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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통보를 받고 하루하루가 긴장된 시간이었습니다. 예상 못 했던 축복 아래서 지난날을 반추해 보고, 또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고민도 해봤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 비할 데 없는 영광된 자리에 섰습니다.” 26일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 제5회 박수근미술상 시상식에서 수상자 임동식 작가(75)는 “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그림인 동시에 가슴을 치는 ‘인간 드라마’”라며 “우리로 하여금 감성을 일깨우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그의 예술세계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박수근미술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제정돼 동아일보와 양구군, 강원일보, 서울디자인재단, 박수근미술관이 공동 주최한다. 시상식은 박 화백의 기일이 있는 매년 5월 개최했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이날 열렸다. 조은정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장은 “국내에 많은 미술상이 있지만 박수근미술상은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다”며 “오로지 예술가의 길을 가는 작가에게 주는 상이 박수근미술상임을 증명하는 자리가 바로 지금”이라고 했다. 엄선미 박수근미술관 관장은 “임 작가의 회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풍경 자체를 숙고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조인묵 양구군수는 “미술사적 가치와 그간의 화업(畵業)을 인정받게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박 화백의 장남 박성남 화백은 “(전 수상자인) 황재형 김진열 이재삼 박미화 작가의 ‘꽃다발’이 임 작가에게 안긴 것을 보니 포스트 박수근의 ‘한 뼘 잇기’가 놀랍고 감사하다”고 밝혔다. 임 작가에게는 박 화백의 작품 ‘아기 보는 소녀(1963년)’를 조각으로 형상화한 상패와 창작지원금 3000만 원이 주어졌다. 그는 내년 5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갤러리 문’과 박수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날 시상식에는 수상자 가족과 류철하 이응노미술관 관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양구=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깨끗한 가을 하늘이 펼쳐지는 날들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포는 여전하다. 마스크를 끼고 손을 씻으며 매일 아침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것 외엔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든 상황이 처음인 날들을 세계가 함께 지나고 있다. 저자는 코로나19 속 서울의 일상을 느린 호흡으로 기록한다. 그 누구도 향방을 예측할 수 없는 신종 바이러스 아래, 암흑을 손으로 더듬어가듯 매일을 관찰했다. 그 속에는 일상이 낱낱이 공개됐던 슈퍼 전파자, 신천지 집단감염 등 벌써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는 사건도 등장한다. 적응할 새 없이 잇따라 벌어지는 각종 사건 속에 하루 이틀 정도의 대화 소재가 돼 넘어갔던 일들이 다시 소환되는 것이다. 담담한 문장 사이에서 드러나는 건 터무니없는 인간사의 단면이다. 코로나19의 첫 사망자는 20년 넘게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1957년생 남성.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 그의 체중은 42kg이었다. 통계와 공식 발표에는 전달되지 않는 ‘벌거벗은 유인원’, 인간의 모습이 생생히 살아난다. 그는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나타난 이유는 인간도 한낱 동물임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라고 쓴다. 콜롬비아 보고타 출신인 저자는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한국에서의 삶을 그린 ‘한국에 삽니다’로 2016년 콜롬비아 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33세이던 2010년 영국 문학지 그랜타가 ‘스페인어권 최고의 젊은 작가 22인’에 선정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예술은 박제된 장식이나 글로 된 관념이 아닌 삶에서 배태된다. 한없이 관념적으로 보이는 ‘다다이즘’도, 마르셀 뒤샹의 ‘샘’도 세계대전이 일으킨 허무가 낳은 예술이었다. 한국 미술사는 과연 우리들의 삶과 함께 흘러가고 있을까. 예술가 황재형(68)은 이 시대의 민낯을 보기 위해 모든 것을 뒤로하고 탄광에 뛰어들었다. 한국 미술의 ‘딥 컷(Deep Cut)’, 숨은 보석인 황재형의 작품세계를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1982년 9월. 서른 살 황재형은 아내와 두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강원도 탄광촌으로 향했다. 현실에 대한 깊은 절망감을 안고 있었다. 대학에선 밤낮 술을 먹으며 세상이 뒤집어지는 이야길 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가장 뜨거운 진실을 찾겠다며 그는 현장으로 향했다. 1년만 있어보자고 다짐한 것이 길어져 작가는 지금도 태백에 살고 있다. 그가 탄광에 간 것은 단순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와 산업으로 만들어진 포장을 벗겨낸 시대의 민낯을 보기 위해서였다. 황재형은 “희망이 없어지는 곳이 바로 ‘막장’이며, 광부는 서울이나 부산에 더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로 5m, 세로 2m의 대작은 ‘백두대간’이다. 작가는 이 그림을 1993년 시작해 20년 넘게 그리고 있다. 풍경을 감상하려는 그림이었다면 오랜 세월을 들일 필요가 없다. 그림 속 백두대간은 우리가 휴양하러 찾는 피안의 자연이 아닌 인간의 조건이다. 바다 속 땅이 용솟음칠 때부터 인간이 묵묵히 흘려온 땀과 역사가 담긴 거대한 몸이다. 세상은 황재형을 ‘탄광촌의 화가’라 말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산은 산이 아니고, 광부도 광부가 아니다. 