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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우는 연회를 한 번 베풀면 생물 1000여 마리를 죽이고, 이덕유는 국을 한 번 끓이면 2만 냥을 썼으며 채경은 메추라기를 먹는데 하루에 1000개는 잡았다.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망으로 잔인하게 살생함이 이처럼 극에 달했도다.” 중국 명나라 때의 수필집 ‘오잡조(五雜俎)’에는 당대 부유층의 음식 사치를 이같이 기록하고 있다. 단지 음식에만 집착한 것은 아니었다. 명나라 중엽 이후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상업 경제가 크게 발전하면서 중국 대륙 전체가 소비사회로 변모해갔다. 특히 명나라 말기에는 가마, 가구, 복식, 여행 등에서 압도적인 규모의 사치문화가 등장했다. 저자는 중국 역사에서도 가장 화려하게 소비를 즐긴 명·청 교체기의 사회상을 되살린다. 사실 명나라는 조선이 본보기로 삼을 만큼 유교에 충실한 국가였다. 검소와 절제를 근간으로 하는 ‘예교(禮敎)’ 제도의 틀 아래에서 신분에 따라 의식주 양식 전반에 제한을 가할 정도였다. 점차 하급 사대부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상인들이 등장하면서 사회 분위기가 완전히 변하기 시작한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부를 뽐내기 위해 고관대작들만 타고 다니던 가마에 화려한 장식을 더해 길거리를 활보했고, 평민 사이에서조차 유행복을 따라 소비하는 문화가 팽배해졌다. 사대부는 이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학식을 자랑할 수 있는 서재용 가구를 사 모으는 등 신분을 초월해 ‘사치’가 명나라 말기를 설명하는 코드로 자리매김했다. 명 말의 사회상은 19세기 산업혁명 직전에 나타난 영국의 18세기 소비사회와 유사하다. 그러나 중국은 산업사회로 변모하지 못했다. 저자는 이미 상업시대로 접어든 영국은 사치를 ‘새로운 지식’으로 포용할 수 있었지만 농본사회였던 당대 중국은 재정 세수를 고려할 때 사치를 ‘낭비’라는 개념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고 분석한다. 이 같은 관념의 차이가 현재까지 두 대륙의 역사를 바꿔놓은 갈림길이었다는 것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한국의 사찰이 매력적인 이유는 1700년 넘는 전통을 이어온 불교문화유산과 자연 환경, 수행자들의 삶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전국의 주요 사찰 7곳이 등재된 것도 한국만의 살아있는 사찰 문화가 인정받았기 때문. 전통과 현대, 휴식과 체험을 조화롭게 경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는 한국의 사찰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템플스테이는 현재 전국 130여 개 사찰에서 운영할 만큼 인기가 많다. 주요 프로그램은 예불과 참선, 발우공양과 울력 등 사찰 일과를 체험하면서 자연에 대한 이해, 자신을 위한 위로와 명상을 돕도록 꾸려져 있다. 최근에는 문화유적 탐방, 연등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과 정해진 일과 외에 자유롭게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휴식 프로그램, 외국인을 위한 전용 프로그램까지 개성 넘치는 템플스테이가 가득하다. 12일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전국 주요 사찰의 특색 있는 템플스테이를 소개한다. △전등사=선사 시대 고인돌부터 단군의 얼이 담긴 마니산, 고려 때 대몽항쟁과 서양 세력과 처음으로 전투를 벌인 병인양요까지. 섬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인 강화도에 위치한 전등사의 템플스테이는 다양한 문화유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전국 최초로 법당과 갤러리를 합친 무설전,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진행하는 일몰 포행(트레킹) 등 예술과 자연이 합쳐진 매력을 선사한다. △골굴사=6세기 신라의 불교문화 최전성기에 수도 경주에 세워진 사찰로,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이다. 골굴사는 ‘선무도(禪武道)’의 총본산이다. 스님들의 심신 수련법의 하나로, 신라·고려·조선 승병들의 호국정신의 맥을 이은 전통 무예다. 한국 불교와 전통 무예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면서 1992년부터 자연스럽게 ‘사찰 숙박 체험’이 시작돼 우리나라 템플스테이의 효시로 여겨지는 곳이다. 승가 전통의 불교 수행법인 선무도는 골굴사 템플스테이에서만 체험해 볼 수 있다. △미황사=우리나라 육지 사찰 가운데 최남단에 위치한 미황사는 한 폭의 산수화 같은 달마산 자락에 위치한다. 1993년 첫 출간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머리에 남도 답사 일번지로 미황사를 소개할 만큼 빼어난 자연환경과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미황사 템플스테이는 산중에서 난 제철 재료로 정갈한 음식과 차를 마시며 마음의 진리를 찾는 ‘다도(茶道)’ 프로그램 등이 인기가 많다. △법주사=속리산의 품에 안긴 법주사는 지난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가운데 한 곳으로 뽑힐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법주사의 품 안에는 1000년의 세월만큼 격조 높은 국보와 보물이 가득한데 팔상전(국보 제55호)과 세계에서 제일 큰 33m 금동미륵대불 등 경이로운 문화재가 눈앞에 펼쳐진다. 스님과의 일대일 인터뷰, 음악과 함께하는 역사 이야기, 트레킹 코스인 ‘녹음(綠陰)을 만끽하다’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백담사=내설악 깊은 오지에 자리 잡고 있어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좀처럼 찾기 힘든 수행처였다. 덕분에 백담사 계곡을 찾아 시원하게 흘러가는 계곡의 맑은 물에 번뇌를 털어내고, 설악산에 걸친 푸른 구름을 벗 삼아 휴식과 비움을 실천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요가형 108배, 먹기 명상, 숲 명상, 돌탑 쌓기, 소금 만다라 등 다양한 명상·체험 프로그램으로 특히 인기가 높다. △금선사=도심 속에서 템플스테이를 찾는다면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금선사가 안성맞춤이다. 북한산국립공원 비봉 코스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세속의 세계를 벗어난 첫 번째 관문인 삼각산 금선사의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누리며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평일 휴식 프로그램과 스님들의 일과와 유사한 일정을 따라가며 북한산 공원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솔 냄새를 즐길 수 있는 주말 체험 프로그램 등 직장인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다수 준비돼 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 강물과 접해 있다. 전하기를 의자왕이 모든 후궁들과 함께 서로 이끌고 와 강에 투신해 죽었다. 이를 타사암(墮死巖)이라 한다.” 고려 후기에 간행된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낙화암의 전설이 이같이 기록돼 있다. 이후 수백 년간 백마강 유역의 부소산 낙화암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전국적인 명승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바위의 꼭대기에 있는 백화정에서 백마강을 내다본 이들이라면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과연 여기서 궁녀들이 빠질 수 있었을까? 최근 부여 지역의 설화와 지형을 분석해 낙화암의 본래 위치를 규명한 흥미로운 연구가 나왔다. 황인덕 충남대 교수가 학술지 백제연구에 실은 ‘부여 주정리 대왕포와 낙화암 전설―낙화암 전설 발단 지점 재고’ 논문이다. 황 교수는 7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백제 무왕 때부터 의자왕 재위 시까지 수도인 부여에서 북대왕포(낙화암)와 함께 남대왕포로 불리며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했던 현재 부여읍 중정리 옷바위 일대가 실제 낙화암의 무대”라고 말했다. 