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란

한애란 기자

동아일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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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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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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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EU의 중국 전기차 관세폭탄…역사가 알려주는 승자는?[딥다이브]

    지난달 미국이 중국 전기차에 부과하는 관세를 8월부터 4배로(25%→100%) 올린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주엔 튀르키예 정부가 중국산 차량에 40%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밝혔고요. 이번 주엔 유럽연합(EU)이 그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이르면 12일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 인상(현재는 10%)을 사전 통보할 전망이죠.중국 전기차에 대한 다른 나라의 견제가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는 자칫 중국에 전기차 시장이 다 먹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인데요. 40년 전인 1980년대에도 자동차 업계에선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당시엔 중국이 아닌 일본이 그 주인공이었죠. 오늘은 자동차 산업의 보호주의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40년 전 ‘수출 할당제’의 기억전설의 명작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이 개봉하고, CNN이 24시간 뉴스 방송을 시작하고, 비틀스의 존 레넌이 총에 맞아 사망했던 1980년. 돌아보면 ‘풍요의 80년대’의 시작이었지만 당시 미국 경제는 심각한 침체에 빠져있었습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 중심지 디트로이트 경제는 엉망이었죠. 막대한 적자를 기록한 크라이슬러는 파산 일보 직전이고, 자동차 공장 근로자는 10만명 넘게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해 11월 대선을 앞뒀던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대선 후보에겐 자동차 노조의 표가 절실했습니다. 그는 디트로이트 크라이슬러 공장을 찾아 이렇게 약속합니다.“정부가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동차 산업이 정상화될 때까지 일본산 자동차의 홍수를 늦춰야 한다는 점을 일본에 설득할 겁니다.”일본산 자동차의 미국 공습을 막겠다는 공약이었는데요. 싸고, 작고, 연비 좋은 일본 차는 무서운 속도로 미국 시장을 점령해가고 있었습니다. 1976년 8%였던 일본 차 점유율은 2차 석유파동을 거치며 1980년 21%로 뛰었죠. 연간 수입량 182만대. 일본 차가 일본보다 미국에서 더 많이 팔렸습니다. 당시 미국을 휩쓴 하버드대 에즈라 보겔 교수의 베스트셀러 제목은 ‘Japan as Number One(1위인 일본)’.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에 곧 추월당할 거란 위기의식이 미국엔 팽배했습니다.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이듬해 노골적으로 일본을 압박합니다. 일본 정부도 결국 백기를 들게 되는데요. ‘자발적인 수출 제한 제도’라는 다소 역설적인 이름의 자동차 수출 할당제가 도입됩니다. 일본 차 업체들이 1981년 168만대를 시작으로, 해마다 정해진 물량만 미국으로 수출하기로 한 건데요. 당초 3년 예정이던 이 할당제는 무려 10년간 이어집니다. 미국 입장에선 격차를 따라잡을 몇 년의 시간을 번 셈이었습니다.자동차 보호무역주의의 결과는?무역 상대국의 급부상과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 대선 후보의 정치적 계산과 보호주의 약속. 어떤가요. 지금의 중국 전기차 관세 인상과 상당히 닮아있지 않나요?일본 차 수출 할당제는 상당히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제도였습니다. 관세로 치면 60%의 수입 관세를 매긴 것과 마찬가지 효과였죠. 이탈리아·프랑스·영국 등 다른 국가들 역시 미국과 비슷한 할당제를 잇달아 도입합니다. 자, 그리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와 관련한 연구는 미국에서만 수십 건 쏟아져 나왔는데요.① 미국 자동차 가격이 올라갔습니다.일본 차는 물론, 미국·유럽산까지. 미국에서 팔리던 자동차 가격이 일제히 인상됩니다. 차량당 평균 가격이 당시 돈으로 1000달러 넘게 뛰었죠. 차를 더 비싸게 사게 되었으니 당연히 미국 소비자는 그만큼 손실을 본 겁니다. 이러한 소비자 손실 금액은 연간 60억 달러로 추정되는데요. 현재 물가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177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할당제의 최대 피해자는 미국 소비자였습니다.②일본 자동차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세웁니다.일본 자동차 기업은 규제를 우회할 수 있었습니다. ‘수출 할당제’는 일본에서 제조된 차량만 해당하니까요. 이후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 엔화 가치까지 급등하자, 일본 자동차 제조사는 앞다퉈 미국 현지 공장을 속속 세웁니다.도요타·혼다·닛산·마쓰다·미쓰비시·이스즈·스바루. 1980년대에만 미국에 7개의 신규 자동차 조립공장이 문을 열었고, 하청업체를 포함해 총 10만개 일자리가 생겨납니다. 보수 싱크탱크 아메리칸캠퍼스는 “할당제 덕분에 더 이상 일본 자동차는 미국 노동자에게 위협이 되지 않게 됐다”고 평가합니다. 보호주의가 국내 산업을 육성하는 효과는 있었던 셈이죠.1970, 80년대 미국 빅3 자동차 제조사의 미국 시장 점유율 추이. 일본차 할당제가 도입된 1981년 이후, 1984년과 85년에 잠시 점유율이 반등하는 듯했지만, 이후 가파르게 다시 줄어들었다. ③빅3는 옛 명성을 되찾진 못합니다.할당제가 도입되자 한동안 미국 자동차 제조사 이익은 급증했습니다. 정부 보호 덕분에 자동차를 더 비싸게, 많이 팔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럼 빅3는 이 이익을 일본을 따라잡기 위한 품질 혁신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썼을까요?만약 그랬다면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상이 지금 같진 않겠죠. 그 대신 경영진은 자동차와 상관없는 금융·항공기·컴퓨터 기업을 인수하거나, 막대한 보너스를 임직원에게 나눠줬습니다. GM이 1984년 당시로는 엄청난 금액인 25억5000만 달러에 컴퓨터 시스템 기업 일렉트로닉데이터시스템즈를 인수한 게 대표적인 뻘짓이었는데요(1996년 결국 분사시킴)빅3의 매출과 시장점유율은 1985년까진 상승했지만 이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섭니다. 반짝 찾아왔던 기회를 잡지 못한 겁니다. 1989년 뉴욕타임스 기사는 이렇게 한탄했죠. “오늘날 미국 자동차 산업 전망은 디트로이트 생산자들이 일본 수입차의 ‘자발적’ 할당제를 도입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달려갔던 1980년대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불확실하다.”그사이 적응을 마친(미국 제조공장 설립) 일본 자동차 기업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집니다. 결국 2007년엔 도요타는 GM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제조사로 올라섭니다.관세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까기억도 가물가물한 1980년대 일본 차 이야기를 들춘 건 지금의 중국 전기차 때문입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이 값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크게 높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40년 전 상황을 대입해 보면 두 가지는 명확해 보입니다. 일단 당장 미국과 유럽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건 불가피합니다. 전기차 가격이 더 높게 유지될 게 뻔하니까요. 가뜩이나 예전만 못한 전기차 수요가 더 꺾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컬럼비아대학의 코너 월시 교수는 NYT 기고문에서 이렇게 지적하죠. “이런 관세로 인해 전기자동차는 주로 부자들에게만 제공되는 사치품으로 남게 될 겁니다.”그럼 미국과 유럽 자동차 업체는 관세장벽 덕분에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기업이 하기에 달렸습니다.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헤맨다면,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질 위험도 얼마든지 있죠. 카토연구소의 스콧 린시컴 부사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일본 차에 할당량을 부과해서 갑자기 빅3가 구해지지도 않았고, 자동차노조가 마법처럼 경쟁력을 갖게 되지도 않았습니다. 혁신적이고 저렴한 경쟁업체로부터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현실과 역사를 거스릅니다.”만약 관세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중국 전기차 제조사가 현지에 공장을 세운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일부 국가에선 이런 움직임도 나타납니다. 예컨대 브라질은 룰라 대통령이 ‘수입차에 대한 단계적 관세 인상’ 계획을 밝혔는데요(올해 10%인 관세를 2026년 35%로 점진적 인상). 동시에 이 나라에선 중국 전기차 기업 GWM과 BYD의 공장 건설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브라질은 이미 중국 전기차의 최대 수출국으로 올라섰죠.튀르키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BYD가 유럽의 두 번째 공장 부지를 알아보고 있다는 소식(첫 번째는 헝가리)이 전해졌는데요. 블룸버그에 따르면 튀르키예 정부가 BYD와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하죠. 40%의 추가 관세 부과를 발표한 진짜 목적은 따로 있는 겁니다. 자국 제조업을 키워야 하는 신흥국 입장에선 영리한 전략이죠.그럼 미국은?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중국 전기차 기업의 현지 투자를 막을 게 확실하다고 내다봅니다.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는 산업 보호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 안보’를 위한 일로 여겨지니까요. 요즘 미국에선 완성차는 물론 중국 배터리 공장도 짓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할당제가 일본 자동차 공장을 미국으로 끌어들였던 40년 전과는 다른 상황인데요. CSIS 선임연구원인 일라리아 마조코는 바로 이 점에서 “이것(관세 상향)이 중국보다 미국에 더 나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중국 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고, 많은 국가가 새로운 기술과 인프라 확보를 위해 이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전기차 분야에서 가장 크고 인상적인 시장인 상황에서 미국이 기술적으로 훨씬 더 고립된 미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현대차가 소형 세단 ‘엑셀’을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한 게 1986년 1월이었죠. 40년 전 미국의 일본 차 할당제는 한국 자동차 기업엔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일본 차가 할당량 제한에 묶여 마음껏 뛰지 못하는 틈을 타서 미국 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요. 과연 이번에도 기회를 살릴 순 있을까요. 누가 승자가 될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반사이익을 기대해봅니다. By.딥다이브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강대국간의 무역전쟁이 40여년 만에 다시 불붙었습니다. 우리는 그 틈바구니에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지가 궁금하네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중국 전기차의 질주를 막기 위한 주요국의 관세인상 움직임이 본격화합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40년 전 일본 자동차에도 벌어졌는데요. 1981년 시작돼 10년 간 이어진 ‘자발적 수출 제한’ 제도입니다.-일본차의 미국 수출이 줄면서 한동안은 미국 자동차 업계가 시장점유율과 이익이 되살아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빅3는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날려버렸습니다. 품질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고, 1980년대 후반이 되자 미국 자동차업계는 다시 위기에 빠집니다.-대신 일본 자동차 업체가 미국에 조립공장을 설립하면서 미국 경제엔 플러스 효과가 분명히 있었는데요. 지금의 중국 전기차의 경우 미국이 현지공장 설립을 허용할 것 같진 않죠. 중국 전기차에 대한 무역전쟁이 자칫 미국 자동차 산업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40년 전 일본차 수출 할당제로 미국 진출의 기회를 잡았던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이번에도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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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일 벗은 애플 AI, 통화 중 녹음도 된다…주가는 2%↓[딥다이브]

