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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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용 기자입니다.

parky@donga.com

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칼럼100%
  • [데스크 진단]‘최순실 그림자’를 지우면 보이는 것들

     외국인 투자가 눈엔 코리아는 남이나 북이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사회다. 500조 원대의 자산을 굴리는 세계 3대 연기금 수장이 하루아침에 수의를 입은 죄인 신세가 됐으니, 그를 만나 투자와 협력을 의논했던 외국인 투자가들은 “제대로 된 나라냐”라며 뒷목을 잡았을 것이다. 지난해 말 박영수 특검의 ‘구속 1호’가 된 문영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추락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골을 더 깊게 했다.  문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하던 2015년 7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 전에 이런 일을 초래한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시스템 문제를 짚어 보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가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먼저 ‘최순실 그림자’를 지우고 이번 일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2015년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당시 엘리엇은 합병에 반대하며 한국의 간판 기업인 삼성을 강하게 몰아세웠다. 국익을 위해서라도 합병에 찬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말처럼 ‘노’라고 말했다간 ‘이완용’으로 몰릴 수 있는 분위기였다. 국민연금은 투자 수익과 국익을 고려해 의사결정을 하게 돼 있으니 이런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증권가에선 문 이사장의 압력이 없었더라도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하긴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순실’이나 ‘반(反)엘리엇’ 그림자와 같은 외풍을 차단할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국민연금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은 교도소 담장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기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내린 의사결정을 특정 시점 주가로 평가하는 게 바람직한가도 따져봐야 한다. 2015년 5월 합병 발표 직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는 가격 제한 폭인 15%까지 뛰어올랐다. 삼성의 지배구조 불안감이 해소돼 장기적으로 주가에 이득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합병 삼성물산 주가가 급락한 건 지난해 10월 24일 대통령 연설문 수정 파일 등이 담긴 PC의 존재가 알려지고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다. 주가는 이 여파로 10월 25일 연중 최고점을 찍고 추락했다.  정점을 찍던 날 국민연금의 지분평가액(약 1조8529억 원)은 합병 발표 전 거래일(약 1조8300억 원)보다 오히려 높았다. 국민연금의 평가 손실이 ‘최순실 게이트’의 자기 실현적 예언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식이라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주가가 널뛸 때마다 국회나 감사원에 불려 다녀야 한다. 일각에선 “세계적 의결권 자문 기관인 ISS가 합병에 반대했는데도 국민연금이 찬성했다”라고 비판한다. 이런 주장은 한국 10대 그룹 소속 58개 계열사에 57조 원을 투자하고 있는 국민연금 직원들에게 ‘국익이니 투자 수익이니 신경 쓰지 말고 ISS 결정을 따르는 게 뒤탈이 없다’는 나쁜 인센티브만 준다. ISS는 한국의 국익 따윈 안중에도 없는 민간 자문사일 뿐이다. 국민연금의 벽에 부닥쳐 뜻을 이루지 못한 엘리엇이 요즘 ‘최순실 그림자’ 뒤에서 빙그레 웃고 있을지 모르겠다. 계산기 톡톡 두드리면서.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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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전광우 초대 금융위원장 “골든타임 이미 지나… 내년 경제까지 망치면 회복 어려워”

    《 2010년 당시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67)이 미국 뉴욕을 방문했다. 그가 묵던 힐턴 호텔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이 호텔을 소유한 세계 최대 사모펀드운용사인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69)이었다. 그는 “내 호텔에 머물러줘 고맙다”며 세계 3대 연기금이자 글로벌 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 이사장을 환대했다. 슈워츠먼 회장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 자문단인 전략정책포럼 위원장에 선임됐다. 전 전 이사장은 “최근 축하 e메일을 주고받았다. 조만간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정책 방향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눠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초대 금융위원장을 지냈고 국내 금융인 중 대표적인 국제금융통으로 꼽히는 전 전 이사장을 1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서 만났다. 》  ―트럼프 경제팀에 월가 인사들이 대거 등용됐는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규제 완화, 감세,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시장 친화적, 성장 친화적 정책으로 가겠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트럼프노믹스’의 효과는 6개월 정도 지나야 알 수 있을 텐데, 미국 주식시장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찍고 있다. 시장의 기대감이 미리 반영된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신설한 전략정책포럼에 금융인과 기업인 16명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대통령과 기업인이 성장을 촉진하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가감 없이 토론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청와대 회의에 여러 번 가봤지만, 우린 기업인들을 불러놓고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일방적으로 지시한다. 기업인 ‘군기 잡기’나 정부 정책에 협조를 구하는 만남은 이젠 의미 없다. 현장 얘기를 듣겠다면 꼭 총수를 부를 필요도 없다.”  ―트럼프식 경제 자문단이 필요하다는 건가.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의 폐쇄적이고 왜곡된 권력과 기업의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통치권자의 열린 마인드가 필요하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만 봐도 기업을 잡아 어떻게 하겠다는 식의 옛날 마인드가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대통령이 기업 총수 누구를 만났다는 것이 특별검사의 수사 대상이 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2008년 초대 금융위원장이 됐을 때 민간 출신 최초의 금융부처 수장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미국은 재무장관 중 상당수가 외부 출신이다. 그래도 시스템이 잘 돌아간다. 영입된 민간 전문가가 경제 정책을 담당하고 테크노크라트 관료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시스템이 돌아가기 어려운 구조다.”  ―관료의 벽이 높아서인가.  “관료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가 생기면 시장의 역량을 믿고 자정 능력을 키우기보단 ‘시장 자율에 맡길 수 없다. 관치가 필요하다’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그러니 지그재그 식으로 간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그림을 내놔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들이 글로벌 톱 수준의 한국 기업인만큼 전문성과 비전을 보여 줄 수 있나.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에 살면서 마인드는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이 바뀌어야 한다.” ―내년 한국 경제가 어렵다는 예측이 많다.  “최악 수준으로 가고 있다. 3년 연속(2015∼2017년) 2%대 성장은 처음 있는 일이다. 심지어 내년 성장률이 2%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1998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보다 성장률이 떨어지고,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지는 충격적인 일이 생길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대기업들은 특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정권 교체기의 정책과 규제의 불확실성 리스크도 크다. 한국의 1, 2대 수출국인 미국과 중국의 ‘주요 2개국(G2)’ 갈등이 증폭될 것이다. 복합적 위험요인이 엉켜 있다. 내년 외환위기 20주년을 반추하는 시점에서 그때 못지않게 질적으로 더 어려운 위기적 상황을 맞게 됐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앞으로 6개월 정도의 국정 공백이 경제에 치명적일 수 있다. 안보 측면에서는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게 아니라 국익과 자위권에 대한 확고한 스탠스를 보여야 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수출 다변화와 미국 현지 생산 등의 대응이 필요하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경제는 용수철과 같다. 오래 눌려 있으면 탄력을 회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내년 경제까지 망치면 재정을 풀고 온갖 노력을 다해도 활력을 회복하기 쉽지 않다.” ―경제 회복의 골든타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건가.  “골든타임은 이미 지난 게 아닌가 생각된다. 후손들에게 미안한 얘기인데, 우리가 역사적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정유년은 국가의 명운이 갈리는 역사적 기로가 될 것이다. 20년 전 외환위기의 국가적 수모와 국민적 고통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당장 미국 금리 인상이 직격탄이 될 것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금리가 이미 오르고 있다. 1300조 원을 넘은 가계부채가 가장 큰 걱정이다.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소득도 늘지 않고 빚 상환 부담이 커진다. 가장 걱정되는 건 취약계층이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은 자영업자, 저소득층 등 취약 계층에 대한 선제적, 선별적 채무조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채무조정은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당국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금리 인상의 폭탄이 이 계층에서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사회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최근 가계부채가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을 통해 많이 늘었다. 이런 쪽도 각별히 관리해야 한다.” ―외국 자본 이탈 리스크도 크다.  “외화 유동성을 우려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상황이 언제든지 변할 수 있으니 은행, 기업의 외화 유동성 관리를 더 면밀하게 해야 한다. 금리가 오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의 부담이 더 커진다. 구조조정에 속도를 더 내야 한다. 구조조정은 사회적 저항이 크다. 구조조정 촉진과 사회 안전망 확충에는 재정을 적극적으로 쓸 필요가 있다.” ―금융논리에 치중해 해운업 구조조정에 실패했다는 평가도 있다.  “금융위 주도로 구조조정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걸 탓할 수는 없다. 해운업 구조조정을 금융위에만 미뤘다. 경제팀 모두가 구조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해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는 시스템적 노력이 부족했다는 시장의 지적에 공감한다.” ―그래도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좋은 편 아닌가.  “과거 우리가 많이 써먹은 얘긴데, 이젠 좋다고만 말할 순 없다. 조선 해운 등 5개 취약 업종 외에도 전자와 자동차 등 핵심 산업의 경쟁력이 도전받고 있다. 정치시스템은 후진국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 재정과 외화 유동성이 좋아 국가 신용등급이 높은 것이다. 국가 경제의 체질과 체력이 좋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한국 경제가 허약 체질로 바뀌고 있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내외 투자를 늘려 경제를 살리려면 정책 실행력, 일관성,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미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최소한의 국가 경영 원칙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야 해외 투자자에게 믿음도 주고 투자도 촉진할 수 있다. 노동개혁에 반대한다든지 법인세를 높이자고 하면 투자자들의 마음에 와 닿을까. 국가 안위를 확보하겠다는 의지와 정책 방향이 안 보이는 곳에 누가 많은 돈을 투자하겠나.”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연금이 그런 일에 연루된 것으로 비춰진 것이 매우 유감이다. 국민연금과 삼성 측의 부적절한 접촉이 있었는지는 검찰이 수사 중이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삼가야 한다. 국민연금이 기금 운영 원칙에 따라 의견을 수렴해 투자 의사결정을 했다면 이를 존중하는 제도와 문화도 필요하다. 기금 운영에 관한 전문적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이 없으면 의혹과 혼란이 반복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전문성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핵심 인력이 떠나고 있다고 들었다. 지방 이전 영향도 있지만 전문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 문화도 문제다. 국정조사에 복지부 감사원 등의 중복 감사도 많다. 금융권의 ‘낙하산 인사’도 큰 병폐다. 능력을 발휘해 ‘글로벌 스타’가 되기보다 줄타기를 잘해야 살아남는다는 나쁜 인센티브를 주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부터 전문성과 글로벌 역량을 갖춘, 시장 투자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을 선임해야 한다.” ―기금운영위원회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수준의 독립성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연기금 관련자가 국회에 불려 나오는 건 해외토픽 감이다. 금통위가 금리 결정을 잘못했다고 불러놓고 뭐라고 하진 않는다. 기금 운용위원들이 금통위원처럼 임기를 지키며 양심적이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외국 연기금은 다 그렇게 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지나치면 기업 경영을 간섭할 수 있다고 우려한 적이 있다.  “국민연금은 장기적 투자자로서 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촉진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의결권 행사로 기업이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의결권 행사가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에 좌우되면 오히려 기업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상상하기 싫은 일이지만 정부나 정권의 기조가 반기업적 분위기로 돌아섰을 때 ‘연금 사회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현재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버지가 저축해 놓으면 자식들의 부담이 덜하다. 정치인들은 표 떨어진다고 꺼리지만 미래세대를 위한 보험료율 현실화가 차기 정부에서 꼭 필요하다. 다만 취약 계층에 좀 더 주는 방향으로, 사회 안전망 역할을 확대하는 쪽으로 아이디어를 내 사회적 거부감을 줄일 필요가 있다.” ▼ 전광우 초대 금융위원장은 ▼△1949년 서울 출생△서울대 경제학과 졸업△미국 인디애나대 경제학 석사, 경영학 석·박사△1986∼1998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1998∼2001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특보 △2007년 외교부 국제금융대사△2008년 초대 금융위원회 위원장△2009∼2013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201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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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신장섭 교수 “IMF는 19년 전 한국을 잘못된 수술대에 올렸다”

    《 역사의 페이지를 채우는 일은 무척 어렵다. 굴곡이 많았던 한국 현대 경제사도 그렇다. 최근 발간된 책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는 전직 고위 관료들의 증언을 통해 1997년 외환위기 극복과 새로운 경제 시스템 정착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해 눈길을 끌었다. ‘구조조정 집도의’인 관료들과 다른 관점에서 외환위기를 보는 소수의 시각도 있다. 얼마 전 ‘경제민주화…일그러진 시대의 화두’라는 책을 펴낸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54)는 “지난 20년간 경제 개혁의 성적표는 성장 고용 분배에서 다 낙제점이었다”며 1990년대 한국 경제와 외환위기 구조조정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한다. 지난달 방한한 그를 만났다. e메일로 추가 인터뷰도 진행했다. 》  ―1990년대 한국 경제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1997년 외환위기 이전 한국 경제를 ‘성장-내수-고용-분배’가 공존하는 ‘융성기’로 봐야 한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을 잘했고, 재벌 체제가 긍정적으로 기능해 경제 기적을 이뤘다. 경제력 집중의 문제가 있었으나 성장을 하는 데는 굉장히 효율적이었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터지자 한국 모델이 잘못됐다는 ‘구조적 위기론’이 득세했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 경제에 문제가 없었다는 얘긴가. “문제가 있었지만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경제 발전의 이행 과정에서 몇 가지 실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구조적 문제로 진단하고 지나치게 구조조정을 단행해 성장 잠재력까지 깎아 먹었다. 이후 경제 민주화 등이 추진됐지만 분배는 더 나빠졌다. 구조조정을 강조한 사람은 ‘구조조정이 덜 됐으니 더 센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대안밖에 내놓지 못한다.” ―1990년대 한국 모델의 장점은 뭔가.  “당시 한국의 재벌과 제조업이 국제적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분배도 좋았다. 현대자동차가 품질이 좋은 자동차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삼성이 반도체시장에서 세계 1등으로 올라섰다. 조선업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렇게 번 돈에 은행 돈을 더 빌려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마침 세계화 바람이 불어 신흥시장이 열리던 때였다. 경쟁력을 쌓고 해외 시장에 나가기 위해 투자를 늘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가 늘고, 소득이 증가해 분배도 좋아졌다.” ―과잉 투자로 겉만 화려했던 것 아닌가.  “당시 대표적인 과잉투자 사례로 지목된 한보철강은 중국 진출을 위해 서해안에 공장을 지었다. 대우의 세계 경영도 중국 베트남 동유럽 등 신흥시장 투자였다. 이 신흥시장이 2000년대 들어 엄청나게 커졌다. 신흥시장 개척을 위한 선제적, 공격적 투자로 봐야 한다. 제대로 됐다면 한국이 더 크게 벌 수 있었다. 구조적 위기라고 해서 이 기회를 다 잘라 내 버렸다.”  ―당시 기업 부실이 컸다.  “일본도 경제개발을 할 때 기업 부채비율이 500%대까지 올라갔다. 한국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높은 건 자금 조달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일본 미국 대만 제조업과 비교하면 한국 기업의 영업이익이 제일 좋았다. 하지만 이자 비용 등을 빼고 난 경상이익은 낮았다. 중화학공업 등에 투자를 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대만 경제는 중소기업 중심이어서 대규모 투자를 할 필요가 없었다. 미국 기업은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많이 조달해 은행의 이자 부담이 크지 않았다.” ―빚이 많다면 위기관리를 더 잘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차입을 많이 하는 한국 모델에 맞게 금융 리스크를 관리했어야 했는데, 그걸 제대로 못한 게 잘못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자본시장까지 자유화했다. 구조적으로 리스크가 높은 시스템인데, 성공에 도취돼 ‘가드’를 미리 내려버린 것이다. 해외 자본이 들어오는 것만 생각하고 나가는 걸 대비하지 않은 것이다. 이 리스크 관리 실패가 외환위기로 나타난 것이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저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한국어판 특별기고문에서 “한국은 당시 저축률이 높아 외국 자본이 필요하지 않았다. 급격한 자본 자유화는 한국을 금융위기로 몰고 갔다”고 비판했다.  ―기업보다 정부 책임이 크다는 건가.  “기업은 위험을 지는 곳이다. 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가 1차 리스크 관리를 해야 했다. 국가 전체의 리스크 관리는 정부가 해야 한다. 물론 재벌도 잘못이 있다. 너무 낙관적이었다. 굳이 책임을 묻자면 정부, 그 다음은 금융회사, 세 번째는 재벌이다. 그런데 재벌이 더 큰 문제인 듯 다뤘다.”  ―당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크게 반발했다는데….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맡고 있던 김우중 회장은 1998년 강연 등을 통해 ‘이 체제가 오래가면 한국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제 금융시장에 비판적이었고 정리해고에도 반대했다. 당시 ‘황야의 무법자’와 같은 대접을 받았지만 맞는 진단이었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우리처럼 심하게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GM을 지원해 살려 놨다. 이중 잣대라는 비판을 받을지언정 국익에 충실한 것이다. 우리는 어땠는가.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사람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역사책이 안 바뀐다.” 신 교수는 2014년 ‘김우중과의 대화’라는 책 등을 내고 국제통화기금(IMF)식 구조조정은 잘못된 재벌 개혁의 사례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에 대한 당시 관료들의 생각은 다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대우그룹이 무너진 것은 1인 경영 때문”이라고 비판했고,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김 회장이 시장 변화를 못 읽었다”고 지적했다. ―문어발 확장과 선단식 경영 등 재벌 체제의 문제가 있었다.  “지나친 계열사 간 지급 보증과 내부 거래는 줄여야 한다. 하지만 그룹 체제의 장점이기 때문에 이를 죄악시할 필요는 없다. 한도를 정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이걸 못 하게 하니 한국 기업의 확장 능력이 크게 줄었다. 한국은 상속세율도 높고, 공익법인 설립을 통한 승계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가족경영의 씨가 마를 것이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SK와 LG도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 문제를 겪을 것이다. 그게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가. 존경받는 재벌 모델을 만들어 사회에 생산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게 낫다.” ―존경받는 재벌 모델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재단을 통한 승계를 허용하되 고용과 분배 목표를 달성하는 ‘생산적 전위대’로 만들자는 것이다. 재단으로 넘어온 돈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적당한 이윤을 추구하는 ‘2부 리그’ 기업을 새로 만들어야 고용과 분배가 가능한 생산적 복지를 할 수 있다. 기존 자회사로 구성된 재단 소속의 ‘1부 리그’ 기업은 지금처럼 국제 경쟁을 하면 된다. 투자와 고용을 전제로 재단을 통한 승계를 허용하자는 얘기다.”  ―‘적당한 이윤 추구’가 가능할까.  “기업들의 행동양식은 목표 함수가 어떻게 주어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 유통회사인 코스트코는 이익률을 3, 4%로 일정하게 유지한다. 이익이 많아지면 물건 값을 낮춘다. 그래도 회사가 잘나간다. 직원 복지도 좋다. 비용을 쥐어짜는 월마트와 정반대 경영을 하는 회사다. 이런 목표 함수를 가진 기업들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에 대해 부정적인데…. “과거에 비해 경제 자유화는 꽤 진행됐다. 경제 민주화는 경제력 집중과 분배 문제 악화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재벌만 갖고 얘기하니 맞지 않는 처방이 나온다.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 사태를 보면 재벌은 뜯기는 대상이다. 삼성전자가 잘나간다고 해도 지분 0.6%를 보유한 투기자본이자 악명 높은 벌처펀드인 엘리엇한테 30조 원의 특별배당 협박을 받는 시대다. 갤럭시 노트7 생산 중단 사태를 보듯이 기업들은 고객에게 꼼짝 못 한다.”  ―무엇이 문제라는 건가.  “경제 민주화 법안이 주주 행동주의, 정확히는 기관투자가 행동주의를 대변하고 있다. 이런 처방은 분배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경영자는 어떻게 생산을 늘릴까를 고민하지만, 펀드매니저들은 생산 활동에 나온 걸 어떻게 빼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자들은 마지막 남은 이익 일부를 배당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을 요구하며 제 몫을 먼저 챙기려고 한다. 그러니 기업들은 사람을 자르고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1 대 99’의 사회가 됐다. ‘재벌을 때려잡자’는 정서에만 호소하는 경제 민주화는 외환위기 못지않은 독약이 될 것이다.”  ―그럼 어떤 대안이 필요하다는 건가. “한국이 갖고 있던 장점을 살리는 시스템을 정립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복수의결권 등을 도입해 산업자본이 목소리를 내게 해줘야 한다. 산업과 금융자본과 균형을 맞춘 규제가 필요하다. 대기업이 계열사 지분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기관투자가들이 공동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을 막는 규제도 필요하다. 공정거래법이 기업 담합은 규제하면서 기관투자가들의 담합은 사실상 용인하고 있다.” ―대기업의 투자도 늘려야 한다.  “대기업이 쥐어짜서 중소기업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대기업이 예전만큼 투자를 하지 않으니 중소기업이 성장할 여지가 줄어들었다. 대기업이 고용을 늘리는 투자를 국내에서 할 수 있게 정책적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해 한국 경제의 허리도 키워야 한다. 이건 대기업이 아니라 정부의 책임이다. 외환위기 이후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산업금융 시스템이 해체됐다. 투자를 하려면 부채비율이 높아지는데, 이 비율이 높으면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풀어줄 필요도 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 20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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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진단]우린 다시 금 모으기를 할 수 있을까

