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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선생은 까치 한 마리 동아일보에 던져놓고 홀연히 가셨다. 그야말로 새처럼 날아가셨다…(충남 연기군 선산에 세운) 비문에 마지막 그림 하늘을 새기기로 했다. 그 탑비는 내 섭섭함의 징표다.”(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조각가) 장욱진 화백(1917∼1990)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부인 이순경 여사(101)와 생전 장 화백이 ‘간이 맞는 딸’이라며 각별히 여겼던 장경수 경운박물관장(75)은 유품을 정리하다 그림 한 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타계 사흘 전인 1990년 12월 24일, 동아일보 의뢰를 받아 그린 신년 축화(祝畵)였다. 까치 한 마리가 창공을 박차고 날고 있고 하단의 산봉우리는 거꾸로 그려져 있었다. “왜 산을 거꾸로 그렸느냐”는 이 여사의 질문에 장 화백은 “하늘에서 보면 그렇게 보이잖아”라고 답했다. 기억을 더듬던 이 여사는 딸에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걸 예감하셨나 보다”고 했다. 15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만난 장경수 관장은 “동아일보의 1991년 신년 축화는 준비할 겨를도 없이 떠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애틋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화단에서는 보통 유화인 ‘밤의 노인’(1990년)을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지만 장 화백이 직접 ‘1991년’이라고 서명한 것은 이 신년 축화가 유일하다. 그가 묻힌 충남 연기군 묘역의 탑비(塔碑)에도 이 그림이 새겨져 있다. 장 화백은 1989년 동아일보 창간 69주년 축화도 맡았다. 산봉우리 위로 떠오른 태양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새를 그린 그는 “새의 날갯짓이 바로 생명력이다. 더욱 활기찬 동아일보의 비상(飛上)을 기대한다”고 적었다. 장 관장은 “생전 아버지가 어떤 요청이든 오면 거절하지 않았던 신문사가 동아일보”라고 했다. 그 20년 전인 1969년에는 ‘서사여화(書舍餘話)’ 코너에 칼럼을 연재했다. 평소 말수도 적고 좀처럼 속내를 표현하지 않는 그였지만 친하게 지냈던 문화부 기자의 제안에 필자로 합류했다. 장 관장은 “술자리에서만큼은 선문답하듯 말을 잘하니, 기자분이 아버지가 글을 잘 쓸 거라고 짐작했던 모양”이라며 웃었다. “아버지가 외마디 소리는 잘하지만 글 쓰는 일은 익숙지 않아 굉장한 부담을 가졌어요. 글 하나를 완성하면 진땀을 뺐다는 의미로 ‘내가 대작(大作)을 하나 했다’고 하셨죠.” 수개월 연재하다 끝내 부담을 못 이겨 손을 뗀다고 한 적도 있다. 그런데 글이 강렬하고 재미있다는 독자들의 반응 덕분에 연재는 이어졌다. 장 화백은 술을 마시다 창가에서 떨어진 이야기, 누구나 갖고 있는 어려움과 고민을 표현하는 문제부터 ‘심플’을 추구하는 자신의 가치관까지 솔직히 글에 털어놓았다. 이때 쓴 글은 1976년 그림에세이 ‘강가의 아틀리에’로 출간됐다. “아버지는 ‘화가는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셨어요. 서사여화에 쓴 글은 본인의 정신세계나 삶의 태도에 관한 것들이죠. 그럼에도 그림 속에 담긴 깊은 매력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언론의 보도나 기고가 그런 아버지의 작품세계와 대중이 만나는 가교나 마찬가지였죠.” 이제 장 화백은 말이 없으니 그림으로 그의 흔적을 느껴볼 수밖에 없다. “작품 한 점 한 점이 아버지의 분신처럼 느껴진다”는 장 관장은 인터뷰를 마치고 문 밖으로 나서려다 돌아와 부친의 그림을 손으로 한 번 더 쓰다듬은 후에야 미술관을 떠났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 유배 중이던 1844년에 그린 ‘세한도(歲寒圖)’는 조선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그해 영국에선 윌리엄 터너(1775∼1851)가 ‘비, 증기, 속도―그레이트 웨스턴 철도’를 그렸다. 장엄하면서도 정확한 묘사가 돋보이던 터너의 작품이 말년으로 가며 추상화하던 때다. 이 그림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근 출간된 ‘조선 그림과 서양명화’(마로니에북스·사진)는 이처럼 시대별로 조선과 유럽의 그림을 비교한다. 추사와 터너의 대조는 19세기 말 왕권은 쇠락하고 ‘개인’이 등장하는 거대한 시대흐름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 저자인 윤철규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63)는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다가 우리 옛 그림과 서양 그림의 대조표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2018년 여름 집필을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각 장은 미술사 주요 작품 연표로 시작한다. 말미에는 책에 등장한 작품들의 제목과 연도를 기록한 ‘시대 대조표’도 수록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제13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이 내년 2월로 연기됐다.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을 주제로 한 이번 비엔날레는 전시관 1층을 무료 개방하기로 했다. 광주비엔날레전시관 이외에 광주의 근대사를 드러내는 건축물이 있는 남구 양림동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 국립광주박물관, 광주극장에서도 전시할 예정이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15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비엔날레 매표소는 전시관 밖에 있었지만 내년 전시에서는 1층이 개방돼 전시관 안으로 옮긴다. 전시관 1층은 공연과 토론이 열리고 관람객이 쉬어갈 수도 있는 로비 역할을 하게 된다. 전시 건축가 디오고 파사리노가 제안했는데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만나는 한옥의 마당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한금현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은 광주극장에서 선보일 주디 라둘의 설치작품을 기대작으로 꼽았다. 열화상카메라를 활용한 인체 이미지와 퍼포먼스로 구성되는 작품이다. 해외 작가들이 당초 이달 광주를 찾아 진행하기로 했던 2차 리서치 일정이 불투명해져 구체적 작품 내용은 바뀔 수 있다. 항일 의병투쟁 장소이자 기독교 선교지인 양림산에서는 각종 유적을 활용한 전시가 펼쳐진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과 각종 기록은 비엔날레 웹사이트에서 공개한다. 페미니즘을 다룬 출판물 ‘뼈보다 단단한(Stronger than Bone)’도 별도 출간된다. 비엔날레는 내년 2월 26일부터 5월 9일까지 73일간 개최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탈리아 베네치아, 미국 뉴욕을 거친 윤형근 화백(1928∼2007·사진)의 작품이 다시 서울을 찾았다.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는 윤 화백의 1980년대 말∼1990년대 말 작품 20여 점을 지난달 23일부터 전시 중이다.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난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포르투니 미술관 순회 회고전과 올 2월 미국 뉴욕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개인전에 이은 전시다.○ 저드와의 만남, 한국적 미니멀리즘 윤형근은 만 45세가 돼서야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6·25전쟁 초기 국민보도연맹 사건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면했고, 1956년에는 전쟁 중 서울에서 부역했다는 이유로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숙명여고 미술교사이던 1973년에는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얽힌 것으로 알려진 입시 비리에 항의하다 반공법 위반 혐의로 고초를 겪었다. 