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43

추천

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5-11-25~2025-12-25
문학/출판25%
역사21%
정치일반14%
사회일반11%
문화 일반7%
칼럼7%
정당4%
검찰-법원판결4%
인사일반4%
산업3%
  • 일본인 위령탑 우뚝 서있는데… 한국인 무덤은 흔적도 없어

    냉전 동안 오갈 수 없던 구소련 지역 소재 강제동원 피해자 유해는 그동안 미약한 봉환 사업에서도 사각지대였다. 동아일보가 러시아 서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사할린 홀름스크 등에서 현지 취재한 결과, 군인과 노무자로 강제 동원됐다가 현지에서 사망한 조선인 무덤의 상당수는 찾는 이 없이 방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2∼26일 조선인 시베리아 포로 문제를 연구해 온 이재훈 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박사와 함께 시베리아 포로가 수용됐던 크라스노야르스크를 찾아가 보니 우뚝한 일본인 위령비만 있을 뿐 조선인 사망자와 관련된 내용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시베리아 포로는 일제 패망 뒤 소련군의 포로가 됐던 일본 관동군으로 관동군에 군인과 군속으로 징집됐던 조선인 3000여 명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시베리아 전역에 분산 수용돼 3년여 동안 강제 노동을 했다. 추위와 굶주림, 질병에 시달리다 사망한 이들은 시베리아 곳곳에 흩어져 묻혔다. 취재팀과 이 박사는 구소련 기록에 조선인 포로 10명이 묻혔다고 기록된 크라스노야르스크의 또 다른 매장지를 지난달 찾았다. 국가기록원이 입수한 소련 측 기록에는 이 지역을 포함해 모두 85명의 조선인 포로가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자료에 기록된 지도에는 즐로비노 역 남쪽에 수용소가 있었고, 사망자들은 다시 그 남쪽에 묻혔다고 나온다. 현장 확인 결과, 매장지는 현재 ‘즐로비노 공동묘지’가 돼 러시아인들의 무덤으로 가득했다. 안타깝게도 조선인들의 무덤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같은 곳에 매장된 것으로 기록된 일본인들의 무덤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 매장지를 방문한 한국인은 취재진이 처음이다. 취재진이 발견한 것은 일본 크라스노야르스크 유족회가 묘지 입구에 세운 ‘진혼’이라는 목비뿐이었다. 일본 정부는 시베리아 포로 유해를 체계적으로 수습해 왔다. 일본인이 매장된 크라스노야르스크 니콜라옙스크 공동묘지에서는 멀리서도 ‘일본인 사망자 위령비’라고 쓰인 비석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석 한쪽에 ‘헤이세이(平成) 12년(2000년) 9월 일본국 정부 준공’이라고 쓰인 글씨가 선명했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시 공무원 악쇼노바 씨는 “우리는 매장된 포로들이 모두 일본인이라고 생각해 왔다”며 “즐로비노 묘지에서는 일본인들이 유해를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인 유해가 어딘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조선인 포로의 흔적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이곳 입구에 ‘조선인 포로들이여 편히 잠드소서!’라고 쓰인 위령비를 세웠다. 이 박사는 “국가기록원이 시베리아 포로 관련 기록을 수년 전 러시아 정부로부터 입수했지만 유해 봉환과 체계적인 분석은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한편 사할린에 강제 동원됐다가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현지에서 숨진 한인들의 무덤도 돌봐줄 이가 없는 경우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사할린의 무연고 한인 묘는 대일항쟁기 위원회가 지난해까지 유해 30여 위를 봉환한 게 전부다. 4일 강제동원 한인들이 일했던 제지공장 등이 있는 홀름스크의 공동묘지를 찾았을 때에는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한인들의 묘가 여럿 발견됐다. 묘비에 ‘김정대(1914∼1966)’라고 쓰인 무덤은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는 듯 수풀만 무성했다. 묘비가 없이 과거 봉분만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도 여럿 보였다. 사할린 무연고 무덤은 각 지역의 30여 개 묘지별로 수 기에서 수백 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전수조사는 시작도 못한 상황이다. 한인들이 강제 동원된 탄광이 있던 시네고르스크의 공동묘지에서는 오래전 한인 무덤들이 비에 쓸려 내려가자 러시아인들이 수습했다고 알려진 자리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일항쟁기 위원회가 사할린 묘지를 표본 조사할 당시 일했던 현지 관계자는 “사할린 중남부 토마리의 묘지에는 무연고 무덤이 300여 기 있는데 상당수가 한인”이라고 말했다.크라스노야르스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8-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흥만 김용순 김상득 김타관 박소수… 뒤늦게 망각서 깨어난 이름들

