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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21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비핵화 해법을 집중 논의할 이번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1박 4일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 공식 실무 방문길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오전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행정부 외교안보 핵심 참모들과 회담을 갖는 것으로 첫 공식 일정을 시작한다. 이어 같은 날 낮 12시경 트럼프 대통령과 배석자 없이 단독 정상회담을 가진 뒤 오찬과 함께 확대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하는 것은 취임 후 이번이 다섯 번째다.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확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구상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뤄질 비핵화와 북한 체제 보장 맞교환 담판을 조율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한 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136주년과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개설 1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을 방문할 예정이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송인배 대통령제1부속비서관이 댓글 여론을 조작한 일명 ‘드루킹’의 사조직인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간담회 참석 사례비로 200만 원을 받은 사실을 대통령민정수석실이 파악하고도 이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드루킹 특검법안’이 21일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청와대가 자체 조사 종결한 사안을 특검 수사를 앞두고 공개한 것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1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오늘 오전 대통령에게 송 비서관 건과 관련한 내용을 종합해 보고했다”고 밝혔다.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설명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김 대변인은 말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송 비서관은 드루킹 측으로부터 200만 원을 사례비로 받았다고 밝혔다. 2016년 6월 송 비서관이 국회 의원회관의 김 전 의원 사무실에서 드루킹 등 경공모 회원 7, 8명과 함께 김 전 의원을 만나고 헤어진 뒤 인근 커피숍에서 100만 원을 받는 등 두 차례에 걸쳐 100만 원씩 총 200만 원을 받았다는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을 지냈던 송 비서관은 ‘노사모’ 출신 경공모 회원으로부터 드루킹을 소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송 비서관이 지난달 중순 민정수석실에 자신이 김 전 의원에게 드루킹을 소개한 사실을 알렸으며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비서관실이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달 20, 26일 송 비서관을 자체 조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은 송 비서관과 드루킹의 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임종석 비서실장에게만 보고하고 조사를 자체 종결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김 대변인은 “(드루킹이) 김 전 의원을 만나게 연결해준 것만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핵심 측근이 연루된 의혹을 파악하고도 민정수석실이 한 달가량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정치권에서 특검 수사 대상으로 대통령 포함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가 자체 조사한 내용을 먼저 공개하면서 수사 범위에 선을 그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특별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조사를 한다면 (송 비서관도)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동시에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송인배 대통령제1부속비서관에 대한 친문(친문재인) 인사들의 공통된 평가다. 송 비서관은 댓글 조작 의혹으로 구속 기소된 ‘드루킹’ 김동원 씨(49)를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전 의원에게 소개해줬다.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송 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서 문 대통령이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맡았을 때 그 밑에서 행정관과 비서관을 지냈다. 친노(친노무현), 친문 그룹을 모두 관통하는 핵심 인사다. 송 비서관은 17대부터 20대 총선까지 총 다섯 차례(재·보궐 포함) 경남 양산에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경남 양산은 문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곳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문 대통령이 자주 탔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조수석에는 언제나 송 비서관이 앉았다. 한 친문 인사는 “김 전 의원, 전해철 의원 등 다른 친문 인사들이 국회 입성에 성공한 것과 달리 송 비서관은 번번이 낙선해 문 대통령이 몹시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송 비서관은 2016년 10월 문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위해 꾸려진 최측근 조직인 ‘광흥창팀’에도 합류했다. 대선 운동 기간에는 일정총괄팀장을 맡았다. 김 전 의원은 수행팀장이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 후보의 일정 조율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문 대통령 당선 뒤 송 비서관이 제1부속실장을 맡는 것을 다들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입성 뒤에도 송 비서관은 문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곳을 지키고 있다. 문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여민1관 3층에 사무실이 있는 참모는 송 비서관이 유일하다. 임종석 비서실장,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등 다른 참모들은 한 층 아래인 2층에 사무실이 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할 수 있다고 밝힌 뒤 한미를 겨냥해 하루가 다르게 거친 언행을 쏟아내고 있다.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데 이어 올해 들어 처음 탈북 여종업원 송환을 요구했다. 급기야 한미 정상은 20일 통화를 갖고 북한이 이처럼 나오는 이유를 분석하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북한은 19일 북한 적십자회 대변인의 언론 문답을 통해 “우리 여성 공민(탈북 여종업원)들을 지체 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써 북남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월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측이 여종업원 송환을 요구했다고 알려지긴 했지만 북한 매체를 통해 송환을 공식 요구한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19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등을 겨냥해 “남조선 당국은 사태가 더 험하게 번지기 전에 탈북자 버러지들의 망동에 특단의 대책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다시 요구했다. 