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새누리당은 22일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에 4선의 이주영 의원을 임명했다. 원내수석부대표에는 윤상현 의원, 정책위 수석부의장에는 김학용 의원이 각각 선임됐다. 초선의 홍지만 김태흠 의원이 공동 원내대변인을 맡는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지명직 최고위원에 박혜자 의원과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을 임명했다.}

새삼 그의 이름 석 자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았다. 며칠 전 사석에서 만난 어느 정치인의 한마디에 수많은 보도로 둔감해진 신경이 곤두서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사람, 아직도 기자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랬던 것 아니겠어?” ‘툭’ 던진 그의 말에 마치 희롱이라도 당한 듯 모멸감인지, 수치심인지 모를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정치부 기자 30년, 정치 전문 칼럼니스트…. 그는 지난해 가을 펴낸 저서 ‘국민이 정치를 망친다’에서 자신의 주요 경력을 이렇게 소개한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는 그가 무슨 꿈을 꾸며 스물여섯 되던 해 기자를 직업으로 택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분명한 건 그가 내세우는 ‘정치부 기자’로서의 자부심과 그가 속했던 언론계 내부의 평판에 큰 간극이 있다는 사실이다. 내 주변의 많은 언론인들은 그가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맡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글을 쓰거나 집권세력 측 요로에 의견을 전달한 이들도 숱하게 있었다.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은 그의 경우엔 해당되지 않았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어떤 사람의 사적인 부분, 특히 성(性)과 관련된 습관까지 속속들이 알기란 쉽지 않다. 그의 공직 임명에 반대했던 이들이 그의 성윤리까지 걱정했던 것도 아닐 게다. 사실 그놈의 술 때문에 벌어진 실수인지, 의도된 추행인지 사건의 실체도 명확하진 않다. 그럼에도 일이 터지자 “그럴 줄 알았다”는 탄식이 현직 기자들 사이에서 나온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더러는 “차라리 잘됐다”는 자조 섞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더 큰 사고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는 불안감의 방증이었다. 왜 그랬을까. 한마디로 언론계에선 그를 균형감을 갖고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기자, 즉 저널리스트로 인정하는 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러니 일각에서 “기자 출신 어쩌고…” 하며 도매금으로 취급하는 상황이 못내 씁쓸하다. 그보다 더 답답한 건 아무리 항변해 봐야 ‘누워서 침 뱉기’로 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너는 얼마나 깨끗한데?” “너도 갑질하고 다니지 않았냐?” 등의 힐난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쯤에서 대통령의 말꼬리를 잡고 싶다.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만찬에서 대통령은 “전문성을 보고 했는데…”라며 ‘그런’ 인물인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전문성을 보고 썼을 뿐 ‘그런’ 도덕적 문제, 불미스러운 문제를 일으킬 인물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바로 여기에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대통령과 일반인들의 인식 차이가 있다고 나는 본다. 맞다. 그는 ‘전문가’였다. 스스로 미국의 전설적인 저널리스트인 월터 리프먼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고 있다고 말해 왔지만, 특유의 날선 표현으로 특정 진영의 편에 서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고 무력화하는 데 앞장선 스피커라는 점에서 그는 대선 기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스페셜리스트’였다. 선전 선동에 탁월한 ‘그런’ 스페셜리스트였기에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이 사건도 점차 국민 관심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언론 보도에 항의하듯 신문지로 아파트 거실 창문을 도배한 채 10여 일째 두문불출하고 있는 그도 법적 문제가 마무리되면 전문가답게 ‘그날의 진상’ 비슷한 글을 내놓으며 창살 없는 감옥에서의 탈출과 화려한 재기를 모색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찜찜함은 남는다. 대통령은 취임 전날에야 그를 대변인으로 정식 임명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를 천거했다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너도나도 “대변인을 시키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대체 그는 왜, 어떻게 임명됐던 것일까. 청와대가 인사 시스템을 보완하겠다고 나섰지만 뭔가 핵심적인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정용관 정치부 차장 yongari@donga.com}

북한이 18, 19일 단거리발사체 4발을 잇달아 쏜 것을 놓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전승절’(7월 27일·정전협정 60주년 기념일)까지 군사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군부의 의도된 도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장거리 로켓 발사, 3차 핵실험,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위협으로 이어지던 일련의 도발 수위를 감안할 때 유화 국면 전환을 위한 탐색 차원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피하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저강도 도발’이라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제반 정황으로 볼 때 북한이 도발 정도를 더 높일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 군사적 기만술… 한미 대응태세 파악 목적도 부처님오신날 연휴 기간 이틀에 걸쳐 이뤄진 동해안 발사에서 북한은 지난해 말 장거리로켓(은하 3호) 발사와 올해 2월 3차 핵실험 때 사용한 기만전술을 재연했다. 동해 인근으로 배치했던 무수단 중거리미사일의 철수 징후를 노출시켜 한국과 국제사회의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노렸다. 실제 미국과 일본은 무수단 미사일 철수 움직임이 포착되자 한반도 인근에 배치했던 이지스 구축함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등 일부 대북감시 태세를 완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과 미국의 이동식 미사일발사차량(TEL) 대응 능력을 떠보려는 노림수도 포함된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군 관계자는 “한미 군 당국이 구축 중인 ‘킬체인’(Kill Chain·북한 전역의 차량탑재 탄도미사일을 30분 내 탐지해 파괴할 수 있는 체제)의 능력과 추진 실태를 파악하려는 목적도 깔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신형 방사포의 실전 배치에 앞서 최종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발사를 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 일본 특사 귀국 다음 날 발사 왜? 