황 교수에 따르면 우선 현재의 낙화암은 지형적으로 설화의 주인공이 되기 힘들다. 높이가 30여 m에 이르지만 계단식 지형으로 인해 바위 정상에서 성인 남성이 있는 힘껏 돌을 던져야 겨우 물속에 빠뜨릴 수 있을 정도로 바닥면과 멀다. 투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옷바위의 경우에는 20여 m로 높이는 낮지만 암벽이 수직으로 바닥에 맞닿아 있다. 조선시대의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왕포를 설명하면서 “부여현 치소로부터 남쪽으로 7리에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현재의 옷바위 위치와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부여 지역의 설화에는 “적군에게 쫓기다 궁녀만 피신해 옷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내용이 전해지는데 삼국유사에서 “의자왕과 궁녀들이 함께 죽었다”는 기록과는 다르다. 황 교수는 “삼국유사에는 백제의 패망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측면이 있는데 사실 의자왕은 패망 후 당나라의 낙양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며 “당나라군을 피해 도망가던 당시 궁녀들의 긴박한 상황을 고려하면 도성의 끝자락에 위치하며 선착장 등을 갖추고 있던 옷바위가 낙화암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부소산 일대가 낙화암으로 비정된 배경에는 자연경관이 큰 몫을 했다는 게 황 교수의 분석이다. 현재 옷바위는 백제 때와는 달리 백마강의 유역 변화로 인해 강물이 말라 버렸다. 이로 인해 전설의 이야기에 대응할 만한 뛰어난 경관적 요소를 잃어버렸다. 황 교수는 “부소산 낙화암의 전설은 사실에 기반하기보다는 설화와 자연적 요소가 합쳐진 ‘관광전설’의 성격이 크다”며 “백제의 최후와 관련한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30, 40년대 내몽골 지역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한 이자해(1894∼1967)가 남긴 전기 ‘이자해자전’이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항일문화유산인 ‘이자해자전 초고본’과 ‘한국독립운동사략(상편)’, 1960년대 건축 양식을 간직한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을 등록문화재로 예고한다고 7일 밝혔다. 일제강점기 당시 의사로 활동한 이자해는 자신의 전기에서 내몽골 지역에 한인이 다수 거주한다는 내용과 이들이 일제 패망 후 한인회를 조직해 활동한 내용 등을 상세하게 남겼다. 한국광복군과 연계해 병력을 모집했다는 사실 등 베이징 이북 지역에서의 독립운동 역사를 새롭게 밝혀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김병조(1877∼1948)가 1921년 쓴 한국독립운동사략은 3·1운동의 배경, 각 지역에서 발표한 독립선언서와 국내외 운동의 전개 상황 등을 소개한 역사책이다. 일제의 탄압 실태와 임시정부의 수립 및 통합 과정을 방대한 자료에 바탕을 두고 정리해 3·1운동과 임정 연구의 기본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구 이리농고 본관은 1963년 이리농림학교의 제2본관으로 조성한 붉은 벽돌 건물로, 출입구 상부 계단실과 현관부를 화강암으로 쌓은 것이 특징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을 지나 특별전시실 내부로 들어가면 고요한 불빛 아래 석상들이 인사를 건넨다. 누군가는 미소를, 어떤 이는 고뇌에 찬 표정으로 관람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지난달 29일 개막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전시장의 풍경이다. 아라한(阿羅漢)의 준말인 나한(羅漢·사진)은 석가모니 제자이자 깨달음을 얻은 불교 성자다. 강원 영월군 창령사터에서 나온 오백나한은 2001년 주민의 신고로 존재가 알려졌고, 이듬해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형태가 완전한 상 64점을 포함해 나한상과 보살상 317점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진행된 특별전에서 소개된 나한상 88점을 서울로 모셔와 시민들에게 선보인다. 전시는 1부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나한의 얼굴들’과 2부 ‘일상 속 성찰의 나한’으로 구성됐다. 1부 전시장에는 벽돌 바닥 위에 33개의 좌대를 세우고, 그 위에 32개의 나한상이 배치됐다.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 나한부터 수행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나한까지 저마다의 표정에서 각기 다른 깨달음이 전해진다. 한 곳은 “당신 마음속의 나한을 보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빈 좌대로 남겨져 있다. 호기심에 좌대 위로 얼굴을 갖다 대면 자신의 얼굴이 비친다. 2부 전시장은 탑처럼 쌓아 올린 스피커 700여 개 사이사이에 나한상 29구가 파묻혀 있다. 현대예술가 김승영 설치작가와의 협업으로 꾸려진 이 공간은 번잡한 빌딩 숲에서 성찰하는 나한을 형상화했다. 도심의 소음과 물방울과 종소리를 결합한 독특한 배경음이 함께 울려 나와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는 6월 13일까지. 2000∼3000원.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 정신병원장 A 씨는 최근 경찰로부터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넘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유는 최근 6개월간 정신질환 경력이 있는 운전자들에 의한 교통사고가 2배 이상 늘어나 이들에 대한 운전 교육을 강화해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것이었다. #2. 정부가 2030년까지 가칭 국가유전정보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한다. 모든 신생아들의 유전정보를 채취해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겠다는 것. 이를 통해 질병 원인 연구를 하고 범죄자를 식별하겠다는 구상이다. 가상의 상황을 염두에 둔 이 같은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 문항은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가 2015년 개발한 ‘인권 감수성 테스트’의 일부다. 사회의 안전을 위해 국가의 요구에 응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정보 침해이므로 거부할 것인가. 이 테스트에는 4년여 동안 무려 6만 명이 넘는 학생과 시민이 설문에 참여했다. 약간의 재미와 정보를 위해 각자 얻은 점수에 해당하는 국가를 예시로 보여주는데 덴마크는 90점으로 가장 높다. 80점 이상∼90점 미만에는 독일 프랑스 일본, 70점 이상∼80점 미만에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속해 있다. 북한과 소말리아는 최하위로 나타난다. 객관적인 수치만 보면 우리나라 인권지수는 상위권에 속한다. 시민 대부분이 인권 개념을 인식하고 있고, 인권 교육 역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혐오 표현, 난민 문제, 갑질과 괴롭힘,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페미니즘 갈등 등을 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각종 이슈에 숨겨져 있는 인권 코드를 끄집어낸다. 논쟁적인 주제의 찬반 입장을 소개하고, 서로의 주장에 담긴 이론적 배경과 해외 사례 등을 통해 사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정답보다는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2010년 국내에 소개돼 인기를 끈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국판 느낌을 주기도 한다. 범죄자의 인권 문제를 보자. 성범죄자의 엽기적인 행각을 다룬 보도가 나오면 ‘화학적 거세’나 ‘징역 100년’이라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엄벌주의만으로는 범죄자의 재범률을 떨어뜨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노르웨이의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를 ‘교육생’으로 부르며 사회 복귀에 초점을 둔다고 한다. 