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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2017년 낸 ‘Thank You for Being Late(늦게 와줘서 고마워)’란 책에는 “어제 입사한 신입사원이 직관이 뛰어난 30년 된 숙련 기술자보다 더 일을 잘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대목이 나온다. 30대가 50대보다 20년이나 어린데도 어떻게 50대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기계에는 인간의 지각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약한 징후가 있다. 과거에는 오랜 경험을 통해 직관을 갖게 된 사람만이 이 징후를 포착해 대응했다. 그러나 지금은 센서를 통해 수집한 빅데이터를 잘 분석할 수 있기만 하면 베테랑에게나 가능했던 ‘건초 더미 속에서 바늘 찾기’가 신입사원에게도 가능해졌다. 4차 산업혁명을 영어권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부른다. 아날로그적인 것을 디지털로 바꾸는 것이다. 러다이트 운동 같은 반발이 없어서 그렇지 1차 산업혁명 시기 수공업을 기계공업으로 바꾸는 것 못지않은 작업 방식의 근본적 변혁이다. 아날로그에 익숙한 구세대 사원은 결국 디지털에 익숙한 신세대 사원에게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60대의 프리드먼은 ‘늦게 와줘서 고맙다’고 한 것이다. 36세의 국민의힘 정치인 이준석이 586세대인 나경원을 제치고 당 대표가 됐다. 그가 디지털 접속을 정치에 어떻게 활용하는지 설명해주는 최근 주간조선 기고문을 흥미롭게 읽었다. 34세의 국민의힘 정치인 김재섭은 당 대표 후보 여론조사에서 이준석이 1위라는 소문이 처음 돌았을 때 함께 저녁을 먹다 접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이준석은 여론조사 소식을 접하자 즉각 태블릿을 꺼내 구체적 수치를 확인하고 곧바로 각종 커뮤니티 인기 글의 현황을 알려주는 ‘이슈링크’에 접속했다. ‘이준석’이란 키워드가 1위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짧은 논평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논평을 인용한 글이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재생산됐다. 주요 언론사에서도 이준석의 논평을 기사화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선순환을 일으켜 온라인 공간에서 화제는 더욱 확산됐다.” 586세대와 40대가 젊었을 때 일어나기 시작한 정보기술(IT) 혁명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서막에 불과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출현할 무렵 도약이 일어났다. 페이스북이 개방되고 트위터가 시작됐으며 구글이 유튜브를 매입했다. 하둡(Hadoop)의 분산병렬식 처리로 인해 컴퓨터의 저장 연산능력이 폭발했고 깃허브(Github)라는 소프트웨어 오픈 플랫폼이 등장해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용이해졌다. 30대는 그 무렵 16∼25세였다. 그렇게 첫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30대 이하를 눈여겨볼 또 다른 이유가 있다. 586세대가 고등학교에 갈 때는 이미 명문고가 다 없어지고 평준화가 시행됐다. 40대들도 대부분 평준화 교육을 받았다. 1996년 민족사관고등학교가 평준화 이후 처음으로 수월성 교육을 표방하고 나왔다. 2002년 민사고를 시작으로 자립형 사립고가 생겼다. 30대는 새로 수월성 교육을 받기 시작한 세대다. 수월성 교육의 결과 국내를 넘어 외국 대학의 학부 과정에 도전장을 내는 학생이 늘었다.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말하고 듣는 이들이 지금 30대의 선두주자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에서 공부한 학생도 이른바 ‘인서울(in Seoul) 대학’에 가는 학생의 실력은 586세대 때 서울대와 연고대에 가는 학생의 실력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들의 기초 실력은 586세대나 40대보다 높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이준석 현상’과 관련해 곧 발표할 원고를 하나 보내줬다. 그의 조사와 연구에 따르면 20, 30대는 이념적으로는 보수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념 대신 정부 중심이냐, 시민 중심이냐는 구별을 대입해 비교해 보면 50, 60대는 정부 중심, 20, 30대는 시민 중심으로 큰 차이가 난다. 30대 이하가 이전보다 보수화하고 있다면 그것은 과거 정부 중심의 보수와는 다른 시민 중심의 새로운 보수다. 아날로그 시대의 중민(中民)과는 다른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중민이 나올지도 모른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역사에는 늘 맞수가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고대 로마 시대에는 로마와 카르타고가 맞수였다. 프랑스 혁명 후 나폴레옹 시대에는 프랑스가 서쪽으로는 영국,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맞붙었다. 프랑스의 세력이 약화되자 독일이 유럽 대륙의 새 강자로 부상해 두 차례 세계대전의 불씨로 자라는 가운데 중동과 아시아에서는 영국과 러시아가 충돌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미국과 소련이 맞수였다. 오늘날은 미국과 중국이 맞붙고 있다. ▷중국은 동쪽과 남쪽으로 태평양에 면해 있고 북쪽과 서쪽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이어져 있다. 청나라 때는 바다 쪽 방어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해방파(海防派)와 대륙 쪽 방어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새방파(塞防派)로 나눠 다퉜다. 수세적이었던 청나라와는 달리 오늘날의 굴기하는 중국은 바다 쪽으로는 군사력을 앞세워, 대륙 쪽으로는 경제력을 앞세워 진출하고 있다. 후자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중국 자금을 대고 인프라 건설 등을 지원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으로 중국의 서진(西進)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군사적 동진과 남진은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 충돌,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난사군도 충돌로 나타났다. 홍콩 접수와 대만 위협은 중국의 군사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적 진출을 막기 위해 일본 호주 인도와 인도태평양 동맹을 강화했다. 미국은 그동안 자국과 관련되지 않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에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일대일로 정책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5일 일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세계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은 중국에 대한 높은 수준의 대체재(代替財)를 제공할 것”이라며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선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세계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은 주요 7개국(G7)을 말한다. 11∼13일 영국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 일대일로에 대한 대체재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G7의 협조융자 시스템이 논의될 것이라고 외신들이 보도하고 있다. ▷미국은 냉전 시대에 소련과 동유럽 국가를 향해 봉쇄 정책을 폈다. 소련과 동유럽 국가가 군사적 경제적으로 자신들의 영역 밖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막은 것으로 궁극적으로 공산권의 몰락을 초래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동맹과 함께 중국의 경제적 서진에도 맞불을 놓기로 한 것은 중국을 동쪽 남쪽 서쪽에서 유연하게 봉쇄하는 신(新)봉쇄 정책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는 점점 더 깊이 신냉전 시대로 빠져들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김슬아 마켓컬리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38세다. 사진으로 보던 것과 달리 약간 체격이 있다. 자신이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먹고 싶어 신선식품에 특화된 e커머스 업체 마켓컬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민족사관고에 1년간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 고등학교를 마친 뒤 웰즐리대에 입학해 정치학을 전공한 후 골드만삭스 등에서 일하다 창업했다. 한국에서는 과거 유학을 가도 주로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갔다. 그렇게 공부하고 와서 교수가 된 친구들이 하는 말인즉 같은 한국인이라도 고등학교나 대학 학부 과정부터 다닌 학생과 대학원 과정부터 다닌 학생은 쓰는 영어부터 다르다고 한다. 그 사회에 스며들어 교류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네이버의 이해진, 넥슨의 김정주,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등 50대인 정보기술(IT) 분야 선두 기업의 창업자들은 대부분 유학을 가지 않았다. 서울대나 KAIST를 다녔다. 미국에서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을 한 적도 없다. 다음의 이재웅이 특이하게 프랑스의 이공계 그랑제콜을 다녔다. 정치인이 된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정도가 뒤늦게 미국에서 MBA를 했다. 한화 3세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도 올해 38세다. 영어 발음이 원어민 수준이다. 그도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영어 소통에 불편이 없으니 다보스포럼 같은 국제 모임에도 빼놓지 않고 참석한다. 그가 주도한 차세대 에너지 기업에 대한 투자는 외국 CEO들과의 개인적 교류를 통해 얻은 정보에 기초한 것이 많다고 한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등 50대인 재벌가 자제들은 대개 국내에서 대학을 마친 뒤 ‘황제교육’ 차원에서 유학을 갔다. 김 사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일반 외국 학생들과 섞여 지내서인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면이 거의 없다. 공군 통역장교로 3년 근무해 일반인 이상으로 병역 의무를 충실히 마쳤고 결혼도 회사 동료와 해서 화제가 됐다. 이들은 내가 올 들어 우연한 기회에 가까이서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두 30대 기업가다. 