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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 업무보고를 받으러 내려오는 길에 자리를 둘러보고 싶어서 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올 1월 과로로 순직한 고 김선숙 보건복지부 사무관이 일하던 자리를 직접 찾았다.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의 업무보고를 받기 전 복지부 복지정책관실을 깜짝 방문한 것이다. 세 아이를 둔 ‘워킹맘’이었던 김 사무관은 1월 휴일 근무를 하다 청사에서 순직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과로로 숨진 여성 공무원의 소식에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진다”며 애도를 표했다. 무거운 표정으로 김 사무관의 자리를 보던 문 대통령은 “아이도 셋이 있고, 육아하면서 토요일 일요일에도 근무하다 그런 변을 당한 게 아닌가”라며 “그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기본적으로 일하고 가정에서도 생활할 수 있어야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의 동료들과 마주앉은 문 대통령은 “그나마 이른 시일 내 순직으로 인정돼 다행스러운데 같은 부서 분들 가슴이 아플 것 같다”고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또 공무원들과 육아 휴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등을 떠밀어서라도 육아 휴직을 하게끔, 그게 너무나 당연한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경제 부처가 오랫동안 다닌 익숙한 길을 버리고 한 번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는데도 김동연 경제부총리 지휘 아래 너무 잘해 주고 있어 고맙다”고 말했다. 증세 과정에서 기재부가 당청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이른바 ‘김동연 패싱’ 논란을 잠재우고 김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문 대통령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직접 거명하며 “기재부, 공정위, 금융위가 국민 경제와 민생 살리는 희망의 드림팀이 돼 주실 것을 국민들과 함께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업무보고에서 기재부는 새로운 기술서비스에 대해 당분간은 전혀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일단 산업의 파이를 키워 활성화시키는 ‘규제 샌드박스(Sandbox)’를 도입하겠다고 보고했다. 금융위는 내년 상반기까지 전 금융권에서 연대보증을 폐지해 연간 2만4000명을 보증의 덫에서 구제하겠다고 밝혔다.한상준 alwaysj@donga.com / 세종=김준일 기자}
“내가 전쟁만은 막겠다고 말하면 대북 제재나 국제 공조에 어긋난다고 하고, 외국 정상이 (같은 말을) 하면 좋은 말이 되는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외교부,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북핵 등 한반도 상황을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고 복수의 정부 관계자가 24일 전했다. 자신의 한반도 운전석론과 “대한민국 동의 없이 (대북)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15일 광복절 경축사) 등 전쟁 불가론에 대한 자유한국당 등 보수 일각의 비판을 겨냥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업무보고에서 “(한국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전쟁만은 막겠다고 말해야 하지 않느냐”며 이같이 수차례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의무인데, 일부에서 마치 이를 (한미 간 대북 공조를 깨는 등) 잘못된 것처럼 비판하고 다른 나라와 북한의 대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중 잣대를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압박하면서도 대화의 문은 계속해서 열어놓겠다는 문 대통령의 ‘투 트랙’ 대북 기조를 재차 강조한 것이다. 업무보고에선 남북 대화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는 후문이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는 국면에서 제재는 강조되고 대화는 실종됐다”고 진단한 뒤 “북-미 간 채널도 있고, 북-일 간 대화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우리만 대화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미국, 일본도 국익을 위해 대화하는 것이다. 실무적인 대화는 다양하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임 실장의 말에 문 대통령도 “국익을 위해 남북 대화를 포함한 다양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21일 에드워드 마키 상원의원 등 미 의원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개성공단 사업이 북한의 내부 경제 변화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첫 업무보고에서 어떤 형식이든 남북 대화 재개 필요성을 강조한 만큼 통일부 등 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우선 북한과의 민간 교류를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의 대외선전단체인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는 23일 오후 10시경 대변인 담화를 내 “남조선에서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하여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괴뢰패당의 북침 야욕”이라며 “놀아대는 꼴이 온 겨레의 저주 속에 촛불민심의 심판을 받은 박근혜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 현 괴뢰정권의 대결 행태”라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이 모두발언에서 “엄동설한에도 봄은 반드시 온다”며 남북관계 개선의 바람을 밝혔지만 여전히 싸늘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상준 alwaysj@donga.com·황인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박성진 포스텍 교수(49·사진)를 지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 창업국가’ 공약을 주도할, 벤처 창업 경험을 갖춘 학자를 지명하면서 문 대통령은 취임 106일 만에 초대 내각 구성을 마무리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박 후보자는 기계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공학자”라며 “창업과 기술사업화 지원을 위해 설립된 포스텍 기술지주 대표이사를 맡아 스타트업과 중소·벤처기업 정책을 이끌어 나갈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포스텍 기술지주는 신생 벤처기업을 발굴해 지원하는 창업기획 기업이다. 부산 출신으로 해운대고를 졸업한 박 후보자는 포항공대(현 포스텍) 1회 수석 졸업생으로 문미옥 대통령과학기술보좌관과 동기다. 같은 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LG전자 연구원을 거쳐 벤처기업인 델레포스 연구원, 쎄타텍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냈다. 이어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박 후보자는 2009년에는 기계공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파우더 메탤러지’의 최고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박 후보자는 “국민과 중소벤처기업의 염원을 담은 부처의 첫 장관 후보자가 된 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당초 청와대는 40대 유명 벤처기업인을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고자 했지만 후보자 다수가 고위 공직자가 직무 관련 주식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주식 백지신탁 제도’를 이유로 고사하면서 인선이 난항을 겪었다. 결국 인사수석실과 문 보좌관이 학계 인사들의 명단을 정리했고, 최종적으로 박 후보자가 낙점됐다. 이날 오후까지 망설이던 박 후보자가 최종적으로 수락 의사를 전하자 청와대 내에서는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후련하다”는 말이 나왔다. 다만 박 후보자가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신봉하는 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한 것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창조론’ 신봉자라는 의혹을 받아 논란이 된 바 있다. 박 후보자 지명을 끝으로 문재인 정부 첫 내각 구성은 모두 마무리됐다. 대통령 당선 이후 106일 만에 조각(組閣)을 마쳐 당선 이후 119일 만에 내각 구성을 마친 박근혜 정부에 이어 역대 정부 중 두 번째로 조각 완료 기간이 길었다. 여성 장관 비율은 장관급 피우진 보훈처장을 포함해 31.5%로 집계돼 30%를 넘기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을 지켰다. 지역별로는 부산·경남 출신이 6명으로 가장 많았고 수도권 4명, 광주·전남과 충북 각각 3명, 충남과 전북 대구·경북 출신 각각 1명이다.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 기자}