     2010년 여름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경제 저널리즘 세미나에서 다른 나라 기자들에게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에서 있었던 금 모으기 운동에 대해 들려준 적이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유럽 재정위기’의 두려움이 세계 금융시장에 짙게 깔려 있을 때였다.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당시 남유럽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에선 실직자들이 급증했다. 형편이 어려워진 국민들은 “거리의 비둘기마저 배를 곯는다”고 한탄했다. 남유럽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숙자와 실직자들이 “살려 달라”고 절규하던 서울 거리가 떠올랐다.  당시 외환위기로 달러가 모자라자 한국인들이 장롱 속의 금붙이를 자발적으로 들고 나와 경제 재건에 보탰다는 얘길 꺼낸 건 “한국인들이 대단하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국민적 단합이 필요하다는 걸 훈수랍시고 했는데, 남유럽 기자들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  “국가가 잘못한 걸 국민들이 왜 책임져야 해?” 그들은 우리에게 그런 일을 기대하진 말라고 되받아쳤다. 개인의 사적 영역과 국가 사이에 단단히 울타리를 두는 서구인의 시각에서 금을 팔아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국가를 위해 내놓은 한국인들을 이해할 순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남 얘기하듯이 위기의 책임을 무능한 정부에 돌리고 탐욕스러운 미국 금융인 탓을 하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한국에 외환위기가 다시 닥친다면 그때처럼 온 국민이 합심해 ‘금 모으기’ 운동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외환위기 전만 해도 ‘나라에 좋은 일이 나한테 좋다’는 국민적 믿음이 있었다. 맨주먹으로 가난을 이겨낸 성공에서 얻은 자신감이자, ‘한강의 기적’이 준 선물이었다. 난파선처럼 침몰하는 한국 경제를 구해낼 수 있다면 장롱 속 결혼반지쯤 내놓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공동체와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국민들이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도 쉽게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살려낸 한국 경제가 금 모으기 운동에 제대로 된 ‘애프터서비스(AS)’를 해주진 못한 것 같다. 나라 곳간에 달러가 다시 차고, 대기업들이 더 큰 돈을 만지게 됐지만 국민들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중산층이 얇아지고, 가계부채는 급증했다. 팍팍한 삶은 세계 최고의 자살률로 나타났다. “삼성, 현대자동차에 좋은 것이 한국에도 좋다”는 자부심도 희미해졌다.   ‘비선 실세’가 국정을 농단하고, 대기업이 권력의 눈치를 보며 돈을 헌납하는 정경유착의 구태를 보며 국민들은 있는 금도 장롱 속에 더 깊이 감추고 싶을지 모른다. 최근 만난 한 전직 장관급 인사는 “혼란 속에서 국민을 생각하는 국가 지도자는 보이지 않고 제 이익만 챙기려는 계파 지도자만 넘쳐난다”고 한탄했다.  경제는 노동과 자본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같은 자원을 투입해도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없으면 허실이 많다. 당장 누가 대권을 쥐느냐보다 앞으로 추락한 국민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쓰러진 법과 원칙을 다시 세우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정한 기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 위기 극복의 첫 단추다. 그것이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과, 주말을 반납하고 광화문광장에 모인 수백만 ‘촛불 민심’을 제대로 AS해 주는 길이다. 경제도 그래야 살아난다.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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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前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 다니엘 튜더 “트럼프시대 역풍 막을 강력한 리더십 있어야”

    《 외국인 경제활동인구가 사상 처음 100만 명을 넘었다. 올해 5월 말 현재 국내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142만 명 중 100만 명이 일을 하고 있거나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뜻이다.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없다’는 칼럼으로 화제가 됐던 다니엘 튜더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34)도 한국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경제활동 외국인’이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로 혼란스러운 한국 사회에 가슴 아파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바꿀 세계의 미래를 걱정하며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이후 e메일로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참, 모든 것이 미스터리입니다.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가 당선될 것으로 생각해 돈을 걸긴 했습니다. 상금은 원치 않았던 결과에 대한 보상금이라고 생각해요.(웃음)” 그는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예상하고 영국의 도박사이트에서 60파운드를 걸어 290파운드(약 43만 원)를 벌었다고 귀띔했다.  ―트럼프 후보가 왜 표를 얻었을까요.  “세계 정치가 ‘다이어트 콜라 민주주의’(‘다이어트 콜라’처럼 효과는 없고 말만 번드르르한 인기 영합적 정치인을 유권자들이 선택하는 현상)로 흐르고 있어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반대파는 경제와 정치적 측면을 강조했지만, 탈퇴파는 문화 역사 독립성을 주장했어요. 설득 수사학 측면에서 ‘로고스(logos·논리)’만 강조한 잔류파가 감정에 호소한 브렉시트파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트럼프에게 맞선 힐러리 클린턴 후보도 비슷해요. 영감을 주진 못했잖아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세계화의 속도는 느려질 것입니다. 미국의 국가 이미지와 소프트 파워가 줄고 한국과 영국 등 동맹국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힘이 커질 겁니다. 트럼프의 경제적 보호주의와 국수주의가 얼마나 진지한 주장이었는지 아직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그가 이를 실행하려고 한다면 한국의 안보나 자동차 수출 등에서 역풍이 불 겁니다. 트럼프 시대의 한국엔 강력한 리더십이 꼭 필요합니다.” ―한국은 ‘최순실 게이트’로 혼란스럽습니다.  “영국 맨체스터에 계신 아버지가 ‘최순실이 어떤 사람이냐, 샤머니즘은 도대체 무슨 얘기냐’고 전화하셨더군요.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슬펐습니다. 다른 나라를 취재하듯이 180도 다른 보도를 하던 한국 언론들이 모두 같은 얘기를 한다는 건 정말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죠.” ―대통령의 사과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가 떨어졌으니 사과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겁니다. 한 블로거의 말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타이슨 존’에 빠졌다고 볼 수 있어요. 기행을 일삼는 미국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외계인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거든요. 대통령이 국민 언론 정치인을 설득할 힘이 없으니, 박근혜 정부도 ‘레임 덕’(절뚝거리는 오리), ‘데드 덕(죽은 오리)’에 빠지게 된 겁니다.”  ―박 대통령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까.  “박 대통령이 외신기자클럽에 온 적이 있는데, 미리 보내 준 질문에 답만 해서 준비된 쇼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적으로 안타까워요. 이 세상에서 그와 같은 사람이나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청와대에서 자랐고, 부모님이 암살당했죠. 어떤 면에서 햄릿이나 리처드 2세처럼 외롭고 비극적인 ‘셰익스피어리언 트래지디(셰익스피어 비극)’ 주인공과 같아요. 그래서 최순실 같은 사람에게 더 쉽게 빠졌을 겁니다.”  ―한국 사회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요.  “한국은 친한 사람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하는 사회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장단점이 있죠. 룰보다 사람, 관계를 더 중시하는 것이 민주정치에는 해가 될 수 있어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도덕적 권위를 너무 믿지 말아야 한다는 국민적 교훈도 얻었으면 합니다. 영국이 50년, 100년간 해놓은 것을 한국은 5, 10년에 이루는 위대한 나라이니 충분히 극복할 거라고 봅니다.” ―대통령은 개헌을 얘기했는데….  “박 대통령은 국민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개헌을 얘기했을지 모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순실 게이트’로 개헌 필요성이 더 커졌습니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책임과 시스템의 문제가 큽니다. 책임총리와 국회가 지배하는 시스템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은 ‘성장 외에 철학이 없다’고 지적한 적이 있죠.  “지난 대선 때의 새누리당 프로페셔널리즘(전문성)과 민주당의 철학을 합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새누리당이 야당에 비해 ‘프로페셔널리즘’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월호 사건 대응과 각종 비리를 보면서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철학이 있는 보수 정당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약점으로 효율적 야당이 없다고 비판했는데….  “2012년 대선 때 민주당원들을 취재한 적이 있어요. 그들이 심리적으로 1980년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1980년대처럼 ‘반대’만 해선 20, 30대 유권자와 소통할 수 없습니다. 야당이 집권하려면 젊은 유권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업자나 대기업 출신 전문직 등 ‘프로페셔널한 진보주의자’를 많이 영입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삼성 현대가 좋은 TV와 자동차를 만든 건 일본 독일 회사와 경쟁했기 때문”이라며 “한국 정치에도 경쟁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없는 이유도 경쟁이 없어서입니까.  “한국 사람들은 카스나 하이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맥주 회사들이 돈을 많이 벌어도 연구개발 투자는 많이 하지 않았어요. 맥주에 소주를 타서 먹기 때문에 ‘소맥용 탄산 보리차’라고 했잖아요. 요즘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맛도 나쁘지 않고요. 물론 ‘더부스’보다 좋진 않지만….(웃음)” 그는 2014년 한국 친구들과 수제맥주회사 ‘더부스’를 세웠다. 크라우드펀딩으로 10억 원을 투자받아 미국 북캘리포니아 유리카에 있는 맥주 양조장도 인수했다. 내년 1월부터 미국 현지 생산을 시작하고 한국에 수출할 계획이다.  ―경쟁 때문이라면 계획 경제인 북한의 맥주가 더 맛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북한 맥주시장에도 경쟁이 있어요.(웃음) 북한은 도로와 철도 사정이 나빠 도시마다 양조장이 있습니다. 원산에 가면 평양의 대동강맥주 외에 지역 맥주도 마실 수 있죠. 대동강맥주보다 맛있는 맥주가 경흥맥주예요.”  2014년 북한을 방문한 그는 로이터통신 기자인 제임스 피어슨과 북한에 대한 책도 냈다. 한국어판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한국 출판사 관계자가 ‘한국 사람들은 북한에 관심이 별로 없다’고 거절해 한국판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제조업 기지인 울산과 경남 창원이 영국의 산업혁명 도시인 글래스고, 뉴캐슬처럼 될 수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죠.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정부는 영국이 서비스 중심 국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제조업을 포기했어요. 뉴캐슬, 글래스고, 리버풀의 조선소가 문을 닫자 실업자가 늘고 주변 가게도 어려워졌어요. 범죄, 마약, 미혼모 등 사회문제도 늘었습니다. 런던 시티에서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소수의 금융인과 리버풀 맨체스터 뉴캐슬 등에서 복지로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지방과 런던의 격차가 커져 영국이 말레이 반도에 잘사는 싱가포르가 붙어 있는 모습과 비슷해졌어요.”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스위스는 작은 마을에도 최첨단 공장이 있습니다. 스위스 공장에서 일하는 한 친구는 한 달에 1000만 원을 벌어요. 영국은 중국 등과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제조업을 아웃소싱했지만, 독일이나 스위스는 경쟁자가 만들 수 없는 제품으로 승부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자하고 첨단기술을 생산시설에 도입했습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모두 발전시키는 게 가능할까요.  “독일이 했다면 한국도 할 수 있죠. 한국이 또 한 번 기적을 만들었으면 해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딴 똑똑한 한인들을 많이 만났어요. 이런 분들이 한국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서울 강남에 정부 보조금을 받아 게임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많지만, 이들이 고용하는 사람은 고작 개발자 몇 명입니다. 최첨단 엔지니어링 기술로 무장한 독일의 ‘미텔슈탄트’와 같은 작지만 강한 중소·중견기업을 지방에 많이 세워야 합니다.” ―영국에서 배울 것은 무엇일까요. “거만하게 영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한국의 안전 문화가 영국만큼 된다면 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을 크게 줄일 수 있어요. 통계로 보면 매년 28번의 세월호 사고를 피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년 대선에서 정치권이 ‘세이프 코리아, 세이프 컨트리’를 공약했으면 좋겠어요.”▼ 다니엘 튜더는 ▼-1982년 영국 맨체스터 출생-영국 옥스퍼드대 졸업-영국 맨체스터대 경영대학원(MBA) 졸업-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2010∼2013년)-수제맥주회사 ‘더부스’, 대안언론 ‘바이라인’ 공동 창업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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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진단]어느 철도 하청 근로자의 죽음

     경주 지진으로 어수선했던 13일 새벽 경북 김천구미역 인근 KTX 선로에서 비극이 일어났다. 보수 작업을 위해 KTX 선로에 들어선 코레일 하청회사 직원 2명이 지진으로 지연 운행된 KTX 열차에 치여 숨을 거뒀다. 캄캄한 새벽 철로에서 일어난 참담한 사고는 잇단 여진과 수많은 사건사고 속에 묻혔다. 사고 열흘 뒤 경찰 조사에서 몰랐던 사실이 드러났다. 숨진 직원 2명이 가로 2.5m, 세로 3m의 작업용 수레(트롤리)를 먼저 선로 밖으로 밀어내느라 시간을 지체하다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작업자들이 수레를 밀어내지 않고 세월호 선원들처럼 나 먼저 살자고 모두 내뺐다면 승객 300여 명이 탄 KTX 열차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끔찍하다. 목숨을 던져 많은 승객의 생명을 구했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했다. 사고 원인을 두고 하청회사 측은 “코레일 측의 진입 허가를 받고 선로에 들어갔다”고 주장하고, 코레일 측은 “진입을 허가한 적이 없다”고 맞서면서 의로운 죽음이 제대로 평가조차 받지 못한 채 잊혀지고 있다. 어느 쪽이 선로 진입을 명령했든, 시키는 대로 캄캄한 선로에 들어선 현장 근로자들에게 잘못은 없어 보인다. 절체절명의 순간 수레부터 밀어냈던 의로운 희생정신이 변색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코레일이 책임 공방부터 벌이는 건 무책임하다. 숨진 이들이 든든한 노조의 지원을 받는 코레일 정규직 직원이었다면 이렇게 푸대접을 했을까.  한국에선 비슷한 일을 해도 정규직, 비정규직이나 원청, 하청회사로 신분과 소속이 갈리면 대우가 크게 달라진다. 1, 2, 3차 협력회사로 내려갈수록 급여와 처우가 곤두박질친다. 2015년 기준 시간당 임금(대기업 정규직 100 기준)은 중소기업 정규직이 49.7,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5.0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놔둔 채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라도 취직하라는 어른들의 얘기가 청년들의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이 규제개혁을 가속화해 생산성을 높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낮추는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한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코레일의 성과연봉제 도입 방침에 반대하며 지난달 27일부터 최장 파업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철도노조는 27일 성명을 내고 노조는 “김천역 고속선 외주노동자들의 죽음 등 외주화의 안전문제와 청년실업의 문제는 안중에도 없다”며 사고 책임을 경영진에 돌렸다. 한데 이걸로는 부족하다. 힘 센 대기업과 공공기관 노조의 협력 없이는 ‘갑’과 ‘을’로 갈린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공고한 벽은 허물어지기 어렵다. 업무를 외부에 맡기지 않는다고 해서 안전사고가 싹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이번처럼 관리 감독과 업무 소통이 서툴면 누가 업무를 맡아도 사고는 재발된다.  철도노조가 직원과 승객의 안전을 진심으로 중시한다면 성과연봉제 파업 대신 안전을 철저히 챙기는 직원이 더 높은 보상을 받게 성과연봉제를 설계해 달라고 사측에 먼저 요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청년실업이 그렇게 걱정이라면 ‘신분이 아닌 능력과 생산성에 따른 보상체계를 도입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고 청년들이 갈 만한 일자리를 늘려 보자’고 성숙한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철도 하청 근로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누구도 외면해선 안 된다.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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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40년 된 부가세, 내년 대선에서 인상 논의 시작해야”

