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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기홍 대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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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2025-12-21
칼럼100%
  • [오늘과 내일/이기홍]끼리끼리 챙기다 문제 생기면 前 정권 탓

    문재인 대통령이 KTX 사고에 대해 10일 “혹시라도 승객의 안전보다 기관의 이윤과 성과를 앞세운 결과가 아닌지 철저히 살펴보기 바란다”고 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드디어 시작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임 뒤집기’의 물꼬를 대통령이 직접 텄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사퇴하면서 “그동안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추진된 대규모 인력 감축과 과도한 경영합리화와 민영화, 상하 분리 등 우리 철도가 처한 모든 문제가 그동안 방치된 것이 사고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철도노조는 사장 사표 반려운동에 나섰고, “사고 원인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철도정책”이라는 주장이 좌파진영에서 봇물 터지듯 나온다. KTX 사고를 놓고 낙하산 경영진과 노조왕국 공기업의 기강해이가 빚은 안전사고라는 여론이 비등하던 차에 대통령의 한마디를 신호탄으로 전 정권의 우편향 정책 탓으로 흐름을 바꿔버리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이다. KTX 사고가 노조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낙하산 경영자 아래서 빚어진 기강해이의 산물인지, 공기업 개혁의 부작용으로 인한 것인지는 아직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조사가 한창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한쪽에 힘을 실어줬으니 진상조사와 결론 도출 과정이 영향 받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오 전 사장의 전 정권 탓은 뻔뻔한 것이다. 인력 감축으로 안전인력이 부족해서 사고가 빚어졌다는 게 그의 주장의 요체인데, 2015년 말 2만7981명이던 코레일 직원은 올 9월 현재 2만9602명으로 1621명 늘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889명 늘었다. 그런데 문제는 증원의 질이다. 사람은 꽤 늘렸는데 안전을 담당하는 철도 시설정비 직원은 80명만 늘렸다. 차량정비 인력은 345명 늘었지만 다 외주다. 안전관리에 대한 최고경영자(CEO)의 의지와 실행력만 있었으면 안전 역량을 대폭 보강할 수 있었을 텐데 오 전 사장은 해고 여승무원 특채, 파업 해고자 복직, 남북철도 연결 전담 사업단 신설 등에 힘을 쏟았다. 철도노조 등이 비난하는 인력감축은 공기업 개혁 때인 2009년 5115명 감축 결정을 뜻한다. 그런데 당시 조치는 2012년까지 경부고속철 2단계 개통 등 신규 사업에 필요한 인력을 기존 인력에서 재배치하고, 정년퇴직 등으로 매년 700¤800명 씩 자연 감소시키는 방식이었다. KTX 정비인력은 2004년 700여명에서 2010년 1200여명으로 늘었다. 코레일 전체의 차량유지분야 정비인력은 2014년 5173명(외주 535명 포함)에서 2016년 5262명(외주 822명), 2018년 5519명(외주 880명)으로 조금이나마 늘었다. 물론 2015년 대비 10.6% 늘어난 선로량 등을 감안하면 정비인력 보강 등 안전강화 조치는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경제부처들이 일방적 목표를 하달하고 코레일이 거기 맞추느라 투자를 축소한 것이 안전역량을 떨어뜨렸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 출범 1년 6개월이 넘은 시점에서 이전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무능과 딴짓을 자인하는 것이다. 오 전 사장을 비롯한 낙하산 인사의 배후엔 인사수석실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생긴 인사수석실은 온갖 인사를 좌지우지하는데 현재는 시민단체 출신 수석 아래 2명의 비서관 모두 운동권 출신이다. ‘좌파끼리 챙겨주기’는 태양광 사업 등에서도 극에 달하고 있다. 밀어주고 당겨주는 끈끈한 관계를 그들은 동지애, 의리라고 한다. 하지만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권양숙 여사 사칭범에게 건넨 액수가 4억5000만 원에 이르고 취업 청탁까지 해준 걸 보면 진보진영 내의 호의는 참으로 손이 큰 것 같다. 그런데 의리와 비리는 동전의 앞뒷면이 될 수 있다. 낙하산 꽂아주기, 좌파 비지니스 밀어주기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정작 들여다봐야 할 것은 아랫사람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식구 챙겨주기’의 폐단이다. 사회적 논쟁이 무르익기도 전에 대통령이 직접 프레임을 짜주길 바라는 국민은 없다.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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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자신들만이 민주·개혁 세력이란 착각

    영국과 유럽연합(EU)이 25일 브렉시트 합의문을 공식 추인했다. 그런데 영국은 EU는 탈퇴하지만 EU 관세동맹에는 남기로 했다. 이는 영국령과 독립국으로 나뉘어 있지만 하루 3만 명이 자유롭게 오가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 국경에 관세를 매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뉴스를 보며 200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생각났다. 1920년 영국 지배하에 있던 아일랜드의 한 마을에서 형제가 영국군의 극악한 횡포에 분노해 무장투쟁에 뛰어든다. 아일랜드인들의 피나는 투쟁 결과 평화조약이 맺어진다. 그러나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영국 신교도가 많이 이주한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겨두고, 아일랜드는 자치령인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형제는 대립한다. 완전한 독립을 위해 계속 싸워야 한다는 편에 선 동생과,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일단 평화조약을 인정하자는 편에 선 형의 갈등은 결국 형이 동생을 처형하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절대적 정의’에서 ‘상대적 정의’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영국군의 폭압에 맞서 싸우는 단계에서 형제의 투쟁은 절대적 정의, 절대선이었다. 일제하 독립투쟁, 군부독재 시절 한국의 민주화 투쟁이 그랬듯 절대적 도덕성과 당위성을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평화조약을 놓고 대립하는 내전 단계에서 형과 동생이 각각 주장하는 정의는 상대적 정의일 뿐이다. 상대방은 척결해야 할 절대적 악이 아니라 서로 의견과 지향점이 다를 뿐이다. 우리 현대사도 그런 단계를 거쳤다. 1987년 6월항쟁까지 민주화 투쟁은 절대선, 절대적 정의였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엔 상대적 정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민주화에 대한 염원으로 뭉쳤던 여러 세력은 분화되고, 진보냐 보수냐에 따라 선악이 달라지는 시대가 됐다. 제3자의 눈으로 보면 더 바람직하고 덜 바람직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쪽이 천사고 한쪽은 악마인 그런 구분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지향점이 절대선이고 상대는 절대악이라고 여기는 ‘구시대에서 멈춘 사고방식’이 여전히 팽배하다. 보수궤멸론을 주창했던 여당의 이해찬 대표는 최근 “정조대왕이 돌아가신 1800년부터 지금까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외에는 한 번도 민주·개혁적인 정치세력이 나라를 이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뿐만 아니라 집권그룹 안팎과 시민단체, 노조 등에는 자신들만이 민주세력이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다. 자신들만이 개혁을 했다는 주장도 착각이다.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공직자 재산 공개, 노동법 개정, 경제 구조조정, 국정 분권, 연금 개혁, 공공기관 개혁…. 민주화 이후 주요 개혁정책 리스트다. 이 중에는 보수정권 때 이뤄진 것도 많다. 이 대표는 서민, 노동자 등을 위한 복지·분배에 역점을 둔 것은 자신들뿐이라고 강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규제, 연금, 노동시장, 공공부문 등 우리 사회에 시급한 개혁 대상 가운데는 노조와 서민계층이 반기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정조대왕은 인재를 널리 등용하면서 서얼 철폐 같은 개혁과 더불어 파격적인 경제 개혁을 폈다. 상업을 천시했던 양반 사회의 벽을 뚫고 상업을 가로막는 법·제도를 고쳤으며 ‘금난전권 폐지’를 통해 독점권리를 갖고 있던 시전상인들의 기득권을 깨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시켰다. 문재인 정부의 분배 지향 정책들이 부작용을 빚고 있지만 절대악은 아니다. 토론하고 보완하고 속도 조절하면 된다. 그러나 자신들만이 민주·개혁 세력이라는 오만 속에 절대선으로 착각하며, 비판을 기득권 세력의 저항쯤으로 여기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과는 참담해질 것이다.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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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김정은의 진정성’이라는 신기루

