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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페미(페미니스트) 대통령은 당장 응답하라!” ‘몰래카메라(몰카)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여성들이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고 나섰다. 7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이화사거리에서 지하철 혜화역까지 약 1km에 걸친 4차로 도로 위에 여성들이 모였다. 주최 측은 오후 6시경 참가자가 약 6만 명까지 늘어났다고 밝혔다. 주최 측 추산으로 1차 집회(약 2만 명), 2차 집회(약 4만5000명) 때보다 많다. 이 추산대로면 여성을 주제로 한 단일 시위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다만 경찰은 3차 집회 참가자를 1만9000여 명으로 추산해 차이를 보였다. 여성들은 분노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고서 “남성 가해자 옹호 말고 구속하라”, “여성 경찰청장 임명하라” 등을 요구했다. 특히 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앞서 문 대통령이 3일 국무회의에서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에 대해 “편파수사라는 말은 맞지 않다”고 발언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주최 측은 성명을 통해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 유세를 펼쳐 우리의 표를 가져간 ‘남(男)대통령’은 경솔한 발언을 사과하라”고 비판했다. 일부 참가자와 남성들 사이에 욕설과 막말이 오가는 등 마찰을 빚는 모습도 보였다. 집회에 반대하는 남성들이 경찰과 잠시 대치하기도 했다. 또 개인방송 진행자로 보이는 일부 남성이 현장을 촬영하다 참가자의 비난이 쏟아지자 현장을 떠났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자칭 페미(페미니스트) 대통령은 당장 응답하라!” ‘몰래카메라(몰카) 성차별 수사’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이번에는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고 나섰다. 7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이화사거리에서 지하철 혜화역까지 약 1㎞에 걸친 4차로 도로 위에 2만 명에 가까운 여성들이 모였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29.2도였지만 구름도 별로 없어 체감온도 30도를 웃돌았다. 그러나 1차 집회(약 1만 명), 2차 집회(약 1만5000명) 때보다 훨씬 많은 1만9000여 명(경찰추산)이 참가했다. 여성들은 분노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고서 “남성 가해자 옹호 말고 구속하라”, “경찰 고위직에 여성 임명하라” 등을 요구했다. 이번 집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앞서 문 대통령이 3일 국무회의에서 홍대 누드모델 사건에 대해 “편파수사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집회 주최 측은 성명서를 통해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 유세를 펼쳐 우리의 표를 가져간 ‘남(男)대통령’ 문재인은 경솔한 발언에 사과하라”라며 비판했다. 또 곳곳에서 집회 참가자와 남성 행인 사이에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부 참가자가 지나던 남성을 향해 욕설이나 혐오성 발언을 했다가 해당 남성이 거세게 항의해 충돌이 예상되자 경찰이 나서서 말렸다. 반대로 일부 남성이 집회 현장을 촬영하다 참가자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급하게 현장을 떠났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덫을 놓은 사냥꾼.’ 2일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의 1차 공판 때 검찰은 안 전 지사를 이렇게 비유했다. 하지만 검찰은 하루 만에 공식 사과했다. 검찰이 재판 중 검사의 발언을 놓고 사과한 건 이례적이다. 서울서부지검(지검장 이동열)은 3일 “안 전 지사 재판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비법률적 용어를 사용해 관계자들에게 상처를 드렸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검찰은 전날 재판에서 안 전 지사가 수행비서 김지은 씨(33)에게 숙소로 맥주를 가져오라고 지시한 상황을 설명하며 “피고인이 덫을 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상황을 연출하고 위력으로 피해자를 간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의 이날 사과 표명은 지휘부의 자체 결정으로 이뤄졌다. 이동열 지검장(52·사법연수원 22기)은 담당 검사들에게 “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재판에 임하라”는 취지로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표현이 다소 거칠었다. 전후 맥락을 모른 채 그 표현만 들으면 오해의 소지가 있어 사과를 결정했다”고 말했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와 그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수행비서 김지은 씨(33)가 2일 같은 법정에 앉았다. 김 씨가 3월 5일 방송에 출연해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를 한 지 119일 만이다. 피고인석의 안 전 지사와 방청석 맨 앞줄 김 씨 간 거리는 4m. 하지만 두 사람은 재판이 진행되는 2시간 내내 한 차례도 상대편을 쳐다보지 않았다. 김 씨는 정면의 재판부를 응시하다 고개를 숙여 재판 내용을 메모했고, 안 전 지사는 눈을 감거나 책상을 내려다봤다. 이날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 심리로 열린 안 전 지사의 첫 공판에서 검찰은 그가 저질렀다는 성폭행 범죄의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하면서 그를 ‘덫을 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사냥꾼’에 비유했다. 또 김 씨가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주장하는 안 전 지사를 비판하며 ‘권력형 성범죄자가 보이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즘적 태도’라고 했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김 씨를 4차례 성폭행하고 6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안 전 지사는 검사가 공소사실을 낭독하는 동안 착잡한 듯 안경을 벗고 두 눈을 감았다. 검찰에 따르면 안 전 지사는 맥주나 담배 심부름 명목으로 김 씨를 부른 뒤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를 받고 있다. 러시아, 스위스 출장지와 서울에서 김 씨를 호텔방으로 불러 “나를 안게” 등의 말을 하며 성관계를 요구했고, 김 씨는 응하지 않거나 여러 번 거절의사를 나타냈지만 안 전 지사는 강제로 김 씨의 몸을 만지며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안 전 지사는 KTX 내부나 관용 차량 등에서도 김 씨의 동의 없이 입을 맞추거나 은밀한 신체 부위를 만진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안 전 지사가 수행비서 신분이었던 김 씨를 자신의 숙소로 불러들인 행위가 “사실상 덫을 놓고 먹이를 기다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또 김 씨가 자신의 직속상관이자 차기 대권주자인 안 전 지사에게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을의 처지’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 매뉴얼’을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 매뉴얼에는 ‘(수행비서가) 항상 담배, 라이터 등을 소지해야 하고 화장실에 가거나 목욕을 할 때도 휴대전화를 비닐로 싸서 소지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안 전 지사 측은 김 씨와의 성관계 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강제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는 종전 입장을 고수했다. 