그러면서 초기에 보였던 다양한 색채는 청색과 암갈색이 섞인 어둡고 무거운 검은색으로 변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검은색은 더 짙어지며 형태는 대담해지는 변화를 보여준다. 이 시기 윤형근은 미국 미니멀리즘 작가 도널드 저드(1928∼1994)를 만났다. 1991년 국내 최초 개인전을 위해 한국에 온 저드는 눈여겨보던 윤형근의 화실을 찾아 작품 3점을 샀다. 이후 저드는 미 뉴욕과 텍사스주 마파의 자신이 소유한 공간에서 윤형근의 개인전을 열어줬다. 1960년대 후반부터 주목받은 미니멀리즘 미학은 시각언어를 최소화하고 작품과 보는 사람의 관계에 집중한다. 윤형근의 작품도 재료는 면포(綿布)와 마포(麻布)뿐이며 색채는 청색과 암갈색이 전부다. 최근 해외 전시에서도 미니멀리즘과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젊은 컬렉터에게 더 인기” 그의 작품은 30대 이하 젊은 컬렉터에게 유독 반응이 좋다. 대표적 애호가로는 그룹 방탄소년단(BTS) 리더 RM(랩몬스터·26)이 꼽힌다. 베네치아, 뉴욕 전시를 모두 관람한 ‘인증샷’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RM은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 국내 화단 관계자들은 RM이 윤형근 관련 거의 모든 글을 읽고 추사 김정희와의 연관성까지 언급해 깜짝 놀랐다고 한다. RM은 이번 서울 전시도 조용히 보고 갔다. 15일 전시장에서는 BTS 스티커나 관련 상품(굿즈)이 달린 휴대전화를 손에 든 젊은 관람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PKM갤러리 측은 “2015년 전시 때만 해도 별 반응이 없던 7만 원 하는 도록(圖錄)을 사가는 젊은 관객이 늘었다”고 말했다.최근 가수 이승기(33)도 윤형근의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 전시장을 방문했다. 한 미술계 딜러는 “영향력 있는 한류 스타들이 국내 작가 작품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전시장에서는 재즈 색소폰 연주자 김오키가 윤형근의 작품에 영감을 받은 연주 영상을 틀어준다. 갤러리 측은 올 하반기 김오키의 이 연주곡 음원과 LP를 정식 발매할 예정이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어둡고 침울한 윤형근의 작품이 요즘 분위기에 적절할까 우려도 했다. 하지만 작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 명상에 잠기고 치유의 느낌을 받는다는 젊은층의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6월 2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우아한 저녁 식사를 위해 창가 자리를 콕 집어 예약하는 이유는 뭘까. 승진한 누군가가 “그전 사무실은 창문이 손바닥만 했는데 지금은 커다란 창문이 두 개나 있다”고 자랑하는 이유는? 법률가이자 심리학자인 폴커 키츠는 “창문이 두 개인가 세 개인가는 그 사람의 지위를 명확히 나타내준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저 벽에 뚫은 구멍인 창문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심리적 요인이다. 창밖 풍경이 사물을 인식하는 범위를 넓혀주고, 좋은 채광으로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무심코 내가 택하는 자리와 공간은 수많은 무의식적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다. 저자는 진화심리학과 행동과학을 활용해 일상에서 겪는 공간 선택의 심리를 50여 개의 사례를 통해 흥미롭게 전한다. 칸막이가 있는 책상이 왜 비효율적인지, 상사의 사무실은 왜 높은 곳에 있는지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친근한 이야기들이다. 요즘 화두인 ‘거리 두기’가 인간의 본능이라는 서술도 눈길을 끈다. 타인과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행위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해오고 있었다. 다만 그 거리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방역을 넘어 타인과 나의 경계를 인식해야 서로의 공간에 대한 존중도 나온다. 결국 거리 두기는 서로를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뉴욕에 막 도착했을 무렵이에요. 길모퉁이를 지나는데 체이스은행(JP모건체이스)이 눈에 번쩍 띄어 스케치를 해두었죠. 뉴 뮤지엄에서 열린 (독일 개념미술가) 한스 하케의 ‘작가와의 대화’에 갔다가 록펠러 가문이 체이스은행을 인수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호기심이 생겨 헌책방에 가서 록펠러와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관계 등 자세한 이야기를 찾아봤습니다. 그 후 34번가에 있는 체이스은행도 하나 더 그렸고요.”》 때로는 빼곡한 활자나 100마디 말보다 눈앞의 이미지가 더 솔직하다. 글이 진실을 가릴 때도 있다. 미술가 서용선(69)은 몸이 마주한 풍경에서 문자 이전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체이스은행의 시각적 특이함을 포착하고 실마리를 추적해간 것처럼 말이다. 지난해 10월부터 미국 뉴욕 미드타운 일대에 머물다가 온 그를 5일 서울 종로구 올미아트스페이스에서 만났다. 그의 뉴욕 체류가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는 브루클린이나 퀸스같이 뉴욕 외곽에 주로 머물렀다면 이번엔 중산층 이상이 많은 상업지대라는 점이 달랐다. 과거 뉴욕은 짙은 갈색이 두드러졌지만 이번엔 녹색으로 스케치를 시작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스타벅스의 녹색이 강하게 들어왔다고 한다. 이렇게 마주한 풍경을 기록한 그의 드로잉은 올미아트스페이스 ‘종이그림’전에서 볼 수 있다. 5개월 반의 체류 중 록펠러가 그에게 많은 인상을 남긴 듯했다. “뉴욕에 도착하고 처음엔 자화상을 그렸어요. 매일 카페나 공원에서 도시와 사람을 관찰했죠. 두 달쯤 됐을 때 록펠러센터 지하 통로를 발견했는데, 묘하더군요. 추운 겨울에 무료로 따뜻하게 머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에요. 주로 흑인이나 남미계 직업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경비가 삼엄해서 졸기만 해도 쫓겨나는 제한된 자유의 공간이었죠. 독특한 모델이 많고 그림 그리기 좋아 두 달은 여기서 스케치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단종(端宗) 화가’나 역사화가로 기억한다. 소설 ‘단종애사(端宗哀史)’처럼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현장을 포착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서울 강남구 갤러리이마주에서 30일까지 열리는 ‘고구려, 산수’전에서도 중국에 남은 고구려 흔적을 그린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시 풍경도 텍스트 이면의 포착되지 않은 것들을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역사화와 맥락을 같이한다. ‘종이그림’전에서는 각종 포장지를 활용한 콜라주 작품도 눈에 띈다. 작업실 맞은편의 베이커리에서 내주는 빵 포장지나 동그란 입이 달린 우유갑, 매일 먹는 약 껍질이 재료가 됐다. “처음엔 소재나 내구성에 관심이 갔는데, 내 몸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어느새 약을 먹지 않으면 1, 2년 내로 삶이 어그러지는, 약이 절대적인 조건이 돼버렸어요. 