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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공사 현장 붕괴 사고로 실종된 근로자 6명에 대한 수색 작업이 12일 재개됐다. 광주시 재난안전대책본부는 붕괴 가능성이 있는 아파트 건물 외부를 제외하고 내부 전체를 수색했지만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고, 수색은 6시간 40분 만에 성과 없이 중단됐다. 문희준 광주 서부소방서장은 이날 오후 6시 40분 현장 브리핑에서 “구조견 6마리, 구조대원 25명, 드론 9대를 투입해 지하 4층부터 지상 1층까지 정밀 수색했고 2층부터 38층까지는 육안 수색을 마쳤지만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구조대는 28층까지 진입했으며 구조견은 26∼28층에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구조견이 반응한 장소는 붕괴물이 쌓여 있는 구간이라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다. 소방당국은 구조대 안전을 우려해 오후 6시 수색을 중단했고 13일 오전 수색을 재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높이 145m의 타워크레인이 붕괴할 위험이 제기되면서 건물 외부 수색은 드론의 열화상카메라로 진행했다. 붕괴 우려로 고가사다리차 등도 투입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이날 현장을 찾아 “전북 군산에 있는 1200t 해체용 크레인을 옮겨와 타워크레인을 해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체는 크레인 조종실과 상부층부터 부분 해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다만 해체용 크레인의 크기가 큰 만큼 17일은 돼야 설치가 가능할 거라고 현대산업개발 측은 전망했다. 현대산업개발은 또 “구조대원이 진입하기 어려웠던 상부층은 지상에서 23∼40m가량 높이의 낙석 방지막을 설치하고, 콘크리트 잔재를 치워 수색 작업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지막 설치 작업은 13일부터 진행된다.광주=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막둥아, 미안하다…. 아빠가 미안하다…. 꼭 천국에서 잘 살아라….” 6일 경기 평택시 청북읍의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 박수동 소방장(32)의 빈소. 박 소방장의 아버지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아들의 영정사진을 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영정을 힘껏 끌어안은 아버지의 입에서 아들을 향해 연신 “미안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날 화재 진압 중 숨진 박 소방장과 고 이형석 소방경(51), 고 조우찬 소방교(26)의 평택 제일장례식장 빈소에서는 유족과 지인들의 통곡이 끊이지 않았다. 2016년 소방관으로 임용된 박 소방장은 교제 중이던 여자친구와 조만간 결혼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동료 김현아 소방장(34)은 “박 소방장이 (예비 신부와) 양가 부모님께 최근 인사를 드렸는데, 이런 일을 당하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박 소방장은 무뚝뚝한 척하면서 은근히 직원들을 챙기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동기 박천복 소방교(37)는 고인을 두고 “남들이 걱정할까 봐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던 친구”라고 회고했다. 조 소방교는 지난해 5월 임관한 지 불과 8개월밖에 안 된 새내기 소방관이었다. 새내기지만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면서, 출동한 현장에서 누구보다 힘차고 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한 동료 소방관은 조 소방교를 두고 “팀에서 막내지만 솔선수범했는데…”라며 울먹였다. 또 다른 동료는 “며칠 전 구내식당에서 조 소방교가 내 밥을 준비해줬다. 다음엔 꼭 내가 해주겠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 소방교와 육군특수전사령부에서 군 복무를 함께 했다는 동료 김서빈 씨(26)는 “중앙소방학교를 같이 졸업할 때 우찬이가 ‘우리 꼭 다치지 말고 안전근무 하자’고 다짐했다”면서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 소방경은 1994년부터 28년 동안 소방관 한길을 걸은 베테랑으로 팀에서 구조 업무 총괄을 담당했다. 평소 팀원들에게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고, 마지막까지 구조 현장을 지켰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같은 소방서 구조대원 이모 씨는 이 소방경을 두고 “큰불이든 작은 불이든 현장에서 항상 후배들을 뒤에 두고 선두에 서던 분”이라며 “아마 오늘도 맨 앞에 섰을 것”이라고 했다. 이 소방경은 얼마 전 군 전역을 앞둔 아들의 면회를 다녀왔다. 빈소에서 만난 이 소방경의 아들은 “(아빠가) ‘조금만 더 힘내라’고 했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자녀 2명이 있다. 순직한 세 소방관의 합동영결식은 8일 오전 평택 이충문화체육센터에서 경기도청장으로 열린다.평택=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평택=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평택=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막둥아 미안하다…아빠가 미안하다…꼭 천국에서 잘 살아라….” 6일 경기 평택시 청북읍의 냉동창고 신축공사장 화재 진화작업 중 순직한 고(故) 박수동 소방장(32)의 빈소. 박 소방장의 아버지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아들의 영정사진을 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영정을 힘껏 끌어안은 아버지의 입에서 아들을 향해 연신 “미안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날 화재 진압 중 숨진 박 소방장과 고(故) 이형석 소방경(51), 고(故) 조우찬 소방교(26)의 경기 평택 제일장례식장 빈소에는 유족과 지인들의 통곡이 끊이지 않았다. 2016년 소방관으로 임용된 박 소방장은 교제 중이던 여자친구와 조만간 결혼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동료 김현아 소방장(34)은 “박 소방장이 (예비 신부와) 양가 부모님께 최근 인사를 드렸는데, 이런 일을 당하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소방장은 “화재현장에서 소방관이 고립됐다는 말을 들었는데 수동이인지도 몰랐다”며 허탈해했다. 박 소방장은 무뚝뚝한 척 하면서 은근히 직원들을 챙기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특히 지인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동기 박천복 소방교(37)는 고인을 두고 “남들이 걱정할까봐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던 친구”라고 회고했다. 조우찬 소방교는 임관한지 지난해 5월 임용돼 불과 8개월밖에 안된 새내기 소방관이었다. 새내기지만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면서, 출동한 현장에서 누구보다 힘차고 적극적으로 임무에 임하는 사람이었다. 조 소방교의 근무지 인근에서 만난 한 119구조대원은 조 소방교를 두고 “팀에서 막내지만 솔선수범했는데…”라며 울먹였다. 조 소방교의 한 동료 소방관은 막내 소방관들끼리 평소 ‘함께 힘내자’며 서로 다독이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 구내식당에 조 소방교가 내 밥을 준비해줬다. 다음엔 내가 해주겠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동료 소방관은 한참을 오열하며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조 소방교의 한 임관 동기는 조 소방교를 두고 “착실한 사람”이었다고 목이 잠긴 채 말했다. 이형석 소방경은 1994년부터 28년 동안 소방관 한길을 걸은 베테랑이었다. 팀에서는 구조 업무 총괄을 담당했다. 아내와 자녀 2명을 둔 가장으로 알려졌다. 이 소방경의 빈소에는 “어떻게 이렇게 생목숨을 끊어가느냐”며 부둥켜안은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순직한 세 소방관의 합동영결식은 8일 오전 평택 이충문화체육센터에서 경기도청장으로 열린다. 평택=이기욱 기자평택=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월급으로 돈 모을 수 있을까요? 절대 못 해요. 서울은 집값 안 떨어집니다. 이번 기회 놓치면 앞으로 기회는 없을 겁니다.” 사회초년생인 박모 씨(24)는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강서구의 한 신축 오피스텔 모델하우스를 찾았다가 분양대행업체 직원으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들었다. 직원은 “몇 개 없는 귀한 매물이다. 2022년부터 대출이 줄면 투자 못 한다”며 박 씨를 4시간 가까이 설득했다. 애당초 상담만 받으려 했던 박 씨는 결국 전용면적 52㎡ 오피스텔 한 채를 계약하기로 했다. 계약금은 분양가 9억 원의 10%인 9000만 원이었지만 박 씨 수중엔 그만한 돈이 없었다. 업체 측에선 1500만 원을 입금하면 나머지는 대출을 알아봐주겠다고 했고, 박 씨는 1500만 원을 입금했다. 다음 날 생각이 바뀐 박 씨는 계약을 취소하고자 했지만 업체 측은 나머지 계약금 7500만 원도 납부해야 한다고 했다. 박 씨는 전날 보낸 1500만 원을 포기할 테니 계약을 해지하자고 했지만 업체 측은 이미 계약을 했으므로 그마저도 안 된다고 했다. 