    러시아 국립사할린역사기록보존소에서 5일 발견된 ‘근무원과 노동자 수 조사’ 문서(가칭 ‘마오카 명부’)는 영원히 잊혀질 뻔했던 강제 동원 조선인들의 이름을 담고 있다. ‘김타관(金他官)’ ‘박소수(朴小守)….’ 나이호로(內幌) 탄광(현 고르노자보츠크 소재) 부분에 등장하는 이들을 비롯해 마오카 명부에서 새로 확인된 피해자가 적지 않다. 이들에 대한 피해 신고가 되지 않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할린에서 비교적 일찍 독신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 강제 동원 피해를 신고할 만한 가족이 없었을 경우도 추정할 수 있다. 마오카 명부가 모습을 드러낸 5일 역사기록보존소 열람실은 정적 속에 긴장감이 흘렀다. 명부를 찾아낸 방일권 한국외국어대 연구교수는 방문 전부터 보존소 측과 접촉하며 조사를 계속해 왔다. 명부를 펼치자 줄줄이 이어지는 조선인의 이름을 보면서 방 교수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나왔다. 향후 명부 전체를 분석해야 하지만 조선인의 비율은 10∼20%일 것으로 예상된다. 나이호로 탄광 부분에는 약 1684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방 교수가 이 중 12쪽에 실린 268명의 이름을 분석한 결과 45명(16.8%)가량이 조선인인 것으로 분석됐다. 창씨개명 당해 일본식 이름으로 기록된 이들도 적지 않아 조선인은 더 많을 가능성도 있다. 마오카 명부에서는 현 홀름스크, 네벨스크, 고르노자보츠크 등의 탄광과 공장 등 사업장 100여 개의 목록이 확인됐다. 오지(王子)제지, 가라후토(樺太)조선주식회사, 다이에이(大榮)광업소, 오하시구미(大橋組)를 비롯해 조선인을 동원해 석탄을 캔 탄광이나 군수 물자를 생산하거나 토목 건설을 한 회사 등이 대부분이다. 추후 연구를 통해 일제가 조선인들의 노동력을 어느 분야까지 투입했는지도 분석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오카 명부의 정확성은 기존 자료로도 뒷받침된다.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된 경남 고성 출신의 김원재 씨는 1966년 3월 “귀국을 원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일본에서 귀환 운동을 벌이던 박노학 씨에게 보냈다. 발신인 주소는 ‘나이호로 탄광, 고르노자보츠크 톨스토이 25번지’. 그의 이름은 마오카 명부 속 나이호로 탄광 부분에 그대로 등장한다. ‘김상득(金相得), 월수액(월급) 75엔, 상여 9엔, 일급(日給·일용직), 채탄부(採炭夫)….’ 이 명부에서는 월급여가 함께 기록된 것도 특징적이다. 명부는 이름과 함께 노동자별로 월급여와 상여, 종별(월급·일급 등), 직종(채탄부·굴진부 등)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일급을 받는 일용직이 대부분으로 보인다. 방 교수는 “향후 강제 동원 피해 배상 및 미불 임금 소송에도 주요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급여액을 통해 근무 햇수도 추후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제는 급여의 상당액을 강제로 저축시키거나 공채를 사도록 하는 방식으로 급여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 또 일제 패망 뒤 혼란으로 미불된 임금도 상당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당시 남사할린에 억류된 한인은 강제 동원된 당사자와 가족을 포함해 2만3000명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행적이 묘연한 이들이 상당수다. 마오카 명부를 기초로 징용으로 행방불명된 이들의 행적을 일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례로 나이호로 탄광 명부에 등장하는 김성동(金成東) 씨는 ‘왜정 시 피징용자 명부’와 대조하면 1902년생으로 경남 밀양군 삼랑진면 미촌에 살다가 1941년 9월 19일 끌려간 뒤 생사불명으로 기록된 사람과 동일인일 가능성이 있다. 사할린에는 당시 마오카 지청을 포함해 도요하라(豊原) 에스토루(惠須取) 시스카(敷香) 등 4개 지청이 있었다. 나머지 3개 지청에서도 동일한 문서가 작성됐을 것이 확실시된다. 이 문서를 모두 찾게 된다면 지금까지 등장한 기록 중 사할린에서 광복을 맞았으나 돌아올 수 없었던 조선인 근로자 전체 명부에 가장 근접한 것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할린 주 산하 각 지자체의 기록보존소에도 강제 동원 피해자에 관한 상세 정보가 추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아 조사 필요성이 크다. 그러나 기록 조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지난해와 올해 조사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탓이다. 대일항쟁기위원회와 외교부는 한국 측이 사할린 내 공개 기록을 열람할 수 있도록 2013년 러시아 정부를 설득했고, 러시아 정부도 민감한 부분이 없지 않음에도 인도적 차원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이 위원회는 2014년 1개월 반 동안 10명의 실무 인력을 파견해 현지에서 자료를 조사했고, 7000여 명의 명부를 작성하는 성과도 냈다. 방 교수의 이번 조사는 행정자치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의 사할린 유해 봉환 예산 일부를 활용해 가능했지만 고작 보름이 안 되는 동안 혼자서만 할 수 있었다. 학술 조사 형식으로라도 조사를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유즈노사할린스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8-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71년 떠돌던 원혼 이제야 찾았다

