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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가 유통업계의 최저가 경쟁에 뛰어들었다. 쿠팡의 ‘무료 로켓배송’과 이마트가 14년 만에 들고나온 최저가 보상제로 점화된 가격 경쟁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롯데마트는 14일 “이마트의 ‘최저가 보상 적립제’ 대상 상품 가격을 이마트와 똑같이 맞추고, 포인트는 기존 대비 5배 적립해 주겠다”고 밝혔다. 이마트는 이달 8일부터 식료품, 생필품 등 500개 제품을 대상으로 이마트 점포에서 판매 가격이 쿠팡과 롯데마트 온라인몰, 홈플러스 온라인몰에 비해 비싸면 차액을 이마트 점포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e머니’로 적립해주는 ‘최저가 보상 적립제’를 시행 중이다. 롯데마트는 주 단위로 이마트와 가격을 맞추는 한편으로 롯데마트 쿠폰 전용 모바일 앱인 ‘롯데마트고’ 회원을 대상으로 해당 제품 구매 시 5배의 엘포인트 적립을 해주기로 했다. 같은 가격에 더 많은 적립으로 사실상 더 싸다는 점을 내세운 것. 정재우 롯데마트 상품본부장은 “매번 최저가를 비교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주면서 더 많은 포인트를 제공해 고객 편의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다만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는 가격 경쟁에 뛰어들지 않기로 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10원 단위의 가격 경쟁보다 품질이 나쁘면 100% 환불을 보장하는 ‘신선식품 사후서비스(AS)’를 비롯해 실제로 고객에게 더 큰 효용이 있는 서비스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초기지만 가격 경쟁의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8일 시행 이후 하루 평균 200여 명의 소비자가 최저가 보상제 혜택을 받았다. 이마트 관계자는 “최저가 보상 이후 가격을 조정하기 때문에 모든 소비자가 혜택을 받는 셈”이라며 “이달 9∼12일 이마트 앱 신규 회원 증가율이 개편 전에 비해 2.8배 늘어났다”고 말했다. 12일부터 신선식품 최저 가격 전용관인 ‘컬리 장바구니 필수템’을 운영하고 있는 마켓컬리도 운영 후 이틀간 지난주 같은 요일에 비해 판매량이 6% 증가했다.황태호 taeho@donga.com·이지윤 기자}

대기업 계열사가 맡아온 사내식당 일감을 중소기업에도 개방하라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압박한 지 8일 만에 실시된 삼성전자 사내식당 급식업체 선정 입찰에서 다른 대기업과 중견기업 계열사가 선정됐다. 하루 1000명분 이상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대기업 단체급식 특성상 중소업체가 가격과 품질을 유지하며 사업권을 따내기 힘든 구조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들은 “이젠 밥 먹는 것까지 정부가 간섭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대-중소기업 상생을 명분으로 한 정부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단체급식 특성 간과한 ‘일감 나누기’ 삼성전자는 13일 실시한 사내식당 2곳에 대한 외부 급식업체 경쟁입찰에서 신세계푸드(수원사업장)와 풀무원푸드앤컬처(기흥사업장)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신세계푸드는 급식업계 점유율 5위, 풀무원푸드앤컬처는 6위다. 공정위는 이달 5일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8개 대기업그룹과 가진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에서 “독립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에게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첫 시장 개방의 결과가 당초 의도와 딴판으로 나온 셈이다. 급식업계에서는 “예견된 일이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급식업은 외부 경쟁입찰을 거친다고 해도 중소기업이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식자재 유통망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 공급과 조리를 동시에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1일 1000식(食)이면 중소 규모 업체가 진입하기 힘든 대형사업장으로 본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의 하루 급식량은 8000식, 기흥사업장은 1000식 이상이다. SK하이닉스 이천R&D센터 반도체 캠퍼스처럼 1만 식이 넘는 사업장도 있다. 결국 단체급식 사업에서 동등한 조건이라면 중소기업이 입찰을 따내기는 힘든 상황이다. 2012년 공공 급식사업 입찰 당시에는 정부가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했지만 외국계인 아라코와 중견기업인 풀무원이 사업권을 따냈다.○ MZ세대 “밥까지 공정위가 간섭하나” 반발 단체급식 개방에 대해 MZ세대의 반발도 거세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근무하는 A 씨(35)는 “사업장 규모 때문에 외부로 오가기 힘들어 주로 구내식당에서 먹는다”면서 “왜 우리 밥 주는 회사를 공정위에서 간섭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에 다니는 윤모 씨(30)도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공정위의 일감 개방 소식이 알려진 직후에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에는 “밥까지 정부가 간섭이냐”는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중소 급식업체 관계자는 “현재의 입찰 방식으로는 중소기업이 사업권을 따내기 힘들다”며 “식자재 유통은 대기업이 하고, 식당 운영은 중소기업이 하는 이원화 구조를 통해 상생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일감을 늘려 상생토록 하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섣부른 급식 시장 개방으로 가격 상승과 품질 저하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식자재 공급과 별개로 급식업체 운영만 중소기업에 맡기는 방식으로 이원화하면 ‘규모의 경제 효과’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이 과정에서 오른 가격 부담이 근로자에게 전가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업체가 자주 바뀌며 설비 비용이 추가로 들거나 식단가 유지 노하우가 없는 신규 업체 진입으로 이용자 만족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급식 산업에서 무리하게 중소기업의 비중을 늘리려 하다 보면 급식의 질만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지원 4g1@donga.com·이지윤 기자}

“분수? 그게 뭐예요?” 갸우뚱하는 아이(초4)의 눈빛을 보니 알겠다. 이건 정말 모르는 거다. 지방의 한 초등교사 김정훈(가명) 씨는 얼마 전 느낀 당혹감을 이렇게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전에도 항상 이전 학년의 내용을 물었거든요. 그때는 분수가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분자와 분모도 알고, ‘사과를 6조각 낸 것 중에 3개가 6분의 3이에요’라고 답하기도 했어요. 3학년 2학기 때 배우는 내용이니까요. 그런데 올해는 전혀 아니에요.” 아이들의 학습 태도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수학 교과서에 계산 문제가 나오잖아요? 그럼 직접 풀어봐야 하는데 연필만 꼭 쥐고 선생님만 바라봐요. EBS 같은 원격수업에서는 조금만 기다리면 선생님이 풀면서 답을 알려주니까요. 답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거죠.” 김 교사는 “4학년 1학기 나눗셈은 세 자릿수 나누기 두 자릿수를 요구하는데 아이들이 3학년 2학기에 나온 세 자릿수 나누기 한 자릿수도 잘 모른다”며 “수업 진행이 막막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교사만 진도 나간 원격수업지난달 전국 초중고교는 코로나19로 인한 긴 원격수업의 터널을 지나 본격 새 학년 등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등교 확대의 기쁨도 잠시, 아이들을 맡은 교사들은 지역과 학년을 가리지 않고 ‘학력 구멍’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인천의 한 중학교 영어 교사인 이지은(가명) 씨도 1학년 기초학력 진단을 위해 ‘내 이름은 ○○○이다’를 영작하라는 문제를 냈다가 충격을 받았다. 반마다 4, 5명씩은 ‘My name is’를 쓰지 못해 빈칸을 내거나 한글로 자기 이름만 적었다. 이 씨는 “영어 문장 자체를 쓸 줄 모르는 것”이라며 “정말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옆에서 인터뷰를 듣던 이 학교 국어 담당 박모 교사도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3학년 국어 수업에 들어가서 물어봤어요. ‘최일남 소설 ‘노새 두 마리’에는 노새가 진짜 두 마리 나오지?’ 하고요. 