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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부모들은 자녀에게 줄 ‘선물 고민’에 빠진다. 언젠가부터 한국 문화에서 ‘어린이날=선물 받는 날’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직장맘 민주애 씨(37)도 올해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5세 아들을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여러 날을 고심했다. 민 씨는 “어린이날 시즌이 되면 인기 장난감은 대형마트에선 일찌감치 품절이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가격이 정가의 두 배 가까이로 올라 골치가 아프다”며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면 친구들끼리 ‘누구는 뭐 받았대’라고 비교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신경이 쓰이더라”고 토로했다.○ 마음의 선물 주자던 어린이날인데 실제 오피니언라이브 빅데이터센터를 통해 살펴보니 최근 3년 동안 어린이날 직전 한 달간 사람들이 블로그 등 온라인 문서에서 ‘어린이날’과 관련해 제일 많이 검색한 연관어는 ‘선물’(7만8746건)이었다. 아이들도 응당 ‘어린이날’을 ‘선물’의 동의어로 생각한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26일 홈러닝 프로그램인 ‘아이스크림 홈런’을 이용하는 초중고교생 3261명에게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38.2%(1245명)가 ‘평소 갖고 싶던 장난감이나 선물을 받고 싶다’고 답했다. 2위는 ‘가족들과 놀러 가고 싶다’(34.5%·1124명), 3위는 ‘용돈을 받고 싶다’(10.4%·339명)로 용돈까지 포함하면 물질적인 걸 받고 싶다는 응답이 절반에 가까운 48.6%에 달했다. 하지만 이는 당초 어린이날 취지와 어긋난다. 장정희 방정환연구소장은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제정한 1922년 당시에는 어린이들이 일제 치하에서 힘든 노동을 감당해야 했다”며 “한국 특유의 장유유서 문화 속에 어린이란 말조차 없이 자식들을 ‘애 새끼’ ‘애 놈’ ‘애 녀석’ 이렇게 부르는 실정이다 보니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예우하자는 뜻에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1924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후계자가 될 어린이를 위해서는 손톱만치도 생각함이 없다”며 “우리의 어린이는 밥이나 떡이나 고운 옷은 받아보았으나 참으로 따뜻한 사랑과 공경을 받은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방 선생은 “어린이를 물욕의 마귀로 만들고 싶지 않다”며 “돈보다도 과자보다도 신성한 동화를 들려주시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엄마 아빠의 손편지’ ‘좋은 추억’ 공유 어른도, 아이도 물질적인 어린이날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어린이날의 참뜻을 살릴 수는 없을까.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선물을 주는 것이 나쁘다고만 볼 순 없지만 단순히 물건을 사서 전하는 행위에만 집중하는 게 문제”라며 “같은 선물을 사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얼 원하는지, 어떻게 살지 등을 논의하며 부모와 자녀가 상호작용하고 즐겁고 좋은 추억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 전문의는 이어 “선물만큼이나 중요한 게 부모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며 손편지를 함께 쓸 것을 권했다. 부모가 매년 어린이날 자녀에게 쓴 손편지를 버리지 말고 모아 두면 훗날 좋은 책이 된다는 것이다. 오 전문의는 “어릴 때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였고 매년 부모들이 이렇게 좋은 말을 해줬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춘기를 보낼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사랑을 나누는 특별한 이벤트를 통해 어린이날의 추억을 쌓는 이들도 있다. 김정은 씨(43·여)는 어린이날을 맞아 4일 11세 아들, 9세 딸과 함께 에티오피아 청소년을 후원하기 위해 국제어린이양육기구인 ‘컴패션’을 통해 마라톤에 참가할 예정이다. 김 씨는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은 항상 다른 사람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김효순 씨(47·여)는 매년 어린이날 아이들과 함께 친가와 외가를 방문한다. 김 씨는 “네가 엄마의 딸, 아들이 돼줘서 고맙고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는 걸 일깨워주기 위해 조부모님들을 찾아뵙는다”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내가 이렇게 사랑 받는 존재구나’라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방 선생이 어린이 잡지를 만들 때마다 매호 뒷장에 항상 실었던 표어가 ‘씩씩하게 참된 소녀(어린이)가 됩시다’ ‘늘 사랑하며 도와갑시다’였다”며 “부자가 되어라, 1등이 되어라는 말씀은 전혀 없었다. 이는 지금 우리 부모들에게도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주애진 jaj@donga.com·유원모 기자}
어린이날 연휴인 4∼6일 전국 고궁과 조선왕릉, 박물관 등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문화재청은 어린이날인 5일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4대궁과 종묘, 조선왕릉에 만 12세 이하 어린이와 동행하는 성인 가족 2명은 무료입장할 수 있다고 1일 밝혔다. 매주 월요일마다 문을 닫는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과 조선왕릉은 대체 휴일인 6일에 개방한다.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은 5일 정오에 야외마당에서 ‘궁중문화축전과 함께하는 고궁 음악회’를 개최한다. 국립민속박물관도 5일 ‘푸르른 오월, 어린이 세상’을 주제로 어린이날 대잔치를 연다. 전통 문양을 활용한 배지 만들기, 한지 주머니 만들기, 민속놀이 등이 진행된다. 전북 전주시 국립무형유산원은 4일 인형극 ‘꼭두,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얼쑤마루 대공연장 무대에 올리고, 충북 충주시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서는 4일 열쇠고리 만들기, 옛 신분증인 호패 만들기, 상하이 임시정부 가상현실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매년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부모들은 자녀에게 줄 ‘선물 고민’에 빠진다. 언젠가부터 한국 문화에서 ‘어린이날=선물 받는 날’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직장맘 민주애 씨(37)도 올해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5세 아들을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여러 날을 고심했다. 민 씨는 “어린이날 시즌이 되면 인기 장난감은 대형마트에선 일찌감치 품절이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가격이 정가의 두 배 가까이로 올라 골치가 아프다”며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면 친구들끼리 ‘누구는 뭐 받았대’라는 비교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신경이 쓰이더라”라고 토로했다.● 마음의 선물 주자던 어린이날인데 실제 오피니언라이브 빅데이터센터를 통해 살펴보니 최근 3년 동안 어린이날 직전 한 달간 사람들이 블로그 등 온라인 문서에서 ‘어린이날’과 관련해 제일 많이 검색한 연관어는 ‘선물(7만8746건)’이었다. 아이들도 응당 ‘어린이날’을 ‘선물’의 동의어로 생각한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26일 홈러닝 프로그램인 ‘아이스크림 홈런’을 이용하는 초중고생 3261명에게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내고 싶냐고 물었더니 38.2%(1234명)가 ‘평소 갖고 싶던 장난감이나 선물을 받고 싶다’고 답했다. 2위는 ‘가족들과 놀러 가고 싶다(34.5%·1124명)’, 3위는 ‘용돈을 받고 싶다(10.4%·339명)’로 용돈까지 포함하면 물질적인 걸 받고 싶다는 응답이 절반에 가까운 48.6%에 달했다. 