단순한 기록을 위한 그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대미술의 문을 연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생 빅투아르 산’이 ‘개별성의 산’이라면 황재형의 산은 ‘한국인의 땀과 살과 주름’에서 배어 나온 산이다. 우뚝 솟아 굽이치는 산맥의 힘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사를 두터운 물감에 담은 그림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몸속에도 장엄한 백두대간이 자리하고 있다고. 그러니 용기를 내라고. ::황재형 작가::△1952년 전남 보성 출생△1982년 중앙대 회화과 졸업, 강원 태백 탄광촌으로 이주서울 덕수미술관 ‘임술년 창립’전△1991년 서울 가나아트센터 ‘쥘 흙과 뉠 땅’△2010년 서울·뉴욕 가나아트센터 ‘쥘 흙과 뉠 땅’△2013년 전북도립미술관·광주시립미술관 ‘삶의 주름, 땀의 무게’△2017년 강원 양구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가로 5m, 세로 2m에 달하는 이 대작은 황재형 작가(68)의 작품 ‘백두대간’이다. 작가는 이 그림을 1993년 시작해 수십 년에 걸쳐 그리고 있다. 단순히 보기 좋은 풍경을 감상하려는 그림이라면 오랜 세월을 들일 필요가 없다. 우뚝 솟아 굽이치는 산맥의 힘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사를 두터운 물감에 담은 그림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몸속에도 장엄한 백두대간이 자리하고 있다고. 그러니 용기를 내라고. 세상은 황재형을 태백과 탄광촌의 화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산은 산이 아니고, 광부도 광부가 아니다. 단순한 기록을 위한 그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대미술의 문을 연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생 빅투아르 산’이 ‘개별성의 산’이라면, 황재형의 산은 ‘한국인의 땀과 살과 주름’에서 배어 나온 산이다.○ 시대의 민낯을 찾아가다. 1982년 9월 작가는 가족과 함께 강원도 태백 탄광촌으로 이주했다. 안경을 쓰면 광부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콘택트렌즈를 끼고 일을 했다.화가 황재형을 세상에 알린 것도 이 작품이다. 태백 황지탄광에서 갱도 매몰 사고로 사망한 광부 김봉춘 씨의 작업복을 극도로 확대했다. 낡아서 헤어지고 구멍 난 옷 그림자 아래 김 씨의 증명사진 속 얼굴이 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렇게 썼다.“광부의 아내가 라면을 끓여 내온 밥상 틈에 박힌 고춧가루와 흰 밥알을 보며 남보다 더 고생하며 살았다 자부한 자신에게 구역질이 났다. … 그 잠시의 경험으로 작품을 시도했지만 광부의 작업복을 통해서는 광부의 작업복 밖에 표현할 수 없음에 남들이 보지 않는 변소에서 눈물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샘터, 1985년 3월호)렌즈를 끼고 일하다 시력을 잃을 뻔하는 등 이어진 삶이 강렬해 그의 작품을 ‘탄광 노동자의 현실 고발’로만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가 탄광을 전전한 이유는 도시를 비롯한 각종 포장을 벗겨낸 시대의 민낯을 보기 위해서였다. 탄광촌에 왜 갔냐는 물음에 대해 황재형은 ‘진정성을 찾고 싶어서’라고 했다.“1980년대 사회나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너무 깊었다. 진정성, 진실을 알고 싶었지만 그것은 누가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에선 밤낮 술만 먹으며 세상 뒤집어지는 이야길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4.19 세대들의 변절도 봤다. 가장 뜨거운 진실은 현장에 있다니 그것을 찾겠다고 직접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이다.”황재형은 현대 사회 인간의 노동이 놓인 조건, 그 민낯을 보기 위해 온갖 포장을 벗겨낸 벌거벗은 막장으로 향했다.“광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치스런 감상은 무너졌다. 구경하며 짬짬이 한 일과는 전혀 다른 작업량. 갈증, 호흡 곤란, 작업 장소에서 부적당한 큰 키. 내게 중요한 첫 경험은 점심 시간에 이루어졌다. 부옇게 탄진이 날리는 갱도에서 버려진 갱목을 놓고 안전등을 서로에게 비추며 앉아 먹었던 점심은 삶의 연민과 진실이었다.” (샘터, 1985년 3월호)이 과정에서 경계했던 것은 ‘대상화’, 광부의 삶을 그림의 소재로 이용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광부로 일하던 어느 날 황재형은 탄광 옆 판자 건물 속 목욕하는 선탄부들의 소리를 듣는다. 땀 흘려 일하고 난 ‘숭고한 모습’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솟아 문고리를 붙잡았다. 수십 분을 고민했지만, ‘황재형, 너 지금 이 사람들을 대상화하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끝내 포기했다.시인 신경림은 그에 대해 이렇게 썼다.“황재형은 목에 힘을 주고 광부들을 지도하겠다고 설치는 화가가 아니라 그들 속에 들어가 거꾸로 그들로부터 삶의 진실을 배워 화폭에 옮겨 놓는 화가임을 확인했다.”(1991년 가나아트센터 ‘쥘 흙과 뉠 땅’전 도록)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 벗어나서 바라보면 그림 속 광부의 삶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누구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 속에서 살고 직장을 다니지만, 때때로 그 삶에 매몰되다 보면 자아나 본성을 잃어버린다. 그런 세상 속 광부들에게 이야기와 위로를 건네고 싶다고 작가는 말한다.“세상 어디든 희망 없는 곳이 바로 ‘막장’이다. 광부는 서울이나 부산에 더 많을 수 있다.”○ 당신의 몸속에 백두대간이 있다대작 ‘백두대간’의 시작은 광부 동료들과 탄광 일을 마친 어느 날이었다. 하루의 노동을 술 한 잔으로 달래고 헤어지던 어두운 밤, 황재형은 산골을 타고 짐승처럼 울부짖는 회오리 바람을 마주했다.“바람이 깊은 계곡을 타고 나오며 눈보라 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해저에서부터 지각 변동을 타고 솟아나온 카르스트 지형이다. ‘이것이야 말로 속에서 역동적으로 끌어 올려지는 용솟음이 아닌가, 내가 정말 그려볼 장소를 만났구나. 저 생명력을 그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다음날 아침 작가는 화구를 들고 다시 산에 올랐다. 