북한의 발사 시점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다. 18일은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일본 내각관방 참여(총리자문역)가 3박 4일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다음 날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특사인 외교사절이 돌아가자마자 일본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발사체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경제 개발을 위해 외자 도입이 절실한 북한이 일본과 협상을 깰 의도는 없을 것”이라며 “지속될 회담을 앞두고 몸값 올리기 차원에서 정례 훈련으로 위장할 수 있는 단거리발사체를 쏜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북한은 이번 발사를 통해 일본에 이지마 참여의 방북 허용에 걸맞은 ‘성의표시’를 하라는 전술적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일본과의 전술적인 접근이 성과를 낸다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 등 전략적인 문제로 의제와 상대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처럼 북한이 단거리발사체를 쏜 뒤 장거리로켓 발사나 핵실험으로 도발 수위를 끌어올릴 경우 그런 의도는 관철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 개성공단 회담 제의에 군부 반응? 한국의 개성공단 실무회담 제의에 대한 북한 군부의 거부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통일부가 도발행위 중단과 남북대화 수용을 촉구한 직후에 추가 발사가 이뤄진 점이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19일 오후 2시 성명을 내고 “북한이 유도탄을 발사하는 등 도발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음을 개탄스럽게 생각하며 우리와 국제사회에 대해 책임 있게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팩스를 보내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 일정까지 구체적으로 밝혔다고 거듭 주장하는 것에 대해 “사실왜곡이며 우리 내부에 논란을 야기하고자 하는 행위”라면서 “북한이 진정 협의할 뜻이 있다면 당국 간 회담에 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날 통일부 성명이 나온 뒤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추가 발사를 단행했다. 조숭호·윤완준 기자·윤상호 군사전문기자 shcho@donga.com}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9일 오후 4시 55분 인천공항을 통해 홀로 귀국했으나 이후 자취를 감췄다. 10일 그의 자택 주소지인 경기 김포시의 H아파트도 인기척이 없이 적막감만 흘렀다. 수차례 초인종을 눌렀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현관문에는 가스검침원이 1일과 8일 등 두 차례 방문했다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아파트 1층 우편함에는 ‘윤창중’ 명의로 배달된 우편물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된 이후 서울에서 임시 거처로 사용해오던 서울 서대문구 합동의 S오피스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취재진 10여 명이 여러 번 초인종을 눌렀지만 내부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오피스텔 경비원은 “(윤 전 대변인이 이곳에 산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마주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같은 층에 사는 오피스텔 주민은 “인근 편의점에서 한 번 본 적은 있는데 이곳에 살고 있었는지는 몰랐다”고 전했다. 본보 기자가 해명을 들으려고 여러 차례 전화통화도 시도했지만 그의 휴대전화에선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만 흘러나왔다. 그는 모처에서 기자들을 피한 채 몇몇 지인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성추행 의혹 사건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리 중인 것으로 보인다.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이 미국 시민권자인 만큼 미국 법을 잘 아는 변호사 등에게 자문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김성모·장원재 기자 mo@donga.com}
본보는 4월 10일자 A12면 ‘직능연합 훈·포장 장사’ 제목의 기사에서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가 정부에 훈·포장을 추천해 주는 대가로 회원들에게서 금품을 받은 의혹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는 “포상 규정상 공적심사기준에 따라 훈·포장 대상자를 추천하여 왔을 뿐, 훈·포장 장사를 하거나 대가성 찬조금을 받은 사실이 없으며 기부금 역시 정관에 따라 투명하게 집행하고 있다”고 알려 왔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제 외교무대에 공식 데뷔했다. 박 대통령은 6일 오전(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38층 회의실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북핵 등 한반도 문제와 글로벌 이슈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나눴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유엔의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 성장한 만큼 행복한 지구촌 건설을 위해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확대하겠다”며 “특히 (한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으로서 국제평화 증진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반 사무총장은 박 대통령이 내세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밝힌 뒤 “한반도 평화 안정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가능한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유엔본부 방명록에 “대한민국은 더 한층 번영되고 행복한 지구촌을 만들기 위해 유엔과 항상 같은 편에 설 것”이라고 썼다. 박 대통령은 이에 앞서 5일 오후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동포간담회를 열었다. 4박 6일간 방미 일정의 시작을 동포들과 함께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북한 위협에 따른 동포들의 우려를 언급하며 “한국경제와 금융시장도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국내외 기업들도 투자 확대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한국 채권에 대한 외국인들의 순매수도 계속되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북한의 위협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가 알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보잉사는 2000만 달러를 들여 경북 영천에 유지보수센터(MRO)를 건립하기로 하는 등 7개 기업이 한국에 3억8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비디오를 발명한 나라는 미국이고 그것을 소형화해서 가정용으로 보급한 나라는 일본이다. 하지만 집에서 녹화하고 영화 보는 일에 사용했던 비디오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낸 나라는 바로 우리 한국으로 백남준 선생님이 그 주인공”이라며 ‘창조경제’를 거듭 역설했다.뉴욕=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외교’가 본격 시동을 걸고 있다. 박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보잉과 커티스 라이트, 올모스트 히어로스 등 7개 미국 기업이 6일(현지 시간) 뉴욕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3억8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신고식’을 연 것. 투자신고식은 글로벌 기업 중 우리 정부의 배석 아래 한국 내 투자 의향이 있는 외국기업 중 투자가 확실시되는 기업과 투자 서명을 하는 절차다. 