이런 소재들은 단순한 조형성을 넘어 삶의 본질에 관한 이미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그림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몸을 둘러싼 풍경과 인식을 복합적으로 담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이번 뉴욕 체류에 대해서도 그는 “지역마다 다른 특수성을 어떻게 그림에 구조화시킬지 고민하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물이 될 캔버스 작품들은 뉴욕의 갤러리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당초 11월 전시를 목표로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종이그림’전은 다음 달 3일까지 열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뉴욕에 막 도착했을 무렵이에요. 길모퉁이를 지나는데 체이스은행(JP모건체이스)이 눈에 번쩍 띄어 스케치를 해두었죠. 뉴 뮤지엄에서 열린 (독일 개념미술가) 한스 하케의 ‘작가와의 대화’에 갔다가 록펠러 가문이 체이스 은행을 인수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호기심이 생겨 헌책방에 가서 록펠러와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관계 등 자세한 이야기를 찾아봤습니다. 그 후 34번가에 있는 체이스은행도 하나 더 그렸고요.” 때로는 빼곡한 활자나 100마디 말보다 눈앞의 이미지가 더 솔직하다. 글이 진실을 가릴 때도 있다. 미술가 서용선(69)은 몸이 마주한 풍경에서 문자 이전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체이스 은행의 시각적 특이함을 포착하고 실마리를 추적해간 것처럼 말이다. 지난해 10월부터 미국 뉴욕 미드타운 일대에 머물다 온 그를 5일 서울 종로구 올미아트스페이스에서 만났다. 그의 뉴욕 체류가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는 브루클린이나 퀸즈 같이 뉴욕 외곽에 주로 머물렀다면 이번엔 중산층 이상이 많은 상업지대라는 점이 달랐다. 과거 뉴욕은 짙은 갈색이 두드러졌지만 이번엔 녹색으로 스케치를 시작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스타벅스의 녹색이 강하게 들어왔다고 한다. 이렇게 마주한 풍경을 기록한 그의 드로잉은 올미아트센터 ‘종이그림’전에서 볼 수 있다. 5개월 반의 체류 중 록펠러가 그에게 많은 인상을 남긴 듯했다. “뉴욕에 도착하고 처음엔 자화상을 그렸어요. 매일 카페나 공원에서 도시와 사람을 관찰했죠. 두 달 쯤 됐을 때 록펠러센터 지하통로를 발견했는데, 묘하더군요. 추운 겨울에 무료로 따뜻하게 머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에요. 주로 흑인이나 남미계 직업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경비가 삼엄해서 졸기만 해도 쫓겨나는 제한된 자유의 공간이었죠. 독특한 모델이 많고 그림 그리기 좋아 두 달은 여기서 스케치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단종(端宗) 화가’나 역사화가로 기억한다. 소설 ‘단종애사(端宗哀史)’처럼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현장을 포착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서울 강남구 갤러리이마주에서 30일까지 열리는 ‘고구려, 산수’전에서도 중국에 남은 고구려 흔적을 그린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시풍경도 텍스트 이면의 포착되지 않은 것들을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역사화와 맥락을 같이한다. ‘종이그림’전에서는 각종 포장지를 활용한 콜라주 작품도 눈에 띈다. 작업실 맞은편의 베이커리에서 내주는 빵 포장지나 동그란 입이 달린 우유 곽, 매일 먹는 약 껍질이 재료가 됐다. “처음엔 소재나 내구성에 관심이 갔는데, 내 몸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어느새 약을 먹지 않으면 1, 2년 내로 삶이 어그러지는, 약이 절대적인 조건이 돼버렸어요. 이런 소재들은 단순한 조형성을 넘어 삶의 본질에 관한 이미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그림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몸을 둘러싼 풍경과 인식을 복합적으로 담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이번 뉴욕 체류에 대해서도 그는 “지역마다 다른 특수성을 어떻게 그림에 구조화시킬지 고민하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물이 될 캔버스 작품들은 뉴욕의 갤러리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당초 11월 전시를 목표로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종이그림’전은 다음달 3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아침에 신문을 펼칠 때 나는 시큼하고 고소한 종이 냄새를 표현했어요.” 1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로비에서 만난 김하리 씨가 말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커피 로스팅 브랜드 ‘하리두’는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기념해 신문향(新聞香)이 나는 원두 ‘동아 에스프레소’를 만들었다. 멕시코와 브라질산 원두를 혼합해 감자 종이 타르 향이 느껴진다. 이곳 로비에 설치된 작품 ‘한국의 상(床)’ 위에는 이날부터 커피와 유리잔, 티셔츠부터 소형 가구와 음악까지 다양한 디자인 오브제가 놓였다.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맞아 진행한 ‘동아일보와 20인의 아티스트’ 참여 작가 중 7명의 작품을 22일까지 전시한다. 7명은 김태기(동아일보 100주년 기념 바비인형), 김하리, 신상훈(춘곡 티셔츠), 유벼리(맑은 유리잔), 윤소현(프로즌 레터), 전아현(深山·심산/Newspaper, Resin), Sophie Akii(선곡 목록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다. ‘춘곡 티셔츠’는 미술기자로 동아일보에 입사한 춘곡 고희동 화백(1886∼1965)을 관련 상품(굿즈·goods)으로 표현했다. 고 화백은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를 모티프로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호 제호(題號)를 디자인했다. ‘유병재 굿즈’를 기획했고 현재 샌드박스 크리에이터의 MD기획과 디자인을 맡고 있는 신상훈 씨는 “녹색 톤을 강조해 영화 ‘매트릭스’ 같은 디지털 분위기를 살렸다”고 설명했다. 유리 공예가 유벼리의 ‘맑은 유리잔’은 동아일보 캐치프레이즈 ‘세상을 보는 맑은 창’에서 영감을 얻었다. 손잡이는 각각 신문의 백색과 검은색, 동아일보 로고를 참고했다. 투명한 상자 속에 갇힌 작은 산처럼 보이는 ‘심산’은 신문을 잘라 만든 오브제다. 최근 신문 1, 2면에서 활자 부분만 잘게 잘라 쑨 종이죽으로 산맥을 만들었다. 그 위에 레진을 가득 채워 정사각형으로 만들어 의자나 다탁(茶卓)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가구 디자이너인 전아현 씨는 “신문지를 활용해 기록되는 역사의 중요성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DJ Sophie Akii는 동아일보 창간호 그림체와 창간사를 재해석해 윤시내 이은하의 한국적 펑크(funk)부터 아프로 펑크(punk)까지 가사 중심의 셋리스트(선곡 목록)를 내놓았다. 그는 “창간호에 무거운 내용부터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함께 있어 인상 깊었다”고 했다. 낡은 인형의 얼굴을 다시 그리는 리페인팅 작업을 하는 김태기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동아백년 파랑새’를 들고 있는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을 표현했다. 김 작가는 “동아일보가 세계인이 사랑할 수 있는 언론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프로즌 레터’는 ‘동아’ ‘東亞’ ‘100’ 등의 문자를 조각해 아크릴 용액 속에 굳힌 문진(文鎭)이다. 100년 동안 활자를 통해 가치를 지켜온 신념을 기념하는 의미로 가구디자이너 윤소현 씨 작품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울도시건축전시관(관장 박제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친 시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천년의 빛으로 희망을 비추다’전을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연다. 