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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부터 이색적인 모던 발레까지 한국 발레의 모든 것이 한자리에 모인다. 제9회 대한민국발레축제가 18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다. 축제는 18일 해외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한서혜, 채지영, 조안나 등이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스페셜 갈라’로 막을 연다. 국립발레단은 18, 19일 ‘마타 하리’와 22, 23일 ‘지젤’을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다. ‘지젤’은 1997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수석무용수로 활약하는 발레리나 김지영의 퇴단작이기도 하다. 아울러 23, 24일에는 와이즈발레단, 보스턴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이 무대를 꾸민다. 허용순 안무가의 ‘임퍼펙틀리 퍼펙트(Imperfectly Perfect)’도 29일 첫선을 보인다. 유니버설발레단은 레퍼토리 ‘마이너스 7’로 29, 30일 폐막무대를 장식한다. 공모를 통해 뽑힌 여섯 가지 모던 발레 작품도 20일부터 30일까지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청중 앞에서 옷을 벗은 것처럼 가장 자연스러운 ‘맨발의 신데렐라’를 보여줄 겁니다.” 모나코-몬테카를로 발레단이 ‘신데렐라’를 들고 14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고전의 진화’ ‘맨발의 신데렐라’라는 수식어가 붙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는 역대 가장 성공한 신데렐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발레단의 한국인 수석무용수 안재용(26)이 신데렐라의 아버지 역할을 맡아 금의환향한다. 10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장크리스토프 마요 예술감독(58)과 안재용은 “과연 하이힐이나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렐라가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춤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맨발도 쉽지 않지만, 사랑 앞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1985년 설립한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1993년부터 마요 감독이 이끌어 왔다. 클래식 발레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모던 발레의 숨결을 불어넣는 특유의 스타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신데렐라는 1999년 그의 손에서 재탄생한 작품이다. 그는 올해 공연의 차별점에 대해 “디즈니 속 ‘신데렐라’의 판타지와 상투적인 면에서 좀 더 벗어나려 했다”며 “무용수들에게 관객이 더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캐릭터 표현을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안재용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마요 감독은 “안재용의 춤과 연기는 캐릭터를 살아 숨쉬게 한다”며 “그가 3년 전 무작정 발레단 오디션에 찾아온 순간은 나중에 은퇴한 뒤라도 두고두고 떠올릴 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번 공연은 누구보다 안재용에게 가장 뜻깊은 ‘고국 공연’이다. 2016년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입단한 뒤 3년 만에 초고속 승급을 거쳐 수석무용수로 고국 무대에 오른다. 그는 “테크닉을 강조하는 클래식 발레와 다르게 제 몸을 통해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중점적으로 연습했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도 그는 앞선 대구 공연의 감동을 잊지 못했다. “9일 대구 공연이 끝나고 한 꼬마가 제게 ‘공연이 어렵긴 한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고 했어요. 한국 관객에게 제 춤의 감동이 통한 거겠죠?” 12∼1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8, 19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7만∼23만 원.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현역 군인, 프로 성악가 못지않은 청춘들입니다.” 지난주 서울 강남구의 한 합창연습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 60여 명 앞에 선 지휘자 이판준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71·사진)는 열정적인 몸짓으로 지휘봉을 휘둘렀다. 15일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제4회 정기연주회를 여는 대한민국 군가합창단은 기업, 학계, 언론, 법조계 등 사회 각계의 ‘베테랑’으로 구성된 군가 합창모임이다. 홍두승 서울대 명예교수가 단장을 맡고 있으며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정승조 전 합참의장, 박남수 전 육사교장, 이용준 전 주이탈리아 대사 등 각계 인사 100여 명으로 구성됐다. 올해 공연에는 특별히 ‘전선을 간다’ 등 한국의 군가 외에도 ‘평화의 미사’ ‘라이언 일병 구하기’ ‘늙은 군인의 노래’ ‘애국 군인의 노래’ 등 외국의 군가, 찬가 등 다채로운 곡을 선보인다. 학군단(ROTC) 10기 출신인 이 교수는 “2015년 식사 자리에서 ‘군가 부르는 모임 한번 해보자’라는 가벼운 제의로 이 모임이 발족됐다”고 말했다. ROTC, 국방부, 육군포병학교 또는 일반 사병 출신으로서 군가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누구든 합창단원이 될 수 있다. 그는 “처음엔 합창을 어려워하던 회원들이 이제는 군부대 위문공연과 정기연주회까지 이어갈 수 있어 감격스럽다”고 했다. 합창단의 수준은 몇 년 사이 크게 높아졌다. 몇몇 단원은 주 1회 연습은 물론 인터넷 보강, 자습도 병행했다고 한다. 그는 “홍두승 단장과 김태영 전 장관의 솔선수범으로 매년 화음이 풍요로워지고 있다”고 했다. 합창단은 이제 더 넓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올해 10월 6·25전쟁 참전국인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공연에 나선다. 