박 대통령을 수행 중인 윤 장관은 이날 오전 미국 그랜드 하이엇 뉴욕 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의 한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히고 “한반도 정세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윤 장관은 “보잉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항공기 판매를 주로 했지만 이번에는 국내에 유지·보수센터 공장을 처음 설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장소는 경북 영천을 생각하고 있고 현재 용지를 마련하는 중”이라며 “보잉사의 유지·보수센터 건립은 우리나라 항공산업 발전을 앞당길 뿐 아니라 한국이 보잉사의 아태지역 거점으로 성장해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잉은 우선 2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시설 확대 후 1억 달러를 추가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인류 최초로 동력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가 설립한 기업인 커티스 라이트는 원자로용 밸브 생산시설에 3000만 달러를 투자함으로써 우리의 원전기자재 산업의 발전과 함께 선진부품의 원활한 공급을 통한 원전 안전성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고 윤 장관은 설명했다. 올모스트 히어로스사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부문에 2000만 달러를 직접 투자하기로 했다. 윤 장관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세계시장 진출에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D사의 경우 3000만 달러 규모의 임상실험센터 건립을, S사는 1억2000만 달러 규모의 태양전지 및 모듈 제조와 관련한 투자를 할 예정이다. 또 G사는 평창 겨울올림픽 관광 레저 시설 건립에 7000만 달러를, K사는 항만 물류센터 설립에 1000만 달러를 각각 투자할 계획이다. 윤 장관은 “이들 업체는 영업상 비밀인 부분이나 협상 중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업체명 등을 직접 밝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관련 기업들이 우리 측과 양해각서(MOU)를 맺었는지에 대해 “장관인 저와 실무 국장이 배석을 하는데 그것을 통해 외국인 투자에 한국 정부의 지원 의지 등을 함께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뉴욕=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나는 그의 눈에서 천진난만한 정직함(childlike honesty)을 보았다.” 뮤지컬 ‘반지의 제왕’을 작곡한 발리우드 음악가 A R 라만은 그에 대해 이렇게 썼다. 며칠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올해의 100인을 발표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 기고한 글에서다.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학생과 학부모 팬을 확보한 인도 영화배우 아미르 칸. 그가 박근혜 대통령 등과 더불어 ‘100인’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반가움과 함께 그가 주연한 영화 ‘세 얼간이’ ‘지상의 별처럼’ 등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주입식 획일화 교육, 취업을 위한 무한경쟁에 맞서 ‘알 이즈 웰(All is well)’을 외치며 자신의 꿈과 끼를 맘껏 발현한 최고 얼간이 란초는 나머지 두 얼간이의 ‘데미안’ 같은 멘토였다. 상상력이 뛰어나지만 난독증으로 몇 차례 유급 위기에 처하며 구제불능의 문제아로 찍혀 있던 이샨은 자신도 난독증을 겪었던 미술 선생님 니쿰브를 만나 숨겨진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지상의 별처럼)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특별하다. 넘버원이 아니어도 돼. 넌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한 명(only 1)이니까.”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생인 두 딸아이가 스토리를 거의 외울 정도로 이들 영화를 보고 또 본 것은 영화 자체도 재밌지만 아마도 자신의 현재, 그리고 미래 모습에 대한 감정이입 때문이리라. 두 해 전 작은아이는 내게 ‘내 인생은 싱싱했다만 지금은 시들었도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온 적도 있다. 새삼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안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며 느낀 바가 많았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 ‘세 얼간이’를 보면서 “내 아이에게 란초와 같은 천재성이 있다면…”이라는 상상도 했었다. 그렇다면 밤늦게까지 학원 레벨 업 시험 때문에 ‘haggle’(실랑이를 벌이다) ‘plethora’(과잉) 같은 어려운 영어단어 외우느라 진을 빼는 아이들 닦달할 이유가 없을 거다. “아이들이 영화를 몇 번이나 봤으니 주요 대사는 외웠겠지. 미국에선 인도인 사장이 많아 인도 영어 배우는 것도 유행이라던데…”라는 생각까지 들자 가슴 한쪽이 돌덩이로 누른 듯 답답해졌다. 이러니 집집마다 전쟁이다. “공부는 그냥 숨쉬기처럼 늘 하는 거야. 숨을 한꺼번에 몰아쉴 수는 없지 않니?”라는 어느 교수의 말을 빌려 달래본다. 허나 집 안과 집 밖의 서로 다른 두 세계를 하루에도 몇 번씩 넘나들며 내적 갈등을 겪는 아이들에겐 그저 스트레스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사정이 이렇기에 ‘꿈과 끼를 살리는 행복교육’이란 박 대통령의 교육 비전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다만 현실은 비합리적으로 돌아갈 때가 많다. 당장 중학교 자유학기제만 하더라도 취지와는 달리 학생들을 더 많은 사교육으로 내모는 결과만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 대통령이 조각 후 첫 국무회의에서 강조한 ‘교과서 외 시험 출제 절대 금지’ 방침을 놓고도 논란이 많다. “지식이라는 게 고전을 포함한 수많은 책이나 신문 등을 접하며 입체적으로 형성되는 것 아니냐” 등의 현장 반응이 들린다. 내 문제가 아니면 절박하지 않은 법이다. 대입 전형을 결정짓는 회의에 참석한 보직 교수들이 “뭔 얘기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하품만 하더라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내 아이들이 학창시절 동서양의 고전을 두루 섭렵할 시간이 있을까. 란초나 데미안 같은 멘토를 만날 수 있을까. 성인이 됐을 때도 과연 ‘천진난만한 정직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학교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강하게 키워야지, 하면서도 허리가 휠 정도의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정용관 정치부 차장 yongari@donga.com}
4·24 재·보궐선거가 끝남에 따라 청와대는 본격적인 국정운영의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다. 집권 초 정부조직법 처리가 지연되면서 국정운영의 시동이 늦게 걸렸고 인사 파동으로 삐걱거렸던 것을 감안할 때 새 정권의 첫 번째 평가전에서 일단 선방(善防)했다는 평가에 바탕을 둔 것이다. 재·보선이 이변 없이 끝났지만 청와대는 5월에 치러질 민주통합당 5·4 전당대회와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의 경우 당 대표 후보들이 대체로 합리적 성향을 보이는 만큼 누가 되느냐에 따라 야당과의 관계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다만 선거 과정에서 주류와 비주류 간의 치열한 대립이 발생하거나 안철수 당선자의 원내 입성이 민주당 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향후 야당이 요동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의 경우 청와대 내에서는 국정운영 첫해인 만큼 박근혜 대통령과 신뢰가 깊은 최경환 의원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하지만 이주영 의원도 선거 때 핵심 역할을 맡았던 만큼 직접 나서서 교통정리를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선거 과정에서 친박 주류가 뭉친 최 의원에 맞서 이 의원이 비박, 소장파 진영을 묶어내며 진영 간의 대립 구도를 형성하는 상황은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청와대는 사실상 정권의 중간평가가 될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최대 고비로 여기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방선거에 앞선 10월 재·보선 결과가 주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재·보선은 규모도 클 뿐 아니라 현재로는 빼앗아올 의석수보다 빼앗길 의석수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지방선거가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 개헌과 같은 카드로 맞불을 놓는 아이디어도 제기된다.