안 전 지사 측은 “차기 대선 후보라는 지위가 위력이 될 수는 없다”며 “피해자는 무보수로 대선 캠프에 들어온 스마트한 여성인데 이런 주체적인 여성에게 어떻게 위력을 행사하고 수차례 성폭력을 지속할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김 씨와 성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위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외국 판례 등을 검토하고 전문가를 외부 위원으로 지정해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에 대한 2차 공판은 6일 비공개로 열린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그동안 경찰은 대부분의 형사사건을 수사하면서도 검사의 수사를 돕는 보조자로 간주되어 왔다. 정부가 21일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은 경찰을 명실상부한 수사의 주체로 인정하고 있다. 경찰이 모든 사건에 대한 1차 수사를 맡고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경우 수사를 자체 종결할 수 있도록 해 자율과 책임을 부여한 것이다. 경찰의 수사권 남용 등 부작용에 대비해 검찰의 사후 통제 장치도 함께 보강됐다.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 합의안을 발표하며 “검경이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상호 협력하며 견제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찰, 수사 시작부터 끝까지 맡는다 지난해 12월 A 씨는 수년간 자신을 성폭행한 혐의로 60대 남성 B 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서울의 한 경찰서에 사건을 내려보냈다. 경찰은 지휘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수사기록을 검토한 검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도록 지휘했다. 그러나 경찰은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검찰 지휘에 불복하고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정부 합의안이 적용되면 이 같은 검경의 엇박자는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검찰의 사건 접수는 가능하다. 하지만 경찰에 넘긴 뒤 지휘는 불가능하다. 1차적 수사권은 전적으로 경찰이 행사한다. 고소인과 피고소인 조사, 증거 확보 등 모든 수사를 경찰이 맡는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결론까지 내린다. 검찰이 수사에 개입할 수 있다. 경찰이 B 씨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구속영장을 신청했을 때, 수사 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을 때다. 검찰은 기소 여부를 판단하거나 영장 청구에 필요할 경우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해당 경찰의 직무 배제와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물론 송치 후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검찰은 2차 수사를 할 수 있다.경찰은 수사 결과 혐의가 없다고 판단되면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도 있다. 그때는 검찰에 사건자료 사본 등을 보내면 된다. 경찰의 결정이 위법하거나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검찰은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특수 사건’의 경우 검찰과 경찰 모두 1차 수사가 가능하다. 뇌물과 정치자금 직권남용 같은 부패 범죄, 사기 또는 횡령 같은 경제 범죄, 금융·증권 범죄와 선거 범죄 등이다. 양측이 동시에 수사에 착수한 경우 검찰이 우선권을 갖는다.○ 검경 간 ‘상호 견제’에 무게 정부 합의안대로면 경찰 권한이 강해지는 건 분명하다. 합의안에 여러 견제장치가 포함된 이유다. 경찰 수사에서 인권 침해나 권한 남용이 의심되면 검찰은 사건기록 송부와 시정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경찰 수사가 종결되면 반드시 사건 당사자에게 결과를 알려야 한다. 결과에 불복하면 경찰서장 등에게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망 사건 발생 시 경찰이 ‘사망자의 실수’를 이유로 수사를 종결했다면 유가족이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사건은 즉각 검찰로 송치된다. 이번 합의안에 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에 대한 조정은 포함되지 않았다. 헌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내용이 추가됐다.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찰이 정당한 이유 없이 청구하지 않으면 고등검찰청 산하 영장심의위원회(가칭)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최근 경찰이 황창규 KT 회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기각했는데 이 경우에도 경찰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스폰서·수사 무마 청탁’ 비리로 논란이 됐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 수사 당시 검찰은 계좌 추적 영장 신청을 기각하면서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것을 지시해 논란이 일었다. 이런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막기 위해 정부 합의안에는 검사 또는 검찰 직원의 범죄 혐의로 경찰이 각종 영장을 신청할 경우 지체 없이 이를 법원에 청구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을 일반경찰과 수사경찰로 분리한 것도 경찰 권한이 비대해지는 걸 막기 위한 것이다. 정부 합의안에 따르면 경찰청 산하 국가수사본부(가칭)가 사건 수사를 맡는다. 경찰청은 행정 업무에 대해서는 지휘를 할 수 있으나 수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지휘를 할 수 없도록 했다. 수사권 조정과 함께 지방경찰이 생활안전과 교통 등을 맡는 자치경찰제도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내년 중 서울과 세종 제주에서 시범실시하고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권기범 kaki@donga.com·김은지 기자}
검찰과 경찰은 21일 검경 수사권 조정 정부 합의안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경찰은 공식 입장을 통해 “수사·기소 분리의 사법 민주화 원리가 작동하는 선진 수사구조로 변화하는 데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환영하며 표정 관리에 나섰다. 반면 검찰은 내부적으로 불만이 들끓었다.○ 검사들 “누더기 합의안” 강력 반발 서울지역 검찰청의 부장검사는 “경찰이 통상 무혐의로 불기소 의견을 내는 경우가 40%였던 만큼 앞으로 40% 사건은 경찰이 결정하는 상황이 됐다”며 “경찰이 사법기관이 된 것 아니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부장검사는 “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새로운 혐의가 드러나게 마련인데, 검찰이 수사할 수 없는 혐의가 나오면 그것만 떼어내 경찰에 보내줘야 되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정부 합의안이 구체적이지 않아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한 평검사는 “경찰이 보완수사 요구를 거부할 경우 검찰이 직무배제나 징계 요구를 하더라도 경찰이 안 들어주면 그만”이라며 “조정안에는 실효성을 보장할 구체적인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검사들은 합의안 곳곳에 구멍이 많아 국회에서 대폭 손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경찰이 검사나 검찰청 직원의 범죄 혐의에 대해 적법한 압수수색·체포·구속영장을 신청하면 검찰은 지체 없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합의문 내용에 대해 검찰에서는 “영장 청구 요건을 따져야 되는데 검사나 검찰청 직원에 대한 영장이라는 이유로 ‘지체 없이’ 청구하는 것은 반헌법적이다”라는 비판이 나왔다. 또 이날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박철환 부산지검 형사1부장이 “합의안 도출 과정에서 의견 수렴 과정이 부족했다”는 글을 올리자 법무부 검찰국의 한 검사는 “나도 합의안을 한 번도 못 봤다”는 댓글을 달았다가 지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후 문무일 검찰총장은 퇴근길에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국가가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성숙됐다. 그만큼 문명국가다운 형사사법체계를 새로이 구축해야 한다”고 합의안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일선 경찰 “선물 보따리 받은 것 같다” 경찰은 이번 합의안을 “견제 균형을 토대로 한 수사제도로의 전환”이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수직적 관계였던 검찰과 경찰이 명목상의 협력 관계로 규정된 데 대해 일선 경찰관들은 “선물 보따리를 받은 것 같다”는 반응이다. 그러면서도 경찰은 영장청구권이 빠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경찰청 수사 관계자는 “수사 지휘를 폐지한다고 했지만 지금도 검사에게 수사 지시를 받는 건 영장 신청 단계에서뿐”이라고 말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김은지 기자}

