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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국회와 강남구 일원동 등지에 수소차 충전소가 들어선다. 유전자 검사를 통한 질병 진단 서비스, 버스 디지털 광고, 전기차 충전용 콘센트 사업도 허용된다. 현 정부의 규제혁신방안인 ‘규제 샌드박스’가 첫발을 뗀 것이다. 하지만 신청 기업에 한해 건건이 심사해 사업을 허용하는 방식으로는 신사업이 물밀 듯 쏟아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1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규제 샌드박스 적용사업 4건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규제 샌드박스는 각종 법령에 발목이 잡힌 사업을 일정 기간 허용하는 것으로 아이가 놀이터 모래밭에서 노는 것처럼 기업이 마음껏 기술을 개발하라는 취지다. 이날 심의 결과 △도심지역 수소충전소 4곳 설치(현대자동차) △유전자 분석을 통한 맞춤형 질병검사(마크로젠) △버스 디지털 광고(제이지인더스트리) △일반 콘센트를 활용한 전기차 등 충전용 과금형 콘센트(차지인) 사업이 임시로 허가되거나 테스트 명목으로 최소 2년간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규제 샌드박스가 시동을 걸긴 했지만 신청 기업에만 적용돼 본격적인 규제 개혁 효과를 기대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정부는 4년 내 법령을 개정해 다른 기업도 혜택을 보도록 할 방침이지만 산업구조 격변기에는 ‘사후약방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산업 영역별로 모든 기업의 활동을 보장하고 예외적인 사안만 제한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거티브 규제의 전초전 성격인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적용 속도를 높일 필요도 있다. 현재 한국의 규제 샌드박스는 부처별로 기업 대상 설명회를 열어 신청서를 일괄 접수한 뒤 법률 검토와 심의를 거쳐 일부 기업에 대해 사업 범위 등 조건을 달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이다. 영국은 2014년부터 핀테크 육성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뒤 서비스의 혁신성과 소비자 보호책 여부 등 기본적인 내용만 확인한 뒤 기업이 신청한 내용을 대부분 허용하고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규제 개혁은 메뉴판에서 물건 고르듯이 이건 해주고 저건 해주지 말자는 방식으론 안 된다”며 “즉흥적이거나 일회성에 그치지 말고 규제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이새샘 기자}

정부가 11일 첫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어 도심 수소충전소 등 4개 사업에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키로 한 것은 규제의 기본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임시로 풀어준 것이다. 규제에 발목이 잡혀 신산업 분야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기업의 숨통을 틔워주려는 조치다. 그러나 기업 애로를 건별로 심의해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이런 방식은 산업계가 요구해 온 규제개혁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활동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안전과 관련된 예외적인 사안만 규제하는 방식으로 입법 체계를 유연하게 만들지 않고는 일부 기업에만 선택적으로 우선권을 주는 임시방편에 그친다는 분석이다.○ 일부 기업에 조건부 허가 ‘반쪽 규제 완화’ 현 정부는 2017년 10월 ‘신산업 네거티브 규제 발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절대 안 되는 것만 묶고 나머지는 모두 푸는 식으로 규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이런 식의 대전환을 이루기 전 단계에서 특정 지역이나 특정 분야에 한정해 규제를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심의 결과는 특정 지역에 수소충전소를 짓도록 지정하거나, 특정 질병에 관한 유전자 검사를 허용해 주는 등 여전히 정부의 사전 허가 방식이다. 진짜 규제 완화라면 안전기준을 충족하는 수소충전소에 대해선 문화재 보호지역 등 사전에 정해 놓은 곳을 빼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지을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 유전자 검사 관련 서비스도 개인정보 보호라는 안전장치만 있다면 기업이 신청한 진단 대상을 모두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싱가포르는 3년 전부터 기업이 일정 요건을 갖추었는지만 확인해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은 2017년 정부가 지정한 전략 거점에서는 모든 규제를 풀어주는 ‘지역특구형’ 샌드박스를 시작했다. 한국은 적극적인 규제 해소의 전 단계인 규제 샌드박스에서도 다른 나라보다 뒤처진 양상이다.○ 특례 뒤엔 또 임시허가…법 개정 기다려야 이날 심의 결과에 대해 기업들 역시 “환영한다”면서도 “한시적 허가 이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 기간이 지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날 4개 업체 중 도심 수소충전소(현대자동차)와 유전자 검사를 통한 건강증진 서비스(마크로젠)의 경우 특정 기간 동안만 시범적으로 사업을 허용하는 ‘실증특례’로 허가받았다. 2년 동안 사업을 해본 뒤 다시 심의를 받아 임시허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실증특례나 임시허가 기간이 끝난 뒤에도 관련 법령이 정비되지 않으면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관련 제품이 해외 선진국에서 인증을 받은 뒤에야 국내에서 인증을 하곤 한다”며 “국내 기업이 개발하고 시장에 출시했지만 인증이 없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기차 충전 콘센트 사업 임시허가를 받은 차지인의 최영석 대표는 “앞으로 한국전력 등 관계 기관과의 협의도 중요한 상황”이라며 “현행법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업 모델을 탈법이나 편법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디지털 사이니지 업체인 제이지인더스트리의 조재완 대표는 “2013년 버스에 조명광고판을 설치하는 사업 특허를 낸 뒤 옥외광고물 규제에 부닥쳐 5년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정부가 될 사업과 안 될 사업을 빨리 결론지어 새로운 사업 모델을 발굴토록 해야 한다”고 했다. ○ “규제 혁신은 속도가 중요”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이 규제 완화를 통한 혁신성장과 4차 산업혁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수개월에 걸쳐 일일이 기업 신청을 심의하는 ‘돌다리 두들기기 식’ 방식으로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에서 규제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이 자리 잡거나 강력한 사업자가 등장했을 경우, 국내에서 뒤늦게 규제를 해소한다고 해서 이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규제 혁신도 글로벌 경쟁이라는 인식을 갖고 책임소재를 두려워하기보다 모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의 성과 중심 방식을 버리고 규제 시스템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 /배석준·지민구 기자}