    북한이 폐쇄를 약속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이외에도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미사일 기지를 최소한 13곳 이상 운용중이라는 최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고서에 좌파진영은 미국이 대북 압박용으로 정보를 흘렸다고 비판한다. 대화판을 엎으려는 ‘가짜뉴스 술책’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보고서는 CSIS의 조지프 버뮤디즈 연구원이 주도했고, 프로젝트 책임자는 ‘코피작전’에 반대해 올 1월 주한 미국대사 내정이 취소된 빅터 차다. 버뮤디즈 연구원은 인정받는 위성사진 분석 전문가로서 정파적·주관적으로 데이터를 해석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평을 받는다. CSIS는 세계 5대 싱크탱크에 꼽히며, 이념성향은 중도~중도우파로 분류된다. 보고서 내용은 상업위성 사진들을 팔로우업한 것이며 내용은 미 정보당국이 군사위성으로 파악한 것과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트럼프에겐 상당히 불리한 내용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문에 미사일 관련 내용이 포함된 바 없으므로 북-미 합의가 부정된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가 그동안 “북 미사일 위협을 내가 제거했다”고 수없이 강조해왔기 때문에 대통령이 과장해서 떠벌렸다는 비판여론이 형성될 소지가 크다. 대북 압박은 트럼프도 원하는 바이지만 국내 정치적으로 허풍쟁이로 몰리지 않는 게 더 우선이다. 때문에 트럼프는 “다 알고 있던 내용”이라고 평가절하하며 북-미 협상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CSIS 보고서는 누구의 공작에 의한 게 아니라 연구결과물이며, 그 근저에는 미국 내에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는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사실 보고서 내용은 북한의 새로운 미사일 도발이 벌어진 양 난리칠만한 건 아니다. 싱가포르 합의문에 미사일 관련 대목이 없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미국 민주당과 언론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김정은의 비핵화 진정성을 가늠할 중요한 잣대라고 보기 때문이다. 양국 정상이 적대행위 중지와 비핵화를 약속했을 때, 그 전제는 상대가 위협을 느낄 추가적 도발 행위의 중단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이후에도 “미사일 능력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버뮤디즈 연구원의 표현)해왔다는 것은 문서상의 합의를 어긴 것은 아닐지라도 합의의 근본정신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입장을 바꿔 만약 미국이 대화 국면에서도 과거 그랬듯 평양 주석궁 타격 능력을 지닌 스텔스 폭격기 비행 훈련을 비밀리에 지속해왔다고 해도 전혀 새로운 게 아니라고 치부하는 게 맞을까. 미사일 기지 문제는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는 미 정보당국의 결론과 더불어 고려해야하며 핵심은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판단이다. 대통령특보인 문정인 교수 등은 김정은의 비핵화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거듭 호소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대북 제재 완화를 주창하는 것도 김정은의 진정성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진정성을 판단하려면 세 가지를 살펴봐야 한다. 첫째, 그 근거가 객관적인가다. 그런데 문 특보가 내세우는 근거는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대화에서 느꼈다는 확신이 거의 전부다. 둘째, 약속 후의 행적인데 북한은 첫 단계인 핵신고부터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공격 리스트를 달라는 거냐”며 항변하지만, 사실 미국은 이미 유사시 타격대상이 될 북한 전역의 핵시설에 대한 상세한 리스트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신고서 제출을 중시하는 것은 신고내용과 미국이 파악한 것을 비교해 김정은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역사적 선례인데, 핵실험을 수차례 해 핵탄두와 운반수단을 다량 보유한 국가가 레짐 체인지 없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한 경우는 없었다. 따라서 현재로선 김정은의 비핵화 진정성을 확신할 근거는 빈약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의 진정성을 옹호하는 것은 그래야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외교의 기본은 ‘정치적 리얼리즘’이다. 그것은 정치와 외교는 엄정한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정글이라는 냉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현실에 바탕하지 않은 채 무조건 믿어버리면 환상이나 신기루가 될 수 있다. 설령 종국엔 실제 오아시스로 판명될지라도 도착할 때까지는 신기루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별자리와 지형을 살피고 검증해야 한다. 외교안보 정책결정 과정에서 일부가 장밋빛 시나리오를 앞세운다 해도 정상적인 시스템이라면 다양한 섹터에서 의견이 개진돼 시뮬레이션 하는 과정에서 걸러질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외교안보팀은 정치적 리얼리즘을 체화한 북핵 전문가의 부재 속에, 대통령이 시간표를 정해 주면 신기루든 아니든 오로지 그곳을 향해 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 하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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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가짜뉴스에 뒤늦게 분노한 집권세력

    얼마 전 MBC 에브리원 채널의 ‘어서와~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을 재방송으로 봤다. 한국에 14년째 살고 있는 터키인 청년이 고국에서 여행 온 친구들과 청와대를 방문해 한국 민주화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개하면서 사망자가 2000명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친구들은 “2000명이라니…”라며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사실 5·18 희생자는 200여 명이며 최대한 많이 잡아도 600여 명이라는게 공식 통계다. 5·18 보상자 통계에 따르면 사망자 240명, 행방불명자 409명이 보상금을 신청했으며, 이 중 보상금이 인정된 경우는 사망자 154명, 행불자 70명이다.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 5·18 기념재단 등 4개 단체의 2005년 발표에 따르면 165명이 항쟁 당시 숨졌고, 행방불명이 65명이며, 상이 후 사망추정자가 376명이다. 물론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진상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많은 이들이 2000명 사망설을 믿었다. 필자도 공식 조사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2000명이 넘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희생자 숫자는 정부 공식 조사와 유족 단체 자체조사 등을 통해 정리가 됐다. 물론 200명이든, 600명이든, 2000명이든 5·18 광주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비극성이 달라지는 건 전혀 아니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일인 그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문재인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가짜뉴스 대책 논란 때문이다. 5·18 사망자가 2000명이라는 방송내용도 가짜뉴스로 봐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언론보도는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더라도 흑백 이분법으로 가짜라고 규정해 단죄하는 게 온당하지 않은 특수한 성격을 지닌다. 가짜뉴스의 폐해는 전세계 누구나 공감하는 주제인데도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가짜뉴스 규제 드라이브가 별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현 집권세력이 자초한 원죄(原罪)다. 가짜뉴스가 지구촌 화두로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국사회에선 광우병 괴담 같은 가짜뉴스들이 좌파 진영에서 끊임없이 생산돼 유포됐는데 진보진영 정치인들은 진위에는 침묵한 채 의도했든 아니든 그 효과만 누렸다. 심지어 19대 대선이 끝난지 1년 반이 넘은 지금도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2012년 18대 대선이 개표부정 선거였다는 주장이 횡행한다. 그런 내용의 영화를 제작해 지난해 개봉한 이는 서울시 산하 교통방송의 진행자로 활동 중이다. 만약 18대 대선 개표 조작설에 집권여당도 같은 의견이라면 지금이라도 국정조사나 특검으로 진실을 드러내자고 나서야 할텐데 조작설이 야기하는 보수정권의 정당성 침식 효과만 즐길 뿐이다. 집권 세력은 좌파진영이 생산한 가짜뉴스 효과는 즐기면서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논란을 비롯해 불리한 뉴스는 일부 대목을 문제 삼아 가짜뉴스로 몰아붙인다. 정부 여당이 말하는 가짜뉴스의 범주도 그때그때 달라진다. 법무부 장관은 가짜뉴스란 허위·왜곡 정보를 뜻한다고 하는데 여당에선 부분적인 하자라도 발견되면 가짜뉴스로 규정한다. 2014년 9월 이른바 ‘세월호 7시간’을 소재로 횡행하던 가짜뉴스들에 발끈해 사이버명예훼손 전담팀을 구성하고 고소고발 없이도 선제적으로 수사에 나서자고 주창했던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이 요즘은 가짜뉴스 문제에 오불관언하는 것도 이중적 태도다. 가짜뉴스는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상업적 또는 이념적·정치적 목적에서 허위 조작 정보를 뉴스 형태로 만들어 퍼뜨리는 행위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뉴스인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는 가짜뉴스의 진원지를 영국 BBC 방송이 추적한 결과 마케도니아의 소도시에 사는 10대들이 광고수익을 올리려고 짜깁기 해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에도 이미 가짜뉴스 주문 제작 업체들이 성업 중이다. 두번 째는 의도적으로 객관과 주관을 뒤섞고 팩트들을 교묘히 연결시켜 수용자의 머릿 속에서 진실과 정반대의 결론을 형성하게 하는 가짜뉴스다. 세 번째는 팩트 확인 부족이나 착오로 사실과 다르게 보도하는 경우다. 이 셋 중 행정적·범사회적 차원의 대책은 첫 번째 가짜뉴스에 국한돼야 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당하는 입장에서 억울하고 속이 타도 언론중재위와 법원 판결, 그리고 언론사 내부의 데스킹 시스템과 수용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걸러져야 한다. 사실 정치적·이념적 성격을 띤 가짜뉴스의 대부분은 폐쇄적으로 자기진영끼리 유통된다. 게다가 SNS 업체나 인터넷 검색업체의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필터링, 즉 원하는 뉴스만 맞춤형으로 소비하게 하는 시스템과 결합돼 자기 집단들끼리 편중된 인식을 심화시켜주는 기능을 할 뿐 반대진영을 포섭하는 확장 능력은 떨어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뉴스 대부분을 가짜뉴스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쏟아진 보도들 가운데 부정확하거나 치우친 게 있다고 해도 큰 방향이 사실과 반대 쪽을 향한 것은 아니다. 지금 여권에 불리한 뉴스들도 마찬가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망자가 2000명이라는 방송 내용처럼 일부 틀린 팩트가 있으면 제작자나 수용자의 상호관계에서 고쳐나가면 된다. 규제와 처벌 대상이 아니다. 정부 여당이 진정 가짜뉴스를 줄이고 싶으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가짜는 즐기면서 불리한 건 가짜뉴스로 비난하려는 습성부터 버려야 한다.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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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비핵화 엉클어뜨리는 햇볕정책 욕구