《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용기를 내면 끝날 줄 알았다.’ 성폭력 피해를 본 여성들이 고심 끝에 ‘미투(#MeToo·나도 당했다)’를 선택한 이유다. 시간이 걸려도 언젠가 끝이 보일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19일 ‘전국 미투 생존자 연대’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 40명 가운데 원래 직장에 돌아간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일자리를 잃은 채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며 끝없는 법정 투쟁에 매달리고 있었다. 미투 이후에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 이은서(가명·28·여) 씨에게 직장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1년 6개월 동안 이어진 직장 상사의 성희롱 탓이다. 그는 업무를 가르쳐준다며 다가와 이 씨의 팔과 어깨 등을 만졌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어느 날에는 “단둘이 출장 가자”고 제안했다. 견디다 못한 이 씨는 올 4월 사내 고충처리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이슈가 한창일 때다. 이 씨는 자신의 문제도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기대가 깨진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미투 이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는 인사 발령을 냈다. 대상은 가해자가 아니라 이 씨였다. 하던 일과 관련 없는 엉뚱한 부서였다. ‘회사를 나가라’는 뜻이었다. 이달 초 이 씨는 회사에 병가를 냈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저축한 돈이 많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가해자 고소를 위해 알아본 변호사 선임비용만 1000만 원이 넘었다. 재취업을 하고 싶어도 자신의 미투가 걸림돌이 될까 봐 무섭다. 올 3월 ‘전국 미투 생존자 연대’가 발족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를 돕기 위해 결성된 모임이다. 현재 참여 중인 피해자는 약 40명. 평범한 회사원과 공공기관 직원, 프리랜서나 계약직 근로자 등 다양하다. 그러나 미투 이후 다니던 직장으로 돌아가거나 같은 일을 다시 맡은 사람은 19일까지 한 명에 그쳤다. 나머지는 폭로 후 다니던 직장에서 휴직하거나 사실상 반강제로 퇴직했다. 한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에서 일하던 30대 여성 A 씨는 1년 넘게 복직하지 못했다. 그는 상사의 성희롱을 견디다 못해 지난해 휴직했다. 2015년 5월 상사의 성희롱을 내부에 알린 뒤 아무 조치가 없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조치를 권고했다. 해당 기관은 A 씨를 독방에 혼자 근무하게 했다. A 씨에게는 ‘고문’처럼 느껴졌다. 다른 상사나 동료들의 시선도 따가웠다. 그렇게 2년 가까이 버티다가 결국 휴직을 선택했다.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는 최소한의 선택권도 갖지 못한다. 한 공공기관에서 파견계약직으로 일하던 채희정(가명·35·여) 씨는 2014년 회식 자리에서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그는 정규직이었다. 채 씨는 상사를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 한 달 뒤 회사는 채 씨에게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2년 계약이 보통이지만 채 씨는 1년 만에 쫓겨났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피해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심리치료비와 소송비까지 마련해야 한다. 보통 성범죄 피해자 한 명이 상담센터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치료를 받는 비용은 회당 5만∼20만 원. 성폭력 가해자를 고소한 구은영(가명·33·여) 씨도 2년 넘게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고 있다. 2주에 한 번 다니는데 한 달에 약 10만 원이 든다. 그는 법원과 변호사 사무실을 오가느라 재취업도 못 했다.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와 치료비를 마련하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소송비용이다. 만약 가해자가 무고나 명예훼손 등으로 맞고소할 경우 변호인 선임비용은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필요하다. ○ 법과 제도 모두 그들을 외면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장치는 제법 갖춰져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이런 장치를 활용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고소 후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형사합의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합의금을 쉽게 요구하지 못한다. 가해자가 흔히 내세우는 ‘꽃뱀’ 주장 탓이다. 형사배상명령은 법원에 신청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별도의 민사소송 없이 형사재판 선고와 함께 배상을 받게끔 하는 제도다. 그러나 실제 배상액은 매우 적다. 배상이 각하되는 경우가 흔하다. ‘온전한 피해 보상’과 거리가 멀다 보니 피해자도 외면하고 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막대한 비용과 패소 부담 탓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성범죄 손해배상액은 보통 100만∼500만 원에서 결정된다. 피해자가 입은 실제 손해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공무원 박모 씨(36·여)는 유죄가 확정된 성추행 가해자를 상대로 2016년 22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에서 인정된 건 100만 원에 불과했다. 도리어 가해자 측 소송비용 300만 원가량을 물어줬다. ‘마이너스 200만 원’ 판결인 셈이다. 형사고소 후에는 법무부 산하 검찰청 피해자지원실을 통해 치료비나 긴급생계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소가 확정돼야 지급이 가능하다. 피해 입증도 쉽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사실 입증이 비교적 명확한 강간 피해자와 달리 추행 피해자들은 이런 지원 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김은지 eunji@donga.com·최지선 기자}
중국산 참조기를 국산 영광굴비로 속여 팔아 수백억 원을 챙긴 일당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조사부(부장검사 이준엽)는 중국산 참조기 약 5000t을 전남 영광산 굴비로 속여 판매한 혐의(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위반)로 유통업자 박모 씨(60·구속 기소) 등 15개 업체 관계자 17명을 기소했다고 18일 밝혔다. 영광굴비는 일반적으로 전남 영광군 칠산바다에서 잡힌 조기를 말린 것이다. 국산 수산물의 원산지는 지역 표기 없이 ‘국산’이라고 표기하는데, 이들은 중국산 참조기를 국산으로 둔갑시킨 뒤 영광굴비라고 속여 판매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가짜 영광굴비’를 소비자 가격 기준 650억 원어치 이상 판매했다. 가짜 굴비의 절반 이상을 판매한 A 업체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약 9년 간 가짜 굴비를 팔았지만 적발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중국산 참조기 수입량이 연간 2만7000t인 걸 감안하면 수사로 밝혀진 물량 외 추가 물량도 영광굴비로 둔갑돼 유통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은지기자 eunji@donga.com}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한민국의 첫 경기가 열리는 18일 전국 곳곳에서 거리 응원이 펼쳐진다. 17일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서울에서는 종로구 광화문광장, 중구 서울광장, 강남구 영동대로(봉은사역∼삼성역)에서 거리 응원이 진행된다. 