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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담당하는 장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이렇게 소개했다. 주택, 교통 등 국내 국토정책을 두루 관장하는 김 장관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철도 업무를 강조해 인사시킨 것이다. 앞서 김 위원장 역시 환담장 도착 직후 “평창(겨울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평창 가는 고속열차가 다 좋았다’고 하더라”라는 인사말을 건네며 남한의 철도 인프라를 치켜세웠다. ‘판문점 선언’에 철도와 도로 연결이 포함됨에 따라 이를 어떻게 구현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교통 구조가 도로보다는 철도 위주인 ‘주철종도(主鐵從道)’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철도에 더 큰 비중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29일 국토부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현희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초 통일에 대비한 ‘한반도 통합철도망 마스터플랜’을 마련했다. 통일 전에 약 37조8000억 원을 들여 북한 내 7개 노선을 개량 및 신설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고위 관계자는 “지난 정부 때 만들어진 계획이지만 향후 남북 철도망 구상 역시 이를 기초로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계획의 핵심은 신의주와 서울 사이에 기존 경의선 노선과 별개로 최고 시속 350km의 고속철을 놓는 것이다. 남측 구간은 서울 은평구 수색역에서 출발해 김포를 거쳐 판문점으로 향한다. 북한에서는 개성∼해주∼사리원을 거쳐 평양으로 향하는 노선과 해주를 거치지 않는 노선이 검토되고 있다. 기존 경의선과 평라선(평양∼나진), 강원선(평강∼고원), 함북선(청진∼나진) 등의 노선은 최고 시속 100km 운행이 가능하도록 개량된다. 현재 북한 철도는 노후화가 심각해 대부분 시속 50km 미만으로 운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원선(서울∼원산)의 경우 기존에 복원된 경기 연천군 신탄리역∼강원 철원군 월정리역 구간 너머 월정리∼평강 구간을 개량한다는 계획만 우선 잡혔다. 국토부는 이 중 가장 먼저 추진될 만한 사업으로 경의선 개량을 꼽는다. 이 노선은 2003년 복원됐지만 열차가 다니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2000억 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하면 경의선 전 구간에 평균 시속 50km로 열차가 다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해선 강원 고성군 제진역∼강릉역 구간도 남측에서만 공사를 진행하면 돼 유엔 제재 해제와 무관하게 추진할 수 있다. 도로와 관련해선 한국도로공사가 문산∼개성 고속도로 사업 등을 준비하기 위해 이달 초 전담조직을 설치한 상태다. 문산∼판문점 11.8km 구간 공사가 우선 추진될 것으로 보이며 향후 평양∼개성고속도로 등 기존 도로와의 연결도 가능하다. 이런 구상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제적 차원의 대북제재가 풀리지 않은 데다 앞으로 있을 북-미 정상회담 결과도 지켜봐야 한다. 천문학적인 재원 마련 역시 관건이다. 남북협력기금은 지난달 기준 1조6182억 원에 불과하다. 국토부는 통합철도망 마스터플랜 수립 당시 대외경제협력기금을 투입하거나 한반도인프라개발은행(가칭)을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했다.일각에서는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국가의 자본을 끌어들여 사업을 진행하는 방법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향후 남북관계 급변에 따른 사업 리스크를 줄이고 비용도 분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9일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에 러시아가 참여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푸틴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성과가 남북러 3각 협력 사업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러시아의 철도, 가스, 전력 등이 한반도로 연결되면 한반도 안정과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3각 협력 사업에 대한 남북러 공동연구를 착수하자는 구상을 밝혔다고 청와대는 전했다.천호성 thousand@donga.com·한상준·문병기 기자}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는 문건으로 일단 재확인했다. 또 올해 종전선언을 채택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하지만 핵시설에 대한 강화된 사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기존 핵무기 폐기 등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공동 서명했다. 두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며 올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해 남북미 3자 정상회담 또는 남북미중의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문 대통령이 올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였던 비핵화와 관련해선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한다”는 원론적 선언에 그쳤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남북이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했다”고 명시하면서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과 미군 전략자산 철수 등을 요구할 명분을 내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공동 목표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온 겨레가 전쟁 없는 평화로운 땅에서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새 시대를 열어 나갈 확고한 의지를 같이하고 실천적 대책에 합의했다”면서도 비핵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에 “한국전쟁이 끝날 것이다”고 일단 긍정 평가했다. 청와대는 판문점 선언에 대해 “법적 근거와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신속하게 후속 조치를 추진하겠다”며 국회 비준 동의를 거쳐 법적 효력을 담보하겠다고 밝혔다. 판문점=공동취재단 / 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 기자}

북한 최고 지도자의 첫 방남 등 숱한 파격 속에 11년 만에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의 최대 관심사는 비핵화였다.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우회적인 언급을 거듭해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직접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천명할 것이냐는 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두 정상은 예상보다 빠르게 합의한 ‘판문점 선언문’에 완전한 비핵화의 원칙을 담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공동 기자회견 등 공개석상에서 끝내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핵 담판은 이제 막 시작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핵 동결 내세우며 한미 책임 강조한 北 남북 관계 발전과 군사긴장 완화 조치, 평화체제 구축 등 3개 분야에서 총 13개 항의 합의를 담은 ‘판문점 선언’에서 비핵화에 대한 남북 정상의 합의는 가장 마지막 항에 담겼다. 비핵화에 대한 두 정상의 합의는 세 개의 문장으로 구성됐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완전한 비핵화는 “남과 북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한다”는 첫 문장에 담겼다. 이어 두 정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고 강조하고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는 최근 김정은이 내놓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핵실험 중단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 동결 조치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의지를 담은 것이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북한은 물론 한국도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이를 두고 일각에선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에 대한 이견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비핵화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강조하면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중단과 한반도에 순환 배치되고 있는 미군 전략무기 철수 요구를 고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담지 못한 것은 예상됐지만, 아쉽다는 평가가 많다. 1992년 채택한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핵 사찰에 합의했던 것과 달리 이번 합의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공동의 노력’ 이상의 문구를 담지 못했기 때문.