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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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6-02-28~202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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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와 인권 한뜻… 동아일보 창간의 뿌리는 3·1운동이었다

    “거친 힘에 바탕한 침략주의 제국주의는 권리를 옹호하는 평화주의와 정의에 기초한 인도주의로 돌아서려 한다. … 돌아보건대 국권을 상실한 지 10년, 조선 민중은 한바탕 악몽을 꾼 듯하다.”(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사) “다른 민족에게 자유를 억압당하는 고통을 겪은 지 오늘로써 10년을 넘어섰다. … 힘의 시대는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온다. …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로운 문명의 서광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한다.”(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서)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의 창간은 1919년 거족적 항일독립운동인 3·1운동의 결과물이었다. 또한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도 흐름을 같이하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기미독립선언서와 동아일보 창간호 사시(社是) ‘민주주의를 지지함’,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포한 임시헌장(헌법)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기미독립선언서와 임시정부 헌법, 동아일보 창간사가 모두 인류 공통의 가치를 바탕으로 자유와 평등, 독립을 바라고 있다. 조선의 독립운동이 봉건주의적 왕정복고가 아닌 자유와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근대적 민주주의 공화국을 지향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임시정부의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고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빈부 및 계급 없이 일체 평등으로 함’, 4조는 ‘인민은 … 자유를 향유함’이다. 본보 창간사 역시 사시 중 하나인 ‘민주주의’를 “개인의 인격에 바탕을 둔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는 것이다. … 국내 정치에서는 자유주의요 … 사회생활에서는 평등주의요”라고 설명하고 있다. 1920년 1월 6일 동아일보 발행 허가에 대한 일제의 고등경찰관계연표(高等警察關係年表) 기록에는 “동아일보 발행 허가, 사장 김성수, 편집인 장덕수, 발행인 이상협의 한글신문(민족계) 발간”으로 돼 있다. 다른 민간 신문과 달리 유일하게 ‘민족진영’에 발행이 허가된 것임을 특기하고 있다. 설립자 김성수 선생은 1918년 12월 서울 중앙학교 숙직실에서 고하 송진우, 훗날 고려대 초대 총장이 되는 현상윤과 회동하며 독립운동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현상윤의 3·1운동 회고에 따르면 이들은 육당 최남선을 끌어들이고 천도교와 접촉하는 한편 평북 정주의 남강 이승훈을 서울로 오도록 해 기독교계와의 연합을 이끌어냈다. 김성수 선생은 이승훈에게 수천 원의 자금을 전해 기독교계의 규합에 쓰도록 했다. 창간 뒤 동아일보 초대 주간(주필)을 맡아 3·1운동 정신을 구체화한 창간사 ‘주지를 선명하노라’를 쓴 이는 설산 장덕수(1894∼1947)다. 장덕수는 중국 상하이에서 여운형 등 망명 독립지사들과 함께 1918년 8월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일본에서 도쿄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을 추동했다. 독립운동사 연구자인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신한청년당은 3·1운동 뒤 임시정부 수립의 모든 실무를 맡았다”고 말했다. 고하 송진우는 3·1운동 주모자로 투옥된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으로 1920년 10월 출감한 뒤 이듬해 3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2·8독립선언을 낭독한 근촌 백관수는 나중에 동아일보 사장이 돼 총독부의 강요에도 끝까지 폐간계에 도장을 찍지 않다가 종로경찰서에 수감된다. 경성의전 학생으로 학생층의 독립만세운동을 조직한 독립운동가 한위건도 1925∼28년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며 정치부장을 지냈다. 동아일보는 창간 뒤 검거된 3·1운동 주역들의 공판을 집중 보도하고 고문당했다는 진술을 전하는 등 3·1운동 정신을 잇기 위해 노력했다. 공판 시작을 알리며 민족대표 48인의 얼굴 사진을 모아 전면으로 다뤘을(1920년 7월 12일) 뿐만 아니라 옥중 근황도 ‘손병희 등 47인의 안부’(1920년 6월 12일) 등 기사로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3·1운동 2주년인 1921년 3월 1일에는 여전히 경성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의 사진과 함께 최남선 등이 가족에게 부친 편지를 실었다. 1926년에는 국제농민조합 본부가 3·1운동 7주년을 맞아 조선 농민들에게 보내온 축전을 게재했다가 2차 무기정간을 당하는 한편 주필 송진우가 보안법 위반으로 또다시 구속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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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추행 논란 정봉주 前의원 “그 호텔 갔었다” 결국 시인

    정봉주 전 의원(59·사진)이 2011년 12월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렉싱턴호텔에 있었던 사실을 시인했다. 당시 여대생이었던 A 씨가 정 전 의원이 자신을 성추행했다며 이른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현장으로 지목한 곳이다. A 씨 폭로 후 정 전 의원은 당일 행적이 촬영된 사진 수백 장을 공개하며 호텔에 가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 정 전 의원은 28일 “2011년 12월 23일 오후 6시 43분 렉싱턴호텔 1층 레스토랑 겸 카페에서 내 카드 결제 명세를 찾았다. 당일 그곳에 가지 않았다고 확신했던 내 기억이 잘못됐음을 객관적 자료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카드 결제 시간은 A 씨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피해를 주장한 때와 멀지 않다. A 씨는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당시 모바일 위치기반(GPS) 게임 접속 기록을 공개하고 “오후 5시경부터 정 전 의원을 1시간가량 기다렸다”고 밝혔다. 7일 한 인터넷 매체가 A 씨 미투를 보도한 뒤 정 전 의원은 당일 행적을 보여주는 사진 781장 중 일부를 공개했다. 그러고는 “해당 장소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성추행 범죄가 성립될 수 없다.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는 나를 음해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일 만에 정 전 의원의 해명은 거짓이 됐다. 그는 인터넷 매체 등을 상대로 제기한 고소를 취하했다. 이날 정 전 의원은 카드 결제 명세를 ‘스스로’ 찾아내 공개한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서울시장 출마 철회와 공적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변명 같지만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A 씨 변호인은 “정 전 의원이 범행을 인정하거나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법적 대응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는 정 전 의원을 향해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정 전 의원과 함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진행했던 김어준 씨(50)도 비난을 사고 있다. 김 씨가 진행하는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최근 정 전 의원의 당일 행적이 찍힌 사진을 공개하면서 정 전 의원을 옹호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의 해명이 거짓으로 확인되자 김 씨의 방송 출연 금지와 해당 프로그램 폐지를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제작진은 이날 공식 입장문을 내고 “사건 전체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결과적으로 진실 규명에 혼선을 야기했다. 시청자와 A 씨에게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김동혁 hack@donga.com·조종엽 기자}

    • 2018-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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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항쟁 목격하고 한국에 대한 인식 근본적으로 바뀌어”