광화문광장에는 500인치와 250인치 등 대형 스크린 3대가 설치된다. 경기 3시간 전인 오후 6시부터 옛 월드컵 하이라이트와 응원가 뮤직비디오 상영 등으로 분위기를 달군다. 영동대로에서는 경기 전 YB(윤도현밴드)와 EXID 등 인기 가수의 승리 기원 공연이 열린다. 거리 응원으로 인해 서울시내 일부 구간의 교통 통제가 이뤄진다. 영동대로는 봉은사역 사거리에서 삼성역 사거리까지 하행 방향 7차로가 전면 통제된다. 18일 0시부터 19일 오전 8시까지다. 광화문광장의 경우 행사 진행을 위해 18일 오전부터 행사 종료 때까지 광화문 앞에서 세종대로 사거리를 잇는 1차로가 통제된다. 응원 인파가 늘어나면 통제구간이 길어질 수 있다. 이날 부산 연제구 아시아드주경기장을 비롯해 광주 서구 월드컵경기장, 경기 고양시 일산 문화광장 등 전국 30곳 안팎에서 대규모 거리 응원이 펼쳐질 예정이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연세대 총여학생회가 3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학생인권위원회(가칭)로 이름을 바꿔 모든 학부생 인권 증진을 위한 기구로 개편할 예정이다. 17일 연세대에 따르면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총여학생회 재개편 요구의 안’을 놓고 13∼15일 학생 총투표를 치렀다. 학부생 2만5896명 가운데 1만4285명(55.2%)이 투표해 1만1768명(82.2%)이 찬성했다. 이 중 여학생은 3116명(투표자 5017명)이었다. 재개편 요구안은 총여학생회 명칭을 학생인권위원회로 바꾸고 구성원과 투표권자를 여학생에서 전체 학부생으로 확대하도록 했다. 여학생 자치기구라는 의미의 총여학생회는 사실상 폐지될 처지에 놓인 셈이다. 개편의 발단은 급진적 페미니스트 은하선 씨(30)의 지난달 교내 강연이었다. 학생 1300여 명이 은 씨의 과거 발언을 들어 너무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라며 ‘강연 반대’ 서명을 했다. 총여학생회는 강연을 강행했다. 그러자 학생들 사이에서 “총여학생회가 독단적이다”라는 지적이 거셌고 이는 재개편 요구 총투표로 이어졌다. 연세대 총여학생회 부회장 이수빈 씨는 “총여학생회 개편 논의가 불거진 데 책임을 통감한다. 충실히 논의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연세대 말고 서울 시내 주요 대학 가운데 총여학생회가 남아 있는 대학은 한양대 경희대 동국대 정도다. 그러나 경희대는 총여학생회장 후보자가 없어 비대위 체제이며, 한양대는 후보자 일부 공약에 문제가 있어 올 3월 선거가 치러지지도 못하고 무산됐다. 대학 총여학생회가 사실상 소멸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팀점’ 보이콧 선언했어요.” 직장인 김성경(가명·34) 씨는 12일 후련하다는 듯 말했다. ‘팀점’은 같은 팀 동료들과 함께하는 점심을 말한다. 김 씨가 일하는 회사에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점심 때 팀장과 직원이 함께 식사하는 게 관례처럼 내려왔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 씨가 동료 2명과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며칠 전 회사가 내린 비(非)근로시간 자율 보장 지침이었다. 다음 달 1일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로에 대비한 조치다. 김 씨는 “팀점을 하면 상사 잔소리 듣느라 괴로웠다. 사생활을 묻는 질문에 대답하기도 귀찮았다. 이제는 점심시간만이라도 자유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점심을 간단히 먹고 헬스클럽에 다닐 계획이다.○ 비근로시간 ‘사수 작전’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회식과 야유회, 체육대회, 퇴근 후 상사의 업무 연락 등 그동안 근무나 다름없던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겠다’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전날 밝힌 ‘근로시간 단축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 활동들은 근로시간이 아니다. 업무 외 일이긴 하지만 회사 상사 및 동료와 관계된 모든 것을 뜻하는 이 활동들은 지금까지는 근로와 비근로의 경계에 있었다. 판례에 따르면 이 같은 비근로시간에 근로자는 사용자의 지휘 및 감독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항상 상사의 지시와 감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방 공기업에 다니는 정모 씨(29·여)는 다음 달부터 부서 등산모임에 참석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등산모임은 관행적으로 한 달에 한 번 했다. 정 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실시로 업무 외 활동을 최소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 등산모임에서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조직 분위기에 미칠 영향이 마음에 걸린다. 정 씨는 “선배들이 서운해할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하는 직장인 이모 씨(26·여)도 회식 보이콧을 고민 중이다. 지금까지는 회식이 있으면 당일 처리할 업무량을 늘리거나 외부 미팅을 잡는 방법으로 최대한 늦게 참석했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이런 방법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아예 회식 자체를 불참하는 걸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자칫 회사 내 ‘왕따’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 ‘자투리’ 근로는 여전 그러나 회사의 근무환경이나 분위기 탓에 쉽사리 비근로시간 지키기에 나서지 못하는 직장인도 많다. 팀워크를 중시하는 상사의 요구를 바로 거절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퇴근한 뒤의 업무 연락같이 근로시간으로 잡히지 않는 ‘자투리 근로’는 사실상 막을 수도 없다. 중소기업 영업직인 강모 씨(42)는 업무 성격상 휴일에도 상사나 거래처에서 연락이 온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이 별로 없다. 강 씨는 “한 번 전화가 오면 같이 있는 가족은 통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못한다. 휴일에 휴대전화 전원을 끄는 법률이 생기지 않는 한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돼도 ‘휴일 근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2년 차 안모 씨(32)는 “일과 휴식의 균형, 워라밸을 찾아 삶을 충분히 누리자는 취지라고 생각하지만 근로시간만 줄인다고 해서 집단주의적인 직장문화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은지 기자}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 여성들은 9일 ‘몰래카메라(몰카) 성차별 수사’를 규탄한 집회에서 이런 주장이 담긴 피켓을 들고 ‘여성유죄 남성무죄’를 외쳤다. 1만5000여 명(경찰 추산)의 여성이 참가한 이날 집회는 지난달 19일 첫 번째 집회보다 규모가 컸다. 이날 오후 3시경 혜화역부터 이화사거리까지 1km 거리의 4차로 도로는 집회에 참가한 여성들로 가득 찼다. 분노의 상징인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오후 7시까지 4시간 동안 “동일범죄 동일처벌” “성차별 수사를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당초 여성들은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유포한 이른바 ‘홍대 몰카 사건’ 범인이 여성이라 구속됐다고 주장하며 시위에 나섰다. 특히 이날 여성들은 한층 수위가 강한 주장을 쏟아냈다. 단상에 오른 한 여성은 “여성 경찰청장과 검찰총장을 임명하고 여성, 남성의 경찰 성비를 9 대 1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 3명은 삭발까지 했다. 이를 지켜보던 여성들은 “상여자” 등을 연호했다. 집회 주최 측은 이번에도 참가 대상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제한했다. 경찰은 집회 장소 주변 남성들의 진입을 통제했다. ‘몰카’를 주제로 열린 집회인 만큼 카메라 촬영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일부 참가자는 의경이나 남성들에게 “경찰도 한남” “한남충(한국 남자 벌레) 꺼져라” 등 욕설을 내뱉었다. 집회 장면을 카메라로 찍는 시민들에게는 “체포해” “구속해” 등을 외치며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이날 집회는 ‘몰카’ 행위를 규탄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남성 몰카’가 현장에 등장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집회 주변 남성들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된 사진과 ‘걸어 다니는 한남’ 등 조롱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이에 따라 집회가 점차 과격하고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집회 장소를 지나갔다는 이유로 욕설을 들은 이호성 씨(30)는 “집회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남성에 대한 과격한 분노 표출로 변질된다면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들의 몰카 행위는 ‘여성 혐오’에 맞서기 위해 똑같은 방식으로 남성을 비난하는 ‘미러링’ 퍼포먼스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집회에 참가한 조모 씨(26·여)는 “사회 구조적 문제인 여성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때로는 과격한 행동도 필요하다. 과격하지 않으면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줄 수 없고 관심에서 멀어진다”고 말했다.신규진 newjin@donga.com·김은지 기자}