    ‘김흥만(金興万), 김용순(金容淳), 김상득(金相得)….’ 한 칸 건너 한 사람, 몇 칸 건너 또 한 사람. 이달 5일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있는 국립사할린역사기록보존소에서 발견한 문서철 속 엷은 미농지는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종이에 쓰인 이름들은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조선인이라고. 71년, 광복된 지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이제야 왔냐고. 일본인 이름 사이에 끼인 1000여 명의 조선인 이름은 대부분 일제에 의해 러시아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가 탄광 등에서 중노동에 시달렸고, 광복 뒤에도 끝내 그리던 고향땅을 밟지 못한 이들이다. 강제 동원 피해 신고가 안 돼 있고, 다른 기록에도 등장하지 않아 그동안 기억에서조차 완전히 묻혔던 이들이 상당수다. 동아일보 취재팀과 사할린 강제 동원 문제를 연구해 온 방일권 한국외국어대 연구교수는 사할린역사기록보존소에서 구소련 민정국이 일본인 관리들에게 지시해 작성한 ‘근무원과 노동자 수 조사(勤務員及勞동者數調)’ 문서를 새로 찾아냈다. 이 문서는 총 1346쪽으로 1945년 8∼10월 당시 사할린 11개 군 중 마오카(眞岡) 지청이 관할했던 3개 군 내 모든 사업장의 노동자 명단이 사업장별로 담겼다. 1만여 명의 이름과 직장, 월급 등이 적혀 있는데 조선인은 1000∼2000명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는 사할린 행정구역상 4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의 군수 산업을 포함한 모든 사업장 노동자를 전수조사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나머지 8개 군을 관할했던 3개 지청에서 작성한 문서를 찾아낸다면 일제 패망 뒤 사할린에서 돌아오지 못한 조선인 노동자의 전체 규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방 교수는 “명부에서 조선인과 강제 동원된 이들을 가려내면 감춰졌던 피해자들을 새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냉전시대 오갈 수 없었던 구소련 지역의 사할린, 시베리아 등에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에 대한 조사와 유해 봉환 사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국외 강제 동원 사망자들을 조명하기 위해 서(西)시베리아와 사할린, 일본 오키나와 지역을 취재했다. 일본 관동군에 끌려갔다가 일제 패망 뒤 소련에 억류돼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사망한 조선인 포로 10명의 매장지는 현지인들의 공동묘지로 변해 있었다.유즈노사할린스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8-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무국적 한인 2세 ‘恨의 대물림’

    지난해 사할린 한인 1세대 영주 귀국 사업이 종료됐지만 아직 적지 않은 과제가 남아있다. 그중 하나가 한인 2세 중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무국적 한인’이다. 사할린의 무국적 한인은 2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북 군산 출신으로 작고한 진경호 씨가 사할린에서 낳은 딸인 순옥(65) 순금 씨(62) 자매가 그런 경우다. “국적이 없어 아버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어요.” 5일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자택에서 만난 순금 씨는 무국적 신분이 한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순금 씨의 아버지는 77세인 2000년 영주 귀국하면서 꿈에 그리던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한국 국적을 되찾았지만, 국적 회복은 1세대인 본인에게만 한정됐다. 진경호 씨가 2003년 세상을 떴지만 순금 씨는 사할린에서 슬픔을 달래야 했다. “저는 러시아 국적이 없어 장례식을 위해 한국에 가려면 비자를 따로 받아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못 갔죠.” 그나마 언니 순옥 씨가 한국에 들어가 있던 때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버지도 영주 귀국 전까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다. 순금 씨는 “언제나 고향 땅에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놓지 않던 아버지는 ‘러시아 국적을 받으면 한국에 못 간다. 너희는 언젠가는 나와 함께 한국에 갈 것’이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순금 씨는 “한인이라고 사할린에서 차별을 받지는 않았지만 무국적에서 오는 불편함은 적지 않았다”고 했다. 일정 거리(약 40km) 이상 떨어진 곳에 가려면 1주일 전에 미리 당국에 신고해 허가서를 지참해야 했다. 임시 거주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할린 한인 2, 3세에게 한국 국적을 부여하는 데 대체로 부정적이다. 무국적자를 포함한 사할린 한인이 대거 한국 국적을 획득하는 상황에 대한 국내외의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사할린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2, 3세 상당수가 한국 국적을 취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국적 취득에 대한 자매의 생각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순금 씨는 “나는 한국인”이라면서도 “사할린에서 나고 자랐고, 자식들도 여기서 사는데 나보고 한국 국적을 주고 가서 살라고 한들 살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반면 순옥 씨는 “나이가 들수록 한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커진다”고 했다.유즈노사할린스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8-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술∼술 이책]페어리 랜드― 달을 두 조각 낸 소녀