    《 최근 한국은행이 내년 경제성장률을 2.8%로 내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한발 더 나아가 “내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잠재성장률이 2%대로 떨어졌음을 처음으로 시인했다. 2%대 성장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경제의 기초 체력이 허약해졌다는 것이다. 일본처럼 부자 나라가 되기도 전에 저성장 고령화 시대에 진입한 한국 경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한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준경 원장(60)을 최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서 만났다. 김 원장도 “구조개혁이 지연돼 생산성 부진이 계속된다면 잠재성장률이 3.0%를 밑돌 수 있다”며 “10년 후 잠재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성장-물가-생산성 3저(低) 위기” ―내년 경제 어떻게 보십니까.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각각 0.1%포인트 낮췄어요. KDI가 5월 전망했을 때보다 여건이 더 나빠진 겁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저물가, 저생산성’이 세계 경제의 특징인데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전 세계 국가들이 구조조정을 게을리해 부채만 잔뜩 늘었습니다. 선진국은 정부 부채, 중국은 기업 부채, 한국은 가계 부채가 많이 증가했습니다.” 김 원장은 “한국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아 안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KDI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한국도 부채가 많이 늘었는데요.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성장을 제약하는 부채의 임계치는 가계 부채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85%, 기업 부채는 90%, 정부 부채는 85%입니다. 한국의 기업 부채는 106%로 임계치를 이미 넘었죠. 가계 부채는 85∼90%로 임계치에 이르렀습니다. 정부 부채만 40% 약간 넘어 여유가 있지만, 고령화 등으로 재정 상황은 곧 어려워질 것입니다.” ―특히 잠재성장률이 2%대로 떨어진 게 걱정입니다.  “지난 5년간 한국의 잠재성장률(3.1%)에 대한 생산성 기여도가 과거의 절반 수준인 0.8%포인트로 떨어졌습니다. 기업 퇴출 장벽, 진입 규제 등 비효율의 적폐가 저생산성을 초래한 것입니다. 구조 개혁이 시급합니다.”  ―당장 기업 구조조정이 큰 현안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과잉투자로 기업 부채가 많았습니다. 출자전환 등 부채 구조조정으로 문제를 해소했죠. 이번엔 재무적 문제 외에 사업상 문제까지 생겼습니다.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기업 매출액 증가율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보일 정도로 영업력이 훼손됐어요. 사상 최저 금리라는데,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 많습니다. 재무 구조조정과 함께 사업 구조의 재편이 없으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조선업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데요. 쉽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험을 배워야 해요. 일본이 조선업을 너무 빨리 포기해 실패했다고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렇지 않았어요. 일본은 1970, 80년대 1, 2차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두 차례 조선업 구조조정을 해 설비는 50%, 조선업 종사자는 1974년 27만 명에서 1988년 8만 명으로 줄였습니다. 영국은 1977년 선박공사를 세워 131개 조선사를 국유화하고 1978년부터 10년간 13억 파운드의 보조금까지 줬죠. 노조 반대가 거세니 그렇게 한 것인데, 회생에 실패했습니다. 결국 재정에 큰 부담만 남겼어요.”  KDI 연구팀은 8월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을 배우기 위해 영국 스웨덴 일본 등을 돌았다. 김 원장도 직접 영국을 방문했다. “부실기업 정리기구, 실업대책 배워야” ―일본에서 뭘 배워야 합니까.  “일본은 조선업 구조조정을 위해 주무부처인 운수성에 업계와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문기구인 ‘해운조선합리화심의회’를 만들었습니다. 심의회가 세계 시장 전망 등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내놨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공적자금을 조성해 설비와 고용을 성공적으로 줄였습니다. 우리도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인 산업관계장관회의 밑에 일본의 심의회와 같은 전문기구를 둘 필요가 있어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석유 화학 철강은 물론 자동차 산업도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조선업의 구조조정이 중요한 선례가 될 것입니다.” 김 원장은 “부실기업과 부실채권 정리를 목표로 하는 ‘해결기구(resolution authority)’를 설치해 구조조정의 추진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구조조정의 성패가 실업대책에 달려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영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는 특정 지역에 조선소가 집중돼 대량실업이 발생하면 지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훨씬 큽니다. 일본은 조선업 구조조정을 위해 ‘고용조정 지원금’ ‘고용 안정자금’ ‘직업전환 지원금’ 등의 고용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1977년 ‘특정 불황업종 이직자 임시조치법’을 제정하고 40세 이상 실업자에 대해 실업보험과 취업촉진수당을 최장 3년까지 줬어요. 일본은 요코하마의 조선소를 없애고 야외 음악장을 만들었고 조선업이 쇠퇴한 가와사키는 환경도시로 바꿔 놨습니다. 전직과 재취업 등 실업 대책과 도심 재생 계획을 함께 진행한 겁니다. 우리도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조선업 근로자 해외 진출 지원 필요” ―불황 속에 재취업이 쉽지 않을 텐데요. “영국 뉴캐슬의 버려진 조선소를 방문했을 때 ‘이곳 근로자들이 다 어디에 갔느냐’고 물었더니 절반 정도가 네덜란드 캐나다 중동 등에 재취업했다고 하더군요.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조선업은 불황이지만 국내 발주 물량이 전체 일감의 80% 정도 되는 일본은 오히려 사람이 부족하다고 해요. 정부가 조선업 실직자들에게 일본어 교육 등을 해주고 일본 취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면 어떨까요. 한국과 일본 당국이 협력하면 양국에 모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조선업 회생을 위해 군함 발주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시간을 벌려면 ‘일감 절벽’을 버틸 수 있는 수요 창출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안보 위기에도 대응하는 해군력 강화를 위해 군함 건조를 생각해볼 수 있어요.” ―재원 마련과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군함 건조 재원은 재정지출 사업 효율화와 국방 조달체계 쇄신을 통해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일본은 순시선을, 영국은 전투함은 물론이고 항공모함 건조까지 추진했어요. 이를 통해 조선업을 사업지원 서비스로 전환했죠. 호주도 최근 조선업 불황에 대응해 군함, 잠수함 건조에 20년간 약 80조 원을 투입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KDI 연구팀은 영국 뉴캐슬대에서 1970, 80년대 조선업 구조조정 관련 영국 국방부 자료를 입수했다. 이 자료엔 ‘조선업 위기에 대한 대처뿐 아니라 해군력 강화 및 군수장비 고도화를 위해 3개 조선소에 군함을 발주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은행 고위험 대출 비중 상한선 둬야” ―13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해법은 없을까요.  “2011년 이후 국민총소득 증가율보다 가계신용 증가율이 더 높아졌습니다. 이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부채 총량을 관리해야 할 때입니다. 영국처럼 은행의 고위험 대출 비중에 대한 상한선을 두는 방안도 검토해야 합니다.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은 가계부채 증가세 억제를 위해 현 수준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야당은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데…. “법인세는 국가와 기업의 국제 경쟁력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KDI 연구에 따르면 법인세 평균 실효세율이 1%포인트 하락하면 상장기업 투자율이 0.2%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9년 법인세 인하 후 투자가 늘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으로 투자가 둔화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법인세율 인하가 없었다면 투자가 더 위축됐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법인세를 올리면 부담이 소비자와 근로자에게 전가될 가능성도 큽니다.” ―그렇다면 고령화에 따른 복지 재원은 어디서 마련해야 합니까.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원칙에 따라 세금 공제 제도를 줄여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중산층 이하의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 있어 고소득자에 대한 최고 세율을 올리는 방안도 일리가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1977년 도입된 부가가치세 인상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부가세 인상은 서민에게 더 부담이 됩니다.  “부가세 인상으로 마련한 재원을 고령화 관련 복지 지출에만 쓰도록 한다면 소득 분배를 개선할 수 있을 겁니다. 당장 올리자는 게 아니라 장기 과제로 놓고 전향적으로 검토해 보자는 겁니다. 내년 대선 후보들이 부가세 인상 논의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년 대선의 핵심 어젠다는 무엇이 돼야 합니까.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규제, 노동, 교육 개혁이 대선의 핵심 어젠다가 돼야 합니다. 미국처럼 기술기업이 혁신을 시도하도록 기회를 부여하고 사후에 허가를 받도록 하는 ‘Wait and See(지켜보기)’ 방식의 규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의원 입법에 대한 규제 영향 평가도 필요합니다. 근로자의 이직과 전직이 원활해지려면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직무 및 성과급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교육 개혁도 강조했는데…. “1960년대 중학교 입시에서 정답이 두 개여서 소송을 내고 추가 합격자를 뽑은 ‘무즙 파동’이 있었어요. 50년 이상 지났는데도 교육 현장에서는 아직도 정답 찾는 일만 하고 있어요.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인력을 양성하려면 교육 개혁, 토론식 수업 방식으로의 변화가 시급합니다.” ▼ 김준경 KDI 원장은 ▼△1956년 서울 출생△1975년 경기고 졸업△1980년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1988년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석사, 박사△1988∼1990년 미국 버지니아폴리테크닉주립대 교수 △2006∼2007년 KDI 부원장△2008년 대통령경제2(금융)비서관△2013년 5월∼현재 KDI 원장박용 기자 parky@donga.com}

    • 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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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한번 떨어지면 올라오기 힘든 은행 밖 ‘금리절벽’ 없애야”

    《 ‘23.23%(저축은행) vs 4.24%(시중은행).’ 2016년 7월 현재 은행과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20%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난다. 1000만 원을 빌리면 은행은 42만4000원, 저축은행은 약 6배인 232만3000원의 연 이자를 물어야 한다. 은행 밖으로 밀려나면 깊은 금리절벽이 기다리는 것이다. 은행 문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은행에서 대출받는 사람의 79%는 1∼3등급의 고(高)신용자다. 이런 사람은 전체 금융소비자(1498만 명)의 35.6%(534만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4∼7등급(698만 명)은 은행 문턱을 맴돌고, 이보다 못한 8∼10등급(266만 명)은 금리절벽으로 직행한다. “2금융권으로 한번 떨어지면 평생 빚만 갚아야 할 수도 있어요. 1금융권과 2금융권 사이의 가파른 절벽에 사다리를 놓으면 양극화와 부의 재분배 해결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14년 말 임신 3개월의 몸으로 가파른 금리절벽의 한가운데에 사다리를 놓겠다고 창업한 30대 전직 은행원이 등장했다. 중(中)금리 시장의 개척자로 꼽히는 개인 간 거래(P2P) 대출회사 8퍼센트의 이효진 대표(33)다. 회사 이름도 중금리를 뜻하는 8퍼센트다. 지난주 그를 서울 종로구 8퍼센트 사무실과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에서 열린 ‘2016 동아재테크·핀테크쇼’ 강연장에서 잇따라 만났다. 》  ―중금리는 왜 사각지대가 됐을까요.  “금융회사의 영업과 관리 비용이 너무 높아요.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시켜 주는 중개 부분이 비대해진 거죠. 은행이 돈을 벌려면 주거래 고객을 유지하면서 카드 보험 등을 교차 판매해야 하는데,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겐 팔 것도 없습니다. 위험만 크고 효율이 떨어지니 중금리 대출을 할 이유가 없는 거죠.”중간 금리로 대출 사다리 놓고 ―은행도 못 하는 중금리 대출을 어떻게 한다는 거죠.  “기술이 발전했으니까요. 온라인과 모바일로 중개를 해 돈이 공급자와 수요자를 스치듯 지나갈 수 있게 됐어요. 많은 인력이나 영업점 없이도 개인별로 리스크를 정확하게 심사할 수도 있죠.” P2P 대출은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핀테크(금융기술) 플랫폼이다. 미국 중국 등에서 대안 금융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말 현재 P2P 대출 잔액은 미국 120억 달러(약 13조2000억 원), 중국은 667억 달러(약 73조3700억 원)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말 350억 원에서 올해 6월 말 현재 1100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돈을 빌려주나요.  “자체 신용평가와 사기감별 시스템을 운영해요. 과거 금융거래 정보와 지불 능력인 현금 흐름을 많이 봐요. 저금리 시대여서 한 달에 300만 원의 수입이 있으면 현금성 자산 20억 원의 이자 수익을 올리는 것과 비슷하니까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에 올린 정보 등도 살펴봐요.” 8퍼센트는 매일 낮 1시에 홈페이지에 심사를 통과한 대출 희망자 정보를 올린다. 대출 목적, 모집 금액, 만기, 수익률, 신용도 등을 공개하면 투자 고객들이 선택한다. 금리는 5∼14%다. 김영환 전 국회의원(국민의당), 걸그룹 멤버, 타워팰리스 주민 등이 8퍼센트 대출을 받아 화제가 됐다.  ―어떤 사람들이 돈을 빌리나요.  “담보 없이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 소상공인 등이죠. 서울 이태원에서 유명한 수제 맥줏집인 ‘더부쓰’의 경우 밤 12시에 투자를 받기 시작했는데, 막 돈이 들어오는 거예요. 단골 고객들이 투자자로 나섰기 때문이죠. 다음 날 아침 투자를 못 했다는 항의전화까지 받았어요. 그때 ‘아, 소비자들은 이런 금융을 원하는구나, 금융도 얼마든지 펀(fun)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더부쓰는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칼럼을 써 화제가 된 대니얼 튜더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 등이 차린 수제 맥줏집이다. 더부쓰 이후 막걸리집부터 자동차 공유 서비스 회사인 ‘쏘카’, 태양광회사인 ‘에스파워’ 등 스타트업까지 8퍼센트의 문을 두드렸다. 8퍼센트의 누적 대출액은 지난주 400억 원을 넘었다.  ―대출을 받고 어떻게 됐나요. “더부쓰는 빌린 돈을 조기 상환하고 병맥주까지 생산 유통하고 있어요. 막걸리집도 매출이 늘어 2호점을 낸다고 해요. 차량 공유 서비스 회사인 쏘카는 우리 쪽에서 13억 원을 조달해 차량을 구매했죠. 4번에 걸쳐 다 상환했어요.” 쏘카 창업자인 김지만 풀러스 대표가 먼저 8퍼센트의 문을 두드렸다. 차를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쏘카의 ‘공유경제(Sharing Economy)’ 가치가 여러 사람이 함께 펀딩하는 8퍼센트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아 자금 조달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소상공인 지원은 정부도 하기 어려운 일인데요.  “아직도 자금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곳이 구석구석에 있어요. 기존 금융회사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이런 곳을 찾아내 돈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거죠. 더부쓰 단골들이 8퍼센트의 투자자 고객이 되고, 우리 고객이 더부쓰 단골이 돼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대출 규모가 커지면서 연체율이 오르고 있는데…. “아직은 연체·부도율이 1%대로 관리 목표(2%대 초반) 이하입니다. 연체가 발생하면 모형을 개선합니다. 투자자들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심사를 통해 대출 신청자의 5% 정도만 자금을 지원해요. 자동분산투자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500만 원을 한 사람에게서 빌리는 게 아니라 5만 원씩 100명에게 빌리도록 한 거죠. 가입금에서 일부 금액을 미리 떼서 기금을 만들고 대출자가 부도를 내면 손실을 보전해주는 장치도 마련했습니다.”美 부정대출 사태로 교훈 얻어 ―5월 미국의 P2P 대출 회사인 랜딩클럽의 부정대출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줬습니다.  “기관투자가들이 요청한 요건에 맞지 않는 대출이 끼어 있어 문제가 됐어요. 창업자가 이걸 묵과한 것이죠. 회사가 커지면 내부 통제가 중요하고 최고경영자(CEO)도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한 랜딩클럽은 뉴욕증시에 상장하며 85억 달러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부정 대출로 창업자가 퇴출됐다. 2014년 5월 8년간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창업을 준비하던 이 대표가 두 달 동안 미국 실리콘밸리를 돌면서 창업 여행을 하며 처음 방문한 곳이 랜딩클럽이었다.  ―한국의 P2P 산업도 단기간에 급성장해 부실대출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내년 하반기엔 옥석이 가려질 겁니다. 창업 2, 3년차쯤 되니까요. 랜딩클럽 이사회가 창업자이자 CEO를 해임하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이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아직 적자죠? “수수료가 수익 모델인데 다 받진 못해요. 내년 하반기나 2년 뒤쯤 대출 규모가 1000억 원을 넘고 수수료로 2∼3% 정도를 받는다면 흑자 전환이 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임신까지 하고 창업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출산 전까지 조직이 돌아가게 해놔야 한다는 데드라인과 목표가 생겨 오히려 더 속도가 났어요. 창업한 지 일곱 달 만에 딸을 낳고 한 달 반의 육아휴직에 들어갔어요. 직원 채용 면접도 산후조리원의 로비에서 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가장 큰 성장을 했어요.” 서울 한성과학고와 포스텍(포항공대) 수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은행에서 8년간 일하며 주식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활동했다. 그는 “4000억 원을 혼자 굴린 적도 있지만 지금 굴리는 400억 원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대출자가 투자자로 돌아오게 할것 ―창업 초기 규제에 막힌 핀테크 업계의 ‘천송이 코트’로 알려져 논란이 됐죠?   “당시 공인인증서 때문에 중국인들이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인기 드라마 여주인공이 입고 나온 ‘천송이 코트’를 살 수 없다는 식의 규제 개혁 얘기가 한참 나올 때여서 더 부각됐던 것 같아요. 여론이 저한테 우호적이어서 깜짝 놀랐어요. 많은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이 대표는 창업 초기인 2015년 1월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고 시범서비스를 하다가 당국의 징계를 받았다. 그가 만든 8퍼센트 초기 화면에 성인 음란 사이트처럼 ‘불법 유해 사이트’ 경고문이 내걸렸다. 그를 조사했던 금융당국 관계자는 “험상궂은 대부업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배가 불룩한 임신부가 나타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8퍼센트는 당국의 조언대로 대부업 등록을 하고 서비스를 재개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겁니까. “지금 세상을 바꾸는 건 기업가들입니다. 그동안 금융이 가장 도전이 없었던 영역인 것 같아요. 이제는 과감한 도전이 나와야 해요. 돈이 목표라면 돈을 벌고 나면 사업을 끝내야 하잖아요. 그건 과정인 거고, 진짜 목표는 아니죠. 다른 사람의 삶을 좋은 쪽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대출자가 투자자로 돌아와서 고객이 되는 것’이 제가 바라는 미래입니다. 이미 그런 분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8퍼센트에는 미션이 두 가지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1번 사회에 기여한다, 2번 불가능에 도전한다. 금융업을 하다가 커피 장사를 하더라도 이 두 가지는 꼭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 이효진 대표는 :: △ 1983년 서울 출생△ 2002년 서울 한성과학고 졸업△ 2006년 포스텍 수학과 졸업△ 2006∼2014년 우리은행에서 기업금융 파생상품 트레이딩 담당△ 2014년 11월 8퍼센트 창업△ 2015년 6월∼2016년 5월 한국P2P금융협회회장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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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진단]‘서별관회의 청문회’에 대한 청문회가 열린다면