캔버스를 펼치고 그림을 그리려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젯밤의 에너지는 온데 간데 없고 차분하고 고요한 아침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이게 뭐야? 이러면 일반 풍경화 달력 그림이지 뭐야 이게! 내가 느꼈던 건 이게 아닌데 안되겠어.’가져온 짐을 다시 꾸려 하산하려던 작가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모든 건 내재되는 것이다. 슬픔도 기쁨도 광란도 폭풍우도 자연이 담고 있다. 밖으로 나왔을 땐 현상에 불과한 데, 왜 겉모습만 보고 실망해서 가려 하나?’이 때의 깨달음은 ‘백두대간’에 20년이 넘는 시간을 매달리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의 고뇌와 씨름은 작품 속 공간이 태백산맥을 넘어서게 만들었다. 그림은 산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 산은 우리가 휴양하러 찾는 피안의 자연이 아닌 인간의 조건이다. 바닷속 땅이 용솟음 칠 때부터 인간이 묵묵히 흘려온 땀과 역사가 담긴 거대한 몸이다.사람의 몸으로서 자연은 어떤 의미일까? 작가는 구부러진 산맥과 구릉을 할머니의 손에 비유했다.“그 손을 보면 마디가 지고 구릉이 진다. 내 코 앞에 손을 놓고 보면 바로 그것이 산의 모습이다. 나의 조상으로부터 흘러 내려와 골골이 사무치고 구릉으로 내닫는 묵묵한 생명력이 산인 것이다.”그림 속 아버지의 얼굴에는 백두대간의 산맥의 구릉처럼 만들어진 주름이 졌다. 그 주름 속엔 그가 겪은 삶의 굴곡들이 있다. 그럼에도 맑은 눈은 희망과 생명력을 말한다.“계급의 간극도 삶의 주름이요, 척박한 막장 환경을 편안해 하는 굴욕적인 적응력도 삶의 주름이라는 억지가 언제부턴가 피어 올라왔다…온갖 삶의 주름은 얼굴의 주름처럼 앙금으로 남았다. 놀라운 건 삶의 주름이 그렇다 해도 그것은 주름일 뿐 존재와 본질은 변함없이 희망을 이야기 한다.” (2013년 광주시립미술관 개인전 ‘삶의 주름 땀의 무게’ 윤범모의 글에서 황재형 작가의 말)그림 ‘백두대간’은 말한다. 삶과 역사의 모든 굴곡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몸 속에는 백두대간이 있다고. 태고부터 흘러 내려온 생명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 아름다움은 삶에서 나온다그는 1997년 ‘태백미술연구소’를 만들고 매년 미술 캠프를 열고 있다. 처음 열었을 땐 교사 7명에 학생 2명이 찾았지만, 지금은 40여 명이 찾는다. 이는 관념이나 장식을 위한 예술이 아닌 삶과 맞닿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업 세계와도 맞닿아있다.“오랜 세월 동안 예술이 특권적인 것으로 이야기 되어 왔다. 특히 한국에서는 현실과 상관없는 ‘유미주의’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것은 서구의 예술 관념이 일본을 통해 한국으로 오면서 굴절되어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그의 말처럼 국제 미술사는 특정 계층의 역사를 벗어나 보편적 인권의 확장을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물론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각 지역별 주체의 맥락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국내 미술사는 일제시대와 미술수첩을 통해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진 미술사, 이 때문에 관념적으로 예술을 접근한 관점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어디에도 ‘한국’을 찾을 수 없었던 작가들이 저마다의 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이 중 황재형 작가는 삶의 처절한 현장을 찾아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현실의 인간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다. 미술사가 전하현은 그의 작업에 대해 “삶에서 배태된 예술을 추구하는 한국 미술사에서 보기 드문 예”라며 “이런 작가가 있다는 것은 한국의 큰 문화적 자산”이라고 말했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우리 동네에 비보이 조형물이 생긴다고요? 그게 왜 공공미술인가요?” 경기 부천시에 사는 직장인 조모 씨(32)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내용을 전해 듣고 이렇게 반문했다. 3차 추경 예산 통과로 생긴 이 프로젝트는 문체부(759억)와 지방자치단체 예산(179억)을 합해 총 948억 원 규모로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일부 공개된 공모 결과에 따르면 비보이 조형물뿐 아니라 가두 전시장, 철도 모형 조각, 트릭 아트 벽화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역 심사에 참여한 미술계 인사 A 씨는 “연말까지 예산을 집행해야 해 급조된 프로그램을 울며 겨자 먹기로 선정하고 있다”며 “채택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심사위원도 있다”고 말했다.●“퇴행적 환경미술 양산 우려”전국 228개 지자체별로 시행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 중이다. 7월 3일 사업 안내서가 배포되고 8월 말부터 공모가 시작됐다. 대부분 사업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흉물 양산을 우려하고 있다. 턱없이 짧은 진행 기간 때문이다. 공공미술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주민들의 수요 등 오랜 시간을 들여 다양한 맥락을 고려해 의미와 가치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설치미술가 부부인 ‘크리스토와 잔클로드’의 대표적 공공미술로, 프랑스 파리의 퐁뇌프 다리를 황금빛 천으로 둘러싼 ‘퐁뇌프 포장’은 10여 년이 걸렸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내년 2월까지 마무리 지어야한다. 준비 기간은 길어야 6개월, 아이디어 구상은 물론 제작에도 벅찬 시간이다. 전남 지역 한 도시의 담당자 B씨는 “통상 마을 미술 프로젝트는 연초부터 지역에서 자율적으로 준비해 예산을 신청한다. 이번엔 연중에 문체부에서 돈부터 내려준다며 정하라니 졸속은 맞다”고 했다. 프로젝트 결과물의 ‘3년 유지’ 조항도 부담을 가중시킨다. 경남 지역 한 도시의 담당자 C씨는 “사후 관리 예산이 편성이 쉽지 않아 내년 추경을 기대해야 해 흉물로 전락할까 걱정”이라고 털어 놓았다. 문체부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짧은 기간을 보완할 근본적 대책은 아니다. 오히려 책임 떠넘기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일부 공개된 지자체의 심사위원 평가에서 ‘구상 기간이 짧아 보완이 필요하다’거나 ‘조건부 통과’가 결정되고 있다. 