하지만 이는 당초 어린이날 취지와 어긋난다. 장정희 방정환연구소장은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제정한 1922년 당시에는 어린이들이 일제 치하에서 힘든 노동을 감당해야 했다”며 “한국 특유의 장유유서 문화 속에 어린이란 말조차 없이 자식들을 ‘애 새끼’, ‘애 놈’, ‘애 녀석’ 이렇게 부르는 실정이다 보니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예우하자는 뜻에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1924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후계자가 될 어린이를 위해서는 손톱만치도 생각함이 없다”며 “우리의 어린이는 밥이나 떡이나 고운 옷은 받아보았으나 참으로 따뜻한 사랑과 공경을 받은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방 선생은 “어린이를 물욕의 마귀로 만들고 싶지 않다”며 “돈보다도 과자보다도 신성한 동화를 들려주시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엄마·아빠의 손 편지’ ‘좋은 추억’ 공유 어른도, 아이도 물질적인 어린이날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어린이날의 참 뜻을 살릴 수는 없을까.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선물을 주는 것이 나쁘다고만 볼 순 없지만 단순히 물건을 사서 전하는 행위에만 집중하는 게 문제”라며 “같은 선물을 사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얼 원하는지, 어떻게 살지 등을 논의하며 부모와 자녀가 상호작용하고 즐겁고 좋은 추억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 전문의는 이어 “선물만큼이나 중요한 게 부모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며 손 편지를 함께 쓸 것을 권했다. 부모가 매년 어린이날 자녀에게 쓴 손 편지를 버리지 말고 모아두면 훗날 좋은 책이 된다는 것이다. 오 전문의는 “어릴 때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였고 매년 부모들이 이렇게 좋은 말을 해줬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춘기를 보낼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사랑을 나누는 특별한 이벤트를 통해 어린이날의 추억을 쌓는 이들도 있다. 김정은 씨(43·여)는 어린이날을 맞아 4일 11세 아들, 9세 딸과 함께 에디오피아 청소년 후원을 위한 국제어린이양육기구인 ‘컴패션’ 마라톤에 참가할 예정이다. 김 씨는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은 항상 다른 사람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김효순 씨(47·여)는 매년 어린이날 아이들과 함께 친가와 외가를 방문한다. 김 씨는 “네가 엄마의 딸, 아들이 돼줘서 고맙고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는 걸 일깨워주기 위해 조부모님들을 찾아뵙는다”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내가 이렇게 사랑 받는 존재구나’라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방 선생이 어린이 잡지를 만들 때마다 매호 뒷장에 항상 실었던 표어가 ‘씩씩하게 참된 소녀(어린이)가 됩시다’, ‘늘 사랑하며 도와갑시다’였다”며 “부자가 되라, 1등이 되라는 말씀은 전혀 없었다. 이는 지금 우리 부모들에게도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 주애진기자 jaj@donga.com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지난달 15일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준 충격의 여파로 국내에서도 문화재 안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조선 왕실의 제례문화를 상징하는 종묘(사적 제125호)에서 불이 난다면 어떻게 될까. 문화재청의 ‘종묘관리소 재난매뉴얼’을 통해 가상 상황에서 화재 진압과 유물 보호 절차를 살펴봤다. 2019년 5월 1일 오전 11시. 종묘 정전(正殿) 한구석에서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금세 치고 올라오면서 불길이 거세질 위기가 닥친다면? 불에 타기 쉬운 목조 문화재는 골든타임이 10분밖에 되지 않는다. 이 경우 우선 현장 감독관이 119에 신고함과 동시에 안내방송을 내보낸다. “즉시 직원 안내에 따라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과 함께 관람객 안전을 확보한 뒤 즉시 정전 내부에 모셔져 있는 신주와 제기류를 200m가량 떨어진 관리사무소로 옮겨야 한다. 불길이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면, 신주와 제기류를 인근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로 다시 이동시켜 보호한다. 소방대원은 미리 제공받은 종묘의 도면을 확인하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화재 진압에 나선다. 유물이 많은 박물관 역시 화재 대응 매뉴얼과 훈련을 반복한다. 18만 점이 넘는 유물이 가득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화재 발생 시 국보와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를 먼저 대피시키도록 돼 있다. 최흥선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학예연구관은 “화재 땐 불에 타기 쉬운 종이 관련 유물을 먼저 구출한다”며 “지난해 재난 훈련 땐 ‘조선왕실의궤’를 가장 먼저 보호하는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문화재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역시 초동 대처가 가장 중요하다. 여전히 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 11년 전 숭례문 화재 때, 부실한 초기 화재 진압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혔다. 이명선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사무관은 “국가지정 목조 문화재 327개소에 안전경비인력 700여 명이 24시간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이 숭례문 화재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목조 문화재가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에선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상대적으로 짧다. 이 때문에 불이 나면 즉각적인 유물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 지난달 4일 발생한 강원도 산불이 속초시 보광사로 번졌을 때 사찰 내부에 있던 현왕도(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73호)는 신속하게 인근 안전 장소로 옮겨졌다. 덕분에 축구장 735개 너비의 땅을 초토화시킨 화마에도 단 1건의 문화재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조상순 국립문화재연구소 안전방재연구실 학예연구관은 “재난 시 가장 먼저 옮겨야 할 문화재들을 산림청, 소방청 등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뒀다”며 “다행히 훈련해 왔던 노력이 결과로 증명된 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기 대처 연습은 아무리 거듭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동현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문화재방재연구소장)는 “건축 문화재에서 화재 시뮬레이션을 의무화하도록 소방법 등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실전과 같은 반복 훈련을 진행하는 세밀한 안전행정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이자 최대(最大) 석탑인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20년 세월의 보수 공사를 드디어 마무리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전북도, 익산시와 함께 30일 미륵사지에서 석탑 보수정비 준공식을 개최했다. 20년의 기나긴 해체·수리 과정을 모두 매조지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미륵사지 석탑 수리는 20년 동안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며 “석탑 보수·정비를 통해 한국 석조문화재 보존 기술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새로 보수한 미륵사지 석탑은 부재(部材·탑의 재료) 1627개를 짜 맞춰 재탄생했다. 