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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오일뱅크는 경기남부경찰청과 함께 경기도 내 주유소에서 양보·배려운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현대오일뱅크와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양보·배려 운전 문화 확산을 위한 안전한 도로 만들기’ 업무 협약을 맺었다. 양측 직원과 홍보단 대원들은 난폭 운전 예방을 위해 제작한 포돌이 스티커와 주차 중 번호 안내판을 나눠주며 시민들에게 양보운전을 당부했다. 현대오일뱅크는 경기도 내 주유소 100여 곳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버스, 택시 등 영업용 여객운송 차량에도 스티커를 부착할 예정이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현대카드는 지난해 말부터 ‘손안의 디지털 활용법 24시’이라는 새로운 브랜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카드의 디지털 서비스 사용 방법을 소개하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다. 현대카드는 “07시는 ‘회식 다음날’, 08시는 ‘지각인생’, 14시는 ‘월급루팡’ 같은 식으로 일상의 상황들을 위트 있는 단어로 재해석했다”며 “콘텐츠에 재미있는 ‘B급 감성’을 가미해 금융서비스를 친숙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현대카드가 지난해 12월 한 달 간 캠페인을 진행한 결과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인 ‘버디’의 하루 평균 접속자수가 약 1.5배, 질문 수가 약 3.5배 가량으로 증가했다. 현대카드는 이번 캠페인에 버디의 인공지능 챗봇 캐릭터인 ‘피오나’와 ‘헨리’를 등장시켰다. 자연스레 대화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다. 또 14개의 인포그래픽 이미지를 활용하고 스토리는 10초짜리 짧은 영상에 담아 지루하지 않게 소개했다. 현대카드 측은 “소비자들은 금융상품이나 디지털 서비스를 어렵게 느끼는 경우가 많지만 위트 있는 소통방식을 통해 고객들의 쉽고 직관적인 이해를 도우려 했다”고 설명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하늘숲메디컬그룹은 국내 최대 규모의 프라이빗 멤버십 메디컬뷰티센터인 ‘CL143’을 올 봄에 오픈한다고 23일 밝혔다. CL143은 서울 청담동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 지역에 차례로 문을 열 예정이다. CL143의 ‘CL’은 프랑스어로 하늘이라는 뜻의 ‘Ciel’을 의미한다. ‘차별화된 건강, 뷰티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누릴 수 있다’는 뜻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CL143은 전문 의료진이 고객의 몸 상태를 체크해 맞춤형 처방을 내리고 이를 토대로 노화방지 컨설팅을 해준다. CL143은 해외에서 인기가 높은 ‘떼마에(THEMAE) 프리미어 테라피 기법’을 도입했다. 피트니스에는 세계대회 수상 경력이 있는 강사진을 배치하고 헬스기기와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이용한 관리 프로그램도 도입할 예정이다. CL143은 회원들의 입장과 퇴장 동선을 다르게 해 고객들의 사생활을 보장할 계획이다. 또 사전 멤버십 예약 서비스를 통해 하루 최대 인원도 제한해 운영한다. 하늘숲메디컬그룹 전철 대표이사는 “기존의 노화방지 프로그램은 의료나 휴식 개념에 머물고 있다”며 “CL143은 그 한계를 넘어 명사들의 사교 장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한때는 박근혜 정부도 소득주도 성장을 꾀한 적이 있었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게 자꾸 문제가 되자 “그러면 빚보다 소득이 더 빨리 늘면 된다”는 새로운 이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빚을 매개로 한다는 게 달랐을 뿐 가계소득을 높여 내수 경제를 살린다는 기본 취지는 현 정부의 기조와 같았다. 그 밑그림을 그린 것은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이다. 가계부채가 최악일 때 기준금리가 오르는 걸 보고 있자니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지난 정부의 많은 경제 실정(失政) 중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가계부채 관리에 실패했다는 점이고 그 중심에 그가 있었다. 2014년 7월 취임한 그는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부동산 및 대출 규제를 모조리 풀고, 통화정책 결정권이 있는 한국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그리고 국민들에겐 “빚을 내 집을 사라”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전파했다. 당시는 미국이 오랜 완화 기조를 서서히 접고 본격적인 긴축을 준비하던 때였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지도에 없을 뿐 아니라 이런 국제적 흐름과도 반대되는 길을 택했다. 성장률을 조금이라도 올리겠다는 목표로 국가 경제의 명운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이다. 그 결과 연평균 6∼7% 수준에 불과하던 가계빚 증가율은 이내 10% 이상으로 뛰었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컸다. “그렇게 무리하게 가계부채를 키우다가 금리 상승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가계빚은 중산층 이상의 빚이 대부분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도 견뎌낼 힘이 있다”며 대수롭지 않은 듯 넘겼다. 최 전 부총리도 “빚을 줄일 수 없다면 가계소득을 더 늘리면 된다”는 ‘최경환표 성장론’을 설파했다. 부채가 좀 늘더라도 경기만 좋아지면 빚 걱정은 쏙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그의 생각대로 흐르지 않았다. 정부가 억지로 끌어올린 경기는 회복세에 한계가 있었다. 가계 가처분소득 증가율도 연 2∼3% 수준에서 정체됐다. 반면 이미 고삐가 풀려버린 가계부채는 경제 전반에 이상 신호를 주기 시작했다. 유동성이 넘치는 와중에 대출 규제마저 풀리면서 ‘불황 속 투기’가 만연했고, 막대한 상환 부담이 가계의 소비 여력을 제약하는 ‘부채 디플레이션’이 고착됐다. 가계빚의 증가가 성장의 마중물이 되기는커녕 침체된 내수를 더 얼어붙게 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이처럼 금리나 재정을 동원한 단기 부양책들은 집행하기도 쉽고 효과가 즉각적으로 오지만 그만큼 남용했을 때의 부작용도 크다. 물론 그의 선택이 극한의 경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강력한 부양책을 추진한 덕에 고된 저성장의 보릿고개를 비교적 순탄히 넘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그의 ‘지도에 없는 길’ 항해에 이끌려 나갔다가 최악의 가계부채와 이자율 상승이 빚어낸 ‘막다른 길’에 몰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통스러운 긴축은 이제 겨우 시작인데, 우린 벌써 한 해 수조 원에 달하는 이자 비용을 더 치르게 됐다.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르면 서민 가계의 고통이 얼마나 더 커질지 모른다. 한때 정권 최고의 실세였던 그도 이젠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는 ‘죽은 권력’이 됐다. 그래도 자신이 소신 있게 밀어붙였던 정책은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좋은 정치인의 모습일 것이다. 