 전격적으로 다국적 기자단에 공개했다. 이날 오전 11시 폭파 작업에 나선 북측은 5시간 넘게 ‘불꽃 폭파쇼’를 이어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약속한 비핵화 행보의 의미 있는 첫걸음이란 평가와 함께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에 이은 ‘비핵화 쇼 2탄’ 아니냐는 말도 현장에서 나왔다. 전날 숙소인 원산에서 출발한 5개국 공동취재단은 기차로 10시간여를 이동해 이날 오전 풍계리 현지에 도착했다. 북한은 오전 11시 가장 먼저 북쪽의 2번 갱도를 폭파했다. 2∼6차 핵실험이 이어진 2번 갱도는 구조가 구불구불해 폭파하기 까다로운 곳이다. 북한은 폭파 전 취재진을 갱도로 데려가 갱도 안에 설치된 폭발물을 확인하도록 했다. 북한은 이날 3개 갱도 모두 폭파에 앞서 취재진이 갱도 내부를 보도록 했다. 미국 CNN의 윌 리플리 기자는 “약 35m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설치된 축구공 모양의 폭발물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갱도를 본 취재진은 갱도에서 500m 이상 떨어진 안전지대로 이동해 폭발을 직접 지켜봤다. 2번 갱도에선 2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4명의 군인이 폭파 작업에 나섰다. 핵무기연구소 부소장은 “촬영 준비됐냐”고 물은 뒤 ‘하나 둘 셋’을 센 후 폭파 지시를 내렸다. 입구 쪽에서 첫 폭음이 들린 뒤 안쪽에서 2번 더 폭음이 울렸다. 폭파 후에는 취재기자들을 갱도 쪽으로 다시 안내해 갱도 입구가 완전히 붕괴된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도록 했다. 3시간 후인 오후 2시 17분에는 서쪽 4번 갱도로 이동해 단야장(제련시설)까지 함께 폭파했다. 이어 오후 2시 45분 생활건물 등 5개 지원시설 폭파 작업을 하고 오후 4시 2분 ‘하이라이트’로 꼽힌 3번 갱도를 폭파시켰다. 한 번도 핵실험을 하지 않은 3, 4번 갱도는 핵탄두 실험을 하는 가장 안쪽 실험실부터 ‘ㄱ’ ‘ㄷ’자 모양으로 쭉 이어가는 갱도에서부터 입구까지 차례로 폭파한 것으로 보인다. 현장을 지켜본 체셔 특파원은 “북측 관리자가 폭파 직전 ‘3, 4번 갱도는 핵실험을 위해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췄던 곳’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특히 3번 갱도를 북한이 정리한 건 비핵화 카운트다운을 촉진시키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이번 폐쇄 작업에 최소 100kg 이상의 폭약을 쏟아부으며 취재진 눈앞에서 비핵화 의지를 선전하는 ‘불꽃쇼’를 선보였다. 기자단은 “(폭발 당시) 통나무로 만든 관측소가 엄청난 광경으로 산산조각 났다” “갱도 입구에 전선과 많은 양의 플라스틱 폭발물 등이 엉켜 자태를 뽐냈다”는 등 폭파 전후 상황을 묘사했다. 북측 인사는 1번 갱도는 이미 핵실험으로 2006년 무너져 이번에 따로 폭파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갱도 폐쇄에 이어 군인들이 거주하는 장소인 막사를 폭파시켰다. 취재진은 폭파 행사 후 풍계리를 떠나 원산으로 향했다. 25일 오전 6, 7시경 원산역에 도착해 취재한 내용과 사진 및 영상을 전 세계에 공개할 예정이다. 취재진은 이날 원산행 특별열차 안에서 직접 본 폭파 행사를 국제전화를 통해 속보로 전했다. 다만 북한이 이번 폐쇄 이벤트에 전문가들을 배제한 데다 기자들의 답사 기회도 제한적으로만 허용한 만큼 완전한 폐기를 검증받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결국 국제사찰단의 본격 검증 전에 핵실험 관련 증거를 ‘인멸’해 면죄부를 받겠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풍계리=외교부공동취재단 / 신진우·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한국 취재진의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행은 막판 반전으로 가까스로 성사됐다. 전날 외신 기자들만 원산에 데려간 북한은 23일 오전 9시경 판문점 연락채널이 열리자마자 취재진 명단을 수령하며 방북을 전격 허용했다. 취재진은 이후 급히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으로 이동해 정부가 마련한 수송기에 탑승해 뒤늦게 풍계리 다국적 취재단에 합류했다. 북한의 기류 변화는 한국 취재진이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북측의 입국 허가를 기다리다 거부당한 뒤 비행기편으로 귀국하던 22일 밤 감지됐다. 통일부가 오후 9시 26분경 “북측이 23일 아침 명단을 수용하면 남북 직항로를 이용할 수 있다”고 알린 것. 정부 관계자는 “22일 저녁 한국 기자단이 타고 갈 수송기를 준비해 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이를 감안하면 남북 간에 22일 ‘한국 취재진 추가 합류’에 대해 일단 공감대를 형성했고, 북한이 23일 새벽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일부 수용할 수 있다고 밝힌 뒤 최종적으로 방북 허가를 통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국 취재진이 타고 간 항공기는 ‘공군 5호기(VCN-235)’다. ‘VCN-235’는 기존 군사 작전용 공군 수송기인 CN-235의 좌석 방향을 개조해 만든 귀빈 수송용 항공기다. ‘V’는 VIP를 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VCN-235는 정부 내 총 두 대가 있는 ‘쌍둥이 비행기’이며 다른 하나는 공군 3호기다. 모두 공군 현역 장교가 정조종사와 부조종사를 맡는다. VCN-235의 개조 전 버전인 CN-235는 20여 대가 있다. 공군 5호기가 원산 땅을 밟으며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정부 수송기의 첫 방북 기록이 됐다. 올해 3월 대북특사단 등은 방북 당시 모두 대통령 전용기이자 여객기 형태인 공군 2호기(보잉 737-3Z8)를 이용했다. 정부는 이번 공군 5호기 운용비 부담에 대해 “향후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손효주 hjson@donga.com·신진우 기자}
매주 하루씩 15년째 노인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해군 장병들의 사연이 22일 뒤늦게 알려졌다. 사연의 주인공은 해군 잠수함사령부 909교육훈련전대(이하 909전대) 장병들이다. 909전대 장병들은 매주 수요일 3, 4명씩 돌아가며 경남 창원 진해구 태백동의 노인회관을 찾는다. 이들은 노인회관 무료급식소에서 식재료를 손질하고 배식을 돕는 봉사활동을 15년째 하고 있다. 해군에 따르면 909전대 봉사활동은 2003년 2훈련대대 주임원사였던 김경수 예비역 원사(63)와 창원 대광사 운성 스님이 “무료급식 봉사를 같이 하자”며 의기투합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회관에 무료급식소를 만든 뒤 재료 구입비는 진해구(당시 진해시)와 대광사에서 대고 조리는 대광사 자원봉사자들이, 배식 및 식재료 손질 등은 해군이 하기로 했다. 당초 이 봉사활동에는 909전대 2훈련대대 장병들만 참여했지만 2005년부터는 909전대 전체 장병이 동참했다. 기존 장병이 새로 전입해 오는 장병에게 권하는 방식으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홍준표에게서 온전한 소리가 나오기를 바란다는 것은 까마귀 입에서 꾀꼬리 소리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0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맹비난했다. 이 신문이 홍 대표를 비난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날은 6면의 절반을 할애해 6500여 자를 썼다. ‘홍히에나(홍준표+하이에나)’ ‘홍갱이(홍준표+빨갱이)’ 등 북한 매체 특유의 자극적인 표현도 동원했다. 신문은 이날 ‘홍준표의 추악한 자화상―오명대사전’이라는 글에서 “남조선 각 계층은 역사적인 북남 수뇌 상봉과 판문점 선언을 시비질하며 푼수 없이 놀아대는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의 대결 광란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직 대통령(노무현)을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모독하는 등 걸레 같은 혓바닥이 너불거릴 때마다 사람들은 ‘버럭 준표’ ‘막말 준표’라고 침을 뱉고 있다”고 했다. 신문은 이어 “홍준표가 민족의 한결같은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이 인기를 올리는 기회나 되듯이 너스레를 떨고 있다”며 “검사 때부터 ‘홍키호테’라는 오명을 달고 다녔는데 (돈키호테 저자인)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는 그처럼 도덕적으로 저렬한 히스테리, 불망나니가 아니다’라며 땅속에서 일어나 벌컥 성을 낼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홍 대표는 최근 6·13지방선거 필승결의대회에서 “북한 노동신문에서 ‘홍준표는 역적패당의 수괴’라고 연일 욕질을 하고 있다.