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한 정도이지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은 담겨 있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담판 겨냥해 선물 남겨둔 듯 다만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 “핵 문제는 미국과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핵 논의에선 ‘한국 패싱’을 당연시하던 북한이 한국과의 선언문에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한 것은 성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선언문에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담은 데 주목해야 한다”며 “(비핵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 육성이 있지만, 그것은 별도 기회에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비공개석상에서는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분명하게 표시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김정은이 미국과의 담판을 고려해 ‘완전한 비핵화’ 의지 표명이라는 선물을 아껴둔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특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는 평화협정 체결과 남북미 3자 회담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추진을 판문점 선언에 담은 만큼 문 대통령이 김정은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명시적인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받아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주중대사를 지낸 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은 “핵심인 비핵화가 기대보다 약하지만, 북한이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비핵화 절차 등의) 선물을 안겨주기 위해 수위를 조절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 기자}

27일 오후 4시 42분. 파란색으로 새롭게 단장된 판문점 ‘도보다리’를 나란히 걷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군사분계선(MDL) 표지판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약 10m 앞에서 두 정상을 수행하던 조한기 청와대 의전비서관 등 남북 수행원들도 완전히 자리를 피했다. 청와대가 이번 정상회담의 숨겨진 하이라이트로 기대했던 ‘도보다리 단독 정상회담’이 시작된 순간이다. 원형 탁자를 두고 마주 앉은 두 정상은 때로는 심각한 표정으로, 때로는 얼굴에 웃음을 띠며 대화를 이어갔다. 방송 카메라가 생중계로 두 정상을 촬영하고 있었지만 반대편 다리에 위치한 탓에 두 정상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고 새소리, 바람소리만 화면에 담겼다. 문 대통령이 손짓을 하며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자 김 위원장은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김 위원장의 열띤 설명에 문 대통령도 귀를 기울였다. 두 정상은 10분이 넘도록 준비된 다과에 손도 대지 않고 열띤 대화를 이어갔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롯이 두 정상이 배석자 없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행사”라며 “하지만 두 정상이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나눌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쉬지 않고 한참 이야기를 나눈 두 정상은 오후 5시 12분, 비로소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날 처음으로 만난 두 정상이 도·감청의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은 MDL에서 30분을 꽉 채워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두 분이 상당히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걸 보면 선언문에 담지 못한 속내를 나누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한 청와대 참모는 “비핵화의 구체적 방법과 이어지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논의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김 위원장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 등에 관해 조언했을 가능성도 있다.판문점=공동취재단 /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청와대 관계자는 27일 ‘판문점 선언’이 발표된 뒤 “나머지 의제에 대해서는 양측이 물밑 협상을 통해 (선언문을) 거의 합의한 뒤 각자 판문점으로 향했다”고 전했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군사적 긴장 완화, 민간 교류 활성화 등의 내용은 남북 정상이 마주 앉기 전 합의를 끝냈다는 것. 남북은 단 한 차례의 고위급 회담만을 했지만 공식 회담과 별개로 국가정보원-통일전선부 라인을 통해 여러 차례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수시로 백악관과 의견을 교환했다. 자연히 이날 오전 10시 15분부터 100분 동안 진행된 정상회담은 비핵화 문제에 집중됐다. 비핵화의 의지를 얼마나, 어떤 문구로 담을 것인지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각자 2명의 참모만 배석시킨 채 담판을 벌였다.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문구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오전 회담의 마무리 발언에서 문 대통령은 “오늘 좋은 논의를 많이 이뤄서 남북의 국민에게, 또 전 세계 사람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기대하셨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기대를, 만족을 드렸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각자 점심식사를 마친 두 정상은 예정됐던 오후 정상회담을 갖지 않았다. 두 정상이 비핵화 문구에 합의하면서 오전 회담을 끝낸 뒤 양측 실무진은 선언문의 최종 감수 작업을 벌였다. 이처럼 두 정상이 각각 남측 평화의집과 북측 통일각에 머무른 오전 11시 55분부터 남북 실무진은 바쁘게 움직였고, 오후 4시 30분 식수 행사 전 두 정상은 선언문을 최종적으로 재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문점=공동취재단 /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27일 판문점에서 처음으로 마주 앉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담판지어야 하는 의제는 사실상 단 하나다. 올해 형성된 한반도 대화 기류를 이어갈 수 있을지를 가늠할 핵심 의제, 바로 비핵화다. 두 정상의 비핵화 논의 결과에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이어지는 북-미 정상회담의 성패가 달려 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26일 정상회담 세부 일정을 공개하면서도 두 정상의 합의문 발표 형식, 장소 등을 모두 미정으로 남겨둔 것도 비핵화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완전한 비핵화’ 南 vs ‘경제 지원’ 北 청와대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된 명시적인 내용을 합의문에 넣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까지 약속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20일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 중심으로의 궤도 수정을 선언하면서도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비핵화를 대가로 최대한의 경제적 지원을 국제사회로부터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의 인식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비핵화에 합의해도 구체적인 후속 조치에는 여러 난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이 최근 연이어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고 말한 이유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핵 폐기의 검증 방법 및 시한, 보유한 핵 기술의 폐기 여부 등의 세부 조치가 핵심”이라며 “선언적 의미의 비핵화에만 합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발효 뒤 남북 사이에 도출한 비핵화 합의가 없었다는 점도 관건이다. 비핵화 합의는 6자회담 등 미국 중국이 참여한 다자(多者) 협의에서 이뤄졌다. 임 실장이 이날 “비핵화 의지를 두 정상이 어느 수준에서 합의할 수 있을지, 어떤 표현으로 명문화할 수 있을지가 어려운 대목이다”고 한 것도 이런 기류를 담고 있다. 