그가 어떤 해명을 할지 궁금하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김창록 전 산업은행 총재(68)는 산은의 ‘마지막 총재’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산은이 일반 은행과 같은 기능을 하면서도 총재로 불리는 데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며 그를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결국 총재란 명칭은 행장으로 격하(格下)되고 김 전 총재는 옷을 벗었다. 지난 정부 사람으로 제대로 찍힌 그는 이후 보수 정권 10년간 별다른 부름을 받지 못 하다 요즘 차기 은행연합회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주 취임한 김용덕 손해보험협회장(67)은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금융당국 수장으로 문재인 캠프 정책자문단에서 활동했다. 국제금융 전문가라 보험 경력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28년 만의 장관급 회장에 거는 보험업계의 기대가 크다. 그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고려대 선배로 행시 기수도 10년이나 높다. 한동안 기억에서 잊혀졌던 역전(歷戰)의 관료들이 속속 현업으로 돌아올 태세다. 고령에도 일을 하려는 본인의 희망, 기왕이면 ‘센 분’을 모셔 와서 업계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10년 만의 정권 교체도 ‘올드보이’의 귀환과 맥을 같이한다. 복귀 소식이 들리는 사람들이 죄다 진보 정부에서 감투를 썼던 인물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최근 활약을 재개한 전관(前官)의 범위는 20년 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그중 많은 이를 놀라게 한 인물은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80)이다. 그는 2003년 대북 송금 의혹사건으로 구속 기소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거의 15년간 세인의 뇌리에서 잊혀져 있었다. 그러다 한 달여 전 동부그룹 회장으로 재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79)와 전윤철 전 감사원장(78)도 민간 협회장에 하마평이 나오고 있다. 홍 전 부총리는 관료사회의 실력자로 은행장·청장을 단골처럼 하다가 23년 전 김영삼 정부에서 부총리를 했다. 전 전 원장은 ‘직업이 장관’이라는 말을 십수 년 전에도 들어온 인물이다. 이런 슈퍼 시니어 거물들이 이제 다시 나타나서 다른 퇴직 관료들과 구직 경쟁을 벌인다는 말이 나오니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어느 자리에 몇 살까지만 취업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지켜져 온 나름의 관행과 이유가 있다. 중앙부처 관료들은 50대 초·중반 공직에서 은퇴하면 60세 안팎까지 기관장이나 민간기업 임원을 한 차례 지내고 집에 가는 게 ‘기본 루트’다. 퇴직 관료의 재취업에도 묵시적 정년이 있는 것은 이들이 받는 고연봉이 관료 생활을 밑천에 깔지 않고서는 애초에 불가능한 특혜이기 때문이다. 민간기업 오너도 대략 70세 전에는 경영권 승계를 하는 게 암묵적인 룰이다. 금융지주 회장 역시 67∼70세의 나이 제한 규정이 있다. 유럽은 30대 총리와 대통령이 나오는 시대라는 이유로 이들 ‘7080’의 약진을 무조건 노욕(老慾)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정권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이런 원로들을 다시 소환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편 가르기가 심각하다는 점이 씁쓸할 뿐이다. 또 산하기관·협회를 두세 번씩 돌면서 70이 넘도록 현역을 유지하면 후배 장관에게도 본의 아니게 누(累)가 될 수 있다. 영화(榮華)를 누릴 만큼 누리고 누구보다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분들이 월급봉투 한 번 받아보는 게 소원인 구직 청년들, 팔팔한 나이에 조직에서 밀려나 치킨집을 차려야 하는 은퇴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세계적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1960년대 한 개발도상국의 정책 컨설팅을 위해 운하(運河) 공사 현장을 찾았다. 그런데 공사장에선 이렇다 할 중장비 하나 없이 인부들이 모여 힘들게 삽질만 하고 있었다. 옆의 공무원에게 이유를 묻자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그랬다”는 답이 돌아왔다. 프리드먼은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다. “그럴 거면 왜 삽을 줬소. 숟가락을 주면 더 좋았을 걸.” 최근 정부의 공공 부문 채용 확대 계획을 보며 이 얘기를 떠올린 사람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마틴 포드의 ‘로봇의 부상’ 서문에 나오는 일화다. 실제 정부가 요즘 일을 너무 쉽게 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일자리가 부족하면 공공기관들에 많이 뽑으라 하고, 비정규직이 불쌍하면 싹 다 정규직으로 만들어준다. 청와대의 일자리 상황판 숫자만 늘릴 수 있다면 정말 청년실업자에게 삽자루든 숟가락이든 나눠주고 땅을 파게 할지 모른다는 걱정도 든다. 너무 무리한 상상일까. 앞으로 고용은 정부가 아무리 쥐어짜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를 잠식하는 요인은 많지만 가장 결정적인 게 로봇의 등장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스타트업은 햄버거를 1시간에 360개나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내놨다. 이 회사 사장은 “이 로봇은 종업원을 돕기 위해 만든 게 아니다. 종업원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단언했다. 로봇은 단순반복 업무만 담당할 테니 내 일자리는 괜찮다는 건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소리다. 요즘 로봇은 손수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고, 교수를 대신해 에세이 채점도 한다. 노동의 질은? 다들 인간의 작품이라 속았을 정도였다. 카카오뱅크는 출범 한 달 만에 300만 계좌를 돌파했다. 직원 수가 7만 명을 헤아리는 전체 시중은행의 20년 실적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런 카뱅의 직원이 고작 300명이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13일 채용박람회에서 “인터넷은행 두 곳이 벌써 5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며 신기술이 일자리의 보고(寶庫)인 양 치켜세웠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금융권 일자리는 매년 2만 개씩 사라지고 있다. 신기술은 일자리의 원천이라기보다는 킬러에 훨씬 가깝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이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13일 채용박람회에서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염치없고 시대흐름에 안 맞는 건 알지만… 그래도 몇 조 영업이익 내시니 금융사들이 채용을 늘려 달라. 그 후는 정부가 책임질 테니.” 모순된 지시는 상사의 특권이라 했던가. 일자리위 홈페이지에는 위원장(대통령)의 다짐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일자리는 늘리고, 고용의 질은 높이겠다.’ 