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가 될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북한의 남북 고위급회담 무기 연기 통보 이후 미 전략폭격기 B-52가 실제로 한반도에 전개될 계획이 있었는지를 두고 진실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 전말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군 당국은 북한이 회담 연기를 통보한 16일 “(한미 연합공군 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에 B-52는 참가하지 않는다”며 북한을 달랬다. 그러나 실제로는 맥스선더(11∼25일 진행)와 비슷한 기간에 한반도 인근에서 진행되는 또 다른 한미 및 미일 연합 훈련에 B-52가 참가할 계획이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18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B-52는 이달 한반도 전개가 계획되어 있었다. WSJ는 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미일 공군 연합 훈련(블루 라이트닝·Blue Lightning)에 B-52 2대 참가가 계획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이 훈련에 불참키로 했다는 것이 WSJ 보도 내용이다. 국민들의 반일 정서는 물론 사상 최초의 한미일 공군 훈련을 통해 대북 군사 압박에 나설 경우 북한이 크게 반발할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WSJ는 한국의 불참으로 이 훈련이 한미, 미일 공군이 별도로 하는 것으로 변경됐다고 보도했다. 한미 및 미일 공군이 맥스선더 훈련 기간에 별도의 연합 훈련을 진행키로 한 것. 이 훈련 일환으로 B-52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내까지 비행할 계획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북한이 회담 연기를 통보한 16일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은 당시 긴급회동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송 장관의 요청으로 B-52가 한반도 인근 작전은 하되 KADIZ에는 진입하지 않는 것으로 조율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16일 군 당국은 이 같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대신 “B-52는 맥스선더 훈련에 전개될 계획이 원래부터 없었다”는 말만 반복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군 관계자는 “정부가 북한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라고 지적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19일 북한 남성 2명이 귀순한 가운데 이들 중 한 명이 한때 북한군 장교로 잘못 알려져 소동이 일었다. 20일 당국에 따르면 40대로 추정되는 북한 남성 2명이 19일 오전 소형 목선을 타고 인천 옹진군 백령도 해상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귀순했다. 해당 해역에서 경계 중이던 해군과 해경이 발견하고 귀순 의사를 확인한 뒤 이들의 신병을 정보당국에 인계했다. 그런데 귀순 직후 이들 중 한 명이 북한군 소좌(우리 군 소령)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북한군 병사나 주민, 부사관이 아닌 장교가 귀순했다면 2008년 4월 보위부 소속 이철호 중위 이후 10년 만이기 때문. 10년 만의 북한군 장교 귀순이 호전과 경색을 거듭 중인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정보당국 관계자는 “정확한 신원은 조사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초기 조사 결과 두 사람 다 민간인으로 밝혀졌다”고 밝혔다.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일부 정보가 와전돼 보고되며 발생한 해프닝이라는 설명이다. 정보당국은 이 남성이 이미 전역한 장교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정확한 귀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신문을 진행 중이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북한이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전격 취소한 이후 닷새 연속 비판 발언의 수위를 높이며 강경한 태도를 이어가는 것은 어떻게든 ‘대화 국면’에 확실한 브레이크를 걸어야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최대 규모로 실시된 한미 연합 공군훈련의 ‘수위’에 대해 불만을 가진 데다 미국이 비핵화 요구 수위를 낮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로키에서 ‘하이키(high-key)’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닷새 연속 격한 발언 이어가는 북한 북한은 16일 0시 반경 우리 정부에 고위급 회담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통지문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긴장 국면을 이어갔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담화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 ‘재고려’ 입장을 밝히더니 17일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나서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 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놨다. 그러더니 북한은 남북관계의 ‘뇌관’ 중 하나인 탈북 여종업원 송환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19일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과 조선중앙통신의 문답을 통해 여종업원들에 대한 우리 정부의 기획 탈북 의혹을 제기하며 “남조선 당국은 박근혜 정권이 감행한 전대미문의 반인륜적 만행을 인정하고 사건 관련자들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우리 여성공민들을 지체 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써 북남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주무하는 적십자회를 앞세워 비판을 한 것은 8·15 이산가족 상봉과 탈북 여종업원 송환을 연계시키려는 것이다. 앞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7일 국회에서 “여종업원들은 자유 의사로 한국에 와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밝히며 송환 불가 입장을 밝힌 것을 감안하면 여종업원 송환 문제가 향후 ‘판문점 선언’ 이행의 핵심 논란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이어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19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등을 겨냥해 “탈북자 버러지들의 망동”이라고 비판했고, 20일엔 일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판하면서 “한 줌도 안 되는 인간쓰레기들의 발광”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북한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돌연 중지한 데 이어 남북 경색에 대해 한국 정부의 책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서자 정부는 일단 말을 아끼며 의도 파악에 분주한 모습이다. 정부 당국자는 “(경찰력을 동원해) 대북 전단 살포를 막는 등 정부는 판문점 선언 이행에 성실하게 응했다”고 밝혔다. ○ 북한, 한미 정상회담 전까지는 강공 유지할 듯 북한이 최근 들어 격한 불만을 터뜨린 것은 결국 지난달 ‘판문점 선언’ 이후 한미에 바랐던 기대치가 충족되지 못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으로 북한이 고위급 회담을 취소하며 불만을 드러낸 한미 연합 공군훈련 ‘맥스 선더’다. 