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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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16~2025-12-16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말러 교향곡 6번 악장순서, 부인 마음대로 바꿨나? 의심 이유는…

    1906년 5월, 오스트리아 제국 빈 국립오페라극장 감독이자 작곡가인 구스타프 말러는 자신의 교향곡 6번 초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행진곡처럼 시작하는 첫 악장, 역시 쿵쿵거리는 소리로 시작하는 두 번째 스케르초(빠른 춤곡) 악장, 느린(안단테) 세 번째 악장, 위협적인 느낌이 드는 긴 네 번째 악장으로 구성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리허설 도중 말러는 마음을 바꿉니다. “2악장과 3악장 순서를 바꿔야겠어요. 안단테 악장을 두 번째로, 그 다음에 스케르초로 갑시다!” 작품은 그가 바꾼 대로 공연되었습니다. 말러는 악보 출판사에도 ‘바꾼 순서대로 악보를 출판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5년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말러는 두 차례 더 이 작품을 지휘했고 그때마다 안단테 악장을 스케르초 앞에 배치했습니다. 그의 생전에 다른 지휘자가 이 작품을 지휘한 콘서트도 세 번 있었지만, 역시 순서는 같았습니다. 연주 순서가 다시 바뀐 것은 말러가 죽고 8년만인 1919년이었습니다. 말러의 부인이었던 알마가 말러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지휘자 빌렘 멩겔베르크에게 편지를 보내 “스케르초가 먼저, 느린 악장이 그 다음에 와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 주장이 말러의 생전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 멩겔베르크는 연주 순서의 ‘수정’에 앞장섰고, 이후 출판된 악보의 악장 순서도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알마가 ‘정직하지 않은 여인’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남편이 죽은 뒤 알마는 말러의 삶을 정리한 회상록을 펴냈지만 수많은 지인과 관련자들이 “이기적이고 편협한 시각에서 말러의 삶을 왜곡했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1997년에야 출간된 알마의 일기장은 그에 대한 세상의 의심을 더욱 굳게 만들었습니다. 알마가 회상록에 쓴 얘기들이 일기와도 부합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15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박영민 지휘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6번을 연주합니다. 말러 생전 연주된 순서대로 두 번째 악장을 안단테, 세 번째 악장을 스케르초로 연주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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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난민들의 옹호자, 지휘자 피셰르 이반

    1989년 8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서독 대사관에는 동독 난민 400여 명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동구권을 휩쓴 개방의 물결 속에서 서방으로 망명하려 했으나 넘어가지 못하고 헝가리에서 발이 묶인 것입니다.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의 상임지휘자 피셰르 이반(사진)이 이 난민들을 BFO 콘서트에 초대했습니다. 독일 작곡가인 베토벤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당초 예정되어 있던 콘서트였습니다. “우리는 발코니석 표를 파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난민들을 초대하자고 했습니다. 그 나라의 작곡가 베토벤의 곡으로 꾸민 연주회니까요. 서독의 외교관이 내 방으로 와서는 ‘난민들에게 내일 일을 말해주는 게 얼마나 멋진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8월 18일이었습니다. 음악회가 끝나고 나서 난민들은 다음 날 오스트리아와 접한 국경으로 소풍을 가기로 했습니다. 19일 이들이 국경 옆에 도달하자 헝가리 정부는 담을 열었고 동독 난민들은 오스트리아로 넘어갔습니다. BBC 라디오의 음악평론가 톰 서비스가 쓴 책 ‘마에스트로의 리허설’(장호연 옮김·아트북스)에 나온 얘기입니다. 서방으로 가는 국경이 열리자 동독 정부도 11월에 여행 자유화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고, 그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음악이 간접적으로나마 역사 발전에 기여한 사례입니다. 사반세기가 지나 이달 5일, 피셰르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BFO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연주 시작 전, 그는 마이크를 잡고 헝가리가 중동 난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정책을 철폐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객석에는 그가 초청한 시리아 난민들도 있었습니다. 관객들은 따뜻한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이날 콘서트가 열리기 전 난민을 태운 헝가리 버스가 처음 오스트리아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한 일이지만 앞으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난민을 계속 조건 없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합니다. 베토벤은 교향곡 9번 ‘합창’에서 실러의 시를 인용해 “관습이 엄중히 갈라놓았던 것을 기쁨의 마법이 한데 묶어, 온 인류는 하나가 되노라”라고 노래했습니다. 베토벤과 실러의 숭고한 이상이, 베토벤과 실러의 나라인 독일과 베토벤의 활동무대였던 오스트리아에서 실현되기를 소망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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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이국의 팜 파탈은 ‘반음계’를 좋아해