박 씨는 꼼짝없이 나머지 금액을 납입하고 분양을 받거나, 1500만 원에 추가로 나머지 계약금 7500만 원까지 보낸 뒤, 계약금 9000만 원을 모두 포기하고 계약을 해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최근 수년 간 집값이 급등하면서 주택 매수를 고려하는 청년층이 늘어난 가운데 경험이 부족한 사회초년생들의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분양대행업체 등의 말에 혹해 자신의 재정 상황이나 매물의 가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덜컥 계약을 했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 뿐 아니라 부동산 정보에 어두운 계층이나 고령자가 이 같은 일을 겪었다는 글도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나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 종종 올라온다. 본인은 ‘가계약’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더라도,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면 법적으로 계약이 성립하기 때문에 계약금을 돌려받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법무법인 ‘자연수’의 이현성 변호사는 “계약을 하면 법률행위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섣부른 계약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구매나 분양 계약 전 주변 시세나 동향에 대해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가위 한국 콘텐츠의 황금기다. 다양한 창작 생태계와 활발한 도전이 성공 비결로 꼽히지만 핵심은 빼어난 창의성이다. 동아일보는 2022년을 맞아 세계를 뒤흔든 콘텐츠계 ‘황금손’ 3명과 창의성의 원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51)과 ‘완전한 행복’, ‘7년의 밤’을 쓴 정유정 소설가(56),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원작 웹툰을 그린 김보통 작가(41)가 창작의 원천을 공개했다.황 감독은 영화 ‘남한산성’, ‘수상한 그녀’, ‘도가니’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정 작가가 쓴 ‘완전한 행복’, ‘종의 기원’은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휩쓸었고 ‘7년의 밤’은 동명 영화로도 제작됐다. 한국 군대의 가혹행위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D.P.’는 국내를 비롯해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이들이 신선하고도 놀라운 콘텐츠를 만든 비결을 5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온몸으로 즐긴 놀이 황 감독은 “초등학생 때 오징어게임을 비롯해 온갖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 경험이 쌓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탄생했다”고 했다. 온몸으로 부딪히며 갖가지 골목 놀이를 하며 자란 기억이 대작 탄생의 비결이라는 것. 친구들과 어울리는 황 감독을 향해 어머니 혹은 할머니가 “멀리 가지 마라”, “밥 먹으러 와라”고 당부하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작품으로 피어났다. ‘오징어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 상우(박해수)의 애절한 대사 “어릴 때, 형이랑 이러고 놀다 보면 꼭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아무도 안 부르네”가 그것. 정 작가가 어린 시절 사방팔방 들판을 뛰어다닌 기억은 그의 작품에 깊이 녹아 있다. 전남 함평군이 고향인 그는 친구들과 매일 늪 주변에 있는 폐가를 찾아다니며 놀았다. ‘완전한 행복’에서 나르시시스트인 주인공이 폐가와 다름없는 시골집에 사는 풍경을 묘사한 것도 그때 경험에서 비롯됐다. 정 작가는 “작품에 도시가 아닌 시골 풍경이 자주 나오는 건 천둥벌거숭이 시절 뛰어놀던 경험 때문”이라며 “어릴 때 그렇게 놀지 않았다면 소설 속 다양한 장면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겠느냐”고 했다.각계각층과 즐기는 수다황 감독은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영감을 얻곤 한다.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히면 지인을 옆에 앉혀 놓고 대화하며 글을 쓸 정도다. 영화·드라마 연출팀, 미술팀 등 다양한 스태프와 자주 대화하는 건 물론이다. 대학교수, 회사원, 금융인, 판사, 변호사 등 각종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집에서 모여 밤새 수다도 떤다. 친구들이 말해주는 각 직업의 ‘뒷담화’가 그에겐 창작의 샘. 황 감독은 “대화는 항상 내게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작품을 쓸 때마다 해당 분야 종사자들을 찾아다니며 대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교사, 기자 등 등장인물의 특성을 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이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각종 방법을 이용한 살인 사건을 묘사하기 위해 전문의, 프로파일러에게 조언을 구하고 이를 반드시 노트에 정리한다. ‘완전한 행복’을 쓸 땐 약리학 교수에게 자문해 약물로 등장인물을 죽이는 장면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정 작가는 “전문가와의 대화는 치명적 실수를 막을 뿐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해 깊이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말했다. 김 작가가 작품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던 비결도 군 생활 때 귀를 활짝 열어둔 덕이다. 김 작가는 육군 헌병대(현 군사경찰대)의 군무이탈자 체포전담조인 DP(Deserter Pursuit) 조원으로 근무했다. 근무이탈자의 부모, 여자친구, 친구들을 샅샅이 만날 때마다 이들의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않았다. 왜 그들이 탈영할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하게 됐고 이는 창작으로 이어졌다. 김 작가는 “근무이탈자의 지인을 만나다 보니 근무이탈자들이 마치 내 지인처럼 느껴졌다”며 “독자에게도 그때의 내 심정을 전하고 싶어 웹툰을 그리게 됐다”고 했다.분야 망라한 잡식성 관심 황 감독은 매체, 장르를 막론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빨아들이는 ‘잡식 동물’이다. “게으르고 싫증을 잘 내서”라는 겸손한 표현과 달리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만화 등을 두루 섭렵한다. 한국에선 생소한 서바이벌 장르 ‘오징어게임’을 만든 것도 ‘배틀로얄’, ‘라이어 게임’ 등 서바이벌 장르 만화를 좋아한 덕이다. 황 감독은 한때 소설과 시를 짓고, 영화 평론도 공부했다. 황 감독은 “집에 혼자 있으면 TV를 틀어놓고 책을 읽는데 어느 순간 탁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며 “작품은 이 모든 종합적인 것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김 작가는 의외로 다른 웹툰은 잘 보지 않는다. “열등감만 생기고, 속이 터지기 때문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김 작가는 다른 분야 콘텐츠에 대해선 레이더를 켜고 다닌다. 대표적인 것이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뉴스다. 생동감 넘치는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뉴스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한다. 또 기구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며 캐릭터를 생생하게 그려나가기도 한다. 창작물에 한정하지 않고 현실을 다룬 콘텐츠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취향 덕에 그의 작품은 현실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작가는 “작품을 허구로만 채우는 건 탈영이라는 사건의 무게를 희석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실제 보도된 사건을 참고해 현실감을 살렸다”고 했다.상상력 날개 달아준 독서 황 감독은 어린 시절 계몽사 문고와 백과사전을 탐닉했다. 미국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의 ‘백경’(모비딕)이나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1812∼1870) 작품에 빠진 게 대표적. 책에 나온 장면을 외우다시피 하고 자신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즐겼다. “너무 재미있어서 같은 책을 반복해서 계속 읽었다”는 황 감독은 “혼자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상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하염없이 공상에 빠져 종점까지 간 적도 있다. 정 작가는 다독가로 유명하다. 책 한 권을 쓰기 전 수십 권을 읽는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이야기를 쓸지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쏟아진다고 한다. ‘완전한 행복’을 쓰기 전엔 행복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기 위해 50권이나 읽었을 정도. 