이번 훈련에는 스텔스기인 F-22 8대가 투입돼, 지난해 12월 ‘비질런트 에이스’ 때 F-22 6대, F-35A 6대, F-35B 12대 등 스텔스기 24대가 동원된 것에 비해서는 규모가 줄었지만 북측 입장에서는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여전히 참수 훈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에 대한 불만이 대남 불만의 형식으로 ‘간접적’으로 표면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한미 정상 통화에서도 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묻고, 문재인 대통령이 답하며 대북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 일각에선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기선 제압의 성격과 함께 군부 등 북한 내 강경파들이 갑작스러운 비핵화 논의에 당황할 수 있는 만큼, 적절한 선에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판문점 선언 이후 한미가 그 성과에 살짝 도취됐는데 북한이 정신이 번쩍 드는 메시지를 보낸 격”이라면서도 “북한이 북-미 회담을 깰 의사는 없는 만큼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오는 메시지에 따라 북한의 자세가 달라질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황인찬 hic@donga.com·손효주 기자}

청와대 국가안보실 국방개혁비서관에 육군 소장인 김현종 제3보병사단장(53·육사 44기·사진)이 내정됐다. 김도균 육군 소장(53·육사 44기)이 이달 초 남북 군사회담과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국방부 대북정책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국방개혁비서관 자리는 현재 공석이다. 17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청와대는 현재 김 소장에 대한 인사검증을 진행 중이다. 이 소식통은 “야전 경험과 군 정책 분야 경험을 두루 아우른 만큼 무난히 검증을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1988년 육사를 수석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 3군단 참모장 등을 지냈다. 국방부 정책실에서도 근무한 경력이 있다. 지난해 9월 단행된 장성 인사에서 소장으로 진급해 같은 달 3사단장에 취임했다. 앞서 청와대는 이달 초 국방부 대북정책관에서 물러난 박인호 공군 소장(54·공군사관학교 35기)을 국방개혁비서관에 임명하는 ‘맞바꾸기’ 인사를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방개혁이 문재인 정부 주요 과제이고 규모가 가장 큰 육군을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육군 출신으로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북한이 16일 ‘북침전쟁 소동’이자 ‘군사적 도발’이라며 맹비난한 한미 연합 공군훈련 ‘맥스선더(Max Thunder)’는 매년 양국 공군 전투기 등 항공기 100대 이상을 투입해 실시하는 대규모 공군훈련이다. 맥스선더는 매년 하반기에 실시되는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와 함께 한반도 한미 연합 공군훈련의 양대 축이다. 올해 훈련은 11일 이미 시작됐으며 25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훈련엔 양국 전투기 등 항공기 100여 대가 참가했다. 100여 대 중 북한이 16일 남북 고위급회담 무기한 연기 통보를 하게 한 주원인으로 꼽히는 전력은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불리는 스텔스 전투기 F-22(랩터)와 B-52 전략폭격기다. 이번 훈련엔 2009년 이 훈련이 시작된 이래 최초로 스텔스 전투기가 참가했다. 특히 미 본토에서 날아온 F-22가 8대나 참가했다. 단일 훈련으로는 F-22가 가장 많이 한반도에 전개됐다. 당초 B-52 2대도 전개될 계획이었지만 북한이 훈련을 비난한 직후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특보는 이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동북아평화경제협회 포럼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을 만나 17일부터 전개될 B-52를 전개되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북한이 회담 연기를 통보한 직후인 이날 오전 긴급 회동을 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번 훈련에는 B-52가 참가할 계획 자체가 없었다. 송 장관이 취소시켰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문 특보의 발언을 반박했다. 이날 국방부가 낸 공식 입장을 놓고도 지나치게 북한을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국방부는 “맥스선더 훈련을 계획된 대로 진행할 것”이라면서도 “이 훈련은 조종사 기량 향상을 위한 훈련으로 작전계획 시행이나 공격 훈련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훈련 목적을 조종사 기량 향상으로 국한한 것. 그러나 군 당국이 지난해와 지지난해에 낸 맥스선더 훈련 개시 보도자료에는 훈련 성격을 “한반도 유사시 한미 공군의 연합작전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고 전투 기량을 높이기 위한 실전적인 공중전투 훈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실전 상황을 가정해 전력 운용 계획을 적용해 훈련한다”고도 돼 있다. 군 당국은 매년 맥스선더 훈련 때마다 보도 자료를 내 훈련을 홍보해 왔다. 이번엔 보도 자료도 내지 않았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북-미가 비핵화 방법론을 두고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미군이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3을 전격 시험 발사했다. 미 공군은 14일 새벽(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기지에서 핵탄두가 제거된(un-armed) 미니트맨3 ICBM을 발사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미사일은 약 6700km를 날아 목표 지점인 태평양 마셜 군도 콰절린 환초 주변 해역에 낙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시험 발사를 하자마자 발사 영상과 사진을 미군 국방영상정보배포시스템(DVIDS)을 통해 공개했다. 미니트맨3은 최대 사거리가 1만3000km로, 미국 어디에서 발사해도 북한 전역을 30분 내 타격할 수 있는 ICBM.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고 있는 핵우산의 핵심 전력 중 하나다.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에 북한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압도적인 핵 전략자산인 미니트맨3을 발사한 이유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정례적인 점검 차원인 만큼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분석이 있다. 미국은 미니트맨3 미사일이 워낙 오래된 만큼 관리 차원에서 분기별로 평균 1회씩 발사하며 정상 작동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미니트맨3을 시험 발사했다. 미국은 유엔의 평창 겨울올림픽 휴전 결의에 따라 1분기(1∼3월) 시험 발사 계획을 지난달로 연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군사훈련까지 축소하는 마당에 의도적으로 미니트맨3을 쏘며 북한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전략적 타이밍’을 치밀하게 택해 시험 발사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올해 첫 미니트맨3 시험 발사가 실시된 시점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간)로 남북 정상회담 직전이었다. 