김찬동 전 수원시립미술관장은 “충분한 기간과 소통, 협업이 없다면 일방적 제작 설치로 ‘퇴행적 환경미술’ 양산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일시적 고용 수치 높이기?이러한 우려는 추경 예산안 발표 때부터 제기됐다. “90년 전 미국에서 실패한 뉴딜정책을 왜 답습하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럼에도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강행된 것은 ‘일자리 창출’ 목적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최근 서울시 공공미술프로젝트는 ‘대학교수, 직장인, 대학생은 참여가 제한되며 최종 사업자로 선정될 시 반드시 고용보험 미가입 상태여야 한다’고 긴급 공지했다. 또 ‘사업비 4억 기준 총 37명 팀 구성’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돼 복수의 예술가 참가를 조건으로 했다. 이 때문에 “고용 수치를 높이기 위한 꼼수”라거나 “공공미술이 아닌 공공근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정은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장은 “작업 기회가 없는 예술가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작가 D씨는 “창작에 대한 이해 없이 노동 행위만 지원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미술계 위한다면 생태계 지원을”코로나19에 해외 정부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취소된 행사 비용을 일부 지원하거나, 예술 기관과 사업체, 프리랜서 예술가 지원에 집중한다. 프랑스는 3월 문화계의 연대 기금이나 예술가를 위한 실업 급여 등 기존 제도에 예산을 지원했다. 가시적 결과물이나 통계적 이득을 위해서가 아닌 예술계 생태계를 유지에 방점을 둔 것이다. 황무현 창원조각비엔날레 추진위원장은 “예산이 전무한 지역 예술인 복지센터 등 기존의 시스템을 활용한 간접지원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라며 “지금 정책은 추진 기간이 터무니없이 짧아 지역 미술계 갈등을 조장할 우려도 있다”고 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20년치 소장품 구입 예산과 맞먹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예산은 예술기금 조성이나 창작 준비금, 생활 금융 지원으로도 쓰일 수 있다”며 “지금처럼 충분한 연구와 조사가 없으면 1000억 원 가까운 세금이 휘발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관을 통한 간접지원이나 미술품 구입 지원이 예술인을 존중하는 태도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어제 나는 여기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1845년 7월 5일 토요일 아침.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새 노트를 꺼내 이렇게 적었다. 글을 쓴 장소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 3개월 전 그는 아일랜드계 철도 노동자로부터 4달러 25센트를 주고 이곳의 판잣집을 샀다. 소로는 직접 도끼를 들고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이 집을 오두막집으로 바꿨다. 쟁기질로 집 옆 땅을 갈아 강낭콩을 심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땅에게 풀이 아닌 콩으로 말하게 하는 일”이었다. 이 일은 고전이 된 책 ‘월든’을 꽃피웠다. 그러나 월든은 소로가 ‘자연의 은둔자’라는 오해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소로는 때때로 염세주의에 찌들고,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잔소리꾼으로 폄하됐다. 그의 45년 생애 가운데 월든 호숫가에 머문 기간은 2년 2개월 2일에 불과했으며, 실은 이웃이나 친구들과 교류가 잦았다는 사실에 어떤 독자는 배신감을 느낀다. 그런 독자에게 이 책은 “당신이 아는 소로가 전부는 아니다”라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소로와 그의 친구들이 남긴 일기 편지 저작에 근거해 그의 생애를 추적한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각 세대의 방식으로 소로를 되살렸으나, 자신이 찾던 소로를 발견할 수 없어’ 이 책을 썼다면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저술 ‘시민불복종’과 ‘더 높은 법칙’의 개혁가 소로의 모습이 살아난다. 시민불복종에서 소로는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우리의 환경(정치적 환경과 자연환경)을 만든다고 말한다. 사소한 모든 선택의 총합이 지구라는 저울에 올라가 세계를 만든다는 것. 여기서 소로의 사회적 행동주의와 자연보호 사상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임을 가늠할 수 있다. ‘매사추세츠의 노예제’를 강연하던 날, 소로는 미국 헌법을 구둣발로 짓밟고 이렇게 외쳤다. “인간이 천박하다면 아름다운 자연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김영자(70) 정회석 씨(58)가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로 인정됐다. 문화재청은 18일 “김 씨와 정 씨는 판소리 심청가의 전승 능력 및 전수 활동 기여도를 인정받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두 사람 모두 명창 정권진 전 보유자(1927∼1986)를 사사했다. 김 씨는 8세부터 정 전 보유자에게서 심청가와 ‘춘향가’를 배웠다. 1987년 판소리 수궁가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됐다. 정 전 보유자의 아들인 정 씨는 할아버지 정응민 명창(1896∼1963)이 서편제와 동편제 소리를 집대성한 보성소리의 전승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에는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흥보가 춘향가 고법(鼓法) 등 6개 분야가 있다. 심청가는 2017년 성창순 전 보유자 별세 이후 보유자가 없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대작(代作) 스캔들’의 반사 효과일까? 아니면 ‘트롯파 미술’이 대중의 마음을 울린 걸까? 