    문재인 정부의 요즘 행보를 국제사회의 눈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많을 것이다. 비핵화의 결정적 고비인데 북한을 견인할 유일한 수단인 대북 제재 완화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유럽 순방에서 대북 제재 완화 협조를 요구한 것은 북핵 문제 접근법의 전환 의지를 공식화한 사건이다.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에 온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방점이 거기에 있었다면 꺼낼 필요도 없는 공자님 말씀이었다.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는 제재 완화였을텐데 이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우리 스스로 새로운 조건과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 조치 해제 검토 발언,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 결정으로 이어져온 행보에 깔린 의중을 분명히 드러낸 결정판이다. 그것은 바로 국가관계의 기본 접근법인 ‘연계(linkage) 원칙’으로부터 이탈하겠다는 선언이다. 연계 원칙은 상대국이 호의적 행동을 보이면 보상하고 악의적 행동을 보이면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압박은 버리고 선물에 집중할 의향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이는 핵심 청중, 즉 김정은을 겨냥한 립서비스로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당신을 대변해주고 있으니 경계심을 풀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집권 후 1년 넘게 억눌러온 햇볕정책 DNA의 분출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어 ‘햇볕정책 버전 스리(3)’를 본격화하고 싶은 것이다. 엄존하는 대북제재 시스템 내에서만 운신해야 했던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진전이 비핵화를 촉진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국제 제재라는 맨홀 뚜껑을 돌파하려 하고 있다. 여기엔 김정은은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지만 초식동물처럼 경계하는 나머지 실행을 주저하고 있으므로 제재를 완화해 안심시키고 지원해주면 비핵화 실행에 나설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런 판단은 부정확하다. 첫째, 북한이 핵 포기 후 미국이 적대적으로 표변할까 봐 걱정돼 비핵화를 머뭇댄다는 가정 자체가 근거 없다. 흔히들 그런 논리의 근거로 이라크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최후를 예로 드는데, 이는 피상적인 관찰이다. 카다피는 2003년 말 핵 포기 이후 7년 여 지나 발발한 민주화 혁명 때 양민과 반군을 무차별 학살하다가 유럽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에 의해 제압된 것이지 미국이 표변해서 최후를 맞은 게 아니었다. 후세인은 지역 패권주의적 성향이 강해 세계 석유공급의 중심인 주변국들에 대해 끊임없는 침탈을 해 미국 주도로 방대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야 했고, 이를 유지하는데 매일 천문학적인 비용과 인력이 소요되는 등 미국에겐 십 수년간 참기 힘든 골칫덩이였다. 그런 갈등이 곪고 곯다가 결국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 북한의 경우는 핵을 포기하고 남북간에 군사적 신뢰관계가 구축돼 한국 일본에 대한 도발 위협이 없어지면 미국이 적대적으로 대할 이유가 없다. 노동당 중앙위 소속 핵심 두뇌 수천 명이 대미 전략을 짜는 북한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따라서 김정은이 비핵화 실행에 나서지 않는 것은 신뢰구축이 충분치 않아서가 아니라 핵 포기 결단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게 타당하다. 남북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진전시켜 비핵화를 촉진한다는 논리도 틀렸다. 비핵화가 안 된 상태에서는 남북관계 진전이 불가역적인 위치에 오를 수 없다. 핵 협상이 깨져 북한이 다시 핵·미사일 도발을 하면 제재는 더 강경해지고 남북경협 마저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를 통한 중재자 역할은 효용이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물론 집권세력 내부에서도 햇볕을 수단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은 강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남북관계 가속 페달을 밟는 바탕에는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남북간 평화교류, 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뤄진다면 그게 비핵화를 놓고 살벌한 대립구도를 이어가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위험한 생각의 근원에는 같은 민족, 동족인데…라는 신앙 같은 이데올로기가 있으며, 더 근본적으로는 좌파운동권 진영의 숙원, 즉 냉전체제를 해체해 분단모순을 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설령 다행히 김정은이 진심으로 비핵화 의지를 확고히 갖고 있다 해도 달래고 투정받아 주는 접근법을 쓰면 김정은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 즉 ‘주동적 비핵화’를 고집할 것이다. 그것은 아주 멀고 까다로운 우회로이며 곳곳에 난파 위험이 널린 코스가 될 것이다. 현실정치는 상대방의 말이나 인상이 아니라 행동, 상대가 처한 객관적 조건을 봐야 한다. 2001년 3월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 김정일과 만났을 때 받은 인상을 전하며 “김정일은 식견이 있는 지도자”라고 칭찬하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자기 국민을 굶어죽게 만드는 김정일이 어떻게 정치지도자라 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두 견해 중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웠는지는 그 후의 역사가 말해준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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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내가 전쟁을 막아 수백만을 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줄곧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내가 한반도의 전쟁을 막았다. 수백만 명을 구했다”는 자화자찬이다. 싱가포르 회담 직후 비판론에 맞서 꺼내든 이래 수개월째 반복되는 그의 주장은 과연 팩트에 근거한 것일까. 트럼프는 “내가 취임할 때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방아쇠를 당겨 전쟁에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2009.1~2017.1) 핵심 인사들은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여러 군사적 옵션들을 검토했지만 한국이 감수할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반박했다. 워싱턴의 외교전문가도 필자에게 “미국은 어떤 안보 이슈든 대화부터 군사행동까지 모든 옵션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그야말로 검토일 뿐 오바마 정부가 진지하게 군사행동 쪽으로 기운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사검색 시스템인 카인즈(KINDS)에 ‘전쟁 북한 핵 미국 선제타격’을 검색어로 넣어봤다. 트럼프 당선일인 2016년 11월8일을 기점으로 그 이전 8년간은 256건이 떴는데 실제 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일부터 지난해 말까지 1년 1개월 여 사이에는 무려 706건이 쏟아졌다. 한반도의 전쟁 발발은 크게 두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남침 또는 미국의 북핵시설 폭격이다. 그런데 북의 남침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한 현실화되기 어렵다. 미국의 북폭도 트럼프 취임 전에는 가능성이 사실상 제로였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나라인 미국이 자국민 수십만 명이 북한의 보복 포격 사정권내에 있고 미국 경제가 칡뿌리처럼 한국에 얽혀 있는 상태에서 전쟁을 강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흔히들 빌 클린턴 행정부(1993.1~2001.1)가 1994년 북폭 하려 했다고 하지만 이는 다소 과장됐다. 필자는 1994년 당시 미 국방장관으로 영변 폭격 계획 주도자이며 책임자였던 윌리엄 페리 전 장관과 로버트 갈루치 북핵특사를 2006년, 2007년 세미나에서 만나거나 인터뷰했다. 요지는 1993년부터 수개월 동안 폭격 계획을 검토했고 전쟁 대비를 명령했지만 실제 실행을 결정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준비는 충분히 했지만 선호한 코스는 아니었고 결국은 채택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북폭이 임박해 주한 미 대사관이 미국인들을 다 소개(疏開)시키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김영삼 정부때 의전수석비서관과 통일원 차관을 지낸 김석우 씨는 최근 기고 등에서 “주한 미 대사관이 유사시 미군 가족을 소개시키기 위한 계획안을 일상적으로 점검하는 안내서를 외교안보수석이 입수해 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외교안보수석의 메모를 본 김 대통령이 다음 날 클린턴에게 전화해 전쟁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즉 클린턴 정부의 북폭론은 계획은 입안됐지만 여러 선택지 중의 하나였으며 한미간에 사전협의도 없었던 단계였던 것이다. 지난해 전쟁위기론은 김정은이 미사일 개발에 급피치를 올리는 상황에서 하필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라는 미 역사상 가장 불가예측한 인물이기 때문에 고조된 것이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포함한 제반 구조적 여건이 불가피하게 전쟁 쪽으로 기운 적은 없었다. 위기를 야기한 당사자가 자기 덕분에 위험이 없어졌다고 고마워하라고 하는 행태 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전쟁 대(對) 평화’ 프레임이 과장되게 설정돼 비핵화라는 본질을 흐리는 현상이다. ‘현재 우리가 추진하는 것은 전쟁의 대체물로 선택한 것’이라는 프레임을 만들면 자신이 밀어붙이는 방향에 대한 비판을 ‘그럼 전쟁을 원하는 것이냐’고 몰아붙일 수 있게 된다. 과거 극우세력이 ‘적화냐, 안보냐’고 했던 것과 방향은 정반대지만 특성은 비슷한 프레임 짜기다. 물론 그렇게 해서 누가 정치적 이득을 보든 말든 중요한 건 비핵화의 실현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전쟁 망령을 새 평화로 대체하는 것”이라 하고, 문 대통령이 “남북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를 향해 가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현 진행 방향은 북한이 미래 핵만 포기할 뿐 파키스탄처럼 수십 개의 핵폭탄을 은밀히 지닌 사실상의 핵 보유국을 향해 가는 궤도일 수도 있어 걱정된다. 김정은은 집권 후 5년 반 동안 4차례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면전에 대고 도발하는 전략을 취해왔으나, 지난해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부터는 핵연료는 계속 생산하면서도 순한 양 같은 행보를 취하고 있다. 북한이 1990년대 후반 핵폭탄 제조 기술을 몰래 전수받은 파키스탄의 경우 1998년 6차례의 핵실험으로 수년간 엄청난 핵 포기 압력을 받았지만 그 뒤 조용히 지내왔고 어느 순간부터 누구도 특별히 문제를 삼지 않는다. 망토 속에 있는 것으로 확실시 되지만 확인은 하기 힘든 그런 ‘빽’을 지닌 채 경제에 매진하는 것, 그게 김정은이 노리는 길일 수 있다.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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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완장들이 뒤집은 폭력시위의 진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보다 훨씬 처벌이 무거운 죄목인 ‘소요(騷擾)죄’는 유신시대와 계엄령 때 외에는 딱 두 번 등장했다. 1986년 5·3인천사태와 2015년 11월 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시위 때다. 필자는 두 현장을 모두 봤다. 5·3사태 때의 기억이다. 옛 인천시민회관 앞 사거리에 앉아 구호를 외치던 수만 명의 시위대속으로 갑자기 경찰 페퍼포그 장갑차(개스차)가 곤봉을 휘두르는 백골단(사복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깊숙이 치고 들어왔다. 그런데 페퍼포그 차의 시동이 꺼져 군중 속에 갇혀 버렸다. 백골단은 이미 물러난 상태였다. 시위대가 각목 등으로 차문을 떼어냈다. “화염병 가져와!” 곧 화염병을 던져 넣을 기세였다. 그때 다시 시동이 걸린 페퍼포그 차는 간신히 도주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만약 화염병을 넣었으면 폭발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났을 것이다. 군중집회에선 순식간에 예기치 않은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 있음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그런 걱정이 다시 든 것은 거의 30년 후인 2015년 11월 14일 토요일 오후의 민중총궐기 현장이었다. 당시 채널A에 파견 중이던 필자는 당직 근무였다. 채널A는 미리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과 동아미디어센터 옥상에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집회 현장을 처음부터 밤까지 생중계했다. 별다른 충돌 없이 진행되던 집회에서 오후 3시를 넘어서면서 불길한 조짐이 일었다. 차벽으로 세워놓은 경찰버스들에 일부 시위대가 밧줄을 걸고 당기기 시작했다. 일부는 버스 지붕에 올라갔다. 경찰버스들이 맥없이 끌려 나가자 이를 막으려 앞으로 나선 의경들을 향해 시위대는 파이프와 쇠사다리를 마구 휘둘렀다. 경찰 살수차가 물을 뿜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였다. 그 후 벌어진 폭력사태는 도심 시위 사상 가장 과격한 폭력 중 하나로 기록됐다. 경찰 차량 52대가 부서지고 경찰 192명 등 수백 명이 다쳤다. 농민 백남기 씨가 경찰의 직사살수에 쓰러져 숨지는 비극도 벌어졌다. 경찰은 5·3사태 후 처음으로 소요죄를 적용했으나 검찰 기소단계에서 소요죄는 빠졌다. 대개 폭력사태가 벌어지면 누가 먼저 폭력을 휘둘렀는지를 놓고 평행선 논쟁이 벌어진다. 그러나 아예 처음부터 제3자가 현장을 봤다면 누구 책임인지가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 이날 채널A의 생중계는 폭력 유발자 논쟁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많은 시청자가 지켜봤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지난해 5월 31일 폭력시위 책임을 물어 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5·3사태 때는 전두환 정권이 집회 자체를 불허한 채 페퍼포그 차를 돌진시키고 시위대를 마구 구타하는 등 폭력을 행사했지만, 민중총궐기는 분명히 시위대가 먼저 폭력을 휘둘렀다. 그런데 불과 3년도 안 돼 그날의 진실이 뒤집어 졌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최근 “과도한 경찰권 행사였다”고 결론짓고, 경찰에 손해배상청구소송 취하를 권고했다. 수많은 국민이 당시 상황을 지켜봤는데 경찰 스스로 정반대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물론 경찰 스스로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위원회는 경찰청 소속이지만 위원 10명중 7명이 민간인인데 대부분 진보 좌파 성향 활동가들이다. 위원회는 쌍용자동차 사태, 용산 화재참사에 대해서도 과잉진압 결론을 내렸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우리 사회 왼쪽의 저수지 수문(水門)을 활짝 열었고 진보에서도 극단에 있는 활동가들이 대거 정부에 입성했다. 각종 위원회, 산하 단체, 공기관은 물론이고 장관이 데리고 들어온 인사가 정책보좌관 직책을 만들어 문고리 권력을 자임하기도 한다. 만약 문재인 정권이 균형감을 가진 중도 인사들을 등용해 중립적 자세로 적폐청산을 했어도 큰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폐단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적인 결정에 요구되는 균형감과 객관적 판단능력을 압도하는 이념적 경향성을 지닌 이들이 대거 진출해 칼을 휘두르니 엘리트 공무원들이 공직을 떠나고, 경찰대 학생회장 출신의 젊은 현직 경감이 경찰청 정문에서 1인 시위에 나설 정도로 억울해 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완장들이 뒤집어 버린 진실은 언젠가 제자리를 찾겠지만, 그 과정에서 더 깊게 베인 이념적 양극화의 상처는 어쩔 것인가.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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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촛불이 혁명이라는 착각