올해 두 번째 시험 발사 역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의 모든 핵무기를 해체해 미국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언급한 직후 진행됐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분석관은 “우연히 시점이 겹쳤다고 하지만 전략적 발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비핵화 방법론을 두고 북-미가 벌이는 기 싸움에서 대북 기선 제압을 하고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비핵화에 나설 때까지 대북 군사적 압박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북-미 정상의 한반도 비핵화 담판을 앞두고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가 현재 2만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을 의회 승인 없이 2만2000명 미만으로 줄일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이후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의회가 대(對)한반도 방위공약을 지키기 위해 견제에 나선 것이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7080억 달러(약 761조 원) 규모의 2019회계연도 국방수권법 수정안(H.R.5515)이 9일(현지 시간) 하원 군사위원회를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했다. 찬성은 60표, 반대 1표였다. 당초 원안에는 주한미군 2만2000명 하한선 조항이 없었으나 민주당의 루번 가예고 의원(애리조나)이 추가했다. 가예고 의원실은 “동맹국들에 대한 안보 유지 목적 외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주한미군 감축을 협상 카드로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 같은 조항을 추가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한선 설정 이유에 대해선 “현재 주한미군 규모는 2만3400명에서 2만8000명 사이를 오르내린다”며 “행정부에 충분한 재량권을 제공하기 위해 2만2000명을 최소 수준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이 트럼프 행정부의 독단적 결정을 막기 위해 주한미군 하한선 조항을 국방수권법안에 포함시켰으나 공화당에서도 별다른 반대가 없어 하원 본회의에 이어 상원 통과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원을 모두 통과해 법률로 확정되면 의회 승인 없이는 주한미군을 크게 감축할 수 없게 된다. 만약 주한미군을 2만2000명 미만으로 줄이려면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하며 지역의 동맹 안보를 심각하게 저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국방장관이 상·하원 군사위와 세출위에 증명해야 한다. 최근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의 주한미군 관련 포린어페어스 기고와 뉴욕타임스의 ‘주한미군 감축 검토 지시설’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주한미군 감축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이번 국방수권법안은 영원히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이 법안은 미국 정부의 2019년 회계연도가 종료되는 내년 9월까지만 유효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 카드로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을 검토하지 못하게 하는 안전장치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1년 3개월이 되는 내년 9월이면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정상국가화 이행에 대한 신뢰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기여서 해당 법안의 연장 여부를 다시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국방수권법 수정안이 오히려 향후 주한미군을 6500명가량 감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한국군 관계자는 “주한미군 규모는 현재도 일부 부대의 순환배치 과정에서 5000명가량의 편차가 수시로 발생한다”며 “미 하원이 주한미군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적잖은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고, 북-미 수교까지 이뤄질 경우 어떤 방식으로든 주한미군의 임무와 규모에 변화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주성하·손효주 기자}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모든 핵무기를 제거하고 해체해 미 테네시주 오크리지(국립연구소)로 가져가겠다”며 북-미 간에 논의되고 있는 비핵화 시나리오의 일단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비핵화 절차가 완전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길 원한다. 그것은 불가역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미국 본토로 핵을 옮겨서 폐기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핵시설과 핵무기로 나눠 ‘투트랙 폐기’ 볼턴 보좌관은 13일(현지 시간) ABC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비핵화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처음 제시했다. 그동안 그는 ‘리비아식 모델 적용’ ‘선(先)핵폐기, 후(後)보상’ 등의 원론적 방법론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핵 폐기 장소 등을 언급한 적은 없다. 볼턴 보좌관은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PVID)’에 대해 “(핵무기를) 테네시주의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그것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을 제거하는 것, 탄도미사일 문제를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감안하면 북한의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 등 ‘핵 부동산’은 북한 현지에서 폭파 등을 통한 폐기 과정을 거치고, 완성된 핵물질이나 핵탄두 등 ‘핵 동산’은 미국에 들여와 확실하게 폐기하는 ‘투트랙 북핵 폐기’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구체적인 북핵 폐기 방법까지 공개하는 것은 9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대표로 한 ‘북핵 협상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비핵화 방법과 보상을 놓고 꽤 의견을 좁혔기에 가능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이 잇따라 비핵화 시 내어줄 경제 보상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도 결국 김정은에게 트럼프식 비핵화 이행 서류에 서명하라고 촉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볼턴 보좌관은 북한의 ‘PVID’ 이행과 관련해 “보상 혜택이 흘러들어가기 전에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 북한, 미국에 핵무기 내어줄까 미국이 북한에 체제 보장과 경제제재 해제를 원하면 “핵무기를 넘기라”고 요구했지만 북한이 이를 그냥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는 관측이 아직은 더 많다. 북한이 여섯 번의 실험을 거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까지 거의 완성한 핵능력을 고스란히 포기할 만큼 아직 미국과 신뢰관계가 쌓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리비아나 카자흐스탄은 비핵화 선언 후 보유했던 핵을 오크리지로 옮겼지만, 구소련의 핵을 해체한 것은 미국이 아닌 러시아였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의 핵능력 관련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 우방국으로 핵무기를 이관하고, 해체 과정에 자신들이 참관하길 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트럼프-김정은식 ‘비핵화 접근법’을 과거 잣대로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북한은 하루빨리 제재에서 벗어나길 원하고, 미국은 일괄타결을 강조하며 양측이 ‘속도전’에는 일단 합의한 상황. 