    뉴욕증시가 강보합으로 마감했습니다. 이번 주는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보니 투자자들이 신중한 모습입니다. 10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18%, S&P500 0.26%, 나스닥지수는 0.35% 상승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이날의 빅이벤트는 애플의 세계개발자회의(WWDC)였죠. 애플은 이 자리에서 ‘애플 인텔리전스’라고 부르는 자체 AI 기능을 소개했습니다. 아울러 음성비서 서비스 시리(Siri)를 통해 오픈AI의 챗GPT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거라고도 밝혔는데요. 예컨대 사용자가 쓴 글을 교정·요약해주고, 이미지와 이모티콘을 생성해주고, 사진 편집과 검색을 키워드 입력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통화 중 녹음이 가능해지고, 그 내용 요약 기능까지 제공해준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이런 새로운 기능 대부분은 올해 말 제공될 예정입니다. 특히 애플은 개인정보보호를 강조했는데요. 애플 인텔리전스 기능 대부분은 데이터센터가 아닌 아이폰 기기 내에서 수행되고요. 복잡한 일부 기능은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트’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데이터 저장 없이 비공개적으로 실행된다고 설명합니다. 팀 쿡 애플 CEO는 사용자 개인 데이터가 기기를 떠나지 않고 AI를 훈련시킬 수 있다며 “애플만이 제공할 수 있는 AI”라고 강조했죠.마침내 기다렸던 AI 기능을 애플이 공개한 이날, 투자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이날 애플 주가는 1.91% 하락했는데요. 블룸버그는 “애플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새로운 기능을 선보였을 때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설명합니다. 한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이날 팀 쿡 CEO의 엑스(X) 게시물에 이렇게 댓글을 달았죠. “이 소름 끼치는 스파이웨어를 중단시키지 않는다면 모든 애플 장치를 우리 회사 내에서 금지시키겠다.” 애플이 개인 정보를 오픈AI에 넘길 거라고 보고 발끈한 겁니다.이날은 엔비디아 주식이 10대 1 액면분할 후 처음 거래된 날이기도 합니다. 액면분할이 주가에 호재가 될 거라는 기대가 그동안 컸는데요.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0.75% 오른 121.79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뜨거웠던 밈 주식 게임스톱 주가는 지난주 금요일 39% 하락한 데 이어, 이날도 12% 떨어졌습니다. 그동안 주가를 끌어올렸던 ‘대장 개미’ 키스 길이 7일 3년 만에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을 했죠. 하지만 새로운 내용이 나오지 않자 투자자들이 실망한 건데요. 밈 주식이 이렇게 무섭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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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전 로또’ 맞은 가이아나는 지금…석유는 축복인가 저주인가[딥다이브]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스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정부 공식 발표가 나왔습니다. 기대감에 관련주 주가는 급등했죠. 동시에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의 발표가 그랬듯이, 이번에도 헛물켜는 것 아니냐는 신중론도 나오는데요.오랜 탐사 끝에 대형 유전이 발견돼 ‘석유 대박’이 난 국가로는 남미의 가이아나가 있습니다. 어제 정부 발표에선 포항 영일만 매장량이 ‘금세기 최대 석유개발 사업’인 가이아나 광구(110억 배럴)보다 더 많을 수 있다(최대 140억 배럴)고 비교하기도 했는데요. 갑자기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오면 그 나라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남미 최빈국에서 석유 부자로 변신 중인 나라, 가이아나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탐사 시작 99년 만에 유전이 터졌다수십 년 탐사에도 못 찾았던 석유가 그렇게 많이 묻혀있다는 게 말이 돼?아마 3일 정부 발표를 보고 이런 생각한 분들 많을 텐데요. 2015년 5월 미국 석유기업 엑손모빌이 가이아나 앞바다 스타브록에서 상당량의 석유 매장량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을 때 바로 그 이유로 전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가이아나에선 1916년부터 거의 100년 동안 여러 차례의 석유 탐사가 진행됐고,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죠.엑손모빌은 2008년부터 이 지역에서 석유 탐사를 벌여왔는데요. 실패를 거듭하자, 파트너사였던 셸(Shell)은 2014년 컨소시엄을 탈퇴해버렸습니다. 그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엑손모빌이 35개 기업에 제안했지만 대부분 거절했고요. 딱 두 곳-헤스와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만 파트너로 참여했죠(지분율 엑손모빌 45%, 헤스 30% CNOOC 25%). 그만큼 업계에선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봤던 건데요.1년 뒤 가이아나에서 대형 유전이 처음 발견됩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엑손모빌 컨소시엄은 이 지역에서 30개 넘는 유전을 발견했고요. 총 추정 매장량은 110억 배럴 이상에 달합니다. 매장량 기준으론 세계 17위의 규모이죠. 가이아나에도, 엑손모빌에도 대박이라 할 만한데요.유전 발견까진 꽤 오래 걸렸지만, 이후 석유를 뽑아 올리는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됐습니다. 처음 시추한 지 5년이 채 되지 않은 2019년 12월 20일 가이아나 해안에서 200㎞ 떨어진 라이자 해상유전에서 첫 원유 생산이 시작됐죠. 가이아나 대통령은 이날을 ‘국가 석유의 날’로 선포했고 시민들은 “축복이 찾아왔다”며 환호했습니다.이후 가이아나의 원유 생산량은 가파르게 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엔 하루 65만4000배럴을 생산 중이고요. 2027년 말이면 130만 배럴이 될 겁니다. 오늘날의 카타르와 맞먹는 수준으로 생산량이 늘어나는 겁니다. 남미에선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원유생산국으로 올라 선다는 전망이죠.가이아나 국내총생산(GDP)은 급성장 중입니다. 석유달러가 밀려들면서 2022년 GDP 성장률 62%, 2023년 38%를 기록했죠. IMF는 향후 5년(2024~2028년) 가이아나 경제성장률을 연평균 20%로 예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는 나라입니다. 2018년 6100달러였던 가이아나의 1인당 GDP는 2022년 1만8000달러로 치솟았습니다. 이 수치만 보면 중국(1만2700달러)이나 러시아(1만5270달러)를 뛰어넘는 겁니다.가이아나는 정말 작은 나라입니다. 인구가 80만명으로, 국토의 87%가 열대우림으로 덮여있죠. 과거엔 사탕수수 농장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변변한 산업기반이랄 게 없어 다들 떠나는 바람에 인구의 55%가 해외로 이주했을 정도이죠.그런데 이 가진 것 없던 나라가 이젠 1인당 석유 매장량(약 1만3700배럴)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로 올라선 겁니다. 그럼 석유의 축복이 밀려들기 시작한 지 5년. 가이아나 사회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①돈과 사람이 몰려온다가이아나가 석유로 벌어들인 돈은 지난해 16억2000만 달러(약 2조2300억원). 올해는 24억 달러(약 3조3000억원)로 더 불어날 전망입니다. 스타브록 광구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50%가 가이아나 정부 몫이죠. 동시에 매출의 2%에 해당하는 로열티도 받습니다. 계약조건이 지나치게 엑손모빌에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오긴 하는데요. 확실한 건 이 작은 나라에 전례 없던 돈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입니다.이 때문에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쇠락한 수십 년 된 식민지풍 건물이 특징이었던 가이아나 수도 조지타운은 이제 곳곳이 공사판입니다.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새 주택과 호텔, 쇼핑몰, 체육관, 사무실이 끊임없이 들어서죠. 지난해 조지타운 외곽엔 이 나라의 첫 번째 스타벅스 매장이 문을 열어 화제가 됐습니다. 개업식에 대통령과 미국 대사가 참석했을 정도였죠.석유 시추 산업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외국인들이 밀려오고, 해외로 떠났던 이민자들이 유턴하고 있죠. 얼마 전 뉴욕타임스 기사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20년 동안 지내다 가이아나로 다시 돌아온 사리아 바쿠스 사례를 전하는데요. 조지타운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한 그는 한 달에 최대 6000달러를 받고 외국인들에게 주택을 임대합니다.새 고속도로, 새 항구, 새 화력 발전소, 새 병원 건설도 한창입니다. 석유 수익금이 인프라 개발에 대대적으로 투자되고 있는 겁니다. 가이아나는 툭하면 전력이 끊길 정도로 인프라가 열악했는데요. 이제 석유생산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천연가스를 발전소로 끌어오는 파이프라인을 건설 중입니다. 바렛 자그데오 부통령은 AP에 “가이아나의 에너지 생산량을 두배로 늘리고 전력요금은 절반으로 낮출 것”이라고 말합니다.②누가 호황을 누리나하지만 이 유례없는 호황을 모두가 만끽하는 건 아닙니다. 인프라 개선은 반가운 일이지만 개개인의 살림살이는 그리 눈에 띄게 나아지진 않고 있는데요. 늘어난 일자리가 현지인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아서입니다. 이 나라의 실업률은 여전히 10.3%(2023년)에 달합니다.심해 채굴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죠. 사탕수수 기르던 가이아나인이 바로 석유 시추 작업에 투입되기란 불가능합니다. 직업 전환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미비합니다. 결과적으로 외지인들이 늘어난 일자리의 수혜를 보고 있죠.물론 발 빠르게 땅과 집을 사서 임대사업을 벌인 사람은 이미 쏠쏠한 이익을 내고 있고요. 석유기업 취업 박람회에 참석한 젊은 학생들 역시 앞날이 창창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전체 인구 중 극히 소수일 뿐이죠.오일머니 분배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점점 커질 겁니다. 정부는 석유 판 돈으로 국부펀드를 조성해 운영 중이죠. 투명하게 자금내역을 공개하고, 이 돈을 인프라 확충과 의료·교육서비스에 쓰겠다는 취지인데요. 야당은 이 현금과 사업권이 여당지지 세력에 흘러가고 있다고 계속 문제를 제기합니다. 야당이 우세한 지역이 분배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건데요. 대신 야당에선 무상교육 같은 더 많은 복지 지출과 농업에 대한 투자를 요구합니다.이런 갈등이 심상찮아 보이는 건 인도계(40%)와 아프리카계(29%)로 나뉜 이 나라 인구구조 때문입니다. 현재 집권 여당은 인도계, 야당은 아프리카계로 나뉘는데요. 유전개발의 덕을 볼 만한 현지 기업 대부분을 장악한 게 인도계 출신이라 아프리카계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갈등이 극단적 분열로 치닫게 될 위험도 내재돼 있죠.③흔들리는 친환경의 상징석유가 나오기 전까지 가이아나가 가진 가장 귀중한 자산으로 꼽혀온 건 열대우림이었습니다. 강력한 환경법을 가진 가이아나는 남미 국가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낮은 산림 벌채율(약 0.07%)을 자랑하죠. ‘지구의 허파’ 열대우림을 지키는 나라라는 찬사를 받아왔습니다.하지만 바다에서 석유가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해양시추는 기본적으로 원유유출 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죠. 2010년 BP의 ‘딥워터 호라이즌 재해’(멕시코만으로 약 2억 갤런 기름이 유출)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세계적으로 연평균 1~2회의 원유유출 사고가 벌어집니다. 환경 측면에선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데요.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미 가이아나 내에서도 나왔습니다. 가이아나 시민단체가 낸 소송에서 현지 법원은 예상과 달리 환경단체 손을 들어줬죠. 엑손모빌에 만약 원유유출 피해가 발생하면 ‘무제한 보증’을 제공하라고 판결한 겁니다. 엑손모빌은 이에 반발해 항소한 상황인데요.이 사건에 대한 가이아나 내 분위기는 어떨까요. 현지 여론은 엑손모빌 편으로 확 쏠렸습니다. 환경규제를 강화해서 유전 개발 속도를 늦추고 싶진 않으니까요. 가까스로 잡은 횡재를 놓치면 곤란하죠. 자그데오 부통령은 이 판결을 비난하고 법원이 “예측가능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까지 했는데요.국가의 운명을 바꿀 대박 기회 앞에서 환경보호라는 명분이 힘을 잃는 건 어쩔 수 없는 일로 보입니다. 지난 3월 모하메드 이르판 알리 대통령은 BBC 인터뷰 도중 진행자가 심해채굴의 환경 위험을 언급하자 이렇게 발끈했습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삼림 벌채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대 규모의 석유 탐사에도 우리는 여전히 넷제로 수준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위선입니다. 선진국은 언제 비용을 지불할 예정인가요? (…) 누가 우리에게 투자합니까. 그린피스도, 그 다른 누구도 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국가를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 천연자원을 공격적으로 추구할 겁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기회를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국민을 위한 기회를 창출해야 합니다.”④베네수엘라와의 영유권 분쟁요약하자면 가이아나는 석유 덕분에 부유해졌지만, 그로 인한 여러 갈등도 터져 나오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큰 골칫거리는 이겁니다. 베네수엘라와의 영토 분쟁.베네수엘라는 식민지 시대인 19세기부터 가이아나 영토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에세퀴보 지역이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해왔죠. 한동안 뜸했던 영유권 주장에 다시 불이 붙은 건 이 지역 바다에서 석유가 발견된 이후인데요. 급기야 지난 3월엔 베네수엘라 국회가 에세퀴보를 자국의 새로운 주로 승인하는 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이 영유권 분쟁은 2018년부터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인데요. 지난해 ICJ가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베네수엘라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말라”고 명령했거든요. 그런데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접경지역에 군사기지를 확장하며 위협을 가하고 있죠.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올해 7월로 예정된 대선에서 3연임을 노립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이 세계 최대(3040억 배럴)이지만 마두로 정권의 실정과 미국의 경제제재가 겹치면서 경제가 만신창이인데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두로 대통령이 가이아나와의 무력충돌을 진짜 감행할지도 모릅니다. 자칫하면 예비군까지 합쳐도 고작 4070명인 가이아나 군대가 35만명의 베네수엘라 군대와 맞붙게 될 판인데요. 영국이 이 지역에 해군순찰함을 파견하고, 미국 공군이 가이아나 상공에서 훈련을 벌이며 경계하는 이유입니다.유전 개발이란 횡재 뒤에 만만치 않은 도전적 과제가 이어지는 가이아나. 유전이 발견된 이래 10년째 이 나라엔 ‘가이아나의 석유는 축복인가 저주인가’라는 질문이 따라붙곤 하는데요. 아직 그 답을 내리긴 이릅니다. 하지만 아무 노력 없이 저절로 축복이 되는 건 아니란 점은 알 수 있죠. 과연 우리나라도 가이아나가 하는 이런 고민을 하게 될 날이 오려나요. By.딥다이브가이아나 스타브록 광구는 요즘 세계 석유업계의 핫이슈입니다. 경쟁사 셰브론이 이 광구의 지분 30%를 가진 헤스 인수를 결정하자, 엑손모빌이 이를 저지하겠다며 나섰기 때문인데요. 두 석유공룡 싸움이 팝콘각(?)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상상도 못 한 포항 영일만 유전 발표가 나왔네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갑자기 바다에서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오면 그 나라엔 어떤 일이 생길까요. 남미의 작고 가난한 나라 가이아나가 ‘석유로또’를 맞은 지 5년이 됐는데요. 연간 수십억 달러의 오일머니가 들어오면서 1인당 GDP가 유전 개발 전의 3배로 불어났습니다.-하지만 아직 모두가 다같이 잘살게 된 건 아닙니다. 부의 분배를 둘러싸고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인데요. 여당과 야당이 인도계와 아프리카계로 갈린 상황에서 소외된 아프리카계 지역의 불만은 커져만 갑니다.-;대표적인 친환경 청정 국가‘라는 타이틀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론자들의 우려가 커지지만, 간신히 얻은 대박 기회를 환경 보호 때문에 놓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이웃국가 베네수엘라는 영토분쟁을 재점화했습니다. 대선을 앞둔 마두로 대통령이 지지율 반등을 위해 무력충돌에 나설까 우려되는 상황인데요. 국제뉴스에서 점점 더 자주 보게 될 이름, 가이아나를 기억해주세요.*이 기사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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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전로또’ 가이아나, 부자 됐지만 분배 갈등도

    남미의 가이아나는 세계 최빈국에서 석유 부국으로 수직 상승한 극적인 사례다. 윤석열 대통령이 “금세기 최대 석유 개발 사업”이라고 언급한 가이아나 광구는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미국 업체 ‘액트지오(Act-Geo)’가 앞서 프로젝트 평가를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사탕수수 농사가 주요 산업이던 가이아나에서 처음 석유가 발견된 건 2015년. 미국 석유기업 엑손모빌이 7년의 탐사 끝에 가이아나 앞바다 스타브로크 광구에서 석유 시추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석유 매장량은 총 110억 배럴. 금세기 발견된 매장지 중 최대 규모였다. 2019년 12월 원유 생산이 시작됐고, 산유량은 올해 초 하루 65만 배럴까지 늘어났다. 2027년 말이면 그 두 배인 130만 배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카타르와 맞먹는 수준이다. 석유 수출로 막대한 달러가 유입되면서 가이아나 경제는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은 2022년 62%, 지난해 38%나 증가했다. 2022년 기준 가이아나의 1인당 GDP는 1만8199달러로 4년 전(6094달러)의 3배가 됐다. 수치상으로는 중국(1만2700달러)이나 러시아(1만5270달러)를 추월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돌아가는 건 아니다. 지난해 가이아나 실업률은 10.3%. 석유 개발과 건설 붐으로 경기는 호황이지만 늘어난 일자리 상당 부분을 외지인이 채운다. 농사만 짓던 현지인이 심해 채굴 같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에 바로 투입될 순 없기 때문이다. 분배를 둘러싼 정치적 분열도 심화됐다. 새 유전을 둘러싸고 이웃 베네수엘라와 영유권 분쟁도 생기고 무력충돌 위험도 커졌다. 반면 1969년 북해 유전 발견으로 부국이 된 노르웨이는 ‘자원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 1990년 국부펀드를 설립해 석유 수출로 얻은 수입을 적립하고 있다. 당장 복지 지출에 흥청망청 쓰는 대신 미래 세대를 위해 쌓아놓고 불리는 데 초점을 뒀다. 덕분에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한국 한 해 GDP와 맞먹는 1조6000억 달러(약 2200조 원)의 자금을 굴리고 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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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장개미’ 인증샷에 게임스톱 21% 폭등…이건 주가조작 아닌가?[딥다이브]

    뉴욕증시 3대 지수가 혼조세로 마감했습니다. 미국 제조업 경기가 예상보다 둔화됐다는 소식이 투자자들을 압박했죠. 3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30% 하락했고, S&P500과 나스닥지수는 각각 0.11%. 0.56% 상승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이날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5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8.7을 기록했습니다. 전문가 예상치(49.8)를 밑도는 수치인데요. PMI가 50 미만이면 경기 위축을 의미하죠. 제조업 활동이 예상보다 급격하게 위축되었다는 뜻입니다.이 소식은 금리인하 가능성을 키우며 국채금리 하락을 부추겼습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0.12%포인트 하락한 4.392%를 기록했죠. 하지만 동시에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도 자극합니다. 알파심플렉스의 포트폴리오관리자 캐서린 카민스키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데이터의 약점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전반적으로 조심스러운 시장 분위기였지만 밈 주식 열풍만은 뜨거웠습니다. 전날 ‘대장 개미’ 주식 트레이더 키스 질이 자신의 X 계정 ‘로어링 키티’에 올린 주식 보유내역을 사진 때문인데요. 여기엔 게임스톱 주식 500만주(주당 21.27달러 1억1570만 달러 규모)와 오는 21일 만기되는 콜옵션(행사가격 20달러) 12만개가 포함됐습니다.이에 이날 오전 장 초반 게임스톱 주가는 64% 급등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주가는 하락했지만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21% 상승한 28달러로 마감했습니다. 장 마감 뒤 키스 질은 그가 이날 주가 급등에도 주식을 매도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스크린샷을 X 계정에 올렸죠. 그는 하루 동안 7860만 달러(약 1080억원) 넘는 이익을 얻었습니다.이를 두고 맷 레빈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미국 주식시장엔 (주가를 끌어올리는) 요술램프를 사용하는 두명의 인물, 일론 머스크와 키스 질이 있다”고 꼬집기도 했는데요. 이런 방식으로 시장을 움직이는 건 괜찮은 일일까요.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모건스탠리는 키스 질의 행동이 주가 조작에 해당하는지, 그의 이트레이드 계정을 취소할지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습니다.이날 국제유가는 급락했습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6% 하락한 배럴당 74.22달러로 거래를 마쳤는데요. 2월 7일 이후 넉 달 만에 가장 낮은 가격입니다. 주말 동안 열린 OPEC+ 회의에서 감산의 단계적 중단을 발표한 게 유가 약세를 부추겼는데요. 오는 9월까진 현재의 감산 규모를 유지하지만, 10월부터는 감산을 서서히 축소하면서 산유량을 늘리겠다고 밝힌 겁니다. 블룸버그는 “배럴당 100달러의 원유를 추구했던 OPEC+카르텔이 거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분석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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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산율 꼴찌 한국이 외롭지 않은 이유(feat.피크아웃)[딥다이브]