    일본 도쿄대 교수로 조선 경제사를 연구하다가, 내정된 동양문화연구소장직마저 고사하고 역사학자로서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완숙한 시기를 한국의 대학에서 보낸 학자가 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석좌초빙교수에서 지난달 퇴임한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70) 교수다. 그가 2002년부터 16년간 일한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최근 고별강연을 했다. “내 연구의 최종 목표는 한국사를 통해 역사 전체, 세계사를 바라보는 일을 풍부히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미야지마 교수는 강연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얼핏 당연한 말 같지만 그 함의는 가볍지 않다. 한국의 역사학계는 식민사학의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사가 세계사의 발전법칙에 따라 내재적으로 발전해왔다고 설명했지만 근래 들어 서구 중심주의에 갇혔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미야지마 교수는 역으로 한국사를 통해 세계사를 보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조선 농업기술사, 유학사상에 관해 연구했고 이 연구들은 1994년 ‘동아시아 소농사회의 형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으로 집약됐다. 중국에서는 15세기, 한국과 일본에서는 17세기에 집약적 논농사 기술이 확립됐다. 그 경영 주체로 소농층이 형성됐으며 지배층이 농업 경영에서 손을 떼고 성리학에 바탕을 둔 관료로서 국가 운영에 전념하는 사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소농사회의 형성이 동아시아에서는 19세기의 근대화보다 더 근본적인 분기점이라는 주장이다. 그의 연구는 유럽 중심주의에서 탈피하는 동시에 한국사를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파악하면서 일본사, 중국사를 아우르는 독특한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는 소련 등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한국에서 목격한 것이 연구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1987년에 3월부터 일곱 달 동안 서울대에 있으면서 학생들이 매일같이 데모하는 것을 봤어요. 한국사회와 한국인에 대한 내 인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싶었습니다. ‘이 역동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됐지요.” 그는 “역사 연구는 현실과의 대화”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급격히 부상한 중국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등에 대한 고민과 역사 연구를 떼어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 그의 연구는 아시아에서 유럽과 같은 봉건제를 경험한 것은 일본뿐이며, 일본만 독자적으로 서구처럼 근대화를 이루고 중국과 한국은 그러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는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는 “이 같은 일본의 역사 인식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 내 연구 목표였지만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일본 정체성의 근간과 관계돼 있습니다. 한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보지도 않으면서 ‘한국은 이런 나라다’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일본도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역사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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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3일 평양 남북공연 1만2000석 규모

    가수 강산에, 피아니스트 김광민 씨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양에서 열리는 우리 공연단에 합류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봄이 온다’와 관련해 북측과 협의한 결과를 27일 설명하며 “이 두 명이 새로 합류키로 했다”고 밝혔다. 가수 싸이는 평양 공연에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싸이와 함께하는 방안을 고민했는데 같이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싸이의 합류는 북측에서 수용하지 않았다는 설이 흘러나온 바 있다. 문체부에 따르면 4월 1일 오후 5시 반(북한 시간 오후 5시) 동평양대극장에서 우리 측 단독 공연이 2시간가량 열리고 3일 오후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 합동 공연이 2시간 동안 진행된다. 동평양대극장은 1500석, 류경정주영체육관은 1만2000석으로 규모에서 차이가 크다. 문체부 관계자는 “곡목, 사회자 등 세부사항은 여전히 협의 중”이라며 “방북 후에도 현지에서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평양 공연에 북측 고위 인사가 참석할지에 관해서는 “알려온 것이 없고, 보통 협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연 실황은 남북이 공동으로 제작해 녹화 방송될 예정이다. 장비는 조선중앙TV가 제공하고 촬영과 편집은 MBC가 맡는다. 세계태권도연맹(WT)이 참여하는 태권도 시범단 공연은 4월 1일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우리 측 태권도 시범단 단독 공연이 진행되며 4월 2일 평양 대극장에서 남북 합동 공연이 열린다. 예술단장은 문체부 장관이며 스태프와 지원 인력까지 190여 명 규모다. 기술진인 70여 명 규모의 선발대가 3월 29일 오전 김포공항에서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여객기 1대와 화물기 1대로 방북하고 예술단 본진은 31일 오전에 출발한다. 문체부 관계자는 “민간 전세기를 이용한다. 그에 따라 대북제재 조치와 관련한 협의를 관계국과 원활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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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암 송성용 선생의 삶과 예술’ 조명 학술대회 열려

    유학자이자 근현대 서예에 큰 족적을 남긴 강암 송성용 선생(1913∼1999·사진)을 조명한 학술대회 ‘강암 송성용 선생의 삶과 예술’이 24일 한국서예학회와 한국동양예술학회 주최로 열렸다. 송성용은 현대적 조형미를 갖춘 강암 서체를 만들고 문인화에서도 일가를 이룬 서예의 대가다. 1995년 동아일보가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 김병기 전북대 교수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강암의 삶과 서예, 그 의의와 세계화의 필요성’에서 “강암의 서예는 역사와 전통에 깊이 뿌리박은 한편 현대미 또한 충만하다”며 “한자문화권 전통의 ‘예(藝)’가 서양 현대미술의 강박에서 벗어나 21세기 새로운 세계 문예의 조류를 형성하는 데 그의 인품과 서예, 문인화가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는 강암의 시(詩) 세계를 조명한 발표에서 “감정을 푹 곰삭히고 순화해 걸러 낸 강암 선생의 시는 순수함 그 자체”라며 “전원의 은일(隱逸)을 지향하며 세상의 이해, 영욕과 거리를 두고자 했던 데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임태승 성균관대 교수는 강암이 특히 빼어났던 대나무 그림에 관해 “청일(淸逸)하고 고고(孤高)한 예술정신이 드러나 있다”고 분석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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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단 평양공연, 강산에-김광민 합류…싸이는 불참

