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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20일 국군기무사령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이던 지난해 3월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과 관련 세부 시행 계획을 공개했다. 이 계획에는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 탄핵 청구를 기각하는 것을 전제로 △비상계엄 선포문 및 계엄 포고문 △언론사별 보도 통제 계획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 방지 대책 △중요 시설 및 집회 예상 지역에 대한 군 병력 배치 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 이날 청와대는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전시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에 딸린 ‘대비계획 세부자료’가 19일 국방부를 거쳐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민정수석실에 제출됐다”며 해당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는 단계별 대응계획, 위수령, 계엄선포, 계엄시행 등 4개 제목에 21개 항목, 총 67쪽으로 작성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통상의 계엄 매뉴얼과 달리 합동참모본부 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추천하는 판단의 요소와 검토 결과가 포함돼 있다”며 “이 세부자료는 합참 계엄과에서 통상 절차에 따라 2년마다 수립하는 ‘계엄 실무편람’ 내용과 전혀 상이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격년으로 수립되는 계엄 계획과 달리 군 수뇌부가 지난해 3월 실제 실행을 염두에 두고 계엄령을 준비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다. 청와대는 특히 △국가정보원을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에 따르도록 하고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막기 위해 당시 여당이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표결 불참 △불법 시위 참석·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 검거 등을 계획한 일을 그 같은 판단의 근거로 꼽았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20일 “수사 첫날(16일) 확보된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에서 계엄령 검토 문건과 세부자료의 존재를 확인했다”며 “그 즉시 국방부 장관실로부터 현 기무사령관이 송영무 장관에게 보고한 문서가 보관된 것을 확인하고, 이를 임의제출받았다”고 밝혔다. 특수단은 송 장관 측이 제출한 세부자료를 19일 청와대에 보고했고, 하루 만에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이날 공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송 장관이 3월 확보한 자료가 청와대를 통해 뒤늦게 공개되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송 장관이 조사 대상이 되는 한편 향후 거취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취임 후 첫 업무보고를 받고 “결코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정치권을 향해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국정원법 개정안을 연내 통과시켜줄 것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을 방문해 “나는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약속한다. 결코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정권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이 충성해야 할 대상은 결코 대통령 개인이나 정권이 아니다.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국가와 국민”이라고 덧붙였다.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 등이 문제 되는 상황에서 정보기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 문 대통령은 “정권이 바뀌어도 국정원의 위상이 달라지지 않도록 우리의 목표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기 위해 국정원법 개정안이 연내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여러분도 함께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이름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고, 대공 수사권을 타 기관으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은 국정원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서훈 국정원장은 업무보고에서 “지난 1년간 과거의 잘못된 일과 관행을 해소하고, 국내정치와의 완전한 절연과 업무수행체제·조직혁신에 주력해 왔다”며 “국가안보 선제대응형 정보체제 구축을 목표로 2차 조직개편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국내 정보 분야 폐지에 따라 관련 인력을 해외·북한·방첩·대(對)테러 분야에 재배치했다. 또 서 원장은 “향후 20년 정보환경을 지배할 메가트렌드를 예측하고 구체적인 청사진 마련을 위해 4월부터 관련 태스크포스팀을 만들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을 운영 중”이라고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서 원장의 보고가 끝난 뒤 “국정원이 자랑스럽고, 여러분이 자랑스럽다”고 격려했다. 