25년 전인 1992년 8월 24일, 당시 이상옥 외무부 장관과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간의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남북 분단 이후 적대적이었던 한중 관계가 냉전 종료와 함께 평화적 관계로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수교 25주년을 맞은 24일, 양국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한국과 중국은 25주년이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상의 축하 메시지 교환 외에는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양국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불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양국 관계를 실질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지속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는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청와대는 이날 한중 수교 25주년에 대한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았다. 시 주석 역시 이날 문 대통령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지만 기존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시 주석이 “한국과 중국 간 견해차를 적절하게 해결하기 위해 문 대통령과 공동 노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달 한중 정상회담에서 나온 시 주석의 언급과 같은 내용이다. ▼ 韓 “본질을 봐야” vs 中 “초심 지켜야”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행사 역시 한중 양국이 따로 개최하는 등 냉랭한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중 수교 20주년인 2012년에는 양국이 공동 행사를 개최했을 정도로 지금과 정반대의 양상이었다. 당시 기념행사에는 부주석이던 시 주석과 외교부장이던 양제츠(楊潔지) 국무위원 등 중국 측 주요 인사가 참석했다. 중국은 주중 한국대사관이 24일 오후 베이징(北京) 시내 호텔에서 개최한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행사에 한국과 별 관계가 없는 완강(萬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을 주빈으로 보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참석하지 않았고 쿵쉬안유(孔鉉佑) 부장조리(차관보급), 왕야쥔(王亞軍) 당 중앙위 대외연락부 부장조리 등이 참석했다. 특히 중국은 23일 자국 주최 기념행사와 24일 한국 주최 기념행사에 모두 한국과 전혀 관계없는 과학자 출신 인사를 참석시켰다. 중국 외교부는 수교 25주년인 이날에도 정례 브리핑에서 사드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다. 주한 중국대사관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정세균 국회의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이 참석했다. 외교부에서는 강경화 장관 대신 임성남 1차관이 참석했다. 정 의장은 축사에서 “견월망지(見月忘指·달을 볼 때 이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어 보라는 말”이라며 “모든 주권국가는 외부 위협에 대해 자위적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추궈훙(邱國洪) 중국대사는 “초심을 지킬 때 한중 관계는 정확한 방향을 마련하고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23일 출소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사법부의 정치 보복’이라고 여당이 주장하면서 불어닥친 정치권 논란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국회 인준의 악재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회 동의의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 내부에서 김 후보자 인준에 대한 비판적 기류가 형성돼 결과가 주목된다. 국민의당 이용호 정책위의장은 2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씨가 (불법정치자금으로) 수표를 받은 것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만장일치 판결을 내린 것을 부정하는 것은 사법부를 부정하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사고”라며 “정 억울하면 재심을 청구하라”고 말했다. 재심은 잘못된 확정판결에 대해 법원에 다시 판결해 달라고 피고인이 청구하는 것이다. 이 의장은 “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김 후보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며 “이념적으로 편향된 후보를 대법원장에 앉혀 놓고 서로 소통하고 코드를 맞춰 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김 후보자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국민의당은 25일 법제사법위원회 위원과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조찬 모임을 갖고 이를 논의할 예정이다. 국민의당 법사위 간사인 이용주 의원은 “김 후보자 자체보다 정부, 여당의 사법부 코드 인사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국회 인준 동의 과정에서 대통령 인사에 반대 의견을 표출하고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야권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날 당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한 전 총리의 출소 사진과 함께 “저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는 한 전 총리의 메시지를 띄웠다. 그 아래에는 “정치 보복은 기어이 징역 2년이라는 선고로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정의가 바로설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린다”고 적었다. 한 전 총리는 출소 후 지인들과의 조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대통령비서실장, 국회의원, 당 대표 등 많은 역할 중 대통령 역할을 가장 잘하시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잘하실 줄 몰랐다”고 말했다고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전했다. 한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게 그분의 운명이고 우리의 역사인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물론이고 청와대는 한 전 총리 출소에 대해 별다른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괜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와 새 정부가 임명한 사법부 인사들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는 정무적 판단 때문이다. 여기에 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기소도 재판도 잘못됐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자칫 이 문제로 사법개혁을 위해 인선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도 악영향을 끼칠까 청와대는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추 대표가 안 해도 될 말을 해 논란을 키웠다”며 “주요 현안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오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7시부터 약 두 시간 동안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추 대표 등 민주당 주요 당직자들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등 청와대 수석 및 보좌관 등이 참석한 만찬 회동이 열렸다. 다만 이날 모임에서는 한 전 총리의 출소 직후 여권에서 제기된 사법적폐 논란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최고야 best@donga.com·한상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 달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중국, 일본보다 러시아를 먼저 방문하는 것은 각각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한일 과거사 문제로 인한 불편한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다음 달 6일부터 이틀 동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푸틴 대통령과 만난다고 22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피하려고 중국보다 더 의존하고 있다는 러시아에 대북 제재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가스, 전력 등을 비롯한 북방경제협력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유라시아 지역의 교통·물류·에너지 협력 강화를 위한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했다.