이에 평양에 있는 핵무기가 자체 비행이 아닌 미군 수송기에 실려 직선거리로 1만1136km 떨어진 오크리지에 도착하는 모습이 그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도 “실제 핵무기 해체는 미국이 할 것이고 다른 나라들의 도움도 아마 받을 것”이라며 미국 주도의 속도감 있는 폐기 가능성을 비쳤다. 또 그가 “(핵과) 탄도미사일 의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고, 생화학 무기도 살펴봐야 한다”며 ‘차등’을 둔 것도 우선 핵과 미사일 폐기에 집중해 속도를 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IAEA나 제3국이 폐기를 주도하면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면서 “미국은 핵을 가져와 직접 폐기하니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고, 북한은 ‘당신들이 다 가져갔으니 통 크게 보상하라’고 요구할 수 있어 ‘윈윈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황인찬 hic@donga.com·손효주 기자}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 핵무기를 옮길 지역으로 특정한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핵물질 및 핵개발 장비 이관이 이뤄진 곳이다. 이른바 미국이 주도해 온 비핵화 프로세스의 ‘종착역’ 격이다. 미 국방부는 소련 해체 이후 카자흐스탄 내 우스티카메노고르스크 창고에 남은 고농축우라늄(HEU)을 1994년 초 수송기를 이용해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옮겼다. ‘사파이어 작전’이란 이름으로 미 중앙정보국(CIA) 국무부 에너지부 등 주요 부처가 모두 동원된 극비 작전이었다. 창고엔 HEU 600kg가량이 있었다.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위력 15kt·1kt은 TNT 1000t의 위력) 10여 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Y-12(국가안보단지)로도 불리는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는 리비아 비핵화 과정에도 등장한다. 2004년 리비아가 비핵화를 선언한 뒤 핵무기 설계도, 원심분리기, 핵물질, 탄도미사일 핵심 부품 등이 모두 이곳으로 옮겨졌다. 그 규모는 25t에 달했다.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는 2005년 리비아에서 확보한 핵물질 ‘6불화우라늄(UF6)’을 분석해 UF6의 출처가 북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결론내기도 했다. 오크리지는 2000년대 이후 비핵화의 상징으로 떠올랐지만 냉전 시절엔 핵무기 개발의 상징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1942년 시작된 미국의 핵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무대 중 하나가 바로 오크리지였다.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는 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목적으로 1943년 설립됐다. 당시 핵무기 설계는 뉴멕시코주 사막에 위치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가, 플루토늄 등 핵물질 생산작업은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및 워싱턴 핸퍼드 내 연구소 등에서 진행됐다. 이 프로젝트로 생산된 원자폭탄 ‘리틀보이’(위력 15kt)와 ‘팻맨’(20kt)은 1945년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강타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12일 북한 외무성은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 내 모든 갱도를 폭파하겠다고 공언했다. 1차 핵실험을 진행한 1번 갱도와 2∼6차 핵실험이 진행된 2번 갱도는 물론이고 아직 한 번도 핵실험을 하지 않은 3, 4번 갱도까지 모두 폐기하겠다는 것. 핵실험장 경비 인원과 연구원 철수까지 언급하는 등 핵실험장 주변까지 모두 정리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지난달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언급했다는 전문가 참관은 일단 배제되는 것으로 보여, 핵실험장 폐기에 대한 실질적 검증보다는 ‘김정은식 이벤트 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갱도 안쪽 순차적 폭파할 듯 북한은 우선 “모든 갱도를 폭발 방법으로 붕락시키고 입구를 완전히 폐쇄한다”며 구체적인 핵실험장 폐기 방법을 밝혔다. 북한이 스스로 밝힌 내용으로 미뤄볼 때 북한은 아직 핵실험이 진행되지 않은 3, 4번 갱도의 경우 갱도 맨 안쪽부터 순차적으로 재래식 TNT 폭약 등을 이용해 폭파하는 방법을 쓸 가능성이 커 보인다. 폭파 작업을 위해 북한은 앞서 갱도 내 전선 등 핵실험에 필요한 각종 장비 철거 작업에 착수한 바 있다. 실제로 3, 4번 갱도는 아직 핵실험이 진행되지 않은 만큼 갱도 안쪽 기폭실에 핵물질이 없어 비교적 안정적인 폭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는 그 길이가 최소 1km에서 최대 2km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갱도 안쪽부터 순차적으로 폭파한 뒤 갱도 입구에서 100m가량을 남겨두고는 자갈, 모래 등으로 메울 것으로 보인다. 이후엔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통해 1차 봉인하는 것이 유력한 시나리오로 꼽힌다. 이 작업까지 마치고 나면 입구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드는 식으로 ‘완전 봉인’을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콘크리트로 입구만 메울 경우 우회로를 뚫어 새 갱도를 언제든 만들 수 있다. 그런 만큼 갱도 맨 안쪽부터 붕괴시키는 방법으로 핵실험을 완전히 중지한다는 의지를 국제사회에 피력하려 할 것이라는 게 군 안팎의 분석이다. ○ ‘2번 갱도’ 폭파 시 방사성물질 유출 우려 문제는 2∼6차 핵실험이 진행된 2번 갱도 폐기 작업이다. 1번 갱도는 2006년 1차 핵실험 당시 붕괴돼 별도의 폭파 절차가 필요 없다. 하지만 2번 갱도는 직선 형태가 아니라 방사성물질 유출을 막기 위해 달팽이관 형태의 구불구불한 구조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갱도 내에는 핵실험 충격을 흡수하고 방사성물질 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차단벽 및 차단문이 10곳 이상 설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 여러 차례 핵실험을 하기 위해 주갱도뿐만 아니라 가지갱도를 여러 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폭파 작업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번 갱도는 여러 차례 핵실험으로 기폭실 주변 차단벽이 붕괴되거나 심각하게 훼손됐을 수 있다”며 “섣불리 폭파했다가는 방사성물질 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추가적인 유출이 없도록 차단벽을 보강한 뒤 콘크리트 타설 등으로 메우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소련이 수백 회에 걸쳐 핵실험을 진행했던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도 1990년대 초반∼2000년 순차적으로 갱도를 폐기할 당시 콘크리트 타설을 통해 봉인하는 방식을 주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핵 전문가 없는 폐기 그러나 북한은 이번 현장을 기자단에만 공개하기로 했을 뿐 전문가 참관 여부를 밝히지 않아 검증 시작부터 비협조적인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북한 외무성은 12일 공보를 통해 “(풍계리) 북부핵시험장 폐기를 투명성 있게 보여주기 위하여 국내(북한) 언론기관은 물론이고 국제 기자단의 현지 취재활동을 허용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를 공신력 있게 검증할 수 있는 전문가 참여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당초와 달리 전문가 참여를 배제한 것은 아직 미국으로부터 ‘문서화’된 비핵화 보상을 약속받지 않은 상태에서 핵실험장 상세 정보 유출을 꺼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밝히는 이벤트가 아닌 북핵 능력 검증으로 흐를 가능성을 의식한 것이라는 것. 