    이달 8, 9일 국회에서 열린 ‘서별관회의(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들은 머리를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 분식회계를 한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 원을 지원하게 된 배경을 따져보겠다더니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재탕하는 데 그쳤다. 야당이 주장한 핵심 증인도, 논란이 된 서별관회의 회의록도 나오지 않았다. 오죽 맥이 빠졌으면 ‘맹탕, 허탕청문회’(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깃털, 먹통 청문회’(심상정 정의당 의원)라는 반응이 정치권에서 나왔을까. 한시가 급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까지 미루고 여야가 석 달간 입씨름 끝에 내놓은 결과가 맹탕인데 반성하거나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없다. 구조조정과 경제 살리기의 ‘골든타임’을 허비한 서별관회의 청문회부터 청문회에 올려야 할 판이다.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위한 청문회가 열린다면 ‘서별관회의 건망증’부터 추궁해야 할 것이다. 국회 회의록 검색시스템에 ‘서별관’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서별관회의 관련 기록이 모두 55건 검색된다. 이 중 25건이 19대 국회 이전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등에서, 나머지는 이번 20대 국회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밀실회의’ ‘유령회의’라는 서별관회의가 문제였다면 이를 바로잡을 기회가 20대 국회가 들어서기 전에도 적어도 25번이나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그때마다 연기만 피우다 말았다. 정치권과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태도가 ‘서별관 음모론’을 키운 건 아닌지도 따져봐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9월 국회 정무위원회의에서 야당의 한 의원은 전광우 금융위원장에게 ‘관료들만의 대책회의’를 우려하며 감독권한을 가진 금감원장까지 서별관회의에 부를 것을 친절하게 주문하기까지 했다. 기획재정부는 2008년 12월 “서별관회의를 비공식으로 운영하다 보니 회의 결과가 충실히 전달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면 일반 내용을 설명하겠다”고 브리핑까지 해놓고 석 달 만에 비공개로 돌아서 의혹을 자초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서별관회의가 한국에만 있는 은밀한 회의로 포장되는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증언을 종합해 보면 금융당국 수장들이 머리를 맞대는 비공개 회의는 미국에서 수입된 듯하다. 2012년 한국은행 국정감사장에서 김중수 당시 한은 총재는 “미국을 좇아서 하려고 그랬다”며 서별관회의 배경을 야당 의원에게 설명한 적도 있다. 실제로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루빈은 자서전 ‘불확실한 세계에서’에서 “매주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로런스 서머스 재무차관과 만나 가졌던 비공식 회의가 무엇보다 유익했다”고 밝혔다. 회의 내용을 외부에 누설하지 않기로 한 묵계도 지켜졌다고 했다. 구조조정과 같이 상대가 있고, 누군가 손실을 분담해야 하는 민감한 경제 현안을 다루려면 정부 주도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시장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하면 비공개 회의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정책 당국에 대한 불신이 큰 한국에서 비공개 회의는 음모론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서별관회의가 문제가 됐을 때 정쟁 대신 비공개 회의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회의록을 작성하되 일정 시점(경과 기간 등), 일정 조건(국회의 동의 등)을 두고 공개하는 대안이라도 마련했다면 ‘서별관 소동’이 55번이나 반복되진 않았을 것이다. 맹탕 서별관회의 청문회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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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2009년 산업은행 쪼갠 건 개혁그룹의 ‘단선적’ 발상”

    《 “21세기 정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감’입니다. 국민의 요구는 굉장히 다이내믹해졌는데, 예측 가능성은 크게 줄었어요. 감성적 요소도 중요하죠. 무더위가 아니었다면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이 이렇게까지 커졌을까요.” 재정학 교수로 33년을 살아온 오연천 울산대 총장(65)이 현대 정부의 위기를 경고했다. 경직되고 정체된 과거의 정부 시스템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하는 여론이 들끓는데도 “에어컨을 합리적으로 쓰라”고 조언하는 정책 감각으로는 민심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말처럼 들렸다. 오 총장은 “국민의 요구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과 탄력을 갖고 있느냐가 현대 정부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한다. 최근에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서울대와 울산대 총장으로 일하면서 경험한 51개 의사결정 사례를 분석한 책 ‘결정의 미학’도 출간했다. 그를 지난달 말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서 만났다. 》 ―리더의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가 인사입니다. “인사는 정무적 인사인 ‘엽관제(獵官制)’와 능력주의가 결합된 것입니다.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뛴 팀들이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해요. 그걸 ‘낙하산 인사’라고 폄하해선 안 됩니다. ‘낙하산 인사를 안 하겠다’는 말도 굳이 할 필요가 없어요. 다만, 정무적 인사를 하되 정말 능력이 있는 사람을 쓰겠다고 하면 됩니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앉히니 낙하산 인사 논란이 생기는 것 아닌가요. “대통령이 되면 수백, 수천 명의 공직자에 대한 인사권을 갖게 돼요. 대선이 12월이고, 이듬해 2월 말이면 정부가 출범하잖아요. 대통령이 ‘마법사’도 아니고 제한된 정보와 시간 속에서 이들의 역량을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새 정부가 들어서고 서너 달간 인사 공백을 겪고 자질 논란이 생깁니다.” ―당장 내년과 후년이 그런 상황인데…. “대통령 당선부터 취임 때까지 약 두 달간이 중요합니다. 이때 대통령 당선자가 제대로 된 인사를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지금은 대통령에 취임해야 인사검증 시스템을 쓸 수 있어 이 부분이 매우 취약합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무직 인사를 검증하고 추천받을 수 있는 법적 시스템부터 마련해야 합니다.” ―얼마 전 퇴임한 존 헤너시 미국 스탠퍼드대 총장이 16년간 재임했습니다. 한국 대학의 총장이나 기관장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 아닌가요.(참고로 1891년 설립된 스탠퍼드대 총장은 11명밖에 없다. 평균 11년씩 일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기관장, 책임자의 임기에 상당히 각박합니다. 중장기 연구를 담당하는 국책연구원장 임기도 3년입니다. 장관도 조금만 하면 ‘장수 장관’이라고 하잖아요. 자연계 등 국책연구원장은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승계 시스템’도 중요합니다. 2인자나 3인자였던 사람이 충분히 트레이닝을 받고 리더가 돼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게 하는 승계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전임자가 했던 걸 다 뒤집어 버리기도 합니다. “장관 되고, 총장이 되면 당장 ‘당신의 오리지널한 정책은 뭐요?’ 하고 물어요. 대학의 비전은 우수 인재를 양성하고 연구 잘해서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건데, 새 총장이 온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니죠. 승계된 정책과 새로운 정책이 잘 결합돼야 합니다. 그걸 우리 사회의 소프트웨어 역량이라고 봅니다.” ―정부도 마찬가진데요.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로 한다고 하는 일 중 간판만 바꿔 다는 식의 ‘신장개업’도 많습니다. 과거 어느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새로운 일에 쓸 수 있는 예산이 1%도 안 되더라’라고 하시더군요. 공공정책의 대부분이 계속 사업에 대한 것이고, 새 정부가 5∼10% 정도나 바꿀 수 있을 뿐입니다.”대선 1년후 ‘공약고백’ 필요 ―그런데도 취임 초 모든 것을 바꿀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나요. “대선 과정에서 공약을 쏟아냈으니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그래요. 취임 1년 정도 지나면 이를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후보자 시절에 이것저것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해보니 아니더라’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거죠. 좀 로맨틱하게 말해 한번 정도는 공약에 대한 ‘고백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책임한 공약이 남발되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선거 때 국민들이 공약을 선별할 역량을 가져야 합니다. 새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을 검증하고 한계를 인식하는 관찰이 필요한 겁니다. 공약을 하는 사람도 기회비용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2009년 산업은행에서 정책금융공사를 분리한 결정에 대해 ‘개혁 주도세력이 모노레일적 발상으로 끌고 갔다’고 비판했는데…. “정권 초엔 선거에서 많은 조언을 해주신 분들의 목소리가 반영됩니다. 그들이 산업은행에서 정책금융을 떼어내고 대형 투자은행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시장의 자율적인 힘이 아니라 정부의 공권력으로 거대 금융기업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가 허심탄회하게 계급장 떼고 얘기했다면 더 나은 정책안이 나왔을 겁니다. 산업은행 문제는 관료적 합리성으로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오 총장은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원장이던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위원으로 공기업 선진화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남들은 굉장한 감투를 쓴 것처럼 얘기하지만, 전공이 재정학이고 공기업 관련 일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참여한 것이지 개혁을 주도한 게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4년 만인 2013년 산업은행과 한국정책금융공사를 다시 통합하기로 결정했다.서두르다 실패한 매각 ―당시 인천국제공항 지분 49%를 해외에 매각하는 방안도 무산됐습니다. “언론에서 알토란 같은 공항을 팔아먹는다고 했어요. 그게 아니거든요. 51%의 지분을 갖고 있으면 우리 것이죠. 공항은 원래 지분을 갖고 전략적 제휴를 합니다. 인천공항공사가 싱가포르, 독일 프랑크푸르트, 호주 시드니 등과 손을 잡고 해외에 진출하고 도약할 수 있는 아이디어인데 무산돼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분 매각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나온 얘깁니다. 이명박 정부가 친기업적이기 때문에 특혜를 준다는 확대해석이 생긴 겁니다. 어떤 국회의원은 저를 ‘매각 삼인방’의 하나로 지목하기도 했어요. 이런 일을 출범 1년도 안 된 새 정부가 서둘러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장관, 총리, 대통령이 대중 앞에 나와 1문1답 토론이라도 하고 반대하는 사람을 설득했어야 합니다. 일본의 우정개혁이 그래서 성공했습니다. 총리와 내각 대신 등이 수백 회의 토론을 거쳤어요. 3년간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죠.” ‘고이즈미 구조개혁’의 설계자로 불렸던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게이오대 교수는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시절 금융·경제재정정책담당상 등을 지내며 우정성 민영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오 총장은 그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우정개혁 사례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 총장 선거 과정에서 교원 보수 인상을 내걸어 포퓰리즘 비판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서울대 교원의 보수가 유수 사립대의 한 70% 정도이므로 차이를 줄여야 한다는 원칙과 중장기적 계획을 언급한 것이 선거 유인물에 ‘보수 인상’이라는 제목으로 뽑혀 제작됐어요. 국립대 교수 봉급은 서울대 구성원이 아니라 국회의 예산 심의에 따라 이뤄지는데도 재정학자인 제가 그것을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언급한 건 부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공약팀에서 강력하게 보수 인상을 주장했는데, 이것을 끝까지 반대하지 못했어요. 당선되는 데 유리한 공약이라는 유혹을 더 과감히 떨쳐버리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대선 전 복지 공론화해야 ―내년 대선에 복지 공약이 쏟아져 나올 테고 포퓰리즘 논란도 커질 텐데요. “복지를 놓고 국가와 개인의 책임이 시소처럼 왔다갔다 움직이는 게 문제입니다.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역량에 맞게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복지의 영역을 정의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범국민적 기구를 대선 전에 만들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늘어나는 복지 재원이 어디서 나올 것인가도 문제입니다. “가진 사람들이 더 부담하려면 공감대가 있어야 해요. 대선 전에 전국을 돌며 토론회라도 열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선거 때 가이드라인이라도 생기는 거 아닌가요. 경제적 여유계층이 얼마나 더 부담해야 할지 원칙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부담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도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공감과 동참이 나오는 겁니다. 적극적 복지의 규모와 구조, 조세 부담 등이 논의의 핵심 축입니다.” 그는 노태우 정부 때부터 정치 입문설이나 입각설에 오르내렸다. 정치와 인생의 연결고리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농구 코치가 코칭은 잘해도 한창 뛰는 선수보다 공은 못 넣는 것 아니냐”고 에둘러 말했다. 그는 “대학 총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무적 일을 해야 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대학 직책을 맡은 사람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라며 “조언이나 대화에 응하는 것은 몰라도 정치적 결정의 주체가 되는 부분에선 한계가 있다”고 했다. 당장은 울산대를 지역 거점 대학에서 아시아 중심 대학으로 성장시키는 일이 더 급해 보였다.:: 오 총장은 ::△1951년 충남 공주 출생△1974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1982년 미국 뉴욕대 석사 및 박사(재정관리)△1975년 행정고시 합격△1983∼2010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2010∼2014년 서울대 제25대 총장△2011∼2014년 서울대 초대 이사장△2015∼ 울산대 제10대 총장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201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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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외환위기 때처럼 ‘역전세난’ 또 온다”