    피아노의 흰 건반을 차례로 쳐봅니다. 도-시-라-솔-파-미-레-도. 아무 리듬이나 붙여도 제법 ‘노래’ 같습니다. 이번에는 검은 건반까지 다 쳐봅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노래 가락 같지는 않습니다. 물컵에 물 따르는 소리 같다고 할까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한화생명과 함께하는 11시 콘서트’에서는 메조소프라노 추희명이 최승한 지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모차르트와 생상스 등의 오페라 아리아를 노래합니다. 제가 주목한 노래는 생상스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 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그리고 비제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였습니다. 두 노래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프랑스 작곡가가 쓴 오페라 아리아라는 점, 두 노래를 부르는 배역이 모두 남자를 꾀어 몰락시키는 이른바 ‘팜 파탈(femme fatale)’이라는 점, 그리고 두 노래 모두 반음씩 아래로 내려가는 ‘반음계(半音階)적 하행(下行)음형’이 있다는 점입니다. 두 작곡가가 활동한 낭만주의 시대에 반음계가 계속 이어지는 선율은 널리 쓰이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의 민속음악에서도 반음계 선율은 잘 쓰이지 않습니다. 왜 두 작곡가는 반음씩 내려가는 선율을 썼을까요. 혹 두 여주인공이 팜 파탈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삼손과 델릴라’에서는 남녀가 한 방에 있을 때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유혹하는 장면이고, ‘카르멘’에서는 거리에서 집시 여자가 남자의 시선을 끌어보려 시도하는 장면입니다. ‘삼손과 델릴라’의 델릴라는 구약성경 속 이스라엘인인 삼손을 유혹하는 이교도 블레셋 여성이고, ‘카르멘’의 타이틀 롤은 스페인의 집시입니다. ‘유혹’과 ‘이국적’이라는 점에서도 두 작품은 공통된 코드를 갖고 있습니다. 이제 피아노 앞에 다시 앉아 ‘도’부터 건반을 따라 반음씩 내려가며 쳐봅니다. 친숙하다기보다는 이국적인 느낌, 그리고 솔직하다기보다는 마음을 숨기는 듯하면서 고혹적인 느낌이 듭니다. 누구도 작곡 교본에 쓰지 않았지만 무의식 속에 공유하게 되는 느낌. 바로 관습의 힘이자 전통의 힘이 아닐 수 없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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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파야가 피아노로 모방한 스페인 기타

    “뚜두둥∼.” 눈을 감고 리드미컬한 악기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분명 피아노 소리입니다. 그런데 계속 듣고 있으면 마치 누군가 거대한 기타를 치고 있는 듯합니다. 이상하지는 않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스페인 기타리스트들의 연주를 그대로 모방해 피아노로 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마누엘 데 파야가 쓴 ‘일곱 곡의 스페인 민요’(1914년) 반주부입니다. 원래는 성악가가 노래하도록 돼 있지만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솔로를 맡기도 하는 곡이죠. 오늘날 대중음악의 총아로 등극한 기타이지만, 서양음악사의 최정점으로 꼽히는 18, 19세기 고전 낭만 시대에는 인기를 잃고 단지 스페인 민속악기 정도로만 취급됐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연주회장의 확대였습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중부 유럽에서 콘서트홀이 커지면서 현악기인 기타나 관악기인 리코더 등은 음량이 작아 ‘잘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게 됐습니다. 음량이 작은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가 큰 음량을 소화할 수 있는 피아노로 ‘진화’한 뒤 잊혀진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피레네 산맥 서남쪽의 스페인에선 기타가 계속 대접을 받았습니다. 근대 기타 자체가 스페인에서 서방의 ‘라틴 기타’와 이슬람의 ‘무어(Moor) 기타’의 장점만 결합해서 탄생한 것도 이유였습니다. 18세기에 스페인 궁정의 초청을 받고 이탈리아에서 건너간 작곡가 보케리니도 현악 4중주에 기타를 추가한 현악 5중주 등을 즐겨 썼습니다. 20세기에 기타가 전면적으로 ‘부활’한 것도 음량과 관계가 큽니다. 마이크와 앰프장치의 등장 덕에 대중음악에서는 악기가 가진 본래 음량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아예 악기 자체의 음량은 없다시피 한 일렉트릭 기타가 어쿠스틱 기타보다 오히려 대접을 받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9월 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미샤 마이스키 첼로 리사이틀에서 마이스키는 딸인 릴리의 피아노 반주로 ‘일곱 곡의 스페인 민요’를 연주합니다. 기타는 등장하지 않지만, 오늘날 큰 콘서트홀에서 들을 수 있도록 피아노가 기타 흉내를 내는 반주부를 감상하며 기타의 역사를 돌아볼 만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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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괴테 ‘파우스트’로 꾸미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콘서트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존재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는 구원할 수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쓴 불후의 명작 ‘파우스트’가 알려주는 교훈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파우스트 박사는 세상에 대한 환멸과 우울에 빠져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그때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제안을 합니다. 원하는 모든 것을 하도록 해주겠다, 대신 파우스트가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는 극상의 순간이 오면 메피스토펠레스가 그의 영혼을 데려가겠다는 것입니다. 이 매혹적인 소재는 여러 작곡가들이 음악으로 형상화했습니다. 구노는 오페라 ‘파우스트’를, 보이토는 오페라 ‘메피스토펠레’를 작곡했고 베를리오즈는 칸타타풍의 ‘파우스트의 저주’를 썼습니다. 리스트는 ‘파우스트’의 마지막 부분을 가사로 ‘파우스트 교향곡’을 썼고 말러도 같은 가사로 교향곡 8번의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같은 가사가 사용된 두 교향곡을 비교해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여는 기획콘서트 ‘파우스트’도 흥미롭습니다. 파우스트를 소재로 한 오페라와 교향곡 등으로 수놓는 콘서트이니까요.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저주’에 나오는 ‘헝가리 행진곡’에 이어 테너 이호철이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중 ‘정결한 집’을 노래합니다. 후반부에는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이 연주됩니다. 말러의 교향곡이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와 합창단이 동원된 거대한 ‘우주의 울림’(작곡가 자신의 표현)으로 끝나는 데 반해 리스트의 곡은 한층 고요하고 신비롭습니다. 원작 말미에 파우스트는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외쳐 악마가 그의 영혼을 데려가지만 성모와 천사들에 의해 구원을 받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 멈추게 하고 싶을 정도의 순간을 경험했을까요. 그는 농경지를 개척해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헌신한 뒤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 싶다”며 “멈추어라…!”를 외칩니다. 지식도, 향락도, 권력도 누려본 인간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순간은 만인이 함께 누리는 자유였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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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차르르∼∼’ 매미도 따라 부르는 보로딘의 교향곡