정 작가는 “독서는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뼛속까지 새긴 경험 김 작가는 보편적인 경험이 이야기의 힘이라는 걸 보여준 대표적 작가다. 군 생활은 한국 남성 다수가 하는 경험이기에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좋은 소재였다. ‘D.P.’ 역시 자신의 군복무 경험에 주변의 군 생활 사례를 더했다. 그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나’라는 독자를 위해 만드는 것”이라며 “내 경험에서 온 감정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마음을 정리해야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더 이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작가는 5년간 간호사로 일한 경험을 살려 약물을 이용한 범죄를 작품에서 자주 활용한다. 그는 간호사 시절 대부분을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이 거쳐 간 장소에서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그의 작품이 인간의 본성을 파고드는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정 작가는 “장편소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까지, ‘악의 3부작’을 쓴 것도 인간 본성을 알고 싶어서였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3년쯤 전부터 이 앞 도로가 꺼진 걸 2, 3번 정도 봤거든요. 구청에서 보수했는데도 인도가 계속 다시 꺼지더니만….” 2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 그랜드프라자 건물 앞에서 만난 인근 주민 이경숙 씨(57)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이 건물 지하 3층 기둥이 파열되며 입주민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게다가 건물 앞 도로 지반까지 침하한 것으로 관측돼 인근 상인과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4, 5년 전부터 이상 징후2일 본보 취재 결과 수년 전부터 이 건물 앞 도로 지반이 여러 차례 꺼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의 ‘로드뷰’를 보면 2019년 10월 촬영 사진에선 비교적 평평하게 보이던 건물 앞 도로가 2020년 11월 이후 사진에는 확연하게 꺼져 있었다. 주민 안모 씨(57)는 “4, 5년 전에도 사고 지점에서 상수도관이 터져 보수공사가 이뤄졌다”며 “이후 지반이 점점 내려앉아 여러 차례 공사를 했다”고 돌이켰다. 주민들은 이번 사고 현장뿐 아니라 근방에도 지반 침하 위험이 있는 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마두동과 인접한 백석동의 신축공사 현장 인근 도로에서도 지반 침하 사건이 여러 차례 일어난 탓이다. 고양시는 2016년 이후 이 일대에서 지반 침하와 도로 균열 현상이 8차례 일어났다고 밝혔다. 2019년 12월에는 백석동 알미공원 앞 5개 차로 약 50m가 2.5m 깊이로 침하되기도 했다. 그랜드프라자 건물에서 약 200m 떨어진 아파트에 사는 주민 김모 씨(53)는 “혹여나 이 근방이 전반적으로 취약한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고양시는 2일 그랜드프라자 건물의 정밀 진단검사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일산신도시 전체의 지반이 취약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백석역, 마두역 일대의 경우 자갈과 모래층 위에 흙을 매립해 조성했는데, 지하수가 흙과 함께 흘러가면서 빈 공간이 생겨 침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석좌교수도 “일산 일대는 한강과 가까운 데다 미세 모래 지반이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고양시도 2019년 12월 “지하 3층 아래는 토질이 모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건물 신축 시 지하 3층 이하 터파기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이봉직 한국교통대 건설환경도시교통공학부 교수는 “일대가 매립 지역이어서 침하가 발생했다면 인접 건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어야 한다”고 했다. “지반 조사 범위 확대해야”국토교통부 지하안전관리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최근까지 고양시에서 발생한 지반 침하 사고는 총 23건이었다. 2019년 이전의 사고 18건은 노후 하수관 손상(17건)과 굴착공사(1건)가 원인으로 나타났지만 2020년 이후 사고 5건은 뚜렷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해당 건물과 주변만 포함된 지반조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미국은 지질조사국(USGS)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토질과 지하수 흐름을 조사한다”며 “건물 주변 지하수 흐름을 알면 미리 취약 지대를 보강해 지반 침하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는 터키 에페소스는 숲을 훼손한 결과 사라진 도시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던 에페소스에서는 농업이 번성하자 숲을 농경지대로 바꿨다. 숲이 축소되자 물이 줄었고 토양 침식도 가속화되며 도시는 사라졌다. 나무를 우주 만물의 기본 요소로 여긴 동양과 달리, 문명 발전을 중시한 서양은 자연을 인간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식물학자인 저자는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35종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풀어낸다. 특히 나무에 얽힌 신화와 전설, 역사, 민속에 대한 설명은 유럽 문명도 자연에서 출발했으며 숲과 더불어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그리스 아테네, 마라톤 등 지역을 아우르는 아티카의 수호신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아테네 초대 왕 케크롭스는 도시에 더 이로운 선물을 주는 신을 수호신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포세이돈은 소금물과 항구를 선물했지만, 아테나는 도시에 올리브나무를 싹틔웠다. 케크롭스는 식량이자 약재인 올리브나무의 가치를 알아보고 아테나를 수호신으로 정한다. 이후 올리브나무를 훼손한 자는 재산을 뺏기고 추방당했다. 14세기 독일에선 흑사병에 맞서고자 나무에 의지하기도 했다. 특히 노간주나무 열매는 죽어가던 새들도 살려낼 만큼 약효가 좋다고 알려졌고, 어떤 사람은 그 열매를 먹고 흑사병을 이겨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사람들은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광장에 모여 노간주나무를 쌓아 불을 피웠다. 나무가 탄 연기가 공기를 정화하고 감염을 예방한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노간주나무가 사악한 것을 쫓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자 독일에서는 19세기까지 노간주나무 가지를 가축 우리에 걸어놓으면 다산과 건강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19세기 프랑스 문학가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1768∼1848)은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남는다”는 말을 남겼다. 나무와 인간이 맺어온 관계를 들려주는 이 책은 문명 발전으로 숲이 사라져가는 오늘날에 경종을 울린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지난해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조선 천문과학기술을 실증할 유물들이 출토됐다. 앙부일구, 자격루 등 세종 대에 많은 과학 기기가 만들어졌지만 당대 실물은 전해진 게 거의 없었다. 이번 출토 유물을 통해 조선시대 과학기술을 들여다봤다.》피맛골 유물로 본 조선의 과학기술 “처음에 임금이 주야측후기(晝夜測候器·밤낮으로 기상 상태를 알기 위해 천체를 관측하는 기기)를 만들기를 명해 이름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라 했는데, 이를 완성해 보고했다.” 세종실록 1437년 4월 15일 기록이다. 당시 조선에는 앙부일구, 자격루 등 해를 관측하거나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물의 양을 측정해 시각을 알려주는 기기는 있었지만 해시계는 밤에 사용할 수 없었다. 물시계는 수온이나 압력에 따라 물의 속도가 변해 측정 결과에 오차가 생길 수 있었다. 실록에 따르면 중국 주나라 관직 제도와 전국(戰國)시대 각 나라의 제도를 기록한 유교 경전인 주례(周禮), 원나라 역사서 원사(元史)에 별을 이용해 시각을 측정했다고 적혀 있다. 세종은 밤에도 별을 보고 시각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라고 명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실록에 기록된 일성정시의다. 낮에는 해시계, 밤에는 별시계가 되는 복합시계인 일성정시의는 당시 총 4개를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지만, 전해지는 실물은 없었다.○ 500여 년이 지나 발견된 일성정시의 지난해 6월 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79번지 피맛골 입구. 