서울 중구 세종로에 자리한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서울마루에 설치 미술가 한원석(49)의 작품 ‘환생’(사진)을 선보이는 전시다. ‘환생’은 폐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첨성대 모양으로 쌓아 올린 작품이다. 15일 점등하는 작품은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모스 부호로 전달할 예정이다. 벽돌처럼 쌓인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마치 호흡하듯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면서 ‘그대 덕분에’ 등의 메시지를 내보낸다. 또 점등과 동시에 서울마루에서 국립국악원 대해금 수석 음악가 김준희(49)가 ‘2020 정읍사’를 연주한다. 김준희는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이자 한글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가요인 ‘정읍사’를 동시대 음악으로 재해석한다. 정읍사에서 행상의 아내가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하는 마음을 노래했듯 코로나19로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이겨내고 일상이 복원되길 희망하는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개막 공연은 유튜브로 공개된다. 한 작가는 개막 행사에 대해 “하늘의 별과 천문, 우주를 관측하던 첨성대가 현대에 와서 스스로 빛을 내며 보는 이들 마음속에 희망의 별을 심어주는 ‘환생’의 첨성대가 되고자 하는 퍼포먼스”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소재로 첨성대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국보 31호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재위 때 건립돼 현재 나이가 1388세에 이른다”며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는 큰 의미를 과학, 문화, 정치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의 저력과 역사성을 비추는 귀중한 문화재”라고 말했다. 2006년 제작된 이 작품은 버려진 자동차 헤드라이트 1374개를 모아 만들었다. 첨성대를 3차원(3D) 스캔한 뒤 H빔으로 골조를 만들고 헤드라이트를 쌓았다. 높이 9.17m, 너비 5.17m 크기다. 당시 청계천 복원 1주년을 기념해 광통교에 전시된 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에 설치됐다. 이후 하나금융그룹이 순천시에 기부해 순천만정원에도 전시된 바 있다. 한 작가는 “어둠과 폭풍 속에서 길을 잃고 망망대해를 떠돌 때 등대가 방향을 알려주는 ‘희망의 불빛’이듯 코로나19로 어두운 터널에 갇힌 것처럼 고통과 아픔 속에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작품 ‘환생(첨성대)’이 ‘희망의 빛’으로 다가가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휴관 70여 일 만인 6일 국립현대미술관(MMCA)과 서울시립미술관이 사전 예약제로 다시 문을 열었다. 그간 온라인으로만 선보였던 전시가 드디어 관객을 만나게 된 가운데, 두 미술관이 나란히 소장품 기획전을 개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에서 ‘MMCA 소장품 하이라이트 2020+’전을,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소문 본관에서 ‘모두의 소장품’전을 열고 있다. ‘MMCA…’전은 20세기 한국미술 대표작 54점을 선보인다. 서울관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되는 상설전이다. 이 전시는 MMCA가 그간 여러 기획전을 개최했지만, 정작 한국 미술의 역사를 차분히 돌아볼 상설전은 없다는 지적에 따라 마련됐다. 올 하반기 과천관에서는 한국 미술사의 지평을 주제별로 조망하는 좀 더 확장된 상설전이 열릴 예정이다. 오지호의 ‘남향집’(1939년)처럼 근대 미술사의 주요 작품은 물론 국제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서도호의 ‘바닥’(1997∼2000년)과 이불의 ‘사이보그 W5’(1999년)도 감상할 수 있다. ‘바닥’은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본관에 사람들이 직접 지나가도록 설치됐던 작품이다. ‘사이보그’는 이불의 조각 작품으로, 문명의 불완전함과 여성의 신체에 관한 시각의 문제를 다룬다. 6월 14일까지 열리는 ‘모두의 소장품’전은 49명 작가의 작품 131점을 선보인다. 미술관이 1985년부터 수집한 작품 5173점 중 86점을 선별하고, 미소장품 45점을 추가했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 쓰였던 문을 병풍 형태로 연결한 양혜규의 설치 작품 ‘그래-알아-병풍’(2011년) 등이 선을 보인다. MMCA가 미술사적으로 소장품에 접근했다면, 서울시립미술관은 사회 문제에서 접근해 설치와 영상 작품이 주를 이룬다. MMCA는 온라인 사전 예약 관람 기간 동안 4관(서울, 덕수궁, 과천, 청주)을 모두 무료 개방한다. ‘모두의 소장품’전도 무료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다.” 경제학의 기초를 마련한 애덤 스미스의 대전제는 수 세기동안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거센 비판에 직면해 거듭 수정을 하더라도 근간에 깔려 있는 이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21세기에도 이 믿음은 유효할까. 확실한 건 기존의 경제 논리가 세계적 불평등과 부의 쏠림을 해결할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두 책은 숫자와 논리를 앞세운 주류경제학의 통념에 도전한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부부가 썼다. 이들은 ‘국제 빈곤을 완화하기 위한 실험적인 접근법’을 인정받아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사제지간으로 만나 사랑을 키웠다. 2011년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 이은 두 번째 공동 저작이다. 이들은 ‘좋은 경제학’이란 늘 사회현상에 질문을 던지고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하는 새로운 이론, 접근방식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돈보다 인간 존엄”을 우선하는 과감함도 필요하다. 반대로 ‘나쁜 경제학’은 실증 근거가 없다. 미국 트럼프 정부와 일부 경제학자가 내놓은 반(反)이민정책이 대표 사례다. 이민이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지만 사람들은 보금자리를 떠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이민자 숫자는 정책 입안자의 입맛에 맞게 실제보다 부풀려진다. 책은 아울러 무역 분쟁, 복지, 조세 이슈 등을 통해 새롭게 검증해야 할 경제정책을 짚는다. 그 중 저자는 “깊이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는 ‘ATD 제4세계’라는 프랑스 시민단체에서 조심스레 대안을 드러내 보인다. ‘빈곤 극복을 위해, 함께 존엄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단체는 “빈곤은 열등함이나 무능의 결과가 아니라 체계적인 배제의 결과”라고 믿었다. 지역사회의 실업자, 빈곤층을 구제한 이 단체의 경제적 성과를 목도하며 저자는 다시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떠올린다. “경제학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경제학은 어떻게…’는 기존 경제학의 통념을 하나하나 격파하는 ‘거꾸로 읽는’ 경제학 교과서다. 원제 ‘악함의 합리화: 경제학은 어떻게 우리를 망쳤는가’(Licence to be Bad: How Enocomics Corrupted Us)처럼 거침이 없다. 