괄목상대(刮目相對)할 30대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정치권에서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올해 36세다. 40세가 안 돼 아직 대통령 피선거권도 없지만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정치권, 특히 여권은 586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586 정치인들은 대부분 국산(國産)이고 그것도 ‘운동’을 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한 세대인 반면 이 전 위원은 서울과학고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이런 경력이면 대개 금융계나 IT 업계에서 활동하는데 그는 26세에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따지고 보면 26세에 전업 정치인이 돼 보겠다고 한 것 역시 창업 못지않은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586세대는 평준화 체제에서 교육받고 기껏해야 읽는 영어로 세계의 흐름을 따라잡으려 노력했던 세대인 반면 30대는 수월성 교육을 받고 말하고 듣는 영어로 세계와 함께 호흡하기 시작한 세대다. 50대는 30대보다 경험치가 20년가량 많다. 그 경험치의 한계효율을 뛰어넘을 만한 실력의 축적이 30대들에게 이뤄지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도 40대는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존재감이 희미하다. 586세대 정치인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을 정도인 반면 40대 정치인은 많지도 않은 데다 있는 정치인들도 586세대 정치인의 아류 같은 느낌이다. 586세대 IT 기업가들은 개발시대의 재벌에 필적할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거대기업군을 만들었다. 그들이 대학생이던 시절 IT 시대가 시작돼 그 업계를 선점해버린 탓도 있겠지만 40대에는 그만한 기업가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30대가 40대와는 달리 586세대가 드리운 긴 그늘을 헤치고 나와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하는 건 반가운 일이다. 다만 젊다고 무조건 박수칠 일은 아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젊음은 미숙함일 뿐이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젊은이가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그만큼 사회에 유해한 것도 없다. 전(前) 세대의 고루한 통념에 도전하되 그들의 경험에서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도 함께 가졌으면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국민의힘 30대 최고위원인 이준석과 초선 의원인 김웅은 당 대표에 도전하면서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의 영입을 전면에 내세웠다. 실은 주호영 같은 중진들도 윤석열 영입을 거론하고 있다. 주장하는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 탄핵의 강은 유승민이 바란 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건너기는 어렵다. 금태섭과 권성동이 만든 국회 탄핵소추안은 엉터리였다. 탄핵심판 주심 강일원은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금을 뇌물로 규정한 소추 내용을 헌법상의 영업 자유 침해로 슬쩍 바꿨다. 검사의 공소장을 판사가 멋대로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후에 윤석열은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금을 뇌물로 기소했으나 법원에서도 인정되지 않았다. 탄핵은 사법 절차처럼 상소나 재심이 가능한 제도가 아니다. 잘못이 있었다고 해도 나중에 바로잡을 수 없다. 그래서 탄핵은 정치에 가깝다고 말한다. 탄핵을 비이성적으로 몰고 간 당시의 힘의 관계는 그 자체가 받아들여야 할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탄핵에 이성적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관행의 범죄화’ 등으로 가속기를 밟고 박근혜 탄핵을 넘어 이명박까지 사실상 탄핵한 윤석열을 국민의힘으로 영입하는 건 탄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윤석열에게도 국민의힘의 영입 제안에 응하는 것이 좋을지는 고민일 것이다. 국민의힘이 가진 조직과 자금을 이용할 수 있지만 자신을 향한 지지의 일부를 잃을 수 있다. 국민의힘에는 정반대의 고민이 있다. 윤석열을 영입한다고 정체성을 과도하게 흔들어버리면 전통적 지지자들이 떠날 수 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각자의 정체성을 허물고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연대하는 것이다. 엄연한 차이를 얼버무리면서 억지로 하나로 묶기보다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분명히 한 뒤 더 높은 목표를 위해 가능한 한 차이가 드러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함께 가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박근혜 탄핵 당시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소수파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홍준표가 복당에 어려움을 겪는 사실이 그런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홍준표는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제 손으로 뽑은 후보다. 홍준표의 품격 없는 언행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홍준표를 배제함으로써는 국민의힘이 전진할 수 없다. 유승민과 원희룡은 홍준표를 넘어서야 진정한 대선 주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윤석열의 정치적 출발점은 제3지대가 더 적절해 보인다. 제3지대에는 이미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있으니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낫고 국민의당이 소규모 정당에 불과하니 상대하는 부담도 작다. 윤석열과 안철수의 입장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차이가 작은 편끼리 먼저 힘을 합치는 것이 순서다. 제3지대가 국민의힘을 상대로 의미 있는 협상력을 가지려면 세를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윤석열이 개인적으로 국민의힘에 영입되는 것이나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국민의힘과 합당하는 것은 둘 다 국민의힘에 흡수되는 것처럼 보여 표의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4·7 재·보선을 자기 힘으로 이긴 줄 알고 윤석열과 안철수에게 기차 떠나기 전에 타라는 식으로 압박한다면 착각이다. 국민의힘이 조직과 자금을 바탕으로 윤석열과 안철수를 국민의힘의 일부로 만들려는 순간 정권교체의 목표는 멀어진다. 국민의힘 윤석열 안철수는 각각 존재감을 상실하지 않고 하나의 그릇에 들어 있어야 한다. 기업의 인재 스카우트나 M&A가 아닌, 함께하는 다른 방식을 상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연대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통합은 단선율(單旋律)이고 연대는 다선율(多旋律)이다. 하나의 주선율(主旋律)이 있고 다른 음들은 주선율에 화음을 이루기 위해 종속되는 음악이 아니라 각기 다른 선율이 독자적으로 울리면서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다. 각기 다른 선율 간에 음이 부딪쳐 불협화음이 나오는 순간들이 없을 수 없지만 불가피한 곳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화음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4·7 재·보선은 친문(親文)의 단선율 집단에 맞서 반문(反文)의 다선율 연대가 압도적 승리를 거둔 선거다. 넓고 큰 것이 좁고 작은 것을 이기는 법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북한 김정남 암살에 관여한 베트남 여성 도안티흐엉은 4일 SBS와의 인터뷰에서 그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자신을 한국 유튜버라고 소개한 미스터 와이라는 사람을 만나 암살 두 달 전부터 오렌지주스나 베이비오일 같은 액체를 손에 바르고 사람 얼굴을 만지는 방식의 몰래카메라 촬영을 7, 8차례 했다고 한다. 그는 “암살 당일에도 몰래카메라 촬영을 하는 줄 알고 미스터 와이가 발라준 액체를 그가 지목한 남자에게 묻혔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북한이 영문도 모르는 사람을 살인도구로 이용한 기상천외한 수법에 놀랄 수밖에 없다. ▷김정남은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신경계 작용 독성 물질인 VX에 의해 독살됐다. 손에 독성 물질을 묻히고 김정남에게 몰래 접근해 그의 얼굴을 문지른 도안티흐엉과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는 재빨리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고 중독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남은 2시간 만에 서서히(혹은 급속히) 죽어갔다. 당시 그의 사망 사실 못지않게 그를 죽이는 데 사용된 VX의 강력한 독성에 모두 놀랐다. ▷현실은 종종 상상을 뛰어넘는다. ‘공각기동대’나 ‘인셉션’ 같은 SF 영화를 보면 사람의 기억을 조작해 의식 없는 살인도구로 이용한다. 그런 건 아직 공상일 뿐이다. 북한은 유튜브가 전 세계적 인기 매체라는 점, 유튜브에 몰래카메라 상황극 영상이 흔하다는 점, 보통 한번 설정한 상황극 형식에 다양한 장소와 사람을 시리즈로 담는다는 점을 이용해 누구라도 쉽게 속아 넘어갈 방식으로 의식 없는 살인도구를 만들어냈다. ▷도안티흐엉이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수 있다. 살인은 살인의 고의나 과실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 일반인으로서는 독극물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독극물을 전달받아 바른 사람은 단지 살인의 도구일 뿐이다. 총을 쏘거나 칼로 찔러 살인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어도 총이나 칼을 처벌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도안티흐엉은 맨손으로 VX를 만졌다. 독극물인 줄 알았다면 맨손으로 만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해독제를 맞은 증거도 없다. 해독제를 맞아야 했다면 유튜브를 위한 몰래카메라 촬영인지 의심하게 됐을 것이다. 김정남은 평범한 젊은 베트남 여성이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독극물 노비초크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와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을 한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렸지만 죽이지는 못했다. 김정남 암살은 북한이 러시아를 뛰어넘는 암살 기술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서운 집단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현대사 전공 학자로 클래식 음악 평론에도 조예가 깊은 강규형 명지대 교수를 최근 광화문 근처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4년 전 KBS 이사 해직 사태에 휘말리기 전의 활기와 열정이 넘치던 얼굴은 사라졌다. 보기 좋은 체형이었는데 몸은 마르고 배만 불룩 나와 있었다. 머리는 덥수룩했다. 