    A 국장을 알게 된 건 10여 년 전이다. 필자의 취재 분야와는 무관한 부처 소속이지만 매우 겸손하고 인품이 좋아 친분을 쌓았다. 사심 없고 명석하며 책임감이 강한 전형적인 엘리트 공무원이었다. 안팎의 좋은 평가를 받으며 장·차관 1순위 코스를 달리던 A 국장이 최근 사직을 고민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주말 연락했다. 그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서 고민하는 것”이라며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밝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동료들의 설명은 달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른바 적폐청산위원회에 불려 다니더니 다른 사람이 된 듯 의욕을 잃어 갔다는 것이다. 그가 적폐위에 소환된 것은 박근혜 정부 때 추진했던 주요 시책 가운데 하나가 그의 관할이었기 때문이다. A 국장과 통화를 마친 뒤 적폐청산이 관행처럼 자행돼온 비리·특권의 청산을 넘어 보수정권의 모든 걸 부정하고 난도질하는 데까지 이른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봤다. 그런데 같은 시간대인 1일 청와대에서 열린 당정청 전원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함께 이뤄내야 할 시대적 소명은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이라며 적폐청산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다시 내세웠다. 궤도수정이 불가피해 보였던 소득주도 성장론에도 강하게 힘을 실어줬다. 실물경제 현장과 공직사회는 아우성인데도 강한 톤으로 ‘마이웨이’를 외치는 논리적·심리적 바탕은 무엇일까. 답의 실마리를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4일 국회연설에서 찾아봤다. 문 대통령은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되살렸다”고 거듭 강조했고, 이 대표도 촛불혁명을 6차례 언급했다. 그들의 연설에는 촛불집회는 박근혜 퇴진과 사회경제적 개혁을 요구하는 주권운동 차원을 넘어 나라의 틀을 바꾸라는 혁명이었으며, 따라서 현 정권은 혁명을 완수하라는 국민적 위임을 받았다는 인식이 선명히 깔려 있었다. 어떤 사건을 혁명이라 부르든 말든 그건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당이 촛불집회와 탄핵, 대선에 이르는 과정을 혁명으로 여기고 있으며, 당시 시민들의 요구가 혁명을 원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그 타당성을 따져봐야 한다. 혁명은 체제의 ‘정당성의 원칙(principle of legitimacy)’이 바뀌는 것이다. 왕정이 공화정으로 바뀐 프랑스혁명이 대표적이다. 공화정 내에서도 기존 헌정 틀을 벗어난 방법으로 기존 헌법이 무너지고 새로운 헌정체제가 등장하면 혁명이다. 1960년의 4·19 혁명과 1987년의 6월민주항쟁은 그런 의미에서 혁명이었다. 영구집권 체제를 구축한 5공 헌법의 철폐를 요구한 6월항쟁은 참가자들이 강제연행과 직격탄, 죽음까지도 무릅쓰고 시위를 벌여 이뤄냈다.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라 1980년대 들어 7년간 수많은 젊은이들이 고민하고 토론하고 끌려가면서 거의 매일 벌인 크고 작은 시위들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봉건적 권위주의를 벗어나는 민주주의 혁명 단계를 거쳤다. 그러나 촛불집회부터 탄핵, 문재인 정부 출범에 이르기까지 벌어진 일은 그 과정과 절차, 시민들의 요구내용 등 모든 면에서 혁명으로 규정하긴 어렵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 시위 언론자유를 누리며 집회를 했고, 탄핵과 선거라는 헌법 절차에 따라 정권이 바뀌었다. 집회 주최는 좌파 단체였지만 참가자 대다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대한민국의 근간 가치를 여전히 지지하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시민이었다. 물론 정치와 시민간의 소통 단절, 반칙과 특권문화 등 사회문화적 차원에서는 대전환의 계기가 됐지만, 국체(國體)와 정치·경제 체제의 혁명을 요구한 건 아니었다. 당시 민심의 대다수가 원했던 것은 개혁, 소통, 반칙과 특권의 폐지였다. 정치 경제 안보 외교의 근본 틀을 바꾸라는 요구는 집회 주최자 중에는 많았겠지만 일반 참가자 가운데는 소수에 불과했다. 만약 혁명이 당시 민심의 다수였다면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 결정 즈음엔 문재인 후보에 압도적 지지가 몰렸어야 했다. 하지만 문 후보 지지율은 2016년 말까지는 20%대, 2017년 3월말까지도 30%대 초반에 그쳤다. 그러다 4월초 후보 확정과 함께 ‘통합’을 강조하면서부터 중도층을 흡수해 지지율 40% 벽을 뚫었다. 물론 혁명이 아니라고 그 역사적 의미가 축소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헌정 수호 운동이었으며 민권운동, 주권운동이었던 촛불집회를 단순히 레토릭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혁명이었다고 규정하면 모든 걸 바꿔야 한다는 집착에 빠지게 된다. 지금 자신들이 밀고 가는 방향이 국민적 동의를 받았다는 오만, 국민의 뜻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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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사생아’ 종전선언이 효자 되려면

    북한 김정은에게 종전선언은 ‘복덩이’다. 주한미군 철수 등 북한을 적으로 가정한 모든 현존 질서의 변화를 요구할 말발이 생기며, 대내적으로는 체제안보를 이뤄낸 지도자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덤으로 남한 내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 남남(南南)갈등을 불붙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보물단지인 종전선언 카드는 사실 북한은 꿈도 꾸지 않았는데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다.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은 줄기차게 요구해 왔지만 종전선언은 꺼낸 적이 없었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 가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거다. 현대사에서 유례가 없는 종전선언이라는 아이디어를 만든 건 임기만료를 1년 여 앞둔 노무현 청와대였다. 힌트는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06년 11월 베트남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결짓는 공동서명을 할 수 있다”고 말한 데서 얻었다. 하지만 당시 부시 대통령이 말한 전쟁 종식 서명은 평화협정 체결을 의미하는 것이며, 북핵 폐기 완료를 전제로 가능하다고 미 행정부는 거듭 분명히 했다. 그런데 청와대 참모들은 평화협정에서 분리시킨 이벤트 형식의 종전선언을 창안해 워싱턴을 상대로 끈질긴 설득전을 벌였다. 하지만 미국은 세리머니 성격의 선언은 불필요하며 비핵화 완료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었다는 게 당시 직간접으로 관여한 한미 고위 외교관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부정확한 보고 탓인지 미국이 거의 동의해준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2007년 9월 호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 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의 모두 발언 뒤 “각하께서 종전선언 말씀을 빠뜨린 것 같다”고 했고 부시 대통령이 “전쟁을 끝낼 평화조약의 체결 여부는 김정일에 달려있다”고 답하자, 노 대통령은 또다시 “김정일 위원장이나 우리 국민은 그 다음 얘기(종전선언)를 듣고 싶어한다”고 채근했다. 이에 부시 대통령이 퉁명스런 표정으로 “내가 그것을 어떻게 더 이상 분명히 할 수 있느냐”고 하는 이례적인 장면까지 연출됐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약 한달 뒤 평양에서 김정일에게 종전선언을 제안했고 ‘3국 또는 4국 정상이 한반도에 모여 종전선언을 하는 걸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긴 10·4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미국은 “종전선언은 북핵 폐기가 종료된 뒤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사실 한국전 휴전협정은 전투의 일시적 정지가 아니라 전쟁상태의 종결을 규정한 협정이어서 종전선언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서언(序言·전문에 해당)에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종전선언은 평화체제의 첫 삽을 뜬 대통령으로 레거시를 남기고 싶었던 의욕으로 임기 말에 추진되다가 불발됐고 그 뒤 10년간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올 4·27 판문점 선언에서 “연내 종전선언”으로 부활한 것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노무현 정부 시절의 종전선언 추진 경과를 정확히 전달받지 못한 것인지 트럼프 행정부가 쉽게 동의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국내 진보진영이 종전선언을 원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종전선언이 핵심주체인 미국의 동의 없이 태어났다 해서 무의미한건 아니다. 잘만 활용하면 비핵화를 촉진하는 선순환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종전선언이 북한의 비핵화 미루기 명분이 되어버렸다. 이는 종전선언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이 북한의 요구대로 새로운 관계수립과 신뢰구축을 비핵화 보다 우선시하는 구도로 작성된데 따른 부작용이다.특히 미국은 선(先)비핵화 진전, 후(後) 관계개선·체제보장이 기본원칙이지만 싱가포르 선언은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이 조선반도 평화 번영에 이바지하고 신뢰구축이 비핵화를 추동한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되어 있다. 이 논리대로면 종전선언을 통해 평화와 신뢰를 구축하는게 먼저라는 북한의 주장이 먹힐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록 의회와 행정부 내 전문가들의 반대 때문에 오락가락하지만 종전선언에 내심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1월 6일 중간선거 이전에 더 확실한 성과를 내고 싶은 욕구의 발로다. 미 중간선거는 북핵 문제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김정은의 호의에 매달려온 트럼프는 선거 후엔 정치적 부담이 줄어들고, 교착상태 지속에 따른 피로감 때문에 강경책으로의 회귀 욕구를 느낄 것이다. 특히 야당인 민주당이 상하원을 압도적 표차로 장악하면 대북 정책 기류에 상당한 변화가 올 수 있다. 김정은에겐 골든타임이 두달 반 밖에 남지 않았다. 한미 양국에겐 종전선언은 비핵화 열차가 추동력을 잃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귀중한 로켓이 될 수 있다. 다가올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현재의 교착상태가 풀린다 해도 신고 사찰 폐기 검증 등으로 이어지는 긴 비핵화 과정에서 언제 어떤 장애물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비핵화 열차는 국제제재라는 기본 채찍을 토대로 여러 당근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미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라는 당근은 써버렸다. 종전선언 마저 열차가 출발도 하기 전에 써버리면 11월 이후의 비핵화 진행은 더 힘겨운 줄다리기가 될 것이다. 비핵화 열차가 그 누구도 내릴 수 없는 본 궤도에 올라선 뒤 쓰는 게 맞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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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증오를 먹이 삼는 통치술