아이들이 자신 있게 ‘네’ 하더라고요. 지난주 원격수업을 안 들은 거죠. ‘노새 두 마리’에는 노새가 한 마리만 나오거든요.” 그는 “바로 지난주 원격수업 내용도 모르는데 지난해 것을 제대로 알지 확신이 없을 때가 많다”며 “정규 진도는 물론이고 지난주, 지난해 복습까지 하며 수업하는 상황인데 학교에 머무는 시간 줄인다고 등교 날에도 5분씩 단축수업을 하니 도무지 구멍이 메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의 고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최정은(가명) 교사는 “올해 3학년 절반이 히라가나를 못 읽더라”고 전했다. 입시와 직결되는 과목이 아니다 보니 구멍이 더 크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제2외국어는 학교에서 얼마만큼 하느냐가 중요한데 예년엔 수없이 읽고 쓰게 해 전교에서 5명 정도만 히라가나를 몰랐다”면서 “올해는 절반이 글자 자체를 모르니 문법 설명도 의미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무너진 공부 습관… 지금 교실은 ‘전쟁 중’등교하는 날 가르칠 내용은 예년의 몇 배인데 아이들이 도무지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설문과 인터뷰에 응한 교사들은 입을 모아 “학생들이 너무 산만하다”는 반응이었다. 학교에 와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것 자체를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지난 한 해 원격수업을 원하는 때, 편한 자세로 듣다 보니 공부 습관이 안 잡힌 데다 지금도 초등 1, 2학년을 빼면 격주나 격일로 퐁당퐁당 등교하다 보니 여전히 학교 리듬에 적응을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수시로 나와서 ‘선생님 화장실 갈래요’ 해요. 요즘은 방역 때문에 쉬는 시간도 5분이고 화장실 가는 인원도 제한하니까 안 보내 줄 수도 없고요. ‘머리가 아파요’, ‘배 아파요’ 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그럼 또 덜컥 겁이 나서 열 체크하라고 보건실 보내고…. 너도나도 수업에 집중이 안 되는 거죠.”(수도권 초등교사) 1년 동안 짧은 유튜브 링크나 예능 같은 동영상에 노출된 학생들은 수업을 지루해하는 경향도 짙다. 오프라인 수업에 적응을 어려워하기도 한다. 부산의 한 중학교 교사는 “구글 폼에 쓰라고 하면 휴대전화 들고 금방 하는데 프린트물을 나눠주면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요?’라고 한다”며 “수업 중에 돌아다녀 보면 필기가 막막해 멍하게 있거나 답을 엉뚱한 데 쓰는 학생도 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함께 전국 초중고 교사 9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사들은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이전 학년 것을 중간중간 복습시키거나(64.6%) △예년보다 쉽게 가르치고 있다(51.9%)고 답했다. 하지만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한 고교 교사는 “솔직히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시 가르칠 시간이 안 된다”며 “결국 미리 했거나 이해하고 따라오는 애들에게 맞춰 수업하는 것”이라고 전했다.최예나 yena@donga.com·이소정·이지윤 기자}

채식주의자인 최서윤 씨(24·여)는 최근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은 ‘비건(vegan)’ 핸드크림 세트를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을 통해 친구에게 보냈다. 이 핸드크림은 꿀, 우유 같은 동물성 성분을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포장재까지 자연에서 분해되는 종이로 만들어져 친환경 소비를 하는 이들에게 인기 있다. 선물을 받은 친구는 이틀 뒤 “네 덕에 착한 소비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최 씨는 “비건의 가치를 실천하고 공유할 수 있어서 비건 제품을 선물했다”고 밝혔다. 최 씨처럼 선물하기 기능을 통해 비건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가치소비’를 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이 비건 제품을 선물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가치소비는 친환경 등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금액을 더 지불할 용의가 있는 소비를 말한다. 12일 네이버쇼핑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선물하기’ 기능을 통해 거래된 비건 상품 거래액은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약 10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비건 제품의 주문량도 전년 동기 대비 8배가량으로 늘었다. 선물용 비건 제품은 식생활뿐만 아니라 뷰티, 패션 등 다양한 분야로 뻗어가고 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코너에서 판매된 비건 상품 수는 올 3월 기준 80여 개나 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이 같은 비건 선물 문화가 대중에게는 생소했던 채식주의를 확산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가 비건 상품을 선물하는 행위는 기업의 견본품 제공과 비슷한 효과를 지닌다”며 “비건이 아닌 소비자들에게도 비건 제품을 체험할 계기를 마련해줌으로써 체험에 만족한 이들이 재구매를 하거나 지인에게도 선물을 하는 연쇄적 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입점해 있는 비건 화장품 브랜드 ‘멜릭서’의 립밤은 동물성 재료 대신 식물성 재료인 아가베와 시어버터로 만들어졌다. ‘동물의 희생 없이 좋은 가방을 만든다’는 구호를 내건 브랜드 ‘프록시엘’의 닥나무 껍질과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비건 토트백도 인기를 얻고 있다. 구매자들은 인터넷에 “비건 가죽이란 점이 마음에 들었는데 만져보니 명품 못지않다” “남자친구 선물로 구매했는데 정말 좋아했다”는 리뷰를 남겼다. 비건 식품도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같은 디저트로 다양화되고 있다. 롯데제과 아이스크림 브랜드 나뚜루는 지난해 5월 국내 최초 비건 인증 아이스크림 2종(코코넛 파인애플, 캐슈넛 바닐라)을 내놓은 뒤 이 제품을 약 23만 개 판매했다. 올 3월 신제품인 퓨어 코코넛을 추가해 총 3종의 비건 아이스크림 라인업을 갖춘 뒤 비건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아예 비건 제품들을 모아 파는 ‘비건 편집숍’도 생겼다. 올 2월 문을 연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입점한 클린 뷰티 브랜드 편집숍 ‘비클린’에는 클린 뷰티 브랜드 30여 개가 입점해 있다. 동물 실험을 진행하지 않는 호주 화장품 브랜드 ‘케빈머피’가 대표적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친환경, 비건 등 윤리적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가 떠오르고 있어 클린 뷰티 콘셉트의 편집숍을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채소와 과일 정육 등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브랜드인 ‘세븐팜’을 선보인다고 12일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동네 편의점에서 신선식품을 사서 집에서 요리하는 ‘홈쿡 소비자’가 늘어난 데에 따른 전략이다. ‘가깝고 편리한 도심 속 오아시스 농장’을 내세운 세븐팜은 소용량 채소와 과일뿐 아니라 육류와 수산물까지 판매한다. 세븐일레븐에서는 올 들어 이달 10일까지 채소와 과일 매출 모두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증가했다. 이 기간 냉동육류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110%)으로 급증했다. 세븐일레븐은 전국 주요 주택가 상권 400여 곳을 세븐팜 특화점포로 지정해 세븐팜 전용존으로 운영하고 올해 안에 이를 100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세븐팜 전용존에 채소 8종과 과일 5종이 우선 출시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명품시장 ‘30대 럭비남’이 튄다 결혼 4년 차인 회사원 박모 씨(34)는 지난해 8월 900만 원대 시계를 산 뒤 올 1월에는 1165만 원짜리 시계를 샀다. 세후 월급이 500만 원 남짓이지만 아이가 없어 큰 부담은 없었다. 박 씨는 “지금 아니면 나를 위해 돈을 쓸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억눌렸던 소비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하는 ‘보복 소비’로 고가품 매출이 급증하는 가운데 지난해 명품 분야에서 30대 남성의 구매액 신장률이 다른 모든 연령대보다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럭셔리 제품을 즐기는 비혼·비출산의 30대 남성을 뜻하는 ‘럭비남’이 고가품 소비 시장을 주도하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와 공동으로 명품 구매 경험이 있는 20∼60대 남녀 110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30대 남성은 명품을 살 때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개성 표현의 수단으로 럭셔리 상품을 선호하는 등 여성이나 다른 연령대와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을 보였다. 