그는 “6·25전쟁이 잊혀가지만 참전국 각지에서는 아직 생존 노병과 참전용사를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린다”며 “더 늦기 전에 고마운 친구나라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석 초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이달 5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VR스퀘어’ 홍대점. 이곳을 찾은 기자는 누덕도사의 도술로 평정심을 훈련받는 애니메이션 ‘머털도사’ 속 머털이가 된 느낌이었다. 버려진 우주선 내부는 위험천만했고, 한 발 잘못 디디면 아찔한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참이었다. 끊임없이 출몰하는 우주 괴물 앞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손에 들린 레이저 총뿐. 물론 이성은 평평하고 안전한 ‘VR(가상현실)’ 카페에서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감각은 끊임없이 자신이 전장(戰場)의 외로운 병사라고 인지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게임 속 구출 헬리콥터를 향해 평균대처럼 좁은 다리를 건너다 휘청…. 넘어질 뻔까지 했다. 이 모습을 밖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얼마나 웃었을까. 이날 체험한 건 스코넥엔터테인먼트가 2017년 발매한 건 슈팅 게임 ‘모탈 블리츠 워킹 어트랙션’. 한국과 중국, 일본의 여러 테마파크에 공급돼 있다. ‘워킹 어트랙션’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공간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행동할 수 있는 VR 콘텐츠를 이른다. 게임장에 설치된 카메라와 손에 낀 장갑의 센서가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감지하면 머리에 착용한 ‘HMD(Head Mounted Display)’가 이를 가상현실 속에 구현한다. 몰입도가 상당하다. 이날 회사 동료들과 단합 대회차 VR스퀘어를 찾은 권승완 씨(48)는 “옛날 오락실 게임과 달리 조마조마할 정도로 사실적이어서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VR 카페는 2년여 전부터 서울 홍익대 인근과 강남역 중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해 각지로 확산됐다. 갈수록 VR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엔 과거 인기를 모았던 콘텐츠가 VR 게임으로 재탄생하는 사례가 많다. VR가 젊은층뿐만 아니라 윗세대들까지 타깃을 확장하고 있단 뜻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VR 게임으로 꼽히는 ‘비트 세이버’ 역시 과거 ‘펌프’나 ‘DDR’와 같은 리듬 게임의 일종이다. 음악에 맞춰 광선검으로 날아오는 작은 큐브를 쪼개야 한다. 손님 오예린 씨(24)는 “몸을 써서 광선검을 휘두르는 점이 재미”라고 했다. 최근에는 레이싱게임 ‘마리오 카트’가 VR 게임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모탈 블리츠’ 역시 오락실에 있던 1인칭 슈팅(FPS) 게임의 VR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방 탈출 카페’를 VR 버전으로 내놓기도 했다. 이날 체험한 ‘VR 방 탈출’ ‘파라오의 저주’는 2인이 협력해 여러 단서를 활용함으로써 피라미드를 탈출하는 설정이었다. 기존 방 탈출 카페가 정해진 현실 공간에서 실제 물건을 가지고 플레이하는 데 비해, VR 방 탈출은 판타지적 요소가 강해 마치 영화 속 인디아나 존스가 된 듯한 느낌을 줬다. 전용 VR 장비와 고사양의 컴퓨터를 마련하면 집에서 할 수 있는 VR 게임도 있지만, 아직 워킹 어트랙션 같은 장르는 VR 카페, 테마파크에서나 체험할 수 있다. 과거 오락실과 비교하면 플레이에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에 게임 비용이 만만치 않은 건 단점(VR스퀘어 홍대점의 경우 2인 4시간 자유이용권이 8만 원)이다. 이런 VR 카페의 인기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근 공저한 ‘게임의 이론’(문화과학사)에서 “미국에서 한때 인기를 얻은 게임 ‘세컨드 라이프’처럼 가상공간에서 잠시 허구의 삶을 체험하는 단계를 넘어, 앞으로는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이 되는 삶을 가능케 하는 ‘서드(third) 라이프’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사이버 세계’와 우리를 잇는 고리는 대체로 화면과 손가락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VR는 그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려준다. 기술 고도화로 전면적인 감각이 인간과 가상세계를 연결할 때 인류의 인지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때 ‘바츠 해방 전쟁’(‘리니지2’ 게임 속에서 2004∼2008년 다수의 저레벨 플레이어가 연합해 서버를 장악한 거대 혈맹에 맞선 일)과 같은 사건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게임 연구자 이경혁 씨는 “VR 게임이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밝게만 전망되지는 않는다. 당장은 거추장스럽지 않은 무선 VR 기기의 보급과 최적화된 콘텐츠의 등장이 관건”이라면서도 “게임이 현실로 들어오고, 현실은 게임화하는 경향은 날로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조종엽 jjj@donga.com·김기윤 기자}