이어 “이제 국정원은 ‘적폐의 본산’으로 비판받던 기관에서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났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성공시킨 주역이 되었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 되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업무보고에 앞서 대한민국 안보를 위해 이름 없이 산화한 정보요원을 추모하기 위해 국정원 청사에 마련된 ‘이름 없는 별’ 석판 앞에서 묵념했다. 업무보고 뒤에는 국정원의 원훈(院訓)석 앞에 국정원 창설 연수와 수령이 같은 57년생 소나무를 기념 식수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북한이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에 나섰다. 문 대통령을 ‘그 누구’라고 칭하며 북-미 관계에 대해 “감히 입을 놀려댄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정은이 하반기 본격적으로 이어질 비핵화와 종전선언 세부 논의에 앞서 한국을 강하게 압박해 미국에 간접적으로 부담을 주면서 대미 협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北 “운전자는커녕 조수 노릇도 못 한다” 노동신문은 20일 ‘주제 넘는 허욕과 편견에 사로잡히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라는 개인 논평에서 문 대통령이 13일 ‘싱가포르 렉처’에서 “(북-미)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한 발언을 정조준했다. 신문은 “더욱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갑자기 재판관이나 된 듯이 조-미(북-미) 공동성명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 누구가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감히 입을 놀려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주제 넘는 발언” “맹목과 주관으로 일관된 편견” “결과를 낳은 엄연한 과정도 무시한 아전인수 격의 생억지” “제 처지도 모르는 희떠운(분에 넘치고 버릇없는) 훈시”라며 맹폭격을 했다. 또 “운전자는커녕 조수 노릇도 변변히 하지 못한다”고도 비하했다. 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후에도 비핵화 실천 방안에 대한 진척이 없자 합의를 촉구한 것을 두고 “참견 말라”며 선을 그은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한 문 대통령을 원색 비난한 것을 두고 하반기 들어 북한의 대남·대미 전략기조가 변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6, 7일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빈손’으로 돌려보낸 뒤 “일방적이고 강도 같은 비핵화 요구만 들고나왔다”고 비판한 지 2주도 안 돼 문 대통령의 중재 노력까지 비난한 것. 노동신문의 이날 보도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서울’을 본보기식으로 비난하고 압박하며 결국 워싱턴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에는 종전선언 양보를, 한국에는 민족공조를 강조하며 각종 지원을 거세게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탈북 여종업원 송환도 강도 높게 요구했다.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20일 “여성 공민(탈북 여종업)들의 송환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지 않으면 일정에 오른 북남 사이의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은 물론 북남 관계에도 장애가 조성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특히 북한은 “통일부 장관 조명균을 비롯한 현 남조선 당국자들의 철면피한 처사”라며 3∼6일 통일농구단을 이끌고 평양을 다녀온 조 장관을 콕 찍어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북한이 7월 27일 정전협정 65주년 전후로 한 미군 유해 송환부터 8·15 광복절 공동 행사 및 이후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 등에서 다시 ‘몽니’를 부리며 몸값을 높이려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장 25일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의 생사 확인을 담은 회보서가 순조롭게 교환될지 관심이 쏠린다. 남 원장은 “북한이 당장 미국에는 유해 송환 대가로 거액을 요구하고, 한국에는 평양 정상회담 성사에 대한 반대급부로 각종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일단 태세 전환을 한 만큼 당분간 압박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 답보상태 비핵화 ‘돌파구’ 모색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0일 오전 회의를 마친 뒤 곧바로 미국 워싱턴으로 극비리에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 실장의 방미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5월 3일 극비리에 워싱턴을 찾은 이후 두 달여 만이다. 이번 방미에서 정 실장은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을 만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싱가포르 회담과 이달 초 폼페이오 장관의 세 번째 방북 이후 답보 상태인 북-미 간 비핵화와 종전선언 논의를 촉진하는 한편 남북 관계 진전의 속도 점검을 위해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산 석탄의 국내 유입 논란과 관련해 미 측의 오해를 풀기 위한 설명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황인찬 hic@donga.com·한상준 기자}