북한은 23∼25일에 열겠다고 밝힌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벤트에 한국 기자단을 초청하겠다고 했지만 20일 오후 현재까지 방북을 허가할 것인지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다만 풍계리 현장에 관측용 전망대가 세워지고 원산∼길주 열차 선로 등이 정비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폐기 행사 준비는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선 김정은이 북-미 회담의 판을 깨지 않는 수준에서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 비핵화 논의에 불만을 가질 수 있는 군부 등 북한 내 강경파를 다스리는 ‘상황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일 오전 11시 반부터 20분간 전화 통화를 하고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의 여러 반응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있었다. 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질문했고 문 대통령이 답했다”며 “(통화가 진행된 건 워싱턴 현지 시간으로) 토요일 밤이다. 북-미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황인찬 hic@donga.com·한상준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전화 통화를 갖고 최근 북한의 계속된 강경 반응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22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만나는데도 두 정상이 전화 통화를 가진 것은 외교관례상 꽤 이례적이다. 그만큼 싱가포르 북-미 담판을 앞둔 북한의 태도 변화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북한의 요구에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서 물밑에서 북-미 양측에 ‘수위 조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북-미 간 중재를 위해 21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 靑, “北 요구에 입장 없다” 북한이 탈북 여종업원들의 송환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북한의 요구에 대해 “현재로서는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연이은 대남 압박에 청와대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반응을 보여 봤자 갈등만 더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요구에 긍정인지 부정인지 밝히는 것 자체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청와대는 보고 있다”며 “싱가포르 담판을 앞두고 판을 흔들어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뜻도 있다”고 말했다. 탈북 여종업원들의 송환 문제는 자칫 ‘남남(南南)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큰 초대형 이슈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청와대는 북-미 모두 싱가포르 담판을 무산시킬 의도는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현재 백악관과 평양 모두 싱가포르 담판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의 각종 요구들도 북한 내 일부의 목소리이거나 대미 협상을 앞둔 전략전술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북한이 처음에는 백악관을 겨냥했다가 별 반응이 없자 한국을 겨냥한 측면이 있는 만큼, 우리가 굳이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최초 김계관 외무성 제1부장 명의의 담화로 백악관에 기 싸움을 걸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자 다음 수순으로 청와대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회담장에 나올 것”… 트럼프 달래는 文 일단 청와대는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북-미 양쪽 어디라도 자극할 경우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이 더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뜻을 다시 한 번 전달하고,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가 꼭 필요하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두 정상은 최근 북한이 보이고 있는 여러 가지 반응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두 정상은 다음 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곧 있을 한미 정상회담을 포함해 향후 흔들림 없이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무리한 요구들은 역사적인 싱가포르 핵 담판을 앞두고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반응’ 중 일부라는 인식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최근 강경 반응의 의도가 무엇인지, 청와대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질문을 했고, 문 대통령이 대답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도 북-미 정상회담을 무산시키겠다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도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한국 취재진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참관에 나서게 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시험할 수 있는 첫 단계인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무산되거나, 북한이 한국 취재진을 초청하지 않는다면 삽시간에 긴장 국면이 조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재검토를 위협한 데 이어 중국과의 밀착을 과시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잇따라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중국과의 밀착은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방중 이후 미국과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때마다 중국을 ‘전가의 보도’ 삼아 입지를 다지는 식이다. 청와대는 북-미 양측에 ‘역지사지’를 강조하며 중재에 나섰다.○ 밀월 과시하는 북중 14일 북한 전역의 시도당위원(책임자)으로 구성된 노동당 친선 참관단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북-중은 한층 활발해진 교류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3월 25일 김정은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첫 만남을 시작으로 쑹타오(宋濤)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다롄(大連) 2차 정상회동 등 공개된 북-중 교류 행사만 이번이 4번째다. 특히 이번 참관단의 방문은 북-중 경제협력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친선 참관단에 농업, 과학기술, 인문 분야의 대규모 협력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북 인프라 투자 등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비핵화 완료 전 단계에서 중국에 경제적 지원을 요청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북-중 간 최고위급부터 실무급까지 경제협력의 토대가 촘촘하게 마련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미국에 강경 태도 철회를 요구하는 등 북한과 보조 맞추기에 나섰다.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7일 “북한이 자발적으로 취한 (비핵화 관련) 조치는 충분히 긍정할 만하다”며 “다른 관련국들, 특히 미국은 현재 나타난 평화의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왕 위원은 “한쪽(북한)이 유연성을 보일 때 다른 한쪽(미국)이 오히려 강경하면 안 된다”며 “역사적으로 이미 이 분야에 교훈이 있다. 