    “가짜 뉴스(fake news) 미디어들이 미쳐 가고 있다! 완전히 돌았다! 7년 후 내가 백악관을 떠나기 전에 그들은 소멸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트럼프가 말하는 ‘가짜뉴스 미디어들’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주요 언론들이다. 그는 이들 언론을 ‘국민의 적(enemy of the people)’이라고 부른다. 트럼프는 오랜 세월동안 미 국민 상당수의 신뢰를 받아온 주류 언론들을 공격하는 게 자신의 정치적 이득이 될 것이라는 계산을 한다. 자신의 지지 세력이 가장 싫어하는 미래, 즉 리버럴 진보주의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는 상황에 기여할 수 있는 이들 언론들을 매도함으로써 지지자들에게 대리배설 같은 쾌감을 준다. 상대를 도덕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적과 내 편을 확실히 나눠서 지지를 다지는 이런 전략은 좌건 우건 극단에 서있는 정치인들이 흔히 구사한다. 그러나 오로지 전략만은 아닐 수 있다. 진심으로 비판론자, 이념적 반대 진영을 경쟁 상대가 아니라 악으로 보는 시각의 발로일 수도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실제로 주류 언론을 사회악으로 여기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이들 언론이 자신이 해낸 ‘위대한 성취들’을 자꾸 비판하는 것은 언론 소유주와 그들을 둘러싼 기업, 정계, 학계의 리버럴 기득권 세력들의 사주 때문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대선 후보 시절 보수 성향 신문들을 ‘조폭적 언론’으로 부르며 공격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지자 결집이라는 전략적 차원 뿐만 아니라, 언론의 비판 뒤에 비도덕적인 동기가 숨어있다고 믿었을 가능성이 있다. 상대를 도덕성의 차원에서 경멸하기 시작하면, 상대의 비판은 더 이상 비판이 아니라 음모로 들리게 된다. 친노 계보라는 이해찬 의원이 최근 “수구 세력이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최저임금을 고리로 경제위기설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경제 현장의 실태를 전하는 소리를 수구 세력이 조장하는 음모로 보는 시각의 반영이다. 정치학자들은 자신 스스로 매사를 전략적·공작적 차원에서 기획하고 전술을 짜서 대처해온 정치인들이 주로 그런 성향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타인의 비판을 비도덕적 동기가 깔린 것으로 여기는 태도의 바탕에는 ‘자기 객관화 능력 결핍증’이 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이 부족한 탓에, 자신이 이뤄낸 ‘너무도 훌륭한 결과물’이 비판받는 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음모론으로 해석해버린다. 음모라 여기면 비판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여권의 터줏대감들이 보수를 진보의 상대 개념이 아니라 궤멸 대상, 친일파 후손, 재벌 협력자 등으로 인식하는 것도 그런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자유한국당 일부 ‘올드보이들’이 집권세력을 종북 주사파라고 주장하는 것과 닮은꼴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이 보수 청산으로 치달으려는 경향성도 그런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서 나온다. 물론 구시대 잔재의 청산은 필요하다. 광복 직후에는 친일파 청산이, 민주화 후에는 군부독재 청산이 철저히 이뤄졌어야 했다. 친일파 청산을 광복직후 제대로 못한 채 50년도 넘게 지난 뒤에 특정 이념세력이 주도하겠다고 나서다 보니,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직후에도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민족지도자들이 정작 그 시대를 경험해 보지도 않았던 이들에 의해 친일파로 몰리는 왜곡이 빚어진다. 독재청산도 6월 민주화 항쟁 직후나 늦어도 김영삼 정부 때는 이뤄졌어야 했는데 1990년 3당 합당의 후유증으로 어정쩡한 상태로 봉합됐다. 이에 대한 청산은 독재시대의 습성에 젖어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유린한 행위에 한정해 단죄해야 하는데, 우파 정책 전반을 적폐로 몰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가치의 상대성·다양성을 외면한 채, 유아독존 절대선의 눈으로 세상을 재단했던 정치세력의 수명은 총칼에 의존하지 않는 한 길지 못했다. 운 좋게 상대의 실수나 자멸에 편승해 승자의 위치에 올라도 반짝으로 그친다. 트럼프는 앞으로 7년 더 백악관에 있는다고 은근슬쩍 장담했지만 증오를 부추겨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그런 정치는 미국이든 어디든 미래가 없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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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기홍]러시아의 북한 노동자

    “그들은 아침 7시부터 밤 10시 또는 자정까지 일한다. 쉬는 시간은 30분씩 두 번의 식사시간이 전부인데 밥과 말린 생선을 먹는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한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축사업자가 2일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전한 그곳 건설현장 북한 노동자들의 하루 일과다. 다른 부동산개발사의 중역은 “그들은 군인같이 기합이 들어있다”고 했다. 과거 레닌그라드로 불렸던 이 도시의 건설 붐을 지탱하는 게 북한 노동자들이라고 한다. ▷지난해 9월 채택된 유엔 대북제재는 북한 노동자에게 신규 노동허가를 내주는 걸 금지시켰다. 그러나 WSJ가 보도한 러시아 내무부 기록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이후 1만 명이 넘는 북한 노동자가 신규 등록했다. 올 들어 새로 발급된 노동허가증도 700장이 넘는다. 고용알선 업체들 가운데는 북한 기관과의 합작 형태가 많은데 이 역시 제재 위반이다. ▷유엔 제재 이전에는 10만여 명의 북한 노동자가 해외에 송출돼 20억 달러를 벌어들였으나 제재 후 여러 나라가 비자 연장을 취소했다. 카타르는 최근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지난해 9월 1000여 명에서 현재는 150명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2만4000명을 고용하고 있는 러시아는 공식적으로는 제재 준수를 외치면서 뒷구멍을 열어주고 있다. ▷해외송출 북한 노동자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시베리아 벌목공은 1966년 김일성과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이 북한 죄수를 송출시키기로 합의해 보낸 강제노역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건설은 물론 국방, 정보기술(IT) 등 분야에도 진출하고 있고 자원자 중에서 선발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돈을 벌려고 왔지만 북한 당국에 국가계획분이란 명목으로 돈(2016년 기준 연간 6000달러)을 내고 나면 집에 송금할 돈이 안 남을 때가 많다. 일자리를 구할 때와 귀국할 때 현지 북한 간부들에게 빼앗기고, 러시아인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3중 착취 구조다. 해외송출 북한 노동자의 참상은 대북제재에 앞서 보편적 인권 문제라는 점을 우리 정부가 새겨야 한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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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기홍]수술대 오르는 경찰대

    고참 경찰관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떠도는 얘기다. 과거 순경 시험엔 ‘다음 중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 아닌 것은?’이라고 묻고 ‘Bear’, ‘Tiger’ 등이 예시되는 문제도 등장했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 경찰관의 이미지도 과거엔 단순 무식형 설정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경찰은 상전벽해다. 드라마 속 주인공 경찰은 샤프한 엘리트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경찰에 엘리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씨앗은 1981년 경찰대 설립에서 뿌려졌다. ▷경찰대는 학비와 군역(軍役) 면제, 졸업 후 경찰서 형사반장급인 경위 임용 등 파격적인 혜택을 내걸었다. 수재들이 모여들었고 한 해 120명씩 배출된 졸업생은 간부직을 속속 장악해 갔다. 5월 기준 총경 583명 중 320명, 경무관 76명 중 51명이 경찰대 출신이다. 2014년 강신명 청장(2기)에 이어 지난주 민갑룡 청장(4기)이 배출됐다. 그런 경찰대가 개혁의 수술대에 오른다. 지금 같은 경찰대의 고위직 독점 현상, ‘라인 챙기기’를 깨자는 취지다. ▷최근 발족한 ‘경찰대학 개혁추진위원회’가 경찰대 개혁안 논의에 들어갔다. 일반대 재학생·졸업생도 편입하는 로스쿨형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학비 면제와 병역 혜택도 폐지된다. 경찰대 출신들은 억울해하는 분위기다. 경찰은 간부후보생(경위 임용), 사법시험 출신(과장급인 경정 임용) 등 경쟁 상대가 많은 탓에 같은 기수끼리도 승진 경쟁이 극심해 검찰처럼 기수 문화가 형성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우수 인재 충원이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016년 순경 공채 합격자 3126명 중 고졸 이하 학력은 5.2%에 불과할 만큼 경찰 인력 수준은 상향됐다. 로스쿨 출신들 사이에도 경감으로 임용되는 경력 공채는 바늘구멍 같은 인기 진로다. 게다가 경찰대 출신들이 상층부를 이뤘지만 드루킹 수사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경찰은 여전히 권력의 눈치만 살피는 B급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직 자체가 업그레이드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인재가 와도 소용없다. 경찰 개혁이 하향 평준화로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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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광장’의 이명준이 2018년에 살았다면