    올해 1분기 합계출산율이 또다시 역대 최저(0.76명)로 떨어졌단 뉴스 보셨나요. 큰일이라고요? 아니면 이젠 놀랍지도 않다고요?저출산이 큰 화두인 건 한국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미국·유럽·일본·중국 등 거의 모든 나라에서 걱정거리로 떠올랐는데요. 도대체 우리 인류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전례 없는 이 현상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요. 오늘은 저출산으로 축소하는 세계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5월 3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전 세계 아기가 줄었다전 세계 204개국 중 2021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문제가 너무 쉽죠. 네, 답은 한국입니다. 0.82명으로, 세계 합계출산율(2.23명)을 크게 밑돌았죠. 그리고 지난해 한국 출산율은 0.72명으로 더 떨어졌습니다.그럼 2050년, 2100년엔 어떨까요? 권위 있는 연구그룹인 글로벌질병부담연구(GBD)가 이달 18일 의학전문지 란셀에 발표한 보고서를 참고할 만한데요. 2050년까진 한국이 전 세계 꼴찌(0.82명)를 유지할 거고요. 2100년이 되면 부탄(0.69명)과 몰디브(0.77명), 푸에르토리코(0.81명)가 한국(0.82명)을 추월하는 바람에 꼴찌 탈출이 가능할 거라고 합니다. 한국 출산율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져서 간신히 꼴찌를 면한다는 전망이죠.한국을 덮친 저출산 현상이 마치 전염병처럼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1950년 4.84명이었던 전 세계 출산율은 이미 대체출산율(인구 유지를 위한 출산율)인 2.1명에 가깝게 떨어졌죠. 그리고 앞으로도 반등 없이 계속 하락해 2050년엔 1.83명, 2100년엔 1.59명이 될 거라고 합니다.인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을 대체출산율이라고 부르죠. 자연적인 상황에선 남아가 여아보다 더 많이 태어나기 때문에 흔히 대체출산율은 2.1명이라고 얘기하는데요. 지금은 204개국 중 출산율이 2.1에 못 미치는 국가가 절반 정도(110개국)입니다. 그리고 2100년이면 거의 대부분(198개국) 국가가 여기 해당되겠죠. 고작 6개 국가(사모아·소말리아·통가·니제르·차드·타지키스탄)만 2.1명을 웃도는 출산율을 기록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출산의 지역별 분포도 지금과는 엄청나게 달라지겠죠. GBD는 2100년에 태어날 아이들의 절반 이상(54%)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이 될 거라고 전망합니다(2021년엔 약 29%).이미 전 세계 출생아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인류의 ‘출생 피크(Birth Peak)’는 연간 1억4200만명이 태어난 2016년이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엔 출생아 수가 그보다 1300만명이나 줄어든 1억2900만명에 그쳤죠. 출생아수에선 이미 피크 아웃이 시작된 건데요.하지만 아직까지 그렇게까지 경계심이 크지 않은 건 출생아수는 줄어도 인구는 늘기 때문이죠. 즉 더 많이 태어나서가 아니라 덜 죽기 때문에 전 세계 인구는 한동안 증가할 텐데요. 그럼 전 세계 인구의 정점은 언제일까요.이와 관련한 여러 연구가 있지만 2100년 이전이 될 게 확실시됩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인구·이주전문센터는 2070년 98억명, 독립연구기관인 건강측정평가연구소(IHME)는 2064년 97억명을 이야기하죠. 어쩌면 우리가 죽기 전에, 아마도 우리 자녀 세대엔 확실히 전 세계 인구의 감소에 직면하게 될 거란 뜻입니다. 전쟁·재난·기근·전염병이 닥친 것도 아닌데, 세계 인구가 줄어들다니. 인류 역사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일인데요. 우리의 자발적 선택(저출산)으로 인류는 미지의 땅에 진입하게 될 겁니다.이민과 AI는 저출산 해결책인가아마 여기까지 읽고 심드렁한 분들 많을 겁니다. 전 세계적 저출산, 수십년 뒤 닥칠 인구 감소는 너무 먼 얘기처럼 들릴 테니까요. 또 이런 반응도 예상됩니다. 저출산? 이민 왕창 받고, 로봇과 AI로 생산성 끌어올리면 되지.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좀 찾아봤습니다.①이민을 늘리자. 얼마나?당연한 얘기이지만 지구 차원에선 인구의 순이동이 제로입니다. 외계인이 우리 행성을 발견해서 지구로 귀환하는 일은 아직까진 없으니까요. 즉, 이민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출생아라는 한정된 자원을 국가 간 재분배하는 작업입니다.이민을 촉발하는 건 더 많은 기회와 일자리입니다. 주로 고출산·저소득 국가가 선진국으로 이민자를 공급해왔죠.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인도에서 영국으로, 인도네시아에서 호주로 이민 가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앞으론 상황이 좀 달라질 겁니다. 이들 국가의 출산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GBD 전망에 따르면 멕시코는 2021년 1.77→2100년 1.15, 같은 기간 인도는 1.91→1.04, 인도네시아는 1.97→1.29로 출산율 급락이 예상되는데요. 선진국 입장에선 점점 더 이민자를 유치하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더 많은 급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다른 나라와 경쟁하게 될 게 뻔하죠.그리고 또 알아두셔야 할 게 있는데요. 한국처럼 출산율이 극도로 낮은 나라는 이민으로 지금 수준의 인구를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왜냐. 데려와야 할 이민자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죠.펜실베니아대학 경제학과의 헤수스 페르난데스 교수가 팟캐스트에서 한국을 예로 들어 설명했는데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한국이 이민으로 현재 인구를 유지하려면 한국인이 자국 내에서 소수민족이 돼야 합니다. 단일 민족이 99%였던 나라가 다른 민족이 70%인 나라로 바뀐 적이 있나요? 정치시스템이 이러한 변화를 소화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러한 수준의 이민을 지지하는 정치를 본 적 없습니다.”어떤가요. 한국인이 인구의 30%인 소수민족이 되는 한국. 과연 누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②AI가 생산성을 책임져줄까인구감소는 경제에 마이너스입니다. 생산가능인구가 1% 줄면 국내총생산(GDP)이 0.59% 줄어든다는 연구결과가 있죠. GDP가 줄어든다는 건 우리 모두에게 상당히 큰일입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선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매우 중요한데요. GDP가 줄면 이 비율이 뛰어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할 겁니다. 그럼 국가부채를 늘리기 어려워 돈에 쪼들리는 정부가 복지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겠죠. 개개인의 삶이 엄청나게 팍팍해지게 되는 겁니다.물론 인구가 줄어도 이를 만회할 정도의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룬다면 GDP는 계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인공지능(AI)이 생산성 향상의 열쇠가 될 거란 장밋빛 전망이 줄을 잇는데요. 골드만삭스는 AI가 앞으로 10년 동안 전 세계 GDP를 7%(거의 7조 달러) 증가시킬 거라고 예측했고요. 지난해 맥킨지는 AI가 선진국의 생산성을 연 평균 0.6~0.7%포인트씩 끌어올릴 거라고 전망했습니다.그리고 전혀 다른 예측도 나옵니다. 노벨경제학상 유력 후보로 꼽히는 대런 아세모글루 MIT 경제학과 교수가 최근 낸 논문(AI의 단순한 거시경제학)이 눈길을 끄는데요. 그는 AI가 향후 10년 동안 생산성을 0.53%, GDP를 0.9% 증가시킬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1년이 아니라 10년 동안 말이죠. 그는 “AI의 거시경제적 효과는 사소하진 않지만 미미하다”고 설명하는데요. 동시에 “노동자와 자본가의 소득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봅니다.물론 생성형AI가 산업현장에 어떤 혁신을 일으킬지는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아직은 워낙 초기단계이니까요. 하지만 다가오는 인구 붕괴의 해결책이 될 거란 믿음을 갖기엔 근거가 빈약해보이는 게 사실입니다.0.7과 1.3의 엄청난 차이저출산과 관련한 우울한 예측이 가득한데요. 저출산과 인구감소가 전 세계적 추세이고 피할 수 없는 거라면,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무의미한 걸까요. 그냥 이대로 애 안 낳게 내버려 둘까요?그건 결코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출산율이 대체출산율(2.1명)보다 25% 이상 하락했다가 다시 2.1명 수준으로 반등한 국가는 단 한 곳도 없긴 한데요. 그래도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거나 방어하는 건 중요합니다. 아니, 오히려 출산율이 다 같이 낮은 지금은 예전보다 그 차이가 더 중요해졌는데요.간단한 산수를 해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출산율 1.0이면 출생아수가 어떻게 변할까요. 출산율이 1.0이라는 건 현재 200명(남자 100, 여자 100명) 인구가 있다면, 아이를 100명 낳는다는 뜻이죠. 또 그 아이들이 나중에 출산하면? 그 100명 중 여성은 50명일 테니까, 자녀 수가 50명이 될 겁니다. 노인 200명이 아기 50명으로 줄어드는 거죠.그럼 한국처럼 출산율이 0.7이라면? 200명→70명→25명으로 줄어들고요.일본처럼 출산율 1.3이면? 200명→130명→85명이 됩니다.대부분 국가가 고만고만하게 낮은 출산율을 보이는 지금 상황에서는 작은 출산율 격차도 인구구성의 극적인 차이를 가져오는 거죠.문제는 과연 무엇을 해야 출산율이 의미있게 반등하느냐는 건데요. 이와 관련한 수많은 논의가 있지만, 2022년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BER)의 방대한 워킹페이퍼 ‘출산율의 경제학: 새로운 시대’의 결론은 이겁니다. 일·가정 양립이 잘 되고, 남성의 육아참여도를 높이고, 전통적인 사회규범(엄마의 역할 강조, 과도한 교육열)에서 벗어나는 게 출산율을 높이는 길입니다. 그게 그렇게 쉽게 바뀌겠냐고요? 물론 쉽진 않겠죠. 하지만 우리는 연간 출산율 0.6명대마저 코앞에 두고 있는 소멸위기의 나라이잖아요. 이젠 좀 절박감을 느끼고 바뀔 때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By.딥다이브요즘 인구통계학이 정말 핫한 학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련한 연구결과와 기사들이 쏟아져나옵니다. 그만큼 저출산 현상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다는 뜻인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출산율 세계 꼴찌 국가인 한국은 아마 2100년쯤 되면 그리 외롭진 않을 겁니다. 전 세계 출산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죠. 2021년 2.23명이던 세계 출산율은 2100년엔 1.59로 떨어진다는 예측입니다. 세계 인구도 2070년쯤이면 정점을 찍고 줄어든다는 전망입니다. -이민과 AI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전 세계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젊은 이민자 유치를 위한 국가간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겁니다. AI는 아직 생산성을 극적으로 향상시켜줄지 미지수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순 없습니다. 앞으로는 출산율의 작은 변화가 인구구성의 큰 차이를 가져올 테니까요. 해법은 결국 문화가 바뀌는 데 있을 겁니다.*이 기사는 5월 3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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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일즈포스 쇼크에 뉴욕증시 급락…AI 투자 붐의 어두운 뒷면 [딥다이브]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일제히 하락 마감했습니다. 기술주, 특히 소프트웨어기업 세일즈포스의 주가 급락이 지수 하락을 이끌었죠. 30일(현지 시각) 다우지수는 0.86%, S&P500 0.60%, 나스닥지수 1.08% 하락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세일즈포스 주가는 이날 무려 19.74%나 폭락했습니다. 2004년 이후 20년 만에 최대 하락률이라는데요. 고객의 수요 둔화를 이유로 매출 전망을 하향 조정한 영향입니다. 이는 다른 기술주 주가와 다우지수에까지 영향을 끼쳐 이날 하락세를 주도했는데요.월스트리트저널은 세일즈포스의 매출 부진이 최근 급증하는 AI 투자의 어두운 면이라고 설명합니다. AI 붐이 일고 각 기업이 관련 투자를 급격히 늘리면서 AI 이외의 다른 영역에 쏟을 돈이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같은 데 들이던 비용을 줄이고 있다는 거죠. RBC캐피탈마켓의 리시 잘루리아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최고투자책임자(CIO)들이 AI에 집중하는 부분이 세일즈포스의 확장을 희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합니다.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는 AI의 장기적인 잠재력이 회사에 긍정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성명에서 “우리는 기업들이 향후 10년 동안 AI의 약속을 실현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강조하는데요. 하지만 대부분 애널리스트는 세일즈포스 애플리케이션 내 생성형 AI 기능이 2025년 또는 2026년까지 매출 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있습니다.AI 투자의 역풍을 맞아 매출 성장이 둔화하는 조짐은 워크데이나 유니패스 같은 다른 소프트웨어 기업 실적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인데요. UBS 애널리스트 칼 커스테드는 “불안감은 세일즈포스에만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며, 하반기에 회복될 거란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분석합니다.이날 증시에서 눈에 띄는 종목은 패션기업 갭입니다. 1분기 순이익이 흑자전환하는 깜짝 실적을 발표하면서 이날 시간외거래에서 주가가 22% 넘게 급등했는데요. 산하 4개 브랜드(올드네이비, 갭, 바나나리퍼블릭, 아틀레타)의 매출이 모두 살아나면서, 내년 2월 마무리되는 연간 실적 전망치도 상향조정했습니다.갭은 지난해 8월 바비인형의 마텔을 부활시킨 것으로 유명한 경영인 리처드 딕슨을 CEO로 영입했죠. 딕슨 CEO는 4개 브랜드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비해, 죽어가던 미국 패션의 상징을 되살리려 했는데요. 그의 이런 작업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데이터의 닐 사운더스는 갭의 회복이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경영진이 사업 안전화를 위해 쏟은 노력에 대해 칭찬할 만하다”고 평가했는데요. 과연 바비인형처럼 갭도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부활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놀라운 경영 스토리로 기록될 만한데요. 딕슨 CEO는 인터뷰에서 “트렌드에 맞는 제품과 문화적인 화젯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멘텀이 직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3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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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킨 튀긴 기름으로 뜨는 비행기… 지속가능항공유 시장 ‘활짝’ [딥다이브]

    항공산업에 친환경 바람이 불면서 지속가능항공유(SAF)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이를 선점하려는 주요국과 대형 석유회사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탄소중립 비행을 향한 기대가 커지지만, 원료 공급이 한계로 지적된다.● 탄소중립 비행의 유일한 대안 지난해 11월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은 폐식용유로 만든 SAF를 넣은 항공기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100% SAF를 이용한 장거리 비행이었다. 치킨 튀긴 기름으로 비행기를 띄우는 시대는 이미 현실이다. SAF는 화석연료가 아닌 지속가능한 공급원료로 생산하는 항공연료이다. 폐식용유뿐 아니라 동물성 기름, 옥수수·해조류로 만든 바이오에탄올, 폐목재 등이 재료가 된다. 바이오 원료를 쓰기 때문에 일반 항공유보다 탄소배출량을 80%까지 줄일 수 있다. SAF가 항공업계에 처음 등장한 건 2008년. 여전히 항공연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밖에 되지 않는다. 일반 항공유의 3∼5배에 달하는 가격이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5%를 차지하는 항공 부문도 2050년 탄소중립이란 목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기 항공기는 배터리 무게 때문에 장거리 비행이 불가능하고, 수소 항공기는 수소 생산·보관·충전 인프라 구축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반면 SAF는 엔진 개조 없이 모든 항공기에 넣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기존 항공유와 섞어 쓸 수도 있다. 탄소중립 비행으로 가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SAF가 떠오른 이유다.● 미국은 보조금, EU는 의무화 아직 초기 단계인 SAF 시장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올해 SAF 생산량이 지난해의 3배인 18억7500만 L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2030년 사용을 위해 43개 항공사가 미리 계약해둔 SAF 물량을 합치면 162억5000만 L에 달한다. 윌리 월시 IATA 사무총장은 “2050년 항공산업 탄소중립 목표에 도달하려면 SAF 생산의 기하급수적 증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요국은 이미 시장 선점을 위해 나섰다. 미국은 SAF 생산업체에 1갤런(3.8L)당 1.25∼1.75달러(1700∼2400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2030년까지 SAF 생산량을 지난해의 100배가 넘는 연 30억 갤런(114억 L)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유럽연합(EU)은 내년부터 공항에서 이륙하는 항공기에 SAF를 일정 비율 이상 혼합하도록 의무화한다. 이 비율은 2%로 시작해 2030년 6%→2035년 20%→2050년 70%로 올라간다. EU혁신기금을 통해 SAF 생산시설 건설도 지원한다. 일본과 싱가포르, 영국 역시 1∼10%의 SAF 혼합 의무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은 올 1월에야 국내 정유사가 SAF를 생산할 수 있도록 석유사업법을 개정한 상황. 국내 정유업계는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중이다. 영국의 BP와 셸, 프랑스 토탈에너지스, 미국 셰브런·필립스66 같은 메이저 정유사가 SAF를 생산 중인 것과 비교하면 한발 늦었다.● 폐식용유·옥수수가 모자랄 판 SAF가 전 세계 항공과 정유업계의 뜨거운 관심사인 건 분명하지만 뚜렷한 한계도 있다. 원료 공급을 무한정 늘릴 수 없단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1년에 나오는 폐식용유는 60만 t 정도다. 이를 모조리 SAF 생산에 투입해도 미국 항공연료 수요의 1%밖에 채우지 못한다. 바이오에탄올을 원료로 쓰는 경우엔 옥수수 키울 땅이 문제다. 영국 가디언은 “영국이 항공연료를 (옥수수 기반 SAF로) 완전히 대체하려면 모든 농경지의 50%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SAF 생산이 늘면 팜유가 폐식용유로 둔갑해 팔리면서 열대우림 파괴로 이어질 거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IPS는 최근 보고서에서 “SAF는 화석연료에 대한 현실적이거나 확장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라면서 “항공업계의 그린워싱(친환경 위장술)”이라고 꼬집었다. SAF 생산량을 단기간 획기적으로 늘릴 방법이 없으니, 항공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뜻이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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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지 마, 찍지 마! 오버투어리즘에 맞서는 방법[딥다이브]