    열네 살 소녀 셉템버는 어느 날 요정의 세계인 ‘페어리 랜드’로 들어서고,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려 달에 도착한 순간 지진이 일어난다. 셉템버는 지진을 일으키는 ‘사이더스킨’의 존재를 알게 되고 엄청난 속도로 흘러간 시간과 갑자기 늙어 죽어버린 주민들, 자취를 감춘 요정들에 관한 얘기를 듣는다. 소녀는 사이더스킨의 만행을 막아내고 달의 지진을 멈출 수 있을까. 소녀의 모험과 성장을 다룬, 드문 판타지 소설이다. 미국 SF판타지작가협회(SFWA)가 수여하는 ‘네뷸러 상’을 청소년문학 부문에서 받았지만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 등이 성인 독자에게도 매력이 있다. 1만2000원.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8-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짧은 글, 긴 여운’ 창비가 엮은 86편의 詩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영사기사 알프레도가 남긴 키스신 모음 같은 느낌이랄까. 책은 1975년 신경림의 ‘농무’를 1번으로 시작된 ‘창비 시선’이 400번을 맞아 나온 기념 시선집이다. 나희덕 문동만 강성은 시인을 비롯해 창비 시선 301번부터 399번까지 시인 86명의 시를 한 편씩 모았다. 모두 책 한 페이지 안에 들어가는 짧은 시다. 엮은이들은 “이를 두고 단시(短詩)라고 불러도 좋다. 독자들이 가능한 한 여유롭게 시와 마주 앉기를 바랐다”고 했다. 한 시인의 시집 한 권을 통째로 읽으며 깊은 숲길을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느낌은 얻을 수 없지만, 각 시집에서 촌철의 장면들만 모아 보는 맛이 있다. “아르바이트 끝나고 새벽에 들어오는 아이의/추운 발소리를 듣는 애비는 잠결에/귀로 운다”(김주대 ‘부녀’)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이영광 ‘높새바람같이는’ 중) 숫기 없고 예민한 족속들이 머리를 긁적이며 썼을 ‘시인의 말’에서 발췌한 글을 읽는 재미도 시 본편 못지않다. “너무 속속들이 읽지는 마시고 곁눈으로 대강 훑어보시길 부탁드린다.”(권지숙) “시를 쓴다는 것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힘든 작업에 비해 소득이 적은 예술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이제껏 불평한 적이 없다.”(민영) ‘창비 시선’의 책 번호가 100번대 중반이던 20년 전 시집 한 권은 5000원 안팎이었다. 과자값은 그동안 열 배 가까이 오른 것 같은데, 시집 가격은 두 배가 됐다. 무더운 여름, 몰디브에는 가지 못해도 일상에서 ‘러스티 네일’(녹슨 못 또는 거친 발톱) 같은 감각을 체험하는 값으로는 너무 헐한 것 아닌지….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8-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헌병이 치안 맡아야” 日무단통치 주범의 편지

    1910년 전후 일제가 자행한 항일 의병 탄압과 무단통치의 주범인 아카시 모토지로 헌병대사령관(1864~1919)이 조선의 치안을 헌병이 맡아야 한다며 헌병경찰제 시행을 주장한 편지가 11일 공개됐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1909년 8월 3일 아카시가 헌병대장직을 후임인 사카키바라 쇼조에게 넘기며 쓴 11m 길이의 두루마리 편지를 공개했다. 아카시는 이 편지에서 의병 탄압을 마치고 식민통치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헌병이 한국의 경찰권을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카시의 주장은 1910년 6월 데라우치 마사타케 통감 부임 이후 그대로 실현돼 일제 무단통치의 근간이 됐다.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이 편지를 올해 일본 교토의 연구자로부터 입수했다고 밝혔다. 1907년 조선 주둔 헌병대장으로 부임한 아카시는 의병 탄압의 주역으로 악명을 떨쳤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8-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대한민국에서 ‘남자답게’ 산다는 것은

    근래 인터넷에서 남녀 사이의 적대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하는 전쟁 수준이다. 오랫동안 ‘○○녀’ 딱지 붙이기 등 ‘여혐’(여성혐오) 공격이 일방적으로 우세했지만 최근에는 같은 방식으로 ‘남혐’(남성혐오)을 표현한 인터넷 커뮤니티가 등장하는 등 반격도 거세다.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의 저자는 본인의 표현대로 이 전쟁에서 ‘전향자’다. 남성 사회학자인 저자는 과거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던 시절 여성 노동을 토론하다 “차별을 말하지만 어쨌든 초등학교 여교사가 신붓감 1순위 아닙니까?”라고 하는 등 보수적 언행으로 핀잔을 듣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의 출산을 소재로 인터넷에 글을 썼다가 “출산을 감히 군 복무와 비교했다”는 남성들의 댓글 융단폭격을 받은 뒤 ‘남자들의 세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살기 힘들어졌다’는 말은 얼마나 사실일까. 책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에서 한국은 성 평등지수가 0.651(남성에 비해 여성은 65% 정도의 정치 경제적 권리를 누린다는 뜻)로 145개국 중 115위였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여성이 운전면허를 받을 수 없는 사우디아라비아(134위), 여자가 남자 배구 경기를 관람했다가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는 이란(141위) 정도였다. 저자는 남자들이 병영생활 등을 통해 어떻게 남성우월주의를 체화했는지, ‘개저씨’(개념 없는 아저씨를 비하한 말)들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 남성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왜곡된 인식을 조목조목 파고든다. 보수적 남성에게는 당연히 불편한 책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생각을 비롯해 의견이 다른 구석도 꽤 있지만 기자는 적지 않게 찔렸다. 저자는 “‘인간답게’ 대신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말만 부유하는 곳에서는 일그러진 인간들만이 활보한다”고 지적한다. 반면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는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한 남자 만화가가 쓴 일상 이야기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아내도 만화가다. 부부는 각자의 작업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철저하게 가사를 분담했다. 엄마들이 주도하는 유치원 바비큐 모임이나 학부모 참관수업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하던 저자는 가정통신문에의 부모 직업 설문지에 ‘주부’라고 쓸까 고민한다. 일상을 진솔하게 담은 글에 미소가 나온다. 39세인 저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던 전 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아버지·남편상을 보여준다. 부제는 ‘남자 망신 에세이’이지만 가족이 함께 행복해진다면 좀 망신을 당한다 해도 무슨 상관이랴. 저자는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다. 일이든 육아든 서로 공평하게 하려 한 건 아내, 남편, 엄마, 아빠 등 주어진(고정된) 역할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7-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술∼술 이책]기똥찬 로큰롤 세대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는 지미 래빗은 1980년대 ‘커미트먼트’라는 밴드의 매니저로 활약했지만 이제는 평범한 47세의 중년 가장이다. 수년 전 만든 올드 밴드 부활 프로젝트 ‘기똥찬 로큰롤 닷컴’의 지분도 대부분 판 상태. 그저 그런 일상을 보내던 지미는 갑작스레 대장암 판정을 받고 큰 수술을 받는다. 죽음과 이별에 관한 생각에 빠져 있다가 오래 잊고 지냈던 옛 밴드의 멤버 아웃스팬을 암 병동에서 만나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되찾는다. 1993년 부커상을 받았던 작가가 죽음을 마주한 중년의 성장을 장편 소설로 썼다.1만4800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7-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세계질서는 힘-정당성을 기초로 만들어진다