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문 대통령은 다음 달 18일부터 닷새간의 일정으로 미국 뉴욕을 방문해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한다. 11월에는 국제회의에 연이어 참석한다. 문 대통령은 11월 1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트남을 방문하고, 곧바로 필리핀으로 이동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3 및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해 동아시아 다자외교에 나선다. 문 대통령의 중국, 일본 방문은 올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청와대가 21일 대법원장 후보자로 김명수 춘천지법원장(58·사법연수원 15기)을 지명하기 직전까지 법원 안팎에서는 박시환 전 대법관(64·12기)과 전수안 전 대법관(65·8기)을 유력한 후보군으로 보았다. 대법원장은 전·현직 대법관 가운데 나오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기 때문에 김 후보자는 후보군으로 거론조차 안 됐다. 박 전 대법관은 실제로 청와대가 가장 먼저 점찍었던 대법원장 후보였다. 전직 대법관 출신이어서 법원 내부의 거부감이 적은 데다 이념적으로도 진보 성향이 뚜렷해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보수화한 사법부의 체질을 바꾸는 데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법관은 청와대의 바람과 달리 대법원장 자리를 끝내 고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대법원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박 전 대법관을 수차례 설득했지만 실패했다”며 “박 전 대법관이 ‘공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강의 활동 등을 하고 싶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은 현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전 전 대법관도 11일 페이스북에 “박 전 대법관이 이 시점에서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분은 없을 것”이라는 글을 올리며 자신이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데 대해 완곡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두 전직 대법관이 모두 대법원장직을 고사하면서 한때 김영란 전 대법관(61·11기)이 대타로 거론됐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김 전 대법관이 이명박 정부에서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점 때문에 부정적인 기류가 강했다고 한다. 결국 청와대는 지난주 후반부터 전·현직 대법관이 아닌 인물 가운데 대법원장 후보를 고르는 쪽으로 선회했다. 김 후보자가 물망에 오른 것은 이때부터다. 김 후보자 외에 변호사 등 다른 법조인들도 후보로 검토됐지만 당사자들이 대부분 인사 검증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고사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법원장 자리에 부합하는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서 국회 청문회도 통과할 수 있는 후보자를 고르느라 어려움이 컸다”고 말했다.강경석 coolup@donga.com·한상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에 김명수 춘천지법원장(58·사법연수원 15기)을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본회의 임명동의안 표결을 통과하면 9월 24일 임기를 마치는 양승태 대법원장(69·2기)의 후임 대법원장으로 임명된다. 이 경우 49년 만에 대법관 출신이 아닌 대법원장이 되는 것이다. 법원장이 곧바로 대법원장으로 발탁되는 것은 사법 사상 처음이다. 김 후보자는 양 대법원장보다 사법연수원 13기수 후배다. 현직 대법관 13명 중 9명(11∼14기)이 김 후보자의 사법연수원 선배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파격 인선이라는 평가에 대해 “김 후보자는 춘천지법원장으로 재직하며 법관 독립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사법 행정의 민주화를 선도하여 실행했다”며 “관행을 뛰어넘는 파격이 새 정부다운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 “김 후보자는 인권 수호를 사명으로 삼아온 법관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배려하는 한편 (법원 내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기틀을 다진 초대 회장으로 인권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2004년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또 2011년 우리법연구회의 명맥을 잇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출범 당시 초대, 2대 회장을 맡았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현재 법원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청와대와 법조계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대법원장에 임명해 본격적인 사법부 개혁에 나서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법부 개혁은 원칙적인 과제”라며 “대법관 출신이 아닌 김 후보자를 지명했다는 점은 파격적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그만큼 새 정부의 사법 개혁 의지가 강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부산 출신으로 부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 후보자는 1986년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로 임관해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시절 민사재판 실무 지침서인 민사실무제요 발간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대법원 재판연구관 당시 민사조장을 지내 민사법 전문 법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당초 박시환 전 대법관(64·12기)과 전수안 전 대법관(65·8기)을 대법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검토했지만 두 사람 다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강경석 coolup@donga.com·한상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아주 제한적 범위의 군사적 옵션이라도 실행하면 남북 간 군사 충돌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한국 내 많은 외국인과 주한미군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에드워드 마키 미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민주당 간사 등 5명의 미 의회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미국은) 6·25의 폐허를 딛고 이렇게 성장한 대한민국을 다시 폐허로 만들 수 없는 노릇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 이후 워싱턴에서 여전히 대북 군사옵션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했던 ‘전쟁불가론’을 가장 강도 높은 표현으로 재촉구한 것이다. 특히 이날은 북한의 도발에 대처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열린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군사연습 시작일인 만큼, 왜 이날 이런 메시지를 발신했는지를 놓고 한미 양국에서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접견한 마키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을 앞장서서 비판해온 미 의회 내 대표적인 대화론자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인 올 1월 미 의회의 전쟁선포 없이 대통령의 핵무기 선제공격을 금지하는 ‘핵무기 선제 사용 제한법안’을 발의한 데 이어 북-미 간 직접 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미 의회 대표단은 한중일 순방의 일환으로 방한해 문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 안팎에선 문 대통령이 북-미 대화론자 접견을 통해 “주한미군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고 한 것은 “전쟁을 하더라도 저쪽(한반도)에서 하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저쪽에서 죽지 이쪽(미국)에서 죽지 않는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언급에 대한 반박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이날 시작한 UFG 군사연습을 맞아 주재한 을지국무회의에서 “연례적 방어훈련인 을지훈련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한 민관군 방어태세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며 “오히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 때문에 한미 연합 방어훈련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을 (북한이)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평화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며 “북한은 추가적인 도발과 위협적 언행을 중단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과정에 적극 동참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국무회의 직전에는 청와대 ‘지하벙커’로 불리는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주요 내각이 참석했다. 