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박근혜정부가 출범 52일 만에 겨우 부처 인사를 끝냈지만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의 ‘부실 검증’ 논란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헌수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의 부적절한 주식 거래 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이 실장의 주식 거래 개입 과정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많다. 그런데도 청와대 인사검증 라인은 이번에도 본인 해명만 듣고 무사 통과시켰다. 성접대 의혹 사건에 연루돼 낙마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나 역외 재산 은닉 의혹으로 사퇴한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의 인사검증 때도 민정수석실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넘겼다가 역풍을 맞았다. 18일 본보 취재팀의 확인 결과 2009년 국정원을 퇴직한 이 실장은 2010년 법정에 증인으로 섰다. 자신의 오랜 친구인 양모 씨가 전직 국정원 직원 안모 씨와 안 씨의 부인 김모 씨를 공갈 혐의로 고소한 데 따른 것이다. 안 씨 부부가 양 씨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국정원에 투서를 넣어 이헌수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도록 하겠다”고 협박하자 이 실장은 양 씨를 만나 안 씨 부부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설득했다. 판결문에는 ‘이헌수는 당시 승진을 앞둔 시점에서 사소한 내용의 민원이나 투서에도 승진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심한 상황이었다’고 적혀 있다.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 이미 세간에 알려졌다. 당시 뇌물 혐의로 구속된 김광준 검사가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 재직 당시 안 씨의 부인 김 씨에게서 ‘공갈 피소 건을 잘 봐 달라’는 청탁과 함께 80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청와대도 이 실장 문제를 사전에 알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정원 고위 간부가 동료들에게 특정 주식을 사도록 권유하고, 또 과도한 수익을 얹어 되돌려 주도록 개입한 데 대해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청와대는 “모든 해명은 국정원에서 하기로 했다”며 함구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제라도 인사검증과 판단의 실패를 되풀이하고 있는 청와대 민정라인을 전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천과 검증을 명확하게 분리하고 다운계약서 등 논란이 될 만한 사안에 대해 자체적인 검증기준을 세워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것.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 업무보고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허태열 비서실장을 대상으로 박근혜정부의 잇단 인사 실패를 질타하고 존안자료 활용 방안 등 인사시스템 개선을 요구했다.이재명·조동주 기자 egija@donga.com}

이헌주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의 오랜 친구인 양모 씨가 자신에게 투자한 국정원 직원들에게 과도한 이익금을 얹어 투자금을 되돌려준 데는 ‘이 실장이 국정원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실장의 소개로 양 씨에게 투자했던 전직 국정원 직원 안모 씨가 양 씨를 협박할 때도 ‘국정원에 이 실장에 대한 투서를 넣겠다’고 했다. 2002년 당시 승진을 앞둔 이 실장도 이 문제로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결국 이 실장도 국정원 동료들에게 양 씨 회사에 집단적으로 투자하도록 권유하고 투자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일어난 것이 자신의 승진에 문제가 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이번에 기조실장으로 내정된 뒤 이 실장이 청와대의 인사검증 과정에서 이 문제를 먼저 ‘자백’한 것도 나중에 인사권자에게 누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은 이번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임명을 강행했다. 본인이 아무런 경제적 이득을 보지 않았다고 해명한 데다 법적으로도 문제될 게 없다고 본 것이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와의 차이다. 전직 국정원 직원이 투자금의 10배가 넘는 금액을 사실상 빼앗는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인사가 국정원의 안살림을 책임진 기조실장을 맡는 게 적절한지에 상당수 국민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민정수석실의 이런 ‘소극적 검증’은 앞선 인사 실패에서도 자주 나타났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관련한 성접대 의혹은 지난해 말부터 불거졌다. 올해 초 김 전 차관이 검찰총장 후보로 추천되지 못한 것도 이런 소문과 무관치 않았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은 경찰에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지, 증거가 있는지 등만 문의한 채 법적 문제가 없다고 보고 차관 인선을 강행했다. 민정수석실이 인사청문회를 거듭하면서 높아진 공직자의 도덕성 기준을 무시한 채 너무 법적 논리에만 매몰돼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과거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인사검증 라인에 검찰 출신이 다수 포진하면서 법적 관점에서만 사안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서 국민이 용인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말했다. 현재 곽상도 민정수석비서관과 인사검증 실무책임자인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검찰 출신이다. 지금까지 계속 보완돼온 인사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지도 의문이다. 사전검증 질의서는 공직 후보자가 직접 작성하는 것으로, 2010년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낙마 후 150개 문항으로 시작돼 김태호 전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 후 200항목으로 확대됐다. 청와대는 “임기 초 인선 대상이 워낙 많다 보니 사전검증 질의서를 받기에 시간이 부족했다”며 “지난달 말부터 검증하는 인사에게는 사전검증 질의서를 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인재 풀이 좁다 보니 법적 문제만 없으면 일단 임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대통령이 추천한 후보에 대해 인사검증 라인이 반대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이 오랫동안 공정거래위원장 적임자로 염두에 둔 한만수 전 후보자의 경우 민정수석실은 한 후보자가 종합소득세를 뒤늦게 납부한 사실을 국세청 자료를 통해 확인했지만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날 대통령비서실의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민주통합당 박범계 의원은 “비서실 업무 현황을 보면 어디 한 줄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한 글자도 없다. 이게 무슨 정부냐”고 따졌고,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인사에 관한 한 바른 소리 하는 분들을 청와대에 대대로 남겨두는 제도를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장원재·이남희 기자 peacechaos@donga.com}