    《1997년 치솟던 주택시장은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1998년 들어 넉 달 만에 전국 15대 도시의 아파트값이 평균 11%, 전세금은 20.6% 떨어졌다.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세입자가 집주인이 되는 ‘역전세난’이 벌어졌다. 최근 역전세난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들린다. 부동산시장과 정책 전문가로 20대 국회에 입성한 김현아 새누리당 의원(47)이 대표적인 역전세 위기론자다. 이유가 뭘까. 그를 7월 25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역전세난이 다시 온다는 건가. “외환위기 때 집값과 전세금이 떨어져 역전세난이 발생했는데, 내년에도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지금도 지방도시 같은 경우 아주 국지적으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전세보증금이 집값의 80%를 넘어선 곳이 있는데 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런가. “재작년부터 아파트, 오피스텔과 통계에 잡히지 않는 상가주택 등이 많이 지어졌다. 내년부터는 새집 입주 물량이 많다. 가격도 많이 오른 상태여서 집값과 전세금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 서울의 입주 물량이 늘고 전세금이 떨어지면 밖으로 나갔던 세입자들이 서울로 회귀하면서 경기도의 역전세난이 가중될 수 있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현재 시스템에서는 다른 세입자가 오지 않으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렵다. 보증금을 집주인 대신 반환해주는 전세보증보험을 책임보험 형태로 만들어 어지간하면 의무 가입하게 해 위험을 줄이자는 것이다. 수수료도 낮춰야 한다. 하반기에 관련 법안을 낼 계획이다.” ―확실치 않은 미래 위험 때문에 부담만 커지는 건 아닌가. “집을 빌리는 데도 엄청난 자본이 필요한 시대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몇천만 원짜리 차를 사도 책임보험을 드는데 억대 전세금에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은 문제다. 집을 빌려 쓰는 것에 대한 새로운 문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외환위기 때는 역전세난 이후 집값과 전세금이 다시 올랐다. “이번 역전세난은 외환위기 이후와 다를 것이다. 전세금이 올라도 그만큼이 월세로 전환되면서 급격한 월세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월세 문화와 인프라 정비도 필요하다.” ―월세 정책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임차료가 얼마인가보다 임차료만큼 서비스를 받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실내에 빗물이 떨어지고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도 집주인이나 중개업소가 나 몰라라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주택 품질을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 확인하고 권리의무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떻게 권리의무를 보장할 수 있는가. “외국에 비해 우리의 임대차 계약서는 아주 간략하다. 주택 상태보고서를 만들어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 주고받는 것을 권장하거나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월세카드 도입도 주장했는데…. “월세소득자의 절반이 소득을 신고하지 않는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저소득층은 월세소득공제도 받을 수 없다. 대안은 월세 카드다. 세입자가 월세를 신용카드 등으로 내게 하고, 해당 금액만큼 마일리지를 줘 현금처럼 쓰게 하면 된다. 집주인은 연체 없이 월세를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세원 노출에 대한 인센티브와 카드 수수료 부담이다. 내년까지 임대소득 과세가 유예되니 그동안 대안을 만들면 된다.” ―월세 문화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집을 가진 사람은 강자, ‘갑’이고 집이 없는 세입자는 항상 약자, ‘을’이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못된 집주인 때문에 고민하는 세입자는 물론이고 임차인 때문에 고생하는 임대인도 많다.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아니라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의 문제로 봐야 하는데, 이 이념의 프레임이 깨지지 않고 있다.” ―상가 주인과 임차인의 갈등도 많다. “상가 임대차의 근본적 문제는 고정 임차료와 권리금이다. 외국에는 최소 임차료로 계약하고 매출에 연동해 임차료를 추가로 낸다. 장사가 잘 안 되면 임차료를 적게 내고, 장사가 잘되면 더 내는 식이다. 고정 임차료를 매출액 연동 임차료로 바꾸면 집주인이 임대료를 더 받으려고 임차인을 내쫓지 않게 된다. 외국엔 권리금도 없다. 상가 관리회사가 따로 있고, 매출액을 기준으로 임대차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도입해야 한다.” 김 의원은 남편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52)와 함께 도심 재생과 상가 임대차 분쟁 등에 대한 해법을 소개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책을 최근 냈다. 남편과 같이 쓴 세 번째 부동산 관련 책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전월세 상한제는 왜 반대하는가. “유럽의 저명한 학자가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으로 전쟁과 임대료 통제를 꼽았다. 임대료를 통제해 버리면 아무도 임대주택을 관리하려고 하지 않을 거다. 아이가 여럿 있거나 강아지를 키워 집을 험하게 쓸 것 같으면 세를 얻기도 힘들어질 것이다. 임대료 통제는 사회 취약 계층을 위한 주택 등에 부분적으로 필요하다. 모든 임대차에 적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야당은 계약갱신청구권도 얘기하는데…. “임대차 계약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했다고 하자. 집을 나오고 싶은데 집주인이 전세금을 빼줄 방법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역전세난이 우려되는 현재 시점엔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선의의 정책이 오히려 세입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서울 분양시장 열기가 뜨겁다. “우선 새집에 대한 선호가 확실히 있다. 둘째는 저금리 영향이다. 마땅히 투자할 데가 없는데 새집에 대한 수요가 많다 보니 기대 심리가 생겼다. 셋째는 청약제도다. 분양시장 진입과 전매가 비교적 자유로워서 현금화가 쉽다. 일종의 규제 완화로 풀어줬는데, 지나치게 진행돼 분양시장에서 돈이 너무 빨리 돌고 있다.” ―전매 제한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부터 서서히 속도를 줄여야 한다. 분양권 전매를 하고 6개월이 지나 새 자격이 주어지면 나갔던 사람이 또 들어온다. 여기에 대한 칸막이가 필요하다. 청약 자격도 강화해야 한다.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니 지역별로 청약제도를 손질해야 한다.” ―정부가 분양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집단대출 규제를 하고 있는데…. “수요가 많은데 은행 대출만 막으면 은행 건전성은 유지할 수 있어도, 지불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피해를 보게 된다. 분양 회전 속도를 늦추면 들어오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은행 대출도 조절되기 때문에 이런 차별이 없다.” ―부동산 시장의 새집 선호 현상에 대한 해결책은 없나. “과거처럼 재건축이 쉽지 않다. 주택 개보수 비용을 장기 저리로 융자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내부 수리나 공용시설을 바꾸는 식의 다양한 주택 리모델링도 허용해야 한다. 외로움을 해소하고 공간을 함께 나누는 ‘미래형 셋방 문화’도 생기고 있다. 이를 위한 주택 개보수를 지원하고 관련 임대차 규정도 마련해야 한다.” ―내년 대선에선 어떤 부동산 정책이 화두가 될까. “천기누설 아닌가.(웃음) 내년 대선에서 청년 주거 문제가 이슈가 될 것으로 보고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두 번째는 거시경제 상황과 부동산 경기가 중요해질 것 같다.” ―서울 인구가 100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재건축 이주 등으로 약간의 착시가 있다. 대한민국의 서울이 아니라 글로벌 시티로서 서울의 역량을 고민하고 수도권 규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영국 런던은 개방적이고 재밌는 도시다. 집값이 엄청나게 비싼데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서울은 어떤가?” ―대변인까지 맡고 있는데, 야당은 어떻게 설득할 건가. “사실 고민이다. 틀렸다, 옳았다가 아니라 전문가로서 법이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고 진정성을 전달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너무 순진한 건가?” :: 김현아 의원은 ::△1969년 서울 출생△경원대 도시계획학과 석·박사△1993∼1995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원△1995∼2016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20대 국회의원(새누리당·비례대표)△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정리=박다예 인턴기자 서울여대 언론홍보학과 4학년  }

    • 201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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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진단]CEO, 뭣이 중헌디!

    이광구 우리은행장(59)은 2014년 말 취임할 때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낙하산’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들었다. 1979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에 입행해 35년간 한 우물을 파 부행장에까지 오른 ‘전략통’이었지만, 그의 전문성과 경력은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를 나왔다는 사실에 푹 파묻혔다. 최근 이 행장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그때와 비교해 꽤 온도 차가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적극적이고 강단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우리은행을 인수해줄 투자가를 찾기 위해 직접 해외 기업설명회(IR)에 나서고, 은행에 부정적인 신용평가사를 찾아가 설득하는 돌파력을 보였다. 이전 은행장들이 보여주지 못했지만 우리은행의 수장에게 기대하던 그 모습이다.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등 부실기업에 대한 추가 자금 지원은 단호하게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행장은 지난해 5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성동조선 추가 지원 관련 간담회에 참석해 “내가 전문가라서 잘 안다. 돈을 더 대주더라도 살아나긴 어렵다. 이미 거액을 떼인 회사에 추가로 돈을 더 대준다면 배임에 해당한다. 누가 책임질 거냐”고 맞섰다. 그는 “자금 지원을 거절하면 성동조선 노동조합에 몰매를 맞을 터이고, 자금을 지원하면 우리은행 노조가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차라리 은행을 지키고 순직하겠다”며 주변 참모들을 다독였다. 그의 행보가 얼마나 아슬아슬해 보였는지, 한국에 수십 년간 투자를 해온 한 외국인투자가는 IR에서 만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아직도 살아 있네요?(Are you still alive?)” 우리은행의 자산 건전성과 실적이 개선되면서 증권가에서 ‘과거의 우리은행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까지 등장했다. 우리은행이 인터넷전문은행인 ‘K뱅크’에 참여하고 위비톡, 위비뱅크 서비스를 만들어 핀테크(금융기술)를 통한 사업 다각화에 나선 것도 ‘이광구 시대’의 변화다. 이달 말에는 과점주주 방식으로 우리은행 매각이 다시 진행될 예정이다. 이 행장이 성공한 최고경영자(CEO)가 될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우리은행이 시장의 품으로 돌아가고, “이젠 금융회사가 아니라 정보기술(IT) 회사”라고 선언한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처럼 새로운 금융회사로 변신한다면 긍정적인 평가가 나올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세간의 시선은 또 달라질 것이다. 그것이 기업 경영이고, CEO의 숙명이다. 시장은 ‘CEO가 낙하산이냐 아니냐’보다 ‘성과를 낼 실력이 없느냐, 있느냐’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정권 말이면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낙하산 보은인사 논란이 반복된다. 고위 공무원들이 난파선과 같은 현 정권과 엮이지 않으려고 발을 빼기 시작하면서 권력의 바깥으로 쏠리는 원심력이 강해진다. 세종시 관가에는 ‘남행열차’(‘남’다른 ‘행’동과 ‘열’정으로 ‘차’기 정권에서도 살아남자)라는 ‘레임덕 건배사’가 다시 등장했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남행열차’를 타느라 정신이 없을 때 현 정권이 끝나기 전 막차라도 올라타려는 사람들의 ‘줄 대기’도 극심해진다. KDB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대우건설에도 최근 낙하산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10일 대우건설 사장추천위원회가 구성돼 2명의 후보를 선정하고 프레젠테이션까지 했지만 무효가 됐다. 다시 사장 공모가 진행돼 지난주 2명의 후보로 압축됐다. 대우건설 노동조합 등은 “사추위 결정이 무효화되고 재공모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둔 것”, “매출의 40%가 해외 플랜트 현장에서 발생하는데 국내 주택시장 전문가가 맞는가”라며 특정 인사를 겨냥한 낙하산 인사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13일 열린 사장 후보 면접에서는 사추위 위원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진통도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낙하산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새 CEO가 어려운 회사를 되살릴 강단과 난관을 극복할 탄탄한 전문성이 있느냐다. 2010년 산업은행이 주당 1만5000원대에 사들인 대우건설의 주가는 현재 5700원대에 머물고 있다. 유력 후보가 회사를 키워 시장의 품에 돌려줄 능력이 있을까. 대주주 산업은행과 사추위가 묻고 답해야 할 질문이다. 그럴 자신이 없는 후보라면 알아서 사퇴하는 것이 옳다. 정치적 배경은 시장에선 통하지 않는다.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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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북극항로 열리면 부산 광양이 인도양의 ‘싱가포르’처럼 될 것”

    “선장은 다음 어장을 생각해야 합니다. 선원들이 고기를 낚을 때 홀로 내일 아침엔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 선장입니다.” 선장 출신 창업가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81)은 “고기를 못 잡는다고 선원을 탓해선 안 된다”며 리더의 책임을 강조했다. 우리 국민이 매우 우수하기 때문에 기업 경영자, 정치 지도자 등 리더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것이다. 5일 김 회장을 서울 서초구 마방로 동원산업 집무실에서 만났다. “해양산업 국가전략으로 육성 필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충격으로 세계가 많이 놀랐습니다. “당장은 충격이 제한적이지만 길게 보면 고립주의 사상이 침투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영국 국민투표 이튿날 ‘브렉시트가 뭐냐’, ‘EU가 뭐냐’는 질문이 구글 검색 순위 1, 2위였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정치인들의 선동에 뭔지도 모르고 투표했다는 뜻이잖아요. 사회가, 세계가 감각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해요. 그럴수록 지도층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영남권 신공항 논란 등에서 정치인의 선동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정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제 영역 밖의 일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지도층이 말한 것을 지키는 것,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남한테 강요하지 않는 겁니다.” ―한국 경제, 특히 수출과 교역 감소에 대한 걱정도 많습니다. “세계 경제에 비하면 그렇게 나쁘진 않아요. 단지 성에 차지 않는 거죠. 물론 교역 내용을 바꿔야 합니다. 보호무역으로 상품에 대한 무역장벽이 갈수록 높아질 겁니다. 상품 외에 한류 의료관광 인력 수출 등 ‘복합무역’을 키워야 합니다. 가난하기 짝이 없던 나라에서 이 정도 한 건 대단한 거예요.” ―지나친 열패감을 버려야 한다? “나쁘다, 나쁘다 하니까 ‘헬 조선’이라고 하고, 그런 결과가 나온 걸 다른 사람 책임으로 돌리기 바빠요. 지나친 겁니다. 불평은 상호불신을 조장해요. 깜깜한 밤에 뭐가 있다고 하면 그렇게 보이잖아요. 우리 사회에 제일 부족한 게 바로 트러스트, 신뢰입니다.” ―해운업과 조선업 분리 정책이 오늘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최근 세계 해운업이 재편될 때 대우조선이 덴마크 해운회사인 머스크에 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지어줬어요. 돈은 수출입은행 등이 대줬죠. 우리 돈으로, 우리 기술로 엄청난 무기를 지어준 거죠. 감독기관이 제조업체처럼 부채비율이나 따지니 우리 해운회사는 지금도 그런 큰 배가 없어요. 그 돈을 우리 해운업에 대줬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겁니다. 해양수산부가 폐지돼 없었을 때 생긴 일입니다. 정책을 종합적으로 보는 안목이 없으니 어렵다는 취지로 얘기한 겁니다.” ―해양산업을 위한 국가 전략이 없다는 건가요. “조선, 해운업과 같은 해양산업은 국경이 없어요. 오늘 우리 바닷물이 내일 일본에 가고, 저 멀리 오지의 바닷물이 언젠가 한국에 와요. 한 국가에 한정해 생각할 순 없는 겁니다. 한 기업이 잘했다 못했다만 따져도 안 돼요. 국가 전략의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한국에 세계 1등부터 3등까지 조선소가 다 있어요. 이걸 국력과 연결시켜야 하는데 과잉 경쟁이나 하고 분식 결산을 하도록 방치한 것 아닙니까.” ―어떤 전략이 필요합니까.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부두고, 중국과 일본은 방파제 모양입니다. 부두는 자유롭게 배가 드나들어야 번성해요. 문을 닫아놓으면 망하는 겁니다. 북한이 아주 좋은 사례 아닙니까. 지금 굉장히 좋은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얼음이 녹고 선박 건조와 운용 기술이 향상돼 북극항로가 열리면 여기서 유럽까지 가는 항로가 3분의 1 또는 5분의 1로 줄어듭니다. 그땐 부산 포항 광양 등이 인도양의 관문 ‘싱가포르’처럼 번성할 수 있어요. 안타깝게도 이런 인식이 아직 부족해요.”“정부지원 타령, 기업가 자세 아냐” ―한국 기업끼리 출혈 경쟁으로 공멸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바다엔 4가지 부류의 선장이 있어요. 가장 고기를 잘 잡는 선장은 기술이 좋고 늘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은 그런 선장하고 친한 사람입니다. 어장은 부자지간에도 속인다고 하거든요. 셋째는 기술은 없지만 부단히 애쓰는 선장입니다. 제일 고기를 못 잡는 선장은 ‘어디가 잘 잡힌다’는 소문만 쫓아다니는 선장이에요. 다들 만선이 돼 돌아갈 때 따라 들어가면 파장인 거죠. 우리 사회에 그런 게 많아요. 잘된다면 막 몰립니다. 남이 안 한 업종, 새 어장에 도전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서비스산업의 경쟁력도 여전히 떨어집니다. “바다를 평생 못 보거나, 황해처럼 누런 바다만 아는 중국인이 많아요. 우린 푸른 바다가 얼마나 많습니까. 생각만 바꾸면 태풍도 좋은 관광 상품이 돼요.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와 깨지는 것을 발밑에서 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국민들이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하고, 규제를 완화한다면 할 수 있는 게 아직 많아요.” ―무역협회장 재임 중 행정 규제 개선을 자주 언급했는데요. “김영삼 정부에서 행정쇄신위원으로 4년간, 김대중 정부에서 규제개혁위원으로 3년간 일하면서 규제 개혁은 통치자의 강한 의지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규제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러니 없애기 어렵죠. 그래도 우리 공무원들이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신나서 일하게 싱가포르처럼 보수도 올려주고 대우도 잘해줘야 합니다.” 김 회장은 1999∼2006년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일했다. 2002년 “나라가 잘되려면 공무원 수를 절반으로 줄이되, 보수를 배로 높여줘야 한다”고 주장해 당시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바다가 아니라 정부청사에서 고기 잡는 사람들이 있다”고 비판한 적도 있습니다. “‘정부 지원이 없어서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아, 저건 기업가의 자세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정부 지원을 받아서 잘됐나요? 제도나 국가 전략에 따라 지원이 필요하다는 건 이해하지만, 자기 사업 하는 데 정부에 지원해 달라고 매달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反)기업 정서도 상당합니다. “기업의 잘못이 큽니다. 하지만 우리의 조급함도 있다고 봐요. 사업 하는 사람을 제일 욕되게 하는 말이 ‘재벌’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이 듣기 싫어 사업도 너무 크게 안 하려고 해요. 내 컨트롤 밖에 있는 것은 영광보다 욕이 더 많으니까요. 지고 갈 만큼만 져야죠.”“새 어장 찾는 맘으로 6차산업 개척” ―곧 창업 50년인데, ‘100년 기업’의 비전은 뭔가요. “내가 설계도를 그려두면 안 돼요.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일본에 ‘본업을 버리는 자는 망한다. 본업만 하는 자도 망한다’는 말이 있어요. 기업 경영은 환경 적응력이고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만이 안 변한다’고 하잖아요. 다만 ‘사회에 필요한 기업이 돼라’는 말은 해요. ‘그 회사가 있어 좋다’는 말이 나오면 그걸로 돼요.” 전남 강진 출생인 김 회장은 1958년 부산수산대 어로학과를 졸업하고 실습항해사로 남태평양으로 첫 항해를 시작했다. 1969년에는 34세에 동원산업을 세워 원양어업(1차산업)을 개척했다. 이어 참치 캔 등 식품 가공업(2차산업), 금융업(3차산업) 등에 진출했다. 동원그룹은 최근 포장재, 물류, 온라인 식품유통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김 회장은 “새 어장을 찾는 기분으로 생산 유통 판매 등이 융·복합된 6차산업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동원그룹이 위기 때마다 성장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재산은 현금이나 부동산과 같은 것이고, 눈에 안 보이는 재산이 바로 신용입니다. 동원이 오일쇼크,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부쩍 성장한 건 신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이 안 돌아가는 것이 위기 아닙니까. 그땐 있는 사람들이 돈을 다 거둬들여 틀림없는 데만 주거든요. 동원이 그래서 성장한 겁니다.” ―신용이 위기 때 빛을 발하는 거군요. “1250만 달러(약 144억 원)를 차관해 1975년 큰 배를 샀습니다. 일본 미쓰비시(三菱)상사가 ‘김재철’ 신용 하나만으로 큰돈을 빌려준 겁니다. 그것이 성장에 큰 발판이 됐어요. 지금도 직원들이 거짓말하면 매섭게 혼내요. 거짓말은 인격을 파는 것이고, 신용을 떨어뜨리니까요.” ―가업 승계의 원칙은…. “첫째, 법은 악법이라도 지켜야 합니다. 둘째, 권력이나 돈은 부자나 친인척끼리도 적을 만듭니다. 미리 가닥을 치고 경계를 둬야 합니다.” 동원그룹은 2001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고, 2004년 차남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회장이 몸담고 있는 동원그룹과 장남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 이끄는 한국투자금융그룹으로 계열 분리를 마쳤다. ―‘장남을 남몰래 원양어선에 태웠다’고 해서 ‘김재철식’ 교육법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외국에 유학 간 손자도 하루 12시간씩 한 달간 공장에서 일을 시켰어요. 자식에게 가장 물려주기 싫지만, 그래도 꼭 경험을 하게 해줘야 하는 게 바로 고생입니다. 일본에서 ‘아이를 키울 때 천장을 낮게 하지 마라’는 말도 해요. 기상을 키워야 한다는 말인데요. 공간적으로 세계를 넓게 보고, 시간적으로 과거에 대한 기억력, 현재에 대한 판단력,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기초로 한 역사 인식이 있으면 틀린 판단을 하진 않을 겁니다.” ―지금도 글을 자주 쓰십니까. “인간 혀의 미각이 여든이 되면 40%가 떨어진다고 하데요. 골프 드라이버샷도 20∼30% 덜 나가거든요. 능력의 한계고, 신이 주신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이젠 안 쓰고 주로 봅니다만, 배를 타는 동안 일기를 죽 썼어요. 요즘 말로 자신만의 빅 데이터를 만드는 겁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잘하더군요. 휴대전화나 컴퓨터로 더 편하게 정리할 수 있잖아요. 언제 누굴 만났고 화제가 무엇이었는지 딱 치면 다 나오니, 굉장한 자산이 될 겁니다.” 그는 타고난 문장가이자 독서광이다. 그가 쓴 ‘거센 파도를 헤치고’ ‘남태평양에서’ ‘바다의 보고’가 초중고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독서량을 보여주듯 인터뷰 도중 역사학자 폴 케네디,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 이승만 전 대통령 등 다양한 석학과 유명인의 발언을 자주 인용했다. 이만열(이매뉴얼 패스트라이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의 책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를 건네며 일독을 권하기도 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이 기사에는 구특교 인턴기자(서강대 중국문화학과 4학년)가 참여했습니다.}