지친 표정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2017년 감사원 정기 감사를 마친 KBS 이사들을 다시 표적 감사해 업무추진비를 잘못 사용했다는 이유로 이사 전원을 문제 삼으면서 정기 감사 결과를 뒤집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감사 결과를 토대로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처럼 한 놈만 팬다는 식으로 강 교수를 찍어 이사직 해임을 건의했다. 문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해임을 재가했다. 강 교수는 문 대통령을 상대로 해직 취소 소송을 냈고 1, 2심 모두 강 교수 손을 들어줬다. 강 교수만이 아니라 KBS 이사 11명 전원에게서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사실이 드러났고 강 교수의 소위 부당 사용 액수가 다른 이사들에 비해 오히려 적은 편이며 KBS에서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을 이유로 이사를 징계한 사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상기 연세대 교수는 형사정책연구원장으로 있을 때 360만 원을 부당 사용했다가 국무조정실 감사에 적발된 사실이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드러났는데도 법무장관으로 임명됐다. 대통령에게 공정한 잣대는 없었으며 주의를 줄 것, 징계를 할 것, 파면을 할 것 사이의 구별도 없었다. 문 대통령과 싸운다는 것은 단지 대통령과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홍위병 같은 지지자들과도 싸우는 걸 의미한다. 강 교수가 한번은 모 씨에게 폭행을 당했는데 언론노조와 미디어오늘은 강 교수가 오히려 물의를 일으켰다고 주장했고 방통위는 이를 또 다른 해임 사유로 삼았다. 강 교수는 이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기 위해 민형사재판을 했다. 대법원은 물론 민사 재판부도 상대편의 폭행만 인정했다. 강 교수에게 한 사건이 끝나면 또 다른 사건으로 소장이 날아왔다. 이런 소송이 20여 건에 이른다. 상대편은 소송비를 부담하지 않는다. 노조나 특정 변호사 집단이 도와준다. 이런 경우 일단 ‘소송 괴롭힘’ 때문에 손을 들어버리기 쉽다. 상대편도 그걸 노린다. 소송비로 억대의 돈이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소송 대응 과정에서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도 겪는다. 개인에게는 이것이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강 교수가 다른 이사들처럼 정권이 원하는 대로 사퇴해 줬으면 별일 없었을 것이다. KBS 이사는 KBS 사장과 달리 봉급이 있는 자리도 아니다. 활동비가 조금 나올 뿐이다. 해직 취소 소송 승소를 바탕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들 받아낼 돈도 별로 없다. 다만 그는 한 사람의 역사학자로 현 정권의 언론 탄압에 대한 분명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싸웠다고 한다. 강 교수가 겪은 일은 이 정권에서는 특이한 것도 아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겨우 닷새가 지나 수상한 기사가 하나 한겨레신문에 보도됐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법무부 검찰국장과 밥을 먹고 각자 상대편 후배들에게 100만 원씩 돈 봉투를 줬다는 내용이었다. 관행대로 특수활동비를 쓴 것인데도 문 대통령은 직접 감찰을 지시했다. 두 사람은 쫓겨나고 그 틈을 타 윤석열 검사가 등용됐다. 두 사람에 대한 면직 처분은 나중에 법원에서 취소됐다. 기가 막힌 것은 문 대통령이 스스로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에까지 앉힌 그를 등용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쫓아낸다는 점이다. 법무장관은 검찰 인사를 전횡하고 수사지휘권까지 남발해도 뜻대로 되지 않자 검찰이 관행적으로 해오던 재판부 분석을 사찰이라고 트집 잡아 윤 총장을 징계했다. 징계가 청구되자 문 대통령은 망설임 없이 결재했다. 하지만 이 처분도 법원에서 퇴짜를 맞았다. 대통령의 처분이 사자처럼 당당하지는 못할망정 벌레처럼 좀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처분과 싸우는 개인에게 그 싸움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검찰총장조차도 법무부라는 조직이 동원돼 씌운 징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일반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강 교수의 경우 연금통장 2개를 털었고 몸은 엉망이 됐으며 무엇보다 학자로서 가장 열정적으로 연구할 50대 중후반의 수년을 부질없는 송사(訟事)에 빼앗겼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앞으로 3년간 우리 정치의 과제는 보수와 중도의 연합으로 가짜 진보를 몰아내는 일이다. 문재인 세력, 즉 가짜 진보가 차지하고 있는 우리 정치의 왼쪽 자리는 반문(反文)이면서 보수가 아닌 중도와 진짜 진보에 주어져야 한다. 문재인 세력은 단순히 야권으로가 아니라 야권에서도 가능한 한 주변부로 밀어내야 할 세력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야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전직 대법원장을 별것도 아닌 죄목으로 구속까지 하고 정치적 프로토콜을 무시하고 전전(前前) 대통령을 수감했다.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자신들이 내세웠던 검찰총장이 똑같은 칼을 살아있는 권력에 들이대자 그마저 사실상 쫓아냈다. 외국에서도 이 정권의 독재적 본색(本色)을 서서히 알아채고 있다. 독재라도 박정희 독재와 문재인 독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박정희 독재가 유능했던 반면 문재인 독재는 무능하다. 이 정권 들어 외교 국방 경제를 막론하고 국정의 전 분야가 망가졌다. 우리나라는 자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동맹에서 서서히 배제되고 있으며 군은 북한의 핵위협에 무력한 채 실전훈련도 못하는 오합지졸이 됐고 경제는 집 없는 국민을 벼락거지로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역 하나 영업의 자유이고 보상이고 무시하고 마구 틀어막는 방식으로 성공하나 싶더니 그마저도 전문성이 필요한 백신 접종 단계에 와서는 파탄에 직면했다. 4·7 재·보궐선거에서의 승리는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너무 이른 긴 여정의 출발에 불과하다. 가짜 진보를 몰아내려면 내년 3월 대선에서 정부 권력을 바꾸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2024년 4월 총선에서까지 승리해 국회 권력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이 승리가 보수 단독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정치의 한 당사자가 아니라 정치 전반에 의미를 가지려면 보수·중도 연합으로서의 승리여야 한다. 내년 3월 대선에서 국민의힘의 어느 후보가 오세훈처럼 갑자기 떠서 집권하느냐, 안철수가 집권하느냐, 윤석열이 집권하느냐는 국민에게는 부차적일 뿐이다. 서울시장이 오세훈이 되든 안철수가 되든 국민에게는 부차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를 존중하는 세력의 단합된 힘으로 가짜 진보를 몰아내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는 자기 쪽이 권력을 쥐는 것 못지않게 자기 쪽이 권력을 내줄 때 신뢰할 수 있는 상대편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 상대편이 중도와 진짜 진보가 되도록 정치판을 재편하지 않으면 보수와 가짜 진보가 소모적으로 싸우는 과거 정치로 돌아간다. 눈앞의 자기 이익에 급급한 정치기술자에게는 이런 큰 정치적 소명(召命)은 아예 생각할 거리도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오세훈은 김종인이 선택한 후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상급식 반대를 트집 잡아 구박하던 후보였다. 그가 지금 와서는 오세훈이 당선된 것이 자기 덕분인데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징징거리고 있다. 그가 국민의힘에서 쫓겨난 홍준표와 비주류로 밀려난 김무성파가 당을 흔드는데도 중심을 잡고 서 있었으니 그의 덕분이라는 게 작은 사실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큰 진실은 오세훈이 아니라 안철수가, 아니 다른 누가 야권의 단일화 후보로 나왔어도 서울시장이 됐으리라는 것이다. 4·7 재·보선은 국민의힘과 안철수가 가진 힘의 벡터가 합세해 작용하고 장(場) 밖에서는 윤석열이 지원함으로써 승리한 선거다. 국민의힘, 안철수, 윤석열 다 일정한 한계가 있다. 윤석열이 ‘별의 시간’을 맞은 듯하지만 막상 정치판에 나와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3자는 서로의 한계를 보완할 가능성이 있음이 4·7 재·보선에서 드러났다. 이런 가능성을 더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지는 못할망정 고마워해야 할 사람에게 건방지다는 망발을 늘어놓는 게 딱 정치기술자 수준의 인간적 품성이다. 반문 연합이 꼭 합당이란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가짜 진보가 쫓겨난 후에는 보수, 중도, 진짜 진보가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철수류의 중도와 진중권류의 진짜 진보는 문재인 정권과의 싸움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여줬다. 이들과 정화(淨化)된 보수 세력 사이에는 진정한 의미의 토론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민주주의는 좌우(左右)의 날개로 난다는 말은 그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 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으로 유명하지만 교육에 대해서도 좋은 책을 남겼다. 그는 ‘미국의 고등교육’이란 책에서 대학(university)에서 학부대학(undergraduate college)과 직업학교(professional school)를 구분하고 인문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학부대학보다 로스쿨이나 MBA 같은 직업학교가 중시되는 경향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오늘날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명문 로스쿨이나 명문 MBA를 나오는 게 중요하다. ▷그랑제콜은 프랑스 고등교육 과정에서의 직업학교다. 프랑스 대학은 평준화돼 있다. 똑똑한 고등학생들은 대학에 가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명문 고등학교에 설치된 그랑제콜 준비반에 들어가 2, 3년을 더 공부한 뒤 그랑제콜로 직행한다. 정치인이나 고위직 공무원이 되고 싶으면 국립행정학교(ENA)로 가고, 이공계에서 리더가 되고 싶으면 에콜폴리테크니크로 간다. 고등상업학교(HEC) 같은 일종의 경영대학원들도 그랑제콜이다. ▷ENA는 1945년 샤를 드골 대통령이 새로운 프랑스 건설에 필요한 최고의 공무원을 키워내기 위해 설립했다. 드골 이후 프랑스 대통령은 7명이 나왔는데 그중 4명이 ENA 출신이다. 역대 총리와 장관 중에서도 ENA 출신이 수두룩하다. ENA 출신, 즉 에나르크(enarques)가 되는 것은 정관계에서 성공의 지름길이며 정관계와 인맥을 갖고 있어야 하는 재계에서도 성공의 지름길이다. ▷프랑스 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문화 자본’이란 개념을 만들어 현대 사회에서의 새로운 신분화를 우려했다. 문화 자본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문화적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재산 못지않게 문화적 능력을 자녀 세대에 전수하는 것이 부모 세대의 특권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고소득 전문직인 학생이 빈곤층 학생에 비해 ENA에 입학할 가능성이 10배 이상으로 크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ENA 폐지론이 제기돼 왔다. 