북한의 대남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해킹한 어나니머스가 북한의 핵 시설을 사이버 공격하겠다고 예고했다. 우리민족끼리 해킹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는 어나니머스의 해커 A 씨(@Anonsj)는 8일 동아일보와의 트위터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일인 6월 25일에 ‘작전’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작전’은 북한의 핵시설 등 주요 시설을 교란시키고 고위관료 명단 등 핵심정보를 빼내는 것이다. A 씨는 “이 공격이 성공하려면 북한 내부 인트라넷 ‘광명’과 외부 인터넷을 연결하는 ‘닌자 게이트웨이’가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닌자 게이트웨이는 자객을 뜻하는 일본어 ‘닌자’와 서로 다른 통신망을 연결하는 ‘게이트웨이’의 합성어다. 닌자 게이트웨이가 실제 구축된다면 북한 내부에서만 이용 가능한 ‘광명’에 누구든지 접속할 수 있게 돼 북한의 시설과 웹 해킹이 한결 수월해진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폐쇄망을 외부 인터넷과 연결하려면 내부 동조자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A 씨는 “북한의 내부조력자가 신변의 위협을 감수하고 있어 이 부분은 침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민족끼리 해킹에 가담한 한국인은 자신을 포함해 두 명이며 나머지는 외국인이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논평을 통해 “이번 해킹은 남조선정보원을 비롯한 괴뢰패당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며 “통합진보당,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각계각층에 대한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 회원 신상털기가 진행된 일간베스트 홈페이지(www.ilbe.com)에 7일 밤부터 8일 오후 3시 반까지 접속장애가 발생했다. 이를 놓고 어나니머스 측이 공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어나니머스코리아는 “우리와 무관한 사안”이라고 부인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은 청와대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수장이다. 요즘 그의 속은 반쯤 숯덩이가 돼 있을 것 같다. 복수의 여권 인사들은 “최근 보니 얼굴 살이 쏙 빠지고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며칠 전 당정청 워크숍에선 그의 표현대로 ‘공포스러운 질책’을 듣고 고개를 떨궜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초대 비서실장으로 낙점한 구체적인 경위를 놓고 “염두에 뒀던 사람이 고사하는 바람에…” 등의 분분한 관측이 나왔지만 무엇보다 ‘권력의 2인자’ ‘넘버 2’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었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었다. 특정인으로의 권력 쏠림 및 이로 인해 야기될 수도 있는 여권 내 권력 암투를 막기 위해 정치 야욕이 덜한 68세의 전직 3선 의원을 택했다는 것이다. 사실 허 실장은 ‘보스형’ 정치인은 아니다. 지금은 어공의 수장이지만 관료 출신이라는 딱지가 따라다닌다. 그의 잔뼈가 굵은 과거 내무부는 공직사회의 ‘갑’이었다. 내무부는 ‘민간 군대’라는 말을 들을 만큼 상명하복 문화도 강했다. 내무부에서 25년을 지내며 형성된 특유의 내무 관료 기질은 정치인으로의 변신 이후에도 크게 바뀌진 않았다는 게 몇몇 친박 인사의 평이다. 2000년 총선 때 서울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온 노무현 전 대통령을 꺾고 첫 금배지를 달았으나 현역 의원 12년 동안 자신만의 정치적 색깔이나 야심을 뚜렷이 드러낸 적이 별로 없다. 박 대통령이 이른바 ‘왕(王)실장’ 대신 말 그대로 관리형으로 그를 선택한 이유다. 그런 점에선 허 실장에게 정권 초반 인사 난맥의 책임을 묻기엔 애매한 측면이 없지 않다. 책임과 권한은 함께 가는 법이다. 따지고 보면 명목상 인사위원장이라고는 하지만 허 실장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 게 거의 없다. 한 전직 언론인을 홍보수석실 소속 비서관에 넣으려다가 박 대통령의 “이분은 왜 들어갔나요?”라는 한마디에 슬그머니 철회했다는 소문이 여의도에 파다했을 정도다. 속사정이 이러하니 내심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것도 같다. 허나, 박 대통령이 비서실장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 분명한 건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무한 보좌하고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라는 사실이다. 동아일보가 대선 직후 ‘인사가 만사다’ 시리즈에서 제시한 비서실장의 5대 덕목 중 첫 번째도 ‘대통령 대신 욕먹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사 참사에 대한 그의 ‘17초짜리 대독(代讀) 사과’는 온몸을 던지겠다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그림자 실장’을 자처했다. “비서실장은 귀는 있지만 입은 없다”는 게 임명 당일 일성이었다. 비서실장의 입이 가벼워선 안 된다는 뜻이겠지만 소극적이고 수동적 역할 인식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쪽인가, 아니면 주어진 일만 충실히 이행하는 쪽인가” “국정 제1참모로서 혹시 대통령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 경우 내 의견을 개진하고 경우에 따라 끝까지 관철시킬 수 있는 배짱(guts)과 간언의 기술을 갖고 있는가.” 역대 대통령들은 집권 1년차엔 그나마 참모들의 말을 좀 듣다가 집권 2년차부터는 뭘 보고하려고 하면 “아 그거? 됐어. 다 알고 있으니…”라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고 정권 참여자들은 회고한다. 그러나 이 정부에선 벌써부터 청와대 참모들과 장관들이 대통령 어록 받아쓰기에 바쁘다. 굳이 ‘황제를 노하게 하면서 낯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는 중국 명신 위징의 사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입 달린’ 참모들이 좀 나와야 한다. 허 실장부터 본관에 올라갈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 보고일 수 있다”는 각오로 대통령을 만나야 할 것이다.정용관 정치부 차장 yongari@donga.com}
에드워드 카던 주한미군 제2보병 사단장은 18일 성명을 내고 “최근 미군 병사 10명이 저지른 부적절한 행동으로 60년 넘게 쌓아온 한미 관계가 퇴색되고 있다”며 “(미군은) 한국 법을 적용받으며 한국 경찰과 법무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또 “(부적절한 행동을 저지른) 병사 10명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한국 사법당국의 수사와 조치를 기다리면서 미 육군에서도 추방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미군 병사의 음주를 금지하고 3, 4일의 단기 휴가도 허락하지 않겠다”며 “다른 휴가 정책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 미8군도 “한국 경찰의 조사 결과와 법원의 판결에 따라 범죄로 물의를 일으킨 미군들에 대해 불명예제대(separation from the United States Army)를 포함한 명령 조치가 고려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8군은 이날 공보실장인 앤드루 머터 대령 명의의 성명에서 “모든 위법행위를 근절하고 부적절한 행동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중한 대안과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며 그 예로 △관련 부대에 금주령 △외출 및 외박 통제 △인원점검 및 관심병사 관리 강화 등을 제시했다. 주한미군의 잇따른 사과 성명은 ‘주한미군이 한국의 공권력을 무시한다’는 일각의 비판과 반미 감정을 조기에 진화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이날 새로 임명된 13개 부처 장관과 국방부 차관에게 자신의 주문을 쏟아냈다. 부처 직제 순에 따라 한 곳도 빼놓지 않고 일일이 신임 장관들과 눈을 맞추며 당부 사항을 전했다. 