    •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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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국민들, 맨손으로 키운 조선업 존재 벌써 잊어”

    《 ‘한강의 기적’이 흔들리고 있다. 조선과 해운업은 부실이 커져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랐다. ‘산업의 피’인 철강업은 세계 경기 침체와 공급 과잉으로 신음하고 있다. 중동의 모래바람과 근로자의 땀을 먹고 자란 건설업은 해외 시장에서 우리끼리 출혈 경쟁으로 깊은 멍이 들었다. 한국의 허리 산업인 자동차, 반도체 전자업종도 급격한 기술 변화와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으로 바람 앞에 촛불 신세다. “조선업이 다 망해 가는데, 정부고, 기업이고, 언론이고 다들 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야. 반기문(유엔 사무총장)이 어떻고, 정치는 어떻다고 잘도 얘기하더군. 누가 책임져야 돼?” 1960, 70년대 한국 경제 재건과 중화학공업의 기틀을 다진 오원철 전 대통령경제제2수석비서관(88)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 톤이 높아질 땐 황해도 사투리도 배어 나왔다. 인터뷰 내내 호통이 죽비처럼 내리쳤다. 그를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조선업계, 감기 방치하다 폐렴 걸려”―조선업의 위기를 경고한 사람이 없었다는 말인가. “정부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다들 아무것도 안 한 거야. 나한테 와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 사람들, 다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 조선업이 처음부터 잘됐던 건 아니라고.” ―1970년대 조선업을 육성할 때는 어땠나. “처음엔 안 되는 사업이었지. 제대로 된 배를 만들어 본 적이 없어 방향도 못 잡을 때였어. 조선업이 국가적으로 중요하다고 해서 밀고 간 거야. 배에 도료를 칠할 때 녹을 긁어내는 모래가 부족하다고 해서 청와대가 나서서 구해준 적도 있었어.” ―청와대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썼나. “모래뿐인가. 배 만들 사람이 없어 여성들까지 데려다가 용접공으로 썼어. 여성들이 손재주가 좋아 어려운 도면을 보고 척척 용접을 하는데, 깨끗하고 실수가 없었지. 그 뒤로 여성 용접공을 많이 썼어. 그렇게 만든 조선업이야. 그걸 망가뜨린 게 누군지 따져 봤어?”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인가. “밑지는 쪽이 조선업계 아닌가. 감기 걸렸을 때 치료 안 하고 있다가 폐렴까지 걸려 살려 달라고 매달리는데, 죽을 것 같으니 무작정 돈만 달란 얘긴가. 목적과 대안을 내놓고 매달려야지.” ―구조조정의 순서가 잘못됐다는 말인가. “업계가 먼저 살 궁리를 찾아서 계획을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고, 국민들에게 알렸어야지. ‘대비를 못해 여기까지 왔는데 잘못했다. 다시 살아나 국가에 폐 안 끼치고 봉사하겠다’라고 빌어야 한단 말이야. 가장 잘못한 건 조선업계야. 그걸 알고도 단체행동을 하는 종업원들도 문제가 있어. 알고도 당하는 정부는 더 나쁘고. 국민들이 조선업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거지. 누군가 ‘정신 차리시오’라고 몇 마디는 했어야 하는데….” ―국가적 경보 체제가 고장 났다는 뜻인가. “업계는 자기가 죽는 것도 모르고 있었고, 정부에서 조선업계가 이렇게 될 것이니 대비하는 사람도 없었어. 그러면 조선업을 하면 안 되는 거지.” ―조선업계에만 맡길 일인가. “대통령이 벌써 나섰어야지. 계획 세우는 사람도, 걱정하는 사람도,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아. 그러니까 (구조조정이) 공중에 떠 있다는 말을 듣는 거 아닌가. 세계적으로 어떤 분위기이고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쳐 어떻게 힘들어졌는지 따져보고, 하나하나 해결해야 할 거 아니야. 다 망한 다음에 따질 거야?”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했겠나. “사전에 조치를 했겠지. 나 같았으면 당장 비상조치를 해야 한다고 했을 거야. 그땐 대통령이 직접 나섰어. 잘못하면 말 그대로 끝이야. 잘하면 칭찬받지만….” 1969년 정부 보증을 받은 외자 도입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있었다. 당시도 산업은행이 떠맡은 부실기업만 23개나 됐다. 대통령 지시로 청와대 내에 부실기업정리반이 설치됐고, 정부는 석 달간 합병 등을 통해 30개 부실기업을 정리했다. “시장 자율? 정부가 책임 피하려는 말” ―지금은 시장 자율이 강조된다. “시장 자율? 정부에서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말 아닌가? 공업을 발전시킬 책임은 기본적으로 정부에 있는 거라고. 조선업은 조선업계가 알아서 해라? 그건 아니지. 조선업계가 군함도 만들잖아. 다 이런 시스템에서 유지되는 거라고.” ―국가 차원의 장기 계획의 부재가 위기를 불렀다는 건가. “미국에 가려면 먼저 목표를 세우고 배를 타고 갈지, 비행기를 타고 갈지 계획에 넣어야지. 앞뒤 모르는 경제 정책은 없어. 부산 가려는 사람이 북쪽으로 가면 안 되는 거지.” ―현 정부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제시했다. “3년 갖고 되겠어? 50년 계획은 세워 놓아야지. 아무것도 없이 가다간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어.” ―누가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말인가. “정부든, 민간이든, 누구든 좋아. 정부에서 유도하면 더 좋고.” ―세상이 빨리 돌아가는데 어떻게 50년 앞을 내다보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거야. 50년 뒤를 어떻게 알겠어. 5년 단위로 쪼개서 열 개로 보는 거야. 큰 방향을 세워놓고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고쳐 가면 돼. 지금 있는 사람들이 죽고, 다음에 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 것까지 내다봐야 한다는 말이야.” ―그러자면 정책의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정권이 바뀌면 예전 것이 다 없어진다. “그런 나라는 발전하지 못해. 우린 농사만 지어서는 못 먹고 사니까 공업을 육성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운 거야. 기술이 없으니 먼저 간단한 수공업부터 시작했고. 생산 설비를 사올 달러가 없어 어떻게 하면 수출을 많이 할까 고민하다가 어떤 공업을 해야 얼마나 수출할 수 있겠다는 계획이 나왔지.” 그는 한강의 기적을 만든 산업혁명을 4단계로 분류한다. 1단계 2억 달러, 2단계 10억 달러, 3단계 100억 달러, 4단계 1000억 달러 수출 목표를 정해놓고 필요한 산업을 육성했다는 것이다. “계획 없이 가다간 훅 나가떨어질 것” ―국가적 장기 계획에 맞게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뜻인가. “수출을 하려면 기능공이 꼭 필요한데, 그땐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어. 대통령 지시로 학교를 몇 개 짓고, 시험 제도도 만들어 기능공을 키웠지. 그때 만든 게 금오공고야. 그래서 국제기능올림픽 1등도 나온 거지.” 그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제목이 적힌 낡은 책자를 꺼내 보였다. 1970년대 작성된 기능공 5만 명 인력 양성 계획이었다. 첫 장에는 ‘원본 소장자 오원철’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1970년대는 기술자를 어떻게 대우했나. “기능공들이 외국에서 큰 상을 타오면 청와대에서 훈장을 주고 도심 퍼레이드까지 해줬지. 그 사람들, 상 받고 펑펑 울더라고. 그 기쁨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일했던 것 아닌가. 1970년대 밤중에도 불을 켜고 일하는 한국 근로자들을 보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일감 더 주라고 해서 사업을 더 따오고 그랬다고. 꼭 대학 나온 사람만 존경받아야 하나. 기능공들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라고 긍지를 줘야 해. 공고 나오더라도 차관, 장관이 될 수 있어야지.” ―테크노크라트 역할도 강조했는데….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해서 간 적이 있는데, 30여 명 중에 공고나 공대 출신이 딱 한 명이 있더군. 전부 행정 하는 사람들만 뽑아놓고 기술을 모르니까 나 같은 사람 불러놓고 강의를 시키는 거 아니냐고 화를 버럭 냈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어떻게 일했나. “참모는 대통령이 요구하는 답을 늘 갖고 있어야 해. 대통령경제수석으로 일하면서 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까지 만들어 ‘각하, 이 계획대로 하면 일본과 동등하게 될 수 있습니다’라고 브리핑하고 ‘OK’를 받았지. 일본으로 돼지를 수출하려고 잔뜩 모아놨는데, 돼지 콜레라로 수입이 금지된 적이 있었어. 대통령이 회의에서 대책을 요구했지. 고기는 독일처럼 햄과 소시지를, 가죽은 군화를 만들자고 했어. 햄과 소시지가 그때 처음 국내에 등장했지. 돼지껍데기 구이가 인기를 끌어 군화는 못 만들었지만.(웃음) 박 전 대통령이 고속도로 터널을 지나는데, 터널 내부에 붙은 시커먼 매연을 없앨 방법이 없느냐고 물으시더군. 매끈한 타일을 붙이자는 대책을 내놨지. 북한의 삐라에 대응하기 위해 풍선에 삐라를 매달아 보내는 방법도 생각해냈지. 그거 특허까지 냈다고.” 오 전 수석은 ‘당시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머리 좋다는 칭찬 한마디 들으려고 늘 생각하고 고민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관계자들에겐 ‘기업을 어떻게 하면 살릴까, 지금이 어떤 때인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만을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오원철 전 대통령경제수석은▼△1928년 황해도 풍천 출생△1945년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대 공대 전신) 화학공업과 입학△1951년 서울대 화학공업과 졸업 △1957년 공군 소령으로 전역△1957년 시발자동차회사 공장장△1961∼1964년 상공부 화학과·경공업과·규격과 과장△1964∼1970년 상공부 공업 제1국 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1971∼1979년 대통령경제제2수석비서관△1974∼1979년 중화학공업기획단 단장△1992∼1997년 기아경제연구소 상임고문△1998∼현재 한국형경제정책연구소 상임고문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20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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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경제리더스아카데미 4기 수료식 中상하이서 열려

    경제계 리더 양성 과정인 동아경제리더스아카데미(DELA) 4기 해외 네트워킹 프로그램 수료식이 3일 중국 상하이 청쿵(長江)상학원(CKGSB) 상하이 캠퍼스에서 열렸다. DELA는 CKGSB와 함께 중국 경제와 금융시장을 전망하고 한국과 중국의 경제 전문가들이 상호 교류하는 공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CKGSB 교수진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열린 수료식에서 한국 기업 및 금융회사 임원들로 구성된 DELA 원우들이 수료증을 받았다. 이들은 수료식에 앞서 2, 3일 CKGSB에서 중국 인터넷 기업의 성장 전략과 중국 경제 및 인터넷 금융의 현주소, 향후 과제 등에 대한 강연을 듣고 교수진과 CKGSB 동문, 현지 기업인들과 토론을 벌였다. 텅빈성 CKGSB 부학장은 “DELA 프로그램이 양국 기업인의 교류와 협력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윈 알리바바그룹 창립자 등 중국의 스타 기업인들이 졸업한 CKGSB는 홍콩의 거부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이 중국을 이끌 최고경영자(CEO)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경영대학원이다.상하이=박용 기자 parky@donga.com}

    • 201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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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진단]인천공항, ‘1등의 덫’ 풀어야 난다

    최근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사이의 영남권 신공항 유치 경쟁에서 낯선 프랑스 회사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다. 이 회사는 국토교통부의 의뢰로 지난해 6월부터 한국교통연구원과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작업을 하고 있다. 국내 기술이 모자라서 외국 회사에 일감을 맡긴 건 아니다. 선정 과정의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려고 외국 전문 업체를 동원한 것이다. 덕분에 이 회사는 한국에서 짭짤한 돈벌이에 사업 실적까지 챙기게 생겼다. ADPi는 일반인에겐 생소하지만 공항 전문가들은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공항, 콜롬비아 보고타 공항,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 공항 등 세계 100여 개 공항 설계에 참여한 전문 기업이다. 모기업은 프랑스 파리의 오를리, 샤를 드골, 르부르제 공항 등을 운영하는 파리공항공단(ADP)이다. ADP는 ‘2020년 매출액 3조 원’을 경영목표로 제시한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눈여겨봐야 할 회사다. 프랑스 정부가 지분의 50.6%를 보유하고 있으며 2006년 프랑스 증시에 상장했다. 지난해 매출액이 29억1600만 유로(약 3조8500억 원)로 같은 기간 인천공항공사 사업수입(1조8401억 원)의 갑절이 넘는다. 여러 공항을 운영하며 일찌감치 유통, 부동산 개발, 해외 공항개발 사업에 진출한 게 비결이다. 해외 공항을 지어주고 장기간 운영까지 해주는 ‘공항수출’ 사업을 시작한 인천공항이 세계무대에서 맞닥뜨릴 상대가 ADP와 같은 기업들이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올해 1월 이란 관문공항인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은 회사도 ADP다. ADP는 2000년 세운 자회사인 ADPi(공항 설계)와 1990년 만든 ADPM(해외공항 지분 인수, 자금 조달, 건설, 관리)을 통해 해외 공항 개발 사업을 수직계열화했다. 지난해 해외 공항 개발 사업에서 9600만 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21.2% 늘어난 금액이다. 같은 기간 그룹 전체 매출이 4.5% 증가했으니 해외 사업의 성장세가 돋보인다. 세계시장에는 ADP 외에도 공항건설에서 막강한 가격 경쟁력을 보유한 터키의 TAV, 공항과 주변 도시를 복합 개발하는 ‘에어시티’ 개념을 최초로 선보인 네덜란드의 스히폴그룹, 인천공항에 버금가는 서비스 경쟁력을 보유한 싱가포르 창이 공항, 가까운 일본의 하네다 공항터미널 등 쟁쟁한 상대가 즐비하다. 인천공항은 2011년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 공항 입찰에서 공항 건설 단가를 최대한 낮추고 공항 운영에서 모자란 수익을 챙기는 방식의 입찰전략을 들고 나온 TAV에 밀려 탈락했다. 인천공항에는 버거운 상대들임에 틀림없다. 인천공항은 2009년 이라크 아르빌 공항 운영지원 사업을 따내며 해외 공항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선진국에 비해 수십 년이 뒤처진 것이다. 국제공항협의회(ACI)가 주관하는 ‘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11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서비스 경쟁력을 갈고 닦기만 했지, 우물 밖으로 나가 파이를 키울 생각을 안 한 것이다. 잘하는 것만 반복하는 ‘1등의 덫’에 빠진 것이다. 출발이 늦다 보니 약 6년간 누적 해외 수주금액은 9200만 달러(12개국 25개 사업)로 ADP의 1년 해외 사업 매출액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업 영역도 러시아 하바롭스크 공항 지분 투자를 빼면 공항 입지 선정, 운영 지원 등과 같은 컨설팅 사업 일색이다. 공기업이어서 유리한 점도 많지만 불리한 것도 있다. 300억 원 이상 투자하려면 6개월에서 최대 3년이 걸리는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입찰은 물 건너간다. 공기업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예타를 피하려고 참여지분을 300억 원 밑으로 떨어뜨리는 ‘사업 쪼개기’를 하는 이유다. 올해로 개항 15년을 맞은 인천공항이 해외시장에서 실력을 입증 받아야 할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세계 최고의 국내 건설사의 경쟁력과 인천공항이 쌓아온 서비스 경쟁력을 잘만 버무린다면 해외시장에서 날아오르는 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해외 공항 운영까지 따내면 수십 년간 공항 사용료 수입을 꼬박꼬박 벌 수 있고, 국내 식음료나 패션 브랜드의 해외 진출도 도울 수 있다. 인천공항이 ‘세계 공항서비스 1위 지속’이라는 경영목표를 세우고 기록 연장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정부도 약속한 대로 예타 절차 개선안을 서둘러 내놔야 한다. 한국에 철강이나 조선, 전자 제품 외에도 아직 수출할 게 많다는 것을 인천공항이 실력으로 입증하고 새 기록을 써내려갔으면 한다.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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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韓日, 아리랑과 엔카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됐으면”