현재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부지 내 유적’으로 불리는 이곳은 조선시대 사법기관인 의금부(義禁府) 등 중앙관청을 비롯해 상설 시장인 시전행랑(市廛行廊)이 있었던 한양의 중심지였다. 수도문물연구원 발굴팀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발굴 조사를 하고 있었다. 2020년 3월부터 진행된 조사였다. 이날 발굴팀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유물들을 발견했다. 절단된 채로 묻혀 있던 16세기 승자총통 1점과 소승자총통 7점을 시작으로 조선 15, 16세기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총통 조각들 아래로 세 개의 환(環·둥근 고리)이 잘게 잘린 채 가지런히 포개진 상태로 발견됐다.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장은 “처음에는 어떤 유물인지 전혀 몰랐다”며 “조각들에 눈금이 새겨져 있는 것만 확인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눈금에서 천체 관측 기기인 혼천의(渾天儀)를 떠올린 발굴팀은 혼천의를 복원한 이용삼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명예교수에게 사진을 보내 자문했다. 사진을 본 뒤 연구원 수장고로 달려온 이 명예교수는 “이 실물을 확인하게 될 줄 몰랐다. 이건 세종 때 제작된 일성정시의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세종실록은 “바퀴 윗면에 세 고리를 놓았는데, 이름을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별의 이동을 측정하는 고리),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해시계용 고리),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별시계용 고리)이라 한다”며 일성정시의 형태를 전하고 있다. 이번에 출토된 일성정시의 부품이 바로 세종실록에 나오는 세 고리다. 특히 바깥쪽에 있는 주천도분환과 가장 안쪽에 있는 성구백각환은 두 귀(耳)가 있다고 묘사돼 있는데 출토 유물의 모양도 이와 동일하다. 또한 성구백각환에 새겨진 100개의 눈금은 “100각(刻)으로 때를 정해 밤낮을 나눴다”는 실록의 기록과 일치했다.○ 현대 과학 기술 수준 보유 일성정시의는 당시 천문과학기술의 집약체다. 농업이 국가 경제의 기본이던 사회에서 해와 달의 움직임, 계절에 따른 별자리 변화 등을 살펴 시간과 절기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국가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적인 과제였다. 또 왕의 권력이 하늘에서 비롯된다고 여겼던 유교에서도 천문학을 제왕의 학문이라고 일컬었다. 이런 배경에서 일성정시의가 제작되기 전 조선은 중국에서 전래된 천체 관측 기기인 혼천의와 간의(簡儀)를 변형해 이용하고 있었다. 혼천의와 간의는 윤일을 반영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윤일은 우리가 세는 1년의 길이와 실제 1년의 길이가 달라 발생하는 오차다. 지구의 공전주기는 약 365.25일로 우리가 아는 1년의 길이인 365일보다 0.25일이 길다. 일성정시의는 주천도분환을 이용해 이를 해결했다. 주천도분환에는 4분의 1도를 기본 단위로 1461개의 눈금이 새겨져 있다. 이를 모두 더하면 365와 4분의 1도인데, 이는 당시에 정확한 1년의 길이를 측정하고자 했음을 의미한다. 일성정시의는 매년 동지 자정에 주천도분환을 한 눈금씩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해 0.25일을 보정함으로써 지금과 같이 4년에 한 번씩 1일을 추가하지 않고도 윤일 오차를 방지했다. 이 명예교수는 “당시 조선에서 정밀하게 365와 4분의 1도만큼 정밀하게 눈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며 “세종 때 독립적으로 창제한 일성정시의를 보고 영국의 과학사학자 조지프 니덤 교수는 서양에도 이런 것은 없다며 극찬했다”고 말했다.○ 천문 읽기, 국왕의 의무일성정시의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 이전까지 꾸준히 천문학을 연구하며 발전한 조선 과학기술이 있었다. 그 첫 시작이 1395년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 刻石·하늘과 땅의 모습을 그린 천문도를 새긴 돌)이다. 1247년 중국 남송 시기에 만들어진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다. 1만 원권 지폐 뒷면에 새겨진 별자리 그림이다. 역성혁명으로 새 왕조를 세운 조선 태조는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천문을 이용하고자 했다. 천문을 읽는 것이 하늘의 뜻을 받아 통치하는 국왕의 의무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문도가 필요했다. 각석 아랫부분에 새겨진 글에 따르면 고구려 수도였던 평양성에 천문도가 새겨진 돌 비석이 있었다고 전해졌지만 세월이 흘러 복사본조차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신원 미상의 인물이 태조에게 천문도 복사본을 바쳤다. 태조는 사라진 고구려 천문도 등장을 고구려 계승자가 고려가 아닌 조선임을 하늘이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천문도를 돌에 새기라는 태조의 명을 받은 천문학자 권근(1352∼1409)은 별의 이동에 따른 오차를 고려해 기준이 되는 별 28수를 새로 관측한 후 돌에 새겼다.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북반구의 거의 모든 별자리가 표시돼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천문학 발전의 근간이 됐다. 이후 세종 대에 이르러 조선의 과학기술이 꽃피우기 시작했다. 세종실록 1437년 4월 15일 기록에 따르면, 세종은 1432년 7월 독자적 역법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예문관 대제학 정초(?∼1434), 예문관 제학 정인지(1396∼1478), 중추원사 이천(1376∼1451) 등을 중심으로 조선만의 천체 관측 기기를 만들 것을 명했다. 그 결과 1433년 이천과 장영실 등은 혼천의 제작에 성공한다. 1434년 7월엔 자격루(自擊漏·스스로 시각을 알려주는 물시계)를 만들어 경회루 남쪽 보루각에 설치했다. 자격루는 세 개의 항아리를 높이가 다르게 배치해 일정한 속도로 물이 수수호(受水壺·원기둥 모양의 물통)로 흐르도록 했다. 수수호에 물이 차오르면 부력을 이용해 그 안에 들어 있는 나무 막대가 떠오르면서 수수호 위쪽에 설치된 구슬방출장치를 건드려 구슬을 방출한다. 방출된 구슬은 자동으로 종, 북, 징을 쳐 시각을 알려준다. 피맛골 유적에서는 이러한 물시계의 구슬 방출장치인 주전(籌箭)도 발견됐다. 지금까지 물시계나 그 부품의 실물이 확인된 적은 없었다. 주전은 구멍이 엇갈려 뚫려 있는 형태였으며, 구슬이 방출되지 않도록 막는 원통 모양의 걸쇠도 함께 출토됐다. 오 원장은 “주전에 일전(一箭·화살)이라고 적혀 있어 신기전이나 화포 구멍이라고 생각했지만, 전(箭)의 용례를 찾아보니 물시계 눈금이 있었다”고 말했다. 학계 전문가들 역시 “주전 실물이 출토됐으니 여태까지 문헌을 바탕으로 복원된 물시계도 수정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가마솥 모양의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도 제작됐다. 안쪽 바닥 면에는 세로선 7개를 새겨 해가 떠 있는 시간인 묘시에서 유시까지(오전 6시부터 오후 6시)를 2시간 간격으로 표시했다. 세로선과 세로선 사이에 8개의 세로선을 그어 15분 간격으로 시간을 알 수 있게 했다. 가로선 13개로는 동지에서 하지까지 절기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시계 안쪽에 끝이 뾰족한 막대를 설치해 햇빛을 받은 막대 그림자가 가리키는 선을 읽으면 시간을 알 수 있다. 세종은 앙부일구를 현재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부근과 종묘에 설치했다. 세종실록에는 “무지한 남녀들이 시각에 어두우므로 앙부일구 둘을 만들고 안에는 시신(時神·12지신을 이용한 시각 표시)을 그렸으니, 대저 무지한 자로 하여금 보고 시각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앙부일구를 보물로 지정 예고한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천문과학기술의 발전과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과학문화재”라고 평가했다.○ 후대 과학 발전 이끈 세종 시대세종 때 만들어진 천체 관측 기기들은 이후에도 영향을 미쳤다. 성종 집권 시기인 1486년에는 일성정시의에서 해시계 기능만 분리한 소일영(小日影)을 만들었다. 창덕궁 어수당 앞 소일영이 그려진 그림 무신친정계첩(戊申親政契帖·1728년 제작)을 보면 영조 때에도 소일영이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과학기술은 서양 과학이 조선에 전래되자 변화를 맞았다. 18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법지평일구(新法地平日晷)는 앙부일구와 달리 평평한 모양으로 만든 해시계다. 하루를 100각으로 나눴던 기존 방식을 96각으로 나눈 서양 역법을 받아들인 명나라에서 1636년 제작한 신법지평일구가 조선으로 전해졌고, 1713년 한양의 위도를 측정해 조선에 맞는 해시계를 다시 제작했다. 19세기에는 혼천의를 간소화한 평혼의(平渾儀)를 만들어 사용했다. 둥근 황동판 앞뒤에 각각 북반구와 남반구의 별자리를 새겼다. 하늘에서 보이는 별자리와 동판의 별자리를 일치시켜 시각을 읽을 수 있었다. 조선 과학의 발전을 이끌었던 세종 시기 과학기술은 문헌으로만 전해질 뿐 현존하는 실물이 거의 없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들은 조선 과학사를 실증할 수 있는 주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동 출토유물 공개전을 기획한 이상백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사는 “일성정시의 손잡이가 구름 모양이라는 사실도 출토 유물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며 “후속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과학문명사 강의’(책과함께)를 발간한 신동원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는 “옛날에도 과학기술이 한국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었다”며 “우리 과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데 전통 과학의 창조성, 우리 과학자들의 집념과 열정이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000000000.}