    20세기의 노회한 외교 수완가가 변화하는 21세기 세계 질서에 대한 신간을 냈다. 저자의 나이는 무려 93세. 키신저는 미국 닉슨 행정부와 포드 행정부에서 대통령안보보좌관 겸 국무장관을 지냈고, 1973년 베트남전 종전(終戰)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저자는 21세기 역시 이른바 ‘세계 질서’가 지속적으로 추구되지만 국가들은 여전히 공동의 가치를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글로벌화로 세계 모든 지역이 서로 얽혀 있고 특정 문제가 발생하자마자 타국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흔하지만 국제 정치의 주요 행위자들은 행동의 원칙과 한계, 최종 목표에 대해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역사상 유럽, 이슬람, 중국, 미국이 추구한 서로 다른 4개의 세계 질서 개념이 존재했다고 본다. 문명들은 자신들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는 각자의 질서관이 있었지만 지리적 한계에 갇혔고 세계적으로 원칙과 목표가 합의된 적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는 것은 400년 전 유럽의 30년 전쟁이 끝나고 근대적 주권 국가들을 등장시킨 베스트팔렌 체제 정도다. 이 역시 국가들의 연합인 유럽연합(EU)이나 이슬람 근본주의를 바탕으로 세속 국가를 해체하려는 지하디스트의 등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레알폴리틱(현실정치)을 신봉한 정치가답게 저자는 공유할 수 있는 국제질서의 바탕을 ‘힘의 균형’과 ‘정당성’의 조화에서 찾으려고 한다. 아시아에 대해서는 비교적 국가들 사이의 협력을 강조하는 편이다. 저자는 “아시아 각국의 의견 충돌이 대립 위기로 확대되고 있다”며 “균형을 순전히 군사적으로 정의하면 대립은 더 심해질 것이고, 세력 균형과 협력 개념을 결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7-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만석승무’는 인형극 아닌 사람이 추는 놀이극이었다

    전통연희 전문가인 전경욱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최근 지인이 건네준 프랑스 파리동양어학교 도서관 소장 한글본 ‘정리의궤(整理儀軌)’의 사진을 보다가 눈에 번쩍 띄는 것이 있었다. 수원 화성의 완공 기념식(1796년 10월 16일)을 그린 낙성연도(落成宴圖)에서 기존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규장각 소장)의 낙성연도와 다른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흑백본인 화성성역의궤 낙성연도에선 백성들이 지켜보던 두 개의 채붕(彩棚·가설누각)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채색본인 정리의궤 낙성연도에선 각각 춤을 추는 노장(노승)과 기녀, 취바리와 기녀가 그려져 있었던 것. 오른쪽 채붕의 노장은 칡베장삼을 입었고, 왼쪽 채붕의 취바리는 술에 취한 모습의 붉은 탈을 썼다. 전 교수는 이것이 당일 백성들을 위해 마련된 ‘만석승무(萬石僧舞)’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석승무’는 만석중춤, 망석춤으로도 불리며 수십 년 면벽수도를 한 지족선사를 황진이가 유혹해 파계시킨다는 내용에서 유래된 춤으로 알려져 있다. 전 교수는 “정리의궤를 통해 만석승무를 사람이 췄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과거 만석승무를 포함한 산희(山희)는 가설무대에서 공연하는 그림자 인형극이라는 통설을 뒤엎는 발견”이라고 말했다. 기존 학설에선 유득공(1749∼1807)이 ‘경도잡지’에서 산희에 대해 “다락을 매고 포장을 치고, 사자춤 호랑이춤 만석중춤을 춘다”고 적은 기록 등을 인형극이라고 해석했다. 전 교수는 “이번 발견으로 산희가 현재의 봉산탈춤이나 양주별산대놀이의 한 대목인 ‘노장 과장(科場)’과 유사한 공연이었다는 게 밝혀졌다”며 “산희라는 이름은 낙성연도에 나오듯 채붕 위에 소나무가지를 꽂아 산을 표현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노장 과장은 노승이 소무라는 여성에게 반해 파계하지만 한량인 취바리에게 빼앗기는 내용을 담고 있어 지족선사와 황진이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7-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현대 기업들도 울고 갈 개성상인의 회계관리