    여름이 다가옵니다. 북반구의 관광 성수기가 다가온다는 뜻이죠. 혹시 이번 여름에 해외여행을 계획 중이신가요. 그렇다면 조심하세요. 여러분을 맞이하는 건 아름다운 경치와 따뜻한 환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대신 관광객 물결과 쓰레기 더미, 셀카봉의 습격, 그리고 주민들의 원성에 시달릴 위험이 있죠.전 세계적으로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과잉관광)이 심각해지면서 이를 막기 위한 반대 움직임도 커졌습니다. ‘과잉관광이 이젠 뉴노멀’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해외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증가 추세이기 때문인데요. 거주민과 관광객 모두 원치 않는 과잉관광, 해결책은 뭘까요. 오늘은 오버투어리즘 현상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오지 마! 찍지 마!후지산 인증샷 때문에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골머리를 앓던 일본의 한 지자체가 결국 21일 전망을 가리는 대형 검은색 그물막(가로 20m, 세로 2.5m)을 설치했다는 뉴스 보셨나요. 일본 야마나시현 후지카와구치코 마을 이야기인데요. 아무 데나 차를 세우는 건 물론, 인근 건물 옥상까지 침입해 사진을 찍는 비매너 방문객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죠.이뿐 아니라 야마나시현은 7월부터는 후지산 관람인원도 제한한다고 합니다. 가장 인기 있는 등산로인 ‘요시다 루트’ 5부 능선에 게이트를 만들어서 하루 통과 인원을 4000명 이내가 되게 할 거라는데요. 통행료 2000엔(약 1만7500원)도 부과합니다.엔저 때문에 일본으로 유독 관광객이 몰려서 이 난리이냐고요. 그런데 요즘 유럽은 이보다 더합니다.스페인 바르셀로나시는 지난달 구글맵과 애플 지도에서 116번 버스 노선을 삭제해버렸습니다. 116번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구엘공원에 정차하는데요. 몰려든 관광객 때문에 버스가 너무 붐벼서 주민들(특히 노인들)이 버스를 타지 못할 지경이 되자, 시의회가 구글 등에 노선 삭제를 요청한 겁니다. 지역 주민들은 실제 이 조치가 효과 있다(버스에 관광객이 줄었다)면서 반긴다는데요.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구엘공원 전체를 구글맵에서 삭제하는 것”이라는 이 지역 시민운동가 이야기가 아주 농담처럼 들리지 않습니다.네덜란드 암스테르담시는 ‘디마케팅(수요를 줄이는 마케팅)’에 열을 올립니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스테이 어웨이(Stay Away)’ 광고 캠페인이 유럽에선 큰 화제였는데요. 홍등가와 코카인을 찾아 암스테르담에 오려는 18~35세 사이 영국 남성을 타깃으로 한 동영상 광고였죠. 술과 마약에 취한 관광객들이 경찰에 구금되거나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지저분하게 놀 생각이면 단념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올해 암스테르담시는 스테이 어웨이 2탄으로 온라인 퀴즈 사이트를 만들었는데요. ‘암스테르담 홍등가’를 구글에서 검색한 사람은 이 사이트 링크로 인도돼 정신교육(?)을 받게 될 겁니다. 현재는 영어 사이트만 있지만, 곧 이탈리아어·스페인어·프랑스어도 제공한다는군요.가장 기발한 발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건 이탈리아 베네치아였는데요. 4월 25일부터 성수기 특정 날짜엔 도시 방문객에게 5유로(약 7500원)의 입장료를 부과하는 시범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일부 관광지역이 아닌 도시 진입 자체에 입장료를 물리다니, 참 유례없는 일인데요. 베네치아는 주민(4만9000명)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연간 2000만명)이 몰리는 곳이죠. “도시를 폐쇄하는 게 아니라 폭발하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루이지 브루그나로 베네치아 시장은 취지를 설명하는데요. 정작 베네치아 시민들은 도시를 테마파크 ‘베네치아랜드’로 만들려는 거냐며 비판합니다. 그 밖에도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지난해 9월부터 시간제 티켓팅 시스템을 통해 시간대별 입장 인원을 제한합니다. 이탈리아 밀라노는 이달 3일부터 일부 유흥지역은 한밤중(밤 10시~오전 5시)엔 유리용기와 캔에 담긴 음료 판매를 금지하는 ‘밤 문화 금지 조례’를 시행했죠(원래 아이스크림까지 판매 금지 품목에 포함될 뻔했는데, 여론이 들고 일어나서 아이스크림은 허용). 비슷한 조치는 유럽 바깥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발리는 올해 2월부터 15만 루피아(1만3000원)의 관광세를 걷고요. 사파리 투어로 유명한 케냐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은 1월 1일부터 티켓 가격을 두배 이상으로 인상했습니다. 올해 여행객 역대 최대 전망한마디로 전 세계 곳곳이 과잉관광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고 지방정부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응하기 시작했죠.이런 오버투어리즘 현상은 코로나 이후 보복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문제는 이게 반짝하고 말 일이 아니란 겁니다. 왜냐하면 해외 여행객이 올해 역대급으로 늘어날 뿐 아니라, 앞으로 수년 동안 계속 늘어만 갈 테니까요.지금까지 전 세계 해외 여행객이 가장 많았던 해는 코로나 직전인 2019년(15억명)이었는데요. UN 세계관광기구(UNWTO)는 올해 이 기록이 깨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2019년보다도 여행객이 2% 늘어나 신기록을 세울 거란 전망인데요. 아울러 2030년이면 해외 관광객 수가 18억명으로 불어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왜 이렇게 관광객은 빠르게 늘어만 갈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먹고살 만해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중산층 인구의 급증 때문인데요. 전 뉴욕관광청 이사인 맥스 스타코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난 25년 동안 25억명 넘는 사람이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향후 20년 동안엔 20억명이 추가될 겁니다. 중산층은 가처분 소득 상승을 의미하고, 가처분 소득 증가는 곧 여행을 뜻합니다.” 중국에 이어 인도까지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여행을 떠날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거죠.동시에 이들 중 상당수가 비슷한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도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키우는 이유입니다. 소셜미디어 영향이 크죠. 위대한 예술작품이나 건축물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게 너무나 중요해진 건데요. ‘인증샷 성지’로 알려진 일부 핫스폿에 관광객이 집중되면서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위성데이터를 분석해 지속가능한 관광을 연구하는 프랑스 스타트업 머머레이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여행자의 80%가 단 10%의 관광지를 방문합니다.오죽하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관람객이 사진찍기 쉽게 하기 위해 모나리자를 별도 공간으로 옮길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을 정도이죠. 루브르 관람객 중 80%는 모나리자를 보러 온다고 합니다.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 손해오버투어리즘을 얘기하면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관광객 때문에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도 성장하니까 어느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하지만 바로 그 부분-관광객이 쓰는 돈이 어디로 가느냐-이 문제입니다. 관광으로 벌어들인 돈이 현지인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지역 인프라에 투자된다는 보장이 없죠. 돈 버는 건 소수이고, 실제 대다수 지역 주민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스페인의 유명 휴양지 이비자 섬이 이런 사례인데요. 관광객 급증으로 임대 주택이 대거 에어비앤비 숙소로 바뀌고, 관광 관련 일자리를 채우려 외부인이 몰려들면서 이 섬의 주택 임대료는 치솟았습니다. 이 때문에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원주민들은 섬 밖으로 이사를 떠나거나 자동차·카라반에서 생활하게 됐죠. 스페인 방송은 이사 이후 매일 비행기로 이비자섬 학교로 출퇴근하는 워킹맘 교사의 사연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얼마 전 이비자에선 숙박시설 제한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시위를 주도한 단체 프로우 이비자(Prou Ibiza)의 대변인 라파엘 히메네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관광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관광으로 집값이 오르면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습니다.”사실 오버투어리즘은 관광객에게도 큰 문제입니다. 자칫 돈은 돈대로 쓰면서 유적이나 자연풍광 대신 다른 사람 뒤통수만 보다 오게 될 수 있으니까요. 치솟는 가격, 너무 긴 줄, 붐비는 해변, 훼손된 유적지는 관광객 역시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소중한 휴가를 그렇게 망치고 싶진 않다고요.무엇보다 오버투어리즘이 계속된다면 관광산업엔 위기입니다. 가장 중요한 제품-매력적인 관광지-이 남아나질 않게 될 테니까요. 호주 웨스턴시드니대학교의 관광학 교수 조세프 치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버투어리즘은 단순히 관광을 너무 많이 하는 것 이상입니다. 이는 정부정책의 실패와 관광 관리의 무능력에 관한 것입니다.”더 많은 세금? 더 많은 연구!그럼 해결책이 무엇일까요? 관광을 덜 하게 만들자고요? 글쎄요. 관광지 폐쇄 같은 극단적 조치가 아니고는 관광객의 절대 숫자 자체를 줄이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베네치아의 입장료 정책을 보면 알 수 있죠. 앞에서 설명한 대로 관광객이 몰릴 만한 날짜엔 도시 방문객에게 5유로의 입장료를 걷고 있는데요. 오히려 베네치아엔 전년보다 더 많은 관광객(하루 8만명 이상)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란 비판이 쏟아지죠.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 세계 많은 여행자들에게 베네치아는 일생에 한 번 가볼 만한 곳으로 꼽히잖아요. 5유로 때문에 방문을 주저하게 되진 않는 겁니다. 관광객이 요금에 민감할 거란 정책의 기본 전제 자체가 틀린 셈이죠. 스페인 로비라이비르길리대학 지리학 교수인 안토니오 파올로 루소는 이 조치가 정치적 제스처일 뿐이라며 이렇게 지적합니다. “5유로는 수요에 큰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이 시스템 도입이 방문자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에 대한 사전 연구조차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베네치아의 5유로 입장료는 해결책이라기보다는 과잉관광이 이 정도로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 하겠습니다.아니, 그럼 해결책이 없느냐고요?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세금이나 수수료 같은 무딘 정책으로는 효과를 보긴 어렵습니다.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일률적인 솔루션이란 없죠. 대신 관광전문가들은 더 적극적이고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관광객들을 아예 오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특정 시점이나 장소에 덜 몰리도록 흐름을 분산하는 게 목표가 돼야 한다는 거죠.어떻게 하면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을 발굴해서 알릴까요. 인증샷 찍기가 아닌 문화를 체험하는 여행이 되게 하려면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할까요. 비수기에도 관광객들이 찾아올 만한 즐길 거리는 무엇일까요. 정부와 관광청, 여행업계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겁니다. 더 많은 데이터와 연구, 마케팅 노력이 필요하죠.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학의 해럴드 굿윈 명예교수는 이에 더해 이렇게 당부합니다. “(새로 발굴한) 다른 곳에서도 같은 문제가 재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관광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를 지역주민들과 협의해 명확한 전략을 수립하는 겁니다.”아울러 여행자들도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가디언의 사설 한 토막을 전합니다. “관광객 스스로도 자제력을 발휘하고 멀리 떨어진 명소가 아닌 로컬 여행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엔 경이로운 곳이 많습니다. 그 경이로움에 다가가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By.딥다이브여행 명소 사진을 고르다 보니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앞으론 언제 어디로 가야 환대 받을 수 있을지를 미리 따져보고 여행 계획을 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일본 후지카와구치코 마을은 밀려드는 관광객을 막기 위해 검은 가림막을 쳤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인기 버스 노선을 구글맵에서 지웠고요. 베니스는 도시 입장료 5유로를 부과합니다. 모두 오버투어리즘에 대응해 나온 조치입니다.-과잉관광은 이제 새로운 표준입니다. 올해 전 세계 해외여행객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할 겁니다. 신흥국의 경제 성장으로 관광객은 계속 늘어만 갑니다.-관광세나 입장료를 거둔다고 여행객 물결을 막을 순 없을 겁니다. 훨씬 더 정교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목적지를 발굴하고 비수기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최선입니다. 여행객들도 뻔한 명소 대신 색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면 어떨까요.*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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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발 ‘차세대 산업혁명’ 수혜주는? 유틸리티 주식이 뛴다[딥다이브]

    미국 증시가 휴장으로 조용한 날입니다. 그럼 모처럼 뉴욕증시를 복습해볼까요. 지난 3개월 동안 S&P500 섹터 중 가장 높은 성과를 낸 건 어느 분야일까요? 엔비디아가 포함된 IT섹터일 거라고요? 아닙니다. 바로 유틸리티 섹터입니다. 석달 수익률이 15.2%로 에너지(6.6%)나 IT(5.1%)를 크게 능가하죠.지난주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기업과 국가가 기존 데이터센터를 ‘AI공장’으로 전환하면서 차세대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말했죠.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 플랫폼 같은 기술기업이 AI 데이터센터 관련 인프라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기 시작했는데요. 월스트리트가 유틸리티 주식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뉴욕라이프인베스트먼트의 로렌 고드윈 이코노미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가 투자 가능한 기회입니다. 데이터센터 구축업체와 운영자, 전력과 유틸리티 업체 말이죠.”사실 지난해까지 유틸리티 섹터는 암울했습니다. S&P500 지수가 24% 오른 2023년에도 유틸리티 주식은 10% 넘게 하락했죠. 지루하지만 안정적인 고배당주로 분류되던 이 섹터는 고금리 환경에선 매력이 떨어져 보였는데요. 하지만 AI 산업혁명이란 스토리가 씌워지면서 평가가 확 달라집니다. 베스포크인베스트의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투자메모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투자자들이 이제 유틸리티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AI를 실행하려면 많은 전력이 필요하고, 전기차 수요와 현대의 냉난방 수요를 고려하면 지금의 전력망은 비참할 정도로 부적절해 보입니다.”일부 유틸리티 주식은 주가 상승률이 엔비디아 못지않습니다. 데이터 서버 전문업체 버티브홀딩스(Vertiv Holdings) 주가는 올해 132%, 지난 1년 동안 427%나 뛰었죠. 공기가 아닌 물로 전력장비 열을 식히는 서버냉각 기술에서 선도적인 업체라는 게 시장이 주목한 이유입니다. 버티브의 CEO 지오다노 알베르타지는 “아직 초기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AI가 (데이터센터) 최종 시장 전반에 걸쳐 빠르게 광범위한 주제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하죠.전기를 만드는 발전회사도 주목받고 있죠. 미국 최대 원자력 발전 사업자인 컨스텔레이션에너지(Constellation Energy) 주가는 올해 들어 100% 상승했는데요. 막대한 전력수요를 충족하려면 원전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달 실적발표에서 이 회사 조셉 도밍게스 CEO는 “데이터 경제와 원자력 에너지는 땅콩버터와 젤리처럼 함께 어울린다”면서 여러 기업과 전력 판매를 위한 대화를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역시 발전회사인 비스트라(Vistra)와 NRG에너지(NRG Energy)의 올해 주가상승률은 각각 168%와 68%에 달합니다.다만 AI 효과가 미리 주가에 반영되면서 이미 고평가됐다는 분석도 함께 나옵니다. 컨스텔레이션에너지의 경우 주가가 내년에 예상되는 주당 수익의 30배 수준에 거래되고 있죠. 일반적인 유틸리티기업이 16~17배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인데요. 배런스는 향후 AI가 에너지 수요를 얼마나 늘릴지가 불확실하다(2배부터 10배까지, 기관마다 예측이 다름)는 점을 지적합니다. 또 실제 AI 대박이 유틸리티 기업 매출로 이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며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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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가 마음을 읽기 시작했다…무섭게 진화한 인공지능[딥다이브]