그 자신 ENA 출신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8일 ‘사회적 이동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내년 ENA 폐교를 발표했다. ▷ENA 폐교는 프랑스 특유의 소수정예주의의 종말로도 이해될 수 있다. ENA는 한 해 고작 80∼9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프랑스는 대체로 관공서건 회사건 소수의 간부들은 밤늦도록 일하고 대다수의 직원들은 정시에 퇴근해 여가를 즐기는 사회다. 간부가 될 자질을 가진 소수를 택해 나랏돈으로 특별대우를 해주는 대신 그들에게 대중을 끌고 갈 책임을 부여하는 프랑스 시스템에 한계가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 번은 잠수교에, 한 번은 광화문광장에 모래를 퍼날라 프랑스 파리처럼 서울 플라주(plage·해변)를 시도했다. 비가 와 두 번 다 망쳤다. 유럽의 여름은 가물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걸 잊었다. 거의 아무도 찾지 않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가보면 좀스러운 원순 씨를 느낄 수 있다. 그곳에서 철거된 카페와 맛집이 그리울 뿐이다. 서울역 인근의 고가인도(高架人道)인 ‘서울로’ 정도가 인정해줄 만한데 그마저도 최선의 개조였는지는 의문이다. 그의 어버니즘(urbanism)이 이런 수준이다. 광화문 일대는 단지 서울의 메인 스트리트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메인 스트리트이다. 그곳 광장이 한쪽으로 찌그러져 개조되고 있다. 박 시장과 친한 몇몇 문화인들이 광화문 앞에 월대(月臺)를 복원해야 한다며 도로를 없애고 광화문 일대 전체를 광장화한다는 망상을 박 시장에게 불어넣었다. 그것이 현실성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면 포기했어야 하는데 안 되는 걸 억지로 밀어붙인 반쪽짜리가 편측광장이다. 이해찬 씨는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했다.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서울을 천박하지 않게 하려면 멀쩡한 광화문광장을 파헤칠 게 아니라 세종문화회관부터 뜯어고칠 생각을 했어야 한다. 세종문화회관은 유신 말기 정부 행사장으로 만든 곳으로 부분적 개조를 했음에도 음향이 좋지 않다. 서울 도심에 제대로 된 공연장 하나 없음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천박하다면 진짜 천박한 것이다. 박 시장의 성곽 복원 사업은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면서 완고한 집착으로 흘렀다. 옛 한양 성곽은 군사적 성벽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드는 것을 막는 담 같은 것이었다. 유럽의 도시들에는 해자까지 갖추고 감시탑만 수십 개에 이르는 진짜 성벽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를 굳이 복원한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한적한 곳에 성곽을 복원해 서울만의 독특한 둘레길을 만드는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사람 사는 주거지에서 성곽을 복원한답시고 개발을 막는 것이다. 복원한 성곽이 무슨 문화재적 가치가 있겠는가. 유네스코가 그런 걸 등재해줄 리도 없지만 외국 관광객들의 관심도 끌지 못할 걸 등재해서 박 시장 실적이 되는 외에 무엇에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옛 굴레방다리 인근의 아현동 일대와 모래내시장 뒤쪽의 남가좌동은 작부들의 맥양집(맥주양주집)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곳이 뉴타운 사업으로 상전벽해해 아파트촌이 됐다. 뉴타운 사업은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 때 시작됐다. 2005년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활력을 얻었으니 노무현 정부와 당도 그 사업에 큰 기여를 한 셈이다. 이런 뉴타운 사업이 박 시장 재임 9년 동안 줄줄이 중단되거나 지연됐다. 창신동과 숭인동은 광화문에서 아현동과 남가좌동의 반대 방향으로 딱 그 정도의 좋은 위치에 있지만 낙후돼 있다. 박 시장이 동대문 의류시장 수선집 주인들을 부추겨 뉴타운 개발을 막았다. 박 시장 밑에서 서울주택공사(SH) 사장을 하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뉴타운 대신 도시 재생이란 걸 했는데 900억 원을 들여 했다는 게 고작 계단 손잡이 수리하고 벽에 페인트칠하는 정도였다. 현재 노후화가 심각해 주민들이 점점 더 떠나면서 폐가가 속출하고 있다. 박 시장은 2019년 서울시 산하 교통방송에서 공정성이라곤 ‘일(一)도 없는’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어준 씨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언론의 자유는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언론에만 해당한다”고 말했다. 말짱히 이런 말을 하고 듣는 자들의 정신세계가 궁금하다. 물론 시정(市政)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것만은 분명히 했으면 한다. 이번 보궐선거는 윤석열 씨가 간명히 정리한 대로 ‘권력을 악용한 성범죄 때문에 막대한 국민 세금을 낭비하게 된 선거’다. 오늘은 ‘공소권 없음’으로 인해 못 한 박 시장의 성범죄에 대한 응징을 선거로 하는 날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내 사무실에는 안철수 씨의 미니어처 조각상이 하나 있다. 방송용으로 제작해 쓰던 것을 하나 구해 갖고 있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씨를 지지했다. 당시 보수정당의 대선주자는 박근혜 씨였다. 하지만 박 씨를 지지할 수는 없었다. 그가 박정희 딸이라는 사실 말고는 대선후보가 될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박정희 시대의 유산과도 같은 최순실과의 관계 때문에 몰락하고 말았다.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 권력을 주고받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에 자신이 평소 지지하는 정당 못지않게 권력을 넘겨받을 수 있는 상대편 정당이 신뢰할 만하냐가 중요하다. 당시 진보 진영에는 안 씨와 문재인 씨가 단일화를 두고 맞붙었다. 문 씨는 1980년대 운동권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고 안 씨는 1980년대 학생 대중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다. 안 씨라면 진보 진영의 후보가 되더라도 믿고 정권을 맡길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안 씨는 단일화에서 져 진보 진영의 재편은 이뤄지지 않았다. 문 씨는 단일화에서는 이겼으나 박근혜에게 패해 거의 몰락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박근혜 탄핵을 기회로 집권까지 했다. 운 좋게 집권한 것을 실력으로 집권한 것으로 착각한 문재인 정권은 곧 본색(本色)과 무능(無能)을 드러냈다. 문재인파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고 반문(反文)진영이 형성됐다. 안 씨가 이번에는 반문진영의 단일화 주자로 등장했다. 10년 만의 반전이다. 안 씨는 어제 다시 결정적으로 패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서울시장으로 다시 시작해 그 성과로 2027년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안 씨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반문진영 전체로 보면 안 씨가 꼭 이겨야 할 이유는 없다. 안 씨가 되든 오세훈 씨가 되든 양쪽 다 최선을 다하면 야당 후보에 승산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게다가 안 씨의 목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서울시장이 아니지 않은가. 안 씨의 패배는 어쩌면 다시 대선에 도전해 볼 기회가 될 수 있다.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면 이번에는 아예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안 씨에게 다시 대선에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2011년 박원순 씨와의 서울시장 단일화에서 양보하고 대선에 도전했다가 10년간의 긴 우회 끝에 다시 서울시장 후보로 도전했으나 그마저도 실패한 사람이 어떻게 다시 대선 후보가 될 수 있겠는가. 그의 한계인 면도 있고 한국 정치의 한계인 면도 있다. 이쯤에서 차라리 깨끗이 포기하는 게 낫겠다. 그 대신 료마의 길을 권하고 싶다. 일본 메이지유신 때 사카모토 료마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사쓰마번 출신도 조슈번 출신도 아니면서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통합을 이끌어 일본의 근대화를 이뤘다. 안 씨가 단일화에서 이긴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도록 성심성의껏 돕고 이후에는 반문진영에서 국민의힘과 강력한 대선 주자로 부각된 윤석열 씨를 결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지금 한국 정치에 무엇보다 기여하는 길이다. 안 씨는 의사로서 또 벤처기업인으로서 성공한 사람이지만 기존의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에서 새로운 정치적 소명을 발견하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안 씨는 권력을 잡아 휘두르는 데서 희열을 느끼거나 권력의 전리품을 측근들에게 나눠주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지지를 받았다. 권력지향적인 정치인과 다른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앞에 놓여 있다. 반문진영의 유력한 후보가 드문 상황에서 안 씨가 2선에 위치한다면 반문진영에는 든든한 느낌을 주고 정치 전반에는 활력을 준다. 보수 정당 출신의 문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뒤져보면 구린 데가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오 씨가 지금 제기되고 있는 서울 내곡동 셀프특혜 의혹을 얼마나 잘 해소할지 의문이다. 윤 씨는 지지율이 높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 검찰주의자는 여전히 많은 불안한 점을 갖고 있다. 안 씨가 희생적 자세로 자기 소명을 다하다 보면 지나가버린 별의 시간이 혜성처럼 다시 올지 누가 알겠는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윤석열이 검찰총장에서 사퇴한 후 야권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더 키우고 있다. 그가 정치하겠다고 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 안 하겠다고 한 적도 없다. 그의 경우는 부정하지 않는다는 게 긍정으로 읽히는 경우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에 의존해 사는 직업정치가와 정치를 위해 사는 정치가, 즉 소명(召命)의식을 가진 정치가를 구별한다. 정치권 밖의 한 분야에서 확고하게 자기 입지를 굳힌 사람이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 정치권에 들어오는 경우는 베버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본 직업정치가와 달리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가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카리스마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카리스마는 본래 신의 은사(恩賜)라는 뜻이다. 