20대가 보수화됐다는 시각에는 ‘86세대’(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의 나르시시즘적 자아상이 투영된 담론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아시아비정부기구학전공(MAINS)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최성용 씨(30)는 계간지 ‘황해문화’의 여름호(제103호)에 실린 ‘20대 남성 담론을 질문하다’에서 정치권이 20대를 대하는 담론의 허와 실을 분석했다. 최씨는 “현 정부와 민주 진영이 20대 남성의 지지율을 회복하길 바라는 까닭은 20대, 특히 남성이 민주주의와 진보의 편이어야 한다는 소망적 사고에서 비롯된다”며 “이 막연한 소망이 마땅한 근거를 가졌는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 씨는 “86세대가 민주주의, 진보, 정의의 편에 있다는 나르시시즘적 자아상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한다는 점”이라며 “이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많은 권력과 자본을 확보하게 됐고, 예전에 비판한 사회의 구조적 구습을 극복하지 못한 채 닮아버렸다”고 비판했다. 최 씨는 “86세대는 페미니즘에 대한 모순적 태도를 비롯해 학벌주의와 학력 차별, 권위주의, 비민주적 조직 운영 등에서 진보적이지 않은 면모를 보였다”고 덧붙였다. 최 씨는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나 조동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의 논란이 선명하게 보여준 것처럼 자녀 교육과 부동산 투기 등의 문제에서 86세대라고 해서 크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정의로운 대의를 말하는 86세대도 ‘헬조선’을 만든 공범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최씨는 “86세대는 정치적으로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를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를 나누고, 자신들을 항상 진보에 위치시킨다”며 20대가 보수적이어서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그는 “20대 남성은 거창한 이념에 사로잡힌 86세대보다 오히려 솔직하다”면서 “86세대에게서 도덕주의라는 외양을 걷어낸 자리엔 속물주의로 무장한 20대 남성의 얼굴이 있다”고 말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현역군인, 프로 성악가 못지않은 청춘들입니다.” 지난 주 서울 강남구의 한 합창연습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 60여 명 앞에서 선 지휘자 이판준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71)는 열정적인 몸짓으로 지휘봉을 휘둘렀다. 프로 합창단에 비해 가창력은 다소 서툴렀다. 그러나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빨간 마후~라!”라고 부르는 군가 합창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15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제4회 정기연주회를 앞둔 ‘대한민국 군가합창단’은 기업, 학계, 언론, 법조계 등 사회 각계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베테랑’으로 구성된 군가 합창모임이다. 홍두승 서울대 명예교수가 단장을 맡고 있으며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 정승조 전 합참의장, 김요환 전 육군참모총장, 박병일 한국갤럽 전무, 이용준 전 이탈리아 대사, 선상신 불교방송 사장 등 각계 인사 100여 명으로 구성됐다. 올해 공연에는 특별히 ‘전선을 간다’ 등 한국의 군가 외에도 ‘평화의 미사’ ‘라이언 일병 구하기’ ‘늙은 군인의 노래’ ‘애국 군인의 노래’ 등 외국의 군가, 찬가 등 다채로운 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학군장교 10기 출신인 이 교수는 “2015년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군가 부르는 모임 한번 해보자’라는 가벼운 제의로 이 모임이 발족됐다”고 말했다. 합창단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학군사관장교(ROTC), 국방부, 육군포병학교 또는 일반 사병으로 복무하며 군가에 대한 애정만 있다면 누구든 충분했다. 그는 “처음엔 합창을 어려워하던 회원들이 이제는 군부대 위문공연과 정기연주회까지 이어갈 수 있어 감격스럽다”고 했다. 합창단의 수준은 몇 년 사이 크게 발전했다. 이 교수는 “전문 음악인이 아닌 단원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일념을 갖고 노력했기에 합창단 수준이 높아졌다”며 “이제 들어줄 만한 정도는 된 것 같다”며 웃었다. 몇몇 단원은 주1회 연습은 물론 인터넷 보강, 자습도 병행했다고 한다. 그는 “홍두승 단장과 김태영 전 국방장관의 솔선수범으로 매년 화음이 풍요로워지고 있다”고 했다. 합창단은 이제 더 넓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올해 10월 6·25전쟁 참전국인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공연에 나선다. 그는 “6·25 전쟁이 잊혀가지만 참전국 각지에서는 아직 생존 노병과 참전용사를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린다”며 “더 늦기 전에 고마운 친구나라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나라사랑, 국민화합이라는 가치를 일깨우며 단원들은 끝없이, 뜨겁게 노래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전석초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자판 스페이스 바 1500번 누르기는 기본, 한 공연을 수십 번 ‘강제 관람’해요. 공연 중 화장실을 가면 안 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물도 마시지 않습니다. 너무 집중하느라 막이 내리는 순간 탈진해 버려요.” 해외 공연 팀이 내한하면 빠지지 않는 이들이 있다. ‘꼭’ 필요한 인원이지만 절대 무대에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관객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빛을 발한다.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이 무대 뒤 콘솔에서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는 이들. 바로 ‘자막 오퍼레이터’다. 일반 관객에게 이들의 직업은 낯설다. 흔히들 “자막은 자동으로 나오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실은 공연 자막은 영화와 달리 100% 사람이 현장에 띄우는 ‘수작업’이다. 라이브 공연은 언제나 돌발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공연계에서 자막 오퍼레이터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김미희(36) 여태민(30) 이호진(28) 부소정 씨(25)를 만났다. 그들의 작업은 공연 한 달 전부터 시작된다. 먼저 기본 원문과 번역 대본을 꼼꼼히 읽는다. 문장도 대략 파악해야 하지만, 전체 흐름도 숙지해야 한다. 미묘한 표현은 번역가와 논의하기도 한다. 