도심 수소충전소, 유전자 검사를 통한 질병 예측 서비스, 버스 디지털 광고, 전기차 등을 충전할 수 있는 충전용 콘센트 등 4건이 규제 샌드박스 1호 사업으로 선정됐다. 규제개혁의 첫 발을 뗀 셈이지만 영역별로 모든 기업활동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인 사안만 규제하는 ‘네거티브 규제’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1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규제 샌드박스 관련 사업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규제 샌드박스는 아이들이 모래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듯이 기업이 신제품과 기술을 빨리 출시할 수 있도록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제도다. 이번에 심의를 통과한 사업들은 모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거나 소비자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차지인’은 일반 콘센트를 활용해 전기차와 킥보드 등을 충전할 수 있는 충전용 콘센트사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충전사업자는 전기차만 충전할 수 있도록 한 규제에 막혔다. 바이오기업 ‘마크로젠’은 유전자 질병 예측 검사를 일반 유전자 검사 기관도 직접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지금은 검사 전 중간 단계에 의료기관이 끼어 있어 비용이 추가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제이지인더스트리는 버스에 LED 패널을 설치할 수 없도록한 규제 때문에 버스 디지털광고를 하지 못했다. 현대차는 상업지역 등에 수소차 충전소를 설치할 수 없는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세종=이새샘기자iamsam@donga.com}
한국 수출품의 평균 가격이 지난 10년 동안 다른 주요국에 비해 더 많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세계무역기구(WTO)의 ‘월별 공산품 수출 수입 물가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수출물가지수는 지난해 11월 기준 73.6이었다. WTO 수출물가지수는 2005년 1월을 100으로 두고 각국 수출상품의 가격 변동을 표시한다. 한국 수출물가지수 하락은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과거보다 제값을 못 받고 있음을 뜻한다. 지난해 11월 다른 국가의 수출물가지수는 미국 117.3, 유럽연합(EU) 115.0, 일본 86.0, 싱가포르 90.3 등이다. 한국 수출물가지수가 최근 내려간 것은 석유화학 제품 등 주요 수출품목이 글로벌 경기와 유가 등 대외 요인에 취약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수출 부진이 지속되자 해외 투자은행(IB)들이 한국의 올해 성장 전망치를 낮춰 잡고 있다. 주요 IB 9곳이 지난달 말 전망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 평균치는 2.5%로 기존 전망치보다 0.1%포인트 떨어졌다. 이들은 수출 감소와 함께 정부 정책이 경기부양 효과를 크게 내지 못할 경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노동 시장 악화 등으로 경기 둔화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은행이 전망한 성장률 전망치는 2.6%였다.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 / 강유현 기자}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가 어떻게 미국과 힘겨루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이 미국에 매년 약 950억 원 규모의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실제 보복 관세를 집행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투로 이같이 말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8일(현지 시간) 한국이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연간 8481만 달러(약 953억 원)의 양허정지를 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양허정지는 없앤 관세를 다시 부과하거나 낮췄던 관세를 다시 높일 수 있도록 WTO가 허용한다는 의미다. 앞서 2013년 2월 미국은 한국이 수출한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 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는 이유로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은 반덤핑 조사 방식이 부당하다고 보고 WTO에 이를 제소해 2016년 9월 최종 승소했다. 미국은 2017년 12월까지 반덤핑관세를 철회해야 했지만 이를 실행하지 않았고, 한국은 지난해 1월 WTO에 양허정지를 신청했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반덤핑 관세 부과로 입은 피해가 7억1100만 달러(약 7990억 원)라고 신고했지만 WTO는 그중 11.9%인 953억 원의 피해만 인정했다. 하지만 한국이 실제 이 카드를 사용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주요 수출대상국인 미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국 상무부는 안보 위협을 이유로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규정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한국산 자동차에 적용할지를 검토 중이다. 결과는 이달 중 나온다. 지난해 1월 미국은 한국과의 반덤핑 관세 분쟁에서 패소한 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수입제한)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 같은 압박에 못 이겨 국내 업체들은 아예 미국에 공장을 짓고 세탁기 양산을 시작한 상황이다. 한국 기업들이 이미 자체 대응에 나선 마당에 보복관세 등으로 효과를 내기엔 때가 늦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한국이 이번 양허정지 조치를 미국과의 분쟁에서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방안도 내놓았지만 이마저도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정부의 관측이다. 정부 관계자는 “다른 통상 문제와 이번 조치를 연계하면 오히려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세탁기 문제로 한정시키되 최대한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실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정부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완화하려고 입법예고까지 한 사안을 한 달 만에 백지화한 것은 정부 내에서도 기업 규제를 놓고 이견 조율이 안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기업 기 살리기’를 강조하면서도 공정경제 잣대를 들이대는 오락가락 행보로 기업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관행은 확실히 근절하되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등 기업 활력을 살리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헷갈리고 있다”며 일관성 있는 정책을 주문했다. 올 세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일감 몰아주기 예외조항이 삭제된 것은 지난달 8일 입법예고 직후부터 공정거래위원회가 반대 의사를 강력하게 표시했기 때문이다. 