문화재청은 조선 천문학을 대표하는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사진)’를 30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솥이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을 한 해시계라는 뜻의 앙부일구는 조선 천문과학기술의 발전을 엿볼 수 있고 숙련된 기술자가 만들어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1434년 세종 대에 제작된 앙부일구는 그해 10월 종묘와 혜정교(현 종로1가)에 설치돼 백성에게 시간을 알려줬다. 당시 제작된 앙부일구는 전해지는 실물이 없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되는 앙부일구는 지난해 미국에서 환수된 1점과 국립경주박물관, 성신여대박물관에 있는 2점이다. 3점 모두 시계 표면에 1713년 처음 사용된 위도 값이 새겨져 있어 18세기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앙부일구와 함께 송나라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 권266∼270,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길이 9.8cm, 높이 2.7cm, 무게 50g에 불과한 작은 크기의 공예품에 국화와 넝쿨무늬 장식이 빼곡히 그려져 있다. 영롱한 빛깔의 조개껍질 조각과 구리 등 금속선을 이용해 만든 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표면에는 옅은 검은색의 광택이 나는 투명한 막이 덧씌워져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 환수해온 ‘나전 대모 칠 국화 넝쿨무늬 합’(사진)이다. 고려 12세기에 만들어진 이 칠기는 전 세계에 3점만 남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년 3월 20일까지 특별전시실에서 ‘칠, 아시아를 칠하다’ 특별전을 연다. 전시에서는 아시아 각지의 다양한 칠공예 기법을 살펴볼 수 있는 칠기 263점을 선보인다. 옻칠은 옻나무 수액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사용해온 천연도료다. 방수, 방충 등 물건의 내구성을 높일 뿐 아니라 특유의 광택으로 공예품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국내 칠기뿐만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의 칠기도 전시된다. ‘칠 새와 구름무늬 접시’를 통해 옻칠을 여러 겹으로 덧바른 뒤 그 위에 조각칼로 무늬를 새기는 중국의 ‘조칠(彫漆)’ 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옻나무에서 옻칠을 채취하고 정제하여 도료로 만드는 데는 수개월이 소요되는 칠공예를 통해 단단하고 다채로운 아시아 칠공예의 세계를 만나보길 바란다”고 전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당당한 체구의 잘생긴 사람들이 상점 앞에서 긴 담뱃대로 흡연하거나 수다를 떠는 등 ‘우아한 루저’의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1913년 4월 조선에 온 독일 예술사학자 페테르 예센(1858∼1926)이 쓴 ‘답사기: 조선의 일본인’ 중 일부다. 그는 당시 독일 문화부 후원으로 문화정책 구상차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조선을 답사했다. 일제에 의해 서양 복식이 확산된 상황에도 상의부터 신발까지 온통 흰색 한복을 갖춰 입은 조선인들을 그는 인상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최근 발간된 ‘우아한 루저의 나라’(정은문고)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을 방문한 독일인 3명의 여행기를 번역한 것이다. 당시 독일인의 눈에 비친 구한말 조선인의 모습을 생생히 살펴볼 수 있다. 예센과 지리학자 헤르만 라우텐자흐(1886∼1971)의 조선 여행기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자료다. 이 책 저자 고혜련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교수(60·한국학)는 독립기념관의 3·1운동 기념사업 일환으로 독일 내 한국 자료를 수집하다 이를 발견했다. 1898, 1899년 조선을 방문한 독일 산림청 공무원 브루노 크노헨하우어(1861∼1942)는 독일의 조선금광 채굴 과정을 담은 강연문을 썼다. 강원 철원군 당고개 금광을 캐던 그는 1898년 12월 조선인 광부들에게 기습을 당했다. 돌을 던지는 광부들에게 그는 권총을 쏘며 맞섰다. 고 교수는 “반외세를 내세운 동학농민운동 여파로 19세기 말 조선인들은 외국인들이 광물을 빼앗아간다고 여겼다”고 분석했다. 지리학자 라우텐자흐는 1933년 7∼10월 한반도 지형을 연구하기 위해 조선을 찾았다. 그의 백두산 탐사기 ‘조선-만주 국경에 있는 백두산의 강도 여행’에는 독립군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을 목격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는 “벨기에식 권총을 소지하고 자신을 사냥꾼이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만났다”고 썼다. 고 교수는 “당시 백두산에는 항일무장단체였던 동북항일연군의 주둔지가 있었다. 라우텐자흐가 본 사냥꾼은 독립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바르고 당당한 체구와 잘생긴 모습의 사람들은 수많은 상점 앞에서 기다란 담뱃대로 흡연하거나 수다를 떠는 등 우아한 루저의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1913년 4월 조선에 온 독일 예술사학자 페테르 예쎈(1858~1926)이 쓴 ‘답사기: 조선의 일본인’ 일부다. 예쎈은 당시 독일 문화부 후원으로 문화정책을 구상하고자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조선을 답사했다. 예쎈은 일제에 의해 서양식 복식이 전파되던 와중에도 상의부터 신발까지 온통 흰색 한복을 입는 등 전통문화를 유지하던 조선인을 보고 감명을 받는다. 최근 발간한 ‘우아한 루저의 나라’(정은문고)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조선을 방문한 독일인 3명의 여행기를 번역해 당시 모습과 조선에 대한 이들의 인식을 살펴본다. 예쎈과 지리학자 라우텐자흐 헤르만(1886~1971)의 여행기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자료다. 저자 고혜련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교수(60·한국학)는 2019년 독립기념관의 3·1운동 기념사업 일환으로 독일 내 한국자료를 수집하다 이 자료들을 발견했다. 1898년 2월부터 1899년 6월까지 조선을 방문한 독일 산림청 공무원 브루노 크노헨하우어(1861~1942)가 한국에 대해 강연한 강연문 ‘Korea’에는 당시 독일의 조선 금광 채굴 과정이 그려져 있다. 강원 철원군 당고개 금광에서 채굴작업을 하던 그는 1898년 12월 조선인 광부들에게 기습을 당했다. 돌을 던지는 조선인들에게 그는 권총을 쏘며 대항했다. 고 교수는 “반외세를 내세운 동학농민운동 흔적이 남아있던 당시 조선인은 외국인들이 광물을 탈취한다고 여겼다”고 분석했다. 지리학자로 지구 동쪽 끝 조선 반도 지형을 연구하고자 1933년 7월부터 10월 조선에 온 헤르만의 백두산 탐사기 ‘조선-만주 국경에 있는 백두산의 강도여행’에는 독립군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목격담이 제시된다. 그는 “벨기에식 권총을 소지하고 자신을 사냥꾼이라고 말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고 전한다. 고 교수는 “당시 백두산은 항일무장단체 동북항일연군 주둔지가 있던 지역으로 독립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일제강점기 조선의 실체와 가치를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코로나에 부동산 급등까지 모두의 어려움이 큰 한 해였습니다. 그래선지 출판인, 학자, 의료인 등 35명이 꼽은 ‘2021년 동아일보 올해의 책’은 유독 공동체나 연대를 다룬 양서들이 많습니다. 선정위원별로 3권씩 추천을 받은 결과, 1표 이상 얻은 책은 총 92권. 이 중 상위 10권을 추려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작은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학술팀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등 지음·이민아 옮김·396쪽·디플롯각계 전문가들은 올해 ‘최고의 책’으로 소통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2권을 택했다. 각 4표로 공동 1위.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혐오를 넘어 연대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집단 무의식이 책 선정에도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진화인류학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을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한다. 