서울과 충남 아산시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가수 조영남(75)의 작품이 관객들의 호응을 얻으며 판매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강남구 피카프로젝트에서는 1일 전시 개막 후 보름 만에 10여 점이 판매됐다. 지난달 12일 개막한 아산갤러리에서는 20여 점을 판매해 두 갤러리의 판매 금액을 합하면 5억 원이 넘는다. 조영남의 작품 가격은 200만∼6000만 원대다. 조영남은 그림을 그릴 때 조수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기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조영남의 작품을 산 컬렉터는 누구일까? 김수열 아산갤러리 대표는 평소와 다른 성향의 관객과 컬렉터가 전시장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보통 전시를 열면 작가나 미술계 관계자가 많이 찾는데, 조영남 전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미술계와 미술 전문지가 외면하는 가운데 일반인이나 컬렉터가 굉장한 호기심을 갖고 온다.” ‘대작 사건’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된 컬렉터도 있다. 성해중 피카프로젝트 대표는 “일부는 ‘조영남의 행동은 비호감’이라면서도 이번 재판 결과에 따른 투자 가치를 기대하고 구매하고 있다”며 “첫 그림 구매를 조영남 작품으로 시작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조영남은 시인 이상이나 풍경을 다룬 그림도 전시하고 있지만 주로 팔리는 것은 ‘화투 그림’이다. 피카프로젝트에서 화투를 소재로 한 그림만 판매됐다. 아산갤러리에서는 화투가 나오는 ‘극동에서 온 꽃’ 시리즈가 전부 판매됐고, 화투 그림을 찾는 요청이 많아 다음 전시에는 화투 그림을 좀 더 늘릴 예정이다. 이는 조영남이 ‘트롯파 미술’이라 설명한 것처럼, 대중에게 친근하고 익숙한 소재를 사용한 ‘한국적 팝아트’가 소통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서구의 예술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한 것에 대한 ‘화투의 반역’이라는 것이다. 코카콜라나 캠벨수프 같은 해외문화를 차용한 것이 ‘팝아트’가 아니라 한국인이 즐기는 소재를 활용한 ‘대중미술’이라는 이야기다. 조영남의 작품 ‘음악과 미술’을 구매한 김숙희 씨(62)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적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던 조영남 선생님이 전시를 한다니 무척 반가웠죠. 작품 구매도 이번이 처음인데, 그 그림을 보고 여섯 살짜리 손녀가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이렇게 편하고 따뜻하고 즐거운 그림이면 그만 아닌가요?”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제19회 키아프 아트서울(KIAF ART SEOUL·한국국제아트페어)이 온라인 전시로 열린다. 당초 키아프 아트서울은 25∼2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전면 중단됐다. 키아프 공식 홈페이지에서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 페어에는 11개국 139개 갤러리가 참가한다. 갤러리마다 최다 30점의 작품 이미지를 올려놓을 수 있다. 판매되거나 교체할 작품은 실시간 반영된다. 작품 가격 공개는 갤러리 재량에 따른다. VIP 개막 16일, 일반 개막 23일. 다음 달 18일까지 볼 수 있다. 국제갤러리, 학고재 같은 일부 갤러리는 자체 전시장 내부에 별도의 전시 공간을 두고 예약을 통해 키아프 출품작을 직접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립중앙박물관은 ‘출행도(出行圖·왕의 행차를 그린 그림)’ 병풍(사진)을 10월 11일까지 온라인 공개한다고 15일 밝혔다. 19세기 후반 조선 궁중 도화서 화원들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출행도 병풍은 해, 달, 봉우리 5개의 일월오봉(日月五峯)을 배경으로 왕과 인물, 동물 등이 정교한 선과 화려한 색깔로 묘사돼 있다. 이 병풍은 1886∼1926년 국내 교육, 의료, 선교 분야에서 활동한 달젤 벙커, 애니 벙커 부부가 소장하다 1933년 미국 오하이오주 오벌린대에 기증한 것이다. 2년 전 오벌린대 앨런기념관의 요청으로 한국에 들여와 전통 방식으로 보존 처리했다. 중앙박물관 홈페이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감상할 수 있다. 전시가 끝나면 병풍은 미국으로 돌아간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본명 김남준·26·사진)이 국립현대미술관(MMCA)에 1억 원을 기부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RM이 미술책 읽는 문화 확산을 위해 국립현대미술관문화재단을 통해 도서 제작 후원에 참여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기부는 RM의 12일 생일을 기념한 것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출간한 미술 도서를 중심으로 절판돼 구하기 어렵거나, 재발행이 필요한 도서 제작을 후원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RM 후원으로 제작된 도서는 도심에서 먼 전국 공공도서관 및 도서산간지역 초중고교 도서관 400곳에 기증되고,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책방에도 비치할 예정이다. 도서는 한국 작가 도록 7종(김환기 이중섭 변월룡 유영국 박래현 윤형근 이승조)과 전시 도록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중 각 1권을 묶어 한 세트 8권으로 구성된다. 총 4000권이 만들어져 다음 달에 보급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RM 씨가 평소 영감과 휴식을 얻은 미술 분야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히며, 본인이 책을 통해 미술을 더 깊게 이해하는 것처럼 미술관 접근이 어려운 청소년들도 쉽게 미술을 접하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와 기쁘고 놀랐다”며 “바쁜 스케줄에도 미술관을 찾아 관심 확대에 영향력을 주는 RM 씨와 함께 우리 미술 책 읽는 문화가 확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3일 경북 경주시 황남동 고분 120-2호 발굴 현장의 컨테이너 사무소. 공사장을 연상케 하는 이곳에 온라인에선 2800여 명의 눈이 쏠리고 있다. 반짝이는 금과 은, 푸른 유리구슬이 찬란한 ‘고분 언박싱(unboxing·개봉)’ 온라인 생중계 현장이다. ‘개 짖는 소리까지 들리다니 리얼 현장이네’ ‘국보 가자, 소리 질러!’ ‘블루베리처럼 생긴 건 뭔가요?’ … 실시간 채팅창에 글들이 무섭게 올라오는 가운데 대본을 손에 꼭 쥔 남자가 설명을 이어갔다. 다소 굳은 표정의 김권일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선임연구원이다. 동영상 조회수가 대부분 1000을 넘지 않는 문화재청 유튜브 채널에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박’을 터뜨린 김 연구원을 11일 전화로 만났다. “보통 현장 공개에는 연구자와 시민을 포함해 많아 봤자 100여 명 모이거든요. 온라인으로 3000명 가까이 모여 깜짝 놀랐죠. 지금은 조회 수가 6만 회를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일 컨테이너 안은 분주했다. 한쪽에는 김 연구원과 공동 진행자인 곽창용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장이 있고 그 맞은편에 카메라 두 대가 놓였다. 뒤쪽 책상에서는 10여 명이 시청자 질문에 댓글을 달거나 전체 상황을 체크했다. “사실 현장 설명도 생중계로 준비했어요. 전날 리허설도 했는데 태풍이 직격하는 바람에 사전 촬영 영상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죠.” 인터뷰 날도 그는 비가 내려 발굴 현장을 덮고 촬영한 사진을 정리하다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김 연구원은 발굴 현장 생중계는 전례가 없었기에 매우 긴장했다고 털어놨다. 게다가 전신 모두 착장한 장신구가 발견된 것도 1970년대 이후 처음이어서 반응은 뜨거웠다. 생중계 때, 발굴 당시 소감을 묻는 누리꾼의 질문에 “1996년부터 발굴했는데 내 인생에 이렇게 중요한 유적을 조사하게 돼 고고학자로서 큰 영광과 설렘을 느끼고 동시에 어깨가 무거워졌다”고 한 대답은 감동을 자아냈다. 그런데 긴장 탓에 얼굴이 굳었는지 ‘설레는데 왜 설렌 표정이 아니세요’라는 댓글도 달렸다. 정작 누리꾼 반응은 생중계 뒤에야 확인했다. 평소 유튜브를 즐겨 보냐고 묻자 “당구, 낚시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즐겨 보는데 제가 생중계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푸른 유리구슬이 ‘블루베리’를 닮았다는 반응이나 하트 모양 장신구가 화제가 된 것이 의외였다고 했다. “듣고 보니 정말 블루베리 같더라고요. 연구자들은 생각도 못 한 관점이었죠.” ‘발굴 현장에 참여하고 싶다’ ‘고고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등의 반응에 김 연구원은 더 적극적으로 발굴 성과를 공유할 필요성과 책임감을 절감했다고 했다. “유튜브에선 다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120-2호분의 구조나 유물 형식도 새롭게 확인된 것이 굉장히 많아요. 대형 고분이어서 더욱 기대가 되는 120호분 발굴도 남아 있습니다.”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향후 발굴 조사 성과도 유튜브로 공유할 계획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프랑스의 최고 권위 훈장 레지옹 도뇌르는 리본걸이, 리본, 자수 등 거의 모든 것이 빨갛다. 레드 와인이 화이트 와인보다, 붉은 고기가 흰색 고기보다 더 기운을 북돋운다는 믿음도 있다. 빨간색 스포츠카는 왠지 더 빨리 달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미니멀’과 무채색이 일반적인 21세기엔 자칫하다 촌스러워질 수 있다. 이 책은 대담하며 권위적인 색, 빨강의 역사를 다룬다. 고대 로마부터 18세기까지 서유럽에서 빨강은 그 어느 색보다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었다. 중세 문장학의 권위자인 저자가 ‘파랑의 역사’(2000년)와 ‘검정의 역사’, ‘초록의 역사’를 내고서야 ‘빨강’을 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빨강은 인간이 처음으로 제어하고 만들었던 색이다. 제작 시기가 기원전 1만5000∼기원전 1만3500년경으로 추정되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들소도 붉은색으로 채색됐다. 고전 라틴어에서 ‘빨강’은 ‘채색된, 유색의’라는 의미로도 쓰이며, 어떤 언어에서는 색을 나타내는 용어로 하양, 검정, 빨강 세 가지만 존재할 정도다. 이렇게 고대와 중세 사회에서 가장 원초적이며 우월했던 빨강은 중세 말 그 위상이 급속도로 흔들렸다. 귀족적인 색으로 급부상한 파랑, 사치와 우아함을 표상한 검정의 공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종교개혁 이후 비도덕적이고 퇴폐적인 색으로 낙인찍힌 빨강은 16세기 말부터 퇴조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그럼에도 빨강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길 때 여전히 사용되곤 한다. 세일이나 행사 상품을 알릴 때 붉은 글씨를 쓰며, ‘레드 라벨’은 일반 제품보다 품질이 좋은 상품을 의미한다. 빨간 립스틱은 도발적인 유혹을 상징한다. 중요한 인물을 맞이할 때 ‘레드 카펫’이 깔리는 것도 변하지 않는 관습이다. 단순한 색채의 개념 규정이나 상징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맥락에서 의미를 분석했다. 이 덕분에 색채를 렌즈로 사실상 역사를 돌아보는 기분이 든다. 다만 그 역사가 전 세계가 아닌 유럽에 한정된 것은 유념해야 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24년부터 여성 소수인종 성(性)소수자 장애인 등을 스크린 안팎에서 비중 있게 포함한 영화만 오스카 작품상 후보가 될 수 있다. 아카데미 영화제를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8일(현지 시간) 작품상 후보 조건에 이들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하는 내용의 다양성 기준을 추가한다고 밝혔다. AMPAS에 따르면 다양성 기준은 △출연진 △제작진 △영화산업 진입 기회 △마케팅 및 홍보 등 네 영역의 9개 세부기준으로 나뉘며 작품상 후보에 오르려면 이 중 적어도 두 영역에서 각각 1개 세부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작품상을 제외한 다른 부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출연진에는 주·조연 중 1명 이상이 소수인종(아시안 히스패닉 흑인 등) 출신이거나, 주·조연을 제외한 출연진의 30%가 여성, 성소수자, 소수인종, 장애인 출신이어야 한다. 제작진에는 감독, 촬영감독 등 14개 주요 책임자 중 2명 이상이 사회적 소수자이거나 전 스태프의 30% 이상이 사회적 소수자여야 한다. 영화산업 진입 기회에서는 소수인종에게 유급 인턴 기회를 줘야 하며 마케팅과 홍보 분야에서는 고위직 2명 이상이 사회적 소수자여야 한다. 