7일 낮 12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학생회관 앞은 배식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붐볐다. 다가오는 종강을 맞아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는 ‘밥&Talk’ 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김용학 총장을 비롯한 교수 20여 명은 조리용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채 학생들에게 밥과 밥찬을 직접 건넸다. 교수들은 각 테이블에서 학생들과 식사하며 대화를 나눴다. 식사 도중 음악대학 학생이 “일주일에 한 번 학교 잔디밭을 개방하면 즉흥 음악회를 열겠다”고 제안하자 김 총장은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행사는 사라져 가는 대학가 ‘책거리’ 전통을 살려 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책거리는 책 한 권의 수업을 끝낸 기념으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어울려 식사하던 전통 의식이다. 사제 간의 정을 돈독히 하자는 의미에서 김 총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당초 행사는 낮 12시부터 2시간 동안 예정됐다. 그러나 배식 시작 1시간 만에 준비한 음식 500인분이 동이 났다. 연세대는 “학생들의 호응이 좋아 매 학기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6일 오전 7시 50분경 국내 최고층(지상 123층·555m) 건물인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근처에 외국인 세 명이 나타났다. 일행은 손에 레저스포츠용 카메라인 ‘고프로’와 고가의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 같은 촬영 장비를 들고 있었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건물 보안요원이 일행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일행 중 한 명이 갑자기 자리를 옮겼다. 보안요원이 시선을 돌린 사이 옅은 금발의 중년 남성 한 명이 건물 벽에 가까이 다가섰다. 보안요원이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남성은 이미 건물 2층 근처를 오르고 있었다. 롯데월드타워에는 비상이 걸렸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바닥에 에어매트를 설치했다. 남성은 유유히 건물 벽을 올랐다. 오전 10시 10분경 남성은 75층에서 ‘등반’을 멈췄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서다. 그때 구조대원과 롯데 측 직원이 “위험하니 그만하자”고 설득했다. 1시간가량 이어진 ‘밀당’ 끝에 남성은 정상 정복의 꿈을 접었다. 약 3시간에 걸쳐 롯데월드타워를 등반한 남성은 프랑스의 알랭 로베르 씨(56). 그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828m), 대만의 타이베이101(509m) 등 세계 각지의 초고층 건물 150여 곳을 맨손으로 등반해 ‘프랑스의 스파이더맨’으로 불린다. 호주 시드니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사전 협조 없이 초고층 건물에 올랐다가 체포됐고 2007년 중국 상하이(上海) 진마오타워(420m)를 오르다 붙잡혀 강제 추방됐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로베르 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로베르 씨는 등반 경위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남북 평화가 실현되려는 놀랍고 중요한 시점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앞서 ‘클라이밍 여제’ 김자인 씨(29·여)는 지난해 5월 처음으로 롯데월드타워를 맨손으로 등반했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동 2층짜리 상가주택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된 건물은 외벽의 벽돌 곳곳이 깨져 있었다. 작업자들은 비계(공사용 시설물)에 올라 옥상 난간의 떨어져 나간 부위를 시멘트로 바르고 있었다. 작업자는 “건물이 너무 낡아 인테리어를 비롯해 리모델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동네에서 50년째 살고 있다는 김모 씨(65)는 “30∼40년은 된 건물이다”라고 말했다. 이 주택 뒤쪽 굽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버려진 2층집이 보였다. 벽과 난간 시멘트는 성한 곳을 찾기 힘들었다. 창문에 달린 격자 쇠창살은 붉게 녹슬어 여기저기 벌어져 있었다. 10년 전부터 빈집이라고 한다. 김 씨는 “이런 집이 방치돼 있으니 위험하기도 하고…. 동네 분위기가 뒤숭숭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변으로는 낡은 슬레이트와 기와로 지붕을 덮은 단층 건물이 줄지어 있다. 이 일대는 2008년 재건축 정비구역(정릉1구역)으로 지정됐으나 지난달 해제됐다. 함께 해제된 성북구 장위15구역 주택들도 비슷했다. 즐비한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 상당수는 외벽에 금이 가고 담벼락이 훼손됐다. 수도관이 새는 집도 많았지만 재개발 기대에 집을 고치지도 못했다. 30년 된 다세대주택에 사는 정옥임 씨(55·여)는 “집들이 죄다 낡아 곳곳이 말썽이다. 10년간 손놓고 있다 이제 고쳐 보려는데 수리비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의 52년 된 4층짜리 상가건물 붕괴 사고 이후 오래된 4층 이하 저층(低層) 주택의 안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주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서울시 주택노후도 현황 분석 및 시사점’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기준 주택(단독주택 및 공동주택) 44만9064개 동(棟)의 37.2%인 16만7019개 동이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이다. 저층 단독주택만 놓고 보면 노후 주택은 47.4%나 된다. 아파트를 제외한 저층 주택의 노후화에 관한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12월 기준 전체 저층 주택 가운데 72.3%가 20년이 넘었고, 34.9%는 30년이 넘었다. 집이 오래됐다고 모두가 붕괴 위험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저층 주택을 짓고 난 뒤 꾸준히 손을 보기보다 수명이 다할 때까지 버티는 경향이 높다는 게 문제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서울시 저층 주거지 실태와 개선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저층 주택은 지은 지 평균 33년이 지나야 새로 짓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72년) 프랑스(80년) 일본(54년)에 비하면 아주 짧다. 그만큼 노후할수록 저층 주택 몸체가 부실해질 확률도 커진다는 얘기다. 저층 주택의 보수에 신경을 덜 쓰다 보니 리모델링 비용보다 신축 비용이 싼 경우까지 생긴다. 이처럼 서울의 저층 주택이 낡아가는 데에는 2005년 무렵 불어닥친 재개발·재건축 열풍도 한몫했다. 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 맹다미 박사는 “저층 주택은 소유자가 뜻이 있어야 유지, 보수하는데 향후 정비사업 대상지로 선정되길 바라며 관리를 소홀히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노후한 저층 주택에는 대개 살림이 빠듯한 젊은 부부나 노년층 세입자가 산다. 집주인은 재개발을 기다리며 수리를 꺼리고 세입자는 스스로 보수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재개발 대신 도시재생을 선택하는 동네가 늘고는 있지만 개인에게만 주택 안전을 맡겨서는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는 “지방자치단체는 도로 공원 주민커뮤니티센터 같은 공공시설만 지으면서 주택은 개인 소관이라고만 본다”며 “마을공동체 유지는 물론이고 주민 안전을 위해서라도 노후 주택 수리 비용을 적극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김은지 eunji@donga.com·김예윤 기자}