저자는 육체, 정신적 힘이 아닌 친화력이 인류 생존과 진화의 열쇠라고 강조한다. 호모사피엔스가 자신들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셌던 고인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고 살아남은 게 대표적이다. 연구에 따르면 100명 이상이 함께 모여 산 호모사피엔스와 달리 네안데르탈인은 기껏해야 10∼15명이 한 무리를 이뤄 수적 열세를 보였다. 이는 호모사피엔스가 같은 집단의 동료들과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 사이가 막힌 지금, 소통과 연대의 능력은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추천한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북방고고학)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은 논리와 이성 대신 감성과 친화력으로 향한다. 이 책은 나의 ‘논리’가 아닌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평했다. “최악의 상황에도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꿈꾼다. 이 책은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 기꺼이 다정한 마음 품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북돋운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평도 있었다.작별하지 않는다한강 지음·332쪽·문학동네 2016년 영국 맨부커상 수상 작가이자 2019년 인촌상 수상자인 한강이 5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연대와 사랑을 말한다. 주인공 경하가 제주도에서 태어난 친구를 환영처럼 만나 1948년 4·3사건의 고통을 공유하는 이야기다. 한강은 올 9월 출간 후 인터뷰에서 “사랑이든 애도든 끝까지 끌어안고 나아가겠다는 결의를 제목에 담았다”고 말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소설 속 세 여성은 역사 속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이 전하는 사랑을 잊지 말자고 말한다. ‘내가 올해 잊고 산 것은 무엇일까. 작별할 수 없는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는 평을 남겼다. 작가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악몽에 시달리는 경하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실제로 한강은 5·18 소재의 소설 ‘소년이 온다’(창비·2014년)를 쓰고 악몽을 꿨다고 밝혔다. 비극적 현대사가 남긴 상처는 작가 자신을 뛰어넘어 독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어둠에 묻힌 상처를 기억하는 자는 폭력에 길들지 않는다. 그들처럼 우리 또한 한순간 어이없이 거기 누울 수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장은수 출판평론가)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마이클 셸런버거 지음·노정태 옮김·664쪽·부키 “지구 환경과 기후위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뒤엎는다. 책을 읽고 나면 환경 문제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환경운동에 30년간 투신한 저자가 기술과 경제발전이 오히려 환경을 지켜줄 수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환경운동이 오히려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것. 권은희 까치글방 편집팀장은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자연보호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집는다. 환경을 위한다고 생각한 재생에너지와 생활 속 실천이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책”이라고 평했다. ■일본의 굴레태가트 머피 지음·윤영수 등 옮김·660쪽·글항아리“일본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이 책을 읽으며 해체되고 재조립됐다.”(김형보 어크로스 대표) 40년간 일본에서 산 미국인 저자가 외부자로서의 시각과 내부자로서의 이해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하며 일본 사회를 연구한다. 굴욕적일 만큼 친절한 서비스, 불평할 만한 일이 생겨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일본인의 모습 뒤에 숨겨진 참모습을 깊게 파고들었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포괄적이면서도 전문적인 내용의 충실함은 말할 것도 없고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며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너무도 유사해 책 속에서 우리 사회의 거울을 보는 느낌”이라고 했다. ■지구의 짧은 역사앤드루 H 놀 지음·이한음 옮김·304쪽·다산사이언스“지구 역사를 짧고 쉽게 압축해 설명하는 훌륭한 입문서다. 현재의 지구를 살아가는 인간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남긴다.”(권은희 까치글방 편집팀장) 미국 하버드대 자연사 교수가 장구한 지구 역사를 보기 쉽게 압축한 교양 과학서. 최신 연구 성과를 담고 있으면서도 어려운 개념을 유머로 쉽게 풀어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구과학자들이 어떻게 조사, 연구하는지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올해 이보다 읽기 쉬운 자연사 책이 있었나 싶을 정도. ■한국의 능력주의박권일 지음·344쪽·이데아“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능력주의 문제를 제대로 짚었다. 정치, 경제, 젠더 등 양극화하는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조성웅 유유출판사 대표) 능력주의에 열광하는 한국인의 심리를 파고든 사회과학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시험에 합격하지 않거나 일정 조건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이 보상을 받는 데 대해 유독 분개한다.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에 대한 심층 보고서다. ■전국축제자랑김혼비 등 지음·320쪽·민음사충남 예산부터 경남 산청까지 전국 방방곡곡 지역축제들의 이모저모를 한 권에 담았다. “아무도 관심 없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지자체 축제들임에도 하루 빨리 일상이 회복돼 가보고 싶게 만든다.”(조재은 양철북 대표) 전작들을 통해 독자층이 탄탄한 저자들인 만큼 말맛이 좋다. 황혜숙 창비 출판1본부장은 “쏟아져 나오는 에세이 중 절반 이상 읽지 못하는 책이 적지 않은데 이 책만큼 공들여 낄낄대며 읽은 경험이 드물다”고 했다. 현장을 답사한 뒤 쓴 여행기라 생생하다. “유쾌하고 정감 넘치며, 때로 우악스럽기도 했던 축제의 현장으로 우리를 옮겨 놓는 책”(박성열 사이드웨이 대표)이라는 평이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조던 스콧 글·시드니 스미스 그림·김지은 옮김·52쪽·책읽는곰이례적으로 그림책이 선정됐다. 캐나다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말을 더듬는 아이가 쉼 없이 흐르는 강물과 마주하며 내면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렸다. 선정위원들은 어린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선물하고 싶은 책이라고 평했다. “타인과의 다름이 틀림이나 나쁨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함이고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나지막하게 이야기하는 책”(최은영 소설가)이기 때문.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나는 무엇에 갇혀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자신만의 숨겨진 단단한 내면을 발견하게 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림책”이라고 호평했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임지현 지음·640쪽·휴머니스트거의 모든 민족들이 스스로를 희생자로 규정하는 시대다. 예컨대 폴란드인들이 2차대전 당시 예드바브네에서 벌어진 자국민들의 유대인 학살을 외면한 채 자신들이 나치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식. 박윤우 부키 대표는 “자신을 희생자로 포장하는 피해자 간 기억의 전쟁은 21세기 민족주의가 어떤 리스크를 짊어지게 할지 경고한다”고 말했다. “이론과 실례를 잘 버무린 책을 요즘 만나기 힘든 탓에 더 귀한 책”(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이라는 평이다.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지음·268쪽·나무옆의자서울 용산구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을 무대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희로애락을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담았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던 남자가 70대 할머니의 지갑을 주워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후 남자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뛴다.