같은 현상이 재연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도 말했다.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 보상을 맞바꾸는 9·19공동성명이 합의됐지만 같은 해 미국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돈세탁 우선 우려 대상’으로 지정해 북한 비자금을 동결한 사건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16일 시 주석과 만난 일부 북한 참관단이 허리를 90도로 굽혀 악수한 것이 중국에 대한 북한의 시각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북제재에 동참한 중국에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냈던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통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력을 높이려 하고, 중국은 남북미중 4자 구도를 유지해 한반도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차원에서 전략적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지사지 강조하며 중재 나선 청와대 청와대는 북-미 간 갈등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중재 역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당장 백악관과 평양 사이의 견해차를 좁히기 위한 물밑 대화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개최한 청와대는 “다가오는 북-미 정상회담이 상호 존중의 정신하에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한미 간과 남북 간에 여러 채널을 통해 긴밀히 입장을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 정부나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며 “상호 존중의 정신은 좀 더 쉽게 얘기하면 역지사지를 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22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과 아직 한 번도 이뤄지지 못한 남북 정상 간 ‘핫라인’ 통화 등을 통해 북-미 간 이견 좁히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서훈 국가정보원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의 3각 라인이 다시 한번 활발하게 움직이며 북-미 간 간극을 좁히는 데 적극적인 중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한상준 기자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북한이 16일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연기하며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56·사진)를 ‘인간쓰레기’라고 비판한 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태 전 공사의 추방을 요구하는 글이 잇따르자, 하루 뒤 그를 옹호하는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태 전 공사를 북한으로 송환해 달라”는 청원에 맞서 “태 전 공사의 신변 안전을 더더욱 강화해 달라”는 식의 청원이 연이어 올라온 것.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하루 동안 “태 전 공사를 청와대 경호처에서 경호하라” “태 전 공사의 국외 추방 청원을 게시판에서 삭제해 달라”는 청원이 연이어 제기됐다.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태 전 공사 관련 청원도 “태 전 공사는 걱정하지 말라”는 청원으로 약 1700명이 공감을 표했다. 다른 청원들은 100명 이하의 공감을 받는 데 그쳤다. 청와대는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에 대해 답변을 내놓고 있다. 앞서 북한이 16일 0시 반경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연기하겠다고 전격 통보한 이후엔 “태 전 공사를 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에서 해고해 달라”는 청원이 쏟아졌다. 정치권에서는 “명예훼손이나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태 전 공사 관련 청원은 청와대가 삭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와대는 청원 게시판과 관련해 ‘허위 사실이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포함된 청원은 관리자에 의해 숨김 처리 또는 삭제될 수 있다’고 공지하고 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북한이 17일 “북남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 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북측 고위급 회담 대표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과의 문답을 통해 “차후 북남관계의 방향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책임을 한국 정부로 돌리며 이틀 연속 한국과 미국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인 것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던 북한이 잇따라 으름장을 놓은 것은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한국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며 한국에 미국을 설득하는 책임을 떠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리선권은 “남조선 당국은 완전한 ‘북핵 폐기’가 실현될 때까지 최대의 압박과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미국 상전과 한 짝이 되어 최대 규모의 연합공중전투 훈련을 벌려 놓고 이것이 ‘북에 대한 변함없는 압박 공세의 일환’이라고 거리낌 없이 공언해댔다”고 맹비난을 쏟아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일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게도 북-미 간 비핵화 조율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선(先) 핵 포기-후(後) 보상의 ‘리비아식 해법’을 강조하며 강공을 주도하는 만큼 폼페이오 장관의 역할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16일(현지 시간) “우리가 따르는 것(비핵화 구상)은 트럼프 모델이다. 리비아식 모델은 어느 회의에서도 논의되지 않았다”며 북-미 회담의 판을 깨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청와대는 북-미 간 비핵화 해법 중재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청와대는 이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북-미 정상회담이 상호 존중의 정신하에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한미, 남북 간 여러 채널을 통해 긴밀히 입장을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신진우 niceshin@donga.com·한상준 기자}