명품 가격이 구매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30대 남성의 52.7%는 ‘원하는 상품이면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지출한다’고 응답했다. 럭비남은 명품 구매 이유로 ‘개성 표현’(31.6%)을 1순위로 꼽았다. 지난해 국내 주요 백화점에서 30대 남성의 명품 매출 전년 대비 신장률은 △신세계백화점 40.1% △롯데백화점 41.3% △갤러리아백화점 44%로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혼인 연령이 높아지면서 가족 부양에 대한 부담이 작아진 30대 남성들이 자신을 위한 소비를 하며 명품 시장 성장세를 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처자식에 희생’은 옛말… 30대男 “내돈내산 명품, 날 위한 선물” 명품소비 주축으로 떠오른 ‘럭비남’대학 강사인 정한두 씨(34)는 최근 300만 원대 트렌치코트와 100만 원대 캐시미어 머플러를 샀다. 정 씨는 “고가이긴 해도 빚내서 사는 건 아니라 부담이 크진 않다”며 “마음에 들고 살 수 있겠다 싶으면 그냥 사는 편”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고가 명품시장의 핵심 고객으로 떠오른 ‘럭비남’(럭셔리 상품을 사는 30대 비혼 남성)은 가족을 위한 희생에 익숙했던 과거 30대 남성과는 달리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자신을 위해 과감히 쓰고 있다. 부모의 지원을 많이 받고 자랐지만 정작 부모보다 부유하게 살기는 어려워진 세대가 이른바 ‘스몰 플렉스(flex·자기과시)’ 소비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30대 가장’의 희생은 옛말 부모님 집에 사는 미혼 직장인 김모 씨(30)는 최근 1년간 명품 스니커즈(145만 원), 지갑(52만 원), 운동화(40만 원), 티셔츠(35만 원) 등 약 280만 원어치의 명품을 구매했다. 김 씨는 “결혼을 안 해서 가장 역할을 안 해도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금전적으로는 여유가 생기다 보니 좋아하는 브랜드 위주로 명품을 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럭비남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로 혼인 연령이 높아진 점을 꼽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남성의 초혼 평균 나이는 29.3세였지만 지난해는 33.2세로 3.9세 높아졌다. 20년 전에는 가장이었던 30대 남성 중 상당수가 지금은 쓸 수 있는 돈이 가장 많은 싱글인 셈이다. 기혼 30대도 과거 30대 가장과는 소비 패턴이 다르다.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출산을 미루는 이들도 많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 한국의 30대 남성은 결혼 후 본인을 희생하고 소비를 양보하는 계층이었다”며 “하지만 비혼 30대가 늘어나면서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자신을 위해 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용빈 씨(31)는 지난해 200만 원대 가방 두 개와 70만 원대 신발 등을 샀다. 월 소득은 400만 원대. 지난달 결혼했지만 명품 소비를 줄일 생각은 없다. 김 씨는 “아이는 최소 3년 후에 가질 예정”이라며 “3개월에 한 번꼴로 구매하는 정도라 부담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82∼1991년생인 현재의 30대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자란 동시에 장기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부모보다 더 잘살기 어려워진 첫 세대다. 양수진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X세대까지만 해도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부모가 ‘독립적 행동’을 강조하며 양육했다면 현재 30대는 부모의 완벽한 지원을 받고 자란 세대란 점에서 자신을 위한 소비에 거침이 없다”고 말했다. ○ “자기만족을 위해 지갑 연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30대는 2030세대 중 그나마 경제적 성취의 기회가 있는 연령대로 경쟁적 사회에서 일종의 탈출구이자 위안으로서 ‘플렉스성’ 소비를 즐긴다”고 했다. 이어 “이들의 명품 소비는 주택, 외제차 구매 등과는 대비되는 합리적 한도 내에서의 ‘스몰 플렉스’적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럭비남은 명품을 고를 때 ‘디자인’(31.6%)을 첫 번째 고려 요소로 꼽았다. 명품을 착용한 뒤의 느낌으로는 ‘나를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29.8%)는 점을 가장 많이 들었다. 이는 40∼60대 남성이 명품을 사는 이유로 ‘브랜드 인지도’를 꼽고 착용 후 느낌으로 ‘자신감 있고 당당해진다’고 한 것과 대비된다. 최근 1년간 400만 원짜리 백팩을 포함해 20여 가지 명품 제품을 산 회사원 김신 씨(36)는 명품을 사는 이유로 “브랜드 정체성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주현(가명·29) 씨는 옷은 중저가 브랜드에서 사도 포인트를 주기 위한 신발과 액세서리는 명품을 산다. 이처럼 자기만족적 소비에 과감히 지출하는 럭비남이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주요 백화점들은 앞다퉈 남성 명품관, 남성 전용 편집숍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부터 압구정본점 4층을 남성 명품관으로 꾸미고 프라다 남성 전용 브랜드인 ‘프라다 워모’ 등을 유치했다. 갤러리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본점도 최근 남성 의류관을 명품관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패션, 스타일에 열린 30대 남성에겐 핸드백으로 대표됐던 여성 전유물로서의 명품 또한 자신의 이미지 연출을 위해 충분히 활용할 만한 도구가 된 것”이라며 “이들이 비대면 시대에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명품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값에 한정판 득템”… 30대, 중고명품 열풍도 주도 30대男 10명 중 7명 “구매해봤다”‘실속파’ 인식에 리셀 거부감 적어중고명품 성장폭, 새 제품의 4배최근 개점한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은 9일 오후 평일인데도 에스컬레이터가 두 줄 모두 꽉 들어찰 정도로 인파로 북적였다. 구찌, 나이키 등 인기 매장은 10여 팀이 입장 대기 중이었는데 30대 남성도 적지 않았다. 한정판 스니커즈 리셀매장인 BGZT랩을 찾은 곽휘도 씨(36)는 “재택근무를 일찍 마치고 나와봤다”며 “독특한 신발에 관심이 많다. 최근 오프화이트 오드시를 60만 원 정도 주고 온라인에서 구매했다”고 말했다. 럭비남은 최근 급속히 확대되는 국내 중고 명품 시장에서도 핵심 소비자다. 이번 설문조사에 따르면 30대 남성 10명 중 7명(70.2%)은 중고 명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다른 성별·연령대에 비해 20%포인트 더 높은 수치다. 중고 명품 시장은 세계적으로도 유망한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글로벌 명품 시장 규모는 2018년 대비 2021년 약 3% 성장하고, 중고 명품 시장은 12%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고 명품 시장의 성장 배경에는 중고 상품과 리셀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는 MZ세대가 있다는 것이 공통의 분석이다. 설문에서도 럭비남은 가격(37.5%), 자원재활용(30%), 희소성(15%) 등의 측면에서 중고 명품을 구매한다고 응답했다. 중고 명품 이용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는다’(24.6%), ‘실속파 소비자’(21%)라고 답했다. 문성명 씨(30)는 지난해 150만 원짜리 명품 브랜드 카디건을 중고 거래를 통해 45만 원에 샀다. 문 씨는 “정가의 절반 가격으로도 명품을 누릴 수 있고, 상품의 상태도 대체로 양호하다는 점이 중고 명품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들을 겨냥해 더현대서울은 백화점 업계 처음으로 중고 명품 시계, 가구, 스니커즈 등을 파는 리셀숍을 다양하게 입점시켰다. 분당AK몰은 중고 명품을 판매하는 무인 캐비닛을 설치했다. 온라인 중고 명품 플랫폼 세컨핸즈 관계자는 “명품 시장에서 남성 모델군이 많아지고 있는 만큼 리셀 시장에서 역시 이들이 주축이 된 성장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김하경 whatsup@donga.com·이지윤·황태호 기자}