이로 인해 노르웨이의 재수감 비율은 약 20%로 미국(67.5%), 영국(50%)에 비해 현격히 낮다.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미래의 범죄를 막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지난해 예멘 출신 난민 561명이 제주도에 한꺼번에 들어오자 한국 사회 일부에서는 ‘잠재적인 범죄자’라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인구 10만 명당 범죄자 검거 인원 통계를 보면 내국인 평균이 3495명인 데 비해 외국인 평균은 1735명으로 절반에 불과했다. 독일 등 해외의 난민 범죄 사례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이들의 인권 보호에 눈을 감은 것은 아닌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인권 사회학’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학술 용어 대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비유와 사례를 통해 풀어낸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인권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학습이 부족했던 한국 사회가 참고해야 할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구정우 지음320쪽·1만5000원·북스톤 #1. 정신병원장 A 씨는 최근 경찰로부터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넘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유는 최근 6개월간 정신질환 경력이 있는 운전자들에 의한 교통사고가 2배 이상 늘어나 이들에 대한 운전교육을 강화해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것이었다. #2. 정부가 2030년까지 가칭 국가유전정보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한다. 모든 신생아들의 유전정보를 채취해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겠다는 것. 이를 통해 질병원인 연구를 하고 범죄자를 식별하겠다는 구상이다. 가상의 상황을 염두해 둔 이 같은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 문항은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가 2015년 개발한 ‘인권감수성 테스트’의 일부다. 사회의 안전을 위해 국가의 요구에 응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정보 침해이므로 거부할 것인가? 이 테스트에는 4년여 간 무려 6만 명이 넘는 학생과 시민이 설문에 참여했다. 약간의 재미와 정보를 위해 각자 얻은 점수에 해당하는 국가를 예시로 보여주는데 덴마크는 90점으로 가장 높다. 80점 이상~90점 미만에는 독일 프랑스 일본, 70점 이상~80점 미만에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속해 있다. 북한과 소말리아는 최하위로 나타난다. 객관적인 수치만 보면 우리나라 인권지수는 상위권에 속한다. 시민 대부분이 인권 개념을 인식하고 있고, 인권교육 역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혐오표현, 난민 문제, 갑질과 괴롭힘,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페미니즘 갈등 등을 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각종 이슈에 숨겨져 있는 인권 코드를 끄집어낸다. 논쟁적인 주제의 찬반 입장을 소개하고, 서로의 주장에 담긴 이론적 배경과 해외 사례 등을 통해 사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정답보다는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2010년 국내에 소개돼 인기를 끈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국판 느낌을 주기도 한다. 범죄자의 인권 문제를 보자. 성범죄자의 엽기적인 행각을 다룬 보도가 나오면 ‘화학적 거세’나 ‘징역 100년’이라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엄벌주의만으로는 범죄자의 재범률을 떨어뜨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노르웨이의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를 ‘교육생’으로 부르며 사회 복귀에 초점을 둔다고 한다. 이로 인해 노르웨이의 재수감 비율은 약 20%로 미국(67.5%), 영국(50%)에 비해 현격히 낮다.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미래의 범죄를 막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지난해 예맨 출신 난민 561명이 제주도에 한꺼번에 들어오자 한국 사회의 일부에서는 ‘잠재적인 범죄자’라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인구 10만 명당 범죄자 검거인원 통계를 보면 내국인 평균이 3495명인데 비해 외국인 평균은 1735명으로 절반에 불과했다. 독일 등 해외의 난민 범죄 사례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이들의 인권 보호에 눈을 감은 것은 아닌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인권 사회학’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학술 용어 대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비유와 사례를 통해 풀어낸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인권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학습이 부족했던 한국 사회가 참고해야할 책이다. 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매년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부모들은 자녀에게 줄 ‘선물 고민’에 빠진다. 언젠가부터 한국 문화에서 ‘어린이날=선물 받는 날’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직장맘 민주애 씨(37)도 올해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5세 아들을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여러 날을 고심했다. 민 씨는 “어린이날 시즌이 되면 인기 장난감은 대형마트에선 일찌감치 품절이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가격이 정가의 두 배 가까이로 올라 골치가 아프다”며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면 친구들끼리 ‘누구는 뭐 받았대’라고 비교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신경이 쓰이더라”고 토로했다.○ 마음의 선물 주자던 어린이날인데 실제 오피니언라이브 빅데이터센터를 통해 살펴보니 최근 3년 동안 어린이날 직전 한 달간 사람들이 블로그 등 온라인 문서에서 ‘어린이날’과 관련해 제일 많이 검색한 연관어는 ‘선물’(7만8746건)이었다. 아이들도 응당 ‘어린이날’을 ‘선물’의 동의어로 생각한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26일 홈러닝 프로그램인 ‘아이스크림 홈런’을 이용하는 초중고교생 3261명에게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38.2%(1245명)가 ‘평소 갖고 싶던 장난감이나 선물을 받고 싶다’고 답했다. 2위는 ‘가족들과 놀러 가고 싶다’(34.5%·1124명), 3위는 ‘용돈을 받고 싶다’(10.4%·339명)로 용돈까지 포함하면 물질적인 걸 받고 싶다는 응답이 절반에 가까운 48.6%에 달했다. 하지만 이는 당초 어린이날 취지와 어긋난다. 