정경두 합참의장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으로부터 한미 양국군의 대북 군사태세에 대한 화상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북 도발 시 즉각적이고 단호한 격퇴가 이뤄질 수 있도록 완벽 대응 태세를 갖춰 달라”고 당부했다. 또 대북 인도적 교류 재개 등을 제안한 베를린 구상을 재차 언급하며 “북한이 올바른 길을 선택하면 국제사회와의 협력하에 보다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운전석론’을 강조하며 UFG 연습이 북한의 오판을 초래하는 상황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은) 대화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은 제재와 압박 국면으로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 기자}
“국민들이 선거 때 한 표 행사하는 간접 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치가 낙후됐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정당과 정책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대회 ‘대한민국, 대한국민’ 행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른바 ‘촛불 정신’의 직접 민주주의 요구를 수용해 대국민 직접 소통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 문 대통령 취임 100일을 기념해 토크쇼 형식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정책을 제안한 국민인수위원 280명이 참석했다.○ 文 “청년 일자리 문제 2022년부터 괜찮을 듯” 이날 행사에는 인디밴드 데이브레이크의 ‘꽃길만 걷게 해줄게’ 공연으로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들이 ‘꽃길’을 가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청와대 내 밴드 공연이라는 파격을 통해 보여준 것. 장애인, 초등학생, 힙합 가수 등이 참여해 실생활과 관련한 정책을 제안하고 질문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은 행사를 시작한 지 40분이 지난 2부 ‘국민이 묻고 대통령이 답하다’에서 처음 단상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국민인수위가 설치한 ‘광화문1번가’에 직접 제안한 정책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불공정 사례를 신고받자는 제안을 했다. 즉각 조치 가능한 신고는 각 부처에 전달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발표한 정책에 반영된 부분도 있다”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청년 일자리 창출 및 사회안전망 강화, 저출산 문제 극복 방안 등 국민인수위에 가장 많이 접수된 두 개의 질문에 직접 답변했다. 청년 일자리에 대해 “7월 고용률과 취업자 수는 최근 20년간 사상 최고지만 내용을 보면 비정규직이 늘고 청년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청년들이 취업할 만한 좋은 일자리는 줄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부에선 일자리를 만드는 데 국민 세금을 쓰는 게 합당하냐고 하지만 좋은 일자리 만들기는 청년에게 희망을 줄 뿐 아니라 세금을 많이 내고 소비하는 사람을 늘리는 정책으로 이를 통해 경제가 성장하는 길”이라며 ‘소득주도 성장론’을 재차 강조했다. 또 “인구 추세를 보면 지금이 청년 취업층 인구가 가장 많은 시기다. 2022년부터는 5년마다 100만 명씩 청년 취업 인구가 줄어들어 노동력 확보가 걱정인 나라로 바뀔 것”이라며 “몇 년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면 그 뒤론 예산 부담이 없어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저출산 정책에 대해 문 대통령은 “제 아들과 딸 모두 아이가 한 명씩이어서 한 명 더 낳지 그랬냐고 하니 둘 다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며 “근본적인 해법은 엄마와 아빠가 함께 아이를 기를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아빠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근본적으로는 노동시간 주 52시간 제도를 빨리 확립하고, 연차 휴가를 다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말해 참석한 국민인수위원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토론 시간 부족해 보여주기라는 지적도 이날 행사는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약속한 ‘광화문 대토론회’ 등 대국민 직접 소통 방안으로 진행됐다. 실제로 청와대는 광화문광장에서 보고대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국민들이 제안한 정책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에 야외 행사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장소를 청와대 경내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대통령들도 ‘국민과의 대화’ 방식으로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행사를 진행해왔다.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처음 선보인 국민과의 대화는 이후 4차례 국민과의 대화를 연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꾸준히 진행됐다. 이날 행사도 이전 정부 행사처럼 국민들이 질문을 던지고 대통령이 대답하는 형식이었지만 정책을 제안한 국민인수위원들이 참석하고 대통령뿐 아니라 해당 주제를 담당하는 장관들이 질의응답에 나섰다는 점에서 차별화했다. 답변에 나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내년에 자살 전담 부서를 신설하겠다”고 밝혔으며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공연장 찾는 분, 책 사시는 분들에게 100만 원 선에서 소득공제를 하겠다. 헬스클럽, 커피전문점에도 음악 저작권이 적용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토크쇼’ 형식으로 딱딱한 대담이 아닌 예능 요소를 차용한 점도 새로운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 등 사회자들은 초반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취임 100일 동안 점점 나이 들어 간다”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겐 “백발과 안경 때문에 문 대통령 여동생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하더니 장하성 정책실장에게 “아재 개그의 대명사”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 방향 등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부족해 ‘가벼운 행사’가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또 전체 행사 시간 60분 중 대통령과의 질의응답이 10분에 불과한 점이 아쉬웠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 기자}