정치적 카리스마는 본인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대중의 지지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 지지는 은사적이다. 본인이 거기서 시대의 정신을 읽고, 시대의 정신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면 그때의 정치는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소명으로서의 정치가 된다. 윤석열의 검찰총장 사퇴는 잘했다고 보면서 그의 대권 도전은 부적절하다고 보는 이가 많다는 한 여론조사는 기만적이다. 윤석열을 내쫓고 싶은 문재인 지지 응답자들에 의해 왜곡이 빚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 밖의 인물이 정치에 뛰어드는 데 대한 반대 여론이 적지 않은데 그것은 정치는 직업정치가가 해야 한다는, 그럴듯하지만 근거 없는 사고에 기인하고 있다. 이상적인 정치는 소명의식을 가진 지도자가 직업정치가들을 이끄는 정치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장 직업적인 정치가들인 운동권 출신에 의해 장악된 정당이다. 이들은 국회뿐 아니라 청와대 비서실을 장악하고, 전통적으로 전문직이 수행하는 장관직까지 진출해 국회와 정부의 분립 기반을 무너뜨리고, 공기업 임원과 공공기관 단체장직을 약탈적으로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정권 연장에 필사적인 것은 대부분 한 번도 정치 이외의 직업을 가져보지 못한, 그래서 정치를 계속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직업정치가들이기 때문이다. 베버는 정치 기자를 현대적 대중 정당에 속한 직업정치가가 생기기 전부터 활동한 최초의 직업정치가라고 봤고, 변호사를 다른 전문직과 달리 정치를 겸할 수 있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정치에 몸담을 수 있는 제1의 직업정치가 예비군으로 봤다. 노무현 정동영 문재인 이낙연 등 민주당 쪽에서 내세운 역대 대선 후보(혹은 예비주자)는 예외 없이 변호사 출신이거나 정치 기자 출신이다. 보수 정당의 위기는 박근혜 탄핵으로부터가 아니라 박근혜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을 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정치 외의 어떤 직업도 가져본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노련한 직업정치가도 아니었다. 좋은 정당은 정치권 밖으로부터의 충원에 의해 활력을 얻는 법인데 보수 정당은 법관 출신에 대쪽 감사원장으로 통했던 이회창과 기업가 출신으로 성공적인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같은 외부 충원이 박근혜를 기점으로 사라짐으로써 위기를 맞았다. 10년 전 안철수가 별의 시간을 맞았고 지금 윤석열이 별의 시간을 맞고 있다. 안철수는 국민의힘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고 윤석열도 정치를 한다면 그의 인적 네트워크의 스펙트럼이 좌우로 널리 퍼져 있어 국민의힘과 일정한 거리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간격으로 별의 시간을 맞은 두 사람이 다 국민의힘과 거리를 둔다는 사실이 보수 정당의 진짜 위기를 보여준다. 국민의힘은 안철수, 윤석열과의 연대를 통해 유연하게 변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안철수는 그동안 분명한 소명의식을 보여줬다. 그가 내년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현실적 면이 없지 않지만 ‘야권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전초전부터 승기를 잡아야 한다’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면도 분명히 있음을 평가해야 한다. 문제는 윤석열에게 소명의식이 있느냐는 것이다. 소명의식이란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를 향해 거듭되는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밀고 나갈 힘이다. 대선에서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못하고 일어설 목표가 있어야 소명의식이 있다고 할 것이다. 반기문은 그런 소명의식 없이 거품 같은 인기에 의존해 나왔다가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박범계 법무장관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동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박 장관이 다닌 고교에 가지 않으면 내가 다닌 고교에 가도록 배정이 됐으니 학교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교 1학년 때 반에 밴드부원이 있었다. 어느 날 자율학습 시간에 하도 떠들어서 내가 조용히 좀 하라고 제지하다가 다툼이 벌어졌다. 그가 교실 거울을 깨 조각을 집어 들었다. 친구들이 나서 말리는 바람에 싸움은 일단 중단됐다. 휴식 시간에 3학년 밴드부 주장이 밴드부실로 날 불렀다. 학생들은 음악 시간에 음악실에 가다가 음악실 옆 밴드부실로 끌려가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곳에서 혼자 밴드부 주장과 마주했다. 그가 겁을 주다가 “혹시 서클에 가입돼 있느냐”고 물었다. YMCA에 있다고 하자 그냥 가라고 했다. YMCA는 박 장관이 가입한 ‘갈매기 조너선’류의 음성서클 약자가 아니라 국사책에 나오는 황성기독교청년회를 말한다. 하지만 제(祭)보다 젯밥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고 그중에는 우리 학년 ‘짱’도 있었다. 여학생과 빵집에서 빵만 먹어도 바리캉으로 머리가 깎이던 시절 서울 종로 YMCA회관이나 야외에서 여고 YMCA와 연합집회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랑 시비가 붙었던 밴드부 녀석은 3학년 때 반 친구를 칼로 찔러 퇴학을 당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듯 1980년을 전후한 당시는 서울 변두리 지역 학교에 폭력이 만연했다. 그래도 웬만해서는 학생을 퇴학까지 시키지는 않았다. 서클 친구가 다른 서클 친구에게 맞고 와 패싸움을 벌였다가 학교에서 나오게 됐다는 박 장관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최근 거론되는 연예인 체육인 학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심각한 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의원님 살려주십쇼’ 한 번만 해보세요.” 박 장관이 국회의원 때 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삭감된 대법원 예산을 복원시켜 주겠다며 한 말이다. 일반인은 호의를 베풀 때도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학교 양아치가 친구를 잡아놓고 괴롭히다가 ‘보내줄 테니 살려주세요 한번 해봐’ 하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다면 그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이 얼마나 분노했던지 요구한 예산을 철회해버렸다. 가정이 불우해서 양아치가 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개과천선했다는데도 양아치 근성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종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아무리 터프해도 범생이들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9수 끝에 사시에 합격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는 좌충우돌 끝에 정상에 올라 지금은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고 다니지만 기본적으로 범생이다. 신현수 민정수석 역시 검사 출신답지 않게 술 한잔 들어가면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로맨티시스트이지만 기본적으로 범생이다. 그 범생이들의 구역에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 들어와 발생한 것이 최근 검사 인사 사태다. 박 장관은 신 수석을 패싱해버렸다. 인사권자가 대통령인데 별거냐 할지 모르지만 청와대가 그 패싱을 해명할 논리를 찾지 못해 얼버무릴 정도로 이질적인 사건이다. 박 장관은 신 수석을 패싱하면서 그에게 “왜 우리 편에 서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범생이들은 억지 논지로라도 왜 옳은가를 먼저 내세운다. 그래서 범생이이고, 그래서 사회가 유지된다. 양아치들은 우리 편이냐 아니냐만을 따지고 우리 편이 아닌 상대편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패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은 잘생긴 외모에 예의도 깍듯하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위선적인 삶을 살았는지, 지지하는 사람은 믿기 싫고 비판하는 사람은 궁금할 따름이다. 추미애 전 장관은 유신 말기에도 홀로 입신양명을 위해 고시 공부에 몰두한 학생이었고 장관으로서 완장질을 할 때도 범생이 티가 역력해 가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박 장관은 그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는 푸틴을 연상시키는 러시아 대통령 페트로프가 등장한다. 만찬에서 페트로프의 불편한 행각을 함께 지켜본 뒤 미국 대통령에게 영부인이 이런 말을 한다. “페트로프는 똑똑해. 그러나 양아치(thug)야. 양아치 앞에선 움츠려선 안 돼(Don‘t cower to him).”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프랑스어 독일어 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올 2월 현재 서울시 공립고교에 프랑스어 정교사는 6명 남았다. 그나마 4명은 올해 중 정년퇴직하고 나머지 2명은 내년과 후년 각각 정년퇴직한다. 독일어 정교사는 2명 남았다. 둘 다 내년에 정년퇴직한다. 심각한 정도를 넘어 전멸 위기다. 학생들이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우기 싫어해서, 혹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여겨서 이렇게 된 걸까. 그렇지 않다. 지난해 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 조사한 ‘교육학점제 도입에 따른 교원수급 쟁점’이란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제2외국어 중에서 학생들의 수업 요구에 비해 교사 수가 적은 불균형이 가장 심한 과목에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속한다. 학생들의 수업 요구는 중국어와 일본어가 가장 많다. 그러나 프랑스어나 독일어에 대한 수업 요구도 그다음으로는 많다. 과거에는 고교 제2외국어 교육이 프랑스어 독일어로 편향돼 있었다면 오늘날은 중국어 일본어로 편향돼 있다. 그러나 프랑스어는 여전히 제2외국어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르치는 언어이고 독일어는 인문학 분야의 중요한 언어다. 동서양 언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과 비즈니스만 생각하면 영어만 배워도 충분하다.