    더운 여름날, 창을 열고 보로딘의 교향곡 2번 4악장을 듣고 있었습니다. 차르르∼∼ 하는 경쾌한 악기 소리가 딱 멈추었는데, 이번에는 창 밖에서 차르르∼∼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무엇일까요. 음악을 틀기 전 조용히 있던 매미들이 교향곡에 나오는 탬버린 소리를 받아 노래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교향곡과 매미들의 교감이라니! 런던 올림픽이 열린 해이니까, 벌써 3년 전의 일이지만 줄곧 잊히지 않는 즐거운 추억입니다. 교향곡에 탬버린이 나오는 것부터가 흔한 일은 아니죠. 이 작품에는 트라이앵글도 나옵니다. 어릴 때 배운 ‘리듬악기 놀이’라는 동요가 기억나십니까. ‘탬버린은 찰찰찰, 트라이앵글은 칭칭칭’ 하면서 조그만 입으로 합창하던 그 노래의 주인공 악기들이 동원돼 한바탕 신나는 합주를 펼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볍게 보기 쉬운 탬버린이지만 어린이의 리듬교육이나 노래방에서 흥을 돋우는 데만 쓰이는 악기가 아닙니다. 트라이앵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둘 다 엄연히 오케스트라에서 쓰이는 타악기로 특히 고전시대나 중동, 이베리아의 이국적 정서를 강조할 때 잘 쓰입니다. 그런데 왜 교향곡에 이 악기들이 등장했을까요. 그것은 보로딘의 교향곡 2번이 그의 오페라 ‘이고리 공’과 같은 시기에 쓰였다는 점과 관계가 있습니다. 오페라 ‘이고리 공’은 러시아의 영웅이 초원지대의 이민족을 토벌하러 갔다가 포로로 잡힌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보로딘은 이 곡을 쓰다가 ‘오페라에 넣기 적당하지 않다’고 여긴 부분들을 교향곡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고리 공’에도 트라이앵글이나 탬버린 등을 통해 초원의 이국적 정서를 그려내려 했는데, 그런 시도가 같은 시기에 쓰인 교향곡에도 투영된 것입니다. 마침 이렇게 더운 계절에는 해가 떨어지고 난 뒤 급격히 한낮의 열기가 식는 초원지대의 꿈을 꾸어보곤 합니다. 우리 민족도 먼 옛날에는 초원을 다니면서 머나먼 서역의 문명과 교류했다고 하죠. ‘매미들도 이해하는’ 보로딘의 작품을 들으면서, 갑갑한 방을 벗어나 넓은 대륙의 들판으로 상상의 날개를 옮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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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서로를 흠모한 두 거장, 슈만과 리스트

    어떤 역사나 그렇지만 음악의 역사에서도 걸출한 영웅들이 짧은 시기에 나타나 ‘군웅할거’한 시기가 있습니다. 펠릭스 멘델스존(1809년생), 로베르트 슈만과 프레데리크 쇼팽(1810년생), 리스트 페렌츠(1811년생)도 19세기 중반이라는 짧은 시대에 중부 유럽을 뜨겁게 달군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이 중 리스트 외에는 오래 살며 길게 명작을 남기지 못했다는 점이 애석합니다. 슈만과 쇼팽, 리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연주에 인생을 걸고 분투했습니다. 오늘날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 리스트는 ‘피아노의 귀신’이라는 별명을 남기고 있습니다. 슈만은 너무 연습을 열심히 한 탓에 일찍이 손가락에 부상을 입고 연주가의 길을 포기했지만 피아노 스승의 딸인 클라라 비크와 결혼했습니다. 클라라는 쇼팽이나 리스트 못잖게 당대 유럽의 감탄을 자아낸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리스트는 특히 다른 사람의 가곡이나 오페라 아리아 등 작품을 화려한 기교가 동반되는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해 연주하기를 즐겼습니다. 슈만, 쇼팽, 클라라 슈만의 곡도 모두 편곡해 자신의 레퍼토리에 집어넣었습니다. 1840년, 서른 살의 슈만과 스물아홉 살의 리스트가 라이프치히에서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이미 편지와 악보를 보내며 우정을 쌓던 사이였습니다. 리스트의 연주를 관람한 슈만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대담하고 힘 있는 연주를 하다가 다음 순간 한없이 부드럽고 가벼운 연주를 펼친다. 그의 연주를 듣는 순간 이 세계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고 썼습니다. 리스트도 평생 슈만 음악의 팬임을 자처했고 ‘헌정(Widmung)’을 비롯한 슈만의 가곡들을 연주회용 독주곡으로 편곡해 유럽 각지에서 연주했습니다. 내일(7월 29일)은 1856년 로베르트 슈만이 젊은 나이에 정신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하직한 지 159년 되는 날입니다. 이틀 더 지나 31일은 리스트가 세상을 떠나고 129년 되는 날이죠. 만약 저세상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면, 30년 하고도 이틀이나 먼저 와있던 슈만은 리스트에게 어떤 말을 건넸을지 궁금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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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무조건 아름다워야 하는 도니체티의 아리아