다만 청와대는 1992년의 공동선언을 기본 토대로 비핵화 관련 합의문 마련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남북 총리가 서명한 이 선언에는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보유·저장·사용 금지, 핵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시설 보유 금지, 비핵화 검증을 위한 사찰 등 비핵화와 관련한 세부 조치를 담고 있다. 청와대는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합의문에 담지 않더라도 “1992년 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한다”는 식의 담판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지만 김정은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관건이다. 이에 따라 두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의 구체적 조치에 대해 견해차를 좁히고, 본격적인 협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과거 비핵화 논의와 차원이 다른 회담 임 실장은 또 “북한의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고도로 발전한 이 시점에 비핵화 합의를 한다는 것은 1990년대 초, 2000년대 초에 이뤄진 비핵화 합의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이 점이 이번 회담을 어렵게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임 실장이 언급한 두 번의 합의는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6자회담 결과물인 9·19 공동성명이다. 모두 파국으로 끝난 두 합의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던 시점에 이뤄졌다. 하지만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이번 회담은 핵을 원점으로 돌리기까지 밟아야 할 절차가 더 많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핵뿐만 아니라 그 운반체인 ICBM까지 더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핵뿐만 아니라 미 본토를 사정거리에 둔 ICBM 폐기까지 요구하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회담에 대해 “핵과 ICBM 문제에서 어떤 합의가 나올지 여부가 2000년, 2007년 정상회담과 비교하면 가장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번 회담을 앞두고 “경제 지원은 의제가 아니다”고 여러 차례 못 박은 이유도 과거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합의만 믿고 식량, 중유 등을 섣불리 북한에 건넸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 트럼프 행정부가 지원에 동의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 대신 청와대는 “경제 논의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라며 여지를 두고 있다. 북한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는 동안 구체적이고 빠른 비핵화 조치를 약속한다면 국제사회의 경제 지원을 청와대가 이끌어낼 수 있다는 신호다. 한편 이번 회담에서는 비핵화 외에도 군사적 긴장 완화, 판문점 회담 정례화 등이 대화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또 평창 겨울올림픽 때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한국을 찾은 최휘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수행단에 포함되면서 문화·체육 교류 논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처음으로 만나는 T2(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와 T3(군사정전위 소회의실) 사잇길은 1953년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 이어진 남북 대립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방북했던 임수경 전 의원은 그해 8월 15일 문규현 신부와 함께 T2와 T3 사잇길을 이용해 남측으로 내려왔다. 이에 앞서 1978년 우리 해군에 나포된 북한 선박 승무원 8명이 이 길을 이용해 북한으로 송환됐고, 그 뒤로도 남쪽으로 표류해 온 북한 어민 등이 송환될 때 이 길을 주로 사용했다. 판문점에는 우리 측 지역과 북측 지역을 동시에 포함하는 하늘색 건물 세 곳이 있는데 각각 T1(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T2, T3로 불린다. T는 영어 ‘임시(temporary)’에서 비롯됐다. 앞서 남북 고위급·실무 회담 참석자들은 이 길이 아닌 T1과 T2 사이의 길을 이용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정상회담의 시작을 알리는 두 정상 간의 만남을 위해 T2와 T3 길을 남겨둔 셈이 됐다”고 말했다. 남한 땅을 처음 밟는 김정은에 대한 경호도 관심사다. 대통령경호처에 따르면 회담이 열리는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전체가 특별경호구역으로 지정돼 남북 합동경호가 이뤄진다. 경호책임기관을 대통령경호처가 맡는 데 대해 북측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밀착 경호는 북측 최정예 경호부대인 974부대나 호위사령부(963부대)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 정전협정에 따라 JSA 안에서는 중화기를 휴대할 수 없기에 남북 정상의 근접 경호인력은 권총만 휴대할 것으로 보인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9시 반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한국 땅으로 온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은 오전에 이어 오후엔 배석자를 1, 2명으로 최소화한 사실상 단독회담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담은 ‘판문점 선언’(가칭)을 발표할 예정이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26일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27일 오전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시작한다”며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사무실인 T2와 T3 사이로 군사분계선을 넘는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등 9명의 공식 수행단 명단을 통보했다. 김정은은 수행원들과 함께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은 뒤 문 대통령과 의장대 사열 등 공식 환영식을 갖고 본격적인 회담에 들어간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오후 6시 반 공식 만찬을 시작하기 전 회담 결과를 담은 ‘판문점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사실상의 단독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놓고 이른바 ‘핵 담판’을 벌인다. 외교 소식통은 “두 정상이 단독회담을 하거나 사실상 단독회담에 준하는 소규모 회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으로부터 합의를 이끌어 내면 남북은 핵무기 실험과 제조, 저장을 금지하고 핵사찰에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2년 발효)에 이어 26년 만에 새로운 남북 비핵화 선언을 내놓게 된다. 하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폐기하는 등 완전한 비핵화를 명문화하는 과정에서 두 정상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임 실장은 “뚜렷한 비핵화 의지를 명문화할 수 있다면, 좀 더 나아가 그것이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의미한다는 것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면 이번 회담은 매우 성공적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북한의 핵 폐기와 북-미 관계 정상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할 가능성이 큰 만큼, 북-미가 적대 관계 청산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남북이 먼저 군사적 대결 종식을 선언할지 관심을 모은다. 임 실장은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 정착은 물론 남북 간의 긴장 완화에 대한 내용들이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에 북한이 공식 수행원에 군 책임자를 포함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신진우 기자}