    23일 타계한 한국 문학의 거목 최인훈의 1960년작 ‘광장’에서 주인공인 철학과 대학생 이명준은 월북자 아버지가 대남방송에 나왔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끌려가 구타당한다. 남한에 환멸을 느낀 그는 코뮤니즘 이상사회를 찾아 월북하지만 북한은 혁명은 없고 혁명의 화석만 남아있는 사회였다. 6·25전쟁에서 포로가 된 그는 중립국행을 택한다. 대학시절 이명준을 소재로 많은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남과 북 어느 쪽에도 마음을 둘 수 없었던 이명준 처럼 1980년대 대학가에도 회색인이 많았다. 군사독재 치하에서 학생운동에 뛰어든 학생들 가운데는 2, 3학년에 접어들면서 운동권 지도부에 대해서도 회의를 느끼게 되는 이들이 많았다. 수만 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불가피한 교조주의적 폭력혁명 노선 앞에서 많은 학생들이 ‘이 길 밖에 없는가’를 고민하고 배척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운동권을 떠난 학생들은 군사독재라는 현실을 용납할 수도, 혁명전사(戰士)가 될 수도 없는 회색인 상태로 떠돌았다. 그러다 결국 1987년 NL지도부가 직선제 쟁취를 내걸며 온건 노선으로 돌아서자, 떠났던 학생들도 다시 시위 대열에 동참했고, 6월 항쟁의 성공으로 젊은이들이 마음 둘 ‘준거집단’ 없이 방황해야하는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좌우 극단의 소수를 제외하면 진보든 보수든, 어느 쪽이어도 선악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상대성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는 상당수 사람들을 다시 회색인으로 만들었다. ‘보수’라 칭할 자격도 없는 오른쪽 극단 세력들이 권력 핵심부에서 국정을 유린한 실태가 드러나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발전을 중시하는 건전한 보수주의를 지향했던 이들은 더 이상 마음 줄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보수는 민주 법치 인권 복지와 배치되는 개념이 아닌데, 그런 핵심 가치들을 전혀 체화하지 못한, 독재시절부터 기득권을 누려온 인사들이 넘쳐나는 자유한국당을 더 이상 지지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여론조사 무응답층, 지방선거 전날까지도 40% 이상에 달했던 부동층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보수야당을 수술할 혁신비상대책위원장으로 균형감각과 통찰력을 지녔다는 평을 받아온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가 선정됐다는 소식에 많은 회색인은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 비대위원장이 지난해 KLPGA 골프대회 프로암 초청을 받아 라운딩을 했다는 소식에 가슴 한구석에 찬바람이 도는 느낌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법적·윤리적으로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사안이라 해도, 그 역시 ‘구름위의 잘 나가는 멤버’였구나라는 인상을 준건 사실이다. ‘반(反)헌법행위자 열전’을 만들고 있는 좌파 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22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우리 보수는 사회에 대한 책임보다 사익을 취하기 위해 힘센 놈을 쫓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며 역사적으로 공동체를 위해 책임질 보수, 보수의 가치를 지킨 인물로 초대 부통령 이시영, 2대 부통령 김성수, 김영삼 전 대통령 등 세 명을 꼽았다. 보수 집권 기간이 60년 가까이 되는데 보수주의자로 인정될 만한 이는 그렇게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은 회색인들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준을 보여주고 있을까. 집권세력이 정책과 역사관에서 드러내는 낡은 이데올로기적 그림자는 논외로 쳐도, 그나마 때묻지 않은 인물로 여겼던 인사들 마저 검증의 현미경 위에 올라가면 추레한 면모가 드러나고 만다. 노동·인권변호사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는 서초동 아파트 다운계약서를 문제삼는 질문에 2000년 당시의 관행이라고 서면 답변했다. 공인중개사 3명에게 필자가 물어봤다. 다운계약서 관행이 있었던 건 맞지만, 당시에도 탈세를 돕는 행위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매도자가 양도소득세 면제 대상인 경우의 다운계약은 매수자가 취득세를 기준시가를 기준으로 내기 위해 등기소에 제출할 계약서를 별도로 만드는 흔한 관행이었지만, 매도자의 양도소득세를 줄여주기 위한 다운계약은 탈세행위를 돕는 것이어서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계약서 명기 금액 초과분은 현찰로 수천만 원을 배낭에 담아와 건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김 후보자는 청와대 비서관 퇴임 후 2년간 기술보증기금에서 비상임 이사를 지내며 6088만 원을 받고, 이 기금에서 자금을 지원받은 업체의 감사를 겸직하며 주식 1932주를 가진 것에 대해서도 “선임 과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경영에 관여하지 않아 기금 지원 업체라는 걸 몰랐다”고 답변했다. 그런 답변 대신 “대법관 후보로서 참으로 부끄럽다. 뼈저리게 뉘우친다”고 했다면 그래도 일반인과 다른 높은 윤리의식이 돋보였을 것이다. 하기야 약자의 편을 자임했던 이들 역시 ‘구름위의 멤버’였음을 깨닫고 실망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명준이 2018년 광화문광장에 서면 어떤 생각을 할까.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의 뒷머리 난간에 기대 우두커니 갑판을 바라보며, 소학교 때 교사(校舍) 담벼락에 기대어 햇볕을 쬐던 시간을 떠올릴 때 처럼 혼자만의 밀실로 침잠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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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진보 장기집권론에 끼는 먹구름

    지지난주 토요일 오전 11시40분 경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성북동 방향으로 가는데 삼청터널 수백m 앞부터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거의 막히는 일이 없던 길이기에 의아했다. 10여 분 넘게 걸려서 삼청터널을 빠져나와보니 삼청각으로 들어가는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었다. 이틀 후 신문을 보다 이유를 알게 됐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딸의 결혼식이 삼청각에서 있었던 것이다. 과거 요정의 대명사였던 삼청각은 현재는 예식장 겸 한식당이다. 집권당 의원들과 국무총리 장관 등 고위직들이 대거 참석했다고 한다. 처음엔 ‘설마’하며 믿기 힘들었고, 잠시 후 추 대표 등 여권인사들이 주장하는 ‘진보 20년 집권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꿈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보 장기집권을 이루고 싶으면 보수의 장기집권 꿈이 어떻게 물거품이 됐는지를 봐야한다. 불과 2년 반 전만 해도 자유한국당의 전신(前身) 새누리당은 더불어민주당보다 지지율이 2배 가량 높았다. 2015년 12월 리얼미터의 차기 대선 주자 조사에서 문재인은 김무성에게 뒤졌다. 그후 민주당이 갑자기 대단한 성취를 해내서 보수가 추락한게 아니다. 2016년 봄 박근혜 발(發) 공천파동에 이어 최순실 사태로 보수진영은 초토화됐다.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당이 죽을 쑨다고 해서 민주당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보수건 진보건 시대의 발전에 걸맞게 진화해야 한다. 즉 정반합(正反合) 과정처럼 ‘보수①→진보ⓐ→보수②→진보ⓑ’로 전개될때 합(合)의 위치에 잇는 보수②는 보수① 보다 진화된 새로운 보수여야 한다. 그러나 ②의 단계에 해당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①, 즉 김영삼정권 보다도 퇴행한 특질들을 보였다. 그 퇴행의 특질들을 요약하면 △최고 권력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법치·합법적 절차는 형식적으로만 준수하는 외피에 불과하다 △세상을 보는 눈이 수십년전에 멈춰있는 인물들을 자꾸 요직에 등용한다 △검찰 경찰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권력기관들이 정권의 사냥개 역할을 한다 △역사 교육 문화 등 국민의 생각과 감성의 영역에 정권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등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1987년 민주항쟁 이전의 집권세력과는 다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체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장을 펼치는 보수여야 했다. 당시 여권에는 YS 상도동계 출신을 비롯해 민주화에 기여한 인사들도 많았지만, 독재치하에서도 아무런 고민도 없이 승승장구했던 인사들로 다시 권력엘리트가 충원됐다. 그러면 진보ⓑ에 해당하는 문재인 정권은 과거에 비해 진화된 진보일까. 앞에 열거한 퇴행의 특질들 가운데 색깔만 달리한채 반복되는 것은 없을까. 13일 발표될 검찰 간부 인사를 앞두고 전 정부에서 기획·사정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은 줄사표를 냈다. 새 정부 기획수사에 앞장선 인물들은 승승장구한다. 각 분야에서 낙하산도 반복된다. ‘미디어오늘’ 출신으로 국정홍보처 차장을 지낸 친노 인사가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된 것은 압권이다. 진보진영의 인재풀에도 균형감각과 미래지향적 시야를 지닌 인재들이 많이 있을 텐데 한국 현대사를 친일파가 득세하고 민중이 탄압받아온 질곡의 역사로만 인식하는, 수십년전 독재 시절처럼 ‘선악(善惡)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인사들이 등용되고 있다. 성장과 분배의 두 가치를 고루 체화한 진보성향 경제전문가들도 많을 텐데 실물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기업들이 글로벌경쟁에서 어떻게 고군분투하는지 전혀 모르는 이들이 각종 위원회 등에 들어가 완장을 찬다. 이런 방향으로 간다면 문재인 정권의 내리막은 경제에서 시작될 위험이 크다. 문재인 정권은 진화한 새로운 진보가 될 여건이 충분했다. 보수의 몰락으로 중도 진영의 수많은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호조건이다. 그런데 좌 쪽에서도 극단에 있는 인물들이 등용된다. 자기들끼리의 끈 때문이다. 실세들의 사람 챙기기, 그리고 집권당 대표의 자녀 결혼식에서 보듯 특별히 긴장해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 안이함…수평선 너머에서 피어오르는 먹구름이다. 좌파든 우파든, 극단은 생명력이 길 수 없다.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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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기홍]“김광석 타살설 근거 없다”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은 주로 부유한 과부를 노렸다. 마녀를 가리는 네 번째 방법이 ‘물 시험(Wasserprobe)’으로 혐의자를 묶은 채 물에 빠뜨린다. 물은 깨끗한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마녀라면 물 밖으로 내치기 때문에 떠오른다고 믿었다. 떠오르지 않고 익사하면 혐의를 벗고, 떠오르면 화형에 처했다. 어떤 결과든 목숨을 잃고 재산은 몰수된다. ▷가수 고 김광석 타살 의혹을 제기한 이상호 씨(고발뉴스 기자)와 영화 관계자들이 명예훼손 등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경찰은 관련자 46명과 증거기록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영화 ‘김광석’과 기자회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펴 온 △부인 서해순 씨가 김광석 타살의 주요 혐의자이며 △저작권을 시댁에서 빼앗았고 △딸을 방치해 죽게 했으며 △9개월 영아를 살해했다는 주장 등이 모두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3일 밝혔다. ▷이 씨의 의혹 제기와 여기에 동조한 누리꾼들의 공세로 서 씨는 남편과 딸을 죽음으로 내몬 ‘마녀’로 낙인찍히다시피 했다. 한 조사에서 문화·사회 분야 비호감 1위로 뽑히기도 했다. 여당 의원들까지 호응해 지난해 가을 국정감사에서 사건 재수사를 요구했다. 그런데 막상 이 씨가 경찰에 제출한 근거자료는 대부분 의혹을 제기하는 진술들이었다. 전과 10범이 넘는 서 씨의 오빠가 도왔을 것이라는 주장과 달리 오빠는 현장에 없었고 전과에 강력범죄도 없었다. ▷유명인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추적할 수는 있다. 그러나 확실한 근거 없이 누군가를 살인자로 몰아선 안 된다. 영화 ‘김광석’은 다큐 형식이지만 프로파일러 등 전문가들의 일부 발언이 ‘편집’돼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 씨는 세월호 참사 때도 다이빙벨 음모론을 제기했고 영화까지 만들었다. 팩트의 신성함을 외면하고 ‘편집의 묘(妙)’를 살려 ‘김광석 타살설’의 불씨를 지폈다. 사회 밑바닥에 깔린 ‘불신’은 휘발유가 됐다. 활활 타오른 불길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지만, 종국에 자신들까지 덮칠 수도 있다. 이 씨는 “경찰 초동수사가 문제”라고 반박했다. 검찰 수사결과가 관심이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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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왜 ‘자유민주주의’ 삭제에 집착할까