“누가 개발하건 신축 아파트 싸게 지어주면 좋죠.”(서울 도봉구 방학역 인근 주민) “오른 시세만큼 제대로 보상을 해줄까요. 더군다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요?”(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 주민) 지난달 31일 공공이 역세권이나 노후 주거지를 고층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후보지로 선정된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후보지 선정을 철회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등장했고, 공공 주도 개발 방식을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간에 갈등 조짐이 있는 지역도 있었다. ○ 공공개발 찬반 놓고 주민 갈등 조짐도 1일 찾은 서울 은평구 옛 증산4구역이 대표적이다. 지하철 6호선 증산역에 맞닿은 동네로 오래된 4층 이하 빌라와 단독주택이 옹기종이 모여 있다. 정부 계획대로 개발되면 아파트 4139채가 들어설 수 있다. 후보지 21곳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알짜 입지’로 꼽히는 만큼 찬반이 극명하게 갈렸다. 2019년 6월 뉴타운 해제 이후 외지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이해관계가 복잡해졌다. 공공주도 개발을 찬성하는 소유주로 이뤄진 ‘재개발 추진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은평구에 후보지 지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민간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민도 적지 않다. 김연기 전 증산4구역 재개발 추진위원장은 “LH를 어떻게 믿고 소유권을 넘기냐”고 말했다. 그를 포함한 주민 371명은 후보지 발표 직전인 지난달 29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반대 입장문까지 전달했다.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전망도 엇갈렸다. 사업을 추진하려면 소유주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한 공인중개사는 “신속한 사업 추진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낙관적이었다. 반면 다른 공인중개사는 “대지 면적이 넓은 단독주택 소유주들은 시세보다 싸게 땅을 넘겨야 하는데 선뜻 동의해주겠냐”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 공공개발 후보지 지정 철회 청원 등장 소유주들은 공공기관이 땅값을 시세대로 보상해주겠냐라는 점에 의구심을 보였다. 도심 공공개발은 소유주가 LH 등 공공기관에 소유권을 완전히 넘기되 아파트나 상가 입주권을 받는 방식이다. 기존 자산 가치에 대한 감정평가액은 통상 시세의 70% 정도이기 때문이다. 최근 시세가 크게 오른 곳에서는 공공개발이 손해라는 인식이 강했다. 지하철 3·6호선 연신내역 주변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이 연신내역을 지나게 되면서 지난해 투자자가 대거 유입됐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지난해 매물이 없어서 못 팔았을 정도”라며 “시세가 급등해 감정가가 실거래가의 3분의 1에 그칠 텐데 누가 공공개발을 하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한 건물주는 “보상만 제대로 해준다면 LH가 시행하더라도 동의해줄 의향이 있다”고도 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영등포역 역세권에 대한 후보지 지정을 철회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 일대 주민들은 공공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공공재개발 추진 지역 일부가 도심 공공개발 후보지인 영등포역 역세권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이 도심 공공개발로 추진되면 공공재개발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는 이달부터 주민설명회를 열고 사업계획을 제시하며 주민 설득에 나선다. 윤성원 국토부 1차관은 이날 라디오에서 “민간 개발을 원하면 그걸 선택하면 된다”면서도 “우리 사업(도심 공공개발)은 공공성을 갖고 하기에 지역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이지윤 기자}

서울 영등포역과 연신내역, 가산디지털단지역 등 도심 역세권과 노후 저층 주거지 21곳을 공공 주도로 개발해 주택 2만5000채를 짓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사업’이 추진된다. 이는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주도로 내놓은 2·4공급대책의 핵심이다. 이른바 ‘변창흠표 부동산대책’이 첫 단추를 끼운 셈이지만 사업 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의 신뢰가 떨어진 상태에서 토지 소유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판교 신도시급 물량 공급한다는 정부 이날 발표된 후보지는 서울시와 각 구청이 제안한 62곳 중 노후도, 사업성 등을 따져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다고 판단된 지역이다. 지역별로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영등포구), 가산디지털단지역(금천구), 방학역(도봉구) 등 역세권 9곳 △도봉구 창동 일대와 창2동 주민센터 등 준공업지역 2곳 △수색14구역, 증산4구역 등 저층 주거지 10곳이다. 저층 주거지에는 과거 뉴타운이었다가 해제된 은평구 신길2·4·15구역도 포함됐다. 예상 주택 공급량은 2만5000여 채로 2기 신도시인 판교 입주 물량(2만6000여 채)과 비슷하다. 국토부는 자체 추산한 결과 도심 공공개발 참여 시 분양가는 시세의 63.9% 수준으로 낮아지고 동시에 소유주 분담금도 자체 재개발보다 30% 줄어든다고 밝혔다. 분양가를 높여야 분담금이 줄지만 공공기관이 시행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 LH 사태로 떨어진 신뢰…난관 많을 듯 도심공공개발에 참여한 토지주는 소유권을 LH 등에 완전히 넘기고 나중에 아파트나 상가를 분양받는다. 신축 아파트의 20∼30%는 공공 자가주택과 공공임대로 내놓아야 한다. 소유권을 LH 등에 완전히 넘기는 것이다. 용적률 규제 완화 등의 당근이 있지만 공공 주도 방식의 개발에 땅주인들이 얼마나 호응할지 미지수다. 도심 공공개발은 소유주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후보지 선정을 위한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은 없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자문센터 팀장은 “LH 임직원의 땅 투기 의혹으로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져 소유주 동의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실제 공급은 정부 계획보다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상가 소유주의 동의를 받는 과정도 쉽지 않다. 개발 기간 임대수익을 포기해야 하는 데다 건물을 계속 갖고 있는 게 수익 측면에서 더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보지로 선정된 영등포역 인근 공인중개사는 “70평짜리 상가 월세가 1500만 원인 동네에서 신축 아파트 하나 받자고 목 좋은 상가를 넘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대통령선거 등 정치 이슈도 변수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 추진하던 보금자리주택이 박근혜 정부 때 백지화됐다”며 “차기 대통령에 따라 공공주도 공급 정책이 달라질 수 있는데 굳이 서둘러 참여할 소유주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도심 공공개발을 뒷받침하는 법 개정도 제때 이뤄질지 미지수다. 지난달 24일 발의된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은 LH 사태 여파로 1개월 넘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국토부는 이런 우려에도 주민설명회를 거쳐 올 7월부터 공공개발 사업예정지구를 지정할 계획이다. 김호경 kimhk@donga.com·정순구·이지윤 기자}