북한이 16일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일방적으로 무기한 연기한 데 이어 북-미 정상회담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담화를 내놓자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의 발표가 대화 국면 자체를 흔들 정도는 아니지만, 장밋빛 기대가 넘쳐났던 남북관계는 당분간 답보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북한이 한미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가운데 청와대는 남북미 삼각 채널을 활용해 북-미 중재에 집중할 방침이다. 청와대는 이날 북한의 담화문이 나온 지 5시간여가 지나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 명의로 석 줄의 짧은 입장문을 냈다. 윤 수석은 “지금의 상황은 같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며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진통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완전한 비핵화’를 담은 판문점 선언이 나온 지 19일 만에 수면 위로 공식화된 북-미 간 비핵화 이견에 양국이 ‘같은’ 해법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공개 일정을 잡지 않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북한 동향을 보고받고 참모진들에게 차분한 대응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일방적인 회담 연기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간 후속 회담은 당분간 멈춰 설 가능성이 커졌다. 사실 청와대와 통일부 등 관계 부처들은 북한의 통보 전까지 이날 예정됐던 고위급 회담 준비에 주력하고 있었다고 한다. 북한의 태세 전환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당장 ‘6·15 민족공동행사’의 축소 가능성이 거론된다. 통상 준비하는 데 2개월여가 필요한 8월 이산가족 상봉도 불투명해졌다. 고위급 회담 연기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적십자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에서 5월 개최를 명시한 남북 군사회담도 늦춰질 수 있다. 남북 관계 복원에 속도를 내 북-미 정상회담 성공의 동력으로 삼으려던 청와대의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 외교 소식통은 “남북 철도 연결과 경제협력 구상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핵 담판을 앞둔 북한으로서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며 “북-미 간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산가족 상봉조차 불가능한 상황임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는 조만간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핫라인 통화를 추진하며 북-미 간 갈등 조율에 나설 방침이다. 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미 백악관과 직접 소통에 나서는 동시에 국가정보원과 북한 통일전선부 간 물밑 접촉을 통해 남북미 삼각채널을 가동할 계획이다. 청와대는 22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전까지는 공개적으로 불거져 나온 갈등 국면을 가라앉히고 대화 국면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선(先)비핵화를 원하는 워싱턴과 동시적, 단계적 보상을 강조하는 평양 간의 이견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만큼 대치 국면이 장기화하면 자칫 코앞으로 다가온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그만큼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반응은 미국에 단계적·동시적 비핵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자는 요구로 보인다”며 “북-미 모두 대화의 판을 뒤집기엔 위험이 큰 만큼 간극을 좁히기 위한 본격적인 물밑 대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 기자}
2016년 4월 중국 내 북한 식당에서 일하던 여종업원과 지배인 등 13명의 ‘기획 탈북’ 의혹에 대해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북한 매체들이 이들의 북한 송환을 요구한 데 이어 시민단체도 이에 가세하면서 탈북 여종업원 송환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15일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탈북 여종업원 기획 탈북 의혹을 받고 있는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과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 등을 고발한 사건을 공안2부(부장검사 진재선)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국정원 관계자와 여종업원들을 불러 기획 탈북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민변은 14일 “이 전 원장 등은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12명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대한민국에 입국하게 하고, 이를 선거에 이용했다”며 이 전 원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4일 “(8월 이산가족 상봉 때) 집단 유인납치 사건의 피해자들을 조국의 품에 돌려보내야 한다”며 이들의 송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권은 신중한 반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5일 “현재로서는 송환을 고려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도 “(여종업원들을) 강제 북송하는 것은 현행법 위반이기 때문에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여종업원 12명 사이에서는 송환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12명의 의견이 모두 제각각이었다”며 “여종업원들과 지배인 허모 씨 사이의 개인적인 갈등까지 더해져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기획 탈북이 사실로 밝혀지면 여종업원들의 송환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권 내부에서도 기획 탈북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인 북한 억류자 석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 북한의 탈북 여종업원 송환 요구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우선 확실한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이날 “공안기획 사건에 대해 검찰 조사는 물론이고 국정 조사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권 관계자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탈북한 것이 확인된다면 이후 절차를 검토해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황형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해외 재산 은닉을 “대표적인 반(反)사회 행위”라고 질타하며 합동조사단 설치와 철저한 재산 환수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생활 적폐청산’을 내건 가운데 이른바 ‘사회 지도층’을 정조준한 탈세 조사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 사회 지도층이 해외 소득과 재산을 은닉한 역외 탈세 혐의들이 드러나면서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며 “불법으로 재산을 해외에 도피, 은닉하여 세금을 면탈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를 해치는 대표적인 반사회 행위이므로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은 하지 않았지만 역외 탈세와 밀수 의혹을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일가를 겨냥한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또 “국세청, 관세청, 검찰 등 관련 기관이 참여하는 해외 범죄수익 환수 합동조사단을 설치해 추적 조사와 처벌, 범죄수익 환수까지 공조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가면서 교묘하게 탈세하는 국부 유출 행위에 대해 관계기관 합동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달 말 서울지방국세청이 상속받은 해외 비자금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조 회장을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함에 따라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문 대통령은 또 “적폐청산 일환으로 검찰이 하고 있는 부정부패 사건과 관련해서도 범죄수익 재산이 해외에 은닉돼 있다면 반드시 찾아내 모두 환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적폐청산을 위해 수사하고 있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주요 사건에서도 해외 은닉 자산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환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독일에 재산을 은닉한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의 재산 환수에 착수했다.