당초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기획재정부는 공정위와의 사전 논의를 건너뛴 채 예외조항을 시행령 개정안에 넣었다. 공정위 소관인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기술적 특성상 전후방 연관관계에 있는 계열회사 간의 거래로 해당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부품 소재 등을 공급 또는 구매하는 경우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로 보지 않는 예외조항이 있다. 기재부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주무 부처 격인 공정위도 예외를 두는 만큼 기재부 소관인 세법에 예외를 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과세가 매출액 기준만 넘으면 무조건 적용하도록 돼 있어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예외는 무조건 인정해 주는 게 아니라 조사를 거쳐 합당하다고 인정될 때만 과징금을 빼주는 것이어서 사전에 과세 대상에서 빼주는 세법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공정거래법에는 ‘특허를 보유한 경우 예외로 한다’는 명시적인 조항이 없고, 일감 몰아주기 과징금은 공정위 조사를 통해 부과하는 반면 증여세는 기업 신고를 기반으로 과세한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특허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제외하면 특허나 독점기술을 특정 기업으로 몰아주는 식의 편법이 발생하고, 대주주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익을 보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대기업 규제에 ‘올인’하고 있는 공정위가 공정거래법만으로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기재부가 세법을 통한 규제 완화로 방향을 틀자 펄쩍 뛰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2016년 공정위는 한진그룹이 일감 몰아주기로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고 보고 과징금 14억3000만 원을 부과했지만 이듬해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기재부 역시 규제 완화와 관련해 관계 부처를 설득하는 단계를 건너뛴 채 ‘아니면 말고’식으로 대응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부의 무책임한 모습에 그동안 정책 전환을 기대했던 경제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과징금 대상에서 제외한 특허 보유 관계사와의 거래가 세법에서는 과세 대상으로 남아있는 건 같은 행위에 대해 두 법률이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기형적인 형태”라고 지적했다. 부처 간 엇박자에 이 정부에서 누가 규제 완화 등 경제 정책 전반의 키를 쥐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각 부처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에 다른 해석을 갖고 접근하다 보니 이 같은 혼란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김준일 기자}
대기업 총수 일가 기업이라도 독점적 기술 때문에 부득이하게 해당 대기업과 거래할 경우에 한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빼주도록 한 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표 한 달 만에 ‘없던 일’이 됐다. 기획재정부가 규제 완화 차원에서 개정안을 마련해 공개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실태조사와 관계부처 사전협의가 없었다며 강력히 반발해 입법예고까지 한 사안이 손바닥 뒤집듯 원점으로 돌아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기업인들과 만나 규제혁신을 약속했지만 핵심 경제부처들의 엇박자까지 불거지면서 규제개혁이 첫걸음도 떼지 못한 채 갈지(之)자 행보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일감 몰아주기 예외조항을 삭제한 ‘세법 개정 후속 시행령’을 의결했다. 이 예외조항은 지난달 31일 관계부처 차관회의 직전 삭제된 뒤 이날 국무회의에 상정됐다. 입법예고안이 차관회의에도 오르지 못한 채 삭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관가의 설명이다. 이날 비공개로 이뤄진 국무회의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 관련 예외조항이 빠진 것에 대해 “부처 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다”고 국무위원들에게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달 8일 기재부는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규정과 관련해 ‘한 법인이 기술적 특성상 전후방 연관관계가 있는 특수관계법인과 불가피하게 부품, 소재 등을 거래한 매출액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특허 등 기술력이 있는 기업은 ‘일감 몰아주기 과세’의 예외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재계에선 특허나 독점기술 때문에 불가피하게 관계사와 거래하는 경우에도 일감 몰아주기로 과세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해 왔다. 2017년 11월 국회 조세소위도 부대의견으로 ‘일감 몰아주기 과세 범위를 합리적으로 정비하라’고 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대기업이 특허권을 총수 일가 기업에 넘긴 뒤 일감을 몰아줄 수 있어 결국 대주주가 이익을 보게 된다며 반대했다. 입법예고 전 실태조사나 부처 간 협의를 소홀히 했다는 절차상 오류도 이유로 들었다. 기재부는 해당 조항 개정을 보류했다. 언제 다시 추진할 것인지 등 향후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김준일 기자}

정부·여당은 태안화력발전소 설비 점검 도중 사망한 고 김용균 씨가 담당했던 연료·환경설비 운전 직무직 전원을 공공기관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전환 방식은 추후 논의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5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김용균법 후속 대책’을 확정했다. 김 씨 사망 이후 약 2개월 만이다. 연료·환경설비 운전 직무는 발전소 가동에 직접 관련된 업무로 김 씨가 작업 도중 사고를 당했던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벨트 점검도 이에 포함된다. 서부발전, 남동발전 등 발전공기업 5사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는 2017년 6월 현재 2266명으로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전산업개발 소속을 포함해 모두 민간업체 소속이다. 이 중 비정규직은 436명이다. 공공기관이 어떤 방식으로 이들 근로자를 직접 고용할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앞으로 발전 5개사(한국수력원자력 제외)와 노동조합,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추가로 논의할 예정이다. 현재 거론되는 안은 △발전 5개사가 함께 출자하는 통합 자회사 설립 △한전 자회사를 새로 설립 △한전이 2대 주주(지분 29%)인 한전산업개발을 공기업으로 전환해 고용하는 방식 등이다. 한전산업개발에는 이번에 공공기관 직고용이 결정된 근로자 중 가장 많은 1702명이 소속돼 있다. 