장정희 방정환연구소장은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제정한 1922년 당시에는 어린이들이 일제 치하에서 힘든 노동을 감당해야 했다”며 “한국 특유의 장유유서 문화 속에 어린이란 말조차 없이 자식들을 ‘애 새끼’ ‘애 놈’ ‘애 녀석’ 이렇게 부르는 실정이다 보니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예우하자는 뜻에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1924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후계자가 될 어린이를 위해서는 손톱만치도 생각함이 없다”며 “우리의 어린이는 밥이나 떡이나 고운 옷은 받아보았으나 참으로 따뜻한 사랑과 공경을 받은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방 선생은 “어린이를 물욕의 마귀로 만들고 싶지 않다”며 “돈보다도 과자보다도 신성한 동화를 들려주시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엄마 아빠의 손편지’ ‘좋은 추억’ 공유 어른도, 아이도 물질적인 어린이날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어린이날의 참뜻을 살릴 수는 없을까.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선물을 주는 것이 나쁘다고만 볼 순 없지만 단순히 물건을 사서 전하는 행위에만 집중하는 게 문제”라며 “같은 선물을 사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얼 원하는지, 어떻게 살지 등을 논의하며 부모와 자녀가 상호작용하고 즐겁고 좋은 추억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 전문의는 이어 “선물만큼이나 중요한 게 부모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며 손편지를 함께 쓸 것을 권했다. 부모가 매년 어린이날 자녀에게 쓴 손편지를 버리지 말고 모아 두면 훗날 좋은 책이 된다는 것이다. 오 전문의는 “어릴 때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였고 매년 부모들이 이렇게 좋은 말을 해줬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춘기를 보낼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사랑을 나누는 특별한 이벤트를 통해 어린이날의 추억을 쌓는 이들도 있다. 김정은 씨(43·여)는 어린이날을 맞아 4일 11세 아들, 9세 딸과 함께 에티오피아 청소년을 후원하기 위해 국제어린이양육기구인 ‘컴패션’을 통해 마라톤에 참가할 예정이다. 김 씨는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은 항상 다른 사람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김효순 씨(47·여)는 매년 어린이날 아이들과 함께 친가와 외가를 방문한다. 김 씨는 “네가 엄마의 딸, 아들이 돼줘서 고맙고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는 걸 일깨워주기 위해 조부모님들을 찾아뵙는다”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내가 이렇게 사랑 받는 존재구나’라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방 선생이 어린이 잡지를 만들 때마다 매호 뒷장에 항상 실었던 표어가 ‘씩씩하게 참된 소녀(어린이)가 됩시다’ ‘늘 사랑하며 도와갑시다’였다”며 “부자가 되어라, 1등이 되어라는 말씀은 전혀 없었다. 이는 지금 우리 부모들에게도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주애진 jaj@donga.com·유원모 기자}
어린이날 연휴인 4∼6일 전국 고궁과 조선왕릉, 박물관 등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문화재청은 어린이날인 5일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4대궁과 종묘, 조선왕릉에 만 12세 이하 어린이와 동행하는 성인 가족 2명은 무료입장할 수 있다고 1일 밝혔다. 매주 월요일마다 문을 닫는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과 조선왕릉은 대체 휴일인 6일에 개방한다.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은 5일 정오에 야외마당에서 ‘궁중문화축전과 함께하는 고궁 음악회’를 개최한다. 국립민속박물관도 5일 ‘푸르른 오월, 어린이 세상’을 주제로 어린이날 대잔치를 연다. 전통 문양을 활용한 배지 만들기, 한지 주머니 만들기, 민속놀이 등이 진행된다. 전북 전주시 국립무형유산원은 4일 인형극 ‘꼭두,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얼쑤마루 대공연장 무대에 올리고, 충북 충주시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서는 4일 열쇠고리 만들기, 옛 신분증인 호패 만들기, 상하이 임시정부 가상현실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매년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부모들은 자녀에게 줄 ‘선물 고민’에 빠진다. 언젠가부터 한국 문화에서 ‘어린이날=선물 받는 날’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직장맘 민주애 씨(37)도 올해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5세 아들을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여러 날을 고심했다. 민 씨는 “어린이날 시즌이 되면 인기 장난감은 대형마트에선 일찌감치 품절이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가격이 정가의 두 배 가까이로 올라 골치가 아프다”며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면 친구들끼리 ‘누구는 뭐 받았대’라는 비교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신경이 쓰이더라”라고 토로했다.● 마음의 선물 주자던 어린이날인데 실제 오피니언라이브 빅데이터센터를 통해 살펴보니 최근 3년 동안 어린이날 직전 한 달간 사람들이 블로그 등 온라인 문서에서 ‘어린이날’과 관련해 제일 많이 검색한 연관어는 ‘선물(7만8746건)’이었다. 아이들도 응당 ‘어린이날’을 ‘선물’의 동의어로 생각한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26일 홈러닝 프로그램인 ‘아이스크림 홈런’을 이용하는 초중고생 3261명에게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내고 싶냐고 물었더니 38.2%(1234명)가 ‘평소 갖고 싶던 장난감이나 선물을 받고 싶다’고 답했다. 2위는 ‘가족들과 놀러 가고 싶다(34.5%·1124명)’, 3위는 ‘용돈을 받고 싶다(10.4%·339명)’로 용돈까지 포함하면 물질적인 걸 받고 싶다는 응답이 절반에 가까운 48.6%에 달했다. 하지만 이는 당초 어린이날 취지와 어긋난다. 장정희 방정환연구소장은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제정한 1922년 당시에는 어린이들이 일제 치하에서 힘든 노동을 감당해야 했다”며 “한국 특유의 장유유서 문화 속에 어린이란 말조차 없이 자식들을 ‘애 새끼’, ‘애 놈’, ‘애 녀석’ 이렇게 부르는 실정이다 보니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예우하자는 뜻에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1924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후계자가 될 어린이를 위해서는 손톱만치도 생각함이 없다”며 “우리의 어린이는 밥이나 떡이나 고운 옷은 받아보았으나 참으로 따뜻한 사랑과 공경을 받은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방 선생은 “어린이를 물욕의 마귀로 만들고 싶지 않다”며 “돈보다도 과자보다도 신성한 동화를 들려주시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엄마·아빠의 손 편지’ ‘좋은 추억’ 공유 어른도, 아이도 물질적인 어린이날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어린이날의 참 뜻을 살릴 수는 없을까.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선물을 주는 것이 나쁘다고만 볼 순 없지만 단순히 물건을 사서 전하는 행위에만 집중하는 게 문제”라며 “같은 선물을 사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얼 원하는지, 어떻게 살지 등을 논의하며 부모와 자녀가 상호작용하고 즐겁고 좋은 추억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 전문의는 이어 “선물만큼이나 중요한 게 부모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며 손 편지를 함께 쓸 것을 권했다. 부모가 매년 어린이날 자녀에게 쓴 손 편지를 버리지 말고 모아두면 훗날 좋은 책이 된다는 것이다. 