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는 “평범한 이웃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애환을 다정한 시선으로 다룬 작품이다. 팬데믹으로 힘겨운 나날을 견디고 있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책”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일상… 아픔이 새로운 길이 되길팬데믹 시대, 마음을 위로하는 한 권의 책 장기화된 팬데믹에 대처할 혜안과 위로를 책에서 구할 방법은 없을까.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는 감염병 전문의를 포함한 전문가들로부터 유용한 책들을 별도로 추천받았다. 감염병 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병원의 밥’(세미콜론)을 추천했다. 흉부외과 의사인 저자가 의사와 환자들이 먹는 밥을 소재로 긴박한 의료현장을 생생히 그린 에세이다. 이 이사장은 “미음에서 죽으로, 죽에서 밥으로 회복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팬데믹 속에서 고통 받는 우리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고 평했다. ‘바이러스를 이기는 새로운 습관’(프리뷰)은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코로나 시대의 대처법을 담았다. 미국 의학전문기자인 저자는 감염병에 대해 불필요한 공포를 가져오는 가짜뉴스를 구별하는 방법과 운동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당분과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는 식습관을 전한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식이, 운동, 수면 등 신체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담았다”고 말했다. 인간 본성의 따뜻함을 통해 팬데믹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책도 선정됐다. 네덜란드 언론인이 쓴 ‘휴먼카인드’(인플루엔셜)는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건 오해라고 주장하며 타이타닉 침몰, 9·11테러 등 과거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서로 도운 증거들을 제시한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저자의 믿음을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뒷받침한 이 책은 독자에게 희망을 준다”고 평했다. 팬데믹 이후 바뀔 일상공간에 대한 예측을 담은 책도 포함됐다. 건축가 유현준이 쓴 ‘공간의 미래’(을유문화사)는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등으로 공간의 의미가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나 회사로 나가지 않고도 업무를 볼 수 있는 ‘거점 오피스’ 등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책은 “미래 우리 사회가 시민 다수를 행복하게 할 공간을 어떻게 기획해야 할 것인지 새로운 담론거리를 제시했다”(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평을 받았다.선정위원(35명·가나다순)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교수) 권은희(까치글방 편집팀장) 김민정(난다 대표) 김영민(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형보(어크로스 대표)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김효형(눌와 대표) 박상준(민음사 대표) 박성열(사이드웨이 대표) 박윤우(부키 대표) 박정재(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설혜심(연세대 사학과 교수) 심채경(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안병현(교보문고 대표) 윤범모(국립현대미술관장) 이구용(KL매니지먼트 대표) 이기진(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왕준(명지병원 이사장) 이종화(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임형주(팝페라 테너) 장강명(소설가) 장은수(출판평론가) 정기석(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조성웅(유유출판사 대표) 조재은(양철북 대표)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최은영(소설가) 표정훈(출판평론가)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황서현(휴머니스트 주간) 황혜숙(창비 출판1본부장)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동아일보는 16일 ‘2021년 동아 황금대상’ 수상자 8명을 선정했다. 지역별로 공헌도가 높은 우수 독자센터 사장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수상자는 송은임(서울 원효), 이성수(서울 잠원), 이형걸(인천 간석), 최광비(경기 하남), 최재윤(경북 포항), 이승곤(울산 남울산), 김건호(강원 신원주), 서대진(광주 봉선) 독자센터 사장이다. 스포츠동아는 올해 스포츠동아 대상 수상자로 김정률(서울 길동명일), 김석환(경기 원미도당), 서명길(부산 전포부전), 홍성욱(충남 천안북부) 독자센터 사장을 선정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해역에서 고려청자 등 유물 200여 점이 나왔다. 아직 선체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닻, 노 등이 확인돼 물건을 실은 옛 선박이 침몰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전북 군산 앞바다의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에서 고려청자 125점, 분청사기 9점, 백자 49점 등이 발견됐다고 14일 밝혔다. 연구소는 지난해 말 해당 수역에 문화재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올 1, 5, 6월 세 차례에 걸쳐 해저면 탐사를 실시했다. 출수된 도자기들의 양식을 조사한 결과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해당하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들로 분석됐다. 목재 유물을 대상으로 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연구소는 정황상 인근 해역에 옛 난파선이 묻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청자 중 그릇과 접시 81점이 서로 포개져 선박에 싣는 형태로 확인됐고, 배에서 사용하는 목재 닻과 노, 닻돌 등이 함께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1123년 고려에 온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선유도에 고려에 온 외국 사신이 묵었던 군산정(群山亭)이 있었다. 선유도는 고려시대에 한반도와 중국을 오가는 선박의 중간 기착지였다. 연구소는 “내년에 정밀 발굴에 들어가 선체를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나라는 형체요 역사는 정신이라. 정신이 보존돼 멸망치 아니하면 형상은 자연히 다시 살아남을지라.” 상하이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박은식(1859∼1925)이 고종이 즉위한 1863년부터 경술국치 직후인 1911년까지 한국 근대사를 다룬 ‘한국통사(韓國痛史·사진)’ 서문 일부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나라를 되찾는 길이라고 믿었던 그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하던 1915년 한문본으로 이 책을 냈다. 초판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1917년 미국 하와이에서 발행된 이 책의 한글본이 100여 년이 지나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 동아시아도서관에서 발견됐다. 14일 발간된 ‘워싱턴대학의 한국 책들’(유유)은 워싱턴대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사서로 20여 년을 일한 저자 이효경 씨(50)가 도서관 소장 한국 자료 중 1900∼1945년 출간된 책 44권을 소개한 책이다. 동아시아도서관은 북미 지역 14개 한국학 도서관 중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약 20만 종) 다음으로 많은 한국 자료를 소장(약 15만 종)하고 있다. 44권 중 5권은 출판의 자유를 박탈한 191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를 피해 미국에서 발행된 책이다. 36권은 한국에서, 3권은 일본에서 각각 발행됐다. 이 씨는 “오랜 기간 도서관 서고에서 누군가 찾아 주기만을 묵묵히 기다린 책들이 드디어 독자를 만나게 됐다”고 전했다. 도서관은 독립운동가였지만 친일파로 돌아선 윤치호(1866∼1945)의 ‘우순소리’도 소장하고 있다. 제목이 우스운 이야기라는 뜻인 이 책은 윤치호가 71편의 우화를 재창작해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았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는 우화를 전하며 “백성을 죽여 가며 재산을 한 번에 빼앗다가 필경 재물과 백성과 나라를 다 잃어버린 사람도 적지 않다”며 국민을 수탈하는 일제와 매국노를 비판했다. 