    여당의 올 1월 개헌안 초안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자유’가 빠지더니, 교육부는 중고교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우리의 국체(國體)를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로 기술하도록 22일 확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그토록 삭제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걸고 달려온 한국 현대사와 그 현대사를 이끌어온 주류 세력에 대해 갖고 있는 알레르기적인 거부감 때문이라고 필자는 본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체(政體) 그 자체 보다는, 친(親)기업·친미·시장·경쟁…등등 자유민주주의라는 그릇 속에 담긴 채 중시돼 온 가치들에 대한 거부감인 것이다. 그런 거부감의 뿌리는 어디일까. 사법시험 출신으로 정치에 뛰어든 한 진보성향 인사가 최근에 감동받은 책이라며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지인에게 선물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1979년 출간된 이 책은 리영희 교수의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등과 더불어 1980년대 대학가의 필독서로 불렸다. 문재인 대통령도 리영희 교수의 책들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됐다고 극찬한 바 있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대학 신입생들은 3, 4월 사회과학 서클 세미나에서 이런 책들을 읽으며 초중고교에서 주입된 ‘반공교육’과 정반대의 시각에서 한국 현대사와 냉전시대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 후 2,3,4학년으로 올라가며 더 많은 사회과학 서적과 강의를 거치면서, 첫 학기에 개안(開眼)의 기쁨을 안겨줬던 그 책들 역시 반쪽만의 진실을 말해주는 또다른 ‘외눈박이 교과서’였음을 차츰 깨닫게 된다. 정(正)에서 반(反)으로 갔다가 중간의 균형을 찾아가는 정반합(正反合) 같은 그 과정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해방전후사의인식과 우상과이성 차원에서 사회과학 독서를 멈춘 이가 있다면, 그의 머릿속에서 현대사는 어떻게 자리잡을까. 그런 수준, 즉 대학 첫 학기 수준만큼만 의식화된 진보진영 인사들을 가끔 보게 된다. 대다수 학생들이 민주화투쟁을 할 때는 사법시험 등 안정적인 전문자격증 준비에 묻혀 지내다 그 목표를 이룬 뒤 뒤늦게 속성으로 사회과학 책 몇 권을 통해 진보적 세계관을 갖게 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문재인 정부의 인재풀 속에도 그런 이들이 적잖게 있을 것이다. 역사와 세상을 보는 시각은 각자의 자유니 상관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타인의 삶과 사회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자신의 끌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야 하며, 만약 그 방향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면 이를 수정하고 사과할 줄 알아야한다. 수천만 희생자를 낸 광기(狂氣)의 역사인 모택동의 문화혁명과 홍위병을 칭송했던 리영희 교수가 책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우상을 파괴하려다 또 다른 우상을 만들었다며 사과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다. 중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빚어진 오류라고 한게 다다. 소련 붕괴후 쏟아진 기밀문서들이 한국전쟁의 진실을 재확인시켜줬지만 해전사의 필자들은 침묵했다. 오히려 남침유도설의 선구자 격이었던 미국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2006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의기원’을 낸 후에 비밀 해제된 문건들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스탈린이 훨씬 더 깊이 개입해 있었다”며 자신의 오류를 시인했다. 물론 헌법이나 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 표현 삭제를 추진해 온 문재인 정권 인사들 가운데 사회주의를 이상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1990년대 초 동구권 몰락 이전까지는 사회주의를 꿈꿨을지라도, 속으로 ‘판단 미스’를 자인하고 대안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모델을 원하는 것인지, 현존하는 국가 가운데 예로 든다면 어떤 나라인지…, 분명하게 설명하고 선거에서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 같은 태도는 “대안은 잘 모르겠지만 자유민주주의만은 아니다”는 무책임한 비토에 다름 아니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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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트럼프, 무식이 화근이다

    다들 놀랐을 거다. “6·12 센토사 합의는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극찬한 문재인 대통령도 속으론 놀랐을 거다. 이렇게 낮은 수준의 합의문에 그친 것은 모두의 예상 밖이었다. 그렇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될 걸 알았을까. 답의 실마리를 풀려면 지난달 26일로 돌아가야 한다. 정상회담 취소 발표 이틀만인 26일 회담 재추진 의사를 밝힐 때만 해도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의 납작 엎드린 자세를 보고 자신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회담 재추진을 발표했는데, 그 순간 돌아 나올 수 없는 열차에 올라탄 것이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북핵 문제에 대해 거의 사전 지식이 없었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과 플루토늄 재처리의 차이 등 디테일에 대한 브리핑 자체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다 회담 재추진을 결정한 뒤에야 비로소 일주일에 8시간 상세한 브리핑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1년 우크라이나 핵무기 폐기 과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넌-루거 법’의 당사자인 샘 넌과 리처드 루거 전 상원의원도 불러 설명을 들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트럼프는 비로소 북핵 문제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하지 않음을 깨닫게 됐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하니까, 통 크게 체제보장 약속을 해주면 원샷에 해결지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적대시 정책’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주한미군 핵우산 평화협정 등 동북아 안보체제 전체에 칡뿌리처럼 맞물린 복잡한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 트럼프 뿐만 아니라 현재 백악관 고위 관료들 중에도 북한에 대해 경험과 이해도가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4월에 합류한 존 볼턴 안보보좌관이 그나마 2000년대 초 국방부 비확산담당 차관시절 북핵 이슈를 다뤘지만 북한을 직접 상대한 것은 아니다. 대북협상의 전면에 나서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외교관이 아니라 중앙정보국(CIA) 출신이다. CIA는 협상하는 곳이 아니다. 안보 협상은 정보전이나 통상협상과는 다르다. 더구나 수백~수천 명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에 배속돼 대남 대미 협상전략을 만들어내는 북한은 일반 국가 보다 몇 배 더 협상 난이도가 높은 상대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그룹에도 북핵 협상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총괄팀장 격인 정의용 안보실장도 통상이 전공분야였다. 외교부의 북핵 전문가들은 현재 국면에서 소외돼 있다. 트럼프가 결국 전문가 긴급 수혈 차원에서 투입한 게 6자 회담 수석대표였던 성김 주 필리핀 대사였지만 북측은 비핵화에 대한 조금의 진전된 표현도 합의해주지 않았다. 성김-최선희(외무성 부상) 실무회담이 정상회담 전날 밤까지 근 보름이나 이어진 것은 합의할 게 많아서가 아니라 합의가 안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돌아나갈 수 없는 처지인 트럼프의 유일한 돌파구는 회담 전엔 대중의 기대치 낮추기와 회담 후엔 공격적인 자기홍보 뿐이었다. 그는 무력충돌 위기론이 생긴 원인의 상당부분이 자신에게 있음을 잊었는지 수백만의 목숨을 구했다는 등 자화자찬에 끝이 없다. 그러면서 김정은에 대한 극찬을 이어간다. 왜 그럴까. 이제 트럼프가 기대고 의지할 곳은 오로지 김정은과의 인간적 신뢰, 즉 구두 약속 뿐이기 때문이다. 계약서도 받지 않고 계약금만 덜렁 주고 온 남편이 “집주인 사람 좋아 보여, 걱정 마”라고 강조하는 것과 같은 심리다. 그리고 앞으로의 성패가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정은 개인의 감정과 판단에 크게 영향 받는다고 보고 계속 추켜세우는 발언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가업을 물려받은 것일 뿐, 민주주의 국가라면 말단 보조직에도 선출되지 못할 인물”이라는 마코 루비오 미 상원의원의 말처럼 김정은을 신뢰해도 좋을 근거는 없다. 호텔 현관에 도착한 뒤 차에서 내려 마중 나온 나이든 측근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회담장으로 걸어갈 때 김정은의 거만한 표정과 잠시 후 트럼프 옆에 앉아 경청하는 태도를 보일 때의 순진한 표정, 그 이중성 중에 후자의 것만이 진실이 되기를 트럼프는 기대하고 있다. 물론 북-미 정상이 만난 것 자체만 해도 의미는 대단히 크다. 하지만 만남의 본질이었던 비핵화가 진전되어야 하는데 앞으로 폼페이오가 주도할 후속협상에 대해서도 북핵 전문가들은 낙관론을 주저한다. “정상회담에서도 좁히지 못한 비핵화에 대한 입장차를 실무회담에서 해소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트럼프는 절대 실패를 자인할 캐릭터가 아니다. 핵 추가 개발 능력 폐기, 보유 핵무기 일부 폐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등을 얻어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그 대가로 한미동맹과 동북아 안보체제의 일정부분을 내어줄 용의가 있을 것이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북핵 협상 열차에 덜렁 올라탄 트럼프의 머리 속에는 ‘비공식적으론 핵을 갖고 있지만 공식적으론 비핵화를 약속한 북한과의 평화’가 차선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을지 모른다.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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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기홍]구속영장 10번 청구, 9번 기각