3일 무너져 내린 서울 용산구 상가건물 세입자들은 손해를 보상받을 수 있을까. 건물 붕괴 원인이 복합적이고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아 형사상 책임 소재 확인뿐만 아니라 민사상 손해배상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4층 세입자 부상의 원인 제공자에게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건물 안전관리 1차 책임자 건물주와 2차 책임자 구에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다. 만약 책임 소재가 분명해진다 해도 붕괴 원인이 명확하지 않으면 보상받기가 쉽지 않다. 건물 1, 2층에 입주한 두 가게는 영업 손실, 집기와 인테리어 등 시설비, 권리금 같은 재산 피해를 입었다. 4층 세입자는 시설비와 치료비 등을 보상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형사처벌을 받거나 입건될 정도의 명확한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민사상 손해배상은 어렵다고 전망한다. 법무법인 을지 차흥권 변호사는 “구체적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임차인은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 어렵다. 건물 붕괴에 대한 감식 결과가 애매하게 나오면 책임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정해지지 않아서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은지 기자}

4일 잔해 더미만 쌓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의 4층 건물이 무너진 자리 바로 옆 2층 컨테이너 건물은 외벽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전날 사고 직후 발생한 화재로 외벽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벌어진 벽 사이로 내부 마감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도 보였다. 재건축 조합 사무실로 쓰여 온 이 컨테이너 건물은 붕괴 위험이 높아 사고 직후 폐쇄됐다. 본보 취재팀이 4층 건물 붕괴 사고가 난 용산 재개발 5구역의 10개 건물을 확인한 결과 대부분 낡고 부식된 곳이 많아 상당히 위태로워보였다.○ “우리 건물도 무너질까 두려워” 무너진 건물 뒤편 5층짜리 건물에는 이날 방문객이 많았다. 치과, 웅변학원, 노래방, 호프집 등이 영업 중이었다. 용산구는 사고 건물 양 옆 2개 동은 폐쇄했지만 지은 지 46년 된 이 5층 건물을 포함해 나머지 8개 동은 붕괴 위험이 낮다고 보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건물 계단으로 1층에서 5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벽면에는 길이 10cm 안팎의 금 20여 개 가 보였다. 검은 곰팡이도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배수시설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해 벽으로 물이 스며든 흔적이었다. 취재진과 함께 건물을 점검한 최창식 한양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건물이 노후돼 물이 새고 콘크리트, 철근이 부식되고 있다.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폐쇄되지 않은 건물 8곳 중 7곳은 음식점 부동산 PC방 등 상업시설이 정상 운영 중이었다. 건물 일부 층에 세입자가 거주하기도 했다. 대부분 지은 지 40∼50년 된 건물들로 일부 벽면에 시멘트가 벗겨져 부식된 콘크리트와 철근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특히 벽과 벽이 만나는 건물 구석에 금이 많이 가 있었다. 최 교수는 “노후 건물에서 흔히 보이는 균열이다. 건물이 하중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상계단은 대부분 의자, 책상 등으로 막혀 있어 사고 시 대피도 어려워보였다. 3일 건물 붕괴 후 용산구 측 현장점검 위원으로 참여한 한 건축회사 대표는 “주변 건물들이 당장 무너질 정도는 아니지만 정밀점검이 시급할 정도로 열악한 상태”라고 말했다. 폐쇄되지 않은 한 건물의 식당 종업원 이모 씨(60·여)는 “혹시나 우리 건물도 무너질까 두려워 더워도 무조건 야외 의자에 앉아 있다”고 말했다. ○ “어차피 철거할 건물 뭐 하러 고치나” 이번 사고가 발생한 용산 재개발 5구역은 2006년 재개발이 확정됐지만 12년간 사업 진척이 없어 사실상 방치돼 왔다. 언제 건물을 허물지 몰라 구청과 건물주들이 안전관리에 소홀했던 곳이 많다. 이 5구역을 포함해 용산 재개발 지역 전체적으로 안전관리에 문제가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용산 재개발 지역 중 한 곳인 한남뉴타운 3구역 일대에도 아슬아슬해 보이는 노후 주택이 즐비했다. 3가구가 사는 3층 벽돌 주택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천장에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일부 주택의 경우 삭아서 앙상해진 목재 구조물이 대형 슬레이트 지붕을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었다. 주민 이모 씨(82·여)는 “빈집 주인 대부분이 재개발을 노리는 외부인들이다. 구청은 어차피 재개발될 곳인데 뭐 하러 고치느냐는 식”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연면적 1000m² 이상 건물은 지방자치단체 점검 대상이다. 문제는 재개발 지역 건물 대다수가 이 기준에 못 미쳐 점검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3일 붕괴된 4층 건물의 연면적은 301m²였다. 용산구 관계자는 “점검 기준에 못 미칠 경우 사유재산으로 분류돼 소유주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며 “사고 건물의 경우도 지난달 10일 건물주에게 ‘조치해 주셔야 한다’고 얘기했을 뿐 강제적인 수단이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날 사고 건물을 합동감식한 뒤 “화재나 폭발로 인한 붕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신규진 newjin@donga.com·김은지·이지훈 기자}

“사람이 지나가는데 횡단보도를 막아서면 쓰나.” 지난달 8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사거리. 양화대교 북단에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방향 횡단보도에 있던 정장 차림의 남성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던 수십 명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은 횡단보도에 절반가량 걸쳐 있는 흰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향했다. 지하철 6호선 상수역에서 월드컵경기장 방향으로 무리하게 교차로를 통과하려다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자 횡단보도 위에 멈춘 것이다. 이는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날 퇴근시간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가려던 버스가 횡단보도를 침범하며 멈춰 서자 시민들은 ‘ㄷ’자로 돌아가야 했다. 엄연한 보행자 영역인 횡단보도에서 차량들에 밀려나는 모습은 우리 사회 일상이 됐다.○ 횡단보도 무시하는 운전문화 횡단보도는 도로를 건너려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도로교통법 27조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 차량은 반드시 멈추도록 운전자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신호등 설치 여부와 상관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정지선에 맞춰 멈춰야 한다. 이를 어긴 것이 사진, 영상 등으로 입증된 운전자에게는 최대 20만 원의 과태료가 가해진다. 불법이기 전에 보행자를 지키기 위한 운전자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횡단보도 지키기는 사실상 사문화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유명무실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이 당한 교통사고는 해마다 6000건 이상 발생한다. 