다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전문가를 부르는 것은 또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나 절차가 있을 수 있다. 일이 복잡해지면 (공개) 시일이 더 늦춰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미 회담 일정 등이 빠듯한 만큼 일단 5월 내 폐쇄라는 ‘약속 이행’에 집중했다는 것이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북한이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기로 하면서 동시에 김정은이 얼마만큼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본격 시작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찰단의 본격 검증 전에 핵실험장을 폭파해 폐기하는 게 자칫 그동안의 핵실험 관련 증거를 ‘인멸’해 북한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북한에 요구한 핵무기 해외 반출도 백악관이 정확한 숫자를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실질적 비핵화를 검증하기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북한 외무성은 12일 공보를 통해 풍계리 실험장 폐기 일정을 공식화했다. 청와대가 남북 정상회담 이틀 뒤인 지난달 2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핵실험장 폐쇄 의사를 대신 전한 데 이어 본격적인 폐쇄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 한미 당국은 이번 북한 결정에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풍계리 핵실험장 내 모든 갱도를 폐기하는 것이 과연 비핵화 검증의 최선책인지에 대해서도 전문가 의견이 엇갈린다. 아직 핵실험이 진행되지 않아 깨끗한 3, 4번 갱도를 폭파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북한으로서는 ‘미래의 핵’을 포기하는 상징성을 얻을 수 있고 국제사회 또한 북한의 추가 핵실험 우려를 상당 부분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과거 핵실험이 있었던 갱도의 폭파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5차례나 핵실험이 진행된 2번 갱도는 사건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당분간 그대로 남겨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향후 국제사회의 핵사찰이 진행될 때 반드시 사찰을 진행해야 하는 핵실험장의 전면적인 폐기를 허용하는 건 증거 인멸을 방관하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물론 반론도 있다. 국제 전문가들이 폐기된 핵실험장에서 충분히 북한의 핵실험 내용과 핵능력을 파악할 만한 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번 갱도가 폭파되더라도 핵물질이 있던 갱도 내 기폭실 위치를 추정해 시추하면 유의미한 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며 “이미 일부 붕괴된 2번 갱도에 들어가 시료를 채취하는 것보다 일단 폭파한 뒤 채취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백악관이 김정은에게 핵무기의 해외 반출을 요구했지만 김정은이 실제로 얼마만큼의 핵무기를 갖고 있는지는 정확한 통계 자료가 없다. 한 소식통은 “미 중앙정보국(CIA)도 이와 관련한 정확한 자료가 없다고 한다. 오랫동안 북-미, 남북이 단절돼 있어서 마땅히 믿을 만한 휴민트(인적 네트워크에 기반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추후 검증 과정에서 북-미가 서로 ‘핵 검증 대차대조표’를 맞추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10일자 1면엔 북-미 간의 훈풍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달 전 ‘1차 회동’ 당시 잔뜩 경직된 채 기념사진을 찍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번엔 함께 너털웃음을 지으며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북한은 폼페이오가 악수하면서 왼손으로 김정은의 어깨를 감싸는 사진을 1면 톱 사진으로 대문짝만 하게 실었다. ○ 김정은-폼페이오 기념사진 8장 공개한 북한 김정은은 9일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평양 노동당 본청에서 폼페이오와 90분간 회담했다. 노동신문은 1면에 회담 기사와 함께 무려 8장의 사진을 실으며 회담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는 데 집중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 정도면 북한 내부에서도 북-미 정상회담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사안이란 점을 인식시키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키워드는 ‘화해와 감사’였다. 두 사람이 건물 내에서 정답게 회담을 하는 모습, 로비에서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 등이 담겼다.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는 김정은이 폼페이오를 맞으며 통역 없이 친근하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도 포착됐다. 특히 김정은의 발언이 압권이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따뜻이 맞이하시며 얼마 전 국무장관으로 공식 취임한 데 대하여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씀하시였다”고 전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폼페이오는 김정은 참수작전을 실무 지휘하는 등 초강경 대북 압박의 선두에 섰던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금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적 대북 매파인 그에게 영전을 축하한 것이다. 김정은은 폼페이오가 전한 트럼프의 구두 메시지를 듣고 나서는 “대통령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고 사의를 표하시였다”며 “훌륭한 회담을 진행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조선중앙TV는 이 대목을 오후에 전하며 “구두 메시지를 전해 들으시고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데 대해서와 조미(북-미) 수뇌 상봉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고 사의를 표하시였다”며 ‘새로운 대안’을 추가했다. 트럼프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제안을 했고, 김정은은 이에 만족하고 억류자까지 최종적으로 풀어줬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만찬을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폼페이오에게 벤츠 리무진을 내주고 청사를 떠날 때 주차장까지 나와 배웅했다.○ 김정은과 트럼프, 무엇에 합의했나 이 같은 보도사진과 기사 내용을 두고 북-미가 비핵화 방법론을 두고 벌여온 치열한 신경전이 어느 정도 해결 국면에 접어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회담 장소와 시기에 대한 최종 합의를 넘어 두 정상이 만나 발표할 합의문에 대해서도 큰 틀의 합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미국이 ‘단계적 비핵화’를 일부 받아들이는 대신 그 단계를 일괄타결식 비핵화에 준하는 수준으로 최소화하는 등 북-미가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선에서 한 발짝씩 물러났을 것”이라고 했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전 외교통상부 차관)는 “미국이 향후 있을 한반도 평화협정 및 종전선언 논의에서 논의 주체를 남북미 3자가 아니라 북한 지원 세력인 중국도 동참하는 것으로 양보하는 방식으로 비핵화 이견을 좁혔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회담을 앞두고 본인을 띄운 대내 선전에 나섰다는 지적도 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김정은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며 내부 결속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7, 8일 중국 다롄(大連)을 방문했을 때 이용한 전용기 ‘참매1호’ 측면에 이전엔 볼 수 없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장(國章)’이 새겨진 모습이 포착됐다. 