게임이론부터 행동주의 심리학 같이 정설로 여겨진 경제이론들의 모순을 파헤친다. 경제학에서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규정하는 것부터 문제라고 시작한다. 현실에서 인간은 수많은 감정에 휘둘리고 때로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때도 많다. 그런데 인간은 합리적이라 가정함으로써 과학적 허울을 씌운다는 것. 이 때문에 나쁜 행동마저도 합리적인 것으로 포장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각 장에서 경제학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곁들여 흥미롭다. 게임이론을 제시한 폰 노이만이 존 내시의 ‘내시 균형’ 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시했던 일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모델이었던 토머스 셸링도 등장한다. 감성이 결여된 극단적 추론에 의해 미국이 소련에 수소폭탄을 떨어드려야 한다고 확신했던 폰 노이만의 이야기는 아찔하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자유시장과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의 기본값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극단적 예외를 제외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자유롭게 운용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말했다가 뭇매를 맞는다. 그의 극단적 예외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기 때문이다. 책은 신자유주의까지 나타난 주류 경제학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김민기자 kimmin@donga.com}

딥 컷(Deep Cut). 대중음악에서 쓰이는 이 말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니아들이 인정하는 명곡, ‘숨은 보석’을 가리킨다. 한국 미술에도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 만한 ‘딥 컷’이 있다. 다만 장식적 취향이나 접근성의 한계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미술의 ‘숨은 보석’을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추상(抽象)은 이야기가 없는 그림일까. 노담(老潭) 김영주(1920∼1995)는 “형상성 있는 추상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의 추상에는 시끌벅적 이야기가 넘친다. 화려한 색과 리드미컬한 선, 하트, 손바닥 같은 기호와 한글로 적은 글귀까지.195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는 추상미술의 바람이 거셌다. 미국에서는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의 추상표현주의가, 유럽에서는 장 뒤뷔페 등의 앵포르멜 회화가 주목받았다. 일본 도쿄 다이헤이요(太平洋)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김영주는 이 흐름을 재빨리 포착했고 글을 통해 추상미술의 중요성을 알렸다. 그러면서 추상미술을 탐구했다.피터르 몬드리안이 풍경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해 기하학적 추상을 그린 것처럼 김영주는 자신의 의식을 기호로 바꿔 캔버스에 새겨 넣었다. 구체적 표현을 생략하고 작가 고유의 상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추상미술의 방법론이라고 본 그는 이를 문자와 결합했다. ‘그림’에서 문자가 된 한자, 그리고 한글을 다시 그림으로 풀어 놓은 것이다.그의 1991년 작인 ‘신화시대’의 신화시대란 작가가 추구하고자 했던 본질적인 세상을 말한다. 그 세상은 시공을 초월한 기호와 문자로 가득하다. 요즘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그라피티를 연상케 한다. 이응노(1904∼1989)와 남관(1911∼1990)과 달리 한글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1960년대 말 평론을 멈췄던 그가 ‘신화시대’를 발표하자 ‘서양 작가의 누구 것도 닮지 않은, 그러면서 현대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3년 미국 뉴욕 한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모습을 미국에 정면으로 보여주고 싶다.” ::노담(老潭) 김영주(1920∼1995)::▽1920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1943년 일본 도쿄 다이헤이요(太平洋) 미술학교 졸업▽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 대표 작가▽1970년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1992년 은관문화훈장▽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김영주’전 개최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추상(抽象)은 이야기가 없는 그림일까. 노담(老潭) 김영주(1920~1996)는 1991년 갤러리현대 개인전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형상성 있는 추상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그의 추상에는 시끌벅적 이야기가 넘친다. 화려한 색과 리드미컬한 선, 하트, 손바닥 등 기호와 한글로 적은 글귀까지. 1950년대 이후 한국 작가들에게 추상이란 무엇이고, 한국적 추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김영주는 이응노(1904~1989) 남관(1911~1990)과 함께 그 답을 ‘문자(文字)추상’에서 찾았다.● ‘추상이라는 방대한 진폭’“학창시절 일본식 서양미술을 공부한 나는 그 방법에서 탈출하는 데 10여 년을 보냈다. 가장 방황할 무렵 눈앞에는 현대미술의 메아리, 그 방대한 진폭이 다가왔다. 추상의 새로운 의미에 맞서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 시행착오가 겹치며 또 10여 년 세월을 보냈다.”(‘미술춘추’ 1980년 가을호)일본 도쿄 다이헤이요(太平洋)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한국에 돌아온 김영주는 1953년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57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를 만들었다. 이 무렵 그가 내놓은 작품 ‘예술가의 가족’은 당시 국내 예술가들이 마주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림에는 어렴풋이 사람의 형상이 보이지만 구체적 표현은 생략됐다. 인물을 기호처럼 나타낸 뒤 그 위를 노란색으로 덮어 형체를 일그러뜨린 모습이다. 이런 표현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된 유럽에서 생겨난 ‘앵포르멜’(프랑스어로 ‘형태가 없는’을 뜻하는 말로 유럽에 퍼진 추상미술을 뜻함)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 형태다.1950년대 이후 국내 예술가들은 일본의 잡지인 ‘미술수첩’을 통해 프랑스와 미국의 추상 미술에 관한 정보를 접했다. 이 때문에 미술계에서 추상 미술이 큰 화두가 됐다. 운보 김기창은 “추상미술의 성행이 세계적 풍조가 된 지금 동양화도 시대성과 발맞춰 전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작가는 “추상은 미술이 아니다”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김영주는 “앵포르멜이야말로 세계에 가장 공통되는 조형 언어의 시초”라며 추상화를 적극 받아들였다.● 추상 미술의 세 갈래흔히 추상화는 구체적 형태가 없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으로 여겨진다. 전혁림 화백은 “서예나 음악, 가구 도자기 디자인 등 우리 생활의 태반이 추상이지만, 미술은 막연히 인식한다.