그로 인해 200명 가까이 목숨을 잃는다. 지난해에는 7027건에 186명이 숨졌다. 횡단보도뿐만이 아니다. 주택가 이면도로를 비롯한 각종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지난해에만 969명이나 됐다. 현장에서 체감한 운전자의 횡단보도 인식 상황은 더 암울하다. 모든 차량은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없을 경우에라도 반드시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피며 지나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크게 달랐다. 지난달 8일 서울 마포구 양화로. “아이고야.”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년 여성이 깜짝 놀라며 멈춰 섰다. 흰색 1t 트럭이 여성 앞을 쌩 하고 가로질러 양화로6길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폭 7m인 이 횡단보도는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 5번 출구 앞 양화로6길로 접어드는 길목의 일방통행로에 있다. 음식점을 비롯한 여러 점포가 모여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양화로에서 월드컵로 방향으로 가기 위한 역(逆) P턴 길로 쓰여 차량 통행도 많다. 이날 오전 10시 15분부터 1시간 동안 이곳을 통과한 차량 224대 중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줄인 것은 34%인 77대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그대로 횡단보도를 지나쳤다. 승용차를 매단 견인차도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았다. 횡단보도를 누가 건너고 있어도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속도를 더 높여 지나가는 차들에 보행자가 양보하는 모습이 1시간 내내 이어졌다. 운전자의 ‘횡단보도 무시’ 현상은 교통량이 적은 심야시간일수록 더 심각해진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사거리는 밤이 되면 ‘건너가세요’라는 보행신호 녹색불은 무용지물이다. 강서구 방향 양평로에서 우회전해 왕복 11차로인 선유로(양화대교, 올림픽대로)로 가는 많은 차량은 직전의 이 횡단보도에 보행신호 녹색불이 켜져도 대부분 무시하고 지나간다. 버스와 화물차는 물론 승용차도 마찬가지다.○ 횡단보도 사고는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 피해 올 4월 일본 도쿄 시오도메(汐留). 대기업과 언론사, 특급호텔 등이 밀집한 대형 업무지구다. 이곳에는 편도 3차로와 왕복 2차로가 만나는 ‘T’자형 교차로가 있다. 2차로 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보행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도로 중간 교통섬에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데 3차로 도로에서 좌회전하던 소형 트럭이 횡단보도 앞에 멈췄다. 운전자는 먼저 건너가라며 오른손을 내저었다. 횡단보도는 무조건 보행자 우선이라는 운전문화에 익숙한 운전자 모습을 잘 보여준다. 도쿄 시부야(澁谷)의 전(全) 방향(스크램블) 횡단보도는 하루 이용 인구가 50만 명에 이른다. 보행신호가 빨간불로 바뀐 뒤 미처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한 보행자가 있어도 차량들은 언제나 이들이 다 건널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도로는 한정됐지만 수년째 차량은 계속 늘어 운전자는 목적지까지 빨리 가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더 심하게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운전자는 보행자를 보호 대상이 아니라 빨리 가기 위한 극복 대상으로 여긴다”며 “속도보다 여유와 안전을 우선시하는 교통문화로 바로 지금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서형석 skytree08@donga.com·김은지 기자 공동기획 :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교통문화 개선을 위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

3일 낮 12시 반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4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흔들거렸다. 4층에 사는 세입자 이모 씨(68·여)는 방 벽과 바닥이 심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둔탁한 물건이 긁히는 것 같은 소리도 들렸다. 최근 건물이 휘청거리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여느 때보다 진동이 격심했다. 이 씨는 다급히 집을 나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1층 출구에 다다르기 직전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건물은 흔적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주저앉았다. 사고 당시 건물 안에 있던 사람은 이 씨가 유일했다.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발견된 이 씨는 팔다리에 부상을 입어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옮겨졌다. 소방당국은 “현장 수색 결과 이 씨 외에 다른 피해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하마터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사고였다. 건물 1, 2층에는 각각 고깃집과 칼국숫집이 입주해 있었다. 3층과 4층에는 가정집 두 가구가 있었다. 일요일이라 두 식당은 모두 쉬었던 데다 3층에 사는 주민 2명 모두 외출한 상태여서 대규모 인명 피해는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다. 4층 거주자 2명 가운데 다른 한 명은 밖에 나가고 없었다. 인근 주민은 “건물 1, 2층 식당이 ‘맛집’으로 소문나서 장사가 잘됐다. 식사때면 손님 50∼60명이 오가던 건물이다. 하마터면 수십 명이 초상을 치를 뻔했다”고 말했다. 사고 건물 입주자가 한 달쯤 전 건물 붕괴 징후를 감지하고 관할 용산구에 알렸으나 구 측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층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정모 씨(31)는 지난달 9일 용산구 관계자에게 건물 벽이 뒤틀리고 균열이 간 사진 등을 첨부해 e메일을 보냈다. 정 씨는 3일 “5월 초부터 건물 벽이 눈에 띄게 부풀고 금이 가 불안해서 구에 도움을 요청했다”며 “e메일을 보낸 다음 날 용산구 관계자가 현장 주변에 왔다고 연락해 오긴 했지만 그뿐이었다”고 말했다. 사고 건물은 1966년에 지어져 올해 52년 된 건물이다. 건물 준공 이후 증·개축한 적은 없다. 연면적 301.49m² 규모로 용산재개발 5구역에 속해 있다. 5구역은 2006년 4월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개발 사업이 12년 넘게 지연되면서 시공사 선정 등 관련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조합 측은 올 3월에도 시공사 선정 공고를 냈다. 하지만 단 한 업체도 참여하지 않아 5월 말 입찰은 연기됐다. 재개발 사업 지연으로 건물은 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왔다. 용산구 다른 관계자는 “위험시설물은 사전 순찰을 통해 인지하거나 민원이 접수되면 전문가 안전진단을 받아 지정한다. 사고가 난 건물은 위험시설물로 인지한 사실이 없고,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구는 건물 붕괴 우려가 있다는 입주자 정 씨의 민원 접수와 관련해서는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사고 건물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일부 상인은 “우리 가게도 주방과 지붕에 금이 가 있다”며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주민들은 2016년부터 인근에서 하고 있는 주상복합아파트 신축 공사를 건물 붕괴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한 주민은 “해당 아파트 공사를 위해 H건설이 발파 작업을 한 뒤로 인근 건물들에 균열이 생기는 등 이상이 나타났지만 구가 안전 관련 조사와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소방당국은 사고 건물 주변의 노후 건물 6개동 거주자들에게 이날 긴급 피난명령을 내렸다. 경찰은 건물 재개발 조합장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사람이 지나가는데 횡단보도를 막아서면 쓰나.” 지난달 8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사거리. 