    《 #1. “하아악교오 조옹이, 때앵때앵때애….’ 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 무대를 누비던 테너 배재철(47)의 오페라 공연 기록은 2005년 10월 이후 빈칸으로 남아 있다. 그해 독일에서 갑상샘 암 수술을 받고 오른쪽 성대 마비가 온 것이다. ‘하이 C’(기준 도인 C3보다 두 옥타브 높은 도인 C5를 말함)’를 넘나들며 오페라 일트로바토레의 만리코 역을 매끄럽게 소화하던 그의 성대는 동요 ‘학교 종이 땡땡땡’조차 부르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다. #2.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그는 2006년 4월 부분 마취를 하고 일본 병원의 수술대 위에 누웠다. 성대 재건 수술을 집도한 이시키 노부히코 박사가 ‘성대 조율’을 위해 아무 노래나 해보라고 했을 때, 그는 어린 시절 성악의 길로 안내한 찬송가를 시작했다. 눈물과 함께 기적처럼 목소리가 나왔다. #3. “술집에서 홀로 마시는 술은 이별의 눈물 맛….” 올해 3월 29일 저녁 일본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강당. 일본 국회의원과 보좌관 등 100여 명 앞에서 배재철이 무대에 올랐다. 그의 선곡은 일본의 국민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엔카 ‘가나시이 사케’(슬픈 술). 구슬픈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가 시작되자, 객석은 ‘소리 반, 공기 반’의 몰입 상태로 빠져들었다. 배재철은 목소리를 잃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처럼 새로운 노래인생을 얻었다. 얼어붙은 한일 관계는 한쪽이 마비돼 힘을 잃은 그의 성대처럼 불안하다. 그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노래로 두 나라 화해의 물꼬를 트기 위해 애쓰는 이유다. 11일 서울 성동구 금호동 ‘스튜디오 보이스 팩토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노래는 내 인생, 포기해 본 적 없어” ―일본 의원회관 무대에는 왜 섰나요. “일본 참의원 중 한 분(나오시마 마사유키 의원)이 2014년 말 개봉한 한국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를 보셨어요. 그분이 요청해서 영화 상영회가 열렸고,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저를 초대한 겁니다.” 영화 ‘더 테너…’는 일본인 매니저 와지마 도타로(53)와 일본 팬들의 도움으로 성대 재건 수술을 받고 재기한 배재철의 삶을 영화화한 것이다. 배우 유지태가 배재철을 연기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국제시장’에 밀려 흥행하진 못했다. ―목 상태는 어떤가요. “전성기의 절반 정도입니다. 오른쪽 성대는 못 써요. 일본에서 마비돼 축 늘어진 오른쪽 성대를 붙잡아 세워 고정시키는 수술을 받았어요. 왼쪽 성대와 부딪혀 소리를 내게 만든 겁니다. ‘하이 C’까지 고음을 부분적으로 낼 수 있어도 노래하듯 연속으로 내긴 어려워요. 오페라는 아직 무리고, 예술 가곡 등을 주로 부릅니다.” 예전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매일 연습하며 성대를 단련시키는 그는 스스로를 모루에 올려놓고 두드리는, 강철처럼 단단한 사람이었다. ―전성기에 노래를 할 수 없게 됐는데…. “독일 의사들이 ‘의학적으로 다시는 노래할 수 없다’고 했어요. 말이라도 할 수 있으면 행운이라고 하더군요. 노래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인데, 이상하게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만 났습니다. 한 번도 포기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려서 교회 성가대 활동을 하며 노래와 가까워졌습니다. 아버지는 버스를 운전하셨어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죠. 아버지에게 ‘성악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말이 없던 아버지는 ‘그래, 네가 노래는 잘하지. 그 공부 했으면 좋겠다. 빚을 내서라도 보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 뒤 노래가 제 인생이 됐습니다. 그래서 더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는 실기 수석으로 한양대 음대를 졸업하고 더 큰 꿈을 찾아 1994년 4월 이탈리아로 떠났다. 두 달 후 밀라노의 베르디 국립음악원에 합격했다. 아내 이윤희 씨(45)도 그곳에서 만나 1996년 결혼했다. “외환위기 땐, 상금 받아 유학생활” ―이탈리아 유학 생활은 어땠나요. “아버지는 정말로 빚을 내 이탈리아 유학까지 보내주셨어요. 처음에 한 달 70만 원으로 버티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가 터졌죠. 처가도, 아버지도 학비를 보내줄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여행 가이드를 해봤지만, 여행사가 부도 나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때 ‘내가 잘하는 것으로 버텨 보자’고 도전한 게 콩쿠르였습니다.” 그의 사무실 입구에는 1998년 1월 6일 독일에서 열린 ‘플라시도 도밍고 오페랄리아’ 국제콩쿠르 포스터가 붙어 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우승해 상금 1만 달러를 타고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공연까지 했다. 그는 “상금을 타야 버틸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가족 같은 일본인 친구들도 많이 얻었는데…. “일본인 매니저의 믿음과 희생이 없었다면 재기할 수 없었겠죠. 일을 접자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인데, 오히려 제 손을 잡고 놓지 않더라고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대에 다시 세운다고. 저 또한 ‘그래 언젠가 서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반드시 도움의 손이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는 2003년 일본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그를 캐스팅한 사람이 지금의 매니저인 와지마 씨다. 2년 만에 성대 마비로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지만, 매니저와 일본 팬들은 그를 기다려줬다. 성대 수술비 일부도 팬들이 댔다. ―일본인 의사와도 친분이 두텁다고 하는데…. “이시키 박사가 처음에는 ‘성악가를 수술한 적이 없다’며 수술을 망설이셨어요. 매니저가 제 음반과 공연 비디오를 보여주고 ‘꼭 이 사람을 다시 무대에 세워야 한다’며 간곡히 부탁하자 수락하셨대요. 77세의 고령인 데다 주위에서 ‘잘못되면 명성만 훼손된다’며 수술을 말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분은 2008년 도쿄에서 열린 재기 콘서트 이후 공연마다 빠지지 않고 오십니다.” 이 밖에 그는 후원자인 히노하라 시게아키 일본 성누가국제병원 이사장(104)과 공동 토크 콘서트도 일본에서 연다. 히노하라 이사장은 2013년 역경을 이겨낸 그의 노래를 듣고 감명을 받아 후원자가 됐다. ―전성기 때와 어떤 게 달라졌나요. “목소리를 잃기 전에는 ‘한번 들어보라’며 자신 있게 불렀어요. 지금은 그렇게 멋있고 화려한 소리를 못 내요. 쉽게 불렀던 노래도 한 음 한 음 조심스럽게 불러야 합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내면 감정을 120% 끄집어내려고 노력합니다. 관객들도 그걸 알죠. 공연하다가 소리가 안 나면 예전엔 ‘패닉’이 됐을 겁니다. 지금은 관객들이 격려해주고 함께 불러줘요. 서로 마음이 통하는 거죠.” ―성악가로서 롤 모델은 누군가요. “어렸을 때는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테너인 파바로티를 존경했어요. 목소리를 잃고는, 이런 말씀드리긴 죄송하지만, 밤무대 가수분도 부러웠어요.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노래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스럽습니다.”“음악으로 韓日관계 풀고 싶어” ―일본에 자주 가나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갑니다. 일본에 데뷔할 때는 돈도 벌고, 얄미운 일본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려고 했어요. 왜 그랬는지 부끄럽습니다. 이젠 내게 손을 내밀어준 친구들과 일본 팬들에게 노래로 보답해야죠. 친구처럼 형처럼 지내는 일본인 매니저와 늘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하면 형제 같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엔카도 부른 거군요. “옛날 같았으면 ‘그런 걸 왜 불러’ 했겠죠. 이제는 그런 구분을 짓지 않으려고 해요. ‘가나시이 사케’를 쓴 고가 마사오도 존중합니다. 그는 한국에서 고교를 다닌 엔카의 명작곡가입니다. 이 노래를 부른 일본의 국민가수인 미소라 히바리는 한국계라고 합니다. 장르를 따지기보다 음악이라는 것 하나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어요. 서로 다르다고 구분을 짓기 때문에 편협해지는 것 아닐까요.” ―‘엔카 앨범’을 낼 수도 있겠네요. “‘고가 멜로디’의 노래를 다시 부를 겁니다. 엔카 중에서 의미가 있는 최고의 작품을 고르고 있어요. 엔카는 일본을 표현하는 중요한 문화 코드거든요. 문화 코드로 양국의 친밀도를 높이는 게 우리의 목표예요. 계란으로 바위 치는 꼴이 될 수 있지만 음악으로 서로에게 화난 한국과 일본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어요.”“日관객, 아리랑 듣고 눈물” ―음악으로 한국과 일본에 다리를 놓겠다는 거군요. “한국과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만들고 싶은 사명이 생긴 거죠. 일본 공연을 할 때 앙코르로 아리랑을 부르면 그 사람들이 울어요. 가사를 알고 우는 건 아닐 겁니다. 아무 이유 없이 감동하는 거예요. 그게 음악인 것 같습니다.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박수와 환호를 받아 본 적은 있어도, 관객들이 운 적은 없었습니다.” ―한국에선 엔카 앨범을 내는 성악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제 매니저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데리고 비즈니스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 가슴이 무척 아팠다고 해요. ‘요즘 세상에 순수한 게 어딨느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순수한 게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힘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저처럼 힘없는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음악으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언젠가 굳어진 마음이 풀리고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겠죠. 그런 날은 반드시 올 겁니다. 진심은 통한다면서요.”▼ 배재철은 ▼― 1969년 대구 출생― 1993년 제33회 동아콩쿠르 1위― 1994년 한양대 성악과 실기수석 졸업― 1998년 이탈리아 베르디 국립음악원 수석 졸업― 1998년 ‘프란세스크 비냐스’ 국제콩쿠르 최고 테너상 등 다수의 국제콩쿠르 입상― 1998∼2005년 유럽과 일본 등의 오페라 무대에서 테너로 활동 ― 전 한양대 음대 성악과 겸임교수― 현 영산콘서바토리 강사, 보이스팩토리(일본) 소속 성악가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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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한국경제, 약 한두 첩으로 딱 낫지 않아”

    《 1957년 ‘한국의 케인스가 돼 나라의 가난을 극복해보고 싶다’는 스물아홉 청년이 미국 보든 칼리지의 입학허가서와 100달러를 들고 유학길에 올랐다. 카키색 군복과 검정 고무신을 신고 악착같이 공부한 그는 3년 만에 대학을 마쳤다. 이어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까지 받고 훗날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가 됐다. 조순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88)이다. “5년간 미국 대학에 받아달라는 편지를 숱하게 썼습니다. 처와 아이 셋까지 있었지만 가기만 하면 다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땐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2월 청년실업률이 12.5%로 사상 최악으로 치솟는 등 한국 경제의 위기 경고음이 울리던 이달 8일 조 전 부총리를 자택인 서울 관악구 행운동 ‘소천서사(小泉書舍)’에서 만났다. 》 “새 길을 찾는 청년정신 키워야”―요즘 청년들이 고민이 많습니다. “청년들이 ‘3포’ ‘5포’ 요새는 점점 많아져 ‘N포’ 세대라고 하대요. 그거 절망의 소리거든요. 20대 젊은이들이 연애, 결혼, 자식 낳는 거 포기하고 살면 무슨 낙이 있겠어요. 젊은이가 ‘드라이브(drive·투지)’가 있어야 하는데, 대학 나와서 대기업 입사, 공무원시험에 지원합니다. (경쟁률이) 몇백 대 일, 몇천 대 일이라고 하던데, 그건 낙제하라는 얘깁니다. 아주 고약합니다. 젊은이답게 창의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지요. 집에선 부모가, 학교에선 선생님이 그런 걸 키워줘야 합니다.” ―청년실업이 최악인데요. “당장 호전시킬 방법은 없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중소기업을 지키지 못했어요. 대통령 임기 중에 그걸 해서 잘했다는 소리 듣기 어려우니 모두 안 했습니다. 정권마다 ‘우리가 중소기업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비과학적이고 일방적이었습니다. 자금만 대주는 게 정책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 게 수십 년 쌓인 거예요.” 하얀 눈썹에 ‘산신령’같이 온화한 표정의 조 전 부총리는 청년 실업 얘기가 나오자 책상을 내리쳤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취임할 때도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하셨는데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나무가 영양을 흡수해서 크듯이 중소기업이 커야 기술이 생기고, 고용이 늘고, 부자와의 격차가 줄고, 중산층이 생깁니다. 대기업들은 경제 수장이 그런 소릴 한다고 불만이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정부에 오래 있지 못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그만두고 부총리로 입각한 이유를 묻자 조 전 부총리는 ‘士’(선비 사)와 ‘仕’(벼슬할 사)를 종이에 적었다. “선비는 국가가 부르면 가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육사 교관 재직 시절 제자인 전두환 대통령이 측근을 통해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참여를 세 번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는 “군사정부에서 일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이후 인공지능(AI)이 사람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두려움도 큽니다. “너무 그래도 안 됩니다. 바둑 수를 계산하는 건 알파고가 잘할 수밖에 없어요. 인공지능이라고 하지만 지능은 없어요. 지능이라고 하는 건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나라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에 대한 구상을 하고 전략을 세우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유럽과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실험을 묻자, 영국의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를 들어 보이며 “엔고로 일본이 고생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지 않느냐”며 “마이너스 금리는 말이 안 된다. 힘들더라도 순리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4대 개혁, 껍데기만 긁다 끝날 수도” ―박근혜 정부의 4대(공공, 교육, 금융, 노동) 개혁,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대체로 정부가 하려고 하는 걸 이해할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해선 껍데기만 조금씩 긁어놓는 것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노사관계만 해도 노사정위원회에 모든 걸 맡겨서는 잘 안 됩니다. 기업에는 ‘근로자를 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근로자들에게는 ‘기업을 돕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다’는 것을 일깨워 줘야 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정신없이 노사 합의가 안 돼요. 그걸 제일 잘 아는 나라가 독일입니다. 거긴 절대 무리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 않아요. 기업들은 근로자를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교육 개혁은 어떻습니까.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하루빨리 폐지하고 학생 선발을 학교에 맡겨야 합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이 학생을 지방별로 쿼터 만들어 모집하면 참 좋겠습니다. 미국 대학이 그렇습니다. 왜 그런 걸 못 배우는지…. 그러니까 ‘판박이 학생’만 나오고 엘리트를 못 길러요. 시험 잘 친다고 엘리트가 됩니까.” 그는 “자신만의 인생관, 자신의 특성을 잘 개발할 줄 알고 ‘나대로 산다’는 청년 정신이 있는 사람이 엘리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정책 중 잘한 것은 무엇입니까. “국사교과서 정부 편찬, 난 사실 반대입니다. 그렇지만 응급조치로서는 그것밖에 없어요. 불가피한 조치라고 봅니다. 다만 나중에 민간에 (권한을) 돌려준다고 해야 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남한이 북한을 먼저 쳐들어 왔다고 믿고 있다고 하거든요. 말이 됩니까. 그런 건 없어야 돼요.” ―가장 잘못한 정책은 무엇인가요. “잘못했다는 건 아니고요.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결여돼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기대한 성과를 못 거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노력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효과가 없어요. 재정의 팽창이나 금융 완화, 부동산 거래 활성화, 경기 부양을 위한 규제 완화만 갖고는 안 됩니다.” ―정부가 어떤 일을 해야 하나요. “오래 쌓인 결과여서 즉효약이 없습니다. 약 한두 첩으로 딱 낫는 건 없어요. 그래서 어려운 겁니다. 성장에 대한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앞으로 세상이 이렇게 될 테니, 이런 식으로 가야 한다는 걸 위정자가 알고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대통령 임기를 넘어가는 비전이 필요합니다. ‘대통령 끝나면 그만이지’라는 건 안 됩니다. 새로운 발상을 해야 돼요.” ―규제개혁과 공공부문 개혁은 어떻게 추진해야 하나요. “규제를 무조건 없앨 게 아니라 왜 하느냐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 수도권 규제와 같은 것은 정부가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왜 필요한가를 따져서 해야 합니다. 어떻게 일일이 검토하느냐고요? 그래서 정치가 어려운 거고, 국가 경영이 어려운 겁니다. 그냥 선 긋듯이 하면 누가 못하나요.” 그는 “부총리는 비슷한 부처의 이해가 상충될 때 이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며 “새로운 정책은 없이 부처 간판만 바꿔 다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지적했다. ―1995년 민선 1기 서울시장으로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20여 년간 한국 정치는 많이 변했습니까. “이대로는 곤란합니다. 아무것도 안 될 겁니다. 우리 정치는 책임을 안 지는 제도를 갖고 있어요. 대통령제라는 게 그렇습니다. 잘될 때는 다들 그냥 넘어가요. 잘 안 될 때 문제가 생깁니다. 대통령이 책임을 안 지려면 ‘아이, 내가 하려고 했는데 정치에서 말을 안 들어’, 정당은 ‘왜 우리 책임이냐, 대통령이 해야지’ 그런단 말이에요. 그래서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The buck stops here(책임은 내가 진다)’라고 말한 겁니다. 영국 독일처럼 내각제를 하라고 하고 싶지만 개헌 얘기도 나오지 않고…. 우리는 완전히 프레시한 발상을 안 합니다.”“책임정치 위해 내각제로 개헌해야” ―2000년대 초에는 ‘정당이 총재(현 당대표) 1인 지배 체제하에서는 내각제 어렵다’고 하셨는데요. “1인 지배 체제하에서는 내각제라는 게 있을 수가 없지요. 내각제라고 하는 건 책임 소재가 분명합니다. 모든 책임은 총리가 지기 때문에 내 탓 네 탓 할 게 없어요. 항상 다수당이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너지면 총리가 사임하는 겁니다.” ―‘경제민주화는 표현상 모순이다’라고 발언한 적도 있습니다. “정치민주화가 안되기 때문에 경제민주화라는 얘기가 나온 겁니다. 양극화 등이 왜 생겼나요. 그건 정치의 실패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경제에 민주화라는 말이 없지 않나요. 소득 분배, 균형화, 중소기업에 대한 ‘갑질’은 안 된다는 김종인 씨(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말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조 부총리의 책상에는 자본주의를 주제로 한 일본, 영어로 된 원서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는 요즘 자본주의 미래와 한국이 나아길 길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건강이 어떤지 묻자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지팡이를 짚고 산책도 잘 다닌다”고 말했다. 오래전 제자의 권유로 시작한 생활요가를 하고 오후 9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일어나는 게 그의 건강 비결. 그는 “병이 그저 들어오는 게 아니다”라며 “유기체는 인체나 단체, 국가나 문명 모두 밸런스가 잡혀야 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들려달라고 하자 “절대 절망하지 말고, 삼포 이런 거 하지 말고…”라고 타이르듯 말했다. (이 기사 작성에는 경제부 신민기 기자가 참여했습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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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진단]‘무저갱 세대’ 구하기