아카데미가 백인 남성 중심의 ‘백인잔치(#OscarsSoWhite)’란 비판을 받아온 AMPAS 측은 “영화 제작부터 관객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인구 다양성을 반영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는 ‘세계 문해의 날’을 맞아 문맹 퇴치 공로자에게 주는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의 수상자로 네팔 노령기구와 미얀마 세계연합학교 프로그램을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네팔 노령기구는 노인을 대상으로 복지사업을 운영하는 비정부기구로 2016년부터 ‘노인을 위한 기초 문해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미얀마 세계연합학교는 2009년 영국에서 창립된 국제 자선 단체로 버마어 전용 공립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샨주의 아동을 지원한다. 시상식은 8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비대면·화상 방식으로 열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너는 아들이 넷이나 되어 든든하고 좋겠다. 너무 걱정 마라. 나는 얘네(작품)들이 내 자식이다. 네 자식들보다 오래 살 테니 걱정 마라.” 생전 조각가 권진규(1922∼1973)는 자신을 애처롭게 보는 막내 여동생 권경숙 여사(93)에게 이렇게 말했다. 1973년 5월 스스로 생을 마감할 때도 그는 “작품과 사후 처리를 맡긴다”며 ‘누이동생 경숙 앞’으로 글을 남겼다. 짧은 유서 위에는 장례비가 놓여 있었다. 권 여사는 오빠의 말을 가슴에 담았다. 조카나 다름없는 유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평생 숙원이 됐다. ‘권진규 미술관’을 짓기 위해 독지가를 찾아다닌 것도 그래서였다. 대일광업이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급’ 건축가에게 맡겨 미술관을 지어주겠다고 한 건 2015년이었다. 권 여사는 ‘미술관 주변에 해바라기 울타리나 꽃밭을 조성한다’는 조항도 넣어 미술관 설립 합의서를 작성했다. 해바라기는 오빠가 가장 좋아한 꽃이었다. 이때 넘긴 작품과 기록 700여 점이 대부업체 창고에 있음을 알게 된 건 지난해 작품 반환 소송을 제기한 뒤였다. 법정 공방 끝에 작품이 돌아와 서울시립미술관에 공간을 마련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40여 년이 걸렸다. 가장 큰 손실은 그동안 작품이 관객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2010년 전시를 마지막으로 권진규 작가의 중요한 조각과 드로잉 작품이 빛을 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권진규의 외조카인 허경회 권진규기념사업회 대표는 “그간 겪은 우여곡절이 유족으로서 창피한 일”이라며 “신진 작가를 위한 ‘권진규상’을 제정하는 등 앞으로 작가를 기리는 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그간 미술계에는 유족이 작품을 기증하고 미술관을 건립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기증보다 그 이후 작품 관리에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처럼 미술관 건립이 공수표가 되거나, 미술관을 짓고도 사후 관리가 되지 않아 잡음도 인다. 수년 전에는 한 재불(在佛) 작가 미술관이 관장도, 큐레이터도 없이 개관해 논란이 됐다. 기증보다 중요한 건 이후 보존과 지속적인 연구 활동이다. 작가 미술관 관장을 지낸 한 인사는 “미술관이 손을 놓거나 때로는 유족이 불필요하게 관여해 관객은 뒷전이 되는 경우가 있다”며 “작품은 미술관도, 유족의 것도 아닌 공공자산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제 권진규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한다. 탄탄한 연구를 바탕으로 시대적 맥락에 맞는 전시가 열리길 기대한다. 작품은 관객의 눈을 만나 다양한 의미를 생성할 때 비로소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1982년 서울 종로구 관훈미술관(현 관훈갤러리)에서 ‘인간 11인전(展)’이 열렸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예술가 정문규(84)와 황용엽(89)이 주축이 돼 기획한 전시였다. 작가가 직접 전시를 기획했고 추상 미술이 대세이던 분위기에서 인간을 주제로 하는 작가들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지연 학맥 인맥과 관계없이 작품 내용을 주제로 모인 것도 그랬다. 이후 1987년까지 6회 열린 ‘인간전’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볼 수 있는 전시가 경기 안산시 대부도 정문규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6개월간 3부로 나눠 진행되는 ‘인간전(人間展) 2020’이다. 현재는 2부 전시인 ‘인간탐구-존재(내적 갈등)’가 열리고 있다. 독자적인 조형언어로 인간을 그려내는 정복수, 시대상을 인물에 야성적으로 담은 안창홍, 한국인의 원형을 탐구한 권순철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밖에 노원희 오원배 윤석남 이재삼 황용엽 등 21명이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 기획을 맡은 박푸름 큐레이터는 “참여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을 묘사하며 현대사회의 갈등과 압박이 주는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다”며 “이번 전시는 획일적 표현을 벗어나 작가 개개인의 표현 확장을 목표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문규미술관은 2009년 대부도의 대중목욕탕 ‘해수탕’을 개조해 만들었다. 위암 수술을 받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안산에 정착한 정 화백이 작업실을 구하다 오래된 목욕탕의 높은 층고에 반해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2010년에는 70세 이상의 작가들 작품을 모아 ‘아직도 우리는 현역이다’전을 열기도 했다. 정 화백은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이 인간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환기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 및 체온 측정 후 볼 수 있다. 