“임대주택 보증금 5000만 원과 6억7000만 원짜리 17평형 아파트. 그것만 따져도 6억 원 넘게 차이 나네요.”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연구팀이 만든 ‘정치·사회 성향 조사’에서 진보에서 4번째로 나온 강지은 씨(가명·25)와 보수에서 30번째를 기록한 박용화 씨(32). 결과 값은 정 가운데가 중도라면, 보수와 진보는 각각 1∼50까지 나뉘고 성향이 강해질수록 숫자가 작아진다. 두 청년은 집 얘기를 나누다가 흠칫 놀랐다. 생물학적으로 일곱 살 차. 한참 선배긴 하지만 같은 청년들인데. 성향보다 더 멀어 보이는 자산의 차이가 서로에게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은은 청년임대주택에 산다. 보증금 5000만 원 말곤 자산이랄 것도 없다. 반면 용화는 2018년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 3억5000만 원을 대출받아 경기 성남시 분당에 4억 원짜리 집을 마련했다. 1995년 지은 낡은 아파트라 주위에선 반대했지만 현재 집값은 실거래가로 6억7000만 원이다. 손에 현금을 쥔 건 아니지만 2년 만에 2억7000만 원을 번 셈이다. 그들의 격차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청년들은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만나자마자 서로 다르다는 걸 알아봤다. 지은에게 집은 ‘생존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용화는 그보다 ‘자산을 불릴 투자처’란 인식이 강했다. 대화는 초반부터 날이 섰고 서로를 납득하지 못했다. ○ “임대주택은 안전망” vs “빈부격차 더 키워” ▽지은=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수도권 청년임대주택 10곳에 지원서를 냈어요. 9곳 떨어지고 딱 한 군데 붙었어요. 취업만큼 어렵더라고요. 하도 떨어지니 버려진 느낌마저 들었어요. 운 좋게 입주했지만 당장 살 곳 없는 친구들이 더 많아요. 청년임대주택 공급을 지금보다 훨씬 늘려야 해요. ▽용화=아뇨. 전 청년 대상 공공임대를 확대하면 굉장히 나쁜 결과를 낳을 것 같아요. 제가 2018년 처음 집 살 때 가진 돈이 5000만 원뿐이었어요. 부모님도 말렸어요. 집 사려면 3억, 4억 원 대출받아야 하는데, 너무 무리라고요. 그렇지만 전 확신이 있었어요. 집값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저는 집을 사는 경험을 통해 좋은 자산을 건전하게 모으는 프로세스(과정)를 익혔어요. ▽지은=제가 놓치고 있는 경험인 건 맞아요. 그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한편으로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못 보는 것 아닌가요. 제가 용화 씨였다면 과연 그때 내 집을 살 수 있었을까요.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용화 씨는 연봉이 어느 정도 되시나요. ▽용화=5000만∼6000만 원 수준으로 받고 있어요. ▽지은=용화 씨는 연봉이 높아서 이자를 갚아나갈 능력이 있겠지만요. 저는 인턴 월급 150만 원 받아요. 정규직 전환이 돼도 연봉 3000만 원 받으면 많이 받는 거죠. 도전할 근간조차 없는 청년들을 위해 중간 사다리로 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용화=집을 살 때 소득이 미치는 영향력은 한 줌 재밖에 안 된다고 봐요. 집값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보다 훨씬 높은데, 무슨 수로 월급 모아 따라가요. 저는 월급의 절반을 전부 주식에 투자해요. 지난해 2배 넘는 수익을 봤어요. 근로소득 말고 자산을 불릴 방법을 찾아야 해요. ▽지은=태어날 때부터 환경의 차이가 있잖아요. 서울과 지역의 차이도 크다고 봐요. 저는 고향이 대전인데 그쪽만 해도 분위기가 달라요. 집이 자산을 불릴 투자처라고 생각도 못 해봤어요. 지역뿐 아니라 부모의 조건 등 환경의 격차가 커요. 아예 자산을 불릴 방법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청년들도 있단 거예요. 이들에게는 안전망이 필요해요. ○ “청년에게 ‘내 집’ 꿈을 빼앗지 말아야” 2시간 가까이 이어진 평행선. 청년들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한마디. “이제 우리 세대는 집 마련할 기회조차 뺏겼나 봐요.” 청년들은 어느새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화=그런 청년들에게도 뭐가 도움이 될지 생각해야 해요. 임대주택은 임시적인 안전망일 순 있어요. 지금 청년세대는 집을 마련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잖아요. 그런 미봉책에 예산을 쓰기보단, 차라리 그 돈 아껴서 ‘이 정도까지 해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출 규제를 완화해주면 좋겠어요. 청년들이 전부 자산가가 될 ‘기회’를 달라는 거죠. ▽지은=솔직히 임대주택에서 안정을 얻었지만 여기서 안주할까 봐 걱정되긴 해요. 임대주택만 전전할 순 없잖아요. 저도 언젠간 집을 마련하고 싶은데, 지금은 대출 규제가 너무 엄격해요. 아직 출발조차 하지 못한 청년들에게까지 장벽을 둬버렸어요. 점점 더 ‘기회’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용화=동의해요. 사회 초년생 대상 장기저리 대출정책이 있긴 해요. 하지만 신혼부부나 저소득층만 대상이에요. 이건 공정하지 않아요. 소득 기준으로 제한을 걸면 오히려 성실한 일개미 청년들이 낙담하게 돼요. ▽지은=아직 주택을 가져보지 못했지만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면 좋겠어요. 성실하게 일하며 빚을 갚아나갈 능력이 있는 청년들은 집을 가질 수 있어야죠. ▽용화=대출규제 완화뿐 아니라 교육도 해법이 될 수 있어요. 지금은 초중고교 12년을 다니며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받지 못해요. 자산을 어떻게 불려 나갈지, 대출을 어디서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지은=맞아요. 국영수만 냅다 파는 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 학교는 삶을 가르쳐주는 공간이어야죠. 스무 살 처음 독립할 때 당장 서울 월세가 얼마인지도 몰랐어요. 기댈 곳은 없고 사회에 버려졌다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용화=교육만큼은 공공의 역할을 믿어요. 사회가 모든 청년에게 집을 줄 순 없어요. 하지만 어떻게 내 집을 마련하고 자산가가 될 수 있는지 배울 수는 있어요. 더군다나 공교육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접근할 기회잖아요. ▽지은=청년임대주택에 지원하면서 앞으로 정보 격차가 자산 격차를 결정지을 수 있겠단 생각을 처음 했어요. 이 제도를 몰랐다면 더 비싼 월세를 내고 살았을 거예요. ▽용화=시간과 예산을 할애해서 청년을 자산가로 키워낼 교육 제도를 마련해야 해요. 결국 진보든 보수든 청년들이 원하는 건 ‘안정적인 경제력’ 아닌가요. 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 인터뷰 당시 용화만 썼던 ‘기회’라는 단어는 일대일 대화에선 용화가 10차례, 지은이 6차례씩 사용한 공통의 단어가 됐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이들은 청년세대가 집 살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대화 전문을 분석한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모든 청년에게 자산가가 될 기회를 줘야 한다는 한 청년의 말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든 기성세대가 되새겨야 할 말”이라고 했다. 이제 그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자가 아파트와 임대주택. 하지만 매일 쓸고 닦으며 일상을 꾸려나가는 소중한 장소인 건 누구에게나 같다. 안심하고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거처. 집은 청년들을 보듬어줄 공간이어야 한다. 그들을 내쫓는 벽이 아닌.이소연 always99@donga.com·이지윤·김윤이 기자 ※ 동아닷컴 이용자들은 위의 링크를 클릭하여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에 대한 본인의 성향을 측정해 볼 수 있습니다.네이버·다음 이용자들은 URL을 복사하여 검색창에 붙여넣기 하시면 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 주도로 주택을 공급하는 ‘공공재개발 사업’ 2차 후보지로 선정된 지역의 주민들이 사업 참여를 유보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만 해도 이 지역들 중 상당수는 공공재개발에 대한 주민 찬성률이 70%를 넘는 등 공공 주도 방식에 긍정적이었지만 최근 LH 임직원의 땅 투기 의혹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분위기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30일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성북구 성북1구역이 대표적인 예다. 이 지역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과 인접한 역세권으로 과거 민간 재개발을 추진하다 무산되면서 공공재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소유주 76%가 공공재개발 후보지 신청에 동의했을 정도로 공공재개발에 적극적이었다. 성북1구역 한 주민은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생겨 한껏 들떠있다”며 “일단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후보지에서도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주민 동의율이 약 60%였던 성북구 ‘장위8구역’ 인근 공인중개사는 “아무래도 임대주택이 많으면 사업성이 떨어지게 된다”며 “새 서울시장이 민간 재개발을 적극 추진한다면 공공재개발에 동의했던 주민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공재개발은 원래 용적률, 기부채납 등의 조건이 민간 재개발보다 유리하다는 게 장점이었다. 하지만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모두 민간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향후 서울시의 방침에 따라 이 장점이 반감되거나 민간 재개발이 더 유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LH 사태 이후 공공에 대한 불신이 커진 점도 사업 추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공공재개발은 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단독 시행하거나 민간 조합과 공동 시행하는 방식이다. 