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이라고 의심받는 다스의 해외 자회사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지시는 취임 1년을 맞아 권력 적폐청산에서 생활 적폐청산으로 기조를 바꾼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청와대는 채용 비리, 재건축·재개발 비리, 공적자금 부정 수급 등을 생활 적폐청산의 대표적인 분야로 꼽았다. 검경 등 수사 기관은 이 분야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대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와 세무 조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생활 적폐청산이 기업과 금융권 등 민간 분야에 대한 사정(司正) 국면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한상준 alwaysj@donga.com·전주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에 직접 전화통화를 하기 위해 설치된 ‘핫라인’이 개설된 지 20일이 넘도록 울리지 않고 있다. 당초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면 통화가 이뤄질 것”이라던 청와대도 통화 시점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이다. 청와대는 14일 남북 정상 간 핫라인 통화 시점에 대해 “언제 통화가 이뤄질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사단이 3월 방북 때 북한과 합의한 남북 정상 핫라인은 지난달 20일 설치 및 시험 통화가 완료됐다. 당시 청와대는 “마치 옆집에서 전화하는 듯한 느낌”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6월 12일 싱가포르 개최로 결정이 된 뒤에도 남북 정상은 아직 통화를 갖지 않고 있다. 통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핫라인은 통화를 위한 통화보다는 두 정상 간 어떤 대화를 나눌지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 정상이 직접 나서 담판을 지어야 할 만한 현안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백악관과 평양이 직접 나서 조율하고 있는 것도 한 배경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한국과의 현안 논의보다는 싱가포르 담판에 들고 갈 카드와 얻어낼 보상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라며 “청와대도 형식적인 통화는 하지 않겠다는 태도라 핫라인 가동이 늦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남북 정상 간 통화는 2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이후까지도 미뤄질 수 있다. 또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남북 간 이견이 있어 통화가 늦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직접 만나고 오면 또 김 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할 내용이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에 비핵화 조치 급부로 ‘번영’을 돕겠다고 약속하면서 대북 금융·경제제재에도 변화의 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북한이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누리려면 미국이 주도해 온 대북제재를 풀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 금융·원유 관련 제재는 마지막에 풀어줄 듯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궁극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제재를 풀겠다는 입장으로 해석하기엔 이르다는 것. 정부 당국자는 “미국은 비핵화를 한 다음에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것이지 초기에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해제 열쇠를 쥐고 있는 제재는 행정명령이나 입법으로 명문화한 독자적 대북제재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실험이 쇄도하던 2016년과 2017년 당시 안보리 결의들은 대부분 미국이 작성한 초안을 토대로 작성됐고 독자 대북제재는 유엔 결의들을 보완하는 성격이 짙다. 비핵화 협상력과도 직결되는 대북제재를 미국이 쉽게 풀어줄 리 만무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나마 북-미 양자 문제라는 측면에서 미국의 독자 대북제재가 순차적으로 풀리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지난해 11월 9년 만에 재지정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같은 상징적 조치들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러한 제재들은 상징적 조치라서 풀더라도 그 효과는 상대적으로 미미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아닌 북한 선박 운항 금지 등을 명시한 ‘대북 차단 및 제재 현대화법(H.R.1644)’과 같은 법을 수정하려면 수개월에 걸쳐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해제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오히려 북한이 해제를 바라는 원유 공급 제한 및 해외 노동자 취업 금지 등을 규정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들은 유엔이 기존 결의들을 무효화시키는 새로운 결의를 만들어 낼 수는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광물 수입 금지,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의 송환조치, 합작투자 금지가 핵심 제재 3종 세트”라면서 “북한이 상당한 비핵화 성의를 보였을 때에 한해 원유 정제제품 관련 제재 조치를 풀어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트남 모델 구현하나 국제사회 제재가 단계적으로라도 해제된다면 북한이 어떤 개발 모델을 채택할지도 관심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언급한 “과거 미국의 적국이었지만 지금은 우방국이 된 나라”의 대표적인 예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월남과 싸웠던 베트남은 대표적인 반미(反美) 국가였다. 그러나 1995년 미국과 수교를 체결했고,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 경제를 받아들여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 번영을 이루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선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13일 “북한이 비핵화 이후 베트남식 모델을 따를 가능성이 가장 높다”며 “그 길을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과 미국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여기에 베트남은 숙련된 인력과 낮은 인건비로 제조업에서도 강점을 가지고 있어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베트남에 대규모 제조 공장을 가동 중이다. 