    인공지능(AI)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또는 마음을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을까요.갑자기 웬 철학적 질문이냐고요? 이건 최근 심리학계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GPT-4 같은 대규모언어모델(LLM)이 과연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주제로 한 연구가 이어지는데요. 만약 정말 AI가 사람처럼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오늘은 AI와 마음 논쟁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마음 읽는 게 중요한 이유먼저 심리학 이야기 좀 해볼게요. 인간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에 놀러온 친구가 ‘여기는 좀 덥네’라고 말하면, 그건 단순히 온도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선풍기를 틀어달라는 요청이라는 걸 우린 알아차릴 수 있죠. 심리학에선 이런 능력을 ‘마음이론(Theory of 놀러 온d)’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마다 마음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마음이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이해하는 능력이죠. 인간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결정적인 능력입니다. 발달심리학에 따르면 마음이론은 사람이 타고나는 게 아닙니다. 뇌가 발달하면서 생겨나죠. 보통 만 4세가 되어야 ‘내가 아는 걸 다른 사람은 모를 수 있다’는 걸 이해하기 시작하는데요. 유명한 ‘샐리(Sally)-앤(Anne) 테스트’라는 게 있습니다. 샐리라는 소녀가 바구니에 구슬을 넣어두고 갑니다. 그리고 앤이란 소녀는 샐리가 보지 않을 때 그 구슬을 꺼내 상자로 옮깁니다. 이후 다시 돌아온 샐리는 어디에서 구슬을 찾을까요? 이에 대해 ‘바구니’라고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시기가 4-5세인 겁니다. 인지발달에 문제가 있는 경우(예-자폐스펙트럼) 마음이론 발달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아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부족합니다). 남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죠. 긴장된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적절한지를 판단하고, 운전할 때 다른 차 운전자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추측하고, 영화 속 주인공에 공감하는 것. 모두 이 마음이론과 관련 있습니다. 그만큼 사회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한 능력이죠.LLM이 인간을 추월했다과연 인공지능(AI)도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오랫동안 학계에선 부정적이었습니다. 2018년 미국의 인지신경과학자 바비 아자리안은 이렇게 단언했죠. “구글 알파고가 세계 최고의 바둑 고수를 이기고, 보스턴 다이내믹스 로봇은 숲속을 달릴 수 있지만 마음이론의 기본 기능은 갖추고 있지 않다. 딥러닝 같은 기술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리능력과 속도가 향상한다고 해서 마음이론을 갖춘 컴퓨터가 갑자기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사실 인간도 어떻게 해야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생겨나는지를 완전히 알지 못하잖아요. 인간이 그리 애쓰지 않고 얻어낸 능력이다 보니 AI에게 그걸 가르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그런데 최근 AI가 이 능력을 깨우쳤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대언어모델(LLM)을 상대로 마음이론 테스트를 진행해보니, 인간 뺨치는 점수를 얻었다는 연구결과인데요.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미칼 코신스키 교수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업데이트한 논문 ‘마음이론 작업에서 대규모 언어모델 평가’가 논쟁의 시작점이었죠. 그는 11개의 거대언어모델(LLM)을 상대로 마음이론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쓰는 것과 같은 문항을 제시하고, 거기서 설명한 사람의 행동을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는지를 확인했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LLM의 마음이론 수준이 상당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줬는데요. 2018년 오픈AI가 개발한 첫번째 AI모델인 GPT-1이나 2019년 나온 GPT-2는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 11월 버전의 GPT-3는 문제의 20%를 해결했고요. 지난해 6월 나온 GPT-4는 75% 정답률을 보였습니다. 만 6세 어린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진화한 거죠. 이에 대해 코신스키 교수는 “마음이론이 거대언어모델에서 자발적으로(Spontaneously) 등장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AI가 사람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을 스스로 길러내고 있다는 거죠.이 연구는 학계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킵니다. 무엇보다 연구방법이 정교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이어졌죠. 문제를 약간만 변형해도(예-물건이 투명한 상자 안에 있다고 바꿔 물으면) AI의 정답률이 확 떨어진다며 반박하는 논문도 나왔는데요(토머 울먼 하버드대 교수).이에 독일 함부르크-에펜도르프대학 메디컬센터 팀은 이를 더 체계적으로 평가하겠다며 또다른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 논문이 20일 과학저널 ‘네이처 인간행동’에 실렸죠.연구팀은 인간과 LLM을 상대로 똑같은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오픈AI의 GPT-4와 GPT-3.5, 메타의 LLaMA2-70B에 테스트 과제를 수행하게 했고요. 사람 1907명에도 같은 문제를 풀게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제입니다. ‘질이 새집으로 이사해 침실에 새로 산 커튼을 달았다. 친한 친구인 리사가 와서 ‘그 커튼 끔찍하다. 새 커튼을 사면 좋겠다’라고 말했다’와 같은 대화상황을 줍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죠. 누군가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을 했나?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은 무엇인가? 리사는 커튼이 새것이란 걸 알고 있었나?그래서 그 결과는? 전반적으로 GPT-4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5개 영역 중 4개에서 인간보다 점수가 높거나 같았죠. 점수만 보면 인간보다 인간 마음을 더 잘 이해하는 셈입니다.이런 결과는 연구팀마저 당황시켰는데요. 연구에 참여한 크리스티나 베키오 함부르크대학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구 진행 전 우리 모두는 LLM이 이런 정신 상태의 미묘한 능력을 평가하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예기치 못한 놀라운 결과입니다.”마음 아는 AI의 쓸모자, 그럼 드디어 AI가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까지 갖게 된 걸까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나요? 글쎄요. 아직 그렇게 결론 내리긴 이릅니다. 대신 연구팀은 좀 더 신중하게 표현합니다. “LLM이 마음이론 작업에서 인간 행동과 구별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준다”라고요.정말 AI가 마음을 ‘이해’한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적어도 마음을 이해하는 인간을 거의 똑같이 모방하고는 있다는 건데요. 그런데 궁금합니다. 모방품이 진짜와 차이가 없어 보인다면,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죠? 많은 연구자들은 여전히 비판적입니다. AI모델이 비슷한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학습했다가 기억해냈을 수 있다는 거죠. 또 인간 참가자들이 얼마나 테스트에 열심히 임했는지도 알 수 없고요. 무엇보다 과연 인간에게 쓰는 것과 같은 테스트로 AI를 평가할 수 있느냐도 의문입니다. 워싱턴대학의 컴퓨터언어학 교수 에밀리 벤더는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죠. “인간 답변과 유사한 출력을 생성하는 게 왜 중요하죠? 그게 LLM의 작동방식에 대해 뭘 가르쳐주나요?”하지만 AI가 마음 읽는 능력을 따라 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습니다. 인간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단 뜻이니까요. 지금 AI 로봇은 주로 힘쓰는 노동(물류로봇, 가사로봇 등) 위주인데요. 만약 사람의 마음에 인간처럼 반응한다면 환자나 노인, 어린이를 돌보는 일을 수행하는 AI 로봇도 현실화될 수 있을 겁니다. 물리적인 도움뿐 아니라 정서적 케어까지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AI의 활용 영역이 확 커지는 셈이죠.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사람에겐 AI가 아주 유용한 보조기구가 될 겁니다. 일종의 ‘인간 마음 해석기’가 생기는 거죠. 걷기가 불편한 신체 장애인이 휠체어를 이용하듯, 발달장애인은 AI를 이용해 인지의 어려움을 해결할지 모릅니다.물론 기술 발전엔 양면이 있습니다. AI가 정말 사용자의 마음을 읽고 행동을 예측하게 된다면 사람을 속이거나 조작하기도 훨씬 쉬워지겠죠. 표정으로 감정을 알아챈다?지금까지 소개한 연구 결과, 어떻게 보셨나요.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황을 글로 제시했기 때문에 테스트에서 AI가 뛰어난 성과를 보인 것 아닐까. 비언어적 표현만 있다면 마음을 읽어내기가 훨씬 어려울 텐데?사실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 톤을 가지고 사용자 감정을 감지하는 기술은 1990년대부터 개발돼 왔습니다. 얼마 전 공개된 GPT-4o도 이런 기능을 선보였고요. 기본 작동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얼굴 사진이나 영상, 녹음된 목소리 등)를 감정별로 분류한 뒤 이를 AI에 학습시키는 거죠. 다만 과거보다 지금은 훨씬 더 대규모 데이터가 AI 학습에 쓰이는 게 진보된 점인데요. 미국 AI 스타트업 흄 AI는 ‘감성 지능’을 가진 AI 개발을 위해 100만 명 이상 사람의 데이터를 사용했다고 하죠. 그 결과 “당신이 어떤 유머에 대해 웃을지, 또는 실망할지를 (AI가) 예측할 수 있다”는 게 흄AI 알란 코웬 CEO의 설명입니다. 심지어 목소리를 분석해 “누군가 우울증이나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지도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덧붙였죠.그거참 신통하다고요? 그래서 이러한 감정 AI 시스템은 이미 많은 기업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콜센터에선 직원의 통화 내용과 목소리톤을 모니터링하는 데 쓰고요. 어떤 기업은 면접 과정에서 AI로 면접자의 표정을 분석하죠.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실제 생활에서는 그 감정인식 기능이 잘 들어맞지 않습니다. 100만명보다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집어넣고, 감정표현 분류를 수십 개 더 늘린다고 해도 말이죠. 왜냐고요? 문화권마다, 사람마다 감정 표현은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예컨대 ‘화난 얼굴’ 하면 어떤 표정이 떠오르나요? 찌푸린 얼굴, 치켜뜬 눈썹, 악물고 있는 치아. 이모티콘에서 보는 그런 표정이 쉽게 떠오를 텐데요. 실제 연구에 따르면 서양인 중 65%는 화가 나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찌푸린 얼굴은 집중할 때, 나쁜 말장난을 할 때, 그리고 배에 가스가 찼을 때 나타나곤 했죠.즉, 현재 AI가 학습하는 감정 관련 데이터세트는 고정관념의 산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AI가 면접자의 감정을 잘못 읽어 불합격시키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파킨슨병 진단을 내릴 위험이 얼마든지 있죠. 노스이스턴대학 심리학 교수 리사 펠드먼 배럿은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숙련된 구직자를 고용하고, 불안과 우울증을 진단하고, 법정에서 유무죄를 평가하고, 공항에서 테러리스트를 탐지하기 위해 사람의 감정상태를 분석한다고 주장하는 감정AI를 접한다면 회의적이어야 합니다.”물론 이런 회의론을 제기한다고 해서 AI 기술 기업들이 기술 발전 속도를 조절하진 않을 것 같긴 합니다. 방향이 맞는지를 점검할 새도 없이 앞만 보며 달려 나가기 바쁘니까요. 언젠가 아차 싶어서 뒤를 돌아볼 때가 온다면 그땐 이미 늦었을지도. By. 딥다이브얼굴 표정으로 미묘한 감정 변화를 알아채고, 말속에 숨은 의도를 파악해 눈치껏 행동하는 것. 사람에게도 꽤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이런 마음과 감정의 영역마저 AI가 척척 수행해버리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솔직히 듭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인공지능(AI)이 사람의 마음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마음이론 테스트’로 거대언어모델(LLM)의 마음읽기 능력을 파악하는 연구가 속속 이어지고 있습니다.-결과는 놀랍습니다. 한 연구에선 GPT-4가 6살 어린이 수준의 마음읽기 능력을 보이는 걸로 나왔고요. 심지어 최신 연구에선 인간 실험 참가자들의 점수를 능가하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AI가 마음을 이해한다고 결론 내리긴 이르지만, 인간의 능력을 똑같이 모방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 같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감정을 알아내는 AI 기술 역시 점점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반영해 틀린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회의론도 제기되죠. 기술 발전에 열광하는 것 못지않게,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점검도 필요해 보입니다.*이 기사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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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비디아’ 된 엔비디아…뉴욕증시는 하락 마감[딥다이브]

    뉴욕증시가 일제히 하락 마감했습니다. 엔비디아의 호실적도 지수를 떠받치지 못했는데요. 미국 경제가 너무 강해서 연준의 금리 인하가 지연될 수 있단 우려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23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1.53%, S&P500 0.74%, 나스닥지수는 0.39% 하락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전날 1분기 실적을 발표한 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9.32% 급등해 처음으로 10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종가 1037.99달러). 엔비디아는 낙관적인 2분기 매출 전망과 함께 10대1 주식 분할을 발표했죠.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 2조5000억 달러를 넘어섰는데요. 하루 만에 시총이 300조원 불어난 셈입니다. 뱅크시즈은행 최고투자책임자인 찰스-헨리 몬카우는 엔비디아 실적이 “완벽했다”고 말합니다. “주가가 연초 이후 이미 두배로 뛰었지만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이죠.하지만 S&P글로벌의 구매관리자지수(PMI) 발표가 증시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5월 종합지수는 54.4를 기록했는데요. 예상치(51.1)를 크게 웃돌 뿐만 아니라, 4월의 51.3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이 지표가 50을 초과한다는 건 경기가 확장 국면이란 뜻이죠. 즉, 미국 경기의 확장이 가속화하고 있는 겁니다.이러한 경기호황 징후는 증시엔 부담이죠. 올해 안에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거라고 베팅해왔는데, 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지니까요.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트레이더들은 연준이 9월 회의에서 금리를 내릴 확률을 지난주 68%에서 이날 51%로 낮췄습니다. 보통 확률이 60% 미만이면 연준이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더 이상 없다는 신호로 간주되곤 하죠.이날 특히 다우지수가 큰 폭으로 빠졌는데요. 보잉 주가가 7.55% 급락한 영향이 컸습니다. 보잉의 CFO 브라이언 웨스트는 이날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올해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가 될 거라고 밝혔는데요. 항공기 납품도 1분기보다 2분기에 더 회복하지 않을 거라는 우울한 전망을 전했습니다. 항공기를 고객에게 인도해야만 돈이 들어오는데, 공급망 문제로 부품이 제때 확보되지 않으면서 제품 인도가 지연되고 있는 거죠. 이는 여러 항공사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요. 유나이티드 항공과 아메리칸 에어라인,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보잉 제트기 지연으로 인해 성장과 채용 계획을 축소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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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식용유로 나는 비행기가 대세라는데…친환경인가 그린워싱인가[딥다이브]

    세계 최초로 디젤엔진을 발명한 독일 엔지니어 루돌프 디젤. 그가 1900년 파리박람회에서 디젤엔진을 시연하며 쓴 연료는 땅콩기름이었습니다. 120년 넘게 지난 지금, 이제 콩기름은 비행기까지 띄웁니다. 지속가능 항공유(Sustainable Aviation Fuel), 약자로 SAF 이야기입니다.항공 시장에도 ‘탄소중립’ 바람이 불면서 폐식용유로 만든 SAF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는데요. SAF는 흔히 ‘친환경 비행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평가받죠. 동시에 ‘항공산업의 대규모 그린워싱(친환경 위장술)’이란 회의론도 공존합니다. 오늘은 항공과 정유업계의 떠오르는 이슈, 지속가능 항공유(SAF) 시장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탄소배출 없이 날 수 있을까지난해 11월 28일 지속가능 항공유(SAF)를 넣은 보잉 787 드림라이너가 대서양 횡단(런던에서 뉴욕까지) 비행에 성공합니다. 세계 최초의 100% SAF를 이용한 장거리 비행이었죠.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은 “탈탄소화를 향한 항공 로드맵의 역사적 순간”이라며 비행 성공을 자축했는데요. SAF는 정확히 무엇일까요.지속가능 항공유(SAF)란 말 그대로 화석연료가 아닌 지속가능한 공급원료로 생산되는 항공연료입니다. 폐식용유와 동식물성 기름, 옥수수와 해조류, 폐목재가 주원료가 되고요. 음식물 쓰레기나 폐수처리 슬러지 같은 쓰레기도 재료가 됩니다.SAF라고 해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콩이나 옥수수 같은 식물은 성장할 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잖아요. 따라서 전체 수명주기로 따지면 당연히 지금 쓰는 제트유(화석연료 항공유)와 비교하면 탄소배출량이 훨씬 적습니다. 탄소배출량이 최대 80%까지 줄어든다고 하죠.그동안 항공업계는 ‘탄소중립 암흑지대’나 다름없었습니다. 탄소배출량은 엄청난데(항공연료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5%를 차지) 제트유 없이 비행할 대안이 마땅찮았거든요. 크게 ①대형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 항공기와 ②수소를 동력원으로 하는 수소 항공기가 대안으로 거론되긴 했는데요. 전기 항공기는 배터리가 너무 무거워서 장거리 비행은 사실상 불가능하고요. 수소 항공기는 수소 생산과 보관, 충전 등 인프라 구축까지 하세월이라 단기간 현실화가 쉽지 않습니다.그래서 항공은 친환경이 될 수가 없다, 고로 비행기를 덜 타는 것만이 방법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나요. 오히려 2050년까지 전 세계 연간 항공기 승객 수는 지금의 2배 수준인 80억명으로 불어날 거라는데요. 어떻게 해야 비행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탄소중립으로 나아갈까에 대한 고민 끝에 찾은 답이 SAF입니다.SAF의 가장 큰 장점은 추가적인 인프라 투자가 거의 필요 없다는 거죠. 항공기 엔진도, 연료공급 인프라도 기존 것 그대로 쓰면 됩니다. 제트유를 쓰는 모든 항공기에 다 SAF를 넣을 수 있습니다. 제트유와 SAF를 섞어서 써도 되고요.지금은 시장 점유율 0.1%이지만지속가능 항공유(SAF)는 아직 전체 항공연료 소비량의 0.1%만 차지합니다. 많은 장점(저탄소, 호환성)에도 좀처럼 소비가 확 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가격이죠. 제트유와 비교하면 생산단가가 3~5배에 달합니다.주요국은 일제히 지속가능 항공유(SAF) 늘리기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가장 화끈한 건 역시 미국이죠. 미국은 2030년까지 SAF를 연간 30억 갤런, 2050년엔 350억 갤런을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지난해 미국 내 소비량(2450만 갤런)과 비교하면 7년 뒤 120배, 27년 뒤 1400배로 늘린다는 엄청난 계획인데요. 이를 통해 2050년엔 미국 내 SAF 생산량이 자국의 항공연료 수요를 100% 충족하게 만들 거란 목표입니다.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미국 정부는 관련 보조금을 팍팍 지급 중인데요. 2022년 제정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지난해부터 SAF 1갤런 생산당 1.25~1.75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합니다. SAF 생태계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먼저 치고 나오는 거죠.유럽연합(EU)은 당근 대신 채찍 전략을 씁니다. 내년부터 EU 공항에서 이륙하는 모든 항공기는 반드시 SAF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도록 의무화해버렸죠. 2025년엔 연료의 2%를 SAF로 채워야 하지만, 이 비율은 점점 높아져 2050년엔 70%가 됩니다(2025년 2%→2030년 6%→2035년 20%→2050년 70%). 이 비율을 지키지 않는 항공사엔 상당한 수준의 벌금(제트유 가격의 2배)이 부과될 겁니다.EU를 따라서 다른 주요국에서도 SAF 혼합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속속 발표 중인데요. 일본과 영국은 2030년까지 연료의 10%를 SAF로 채우도록 의무화했고요. 최근 싱가포르도 2026년부터 1%를 의무비율로 한다고 발표했습니다.이런 조치가 소비자가 부담할 항공요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솔직히 좀 걱정스러운데요. SAF 산업 측면에선 상당한 수요가 새로 열린다는 뜻입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퍼리컬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6억2260만 달러(약 8400억원)였던 SAF 시장은 2033년이면 152억5816만 달러(약 20조6000억원)로 커질 거라고 하죠.영국 BP·쉘, 미국 월드에너지·제보·필립스66, 프랑스 토탈, 핀란드 네스테, 일본 이데키츠 등. 이미 기존 정유사와 스타트업 등 수십 곳이 이미 이 시장에 뛰어들어 SAF 생산에 나섰는데요. 한국은 뒤늦게 올 1월에야 석유사업법을 개정해 SAF를 항공유로 인정한 상황. 하지만 아직 제도나 시설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국내 정유사가 실제 SAF를 생산하기까진 시간이 좀 걸립니다.SAF가 제트유를 대체하려면어떤가요. 수십조원대 규모의 시장이 조만간 열린다고 생각하니, 이 흐름을 빨리 따라잡아야겠다는 조바심이 나시나요. 그런데 잠시만요. 지금 나오는 그 로드맵들, 정말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정말 SAF가 2050년엔 제트유를 대체할 정도로 그렇게 많이 생산될 수가 있나요?이건 자본의 문제가 아닙니다. 원료공급의 뚜렷한 한계입니다. SAF의 중요한 원료 중 하나가 폐식용유인데요. ‘치킨 튀긴 기름으로 비행기가 하늘을 난다’는 발상은 매우 훌륭하지만, 폐식용유는 석유처럼 땅을 파면 계속 나오는 원료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매년 약 60만t의 폐식용유가 수집되는데요. 그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SAF로 만든다면? 아마 현재 미국 항공연료 수요의 고작 1% 정도를 채울 수 있을 겁니다.SAF 제조사들은 지금도 다른 나라에서 폐식용유를 수입해 오고 있죠. 만약 폐식용유 수요가 SAF 때문에 급증하면 열대 농장에서 생산된 팜유가 폐식용유로 둔갑해 팔리지 않을까요? 이로 인해 삼림 벌채가 늘면서 오랑우탄을 비롯한 멸종위기 종이 위험에 처하고요. 너무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 아니냐고요? 글쎄요. 이미 지난해 브뤼셀의 싱크탱크 팜유럽은 “말레이시아에서 수집된 것보다 더 많은 폐식용유가 말레이시아에서 영국과 아일랜드로 수출됐다”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물론 폐식용유만 SAF 원료는 아니죠. 옥수수로 만든 바이오에탄올도 주요 원료로 꼽히는데요. 이건 옥수수를 키울 땅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 기사에서 “영국이 제트유를 (옥수수가 원료인 SAF로) 완전히 대체하려면 모든 농경지의 50%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식량 안보와 숲·습지 보존 측면에서 SAF로 바이오에탄올 수요가 늘어나는 건 오히려 마이너스일지 모릅니다.요약하자면 지금 각국이 내놓은 SAF 계획은 너무 야심 차다 못해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때문에 미국 진보성향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소(IPS)는 최근 보고서에서 SAF가 “(이름과 달리) 지속가능하지 않은 잘못된 해결책”이고 “항공의 그린워싱”이라고 비판했는데요.그럼 어쩌란 말이냐고요? ‘더 적은 비행’만이 친환경을 위한 진짜 해답이란 주장입니다. 아무리 폐식용유와 바이오에탄올과 폐목재를 다 동원해서 SAF 생산을 최대로 끌어올려도 항공수요가 줄지 않는 한 ‘탄소중립 비행’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는 거죠. SAF와 관련한 장밋빛 전망에 대해 조금은 냉정해질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By.딥다이브지속가능 항공유(SAF)가 무엇인지 알고 계셨나요? 앞으로 점점 많이 접하게 될 용어여서 소개해드렸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항공도 친환경이 가능할까요. 전기 항공기와 수소 항공기 모두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속가능항공유(SAF)가 친환경의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 떠오릅니다. 폐식용유와 동식물성 기름, 옥수수와 해조류 등을 원료로 하는 항공연료입니다. -전체 생애주기로 볼 때 SAF는 제트유보다 탄소배출량을 80% 줄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생산자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SAF 생산을 공격적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유럽, 일본 등은 연료의 일정비율을 SAF로 채우도록 의무화합니다. 지금은 전체 항공연료의 0.1%가 채 되지 않는 SAF 수요가 빠르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새롭게 열리는 시장에 대한 관심은 뜨겁습니다. 문제는 SAF 생산을 그렇게 확 늘린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인데요. SAF 생산 붐 때문에 혹시 삼림 벌채가 늘고 식량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SAF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는 점 알아두세요.*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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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비디아 실적 기대감에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딥다이브]