    가수 강산에, 김광민 피아니스트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양에서 열리는 우리 공연단에 합류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봄이 온다’와 관련, 북측과 협의한 결과를 25일 설명하며 “이 두 명이 새로 합류키로 했다”고 밝혔다. 가수 싸이는 평양 공연에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싸이와 함께하는 방안을 고민했는데, 같이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싸이의 합류는 북측에서 수용하지 않았다는 설이 흘러나온 바 있다. 문체부에 따르면 4월 1일 오후 5시 반(북한 시간 오후 5시) 동평양대극장에서 우리 측 단독공연이 2시간가량 열리고, 3일 오후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 합동공연이 2시간 동안 진행된다. 3일 공연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오후 3, 4시 경으로 예상하고 있다. 2일에는 한 차례 합동 리허설을 한다. 동평양대극장은 1500석, 류경정주영체육관은 1만2000석으로 규모 차이가 크다. 문체부 관계자는 “곡목, 사회자 등은 세부사항은 여전히 협의 중”이라며 “방북 후에도 현지에서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평양 공연에 북측 고위 인사가 참석할지 여부에 관해서는 “알려온 것이 없고, 보통 협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연실황은 남북이 공동으로 제작해 녹화 방송될 예정이다. 장비는 조선중앙TV가 제공하고 촬영과 편집은 MBC가 맡는다. 세계태권도연맹(WT)이 참여하는 태권도 시범단 공연은 4월 1일에 평양 태권도 전당에서 우리측 태권도 시범단 단독 공연이 진행되며, 4월 2일 평양 대극장에서 남북 합동 공연이 열린다. 예술단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며, 스태프와 지원인력까지 190여 명 규모다. 20일 판문점에서 합의한 160여명 규모에서 태권도 시범단 20명 등이 더해졌다. 숙소는 평양 고려호텔이다. 기술진인 70여명 규모의 선발대가 3월 29일 오전 김포공항에서 서해직항로를 이용해 여객기 1대와 화물기 1대로 방북하고 예술단 본진은 31일 오전 출발한다. 문체부 관계자는 “민간 전세기를 이용한다. 그에 따라 대북제재 조치와 관련한 협의를 관계국과 원활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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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전쟁터에서는 왜 학살이 반복되는가

    “산 사람 없냐고, 다친 여자애가 목이 마르다고 물을 달라고 그래…. 시체 사이의 도구들을 가지러 가서 보니, 시체들이 뜯겨 있어. 귀가 잘려 나가고 볼이 파이고 어떤 시체는 여자 가슴에 총탄이 맞아서 피투성이고, 우리 어머니 얼굴도 귀가 잘려 나가고 볼의 살이 뜯겨 나갔더라고.” 1951년 4월 전북 순창군 쌍치면 운암리 뒷산의 숯구덩이에서 간신히 살아난 열 살 소년 설동용의 증언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총을 쏜 건 국군 11사단 20연대 2대대 군인들이었다. 쌍치면은 국군과 빨치산 간에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8중대장은 소대장과 분대장들에게 “적을 사살하면 귀를 끊어 오라”고 지시했다. 당시 숯구덩이에서 학살당한 마을 사람들은 비무장이었고, 국군에 해를 끼치지도 않았으며, 완력이 강한 젊은 남자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국군의 ‘적’이었다. 광복 이후부터 6·25전쟁까지 군경과 미군에 의해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례를 살피는 동시에 학살이 최근까지도 국가의 시민 사찰, 감시, 사상 지배와 같은 일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들여다본 책이다. 저자는 반복되는 대량학살이 전쟁의 목표이자 전투 수행의 본질이라고 봤다. 근대 국가의 정치가 이념과 종교, 인종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극단적인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 국가들이 다른 지역의 대량학살에 개입하지 않는 이유, 유엔의 대량학살 방지 협약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왜곡됐는지도 살폈다. 저자는 연세대 국학연구원에서 일하는 사회학자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조사한 이력이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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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미회담 실패땐 더 위험한 상황 닥쳐” 미어샤이머 美 시카고대 교수 특강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들을 갖고 있는데 북한이 왜 핵을 포기하겠는가?”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공격적 현실주의’로 유명한 국제정치이론가 존 미어샤이머 미국 시카고대 교수(71)는 20일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놨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이날 서울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열린 특별강연 ‘중국의 부상과 한미관계의 미래’에서 “핵 보유는 북한 관점에서는 합리적 선택”이라며 “김정은은 트럼프를 믿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무정부적인 국제 체제에서 국가는 다른 나라의 의도를 확실히 알 수 없기에 생존을 위해 힘의 극대화를 추구하기 마련이라는 자신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북-미 회담이 실패한다면 양국 관계가 악화되는 것뿐 아니라 정말 위험한 상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중국 역시 북한에 핵 포기를 압박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중국이 우려하는 건 북한의 도발적인 ‘레토릭(수사)’과 행동이 미국의 공격이나 일본의 핵무장을 자극하는 것뿐이라는 얘기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관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기 어렵다면서도 “북-미 긴장 완화를 위해 ‘스마트(smart)한’ 정책을 취했다”고 평가했다.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미국의 ‘코피 작전’(제한적 대북 선제타격)을 실행할 위험을 줄였다는 얘기다. “제한적 공격을 받았다고 주권국가가 반격하지 않는다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그러면 바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체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미국 정책입안자들이 (북한은 반격을 못 한다고) 오판하면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강대국은 지역 내 패권을 추구하고, 다른 지역에서도 패권국의 등장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날도 그는 부상하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사이에 언젠가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그는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중부 유럽에서 전쟁을 벌일 위험보다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안보 경쟁에 따라 동아시아가 전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 협력이 긴밀해지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반론에 관해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독일도 영국, 프랑스 등과 적극적으로 무역을 하는 등 경제 협력이 활발했다”며 “갈등이 벌어지면 안보 경쟁이 결국 경제 협력을 꺾게 된다”고 답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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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운동 교양서 2권 발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한말의병에서 독립군으로―후기의병’(홍영기 지음)과 ‘한국 근대 역사학의 성립과 발전’(류시현 지음) 등 독립운동 관련 교양서 2권을 최근 발간했다. ‘한말의병에서…’는 1907년 군대 해산부터 1910년 이후 의병이 독립군으로 전환되는 시기까지 지역별 의병활동을 분석했다. 저자는 후기에 속하는 이 시기 의병이 일제의 식민화 정책을 지연시키고 국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의 기초를 닦는 데 공헌했다고 밝혔다. 전기·중기 의병 활동을 분석한 지난해 책 ‘한말의병운동’의 후속 작이다. ‘한국 근대 역사학의…’는 조선 말부터 1940년대까지 한국 근대 역사학의 특징을 분석했다. 신채호, 문일평, 안재홍 등 일제강점기 대표적 역사학자들의 역사관도 정리했다. 저자는 한국 근대 역사학이 일제 식민 사학에 학문적 사상적으로 대결하는 방안이었고, 일제의 문화적 지배에 대응해 민족운동의 이념을 도출하려는 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두 책은 ‘주제별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시리즈의 일부다. 이 시리즈는 누구나 독립운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컬러 그림과 사진도 적지 않게 수록하고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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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운동 원인은 일제 무단통치 아닌 민족차별”