공기업이 되려면 정부가 지분 50% 이상을 갖고 있거나, 지분 30% 이상이면서 임원 임면권을 보유하는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당정은 이번에 일상적인 정비 업무를 담당하는 경상정비 직무 근로자 약 5300명을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할지도 별도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기로 했다. 5300명 중 절반 정도는 한전 자회사이자 공기업인 한전KPS 소속이다. 나머지 민간업체 근로자인 3100명을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할지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이날 ‘발전분야 근로자 처우 및 작업현장 안전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하청업체가 당초 계약대로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발전회사와 정비업체 간 계약에 관련 내용을 반영하도록 할 예정이다. 발전정비의 경우 현재 3년인 기본 계약기간을 6년으로 늘리고, 종합심사 낙찰제를 도입해 기술력 평가 외에도 안전관리 역량, 정규직 비율 등을 종합 평가해 업체를 선정한다. 이번에 제시된 대안은 모두 별도의 회사가 근로자를 고용해 각 발전사에 파견하는 형태로 고용주체가 공공기관인 점만 지금과 다르다. 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발전근로자를 고용한다면 이윤 중심의 민간업체와 달리 안전, 작업환경 개선 등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고 책임 소재도 분명히 할 수 있다”며 당정 협의 과정에서 노동계도 어느 정도 공감했다고 했다.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한다면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의 조건에 맞추기 위해 비용을 절감하려다가 발생하는 ‘위험의 외주화’도 피할 수 있다고 봤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운전과 경상정비 업무를 모두 공기업이 담당하면 경쟁이 사라지고, 파업 시 대안이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존 민간업체들이 공기업에 인력을 모두 내줘야 하는 문제도 있다. 한편 이날 당정협의에서는 김 씨의 장례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7일부터 9일까지 ‘민주사회장’으로 치르는 데 합의하고 김 씨 사망사고의 정확한 원인 조사를 위해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세종=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0일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 1월 수출이 전년 같은 달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날 홍 부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세계경제 성장세 둔화, 미중 통상마찰 등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12월 수출이 전년 같은 달보다 1.2% 감소한 데 이어 올 1월에도 수출 부진이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미 이달 1∼20일 수출은 전년 대비 14.6%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어 홍 부총리는 “지난해 민간소비가 임금상승 등으로 2.8% 증가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타나고 있지만 1월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개선되지 않는 등 기업의 심리 위축 속에 설비와 건설투자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은행이 내놓은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1월 전체 산업의 업황 BSI는 69로 전달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업황 BSI는 기업이 인식하는 경기 상황을 지수화한 것으로 100보다 낮으면 경기를 비관하는 기업이 낙관하는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다. 이는 2016년 6월(66)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홍 부총리는 “국민들이 정부 정책 효과를 제때 체감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입법을 통한 뒷받침이 절실하다”며 국회가 정상화돼 2월 중 주요 경제 법안이 제대로 처리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데이터경제 활성화 3법, 근로기준법 등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세종=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정부가 29일 지방 위주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사업 리스트를 내놓은 것은 기업과 일자리가 서울과 경기에 집중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과도하게 벌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3개 예타 면제 사업 중 7개는 이미 기존 예타에서 경제성 부족으로 탈락한 사업이다. 정부는 다른 시도와 연계하면 경제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하지만 자칫 완공 뒤 이용자가 없는 ‘유령 사회간접자본(SOC)’을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역 간 시너지 창출로 경제성 부족 극복” 국가재정법은 지역균형발전 또는 긴급한 경제 사회적 상황에 대응할 필요가 있으면 예타를 면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균형발전과 함께 ‘지역 간 시너지’를 강조했다. 일례로 도로 건설 때 한 지역만 놓고 평가하면 이용자가 적은 것으로 분석돼 경제성이 낮게 나온다. 반면 인근 지역 도로와 연결해 수요를 추정하면 수치상 이용자가 늘어 경제성이 높아진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이 밖에 사업계획이 구체화돼 신속 추진이 가능하거나 고용위기지역 내 사업을 우선한다는 기준도 적용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11월 지자체별 설명회를 열면서 예타 면제 작업에 착수한 뒤 3개월 만에 24조 원어치를 선정했다는 점에서 시너지 효과 등을 충분히 감안했는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예타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예외를 인정하는 예타 면제도 정교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맞지 않는 사업도 예타 면제 대상에 포함됐다. 전북도 숙원사업인 새만금국제공항은 전남 무안공항과 차로 1시간 거리에 들어선다. ‘새로운 수요 창출 잠재력이 높은 사업’ 기준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 사업도 예타 면제에 포함됐다. 동해안 단선 전철화 사업은 지난해 예타에서 비용 대비 수익성 비율이 0.59로 경제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타를 통과하려면 이 점수가 ‘1’을 넘어야 한다. 울산 외곽순환고속도로 사업은 2017년 예타 결과 “고용 유발이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다른 사업보다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역 숙원사업, 지자체장 핵심 공약 대거 포함 이번 예타 면제 대상에는 각 지역의 숙원사업이나 지자체장의 핵심 공약이 대거 포함됐다. 경북 김천에서 경남 거제를 잇는 172km 구간에 고속철도를 놓는 남부내륙철도 사업이 대표적이다. 