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교역이 많은 나라이므로 영어 외에 중국어와 일본어까지 알면 비즈니스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의 언어로서 간체(簡體) 한자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용한 언어가 되기 힘들고 오히려 배울수록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문화의 언어로서 일본어는 어느 정도는 유용하지만 우리의 프랑스어 독일어 능력이 떨어지면 프랑스어 독일어 문헌을 다시 일본어 번역을 통해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고교에서 제2외국어를 배워봐야 얼마나 많이 배우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는 익숙함의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이 영어로 대화 몇 마디 하는 게 고작이지만 영어는 오래 접해 친밀하게 느끼고 그 친밀감을 바탕으로 사람에 따라서는 더 깊이 공부하기도 한다. 고교 때 접해본 제2외국어는 평생 친밀하고, 접해보지 않은 제2외국어는 평생 낯설다. 낯설어지면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더 이상 공부하지 않게 된다. 프랑스와 독일어에서 명사 형용사의 성(性)·수(數)·격(格)에 따른 변화(declension)와 동사의 인칭·시제(時制)·태(態)·법(法)에 따른 변화(conjugation)는 영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배우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그 때문에 프랑스어를 배워본 학생들은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남유럽 언어를, 독일어를 배워본 학생들은 스웨덴어 덴마크어 등 북유럽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고 나아가 서양의 한자(漢字)나 다름없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도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제2외국어 과목이 다양해지고 상대적으로 프랑스어와 독일어 수업의 비중이 축소되면서 한 고교에 한 명의 프랑스어 교사나 독일어 교사를 두기 어려워진 현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약 5년 전부터는 한 학교 소속의 교사가 교육청 소속의 순회교사로 전환돼 인근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몇 명의 교사마저 퇴임해버리면 그마저도 불가능해진다. 임용고시를 통해 프랑스어와 독일어 교사를 뽑지 않은 지가 20년이 지났다. 대학 사범대에는 불어교육학과와 독어교육학과가 남아 있지만 20년이 넘도록 국공립 교사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순회교사 제도라도 유지하려면 올해부터라도 임용고시를 통해 교사를 충원해야 한다. 기간제 교사나 시간강사를 통해 보완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완에 불과하지 근본적 대책이 되지 않는다. 공립고교보다 훨씬 많은 사립고교의 상황은 더 어렵다. 사립고교에 남아있는 정교사들도 5년 내로 거의 다 정년퇴임한다. 사립학교는 교사 임용권이 교육청이 아니라 각 학교에 있어 순회교사 제도를 도입하기도 쉽지 않다. 교육청이 지역별로 거점학교를 지정해서라도 교사 채용을 위한 별도의 지원을 하지 않으면 사립고교에서 프랑스어 독일어 교육이 완전히 중단될 수 있다. 한번 끊어진 맥은 다시 잇기 어렵다. 더 늦기 전에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안철수가 2012년 문재인을 밀어내고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됐으면 어땠을까.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지고 말았지만 안철수였다면 박근혜를 이겼을까. 안철수가 박근혜를 이겨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박근혜 탄핵을 통해 집권한 문재인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을 수 있다. 물론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가 아니라 누가 됐더라도 박근혜와 문재인보다는 잘했으리라는 회한은 생생한 현실이다. 2012년 당시 민주당의 문재인파(派)만이 아니라 보수 진영도 안철수를 애송이로 폄하하며 공격했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집권 이후 진보 진영은 86세대 운동권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었다. 안철수는 스스로를 진보라고 여기는 사람 중에서 그런 재편에 거부감을 가진 세력을 대변한다. 보수 진영이 넓게 멀리 내다보았다면 어땠을까. 86세대 운동권은 서구식으로 분류하자면 극좌파에 해당한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말할 때의 그 좌파가 아니다. 문재인 시대에 들어와 만천하에 드러난 86세대 운동권의 반(反)민주성을 86세대 학생 대중들은 이미 대학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최장집 교수에 따르면 ‘정치권력 앞에서 취약하게 조직된’, 그러나 한상진 교수에 따르면 ‘진보적인 중민(中民)’이 바로 학생 대중이었고 안철수는 그 학생 대중의 하나였다 당시 문파와 보수 진영이 안철수를 협공하면서 쓴 ‘애송이’란 말은 직업 정치권의, 정치의 근본이 일상임을 모르는 오만함을 드러낸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직업 정치권 바깥의 정치적 히어로(hero)에 대해 직업 정치권이 이 정도의 폐쇄성을 드러낸 사례가 없다. 그런 폐쇄성은 어쩌면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 실패의 불길한 전조였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9세기 중반 이후 정치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직업 정치가들의 등장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1919년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유명한 글을 썼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국회의원이나 그 보좌관이 전형적인 직업 정치인이겠지만 베버는 기자를 최초의 직업 정치가로 봤고, 전문직 중에서는 변호사를 정치에 반쯤 발을 걸친 직업으로 봤다. 베버의 관점이 훨씬 더 풍부하게 직업화하는 정치의 현실을 잡아내고 있다. 진보 정당으로 갈수록 정치는 직업 정치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진보 정당의 출현이 역사적으로 직업 정치가의 등장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 정치는 정치를 직업 정치의 폐쇄회로에 가두지 않고 일상에 토대를 두려는 경향이 강해 직업 정치권 밖에 상대적으로 더 개방적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미국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첫 당선 이래 민주당에 5차례 선거에서 진 공화당이 정권을 되찾아온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영웅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통해서다. 리처드 닉슨 탄핵 이후 위기에 처한 공화당에 신보수주의로 새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영화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한국에서도 보수 정치는 군인 박정희와 기업가 출신인 이명박을 통해 경제적으로 큰 기여를 했다. 박정희와 달리 이명박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한국의 고질적 부동산 문제를 풀 실마리를 제공한 뉴타운 정책만으로도 그는 민주화 이후 어떤 대통령보다 뛰어나다. 반면 진보 진영의 노무현과 문재인이나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는 반쯤 정치인인 변호사 출신이다. 정치권 밖의 정치적 히어로의 등장은 직업 정치가 아니라 일상에 뿌리를 둔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고 환영해야 할 일이다. 안철수만이 아니라 윤석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개념(예를 들어 경제민주화) 사용도 똑바로 못 하는 학자 출신으로 유신 정권과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몸담았던 김종인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 앉아 노련한 직업 정치인 행세를 하며 정치권 밖에서 다가온 정치적 히어로에게 증오감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한국 정치의 실패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한 번은 변변한 직업 한번 가져보지 못한 일종의 정치 건달인 유신 공주를 도와 대통령으로 만들고, 한 번은 반쯤 정치인인 변호사로서 세상을 바라본 게 고작인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해 지난 9년의 한국 정치를 망친 장본인이 그가 아닌가.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일본은 도쿄 등 수도권 일대에 이달 8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코로나 긴급사태를 선언하면서 휴업보상금으로 하루 6만 엔(약 6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4월 긴급사태 선언 때의 4만 엔(약 40만 원)을 6만 엔으로 올렸다. 이번 긴급사태 예정 기간은 한 달이므로 영업일수를 따져 최대 180만 엔(약 1800만 원)까지 지급한다. 휴업이라고 해도 종일 휴업도 아니고 오후 8시 이후의 휴업이다. 강제도 아니다. 오후 8시 이후 영업을 하는 곳의 명단을 공개해 간접적 압박을 가하면서 오후 8시 이후 영업을 하지 않는 식당 주점 카페 등에 대해서는 휴업보상금으로 휴업을 유도한다.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라 할지라도 휴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독일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12월 16일부터 부분 봉쇄에 들어가면서 아예 영업을 하지 못하거나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떨어진 업체에 대해 전년도 같은 기간 매출액의 75%까지 보상하는 조치를 취했다. 올 1월부터는 보상 방식이 바뀌었다. 임차료 이자료 등 고정비를 기준으로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30∼50%가 줄면 고정비의 40%, 50∼70%가 줄면 60%, 70% 이상 줄면 90% 지원한다. 지원상한선은 문을 닫은 업체는 월 50만 유로(약 6억 원)이고 매출이 떨어진 업체는 월 20만 유로(약 2억6000만 원)이다. 상한선이 높은 것은 자영업자만이 아니라 중소기업까지 지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에서 지난해 11월 24일부터 2단계, 12월 8일부터 2.5단계, 12월 18일부터 2.5단계+α로 방역조치를 강화했다. 정부가 K방역 홍보에 흠이 갈까 봐 긴급사태니 봉쇄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았을 뿐 일본의 긴급사태 조치보다 더 강력하고, 이동의 자유 제한을 빼고 영업의 자유 제한만 놓고 보면 독일의 부분 봉쇄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11월 24일 이후 강화된 방역 조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에 대한 보상은 일본과 독일에 비해 쥐꼬리만 한 수준이다. 11일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3차 재난지원금이 그 보상인데 헬스장 노래방 학원 등 집합금지 업종에는 300만 원, 식당과 카페 PC방 독서실 등 영업제한 업종엔 200만 원이 지급된다. 국회에서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인천의 한 헬스장 사장님 이야기를 들으니 임차료가 월 800만 원이라고 한다. 인건비를 빼고도 관리비 렌털비 등 고정비 지출이 월 1200만 원이다. 