마치 ‘증세 없는 복지’급의 난제를 풀기 위해 정부는 공공 일자리 확대, 최저임금 인상이란 액션플랜을 내걸었다. ‘소득-소비-생산-고용’이 차례로 증가하는 선순환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이클은 기대와 달리 역류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근로자의 생산성은 로봇에 밀린다. 생산성을 높이지 않은 채 임금만 올린다면 노동시장의 진입 장벽만 높여 고용의 빙하기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의 고용정책이 현재 상황을 고집한다면 로봇과의 ‘일자리 전쟁’은 인간의 완패(完敗)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누굴 때려잡아 없는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 때가 아니다. 로봇시대에 대비해 고용정책의 패러다임을 모두 재점검해야 한다. ‘숟가락으로 땅파기’식 해법만 고집한다면 머잖은 시기에 로봇 뒤에서 손가락만 빨게 될 수도 있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벤처·혁신기업 1년에 1만 개씩 발굴해 인증.’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초 산업자원부가 이해찬 총리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그 후 중소기업청장은 담당 국장들에게 ‘벤처기업 ○개 늘리기’ ‘혁신기업 ×개 육성하기’ 같은 개별적인 미션을 줬다. 그러면서 미션의 성공 여부를 인사 고과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찾아오는 기업들에 정부의 인증 도장을 마구 찍어주라는 지시였다. 이런 ‘내던지기’식 정책 발표와 ‘짜맞추기’식 업무 지시는 다음 정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덕에 지금 한국은 통계만 보면 독보적인 ‘벤처 왕국’이 됐다. 현재 정부가 인증한 벤처기업 수는 3만4000개, 혁신형 중소기업은 3만3000개를 헤아린다. 하지만 이 중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알짜 벤처기업’ ‘진짜 혁신기업’은 극히 일부다. 벤처기업 중 제대로 기술력을 인정받아 민간투자를 받은 곳은 3%에 그치고, 상당수는 동네 편의점 같은 구멍가게 수준에 머물면서 정책자금으로 연명하고 있다. 그나마 20%는 자본이 잠식된 ‘좀비기업’이다. 선의(善意)에서 시작된 정책이 이런 황당한 결과로 이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외환위기 직후 도입된 벤처 인증제는 시작과 동시에 기업들의 신청서가 쇄도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한 번 도장만 받으면 나랏돈으로 온갖 금융 세제 지원을 꾸준히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인증을 내줄 곳이 바닥나자 정부는 ‘혁신형 중소기업’이라는 새로운 도장을 파냈다. 내용은 거의 엇비슷하고 이름만 다른 것이었다. 정부 지원에 목마른 기업들 사이에서 인증을 쉽게 받기 위한 ‘공무원 줄대기’가 판을 쳤고, 심지어 이를 대행해주는 산업마저 생겨났다. 하지만 정부는 모른 체했다. 도장 하나로 기업들을 줄 세우는 규제의 칼자루에 흐뭇해하면서 한편으론 ‘혁신기업 ○만 개 돌파’ 식의 대국민 홍보에 여념이 없었다. 요즘 계란 파동으로 불거진 친환경 인증제도 ‘눈먼 돈 나눠먹기’란 차원에서 본질은 같다. 친환경 인증을 많이 내줄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인증 대행업자들은 기준에 미달해도 덮어놓고 인증마크를 내줬다. 농가들도 인증받은 계란을 더 비싼 값에 팔면서 최대 3000만 원의 정부 직불금을 받아갔다. 그러면서 약속을 어기고 ‘친환경 닭장’에 초강력 살충제를 뿌려댔다. 농가의 부정행위를 알면서도 내버려둔 정부는 대신 퇴직 관료들을 인증업체에 꽂아 넣으면서 조직의 잇속을 챙겼다. 이쯤 되면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각본 아닌가. 당사자가 은밀하게 유착돼 있는 지금의 인증제도는 도덕적 해이가 독버섯처럼 만연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이번에도 결국 모두가 부당이득을 챙기는 사이 납세자들만 손해를 봤다. 지난 20년간 가짜 친환경 농가나 ‘무늬만 벤처’로 잘못 흘러간 예산이 얼마가 될지 가늠도 하기 힘들다. 식탁 안전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과 공포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손실은 따로 있다. 앞으로는 정부의 인증 마크를 누구도 믿지 않을 거란 사실이다. “정부마저 날 속였다”고 느끼는 국민들의 배신감은 영영 치유가 어려울 수 있다. 정부는 왜 소비자들이 마트에서 비싼 돈을 주고도 살충제 범벅인 친환경 계란을 먹게 됐는지, 왜 수만 개의 혁신기업을 갖고도 우리 젊은이들이 최악의 청년실업에 내몰렸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설명 못 할 당국자라면 브리핑 마이크를 반납하고 지금이라도 당장 물러나는 게 낫다.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엄마가 어느 날 형에게 용돈 10만 원을 주고 동생과 적당히 나눠 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 때문에 형제가 싸우면 10만 원을 도로 가져갈 것”이라고 단단히 일렀다. 형은 잠시 고민한 뒤 동생에게 3만 원을 건넸다. 동생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면 형은 7만 원, 동생은 3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동생이 “왜 내 몫은 이거밖에 안 되냐”고 대들면 둘 다 한 푼도 못 갖게 된다. 경제학의 게임이론에 등장하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다. 서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양쪽이 공멸(共滅)한다는 게 이 게임의 핵심이다. 최근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협상이 이와 닮았다. 정부와 채권단은 외국 선주(船主)들에게 현대상선의 용선료를 약 30% 깎아주라고 요구했다. 현대상선이 지금처럼 10만 원을 계속 내다가는 망하게 생겼으니 앞으로는 7만 원만 받아 가라는 것이다. 만약 선주들이 이를 거부하면 현대상선은 사실상 파산하고 용선 계약도 해지된다. 그러면 채권단도 피해를 보지만 선주들 역시 연간 1조 원에 이르는 용선료를 포기해야 한다. 정부의 용선료 인하 요구는 “우리 제안을 거부하면 다 함께 죽을 수 있다”는 최후통첩인 셈이다. 이 협상엔 허락된 시간도 많지 않다. 데드라인은 사채권자 집회가 예정돼 있는 이달 말경이다. 이때까지 타결이 안 되면 정부는 현대상선을 법정관리로 보내며 판을 엎어버릴 생각이다. 정부는 이 같은 입장을 언론에도 반복해 강조하며 배수진(背水陣)을 단단히 쳤다. “우린 끝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니 알아서 판단하라”고 경고한 것이다. ‘건너온 다리 불태우기(Burning the Bridge Behind)’라는 협상 전략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내가 ‘배 째라’는 식으로 전의를 불태우면 상대방은 괜히 싸웠다가 손해를 보느니 차라리 후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용선료 협상은 한 거대 해운회사의 운명을 놓고 벌어지는 매우 흥미진진한 두뇌 게임이다. 협상이론의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많은 전략들이 마치 화려한 ‘경제학 콘서트’가 열린 것처럼 한꺼번에 펼쳐지고 있다. 먼저 ‘칼자루’를 쥔 것은 한국 정부였다. 협상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기업을 파산시키며 테이블을 걷어찰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정부도 그 칼자루를 이용해 협상을 유리하게 몰고 가는 것 같았다. 