높이 14.5m, 폭 12.5m, 무게는 약 1830t이다. 서동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 때 건립한 미륵사지 석탑은 마치 목탑처럼 석재를 쌓아 올린 독특한 조형미를 자랑한다. 3탑 3금당(金堂·부처를 모신 건물)의 가람 배치로 이뤄진 미륵사 서쪽에 위치하는데, 2009년 해체 과정에서 사찰 건립 시기가 639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리봉영기도 발견했다. 원래 9층으로 추정되는 석탑은 시간이 흐르면서 6층만 남았고, 서측 일부는 붕괴했다. 이를 일제가 1915년 콘크리트로 긴급 수리해, 이후 석탑은 약 80년 동안 콘크리트에 엉겨 붙은 채 버텼다. 서쪽에서 보면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보였던 석탑은 1999년 문화재위원회가 구조가 불안정하다는 안전진단 결과를 반영해 해체·수리를 결정하면서 대역사에 돌입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국내 단일 문화재로는 가장 오랜 기간인 20년을 수리하면서 다양한 연구 성과를 쏟아냈다. 석탑과 관련해 집계된 학술 발표가 18건이고, 연구논문 14건, 학위논문 5건, 책자 9권이 나왔다. 복원 관련 특허 등록도 5건에 이른다. 보수에 참여한 연인원은 12만 명이다. 특히 이번 보수공사를 계기로 추론에 의한 복원을 지양하고, 훼손된 부재는 과학적 방법으로 보강해 최대한 재사용하며 현대적 기술 적용을 최소화한다는 문화재 복원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기도 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지난 15일 프랑스 노트르담대성당 화재가 준 충격의 여파로 국내에서도 문화재 안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조선 왕실의 제례문화를 상징하는 종묘(사적 제125호)에서 불이 난다면 어떻게 될까. 문화재청의 ‘종묘관리소 재난매뉴얼’을 통해 가상 상황에서 화재 진압과 유물 보호 절차를 살펴봤다. 2019년 5월 1일 오전 11시. 종묘 정전(正殿) 한 구석에서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금세 치고 올라오면서 불길이 거세질 위기가 닥친다면? 불에 타기 쉬운 목조 문화재는 골든타임이 10분밖에 되지 않는다. 이 경우 우선 현장 감독관이 119에 신고함과 동시에 안내방송을 내보낸다. “즉시 직원 안내에 따라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과 함께 관람객 안전을 확보한 뒤 즉시 정전 내부에 모셔져 있는 신주와 제기류를 200m 가량 떨어진 관리사무소로 옮겨야 한다. 불길이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면, 신주와 제기류를 인근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로 다시 이동시켜 보호한다. 소방대원은 미리 제공받은 종묘의 도면을 확인하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화재 진압에 나선다. 유물이 많은 박물관 역시 화재 대응 매뉴얼과 훈련을 반복한다. 18만 점이 넘는 유물이 가득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화재 발생시 국보와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를 먼저 대피시키도록 돼 있다. 최흥선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학예연구관은 “화재 땐 불에 타기 쉬운 종이 관련 유물을 먼저 구출한다”며 “지난해 재난 훈련 땐 ‘조선왕실의궤’를 가장 먼저 보호하는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문화재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역시 초동 대처가 가장 중요하다. 여전히 아픈 상처로 남아있는 11년 전 숭례문 화재 때, 부실한 초기 화재 진압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혔다. 이명선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사무관은 “국가지정 목조 문화재 327개소에 안전경비인력 700여 명이 24시간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이 숭례문 화재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목조 문화재가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에선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상대적으로 짧다. 때문에 불이 나면 즉각적인 유물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 4월 4일 발생한 강원도 산불이 속초시 보광사로 번지자, 사찰 내부에 있던 현왕도(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73호)를 신속하게 인근 안전 장소로 옮겼다. 덕분에 축구장 735개 너비의 땅을 초토화시킨 화마에도 단 1건의 문화재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조상순 국립문화재연구소 안전방재연구실 학예연구관은 “재난 시 가장 먼저 옮겨야 할 문화재들을 산림청, 소방청 등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마련해뒀다”며 “다행히 훈련해왔던 노력이 결과로 증명된 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기 대처 연습은 아무리 거듭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동현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문화재방재연구소장)는 “건축 문화재에서 화재 시뮬레이션을 의무화하도록 소방법 등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실전과 같은 반복 훈련을 진행하는 세밀한 안전행정이 요구 된다”고 조언했다. 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서양 천문시계인 아스트롤라베(Astrolabe)를 조선의 사정에 맞게 변형한 18세기 천문 관측 도구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사진)’가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과학문화재로 꼽히는 혼개통헌의 등 7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혼개통헌의는 서양 선교사 마테오 리치에게 학문을 배운 명나라 이지조(李之藻·1565∼1630)가 아스트롤라베 해설서를 번역해 1607년 펴낸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을 바탕으로 제작한 기구다. 우리나라에선 유득공 숙부인 유금(1741∼1788)이 1787년에 제작했다. 1930년대 일본인 도기야(磨谷)가 대구에서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갔으나, 지난해 1월 별세한 과학사학자 전상운의 노력으로 2007년 국내에 돌아왔다. 혼개통헌의는 별 위치와 시간을 알려주는 원반형 모체판(母體板)과 별을 관측하는 지점을 가르쳐주는 T자 모양 성좌판(星座板)으로 구성된다. 모체판 외곽은 24등분해 시계 방향으로 시간을 새겼고, 남회귀선·적도·북회귀선을 나타내는 동심원을 바깥쪽부터 차례대로 표시했다. 한편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31∼39,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銅劍銅戈) 거푸집,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精文鏡) 일괄,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 등도 이날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대조선 개국 497년 7월 25일은 곧 우리 임금님의 만수경절(萬壽慶節)입니다. 소신은 주미수원(駐美隨員)이기 때문에 워싱턴 공서에서 상고하여 엎드립니다.” 1888년 8월 30일(음력 7월 25일) 미국 워싱턴의 피셔하우스.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이었던 이곳에서 박정양(1842∼1905) 초대 주미공사 등 관원 10여 명이 고종의 생일 기념 연회를 연다. 