    ‘분식 회계를 밥 먹듯 하는 요즘 기업들, 개성상인에게 배워라.’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일부 기업이 부실을 감추려고 분식 회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복식부기를 사용한 개성상인들의 회계 관리가 현대 기업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와 주목된다. 전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글로벌한국학부 교수(사진) 연구팀은 1887∼1912년 개성상인의 회계 장부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현대적 회계를 통해 소유와 경영을 철저히 분리하고 주기적으로 손익을 배분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최근 이탈리아 페스카라에서 열린 ‘제14차 세계 회계사(會計史) 대회’에서 ‘한국 개성에서의 자본계정의 탄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개성상인은 1년 단위로 손익을 측정해 그 한도 내에서 투자자에게 배당했고, 이를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로 기록했다. 전 교수는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선박 무역에서 배가 돌아온 뒤 투자자의 수익을 분배하고 회사를 청산하는 식으로 일회성 이익 분배가 이뤄졌다”며 “현대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영업 이익을 해마다 주기적으로 측정해 회사의 지속성을 담보한 회계 기록은 개성상인이 최초”라고 말했다. 전 교수 연구팀이 개성상인의 회계 문서에 한자로 쓰인 내용을 번역한 결과를 현대적 회계 항목에 대입한 결과 거의 그대로 일치했다. 개성상인은 복식부기로 분개장(거래 순서에 따라 기록한 장부), 총계정원장(모든 계정의 수입과 지출을 기록한 장부)뿐 아니라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구분해서 작성했다. 개성상인은 소유와 경영이 완벽하게 분리돼 있었다는 것도 확인됐다. 도중(都中·경영 조직)이 경영을 모두 맡고 투자자는 배당만 받았다. 투자자와 도중은 손익을 절반씩 나눴다. 손해가 나도 절반, 이익이 나도 절반씩이었다. 1897년 3월 설기동 도중의 삼포(蔘圃)에서는 매출(6만4154냥 5전 5푼)에서 매출 원가와 판매관리비 등(5만4414냥 6전 9푼)을 제하고 9739냥 8전 6푼의 당기순이익이 났다. 투자자 박성삼과 경영자 설기동 도중은 이를 정확히 반씩 분배했다. 전 교수는 “이 방식은 경영자의 책임 경영을 유도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베니스와 유대 상인은 통상 경영자가 이익의 4분의 1에서 3분의 1만 가져가는 대신 손해가 났을 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라고 전 교수는 설명했다. 또 개성상인은 상품의 구매가와 판매가만 계산하는 중세의 상업회계가 아니라 매출(제조) 원가를 계산하는 현대적 기업회계를 사용했다는 점도 확실히 드러났다. 개성상인의 회계 장부에는 삼포 조성비, 종자 구입비, 흙 고르는 비용, 운송비, 노임 등 매출 원가가 꼼꼼히 기록됐다. 심지어 고사를 지내는 데 쓴 비용도 나온다. 투입된 항목별로 실제 시장에서 거래된 단가가 기록돼 투명성을 높였다. 전 교수는 “개성상인이 중세 복식부기를 사용했다는 것이 통념이었는데, 이번 연구로 현대의 제조 기업과 동일한 기업회계를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산업혁명을 이끈 영국도 1885년경까지는 복식부기로 제조원가 회계를 처리하지 못했다는 게 통설이다. 전 교수는 “이번 회계사 학술대회에서 구미 학자들은 ‘복식부기의 원가 기록은 20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한국 측의 발표로 무너졌다”며 “개성상인의 회계 기록은 근대 자본주의 기업이 조선 후기에 존재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7-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곽준혁 교수 “세계적으로 파시즘의 징후가 보입니다”