배수진을 치고 최후통첩을 날리며 강공을 폈다. “조금만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말도 채권단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류에 변화가 생겼다. 지난 주말 정부는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고 있다.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협상”이라고 말을 바꿨다. 정부가 다시 신중론으로 돌아선 것은 선주들이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와 비슷한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용선료 협상은 ‘일대일’이 아닌 ‘일 대 다(多)’의 협상이다. 상대가 여러 명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일일이 설득하며 풀어야 한다. 선주들은 이 과정에서 ‘나만 용선료를 많이 깎아주는 꼴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품고 있다. 다른 선주들의 협상 전략을 모르는 상황에서 자기만 선뜻 인하 요구를 들어줬다가는 독박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불신이 해소되지 않으면 협상은 틀어지고 결국 모두가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어려워진 또 다른 이유는 협상이 ‘치킨 게임(Chicken Game)’의 양상을 띤다는 점이다. 최근 선주들의 행태는 좀비기업 청산에 소극적이었던 한국 정부의 성향을 간파해 시간을 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협상이 깨지더라도 정부가 설마 국적 선사를 내치겠느냐”는 기대감도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한국 정부는 협상이 난관에 빠지자 협상의 데드라인을 이달 20일에서 이달 말경으로 한 차례 연기한 상황이다. 정부가 “부실 기업 연명보다 청산이 낫다”는 보다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번 치킨 게임의 승자가 될 확률은 낮아 보인다. 이번 협상은 초조한 눈치 게임이 막판까지 전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양측의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일정 수준에서 인하 합의가 되고 현대상선은 가까스로 파산을 모면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론들에 따르면 어떻게든 합의를 하는 편이 모두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길고 지루한 구조조정 레이스에서 반 발짝 정도 나간 것일 뿐이다. 은행권의 자금 지원, 채권자 채무 동결, 해운동맹 가입, 실적 개선 등 앞길은 구만리다. 구조조정은 그렇게 힘든 작업이다.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우리 국민은 숫자에 민감하다. 외부로부터의 평가에도 관심이 많다. 그렇다 보니 외국 기관이 “한국이 몇 등을 차지했다”는 발표만 내놨다 하면 매번 ‘짭짤한’ 뉴스거리가 된다. 이런 뉴스는 소셜미디어에서도 휘발성이 높아서 관료사회나 정치권에서 즉각 ‘반응’이 온다. 문제는 그런 반응들의 상당수가 그다지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평가 결과가 좋으면 “우리가 이런저런 정책을 편 덕분”이라는 공치사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인과관계가 좀 의심스러워도 비슷해 보이는 건 일단 숟가락을 얹고 본다. 반대로 나쁜 지표가 나오면 조용히 숨죽이고 있거나 남에게 책임을 돌린다. 또는 “조사 자체가 엉터리”라며 아예 평가기관을 깎아내리는 일도 불사한다. 정부 부처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기자는 이런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10년 이상 지켜봤다.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한다. 가장 기억이 멀리 닿는 2007년 가을 일이다. 스위스의 비영리단체 세계경제포럼(WEF)이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전년보다 12단계 오른 11위로 평가했다.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혁신을 위한 노력이 인정을 받았다”, “이제 국가 경제 구조가 선진국 단계로 완전히 진입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기자들에게 “잘(크게) 써 달라”는 공무원들의 당부 전화도 여기저기에서 쇄도했다.안타깝게도 정부는 한 해 전인 2006년 WEF 발표에는 180도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해 WEF가 한국의 순위를 5계단 떨어뜨린 게 원인이었다. 당시 정부는 “평가가 설문에 의해 좌우된다”, “설문 응답률이 낮아 평가의 신뢰성이 저하되고 있다”며 조사의 공신력까지 문제로 삼았다. 10년 전 취재수첩을 꺼내본 것은 당시 상황이 지금도 비슷하게 되풀이되고 있어서다. 최근에 금융당국을 뒤집어놓은 ‘우간다 사태’ 얘기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WEF가 지난해 한국 금융시장의 경쟁력 순위가 아프리카의 우간다보다도 낮은 87위에 불과하다는 발표를 내놨다. 8년 전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11위로 평가했던 방식과 동일한 분석을 통해 내린 결론이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즉각적으로 “기업인의 주관적인 만족도를 국가 간 비교해 순위를 매길 순 없다”며 거품을 물었다. 충분히 맞는 말이고 억울함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과잉반응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정반대 상황도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한국의 금융수준을 6위로 평가하자 “국제 비교가 가능한 객관적인 지표를 광범위하게 이용한 것”이라며 한국은행이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한국 금융이 우간다에 뒤질 정도는 아니지만 세계 6위라는 성적표도 과분하다”는 건 전문가들이 다 안다. 정부가 불리한 통계를 폄하한 사례는 또 있다. IMF는 최근 “한국의 고소득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5%로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객관적 지표에 기초해 볼 때 한국의 소득 분배는 개선되고 있다”며 “(IMF 보고서는) 객관성이 결여된 자료에 근거한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유 부총리의 말처럼 통계청이 산출하는 소득 분배 지표는 최근 수년간 개선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유 부총리가 놓친 부분도 있다. 정부의 조사 방식은 고소득층의 응답률이 낮아 빈부격차가 실제보다 양호하게 나온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물론이고 통계청 스스로도 잘 아는 사실이다. 정부도 이런 약점을 보완해 2013년 신(新)지니계수를 추계했는데 한국의 소득 분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으로 나왔다. 당시 정부가 이 통계를 은폐하려 했다는 논란이 일었고 이후 한 번도 ‘신지니계수’의 추가 데이터는 공개되지 않았다. 한 나라의 경제 수장(首長)인 부총리가 이런 사정을 몰랐을 리 없다고 본다. 