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을 구상, 비구상으로 구분해 전시회를 갖게 한 것도 이런 막연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분법적 분류는 여전히 추상 미술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한다.미술사의 흐름을 보면 추상화는 크게 세 갈래로 펼쳐졌다. 첫 번째는 형태의 변형과 단순화를 통한 개성화(몬드리안), 두 번째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탐구(칸딘스키), 세 번째는 미학이나 철학의 선언적 추상(말레비치)다. 몬드리안은 구체적 풍경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해 기하학적 추상으로 전개했다. 또 칸딘스키는 음악이나 정신의 영역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말레비치는 ‘검은 사각형’을 통해 ‘절대주의’를 선언하며 미술사에 독보적인 자리를 남겼다.김영주의 추상은 세 갈래 중 어디에 해당할까? 그의 드로잉을 보면 사람의 얼굴을 비롯한 구체적 형상이 보인다. 세 갈래 중 첫 번째, ‘형태의 변형과 단순화를 통한 개성화’라는 걸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 화가들이 이런 추상화를 그렸다. 물감을 흩뿌린 잭슨 폴록도, 색면을 그린 마크 로스코도 초기 그림에는 인물과 풍경이 드러난다.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온 난민이었던 이들은 자신이 겪었던 불안과 공포를 캔버스에 풀어냈다. 이 때문에 이들의 추상을 ‘모더니즘적 순수’라고 규정한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후대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실 그 작품들은 아무 내용이 없는 ‘순수’가 아니라 감정이 가득 찬 것이었기 때문이다. ● ‘한국성’으로 찾아간 문자“나의 그림에서 숨쉬는 숱한 기호들은 나의 그림자 - 나의 언어의 표상이다. 나는 기호의 속삭임에서 ‘그날이 오면’과의 대화를 계속한다. 나는 그 날이 어떤 날인지 모르고 상상만 한다. 내가 생각하는 뜻은, 인간 본성의 원초적인 삶과 나의 영혼이 교감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신화시대다.” (현대미술 1991년 가을호)추상이 세계적 흐름이었지만, 그 가운데서 작가들은 자신만의 개성 있는 언어를 찾아야 했다. 김영주는 그 출발점을 한글과 문자, 기호에서 찾았다. 1987년 작품 ‘신화시대’를 보면 ‘인간들의 이야기’, ‘여기서부터’, ‘사람들의’ 등 한글로 적힌 문구를 볼 수 있다. 책이 아닌 캔버스 위에서 문구는 형태를 단순화한 또 다른 그림이 된다. 예를 들어 산을 그린다고 했을 때, 그것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山’이라고만 적어도 뜻을 전달할 수 있다. 한자가 결국 그림의 무수한 단순화 끝에 만들어진 기호인 것처럼 말이다. 이응노, 남관 등 한국 작가들은 추상을 받아들이며, 이것의 상징성을 문자와 연결해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나갔다. 김영주도 마찬가지였다. ‘신화시대’라는 제목은 이러한 단순화를 통해 작가 고유의 개성과 본질을 추구했던 의도를 드러낸다. “순수함이 살아있는 원시 상태를 나타내고 싶다. 인간 본연의 순수함 이상으로 소중한 것은 없다. 캔버스 속에서 모든 진실과 순수함이 살아있는 신화시대를 꿈꾼다.” 김영주는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한국 작가로서 자신의 언어를 찾고자 했다. 1993년 미국 뉴욕 소호 헤나캔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그는 “미국 화단이 우리나라 작품을 잘못 판단하고 있다. 우리의 예술성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한 전시”라고 자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작고하고 10여 년 세월이 지났다. 그가 남긴 문자 추상에 대한 재조명과 연구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노담(老潭) 김영주(1920~1995)1920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1943년 일본 도쿄 태평양미술학교 졸업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 대표 작가1970년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1992년 은관문화훈장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김영주’전 개최김민기자 kimmin@donga.com}

변시지 화백(1926∼2013)의 미공개 작품이 담긴 화집 ‘바람의 길, 변시지’(누보)가 출간됐다. 변 화백의 전 생애를 다룬 첫 번째 화집으로 주요 작품과 작가 노트, 육성 기록을 간추렸다. 화집에 수록된 180여 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일반인에게 처음 선보인다. 화집에서는 변 화백의 20대 일본 시절과 비원파(秘苑派)로 알려졌던 서울 시절, 그리고 50대 이후 제주 시절 그림의 변천사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다. 이달 말에는 누보에서 운영하는 제주돌문화공원 내 갤러리에서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됐던 변 화백의 작품 2점을 국내 처음으로 전시할 예정이다. 화집은 제주지역 영자신문 ‘제주위클리’ 기자로 2010년 변 화백을 인터뷰한 송정희 누보 대표가 2년간 제작했다. 송 대표는 인터뷰 전까지는 변 화백을 몰랐다. 당시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된 변 화백의 작품을 본 해외 기자들이 “변시지를 알고 싶다”고 물어와 함께 취재하면서 그의 예술세계에 매료됐다. 송 대표는 “제주에서 태어나 6세부터 일본에서 살며 그곳 화단(畵壇)에서 여러 상을 받는 등 인정받았던 변 화백은 한국적 미의식을 탐구하려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국내 중앙 화단과도 거리를 두며 제주도로 이주했지만 개성 넘치는 작품으로 마니아들이 찾아오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화집 제작은 변 화백의 작품을 관리하는 ‘공익재단 아트시지’와 협력했다. 아트시지는 자신의 작품을 유산으로 물려주기보다 미술관에 기증하고 싶다고 했던 변 화백의 뜻에 따라 설립됐다. 국내 최초의 시립미술관이자 변 화백 작품 상설 전시관이 있는 제주 서귀포시 ‘기당미술관’도 그를 지원하는 재일교포 사업가 기당 강구범의 후원으로 건립됐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누군가는 이것을 훔치려다 유죄 판결을 받고, 누구는 집 안 가득 쌓아놓고도 모자라 식기세척기에도 이것을 넣어둔다. 돈이 되기에 욕망을 자극하나, 지구의 역사를 밝히는 연구 자료이기도 한 화석 이야기다. 책은 전직 수영선수이자 성공한 ‘화석 사냥꾼’ 에릭 프로코피의 ‘사건’으로 시작한다. 2012년 프로코피는 경매로 공룡 타르보사우루스의 온전한 화석을 105만2500달러에 판매하지만 이 화석이 몽골에서 불법 유출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기자인 저자는 미국과 유럽, 몽골을 아우르며 10여 년을 취재한 결과물을 미국 잡지 뉴요커에 연재했다. 이때부터 독자의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며 초판만 15만 부를 찍었다. 사소한 이야기에서 출발해 인간의 욕망과 자연유산의 소유권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룬다. 탐사보도가 어떻게 훌륭한 논픽션의 경지에 오르는지 보여주는 수작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철공소가 많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엔 ‘예술촌’이 있지만 미술계에선 아는 사람만 찾는 곳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평일인 17일 이곳 한 건물 지하에 꾸준한 발길이 이어졌다. 가수 나얼이 개인전 ‘염세주의적 낙관론자’를 열고 있는 대안공간 ‘스페이스 엑스엑스(space xx)’였다. 전시장에서 나얼의 콜라주와 드로잉, 설치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30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e메일 신청을 받아 매일 선착순 40여 명만 관람할 수 있다. 