2018mm.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의제로 27일 마주 앉아 역사적인 담판을 벌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의 거리다. 2m 남짓한 간격을 두고 한 테이블에 앉은 남북 정상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이어지는 숨 가쁜 회담을 통해 2018년 벽두부터 시작된 남북 화해 국면의 한 장(章)을 마무리 짓게 될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은 남북의 대표적인 명산인 북한산과 금강산 그림을 배경으로 최소 두 차례 이상 기념 촬영에도 나선다. 청와대는 25일 ‘한반도의 평화’를 모티브로 한 평화의집 내부를 공개했다. 두 정상은 평화의집 1층부터 3층을 오가며 접견, 정상회담, 만찬을 갖는다.○ 두 정상 간 탁자 거리는 ‘2018mm’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처음으로 만난 두 정상은 사열을 거쳐 회담 장소인 우리 측 평화의집에 동시에 입장하게 된다. 이때 두 정상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민정기 작가의 산수화 ‘북한산’이다. 평화의집 로비 정면에 걸린 이 그림을 배경으로 두 정상은 기념 촬영을 한다. 청와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는 북측 최고지도자를 서울의 명산으로 초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정은이 로비 오른쪽에 마련된 방명록 서명대에서 서명을 마치면 두 정상은 환담장으로 자리를 옮겨 사전 환담을 나눈다. 두 정상이 앉는 의자의 배경에는 김응현 서예가가 쓴 훈민정음 서문이 병풍으로 놓인다. 두 정상은 푸른색을 기본 색채로 꾸민 2층 회담장에서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한다. 고민정 부대변인은 “두 정상이 주요한 의제를 다룰 2층 회담장 내 정상회담 테이블 폭은 2018mm로, 회담이 열리는 2018년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두 정상은 신장식 작가의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 그림을 배경으로 다시 한번 악수를 나눌 것으로 보인다. 총 14개의 의자가 준비되었지만 최종 배석 인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두 정상의 의자만 흰색이고, 다른 의자는 노란색이다. 청와대는 “두 정상 의자의 최상부에 한반도 지도 문양을 새겼고, 회담장 실내는 한옥 느낌이 나도록 꾸몄다”고 설명했다. 팽팽한 논의를 마친 두 정상은 3층으로 올라가 만찬을 갖는다. 3층 연회장 주빈석의 뒤편으로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를 화폭에 담은 신태수 작가의 ‘두무진에서 장산곶’이 걸린다. 북한산, 금강산에 이어 남북이 마주보고 있는 백령도를 배경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는 셈이다. 연회장의 좌석 배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의 동행 여부도 불확실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리설주가 불참할 가능성도 있어 보이지만 그래도 (리설주) 참석을 전제로 만찬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만찬과 함께 공연이 진행되기 때문에 별도의 무대도 마련된다.○ ‘옥류관 냉면 배달’도 리허설 북한은 이날 오전 김창선 단장 등 선발대를 남측으로 파견했다. 북측 선발대는 도보로 MDL을 넘어 우리 측 관계자들과 합동 리허설을 가졌다. 만찬의 메인 메뉴인 평양 옥류관 냉면의 배달도 실전처럼 이뤄졌다. 옥류관에서 사용하는 제면기는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 이미 설치됐고, 북측 관계자들은 제면기에서 뽑은 면을 차량을 이용해 평화의집까지 운반하는 작업을 실제로 진행했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을 생중계가 아닌 녹화 중계로 방향을 정했다. 조선중앙TV 촬영진이 판문점을 찾지만 그와는 별도로 우리 측 관계자들에게 “(생중계 자료를) 최대한 빨리, 똑같이 다 제공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판문점=공동취재단·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한반도 비핵화 논의의 출발점이 될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남북, 한미 그리고 북-미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남북은 군사적 긴장 완화 등 주요 현안에 대한 기초 조율을 마치고 회담장에선 최대 이슈인 비핵화 논의에 집중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5일 미국 워싱턴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비핵화 의제에 대한 한미 공조를 논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간) 방미 중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공동 회견에서 “(북-미 회담을 위해) 우리는 매우 좋은 논의를 하고 있다. 김정은은 매우 훌륭하다고 할 만하다”고 말했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25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정 실장이 미국을 방문해 오늘 새벽 볼턴 보좌관과 만나 남북 정상회담 준비 상황, 특히 한반도 비핵화 목표 달성을 위한 양국 간 긴밀한 공조 방안에 대한 의견 조율을 마쳤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뒤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5월 중순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갖기로 했다. 정 실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이틀 앞두고 미국으로 날아가 백악관과 긴급 협의에 나선 것은 남북 정상 공동선언문 초안을 설명하고, 비핵화 협상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의견을 듣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정상 공동선언문에 문 대통령이 강조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합의를 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가 최대 의제인 만큼 기존 핵무기 폐기와 사찰 등 진전된 비핵화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비핵화 외에 군사적 긴장 완화, 남북 연락사무소 설치와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 등 남북 관계 관련 의제는 대부분 물밑 조율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정상 간 논의 사안을 제외한 모든 회담 준비는 끝났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남북은 이날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 합동 리허설을 가졌다. 김정은은 마중 나온 문 대통령과 함께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은 직후 육해공군으로 이뤄진 의장대를 사열하고 회담장에 동시 입장할 예정이다. 유엔군사령부 관할 지역인 판문점에서 군 의장대 사열이 진행되는 것은 사상 최초다. 판문점=공동취재단·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손효주 기자}

27일 남측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옥류관 냉면으로 만찬을 함께한다. 또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 고향에서 난 재료로 만든 음식도 오른다. 청와대는 24일 제3차 남북 정상회담 환영 만찬 메뉴를 공개했다.취재기자 2800명… 전세계가 지켜볼 한반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만찬 메뉴에 대해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의 뜻을 담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만찬에는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던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 특산인 민어와 해삼초를 이용한 민어해삼편수, 2007년 두 번째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했던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 쌀로 지은 밥이 오른다. 고 윤이상 작곡가의 고향인 경남 통영의 바다에서 잡은 문어를 활용한 냉채도 준비된다. 2000년 ‘소 떼 방북’으로 화제를 모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관련된 음식도 마련된다. 청와대는 “당시 북한으로 갔던 소를 키운 충남 서산목장의 한우를 이용한 숯불구이를 준비한다”고 밝혔다. 만찬장 중앙에 앉게 될 두 정상과 인연이 있는 음식도 준비된다. 문 대통령이 유년 시절부터 머물렀던 부산의 대표 음식인 달고기구이와 김정은이 유학했던 스위스의 뢰스티(일종의 감자전)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스위스식 감자전이 대표적이다. 옆구리에 보름달 같은 반점이 있는 바닷물고기인 달고기는 김정은이 유년 시절을 보낸 유럽에서는 고급 생선으로 꼽힌다. 뢰스티는 스위스 독일 등에서 자주 먹는 음식으로 감자를 얇게 채 썰어 전처럼 익힌 요리다. 만찬 메뉴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평양 옥류관 냉면은 문 대통령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 만찬 음식으로 옥류관 냉면이 좋겠다고 제안했고 북측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특히 냉면을 준비하기 위해 옥류관 수석요리사가 군사분계선(MDL)을 넘고, 면을 준비하기 위해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 옥류관에서 사용하는 제면기가 설치된다. 북측에서 마련한 면이 MDL을 넘어 남측 평화의집에서 남북 요리사들의 손을 거쳐 만찬장에 오르는 이벤트가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만찬 음식은 통영 문어냉채를 시작으로 스위스식 감자전, 민어해삼편수, 부산 달고기구이와 도미·메기찜에 이어 비빔밥과 한우구이, 냉면 순으로 제공된다. 