장관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꼼꼼히 받아 적었다. 박 대통령의 주문은 3450자, 200자 원고지로 17장 분량이었다. 발언 시간만 20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흐트러진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우고 임기 초 국정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정상적인 정부 출범이 보름가량 늦어진 데다 북한의 대남 도발 위협까지 겹치면서 자칫 산적한 국정과제들이 장기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이날 대대적 인사 태풍과 고강도 감찰 카드를 꺼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약 실천 재원 마련에 ‘올인’ 취임 14일 만에 처음 열린 새 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재원 마련을 위한 공직사회의 대대적 변화를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 부흥과 국민 행복, 문화 융성, 한반도 통일 기반 조성이란 네 가지 시대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뤄야 한다”며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사항이고, 이를 위해 적당한 개선이 아니라 철저한 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산출한 공약 실천 재원은 235조 원으로 이 중 60%는 기존 예산을 절약해, 나머지 40%는 제대로 거두지 못했던 세금을 징수해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공직사회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어 구체적 방안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먼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탈세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140개 국정과제 중 하나로 ‘지하경제 양성화 등 조세정의 확립’을 강조한 바 있다. 가짜 석유 등 지하경제와 차명 재산 은닉, 비자금 조성, 국부 유출 역외 탈세 등을 집중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주가 조작에 대한 엄단 의지를 밝혔다. 국정 과제에는 ‘주식시장 불공정 거래 조사 기능을 강화하고 과징금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이날 주가 조작 엄단을 콕 찍어 얘기한 것은 다소 의외라는 얘기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서민경제를 힘들게 하는 사안에 대해 엄격히 단속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고소득층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도덕적 책무)를 주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MB와의 차별화 나서 박 대통령이 이날 각 부처의 예산 낭비를 막고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점검해 달라고 강조한 것도 이를 재원 마련의 주요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4대강 사업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주문한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역점 사업인 4대강 사업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는 거대 국책사업이 없어 국민이 정부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기가 쉽지 않다”며 “그럼에도 상반기 중 무언가 눈에 띄는 성과를 내놓아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잘못된 정책들을 바로잡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직 기강 다잡기 박 대통령은 일부 언론에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최고조에 달한 지난 주말 현역 장성들이 골프를 쳤다는 언론보도 내용을 접하고 불편한 심기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도 이용걸 국방부 차관에게 “안보가 위중한 이 시기에 현역 군인들이 주말에 골프를 치는 일이 있었다”며 “특별히 주의해서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며 ‘엄중 경고’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11일부터 키 리졸브 훈련이 예정돼 있어 지난 주말에는 공식적으로 골프를 금지하지 않았다”며 “다만 현 상황을 감안해 주요 직위자들은 스스로 골프 약속을 취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감사원은 이날부터 공직기강 특별점검에 나섰다. 이를 위해 감사원은 지난달부터 진행하던 공직기강 감사에 특별점검 명목으로 정예요원 85명을 추가 투입했다.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도 과다한 음주로 업무차질을 빚거나 국민으로부터 ‘청와대 직원이 골프나 치고 다닌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이재명·장원재 기자 egija@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신임 장관 임명에 이어 청와대 비서관, 차관, 외청장 인선을 이번 주 중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12일 청와대 비서관 40명을, 13일 각 부처 차관 인사를, 14일 외청장 인사를 각각 발표한다”고 밝혔다. 정부 출범이 늦어진 상황에서 인사를 매듭지음으로써 흐트러진 공직기강을 다잡고 임기 초 국정동력을 회복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에 앞서 13개 부처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으며, 12일엔 여야 이견으로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차관 인사에 앞서 박 대통령이 신설한 대통령인사위원회가 처음 가동된다. 12일 열리는 인사위원회에서는 장관들이 3배수로 추천한 차관 후보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하게 된다. 인사위원장은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이 맡고 관련 수석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관료의 꽃’이라 불리는 차관 인사 발표를 앞두고 부처별로 하마평이 무성하다. 1, 2차관이 금융위원장과 국무총리실장으로 영전한 기획재정부의 후임 1차관으로 내부에선 최종구 국제경제관리관, 외부에선 추경호 금융위 부위원장과 강호인 조달청장, 육동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이 후보군에 올라 있다. 예산과 공공정책을 담당하는 2차관으로는 이석준 예산실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외교부 1차관으로는 위성락 주러시아 대사,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규현 차관보, 조태용 주호주 대사 등이 거명된다. 안호영 현 1차관의 유임설도 있다. 2차관에는 오준 주싱가포르 대사, 조태열 경기도자문대사, 조현 주오스트리아 대사 등이 후보군에 속해 있다. 한때 외부인사로 이정민 연세대 교수, 정옥임 전 의원 등도 거론됐으나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차관 후보로 내부에서는 김남식 기조실장과 양창석 남북회담본부장이 거론되고 있다. 국방부 차관 후보로는 김광우 기획조정실장 등이 하마평에 오른다. 이용걸 현 국방차관과 장수만 전 국방차관이 모두 기획재정부 출신이어서 이번에는 국방부 내부 출신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11일 오후 대한항공 KE204편으로 귀국한다. 지난해 대선 날(12월 19일) 미국으로 떠난 지 82일 만이다. 안 전 교수의 정치무대 재등장으로 정국은 급격히 4·24 재·보궐선거 국면으로 바뀌고 있다. ○ 노원병 ‘야권발 정계개편 신호탄?’ 안 전 교수는 이미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를 예고한 상태다. 그가 원내 진입에 성공할지, 신당 창당에 나설지, 민주통합당 일부 세력이 안 전 교수와 손을 잡을지 등에 따라 ‘안철수발 정계개편’이 시작될 수도 있다. 노원병이 이번 재·보선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는 이유다. 