그렇게 미리 자막 슬라이드를 만드는데, 영화처럼 긴 자막을 쓸 수 없어 두 줄 이내로 자른다. 그렇게 만든 슬라이드는 공연당 1300∼2000장에 이른다. 9일 개막을 앞둔 뮤지컬 ‘썸씽로튼’에 참여하는 여태민 씨는 “공연이 시작되면 귀로 영어를 듣고, 눈으로는 한글 자막에 집중하며 수천 장을 넘겨야 한다”며 “동시통역만큼은 아니라도 타이밍을 조율해야 해 느슨해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방투어를 따라다니며 수십 번 작품을 강제 관람하면 대사, 넘버를 다 외우는 수준이다.”(뮤지컬 ‘라이온 킹’의 이호진 씨) 자막 오퍼레이터에게 외국어 실력은 당연히 필수다. 뮤지컬 ‘플래시댄스’를 비롯해 2014년부터 대형 공연을 자주 맡은 김미희 씨는 “대사의 뉘앙스, 어감, 박자도 파악해야 수준 높은 오퍼레이팅이 가능하다”고 했다. 영어·프랑스어가 함께 사용된 연극 ‘887’의 부소정 씨는 “두 언어가 한글과 어순이 달라 대사에 맞게 슬라이드 순서를 잡는 게 관건”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뭣보다 대사 타이밍을 맞추는 ‘순발력’을 주요 덕목으로 꼽았다. 이호진 씨는 “웃음을 유발해야 하는 타이밍에 자막이 적절하게 나가지 않으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여태민 씨는 “배우가 입을 벌리거나 움직이는 시점 등 아주 작은 특징도 꼼꼼히 노트에 적어 놓는다”고 했다. 그렇게 준비해도 예기치 못한 상황은 벌어진다. 가끔 배우가 즉흥적으로 애드리브를 치거나 대사를 건너뛰기도 한다. 김미희 씨는 “재빨리 자막이 없는 ‘블랭크(검은색 슬라이드)’ 화면을 띄워 자막과 대사가 엇나가는 일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사랑한다고 입을 모았다. 공연에 대한 애정이 넘치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는 배우의 동작을 흉내 내고 노래도 따라 하면서 어둠 속에서 홀로 공연을 즐기는 또 다른 배우인 것 같아요.”(김미희) “‘자막 덕분에 작품 내용을 잘 이해했다’는 후기에 저도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부소정)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자판 스페이스 바 1500번 누르기는 기본, 한 공연을 수십 번 ‘강제 관람’해요. 공연 중 화장실을 가면 안 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물도 마시지 않습니다. 너무 집중하느라 막이 내리는 순간 탈진해버려요.” 해외 공연 팀이 내한하면 빠지지 않는 이들이 있다. ‘꼭’ 필요한 인원이지만 절대 무대에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관객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빛을 발한다.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이 무대 뒤 콘솔에서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는 이들. 바로 ‘자막 오퍼레이터’다. 일반 관객에게 이들의 직업은 낯설다. 흔히들 “자막은 자동으로 나오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실은 공연 자막은 영화와 달리 100% 사람이 현장에 띄우는 ‘수작업’이다. 라이브 공연은 언제나 돌발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공연계에서 자막 오퍼레이터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김미희(36) 이호진(32) 여태민(30) 부소정 씨(25)를 만났다. 그들의 작업은 공연 한 달 전부터 시작된다. 먼저 기본 원문과 번역 대본을 꼼꼼히 읽는다. 문장도 대략 파악해야 하지만, 전체 흐름도 숙지해야 한다. 미묘한 표현은 번역가와 논의하기도 한다. 그렇게 미리 자막 슬라이드를 만드는데, 영화처럼 긴 자막을 쓸 수 없어 두 줄 이내로 자른다. 그렇게 만든 슬라이드는 공연 당 1300~2000장에 이른다. 9일 개막을 앞둔 뮤지컬 ‘썸씽로튼’에 참여하는 여태민 씨는 “공연이 시작되면 귀로 영어를 듣고, 눈으로는 한글 자막에 집중하며 수천 장을 넘겨야 한다”며 “동시통역만큼은 아니라도 타이밍을 조율해야 해 느슨해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방투어를 따라다니며 수십 번 작품을 강제 관람하면 대사, 넘버를 다 외우는 수준이다.”(뮤지컬 ‘라이온킹’의 이호진 씨) 자막 오퍼레이터에 외국어 실력은 당연히 필수다. 뮤지컬 ‘플래시댄스’를 비롯해 2014년부터 대형공연을 자주 맡은 김미희 씨는 “대사의 뉘앙스, 어감, 박자도 파악해야 수준 높은 오퍼레이팅이 가능하다”고 했다. 영어·프랑스어가 함께 사용된 연극 ‘887’의 부소정 씨는 “두 언어가 한글과 어순이 달라 대사에 맞게 슬라이드 순서를 잡는 게 관건”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뭣보다 대사 타이밍을 맞추는 ‘순발력’을 주요 덕목으로 꼽았다. 이호진 씨는 “웃음을 유발해야 하는 타이밍에 자막이 적절하게 나가지 않으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여태민 씨는 “배우가 입을 벌리거나 움직이는 시점 등 아주 작은 특징도 꼼꼼히 노트에 적어 놓는다”고 했다. 그렇게 준비해도 예기치 못한 상황은 벌어진다. 가끔 배우가 즉흥적으로 애드리브를 치거나 대사를 건너뛰기도 한다. 김미희 씨는 “재빨리 자막이 없는 ‘블랭크(검은색 슬라이드)’ 화면을 띄워 자막과 대사가 엇나가는 일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사랑한다고 입을 모았다. 공연에 대한 애정이 넘치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는 배우의 동작을 흉내 내고 노래도 따라하면서 어둠 속에서 홀로 공연을 즐기는 또 다른 배우인 것 같아요.” (김미희) “‘자막 덕분에 작품 내용을 잘 이해했다’는 후기에 저도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부소정) 김기윤기자 pep@donga.com}