안내에 따라 앞사람과 2m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10월 25일까지. 3부 ‘사람×사람-상처와 치유’전은 10월 28일부터 12월 20일까지 열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500년 전 신라시대 왕족이 제사에 사용한 음식 종류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조개와 물고기는 물론 성게류와 요리가 까다로운 복어, 돌고래까지 제사 음식으로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가 발굴했던 경북 경주 서봉총을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재발굴해 새로 밝혀진 사실들을 담은 보고서를 7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봉총 재발굴 과정에서 무덤 둘레돌 주변에 큰 항아리를 놓고 무덤 주인에게 음식을 바친 제사 흔적이 발견됐다. 발견된 제사용 항아리는 총 27개로 북분(北墳·북쪽 무덤)에 10개, 남분(南墳·남쪽 무덤)에 13개, 경계가 모호한 것이 4개다. 이 항아리들에서 동물 유체 총 7700점이 확인됐고, 이 중 조개류는 1883점, 물고기류가 5700점으로 대다수였다. 특이한 것은 바다포유류인 돌고래, 파충류인 남생이와 함께 성게류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신경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운 복어도 발견됐다. 이러한 제사 문화는 일제강점기 조사뿐 아니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역사 기록에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또 청어와 방어의 유체가 다수 확인된 것을 고려하면 서봉총의 남분이 가을에 완성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김대환 학예연구사는 “이번에 확인된 동물 유체는 신라 무덤 제사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을 알려주는 자료”라며 “신라 왕족이 고래, 복어, 성게 등 다채로운 식생활을 즐겼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경주 서봉총은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는 신라 왕족의 무덤 중 하나로 서기 500년 무렵 만들어졌으며 두 개의 봉분이 맞닿은 쌍분이다. 먼저 만들어진 북분은 1926년, 남분은 1929년 각각 발굴됐다. 서봉총은 금관을 비롯해 황금 장신구와 부장품이 다수 발견됐다. 그러나 일본 발굴단은 보고서를 간행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14년 서봉총 출토품 보고서를 간행했고, 2016, 2017년 재발굴을 진행해 북분의 직경이 일제가 조사한 36.3m보다 더 큰 46.7m임을 밝히기도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700년 전 가야인이 만든 유리세공 목걸이 3점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7일 경남 김해시 대성동과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사진) 등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맑고 투명한 수정과 주황색 마노, 파란색 유리 등 다양한 재료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유리를 곡옥(曲玉)이나 다면체 형태로 가공하고 구멍을 뚫는 등 우수한 유리세공 기술을 보여준다. 또 다른 목걸이인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는 수정을 여러 형태로 다듬었다. 육각다면체형부터 주판알형, 곡옥형 등으로 가공해 연결했는데, 이 목걸이처럼 100여 점 수정으로만 구성된 사례는 드물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또한 가야인의 기술을 보여주고 출토지도 분명해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가야인들은 수정이나 유리구슬을 선호해 금은 제품을 주로 다룬 신라, 백제와 다른 생활양식을 가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500년 전 신라시대 왕족이 제사에 사용한 음식 종류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조개와 물고기는 물론 성게류와 요리가 까다로운 복어, 돌고래까지 제사 음식으로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가 발굴했던 경북 경주 서봉총을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재발굴해 새로 밝혀진 사실들을 담은 보고서를 7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봉총 재발굴 과정에서 무덤 둘레돌 주변에 큰 항아리를 놓고 무덤 주인에게 음식을 바친 제사 흔적이 발견됐다. 발견된 제사용 항아리는 총 27개로 북분(北墳·북쪽 무덤)에 10개, 남분(南墳·남쪽 무덤)에 13개, 경계가 모호한 것이 4개다. 이들 항아리에서 동물 유체 총 7700점이 확인됐고, 이중 조개류는 1883점, 물고기류가 5700점으로 대다수였다. 특이한 것은 바다포유류인 돌고래, 파충류인 남생이와 함께 성게류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신경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운 복어도 발견됐다. 이러한 제사 문화는 일제강점기 조사뿐 아니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등 역사 기록에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또 청어와 방어의 유체가 다수 확인된 것을 고려하면 서봉총의 남분이 가을에 완성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김대환 학예연구사는 “이번에 확인된 동물 유체는 신라 무덤제사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을 알려주는 자료”라며 “신라 왕족이 고래, 복어, 성게 등 다채로운 식생활을 즐겼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경주 서봉총은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는 신라 왕족의 무덤 중 하나로 서기 500년 무렵 만들어졌으며 두 개의 봉분이 맞닿은 쌍분이다. 먼저 만들어진 북분은 1926년, 남분은 1929년 각각 발굴됐다. 서봉총은 금관을 비롯해 황금 장신구와 부장품이 다수 발견됐다. 그러나 일본 발굴단은 보고서를 간행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14년 서봉총 출토품 보고서를 간행했고, 2016~2017년 재발굴을 진행해 북분의 직경이 일제가 조사한 36.3m보다 더 큰 46.7m임을 밝히기도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