만약 몰랐다면 그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위해 일부러 한쪽 눈을 감아버린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강조하고 불리한 것을 감추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일부 부도덕한 협잡꾼이나 장사꾼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다. 하지만 적어도 정부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만 반응해서는 곤란하다. 좋은 평가가 나오면 또다시 정부 입장이 바뀔 것이라는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지금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자기 방어에 치중하느라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다면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1억 원을 받지만 뒷면이 나오면 한 푼도 못 받는 ‘옵션 A’와 동전 던지기 결과에 상관없이 무조건 3000만 원을 받는 ‘옵션 B’가 있다. 수학적으로 계산한 기댓값은 A가 5000만 원으로 B(3000만 원)보다 높다. 하지만 선택을 하라면 적지 않은 이들이 B를 찾는다. ‘1억 원’에 대한 기대감보다 ‘3000만 원도 못 벌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 당장은 연봉이 적지만 앞으로 보수가 안정적으로 오를 것으로 믿는 A 씨, 또 지금은 억대 연봉자이지만 언제든 회사에서 잘릴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B 씨가 있다. 당신이 자동차 영업사원이라면 누구에게 새 차를 팔겠는가. 다른 조건이 같다면 자기 미래를 비관하는 B 씨보다 비록 돈은 적게 벌지만 앞날을 낙관하는 A 씨가 차를 살 확률이 더 클 것이다. 불투명한 미래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좀 손해를 보더라도 보다 안전한 수를 택한다. 미래를 모르는 것 자체도 스트레스인데, 하물며 그 전망마저 어둡다면 더 큰 문제다. 우리 경제는 지금 이런 ‘비관(悲觀)의 덫’에 갇혀 있다. 현금이 있지만 불안한 장래 전망에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인다. 모험적인 투자보다는 수익률은 낮지만 안전한 곳에 돈을 묻는 게 요즘 투자 트렌드다. 앞날에 대한 걱정이 지금의 경기를 더 억누르는 양상이다. 여기에 정책 당국자들의 고민이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고위 공직자 C 씨와 나눈 대화다. 그에게 “소비가 늘지 않는 이유가 뭐냐. 다들 미래를 불안하게 보기 때문이냐”고 묻자 그는 한숨을 내쉰 뒤 이렇게 푸념했다. “해외에 가면 ‘도대체 한국이 왜 걱정이냐’는 말을 듣는다. 3% 성장률에 경상수지는 최대 흑자이고 재정 여건도 괜찮다. 한마디로 ‘우리 경제 어렵다’고 얘기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막상 안에서는 온통 위기론, 비관론뿐이니 (정책을 펴는 입장에서) 무척 힘이 든다.” 실제로 국내 경제의 체감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한국은행의 소비자심리지수는 한겨울이다. 앞으로의 경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예상을 묻는 것인데, 생활형편전망 가계수입전망 향후경기전망 취업기회전망 등 ‘전망’이란 이름이 붙은 지표는 지난 두 달 사이 모조리 하락했다. 이런 수치를 아우르는 종합지수도 작년 6월 메르스 사태 이후 최저 수준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불황이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상수(常數)로 박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흙수저’ 논란과 같은 작금의 세태가 미래 희망마저 앗아가고 있는 것인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그 모든 게 다 이유인지 모른다. 역대 정부는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나빠지면 그 흐름을 반전시키려고 사력을 다했다. 비관론이라는 게 무섭게도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이 대표적 사례다. 경기와 물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지면 소득이 줄어들 것이라 판단한 가계가 소비를 줄이고 이는 기업의 생산 감소, 고용 둔화, 가계 소득의 감소 등으로 순식간에 이어진다. 투자 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다양한 세제혜택을 주고 대출 규제를 풀어도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하면 누구도 집을 사려 하지 않는다. 정부가 “장밋빛”이라 욕을 먹으면서도 자꾸 낙관적인 경제 전망을 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80여 년 전 미국 대통령(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말처럼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관료들은 사석(私席)에서 “우리 국민은 경제를 비관하는 경향이 다른 나라보다 크다”고 불평을 터뜨리곤 한다. 또 실적이 좋든 나쁘든 항상 우는 소리를 하는 기업인, 통상 부정적인 지표를 유난히 강조해 보도하는 언론도 종종 공범(共犯)으로 엮인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책임이든 간에, 우리 국민의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과거보다 크게 떨어졌고, 이는 경제 재도약의 심각한 걸림돌이란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경제난에 지친 국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활력을 북돋울 수 있는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요즘 한국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심지어는 구한말과 흡사하다는 얘기가 몇 달 전부터 계속 들린다. 위기설이라는 게 보통 ‘설(說)’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번에도 호사가들이 대충 끼워 맞춘 사실에 대중(大衆)이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위기 재발’을 진지하게 걱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실제 당시와 현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면 일부 지표들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암이 퍼지기 전에 수술을 해서 위기의 싹을 잘라 버리는 개혁을 진즉에 단행했어야 한다. 하지만 수술을 맡은 이들에게 세상일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살갗이 곪는 것도 아닌데 왜 벌써 상처를 도려내야 하냐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저항이 길어지자 최근 관료 사회에서는 “차라리 위기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막상 위기가 닥쳐야 개혁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진다는 뜻에서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은 “뭔가 일이 터져야 정신을 차리는 한국은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자조(自嘲) 섞인 진단을 내리고 있다. 위기에 대한 경고가 현세의 낙관론에 압도당하는 것은 20년 전도 마찬가지였다. 