새누리당에선 현 당협위원장인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지난달 21일 선거관리위원회 예비후보등록을 마쳤다. ‘젊은 피’ 이준석 전 비상대책위원을 투입하자는 의견도 있고 18대 때 지역구 의원이었던 홍정욱 전 의원과 안대희 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의 이름도 나온다. 민주당은 안 전 교수 귀국 후 상황을 봐가며 공천을 결정하자는 분위기다.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은 10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 후보를 낸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4·24 재·보선 이후 정치세력화에 나설 안 전 교수와 야권 정계개편을 두고 협력 혹은 경쟁해야 할 민주당으로서는 후보를 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안 전 교수와의 관계 설정이 차기 당권을 둘러싼 민주당의 계파 갈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진보정의당은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유죄를 받아 이 지역구를 잃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의 부인 김지선 씨를 내세워 맞불을 놓고 있다. 김 후보는 이날 국회에서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번 선거는 안기부 X파일 사건의 잘못된 대법원 결정을 바로잡는 국민법정이 돼야 한다”며 “안 전 교수에게 양보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근 민주당이 안 전 교수, 새누리당 이 전 비대위원, 진보정의당 김 후보, 민주당 현 이동섭 지역위원장을 넣어 돌린 여론조사에서는 안 전 교수가 오차범위 안에서 이 전 비대위원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안 전 교수와 함께 귀국하기 위해 9일(현지 시간) 샌프란시스코에 온 조광희 변호사는 기자들과 만나 “노원병 선거는 간단치 않다”며 “선거사무실 마련, 이사 등 준비해야 할 내용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챙기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안 전 교수는 귀국을 앞두고도 체류 중인 샌프란시스코 스탠퍼드대 인근에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현지 교민과 유학생 사이에서는 ‘꼭꼭 숨은 안철수’라는 얘기가 나온다. 안 전 교수는 스탠퍼드대 인근에 월세로 집을 얻어 주로 집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고 가끔 주변의 명화 전용극장을 찾아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영도 ‘김무성 공천하나’ 김무성 전 새누리당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부산 영도에는 아직까지 다른 후보군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김 전 의원에게 공천을 줘야 하는지를 놓고 새누리당 친박계 내부에서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의원이 영도에서 승리한 뒤 여의도로 진출하면 차기 당권을 거머쥘 가능성이 있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에서는 김비오 지역위원장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된다. 부산경남(PK) 출신 중량급 인사의 차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충남 부여-청양은 최소한 ‘2승 1패’로 이번 재·보선 승리를 노리는 새누리당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곳이다. 이완구 전 충남지사와 이진삼 전 자유선진당 의원, 이영애 전 새누리당 의원 등 다수가 출사표를 냈다. 민주당에선 정용환 변호사의 이름이 거론된다.민동용 기자·팰러앨토=정미경 특파원 mindy@donga.com}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20번이나 언급하며 국민행복 시대를 선언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이라는 그의 첫 수필집 제목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그의 삶은 굴곡 그 자체였다. 그의 책이나 인터뷰 어디에서도 성인이 된 이후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기록을 찾기 힘들다. 1993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읽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삶에 만족한다고 밝힌 정도다. 다만 친조카와 시간을 보낼 때 많이 행복해한다는 얘기는 들린다. 아마 ‘독신 가장’으로서 집안의 대를 잇게 된 데 대한 고마움과 안도감이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소망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 숱한 철학적 종교적 정치적 논쟁이 이어져 왔지만 명쾌한 정답은 없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오천만 국민행복 플랜’을 들고 나왔을 때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다. 국가경제가 발전해도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라는 박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폄훼할 필요는 없다. 최근 불거진 세대갈등과 무관하게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건 불안과 불행이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을 일으킨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행복이라는 화두를 선제적으로 던진 것은 대선전략 측면에서도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행복은 ‘가난한 마음’에서 나온다고도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행복은 소득 증가보다는 사람과의 관계 등 다른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지만, 저소득층은 주로 소득이 많아지는 것에 비례해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전문가 분석도 있다. 다만 박 대통령의 ‘행복론’을 보며 뭔가 공허함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박 대통령이 소득, 일자리, 안전, 노후 대책 등 민생을 중시하면서 국민행복을 ‘시혜적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행복은 누가 안겨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객관적 조건뿐만 아니라 주관적 요인이 복잡 미묘하게 얽힌 과정이고, 그에 따른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다. 대통령 한 명 바뀌었다고 ‘행복 시대’가 활짝 열릴 것으로 기대하는 우민(愚民)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바에야 양질의 일자리를 수십만 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긴 그 행복의 시대를 추진하겠다는 정부조직 구성조차 안 되고 있으니 말해서 뭣하랴. 국연(國緣)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같은 시대에 같은 지도자를 둔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 그 또한 운명이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5년 뒤 우리는 ‘행복의 나라’라는 항구에 닻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청와대에 입성하던 날, 오랜만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박 대통령은 모처럼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그 환한 미소를 보며 나이 든 분들 중엔 “짠했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은 마음속으로 자기의 삶이 행복해지기보다는 박 대통령의 개인적인 삶이 행복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줄 테니 나를 따르라’는 식의 태도는 영 아니다. 취임 열흘도 안 돼 TV 생중계를 통해 접한 대통령의 노기(怒氣)는 ‘국민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정용관 정치부 차장 yongari@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25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무려 15개의 공식 일정을 소화하며 숨 가쁜 하루를 보냈다. 