    “세계적으로 파시즘의 징후가 보입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에요. 다른 이념과 세대, 타자에 대한 극단적 혐오가 산재하고 있어요. 또 강한 힘에 대한 열망과 순응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최근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현대까지 정치철학자 45명의 사상을 다룬 ‘정치 철학’을 펴낸 곽준혁 중국 중산대 교수는 14일 인터뷰에서 “분노를 타자에 대한 건강한 비판으로 전환하도록 해야 한다”며 “자유를 훼손하지 않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세계적 학술 출판사인 영국 라우틀리지 출판사의 ‘동아시아 맥락의 정치 이론’ 시리즈 책임 편집자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책을 통해 정치철학에 대한 이해를 높여 한국 사회의 문제를 푸는 대화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혐오는 무조건 나쁘게 볼 건 아닙니다. 혐오는 분노에서, 분노는 타인에 대한 기대에서 출발합니다. 지금은 분노의 표출을 장려하든가, 배격하든가 둘 중 하나인데 중요한 건 감정이 가져오는 창조적 힘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그게 안 되면 다수가 곧 도덕이라고 믿는 힘의 대결로 치닫게 되죠.” 최근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나 다름없다”라는 발언에 관한 의견을 묻자 곽 교수는 ‘이 역시 파시즘 징후 중 하나’라고 했다. “비뚤어진 엘리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더들이 시민들의 일반적 상식을 신뢰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신뢰가 없으면 교화만 남게 되지요.” 곽 교수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의사가 정치공간에서 관철될 수 없다고 느끼는 상태를 우려했다. “심의(審議)가 없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전능하다고 생각하면 힘에 의지하게 돼요. 강자를 찾게 되는 것이지요.” 곽 교수는 이 시대에는 새로운 정치철학으로 ‘비(非)지배’ 철학이 필요하다고 했다. “‘비지배’는 열린 토론이 가능한 토대, 빈 그릇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이를 ‘타인의 자유의지에 예속되지 않으려는 욕구’라고 했지요. 타인의 일방적 의사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 말문이 트이고 가슴이 열리고 성숙한 토론으로 나아갑니다. 그러지 않으면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옵니다.” 한국의 대학들은 인문학 정원을 축소하고 있지만 중국은 반대다. 올초부터 곽 교수가 재직하는 중산대는 철학을 단과대 규모로 연구하고 가르친다. 현재 철학 교수만 70명인데, 앞으로 과학철학을 더해 150명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기존 철학 입문서들은 입문을 의미의 요약이라고 본 것 같아요. 이번 책을 통해 독자가 저자와 대화하는 것처럼 느끼고, 철학자의 고전을 읽고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갔으면 합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7-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술∼술 이책]블랙 오로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세무 변호사로 일하는 레베카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빅토르가 교회 계단 아래에서 시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빅토르는 9년 전 사고로 심장이 멎었다가 살아난 뒤 종교 지도자로 일해 왔다. 빅토르의 누나인 산나가 용의자로 지목되고, 레베카가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지만 지역 사회를 장악한 교회는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 스웨덴에서 인기를 얻은 뒤 23개국에 출간됐고 영화로 제작됐던 ‘북유럽 스릴러’다. 섬세한 심리 묘사가 볼만하다. 1만5000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7-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일본 근대화의 뒤에는 조선 도자기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 이삼평은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인 1616년 규슈 아리타 지방의 이즈미 산에서 조선의 도자기와 같은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흙을 발견한다. 그는 시라카와 지방에 가마를 열고 도자기를 굽는다. 그 제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도자기 마을 아리타의 시작이다. 이삼평은 오늘날 일본 도자기 종사자들이 ‘도자기의 신’으로 떠받드는 인물이다. 책은 일본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규슈 지방의 7대 가마를 중심으로 조선 사기장들의 삶과 그들이 만든 도자기의 역사를 조명한다. 조선 사기장들은 처음에는 조선의 방식 그대로 도자기를 구웠지만 점차 일본 각지의 문화와 융합해 새로운 개성을 나타냈고, 규슈 지방의 가마는 고급 헌상 용품을 만드는 데 전문화됐다. 이삼평의 고향과 관련된 새로운 근거도 소개한다. 이삼평의 고향은 충남 공주설과 경남 김해설이 대립하고 있다. 저자는 이삼평이 일본에서 한동안 도자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마에서 나온 사금파리와 공주 학봉리의 독특한 도자기인 철화분청이 거의 같다는 점을 들어 공주설에 힘을 싣는다. 도자기가 일본의 근대화에 영향을 줬다는 해석도 흥미롭다.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삿초 동맹군이 막부군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배경에 도자기가 있다는 것. 사가 현은 도자기 수출로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고 화력이 강한 암스트롱 대포와 최신식 함선을 삿초 동맹군에 지원했다. 저자는 기자 출신으로 유럽 15개국을 다니며 ‘유럽 도자기 여행’을 내놓은 도자기 전문가다. 이번에도 규슈 20여 개 도시의 거의 모든 도자기 마을을 샅샅이 뒤지며 판 발품이 책에 그대로 녹아 있다. 손수 찍은 도자기 사진들도 볼만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7-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 고전-민담 20종 번역 해외로 소개

    병을 앓다 홍어로 변한 사람, 느닷없이 신선이 돼 선계를 떠돌다 돌아온 유생, 과거 공부를 집어치우고 사랑하는 여인의 집 하인으로 변장한 남자 이야기…. 조선의 문인 임방(1640∼1724)이 신선과 귀신, 도사 등 민간의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천예록(天倪錄)’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들 민담을 비롯한 우리 고전이 영어권 스페인어권 등 해외에 번역돼 소개된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임경업전’ ‘한중록’ ‘전우치전’ 등의 고전과 ‘후설’ ‘조선의 르네상스인 중인’ 등 고전을 토대로 쓴 현대저술 20여 종을 외국어로 번역하기로 했다고 14일 밝혔다. 책별로 1, 2개 언어씩 모두 11개 외국어로 번역된다. 정병설(서울대) 심경호(고려대) 교수 등과 함께 번역 목록을 선정한 정민 교수(한양대)는 “그동안에는 한국 연구자들이 학술적으로 중요하다고 평가하는 고전이 번역되는 게 보통이었지만 이번엔 외국 일반 독자들의 흥미를 끌 만한 책을 중심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물론 18세기에 표류해 외국에 갔다가 생환한 제주도민의 인터뷰가 담긴 ‘탐라문견록―바다 밖의 넓은 세상’을 비롯해 해외 동아시아 문화교류 연구자 등이 관심을 가질 만한 책도 있다. 실제 출간은 내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문학번역원은 ‘구운몽’ ‘인현왕후전’을 비롯한 고전 작품 5종을 세계적인 명작 시리즈인 펭귄 클래식으로 출간하는 방안도 해당 출판사와 협의 중이다. 올 3월 펭귄 클래식으로 출간된 ‘홍길동전’은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리뷰가 실리기도 했다. 김성곤 문학번역원장은 “최근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가 현대 한국 문학을 해외에 널리 알린 것처럼 고전 번역을 통해 한국의 전통적인 정신과 문화, 시대상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7-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금메달의 환호만큼… 노메달리스트의 눈물도 뜨겁다