외환보유액이 바닥나고 시중은행의 달러화가 연일 빠져나가며 나라가 곧 결딴이 난다는 것은 외환 담당 관료 중에서도 극히 일부 핵심 라인만 알고 있었다. ‘선진국 클럽’ 가입 이듬해에 경제부처 장차관들이 “우리 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쳤고, 상대적으로 한국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지켜보던 외신들조차 믿고 넘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무슨 경고를 한들 그게 먹히기나 했을까. 아마도 “파티의 여흥을 깬다”는 소리만 들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뒤 ‘외환위기 20년’이라는 제목의 기획물을 모든 언론이 토해낼 때 우리는 ‘그때 잘했어야 했다’는 때늦은 후회를 쏟아낼지도 모른다. 남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제 스스로 하는 개혁은 그만큼 어렵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위기가 닥쳐야 정신을 차리는 모습은 요즘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개혁 의지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우려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2년 전 이맘때쯤 ‘역대 가장 유약(柔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경제부총리가 ‘구조개혁’을 처음 입에 올렸을 때 현장에서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기자는 그때부터 기대 수준을 낮췄다. 부총리가 쏟아내는 말들을 받쳐줄 만한 결연한 의지를 그의 눈빛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7개월 만에 모든 부처를 제압할 수 있는 ‘정권 실세’가 사령탑으로 왔지만 관계 기관을 동원한 대증적인 경기 부양에 치중할 뿐이었다. 그의 후임으로 내정된 사람은 아예 별명부터 ‘순둥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 경제는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지 못한 채 부양책의 후유증으로 가계와 기업들의 빚만 늘어났다. 또 물이 서서히 뜨거워지는지도 모르고 자기만족을 하는 ‘냄비 속의 개구리’라는 조소를 들었다. 내년은 한국이 다시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는 해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의 경기 둔화라는 강한 외부 자극이 동시에 몰려오기 때문이다. 역사의 흐름대로라면 우리는 이번에도 재벌 한두 곳이 쓰러지고, 빚을 못 갚아 집을 내던진 이웃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때쯤에야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물이 팔팔 끓기 전에 다리 근육을 키워 하루라도 빨리 냄비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한 대가가 얼마나 쓰라린지는 역사가 말해준다.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미국이 금리를 올린 것은 기준금리 결정의 중요한 고려 요소이지만 이것이 곧바로 한은의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23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렸지만 국내외 금융시장이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무디스도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다만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일회성이 아니기 때문에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며 “앞으로 국제 자금 흐름이나 환율 변동성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유가도 하락 압력을 받는 등 글로벌 경제 리스크가 적지 않게 잠재돼 있다”고 우려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신한은행이 올해 6월 선보인 모바일 전용 환전 서비스 ‘신한 스피드업(Speedup) 누구나 환전’이 6개월 만에 환전액 1700억 원(누적), 이용 고객 수 26만 명을 돌파했다. 하루 평균 환전 건수는 3000건이 넘는다. 해외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이 서비스는 신한은행 계좌가 없는 고객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만 입력하면 간단하게 신청할 수 있다. 기존에는 고객이 모바일 앱을 통해 신청하고 출국날 공항 환전소를 방문해야 했지만, 최근에는 전용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수령하는 방식을 도입해 편의성이 더 높아졌다. 또 신한은행 거래 실적 등과 관계없이 이 서비스를 통해 환전을 신청하는 모든 고객에게 주요 통화(미국 달러화, 유로화, 엔화)는 90%, 기타 통화(중국 위안화, 홍콩 달러, 태국 밧화, 호주 달러, 캐나다 달러)는 50%의 환율 우대 혜택을 제공한다. 신한은행이 ‘스피드업 누구나 환전’ 서비스를 출시한 이후 비대면 방식을 이용한 환전 신청 비율은 3%에서 27%로 크게 증가했다. 환전 신청 고객 중 50% 이상은 신한은행과 거래를 안 하던 고객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신한 스피드업 누구나 환전’은 ‘디지털 원주민 세대’인 20, 30대를 공략하는 전략으로 신한은행의 스마트금융 수준을 크게 높였다”며 “시장에서도 핀테크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스피드업 누구나 환전’ 서비스는 신한은행의 모바일은행 ‘써니뱅크’에서 제공된다. 써니뱅크에서는 비대면 실명 확인 절차를 통해 해외 송금도 저렴한 수수료로 이용할 수 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KB국민은행은 최근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KB내맘대로적금’을 내놨다. 10영업일 만에 판매 1만좌를 돌파한 이 상품은 비대면 채널 이용 고객의 특성에 맞게 저축 방법과 금액, 계약 기간, 우대이율, 부가서비스 등을 고객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DIY형 구조’로 만들어졌다. 상품 설계 과정도 ‘피자 만들기’의 개념으로 형상화해 쉽게 이해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고객은 우선 ‘피자 가게’에 들어가 2가지 ‘피자 도’로 구성된 저축 방법(자유적립식, 정액적립식) 중 1가지를 선택한다. 계약 기간(6개월 이상 36개월 이내)과 저축 금액(정액적립식 1만 원 이상, 자유적립식 월 1만 원 이상 300만 원 이내)을 자유롭게 정한 후 9가지 ‘피자 토핑’으로 구성된 우대이율(급여이체, 카드결제 계좌, 자동이체 저축, 아파트관리비 이체, KB스타뱅킹 이체, 장기 거래, 첫 거래, 주택청약종합저축, 소중한 날) 중 6가지를 선택하면 최고 연 0.6%포인트의 우대이율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4가지 ‘피자 박스’로 구성된 보험가입 서비스(휴대전화, 피싱, 교통, 여행) 중 하나를 선택하면 나만의 피자가 완성되며 상품 가입이 끝난다. 3년제 정액적립식 기준 최고 연 2.7%(12월 21일 현재)까지 받을 수 있다. 