찾는 사람 대부분은 나얼의 팬으로 보였다. 연예인의 미술 전시가 이제 익숙한 현상이 되고 있다. 나얼도 이번이 벌써 10번째 개인전이다. 가수 솔비나 배우 하정우 등도 그림을 공개해 화제몰이를 했다. 해외에서도 배우 조니 뎁, 가수 밥 딜런, 데이비드 보위뿐만 아니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자신의 그림을 깜짝 공개한 바 있다. 유명 인사들은 왜 그림에 빠질까? 작품을 보면 직업 특성상 터놓고 말할 수 없는 속내를 풀어내는 경향이 보인다. 악성 루머에 시달린 솔비는 심리 치료로 미술을 시작했다. 일기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에 담으며 조금씩 세상에 발을 내디뎠다. 지난해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코미디언 임하룡의 그림엔 눈이 가득하다. 그는 “시선 받기를 원하지만 또 그 시선이 때론 부담스러운 마음을 형상화했다”고 설명했다. 2007년부터 그림을 그린 하정우는 과거 인터뷰에서 연기하며 느끼는 절실한 감정을 집에 가지고 와 그림에 담는다고 했다. 나얼은 전시장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등 종교적 색채를 과감히 드러낸다. ‘염세주의적 낙관론자’라는 제목도 기독교도로서 자신을 비유했다. 이문정 리포에틱 대표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감사하게 살지만 세상의 불행에 슬퍼하는 종교인으로서의 모습’이라고 평했다. 이들의 활동은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친근하게 느끼는 ‘대중 미술의 저변 확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비친다. 특히 예술을 전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표현 수단으로 그림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연예인의 그림 전시는 평소 전시를 보지 않았던 사람도 한 번쯤 미술을 감상하는 첫 경험이 되기도 한다. 최근엔 일반인도 퇴근 후 드로잉이나 풍경화를 그려 보는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한다. 최두수 space xx 대표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반응이 많아 깜짝 놀랐다. space xx는 실험적 작품을 선보여 알음알음 찾는 곳이었는데, 온·오프라인에서 관심의 폭이 훨씬 확장됐다”고 말했다. 나얼 개인전의 관람 신청은 매일 100∼150건이 들어온다고 한다. 다만 연예인의 작품이 그의 명성을 넘어 작품 자체로 인정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평생 작품을 쌓아가는 전업 작가를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작가는 “바스키아가 포함된 컬렉션을 가진 가수 Jay-Z 등 해외 유명 인사처럼 국내 유명인들이 안목을 키워 작품을 후원하는 컬렉터로도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철공소가 많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엔 ‘예술촌’도 있지만, 미술계에선 아는 사람만 찾는 곳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평일인 17일 이곳 한 건물 지하에 조용히 꾸준한 발길이 이어졌다. 가수 나얼이 개인전 ‘염세주의적 낙관론자’를 열고 있는 대안공간 스페이스 엑스엑스(space xx)다. 전시장에서 나얼의 콜라주와 드로잉,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30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e메일로 신청 받아 매일 선착순 40여 명만 관람할 수 있다. 찾는 사람 대부분은 가수 나얼의 팬으로 보였다.이처럼 연예인의 미술 전시가 이제는 익숙한 현상이 되고 있다. 나얼도 이번이 벌써 10번째 개인전이다. 가수 솔비나 배우 하정우 등도 그림 그리는 모습을 공개해 화제몰이를 했다. 해외에서도 배우 조니 뎁, 가수 밥 딜런, 데이빗 보위는 물론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자신의 그림을 깜짝 공개한 바 있다. 유명 인사들은 왜 그림에 빠질까? 작품을 보면 직업 특성상 터놓고 말할 수 없는 속내를 풀어내는 경향이 보인다. 악성 루머에 시달린 솔비는 심리 치료로 미술을 시작했다. 일기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에 담으며 조금씩 세상에 다시 발을 내딛었다. 지난해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배우 임하룡의 그림엔 눈이 가득하다. “시선 받기를 원하지만 또 그 시선이 때로 부담스러운 마음을 형상화했다”는 그의 설명처럼 재기발랄한 성격이 뚝뚝 묻어나는 모습이다. 2007년부터 그림을 그린 배우 하정우는 과거 인터뷰에서 연기하며 느끼는 절실한 감정을 집에 가지고 와 그림에 담는다고 했다. 나얼은 전시장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등 종교적 색채를 과감히 드러낸다. ‘염세주의적 낙관론자’라는 제목도 기독교도로서 자신을 비유했다. 이문정 리포에틱 대표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감사하게 살지만, 세상의 불행에 슬퍼하는 종교인으로서 자신의 모습’이라고 평했다. 이들의 활동은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친근하게 느끼는 ‘대중 미술의 저변 확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비춰진다. 특히 예술을 전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표현 수단으로서 그림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최근엔 일반인들도 퇴근 후 드로잉이나 풍경화를 그려보는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한다. 또 평소 전시를 보지 않았던 사람도 한 번쯤 미술을 감상하는 첫 경험의 관문이 되어 주기도 한다 최두수 space xx 대표는 “기대한 것보다 훨씬 반응이 많아 깜짝 놀랐다. space xx는 실험적 작품을 선보여 알음알음 찾는 곳이었는데 온·오프라인에서 관심의 폭이 훨씬 확장됐다”고 말했다. 나얼 개인전의 경우 관람 신청은 매일 100~150건 정도가 들어온다고 한다. 다만 연예인의 작품이 그의 유명세를 넘어 작품 자체로 인정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미술사의 맥락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평생 작품을 쌓아가는 전업 작가를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작가는 “바스키아가 포함된 컬렉션을 가진 가수 Jay-Z 등 해외 유명인사처럼 국내 유명인들이 안목을 키워 작품을 후원하는 컬렉터로도 역할을 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젊은 작가의 실험적 작품을 볼 수 있는 홍익대 일대, 문래동, 을지로의 대안 공간이나 작은 전시장엔 여전히 영상·설치 작품이 주류다.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선 구상 작품은 구닥다리고 ‘동시대 미술’로 인정될 수 없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국제 미술의 흐름을 보면, 결국 작가는 캔버스 위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맛깔 나는 기교를 앞세운 회화가 이미 미술계의 전면에 서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의 공공미술관인 화이트채플 갤러리는 올해 첫 대규모 기획전으로 ‘Radical Figures: Painting in the New Millenium(급진적 형상: 뉴밀레니엄 시대의 회화들)’을 열었다. 2월 6일 개막한 전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휴관했다. 전시는 2000년대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구상 작가 10명을 모았다. 미술관이 ‘시대정신을 표현했다’고 평가하며 소개한 작가들은 마이클 아미티지, 세실리 브라운, 니콜 아이젠만, 데이나 슈츠 등이 있다. 