사업비가 총 4조7000억 원에 이른다. 정부는 이 노선이 완공되면 서울에서 거제까지 현재 4시간 반에서 2시간 40분대로 이동 시간이 단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도권에서 선정된 2개 사업은 모두 남북한 접경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특수성이 고려됐다. 도시철도 7호선을 경기 포천까지 연장하는 도봉산 포천선 사업에는 옥정∼포천 19km 구간에 1조 원이 투입된다. 포천에서 서울 강남까지 출퇴근 시간이 현재 150분에서 70분으로 줄어들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영종도와 옹진군 신도 간 연도교를 구축하고 인천공항과 인근 섬을 관광도로로 연결하는 인천 평화도로 건설 사업에는 1000억 원이 투입된다. 3조1000억 원이 투입되는 평택∼오송 총 46km 구간 복복선화 사업은 지자체에서 신청하지 않았는데도 예타 면제 대상에 포함됐다. 경부, 호남고속철도가 합쳐지고 KTX와 SRT가 교차하는 병목 구간이어서 선로 용량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됐다.○ 완공 뒤 이용자 적으면 유지보수 비용 못 뽑아 이번 예타 면제 사업은 2029년까지 진행된다. 공사비도 문제지만 완공 뒤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수익성이 떨어지면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수 있다. 전남 영암군의 포뮬러원(F1) 경기장이 대표적 사례다. 전남도는 2006년 ‘포뮬러원 코리아 그랑프리’ 대회를 유치하면서 예타를 면제받아 4300억 원을 들여 경기장을 지었다. 하지만 흥행 부진으로 2014년부터는 정식 경기 자체가 안 열리고 있다. 지금까지 경기장 관리 등에 투입된 누적 손실은 6000억 원이다. 정부는 아예 예타의 문턱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6월 말까지 제도 전반을 검토해 대상 사업 기준을 얼마로 할지, 예타 담당 기관을 늘릴지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예타 기준을 완화해 면제 대상을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예타 면제 조치로 국가 재정을 정치적 동기로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가 훼손됐다”고 지적했다.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최혜령·김준일 기자}
경북 김천과 경남 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 대전 트램(도시철도), 새만금국제공항 등 그동안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판명돼 보류된 전국 23개 사업이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추진된다. 국비와 지방재정 등 24조1000억 원이 투입되는 이들 사업에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건너뛰는 ‘급행 티켓’을 줌으로써 지방 경기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29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17개 시도가 신청한 32개 사업 중 23개 사업에 예타를 면제하기로 했다. 예타는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면서 재정이 300억 원 이상 투입되는 대형 신규 공공투자 사업의 경제성과 재원조달계획을 검증하는 절차다. 지역별로는 영남권(8조2000억 원) 충청권(3조9000억 원) 호남권(2조5000억 원) 순으로 예타 면제 규모가 크다. 수도권은 원칙적으로 제외했지만 경기 포천 등 남북 접경지역에는 신규 철도와 도로를 개설해 주기로 했다. 사업별로는 교통 물류망 구축에 10조 원 이상 배정됐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공을 들인 남부내륙철도에 4조7000억 원이 투입된다. 도로·철도 확충 사업 중에는 대구산업선 철도, 울산 외곽순환도로, 서남해안 관광도로 등의 사업 규모가 1조 원대로 큰 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회간접자본(SOC) 외에도 지역전략사업 육성 지원,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관한 사업도 포함됐다”며 SOC에 국한됐던 과거 정부 사업과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연구개발(R&D) 사업비는 전체의 15%(3조6000억 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20조5000억 원은 SOC 사업비다. 홍 부총리는 6월 말까지 예타 제도를 검토해 제도적으로 면제 대상을 확대하거나 기준을 완화할 뜻도 내비쳤다. 이번 사업을 포함한 현 정부의 예타 면제 규모는 53조7000억 원으로 박근혜 정부(23조 원)보다 배 이상 많고 이명박 정부(60조 원)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재원 조달 계획이 미흡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 대형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성명서에서 “문재인 대통령 등을 권한 남용으로 고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최혜령 기자}

경북 김천과 경남 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 전남 해안관광도로, 전북 새만금 국제공항 등 전국 23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주기로 정부가 결정했다. 총사업비가 24조1000억 원에 이르는 대형 SOC사업이 당장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추진된다. 도로 항만 이용자 수 등 경제성을 따지는 절차를 건너뛰는 ‘급행티켓’을 줌으로써 낙후된 지방경기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려는 취지다. 이로써 현 정부가 급행으로 추진하는 예타 면제사업 규모가 과거 보수정부의 수준에 육박하게 됐다. 사업비 자체가 과도한 것은 아니지만 재원조달계획이 미흡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 성급하게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9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17개 시도가 신청한 32개 사업 중 23개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하기로 했다. 예타는 총 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고 재정에서 300억 원 이상 들어가는 대형 신규 SOC에 대해 경제성과 재원조달 가능성 등을 검증하는 절차다. 지역별로 예타 면제대상 사업은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이 6조7000억 원 규모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전 세종 충청(3조9000억 원), 광주 전남 전북(2조5000억 원), 대구 경북(1조5000억 원) 등의 차례였다. 교통 물류망 구축에 10조 원이 넘는 사업비가 배정됐다. 이 가운데 김경수 경남지사가 공을 들인 남부내륙철도에 4조700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도로 및 철도 확중사업 중에는 대구산업선 철도, 울산 외곽순환도로, 서남해안 관광도로 등의 사업규모가 1조 원대로 큰 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SOC 사업 외에도 지역전략사업 육성지원,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관한 사업도 포함됐다”며 SOC에 국한됐던 과거 정부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연구개발(R&D) 총 사업비는 광주 인공지능 중심 융합단지 조성(4000억 원) 등 3조 6000억 원에 그친다. 