    엔비디아 실적 발표에 대한 기대감에 나스닥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다우지수는 다시 4만선 아래로 떨어졌죠. 20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49% 하락했고, S&P500과 나스닥지수는 각각 0.09%와 0.65% 상승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이번 주 증시의 주인공은 단연 엔비디아입니다. 22일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2% 넘게 상승했는데요. 애널리스트들이 잇따라 목표주가를 상향한 영향입니다. 이날 바클레이스는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850달러에서 1100달러로, 베어드는 1050달러에서 1200달러로, 스티펠은 910달러에서 1085달러로 높여 잡았죠. 신제품 H200가 2분기에 출시되면서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강력한 성장이 예측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엔비디아의 이날 종가는 947.8달러로 올해 들어서 91.4%, 지난 12개월 동안 203.3% 상승했습니다.이날 눈에 띄는 종목은 JP모건체이스입니다. ‘월가의 황제’ 제이미 다이먼 CEO가 조기 은퇴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주가가 4.5% 급락했는데요. 그는 이날 연례 주주총회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CEO로 남을 계획이냐는 질문에 “더 이상 5년은 안 남았다”고 답했습니다. 오랫동안 ‘은퇴가 5년 남았다’고 농담처럼 말해왔던 그가 입장을 바꾼 거죠. 2005년 말 JP모건체이스 CEO에 오른 그는 현재 만 68세입니다. 그가 언제 CEO에서 물러날지는 애널리스트들의 큰 관심사였죠. 다만 그는 정확한 은퇴 시점을 언급하진 않았습니다. 그는 “정장을 입을 수 없거나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을 때 떠나야 한다”고만 말했습니다.이날 다이먼이 자사주 매입에 다소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친 것도 주가 하락을 부추겼습니다. 그는 “우리는 이 가격으로 많은 주식(자사주)을 다시 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주가가 사상 최고가인 지금이 아니라 주가 하락기에 자사주 매입에 공격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입니다. JP모건이 자사주 매입을 늘리기를 기대했던 투자자 입장에선 실망스러운 발언이었죠. 17일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던 JP모건 주가는 이날 꽤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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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자기 구리가 귀해졌다…왜 더 많이 캐내지 못할까?[딥다이브]

    인류 최초의 산업용 금속. 세계 경기 판단의 지표가 되는 원자재. 전기화의 대표적 금속.뭘 얘기하는지 아시겠죠. 바로 구리입니다. 구리 가격이 최근 t당 1만 달러를 다시 넘어서면서 국제 원자재 시장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13년 전 끝난 ‘슈퍼사이클’이 다시 시작될 거란 관측까지 나오는데요. 구리의 수요 공급 상황이 어떻길래 이런 전망이 힘을 얻는 걸까요. 오늘은 심상찮은 글로벌 구리 시장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구릿값 연말 1만2000달러 전망“금세기 구리의 두 번째 장기 강세장이 시작됐다.” 씨티그룹의 원자재 분석가 맥시밀리언 레이튼의 주장입니다. 그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2~3년 내 폭발적인 가격 상승 가능성”을 언급했죠.“구리의 시대는 지금이다.” 지난 3월 골드만삭스의 이런 선언은 국제 구리 가격 상승을 부추겼는데요. 최근 골드만삭스는 한발 더 나아가 올해 연말 구리 가격 목표치를 1만 달러에서 1만2000달러로 높여 잡았습니다. 내년 평균 구리 가격 전망치는 1만5000달러이고요.구리에 대한 관심이 정말 뜨겁습니다. 구리 가격은 이미 올해 들어 19.4%나 뛰었습니다. 15일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선물 종가는 1만219달러로, 역사상 최고점(2021년 5월 1만460달러)에 근접했죠.지금의 예사롭지 않은 구리 가격 상승세가 일부 전문가 얘기대로 새로운 슈퍼사이클의 전조일까요? 그 가능성을 논하기 전에 일단 슈퍼사이클이 어떤 건지 간단히 살펴보죠. 1900년대 이후 원자재 슈퍼사이클은 총 4번 있었고, 다음과 같습니다.①1915~1921년 : 1차 세계 대전의 군사 수요와 유럽의 전후 재건②1933~1937년 : 대공황 이후 뉴딜 정책 &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재무장③1949~1957년 : 2차 세계대전 후 일본과 유럽의 재건과 산업화④2001~2011년 : 중국의 급격한 산업화·도시화로 인한 인프라 수요 폭발원자재 슈퍼사이클은 지속적으로 원자재 수요가 증가하고 공급은 제약되면서 가격 상승 기간이 상당히 길어지는 것을 뜻하는데요. 그동안의 슈퍼사이클은 주로 전쟁과 재건,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그 주기나 기간은 들쑥날쑥했고, 예측하기도 어려웠죠. 이중 중국 경제가 주도한 마지막 슈퍼사이클이 가장 크고 강하고 길었는데요. 이 기간 구리 가격은 t당 1300달러에서 1만 달러로, 철광석은 t당 12달러에서 187달러, 석유는 배럴당 25달러에서 100달러로 뛰었습니다.마지막 슈퍼사이클이 끝난 뒤, 구리 가격은 경기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구리 가격이 세계 경기 흐름을 워낙 민감하게 반영해서 ‘닥터 코퍼(경기를 알려주는 구리 박사)’라고 불릴 정도였죠.그런데 요즘 닥터 코퍼가 이상합니다. 글로벌 성장이 약화하는 상황에서 가격이 급등합니다. 가장 큰 구리 수요처인 중국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처음엔 이러다 말겠지라고 봤던 전문가들도 이제 ‘왜 구리 가격이 구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는가’를 이야기합니다. 그 결론을 요약하자면 이겁니다. 구리 수요는 구조적으로 급증할 수밖에 없는데, 공급 확대는 지정학적·환경적·경제적·기술적 문제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구리 수요-공급의 불균형은 점점 커질 겁니다.수요 : 전기화와 AI 기술 개발구리는 전기와 열이 잘 통하고(전도성), 가공하기 쉬운데다(연성), 부식에도 강한(내식성) 금속입니다. 게다가 금이나 은처럼 비싸지도 않죠. 건물 배관부터 모터 코일까지, 다양한 곳에 구리가 쓰이는 이유인데요.가뜩이나 쓰임새 많은 구리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수요처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습니다. 한두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말이죠.①탈탄소화와 전기화=화석연료에서 벗어나려면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구리는 전기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금속이죠. 예컨대 고급 전기차 1대엔 약 78㎏의 구리가 쓰입니다(휘발유 차량은 22㎏). 해상풍력은 같은 전력을 생산하는 석탄화력발전보다 약 3배 많은 구리를 사용하죠. 풍력터빈과 태양전지, 모두 구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알루미늄도 전도체이긴 하지만 전도성이 구리의 65%밖에 되지 않아, 모터 코일로는 쓸 수 없다는군요.어스리소스인베스트먼트의 CEO인 요아힘 베레자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정말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앞으로 30년 동안 인류 이전 역사 전체에서 쓴 것과 거의 같은 양의 구리가 필요합니다.”원자재 컨설팅기업 우드매켄지의 전망도 참고할 만한데요. 구리 수요에서 녹색 부문(신재생에너지+전기차)의 비중이 앞으로 10년 동안 두배로 커지면서(8%→16%), 2033년 전 세계 구리 소비량은 지난해보다 24% 증가한 3200만t이 될 거라고 합니다.②전력 인프라 투자와 AI 기술개발=현재 구리가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는 전력입니다. 변압기와 전선 모두 구리가 꼭 필요하죠. 미국 정부는 지난해 노후된 전력망 강화에 사상 최대 규모인 4조7000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유럽(독일-영국 해저케이블 연결 등)과 중동(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건설) 역시 이미 대규모 전력망 구축사업을 진행 중이죠. 또 급격한 도시화(향후 20년 동안 수억명이 도시로 이주 예정)로 인프라투자가 가속화하는 인도·동남아시아·남미·아프리카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전력 인프라 투자 붐이 이어지는데요.얼마 전 여기에 AI 기술개발을 위한 데이터센터 붐까지 가세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드린 것 있죠(). 이 역시 구리 수요가 추가되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최근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래 지속된 GPU 가뭄은 기본적으로 끝났습니다. 앞으로는 에너지 제약(전력 부족)이 IT산업의 다음 병목현상이 될 것입니다.”공급 : 캐내기가 너무 어려운 구리구리 수요가 아무리 급증해도 공급이 이를 따라올 수만 있다면 가격은 뛰지 않을 겁니다. 전기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3대 금속이 구리·리튬·니켈인데요. 구리와 달리 리튬과 니켈 가격은 지난 1년간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전기차 수요가 예상보다 둔화한 탓도 있지만, 리튬과 니켈 광산 개발이 지난 몇 년 동안 워낙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공급이 너무 빨리 증가해버렸기 때문이죠.그런데 구리는 공급이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국제구리연구그룹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은 고작 연평균 2.1% 늘어나는 데 그쳤고요. 올해는 더 낮은 0.5% 증가에 그칠 거란 전망입니다. 수요는 뛰는데 공급은 제자리인 셈입니다. 바로 이 점, 즉 공급을 크게 늘리기가 어렵다는 게 구리가 특별한 이유인데요.혹시 구리 매장량이 고갈됐느냐고요? 그건 아닙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현재까지 인류는 7억 미터톤의 구리를 캐냈고요. 땅에 묻혀있는 것으로 확인된 매장량은 21억 미터톤에 달합니다. 또 발견되지 않은 채 묻힌 구리도 약 35억 미터톤으로 추정되고요. 구리는 재활용이 매우 쉬운 금속이기 때문에(무한 재활용 가능), 인류는 아직 땅속에 구리를 많이 남겨놨습니다.문제는 이걸 캐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기술과 비용, 그리고 사회·환경 측면 모두에서 말이죠.① 기술과 비용 문제광산에서 구리 광석을 캐낸다고 그게 반짝반짝한 구리 덩어리는 아니죠. 구리 광석엔 아주 적은 양의 구리만 포함돼 있습니다. 10년 전엔 상위 15개 구리광산의 경우 이 비율(광석등급)이 평균 1.2%였는데요. 이젠 0.72%로 떨어졌습니다. 등급이 낮다는 건 같은 양의 구리를 얻는 데 더 많은 광석이 필요하단 뜻이죠. 광산이 전보다 훨씬 커져야 하는 겁니다. 인력도 돈도 더 많이 들 수밖에 없죠.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 칠레의 경우를 볼까요. 세계 최대 규모 노천 구리광산 지대인 추키카마타는 100년 전부터 구리 채굴을 해온 곳인데요. 지표면엔 이제 수익성 있는 광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20년 전 칠레 국영 광산회사 코델코가 현대적인 지하광산 건설하기로 계획을 세운 이유이죠. 노천 채굴장 바로 아래에 90마일이 넘는 지하터널을 건설하는 계획이었는데요. 처음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총 70억 달러가 투자된 지하광산은 2019년 개장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당초 예측한 생산량에 도달하는 건 2030년에나 가능하죠. 뚫기엔 너무 단단한 바위와 붕괴, 설계 수정과 컨베이어 벨트의 결함 등. 너무 많은 장벽에 부닥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델코의 맥시모 마체코 회장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우리는 세계 지하채굴 기술의 최전선에 있다”면서 지하 구리광산 프로젝트의 복잡성을 강조합니다. 칠레 구리·광업연구센터에 따르면 이 나라에서 1t의 구리를 생산하는 데 드는 투자비는 2006년 이후 5배로 뛰었습니다.② 인허가와 환경 문제물론 구리 광산이 큰돈이 된다는 확신만 있으면 투자비가 늘어나도 기업은 뛰어들 겁니다. 그런데 이런 기업의 발목을 붙잡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인허가에 너무 긴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죠.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구리 광산을 새로 발견해서 실제 금속을 캐내기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14년입니다. 석유 유전이 보통 5년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데요. 환경영향을 평가하는 데 필요한 절차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구리 채굴은 대량의 폐기물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환경에 영향이 매우 큽니다. 특히 주변 물이 산성화돼서 독성을 띠게 되면 큰 재앙이 아닐 수 없죠. 지난해 1월 칠레 정부는 펭귄보호구역 인근에서 추진 되던 구리 광산 프로젝트를 수년간 이어진 논란 끝에 결국 거부했습니다. 또 지난해 12월 파나마 정부는 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항의와 위헌소송 끝에 세계 10위권 구리 광산인 ‘코브레 파나마’ 폐쇄를 결정했죠. 전 세계 공급량의 1.8%(40만t)가 사라진 겁니다.이런 이유로 광산 공룡 기업은 새 구리광산 개발에 나서는 대신 기존 광산 인수에 열을 올립니다. 세계 최대 철광석 생산업체인 호주의 리오틴토는 2022년 12월 몽골 구리광산을 소유한 터콰이즈힐리소스를 33억 달러에 인수했고요. 세계 최대 광산기업 호주 BHP는 지난해 5월 호주 구리광산을 보유한 오즈미네랄즈를 64억 달러에 인수했죠. 최근 BHP는 구리 생산량 세계 1위로 올라서기 위해 영국 107년 역사 광산기업 앵글로아메리칸을 인수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는데요(현재 BHP는 구리 생산량 3위, 앵글로아메리칸은 6위). 다만 BHP가 한차례 인수가를 올렸는데도(58조원) 퇴짜를 맞은 상태입니다.구리 부족 해결법은 바다?구리 수요는 빠르게 늘지만, 구리 공급은 정체됐습니다. 심각한 구리 공급부족 사태가 임박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나옵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45만4000t, 내년엔 46만7000t의 공급 부족을 예상했고요.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2031년이면 구리 공급 부족 규모가 650만t에 달할 걸로 예측합니다. 공급이 예상 수요량(2031년 3660만t)의 82%밖에 되지 않을 거란 우울한 전망이죠.조만간 현실화할 구리 공급부족 사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블룸버그는 구리를 더 많이 재활용하고(현재 구리 재활용 비율은 30% 이상), 구리를 덜 쓰는 기술과 제품을 만들고(테슬라 사이버트럭은 포드 F-150 라이트닝보다 구리를 40% 적게 사용), 원광석에서 구리를 더 효율적으로 추출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혁신적인 정제기술 개발)고 강조하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것도 대안으로 거론됩니다. 심해채굴.바다 밑엔 육지의 모든 매장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구리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죠. 다만 심해채굴이 과연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밝혀진 게 많지 않은데요. 노르웨이 의회는 지난 1월 세계 최초로 정부의 심해채굴 프로젝트를 승인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물론 당장 채굴에 나선다는 뜻은 아니고, 일단 상업적 탐사부터 허용한 거긴 한데요. 노르웨이 대륙붕 해저엔 구리뿐 아니라 아연, 망간, 코발트 풍부하다고 하죠. 석유부국 노르웨이가 구리까지 얻게 되다니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붉은 금속을 향한 인류의 욕망이 걱정스럽습니다. By.딥다이브그동안 전기화로 구리 수요가 늘어난다는 이야기는 여러번 전해드렸는데요(). 지금의 가격 상승세를 이해하려면 공급 측면이 매두 중요해서, 이 부분을 좀더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1만 달러를 돌파하며 무섭게 뛰는 구릿값. 과연 구리의 ‘슈퍼사이클’이 시작되는 걸까요. 마지막 원자재 슈퍼사이클은 2011년 끝났습니다.-구리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는 데다, 각 국이 전력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있어서입니다. AI 데이터센터 수요도 한몫 합니다.-공급은 정체돼있습니다. 구리 매장량은 풍부하지만 좀처럼 채굴이 팍팍 늘지 않습니다. 수익성 좋은 구리 광석이 이미 사라지면서 더 깊고 큰 구리 광산이 필요하다보니 투자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환경 이슈로 개발에 걸리는 기간이 길어진 것도 새 광산 개발에 뛰어들기 어려운 이유입니다.-땅에서 구리 캐내기가 어렵다면 혹시 바다 밑을 파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 정부는 이런 심해채굴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올해 안에 탐사가 시작된다는군요. *이 기사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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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핏의 선택’ 보험사 처브, 주가 4.7% 급등[딥다이브]