이 중 독일 출신 작가 다니엘 리히터의 작품이 가장 눈길을 끈다. 2001년 작품 ‘Tarifa’는 스페인 남부 항만도시 타리파로 향하는 보트를 탄 북아프리카 난민을 표현한다. 칠흑 같은 바닷물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인물들은 열 감지 카메라로 비춘 듯 화려한 색채로 표현됐다. 난민 문제를 비롯해 공포와 불안이 감도는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포착해 호평받은 작품이다. 흥미로운 건 최근 주목받는 ‘구상 회화(figurative painting)’의 뉘앙스가 과거 국내 미술계에서 이야기했던 비구상(추상)·구상의 이분법과 다르다는 점이다. 화이트채플 큐레이터 리디아 이는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일그러진 형상과 신체의 일부만을 표현해 고정된 개념을 흔들고 확장시킨다”며 “이들은 회화가 어떻게 개인의 불안과 사회 문제를 담을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즉 단순한 기교를 넘어 개인과 사회 문제를 담는 수단으로 구상 회화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상 회화 열풍의 시작은 1980년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신표현주의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안젤름 키퍼, 게오르크 바젤리츠와 미국의 장미셸 바스키아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당시만 해도 주식 시장의 호황과 맞물린 투자 대상, 개념미술에 지친 컬렉터를 겨냥한 상품이라는 회의적 시각을 받았다. 그러나 과거의 이데올로기가 해체되는 시대상을 담아 이제는 미술사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다. 시장에서도 이에 발맞춘 움직임이 감지된다. 외국계 화랑인 리만머핀 서울은 영국 작가 빌리 차일디시의 최근작을 23일부터 선보이고 있다. 차일디시는 1999년 회화를 고집하는 ‘스터키즘’ 운동을 시작했다가 2001년 결별하고 개인적인 회화를 그리고 있다. 페로탱 서울 등 다른 화랑에서도 구상 회화가 등장하는 분위기다. 다만 전문가들은 “같은 구상 회화라도 미술사적, 미학적 맥락을 갖고 있지 않다면 순간 유행에 그칠 우려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경쟁자는 뒷목을 잡게 하고 고객은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기업의 혁신은 어떻게 이뤄질까.’ 최근 몇 년간 이 문제에 관한 다양한 분석이 쏟아졌다. 노키아는 변화를 외면했고, 이케아는 ‘경험’을 강조했으며, 애플엔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가 있었다는 식의 분석이다. 저자는 말한다. “높은 주가(株價) 실적을 가진 기업들의 공통점을 찾아 성공 팁을 뽑아내겠다는 것은 마치 방금 로또에 당첨된 사람에게 로또 살 때 무슨 색 양말을 신고 있었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 물리학자이자 바이오업체를 세운 저자는 이 같은 사후약방문식 분석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단서를 찾아 모델과 가설을 세우는 물리학처럼 기업의 혁신을 이뤄낸 조직 문화도 ‘구조(시스템)’를 봐야 한다고 제안한다. 핵심은 룬샷(loonshot)과 상전이(相轉移)다. 혁신의 씨앗인 룬샷은 “제안자를 나사 빠진 사람으로 취급하며,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지만 전쟁 의학 비즈니스의 판을 바꾼 아이디어”를 가리킨다. 룬샷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불완전하고 기이한 모습을 갖고 있다. 이 책의 독특함은 룬샷을 남발하는 기업도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애플 초기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맥)를 연구하던 그룹은 ‘예술가’라며 칭송한 반면 나머지 조직은 ‘평범한 해병’ ‘멍청이’라고 일축했다. 두 그룹 사이의 적대감이 심해서 두 건물 사이 샛길을 비무장지대라고 부를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당시 맥은 상업적으로 실패했고, 잡스는 쫓겨났다. 20세기 사진의 역사를 바꾼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1946년 즉석카메라를 비롯해 끊임없는 연구로 수많은 ‘제품형 룬샷’을 만들어낸 에드윈 랜드는 “노벨상을 받아도 충분할 정도”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기술 혁신에만 치중한 나머지, 즉석 인화 영화기기인 ‘폴라비전’을 만들었지만 “경이로우나 쓸모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폴라비전은 기술적으로 완벽했지만 가격이 비싸 실용성이 없었다. 더 결정적인 건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이었다. 그는 군사작전을 위해 인공위성에 사용할 디지털 카메라 개발을 도우면서 누구보다 먼저 그 쓸모를 알았지만 상업적 가능성은 무시했다. 저자는 이 두 사례를 통해 룬샷을 리더가 직접 고르고 평가하는 ‘모세의 함정’에 빠져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외면받기 쉬운 룬샷이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잭팟’의 기회를 만나게 해주는 조직의 구조, 바로 상전이다. 상전이란 온도, 압력 같은 외부 변수의 영향을 받아 물질이 액체 고체 기체 등의 다른 형태로 변하는 단계를 가리킨다. 이상적인 조직은 방향 잃은 룬샷의 덫에 걸려 혼돈에 빠지거나(액체), 관성에 젖어 룬샷을 외면(고체)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리더는 ‘예술가’와 ‘해병’ 그룹이 따로 또 같이 협력하도록 관리하는 ‘세심한 정원사’가 돼야 한다. 12년이 흘러 다시 애플로 돌아왔을 때 잡스는 애니메이션의 혁명을 가져온 ‘픽사(Pixar)’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니 아이브 같은 예술가와 팀 쿡 같은 병사를 똑같이 사랑하는 법을 터득한 상태였다. 결과주의적 사고를 벗어나 시스템적 사고로 혁신을 설명해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신약 개발, 세계 체스 챔피언 등 사례도 풍부하다. 빌 게이츠는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는 책’이라 추천했으며 지난해 블룸버그 선정 최고경영자(CEO) 최다 추천 도서에 올랐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그룹 블랙핑크가 미국 출신 가수 레이디 가가의 새 앨범 수록곡에 참여했다. 이 같은 내용은 레이디 가가가 22일(현지 시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한 6집 ‘Chromatica’ 트랙리스트를 통해 알려졌다. 10번 트랙 ‘Sour Candy’ 옆에 블랙핑크와 함께 한다는 내용이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레이디 가가의 앨범에는 블랙핑크 외에도 아리아나 그란데, 엘턴 존 등이 참여 했다. 새 앨범은 10일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잠정 연기된 상태다. 블랙핑크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는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가 평소 서로의 음악을 듣고 팬이 되면서 자연스레 이번 작업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블랙핑크는 2018년 유니버설뮤직 산하 레이블인 인터스코프레코드와 계약한 뒤 미국에 진출했다. 북미, 유럽, 호주, 아시아 등 23개 도시에서 월드투어를 했고, 지난해 4월에는 ‘Kill This Love’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서 41위,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200’에서 24위에 올랐다. 블랙핑크는 앞서 영국 출신 가수 두아 리파의 ‘KISS AND MAKE UP’으로도 협업한 바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