노동신문은 9일 김 위원장의 방중 소식을 상세히 전하며 참매1호가 등장하는 사진 여러 장을 게재했다. 김정은이 국외 행사에 항공기를 처음 이용한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 핵심은 기체 출입문 왼편에 크게 박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장’이었다. 원래의 국장은 1948년 북한이 제정한 것으로 백두산과 수풍댐, 철탑, 벼 등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상징하는 상징물이 담겨 있다. 하지만 참매1호에 새겨진 국장은 좀 달랐다. 기존 국장 아래 국무위원장을 새겨 넣어 ‘국무위원장 전용 마크’로 새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과거 같은 자리엔 인공기가 있었다. 북한이 국장을 새긴 것은 정상국가 행보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측면에도 미국 문장(紋章)을 변형한 대통령 문장이 그려져 있는 등 세계 각국 대통령 전용기에는 국장이나 문장이 새겨져 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이번 ‘공개’ 평양 방문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난 건 물론이고 억류됐던 미국인 3명과 함께 돌아오는 가시적인 성과까지 거두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탄력받고 있다. 특히 폼페이오가 평양을 방문한 지 13시간 만에 귀국길에 오르면서 양측이 비핵화 등 주요 의제를 놓고 합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초 폼페이오는 최소 1박 2일 일정을 예상하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비핵화 방식을 두고 북한과 담판을 지을 만한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김정은이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겠다는 확실한 ‘선물’을 트럼프 행정부에 안겨주면서 향후 북-미 간 막바지 세부 협상도 급물살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흥분된다. (회담) 시간, 장소 확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김학송 씨 등 억류자 3명의 건강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 뒤 직접 공항에 마중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북-미 정상회담의 일시와 장소가 확정됐다”고도 했다. 사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행 전용기를 타고 갈 때까지도 이들의 귀환을 100%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동행한 기자들과 만나 “옳은 일(억류자 석방)을 할지에 대해 (북한에) 물어보겠다”며 “그렇게 한다면 위대한 제스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와 날짜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한 질문에는 “최고위급 차원에서 이 날짜, 이 장소로 하겠다는 약속은 돼 있다”고만 할 뿐 “확정짓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확답을 피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일정이 정해졌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지만 공개하지 않아 의문이 확산됐다. 하지만 자신의 최측근인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난 뒤 회담 일정이 정해졌다고 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회담 방식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억류자 석방 △회담 일시, 장소 확정 △김정은과의 담판이란 세 가지 ‘미션’을 모두 손에 쥐고 귀국하게 되면서 난기류를 타는 듯했던 회담 세부 논의까지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가 공항에까지 마중 나간다는 건 북-미 정상회담이 이제 ‘리얼리티 쇼’가 아닌 ‘리얼 쇼’가 될 것이란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북한이 이 정도까지 했다는 건 (북핵 사찰과 관련해) 북한이 신고한 시설뿐만 아니라 미국이 검증하고 싶은 곳까지 검증할 수 있도록 양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진단했다. 북-미가 단순히 큰 틀에서 합의했을 뿐만 아니라 비핵화 절차는 물론이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 제공 수준까지 논의를 진전시켰을 거란 얘기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행 전용기 안에서 “평양에서 진행될 이번 협상으로 북-미 정상 간 회담에서 논의될 의제를 확정하기 바란다”고 했다. 또 평양에 도착해선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여러분의 나라가 자국민이 받을 자격이 있는 모든 기회를 누리도록 함께 협력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했다. 3월 말 1차 방북 목적이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 있었다면 이번엔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 만큼 분위기를 숙성시키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인 셈이다. ○ 회담 전까지는 압박 끈 놓지 않을 듯 이와 함께 폼페이오 장관은 “(이전보다 이슈를 놓고) 더 파고 들어가서(nail down)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는 틀을 구축하길 희망한다”고도 했다. 특히 폼페이오는 이번 방북길에 미 국무부 내 핵협상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브라이언 훅 정책계획국장 등을 대동해 단순히 ‘면담’ 차원의 방문이 아님을 시사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 간 안보관계에 있어 역사적, 장대한 변화를 불러올 기회를 제공할 조건들을 만들어내기 바란다. (이러한 조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도 달성해줄 것”이라고 했다. 폼페이오가 이날 최근까지 사용하던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PVID)’ 대신 CVID를 다시 언급한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영구적인 핵 폐기’를 뜻하는 PVID가 아무래도 비핵화 수위와 기준을 높여 평양을 난처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북-미 정상회담 시간과 장소를 결정짓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폼페이오의 방북은 북-미 회담의 촉매 역할을 한다고 봐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북-미 회담의 결실을 상당히 알차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폼페이오는 김정은이 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다시 한번 비핵화에 대한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요구한 것과 관련해 “우리는 (비핵화 논의를) 잘게 쪼개서 (문제를) 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 협상 우위를 점하는 북한 특유의 ‘살라미 전술’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손효주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는 