“‘한국이 사랑하는 작곡가’라는 말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20년간 꿈꿔 오던 뮤지컬 ‘엑스칼리버’를 위해 ‘지킬 앤 하이드’에 버금가는 스펙터클한 곡들을 가져왔어요.” 뮤지컬을 잘 모르는 이라도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은 서정적 멜로디에 감정을 토해내는 배우의 열창으로 대중적 노래가 됐다. 이 곡을 만든 프랭크 와일드혼(60)이 ‘엑스칼리버’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38개의 곡과 멜로디를 작곡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 ‘마타하리’ ‘드라큘라’ ‘몬테크리스토’ ‘데스노트’의 넘버도 작곡하며 한국에서의 흥행 신화를 써왔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3일 만난 그는 “‘엑스칼리버’는 제 아들이 ‘아서왕 신화’를 토대로 한 곡을 써달라고 계속 조르는 바람에 20년 전부터 꿈꿔 왔던 작품”이라며 “젊고 역동적인 한국 관객을 위해 100여 개의 곡 중 38개의 웅장한 멜로디를 엄선했다”고 했다. ‘엑스칼리버’는 색슨족의 침략에 맞서 혼란스러운 고대 영국을 지켜낸 신화 속 영웅 ‘아서왕’의 이야기다. 대규모 전투 장면, 압도적 규모의 무대, 변화무쌍한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와일드혼의 곡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많은 아서왕 신화를 다룬 작품을 접하며 영감을 떠올렸어요. 시대적 고증은 물론이고 무대 위 시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와 책을 보며 공부했죠.” 그의 곡들이 특히 한국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그는 한참 고민하더니 ‘번역가의 노력’과 ‘멜로디’라고 답했다. “제 곡의 감성을 한국 정서에 맞게 훌륭하게 번역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단순 직역이 아니라 음절, 운율, 상징성, 흐름까지 고려한 가사는 제가 들어도 좋더라고요. 곡을 만들 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멜로디’를 가장 중시하는데, 라흐마니노프부터 솔 넘치는 흑인음악까지 서정성을 강조한 것이 한국 관객에게 잘 와 닿는 것 같아요.” 그는 곡이 품은 감성을 잘 표현해내는 한국 배우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트리플 캐스팅’이라는 한국 뮤지컬만의 독특함에 대해 “아서왕을 맡은 배우 카이, 김준수, 도겸 모두 작품이 새롭게 해석되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이어 “‘드라큘라’를 함께한 김준수는 세계에서 공연되는 ‘드라큘라’의 트렌드를 바꿨을 정도로 작곡가에게도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배우”라고 했다. 한국에 대한 애정만큼 한국 뮤지컬계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국 뮤지컬계는 젊고 현대적이지만 역사가 짧아 특징적인 색이 부족하다”며 “한국 작곡가들이 대중가요부터 클래식, 오페라까지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아 다채로운 색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뮤지컬 작곡가의 숙명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작곡가는 본인만의 트렁크를 한 대씩 들고 다니며, 당장 곡이 쓰이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쌓아둬야 해요. 언제 제 곡이 ‘지금 이 순간’처럼 감동을 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죠?” ‘노루가 살던 개천’이란 아름다운 뜻의 녹천(鹿川)은 사실 죽은 물이다. 천 옆에는 인간의 배설물이 질펀하게 깔려 있고 공장 폐수가 흐른다. 주인공이 그토록 원했던 23평(약 76m²)짜리 아파트는 아이러니하게도 녹천 바로 옆에 있다. 무대 위에서 아파트와 녹천의 똥밭이 중첩되는 순간, 관객은 ‘어떻게 사는 게 맞느냐’고 자문한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이창동 영화감독의 1992년 단편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1980년대 안락하게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아파트 한 채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홍준식의 이야기다. 그토록 원하던 아파트에 입주한 그는 거실에 소박하게 수족관을 하나 들여놓고 싶다는 소원을 안고 산다. 그런 그의 아파트에 꿈과 이상, 순수함을 상징하는 이복동생 ‘강민우’가 찾아들며 그의 가정과 신념이 흔들린다. 시궁창 같은 녹천에 살면서도 ‘아파트’에 만족하던 준식과 그의 부인은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냐”며 울부짖고 혼돈스러워한다. 관객에게 끊임없이 ‘삶의 방향’에 대해 질문한다. 작품은 이에 대한 답을 쉽사리 내놓지 않는다. 모든 인물이 걸어온 길을 보여줌으로써 삶의 방향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데 작품의 매력이 있다. 과거 준식의 부모가 차비를 아끼기 위해 나이를 속이거나 자식에게 시킨 도둑질마저 긍정하는 장면은 비참함보다는 연민을 느끼게 한다. 신유청 연출가는 “가야 할 방향도 모른 채 길 위에서 고개를 숙여 한숨을 내쉬던 그들(부모 세대)을 떠올렸다”고 밝혔다. 파노라마처럼 가로로 길게 꾸며 한국의 근대를 조망하는 듯한 무대 구성이 돋보인다. 무대 안에서는 똥밭, 공사장, 아파트 거실의 경계를 불명확하게 설정해 혼란스러운 개인과 사회를 표현했다. 주요 배역과 함께 무대를 구성하는 ‘1인 다역’의 ‘소리들’ 배역이 이따금씩 등장해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지만 이마저도 삶의 가치를 놓고 혼란스러워하는 우리네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겠다. 8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Space111. 3만5000원. 14세 관람가.★★★☆(★ 5개 만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동아일보 사설, 칼럼을 통해 독해와 글쓰기 능력을 배우는 ‘독해가 쏙! 생각이 톡!’(동아일보사·1만8000원·사진)이 출간됐다. 최근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87편을 엄선했다. 책은 글의 주제에 따라 크게 6장으로 나뉜다. 글마다 사회적 배경과 시사점을 설명하는 ‘톺아보기’, 키워드와 주제를 다룬 ‘클릭, 핵심 단어 찾아보기’ ‘주장은… 바로 이것!’ 등 코너를 마련해 이해를 돕는다. 아울러 ‘쟁점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들’에서는 추가 쟁점을 소개하며 이슈를 폭넓게 이해하는 다양한 관점도 소개한다. 책은 고교생은 물론이고 취업을 준비하는 성인에게도 시사 현안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지난 2년, 우리 사회는 좀 더 평등해졌을까? 저자들은 한마디로 “‘평등’을 내걸고 출범한 현 정권에서 불공정, 불평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고 답한다. 제목이 ‘평등의 역습’인 이유다. 언론계, 학계, 정계 출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사회 전반에 걸친 정부 정책의 오류를 지적했다. 우려 섞인 조언도 담았다. 