    외환위기 당시 ‘나라를 거덜 낸 장본인’으로 찍힌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 대통령경제수석은 1998년 외환위기 실상을 축소해 보고하고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한 혐의(직무유기)로 구속됐다. 그러나 두 사람은 법원의 1, 2심에 이어 2004년 대법원에서까지 무죄가 선고됐다. 형사소송법은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구속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형사소송법의 원칙도 검찰의 판단에 따라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하기 일쑤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청산 수사나 이른바 ‘코드 수사’의 대상인 경우 어떻게 해서든 구속하겠다는 검찰의 의지가 너무 노골적이다. ‘삼성 노조 와해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박모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11일 기각됐다. 이미 지난달 31일에도 한 차례 기각되자 “헌법이 보장하는 근로 3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중대한 헌법 위반 범행을 저지른 자”라고 반발하며 다시 청구했다가 또 기각된 것이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박 전 대표를 포함해 총 8명에 대해 10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그중 9건이 기각됐다. 대부분 “범죄 사실에 다툴 여지가 있으며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게 기각 사유였다. 2월 삼성의 다스 소송비 사건을 수사하다가 ‘노조 와해’ 의혹을 별도로 수사하기 시작한 검찰은 삼성전자 본사를 포함해 총 네 차례 압수수색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벌여왔다. ▷‘닥치고 영장’의 대상에는 여론의 질타를 받는 사건도 포함된다. 갑질의 대명사가 된 대한항공 모녀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 것도 수사당국이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을 엄밀히 따져보고 신청한 것인지, 아니면 면피용으로 일단 영장을 넣고 본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낳는다. 선진국에선 검사가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면 분명한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의 검찰과 경찰에겐 영장이 기각돼도 별탈이 없으니 여론에 민감한 사건이면 일단 영장을 청구하고 보는 것 같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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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문재인 대통령이 CVID에 대답 안 한 이유

    판문점 2차 정상회담 다음날인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받아들였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흐렸다. 왜 그랬을까. 싱가포르 회담 취소 발표 직후 납작 업드린 김정은의 태도는 많은 이들에게 “김정은이 정말 달라진 거 같다. 간절하게 변화를 원하는 거 같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런데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29일 미국 내 북한 전문가 3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국내에도 북핵문제를 20년 넘게 다뤄온 정통한 전문가들이 있다. 30일 이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다들 낙관적이지 않은 분석을 내놨다. 진보·보수 정권 구분 없이 북핵 문제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한 전직관료는 “핵심은 완전한 비핵화의 내용인데, 김정은의 비핵화와 CVID는 다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김정은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핵문제 발생의 근본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종식을 전제로 한다. 이는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다. 핵우산 문제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한미동맹도 포함된다. CVID와는 거리가 있다. 집을 내놓긴 했는데, 어떻게 하든 팔겠다는 게 아니라 값이 맞아야 판다는 심산이다. 중개업소에선 “꼭 팔거라고 다짐했다”고 하는데 살 사람이 살펴보니 무조건 판다는 게 아니다. 게다가 파는 절차도 한번에 내주는 게 아니다. 마지막 단계까지 핵 역량을 갖고 있어야한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고 중국은 물론 한국 내 좌파진영도 단계론에 동조해주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2005년 9·19 합의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당시에도 국내외 언론들은 북핵문제가 해결됐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때와 다른 건 미국이다. 9·19 때보다 단계가 대폭 줄어야 하며, 쉬운 것 먼저하고 어려운 것은 나중 순서로 배치했던 9·19 때와 정반대로 이번엔 프로세스 앞쪽에 핵무기 이전 등 핵심적이고 굵직한 걸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그런 수준의 비핵화 원칙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9·19 이후처럼 프로세스가 이어지다가 어느 단계에서든 고꾸라질 수 있다. 9·19 때와 달리 지금은 정상(頂上)들이 직접 나서 무게감은 다르지만 기본 구조는 같다. 차량의 중량은 다르지만 가는 길은 같은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말 판을 흔들어볼 시점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국엔 진보정부, 미국엔 트럼프라는, 41세 때인 31년 전부터 대권을 좇아온 성취욕 넘치는 ‘장사꾼 대통령’이 있다. 미끼를 던지면 금방 반응이 올 조건이다. 국제제재는 계속 강화될 기류인데, 판을 흔들어 잘되면 안전보장을 받는 거고 중간에 잘 안돼도 한미 간, 미-중 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비핵화 이행과정에서 좌초하면 중국, 러시아와 한국 내 진보진영은 그 책임은 미국의 완고함 때문이라고 편을 들어줄 것이다. 유엔제재는 안 풀려도 중국의 제재 이행은 느슨해질 것이다. 대체로 북한의 구상대로 진행돼 왔지만 김정은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있다. 트럼프의 변칙적 태도다. 트럼프의 회담 취소는 김정은의 셈법에 없었을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까지는 이뤄져야 판을 흔드는 게 가능하므로 김정은은 납작 엎드렸다. 그 영향으로 트럼프는 회담 취소 발표 하루뒤인 25일 “6월12일에 회담을 할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다. 판문점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의 일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새 국면을 치고 나간 건 주로 김정은이었다. 이는 김정은 혼자서가 아니라 당 중앙위가 만들어내는 치밀한 전략에 근거해 나오는 것이다. 북한은 당 중앙위 산하에 대남·대미 전략만 짜는 두뇌가 수백~수천 명 있다. 옛 소련의 당 체제를 베낀 것이다. 청와대와 외교부 등에서 몇 명이 전략을 세우는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수십년 동안 방대한 인력이 대남 대미 전략에만 몰두해왔다. 외무성의 김계관 최선희 등은 당 중앙위가 만든 것을 읽는 보병 역할에 불과하다. 김정은이 직접 대응 전략을 짜고, 문 대통령의 설득을 감안해 방향을 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랫동안 북한을 상대해온 ‘달인들’이 내놓는 이런 어두운 분석이 지나치게 많은 경험 때문에 새로운 물결을 보지 못하는 ‘전문가의 오류’이길 바라지만, 현실은 기대보다 냉엄한 것 같다.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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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기홍]육체노동 정년 65세

    사고로 사망 또는 부상을 당했을 경우 손해배상액을 정하는 데 중요한 산정 기준이 되는 게 정년, 즉 ‘가동연한’이다. 직장인은 2013년 법 제정으로 2017년부터 모든 사업장에서 60세 정년이 의무화됐다. 하지만 법이나 취업규칙에 정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직업은 판단에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신체만 건강하다면 누구나 종사할 수 있는 육체노동의 정년은 보통사람의 가동연한을 뜻하므로 누구에게나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이는 판결로 정한다. ▷1956년 대법원은 일반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만 55세로 판결했다. 그 후 하급 법원들은 육체노동자가 사고를 당했을 경우 55세까지 일할 수 있는 것으로 산정해 보상액을 정했다. 33년 후인 1989년 대법원은 “평균수명이 1950년대 남자 51세, 여자 53세에서 1989년은 남자 66세, 여자 74세로 늘어났다”며 ‘55세 판례’를 폐기했다. 이후 근 30년간 육체노동자의 정년을 60세로 보는 판결이 주를 이뤘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부는 승용차 운전 중 사고를 당한 A 씨가 버스운송사업조합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A 씨의 가동연한을 65세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기초연금 수급연령을 65세로 한 것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그때까지는 돈을 벌 능력이 있다고 본 것인데 막상 사고가 발생하면 가동연한을 60세로 보는 것은 모순”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수원지법 민사항소5부도 교통사고를 당한 가사도우미의 가동연한을 65세로 인정했다. ▷요즘 60∼65세는 한창 일할 나이다. 택시기사 네 명 중 한 명은 60세 이상이다. 요즘 일손이 한창 달리는 복숭아 농장에 가보면 60대 이상 근로자가 태반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2011∼2016년 우리나라 은퇴 평균 연령은 72세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수록 은퇴연령이 상향돼야 경제활동인구와 연금수령자 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기대수명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유럽의 정년은 2040년까지 70세, 미국은 70세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 돼야 한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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