대규모 SOC 사업에는 전체 사업비의 80%가 넘는 20조 6000억 원이 투입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현 정부는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29조6000억 원 규모의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했다. 이번 추가 사업을 더하면 4대강 사업 등 대형 사업을추진한 이명박 정부 당시의 총 예타 면제 규모(60조3000억 원)에 육박한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균형발전을 추구한다고 해도 기존 예산 안에서 소화하지 못한 채 예타 면제라는 편법을 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세종=이새샘 기자iamsam@donga.com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는 대형 국책사업이 29일 발표된다. 2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29일 오전 11시 국무회의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예타 면제 사업 리스트를 발표한다. 현재까지 예타 면제를 신청한 사업은 17개 시도의 33개 사업으로 총사업비 규모가 60조 원이 넘는다. 인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노선 건설 사업(5조9000억 원), 전북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9700억 원), 동해안 고속도로 사업(7조 원) 등 대규모 토목사업이 포함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예타 면제 사업 후보군에는 상용차 미래형 산업생태계 구축(전북), 하수처리시설 현대화 사업(제주) 등 신산업 창출과 주민 복지를 위한 사업도 포함됐다. 예비타당성조사는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사회간접자본(SOC), 연구개발(R&D) 사업 등에 대해 경제성을 검토하는 작업이다. 다만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지역 균형발전이나 긴급한 경제, 사회적 상황에 대응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할 경우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수립돼 있고,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된 사업은 예타를 면제할 수 있다. 예타를 면제받으면 수개월이 걸리는 조사 기간을 건너뛰고 조기 착공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예타 면제의 목적을 지역 균형발전이라고 밝힌 만큼 지방 사업 위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관계자는 “지역 사업의 경우 경제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탈락하는 경우가 있다”며 “지역 주민이 입을 수혜가 크고, 경제적 효과가 큰 사업이라면 예타 면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세종=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A 씨(34)는 지난해 한 기술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퇴사했다. 기술 개발에는 뜻이 없고 여러 법인을 운영하면서 정부 보조금을 챙기려는 모습에 실망해서다. 해당 회사 대표는 이미 퇴사한 A 씨에게 최근 전화해 “A 씨 통장에 돈을 넣어뒀는데 내게 보내 달라”고 했다. 신규 채용에 따른 정부 보조금을 받으려고 A 씨 통장에 ‘유령 입금’을 한 것이다. 한국의 벤처기업 가운데 2개 이상의 창업·벤처지원제도에 중복 지정된 기업이 1만 곳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 개발과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기업은 적은 반면 정부 지원금만 챙기려는 ‘좀비 기업’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연구원 양현봉 선임연구위원은 25일 열린 한국창업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혁신성장 촉진을 위한 창업 벤처기업 정책과제’를 내놓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혁신형 중소기업은 5만6561곳이다. 이 중 벤처기업이면서 이노비즈기업으로 지정돼 있거나, 벤처기업이면서 경영혁신형기업으로 지정된 회사가 총 1만257곳에 이른다. 나랏돈이 이들 기업에 중복 지원되고 있는 것이다.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지역 창업센터에 가면 프로젝트나 과제를 따내기 위한 목적으로 임시 사무실을 여는 ‘떴다방’식 업체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여러 공모전에 지원해 보조금을 받는 스타트업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투자 심사 과정에서 이런 ‘좀비 기업’을 걸러내야 한다”고 했다. 재정이 새는 가운데 벤처기업의 기술력은 점점 하락하고 있다. 교수나 연구원 출신이 설립한 벤처기업 비중은 2007년 12.4%에서 2018년 7월 전체의 8.2%로 줄었다. 전체 창업기업 중 기술기반 기업 비중도 2015년 43.8%에서 2017년 43.3%로 소폭 감소했다. 국내 벤처기업의 업력은 2008∼2012년만 해도 평균 8년 정도였지만 2013년 이후에는 평균 9년으로 늘었다. 벤처기업으로 인증되면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벤처의 꼬리표를 떼지 않으려는 ‘늙은 벤처’가 많아진 셈이다. 도전정신이 생명인 벤처기업의 해외 진출도 부진한 편이다. 전체 벤처기업 가운데 수출 경험이 있는 기업은 전체의 25.9%에 불과했다. 양 선임연구위원은 “횟수 제한 없이 벤처기업으로 반복해서 인증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와 관련 지원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 / 신동진 기자}

한국은행이 올해 취업자 수가 14만 명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취업자 증가 폭(9만7000명)보다는 많지만 정부 목표치 15만 명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은은 또 경제의 기초체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24일 발표한 ‘2019년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기존 전망치보다 0.1%포인트 낮춘 2.6%로 예상했다. 지난해에 올해 전망치를 2.9%→2.8%→2.7%로 잇달아 낮춘 데 이어 이날 또 한 차례 하향 조정했다. 이는 2012년(2.3%) 이후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은은 반도체 경기 악화로 올해 수출 증가율(3.1%)이 지난해(3.9%)보다 낮아지고 건설투자(―3.2%)도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용여건도 악화될 것으로 봤다. 올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은 14만 명으로 지난해 10월 전망(16만 명)보다 2만 명 적고, 1년 전 전망(29만 명)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제조업 업황 부진이 주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이날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5%로 전망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실업률이 소폭 상승하고 저숙련 일자리 창출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은은 잠재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잠재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인구 구조와 생산성 변화 등을 감안해 추정하며, 일반적으로 경제가 선진화될수록 잠재성장률이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2017년 당시 2016∼2020년의 잠재성장률을 2.8∼2.9%로 봤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5∼2.6% 수준으로 낮아져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2배인 미국(2.0%)과 비슷해지고 있다”며 “규제 혁신, 신산업 육성을 통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편 한은은 이날 열린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1.75%로 동결했다.강유현 hykang@donga.com / 세종=이새샘 기자}