    수요일 저녁마다 서울 신사동 음악공간 ‘무지크바움’에서 ‘유럽여행과 음악’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지난달 이탈리아 여행의 경험을 곁들여 ‘오페라 작곡가 도니체티와 그의 고향 베르가모’를 소개했습니다. 주요 감상곡은 가에타노 도니체티(1797∼1848)의 오페라 중 대표 희극인 ‘사랑의 묘약’과 대표 비극인 ‘라메르무어의 루치아’였습니다. 이 두 오페라의 테너 아리아 중에는 똑 닮게 들리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루치아’의 ‘안녕이라 말하고 하늘로 간 그대여’의 전주를 들은 뒤에, 제가 말했습니다. “이 전주를 들은 뒤에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들으면 마치 같은 노래처럼 연결되죠. 앞의 노래는 죽기 직전의 비통함을 노래했고, 뒤의 노래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설레는 마음을 그린 건데도 똑 닮았어요.” 이 말을 듣자마자 무지크바움 대표께서 바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건 도니체티와 벨리니의 전성시대였던 19세기 초 ‘벨칸토 오페라’의 특징입니다. 무조건 아리아는 아름다워야 했죠. 그리는 장면이 슬픔인지 기쁨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어요.” 이런 묘한 불일치는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에서도 느껴집니다. 제목에서부터 ‘눈물’이 나오는 데다가 어쩌면 처량하게까지 들리는 느릿한 6박자의 단조 음계로 멜로디가 진행되니 듣는 사람은 구슬픈 슬픔을 노래하는 장면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사랑을 쟁취한 것으로 여긴 남자 주인공이 기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역시 멜로디가 슬프게 들리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사람끼리 서로 지식을 더하는 점도 음악 모임의 묘미입니다. 앞에 살펴본 것처럼 ‘사랑의 묘약’은 19세기 초중반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인 ‘조건 없이 아름다운 선율’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24∼26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사랑의 묘약’이 공연됩니다. 이 아름다운 오페라를 성악가들의 모습이 잡힐 듯 보이는 가까운 거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2013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우승자인 테너 김범진 씨가 순진한 시골 총각 네모리노로 출연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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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베토벤에 영감 준 ‘대혁명의 작곡가’ 케루비니

    226년 전인 1789년 오늘, 군중이 프랑스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이었습니다. 감옥이 있던 자리는 오늘날 ‘모든 계층을 위한’ 오페라극장이 되어 있습니다. 유럽의 정치적 지형만큼이나 혁명은 대륙 전체의 문화적 지형도 바꿔 놓았습니다. ‘음악의 성자’ 베토벤도 혁명의 영향을 받은 거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한 독일 사람인데 웬 프랑스 대혁명?”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와 가까운 본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19세 때 옆 나라에서 발발한 혁명에 심정적 지지를 보냈습니다. 그가 공화국의 지도자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는 교향곡 3번을 썼다가 그가 황제로 등극한 사실을 알고는 분노해 표지를 찢어버렸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졌죠. 그러나 이후에도 그는 혁명이 표방한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에 평생 공감했습니다. 특히 베토벤은 혁명기 프랑스 음악계의 거두였던 이탈리아인 루이지 케루비니(1760∼1842)의 음악에 깊이 감복해 그를 동시대 음악가 중 최고봉으로 여겼습니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인 ‘피델리오’도 케루비니와 프랑스인 에티엔니콜라 메윌(1763∼1817)이 주도했던 이른바 ‘구출 오페라’의 맥을 잇는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혁명기 프랑스에서는 애국지사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가 영웅적으로 구출되는 ‘구출 오페라’가 인기를 끌었고, 케루비니와 메윌이 이런 작품을 여럿 썼습니다. 흔히 ‘운명 교향곡’으로 불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시작 부분의 격동적인 리듬도 케루비니의 ‘판테온 찬가’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학설이 1990년대 제기된 바 있습니다. 프랑스가 전 유럽에 전쟁을 일으키면서 베토벤은 그들의 팽창주의에 혐오를 표시했지만, 프랑스 세력이 표방한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상에는 기꺼이 찬사를 보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이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사회에서 ‘정전(正典)’이 된 것은, 정치적 역할이 제한된 시민계급이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보수적인 정치체제에 대한 반항심을 해소했던 것도 이유였습니다. 뜨거운 여름, 베토벤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던 ‘레퀴엠(진혼 미사곡)’ 등 케루비니의 작품을 들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듯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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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여름에 듣고 싶은 라벨의 발레곡 ‘다프니스와 클로에’

    무더운 여름 아침, 라벨의 발레 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3부 새벽 해돋이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휘파람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옵니다. 뉴스에 그리스가 자주 등장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사실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절마다 떠올리곤 하는 작품입니다. 이 발레의 원작 이야기는 2세기경 그리스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양 치는 사내와 처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죠. 제가 좋아하는 3부 시작 부분은 해적에게 납치되었던 처녀 클로에가 무사히 풀려나 새벽이 밝으면서 연인과 행복하게 재회하기 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라벨은 20세기 초 관현악의 최고 거장 중 한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무소륵스키의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도 그가 훌륭하게 관현악으로 편곡해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이 ‘다프니스와 클로에’에서도 헤매듯 용솟음치며 가라앉는 현악, 휘파람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전해 주는 목관, 태양과 같이 강렬한 금관이 우리를 도도하고 밝고 커다란 소리의 화폭으로 인도합니다. 여름이면 저는 주로 이 곡처럼 색상이 강렬한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관현악곡을 꺼내 듣게 됩니다. 라벨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도 여름 한 날을 보내기에 적합한 곡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기 마련이니까, 답답한 여름에는 찰랑거리는 건반악기 반주가 동반된 바로크 시대 음악이 제격이라는 분도 여럿 보았습니다. 그런데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무대는 에게 해의, 터키에 가까운 레스보스 섬입니다. ‘레즈비언’이라는 말의 어원이 된 곳이죠. 강한 남성성을 시에 드러낸 여성 시인 사포의 출생지였기 때문에 동성애와 연관짓게 되었지만, 오늘날의 이 섬 주민들은 “동성애와 특별한 연관은 없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떠올려 보니 최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결혼 합법화에 성공한 일이 떠오르네요. 이래저래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생각할 일이 많은 2015년 여름입니다. 한창 꼬여 있는 그리스 경제 문제도 잘 풀려서 남쪽의 낙천적인 사람들이 미소를 잃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유윤종gustav@donga.com}