만찬주로는 면천 두견주와 문배주가 선정됐다. 김 대변인은 “문배주는 고려시대 이후 1000년을 이어오는 술로, 고향은 평안도이나 지금은 남한의 명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문배주는 2000년,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테이블에 올랐다.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2007년 정상회담 오찬에서 건배 뒤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반면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잔에 술을 조금 남겼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두 정상의 건배 방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선 화합을 과시하기 위해 두 정상의 ‘러브샷’ 아이디어도 나온다. 실제로 두 정상은 술을 즐기는 편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방북한 우리 측 특사단과의 만찬에서 적잖은 술을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건강을 생각해 최근에는 와인을 한두 잔 마시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주 1병은 거뜬히 비웠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평화의집에서 첫 리허설을 가졌다. 임종석 비서실장과 천해성 통일부 차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비서관, 김상균 국가정보원 2차장 등은 남북 정상의 동선과 집기 배치, 통신 상태 등을 직접 점검했다. 25일에는 북측 선발대가 방남해 우리 측 관계자들과 합동 리허설을 한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식 환영식과 환영 만찬을 갖기로 했다. ‘실무형 회담’으로 진행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게 된 것. 이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정전체제 종식,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 등을 놓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것으로 보인다. 남북은 2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3차 실무회담을 열고 남북 정상이 27일 오전 만나기로 최종 결정했다. 권혁기 청와대 춘추관장은 “27일 오전 두 정상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공식 환영식, 정상회담, 환영 만찬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일정은 김정은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한국 땅을 밟는 것으로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300m가량 떨어진 MDL을 넘어서는 순간은 전 세계로 생중계될 예정이다. 김정은은 도보로 MDL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를 위해 내외신 기자가 MDL을 넘어 북측 지역에서 김정은이 한국을 향해 이동하는 것을 취재할 수 있도록 했다. 권 관장은 “판문점 북측 구역에서부터 생중계를 포함한 남측 기자단 취재를 허용하기로 전격 합의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역사적인 첫 조우는 MDL을 사이에 두고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악수뿐만 아니라 ‘액션이 큰’ 김정은 성격상 포옹이 이뤄질 수도 있다. 김정은은 이어 문 대통령이 마련한 공식 환영식을 갖는다. 2000년과 2007년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두 북한 의장대를 사열한 만큼 정부가 김정은을 위한 의장대 사열을 준비할지도 관심이다. 다만 판문점이 공식적으로 유엔사령부의 관할이고, 장소도 좁기 때문에 우리 군의 약식 사열이나 다른 방식의 환영식이 준비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공식 환영식은 MDL 바로 앞에 있는 우리 측 자유의집이나 자유의집에서 회담 장소인 평화의집으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열릴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날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오찬 일정,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의 동행 여부 등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오전 회담이 길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두 정상이 공식 오찬을 대신해 도시락으로 점심을 함께하며 회담을 이어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또 환영 만찬이 확정된 만큼 리설주 역시 남한 땅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리설주를 ‘여사’로 칭하며 정상국가의 면모를 보이려 해 왔다”며 “여기에 처음으로 북한 최고 지도자가 남측에서 갖는 만찬인 만큼 리설주가 김정은과 별도로 (오후에) 방남해서라도 김정숙 여사와 함께 만찬장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리설주가 만찬에 참여할 경우 남북 정상은 분단 후 처음으로 부부동반 행사를 갖게 된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북한이 21일 발표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에 대해 “북한의 핵동결 조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중대한 결정”이라며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청신호”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북한이 핵동결로부터 출발해 완전한 핵폐기로 간다면 북한의 밝은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며 “북한의 선행 조치로 그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조치를 ‘핵동결’로 평가하면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의 완전한 폐기로 나아가겠다는 뜻을 재차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국내 정치권을 향해 “정상회담 기간까지만이라도 정쟁을 멈춰 줄 것을 당부드린다”며 “핵과 전쟁 걱정이 없는 한반도를 위해 초당적 협력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연루된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인한 여야 공방을 자제해 달라는 부탁이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한다는 북한의 전격 발표에 청와대는 일단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북한의 기습 발표 의도와 코앞으로 다가온 남북 정상회담에 미칠 파장 등을 분석하느라 바쁜 분위기였다. 특히 청와대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의 경우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큰 틀에서 합의한 뒤 그 이행 조치를 논의하는 단계에서 언급될 줄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토요일 새벽에 ‘선수’를 치자 문재인 대통령은 일요일인 22일 예정에 없던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회의를 소집하고 후속 조치 마련에 나섰다.○ 靑 “北, 경제적 지원 의도 더 명확해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의 발표 내용에 대해 “김정은이 들고 있던 여러 장의 카드 중 한 장을 정상회담 전에 미리 공개한 것”이라며 “그만큼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를 둘러싼 여러 실질적인 논의를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연이어 방북한 우리 측 대북 특사단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후보자에게 비핵화 의지를 밝힌 김정은이 한 발 더 나아가 구체적인 방법까지 언급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김정은의 이 같은 조치는 비핵화에 따른 대가로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경제적 지원을 확실하게 이끌어내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김정은이 기존의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벗어나 경제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도 비핵화에 따른 군부 등 북한 내 일각의 반발을 무마하면서도 북한이 바라는 릴레이 정상회담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정은이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겠다”면서도 핵 포기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핵 포기와 경제적 지원의 ‘빅딜’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 협상 카드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청와대는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그려왔던 시나리오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27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핵 포기와 비핵화만이 국제사회의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선언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을 약속해야만 이어지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가시적인 성과물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도 이날 오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청와대로 불러 점검회의를 가졌다. 