한국의 노사협력 수준이 세계 125개국 가운데 120위로 바닥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적자원의 종합 경쟁력은 지난해와 같은 세계 30위였다. 유럽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와 다국적 인력서비스 기업 아데코는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이런 내용의 ‘세계 인적자원 경쟁력 지수(GTCI) 2019’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지수는 교육수준, 사업환경, 직업능력, 연구개발능력 등 각 나라의 인적자원 수준을 6개 분야 48개 항목으로 평가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사협력 지수는 13.76으로 지난해 23.04에 비해 10점가량 하락했다. 한국보다 노사협력 수준이 낮은 국가는 우루과이, 네팔, 크로아티아, 트리니다드토바고, 남아프리카공화국뿐이었다. 지난해에도 한국의 노사협력 순위는 119개국 가운데 116위에 그쳤다. 인적자원의 경쟁력을 종합 평가한 결과 스위스가 지난해에 이어 1위였다. 싱가포르, 미국, 노르웨이가 뒤를 이었다. 일본과 중국은 지난해보다 순위가 각각 2계단씩 밀려 22위와 45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지난해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이번에 6위로 밀려났다. 계층 간 이동이 활발한 정도를 평가하는 이동성 분야의 순위는 지난해 94위에서 올해 105위로 낮아졌다. 남녀 간 임금 격차는 지난해 96위에서 올해 103위로 떨어져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여성 리더십 기회 수준 역시 117위로 최하위권이었다.세종=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설 명절 민생안정대책에 사상 처음 예비비와 특별교부세 900억 원이 투입된다. 최근 침체에 빠진 경기를 살리려는 고육책이지만 상품권 발행 등 일회성 대책이 적지 않아 포퓰리즘 성격이 짙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22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설 민생안정대책’을 확정했다. 총 35조2000억 원 규모로 예비비와 특별교부세 등 예산 900억 원이 포함돼 있다. 종전에는 이미 편성된 본예산을 조기 집행하는 방식으로 설 대책을 추진했다. 예비비 등으로 새로 마련한 900억 원은 전북 군산, 경남 창원 등 고용·산업위기지역을 중심으로 약 1만 명 규모의 공공근로 일자리 인건비를 지원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이어 총 1250억 원 규모인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는 데도 사용한다. 올해 정부는 이 지역사랑상품권에 적용하는 할인율을 5%에서 10%로 높이고 구매 한도도 월 3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늘릴 예정이다. 아울러 정부는 다음 달 25일에 지급하기로 돼 있는 일자리안정자금을 2월 1일까지 앞당겨 지급하기로 했다. 저소득 근로자 등이 작년 11월에 신청한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은 당초 올 3월에 나갈 예정이었지만 시기를 앞당겨 설 연휴 전에 지급된다. 또 임금을 제때 못 받고 있는 근로자에게는 설 전까지 생계비 대출을 해주되 적용 금리를 현행 2.5%에서 1.5%로 한시적으로 내려주기로 했다. 지난해에 이어 설 연휴 기간(2월 4∼6일) 전국 고속도로 통행료가 면제된다. KTX를 통해 귀성하거나 역귀성하는 승객들은 30∼40%까지 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다.세종=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반도체 수출 부진이 점점 심해지면서 1월 전체 수출 감소율이 두 자릿수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1월 1∼20일 수출은 257억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6%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수출이 1.2% 감소한 데 이어 연초부터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운 셈이다. 한국의 수출이 2개월 연속 감소한 것은 2016년 9월(―6.0%)과 10월(―3.2%)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지난해 1월의 조업일수가 올해보다 하루 많았던 점을 감안해도 최근의 수출 부진은 심각한 수준이다. 올 들어 하루 평균 수출액은 17억7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9억4000만 달러)보다 8.7% 줄었다. 이 같은 수출 부진은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1∼20일 기준 반도체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8.8% 감소했다. 올 들어 첫 10일 동안 반도체 수출 감소 폭이 27.2%였던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반도체 수요 부진이 좀 더 심해진 셈이다. 반도체에 이어 석유제품(―24.0%)과 선박(―40.5%) 부문의 수출도 크게 감소했다. 1∼20일 기준 한국이 중국으로 수출한 규모는 전년 대비 22.5% 감소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중국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서 중간재를 중국에 많이 수출하는 한국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세청 측은 “지난해 대규모 해양생산설비 등 선박 수출에 의한 기저효과 영향과 반도체 수출 감소 등이 겹쳐 전체 수출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열린 ‘민관 합동 수출전략회의’에서 “선진국 경기와 세계 무역 성장세 둔화, 반도체 시황과 국제 유가 하락 등 대외 수출여건이 우리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종=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주식 매매 때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 지금은 보유 주식 총액이 15억 원 이상인 대주주에게만 양도세를 부과하지만 내년부터는 이 기준을 보유 주식 3억 원 이상인 주주로 넓힐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증권거래세 인하나 폐지를 추진함에 따라 줄어드는 세수를 양도세 강화로 보완하려는 취지다. 당초 증권거래세 축소에 반대하던 정부가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20일 “증권거래세를 금방 폐지하거나 세율을 대폭 인하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서도 “거래세의 점진적 인하에 대비해 2021년 예정이던 주식 양도차익 과세 확대 시점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래 2년 뒤부터 주식 양도차익 과세 대상을 보유 주식 3억 원 이상으로 넓힐 예정이었지만 거래세 인하를 염두에 두고 그 시기를 내년 정도로 당길 수 있다는 뜻이다. 