성북구 ‘장위9구역’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LH 임직원 투기 의혹이 불거진 뒤 ‘LH를 어떻게 믿고 사업을 맡기냐’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고 전했다. 일부 지역에선 공공재개발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강동구 ‘천호A1-1구역’ 인근 공인중개사는 “한강변인 데다 역세권으로 입지가 좋다 보니 민간 재개발로도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주민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실제 1차 후보지 중 알짜로 꼽힌 동작구 ‘흑석2구역’은 규제 완화가 기대에 못 미친다며 사업 철회 의사를 내비쳤다가 정부가 추가 혜택을 검토하자 다시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올해 1월 서울시가 추천한 공공재개발 사업지 28곳의 노후도와 사업 실현 가능성 등을 따져 29일 2차 후보지 16곳을 최종 선정했다. 이들 지역에서 2만 채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게 정부 계산이지만 소유주 3분의 2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만큼 실제 공급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보궐선거나 LH 사태 등으로 정부 계획보다 사업 일정이 지연되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이지윤 기자}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에서 1975년부터 46년째 생선가게를 운영해온 김모 씨는 2차, 3차 재난지원금을 모두 받지 못했다. 코로나19 이전보다 매출이 급감했지만 현금 결제가 많아 매출 감소 사실을 증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무사에게 상담을 받고 서류 준비에 나섰지만 도무지 감당이 안 돼 사실상 지원금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인왕시장은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추석을 앞두고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했던 전통시장이다. 본보 취재팀이 만난 이곳 상인들은 현금 결제가 많은 시장의 특성 때문에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37년째 식료품 가게를 운영해온 A 씨는 “식료품 원재료 가격은 꾸준히 오르는데 시장의 특성상 섣불리 소비자 가격을 올리지 못해 적자 폭이 커지고 있다”며 “피해가 큰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더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차등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부 상인은 일회성 지원 대신 전통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장기 대책을 제안했다.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 씨는 “전통시장 주변에 먹거리와 볼거리를 늘려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게 더 실효성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공공기관 내부 정보를 활용한 부동산 투기 이익을 몰수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정작 이미 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은 이 법을 적용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헌 가능성이 높아 개정안을 소급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는 24일 본회의에서 이른바 ‘투기 및 부패방지법’으로 불리는 공공주택특별법, 한국토지주택공사법,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가운데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은 미공개 개발 정보를 누설하거나 투기에 활용한 공직자는 물론이고 이런 정보를 넘겨받은 제3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은 공공주택 업무를 하는 공직자와 관련 업체 종사자가 미공개 정보를 부정하게 이용할 때만 처벌이 가능하다. 처벌 수위도 대폭 높였다. 현재는 법 위반 시 5년 이하 징역과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지만 개정안은 부당 이익 규모에 따라 최고 무기징역형을 받도록 했다. 부당 행위로 얻은 이익의 3∼5배를 벌금으로 부과하고 투기 이익을 몰수하거나 추징할 수 있는 조항도 신설했다. 당초 ‘투기 및 부패방지법’ 개정안 중 상당수에 재산상 이익 몰수 규정을 소급 적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신도시 투기 의혹을 받는 LH 직원들의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달 1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는 개정안에서 소급 적용 조항을 빼기로 했다. 위헌 소지가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국토위 소위원장)은 이날 “친일 재산이나 부패 재산에만 예외적으로 (소급 적용이) 가능하다”며 소급 적용을 강하게 반대했다. 이후 23일 국회 법사위에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토위에선 소급이 어려운 것으로 해석했지만 입법적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결국 소급 적용 조항은 반영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과거에 시작돼 현재도 진행 중인 사실관계에 대해선 공익적 필요에 따라 소급(부진정 소급)할 수도 있지만 토지 투기에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현성 법무법인 자연수 변호사는 “아파트 재건축이 추진 중인데 재건축 규제가 생기는 건 연속적인 행위라 부진정 소급 입법에 해당할 수 있지만 땅을 사는 것과 파는 건 별개의 행위여서 소급이 어렵다”고 했다. LH가 인사 및 보수 규정을 개정해 투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직원들을 징계한 뒤 이들의 월급을 삭감하는 방안은 가능하다. 다만 이 역시 퇴직자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투기 이익 몰수는 힘들지만 투기 의혹이 불거진 LH 직원들이 시세 차익을 크게 남기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LH 규정을 개정해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들에게 현금 대신 땅을 주는 대토보상이나 ‘협의 양도인 택지’ 부여 자격을 주지 않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신도시 예정지 땅을 매입한 사람은 대토보상과 협의 양도인 택지를 받아야 시세 차익을 남길 수 있다. 이런 기회가 박탈되면 해당 직원들은 시세보다 싼 감정평가액에 토지를 넘겨야 한다. 이렇게 하면 사실상 투기 이익의 상당 부분을 환수할 수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하지만 통상 현금 보상액이 초기 투자금보다 많은 게 현실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1일 “투기 이익을 빠짐없이 환수하겠다”고 했지만 LH 규정 개정만으로 투기 이익을 전액 돌려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김호경 kimhk@donga.com·이지윤 기자}

“차로가 폐쇄된 줄 정말 몰랐습니다. 회의 시간이 다 돼서요, 한 번만 유턴하면 안 될까요.” 8일 오전 10시경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여느 때처럼 출근길에 오른 50대 운전자 A 씨는 사직로에서 시청 방향으로 핸들을 꺾어 세종대로로 진입한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청 방면으로 연결된 광화문광장 서쪽 세종대로가 광장 재구조화 공사로 폐쇄되며 길이 막힌 상황. 오도 가도 못한 채 도로 한가운데 멈춰선 A 씨는 결국 차량을 돌려 불법 유턴을 시도했다. 교통경찰이 부랴부랴 A 씨 차량 앞에 다가가 “여기로 나오시면 어떡하냐”고 막아 세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A 씨 차량 앞뒤로 길게 늘어선 차량들은 연신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서울시가 광장 서쪽 세종대로를 폐쇄한 이후 평일 첫 출근길에 오른 시민들은 도심 곳곳에서 혼란을 겪었다. 앞서 서울시는 6일 0시부터 광화문광장 서쪽 도로를 폐쇄하고 동쪽 세종대로에서 양방향 통행이 이뤄지도록 교통체계를 개편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세종대로 전 구간 평균 통행속도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사직로 등 광장 일대는 오전 출근길 내내 정체가 이어졌다. 