청와대는 전격적인 핵실험 중단 등을 결정한 김정은이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파격적인 제안을 꺼내들 수 있다고 보고 관련 대응책을 논의 중이다. ○ 관심은 남북 정상 간 첫 통화와 추가 방북 남북 정상회담이 닷새 앞으로 다가오면서 청와대도 막바지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2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3차 남북 실무회담이 열린다. 24일에는 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첫 리허설이 열린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의 최대 관심사는 남북 정상 간 첫 통화와 우리 측 인사들의 추가 방북 여부다. 20일 시험 통화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은 언제든 두 정상이 수화기만 들면 통화할 수 있는 상태다. 또 정 실장과 서 원장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 직전 평양을 방문할 가능성도 아직 열려 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번 주초 두 정상이 전화 통화를 갖고 우리 측 인사들의 추가 방북을 논의하고, 곧바로 정 실장이나 서 원장이 방북해 최종 의제를 결정짓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한편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첫 만남 순간 등이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은 “언론과 전 세계 누구나 모바일을 통해 회담 관련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온라인 플랫폼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대립의 긴장이 극에 달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18일 오후, 판문점에서 남측으로 2km가량 떨어진 안보견학관에서 기자들을 맞이한 유엔사령부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는 판문점을 이같이 소개했다. 남과 북이 마주 보고 있는 판문점은 실제로 1976년 도끼만행 사건, 지난해 북한군 병사 오청성의 탈북 등 분단의 대립으로 인한 돌발 사건들이 빈번하게 벌어졌던 곳이다. 이곳에서 27일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난다. 1953년 7월 6·25전쟁의 정전협정 조인식이 열린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계기를 마련해 보겠다는 것이다. 안보견학관에서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국도 1호선을 타고 5분가량 달리면 길이 600m, 폭 800m 규모의 판문점이 등장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상회담 당일 판문점으로 이동하며 이 길을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유엔사 관계자는 “남측에서 판문점으로 오는 길은 국도 1호선뿐이고, 북측에서 판문점으로 들어오는 길은 ‘72시간 다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이 모두 차량을 통해 판문점에 진입하는 것이다. 판문점은 군사분계선(MDL)을 기점으로 남측에 자유의집과 평화의집이, 북측에 판문각과 통일각이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우리 측 평화의집에서 열린다. 자유의집을 통과해 MDL과 가장 근접한 곳으로 걸어갔더니 바닥에 콘트리트 연석이 놓여 있고, 그 너머로 북측 판문각이 눈앞에 등장했다. 높이 5cm, 폭 50cm의 콘크리트 연석은 MDL 표시를 위해 군사정전위원회가 설치한 것이다. 단 한 걸음으로 이 5cm의 턱만 넘으면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가게 된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남북 정상의 첫 만남도 이 5cm 턱을 사이에 두고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판문각을 통과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콘크리트 연석을 두고 문 대통령과 악수할 가능성이 크다. 이후 자연스럽게 MDL을 넘어 도보로 남측 지역에 들어서는 것이다. 회담장인 평화의집은 MDL에서 250m가량 떨어져 있어 자유의집을 통과해 도보로 이동해도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릴 평화의집은 가림막을 쳐 놓은 채 막바지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공사가 20일에 끝나고 이후 전자제품, 레드카펫 등 비품 준비가 순차적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의 방남에 부인 리설주가 동행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동행한다면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도 판문점을 찾아야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할 마땅한 장소와 이벤트가 없다는 점이 청와대의 고민이다. 실제로 둘러본 판문점 남측 지역에는 JSA 경비대대의 시설을 제외하면 주차장과 좁은 잔디밭이 부대시설의 전부라 산책로도 마땅치 않아 보였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 부인 간 교류 등은 추가로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판문점=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댓글 여론 조작사건에 대해 18일 청와대가 “의문 제기 수준을 넘어 정부, 여당에 흠집을 내거나 모욕을 주려는 것처럼 보인다”며 공개적으로 정면 대응에 나섰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사진)은 이날 낸 ‘드루킹 사건’과 관련한 논평에서 “어지러운 말들이 춤추고 있지만 사건의 본질은 간단하다. 누군가 매크로(자동화 프로그램)를 이용한 불법행위를 했고 정부, 여당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과 경찰이 조속히 사건의 전모를 밝혀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변인은 또 “봄 날씨처럼 변덕스러운 비난에 흔들리지 않겠다.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민족적 과업을 묵묵히 실천해 나가겠다”며 “그 누구보다도 철저한 수사와 명확한 진상규명을 바라는 쪽은 정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과 백원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까지 ‘드루킹 청탁 의혹’에 얽혀 있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백 비서관이 ‘드루킹’이 추천한 인사를 접촉한 과정에 대해 오락가락 해명을 내놓은 바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김 대변인의 논평에 대한 논평’을 내고 “청와대가 마치 자신들이 피해를 입은 것처럼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다”라며 “대변인은 지금 청와대를 향해 쏟아지는 의혹에 대해 성실히 답변해야 할 때”라고 비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사퇴 파문 후폭풍이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민정·인사라인 책임론으로 번지고 있다.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의 책임 문제가 아니다”며 또 한번 방어에 나섰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여권 일각에서도 조 수석 책임론에 동조하는 기류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단순히 김 전 원장 사태 때문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누적된 ‘부실 검증’에 대한 불신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 자체 ‘가이드라인’도 무시한 靑 김 전 원장이 자진 사퇴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김 전 원장의 후원금 문제에 대해 위법 판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7일 “검증 설문에 (후원금) 해당 항목이 없었고, 김 전 원장도 그런 사안이 있었다는 것을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정수석실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 뒤 문제가 있다고 하니 유권 해석을 의뢰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가 고위공직자 검증에서 필수적으로 묻는 ‘고위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에는 “본인이 직장의 공금을 공적인 업무 이외의 용도에 사용하거나 내규에 맞지 않게 사용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있다. 청와대는 그 예로 “공금을 개인 명의 기부금으로 사용한 경우”라고 명시했다. 