두 달 가까이 문을 못 열고 있으니 반발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질의했다. 그 헬스장 사장님은 3차 재난지원금으로 300만 원을 받는다. 300만 원은 일본의 닷새 치 휴업보상금에 불과하다. 한 달 고정비가 1200만 원이므로 두 달이면 2400만 원이다. 재난지원금 300만 원을 뺀 2100만 원을 손해 보는 셈이다. 독일의 보상 기준을 그 사장님에게 적용하면 고정비의 90%인 월 1080만 원의 두 달 치인 2160만 원을 보상받는다. 이런 간단한 비교로도 K방역의 성과는 자영업자의 엄청난 희생 위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1차 재난지원금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4인 가족 기준 100만 원을 약속한 뒤 총선 후에 지급했다. 예산 14조 원이 들어간 단군 이래 최대 금권선거였다. 김종인 씨가 한 축이 돼 이끌었던 국민의힘도 전 국민 지원에 부화뇌동하는 바람에 야당은 정부와 여당을 향해 금권선거라는 비판도 할 수 없게 됐다. 그 돈은 사실 코로나로 타격받은 자영업자나 실업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었다. 그런 짓을 저질러놓고도 올해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다시 전 국민 지급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정치권이 미쳐 돌아간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 ‘감염병예방관리법’도 일본과 독일처럼 전염병으로 인한 영업 중단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하도록 돼 있다. 그렇게 하지도 않으면서 구상권 행사로 국민을 협박하는 데만 이 법을 이용하고 있다. 정 총리가 배 의원 질의에 답변하면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총리라면 지금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괜히 가슴만 뜨거워져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라 본인이 자영업자가 된 심정으로 실질적인 보상책을 내놓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과 서유럽 등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에서 인간은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대체로 패배했다. 반면 자유와 인권을 완벽히 억압한 중국은 최초의 코로나 창궐국이면서도 성공적으로 코로나를 저지했다. 국가가 억압적일수록 코로나에 잘 대응한다는 법칙에서 K방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감염병예방관리법’은 메르스 사태 이후인 2015년 개정 때 방역독재의 법으로 바뀌었다. 동선(動線)추적권이 도입됐다. 미국과 서유럽이 갖지 못한 무기를 가졌으니 우리가 더 잘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못했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동선추적권만 놓고 방역독재라고 경솔히 말하는 건 아니다. 방역 조사 때 거짓말을 하면 처벌하는 조항도 함께 도입됐다. 범죄자도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는데 범죄자도 아닌 감염 환자나 감염 의심자가 거짓말을 했다고 처벌받게 됐다. 방역조사를 받다 보면 누구나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다. 한 학원 강사는 성소수자임이 드러나면 학원에서 쫓겨나 먹고살 수 없게 될 듯해 거짓말을 했는데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사람마다 숨겨야 할 수백, 수천 가지 다른 종류의 비밀이 있다. 그런 거짓말을 뚫고 나갈 책임은 방역당국에 있다. 동선추적권을 가진 것으로도 모자라 거짓말을 한다고 처벌하니 그야말로 안보불고지죄에 버금가는 방역불고지죄다. 행정명령으로 손쉽게 집회를 금지하는 조항도 2015년 신설됐는데 이로 인해 집회·시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같은 기본권도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 대만은 방역 실적이 우리보다 훨씬 좋은 나라다. 그런 대만에서조차 지난달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에 반대해 5만 명이 모인 집회가 열렸다. 반면 문재인 정권은 재인산성을 쌓아 쥐 한 마리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학교 문을 닫지 않는 한 교회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했다. 반면 문재인 정권은 교회 문을 카페 문 닫듯이 닫았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미국과 서유럽에서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영업점에 들어갈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거부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는 거리를 걸을 때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가 과태료를 물까 걱정해야 한다. 중국에서 식당에 들어갈 때 QR코드를 찍는다고 사생활 침해 운운하던 보도는 우리가 QR코드를 사용하자 싹 사라졌다. 사실 자세히 알면 자랑할 만한 비결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해서라도 확진자와 사망자를 줄여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 하루 확진자가 1000명대라고 아우성이지만 하루 사망자가 수백 명인 비슷한 인구의 나라도 있다. 다만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방식으로는 확진자가 증가하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겠지만 증가하는 추세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더 누르면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겠지만 중국처럼 계속 누를 수 없는 이상 다시 풀 수밖에 없고 그러면 전보다 더 튀어 오른다. 지금 돌아보면 확진자가 100명을 넘었다고 야단일 때가 낯설게 느껴진다. 확진자가 수천 명이 되면 1000명을 넘었다고 야단인 지금이 또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코로나와의 싸움은 아무리 잘 싸워도 인간이 조금씩 후퇴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외신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비유했다. 미국과 서유럽은 후퇴를 거듭하다 드디어 공세로 전환하기 위한 무기를 개발해 코로나와의 싸움에 나섰다. 우리만 거리 두기나 마스크 착용 같은 육탄전으로 싸우면서 잘 싸웠다고 자아도취에 빠졌다가 낭패에 직면했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다’ ‘실무자는 잘했으나 지도자가 못했다’는 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문재인 대통령도 백신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았던 듯하다. 다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백신업계의 수준도 따져보지 않고 시간 고려 없이 백신 개발을 강조하며 백신 확보는 뒷전이었다. 그 결과 백신 개발도 못 한 채 백신 접종을 시작한 나라들을 닭 쫓던 개처럼 쳐다만 보는 꼴이 됐다. 백신 접종이 늦어지면 집단면역이 되는 시기도 늦어지면서 일찍 집단면역이 된 국가와 비교할 때 경제적으로 뒤처질 수 있다. 외교도 안보도 경제도 제 처지를 모르고 야랑자대(夜郞自大)하다 망쳤다. 방역도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닐까 걱정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잡지 ‘창작과 비평’의 평생 독자다. 대학에 다닐 때는 창비가 폐간당해 나오지 않을 때이지만 없는 돈에도 창간호부터의 영인본을 구입해 읽었다. 복간된 후에도 창비를 쭉 봤다. 창비가 선호하는 리얼리즘 문학작품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별로 읽지 못했지만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창비에서 평을 보고 사서 읽었다. 창비의 설립자인 백낙청 씨는 문학평론만이 아니라 사회변혁론도 펼쳐왔다. 백 씨의 변혁론에 전혀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의 변혁론이 진보 진영의 가장 정교한 변혁론이라고는 생각한다. 백 씨는 처음에는 계급모순론에 대항해 분단모순론을 펼쳤고 나중에 북한 세습체제가 문제가 되자 남한의 변혁 과정을 통해 북한의 변혁도 동시에 추구하는 이중과제론을 펼쳤다. 이중과제론은 북한의 변혁 추구 부분이 약하고 그래서 남로당이 북로당에 잡아먹혔듯이 남한의 변혁 세력이 북한을 변혁하기는커녕 북한에 변혁당할 우려가 크다는 게 나의 비판이다. 창비는 문학 중심의 잡지였으나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정치평론을 크게 늘렸다. 과거 창비는 선동적이라기보다는 비판적이었는데 사실 중시의 비판 정신마저도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많이 사라졌다. 창비에 광우병과 천안함에 대한 선동적인 글이 대거 실렸다. 그것은 창비의 편집책임이 백 씨 이후 세대로 넘어간 것과도 무관치 않다. 백 씨 자신은 나중에 천안함 선동 등에 대해 자성하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창비가 ‘○○○○년 체제론’을 들고나온 것은 2007년 무렵부터다. 백 씨의 제자 세대들이 1987년 체제를 넘어 남북연합을 목표로 한 체제를 만들자는 의미로 ‘○○○○년 체제론’을 펼쳤다. 백 씨 자신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2013년 체제론이란 책을 썼다. ‘내가 보수 신문사 사주라면 잠이 안 올 것’이라는 점잖지 못한 말까지 하고 다녔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으로 꿈은 깨졌다. 그러다 2016년 박 대통령 탄핵 정국이 도래했다. ‘2017년 체제론’이 또 나오겠구나 생각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도 ‘○○○○년 체제론’은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를 정말로 칠 기회가 왔다고 여겼을 때는 말부터 하지 않는다. 몽둥이를 뒤에 숨긴 채 조용히 접근한다. 그들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잡았다고 여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의 적폐청산은 단순히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 대통령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두 대통령의 집권 기간을 역사에서 지워버리기 위한 작업이다. 그리하여 김대중과 노무현에서 문재인으로 직접 이어지는 자신들의 역사 발전 궤도를 복원하고 이 궤도를 이승만 집권 이전 해방 전후사의 좌파나 중도 좌파와 연결시키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까지만 해도 배후에 원로 원탁회의라는 게 있었다. 원탁회의의 세 중심 원로가 백낙청 이해찬 함세웅이다. 함 신부는 정치적인 일에 종교인을 동원하는 것 외에 큰 의미는 없다. 백 씨와 이 전 의원이 핵심이다. 백 씨는 이론의 대부이고 이 전 의원은 정치의 대부다. 이 전 의원이 2018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자리에 도전했을 때 그의 출마는 의원 선수(選數)나 나이에 걸맞지 않은 것이었다. 진보 진영 전체가 체제 변혁을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씨는 전당대회 때부터 20년 집권론을 펼쳤다. 그의 말에 따르면 1800년 정조 사후 220년간 지속된 수구 세력의 편향을 극복하려면, 내가 이해하기로는 남북연합이 가능한 체제를 만들려면 최소한 20년의 집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20년을 집권하는 데 꼭 필요한 기구가 공수처다. 