“조국은 ‘작은 거인’이 걸어온 42년 애국의 길을 기억할 것이다.”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전역한 이순진 전 합참의장(사진)의 군 생활을 회고하며 42년간 보여준 국가에 대한 헌신에 경의를 표하자 이 전 의장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어제까지 군 최고 지휘관이었던 4성 장군은 군 통수권자 앞에서 결국 눈물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합참의장 이·취임식장에 참석해 ‘맨 인 유니폼(MIU·제복 입은 사람들)’에 대한 가치를 부각시키려 했다. 문 대통령은 채근담에 나오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한자를 거론하며 이 전 의장에 대해 “자신에겐 엄격하면서 부하들에게선 늘 ‘순진 형님’으로 불린 부하 사랑의 모습은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님들이 바라는 참군인의 표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최근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로 안보 상황이 엄중한 가운데서도 우리 국민은 대단히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군이 국방을 잘 관리하고 안보를 튼튼히 받쳐준 덕분”이라고 말하고 “그 중심에는 합참의장 이순진 대장의 노고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이 전 의장에게 보국훈장 통일장을 수여한 뒤 부인 박경자 여사에게는 꽃다발과 함께 캐나다행 왕복 비행기표를 선물했다. “대통령께서 이 전 의장이 (출장을 제외하곤) 42년간 한 번도 해외여행을 못 했다는 소식을 듣고 딸이 있는 캐나다행 비행기 티켓을 특별히 마련해 주셨다”는 사회자의 설명에 행사장은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 문재인 대통령 “軍이 국방개혁 주체 돼야”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전격적으로 합참의장 이·취임식에 참석한 것은 군심을 달래면서도 최고 통수권자로서 군과의 일체감을 형성하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최근 첫 대장 인사에서 23년 만에 공군 출신 정경두 합참의장을 임명하며 육군 중심이었던 군의 개혁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행보는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을 벤치마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미중 정상회담을 몇 시간 앞두고도 마틴 뎀프시 전 합참의장 전역식에 참석해 “마티(뎀프시의 애칭)를 내 친구라고 부를 수 있어 자랑스럽다. 당신이 보여준 헌신에 국가는 최고의 감사를 표한다”며 격려해 미군 안팎에서 감동을 자아낸 바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개인적인 친밀감을 강조하는 ‘오바마 스타일’을 통해 군의 사기를 높이고, 국민과 군이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 전 의장은 2014년 제2작전사령관으로 취임한 뒤 공관 요리병을 소속 부대로 돌려보내고, 부인 박 여사가 직접 식사 준비를 하게 했다. 최근 ‘갑질 논란’을 부른 박찬주 대장과 정반대의 사례인 셈. 여기에 이 전 의장이 첫 3사관학교 출신 합참의장이라는 점은 이번 대장 인사를 통해 육군·육사 중심이었던 군의 개혁에 나선 문 대통령의 의중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강한 군대를 만들라는 국방개혁은 더 지체할 수 없는 국민의 명령”이라며 국방개혁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싸워서 이기는 군대, 지휘관과 사병까지 애국심과 사기가 충만한 군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군대가 국방개혁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방개혁의 중심에 군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거듭 강조하지만, 군이 앞장서서 노력해야 한다. 군이 국방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나는 군 통수권자로서 국방개혁을 적극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은 “나는 육군 병장 출신의 군 통수권자로 이 자리에 섰다”며 군과의 일체감을 강조한 뒤 “우리 역사 속에는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장군처럼 국민과 민족이 사랑한 군인들이 있었다. 우리 군 장병들에게는 그 피와 정신이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참 좋았다. 특히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수 있게 된 게 아주 기뻤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동안 정말 좋았던 순간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청와대는 18일 홈페이지를 통해 ‘소소한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문 대통령과의 자체 인터뷰 영상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퇴근 후 일과에 대해 “퇴근 후에도 각종 보고서를 봐야 하니까 대통령은 퇴근시간이 사실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다”며 “그래도 시간이 나면 관저 주변을 마루, 토리, 찡찡이와 함께 산책한다”라고 말했다. 강아지 마루와 고양이 찡찡이는 문 대통령이 경남 양산에 머물 때부터 길렀던 반려동물이고, 토리는 청와대 입주 후 입양한 유기견이다. 문 대통령은 “찡찡이는 함께 TV 뉴스 보는 걸 좋아한다. 그런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라고 좋은 음식을 주려고 하셔서 살이 찔까 걱정”이라며 웃었다. 머리 스타일에 대해서는 “2주에 한 번 전속 이발사가 이발해준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비서실장,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지냈던 문 대통령은 10년 만의 청와대 생활에서 달라진 점에 대해 “근무하는 장소가 달라졌다”고 했다. 과거 대통령들은 본관에서 근무했지만 문 대통령은 비서동인 여민1관 3층으로 집무실을 옮겼다. 지지자들이 붙여준 ‘이니’라는 별명에 대해선 “그 전에는 ‘달님’으로 불렸는데 약간 쑥스러웠다. 그런데 ‘이니’라고 하니까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져서 좋다”고 했다. 부인 김정숙 여사의 별명 ‘쑤기’에 대해선 “저도 옛날에 (김 여사를) 그렇게 부르기도 했으니까 좋다”고 했다. 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는 홈페이지도 개편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일정을 날짜별로 공개하고 ‘청와대 뉴스룸’ ‘국민소통 광장’ 등을 신설했다. 한편 청와대는 20일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기념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보고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이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국민인수위에 정책을 제안한 일반 국민 250명을 초청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평화를 지키는 안보를 넘어 평화를 만드는 안보로 평화와 경제 번영을 이루겠다”고 밝히며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 계승 의지를 재차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켜가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도 남북 문제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겠다는 ‘운전석론’과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추도사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햇볕정책을 통해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며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으로 남북 화해 협력의 빛나는 이정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이어 “통일을 향한 담대한 비전과 실사구시의 정신, 안보와 평화에 대한 의지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가 북한의 도발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 동참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비핵화에 이르겠다는 ‘베를린 구상’이 흔들림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두 번에 걸친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끈 분도 김대중 대통령님”이라며 “(연평해전) 이후 참여정부까지 남북 간에 단 한 건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는 평화가 지켜졌다”고 말했다. 평화를 강조하면서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연평해전을 언급하면서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아무리 먹구름이 몰려오더라도, 한반도 역사에 새겨진 김대중의 길을 따라 남북이 다시 만나고 희망이 열릴 것이라고 저는 믿는다”고 했다. 지금의 긴장관계에도 불구하고 임기 내 남북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드러낸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연평해전 이후 군사적 충돌이 없었다는 점을 언급한 대목은 대북 문제의 해법은 군사적 행동이 아니라 대화와 평화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국민통합, 적폐청산,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 등의 과제도 민주 정부의 자부심, 책임감으로 온 힘을 다해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정책 외에 복지, 경제정책 등에서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뒤를 잇는 ‘3기 민주정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이날 추도식에는 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를 비롯해 정세균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이 참석했다. 5·9대선에서 경쟁했던 문 대통령과 홍 대표는 대선 이후 이날 처음으로 나란히 행사에 참석했지만 별 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추도식에 앞서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만나 “요즘 건강은 어떠시냐. 요즘도 매주 묘역에 나오시냐”라고 안부를 물었다. 이 여사는 김 여사에게 “너무 잘해주셔서 자랑스럽다”고 덕담을 건넸다. 