증권거래세 인하는 금융권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사안이다. 지난해 말 이후 증시 부진의 여파로 이런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 그동안 정부는 “증권거래세 폐지는 2022년 이후 주식 양도차익 과세를 전면 시행한 뒤에나 추진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양도세와 거래세를 모두 내는 것이 이중 과세라는 금융권의 지적에도 정부는 “양도세 과세는 현재 전체 거래의 약 0.2%에만 해당하는 일부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15일 민주당이 증권사·자산운용사 사장단과 만나 증권거래세 인하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현재 증권거래세는 매매 차익과 상관없이 0.3% 세율(농어촌특별세 포함)로 모든 주식 거래 때 원천 징수된다. 반면 주식 매매 양도세는 주식 보유액이 많은 일부에게만 부과된다. 2017년까지는 주식 보유액이 100억 원 이상인 극소수에게만 부과되다가 지난해부터 15억 원 이상 주식 보유자로 대상이 늘었다. 정부는 이어 2020년에는 보유액 10억 원 이상, 2021년에는 3억 원 이상으로 대상을 늘릴 예정이었다.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중기 추진계획에 따라 세수 추이 등을 따져 주식매매 양도세 확대와 증권거래세 인하를 연계해 세제를 개편할 계획이었다. 세종=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신산업을 키울 기술력이 있어도 규제 때문에 사업 추진이 원천 봉쇄된 기업을 지원하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17일부터 시행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날 18개 기업이 신청한 19개 규제 샌드박스 신청사업을 공개하고 다음 달 이 사업들에 대해 임시허가 여부 등을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업들은 질병 예측 유전자 검사, 블록체인 해외송금, 카카오톡을 통한 과태료 고지, 디지털 버스광고 허용 등을 요청했다. 》 해외 송금 업체 ‘모인’은 2017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싸고 빠르게 돈을 외국으로 보내는 사업을 하려고 정부에 송금사업자 자격심사를 요청했다. 외국환거래법에는 해외 송금 때 특정 기술을 써야 한다든지 하는 규정이 따로 없다. 따라서 무난히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그해 말 가상통화 열풍이 일며 분위기는 급변했다. 가상통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을 보는 시각도 미온적으로 바뀌었기 때문. 심사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모인은 블록체인이 아닌 일반 송금기술을 적용해 해외송금업자로 등록해야 했다. 서일석 모인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을 쓰면 송금 중간 단계가 없어져 수수료가 낮아지는 등 장점이 많지만 블록체인을 활용할 법적 기반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17일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규제 완화를 신청한 18개 기업은 이처럼 기술력이 있는데도 현실과 동떨어진 법령 때문에 원천 봉쇄돼 애로를 겪어 왔다. 규제 샌드박스는 각종 법령 때문에 표류 중인 사업을 제한된 범위 안에서 허용하는 제도다. 아이가 놀이터 모래밭에서 노는 것처럼 기업이 마음껏 기술 개발과 혁신을 하라는 취지다.○ 폐차 비용 비교 서비스도, 스마트폰 세금 고지서 발송도 규제에 발목 규제 샌드박스 신청 첫날 기업들의 신청이 쇄도한 것은 정부가 강조하는 혁신성장을 위한 신산업인데도 규제에 걸려 시동조차 못 건 사업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조인스오토’는 자동차를 폐차할 때 드는 비용을 온라인으로 비교해 주는 서비스를 시작하려 했지만 자동차관리법의 규제에 걸렸다. 이 법은 재활용업에 등록하지 않으면 폐차 대상 자동차를 ‘알선’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 회사가 하는 ‘비교 견적’이 일종의 알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게임 업체인 ‘VRisVR(브이리스브이알)’은 차량에서 가상현실(VR)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이동형 VR트럭을 만들어 공급한다. 하지만 현행 게임산업법에 따라 VR 기기 운영 허가를 받으려면 영업장 주소가 있어야 한다. 이 회사의 이승익 대표는 “과거 푸드트럭처럼 VR트럭을 운영하려 해도 규제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규정이 모호해 기업이 불편을 겪는 사례도 많다. KT와 카카오페이는 스마트폰으로 공공기관 모바일 고지서를 쉽게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지금은 공공기관이 카카오톡 등 메신저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고지서를 보낼 때 KT 등 통신사업자가 이용자에게 일일이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받아야 한다.○ 벤처기업들 “성장 발판 될 것” 대기업이 하지 않는 새로운 영역에서 도전하려 해도 규제에 손발이 묶이며 시작조차 못 한 기업도 많다. ‘차지인’은 일반 콘센트를 활용해 전기차와 킥보드 등을 충전할 수 있는 충전용 콘센트를 개발해 충전 사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기차 충전사업자로 등록하면 전기차만 충전할 수 있는 데다 한전을 제외하면 일반 건물의 전기를 소비자에게 돈을 받고 팔 권한이 없어 사업이 표류돼 왔다. 차지인은 한정된 지역에서라도 시범 사업을 하게 해달라고 했다. 요금이 줄어드는 등 소비자 편익이 늘어날 수 있는데도 규제에 부딪혀 사업을 못 하는 기업도 신청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바이오 기업 ‘마크로젠’은 현재 의료기관만 할 수 있는 유전자 질병 예측 검사를 일반 유전자 검사 기관에 허용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소비자가 의료기관에 유전자 질병 예측 검사를 신청하면 마크로젠 등 일반 유전자 검사 기관이 이를 시행한다. 중간 단계에 의료기관이 끼며 비용이 2배 가까이 늘어난다는 게 마크로젠의 설명이다.○ 규제 샌드박스 2개월 내 처리 방침 정부는 신산업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열어 규제 샌드박스 적용 대상을 선정할 계획이다. 우선 신청 뒤 30일 이내에 해당 사업이 규제에 걸리는지 확인한 뒤 안전상 문제가 없다면 임시허가나 실증특례(테스트를 위해 제한적으로 규제 적용을 배제) 방식으로 시장에 선보이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정식 허가는 4년 내 법령을 정비해 내줄 방침이다. 김정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터넷융합정책관은 “기업 신청이 들어오면 가급적 2개월 내에 모든 절차를 끝내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 업체가 임시허가를 받는다고 해도 같은 업종에 있는 다른 업체에까지 소급 적용되진 않는다. 해당 기업에만 예외적으로 허가를 내주는 것이라 일일이 신청해야 임시허가를 받을 수 있다. 법령이 정비되면 모든 업체가 적용받을 수 있다. 이날 자율주행 배달로봇 업체인 ‘우아한형제들’과 앱 기반 중고차 대여 업체인 ‘더트라이브’는 규제 샌드박스 신속 처리 신청을 통해 자신들의 사업이 어떤 규제에 걸리는지 문의했다. 과기정통부는 이 업체들에 30일 내에 관련 규제 내용을 알려야 한다. 조치 없이 30일이 지나면 규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이새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