모습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이르면 다음 주에 공개 폐쇄 행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6일 “핵실험장 폐쇄 공개 날짜가 아직 정확히 정해지진 않았다”면서도 “북한이 10년 넘게 사용한 핵실험장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한미 참관단 구성에 걸리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물리적으로 이달 중순부터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남북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면 곧바로 날짜가 택일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핵실험장 폐쇄가 22일로 정해진 한미 정상회담이나 아직 날짜가 공개되지 않은 북-미 정상회담 바로 직전에 ‘세리머니’ 형식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타이밍을 택해 국제사회에 ‘비핵화 진정성’을 확인시키고, 최대한 많은 보상을 끌어내려 할 것이란 분석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5월 중 공개 폐쇄’를 언급한 만큼 북한도 손님맞이 준비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최근 핵실험장 갱도 내 전선 등 핵실험에 쓰는 각종 장비 철거 작업에 들어간 것도 공개 폐쇄를 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한미의 핵 전문가들이 핵실험장에서 북한의 실제 핵능력을 유추할 만한 각종 데이터를 획득할 수 없게끔 ‘증거 없애기’ 격 현장 청소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6차 핵실험이 불과 지난해 9월 진행된 만큼 핵실험장 주변엔 방사성 핵종 등 북한의 핵능력을 보다 정확히 분석할 수 있게 하는 유의미한 정보들이 상당수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 또한 국방부, 통일부 등 유관 부처 관계자와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전문기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 구성 관련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파견 근무를 했거나 공동 활동을 해본 경험이 있는 연구원이나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 소속 직원 등이 참관단 1순위가 될 것으로 전해졌다. 10년 만에 이뤄지는 북한의 핵실험장 공개가 어떻게 이뤄질지도 관심사다. 함경북도 길주군에 위치한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에는 외빈이 묵을 만한 숙박시설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북한이 2008년 공개한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은 평양과 가까워 IAEA 관계자와 기자단이 차로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대북 전문가는 “영변과 달리 풍계리는 오지”라며 “평양에서 헬기로 가거나 항공편으로 청진공항까지 간 뒤 육로로 이동할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핵실험이 진행된 만큼 풍계리 일대가 방사능에 심각하게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고, 숙박시설도 여의치 않은 만큼 핵실험장 폐쇄를 최단 시간 내에 확인한 뒤 평양으로 돌아오는 ‘당일치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손효주 hjson@donga.com·황인찬 기자}

지난달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합의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드는 방안을 놓고 관계부처 장관 4명이 이례적으로 한꺼번에 현장을 찾아 주민의견 청취에 나섰다. 또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경찰력을 동원해 제지하는 등 정부가 ‘판문점 선언’ 이행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선언문에 담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실행을 간접적으로 촉구하는 모양새다. 송영무 국방, 강경화 외교, 조명균 통일 등 외교안보부처 장관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5일 서해 최북단인 연평도와 백령도를 찾았다. 어민들은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나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에 대한 걱정 없이 서북도서 어민 및 이 일대 북한 어민만 조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강경화 장관은 “(NLL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해소해 남북이 자유롭게 어업 활동을 하게 되면 중국은 물론 제3국 선박이 안 올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무 장관 역시 “NLL 문제는 남북 긴장만 해소되면 중국, 어로 등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믿는다”고 답했다. 조명균 장관은 “NLL은 유지하는 게 기본 전제”라면서 “(남북) 공동어로든 평화수역이든 NLL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NLL은 완전히 남북관계가 달라지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모르겠지만 그 전에는 NLL을 손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건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있는 내용”이라며 “다시 논의하기 전까지는 NLL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재차 말했다. 조 장관의 발언은 그간 NLL을 인정하지 않은 북과 ‘NLL을 유지한 채로’ 충돌 방지 협상에 나선다는 것이어서 북한이 앞서 관련 입장 변화를 밝힌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확성기 방송 중단 합의도 빠르게 이행되고 있다. 군 당국은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대북확성기 40여 대를 4일까지 모두 철거했고, 북은 이에 앞서 철거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전단 살포 중단은 남남 갈등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5일 경기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시도했지만 전단 살포 반대 단체의 집회와 경찰의 제지에 막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나 전단 살포를 공권력으로 막는 건 표현의 자유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또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의 전단 살포를 정부가 막는다는 지적도 제기돼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는 등 군사 문제 실무 협의를 위해 이달 내 열기로 한 남북 장성급(소장급) 군사회담도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 측은 당초 판문점 선언과 달리 국방장관 회담을 먼저 여는 방안도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현역 장성이 나서서 민감한 군사적 합의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시각도 있었던 것. 이에 민간인 신분인 송 장관이 수석대표로 나가는 국방장관 회담을 먼저 진행해 군 최고 지휘자 간 화해 분위기를 먼저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한때 힘을 얻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3일 열린 판문점 선언 이행추진위원회 첫 회의에서 “선언 내용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애초대로 장성급 회담을 먼저 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정부 소식통은 “회담의 급이 내부적으로 정리된 만큼 장성급 회담 개최에 속도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