박정양의 수행원으로 미국에 간 청운(菁雲) 강진희(1851∼1919)는 이 자리에서 국왕을 뜻하는 붉은 해와 장생을 의미하는 영지, 구름 등을 그렸다. 소나무는 고종이 어릴 적 타고 놀았던 운현궁의 ‘정이품 대부송’과 유사하다. 이것이 서양 종이에 조선 전통 화풍이 결합된 ‘승일반송도(昇日蟠松圖)’다. 초대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원인 강진희가 미국에서 그린 그림이 처음 일반에 공개됐다. 16일 개막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에 승일반송도와 ‘삼산육성도(_山六星圖)’가 출품된 것. 삼산육성도는 1888년 순종의 생일(음력 2월 8일)을 기념해 신선들과 불로불사의 선약(仙藥)이 있다고 알려진 전설 속 삼신산(三神山)을 표현했다. 구한말 조선인이 미국에서 그린 작품 중 가장 앞선 시기의 그림들이다. 일본어와 영어, 글과 그림에 능통했던 강진희는 1888년 미국에 도착한 직후부터 그림으로 역사를 기록했다. 그는 박정양 공사와 함께 대한제국의 자주 외교를 꿈꿨지만 청나라의 방해로 1889년 강제 귀국했다. 대한제국 관료로 일하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후 관직에서 물러났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강진희 작품을 다음 달 22일 재개관 1주년을 맞는 워싱턴의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옛 청사에서 전시할 계획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시리즈 21편의 한국 시장 총 누적 관객 수는 1억 명이 넘는다. 피날레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이 22편의 오락영화 시리즈에 ‘인피니티 사가(saga·신화나 대서사시를 뜻하는 말)’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블 영화들이 한 세대가 공유하는 ‘영웅의 대서사시’의 반열에 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MCU는 만화 원작자이자 마블스튜디오 명예회장 스탠 리(1922∼2018·사진)가 남긴 원작 만화를 유산으로 삼아 오늘의 자리까지 왔다. 스탠 리가 남긴 어록에는 마블의 성공 요인뿐 아니라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의 기본 원칙이 숨어 있다. ○ “히어로는 어른들의 동화, 사람들은 입체적인 히어로를 원한다” 스탠 리는 히어로가 대중에게 사랑받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요소를 ‘공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히어로들도 돈이 없을 수도, 가족 간 불화가 있거나 연애가 잘 안 풀릴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와 같은 것을 경험하는 히어로를 원한다”고 말했다.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우는 히어로들은 정작 보통 사람들 같은 고민을 안고 산다. 소중한 친구를 잃었거나(캡틴 아메리카), 사고뭉치 동생과 갈등을 겪고(토르), 자신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스타 로드).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한국에서 아이언맨이 특히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유도 여기에서 찾았다. “아이언맨은 부유하지만 신체적으로 결함을 가진 히어로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늘 유머를 잃지 않고 삐딱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모습은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사랑한 영웅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개성 강한 히어로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평범한 ‘동료애’다. 나무(그루트)나 너구리(로켓)까지도 마침내 끈끈한 가족이 되는 이유는 이들이 서로와 타인을 위해 언제든 희생을 할 수 있는 히어로로 함께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인피니티 사가’는 마블의 히어로들이 초능력을 가져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기 때문에 사랑받았다는 것을 10년 동안 증명해 왔다. ○ “우리는 함께 지구별을 여행하는 동반자” 원작 만화는 아시아인과 흑인을 포함한 모든 인종, 여성, 성소수자에게도 열려 있었다. 영화에서도 다양한 범주의 마이너리티들이 등장한다. MCU 서사의 중심 영웅 캡틴 아메리카조차 ‘퍼스트 어벤져’에 등장한 첫 모습은 소년같이 왜소한 군인이었다. 마블의 향후 10년은 여성(캡틴 마블)과 흑인(블랙 팬서), 그리고 좌충우돌하는 10대(스파이더 맨)와 같은 기존의 히어로 공식을 깬 ‘마이너리티’에 달려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가 흑인인 팔콘에게 전달되는 장면과 타노스에 맞서며 캡틴 마블과 발키리 등 여성 히어로들이 한 스크린에 모이는 장면은 그만큼 상징적이다. ‘블랙 팬서’는 최초의 흑인 히어로로 미국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고 ‘캡틴 마블’이 페미니즘 논란과 별개로 개봉 후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을 고려하면 마블이 단순히 ‘마이너리티’라는 니치 마켓을 겨냥하기 위한 얄팍한 전략을 쓴 것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관객들은 언제나 ‘언더도그(약자·패배자)’ 스토리에 마음을 연다. 마블의 미래는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히어로들이 어떤 조화를 만들어낼지가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 “나조차도 마음이 두근거리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했다” 마블스튜디오의 강력한 경쟁력은 원작의 많은 캐릭터의 생동감을 황금 비율로 조화해 냈기 때문이다. 마블 원작 만화를 국내에 소개하는 백소용 시공사 책임편집자는 “허무맹랑한 판타지이지만 원작 만화는 오랜 역사에서 나오는 다양한 캐릭터와 사건으로 MCU의 세계관을 있음 직하게 보이게 한다. 영화는 그중에서도 가장 관객들이 열광할 만한 캐릭터와 사건들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고 말했다. 각 시리즈의 초기 작품들은 캐릭터와 서사에 집중해 관객들이 충분히 스토리라인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시리즈가 이어지며 ‘쉴드’의 수장 ‘닉 퓨리’ 캐릭터가 개별 작품의 연결고리가 되고 각 캐릭터들이 각각의 영화를 넘나들며 관객들은 실제 자신이 MCU의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만화책뿐 아니라 TV 시리즈 ‘에이전트 카터’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된 스토리는 영화를 보는 팬들에게 다층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그 전략의 중심에는 원작 만화의 열정적 팬인 케빈 파이기 마블스튜디오 사장이 있다. 마블은 그와 함께하며 스탠 리의 모토 ‘엑셀시오(excelsior·더욱더 높이)’처럼 비상해왔다. 백 책임편집자는 “마블은 케빈 파이기를 중심으로 큰 그림을 그리며 MCU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그것이 DC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국내 소개 시리즈 총 4편… 누적 관람객 4000만 넘을 듯 ▼ ‘어벤져스: 엔드게임’(엔드게임)이 개봉 5일 만에 약 600만 명의 관객이 관람하며 연일 흥행 신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28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4일째인 27일 관객 수 148만9083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8월 4일 ‘신과 함께-인과 연’이 기록한 역대 하루 최다 관객 수 146만6225명을 뛰어넘은 수치다. 엔드게임은 24일 개봉과 동시에 134만 명이 관람한 데 이어 이틀째 누적 200만 명, 사흘째 누적 300만 명을 각각 돌파했고, 나흘째에 누적 관객 470만7423명을 기록했다. 개봉 5일째인 28일 사전 예매한 관객만 115만 명에 달했으며, 개봉 후 첫 주말인 만큼 600만 명을 넘길 것이 확실시된다.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흥행이 아니다. 