이는 개성공단을 통해 제조업 분야의 장점을 보여준 바 있는 북한이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경제 발전 모델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비핵화 담판이 타결된다면 북한은 가장 먼저 제조업에 대한 미국 자본이나 기업의 투자를 요청할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순차적인 번영을 꾀하는 것이 김정은의 구상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중국과의 관계는 베트남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베트남은 최근 반중(反中)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급격히 중국과 다시 가까워진 북한은 한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의 줄타기를 통해 체제 안전은 물론이고 최대한의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한상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한이 이미 개발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한반도 바깥의 제3지역으로 반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백악관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면서도 어떻게, 어떤 수위에서 수용할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어 이 문제가 싱가포르 북-미 핵 담판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 소식통은 13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향후 핵 개발 중단과 함께 보유 중인 핵 물질 및 미사일의 국외 반출을 요구했다”며 “보유 중인 핵 반출은 전례가 없고 돌이키기 어려운 만큼 북한도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미국이 북핵의 반출을 요구한 것은 제3지역에서의 폐기로 ‘영구적 핵 폐기(PVID)’를 못 박겠다는 의도다. 또 미국은 북한에 “핵을 최대한 빨리 외부로 옮기면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 P5(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가 참여해 관리 및 폐기를 검증하게 될 것”이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이뤄진다면 그에 따른 국제사회의 지원을 유엔 차원에서 약속할 수 있다는 트럼프식 ‘채찍과 당근’인 셈이다. 백악관은 핵 반출에 대한 보상으로 북한이 강하게 희망하고 있는 북-미 연락사무소를 평양과 워싱턴에 둘 수 있다는 뜻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북한이 보유 중인 핵 물질의 규모가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핵 반출 문제 논의는 장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3일(현지 시간) CNN에 출연해 “1992년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포기에 합의했다. (싱가포르에서) 화학과 생물무기, 미사일, 일본인과 한국인 억류자에 대해서도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12일 외무성 공보를 통해 23일부터 25일 사이에 풍계리 핵실험장을 일시적 폐쇄가 아닌 폐기(dismantle)하고, 이를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취재진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해 22일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다. 이 조치는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합의를 지킬 테니 미국도 비핵화에 따른 보상을 준비하라는 신호다. 하지만 당초 김정은이 약속한 핵 전문가 참관은 빠져 있어 향후 핵실험장 폐기에 대한 실질적인 검증이 비핵화 논의의 또 다른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발표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감사하다. 매우 똑똑하고 정중한 몸짓”이라고 평가했다.한상준 alwaysj@donga.com·황인찬 기자}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권력적폐청산’에서 ‘생활적폐청산’으로의 확대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채용·학사 비리, 재개발·재건축 비리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13일 적폐청산 평가 보도 자료를 내고 “지난 1년간 (이전) 권력의 전횡으로 인한 적폐청산에 주력했다”며 “앞으로 민생과 직결된 영역에서 벌어지는 생활적폐청산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1호 국정과제인 적페청산에 대해 청와대는 “국가정보원 정치 개입,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한일 위안부 합의 등 분야별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진행해 조사 결과 발표와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했다”고 자평했다. 청와대가 ‘생활적폐’를 들고 나온 것은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따른 국민들의 피로감이 덜하면서도 실생활과 밀접한 분야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청와대는 채용·학사 비리, 공적자금 부정 수급, 재개발·재건축 비리 등을 생활적폐의 대표적인 분야로 꼽았다. 이에 따라 일부 금융권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채용 비리 수사는 재계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수사 중인 서울 강남 일부 지역의 재개발·재건축 수주 비리 역시 탄력을 받게 됐다. 청와대는 “경제적 약자를 상대로 한 불공정 ‘갑질’ 행위 등 민생과 직결된 영역에서 벌어지는 생활적폐청산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한 달 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 서울의 약 1.2배의 면적에 560만여 명이 사는 도시국가. 1965년 독립 이후 리콴유 전 총리가 장기 집권하며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곳. 그리고 완벽한 치안을 자랑하는 경찰국가. 6월 12일 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이 마주 앉게 될 싱가포르에 대한 설명이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금융·교통 허브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서방 세계와 친숙한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북한에도 매우 익숙한 곳이다. 북한은 일찌감치 싱가포르와 수교를 맺고 다양한 인적·물적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역사적인 핵 담판의 장소를 싱가포르로 하자는 미국 측 제안을 받아들인 배경이기도 하다.○ 北 비밀 접촉의 단골 무대, 싱가포르 2009년 10월,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은 극비리에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그가 싱가포르에서 만난 인사는 김양건 당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2015년 사망). 임 전 장관은 훗날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양해각서 초안까지 작성했다”고 털어놨다. ‘싱가포르 비밀 접촉’은 2000년에도 있었다. 1차 남북 정상회담을 물밑에서 조율했던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6·15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측 특사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싱가포르, (중국) 상하이 등에서 수차례 만났다”고 밝혔다.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우리 측 인사들만 만난 것은 아니다. 2008년 당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만나 북핵 검증의 최종 조율 담판을 벌인 곳도 싱가포르였다. 6월 김정은의 싱가포르행에 동행할 것이 확실시되는 리용호 외무상도 2015년 싱가포르에서 미국의 전직 관료, 전문가들을 만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으로서는 싱가포르가 중국 다음으로 익숙한 국가일 것”이라며 “처음 가본 국가보다 의전, 경호 등을 준비하기 쉽다는 점도 북한이 싱가포르에 합의한 이유”라고 말했다.○ 주요 교역 대상이자 北 외화벌이 창구 역할도 김씨 일가도 여러 차례 싱가포르를 찾았다.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는 2012년 치료를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했고, 암살된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도 이곳을 자주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에는 김정은의 형 김정철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에릭 클랩턴의 공연장을 찾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북한은 우리보다도 싱가포르와의 외교 관계를 먼저 맺었다. 