실제 이날 오전 사직로에서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가는 차량의 평균 속도는 지난주에 비해 13%가량 감소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공사가 시작되기 전인 1일 오전(7∼9시) 시속 21.3km였던 평균 속도는 8일 18.6km로 줄었다. 사직로 일대 도로에 차량 정체가 극심해지면서 자하문로 일대를 지나는 차량들도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이날 동아일보 취재팀과 동행한 김태완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차량 통행량보다 도로 용량이 줄어들면서 발생한 정체”라고 진단했다. 서울시는 서측 차로를 폐쇄하면서 우회전 차로 2개를 1개로 줄였다. 김 교수는 “교통신호 체계 개선과 우회로 등 차량 분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근 우회로로 차량이 몰리며 골목길에도 혼잡이 가중됐다. 오후 7시경 세종로공원 앞 도로에는 차량 접촉 사고가 발생했다. 현장에 나온 보험사 관계자는 “갑자기 차량이 몰리며 서로 먼저 가려다 사고가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고로 일대 도로는 5분가량 차량 정체가 극심했다. 한 교통경찰은 현장점검에 나온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과 만나 “세종로 교차로에서 우회전 차량과 좌회전 차량이 마주치며 충돌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통연구원은 “기존에는 세종대로 중앙에 놓인 광화문광장이 분리대 역할을 하며 좌회전 차량과 우회전 차량을 분산시켜 주는 효과를 냈다”며 “도로가 동쪽으로 집중되면서 세종로 교차로에서 좌회전, 유턴, 우회전 차량이 몰려 차량 간 충돌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충고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7∼9개로 줄면서 유턴할 때 여유 공간이 줄어든 건 사실”이라며 “교통 신호 개선 등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이소연 always99@donga.com·강승현·이지윤 기자}

서울대 교수가 자신이 집필·번역한 책 여러 권을 강의 ‘필수 교재’로 지정하자 학생들이 “구매 강요”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공정성에 민감한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의 특징이 드러나는 사례라는 해석도 나온다. 5일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서울대 게시판에는 “이번 학기 교육학개론 주 교재 6권 중 5권이 교수님이 직접 집필하거나 번역한 책이다. 책을 안 사면 풀 수도 없는 오픈북 퀴즈를 매주 내면서 ‘책을 사라고 강매한 적은 없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글이 게시됐다. 해당 수업은 이 대학 교육학과 A 교수가 진행하는 ‘교육학개론’이다. A 교수는 “교재 구입이 필수는 아니다”라고 했지만 학생들은 “교수가 매주 교재를 읽고 ‘쪽글’을 제출하게 하는가 하면 불시에 오픈북 시험을 보겠다고 공지했다”고 주장했다. 교육학개론은 사범대 학생이 교직 이수와 졸업을 위해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다. 이번 교육학개론 강의는 단 2개로 학생들은 “수강신청 자체가 어려워 선택권이 없다”고 호소한다. 교육학개론 강의계획서에 따르면 A 교수는 자신이 집필한 책 1권과 번역한 4권 등을 포함해 책 6권을 주 교재로 지정했다. A 교수가 집필·번역한 5권 가격을 합하면 9만500원으로 수업 정원은 100명이다. 학생들은 A 교수의 요구가 “교수의 지위를 이용한 갑질”이라고 주장했다. A 교수가 2019년 9월 더불어민주당이 대학 입시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발족시킨 ‘교육공정성강화특별위원회’에 외부 전문가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가중됐다. 일부 학생은 “민주당 교육공정성위원회 위원으로 참가하신 분인데 교재 10만 원어치를 살 돈이 없는 학생들은 제대로 학점을 받지 못하는 게 공정한 교육인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A 교수는 학생들의 반발에 주 교재를 6권에서 3권으로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A 교수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수업 관련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학교, 학생들과 해결하면 될 일”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대 교수는 “MZ세대는 절차의 합리성을 중시하는 세대로 ‘이 책이 왜 필요한지, 어떤 취지에서 읽어야 하는지’를 충분히 설득해야 한다”며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취업난이 극심해지며 학생들이 평가 과정에 훨씬 예민해졌다”고 전했다. 최근 대학가에선 공정성 이슈를 놓고 MZ세대가 반발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 연세대 학생들이 학점 포기 관련 학칙 개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진행된 비대면 시험에서 오픈북 시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생이 책을 펴보는 등 부정행위를 한 게 발단이 됐다. 학생들은 이 수업 수강을 철회하려 했으나 ‘재수강 3회 제한’ 조항이 정당한 선택을 가로막고 있다며 학칙 개정을 요구한 것이다. 같은 달 치러진 제10회 변호사시험 문제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모의시험 해설 자료와 유사하게 출제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공론화한 것도 MZ세대다. 이른바 ‘복붙(복사해 붙여넣기) 시험’ 논란에 법무부가 전원 만점 처리를 해결책으로 내놓으며 반발은 더 거셌다. 수험생들은 “문제 유출로 인한 불공정을 해소하겠다며 또 다른 불공정을 자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촛불집회로 부당하고 올바르지 않다고 느낀 현실을 비교적 짧은 시간 내 바꾼 경험이 있다. ‘참여를 통해 공정성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체득했기 때문에 공정성 이슈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이윤태 oldsport@donga.com·이지윤·이소연 기자}

“제게 주식 투자는 ‘응원한다’는 또 다른 표현이에요. 주식을 산다는 건 그 기업에 힘을 보태주는 거잖아요. 이왕이면 내가 진심으로 지켜주고 싶은 가치에 돈을 쓰고 싶었어요.” 취업준비생 이지흔 씨(25·여)는 지난해 12월 초 생애 처음으로 주식 계좌를 개설했다. 요즘 말로 주식 초보자를 뜻하는 ‘주린이’(주식+어린이)다. 시드머니(종잣돈)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달 30만 원씩 모아왔던 적금을 깨 마련했다. 요즘 또래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분위기다. 모였다 하면 주식 얘기를 할 정도다. 이 씨도 마땅한 투자처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1순위로 꼽은 체크리스트는 수익성이 아니었다. 바로 ‘선취력’(선함을 취하는 영향력)이었다. 기업 윤리, 소수자 배려, 수평적인 기업 문화 등…. 이 씨가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매수한 종목은 매일유업. 비록 10주를 보유한 소액 주주이지만 투자를 통해 얻은 심리적 참여도는 대주주 못지않다. 이 씨는 “매일유업은 해마다 적자가 나는 사업인데도 난치병 아이들을 위한 분유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며 “눈앞의 이익보다 우리 사회 소수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의 가치가 내 가치관과 맞았다. 그 가치를 지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에게는 주식 투자도 사회에 선취력을 끼칠 수 있는 참여 방식이 되고 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이 씨도 바이오 기업에 지원서를 낼 때 해당 기업이 진행하는 실험 절차를 꼼꼼히 살펴본다. 혹시나 동물권이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는지 확인한다. 연간 30만 원씩 기부용 적금 통장을 따로 들고 있을 정도다.○ MZ세대 “우리는 투자자이자 활동가” 주식 투자 열풍을 이끈 개미군단의 핵심 전력으로 MZ세대가 부상하고 있다. 청년 세대마저 빚까지 내 주식 투자에 뛰어든다는 우려도 없지 않지만, 소액일지라도 자신만의 가치를 고수하며 주식 투자에 나서는 청년들도 상당하다. 동아일보는 MZ세대 청년 7명을 심층 인터뷰해 이들의 특징을 분석해 봤다. 먼저 서울대 한규섭 교수팀과 함께 ‘주식’을 키워드로 MZ세대의 언어연결망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주식을 언급할 때 ‘가치관’과 ‘친환경’ ‘미래’ ‘세대’ 등의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 가차를 중시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다. 또 이들은 주식 투자라는 행위를 ‘생각’이나 ‘믿음’ ‘도움’ ‘힘’이란 단어와 연결지었다. 