이 책은 1908년 국내에 출간됐다 금서 처분을 받았고, 1910년 하와이에서 재출간됐다. 이 씨는 “일제 무단통치기 해외에서 출간된 책들은 일제의 눈을 피해 우리 문화의 명맥을 잇고자 안간힘을 쓴 증거”라며 “광복 이후에 나온 책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해역에서 고려청자 등 유물 200여 점이 나왔다. 아직 선체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닻, 노 등이 확인돼 물건을 실은 옛 선박이 침몰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전북 군산 앞바다의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에서 고려청자 125점, 분청사기 9점, 백자 49점 등이 발견됐다고 14일 밝혔다. 연구소는 지난해 말 해당 수역에 문화재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올 1, 5, 6월 세 차례에 걸쳐 해저면 탐사를 실시했다. 출수된 도자기들의 양식을 조사한 결과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해당하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들로 분석됐다. 목재 유물을 대상으로 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연구소는 정황상 인근 해역에 옛 난파선이 묻혀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청자 중 그릇과 접시 81점이 서로 포개져 선박에 싣는 형태로 확인됐고, 배에서 사용하는 목재 닻과 노, 닻돌 등이 함께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1123년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선유도에 고려에 온 외국사신이 묵었던 군산정(群山亭)이 있었다. 선유도는 고려시대에 한반도와 중국을 오가는 선박의 중간 기착지였다. 연구소는 “내년에 정밀발굴에 들어가 선체를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미래가 궁금할 때 점집을 찾는 이들이 있다. 실패의 두려움, 미래의 불확실성을 미신에라도 기대어 해소하려는 시도다. 원하는 답이 아니더라도 잠시나마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들 한다. 종교학자인 저자는 일제강점기 신문기사와 경찰·재판 기록을 들춰 당시 대중 사이에 퍼져 있던 미신의 실태를 살펴본다. 절망적인 식민 지배기 사람들이 의지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극단의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 본성이 미신을 만든다고 말한다. 1935년 7월 광주에서는 가뭄이 한 달 넘게 이어지자 마을 여성들이 무등산 정상에 올라가 단체로 소변을 보는 독특한 ‘기우제’를 지냈다. 대개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산 정상을 방뇨로 더럽히면 오염물을 씻어내기 위한 신성한 힘이 작동해 비가 내릴 거라고 믿은 것. 미신은 절망의 감정과 결합돼 더 강해졌다. 당시 치료법이 없던 나병은 ‘걸리면 끝’이라는 공포감을 안겨줬다. 이에 인육을 먹으면 나병이 낫는다는 미신이 퍼졌다. 실제로 1930년 3월 10일 전남 나주군에서 한 여자가 나병을 앓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왼쪽 허벅지살 450g을 잘라 구워 먹인 사실이 신문에 보도됐다. 망국에 이어 전염병까지 확산된 20세기 초 미신은 조직화된 종교 형태로 확대됐다. 1900년경 만들어진 백백교가 대표적인 사례. 백백교는 동학사상과 조선시대 민간 예언서 정감록을 버무린 사이비 종교였다. 백백교 교주와 간부들은 세상은 망하지만 신도들은 살아남을 거라고 현혹한 뒤 재산을 빼앗고 성폭행을 일삼았다. 이들은 범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신도 346명을 살해했다. 이 같은 미신들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미신이 조선인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 총독부가 미신 퇴치에 나섰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많은 믿음을 지우고 탄생한 세계인지 알기 바란다”고 썼다. 전근대 시대의 유물로 간주돼 온 미신을 통해 일제강점기 사회상을 복원한 저자의 시도가 신선하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피아니스트 이혁(21·사진)이 프랑스 파리에서 7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제17회 아니마토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혁의 매니지먼트사 에투알클래식은 이혁이 아니마토 콩쿠르 우승과 마주르카 특별상을 차지했다고 10일 밝혔다. 아니마토 콩쿠르는 프랑스 예술법인 아니마토협회가 저명한 피아니스트와 교육자에게 추천받은 10대 후반~20대 중반의 주요 피아노 대회 입상자들을 모아 독주회 방식으로 개최한다. 이를 통해 촉망받는 신인 연주자들을 프랑스 음악계에 소개해왔다. 이 씨는 우승 상금 3만 유로(약 4000만 원)와 마주르카 특별상금 2000유로(약 270만 원)를 받는다. 프랑스 주요 공연장 기획공연에도 초청된다. 과제곡이 쇼팽 곡만으로 지정된 이번 콩쿠르에서 이혁은 환상곡 Op.49를 연주해 우승했다. 이혁은 곡에 대해 독자적인 해석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11명이 준결승에 올랐고 6명이 결승에 진출했다. 이혁은 올해 10월 열린 제18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결승에 오르기도 했다. 아니마토 콩쿠르의 역대 한국인 수상자로는 김태형, 정한빈이 있다. 올해 쇼팽 콩쿠르 우승자 브루스 류를 비롯해 데니스 마추예프, 올가 케른, 알렉산더 코브린 등 세계 주요 콩쿠르 우승자들도 이 대회에서 수상했다. 이혁은 한국에서 이양숙 선화음악영재아카데미 원장, 신수정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를 사사했다. 2014년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현재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블라디미르 옵친니코프 교수에게 지도받고 있다. 2012년 모스크바 쇼팽 청소년 콩쿠르, 2016년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콩쿠르에서 각각 우승했고, 2018년 일본 하마마쓰 콩쿠르 3위에 입상했다. 이혁은 내년 3월 1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솔로 리사이틀을 열 예정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과서로 서구에 성경이 있다면 동양에는 사서(四書)가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맹자의 꿈’(21세기북스)을 펴낸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56·유학대학장·사진)는 “한자가 가득한 사서를 쉽게 전달하고자 시작한 저술이 벌써 10년이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신 교수는 2011년 출간돼 20만 부가 팔린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1세기북스)을 시작으로 중용, 대학 등 동양고전을 알기 쉽게 풀어쓴 책들을 지난 10년간 내놓았다. 동양고전을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신간으로 ‘내 인생의 사서’ 시리즈를 완간한 그를 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맹자’는 중국 전국시대를 살아간 맹자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예부터 동아시아의 ‘제왕학 교과서’로 꼽힌다. 신 교수는 7편의 맹자에서 77개의 표제어를 뽑아 그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정리했다. 신 교수가 꼽은 맹자 사상의 핵심은 인의(仁義). 전쟁 같은 폭력적 방식이 아니라 인심을 베풀고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 부국강병을 추구한 양(梁)나라 혜왕을 만난 맹자는 “마구간에 살찐 말이 있지만 백성들은 먹지 못해 굶주린다. 이는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라고 일침한다.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정치가 아니라 백성이 낸 세금으로 일군 성과를 함께 즐기는 이른바 여민해락(與民偕樂)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많은 이에게 조언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에 맹자는 “잘 자라는 생물도 하루만 햇볕을 쪼이고 열흘 동안 추우면 잘 자라지 못한다(일포십한·一暴十寒)”고 토로한다. 좋은 조언을 해도 이후 신하들이 반대하면 소용이 없다는 얘기였다. 맹자는 모름지기 지도자는 “주변에 끌려가지 않고 자기가 세운 주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왕학의 고전을 다룬 이번 신간이 마침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기에 나와 더 눈길을 끈다. 맹자를 연구하는 전문학자가 생각하는 올바른 지도자상은 무얼까. 신 교수는 “자신의 비전만 제시할 게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여민해락으로 나아가는 길인지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가 빼어난 지도자”라고 했다. 그는 “이번 시리즈를 마치며 동양철학자로서 책임을 다한 것 같아 홀가분하다”면서도 “사서가 끝났으니 오경(五經)은 어떻게 해야 할지 또 다른 숙제를 안게 됐다”고 덧붙였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