    한국역사연구회가 서울 종로구 덕성여대 종로캠퍼스에서 17일 개최한 학술대회 ‘3·1운동의 메타 역사, 3·1운동 연구사의 재검토’에서 3·1운동의 원인과 영향 등을 새롭게 조명한 주장들이 제기됐다. 도면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발표문 ‘3·1운동의 원인으로서의 무단통치론 재고’에서 3·1운동의 주요 원인으로 ‘민족적 차별’을 꼽았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6월 각 지역 일본 헌병대장·경무부장 연석회의가 제출하고 조선헌병대 사령부가 편찬한 ‘조선소요사건상황’에 그런 면모가 드러난다는 것. 각 도 단위로 ‘조선인의 불평과 희망사항’이 수집돼 있는데 ‘불평’으로 일본인이 신분 고하를 불문하고 조선인을 멸시하고, 모욕적으로 호칭하고, 차별대우하는 것, 각종 제도적 변화, 과중한 세금 등이 많았다. 도 교수는 “3·1운동의 원인은 식민지 근대가 만들어낸 사회경제적 부담과 민족적 차별”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3·1운동은 무단통치 또는 헌병경찰 정치와 경제적 수탈에 분노한 한민족이 민족자결주의와 고종의 사망 등을 계기로 결집해 일어났다는 인식이 유지돼 왔다. 도 교수는 “이 같은 인과론은 일제강점기 초기 한국 사회가 정체됐고, 일제가 토지 조사사업으로 막대한 토지를 가로챘다는 인식에 바탕에 두고 있다”며 “1990년대 이후 연구를 통해 토지조사 사업의 수탈성이 강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으므로 3·1운동 발발의 사회경제적 근본 원인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배성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1918년의 쌀값 폭등, 1918년 말∼1919년 초 스페인 독감의 유행도 민심 이반으로 3·1운동 발생에 단기적으로 영향을 주었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준형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일본의 인식 변화를 살폈다. 박 교수는 “1969년 동아일보사가 펴낸 ‘3·1운동 50주년 기념논집’은 논문 76편이 수록된 거대한 기획이자 기념비적인 연구 성과였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해 일본의 학술잡지 ‘시소(思想)’도 특집을 꾸렸는데, 여기서 사학자 와타나베 마나부는 ‘조선 민중을 관통해 온 일관된 사상’을 인정하면서 근대적 정신이 결여됐다는 일본의 3·1운동관을 비판했다”고 말했다. 한국역사연구회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 연구총서를 5권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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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好통/조종엽]해외한국학 조사, 이만하면 됐다?

    일본 왕실도서관인 궁내청(宮內廳) 서릉부(書陵部)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반출해간 조선왕실 도서가 엄청나다. 2012년 1205책이 환수됐지만 아직 얼마나 더 남아있는지 정확히 모를 정도다. 반면 교토대 부속도서관의 가와이 문고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의 조사로 그 전모가 거의 드러났다. 일본의 조선 경제사 학자인 가와이 히로타미(河合弘民·1873∼1918) 박사가 수집한 이 자료들의 가치는 기대한 대로였다. 지난해 확인된 19세기 후반 면주전(綿紬廛·육의전의 하나로 나라에 명주를 납품) 상업문서만 해도 그렇다. “조선은 상업을 천시한 탓인지 상인의 기록이 굉장히 부실합니다. 한데 이 면주전 문서들은 굉장히 방대하고 회계장부와 낱장 고문서가 함께 남아있어요. 이런 컬렉션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어디서도 찾기 어렵습니다. 면주전 문서는 상인 조직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됐는지, 우리가 모르는 상업사의 공백을 채워줄 겁니다.” 조선 상업사·재정사 전공자로 면주전 문서를 연구 중인 조영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도 “한마디로 가치가 굉장히 높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다. 본보가 보도한 선조가 임진왜란 때 마부에게 내린 공신 교서(13일자 A14면)를 비롯해 가치 있는 우리 고문서와 고서가 해외에 산재해 있다. 향후 한국학 연구의 보고(寶庫)라고 할 만하다. 해외한국학자료센터는 2008년부터 미국 버클리대 동아시아도서관, 일본 동양문고, 도쿄대 오구라 문고, 오사카 부립도서관 등을 조사하고 서지 목록, 해제, 디지털 이미지 등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해 왔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일본만 해도 와세다대, 도호쿠대 도서관, 야마구치 현립도서관, 도쿄대 아가와 문고를 비롯해 조선본의 목록만 있거나, 그마저도 없고 조사가 전혀 안 된 기관이 수십 곳이다. 그러나 올해 6월 이후로는 센터의 해외 조사가 어찌 될지 불투명하다. 이 사업을 포함해 10년 동안 진행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자료센터’ 사업 연장안이 지난해 정부 예산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센터가 발로 뛰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공개하는 데 한 해 3억 원이 좀 넘게 들었다. 이공계 연구에서는 하나당 10억 원이 넘는 장비가 즐비하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 가운데 인문사회부문이 2%도 안 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반백년을 내다보고 해야 할 일도 ‘10년이면 할 만큼 한 것 아닌가’라는 근거 부족한 판단 탓에 중단되는 듯싶어 안타까울 뿐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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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너는 달아나지 않고 끝까지 말고삐 잡았구나”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몽진할 때 자신의 말고삐를 잡은 마부에게 내린 보물급 공신교서(功臣敎書)가 일본에서 처음 발견됐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센터장 정우봉 국문학과 교수)는 지난달 18∼24일 일본 교토대 부속도서관 서고를 조사해 마부 오연(吳連)에게 내린 호성공신(扈聖功臣)교서를 비롯한 유물과 인쇄본이 극히 적은 경오자(庚午字·안평대군의 글씨로 주조한 금속활자) 간행 서적 등 귀중 고문헌 약 500책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호성공신은 선조가 자신을 의주까지 호종하는 공을 세운 86명에게 1604년 내린 것이다. 공신교서는 국내에 9개가 남아 있는데, 그중 6개가 보물로 지정돼 있다. 기존 교서는 문신(8개)과 의관(1개)의 것뿐이어서 ‘이마(理馬, 사복시·司僕寺에서 궁중의 말을 관리하던 잡직)’가 받은 공신교서가 발견된 것은 ‘오연교서’가 처음이다. 이번에 발견된 교서는 “조정 안팎의 신하와 백성들이 대부분 짐승이 달아나듯 새가 숨어버리듯 하였는데, 너는 하례(下隷·낮은 신분)로서 임금을 뒤로하지 않고 어가와 세자의 출정에 말고삐를 짊어지는 공을 이루었고”라며 오연이 낮은 신분임에도 충성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오연은 석성군(石城君)에 봉해졌다. ‘용사호종록(龍蛇扈從錄)’은 그가 “부여(扶餘)의 정병(正兵)으로서 어가를 따랐다”고 기록했다. 박영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정병은 정규군으로, 오연은 양민 출신으로 군대에 갔다가 선조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선조의 공신 책봉은 형평성 면에서 오늘날까지도 비판을 받는다. 전투에서 목숨 바쳐 싸운 장수 등에게 내린 ‘선무(宣武)공신’이 18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주요 장수와 의병장이 제외된 탓이다. 반면 선조는 ‘호성공신’을 대규모로 책봉해 자신을 보좌한 이들은 마부까지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고 챙겼다. 그러나 당대 사신(史臣)이 호성공신을 “미천한 복례(僕隷·종)들이 20여 명이나 됐다”고 비판하며 이마를 비롯한 하층민의 책봉에 마뜩잖아 한 시각은 신분 차별적이라는 평가다. ‘비운의 활자’ 경오자로 인쇄된 ‘역대병요(歷代兵要)’ 유일본도 확인됐다. 당대 명필이었던 안평대군의 서체를 자본(字本)으로 만든 경오자는 당시에도 “책의 인쇄에 으뜸인 활자”로 평가됐지만 불과 6년(1450∼1456년)만 사용됐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뒤 안평대군이 썼다는 이유로 녹여버리고 새 활자를 만든 탓이다. 경오자로 인쇄된 서적은 국내외에 6종만 남아 있다. 최다 인명이 기록된 19세기 중엽의 ‘만성보(萬姓譜·온갖 성씨의 족보에서 큰 줄기를 추려 모은 책)’ 40책 역시 발견됐다. 조선 후기에 작성됐으며 딸과 사위까지 포함했다. 조사에 참여한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장은 “기존 만성보보다 3, 4배 방대한 분량”이라며 “과거 합격 이력, 관직, 혼맥 등 조선 지배 세력의 인적 네트워크를 파악할 수 있는 최대 ‘인물 뱅크’다”라고 말했다. 세종의 일곱 번째 아들 평원대군(平原大君·1427∼1445)의 장서인 ‘근행지당(謹行之堂)’이 찍힌 ‘대학연의(大學衍義)’도 포함됐다. 이번 조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자료센터 사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정우봉 교수는 “한중연의 이 사업은 10년간 진행됐으나 연장안이 정부 예산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올해 6월을 마지막으로 해외 조사도 잠정 중단된다”며 “한국학 연구의 보고(寶庫)인 해외 자료 조사가 장기적 안목으로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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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우주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지식들