문 전 대통령은 5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마지막”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날은 향후 김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 여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5월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었고, 이날 김 전 대통령 추도식 역시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 참석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문병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탈(脫)원전 추진에 대해 “탈원전 정책은 급격하지 않다”고 말했다. 찬반 여론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유럽 등 선진국의 (탈원전) 정책은 수년 내 원전을 멈추겠다는 식으로 굉장히 빠르다”며 “(새 정부는) 지금 가동되고 있는 원전의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대로 하나씩 원전의 문을 닫아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근래에 가동된 원전이나 지금 건설 중인 원전의 설계 수명은 60년이다. 적어도 탈원전에 이르는 데 6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문 대통령은 “이 정부 기간 동안 3기의 원전이 추가로 가동되는 반면에 줄어드는 원전은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정도”라며 “2030년에 가더라도 원전이 차지하는 전력 비중이 20%가 넘는다”고 밝혔다. 학계와 산업계 일각에서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탈원전이) 전기요금에 아주 대폭적인 상승을 불러일으키는 일도 아니다”고 일축했다. 문 대통령은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공론화위원회에 맡기기로 한 결정에 대해 “공약대로 백지화를 밀어붙이지 않고 공론조사를 통해서 결정하겠다는 것”이라며 “아주 적절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론화위원회는 이날 공론조사 진행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 2만 명을 대상으로 한 1차 전화 여론조사는 25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실시한다. 이어 여론조사에 응답한 국민 중에서 시민참여단 500명을 추려 2박 3일간 합숙하면서 숙의 과정을 거친 후 10월 15일 최종 조사를 한다. 공론화위원회는 이런 과정을 거쳐 10월 20일경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한상준 alwaysj@donga.com / 세종=이건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국민 공론이 모아지면 추가 증세 필요성에 대해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기초연금 확대 등 대규모 재원이 필요한 복지정책을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가운데 문 대통령이 추가 증세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세 공평성이나 소득 재분배 기능을 위해서든지, 복지 확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이든지 추가 증세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 공론이 모아지고 합의가 이뤄진다면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초(超)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국한한 이른바 ‘핀셋 증세’에 이어 과세 대상과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문 대통령은 “재원 대책 없이 산타클로스 정책을 내놓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는데 꼼꼼하게 재원 대책을 검토해 설계한 것”이라며 “지금까지 발표한 복지정책은 이미 발표한 증세 방안만으로 충분히 재원 감당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대선 공약인 부동산 보유세 강화에 대해서도 “추가 복지 재원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지금 단계에선 (보유세 강화를) 부동산 가격 안정화 대책으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북-미 충돌로 인한 한반도 긴장 상황과 관련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고 (여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게 되는 것이 레드라인(금지선)”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뜻하는 레드라인의 조건을 문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어 “미국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에 대해 (선제타격 등) 어떤 옵션을 사용하든 사전에 한국의 동의를 받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미 정상 간 합의 내용을 공개한 뒤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개헌에 대해선 “내년 지방선거(6월) 시기에 개헌하겠다는 약속에 변함이 없다”며 “국회 개헌특위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정부가 국회와 협의하며 자체 개헌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 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탓에 초창기 혼선을 겪었던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본격적인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다. 취임 초 대선 캠프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었던 문 대통령의 지근거리도 청와대 인사들이 속속 차지하고 있다. ○ 오전 9시 10분 티타임으로 업무 시작 문 대통령은 오전 9시 10분 여민1관 3층 집무실에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의 티타임으로 공식 업무를 시작한다. 임 실장 외에 보고할 게 있는 참모들도 참석한 가운데 지난 야간 상황을 보고받고, 당일 주요 현안을 점검한다. 집무실 바로 아래층에 사무실이 있는 임 실장은 명실상부한 청와대의 ‘원 톱’이다. 임 실장은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모든 공식·비공식 회의에 참석하고, 티타임 전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관한다. 5월 인사 파문과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 파문 당시 사실상 문 대통령을 대신해 사과한 것도 임 실장이다. 수석급 이상 중 가장 젊은(51세) 임 실장은 다른 참모들과의 소통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14일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원고를 각 수석실에 보내 의견을 물었다. 수석들의 견해를 존중하겠다는 취지였다. ○ 회의와 보고로 이어지는 오전 티타임이 끝나면 각종 임명장 수여식, 국무회의 등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공식 일정이 없는 날에는 보고를 받거나 관련 대책을 논의한다. 최근 한반도 긴장 상황이 고조되면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보고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청와대와 각 부처가 참여하는 현안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것도 변화다. 청와대는 “부동산 등 현안에 대해 부처에서 파견을 받지 않고 TF를 꾸려 3∼6개월가량 논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는 부처 직원의 청와대 불법 파견 관례를 근절하겠다는 이정도 총무비서관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캐비닛 문건’ 파문으로 문서 보안도 강화됐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이지원’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새 청와대 업무시스템에 문서를 올리면 자동으로 생성 번호가 부여된다. 결재·회람이 끝난 문서는 스캔해 전자 파일로 보관하고, 원본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한다. 최근 문 대통령은 공식 오찬이 없는 날이면 각 수석 및 비서관들에게 “점심을 같이하자”고 제안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장소는 청와대 구내식당이다. 큰 행사가 끝난 뒤 해당 실무진들을 격려하거나 참모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려 ‘점심 번개’를 친다고 한다. 또 문 대통령은 통상 매주 월요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오찬을 함께한다. ○ ‘시끌벅적’ 수보회의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열리는 수석·보좌관 회의는 과거 청와대와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이다. 각 실장·수석·보좌관은 물론이고 비서관들도 참석한다. 