구성은 크게 전문가 좌담과 노동, 탈원전, 복지, 최저임금 등 세부 주제별 각론으로 나뉜다. 사회 전반의 문제를 고루 짚은 허심탄회한 좌담과 개별 사안에 대한 저자의 식견이 돋보인다. 현재의 오류를 통해 새롭게 배운다는 측면에서 이들은 책을 ‘실정(失政) 오답 노트’라 칭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출신으로 책의 대표 저자인 이동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명예총장은 정부가 평등, 공정, 정의라는 세 개념을 등치로 놓고 사회적 혼란을 조성한다고 봤다. 소득 양극화와 사회적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졌다는 것도 저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가 진단하는 ‘반기업 반재벌 정서’와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의 탈원전 정책 비판은 전문성을 더했다. 저자들은 조심스레 ‘다음’을 얘기한다. 다가올 총선, 대선에 앞서 보수 가치를 재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새로운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 이를 ‘신(新)평등’으로 명명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모던테이블, 고블린파티 등 5개 한국 현대무용단체의 작품 6편이 ‘코리안 댄스 페스티벌’을 통해 31일부터 6월 7일까지 영국 런던의 ‘더플레이스’에서 관객과 만난다. 작품 6편은 클래식과 현대무용을 결합해 한국만의 독특한 색채가 돋보이도록 구성했다. 이번 공연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센터스테이지코리아’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의 현대무용을 2022년까지 유럽에 소개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첫 기점으로 ‘유럽 댄스하우스 네트워크’의 일원이자 영국 현대무용의 허브로 손꼽히는 더플레이스를 선택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정은이 형에게 “노래방 값을 대신 낼 테니 강제수용소를 하나 폐쇄하라”고 말한다. 김정은은 소주 몇 잔을 삼킨 뒤 “내가 국민들을 노예처럼 부린다고 하지만 너희 세계에서는 너희와 다른 모두가 노예”라고 항변한다. 도발적인 설정으로 시작하는 극에서 세상은 발칙하고 유쾌하게 뒤집힌다. 누군가는 “황당무계한 발상”이라며 비판하지만, 극작가 박본(32·사진)은 “연극은 허구를 창조하는 일”이라며 “진지하고 무거운 사건에 공감한다면 이런 상상과 유머마저도 슬프게 다가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2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한국문학번역원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한국계 독일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박본은 동네 형 같은 김정은과 ‘정신 차린 트럼프’의 모습이 담긴 희곡 ‘으르렁대는 은하수’로 2017년 베를린 연극제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대학에서 극작을 공부한 그는 앞서 희곡 ‘젊은 2D 슈퍼마리오의 슬픔’ ‘슬픔과 멜랑콜리’ 등으로 혁신상, 신진 극작가상을 타기도 했다. 어린 시절 잠시 부산에서 살았던 그는 줄곧 독일에서 자랐다. 아시아인으로서 정체성이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의 이름 ‘본’은 독일어 ‘Bonn’으로 쓰이지만, 실은 뿌리 ‘本’자에서 따왔다. “독일에서는 어딜 가든 아시아인 외모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컸어요. 이민자 무리 안에서도 주류인 터키인과 구별되는 소수의 한국인이었죠. 독일 극단 안에서도 제 뿌리인 한국 관련 이야기를 기대하는 시각도 분명히 있거든요.”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을 찾는 그는 “앞으로 연출할 ‘독일’ 프로젝트에 이어 ‘한국(The Korea)’이라는 주제를 담은 극 작업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어 “연극 안에서 현실 정치나 사회를 바꾸기보다는 가상의 예술 공간 안에서 재밌고 짓궂은 세계를 창조하며 ‘친절하면서 못된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국내 최대 연극축제인 ‘대한민국 연극제’가 다음 달 1일부터 연극의 메카인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다. 1983년 지방 연극의 활성화를 위해 시작된 이 연극제는 2016년부터 서울지회가 참여하며 대한민국 연극제로 탈바꿈했으며, 36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다. ‘연극은 오늘, 오늘은 연극이다’라는 주제로 전국 예선에 참여한 총 132개 팀 가운데 경연작 16편이 선정됐다. 대구 극단 ‘온누리’의 ‘외출’을 시작으로 광주, 충남, 서울 등에서 참가한 극단의 공연을 소개한다. 아울러 일본, 카자흐스탄 등 해외 극단의 작품도 선보인다. 오태근 대한민국연극제 집행위원장은 “연극제가 블랙리스트와 미투 등으로 침체한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출발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6월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일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도권의 꿈은 현실이 된다.’ 2001년 한국 뮤지컬 산업의 터닝포인트가 된 ‘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해 ‘위키드’ ‘캣츠’ 그리고 최근 막을 내린 ‘라이온 킹’까지. 굵직굵직한 해외 뮤지컬이 국내 관객과 만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설도권 클립서비스 대표(56)에게서 나왔다. 그는 친형인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60)와 함께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 브로드웨이, 영국 웨스트엔드의 제작진을 만났다. 한국행을 망설이던 이들도 결국 한국 공연을 결심했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오리지널 내한공연의 꿈도 이들의 손에서 현실이 됐다. 서울 강남구 클립서비스 사옥에서 22일 만난 설도권 대표는 “약 20년 전 뮤지컬계에 입문하며 좋은 공연을 소개하고, 공연시장 성장에 기여하길 꿈꿨다”며 “공연장과 점차 멀어지는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까지 모두를 사로잡는 공연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가 오랜 시간 품던 꿈 중 하나는 최근 또 하나의 현실이 됐다. 