오 전문의는 “어릴 때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였고 매년 부모들이 이렇게 좋은 말을 해줬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춘기를 보낼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사랑을 나누는 특별한 이벤트를 통해 어린이날의 추억을 쌓는 이들도 있다. 김정은 씨(43·여)는 어린이날을 맞아 4일 11세 아들, 9세 딸과 함께 에디오피아 청소년 후원을 위한 국제어린이양육기구인 ‘컴패션’ 마라톤에 참가할 예정이다. 김 씨는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은 항상 다른 사람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김효순 씨(47·여)는 매년 어린이날 아이들과 함께 친가와 외가를 방문한다. 김 씨는 “네가 엄마의 딸, 아들이 돼줘서 고맙고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는 걸 일깨워주기 위해 조부모님들을 찾아뵙는다”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내가 이렇게 사랑 받는 존재구나’라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방 선생이 어린이 잡지를 만들 때마다 매호 뒷장에 항상 실었던 표어가 ‘씩씩하게 참된 소녀(어린이)가 됩시다’, ‘늘 사랑하며 도와갑시다’였다”며 “부자가 되라, 1등이 되라는 말씀은 전혀 없었다. 이는 지금 우리 부모들에게도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 주애진기자 jaj@donga.com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지난달 15일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준 충격의 여파로 국내에서도 문화재 안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조선 왕실의 제례문화를 상징하는 종묘(사적 제125호)에서 불이 난다면 어떻게 될까. 문화재청의 ‘종묘관리소 재난매뉴얼’을 통해 가상 상황에서 화재 진압과 유물 보호 절차를 살펴봤다. 2019년 5월 1일 오전 11시. 종묘 정전(正殿) 한구석에서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금세 치고 올라오면서 불길이 거세질 위기가 닥친다면? 불에 타기 쉬운 목조 문화재는 골든타임이 10분밖에 되지 않는다. 이 경우 우선 현장 감독관이 119에 신고함과 동시에 안내방송을 내보낸다. “즉시 직원 안내에 따라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과 함께 관람객 안전을 확보한 뒤 즉시 정전 내부에 모셔져 있는 신주와 제기류를 200m가량 떨어진 관리사무소로 옮겨야 한다. 불길이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면, 신주와 제기류를 인근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로 다시 이동시켜 보호한다. 소방대원은 미리 제공받은 종묘의 도면을 확인하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화재 진압에 나선다. 유물이 많은 박물관 역시 화재 대응 매뉴얼과 훈련을 반복한다. 18만 점이 넘는 유물이 가득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화재 발생 시 국보와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를 먼저 대피시키도록 돼 있다. 최흥선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학예연구관은 “화재 땐 불에 타기 쉬운 종이 관련 유물을 먼저 구출한다”며 “지난해 재난 훈련 땐 ‘조선왕실의궤’를 가장 먼저 보호하는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문화재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역시 초동 대처가 가장 중요하다. 여전히 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 11년 전 숭례문 화재 때, 부실한 초기 화재 진압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혔다. 이명선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사무관은 “국가지정 목조 문화재 327개소에 안전경비인력 700여 명이 24시간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이 숭례문 화재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목조 문화재가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에선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상대적으로 짧다. 이 때문에 불이 나면 즉각적인 유물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 지난달 4일 발생한 강원도 산불이 속초시 보광사로 번졌을 때 사찰 내부에 있던 현왕도(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73호)는 신속하게 인근 안전 장소로 옮겨졌다. 덕분에 축구장 735개 너비의 땅을 초토화시킨 화마에도 단 1건의 문화재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조상순 국립문화재연구소 안전방재연구실 학예연구관은 “재난 시 가장 먼저 옮겨야 할 문화재들을 산림청, 소방청 등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뒀다”며 “다행히 훈련해 왔던 노력이 결과로 증명된 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기 대처 연습은 아무리 거듭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동현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문화재방재연구소장)는 “건축 문화재에서 화재 시뮬레이션을 의무화하도록 소방법 등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실전과 같은 반복 훈련을 진행하는 세밀한 안전행정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이자 최대(最大) 석탑인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20년 세월의 보수 공사를 드디어 마무리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전북도, 익산시와 함께 30일 미륵사지에서 석탑 보수정비 준공식을 개최했다. 20년의 기나긴 해체·수리 과정을 모두 매조지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미륵사지 석탑 수리는 20년 동안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며 “석탑 보수·정비를 통해 한국 석조문화재 보존 기술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새로 보수한 미륵사지 석탑은 부재(部材·탑의 재료) 1627개를 짜 맞춰 재탄생했다. 높이 14.5m, 폭 12.5m, 무게는 약 1830t이다. 서동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 때 건립한 미륵사지 석탑은 마치 목탑처럼 석재를 쌓아 올린 독특한 조형미를 자랑한다. 3탑 3금당(金堂·부처를 모신 건물)의 가람 배치로 이뤄진 미륵사 서쪽에 위치하는데, 2009년 해체 과정에서 사찰 건립 시기가 639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리봉영기도 발견했다. 원래 9층으로 추정되는 석탑은 시간이 흐르면서 6층만 남았고, 서측 일부는 붕괴했다. 이를 일제가 1915년 콘크리트로 긴급 수리해, 이후 석탑은 약 80년 동안 콘크리트에 엉겨 붙은 채 버텼다. 서쪽에서 보면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보였던 석탑은 1999년 문화재위원회가 구조가 불안정하다는 안전진단 결과를 반영해 해체·수리를 결정하면서 대역사에 돌입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국내 단일 문화재로는 가장 오랜 기간인 20년을 수리하면서 다양한 연구 성과를 쏟아냈다. 석탑과 관련해 집계된 학술 발표가 18건이고, 연구논문 14건, 학위논문 5건, 책자 9권이 나왔다. 복원 관련 특허 등록도 5건에 이른다. 보수에 참여한 연인원은 12만 명이다. 특히 이번 보수공사를 계기로 추론에 의한 복원을 지양하고, 훼손된 부재는 과학적 방법으로 보강해 최대한 재사용하며 현대적 기술 적용을 최소화한다는 문화재 복원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기도 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지난 15일 프랑스 노트르담대성당 화재가 준 충격의 여파로 국내에서도 문화재 안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조선 왕실의 제례문화를 상징하는 종묘(사적 제125호)에서 불이 난다면 어떻게 될까. 