북한은 한국보다 2년 앞선 1968년에 주(駐)싱가포르 통상대표부를 설치했고, 1975년 정식 수교를 체결했다. 자연히 싱가포르는 북한의 대표적인 교역 창구 역할을 해왔다. KOTRA에 따르면 2016년 싱가포르의 대북 교역량은 약 1300만 달러로 북한의 일곱 번째 교역국이었다. 북한은 수교 이후 무역·선박회사를 싱가포르에 진출시켜 외화벌이에 나섰다. 또 싱가포르는 북한 주민에게 무비자로 입국을 허용했기 때문에 많은 북한 노동자들이 싱가포르에서 일했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로 원유 수입이 중단된 북한이 매달린 곳도 싱가포르였다. 노동당 고위 관리로 일하다 탈북한 리정호 씨는 지난해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매년 20만∼30만 t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고, 싱가포르 회사들이 20년 동안 중개 역할을 해왔다”며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거래 방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싱가포르 기업 2곳이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불법 석유 거래를 중개하다 적발돼 미 재무부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다만 싱가포르는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했다. 이에 따라 비자 면제가 폐지됐고, 지난해 11월부터 대북 교역을 전면 중단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법’, ‘폐지’, ‘처벌’. 지난해 8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 가장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키워드는 이 세 가지였다. 10일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까지의 청와대 청원 17만4545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입법 요청이나 법률의 폐지, 부당행위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적폐청산’ 드라이브와 관련 있는 청원이 많았던 것. 청원 게시판 출범 초기 주를 이뤘던 ‘떼쓰기’식 청원은 점차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인권·성평등’ 분야가 가장 많은 공감 청와대 청원 게시판의 특징은 ‘청원’과 ‘참여’의 구분이다. 청원은 누구나 올릴 수 있지만, 20만 명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낸 청원에 대해서만 청와대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본보가 청원 제목과 참여자 수를 합산해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낸 키워드는 ‘법’(365만5174건), ‘폐지’(344만7800건), ‘처벌’(231만7495건)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청원 제목만 조사한 결과 7번째로 많았던 ‘이명박’(7위·9896건)은 참여자 수를 합산한 결과에서는 2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이 전 대통령과 관련한 청원은 많이 올라왔지만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한 것. 이에 청와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불편하거나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과 관련한 청원이 많은 참여를 얻는 양상이 뚜렷하다. 일종의 ‘집단 지성’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청원 운용 초기 말도 안 되는 청원이 잇따라 올라왔던 것에 비해 자정 기능이 생겼다는 자평이다. 25만여 명이 참여한 ‘전안법(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개정 또는 폐지’ 청원과 21만여 명이 공감한 ‘주취감형(술을 먹으면 형벌 감형) 폐지’ 청원이 이런 기류를 반영한 대표적 청원으로 분류된다. 분야별로는 ‘인권·성평등’(394만2202건), ‘문화·예술·체육·언론’(267만7277건), ‘정치개혁’(237만1841건) 분야가 시민들의 참여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청원 게시판은 청원을 올릴 때 16개 분야(기타 제외)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20만 명 이상이 참여해 청와대가 답변을 내놓은 ‘낙태죄 폐지’,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 인권·성평등 분야의 대표적인 청원이다. 청원 게시판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민들이 주목하는 이슈의 양상이 청원 게시판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북한 귀순 병사 치료를 계기로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지난해 11월의 청원 게시판 최다 키워드는 ‘권역외상센터’였다. 이런 여론은 야간에도 출동이 가능한 ‘닥터 헬기’의 아주대병원 추가 배치로 이어졌다. 또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이 오락가락했던 1월에는 ‘가상화폐’가,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의 팀워크 논란이 불거졌던 2월에는 ‘김보름·박지우’가 각각 월별 최다 키워드로 집계됐다.○ ‘청와대가 다 해결해 달라’는 식의 청원도 여전 그렇다고 청와대의 고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2월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청원 게시판과 관련해 “고충을 말씀드리자면 (청와대가) 답변하기 부적절한 성격의 문제가 많이 올라온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2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청원 중 ‘국회의원 전원 위법사실 전수조사’, ‘국회의원 시급의 최저시급 책정’, ‘나경원 의원의 평창올림픽 위원직 파면’ 등은 청와대 권한 밖의 청원들이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심 판결을 맡았던 정형식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원은 이 청원을 청와대가 법원에 전달해 삼권분립 위반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답변 기준인 ‘20만 명 참여’를 충족시키는 청원이 속속 늘어나는 점도 청와대의 고민이다. 지난해에는 답변 기준을 충족시킨 청원이 6건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벌써 27건에 달한다. 또 사회적 혐오나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청원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욕설 및 비속어를 사용하거나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 내용이 담긴 청원은 삭제하는 규정을 새롭게 도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답변 대상이 늘어나고 있지만 20만 명이라는 기준을 높이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대신 청원 게시판에 대한 자체 모니터링은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황규인 kini@donga.com·한상준 기자}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의 무대는 ‘6월 12일 싱가포르’로 결정이 났다. 막판 결정 직전까지 판문점과 평양 등을 놓고 추측이 난무했지만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인 싱가포르에서 핵 담판을 벌이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6·13지방선거 하루 전날이기도 하다.○ 돌고 돌아 결국 싱가포르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간) 트위터를 통해 “크게 기대되는 김정은과 나의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6월 12일 열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를 세계 평화를 위한 매우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몇 시간 전까지 “며칠 내에 밝힐 것”이라며 뜸을 들이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가장 애용하는 미디어 수단 중 하나인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에 깜짝 발표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9일 판문점을 북-미 정상회담 후보지에서 제외하면서 회담 장소와 시기를 두고 막판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이었다. 