미국의 박스오피스 집계사이트 모조에 따르면 24일 전 세계 25개국에서 개봉한 첫날 수익으로만 약 1억6900만 달러(약 1958억 원)을 벌어들였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개봉일인 24일 0시 첫 상영 회차에 몰린 엔드게임 관람객만 304만 명에 달했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어벤져스 시리즈는 총 3편이다. 2012년 ‘어벤져스’가 707만 명을 기록한 데 이어 2015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1049만 명, 지난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1121만 명을 기록해 누적 관람객 수만 2877만 명에 이른다. 영화계에선 매일 100만 명가량이 찾는 엔드게임의 흥행까지 합쳐진다면 4000만 명 이상이 어벤져스 시리즈를 관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스크린 수 독점’이라는 비판적인 기록도 함께 세우고 있다. 엔드게임은 개봉일에만 전국의 스크린 2760개에서 1만2545회 상영됐다. 상영점유율은 80.9%, 좌석점유율은 85%에 이르렀다. 주말인 27일에는 2832개로 늘어나는 등 기념비적인 흥행 기록과 함께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 위축’ 논란도 함께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봄볕은 고요하고 맑은 기운이 밝게 비추며 돈다. 꽃이 비단 같은 동산에 함께 피며 버들은 금당(金塘)에 가지런히 떨친다.” 덕온공주(德溫公主·1822∼1844)가 한글로 채워 내려간 ‘자경전기’를 읽고 있으면 조선 후기 궁궐의 봄 정취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자경전기’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정실 왕비가 낳은 딸)인 덕온공주가 아버지 순조가 쓴 ‘자경전기(慈慶殿記)’를 한글로 옮겨 적은 것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이 25일 개막한 특별전 ‘공쥬, 글시 h으시니: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에서는 덕온공주를 비롯해 양아들 윤용구(1853∼1939), 손녀 윤백영(1888∼1986), 언니인 복온공주(1818∼1832)와 오빠 효명세자(1809∼1830) 등이 쓴 한글 유물 등 200여 점이 공개된다. 이 중 복온공주가 11세에 쓴 글씨첩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복온공주 글씨다. 효명세자가 누이동생들을 위해 한시를 모은 ‘학석집’ 일부를 한글로 번역한 자료도 나왔다. 전시는 8월 18일까지.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제1차 세계대전이 지나간 1920년대 유럽에서는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라는 천재 물리학자들이 등장했고, 문학에서는 토마스 만과 제임스 조이스가 새로운 길을 열었다. 동시에 현대 철학의 기틀을 세운 4명의 걸출한 인물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통해 아우라의 개념을 창시한 발터 베냐민(1892∼1940), 상징철학의 대가 에른스트 카시러(1874∼1945), 실존주의와 현상학을 혁신한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분석철학과 일상 언어철학 등을 대표하는 천재 철학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이다. 이 책은 1920년대 현대 철학의 기틀을 세운 철학자 4명의 삶을 조명한다. 1919년 세계대전 종전 뒤부터 독일 나치의 등장 이전인 1929년까지 10년간 그들의 주무대였던 파리, 베를린, 빈 등이 책의 배경이다. 저자는 전후 역동적이면서 급진적이었고, 혼돈의 시대였던 1920년대가 오히려 철학하기에 좋은 시기였다고 강조한다. 학교 교육은 부차적이었고, 학문적 명성 또한 땅에 떨어진 때였다. 덕분에 4명의 천재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매달릴 수 있던 토양이 마련됐다고 말한다. 으레 상상하는 골방 안에서 고민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책 속에서 찾긴 어렵다. 그 대신 유럽 곳곳으로 떠돌았던 베냐민의 유랑을 상세히 풀어내고,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철학의 신으로 추앙받다가 갑자기 스스로 빈털터리가 돼 오스트리아 시골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쳤던 억만장자의 아들 비트겐슈타인을 조명한다. 또 유대인으로서 독일 함부르크 중산층 거주 지역에서 점점 격해지는 독일인의 유대인 혐오를 직접 당해야 했던 카시러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저자 해나 아렌트와 불타는 사랑을 펼친 하이데거의 일생과 천재 철학자로서의 성공담이 소설처럼 펼쳐진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 충남 공주시 태화산 자락에 위치한 마곡사는 산사(山寺)를 감싸는 마곡천의 물소리와 파릇한 봄 향기를 자랑한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계룡산 갑사와 함께 이 같은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뛰어난 정취 덕분일까. 마곡사는 우리나라 화승(畵僧) 배출의 메카였다. 남방화소로 불리며 남양주 흥국사(경산화소), 금강산 유점사(북방화소)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화소(畵所)사찰로 꼽힌다. 독특한 역사를 인정받아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가운데 한 곳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예술로 흥 넘치는 마곡사의 대표적인 불화는 높이 11m, 너비 7m, 무게 174kg에 이르는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사진)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3년 창건된 이래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피폐해진 산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염원을 담아 1687년 제작했다. 능학 스님 등 당대 6명의 화승이 달라붙어 그려낸 대규모 불화다. 다음 달 12일로 다가온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불교회화실에서 마곡사 괘불을 24일부터 전시한다. 전시실 천장까지 닿을 듯한 괘불을 자세히 보면 연꽃을 든 석가모니와 관세음보살, 비로자나불, 사천왕 등 35명의 등장인물을 방제(이름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수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안전한 보존을 위해 마곡사에서도 수년에 한 번씩만 외부에 공개한다는 점에서 괘불의 진품을 관람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라고 말했다. 10월 20일까지. 무료.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0년 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문화재 지킴이 ‘10만 양병’을 주장했더니 700명에 불과했던 회원이 금세 1만 명으로 불어났어요. 설립 12주년을 맞은 올해 ‘100만 양병’을 말한다면 곧 10만 명이 되지 않을까요.” 봄 햇살이 가득했던 11일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아픔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운영하는 역사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13일 설립 12주년을 맞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의 김종규 이사장(80)을 만났다. 김 이사장은 삼성출판사를 운영한 출판인 출신이다. 그는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만들어내는 등 유구한 출판사(史)를 가졌다”며 “30년 전 국내 최초로 출판·인쇄 전문 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을 설립한 뒤로 본격적인 문화재 지킴이 활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한국박물관협회장, 문화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김 이사장은 2007년 정부가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를 모델로 국민과 기업의 기부를 받아 문화재를 매입, 보존, 활용하는 단체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을 만들 당시 설립위원장으로 추대됐다. 2010년부터는 이사장에 취임해 현재까지 신탁을 이끌고 있다. 