    • 201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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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BGM의 선구자 사티 서거 90주년

    지난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노천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데 갑자기 ‘도라지 타령’이 들려왔습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더블베이스로 구성된 카페 연주단에게 일행이 ‘한국음악’을 부탁했던 것입니다. 운하의 도시에서 고국 민요를 듣는 느낌이 묘했습니다. 누군가가 “커피 마시는데 ‘브금’ 죽이네!” 했습니다. “브금이 뭐예요? 불금도 아니고?” “아, BGM 말이에요. 백그라운드 뮤직(배경음악)!” 오늘날 어디에나 음악이 있습니다. 카페에서도, 숙녀복이나 구두 매장에서도 흥겹고 달콤한 선율이 들려옵니다. 이른바 BGM입니다. 오디오의 보급 덕에 연주자가 매번 수고하지 않아도 음악을 재생할 수 있게 된 덕이죠. 19세기에만 해도 ‘배경음악’이라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물론 하이든 모차르트 이전 시대의 지체 높은 귀족들은 음악가들을 고용해 음악을 연주시키고 손님들에게 저녁을 대접했죠. 하지만 이후 ‘정신적 영웅인 고귀한 음악가’라는 콘셉트가 확산되면서 음악 감상은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활동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런 음악 연주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 한 사람이 프랑스의 에리크 사티(1866∼1925)입니다. 그는 ‘가구(家具)음악(Musique d‘ameublement)’이라는 개념을 창안했습니다. 가구가 그렇듯, 있는 듯 없는 듯 잘 모르게 들려오는 음악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죠. 오늘날 어디서나 음악이 들려오는 현대인의 환경을 그가 본다면 껄껄 웃으면서 “봐, 음악이 가구나 마찬가지지!”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피아노곡 ‘세 개의 짐노페디’로 사랑받는 사티의 음악은 그야말로 가구처럼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편안합니다. 간결하고 순수하면서도 날카로운 비례를 갖춘 점이 사티 음악의 특징입니다. 그런 ‘아티스틱’한 예술가가 20대에 파리 빈민가에 들어가 복지사업에 힘썼던 것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의 또 다른 일면입니다. 7월 1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90년 되는 날입니다. 이번 주에는 그의 피아노곡을 종일 들어볼까 합니다. 비록 제목은 ‘바싹 마른 태아’ ‘개를 위한 엉성한 전주곡’ 등 엉뚱한 것이 많지만, 모두 귀를 거칠게 긁지 않는 편한 작품들입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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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로마에서 오페라 ‘토스카’ 실제 무대를 보다

    이탈리아의 로마에 와 있습니다. 정보의 속도가 빨라져 쉽게 고국 소식을 알 수 있으니 너무 좋고 너무 편하군요. 레스피기의 교향시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에 나온 장소들도 다시 찾아보고, 푸치니가 로마를 배경으로 쓴 오페라 ‘토스카’의 실제 무대들도 새롭게 둘러보고 있습니다. ‘토스카’는 프랑스 작가 빅토리앵 사르두의 연극 ‘라 토스카’가 원작입니다. 연극을 소재로 한 오페라가 대개 그렇듯이, 음악이 부가되면서 연극의 디테일은 많은 부분 생략됐죠. 원작인 연극에서는 주인공 두 남녀의 이력도 흥미롭습니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았던’ 여주인공 플로리아 토스카(?∼1800)도 상세한 성장배경이 나옵니다. 돌봐주는 이 없이 힘들게 자라다가 수녀원에 맡겨지는데, 작곡가 치마로사(1749∼1801)가 그의 노래 재능을 발견하고 데려다가 키운다는 설정입니다. 연극 속 사건이 펼쳐지는 시점에는 토스카가 당대의 다른 유명 작곡가 조반니 파이시엘로(1740∼1816)와 긴밀히 활동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오페라에도 토스카가 궁정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콘서트는 진보세력과 친하게 지내다 보수세력의 집권으로 곤경에 빠진 파이시엘로가 보수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조직한 콘서트로 그려집니다. 파이시엘로는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초연을 방해한 일화로 오페라 팬들에게 낯익은 인물입니다. 토스카의 애인인 마리오 카바라도시(?∼1800)의 이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파리에서 대화가 자크루이 다비드(1748∼1825) 문하에서 그림을 공부한 것으로 나옵니다. ‘알프스를 오르는 나폴레옹’으로 친숙한 화가죠. 기자가 보기에 이 토스카는 매우 ‘저널리스틱’한 오페라이기도 합니다. 이 안에서 전개되는 사건들의 헤드라인만 써볼까요. ‘프리마돈나가 경시총감 살해하고 투신자살/어제 콘서트서 갈채받은 플로리아 토스카’ ‘(해설) 의문의 두 죽음, 화가 처형과 연관?’ ‘보수연합군, 마렝고에서 나폴레옹에 대패’ ‘탈출한 전 집정관 안젤로티, 은신처 발각된 뒤 즉결처형돼’ 내일은 날이 밝기 전 어두운 새벽에 호텔을 나서려 합니다. ‘토스카’ 3막에 푸치니가 그린 로마의 새벽 모습을 몸으로 느껴 보기 위해서입니다. 설렙니다.―로마에서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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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카렐리야… 독도… ‘국토사랑 클래식’