이 질문서는 지난해 11월 청와대가 인사 검증 시스템 개편을 발표하며 도입한 것으로,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게시되어 있다. 이에 대해 변호사 출신의 한 야당 의원은 “후원금 등 정치자금은 사유 재산이 아니라는 점에서 민정수석실에서 재검증을 할 때 꼭 확인했어야 하는 사안”이라며 “김 전 원장과 민정수석실이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청와대가 김 전 원장 검증에서 자체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은 더 있다. 청와대는 지난해 11월 “원천 배제 기준에 미치지 않는 경우에도 고의성, 상습성, 중대성의 요건을 기준으로 정밀 검증하여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검증을 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조 수석은 김 전 원장 의혹을 재조사한 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지만 해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김 전 원장은 2015년 5월 우리은행 지원으로 중국·인도 출장을 다녀온 뒤 며칠 만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돈으로 미국·유럽 출장을 갔다. 야당은 “이게 고의성, 상습성이 아니라고 본 것이냐”고 성토하고 있다.○ 여당도 조 수석에 부글부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담당한다. 김종호 공직기강비서관이 이끄는 검증팀은 검찰, 경찰, 국세청 등에서 인력을 파견 받아 검증을 진행한다. 실무는 변호사 출신인 권용일, 조동찬 선임행정관이 맡고 있다. 감사원 출신인 김 비서관은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몸담지 않았지만 두 행정관은 캠프 법률지원단에서 활동했다. 조 행정관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도 근무했다. 최종 책임자인 조 수석은 참여연대 출신이다. 이 때문에 “민정라인이 비판적인 시각에서 검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우리 편이니 문제가 없다’는 인식으로 검증을 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여기에 논란이 불거져도 민정수석실 참모들이 나서지 않는 점은 여당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지난해 ‘릴레이 낙마’ 국면에서는 조 수석 대신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직접 나서 사과했다. 김 전 원장 사태에서도 조 수석은 한 차례도 언론 브리핑을 갖지 않았고 대신 윤영찬 국민소통수석과 김의겸 대변인이 수습에 나섰다.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연루된 ‘드루킹 청탁 의혹’ 역시 백 비서관은 나서지 않고 윤 수석과 김 대변인이 대신 해명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조 수석이 권력기구 개편안, 개헌 등 주목 받을 수 있는 사안에만 직접 나서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안에는 침묵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6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사진)이 19대 국회의원 시절 자신이 소속된 연구단체 ‘더좋은미래’에 5000만 원을 ‘셀프 후원’한 것이 위법하다는 답변서를 청와대에 보냈다. 김 원장은 선관위 유권해석 직후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는 “선관위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김 원장의 사표를 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을 중심으로 청와대 민정라인 책임론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는 이날 오후 선관위원 9명이 참석하는 선거관리위원회를 열어 청와대의 질의 내용을 논의했다. 선관위는 김 원장이 2016년 5월 19일 잔여 후원금 가운데 5000만 원을 ‘더좋은미래’에 기부한 것에 대해 공직선거법 중 기부행위를 제한한 113조를 위반했다고 결정했다. 선관위는 2016년 당시 김 의원의 문의에 “종전의 범위를 벗어나 특별회비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제공하는 것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회신했는데도 김 원장은 이 모임에 기부했다. 한 선관위원은 “5000만 원이 실질적으로는 (김 원장이 나중에 소장을 맡은) 연구소에 들어가 특정인의 수입이 된 것인 만큼 위법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선관위는 김 원장이 피감기관 비용으로 해외출장을 간 것에 대해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의 수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구체적인 법 위반 여부는 해외출장의 목적과 내용, 출장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김 원장은 사표가 수리되더라도 선관위가 위법이라고 결론 내린 셀프 후원금과 해외출장 등에 대해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셀프 후원’은 공직선거법 위반이지만 공소시효가 6개월이라 이 건으로 기소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에 앞서 청와대는 12일 김 원장 논란과 관련해 적법 여부를 묻는 질의서를 선관위에 보냈다. 문 대통령은 13일 “김 원장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문제되는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밝히면서 ‘조건부 사임’을 거론했고 이날 선관위 결정에 따라 김 원장은 임명 14일 만에 물러났다.박성진 psjin@donga.com·한상준 기자}

“반위협적으로 나오는데 황당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16일 민주당 댓글 여론 조작사건에 연루된 김모 씨(49·구속·인터넷 필명 ‘드루킹’)의 행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드루킹이 같은 온라인 카페 모임 회원인 대형 로펌 변호사 A 씨를 주오사카 총영사로 추천했다가 거절당하자 돌변했다는 것이다.○ 김경수 추천→靑 부적합 판정→항의 뒤 靑 면담 국회에서 14일에 이어 이날 2차 기자회견을 연 김 의원은 드루킹에게서 오사카 총영사 후보를 추천받아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전달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김 의원은 올해 초 A 씨 인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연락을 (청와대로부터) 받고 이를 드루킹에게 전달해줬다. 김 의원은 “오사카 총영사가 일반 영사보다 규모가 크고 최소한의 정무적 경험이나 외교 경력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드루킹은 올해 2월까지 두세 차례 김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찾아가 오사카 총영사 추천을 재차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반협박성 발언을 들었다. 그 와중에 청와대 행정관 자리도 요구했다. 이건 안 되겠다 싶어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이런 상황을 전달했고, 그 후 거리를 뒀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드루킹이 추천한 A 변호사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백원우 대통령민정비서관이 2월 드루킹의 추천을 받은 인사를 청와대 연풍문 2층에서 만났는데 인사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는 A 변호사의 결격 사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이 임명됐다. 그러나 청와대 공식 직함이 없는 김 의원이 청와대에 공직 추천을 하고 민정비서관까지 나서 면담을 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선에 따른 인사 추천으로 비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이 댓글 여론 조작 사건 연루설과 관련해 상세한 해명을 했지만, 예상보다 드루킹과 접촉이 잦았던 것이 확인되면서 야권의 공세가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열린 인사추천 시스템에 따른 절차였다. 저뿐 아니라 (여권의) 많은 분이 그렇게 했다”고 설명했다.○ “시민 자발적 참여” 국가기관 댓글과 차이 강조 김 의원은 자신과 드루킹이 만난 배경 등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드루킹은 2016년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드루킹은 자신들을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는 온라인 카페 회원으로 소개하며 “자기들 생각과 가장 비슷한 당시 문재인 후보를 대선에서 지지하겠다”고 했다. 김 의원은 드루킹의 강연 요청은 거절했지만, 느릅나무 출판사가 위치한 경기 파주시 사무실 방문은 받아들여 2016년 가을 등 2차례 방문했다. 대선 후에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강연자로 드루킹에게 추천하기도 했다. 