    청년 실업률이 최악이라는 소식을 듣고 몇 해 전 만난 부산의 한 자동차 부품회사의 40대 사장 A 씨가 떠올랐다. 2006년 창업주인 부친이 갑자기 쓰러지자 그는 경영을 맡아야 했다. 직원들이 동요했고, 협력회사들은 “젊은 사장을 믿지 못하겠다”며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초짜 사장은 하루에 담배 4갑씩 피우며 피가 마르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3년간 생산성을 30% 높이고, 원가를 30% 줄이는 운동을 펼쳐 간신히 돌파구를 찾았다. 그는 그렇게 사장이 돼 갔다. “젊은 사람들이 냄새나고 몸에 뭐 묻는 일은 안 하려고 해요. 공정 하나 안착시키는 데 사람이 5번 정도 바뀝니다. 월급이 적어 그런 거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가 끙끙대는 고민은 ‘사람’이었다. 당시 그의 회사에서 4∼5년 차 생산직은 연봉 3100만∼3200만 원을 받았다. A 사장은 “연봉 7000만 원을 받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파업한다는 말이 들리면 직원들 보기 미안해 현장에도 안 내려갔다. 괜히 악덕 기업주가 된 것 같아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일감을 주는 자동차회사가 있는 한국을 떠날 수도 없고, 원가와 품질 경쟁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직원 급여를 듬뿍 올려주기도 힘들었다. 인력난에 시달리던 그는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해야 했다. 은행 빚을 내 생산라인을 자동화한 새 공장을 지었다. 그는 “새 아이템을 개발할 때 인력을 최소화하는 공정부터 고민한다”며 “되도록 기계에 다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라고 다를까. 정도만 다를 뿐이다. 기업 회계에서 사람 채용은 비용, 생산설비 구입은 투자로 잡힌다. ‘비용을 줄이고 투자를 늘린다’는 것은 사람을 줄이고 공장을 자동화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인구 감소와 인건비 상승을 걱정하던 제조업 강국 독일이 기계화, 자동화, 지능화된 생산 공정을 구축하는 ‘4차 산업혁명’의 발원지가 된 것이나 테슬라가 저렴한 전기차를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서 생산하겠다고 큰소리치는 식의 ‘흑마술’이 가능한 이유다. 4차 산업혁명은 공장의 블루칼라 일자리를 로봇과 기계로, 금융 의료 등의 중산층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인공지능(AI)과 컴퓨터로 대체하는 ‘노동의 자본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노동을 자본 투자로 대체한 대기업은 성장하더라도 일자리와 소득을 그만큼 돌려주지 못하니 본전 생각이 난 사람들은 대기업에 증세(增稅)와 사회적 책임을 더 강하게 요구하게 된다. 청년 실업은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인 것이다. 야당 공약처럼 대기업들이 청년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주면 좋지만, 이 역시 희망사항에 가깝다. 글로벌 경쟁을 하는 대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진화를 포기하고 ‘역(逆)선택’을 하라는 ‘자살명령’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세대간 갈등에 대한 우려도 있다. ‘박원순 수당’이나 ‘이재명 배당’처럼 청년들에게 세금을 나눠주는 것은 진통제이지 근본처방은 아니다. 연봉 7000만 원의 대기업과 연봉 3000만 원의 A 사장 회사가 공존하는 이중적 노동시장 구조에서 청년들은 중소기업 취업을 미루고 대기업 취업에 이 돈을 투자하는 ‘합리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이 자본으로 대체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괜찮은 청년 일자리가 나올 곳은 뻔하다. 기술을 설계하거나 개발하는 엔지니어와 같이 사람의 지식이 비용이 아닌 핵심 경쟁력으로 인식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업’뿐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이런 일자리를 누가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언제까지 만들겠다는 구체적 대안을 여야 모두 내놓지 못했다. 목표 숫자만 있었지 국민들의 가슴을 뛰게 할 방법론은 보이지 않았다. 민심이 실망한 건 당연하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청년 일자리를 어떻게 늘릴 건지 구체적 청사진을 들고 내년 대선의 심판대에 올라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 야당 탓을 하고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야당이 이 법을 의료공공성 논쟁의 불쏘시개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동안 청년 실업의 시한폭탄은 재깍재깍 간다. 자신의 일자리는 온몸을 던져 싸우면서 나라의 미래인 청년의 고민은 나 몰라라 하는 정치인들은 죄 없이 끝 모를 청년 실업의 나락에서 헤매는 ‘무저갱(無底坑) 세대’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1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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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형 미인처럼 AI 도움 받는 신인류 등장할 것”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세계가전전시회(CES) 로보틱스 콘퍼런스 발표장. 작은 체구의 60대 한국인이 단상에 올라 장난감 자동차에 영어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안녕 타이키(Tyche), 날 기억하니?” “그럼요. 리처드. 날 창조해줘서 고마워요.” 객석에서 ‘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태어났지?” “2015년 11월 14일.” “몇 살이야?” “두 달요.” 타이키는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명령하자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부했다. 학습을 통해 주인의 얼굴과 목소리까지 알아보기 때문이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소개된 이 영상 속 주인공 타이키는 미국 실리콘밸리 인공지능(AI)회사 AI브레인이 개발한 대화형 AI로봇. 케임브리지 영어 교과서 초급 레벨의 93%를 이해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타이키는 이날 행사에 일본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 프랑스 블루프로그로보틱스의 가정용 로봇 ‘버디’와 함께 초청을 받았다. 타이키를 만든 ‘리처드’는 AI브레인과 한국전자인증 대표를 맡고 있는 신홍식 박사(65)다. 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승리한 뒤인 지난달 말 방한한 그를 서울 서초구 한국전자인증 사무실에서 만났다. “알파고, 다음 도전은 인간과 대화” ―알파고가 왜 바둑을 선택했을까요. “바둑은 수를 내다보는 계산이 필요한 게임입니다. AI 핵심기술인 ‘플래너(Planner)’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해법을 찾는 기술이고요. 바둑은 ‘19×19’의 한정된 바둑판에서 하니까 컴퓨터가 계산하기 좋죠. 그래서 바둑이 지난 수십 년간 AI 연구의 좋은 타깃이 된 겁니다.” ―AI 전문가로서 누굴 응원했나요. “아무래도 이 9단이 잘되길 바랐죠. 사람이니까.(웃음) 알파고가 기보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사실 걱정은 됐어요. 바둑 프로 9단이 입신(入神)의 경지에서 계산한다고 해서 ‘신산(神算)’이라고 하는데, 알파고는 계산에선 진짜 신산이거든요. 인간보다 백만 배는 더 잘해요.” 1989년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AI로 박사학위를 딴 그는 국내 1세대 AI 전문가로 꼽힌다. 아마 4단의 바둑 애호가이기도 하다. ―이 9단이 지고 ‘알파고 충격’이 꽤 컸습니다. “영혼의 스포츠라는 바둑을 져버렸으니 인간으로선 허탈한 거죠. 알파고가 다음에는 스타크래프트에 도전한다고 하데요. 마케팅 효과가 극대화되는 걸 찾는 거죠. 그 다음엔 아마 인간과의 대화에 도전할 겁니다.” ―왜 그렇죠. “인간이 왜 가장 진화한 동물일까요. 언어 때문이에요. 우린 ‘비행기’를 들으면 곧장 비행기의 복잡한 개념이 머릿속에 쏙 들어와요. 언어는 유연하면서도 아주 강력해요. 그래서 기계가 어려워하는 겁니다. MS가 최근 내놓은 AI 채팅봇 ‘테이(Tay)’도 부적절한 말을 배워 웃음거리가 됐잖아요. 로봇들이 대화를 잘 못해 녹음된 내용만 반복하니까 아이들이 싫증내죠. 오죽하면 ‘로봇 같은 놈’이라는 욕이 나왔겠어요.”“AI, 아직은 바퀴벌레 수준” ―인간의 지능을 따라잡기가 왜 어려운가요. “인간 지능은 문제 해결, 배움, 기억이 있어요. 배움이 있으니까 문제해결 능력은 점점 나아지죠. 그래서 현대 언어학의 1인자인 놈 촘스키는 ‘사람은 머릿속에 배울 수 있는 인지 엔진(Cognitive engine)을 갖고 태어난다’고 말했어요. 인간처럼 배우고 문제를 해결하고 기억하는 게 어려워요. 문제해결 기능이 있는 AI에 배움 기능을 넣은 게 요즘 말하는 ‘머신러닝(기계학습)’인 거고.” ―인간 뇌야말로 명품이네요. “그렇습니다. 미치오 가쿠라는 미국 이론 물리학자가 AI를 인간과 비교해 ‘덜 떨어진 바퀴벌레(retarded cockroach)’ 수준이라고 평가했어요. 우린 책상을 보고 질감, 색깔까지 딱 알잖아요. 인간 두뇌는 온갖 추론을 다 하는데, 알파고는 안 돼요. 과학자 정치인 등은 하나의 사실을 보고 각각 다른 각도의 지식을 끌어냅니다. 그게 인간의 파워죠. 전자식 컴퓨터 기술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양자 컴퓨터가 나오면 모를까.” ―대화하는 AI는 어떻게 쓰일까요. “‘반려로봇(personal robot)’이 나올 겁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고 있으니까요. AI가 대화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올해 개인적 목표가 AI 조수를 만드는 거라고 하잖아요. 구글의 차세대 검색엔진도 자연어 기반의 검색엔진입니다. ‘로봇이 뭐야’라고 물으면 비서처럼 척척 찾아주는 거죠.” ―우리 인공지능 기술 수준은…. “누구는 미국보다 얼마 뒤졌고 중국이 바짝 따라왔다고 하던데, 그들이 들으면 웃긴다고 할 걸요. 옛날 중국만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실리콘밸리에 가봐요. 중국인 인도인 천지입니다. 한국에 AI 하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그런 소리를 해요. AI로 갑자기 간판을 바꿔다는 전문가들 때문에 국민들만 헷갈리는 거죠.” ―한때 AI가 인기였지 않나요. “1980년대 말 컴퓨터과학을 공부하면 전부 AI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컴퓨팅 파워가 뒷받침하지 못하니 ‘AI 윈터(혹한기)’가 왔어요. 교수도 안 뽑았고요. 프로그램 하나 돌리는 데 하루가 걸리니 실용성이 없었죠. 그러다가 100만 원이면 내가 대학 다닐 때 쓰던 메인프레임 컴퓨터에 비하면 슈퍼컴퓨터와 다름없는 스마트폰을 손안에 넣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소프트웨어 혁명이 일어났고, ‘AI 봄’이 다시 왔습니다.” ―AI 혹한기인 1997년 국내에서 AI 회사를 창업했는데…. “배운 게 그거니 창업을 하긴 했는데, 시장이 없어 힘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회사가 안 망하면 AI에 미래가 있고, AI에 미래가 있으면 우리도 안 망한다’고 그랬죠. 그동안 버텨준 한국전자인증과 직원들이 고맙죠. 잘해줘서 실리콘밸리까지 갈 수 있었으니까.” 미국 보스턴 등의 연구소에서 일하던 그는 귀국해 1997년 AI회사 보나비젼을 세웠다. 하지만 일거리가 많지 않아 1999년 국내 최초 민간 공인인증 회사인 한국전자인증을 설립해 겸업을 했다. 그는 2010년 코스닥에 한국전자인증을 상장시키고 이듬해 홀로 미국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실리콘밸리로 왜 갔죠. “미국 자본주의는 돈이 아니라 기술이 중심이에요. 기술주의죠. 기술과 아이디어를 사주고 창업자의 동기를 살려주는 게 미국입니다. 거기서 AI사업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실리콘밸리로 간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너라고 별거 있겠느냐’고 그러데요. 그 패배의식에 정말 말문이 막혀요. 우리가 왜 안 되는 거죠. 중국 아이들은 거기서 아주 기가 살아 펄펄 날아요. 우리는 안에서만 그렇지, 밖에 나가면 자신감이 없어요.”“AI 본질을 알면 일자리 생겨” ―타이키는 얼마나 팔렸나요. “개성공단에서 물건을 생산해 2월부터 미국 전자상거래 회사인 아마존에 납품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배송 이틀 전에 개성공단이 갑자기 폐쇄됐어요. 아마존에서는 빨리 물건을 보내라고 독촉하는데 약속을 두 번이나 어길 수밖에 없었어요. 앞이 캄캄하데요.” 그는 “개성공단 폐쇄로 중국 선전으로 옮겨 제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요즘 연구하는 일은 뭔가요. “AI게임 엔진, AI보안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검찰인데, 계좌가 노출됐다. 빨리 돈을 넣어라’라는 전화가 오면 진짜인지, 보이스피싱인지 구분하는 기술이죠. AI 관련 영화, AI 뮤직도 만들고 싶어요.” ―AI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걱정이 많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자들이 2020년 일자리의 47%가 AI로 자동화돼 사라진다고 했어요.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처럼 해서는 안 돼요. AI의 본질을 알아야만 일자리도 생기고 길이 보일 겁니다.” ―그래서 재단을 만든 건가요. “요즘 아이들 보면 눈물이 나요.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꼴찌라고 하잖아요. 저도 6·25전쟁 때 태어나 좌절, 방황을 많이 했어요. 후세들은 더 나아질 줄 알았는데, 우리 아이를 보니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지난해 재단을 세우고 10대를 위한 AI스쿨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넷 강의 등을 열고 AI혁명을 이끄는 100만 명의 리더를 키우려고 합니다.” 그는 “한국에서 벌었으니 여기서 쓰겠다”며 지난해 전자인증 주식 등을 내놓고 AI 인재 양성을 위한 ‘영리더십미래재단’을 세웠다. 그는 “전자인증에서 7년간 수익의 10% 내에서 출연을 계속하기로 했다”며 “특수 관계인의 주식 출연 제한으로 주식을 한꺼번에 많이 기부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어른들을 위한 사업도 준비 중이라고 하던데요. “청년이나 은퇴한 중장년을 위한 야간 창업학교인 ‘백작스쿨’ 설립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아이디어와 기술로 ‘백만 송이 작은 기업을 키우자’는 겁니다. 미국은 그렇게 하잖아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돈이 있어 구글을 세웠습니까?” ―AI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AI를 적대시할 필요가 없어요. 강점, 약점을 알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죠. 성형 미인이 요즘 자연 미인보다 예쁘다고 하잖아요. AI가 인간 속으로 일부 들어오는 ‘강화된 지능’의 시대가 곧 올 겁니다. 기억력이 없어지면, AI가 나의 일부가 되는 거죠. 이상한 쇳덩어리 사이보그가 아니라 성형 미인처럼 예쁜, 그런 새로운 인류가 등장할 겁니다.”박용 기자 parky@donga.com}

    •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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