    우주에 관해 흥미로운 지식들이 잘 정리된 책이다. 학자들이 관측하는 하늘은 자연사박물관 벽면에 과거의 모습을 시대별로 나열한 그림과 같다. 박물관이 화석 등을 바탕으로 상상해 그렸다면, 우주는 진짜 과거의 모습을 드러낸다.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시간만큼, 먼 별들은 먼 과거를, 가까운 별들은 가까운 과거를 보여준다. 관측 대상에는 ‘마이크로파 우주 배경 복사’도 있다. 빅뱅 이후 38만 년 동안 우주는 물질과 에너지의 밀도가 아주 높은 수프와 같았다. 관찰자가 있었다고 해도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우주 온도가 3000K(절대온도) 아래로 떨어지자 광자의 움직임을 방해하던 전자들이 주위의 양성자에 붙잡혔고, 광자는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광자들은 우주 팽창에 따라 에너지를 잃었지만 여전히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이것이 우주 배경 복사다. 과학자들은 최근 배경 복사 분포지도를 세밀하게 만들었다. 이 지도는 우주 초기 물질 분포의 구조를 보여준다. 은하와 은하 사이는 그저 텅 빈 공간일까? 별의 수가 적은 왜소은하(dwarf galaxy), 은하를 벗어나 폭주하는 별, 고온 기체, 기체 구름, 우주선(線) 입자, 암흑 물질 등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다. 주요 관측 대상도 아닌, 은하에서 멀리 떨어진 하늘에서 초신성 폭발이 적지 않게 관측되는 건 은하의 중력을 벗어나 떠도는 별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천문학자인 저자는 국내에도 방영한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내셔널지오그래픽) 진행자이기도 했다. 난해한 주제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풀어가는 정제된 서술, 위트 있는 문장, 천문학이 인류에게 주는 의미에 대한 통찰을 보면 저자가 왜 널리 사랑받는 학자인지 알 수 있다. 원로 천문학자의 번역도 매끄럽다. 원제는 ‘Astrophysics for People in a Hurry’.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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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군인들 일상 보니… 생계 위해 품팔이도

    임진왜란 도중 군영(軍營) 훈련도감이 만들어져 서울 수비를 맡았고, 병력은 17세기 후반∼19세기 5000명가량으로 유지했다. 이들의 훈련 장소는 어디였을까? 군사들은 주로 노량진 모래사장이나 서대문 밖 모화관 트인 곳에서 한 달에 세 번 진법 훈련을 했다. 이런 이야기는 조선 후기 약 300년간 훈련도감에서 수발한 문서들을 필사한 ‘훈국등록(訓局謄錄)’에 나온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역주 훈국등록’ 1(사진), 2권과 이를 쉽게 풀어낸 ‘인정사정, 조선 군대 생활사’, ‘조선 최정예 군대의 탄생’을 최근 각각 펴냈다. 책에 따르면 훈련도감 군병들은 급료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채소 농사를 지어 팔거나 한강변에서 하역 등 품팔이 노동을 했다. 도망병도 끊이지 않았다. 1593∼1613년에 1644명이 도망쳤는데, 504명만 다시 잡혔다. 책에는 이 밖에 훈련도감 군병들의 호랑이 포획, 도성 축조, 동전 주조 등 활약상과 함께 총기 사고, 군법 집행, 군복의 변천, 군기(軍旗)와 군대 음악에 관한 이야기 등이 함께 담겼다. ‘역주 훈국등록’은 앞으로 20권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조선시대 국왕 호위와 궁궐 수비, 도성 경비를 맡았던 중앙 군영에서 만든 군영등록 569책을 소장하고 있다”며 “조선 후기 생활사, 사회사를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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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후기 군사들, 생계 어려워 농사-품팔이도…도망병 끊이지 않아

    임진왜란 도중 군영(軍營) 훈련도감이 만들어져 서울 수비를 맡았고, 병력은 17세기 후반~19세기 5000명가량으로 유지했다. 이들의 훈련 장소는 어디였을까? 군사들은 주로 노량진 모래사장이나 서대문 밖 모화관 트인 곳에서 한달에 세 번 진법 훈련을 했다. 이런 이야기는 조선 후기 약 300년간 훈련도감에서 수발한 문서들을 필사한 ‘훈국등록(訓局謄錄)’에 나온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역주 훈국등록’ 1, 2권과 이를 쉽게 풀어 낸 ‘인정사정, 조선 군대 생활사’, ‘조선 최정예 군대의 탄생’을 최근 각각 펴냈다. 책에 따르면 훈련도감 군병들은 급료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채소 농사를 지어 팔거나 한강변에서 하역 등 품팔이 노동을 했다. 도망병도 끊이지 않았다. 1593~1613년 동안만 1644명이 도망쳤는데, 504명만 다시 잡혔다. 책에는 이밖에 훈련도감 군병들의 호랑이 포획, 도성 축조, 동전 주조 등 활약상과 함께 총기 사고, 군법 집행, 군복의 변천, 군기(軍旗)와 군대 음악에 관한 이야기 등이 함께 담겼다. ‘역주 훈국등록’은 앞으로 20권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조선시대 국왕 호위와 궁궐 수비, 도성 경비를 맡았던 중앙 군영에서 만든 군영등록 569책을 소장하고 있다”며 “조선 후기 생활사, 사회사를 살피는데 귀중한 자료”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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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이야기 지닌 가게, 가슴 설레는 골목