각료회의를 주재하면서 ‘회담 장소가 비무장지대(DMZ)냐’는 기자의 질문에 “거기는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지난달 30일 “DMZ가 회담 장소가 되면 엄청나게 축하할 일이 될 것”이라고 한 지 열흘도 안 돼 판문점 카드를 접었다. 그 직후 워싱턴에선 싱가포르가 0순위로 부상했다. CNN은 정상회담 추진 사정에 밝은 익명의 두 관계자를 인용해 “관리들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북-미 회담을 싱가포르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트럼프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싱가포르가 가장 유력한 정상회담 개최지”라고 보도했다. CNN의 싱가포르 개최설 보도가 나온 지 8시간여 만에 평양 카드가 잠시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가 10일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직접 마중 나간 자리에서 “방북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한 일이다(It could happen)”라고 답하면서부터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방북 후 귀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실무팀이 정상회담 직전 한 차례 더 방북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평양행에 힘을 싣는 듯했지만 결과는 중립외교 무대인 싱가포르였다. ○ 회담 장소에서 이긴 美, 비핵화 회담도 우위 선점? 싱가포르는 북-미회담 거론 단계부터 유력 후보지로 거론됐다. 세계적인 교통의 요지인 동시에 국제적 규모의 컨벤션을 치를 수 있는 인프라가 풍부한 게 최대 장점.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전 대만 총통 간 양안 분단 66년 만의 첫 정상회담도 이곳에서 열렸다. 여기에 싱가포르는 북한의 여섯 번째 교역국이자 대사관을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김정은의 전용기로도 한 번에 날아갈 수 있다. 외교가에선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핵 담판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장소 선점에서 우위를 점하는 쪽이 회담의 본질인 비핵화와 평화체제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더 세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소식통은 “김정은은 끝까지 평양을 원했지만 결국 싱가포르로 서로 양보하는 선에서 만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부터 북-미 간 치열한 막판 전략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방선거 전날 열리는 북-미 회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국내 정치 지형에도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게 됐다.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6월 12일은 6·13지방선거 하루 전날이다. 지방선거가 한반도 대화 국면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백악관에 “5월 말 또는 6월 초 북-미 정상회담을 가지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면서 지방선거에 만만치 않은 파장을 일으키게 됐다. 청와대는 북-미 정상회담 일정 확정에 대해 “개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한상준 기자}
청와대는 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를 공식적으로 ‘한일중 정상회의’로 부르고 있다. 통상 3국을 묶어서 부를 때 한중일로 부르는 것과 달리 이번엔 ‘한일중’으로 호칭하는 것에 대해 청와대는 “의장국의 순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11월 이후 2년 6개월여 만에 열린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 의장국은 일본. 따라서 청와대는 한국을 가장 앞에 두고, 의장국인 일본, 그리고 중국을 이어 부르는 것이다. 2008년부터 정례화 된 한중일 정상회의는 3국에서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개최되는데 2015년에는 서울에서 열렸고, 다음번 정상회의는 중국에서 열린다. 당초 매년 열릴 예정이었으나 과거사 문제로 지연돼 이번이 일곱 번째 한중일 정상회의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국가 정상인 문재인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참석한 반면 중국은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참석한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는 한중일 정상회의가 시작된 1999년 ‘아세안+3’ 회동에 당시 김대중 대통령,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가 참석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1992년 중국과 수교한 이후 국가 주석과 총리 모두 중국 정상으로 예우하고 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9일 오전 9시 문재인 대통령이 탄 공군 1호기가 일본 하네다공항에 착륙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처음으로 인정한 ‘고노 담화’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의 장남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이 전용기에서 내리는 문 대통령을 영접했다. 한국 현직 대통령으로 6년 반 만에 일본 땅에 발을 디딘 순간이다. 하루 동안 이뤄진 짧은 일정이었지만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만남은 석 달 전 평창 겨울올림픽 때와는 사뭇 달랐다. 2월 9일, 강원 평창군 용평리조트 블리스힐스테이에 마련된 한일 정상회담장의 분위기는 무거움 그 자체였다. 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놓고 정상회담 내내 치열하게 맞섰다. 당시 아베 총리는 비공개로 회담이 전환되자마자 준비해 온 종이를 꺼내 들고 한일 위안부 협상 파기, 위안부 소녀상 문제 등을 조목조목 따졌다. 문 대통령도 물러서지 않고 하나하나 반박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당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방남과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등으로 언론의 주목이 덜했지만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팽팽했던 한일 정상회담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방일로 성사된 이날 네 번째 만남에서 한일 정상은 정상회담에 이어 오찬을 함께했고, 아베 총리는 오찬이 끝날 무렵 “문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축하한다”며 케이크를 선물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우리 측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깜짝 이벤트였다. 아베 총리 등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는 석 달 사이에 한반도 상황이 급변한 데 따른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문 대통령과 달리 아베 총리는 ‘저팬 패싱’ 논란을 수습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아베 총리는 “올해는 일한 간 파트너십 20주년이라는 아주 기념할 만한 해로,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여러 분야에서 강화했으면 한다”고 했다. 한일은 정상 간 셔틀외교도 복원하기로 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