    러시아의 카렐리야(영어명 카렐리아, 핀란드명 카리알라)는 핀란드 동부와 러시아에 걸쳐 있는 지역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이 땅의 대부분은 소련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세계인, 특히 음악팬들이라면 대부분 이곳을 핀란드 땅으로 기억합니다.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대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카렐리야 모음곡’(1893년) 때문입니다. 이 곡이 나오기 전해에 시벨리우스는 카렐리야로 신혼여행을 가서 토착 예술을 접하고 이 지역의 역사도 연구했습니다. 다음 해 봄, 카렐리야 최대 도시인 비푸리(오늘날 러시아 비보르크) 출신 재(在)헬싱키 학생회가 카렐리야 역사를 담은 연극을 상연하면서 시벨리우스에게 음악을 부탁했습니다. 이때 사용한 음악은 이후 시벨리우스가 3개 악장의 모음곡으로 편집했습니다. 이 곡을 아는 사람마다 ‘카렐리야=핀란드의 일부’로 느끼는 것은 물론입니다. 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모임 ‘앙상블 라 메르 에 릴(바다와 섬 앙상블)’이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다섯 번째 정기연주회를 엽니다. 모차르트와 피아졸라 곡 외에 창작곡인 이영조의 ‘독도, 사랑의 찬가’, 강종희의 ‘바이올린과 기타 오중주를 위한 세 개의 노래’ 등 독도를 소재로 만든 작품들을 연주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최윤정, 피아니스트 조지현, 기타리스트 김성진 등 참여 음악가들은 “우리 작곡가들이 독도를 소재로 곡을 쓰고, 이를 계속 연주하고 노래한다면 국제사회가 역사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이 섬이 한국 땅이라는 사실에 더 깊이 공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문화적 실효지배’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한 가지 더. 1939년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당국의 지시에 의해 영문도 모르고 ‘핀란드 모음곡’을 씁니다. 곡을 쓰던 중 그는 소련군이 핀란드를 침공했다는 뉴스를 듣게 됩니다. 말하자면 피점령지에 대한 ‘유화책’의 일환으로 곡을 주문받은 것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모음곡에 ‘푸르고 흰 하늘’이라는 악장을 슬쩍 끼워 넣었습니다. 푸른색과 흰색은 침략군이 금기시한 핀란드 국기의 색깔이었습니다. 국가가 어떤 팽창 정책을 추구하든, 양심 있는 시민은 숨어서라도 목소리를 냈던 사례입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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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테너 카우프만이 전하는 19세기 말 ‘오페라의 황금시대’

    1880년대 초 이탈리아 오페라계는 위기의식에 빠져 있었습니다. 국가적 영웅이었던 주세페 베르디가 새 작품의 발표를 줄이고, 쥘 마스네가 대표한 프랑스 오페라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19세기 중반 90% 선이었던 오페라극장의 자국 작품 비율은 이 시기에 40%대로 떨어졌습니다. 특히 베르디의 소속사이던 ‘카사 리코르디’의 위기의식은 컸습니다. 베르디의 후계자가 될 새 오페라 영웅을 띄워 올려야 했습니다. 밀라노 음악원에서 아밀카레 폰키엘리의 수제자로 육성받던 자코모 푸치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1884년 푸치니의 첫 오페라 ‘빌리’ 초연을 지켜본 이 회사의 줄리오 리코르디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푸치니는 그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등 오페라 흥행사의 대작을 써내려갑니다. 당시 프랑스 오페라 수입을 주도한 곳은 카사 리코르디의 경쟁사인 손초뇨였습니다. ‘고국의 문화계를 육성하지 않는다’는 눈길이 따가운 것을 느낀 이 회사는 1883년부터 젊은 오페라 작곡가를 육성한다는 취지로 ‘단막 오페라 작곡경연’을 개최했습니다. 1889년 우승작인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대성공을 거뒀고, 마스카니는 이후 카사 리코르디를 견제할 손초뇨의 대항마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같은 흥행 경쟁 속에서 희생된 인물도 있습니다. 푸치니의 고향인 루카의 4년 선배인 작곡가 알프레도 카탈라니입니다. 그는 소속사가 카사 리코르디에 합병되는 바람에 뒤늦게 리코르디 진영에 뛰어들었으나 리코르디는 푸치니를 흥행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카탈라니는 소외감 속에서 39세의 이른 나이에 눈을 감았지만 ‘라 왈리’라는 걸작을 남겼습니다. 푸치니와도 카탈라니와도 두루 친했던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평생 카탈라니를 푸치니보다 뛰어났던 작곡가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19세기 말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내력을 소개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첫 내한공연에서 카우프만과 소프라노 홍혜경은 위에 소개한 베르디, 마스네, 푸치니, 마스카니, 카탈라니의 작품들을 노래합니다. 두 사람의 멋진 노래와 함께 뜨거웠던 오페라의 황금시대를 느껴보는 자리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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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인간의 의지’ 표현했던 카를 닐센 150돌