    사람들은 종이책을 어디에서 살까? 2017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시내 대형서점’(38.5%), ‘인터넷 서점·쇼핑몰’(23.7%), ‘동네 소형서점’(10.6%) 순으로 나타났다(성인 기준). 동네 서점을 이용하는 이들이 1할가량에 불과한 것이다. 1997년 이후 20년 동안 국내에서 약 3000개의 서점이 문을 닫았다는 또 다른 조사 결과도 있다. 문 닫은 서점은 거의 전부가 동네 서점이다. 일본 교토의 구석진 동네에 있는 중형 서점 게이분샤 이치조지 지점을 지역 명물로 만든 호리베 아쓰시는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민음사)에서 “거리가 살아야 점포도 살 수 있다”고 했다. 점포들이 ‘스토리’를 개발하는 동시에 여러 가게가 연계해 ‘거리의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책은 “나는 샛길이 많은 사회일수록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을 인용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가진 가게가 나타날까’ 하는 기대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골목을 걷고 싶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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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짧아서 중독성 매력… 자꾸 눈이 가는 ‘숏폼 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연플리)’ 시즌3이 올여름 제작된다. 이 소식에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연알못’(연플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40대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연플리’는 지난해 3월 모바일과 웹으로 시즌1이 공개돼 청소년과 젊은층에 인기를 모으며 에피소드 하나가 무려 2000만 뷰를 기록했던 드라마다. 10대들은 이미 유튜브를 검색 포털 애플리케이션(앱)보다 많이 쓰는 상황(닐슨코리아클릭,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사용 현황 조사). 최근 모바일 콘텐츠 시장이 이미지와 텍스트에서 동영상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가운데 그 핵심 중 하나인 드라마 장르를 들여다봤다.○ ‘숏폼’ 세대 맞춤 ‘숏폼’ 드라마 “‘웹드라마’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 취재 중 한 모바일 드라마 제작업체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5, 6년 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웹드라마’는 이름 그대로 웹에서 주로 유통됐고, 아이돌이 출연하거나 기업 홍보 목적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내용과 제작 방식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정확한 시장 통계는 없지만 과거 ‘웹드라마’로 불렸던 콘텐츠는 근래에는 웹이 아니라 페이스북 페이지나 유튜브 앱을 비롯한 모바일에서 주로 소비된다. 길이도 확연히 짧아져 ‘숏폼’(짧은 형식) 콘텐츠로 불리기도 한다. 과거 웹드라마의 에피소드 하나가 약 10∼15분이었던 데 비해 ‘숏폼’ 콘텐츠는 1∼5분가량.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보거나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잠깐 동안 보기 딱 좋은 길이다.○ “10초 안에 눈길 잡아야” 형식 변화에 따라 내용도 진화했다. 과거 웹드라마는 기존 드라마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어 붙이기만 하면 TV 단막극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전지적 짝사랑 시점’ 등을 만든 와이낫미디어 이민석 대표는 “개인 크리에이터가 만드는 콘텐츠가 유행한 이후 영상의 문법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짝사랑, 시작도 끝도 나 혼자”(전지적 짝사랑 시점, ^티비), “헤어지고 친구로 남으려는 구 남친”(‘오구실’, 72초TV), “대학 신입생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연애플레이리스트)…. 숏폼 콘텐츠는 제목에 에피소드의 주제가 다 담길 정도로 서사가 단선적이다. 한마디로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다. 기성세대의 눈엔 ‘만들다 만 것’같이 보일 수 있지만 젊은 세대는 제목만 보고 클릭했다가 처음부터 ‘정주행’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이는 짧은 길이에도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후킹 요소’를 담기 때문. 연애플레이리스트 작가 겸 제작자인 이슬 씨는 “모바일 사용자는 터치 한 번으로 다른 앱으로 이탈할 수 있다. 보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건 처음 10초”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애 소재라면 ‘심쿵 포인트’가 필수다. 시청자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섬세하고 촘촘하게 감정을 짜 넣어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제작자들은 입을 모았다.○ 친구 태그하고 공유하며 모바일 놀이 시청자를 모으는 것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입소문이다. 이용자들은 콘텐츠를 자신의 피드에 ‘공유’하거나 ‘내 이야기’ 혹은 ‘네 이야기’라며 댓글로 서로의 이름을 태그(SNS 친구를 소환하는 방식)한다. 이 덕에 소규모 제작사도 성공 가능성이 커졌다. 과거 대형 포털의 영상 플랫폼에서 메인 화면에 배치돼야 조회수가 보장됐던 데에서 사뭇 달라진 현상이다. 실제 현재 유행하는 숏폼 콘텐츠를 제작하는 주요 회사들은 딩고티비, 72초TV, 와이낫미디어처럼 3년 미만의 ‘젊은’ 회사인 경우가 많다. 72초TV 이윤미 매니저는 “대학을 갓 졸업한 PD들이 기획해 성공시킨 작품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숏폼’ 드라마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연애나 직장 생활 고민이 주요 소재였지만 최근에는 스릴러 ‘호러 딜리버리 서비스’(72초TV)가 등장하는 등 장르가 확대되고 있다. 연플리 제작자 이슬 씨는 “형태와 포맷, 주제의 확장성이 숏폼 콘텐츠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조윤경 yunique@donga.com·조종엽 기자}

    • 20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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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드라마’라고 부르지 마…‘숏폼’ 세대 맞춤 ‘숏폼’ 드라마 뜬다