한 참석자는 “토론을 강조하는 문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정말 시끌벅적하다”며 “메인테이블 뒤편에 앉아 있던 비서관이 ‘저도 할 말이 있다’며 손을 드는 일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회의 자료를 취합, 정리하는 역할은 문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한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의 몫이다. 다만 정치권 출신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달리 관료 출신 ‘늘공(늘 공무원)’ 참모들 중에는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토론을 이어가는 문화를 여전히 낯설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반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참모로는 장하성 정책실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김수현 사회수석이 꼽힌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정책실이 부활되면서 장 정책실장의 권한도 자연스럽게 강화됐다. 한 비서관급 인사는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윤 수석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가 두텁다”며 “김 수석은 말이 필요 없는 ‘왕 수석’”이라고 전했다. 부동산, 탈(脫)원전 등 굵직한 정책들이 모두 김 수석의 영역이다. 윤 수석과 김 수석은 각 수석실 중 가장 많은 5개의 비서관실을 관할하고 있다. 또 수석·보좌관 회의가 본 궤도에 오르면서 새로운 보고 트렌드가 생겼다. ‘법률적인 이유로’ ‘법적인 문제로’ 등의 표현을 자제하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관용적인 표현이지만 변호사 출신의 문 대통령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어떤 법률 조항이 문제인지 그 자리에서 확인한다”고 전했다. 청와대 수석급 이상 중 변호사는 문 대통령이 유일하다.○ 문 대통령 아직 안가(安家) 사용 안 해 민주당 대표 시절부터 각종 보고서를 꼼꼼히 읽는 문 대통령의 습관은 청와대 입성 뒤에도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보고서를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부속실 직원을 통하지 않고 직접 참모에게 전화를 건다. 취임 초 문 대통령이 비서실장실에 전화해 “임 실장 있습니까”라고 물어 직원들이 놀랐던 일은 유명한 일화다. 문 대통령이 관저로 퇴근하는 시간은 보통 오후 6∼7시경이다. 하지만 최근 세제 개편안, 8·2부동산대책 등 주요 정책과 북핵 문제로 참모들과 회의가 길어지면서 퇴근 시간도 늦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참모들과 회의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도 있고, 각계 인사들과 비공개 만찬을 갖는 일도 있다”며 “모두 청와대 경내에서 이뤄지고 있어 외부의 ‘안가(안전가옥)’는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문병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독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친 직후부터 8·15 광복절 경축사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독일 쾨르버재단 연설에서 ‘베를린 구상’을 밝힌 이후 처음으로 내놓는 기념식 메시지이자 취임 첫 광복절 연설이란 무게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포괄적 타결을 핵심으로 하는 ‘베를린 구상’ 이후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 것도 청와대가 이번 경축사에 각별한 신경을 쓴 배경이다. ① 평화 20번 언급 전날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법을 강조했던 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도 ‘평화’를 20차례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날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은 두말할 것 없이 평화”라며 “동북아에 평화가 없으면 세계의 평화가 깨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북핵 문제의 운전석에 앉겠다는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우리의 안보를 동맹국에만 의존할 수 없다”며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추가 도발은 물론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대북 군사적 옵션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기도 하다. 외신들도 이 대목을 주목했다. 로이터통신은 “문 대통령이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행동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선언했다”고 전했다. 반면 중국 관영 환추왕(環球網)은 ‘미국에 외쳤다’는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문 대통령의 해당 발언을 보도했다. ② ‘핵 동결’부터 시작하자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해법에 대해 “핵 동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며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베를린 구상의 연장선상이다. 한미 정상은 6월 정상회담을 통해 ‘선(先)동결 후(後)폐기’라는 2단계 북핵 접근법에 동의한 바 있다. 그러나 보수 야권에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동결을 전제로 한 것은 섣부른 해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의 목적도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 군사적 긴장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화의 끈은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시 드러낸 것이다. ③ ‘1919년’과 ‘1948년’ 모두 언급 문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의지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시대를 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며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 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다”고 강조했다. 적폐 청산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보수 진영의 뿌리까지도 안겠다는 뜻이다.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서도 문 대통령은 진보 진영의 ‘1919년’과 보수 진영의 ‘1948년’을 모두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한 뒤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촛불 민심을 이런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봤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높이 든 촛불은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이라고 평가했다. ④ 한일 과거사와 미래 협력 구분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등 과거사와 앞으로의 협력 관계를 구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 일본은 역내 안보와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면서 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노력을 함께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정부는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 셔틀외교를 포함한 다양한 교류를 확대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과거사와 관련해 “역사 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며 “한일 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 문제를 대하는 일본 정부의 인식의 부침에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⑤ 임시정부기념관 설립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보훈의 기틀을 완전히 새롭게 하겠다”고 밝혔다. 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 임시정부기념관 건립,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보존 등을 약속했다. 이날 경축사에 대해 야권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8·15 기념식이 마치 촛불 기념식 같았다”며 “(문 대통령이 강조한) 평화는 구걸하는 게 아니라 힘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주장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대한민국의 국익은 평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7일)를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의 참상이 일어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힌 뒤 북-미 간 군사적 긴장 고조에 침묵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일주일 만에 내놓은 메시지는 ‘평화’였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2분가량의 발언 동안 평화라는 단어를 7번이나 썼다. 