이 정권이 왜 온갖 억지와 추태를 부리면서까지, 심지어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공수처 설립과 검찰 파괴에 집착했는지는 높은 역사의 고지에서 봐야 보인다. 공수처는 ‘2021년 체제’의 시작이다. 공수처는 국가의 틀인 형사사법체제의 중대한 변경으로서 헌법 개정을 통하지 않은, 헌법 개정 수준의 변경이다. 문재인 정권은 공수처를 최대한 활용해 2022년 재집권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며 재집권에 성공하면 대한민국의 성공한 역사를 만든 기반을 향후 20년간 하나씩 파괴해갈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런민(人民)일보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신문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공식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주로 정기 구독자에게 배달로 전달된다. 반면 런민일보 자회사에서 만드는 환추시보는 가판대에서 주로 팔린다. 대외 문제에 관해 중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기사로 판매량을 크게 늘려 런민일보 그룹의 수익에 기여한 사람이 환추시보 총편집인(편집국장 격)인 후시진이다. ▷후시진은 외국에서는 악명이 높아 ‘프리스비 후(Frisbee Hu)’로 불린다. 주인이 프리스비 원반을 던지면 개가 달려가 물어오듯이 중국 공산당이 의제를 던지면 가장 앞장서 그 의제를 채택해 애국주의적으로 이슈화하는 데서 그런 별명이 나왔다. 한국에 대해서도 심심찮게 독설을 퍼붓는다. 사설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적극 지지하는 한국의 보수파를 향해 “김치를 먹더니 어리석어졌나”라며 비하하더니 돌연 중국 김치가 국제 표준이라는 황당한 기사를 싣기도 한다. ▷그를 지난해 12월 중국 청두(成都)에서 만난 적이 있다. 런민일보가 주최한 한중일+10개국 미디어포럼이라는 자리에서였다. 지난해 8월 홍콩 밍(明)보에 따르면 시진핑이 후시진의 선전 방식을 칭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언변에도 능했다. 그러나 그 언변으로 한일(韓日) 언론의 홍콩 사태 보도 태도를 비판하는 등 분위기를 고약하게 이끌어갔다. ▷후시진은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0세다. 그는 1989년 베이징외국어대에서 러시아문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런민일보에 입사했다. 입사 직후 소련에 특파돼 소련 해체를 목격했고 1993∼1996년 유고슬라비아 주재 기자로 파견돼 보스니아전쟁을 취재하면서 강력한 공산당 지배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돌아온 해 환추시보 부편집인이 되고 2005년 총편집인으로 승진해 16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후시진이 불륜과 혼외자 문제로 중국 당국에 고발됐다고 대만 언론이 3일 보도했다. 고발한 사람은 여성인 돤징타오(段靜濤) 환추시보 부편집인이다. 후시진이 전·현직 직원 2명과 불륜을 맺어 각각과 혼외자를 낳아 키우고 있다는 내용이다. 바로 아랫사람의 고발이라 심상치 않다. 그의 SNS 게시물은 외국 언론에도 종종 보도되고 그가 틱톡 등에서 올린 수익이 엄청나다는 소문도 있다. 중국 관영 매체의 언론인은 다 공산당 소속이다. 이 기민한 ‘프리스비의 개’도 16년을 장기 집권하더니 결국 권력투쟁에 휘말린 모양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유사한 드문 선례가 레닌의 체카다. 체카는 ‘전(全) 러시아 특별위원회’의 이니셜인 ‘ChK’를 러시아어로 읽은 것이다. 레닌이 기존의 형사사법체제에서 벗어나 만든 수사기관으로 기소와 재판까지 좌지우지했다. 이후 모든 공산권 국가가 모델로 삼았다. 체카에는 정확히 말하자면 ‘전 러시아 특별위원회’ 앞에 ‘반(反)혁명과 사보타주 분쇄를 위한’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 반혁명과 나란히 사보타주가 있다. 레닌이 정권을 장악하고 직면한 곤란한 상황 중 하나가 공무원의 반발이었다. 사보타주는 태업(怠業) 파괴 등의 작업 방해공작을 말한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면서 일부러 느릿느릿 업무를 처리하거나 철로를 끊어 열차가 못 다니게 하는 것이 전형적인 사보타주다. 체카의 눈에는 레닌의 혁명적 공약을 공무원이 상식이나 적법성을 따지면서 회피하거나 시비를 거는 것도 사보타주였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대통령이 월성 원전 1호기 폐쇄를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담당 부처 공무원이 폐쇄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면 사보타주가 된다. 담당 부처 공무원이 장관의 “너 죽을래”라는 말에 엉터리 근거를 만들었는데 그 사실을 감사원이 밝혀내면 사보타주가 된다. 감사 결과를 토대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그것은 엄청난 사보타주가 된다. ‘반혁명과 사보타주 분쇄를 위한’이란 수식어는 다시 ‘반혁명과 사보타주와 투기 분쇄를 위한’이란 수식어로 바뀌었다. 투기란 말은 레닌이 반(反)시장적 정책을 펴다 곡물값이 오르자 쿨라크(Kulak·부농)가 곡물을 숨겨놓았다고 보고(실은 그렇지 않았다) 곡물을 뜯어내기 위한 명분으로 사용됐다. 시대가 달라도 같은 생각에서는 같은 행동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이 잘못해 부동산 대란이 일어나자 투기세력을 잡겠다며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추진 중이다. 러시아의 진정한 혁명은 1917년 2월 혁명이었다. 2월 혁명으로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레닌은 그해 10월 쿠데타로 임시정부를 전복한 후에도 임시정부가 예정한 11월 총선은 치르기로 했다. 레닌을 지지한 러시아 인민들은 볼셰비키만이 총선과 제헌의회를 보장할 세력이라는 기대를 걸었다. 레닌은 언론을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4분의 1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그러자 이듬해 1월 제헌의회가 소집된 날 회의장을 청소해야 한다는 이유로 의장을 쫓아낸 후 의회의 문을 영원히 닫아버렸다. 그날 4만 명의 시민과 공무원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레닌 정권에 의한 첫 유혈진압이 이뤄졌다. 최근 영국의 양자물리학 천재 폴 디랙의 삶을 다룬 과학책을 보다가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디랙과 가까운 이고리 탐이란 소련 과학자가 있었다. 그는 대학을 가기 전부터 마르크스주의자로 과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볼셰비키를 위한 시간제 활동가로 일했다. 그러나 제헌의회가 폐쇄되고 그해 여름 다른 모든 정당이 불법화되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끼고 과학에만 몰두했다. 적지 않은 러시아인들이 혁명의 배반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있다가 배반을 당한 것이다. 한국의 민족해방(NL) 자주파 세력은 러시아 중국 북한의 혁명사를 깊이 연구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 현실에 맞는 자신들의 집권 도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이 ‘공수처’다. 문 대통령은 그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와 징계청구 철회를 요구하는 검사 대부분의 의견을 우회적으로 ‘집단이익’으로 매도했다. 최소한의 상식적인 법무행정과 수사와 감찰의 적법한 절차에 대한 요구를 사실상 사보타주라고 폄하한 것이다. 집권 초 특활비에서 나온 ‘100만 원 돈봉투’를 트집 잡아 서울중앙지검장을 몰아냈다. 지금은 대리인인 추미애 법무장관을 통해 ‘사찰 같지도 않은 것’을 사찰로 몰아 검찰총장을 쫓아내려 한다. 이유라도 이유 같으면 그나마 봐주겠으나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 체카가 했던 일 중 하나가 바로 그런 사소한 트집 잡기로 공무원을 몰아내고 가두는 것이었다. 현 사태는 공수처가 설치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여주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금태섭 전 의원은 “우리가 광장에서 외친 세상은 이런 모습이 아니다”라고 했다. 촛불혁명을 말하는 모양이다.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영원히 배반당하기 전에 막을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펠레와 마라도나 중 누가 더 뛰어날까. 답하기 어렵다. 다만 펠레는 TV 축구중계가 활발하지 않던 시대에, 마라도나는 활발해진 시대에 살았다는 차이가 있다. 펠레의 뛰어남은 당대의 선수나 관중의 전언을 통해 주로 알려질 뿐이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전 세계의 축구팬들이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신기(神技)에 가까운 기술을 직접 보여줬다. ▷1986년 월드컵의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 8강전, 후반 6분경 마라도나는 머리 위로 손을 치켜들어 골을 넣었다. 심판이 반칙을 알아차리지 못해 득점으로 인정됐다. 야유가 쏟아졌으나 마라도나는 3분 뒤 이를 깨끗이 잠재우는 골을 넣었다. 중앙선 부근에서 시작한 단독 드리블로 잉글랜드 골키퍼까지 6명을 제치고 골을 넣은 것이다. 2 대 1 승리로 경기가 끝난 뒤 마라도나는 핸드볼 반칙 골은 신의 손이 약간 작용해 만들어낸 골이라고 말했다. 포클랜드 전쟁으로 반영(反英) 감정을 갖고 있는 아르헨티나인 중에서는 마라도나가 신들린 듯한 발로 넣은 골을 본지라 신의 손이 작용한 것처럼 느낀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경기가 열린 6월 22일은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사이비종교인 마라도나교의 오순절이 되기도 했다. ▷축구에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마라도나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였다. 마라도나가 1984년 이탈리아 SSC 나폴리로 이적했을 때 그 팀은 이탈리아 세리에A 리그에서 강등권에 있었다. 이런 팀을 이끌고 그는 리그 정상을 차지한 데 이어 유럽 프로축구팀의 월드컵인 유럽축구연맹(UEFA)컵까지 차지했다. ▷사람은 성공한 바로 그것으로 망하기도 한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가 하필 나폴리에서 맞붙었다. 나폴리에서 신처럼 추앙받던 마라도나는 “나폴리 주민은 나와 아르헨티나를 응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라도나가 지역 갈등을 이용해 이탈리아 국민을 이간질했다는 비판이 득세하면서 사법당국이 그의 마약 복용과 매춘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마라도나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아르헨티나로 쫓겨났다. 그 후 그의 삶은 대체로 우울한 에필로그였다. ▷마라도나가 볼을 잡으면 서너 명의 선수가 그에게 달려든다. 압박축구는 이탈리아 리그에서 그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전술이다. 키도 크지 않은 그가 황소 같은 힘과 발레리나보다 정교한 발재간으로 압박을 뚫고 나가는 장면은 일리아드나 삼국지의 영웅들이 적진을 뚫고 가는 것 같다. 마라도나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의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그라시아스 디에고! 그는 떠났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