박 대통령의 일정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 첫날 공식 일정(14개)보다 많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0시 법적 취임과 동시에 합동참모본부에 전화를 걸어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근무상황을 보고받고 대북 감시·경계 태세를 점검했다. 박 대통령은 정승조 합참의장과의 통화에서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군이 대비태세를 해 달라”고 당부했다. 역대 대통령은 대령급인 합참 지휘통제실장에게 보고를 받았지만 북한의 3차 핵실험 등 안보상황을 감안해 보고자의 급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10시경 주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자택을 나선 박 대통령은 10시 20분경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현충원 참배에는 천안함 폭침사건 유가족 등 국가보훈 인사 35명이 동행했다. 참배를 마친 뒤에는 국회의사당으로 이동해 취임식 행사에 참석했다. 취임선서 후 군악대와 의장대가 ‘받들어 총’으로 경례하자 박 대통령은 거수경례로 받았다. 여성 군통수권자의 거수경례에 행사 참석자들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며 환호를 보냈다. 행진과 예포 발사 후에는 21분 동안 취임사를 낭독했다. 이날 취임사는 원고지 26장 분량(5200자)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문(8700자)보다 분량이 크게 줄었다. 연설 시간도 예정보다 10분가량 줄었지만 연설 중간에 터진 박수는 32차례로 5년 전(33차례)과 비슷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식 이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 이어 청운·효자동 주민환영행사에 참석했다. 주민들은 전나무 묘목이 담긴 화분을 선물했다. 화분의 흙은 지난해 대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 전국 17개 시도의 흙을 섞는 합토식에서 사용한 것. 박 대통령은 “화분을 주신 것은 통합의 의미”라며 “그 뜻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후 1시 15분경 청와대에 입성해 본관에 들어선 박 대통령은 곧바로 2층 집무실로 올라가 전자결재를 통해 정홍원 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에 서명하는 것으로 청와대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업무를 시작했다. 이어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등 취임 축하사절로 방한한 주요 외국 인사들을 잇달아 접견했다. 오후 4시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취임 축하 경축연회에 참석했으며 연회 뒤에는 다시 청와대로 돌아와 류옌둥(劉延東)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교육·문화·과학 담당 국무위원,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빅토르 이샤예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개발부 장관 등을 릴레이로 만나 ‘취임식 외교’를 폈다. 이샤예프 부총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초청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빈만찬을 끝으로 공식 일정을 마친 박 대통령은 참모들과 정부 조직개편안 처리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 전략 등 국정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18대 대통령으로 5년 임기를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민 모두가 또 한 번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합쳐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다. 이날 취임식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7만여 명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등 3가지 국정목표를 제시하고 ‘튼튼한 안보’를 약속했다. 그러면서 “국민 개개인의 능력을 주춧돌로 삼아 국가가 발전하는 새로운 시스템”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이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새로운 시대” “국민 개개인의 상상력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 등 ‘패러다임 시프트(근본적 변환)’를 역설했다. 하지만 ‘박근혜 시대’가 ‘희망의 새 시대’에 이르기 위해선 숱한 파도를 넘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글로벌 경제위기와 북한의 핵무장 위협 같은 안보위기”는 당장 눈앞에 놓인 ‘격랑’이다. 내부 갈등 요인들도 산적해 있다. 스펙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은 사회에 발을 들이기 전에 좌절을 먼저 맛보고, 중장년층은 막대한 빚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노년층은 절대 빈곤 속에 불안한 노후를 이어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역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국민 맞춤형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과 ‘공정한 시장질서의 확립’을 약속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취임경축연회에서는 “우리가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이런 때일수록 국민의 꿈과 희망을 되살리고 다시 한 번 뛸 수 있는 용기를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교사절단 초청 만찬에서 “이제는 남북한 간 지속되는 불신과 대결, 불확실성의 악순환을 끊어야 할 때”라며 북한의 변화를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실천을 통해 성과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당선인 시절처럼 ‘낮고 조용한 행보’가 아닌 ‘책임 있고 분명한 행보’를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는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국민 맞춤형 복지’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좀더 분명한 그림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기를 시작한 박 대통령은 여전히 손발이 묶여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등에게는 임명장을 건네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회의가 언제 열릴지도 미정이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회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나라의 국정 책임은 대통령이 지고, 나라의 운명은 국민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결정을 무시하고 정상적인 정부 출범을 가로막은 야당은 박 대통령에게 기회를 줘야 하지만 그 모든 문제를 풀어내야 할 책임 또한 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꽉 막힌 ‘여의도 정치’를 풀어내는 것이 박 대통령이 넘어야 할 첫 번째 파도라는 얘기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과의 면담에서 “한일 간의 진정한 우호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역사를 직시하면서 과거의 상처가 더이상 덧나지 않고 치유되도록 노력하고,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진심 어린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양국 지도자들이 신중한 말과 행동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