    ‘연애플레이리스트(연플리)’ 시즌3이 올 여름 제작된다. 이 소식에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연알못’(연플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40대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연플리’는 지난해 3월 모바일과 웹으로 시즌1이 공개돼 청소년과 젊은 층에 인기를 모으며 에피소드 하나가 무려 2000만 뷰를 기록했던 드라마다. 10대들은 이미 유튜브를 검색 포털 애플리케이션보다 많이 쓰는 상황(닐슨코리아클릭,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사용 현황 조사). 최근 모바일 콘텐츠 시장이 이미지와 텍스트에서 동영상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가운데 그 핵심 중 하나인 드라마 장르를 들여다봤다. ●‘숏폼’ 세대 맞춤 ‘숏폼’ 드라마 “‘웹드라마’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 취재 중 한 모바일 드라마 제작업체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5~6년 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웹드라마’는 이름 그대로 웹에서 주로 유통됐고, 아이돌이 출연하거나 기업 홍보 목적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내용과 제작 방식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정확한 시장 통계는 없지만 과거 ‘웹드라마’로 불렸던 콘텐츠는 근래에는 웹이 아니라 페이스북 페이지나 유튜브 앱을 비롯한 모바일에서 주로 소비된다. 길이도 확연히 짧아져 ‘숏폼’(짧은 형식) 콘텐츠로 불리기도 한다. 과거 웹드라마의 에피소드 하나가 약 10~15분이었던데 비해 ‘숏폼’ 콘텐츠는 1~5분가량.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보거나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잠깐 동안 보기 딱 좋은 길이다. ●“10초 안에 눈길 잡아야” 형식 변화에 따라 내용도 진화했다. 과거 웹드라마는 기존 드라마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어 붙이기만 하면 TV 단막극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전지적 짝사랑 시점’ 등을 만든 와이낫미디어 이민석 대표는 “개인 크리에이터가 만드는 콘텐츠가 유행한 이후 영상의 문법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짝사랑, 시작도 끝도 나 혼자”(전지적 짝사랑 시점, 콕 티비), “헤어지고 친구로 남으려는 구 남친”(‘오구실’, 72초TV), “대학 신입생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연애플레이리스트)…. 숏폼 콘텐츠는 제목에 에피소드의 주제가 다 담길 정도로 서사가 단선적이다. 한마디로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다. 기성세대의 눈엔 ‘만들다 만 것 같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젊은 세대는 제목만 보고 클릭 했다가 처음부터 ‘정주행’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이는 짧은 길이에도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후킹 요소’를 담기 때문. 연애플레이리스트 작가 겸 제작자인 이슬 씨는 “모바일 사용자는 터치 한번으로 다른 앱으로 이탈할 수 있다. 보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건 처음 10초”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애 소재라면 ‘심쿵 포인트’가 필수다. 시청자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섬세하고 촘촘하게 감정을 짜 넣어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제작자들은 입을 모았다. ●친구 태그하고 공유하며 모바일 놀이 시청자를 모으는 것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입소문이다. 이용자들은 콘텐츠를 자신의 피드에 ‘공유’하거나 ‘내 이야기’혹은 ‘네 이야기’라며 댓글로 서로의 이름을 태그(SNS 친구를 소환하는 방식)한다. 이 덕에 소규모 제작사도 성공 가능성이 커졌다. 과거 대형 포털의 영상 플랫폼에서 메인 화면에 배치돼야 조회수가 보장됐던 데에서 사뭇 달라진 현상이다. 실제 현재 유행하는 숏폼 콘텐츠를 제작하는 주요 회사들은 딩고티비, 72초TV, 와이낫미디어처럼 3년 미만의 ‘젊은’ 회사인 경우가 많다. 72초TV 이윤미 매니저는 “대학을 갓 졸업한 PD들이 기획해 성공시킨 작품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숏폼’ 드라마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연애나 직장 생활 고민이 주요 소재였지만 최근에는 스릴러 ‘호러 딜리버리 서비스’(72초TV)가 등장하는 등 장르가 확대되고 있다. 연플리 제작자 이슬 씨는 “형태와 포맷, 주제의 확장성이 숏폼 콘텐츠의 장점”이라고 말했다.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8-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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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문 단편 가치 무궁무진… 문화예술로 재창조되길”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75)가 45년 전 스승과 함께 한문 단편의 문학적 가치를 처음으로 조명했던 책 ‘이조한문단편집’을 제자들과 다듬어 다시 발간했다. 임 교수가 스승인 고 이우성 성균관대 명예교수(전 민족문화추진회 회장)와 공동 연구해 냈던 책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연구실에서 만난 임 교수는 “이우성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한문학 연구의 길로 들어서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 교수의 대학 제자도 아니고, 논문 지도를 받지도 않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65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 교수는 서울대 국문과 졸업을 앞두고 한문학을 연구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앞이 막막했다. 당시 대학에 한문학은 전공이 없었고, 우리 문학으로 취급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학과 한문학에 명성이 높던 이 교수님의 연구실을 불쑥 찾아갔지요. 우리 문학 유산으로 굉장한 가치가 있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깊이 분석하면 훌륭한 학자로 대성할 것이라고 용기와 자극을 주셨지요. 연구실에서 나와서 명륜동 길을 함께 걸으면서 시내버스를 탈 때까지 정말 많은 말씀을 해주시던 기억이 납니다.” 스승의 도움은 말로 끝나지 않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온 임 교수에게 이 교수가 고서적 복사물을 한 무더기 내밀었다. 일본 국회도서관 동양문고에서 발견한 우리 한문 단편 원전이었다. 연구 과제를 던진 것이다. 이후 임 교수는 전국의 도서관을 돌아다니면서 한문 단편을 수집했다. 복사시설을 갖춘 도서관이 거의 없던 시절이어서 원전을 손으로 일일이 베꼈다. “제가 초역을 해서 서울 미아리의 교수님 댁으로 가져가면 수정을 해 주셨지요. 전형적인 학자의 집이었지요. 묵향과 책 냄새가 댁 안에 가득하던 것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그렇게 ‘이조한문단편집’ 초판이 1973년 나왔다. 이 책과 후속 연구를 통해 실체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던 한문 단편이 우리 문학사에서 사실적인 서사문학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했다. “당대 현실을 리얼하게 반영한 한문 단편은 16세기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해 18, 19세기 야담이라는 이름으로 꽃을 피웁니다. 20세기 들어서도 창작성은 떨어지지만 옛것을 통속적으로 다시 살린 ‘야담’이라는 대중잡지가 있었지요.” 임 교수는 우리 근대 소설이 서구와 달리 단편이 중심이 되는 특수함을 가지게 된 것도 한문 단편에서 연원한다고 설명했다. ‘장길산’이나 ‘객주’와 같은 장편이 탄생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는 것. 임 교수는 최근 5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독회를 하면서 문장을 요즘의 언어 감각에 맞게 고치고, 그동안 새로 드러난 작자를 명기하는 등 연구 성과를 반영해 4권으로 새로 냈다. 한문 단편은 오늘날에도 생명력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용재총화’에 나오는 금강산 유람 이야기 ‘관동만유(關東漫遊)’는 2016년 연극 ‘불역쾌재’(장유승 연출)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임 교수에게 수많은 단편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아 달라고 했다. “양반에 대한 중인의 역사적 승리를 상징하는 이야기 ‘김령(金令)’과 박진감 넘치는 군도(群盜)의 이야기 ‘월출도(月出島)’입니다. 잠재 가치가 무궁무진한 한문 단편이 현대적인 문화예술로 재창조되기를 기대합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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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前회장 化汀 김병관 선생 10주기 추모식… “시대의 고비마다, 험한 항로 헤쳐간 조타수”