    다우존스산업평균 지수가 장중 4만선을 돌파하며 새로운 기록을 썼습니다. 다만 장 막판에 차익실현 매물이 나오면서 지수는 소폭 하락 마감했죠. 16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10%, S&P500 0.21%, 나스닥지수는 0.26% 하락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블루칩을 모은 다우지수가 3만선을 돌파했던 건 2020년 11월. 코로나 백신 개발 소식이 알려졌던 시기였는데요. 그로부터 3년 6개월 만에 역사적인 기록을 세우게 됐습니다. 전날 발표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예상치를 밑돌면서,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진 것이 영향을 미쳤죠. 코메리카웰스매니지먼트의 존 린치 CIO는 “이번 성과는 자본 형성, 혁신, 이익 성장, 경제 회복력의 힘을 입증한다”면서 “최근 기술적 모멘텀과 수익, 금리 등의 강점은 단기적인 추가 상승을 시사한다”고 말합니다.이날 다우지수의 신기록에 크게 기여한 종목은 월마트입니다. 예상보다 강한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주가가 6.99% 급등했죠. 1분기 매출(1615억 달러)과 동일 점포 매출 증가율(3.8%), 주당순이익(EPS, 0.60달러) 모두 월가의 전망치를 웃돌았습니다. 더그 맥밀런 CEO는 컨퍼런스콜에서 “이것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단가 인상이 아닌 거래 건수와 시장 점유율 증가가 강력한 실적의 원동력이란 뜻이죠.블룸버그는 인플레이션으로 주머니 사정이 빡빡해진 소비자들이 일반상품보다는 식료품과 생필품을 주로 구입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때문에 홈디포나 타겟 같은 경쟁업체 판매는 위축되고, 식료품에 강점이 있는 월마트가 이익을 얻고 있죠. 월마트는 더 많은 가격 할인과 신제품 출시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올해 900개 이상 매장을 리모델링한다는 계획도 밝혔죠.또 눈에 띄는 종목은 스위스 손해보험사 처브입니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가 67억 달러(약 9조원)어치 지분을 보유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이날 주가가 4.71% 상승했습니다. 이로써 처브는 버크셔해서웨이 포트폴리오 중 9번째로 비중이 큰 종목이 되었다고 합니다.처브는 세계 최대의 상장 손해보험사이죠. 보험사는 버핏이 투자하기 좋아하는 업종 중 하나입니다. 특히 처브의 주가수익비율(PER)이 11.3배로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게 투자 이유일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버크셔해서웨이는 2개 분기 넘게 처브 지분 투자 사실을 비밀로 유지해왔다가 이번에 공개했습니다.애플, 셰브론, 파라마운트글로벌은 버크셔해서웨이가 주식을 일부 매각한 종목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중 파라마운트는 버크셔가 약 18억 달러의 손실을 입고 매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버핏은 이달 초 열린 연례 주주총회에서 “우리는 그것(파라마운트)을 모두 팔았고 꽤 많은 돈을 잃었다”면서 투자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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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권 잡는 인플레… 美유권자 80% “물가 불만” 바이든 재선 먹구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 전망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지속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12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실시한 미국 유권자 여론조사 결과를 이렇게 전했다. 조사 결과 ‘경제 정책에 반대한다’(58%), ‘바이든 정책이 경제를 해친다’(49%) 등 경제에 대한 나쁜 평가가 많았는데, 가장 큰 불만은 역시 인플레이션이었다. ‘현재 경제적으로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것’에 대한 답변으로 ‘물가 상승’이 80%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요즘 미국 경제는 ‘나 홀로 호황’을 이어가고 있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는 물가 탓에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분석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단속 못 해 정권이 흔들리는 사례가 지금 미국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14일 발표된 미국의 4월 생산자물가(PPI) 상승률은 월가 예상치보다 높은 0.5%(전월 대비)로 집계됐다.● 바이든 인플레, 카터 이후 최고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수치만 보면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황이다. 2022년 한때 9%를 웃돌던 물가상승률이 최근엔 3%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물가상승률’이 아니라 ‘물가 수준’에 더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물가 상승 속도보다는 ‘절대 가격이 높냐 낮냐’가 소비자 입장에선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실제 현재 미국 물가 수준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전인 2020년보다 훨씬 높은 상태다. 그가 취임한 2021년 1월 이후 3년 동안 가격 변화를 보면 △임대료 19.5% △중고차·트럭·육류 20% △레스토랑·식료품 21% △항공료 23.5% △전기료 28% △가스 34.6% △계란 37.4% △자동차보험료 44% 등 생활물가의 폭등세가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8명의 미국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물가상승률을 분석한 결과 바이든 대통령이 연평균 5.5%로, 지미 카터(10.3%) 다음으로 2위에 올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1.2%),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1.9%) 때는 저물가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현 정부 들어서 물가가 용수철처럼 크게 튀어 오른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악명이 높았던 카터 대통령은 결국 재선에 실패했다. WSJ는 “유권자들은 로널드 레이건부터 트럼프까지 6번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인플레이션이 낮아지는 것에 익숙해졌다가 바이든 정권하에서 갑자기 물가가 급등했다”고 분석했다. 비록 지금은 물가상승률이 다소 내려왔지만 국민들 사이에 고물가에 대한 잔상이 워낙 강렬히 남아 있다는 해석도 있다. 경제가 다시 회복되더라도 이를 국민이 인식하게 되는 데는 시차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라는 구호를 앞세워 조지 부시를 꺾고 승리했는데, 실제로는 선거 1년 전부터 이미 미국 경기는 바닥을 치고 살아나는 중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가 잡기 실패하면 선거 필패” 인플레이션이 정권에 치명적으로 작용한 사례는 다른 나라에도 많다. 미국 정치컨설팅 기업 유라시아그룹 분석에 따르면 1970년부터 전 세계에서 발생한 57건의 인플레이션 충격 이후 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된 비율은 58%로 나타났다. 특히 인플레이션 충격이 일어난 지 2년 안에 선거가 일어났을 땐 4번 중 3번꼴로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유라시아그룹의 로버트 칸 이사는 “인플레이션은 (현 정권이) 좌파냐 우파냐와 상관없이 현재 권력을 잡은 사람을 벌한다”고 말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윌리엄 골스턴 선임연구원도 “일시적이든 구조적이든 인플레이션은 ‘나쁜 정치’”라며 “대중은 자신의 최고 관심사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대통령을 용서하지 못한다”고 했다. 미국의 물가 흐름은 앞으로도 안심하기 이르다는 분석이 대세다.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계속 고조되면 언제든지 휘발유 가격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고, 최근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관세 폭탄 역시 저가 중국산의 수입을 막아 인플레이션만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대선의 승부를 가를 접전지에서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애리조나와 조지아, 미시간, 네바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 6개 경합주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위스콘신을 제외한 5개 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뒤졌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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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가가 바이든 잡겠네…정권 흔드는 인플레이션[딥다이브]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정부는 없습니다. 국민들은 성장 못 하는 것은 용서해도, 인플레이션을 못 막으면 분노할 겁니다.” 2022년 3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워크숍에서 경제학자가 했던 조언입니다. 그리고 그 경고가 이번 총선에선 현실로 다가왔는데요. 한국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지난 2년 동안 콜롬비아·브라질·아르헨티나·폴란드·파나마 등, 여러 나라가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정권이 바뀌기까지 했죠. 올해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은 어떨까요? 경제는 호황이지만 인플레이션 탓에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분석이 이어지는데요. 오늘은 인플레이션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바이든 경제정책 점수가 낮은 이유‘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전망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지속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지난 12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실시한 미국 유권자 여론조사 결과를 이렇게 전합니다. 바이든 경제정책에 반대한다(58%), 바이든 정책이 경제를 해친다(49%)는 응답 비중이 모두 전달보다 높아졌는데요. 이들 응답자에게 현재 경제적으로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단연 물가상승(80%)이었습니다. 참고로 ‘경제를 누가 더 잘 다루느냐’는 질문에선 줄곧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바이든 대통령보다 앞서고 있죠(5월 조사에선 트럼프 41% 바이든 35%).참 아이러니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높은 경제성장률, 역대급으로 낮은 실업률, 사상 최고를 경신 중인 주식시장. 지표상으로 미국 경제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호황을 구가하고 있거든요.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트럼프 정부와 바이든 정부의 첫 3년 데이터를 비교하면 아래와 같습니다.지표로 봤을 때 바이든 취임 이후 미국 경제는 강하게 성장하고 있고, 무엇보다 일자리를 엄청나게 창출해냈습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이런 ‘바이드노믹스(Bidenomics)’ 성과를 좀처럼 알아주지 않죠. 도대체 왜 유권자가 생각하는 경제 상황은 실제 경제지표와 다를까요.이와 관련해 각종 분석이 이어지는데요. 가장 흔한 건 언론 탓이란 겁니다.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보도가 늘어난 게 소비자들이 ‘경제가 나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관련 있다는 분석인데요. 다만 그 인과관계는 불분명합니다. 이를 연구한 브루킹스연구소의 밴 해리스는 이렇게 묻습니다. “소비자들은 뉴스 때문에 경제에 대해 더 부정적입니까? 아니면 뉴스가 소비자의 믿음에 맞춰 더 부정적인 이야기를 보도하고 있습니까?” 후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또 다른 분석은 원래 경제가 다시 좋아져도 이를 국민이 인식하게 되는 데는 원래 시간 차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재임했던 1990년 7월 시작된 경제불황은 1991년 봄 공식적으로 끝났는데요. 그런데도 빌 클린턴은 1992년 대선에서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표어를 앞세워 부시를 꺾고 승리했죠. 실제로는 18개월 전 이미 미국 경제는 바닥을 치고 살아나는 중이었는데도 말이죠.인플레이션이란 나쁜 정치그리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주제는 이게 다 인플레이션 때문이란 겁니다. 아무리 경제성장률이 높고 실업률이 낮고 경제가 좋아도, 물가를 잡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건데요. 앞에서 언급했던 김형태 김앤장 수석이코노미스트의 발언(인플레이션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과 같은 이야기입니다.미국 인플레이션은 이제 잡히지 않았느냐고요? 그렇긴 하죠. 2022년 한때 9%를 웃돌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최근엔 3%대로 안정됐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알아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물가상승률’이 아니라 ‘물가 수준’ 자체에 반응합니다. 물가 상승 속도(빨리 오르느냐 천천히 오르느냐)보다는 절대 가격(가격이 높냐 낮냐)이 소비자 입장에선 훨씬 더 중요한 거죠.아무리 인플레이션이 둔화해도, 마이너스로 돌아서지 않는 한 가격은 계속 오릅니다. 물가상승률이 3%이든 1%이든, 소비자에 와닿는 건 ‘2020년보다 지금 물가가 훨씬 높다’는 사실이죠.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2021년 1월 이후 3년 동안 제품과 서비스 가격은 이 정도 올랐습니다. 임대료 19.5%, 중고차·트럭·육류는 20%, 레스토랑과 식료품 21%, 항공료 23.5%, 전기료 28%, 가스 34.6%, 계란은 37.4%, 자동차 보험료 44%.바이든 정부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실업률 4% 미만을 기록했죠. 고용에 있어서는 빛나는 성과를 자랑하는데요. 유권자들은 경제를 평가할 때 실업률보다 인플레이션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건 비합리적인 걸까요?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닙니다. 인플레이션은 이자율 상승과 실질임금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지표이고요. 무엇보다 실업과 달리 모든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보통 사람들에게 무역수지는 뉴스에나 나오는 수치이고,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실직한 사람이 아닌 한 큰 의미 없죠. GDP 성장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체감하는 경제상황은 GDP 성장률에 반영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다릅니다. 그 변화를 누구나 바로 알아차릴 수 있죠. 정부 통계 발표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장 볼 때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마다, 온라인으로 쇼핑할 때마다 소비자들은 달라진 가격표를 확인하고 이렇게 반응하죠. “가격이 왜 이래?”특히 가격이 오른 제품이 식료품이라면 그 영향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식료품·휘발유처럼 자주 사는 물건 가격은 아주 잘 기억합니다. 대신 작년에 산 세탁기나 침대 가격은 잊어버리죠. 미국에서 가구·가전제품 같은 고가품 가격이 하락세이지만 소비자들은 ‘가격이 다 뛰었다’고 여기는 이유입니다. 햄버거나 과자, 과일을 사는 데 전보다 더 많은 돈이 드는 건 사실이니까요. 게다가 그 가격이 당분간 떨어질 것 같지도 않죠.물론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변화 같은 문제가 겹친 상황에서 과연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네덜란드 중앙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정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정부가 할 수 있느냐와 별개로, 유권자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경제학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경기가 좋아지면서 물가도 덩달아 오르면 이를 ‘좋은 인플레이션(또는 착한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이를 두고 브루킹스연구소의 윌리엄 갈스턴은 이렇게 말합니다. “(경제학과 달리) 정치학에선 인플레이션이 문제라는 게 훨씬 더 명확합니다. 일시적이든 구조적이든 인플레이션은 ‘나쁜 정치’입니다. 대중은 자신의 최고 관심사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대통령을 용서하지 못합니다.”물가 충격과 정권 교체그럼 인플레이션이 높으면 정권이 바뀌냐고요? 역사적으로 볼 때 다 그런 건 아니지만(예-지난해 튀르키예 대선), 그럴 확률이 높아집니다. 미국 정치컨설팅 기업 유라시아그룹의 로버트 칸 이사에 따르면 말이죠. 1970년 이후 전 세계에서 발생한 57건의 인플레이션 충격 이후 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된 비율은 58%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인플레이션 충격이 일어난 지 2년 안에 선거가 일어났을 땐 4번 중 3번꼴로 정권교체가 일어났죠. 그는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플레이션은 (현 정권이) 좌파이냐 우파이냐와 상관없이 현재 권력을 잡은 사람을 벌합니다.”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사설에서 지적한 것도 바로 이 점인데요. 미국의 최근 8명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소비자물가상승률 그래프를 제시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연평균 5.5%로, 인플레이션으로 악명 높았던 지미 카터 대통령(10.3%) 다음 2위에 해당하죠. 아시다시피 카터 대통령은 결국 재선에 실패했습니다. WSJ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민주당원들은 1984년 재선에 성공한 로널드 레이건 시대의 평균 (인플레이션) 5.1%를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과거(이전 정부)와 비교하는 것입니다. (…) 유권자들은 레이건부터 트럼프까지 6번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인플레이션이 낮아지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다 바이든 정권하에서 갑자기 인플레이션이 급등했습니다.”누가 이겨도 물가는 불안하다좀 더 긴 역사를 보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어느 쪽도 인플레이션을 다루는 데 특별히 나아 보이진 않습니다. 1953~2020년(아이젠하워부터 트럼프까지)을 비교하면 민주당 정권은 평균 인플레이션이 3.35%, 공화당은 3.5%로 도긴개긴이니까요.11월 대선을 앞두고 양당이 내놓은 정책은 어떨까요. 일단 바이든 정부는 대기업과 최상위 부자들에 부과하는 세금을 늘리겠다는 부자증세를 주장하죠. 이것만 보면 ‘증세→재정 적자 축소→통화량 감소→인플레이션 둔화’라는 공식엔 들어맞긴 한데요. 문제는 동시에 대중국 관세 인상도 추진 중이라는 겁니다. 중국산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지난달 3배 인상하도록(7.5%→25%)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한 데 이어, 중국산 전기차·배터리·태양광 패널 관세 인상 계획도 14일 발표할 텐데요. 중국 견제와 자국 제조업 육성이란 취지이지만,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건 뻔합니다.트럼프 후보는 아예 중국뿐 아니라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10% 보편관세를 새로 부과하겠다고 공약하며 한술 더 뜨는데요. 아울러 “바이든의 세금 인상 정책을 대신해 중산층·상위층·하위층·비즈니스 계층에 대규모 감세를 하겠다”며 전 계층 감세를 공약으로 내세운 상황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면서 세금을 낮춰 경제에 더 많은 돈을 쏟아붓겠다니, 영 앞뒤가 맞진 않네요.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훗날은 생각하지 않고 화끈한 정책을 내놓는 거야 흔한 일이죠.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내놓은 정책이 되레 경제를 쑥대밭으로 내놓은 대표적인 사례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있는데요.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 15일 인플레이션에 대응한다며 경제의 모든 물가와 임금을 90일 동안 동결하는 무지막지한 행정명령을 발표했습니다. 언론과 경제학계는 기절했지만, 여론조사에서 75%가 이를 찬성했고 단기간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죠. 이듬해 대선에서 닉슨 대통령은 압승을 거두며 재선에 성공했는데요. 이후 미국 경제는 전대미문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고물가)에 처하며 가라앉습니다. 미국 정치가 역사에서 배워서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진 않기를 바랍니다. By.딥다이브인플레이션은 힘이 참 셉니다. 주식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고, 유권자 여론을 뒤흔들고, 정권을 위협하죠.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물가 기사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대선을 6개월 앞둔 시점,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경제정책에 반대한다는 유권자가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는 호황인데도, 바이든은 경제에 있어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그 이유는 인플레이션에 있습니다. 실업률이나 GDP 성장률과 달리 인플레이션은 누구나 생활 속에서 바로 느낄 수 있는 경제지표입니다. 전 국민 모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특히 강력합니다. 물가 상승률(오르는 속도)보다는 물가 수준 자체가 중요합니다. -인플레이션 쇼크는 종종 정권교체로 이어집니다. 최근 8명의 대통령 중 가장 높은 임기 중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바이든 대통령은 초조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인플레이션을 단숨에 잡을 화끈한 정책은 없어 보입니다.*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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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밈 주식의 부활? 게임스톱 주가 74% 폭등[딥다이브]