문화재청의 ‘종묘관리소 재난매뉴얼’을 통해 가상 상황에서 화재 진압과 유물 보호 절차를 살펴봤다. 2019년 5월 1일 오전 11시. 종묘 정전(正殿) 한 구석에서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금세 치고 올라오면서 불길이 거세질 위기가 닥친다면? 불에 타기 쉬운 목조 문화재는 골든타임이 10분밖에 되지 않는다. 이 경우 우선 현장 감독관이 119에 신고함과 동시에 안내방송을 내보낸다. “즉시 직원 안내에 따라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과 함께 관람객 안전을 확보한 뒤 즉시 정전 내부에 모셔져 있는 신주와 제기류를 200m 가량 떨어진 관리사무소로 옮겨야 한다. 불길이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면, 신주와 제기류를 인근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로 다시 이동시켜 보호한다. 소방대원은 미리 제공받은 종묘의 도면을 확인하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화재 진압에 나선다. 유물이 많은 박물관 역시 화재 대응 매뉴얼과 훈련을 반복한다. 18만 점이 넘는 유물이 가득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화재 발생시 국보와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를 먼저 대피시키도록 돼 있다. 최흥선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학예연구관은 “화재 땐 불에 타기 쉬운 종이 관련 유물을 먼저 구출한다”며 “지난해 재난 훈련 땐 ‘조선왕실의궤’를 가장 먼저 보호하는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문화재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역시 초동 대처가 가장 중요하다. 여전히 아픈 상처로 남아있는 11년 전 숭례문 화재 때, 부실한 초기 화재 진압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혔다. 이명선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사무관은 “국가지정 목조 문화재 327개소에 안전경비인력 700여 명이 24시간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이 숭례문 화재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목조 문화재가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에선 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상대적으로 짧다. 때문에 불이 나면 즉각적인 유물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 4월 4일 발생한 강원도 산불이 속초시 보광사로 번지자, 사찰 내부에 있던 현왕도(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73호)를 신속하게 인근 안전 장소로 옮겼다. 덕분에 축구장 735개 너비의 땅을 초토화시킨 화마에도 단 1건의 문화재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조상순 국립문화재연구소 안전방재연구실 학예연구관은 “재난 시 가장 먼저 옮겨야 할 문화재들을 산림청, 소방청 등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마련해뒀다”며 “다행히 훈련해왔던 노력이 결과로 증명된 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기 대처 연습은 아무리 거듭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동현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문화재방재연구소장)는 “건축 문화재에서 화재 시뮬레이션을 의무화하도록 소방법 등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실전과 같은 반복 훈련을 진행하는 세밀한 안전행정이 요구 된다”고 조언했다. 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서양 천문시계인 아스트롤라베(Astrolabe)를 조선의 사정에 맞게 변형한 18세기 천문 관측 도구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사진)’가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과학문화재로 꼽히는 혼개통헌의 등 7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혼개통헌의는 서양 선교사 마테오 리치에게 학문을 배운 명나라 이지조(李之藻·1565∼1630)가 아스트롤라베 해설서를 번역해 1607년 펴낸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을 바탕으로 제작한 기구다. 우리나라에선 유득공 숙부인 유금(1741∼1788)이 1787년에 제작했다. 1930년대 일본인 도기야(磨谷)가 대구에서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갔으나, 지난해 1월 별세한 과학사학자 전상운의 노력으로 2007년 국내에 돌아왔다. 혼개통헌의는 별 위치와 시간을 알려주는 원반형 모체판(母體板)과 별을 관측하는 지점을 가르쳐주는 T자 모양 성좌판(星座板)으로 구성된다. 모체판 외곽은 24등분해 시계 방향으로 시간을 새겼고, 남회귀선·적도·북회귀선을 나타내는 동심원을 바깥쪽부터 차례대로 표시했다. 한편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31∼39,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銅劍銅戈) 거푸집,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精文鏡) 일괄,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 등도 이날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대조선 개국 497년 7월 25일은 곧 우리 임금님의 만수경절(萬壽慶節)입니다. 소신은 주미수원(駐美隨員)이기 때문에 워싱턴 공서에서 상고하여 엎드립니다.” 1888년 8월 30일(음력 7월 25일) 미국 워싱턴의 피셔하우스.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이었던 이곳에서 박정양(1842∼1905) 초대 주미공사 등 관원 10여 명이 고종의 생일 기념 연회를 연다. 박정양의 수행원으로 미국에 간 청운(菁雲) 강진희(1851∼1919)는 이 자리에서 국왕을 뜻하는 붉은 해와 장생을 의미하는 영지, 구름 등을 그렸다. 소나무는 고종이 어릴 적 타고 놀았던 운현궁의 ‘정이품 대부송’과 유사하다. 이것이 서양 종이에 조선 전통 화풍이 결합된 ‘승일반송도(昇日蟠松圖)’다. 초대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원인 강진희가 미국에서 그린 그림이 처음 일반에 공개됐다. 16일 개막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에 승일반송도와 ‘삼산육성도(_山六星圖)’가 출품된 것. 삼산육성도는 1888년 순종의 생일(음력 2월 8일)을 기념해 신선들과 불로불사의 선약(仙藥)이 있다고 알려진 전설 속 삼신산(三神山)을 표현했다. 구한말 조선인이 미국에서 그린 작품 중 가장 앞선 시기의 그림들이다. 일본어와 영어, 글과 그림에 능통했던 강진희는 1888년 미국에 도착한 직후부터 그림으로 역사를 기록했다. 그는 박정양 공사와 함께 대한제국의 자주 외교를 꿈꿨지만 청나라의 방해로 1889년 강제 귀국했다. 대한제국 관료로 일하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후 관직에서 물러났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강진희 작품을 다음 달 22일 재개관 1주년을 맞는 워싱턴의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옛 청사에서 전시할 계획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시리즈 21편의 한국 시장 총 누적 관객 수는 1억 명이 넘는다. 피날레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이 22편의 오락영화 시리즈에 ‘인피니티 사가(saga·신화나 대서사시를 뜻하는 말)’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블 영화들이 한 세대가 공유하는 ‘영웅의 대서사시’의 반열에 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MCU는 만화 원작자이자 마블스튜디오 명예회장 스탠 리(1922∼2018·사진)가 남긴 원작 만화를 유산으로 삼아 오늘의 자리까지 왔다. 