부산에 뮤지컬 전용극장인 ‘드림씨어터’가 들어선 것. 마음껏 공연할 수 있는 공연장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공연계는 크게 반겼다. 최근 드림씨어터를 방문한 설 대표는 “일본에서 백팩을 메고 공연을 보러 온 손님이 ‘공연장이 좋아 다음 공연도 기대된다’는 말을 했다. 20년간 꿈꿔 온 공간에 대해 인정받는 것 같아 감격스러웠다. 기억에 남는 공연 한 편이 누군가의 인생에 큰 추억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쯤 되면 만족할 법도 하다’는 생각은 오해였다. 그는 ‘공연 얼리어답터 5만 명’이라는 구체적인 꿈을 꾸고 있었다. “좋은 신작을 빠짐없이 챙겨 보는 ‘공연 얼리어답터’는 현재 5000명 이하로 추산돼요. 마니아층을 빼더라도 순수하게 초연을 선택하는 관객층이 5만 명이 될 정도로 시장을 키우고 싶어요. 공연이 문화생활이 아니라 생활문화의 한 코드가 돼야겠죠.” ‘오페라의 유령’으로 유명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신작 ‘스쿨 오브 락’ 역시 그의 노력 끝에 다음 달 7일부터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관객과 만난다. 그는 수준 높은 해외 뮤지컬을 소개하는 일이 전체 공연시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봤다. “작품이 ‘별로’라고 비판하고, 지독하게 낮은 평점을 줘도 괜찮아요. 관객이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작품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아티스트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한국 공연의 수준도 높아질 거라 확신합니다. 지금도 가져오고 싶은 작품에는 끝이 없는걸요. 하하.” 6월 7일∼8월 25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6만∼16만 원. 8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저는 e메일 보내는 것조차 서툴 정도로 과학기술에 무지한 사람입니다. 다만 연극무대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늘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을 뿐이죠.” 공연 때마다 ‘르파주 열풍’을 불러일으킨 로베르 르파주(62)가 배우이자 연출로 참여한 연극 ‘887’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태양의 서커스 ‘카(KA)’,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에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이미지, 영상, 무대장치를 폭넓게 활용하며 ‘현대 연극의 혁신가’로 평가받는다. ‘기계 장치’라는 뜻의 창작집단 ‘엑스 마키나’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27일 서울 중구 주한 캐나다대사관에서 만난 그는 과학기술을 연구해 혁신적으로 무대에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묻자 뜻밖의 답을 내놨다. “놀라시겠지만 저는 따로 과학기술을 공부해 본 적이 없어요, 하하. 다만 젊은 제작진들과 새로 나온 기술, 애플리케이션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면서 신기술을 무대로 가져올 방법을 고민할 뿐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르파주는 머릿속 기억을 끄집어내듯 디테일한 장치로 무대를 꾸몄다. 그는 “시시각각 변하고 움직이는 무대 위의 아파트, 뇌의 이미지, 옛날 사진, 그림자 효과 등을 사용했다”며 “특히 미니어처를 활용한 고급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단순한 인형극처럼 보이도록 만든 점이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개인의 기억에서 비롯된 사회적 기억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극은 르파주가 캐나다 퀘벡에서 열리는 ‘시의 밤’ 40주년 행사에 초청받아 시를 낭송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3쪽 분량의 시가 외워지지 않자 그는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익숙한 장소에 외워야 할 내용을 배치해 재조합하는 기억법을 활용한다. 극의 제목 ‘887’은 그가 살던 ‘퀘벡 시티 머리가 887번지’에서 따왔다. 시를 외우면서 그는 자연스레 1960, 70년대 가족과 이웃에 관한 기억을 떠올린다. 자전적 이야기는 사회적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간다. 르파주는 “현재 기억에 비해 또렷한 어린시절의 이야기(history)에서 시작해 대문자 ‘H’로 시작하는 캐나다의 역사(History)까지 짚고 싶었다”며 “계급적 갈등과 마찰이 끊이지 않았던 캐나다 퀘벡의 아픈 모습을 극에 담았다”고 덧붙였다. 작품은 한국과 무관한 이역만리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는 “잘못을 잊고 기억을 잊은 듯 살아가는 이 시대의 한국, 세계 관객에게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르파주는 연극이 당면한 위기에 대해서도 말했다. 넷플릭스 등 새로운 매체에 맞서 연극이 살아 있는 예술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무용, 춤, 음악, 문학 등 여러 예술 형태를 품고 있는 연극은 ‘모태 예술(Mother Art)’로서 타 장르처럼 다채로운 스토리텔링을 고민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집에서 쉽게 보는 넷플릭스와 비교해 차별화하려면 연극은 삶을 송두리째 바꿀 경험을 제공해야겠죠.” 29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4만∼8만 원. 8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팀 쿡의 애플이 죽은 스티브 잡스의 애플을 능가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본 비평가들의 분석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뒤 애플은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시장 지배력은 더욱 강화됐다.