또 상품 가입이 되면 전용 화면에서 나만의 피자 이름을 지을 수 있고, 테이블보 위에 놓인 피자 박스에는 6조각으로 나뉜 피자가 만기일이 다가오면서 한 조각씩 채워진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상품에 펀(fun) 요소를 가미한 만큼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젊은 고객들의 호응이 기대된다”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부실화가 우려되는 기업부채의 비중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수준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기업 실적이 크게 악화된 가운데 향후 금리마저 오르면 이 같은 기업들의 ‘위험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또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이 빚을 갚기 위해 자산 매각에 나서면서 향후 약 5년 내에 주택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은행은 2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안정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한은은 “가계와 기업의 재무건전성이 떨어지면서 금융 시스템 전반의 잠재적인 위험이 증가했다”고 판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기업부채 중 위험부채의 비율은 올해 21.2%로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수준(16.9%)을 크게 웃돌았다. 위험부채란 기업의 실적이나 자산 규모에 비해 이자비용 또는 부채가 많아 유동성 위험을 겪을 수 있는 기업들이 안고 있는 부채를 말한다. 한은은 향후 경제성장률이 1.5%포인트 하락하고 시중금리가 1.5%포인트 상승하는 ‘복합 충격’이 발생할 경우 위험부채의 비중이 현재의 21.2%에서 32.5%로 크게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은은 한국의 경제 규모 대비 기업부채 수준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은 데다 기업들의 이자 상환 능력은 떨어진다고도 지적했다. 한계기업의 수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증가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태가 3년 이상 지속된 ‘만성적 한계기업’의 비율은 지난해 10.6%(2561개)로 2009년(8.2%)보다 높았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한계기업 증가 속도가 빨랐다. ▼ 가계빚, 가처분소득의 1.6배… OECD 평균 웃돌아 ▼한은은 이에 대해 “부실 기업에 대한 금융회사의 대출이 관대해지면서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돼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또 은퇴를 앞둔 고령층 가구의 많은 가계 빚이 향후 부동산 가격의 급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은퇴 가구가 빚을 갚기 위해 실물자산 매각에 나서면 부동산 가격의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동산의 핵심 수요층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산 축적 연령(35∼59세) 인구는 2018년 이후 감소세로 돌아설 전망이라서 부동산 매물을 받쳐줄 시장 수요는 계속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한국의 고령화 속도와 부동산 수요층의 감소 속도가 주요국에 비해 훨씬 빨라 자산 매각을 통한 가계의 빚 상환이 단기간에 집중될 우려가 있다”며 그 시기로 2020∼2024년을 지목했다. 한은은 “부동산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하고 현재와 같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면 향후 인구 고령화의 부정적 영향이 커질 수 있다”며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동산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계 빚 규모도 소득 수준에 비했을 때 전반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었다. 지난해 말 현재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자금순환통계 기준)은 164.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30.5%)을 크게 웃돌았다. 한은은 주택 거래 활성화 등 부동산 시장의 회복이 가계부채를 늘리기만 했을 뿐 가계 소득 여건은 그다지 개선시키지 못했다고 봤다. 한은은 이 밖에도 자영업자 대출과 아파트 집단대출이 가파르게 늘고 있어 향후 경기 위축이 발생할 경우 큰 위험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소득보다 부채가 더 빠르게 불어나면서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가계는 세금 및 각종 공제금을 빼고 남는 가처분소득의 25%를 대출 원리금을 갚는 데 쓰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전국 약 2만 가구를 조사해 21일 발표한 ‘2015년 가계금융 복지조사’에 따르면 올 3월 현재 전체 부채에서 임대보증금을 뺀 금융부채는 가구당 평균 4321만 원이었다. 1년 전(4118만 원)보다 4.9% 불어난 수치다. 그러나 가계의 처분가능소득(2014년 기준)은 3924만 원으로 전년에 비해 2.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가계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올해 110.1%로 지난해(107.8%)보다 2.3%포인트 증가했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 역시 같은 기간 21.7%에서 24.2%로 뛰었다. 최근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라 국내 시중금리도 올라가는 상황이라 가계 빚의 위험도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저금리와 대출규제 완화 등으로 올해 들어 가계부채 규모가 급증했기 때문에 빚 갚는 데 쓰는 돈이 처분가능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올 6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소득 중 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를 넘는 한계가구가 전국적으로 150만 가구에 이르며, 향후 시중금리가 2%포인트가량 상승하면 자산에 비해 부채 규모가 크거나 소득에 비해 원리금상환액이 많은 부실위험 가구가 약 25만 가구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생산성 지표가 선진국 평균보다도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조사국은 21일 ‘주요국 노동생산성 회복 지연 배경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2008년 위기 이전과 이후로 나눠 분석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2001∼2007년에는 연평균 4.6%였지만 2008∼2014년에는 3.4%로 1.2%포인트 줄었다. 이에 비해 OECD 회원국들의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위기 이전에는 평균 1.8%였지만 이후에는 0.7%로 1.1%포인트 낮아졌고 취업자 수 기준으로는 1.4%에서 0.4%로 떨어졌다. 보고서는 “한국은 정보기술(IT) 산업 비중이 다른 국가에 비해 높기 때문에 IT 산업의 자본 축적이 둔화된 것도 생산성 증가를 제약한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어 “노동생산성 제고를 위해서는 기업 활동의 애로 해소, 지속적인 규제완화, 혁신에 대한 보상체계 강화, 인허가제도와 같은 진입장벽 완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소득보다 부채가 더 빠르게 불어나면서 가계의 빚 상환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가계는 세금 및 각종 공제금을 빼고 남는 가처분소득의 25%를 대출 원리금을 갚는데 쓰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전국 약 2만 가구를 조사해 21일 발표한 ‘2015년 가계금융 복지조사’에 따르면 올 3월 현재 전체 부채에서 임대보증금을 뺀 금융부채는 가구당 평균 4321만 원이었다. 1년 전(4118만 원)보다 4.9% 불어난 수치다. 