    물가지수 발표를 앞둔 뉴욕증시가 보합으로 마감했습니다. 13일 다우지수와 S&P500은 각각 0.21%, 0.02% 하락했고요. 나스닥 지수는 0.29% 상승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이번 주 월가의 관심은 15일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에 온통 쏠립니다. 다우존스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들은 4월 CPI 상승률이 3.4%로, 3월(3.5%)보다 둔화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올해 1~3월 CPI는 계속 시장 예상치를 웃돌아 주식시장을 긴장시켰는데요. 이번에 전망에 부합하는 수치가 나온다면 시장은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있다며 안도할 겁니다. 물론 또다시 전망치를 웃돌면 시장엔 부담으로 작용하겠죠. 포트피트 캐피탈 그룹의 최고투자책임자인 댄 아이는 WSJ에 “우리는 모두 관망 모드에 있다. CPI 보고서를 앞두고 큰 베팅은 없다”고 말합니다. 이날 증시에서 가장 눈길을 끈 종목은 게임스톱입니다. ‘밈 주식’ 본색을 되찾은 게임스톱 주가가 이날 74.4% 급등했습니다. 2021년 2월 이후 가장 큰 상승률인데요. 또 다른 밈 주식 AMC엔터테인먼트는 78%, 허츠글로벌 12%, 플로그파워는 13% 상승을 기록했습니다.밈 주식 열풍이 다시 분 건 이날 주식트레이더 키스 질이 3년 넘게 잠자고 있던 자신의 X 계정 ‘로어링 키티’에 다시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인데요. 키스 질은 2021년 1월 일어난 게임스톱 사태를 주도한 인물이죠. 게임스톱 주식은 당시 2주 동안 21배나 급등했고, 이에 공매도 세력은 파산에 이르기까지 했는데요. 그가 새로 올린 밈(의자에 앉은 채 자세를 고치는 남자 이미지)이 신호라고 본 투자자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밈 주식의 성지’인 레딧의 월스트리트베츠 게시판은 이날 ‘가즈아’를 외치는 댓글들로 들썩거렸는데요. B라일리웰스의 수석시장전략가 아트 호건은 “로어링 키티가 오늘 (게임스톱에) 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킨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면서 “이 현상에 참여한 사람들을 투자자로 규정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뜨는 기업엔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는 거죠.비디오게임 소매업체인 게임스톱은 지난해 4분기에 시장 눈높이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부진한 매출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매장 수는 줄어들고 있고, 인력도 감축 추세인데요. 이날 주가 상승으로 시가총액은 93억 달러로 불어났지만 2021년 최고치인 370억 달러엔 여전히 한참 못 미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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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자 때문에 살 집이 없다고? 대이민 시대와 주택 위기[딥다이브]

    유학도, 해외 취업도 앞으론 한층 어려워질지 모르겠습니다. 캐나다·호주 같은 ‘이민자의 나라’가 이주민을 위한 문을 빠르게 닫고 있기 때문이죠. 지난 2년 간 이어진 전례 없는 ‘이민 붐’의 반작용인데요. 그 배경엔 공통적으로 심각한 주택난이 있습니다.이민 문제와 관련해 딥다이브에선, 소식을 전해드린 적 있죠. 어쩌다 보니 이민 이야기를 연속으로 전하게 되는데요. 이번엔 대이민 시대와 주택 위기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호주 : 순이민 절반으로 줄인다가장 성공적인 다문화 국가. 호주가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타이틀이죠. 그도 그럴 게 호주는 2000년대 들어서만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2600만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였습니다. 호주는 오랫동안 새로 온 사람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나라였습니다.하지만 호주의 포용력은 이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팬데믹이 끝난 뒤 폭발적으로 이민자 유입이 급증했기 때문인데요. 지난해 6월까지 1년 동안의 호주 순이민자 수는 51만8000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죠. 수도인 캔버라 인구(약 40만명)보다 더 많은 외국인이 도착한 겁니다.문제는 이민자 급증이 주택위기와 동시에 일어났다는 겁니다. 지난해 9월 살 집이 없어 노숙자가 급증한 호주의 임대주택 위기를 전해드린 적 있는데요. 상황은 그때보다 악화됐습니다. 4월 호주의 전국 평균 주택임대료는 1년 전보다 8.5% 오른 주당 627달러(56만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코로나 시작점인 2020년 3월과 비교하면 50%가량 뛴 겁니다. 동시에 임대주택 공실률은 사상 최저(1.0%) 수준이죠. 과장이 아니라 직업이 있어도 살 집을 구하지 못해 길거리로 내몰리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몰려드는 이민자는 최악 임대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죠. 여론이 악화하자 결국 중도 좌파인 노동당 정부마저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순이민자를 2025년까지 지난해의 절반인 25만명으로 줄이겠다는 목표치를 발표합니다. 호주 정부가 이민자 감축 목표를 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데요.이어 새로운 조치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습니다. 기술이민과 관련해 점수 테스트 제도를 새로 도입하고(나이·영어능력·학력·경력을 종합해 점수화), 유학생 비자의 영어점수와 재정능력 기준을 높이는 겁니다.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저숙련 기술자나 초보 수준 강좌를 듣는 외국인 수강생은 이제 받지 않겠다는 거죠.클레어 오닐 호주 내무장관은 지난달 성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이민 시스템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호주에 적합한 더 작고, 더 잘 계획되고, 더 전략적인 이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민을 크게 줄이고 있습니다. 전쟁이나 전염병을 제외하면 호주 역사상 이민자 수가 가장 크게 감소하는 시기가 될 겁니다.”캐나다 : 임시 이주민 50만명 감축이민 급증과 극심한 주택난이란 면에서 캐나다는 호주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캐나다엔 지난해 100만명 넘는 이민자가 정착했습니다. 순이민자 수만 보면 미국의 3분의 1이지만, 인구 1000명당 이주민 수를 비교하면 미국의 3배(미국 10명, 캐나다 32명)에 달하죠. 캐나다의 지난해 인구증가율은 무려 3.2%. 1957년(3.3%) 이후 최고를 기록했는데요.동시에 임대료는 매우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3월 캐나다 임대료 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8.5%나 뛰었는데요. 무려 4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입니다. 2020년 2월 한 달에 1900캐나다달러였던 밴쿠버 원베드룸의 평균 임대료가 이젠 2700달러(약 270만원)로 치솟았습니다.‘이민자가 너무 많다’는 불만이 터져나옵니다. 이민 친화 국가로 유명하던 캐나다에서 이렇게까지 급격히 이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진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는데요. 특히 쥐스탱 트뤼도 총리 취임 뒤 인구 고령화 대책으로 이민 문턱을 대폭 낮춘 게 문제라는 비판이 커집니다. 결국 캐나다 정부는 지난 3월 이민 억제 계획을 발표합니다. 영주권 없는 외국인 근로자나 유학생 같은 임시이민자 수를 2026년까지 현재보다 20% 줄이겠다는 목표입니다. 현재 캐나다에 머무는 임시이민자는 250만명이 넘는데, 이를 50만명 넘게 감축하겠다는 거죠.새 정책에 따르면 이제 캐나다 기업은 왜 캐나다인이 아닌 비영주권자를 고용하는지 이유를 일일이 소명해야 합니다. 유학생은 최소 2만635달러(약 2060만원)을 보유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고요.이러한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면 캐나다 인구증가율은 연 1% 수준으로 줄어들 거라는데요. 이에 대해 몬트리올은행 이코노미스트인 로버트 카프치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영향으로 임대료와 주택 압력이 줄어들고, 인플레이션이 낮아지고, 우리가 보게 될 금리도 내려갈 겁니다.영국 : 부양가족 못 데려온다영국이 호주·캐나다처럼 이민자 물결로 골치라는 건 좀 아이러니합니다. 이민을 억제하겠다며 EU에서 탈퇴(브렉시트)까지 했는데, 되레 2022년과 2023년 순이민자 수는 브렉시트 투표(2016년) 이전의 2배 가까이로 늘었기 때문인데요. EU 국가 대신 인도·나이지리아·중국(홍콩 포함) 출신 이민자가 급증했다고 하죠.올해 연말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민자 급증은 집권당에 큰 부담입니다. ‘지속 불가능한 대량 이민이 주택난을 악화시킨다’는 야당의 공격이 거센데요. 특히 지난해 임대료가 9.3%나 급등하면서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통계청의 인구 추정치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죠. 이런 추세대로 이민이 늘면 현재 6700만명인 영국 인구가 2026년에 7000만명, 2036년엔 7400만명으로 불어날 거란 전망입니다.이에 영국 정부는 올해 초부터 비자발급 요건을 대폭 높여 이민자 줄이기에 나섰습니다. 기술비자 소득 기준을 50%나 높이고, 외국인 학생과 간병인이 부양가족을 영국으로 데려오지 못하게 했죠. 최근 영국 내무부는 실제 비자 발급 건수가 올해 들어 “현저히 감소”했다며 “합법 이주를 역대 최대규모로 줄인다는 약속”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찬하는데요. 당장 유학생 급감으로 울상인 영국 대학들은 “경제적 자해 행위”라고 반발하지만, 정부 기조가 달라질 것 같진 않습니다. 제임스 클레버리 내무 장관은 “이민을 줄이려는 우리 계획은 끝이 아니라 앞으로 더 남아있다”고 말했죠.이민과 집값 상관관계는?종합하자면 주요 선진국의 기록적인 이민 붐이 주택위기와 충돌하고 있습니다. 여론 악화에 직면한 정부는 부랴부랴 이민 억제책을 내놓기 바쁩니다. 이제 누가 더 이민을 많이 줄이나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한 느낌인데요.임대료 급등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이게 다 이민자 때문’이란 말은 귀에 쏙쏙 박히기 마련입니다. 보통 이민 온 사람은 바로 집을 사기보다는 임차로 한동안 지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임대주택 수요를 자극하는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좀 따져봅시다. 지금 임대주택이 턱없이 부족한 결정적 원인이 정말 이민일까요. 이민을 막으면 이 지긋지긋한 주택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호주 학생숙소협의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임대 위기에서 유학생 역할에 대한 통념 깨기’)는 간단한 통계를 바탕으로 이런 주장을 반박합니다. 호주에서 임대료가 치솟고 공실률이 급감하기 시작한 건 코로나로 유학생 유입이 제로 수준까지 떨어졌던 2020년부터라는 거죠. 팬데믹 당시 국경을 폐쇄했던 호주가 이민자에 완전히 다시 문을 연 건 2022년. 그 2년 전부터 임대주택 위기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정부 규제, 건설비용 상승, 주택공급 지연, 공공임대 주택 부족, 높은 금리 등. 각종 요인으로 누적된 공급난이 주택위기의 진짜 원인으로 꼽히죠.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대부분 국가(한국 포함) 주택시장이 겪고 있는 공급부족 상황과 결국 원인은 같습니다.호주 주택·도시연구소의 마이클 포더링햄 소장도 비슷한 의견인데요. “비자요건 변경은 우리 임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시장의 틈새 부분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순이민을 절반이 아니라 아예 제로로 만든다고 해도, 주택 공급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다면 문제 해결은 요원합니다.또 이들 선진국의 문제 중 하나는 주택공급을 늘리고 싶어도 노동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겁니다. 주택난 타개를 위해 집을 더 지어야 하는데, 이민자 없이 어떻게 그 많은 집을 지을까요? 이 때문에 캐나다 정부는 기업의 외국인 근로자 채용을 제한하면서도 건설 부문은 예외로 인정했습니다. 반이민으로 주택난을 해결한다는 게 모순되는 이유이죠.임대료와는 달리 이민자 급증이 이들 선진국 집값을 끌어올리진 않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호주에서 주택가격은 지난해 하락하다 다시 올라, 현재는 2022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고요. 캐나다·영국에선 2022년 정점과 비교해 집값이 오히려 하락한 상태입니다. 결국 이민보다는 금리가 집값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임을 알 수 있죠.이민 유입이 주택가격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분석이 엇갈립니다. 이민으로 영국 인구가 1% 증가하면 집값이 1% 오른다는 연구결과(영국 이주자문위원회, 2018년)가 유명한데요. 동시에 이민자가 1% 증가하면 그 지역 집값이 1.7% 내린다는 논문(필리파 사 킹스칼리지대학 교수, 2014년)도 있습니다. 이민자가 늘면 고소득자들이 그 지역을 떠나기 때문이죠. 이를 종합한 옥스퍼드대 이민관측소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이민이 집값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집값이 이민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큽니다. 따라서 집값과 이민 사이의 인과관계 규명은 어려운 일입니다.”물론 그렇다 해도 ‘주택대란은 이민자 탓’이란 주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30년 넘게 이민을 연구한 헤인 더 하스 암스테르담대 교수는 이를 “전형적인 희생양 정치”라고 잘라 말하죠. 영국의 작가 케난 말릭이 가디언에 쓴 칼럼 한 대목을 전합니다. “영국 노동자들이 영국 주택을 갖지 못하는 것은 줄 서서 기다리는 이민자 때문이 아니라 당국이 충분한 주택을 건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민자들이 공공주택에 ‘홍수처럼’ 몰려들어 영국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한다는 건 정치인·전문가·학자들이 만들어낸 신화입니다.” 물론 신화란 원래 깨기가 매우 어려운 법입니다. By.딥다이브‘이민 없인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 많은 이민자는 싫다’는 심리. 솔직히 이해도 됩니다. 문제를 키우는 건 이를 이용해 본질(주택 정책 실패)을 은폐하는 정치인들일지도.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전례 없는 ‘이민 붐’을 겪던 캐나다, 호주, 영국이 이민자를 위한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세 나라는 공통적으로 역대급 이민자 유입과 엄청난 임대료 인상이 동시에 닥쳤는데요. 주택위기로 인해 이민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습니다.-정치권은 여론을 달래기 위해 서둘러 이민 줄이기에 나섰습니다. 비자를 내주는 기준을 대폭 올리거나, 부양가족을 데려오지 못하게 하는 새로운 정책이 시행됐습니다. ‘반이민’을 외쳐야 지지율이 올라가는 상황입니다.-따져보면 주택위기의 진짜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이민 수요보다는 누적된 주택공급 부족이 결정적이죠. 이민을 틀어막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다 이민자 탓’이란 주장은 계속될 겁니다.*이 기사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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