스탠 리가 남긴 어록에는 마블의 성공 요인뿐 아니라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의 기본 원칙이 숨어 있다. ○ “히어로는 어른들의 동화, 사람들은 입체적인 히어로를 원한다” 스탠 리는 히어로가 대중에게 사랑받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요소를 ‘공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히어로들도 돈이 없을 수도, 가족 간 불화가 있거나 연애가 잘 안 풀릴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와 같은 것을 경험하는 히어로를 원한다”고 말했다.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우는 히어로들은 정작 보통 사람들 같은 고민을 안고 산다. 소중한 친구를 잃었거나(캡틴 아메리카), 사고뭉치 동생과 갈등을 겪고(토르), 자신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스타 로드).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한국에서 아이언맨이 특히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유도 여기에서 찾았다. “아이언맨은 부유하지만 신체적으로 결함을 가진 히어로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늘 유머를 잃지 않고 삐딱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모습은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사랑한 영웅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개성 강한 히어로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평범한 ‘동료애’다. 나무(그루트)나 너구리(로켓)까지도 마침내 끈끈한 가족이 되는 이유는 이들이 서로와 타인을 위해 언제든 희생을 할 수 있는 히어로로 함께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인피니티 사가’는 마블의 히어로들이 초능력을 가져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기 때문에 사랑받았다는 것을 10년 동안 증명해 왔다. ○ “우리는 함께 지구별을 여행하는 동반자” 원작 만화는 아시아인과 흑인을 포함한 모든 인종, 여성, 성소수자에게도 열려 있었다. 영화에서도 다양한 범주의 마이너리티들이 등장한다. MCU 서사의 중심 영웅 캡틴 아메리카조차 ‘퍼스트 어벤져’에 등장한 첫 모습은 소년같이 왜소한 군인이었다. 마블의 향후 10년은 여성(캡틴 마블)과 흑인(블랙 팬서), 그리고 좌충우돌하는 10대(스파이더 맨)와 같은 기존의 히어로 공식을 깬 ‘마이너리티’에 달려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가 흑인인 팔콘에게 전달되는 장면과 타노스에 맞서며 캡틴 마블과 발키리 등 여성 히어로들이 한 스크린에 모이는 장면은 그만큼 상징적이다. ‘블랙 팬서’는 최초의 흑인 히어로로 미국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고 ‘캡틴 마블’이 페미니즘 논란과 별개로 개봉 후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을 고려하면 마블이 단순히 ‘마이너리티’라는 니치 마켓을 겨냥하기 위한 얄팍한 전략을 쓴 것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관객들은 언제나 ‘언더도그(약자·패배자)’ 스토리에 마음을 연다. 마블의 미래는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히어로들이 어떤 조화를 만들어낼지가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 “나조차도 마음이 두근거리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했다” 마블스튜디오의 강력한 경쟁력은 원작의 많은 캐릭터의 생동감을 황금 비율로 조화해 냈기 때문이다. 마블 원작 만화를 국내에 소개하는 백소용 시공사 책임편집자는 “허무맹랑한 판타지이지만 원작 만화는 오랜 역사에서 나오는 다양한 캐릭터와 사건으로 MCU의 세계관을 있음 직하게 보이게 한다. 영화는 그중에서도 가장 관객들이 열광할 만한 캐릭터와 사건들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고 말했다. 각 시리즈의 초기 작품들은 캐릭터와 서사에 집중해 관객들이 충분히 스토리라인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시리즈가 이어지며 ‘쉴드’의 수장 ‘닉 퓨리’ 캐릭터가 개별 작품의 연결고리가 되고 각 캐릭터들이 각각의 영화를 넘나들며 관객들은 실제 자신이 MCU의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만화책뿐 아니라 TV 시리즈 ‘에이전트 카터’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된 스토리는 영화를 보는 팬들에게 다층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그 전략의 중심에는 원작 만화의 열정적 팬인 케빈 파이기 마블스튜디오 사장이 있다. 마블은 그와 함께하며 스탠 리의 모토 ‘엑셀시오(excelsior·더욱더 높이)’처럼 비상해왔다. 백 책임편집자는 “마블은 케빈 파이기를 중심으로 큰 그림을 그리며 MCU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그것이 DC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국내 소개 시리즈 총 4편… 누적 관람객 4000만 넘을 듯 ▼ ‘어벤져스: 엔드게임’(엔드게임)이 개봉 5일 만에 약 600만 명의 관객이 관람하며 연일 흥행 신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28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4일째인 27일 관객 수 148만9083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8월 4일 ‘신과 함께-인과 연’이 기록한 역대 하루 최다 관객 수 146만6225명을 뛰어넘은 수치다. 엔드게임은 24일 개봉과 동시에 134만 명이 관람한 데 이어 이틀째 누적 200만 명, 사흘째 누적 300만 명을 각각 돌파했고, 나흘째에 누적 관객 470만7423명을 기록했다. 개봉 5일째인 28일 사전 예매한 관객만 115만 명에 달했으며, 개봉 후 첫 주말인 만큼 600만 명을 넘길 것이 확실시된다.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흥행이 아니다. 미국의 박스오피스 집계사이트 모조에 따르면 24일 전 세계 25개국에서 개봉한 첫날 수익으로만 약 1억6900만 달러(약 1958억 원)을 벌어들였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개봉일인 24일 0시 첫 상영 회차에 몰린 엔드게임 관람객만 304만 명에 달했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어벤져스 시리즈는 총 3편이다. 2012년 ‘어벤져스’가 707만 명을 기록한 데 이어 2015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1049만 명, 지난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1121만 명을 기록해 누적 관람객 수만 2877만 명에 이른다. 영화계에선 매일 100만 명가량이 찾는 엔드게임의 흥행까지 합쳐진다면 4000만 명 이상이 어벤져스 시리즈를 관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스크린 수 독점’이라는 비판적인 기록도 함께 세우고 있다. 엔드게임은 개봉일에만 전국의 스크린 2760개에서 1만2545회 상영됐다. 상영점유율은 80.9%, 좌석점유율은 85%에 이르렀다. 주말인 27일에는 2832개로 늘어나는 등 기념비적인 흥행 기록과 함께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 위축’ 논란도 함께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봄볕은 고요하고 맑은 기운이 밝게 비추며 돈다. 꽃이 비단 같은 동산에 함께 피며 버들은 금당(金塘)에 가지런히 떨친다.” 덕온공주(德溫公主·1822∼1844)가 한글로 채워 내려간 ‘자경전기’를 읽고 있으면 조선 후기 궁궐의 봄 정취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자경전기’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정실 왕비가 낳은 딸)인 덕온공주가 아버지 순조가 쓴 ‘자경전기(慈慶殿記)’를 한글로 옮겨 적은 것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이 25일 개막한 특별전 ‘공쥬, 글시 h으시니: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에서는 덕온공주를 비롯해 양아들 윤용구(1853∼1939), 손녀 윤백영(1888∼1986), 언니인 복온공주(1818∼1832)와 오빠 효명세자(1809∼1830) 등이 쓴 한글 유물 등 200여 점이 공개된다. 