양화대교 북단에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방향 횡단보도에 있던 정장 차림 남성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던 수십 명 역시 마찬가지 표정이었다.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은 횡단보도에 절반가량 걸쳐 있는 흰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향했다. 지하철 6호선 상수역에서 월드컵경기장 방향으로 무리하게 교차로를 통과하려다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자 횡단보도 위에 멈춘 것이다. 이는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날 퇴근시간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가려던 버스가 횡단보도를 침범하며 멈춰 서자 시민들은 ‘ㄷ’자로 돌아가야 했다. 엄연한 보행자 영역인 횡단보도에서 차량들에 밀려나는 모습은 우리 사회 일상이 됐다.● 횡단보도 무시하는 운전문화 횡단보도는 도로를 건너려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도로교통법 27조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 차량은 반드시 멈추도록 운전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신호등 설치 여부와 상관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정지선에 맞춰 멈춰야 한다. 이를 어긴 것이 사진, 영상 등으로 입증된 운전자에게는 최대 20만 원 과태료가 가해진다. 불법이기 전에 보행자를 지키기 위한 운전자의 가장 기본 의무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횡단보도 지키기는 사실상 사문화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유명무실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이 당한 교통사고는 해마다 6000건 이상 발생한다. 지난해에는 7000건을 넘었다. 그로 인해 200명 가까이 목숨을 잃는다. 횡단보도뿐만이 아니다. 주택가 이면도로를 비롯한 각종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지난해에만 969명이나 됐다. 현장에서 체감한 운전자의 횡단보도 인식 상황은 더 암울하다. 모든 차량은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없을 경우에라도 반드시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피며 지나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크게 달랐다. 지난달 8일 서울 마포구 양화로. “아이고야.”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년여성이 깜짝 놀라며 멈춰 섰다. 흰색 1t 트럭이 여성 앞을 쌩 하고 가로질러 양화로6길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폭 7m인 이 횡단보도는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5번 출구 앞 양화로6길로 접어드는 길목의 일방통행로에 있다. 음식점을 비롯한 여러 점포가 모여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양화로에서 월드컵로 방향으로 가기 위한 역(逆) P턴 길로 쓰여 차량 통행도 많다. 이날 오전 10시 15분부터 1시간 동안 이곳을 통과한 차량 224대 중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줄인 것은 34%인 77대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그대로 횡단보도를 지나쳤다. 승용차를 매단 견인차도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았다. 횡단보도를 누가 건너고 있어도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속도를 더 높여 지나가는 차들을 보행자가 양보하는 모습이 1시간 내내 이어졌다. 운전자의 ‘횡단보도 무시’ 현상은 교통량이 적은 심야시간일수록 더 심각해진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사거리는 밤이 되면 ‘건너가세요’라는 보행신호 녹색불은 무용지물이다. 강서구 방향 양평로에서 우회전해 왕복 11차로인 선유로(양화대교·올림픽대로)로 가는 많은 차량은 직전의 이 횡단보도에 보행신호 녹색불이 커져도 대부분 무시하고 지나간다. 버스와 화물차는 물론 승용차도 마찬가지다.● 횡단보도 사고는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 피해 올 4월 일본 도쿄 시오도메(汐留). 대기업과 언론사, 특급호텔 등이 밀집한 대형 업무지구다. 이곳에는 편도 3차로와 왕복 2차로가 만나는 ‘T’자형 교차로가 있다. 2차로 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보행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도로 중간 교통섬에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데 3차로 도로에서 좌회전하던 소형트럭이 횡단보도 앞에 멈췄다. 운전사는 먼저 건너가라며 오른손을 내저었다. 횡단보도는 무조건 보행자 우선이라는 운전문화에 익숙한 운전자 모습을 잘 보여준다. 도쿄 시부야(澁谷)의 전(全) 방향(스크램블) 횡단보도는 하루 이용인구가 50만 명에 이른다. 보행신호가 빨간불로 바뀐 뒤 미처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한 보행자가 있어도 차량들은 언제나 이들이 다 건널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도로는 한정됐지만 수년째 차량은 계속 늘어 운전자는 목적지까지 빨리 가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더 심하게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운전자에게는 보행자가 보호대상이 아니라 빨리 가기 위한 극복대상으로 여겨진다”며 “속도보다 여유와 안전을 우선하는 교통문화로 바로 지금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보행자 중심 교통환경 위한 제1과제는 횡단보도 늘리기 ▼ 횡단보도는 보행 친화 환경을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곳곳의 넓고 좁은 찻길로 가로막힌 생활공간을 횡단보도가 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행자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야 도시도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횡단보도를 누군가 건너고 있는데도 막무가내로 침범하는 차량을 막아야 하는 이유다. 보행자 중심의 교통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제1과제는 횡단보도 늘리기다. 정부는 2016년 11월 도로교통법시행규칙을 개정해 도심 주거지역 도로의 횡단보도 간격을 기존 200m에서 100m까지 줄일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주거지역 도로에는 횡단보도를 더 촘촘히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보행자가 안전하게 길을 건너는 일이 차량 통행속도를 높이는 일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다. 과거 교통정책은 차량의 원활한 소통에 중점을 뒀다. 도시계획도 마찬가지여서 육교와 지하도가 많이 설치됐다. 그러나 최근 정책 초점은 180도 바뀌었다. 주거지역뿐 아니라 차량 통행량이 많은 간선도로, 보조간선도로 같은 한길에도 횡단보도가 많이 생긴다. 서울 부산 인천 대전 등 대도시에서는 중앙버스전용차로(BRT)에 설치된 버스정류소 앞뒤로 횡단보도가 마련됐다. 서울 강남대로, 천호대로에서는 두 횡단보도 간격이 약 40m에 불과한 광경도 볼 수 있다. 차량 통행속도를 늦추는 대신 보행이 더욱 안전하고 편리하도록 했다. 서울 광진구는 2011년 천호대로의 용마보도육교를 철거하고 횡단보도를 놓았다. 육교는 멈춤 없이 보행자 횡단과 차량통행 모두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어린이 고령자 장애인과 같은 교통약자에게는 장애물이다. 강동구는 2012년 올림픽공원 앞 강동대로에 도로 개통 30여 년 만에 횡단보도를 하나 더 설치했다. 그동안 왕복 11차로에 신호등 없는 구간이 1㎞ 가량 있으면서 차량 과속과 무단횡단 위험이 컸다. 정부는 올 1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의 차량 통과 관련 안전대책을 강화하는 교통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현재 보행자가 건널 때만 차량이 일시 멈추도록 한 규정을 바꾼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 상황에도 일시 정지하는 의무를 차량에 부여하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노인 보호구역(실버존)에 있는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 존재와 상관없이 무조건 멈추도록 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