그러나 가계의 처분가능소득(2014년 기준)은 3924만 원으로 전년에 비해 2.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가계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올해 110.1%로 지난해(107.8%)보다 2.3%포인트 증가했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 역시 같은 기간 21.7%에서 24.2%로 뛰었다. 최근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라 국내 시중금리도 올라가는 상황이라 가계 빚의 위험도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저금리와 대출규제 완화 등으로 올해 들어 가계부채 규모가 급증했기 때문에 빚 갚는데 쓰는 돈이 처분가능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올 6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소득 중 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를 넘는 한계가구가 전국적으로 150만 가구에 이르며, 향후 시중금리가 2%포인트 가량 상승하면 자산에 비해 부채 규모가 크거나 소득에 비해 원리금상환액이 많은 부실위험 가구가 약 25만 가구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빚에 대한 가계의 심리적인 부담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를 갖고 있는 가구의 70.1%는 “원리금 상환이 생계에 부담을 주고 있다”라고 답했다. 또 이들 가구의 78.7%는 “부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저축과 투자, 지출을 줄이고 있다”라고 응답했다. 빚 부담이 실제 소비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해 노인가구의 빈곤율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고수준인 49.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가구의 빈곤율은 16.3%로 전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생산성 지표가 선진국 평균보다도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조사국은 21일 ‘주요국 노동생산성 회복 지연 배경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2008년 위기 이전과 이후로 나눠 분석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2001~2007년에는 연평균 4.6%였지만 2008~2014년에는 3.4%로 1.2%포인트 줄었다. 취업자 수를 기준으로 한 노동생산성 증가율도 같은 기간 3.4%에서 1.9%로 1.5%포인트 하락했다. 이에 비해 OECD 회원국들의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위기 이전에는 평균 1.8%였지만 이후에는 0.7%로 1.1%포인트 낮아졌고 취업자 수 기준으로는 1.4%에서 0.4%로 떨어졌다. 보고서는 “한국은 노동시장의 미스매치(불일치) 심화가 노동생산성 증가율의 하락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또 한국은 정보기술(IT) 산업 비중이 다른 국가에 비해 높기 때문에 IT산업의 자본 축적이 둔화된 것도 생산성 증가를 제약한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어 “노동생산성 제고를 위해서는 기업 활동의 애로 해소, 지속적인 규제완화, 혁신에 대한 보상체계 완화, 인·허가제도와 같은 진입장벽 완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6일(현지 시간) 정책금리를 0.00∼0.25%에서 0.25∼0.50%로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지난 7년에 걸친 미국의 ‘제로 금리’ 시대가 막을 내렸다. 연준은 내년 말까지 금리를 서너 차례 더 올리면서 금리 정상화에 가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연준의 결정은 그동안 각국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쉽게 경기부양을 했던 ‘통화완화(easy money)’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질서를 출범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2006년 6월 이후 9년 반 만에 이뤄진 미국의 금리 인상은 지난 10년간의 국제 금융시장 판도를 완전히 뒤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그동안 높은 수익률을 찾아 세계 각지로 흩어졌던 미국 자본이 속속 미국으로 환류(還流)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신흥국들은 외화가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등의 사태를 겪을 수 있다. 신흥국 사이의 위기가 확산될 경우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번 금리 인상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견고했던 글로벌 공조 체제에 균열을 일으켜 세계 각국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에 나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자국 경제의 회복을 확신하고 금리를 인상했지만 유럽, 일본 등 경기부진이 이어지는 다른 선진국들은 금리 인하나 양적 완화를 통해 ‘돈 풀기’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각국이 힘을 합쳐 경제위기에 공동 대처하기보다 각자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주요국의 엇갈린 행보는 기축(基軸)통화를 갖고 있지 않아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구사하지 못하는 한국 등 신흥국에 큰 혼란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또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경기의 침체가 깊어지면 각국은 경기부양을 위한 ‘환율전쟁’을 지금보다 더 강하게 벌일 가능성이 크다. 수출 위기에 직면한 한국의 산업계에 만만찮은 부담이 될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금리 인상이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크게 키울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한국 기업과 정부, 정치권의 대응 능력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은 많은 외환보유액 등으로 단기적 충격에 대응한 ‘방파제’를 높이 쌓아놨지만 중장기적인 실물경제 충격을 막을 수 있는 산업경쟁력 강화, 경제 구조개혁 등은 소홀히 해왔다는 지적을 받는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제는 정부가 단기부양이 아닌 진짜 본격적인 구조개혁에 나서야 할 때”라며 “개혁을 계속 미루다 보면 우리 경제가 반등할 기회를 영영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뉴욕=부형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