김 의원의 말대로라면 첫 만남 후 서로의 사무실에서 최소 다섯 번은 만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의원은 드루킹이 지난 대선에서 어떤 방식으로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 활동을 펼쳤는지는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김 의원은 “선거 때 드루킹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메신저를 보내는데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시 문 후보에게도 자발적 지지모임이라 일일이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의원은 드루킹이 실제 이름인 김모 씨 이름으로 자신에게 10만 원의 후원금을 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제가 뭔가를 해준 것은 일절 없다”고 했다. 김 의원은 예정보다 이틀 연기된 19일 경남도지사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그는 “이 사건 자체가 출마에 문제가 된다거나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의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 공세에 몰두하는 일부 야당의 정치 행태에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임을 명백히 경고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지난 정부처럼 국가 권력기관인 군인, 경찰, 공무원들을 동원해 활동하는 것을 불법 사건이라고 하는 것인데, 일반 시민이 온라인에서 참여 활동을 하는 것을 불법 행위와 동일시하는 보도가 있다.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박했다.유근형 noel@donga.com·한상준 기자}

“최악의 상황이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6일 청와대가 의뢰한 적법 판단 사항 중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셀프 후원’ 의혹을 위법으로 결론 내리면서 여권 전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쏟아지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김 원장을 엄호하던 청와대는 이제 고스란히 그 후폭풍에 온몸을 노출하게 됐다. 특히 정치권의 공세가 집중되고 있는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민정라인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댓글 조작’ 사건의 핵심인 드루킹이 백원우 대통령민정비서관을 만난 게 새로 밝혀지면서 민정라인이 그야말로 정국 회오리의 한복판에 들어서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靑 “이런 결론 예상한 건 아니다”라며 당혹 청와대는 하루 종일 김 원장에 대한 선관위의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하나라도 위법 사실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선관위의 결정에 따라 김 원장의 거취는 물론이고 청와대의 책임론까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래도 내부에서는 마지막까지 위법을 가리기 쉽지 않다는 식의 결론이 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이날 선관위 결정에 대해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도 선관위의 결론이 과거 김 원장의 문의 때와 다소 달라졌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김 의원이 선관위에 정치자금 처리 문제를 문의했고, 선관위는 ‘종전 관례상’이라는 문구로 답했다”며 “김 의원은 문제가 없다고 해석했고 더좋은미래에 5000만 원을 기부하고 선관위에 신고했으나 선관위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2016년 ‘셀프후원’을 신고했을 때 이를 제대로 문제 삼았다면 애초에 이 같은 논란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일각에선 청와대가 뒤늦게 핑곗거리를 찾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시한 선관위 질의가 예상과 다른 결과로 이어진 데 대해선 “애초에 결론을 예상하고 선관위에 질의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절차적 정당성과 선관위 독립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나온 결론인 만큼 이를 수용하고 인사 기준을 정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논란의 한가운데 선 민정수석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선관위가 신속하게 위법 결정을 내놓으면서 청와대는 당장 부실 검증의 책임론이 거세게 부는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처지다. 그 최전선에는 조 수석이 놓여 있다. 조 수석은 김 원장의 의혹에 대해 두 차례나 검증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지만 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결론은 청와대가 김 원장의 엄호를 이어가며 선관위에 공개 질의를 보내는 판단의 결정적 배경이었다. 하지만 선관위가 단박에 위법 판결을 내리면서 “과연 제대로 검증을 한 것이냐”는 화살이 다시 조 수석을 향할 수밖에 없게 됐다. ‘셀프 후원’ 논란은 물론이고 민정수석실이 법적 문제가 없다고 밝힌 피감기관 비용 해외출장 역시 선관위가 정치자금 수수 소지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집권 후 줄곧 적폐청산 드라이브에만 주력해 온 민정수석실이 정작 민정라인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인사검증에는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 박기영 전 대통령과학기술보좌관 후보자 등 ‘릴레이 낙마’에도 조 수석의 책임론이 불거진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낙마한 고위공직자 대부분은 참여연대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시민사회단체 출신의 개혁 성향 인사들이다. 특히 이날 백 비서관이 댓글 조작 혐의로 구속된 김모 씨(일명 ‘드루킹’)의 요청으로 오사카 총영사로 보낼지 판단하려고 A 변호사를 만났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면서 민정수석실의 역할까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청와대가 백 비서관이 A 변호사를 만난 이유에 대해 “인사 불만에 대한 민원 해결 성격”이라고 밝히면서다. 대통령 친인척이나 지인 동향을 파악해야 하는 민정수석실이 인사 민원 해결에 동원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렇지만 청와대는 다시 한번 조 수석 책임론에 선을 그었다. 김 원장과 관련된 선관위 위법 결론의 핵심인 ‘셀프 후원’ 문제는 애초에 검증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만큼 민정수석실의 책임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 수석이 이번 일로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문병기 기자}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을 주도한 김모(일명 ‘드루킹’·49) 씨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가 청원 게시판 점검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뜨거운 온라인 공간인 청원 게시판에 김 씨처럼 ‘매크로’(댓글 추천수 조작 프로그램) 등을 통한 여론 조작이 가능한지 점검에 나선 것.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6일 “김 씨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대한 자체 점검을 시작했다”며 “아직까지 조직적인 여론 조작이 의심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혹시 모를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댓글 수보다 청원 동의 인원이 중요한 청원 게시판의 특성상 불법 프로그램 등을 통한 동의 횟수 조작이 가능한지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원 게시판은 동의 참여 인원 수가 많은 순서대로 청원이 노출되고 이 중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 청와대가 답을 내놓는 시스템이다. 청와대가 게시판 점검에 나선 것은 이미 조작이 가능하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2월 청와대는 카카오톡을 통한 무제한 중복 동의 방법이 인터넷에 확산되자 “일부 이용자의 부적절한 로그인 정황이 발견되어 카카오톡 연결을 잠정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현재 청원 게시판 접속은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계정으로만 가능하다. 청원 게시판이 개설 이후 온라인 여론전의 격전지가 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8월 개설된 청원 게시판은 국민의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이날까지 16만 건이 넘는 청원이 접수됐다. 자연히 진보·보수 진영으로 양극화된 목소리를 여과 없이 담은 청원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청원 답변 기준의 상향 조정 등 청원 게시판 운영 방법 변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청와대 내부에서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정 여론에 치우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여전히 고민”이라고 말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