김 이사장은 1931년 충무공 이순신의 묘와 위토(位土·묘소 관리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토지)를 구하기 위한 동아일보의 범국민적 캠페인에서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충무공 후손들이 묘소 땅을 처분하려 하자 동아일보가 대대적인 보도를 했고 이를 통해 2만여 명이 1만6021원30전(현재 가치로 약 3억7000만 원)을 모아 역사를 지켜냈다”고 설명했다. 최근 10년간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성장을 거듭했다. 소설가 이상의 생가를 매입해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고 2012년에는 미국 워싱턴 초대 대한제국 공사관 매입에 힘을 보탰다. 2010년 700명이던 회원 수는 지난달 기준 1만4000여 명에 이른다. 회원들은 월 3000∼1만 원을 후원하면 4대궁과 종묘 등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혜택을 제공받는다. 김 이사장은 “가장 큰 혜택은 한국의 문화재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정세균 전 국회의장, 이해인 수녀 등 유명 인사뿐 아니라 특히 청소년에게 인기가 많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앞으로 시민 체험형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김 이사장은 “전국의 주요 종택들은 우리나라의 유무형 문화재가 숨쉬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들의 문화를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2017년 우리나라 법원의 일본 쓰시마(對馬)섬 불상 반환 거부 판결 이후 명맥이 끊겼던 한일 문화재 교류가 2년 만에 재개됐다. 22일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16일부터 개막한 특별전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에 출품된 100점의 서화 가운데 일본 사노(佐野)시 향토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한국 서화 8점을 대여했다. 일본 박물관의 한국 문화재 대여는 2017년 1월 이후 처음으로, 최근 정치적으로 경색된 한일 관계에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국립중앙박물관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준비한 이번 특별전을 위해 한국의 근대 서화를 소장하고 있는 사노시 향토박물관에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하지만 개관 이래 한 번도 한국에 유물을 빌려준 적이 없던 박물관 측은 고심을 거듭했다. 16일 전시 개막식에서 만난 모테기 가쓰미(茂木克美·56) 사노시 향토박물관 주간은 “시청과 시의회에서 한국에 유물을 빌려주면 안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느냐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며 “이에 사노시장과 함께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진심이 담긴 한국 측의 보증을 듣고, 흔쾌히 대여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고국을 찾은 문화재는 1884년 갑신정변을 이끈 김옥균(1851∼1894), 박영효(1861∼1939) 등 개화기 지식인들의 글과 그림 8점이다. 이 중 눈길을 끄는 작품은 김옥균이 행서체로 쓴 ‘도가 통하면 하늘과 땅이 같은 곳(道契則霄壤共處)’이다.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에서 망명 생활을 할 당시 일본인 후원가 스나가 하지메(須永元·1868∼1942)에게 써준 것이다. 사노시 출신인 스나가는 일본 근대화의 창시자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를 사사한 부유한 지식인이었다. ‘젊음’과 ‘개혁’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가지고 있던 김옥균 등 한국의 개화파 일원을 후원하며 그들의 정신과 글씨를 흠모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에 최초로 사진을 도입한 황철(1864∼1930)의 그림과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포함됐던 오세창(1864∼1953)의 글씨가 적힌 벼루함 등도 전시된다. 사노시는 도치기(栃木)현에 속한 인구 약 12만 명이 사는 소도시. 사노시 향토박물관 역시 규모는 작지만 일본에서 가장 많은 2000여 점의 한국 근대 서화를 보유하고 있다. 소장품 6만여 점 가운데 1만5000여 점을 차지하는 ‘스나가 하지메 컬렉션’ 덕분이다.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한일 문화재 교류는 2017년 1월부터 전면 중단됐다. 한국인 절도범들이 2012년 10월 쓰시마섬의 한 사찰에서 훔친 고려시대 불상을 원래 소유주로 추정되는 충남 서산시 부석사로 돌려주라는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불상은 국내에 남았지만, 일본 문화재계에선 한국과의 교류에 찬바람이 불었다. ‘압류면제법’(해외 문화재를 들여와 전시할 때 압류·압수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는 한국에 유물을 빌려주면 돌려받지 못한다는 불신이 커졌다. 지난해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열린 특별전 ‘대고려전’ 때도 일본 국립도쿄박물관 등이 소장한 고려시대 불화와 나전칠기 5점의 대여를 거부하기도 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 전시가 경색된 한일 관계를 푸는 마중물이 됐으면 한다”며 “앞으로 일본 내 한국의 근현대 문화재에 대한 연구와 교류를 확대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장차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진정한 한국 국민은 자신의 자유와 국가의 광복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을 규탄하기 위해 러시아 연해주 한인들이 세계에 독립운동 의지를 천명한 ‘성명회(聲明會)’ 선언서.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첫 독립선언서인 성명회 선언서가 작성된 책원지(策源地)인 이상설 선생 거주지가 처음 확인됐다.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석형)는 “최근 근대사 다큐멘터리 제작사 ‘더채널’의 김광만 PD가 러시아 국립극동문서보관소에 있던 1910년 러시아 경찰의 비밀 보고서를 입수해 성명회 선언서를 작성한 이상설 선생(사진)의 거주지를 찾아냈다”고 21일 밝혔다. 22일은 이상설 선생의 순국 102주기 추모일이다. 이번에 확인된 성명회 선언서 책원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시 신한촌 인근의 팔리가야 거리에 있다. 러시아의 부동산 등기 문서 등을 확인한 결과 1904년 지은 2층 벽돌 건물로, 1970년 난방기와 실내 화장실 등이 대거 확충된 후 현재까지도 1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지금은 구도심의 평범한 낡은 건물에 불과하지만 109년 전에는 연해주 한인독립운동세력의 중심지였다. 1910년 8월 23일 일제가 한일 강제병합을 발표하자 당시 연해주 한인 사회의 지도자였던 이상설은 격문 1000장을 인쇄해 러시아와 만주 각지의 동포들에게 배포하고 영어와 프랑스어 등 각국 언어로 성명회 선언서 초안을 작성한다. 1907년 고종의 헤이그 특사로 네덜란드 현지에 파견된 이상설은 1894년 조선의 마지막 과거에 급제한 인물이자 7개 외국어를 구사한 신지식인이었다. 성명회 선언서에는 연해주 한인 8624명이 서명했다. 당시 연해주 거주 한인은 5만여 명으로 한 가구가 5, 6명으로 구성된 점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한인 가구가 참여한 거족적인 운동이었다. 일제는 즉각 탄압에 나섰다. 주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영사관은 러시아 정부에 항의하고 한인들의 동요를 제압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러시아 경찰은 성명회의 주도자인 이범윤 이상설 홍범도 등의 거주지를 압수수색했다. 이번에 확인된 문서는 당시 작성된 러시아 경찰의 비밀 보고서다. 이 문건에는 이상설이 소지한 브라우닝식 연발 권총 1점을 압수했다는 내용과 거주지 주소 등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성명회는 1910년 9월 일제의 방해로 결국 해체됐다. 