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애플을 지켜본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와이어드닷컴’의 편집장이 팀 쿡의 경영철학, 성격, 성소수자로서의 삶 그리고 최고경영자(CEO)가 된 뒷이야기를 책에 녹여냈다. 생생한 팀 쿡의 발언과 주변인 취재를 묶어 애플의 속살을 들려준다. 저자는 책 전반에서 세상이 아직도 조용한 천재인 팀 쿡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애플이 팀 쿡 덕분에 혁신의 아이콘을 넘어 모범적 기업으로 탈바꿈했는데도 말이다. 팀 쿡이 묻는다. “잡스가 과연 애플을 맡길 후임자를 즉흥적으로 골랐을까요?”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비포장도로를 오가며 사목(司牧)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할 얘기가 끝이 없네요….” 23일 경북 안동교구청에서 만난 두봉(杜峰·본명 르네 뒤퐁·90) 주교는 천주교 안동교구 설정 50년을 뒤돌아보며 감회에 젖었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초대 안동교구장을 지냈다. 이날 함께 만난 권혁주 안동교구장(64)은 “신학생 때 처음 뵈었던 두봉 주교님이 맡았던 교구를 이어받아 함께 축하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안동교구는 두봉 주교에 이어 1990년 박석희 2대 교구장이 임명된 뒤 2001년부터 권 주교가 책임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를 거쳐 1954년 처음 한국에 온 두봉 주교는 “교황청으로부터 ‘한국의 안동교구를 맡아 달라’는 지시를 듣고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친한 프랑스 친구 중 한 명이 6·25전쟁에서 전사해 한국은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봉 주교는 부임 후 줄곧 ‘지역사회를 도와 함께 성장하는 천주교’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 뜻은 지금도 이어져 안동교구청은 ‘농촌사목’의 대명사가 됐다. 교구의 사정이 열악할수록 두봉 주교는 지역사회와 더욱 밀착했다. 안동이 유림의 본고장인 만큼 유학자들과 자주 교류했다. 직접 만나 보니 유림들은 예상보다 통하는 점이 많았다고 한다. “솔직히 유교는 시대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유림들을 만나 보니 정말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살고 있더군요. 천주교와 맞닿아있는 지점이 많다고 느꼈죠. 다른 종교를 ‘타 종교’가 아닌 ‘이웃 종교’로 보는 바티칸의 정신과도 일치한다는 걸 새삼 확인했습니다.”(두봉 주교) 국내 16개 교구 중 가장 작은 교구를 꾸려온 만큼 고초도 많았다. 농촌사목은 곧 ‘가난한 교구’를 의미했다. 권 주교는 “신자는 5만여 명으로 늘어났지만 관할지역 인구가 178만 명에서 71만 명으로 줄었고, 본당의 수는 40개에서 17개로 줄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정치적 탄압을 받기도 했다. 1978년 농민들이 정부의 농업 정책에 반발할 때 두봉 주교도 집회에 참가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추방명령을 받았지만 당시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의 중재로 안동에 남을 수 있었다. 그는 “어려운 농민들을 위해 나섰기 때문에 천주교가 ‘믿을 만한 종교’라는 평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지역사회에서 얻은 신임은 ‘가난하지만 함께 나누는 신앙’으로 발전했다. 권 주교는 “가난은 함께 견디고 나누는 신앙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기쁘고 떳떳하게’라는 교구의 사목 표어는 안동교구의 정신을 담고 있다. “표어는 신앙인이 누리는 기쁨과 희망, 양심을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 기쁘고 떳떳하게 삽시다!”(권 주교)안동=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뮤지컬 무대에서는 ‘가수 남태현’의 모습을 지우려고 해요.” 소설 ‘파우스트’를 각색한 체코 뮤지컬 ‘메피스토’에서 악마 ‘메피스토’ 역을 맡은 남태현(25)은 가수의 색을 벗고 악마의 색을 입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아이돌 가수로 저를 좋아하던 팬이든 저를 전혀 모르는 관객이든 누가 보더라도 뮤지컬 배우로서 악마 같은 모습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그는 긴 여정을 거쳤다. 대형 기획사 연습생으로 대중에게 첫 모습을 드러낸 뒤 인기 아이돌로 데뷔했다. 이후 하고 싶은 음악을 위해 직접 밴드를 결성했다. 매력적 음색을 가진 보컬로 활약하며 곡, 가사도 썼다. ‘뮤지션’ 자격으로 TV 예능, 경연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가창력을 뽐내고 있다. 그런 그도 뮤지컬 제의를 받았을 때 첫 반응은 “못 할 것 같다”였다. 새로운 장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뮤지컬 ‘헤드윅’을 보고 언젠가는 도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의를 받으니 제 발성이 뮤지컬과도 맞지 않을 것 같았고 연기도 하려니 부담스러웠죠.” 고민 끝에 그는 결국 도전을 택했다. 매력이 넘치는 ‘메피스토’ 배역 때문이었다. 남태현은 “첫 장면부터 강한 독백을 내뱉는 메피스토는 인간의 선함을 전면 부정하는 캐릭터”라며 “영화 다크나이트 속 ‘조커’, 만화 데스노트의 ‘류크’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다행히 연습을 반복하면서 뮤지컬 무대만이 갖는 뜨거움을 느꼈고 두려움도 자연스레 줄었다. 동료, 선배들과의 각별한 ‘케미’도 그의 첫 무대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는 “상대역 ‘파우스트’를 맡은 신성우, 김법래, 문종원 배우 같은 대선배들이 연습 때마다 상세하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시기에 절정의 호흡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뮤지컬 업계에서는 ‘연예인, 아이돌은 단순히 마케팅용’이라는 비판도 있다. 남태현 역시 이런 꼬리표를 잘 안다. 각오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두렵기도 하지만 제 딴에는 정말 이 무대에 모든 걸 걸었습니다.” 25일부터 7월 28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6만∼14만 원.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