이 중 복온공주가 11세에 쓴 글씨첩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복온공주 글씨다. 효명세자가 누이동생들을 위해 한시를 모은 ‘학석집’ 일부를 한글로 번역한 자료도 나왔다. 전시는 8월 18일까지.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제1차 세계대전이 지나간 1920년대 유럽에서는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라는 천재 물리학자들이 등장했고, 문학에서는 토마스 만과 제임스 조이스가 새로운 길을 열었다. 동시에 현대 철학의 기틀을 세운 4명의 걸출한 인물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통해 아우라의 개념을 창시한 발터 베냐민(1892∼1940), 상징철학의 대가 에른스트 카시러(1874∼1945), 실존주의와 현상학을 혁신한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분석철학과 일상 언어철학 등을 대표하는 천재 철학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이다. 이 책은 1920년대 현대 철학의 기틀을 세운 철학자 4명의 삶을 조명한다. 1919년 세계대전 종전 뒤부터 독일 나치의 등장 이전인 1929년까지 10년간 그들의 주무대였던 파리, 베를린, 빈 등이 책의 배경이다. 저자는 전후 역동적이면서 급진적이었고, 혼돈의 시대였던 1920년대가 오히려 철학하기에 좋은 시기였다고 강조한다. 학교 교육은 부차적이었고, 학문적 명성 또한 땅에 떨어진 때였다. 덕분에 4명의 천재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매달릴 수 있던 토양이 마련됐다고 말한다. 으레 상상하는 골방 안에서 고민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책 속에서 찾긴 어렵다. 그 대신 유럽 곳곳으로 떠돌았던 베냐민의 유랑을 상세히 풀어내고,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철학의 신으로 추앙받다가 갑자기 스스로 빈털터리가 돼 오스트리아 시골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쳤던 억만장자의 아들 비트겐슈타인을 조명한다. 또 유대인으로서 독일 함부르크 중산층 거주 지역에서 점점 격해지는 독일인의 유대인 혐오를 직접 당해야 했던 카시러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저자 해나 아렌트와 불타는 사랑을 펼친 하이데거의 일생과 천재 철학자로서의 성공담이 소설처럼 펼쳐진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 충남 공주시 태화산 자락에 위치한 마곡사는 산사(山寺)를 감싸는 마곡천의 물소리와 파릇한 봄 향기를 자랑한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계룡산 갑사와 함께 이 같은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뛰어난 정취 덕분일까. 마곡사는 우리나라 화승(畵僧) 배출의 메카였다. 남방화소로 불리며 남양주 흥국사(경산화소), 금강산 유점사(북방화소)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화소(畵所)사찰로 꼽힌다. 독특한 역사를 인정받아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가운데 한 곳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예술로 흥 넘치는 마곡사의 대표적인 불화는 높이 11m, 너비 7m, 무게 174kg에 이르는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사진)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3년 창건된 이래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피폐해진 산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염원을 담아 1687년 제작했다. 능학 스님 등 당대 6명의 화승이 달라붙어 그려낸 대규모 불화다. 다음 달 12일로 다가온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불교회화실에서 마곡사 괘불을 24일부터 전시한다. 전시실 천장까지 닿을 듯한 괘불을 자세히 보면 연꽃을 든 석가모니와 관세음보살, 비로자나불, 사천왕 등 35명의 등장인물을 방제(이름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수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안전한 보존을 위해 마곡사에서도 수년에 한 번씩만 외부에 공개한다는 점에서 괘불의 진품을 관람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라고 말했다. 10월 20일까지. 무료.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0년 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문화재 지킴이 ‘10만 양병’을 주장했더니 700명에 불과했던 회원이 금세 1만 명으로 불어났어요. 설립 12주년을 맞은 올해 ‘100만 양병’을 말한다면 곧 10만 명이 되지 않을까요.” 봄 햇살이 가득했던 11일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아픔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운영하는 역사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13일 설립 12주년을 맞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의 김종규 이사장(80)을 만났다. 김 이사장은 삼성출판사를 운영한 출판인 출신이다. 그는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만들어내는 등 유구한 출판사(史)를 가졌다”며 “30년 전 국내 최초로 출판·인쇄 전문 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을 설립한 뒤로 본격적인 문화재 지킴이 활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한국박물관협회장, 문화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김 이사장은 2007년 정부가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를 모델로 국민과 기업의 기부를 받아 문화재를 매입, 보존, 활용하는 단체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을 만들 당시 설립위원장으로 추대됐다. 2010년부터는 이사장에 취임해 현재까지 신탁을 이끌고 있다. 김 이사장은 1931년 충무공 이순신의 묘와 위토(位土·묘소 관리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토지)를 구하기 위한 동아일보의 범국민적 캠페인에서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충무공 후손들이 묘소 땅을 처분하려 하자 동아일보가 대대적인 보도를 했고 이를 통해 2만여 명이 1만6021원30전(현재 가치로 약 3억7000만 원)을 모아 역사를 지켜냈다”고 설명했다. 최근 10년간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성장을 거듭했다. 소설가 이상의 생가를 매입해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고 2012년에는 미국 워싱턴 초대 대한제국 공사관 매입에 힘을 보탰다. 2010년 700명이던 회원 수는 지난달 기준 1만4000여 명에 이른다. 회원들은 월 3000∼1만 원을 후원하면 4대궁과 종묘 등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혜택을 제공받는다. 김 이사장은 “가장 큰 혜택은 한국의 문화재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정세균 전 국회의장, 이해인 수녀 등 유명 인사뿐 아니라 특히 청소년에게 인기가 많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앞으로 시민 체험형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김 이사장은 “전국의 주요 종택들은 우리나라의 유무형 문화재가 숨쉬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들의 문화를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