    “오케스트라 속의 하프 소리는 수프에 뜬 머리카락과 같다.” 오래전 음반 해설지에서 보고 충격을 받은 문장입니다. 작품은 덴마크 작곡가 카를 닐센(1865∼1931)의 교향곡 4번 ‘불멸’(1916년)이었습니다. 본디 오케스트라의 하프 소리는 풍성하고 부드러우며 요정이나 여신을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운데, 왜 그렇게 혐오감이 드는 표현을 썼을까…. 의문은 새로 뜯은 CD를 듣는 순간 풀렸습니다. 집요할 만큼 철두철미 격동적인 음향, 강력한 의지의 표현. 교향곡 ‘불멸’은 닐센이 1차 세계대전 중 쓴 작품입니다. 중립국이었던 덴마크도 인접한 독일에 의해 강제로 전쟁에 이끌려 들어가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닐센은 그 와중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교향곡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감상주의에 쉽게 휩쓸리지 않은, 꿋꿋한 북유럽인이었던 닐센으로서는 하프가 유약함을 표상한다고 생각해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가 교향곡 제목으로 쓴 ‘불멸’은 ‘Immortal’이 아닙니다. 덴마크어로 ‘Det Uudslukkelige’, 영어로는 ‘The Inextinguishable’입니다.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외부의 힘으로 없앨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굳이 더 상세히 표현한다면 ‘불멸’보다는 ‘불가멸(不可滅)’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 올해는 닐센의 탄생 150주년입니다. 전 세계가 그와 동갑내기인 핀란드 거장 시벨리우스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과 비교하면, 나란히 북유럽에서 활동했던 닐센에 대한 관심은 다소 초라한 감도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을 연주한다는 얘기를 듣기 힘들군요. 그의 생일은 6월 9일입니다. 굳이 큰 편성의 ‘불멸’ 교향곡이 아니더라도, 그의 풍성한 실내악 레퍼토리 중 한 곡이라도 더 듣고 싶습니다. 서울시향은 7월 21일 서울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리는 ‘실내악 시리즈-스칸디나비안 윈드 앙상블’에서 닐센의 목관 5중주곡을 선보입니다. 호른을 더한 5개 악기의 음색 조합을 효과적으로 표현했고, 신고전주의적 날렵함과 특색 있는 변주곡 끝악장도 있어 ‘현대 목관 5중주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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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곡가 카를 닐센 탄생 150주년, 교향곡 ‘불멸’ 하프 소리가…

    “오케스트라 속의 하프 소리는 수프에 뜬 머리카락과 같다.” 오래 전 음반 해설지에서 보고 충격을 받은 문장입니다. 작품은 덴마크 작곡가 카를 닐센(1865~1931)의 교향곡 4번 ‘불멸’(1916)이었습니다. 본디 오케스트라의 하프 소리는 풍성하고 부드러우며 요정이나 여신을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운데, 왜 그렇게 혐오감이 드는 표현을 썼을까…. 의문은 새로 뜯은 CD를 듣는 순간 풀렸습니다. 집요할 만큼 철두철미 격동적인 음향, 강력한 의지의 표현. 교향곡 ‘불멸’은 닐센이 1차 세계대전 중 쓴 작품입니다. 중립국이었던 덴마크도 인접한 독일에 의해 강제로 전쟁에 이끌려 들어가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닐센은 그 와중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교향곡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감상주의에 쉽게 휩쓸리지 않은, 꿋꿋한 북유럽인이었던 닐센으로서는 하프가 유약함을 표상한다고 생각해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가 교향곡 제목으로 쓴 ‘불멸’은 ‘Immortal’이 아닙니다. 덴마크어로 ‘Det Uudslukkelige’, 영어로는 ‘The Inextinguishable’입니다.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외부의 힘으로 없앨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굳이 더 상세히 표현한다면 ‘불멸’보다는 ‘불가멸(不可滅)’ 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 올해는 닐센의 탄생 150주년입니다. 전세계가 그와 동갑내기인 핀란드 거장 시벨리우스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과 비교하면, 나란히 북유럽에서 활동했던 닐센에 대한 관심은 다소 초라한 감도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을 연주한다는 얘기를 듣기 힘들군요. 그의 생일은 6월 9일입니다. 굳이 큰 편성의 ‘불멸’ 교향곡이 아니더라도, 그의 풍성한 실내악 레퍼토리 중 한 곡이라도 더 듣고 싶습니다. 서울시향은 7월 21일 서울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리는 ‘실내악 시리즈-스칸디나비안 윈드 앙상블’에서 닐센의 목관5중주곡을 선보입니다. 호른을 더한 5개 악기의 음색 조합을 효과적으로 표현했고, 신고전주의적 날렵함과 특색 있는 변주곡 끝악장도 있어 ‘현대 목관 오중주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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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독일 악단이 연주하는 유대인 작곡가들

    26일 토마스 헹겔브로크 지휘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내한공연을 갖는 북독일방송교향악단이 이 코너에도 자주 소개되었던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을 연주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아라벨라 슈타인바허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합니다. 말러와 멘델스존, 단 두 곡입니다.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과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활동 시기가 반세기 남짓 떨어져 있습니다. 얼핏 떠올려보아도 별로 닮은 부분이 없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음악사에서 독특한 개념으로 묶입니다. 바로 대표적인 ‘유대인’ 작곡가였다는 것입니다. 멘델스존은 유대인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개신교 신자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말러는 37세 때 가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당대 세계 음악계를 대표하는 자리였던 빈 국립오페라 음악감독 자리에 앉기 위한 정지작업이었지만, 음악계의 극우적 인사들은 이 ‘유대인’을 몰아내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10년이 지나 그는 내몰리듯 대서양을 건너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멘델스존은 교향곡 5번 ‘종교개혁’으로 열렬한 개신교 신앙을 고백했지만 그가 죽은 뒤 리하르트 바그너는 ‘음악에 있어서의 유대성’이라는 책자를 발표하며 멘델스존과 같은 유대인 작곡가의 음악은 독일 음악이 가진 본래의 깊이를 담아내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말러와 멘델스존의 음악은 독일에서 1933년 나치가 집권한 뒤 금지됐습니다. 이번에 멘델스존과 말러를 연주하는 악단이 북‘독일’방송교향악단의 이름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최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독일의 과거에 대한 ‘사죄’를 넘어 연합국의 희생 덕택에 독일이 ‘해방’되어 감사하다고 밝혔습니다. 현재의 독일과 나치 독일이 일종의 ‘적대국’ 개념임을 밝힌 것입니다. 똑같이 연합국에 의해 패망했지만 전쟁 전의 국체와 나라의 대표자까지 계승하고, 해군 깃발까지 그대로 인계받아 이용하고 있는 어떤 나라와는 사뭇 비교된다고 할까요. ‘독일’의 이름을 표방하는 방송교향악단이 독일에 여럿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중 대표적인 한 곳이 연주하는 두 유대인 작곡가의 곡을 어서 듣고 싶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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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이 연주하는 유대인 작곡가 ‘말러와 멘델스존’ 단 두 곡