    경기장에 쓰러져 안타까움에 이마를 짚은 선수, 시상대에 올라 고개를 숙인 선수, 경기 뒤 눈부신 땀이 흐르는 얼굴….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민미술관 내에 있는 동아일보사 부설 신문박물관(PRESSEUM·관장 김태령)이 12일 시작한 전시 ‘노 골드(NO GOLD): 금메달이 아닌 올림피언들의 이야기’에는 ‘빛나는 눈물’이 가득했다. 신문박물관은 내달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1920년대부터 최근까지 올림픽에서 2, 3등을 했거나 시상대에 서지 못한 참가자들을 다룬 신문기사와 보도사진 등 9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를 9월 11일까지 연다. “동포에게 미안할 뿐.” “죄송합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어요.” 각각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4위를 했던 최윤칠 선수와 1964년 도쿄 올림픽 권투에서 은메달을 땄던 정신조 선수가 경기 뒤 한 말이다. 올림픽 출전이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을 건 싸움에 가깝던 시절, 금메달을 따지 못한 그들은 조국에 죄를 지은 기분이었을까. 건국 뒤 올림픽 금메달은 신생국의 자존심이 걸린 숙원이었다. 당시 보도에서는 1952년 최윤칠 선수 등을 ‘그대들 잘 싸웠느니라!’라고 응원했지만 1960년 로마 올림픽 뒤에는 ‘선수단 패장의 모습으로 귀국’이라고 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이 같은 분위기는 극에 달했다. 정신조 선수는 당시 한국 유일의 메달리스트였는데도 ‘분하다, 선전도 헛되어…’ ‘깨어진 꿈’ 등으로 보도됐다.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이봉주 선수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자 ‘아깝다… 그러나 잘했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김인섭 금보다 빛난 은’(2000년 시드니 올림픽 레슬링), ‘졌지만 아름다웠던 승부’(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등이다. 한국인의 올림픽 첫 참가였던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참가만으로 열광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동아일보는 마라토너 김은배가 6위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세계 올림픽 마라손! 김은배 군 당당 입상’이라고 전했다. 손기정 선수의 그늘에 가렸지만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동메달을 땄던 남승룡 선수의 모습도 소개된다. 신문박물관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모’ ‘회한’ 등의 수식어와 함께 관심에서 멀어졌던 올림픽 참가자들을 소개했다”며 “우리 사회가 스포츠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점차 중요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입장료는 일반 3000원 초·중·고·대학생 2000원(상설 전시 관람료 포함). 02-2020-1880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7-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술∼술 이책]왕좌의 게임 1·2

    웨스터로스 대륙의 7왕국을 둘러싸고 권력과 생존을 위한 투쟁이 벌어진다. 최근 시즌 6이 종영된 동명 미국 드라마의 원작으로 원제는 ‘얼음과 불의 노래’다. 16년 전 번역 출간됐지만 이번에 새로 번역해 나왔다. 1∼5부와 외전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번에 나온 것은 1부 ‘왕좌의 게임’이다. 내년 4월에 2부 ‘왕들의 전쟁’ 개정판이 나올 예정이다. 드라마에서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았던 부분과 등장인물의 내면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방대하면서도 섬세한 세계관이 매력적이다. 각 권 1만8500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7-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물리학자가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정규분포는 상위 10%가 있으면 하위 10%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모든 것이 완벽히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잉여인 것과 아닌 것을 나누려면 그 기준이 옳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 사실 잉여를 판단하는 ‘가치’라는 것도 대개 근거 없는 경우가 많다.” 물리학자가 보는 세상은 수식과 기호로 가득 차 있을까? 양자물리학자이자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인 저자의 이 책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은 KAIST와 포스텍, 독일 막스플랑크 복잡계연구소 연구원 등을 거친 저자가 일간지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았다. 과학자인 저자가 세상을 보는 기준은 ‘과학적 합리성’이다. 저자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관해 ‘과학은 완벽하지 않다. 미래도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다’라는 합리적 인식의 부재를 지적한다. 안전장치가 달렸다고 실탄이 장전된 총을 어린이에게 맡긴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책은 과학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사회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드러내고 문학, 역사, 정치 등에 관해서도 물리학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또 ‘미래는 결정돼 있고, 자유의지는 없나?’ ‘양자역학에서 관측이란 무슨 의미인가’ ‘중력파 검출은 어떻게 한 것일까’와 같은 주제를 여러 가지 비유로 쉽게 풀어낸다. 전체 구성이 다소 산만한 느낌도 있으나 과학과 예술처럼 근본적으로 다른 것들의 소통을 시도한 책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7-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학술원 신임회원 4명 선출

    대한민국학술원(회장 권숙일)은 8일 총회를 열고 임종률 성균관대 명예교수(73·노동법)와 서울대 김도한(66·수학), 조완규(88·생물학), 이기화 명예교수(75·지구물리학) 등 4명을 신임회원으로 선출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6-07-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