하지만 연해주 한인들은 성명회 조직을 기반으로 1911년 권업회와 1914년 대한광복군정부로 확대 개편한다. 1919년 3·1운동 직후에는 대한국민의회를 만든 후 그해 9월 11일 상하이임시정부, 한성정부와 합쳐져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 축을 이룬다. 연해주 독립운동사 권위자인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100주년을 맞은 임정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10년 성명회 활동이 자리한다”며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연해주 독립운동사 연구에 새로운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상설의 고향인 충북 진천군의 송기섭 군수는 “한국 독립운동사의 기념비적 인물인 이상설 선생에 대해 연구하고 선생을 기억하기 위해 올해 안에 ‘이상설기념관’을 착공할 계획”이라며 “국가보훈처 등과 협의해 새롭게 확인된 이상설 선생의 러시아 거주지를 보존하기 위해 나서겠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축축한 기저귀를 찬 갓난아이 같은’ 기분이 드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영국 출신 저자는 결혼 이후 아내를 따라 덴마크로 이주한다. 하지만 쾌락과 사치라고는 당최 즐길 줄 모르는 갑갑한 금욕주의 문화, 1년 365일 중 300일은 우중충한 날씨, 반려견의 수술 성공 파티에서도 반드시 국기를 꽂고야 마는 강박적인 애국심. 덴마크는 저자에게 한없이 낯설고 도저히 적응 안 되는 콧대 높은 북유럽 국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교외의 어학원에 다니던 저자는 과제로 덴마크의 대문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의 ‘인어공주’ 원전을 번역하게 된다. 이때부터다. 생각지도 못한 마법이 펼쳐진다. 안데르센을 어설픈 훈계나 하는 유치한 동화작가쯤으로 여기던 저자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작품에 빠져든다. 안데르센 특유의 글맛을 살리지 못한 번역본만 읽어왔던 저자는 닥치는 대로 작품과 평전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문장이 그의 삶을 뒤흔든다. “여행은 곧 삶이다.” 안데르센이 1840년 10월부터 8개월간 유럽 전역을 둘러본 뒤 쓴 여행기 ‘시인의 바자르’(1842년)에 기록된 여정을 21세기의 저자가 다시 찾는 여행담을 정리했다. 코펜하겐을 시작으로 독일의 함부르크와 라이프치히, 이탈리아의 로마와 나폴리, 지중해의 작은 섬 몰타, 그리스 아테네, 터키 이스탄불, 다뉴브강을 따라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 등을 거쳐 다시 덴마크로 돌아오는 대장정을 담았다. 가장 큰 재미는 제1·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입기 전 근대 유럽의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즐길 수 있다는 것. 안데르센이 찾은 19세기만 하더라도 나폴리의 베수비오산은 화산 활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인근 폼페이오는 18세기 후반이 돼서야 발굴조사가 이뤄져 안데르센은 막 새롭게 발굴된 감옥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유구한 문화유산과 달리 산업화에 실패하면서 경제 침체를 겪는 현재의 나폴리를 두고 “발전의 희망은 단념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저자의 익살스러운 평가와 대비된다. 사라져가는 유럽의 명승지를 확인할 때는 아쉬운 감정이 짙게 전해진다. 독일의 라이프치히는 안데르센이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사랑한 곳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시 전체가 폭격을 당해 옛 정취를 잃었다. 맹렬한 협곡으로 안데르센을 설레게 했던 세르비아와 루마니아 국경 근처의 다뉴브강은 1972년 댐이 건설되면서 과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게 됐다. 안데르센은 당시의 유럽 여행을 기억하며 “마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1840년대 ‘미운 오리 새끼’(1843년), ‘성냥팔이 소녀’(1848년) 등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동화를 탄생시킨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재치 있는 글맛으로 안데르센의 여정을 현대적으로 소개한 저자는 대문호의 내면과 여행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준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 대해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고 표현했죠. 슬픈 일이지만 문화유산이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궁중문화축전’은 궁이라는 문화유산이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17일 만난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다음 주 개막하는 궁중문화축전의 의미를 이같이 설명했다. 5대궁과 종묘를 배경으로 하는 문화유산 축제인 ‘제5회 궁중문화축전’이 27일부터 5월 5일까지 9일간 펼쳐진다. 올해에는 경희궁이 처음으로 축전 무대에 포함됐고, 역대 최대 규모인 46개의 프로그램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축전이 펼쳐지는 5개의 궁은 저마다의 역사를 살려 ‘품격의 경복궁’ ‘자연의 창덕궁’ ‘예악의 창경궁’ ‘근대의 덕수궁’ ‘미래의 경희궁’ 등 각기 다른 주제를 선보인다. 조선의 법궁(法宮) 경복궁에서는 궁중연회 장소였던 경회루를 중심으로 품격 있는 행사가 준비됐다. 개막제 ‘2019 오늘, 궁을 만나다’(26일 오후 7시 반)에서는 식전행사 ‘궁궐 호위군 사열의식―첩종’이 눈에 띈다. 첩종은 임금이 불시에 궁궐의 군사들을 소집할 때 울린 큰 종을 뜻한다. 종이 울리면 병사들이 빠르고 절도 있는 무예를 선보이며 조선 왕조의 권위를 드높였다. 전통예술 연출가, 국악평론가를 지내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진 이사장은 궁궐을 어떤 무대보다도 더 흥미진진한 공간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는 예부터 문무(文武)의 겸비를 중시했는데 지금 복원 및 재현되는 전통의 대부분이 정적인 문에 치중됐던 게 현실”이라며 “경회루에서 펼쳐지는 첩종 무대와 실경 미디어 공연 ‘화룡지몽’을 포함해 역동적인 한국의 전통 문화를 되살린 프로그램을 여럿 준비했다”고 말했다. 경복궁 앞 광화문광장에서는 28일 오후 3시부터 어가행렬 등을 재현한 ‘신(新)산대놀이’가 열린다. 창덕궁에서는 조선의 왕들이 즐긴 달밤의 운치를 느껴볼 수 있는 ‘달빛기행 in 축전’과 증강현실(AR) 기술을 통해 창덕궁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만날 수 있는 ‘AR 체험―창덕궁의 보물’을 선보인다. 진 이사장은 “우리의 선조들은 축제를 할 때마다 당대 최고의 기술을 도입하려고 노력했다”며 “최신 디지털 기술을 통해 전통의 색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덕수궁에서는 117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공연장이었던 ‘협률사(協律社)’를 재현해 구한말 당시에 선보였던 판소리와 전통가무를 소개하는 ‘소춘대유희’ 공연이 펼쳐진다. 김덕수 안숙선 국수호 등 우리나라 대표 예술가들이 총출동한다. 창경궁에서는 시민배우들이 참여하는 ‘시간여행 그날, 영조―백성을 만나다’와 어르신들을 위한 ‘창경궁 양로연―가무별감’이 마련됐다. 올해 처음 축전 대상에 포함된 경희궁은 ‘어린이 씨름한마당’을 준비했다. 축전의 대장정은 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펼쳐지는 종묘대제로 마무리된다. 진 이사장은 내년 축전에서는 사직단을 포함시켜 5대궁과 종묘사직을 아우르는 축제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부터 국립국악원 서울시무용단 국립고궁박물관 등 여러 기관이 함께 참여해 전문성을 높였다”며 “궁중문화축전이 대한민국 축제의 허브가 될 수 있도록 시민들이 많이 찾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 참조.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한국의 전통 소금인 ‘자염(煮鹽)’을 생산해내던 조선시대 염전 터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그동안 문헌으로만 전해 내려온 영남 최대의 소금 생산지 ‘명지염전’의 존재가 발굴조사를 통해 실체가 확인됐다.