    26일 토마스 헹엘브로크 지휘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내한공연을 갖는 북독일방송교향악단이 이 코너에도 자주 소개되었던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을 연주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아라벨라 슈타인바허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을 협연합니다. 말러와 멘델스존, 단 두 곡입니다.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과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활동시기가 반세기 남짓 떨어져 있습니다. 얼핏 떠올려보아도 별로 닮은 부분이 없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음악사에서 독특한 개념으로 묶입니다. 바로 대표적인 ‘유대인’ 작곡가였다는 것입니다. 멘델스존은 유대인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개신교 신자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말러는 37세 때 가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당대 세계 음악계를 대표하는 자리였던 빈 국립오페라 음악감독 자리에 앉기 위한 정지작업이었지만, 음악계의 극우적 인사들은 이 ‘유대인’을 몰아내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10년이 지나 그는 내몰리듯 대서양을 건너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멘델스존은 교향곡 5번 ‘종교개혁’으로 열렬한 개신교 신앙을 고백했지만 그가 죽은 뒤 리하르트 바그너는 ‘음악에 있어서의 유대성’이라는 책자를 발표하며 멘델스존과 같은 유대인 작곡가의 음악은 독일음악이 가진 본래의 깊이를 담아내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말러와 멘델스존의 음악은 독일에서 1933년 나치가 집권한 뒤 금지됐습니다. 이번에 멘델스존과 말러를 연주하는 악단이 북‘독일’방송교향악단의 이름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최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차 세계대전종식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독일의 과거에 대한 ‘사죄’를 넘어 연합국의 희생 덕택에 독일이 ‘해방’되어 감사하다고 밝혔습니다. 현재의 독일과 나치독일이 일종의 ‘적대국’ 개념임을 밝힌 것입니다. 똑같이 연합국에 의해 패망했지만 전쟁 전의 국체와 나라의 대표자까지 계승하고, 해군 깃발까지 그대로 인계받아 이용하고 있는 어떤 나라와는 사뭇 비교된다고 할까요. ‘독일’의 이름을 표방하는 방송교향악단이 독일에 여럿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중 대표적인 한 곳이 연주하는 두 유대인 작곡가의 곡을 어서 듣고 싶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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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푸치니의 ‘일 트리티코’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일생을 살펴보면 행운을 타고난 것처럼 보입니다. 1884년 첫 오페라 ‘빌리’를 내놓았을 때부터 선배 대작곡가 베르디의 전속사인 리코르디에 점찍혀 ‘베르디의 후계자’로 육성되었습니다. 1896년부터 4년 간격으로 내놓은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은 각각 흥행 초대박을 터뜨리면서 세계 오페라계의 표준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푸치니 역시 쉽지 않은 ‘인정투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라보엠’과 ‘토스카’는 평론가들로부터 “눈물 질질 짜는 여성 취향”이라는, ‘토스카’는 “프랑스적 퇴폐주의의 산물”이라는 맹비난을 받았습니다. ‘나비부인’에 이어 미국에서 발표한 ‘서부의 아가씨’도 “급진적이다” “매력적인 선율미를 살리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이런 평론가들의 반응은 때로 구약성경의 솔로몬 판결 이야기에 나오는 아기처럼 푸치니를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겼습니다. 새로운 수법을 선보이면 “이탈리아 전통에서 벗어났다”는 눈 흘김을 받았고,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려 하면 “예전 작품을 반복한다”는 공격을 당했습니다. 그가 죽기 6년 전인 1918년 내놓은 ‘3부작’(일 트리티코)은 당시 그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푸치니는 여기서 아예 짧은 단막 오페라 세 편을 하룻저녁 무대에 올리는 모험을 시도했습니다. 상반된 성격의 세 작품을 공연하면 어떤 비평가든 최소 한 작품에는 만족할 걸로 여겼던 것입니다. 첫 막 ‘외투’는 당대 유행을 좇아 무산계급 주인공의 치정 살인극을 소재로 했습니다. 둘째 막 ‘수녀 안젤리카’는 푸치니의 장기였던 ‘여주인공이 보호받지 못하고 가엾게 죽어가는 멜로극’으로 만들었습니다. 셋째 막 ‘자니 스키키’는 전통극 형식을 빌리면서 푸치니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코믹 오페라풍을 가미해 ‘전통과 도전’ 양쪽을 모두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 도박은 성공했습니다. 평론가들은 만족했으니까요. 만족의 대부분은 마지막 막인 ‘자니 스키키’에 쏠렸지만. 15∼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솔오페라단이 푸치니의 ‘일 트리티코’전 3막을 공연합니다. 제6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참가작 중 하나입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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