이재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일상생활에서도 작은 실천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추구하는 청년 세대에게는 주식 투자 자체도 하나의 사회 참여”라며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매수 요인은 ‘친환경’ ‘투명성’ 등 기업이 어떤 가치관을 추구하는가에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이 교수는 “투자의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성과 지표도 다르다”며 “내가 지지하는 기업에 얼마나 도움을 줬느냐, 기업이 내 믿음에 얼마나 부합했느냐가 심리적 만족감을 결정한다”고 진단했다. 대학생 고유나 씨(22·여)도 2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을 “투자자이자 활동가”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7월 생애 첫 주식 계좌를 개설한 고 씨가 주식 투자로 얻으려는 가치는 ‘환경 보호’다. 시드머니 300만 원을 쥐고 투자처를 고심하던 그는 이달 초 전기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한온시스템의 주식 30주를 매수했다. 고 씨는 “전기차 개발로 탄소 배출 등 환경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며 “주가가 높아서 눈여겨보다가 주가가 떨어진 타이밍을 잡아 매수했다”고 말했다. 투자로 얻은 수익은 환경단체에 기부하며 수익 환원에 앞장서기도 했다. 고 씨는 주식 계좌를 개설한 지난해 7월부터 한 환경보호단체에 매달 1만 원씩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부터는 2만 원으로 기부 액수를 올렸다. 고 씨는 “주식으로 번 수익을 조금이라도 기부하면서 실제 환경 보호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주식 투자를 통해 얻은 불로소득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투자 이유이자 목표”라고 했다. MZ세대에겐 나쁜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것도 원칙이 된다. 수익률이 좋고 배당금까지 나오는 효자 종목이라도 인체에 해로운 화학 성분이 들어간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고 한다. 고 씨는 “몇몇 사람들은 제게 ‘주식 투자로는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주식 투자를 하면서 사회를 바꾸고 있다는 느낌을 얻는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김정윤 씨(25·여)에게도 주식 투자란 “정체성과 신념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방송작가 지망생이던 김 씨는 유명 작가의 문하생을 알음알음 채용하는 관행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관행을 바꾸는 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스튜디오드래곤이란 회사를 알게 됐다.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신인 작가 채용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놨더라고요. 작가 등용 루트를 다양화한 기업에는 내 돈을 투자해도 되겠단 믿음이 생겼어요. 이 기업이 추구하는 공정한 채용 과정을 지지하고 싶단 마음도 컸고요.” 고민 끝에 김 씨는 지난해 말 스튜디오드래곤 주식을 매수했다. 단 3주뿐이지만 여기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성장할 때 높은 진입장벽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겼다.○ 젊고 건강한 투자가 세상을 바꾼다 전문가들은 MZ세대의 투자가 비록 소액이지만 영향력은 그 이상의 크기를 가진다고 분석했다. 투자로 얻는 심리적 만족감이 실제의 가치보다 클 뿐 아니라, 사회적인 영향력이란 측면에서도 상당한 저력을 가졌다고 봤다. 이 교수는 “소셜미디어를 자연스레 활용할 줄 아는 MZ세대는 소액 주주라 해도 자신의 투자 가치관을 또래 집단과 공유하며 더 많은 임팩트를 창출해낸다”고 평가했다. 전기차 관련 주식을 보유한 윤영욱 씨(24)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자기만의 투자법을 공유하고 있다. 윤 씨는 “모든 세대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투자가 확대되길 바란다”며 “우리의 투자가 다음 세대는 물론 그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당장 나부터 지구의 환경과 미래 산업을 고민해 나가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씨도 윤 씨처럼 소셜미디어에서 주식 투자 일지를 작성한다. 팔로어는 아직 1326명이지만 파급 효과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고 씨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300만 원으로 시작한 돈 없는 대학생이지만, 주식 투자법을 공유하고 환경 보호라는 가치관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처음 주식 계좌를 개설한 지난해 7월 고 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남겼다. ‘주식 하면서 경제 사회 정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론 환경이 문제다. 더 나은 기술력으로 우리 지구를 지키자.’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는 개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하면서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서로 결집하며 가치관을 공론화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측면도 지녔다”며 “SK하이닉스 성과급 공유 이슈를 공론화한 것도 MZ세대였다”고 평가했다. 소비자로서는 불매 운동을, 조직 구성원으로서는 성과급 공유 운동을 주도하는 MZ세대는 주식 시장을 움직이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국경 없는 인터넷 공간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세계에서 통용되는 규범)를 체화한 점도 MZ세대의 특징이다. 여 교수는 “MZ세대의 눈은 이미 국내 증시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 증시에 향해 있다”며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추구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이들 몸에 배어 있다.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려면 한국 기업도 선제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내다봤다. “이제부터는 MZ세대의 ‘젊은 투자’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건 기성세대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기업의 비재무적 요인을 ESG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줄 때 젊고 건강한 투자는 더 늘어날 겁니다.”이지윤 leemail@donga.com·이소연 기자}

지난해 10월 안보배 씨(35)는 열 살짜리 아들의 주식 계좌를 만들어 삼성전자 주식 2주를 사줬다. 어린이신문을 구독하는 아들이 증시 관련 기사들을 읽고선 직접 투자해 보고 싶다고 한 게 계기가 됐다. 안 씨는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아들이 그동안 모은 용돈과 세뱃돈으로 투자해 보면 실전 경제 교육이 될 것 같아 허락했다”고 했다. 안 씨 부부가 주식 용어와 투자 개념 등을 알려주지만 종목을 고르고 투자 시점을 정하는 건 아들 몫이다. 지난달 말 삼성전자 주가가 8만 원대 초반으로 떨어지자 아들은 “지금 더 사야 한다”며 부부에게 모아둔 용돈을 건넸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주식 투자 열풍에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의 주식 계좌도 1년 새 2배 이상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5개 증권사(키움증권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의 미성년자 주식 계좌는 60만6952개로 집계됐다. 1년 전(29만1033개)보다 109% 급증했다. 특히 국내 증시가 삼천피(코스피 3,000) 시대를 처음 연 올 1월에만 8만 개 이상의 신규 계좌가 개설됐다. 2019년 1년간 개설된 미성년자 계좌는 1만 개가 안 됐다. 증시 활황 속에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데다 조기 금융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자녀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절세 혜택을 노려 자녀에게 미리 주식을 증여하는 부모도 늘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어려서부터 소액으로 투자를 해보면 금융 교육 효과가 있다. 다만 자녀가 투자에 너무 몰입하거나 증여가 탈세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박희창 ramblas@donga.com·이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