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부산 강서구 강동동(명지도) 일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한 부경문물연구원은 “지난해 낙동강 삼각주 내에 위치한 명지도에서 진행한 조사 결과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사용한 명지염전 터를 찾아냈다”고 16일 밝혔다. ○ 한반도 전통 소금 ‘자염’ 이번에 확인된 명지염전 터는 낙동강과 남해안이 맞닿아 있는 삼각주에 속해 있는 지역으로, 넓이가 약 1만4000m²에 이른다. 명지염전은 1907년 이후 일본이 한반도에 도입한 천일염이 아닌, 1400여 년간 한반도의 소금으로 애용된 자염을 만들던 곳이다. 자염의 생산 과정은 먼저 약 3도의 염도를 띠는 바닷물을 농축시키기 위해 모래나 갯벌 흙을 햇볕에 말리기를 반복한다. 그 다음 여과 장치인 ‘섯구덩이’에 다시 흙을 쌓은 뒤 바닷물을 통과시켜 염도가 18∼19도까지 높아지는 함수(鹹水)를 만든다. 이 함수를 가마에 끓여서 만들어 낸 것이 자염이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바닷물을 농축하던 염전 26개면과 해수를 끌어들이는 너비 3m 규모의 도수로(導水路) 1기, 이를 각 단위 염전에 공급하던 너비 1m 이하의 공급수로 4기를 확인했다. 또 인근 지역에서는 함수를 끓여냈던 소금가마 8기와 창고(염창) 시설로 보이는 건물지도 나왔다. 김기민 부경문물연구원 연구실장은 “지금은 전남 신안군 일대의 천일염전이 활발하지만 개항 이전 전통사회에선 동해안, 남해안 등 해안지역 대부분에서 염전을 조성해 자염을 생산했다”며 “자염은 물을 계속해서 끓여야 했고, 이를 위해 많은 연료가 필요했는데 명지도에는 갈대밭이 무성해 이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영남 최고의 소금 산지 ‘명지염전’ “명지도 한 곳만 해도 일 년에 구워 내는 소금이 수천만 석이므로 낙동포(洛東浦)에 따로 염창감사(鹽倉監司)를 두어 해마다 천만 석을 추스르게 했다. 소금 이득이 나라 안에서 제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경세유표(經世遺表)에서 명지염전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는 명지도의 탁월한 지리적 위치 덕분이다. 부산 앞바다에서 유입되는 바닷물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육로 교통이 불편했던 조선시대 당시 상대적으로 운송이 용이했던 선박을 활용해 낙동강을 따라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소금이 귀한 영남 내륙 지역을 거대한 배후 소비지로 삼을 수 있었다. 이에 1731년 영남 감진사(監賑使·기근이 들었을 때 지방에 파견하던 특명 사신)로 온 어사 박문수(1691∼1756)는 국가에서 명지염전을 활용할 것을 조정에 건의했다. 영조는 이 같은 제안을 받아들여 명지염전을 국가가 관리하는 공염(公鹽)으로 지정했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부터 생산 원가가 저렴하고, 상대적으로 짠맛이 강한 천일염을 생산하면서 자염은 쇠퇴해갔다. 명지염전은 1933∼36년 낙동강 제방 공사를 진행하면서 전체 규모의 60%가량이 사라졌다. 광복 이후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유승훈 부산시 학예연구사는 “서해안에 비해 조수간만의 차가 작은 낙동강 하구의 염전은 제방을 설치했다는 특징이 있다”며 “한반도 소금 역사를 알려주는 곳이라는 점에서 관련 유적지를 보존, 기억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양양화관(洋洋畵館·동양화와 서양화를 함께 함).’ 조선 왕실의 마지막 화원이자 중국과 일본에서 유학하며 근대 화풍을 도입하려 했던 심전(心田) 안중식(1861∼1919). 그의 꿈은 이 네 글자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게 모진 고문을 받고, 그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고희동(1887∼1965)을 비롯한 후대 서화가뿐 아니라 한국적 정체성을 고민한 서양화가들에게도 이어졌다. 글과 그림으로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기억하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가 16일 개막한다. 전시에서는 안중식을 필두로 오세창, 이회영, 김옥균 등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서화가로 활동했던 이들의 그림, 글씨, 삽화 등 100건이 공개된다. 근대 서화의 거장 안중식의 작품이 가장 눈길을 끈다. 1915년 경복궁과 백악(북악산)의 풍경을 그린 ‘백악춘효(白岳春曉·등록문화재 제458호)’는 전시의 백미. 해태상, 광화문, 북악산의 산세를 투사도법으로 원근감을 살려 담아냈다. 1915년은 일제가 조선물산공진회(박람회)를 개최한다며 경복궁의 수많은 전각을 허물고 서양식 건물을 대거 지었을 때다. 그럼에도 안중식은 훼손되지 않은 경복궁의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 그림에 담아냈다. 김승익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잃어버린 조선의 봄, 다가올 조선의 봄을 꿈꾸며 그림의 제목을 ‘백악의 봄날 새벽’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존재만 알려졌던 일본 사노(佐野)시 향토박물관 소장품인 김옥균 박영효의 친필 글씨도 공개된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1867∼1932)이 그린 ‘석란도(石蘭圖)’에는 우당의 작품 중 유일하게 서명이 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00년 전 혼돈의 시대에 예술가들이 사회적 아픔, 저항정신, 밝은 미래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6월 2일까지. 4000∼6000원.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19년 4월 10일 29명의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들이 중국 상하이 한 다락방에 모여들었다. 밤샘 토의 끝에 이들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로 하고, 10개조로 구성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한다. 먼저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함”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군주가 없는,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국가로의 전환을 못 박은 것이다. 뒤이어 3조를 통해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는 자격을 획득했고, 5조에서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가지게 됐다. 9조 “생명형·신체형 및 공창제를 전폐”한다는 선언을 통해서는 반문명적인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단순한 100년 전 에피소드가 아니다. 현행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쓰여 있다. 즉, 대한민국의 헌법 계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출발점에 바로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있다.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인 저자는 이에 더해 ‘대한민국 헌정사 100년’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헌법의 역사, 의미, 가치 등을 촘촘하게 풀어냈다. 저자가 꼽는 우리 헌법의 핵심 단어 가운데 하나는 ‘3·1운동’이다. 1948년부터 현행 헌법까지 9차례 개헌이 있었지만 ‘3·1운동’은 단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서 남녀노소, 각계각층이 평등하게 두루 참여해 전개한 비폭력 만세운동이자 5000년 군주정치를 타파한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1962년 5차 개헌에서 헌법 전문에 반영된 뒤 5공화국 시절 사라졌다가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부활한 ‘4·19민주이념’ 역시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100년간 굳건히 이어 온 대한민국 헌법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책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