    동아일보사 사장과 회장, 명예회장과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을 지낸 화정 김병관(化汀 金炳琯) 선생의 10주기 추모식이 23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묘소에서 엄수됐다. 추모식은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사장을 비롯한 유족과 이용훈 인촌기념회 이사장(전 대법원장)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묵념, 약력 보고, 추모사 순으로 진행됐다. 화정 선생의 기일은 25일이지만 주말과 겹쳐 이틀 앞당겨 열렸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추모사에서 “동아일보는 고비마다 시대의 나침반이었고, 화정은 험한 항로를 헤쳐 가는 조타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며 “동아 100년에 분명한 획을 그었다”고 말했다. 남시욱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이사장은 “화정 선생이 발행인이었던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동아일보가 보도해 민주화의 불길을 붙였다”며 “그때 화정 선생의 투철한 신념이 흔들렸더라면 우리는 역사적 소임을 다하지 못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남 이사장은 1987년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이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화정 선생은 고려대 대운동장을 지하주차장과 중앙광장으로 바꾸고 최고 수준의 스포츠 시설과 이공계 인프라를 확충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며 “고려사이버대 설립 등 미래 온라인 교육을 선도한 혜안도 놀랍기만 하다”고 말했다. 김재호 사장은 이날 추모식에서 ‘언론 교육 문화에 바친 열정―김병관을 생각한다’는 제목의 추모집을 봉헌했다. 추모집에는 화정 선생과 인연을 맺고 교분을 쌓은 지인 64명이 선생에 관해 쓴 글이 담겼다. 안숙선 명창은 생전에 국악 진흥에 깊은 관심을 쏟아 온 화정 선생을 회고하며 판소리 ‘춘향가’ 중 ‘하루가고 이틀가고’ 대목을 추모창으로 불렀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조화를 보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참석자 명단 (가나다순)▽정·관계김진호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방형남 국립4·19민주묘지관리소장, 오정소 전 국가보훈처장,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이상혁 변호사, 이진강 전 대한변협 회장, 장성원 전 국회의원, 정성진 대법원 양형위원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학계·교육계김병수 전 연세대 총장, 김병준 강남대 교수, 김병휘 한양대 명예교수, 김재천 전 고려중앙학원 사무국장, 김종필 중앙고 교장, 김학준 인천대 이사장, 박명식 고려중앙학원 이사, 송창범 고대부중 교감, 이용균 중앙고 교감, 이재호 동신대 교수, 이주현 고대부중 교장, 이홍우 상명대 석좌교수, 정구종 동서대 석좌교수,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 허도영 고대부고 교장, 황호택 서울시립대 교수 <고려대> 김병철 김정배 어윤대 이기수 전 총장, 공정식 관리처장, 김규혁 생명과학대학장, 김동환 그린스쿨대학원장, 김성철 도서관장, 김영준 사무처장, 김재욱 기획예산처장, 명순구 법과대학장, 박길성 교육부총장, 박종웅 의무기획처장, 변동을 전 의료원 관리부장, 서성규 기획처장, 안정오 세종부총장, 오상철 연구교학처장, 유병현 대외협력처장, 윤성택 이과대학장, 이경호 정보전산처장, 이관영 연구부총장, 이기성 총무처장, 이기형 의무부총장, 이원규 정보대학장, 이재학 학생처장, 임상호 대학원장, 장동식 교수, 정진택 공과대학장, 조대엽 노동대학원장, 진서훈 입학홍보처장, 최종택 교학처장, 한금선 간호대학장, 현진해 전 의무부총장 <고려사이버대> 김진성 총장, 김원희 총무처장, 나홍석 창의공학계열부장, 박연정 교학처장, 염철현 인문사회계열부장, 이민영 입학대외처장, 이의길 연구개발처장▽경제계권이상 전 경방 감사, 김명하 김앤에이엘 회장, 김상영 CJ 상근고문, 김선휘 삼양염업 고문,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 김영 코나딥코리아 대표, 김영로 전 SDI 사장, 김준 경방 회장, 김한 JB금융지주 회장, 박진오 비젼세무회계법인 대표, 안병모 유창건축사사무소 사장, 안병지 수창양행 사장,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이강 리앤다이렉트 대표, 이동영 수창양행 고문, 이병연 세화애드컴 대표▽언론·문화·체육계강하구 전 동아PDS 대표, 고우석 전 동아일보 출판영업국장, 권혁순 전 동아프린테크 사장, 김갑수 동아일보 수도권상조회장, 김기경 한국오리엔티어링연맹 명예회장, 김달수 울산김씨대종회장, 김두곤 전 동아일보 총무국장, 김병건 동아꿈나무재단 이사장, 김복수 전 동아일보 관리국 부국장, 김상준 울산김씨대종회 부회장, 김은 인촌기념회 이사, 김일동 동우회 이사, 김정웅 전 동아일보 사업국장, 김종심 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김종완 전 국민체육진흥공단 상무이사,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창혁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김태령 일민미술관 이사장, 김태선 동우회 명예회장, 노재성 전 국민일보 부사장, 노한성 전 동아일보 광고국장, 박문두 동우회 이사, 박종섭 동아일보 경기상조회장, 박찬종 중앙중고 교우회장, 박충서 동아꿈나무재단 이사, 배인준 EBS 감사, 성낙오 전 영남일보 사장, 송대근 전 스포츠동아 대표, 신근철 동우회 이사, 심규선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양철화 전 동아일보 관리국장, 여영무 뉴스앤피플 대표, 오명 전 동아일보 회장, 오명철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윤미용 전 국악방송 이사장, 이규민 한국시장경제포럼 운영위원장, 이대훈 전 동아일보 이사, 이두환 전 동아일보 출판영업국장, 이명득 전 동아일보 시설본부 국장, 이연택 대한체육회 상임고문, 이종세 한국체육언론인회장, 이채주 전 화정평화재단 이사장, 이현락 전 경기일보 사장, 임연철 전 국립극장장, 전만길 전 대한매일신보 사장, 전진우 전 동아일보 대기자, 정준기 전 동아일보 광고국장, 조강환 동우회장, 조병조 전 프레컴 대표, 조천용 동우회 이사, 최규철 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최맹호 전 동아일보 부사장, 최명우 안전신문 주필, 허승호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 홍공선 동우회 이사, 홍성훈 동아꿈나무재단 이사, 홍인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황재홍 전 한국방송광고공사 감사}

    • 2018-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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