국민에게는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미국 일각에서 거론되는 선제타격 등 강경론에 재차 쐐기를 박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평화는 무력으로 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군사적 행동은 북핵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최근 미중 정상 간 통화 이후 북핵 문제에 대한 국면이 바뀌는 기류에 맞춘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북한과 미국이 “괌 포위 사격”, “화염과 분노” 등 거친 발언을 쏟아내며 신경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미 간 갈등이 정점에 달했을 때 문 대통령이 평화적 해결과 대화를 강조했다면 오히려 혼란을 더 키웠을 것”이라며 “북-미의 신경전이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협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이 높아진 상황을 기다려 문 대통령이 메시지를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도발과 위협적 언행을 즉시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며 “우리는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경우 남북 간 교류 협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우리 민족의 밝은 미래를 함께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제재와 압박을 가하면서도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것은 문 대통령의 일관된 대북 해법이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서도 “한미 동맹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동맹” “냉정하고 책임 있게 대응” 등을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메시지는 국내, 미국, 북한 등 모두에게 평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분명히 약속드린다. 위기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유사시 대비도 철저히 하고 있다”고 발언을 끝맺었다. 정부가 긴장 국면에서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야권의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외교·안보 핵심 브레인으로 활동했던 박선원 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사진)이 북핵 억제력 강화를 위해 미군이 보유 중인 전술핵을 재반입하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청와대의 대북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주한미군은 1958년부터 전술핵을 배치해 한때 950기까지 운용했으나 1991년 1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비핵화선언 후 전술핵을 전량 철수했다. 박 전 비서관은 1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괌을 포위 사격하겠다는 등 전혀 다른 새로운 위협에 나선 상황에서 우리도 (대북) 전략과 작전 개념을 다시 세워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전 비서관은 “북한이 괌을 공격하겠다고 한 것은 단시간에 한국과 미국을 무력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작전을 보여준 것”이라며 “북한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도 (전술핵 재배치 등) 새로운 방법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박 전 비서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김정은 괌 포위공격훈련 대처 4대 패키지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전술핵 재반입, 사드 가동 중단, 한미연합훈련을 방어적 성격으로 전환, 김정은 정권교체를 위한 대북 정치심리전 개시 등을 주장했다. 박 전 비서관은 “북한이 괌을 공격하겠다는 것은 미국의 전시증원전력을 차단하고, 미국의 핵우산을 무용지물로 만든 상태에서 최단 시일 내에 서울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 우리도 전천후 핵 균형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 (B-1B 전략핵폭격기 등) 전략 자산 움직임을 우리와 공유하지 않고 있는 데 비해 전술핵을 한반도에 들여오면 양국이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밖에 없고, 우리도 핵 억제력을 갖게 된다”고 덧붙였다. 또 박 전 비서관은 문재인 정부가 북핵 억제를 위해 전격 도입하기로 한 사드 배치와 관련해 “사드 조기 배치로 중국이 북한의 도발 위협을 뒤에서 즐기는 상황을 허용해선 안 된다”며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드 가동을 당분간 중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전 비서관은 또 김정은 정권 교체를 위한 대북심리전 전개에 대해선 “김정은의 북한은 과거 김일성·김정일 정권과는 다른 성격의 정치적 행위자라는 점에서 정권교체를 위한 대북 심리전에 나서겠다고 천명해야 공격적 책동을 재고할 것”이라며 “김정은은 정권을 위협받아야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술핵 재배치 등이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배치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상황이 달라졌다”고 답했다. 다만 박 전 비서관은 “(전술핵 재배치 등에 대해) 청와대와 이야기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새로운 전략 개념을 세우지 않으면 (북한의 도발에) 계속 허둥대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비서관의 주장에 청와대는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자유한국당은 전술핵 재배치가 당론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 정부 출범 이후 박 전 비서관은 공식 라인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개인적 의견”이라고 일축했다. ◇박선원은 누구=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하며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실무 준비한 핵심 브레인이었다. 문 대통령의 대미특사단 일원으로 5월 방미해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한 바 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별다른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사진) 임명에 대해 여당 내부에서도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청와대가 박 본부장의 사퇴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9일 더불어민주당은 박 본부장 임명을 두고 내부적으로 들끓었다. 2005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 당시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었던 박 본부장은 20조 원의 과학계 예산을 관할하는 요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여당 의원은 “과학계에서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박 본부장의 과오를 알고도 임명한 건 청와대의 실수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의당을 포함한 야권도 강하게 반발했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노무현 청와대 근무자는 무조건 기용되는 ‘노무현 하이패스, 프리패스’ 인사”라고 비판했다. 9일에도 과학계는 박 본부장 선임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과학 정책 제안을 위한 과학자와 시민 모임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는 9일 성명서를 내고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를 비롯한 총 169명의 반대서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당초 “사퇴는 없다”고 했던 청와대의 태도도 바뀌는 양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각계의 여러 목소리를 들어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며 “박 본부장의 거취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오가희 동아사이언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