청와대는 20일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의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전격 공개한 이유를 “이 문건이 가지고 있는 중대성과 높은 국민적 관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앞서 공개된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해 ‘유사시를 대비해 계엄령을 단순 검토한 것을 지나치게 문제 삼는다’는 일각의 비판을 정면 반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청와대는 이 자료를 근거로 지난해 3월 기무사 등 군이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릴 경우 즉각 계엄령을 시행할 준비를 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청와대는 이 자료를 공개하면서도 관련자 파악 및 처벌 여부에 대해서는 군 특별수사단의 몫이라며 말을 아꼈다. 군 스스로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라는 신호다.○ 기무사 “국회 계엄령 해제 표결 막아야”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대비 세부 자료 중 청와대가 가장 심각하다고 보는 지점은 ‘국회에 의한 계엄 해제 시도 시 조치사항’이라는 제목의 국회 통제 계획이다. 계엄령 발동은 대통령이 선포하지만, 헌법 제77조에 따라 국회가 재적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령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런데 기무사는 국회가 계엄령을 해제하는 것을 막으려고 국회 본회의 표결을 원천 봉쇄하는 방안을 수립한 것이다. 자료에는 “당정 협의를 통해 (당시) 여당 의원들이 ‘계엄 해제’ 국회 의결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명시돼 있다. 이어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현행범 사법처리’의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 시 구속수사 등 엄정처리 방침 경고문”을 발표한 뒤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 검거 후 사법처리해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라고 돼 있다. ○ 언론·SNS·국정원·사법부 통제 방안도 마련 자료에 따르면 기무사는 총 9개 반으로 구성된 ‘계엄사 보도검열단’ 운영 계획도 마련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KBS·YTN 등 22개 방송 및 26개 신문, 연합뉴스·동아닷컴 등 8개 통신사와 인터넷 신문사에 대한 통제 요원을 편성해 보도를 통제하도록 했다”며 “인터넷 포털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차단, 유언비어 유포 통제 등의 방안도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언론사별로 (보도검열단) 몇 명이 어느 기관(언론사)에 가는지까지 나와 있다. 보도검열단은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견본, 영상제작품 원본을 제출받아 (사전에) 검열할 계획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청와대 공개자료에는 ‘주한(駐韓)무관·외신기자 대상 외교활동 강화’ 항목도 있다. 김 대변인은 “우리나라의 각국 대사관에 파견돼 있는 무관(武官)단과 외신기자를 대상으로 계엄령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등의 내용이 ‘외교활동 강화’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을 계엄사령부가 통제하는 방안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하고 있으며,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토록 조치하는 등 국정원 통제 계획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기무사 자료의 11번 항목은 ‘합동수사본부 편성 및 유관기관 통제 방안’, 12번은 ‘계엄사 군사법원 설치’다. 여권 관계자는 “언론과 SNS, 검찰과 경찰은 물론이고 입법부인 국회, 사법부인 법원, 그리고 정보 수집까지 모든 것을 군이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송영무 장관, 또 ‘보고 누락’ 논란 이 자료를 근거로 청와대는 당시 군과 기무사가 계엄령을 단순히 검토한 것이 아니라 실제 실행하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만에 하나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이 아닌 기각 결정을 내렸다면 이 자료가 실제 현실화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는 관련자 수사, 위법 여부 등에 대해서는 “군 특별수사단이 수사를 통해서 밝혀야 될 내용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청와대가 일부 내용을 공개한 67쪽짜리 자료는 송 장관이 올 3월에 기무사 계엄령 문건(8쪽)과 함께 기무사령관에게 보고받고도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은 내용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송 장관이 3월 기무사의 보고 직후 계엄령 문건과 세부자료를 청와대에 제출하고, 처리 문제를 협의했다면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송 장관도 특수단의 조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거취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른 소식통은 “청와대가 송 장관의 문건 보고 누락을 중대 사안으로 인식해 후속 조치를 취할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의 세부자료 공개와 관련해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측은 계엄령 검토와 마찬가지로 단순 검토 차원에서 작성됐다는 입장을 고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4세 여아가 통학차량에 갇혀 질식사한 경기 동두천시의 어린이집 담임교사는 통학차량이 도착한 직후 아이가 등원하지 않은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20일 확인됐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오지 않은 것을 알고서도 부모에게 알리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담임교사 김모 씨는 경찰에서 “17일 오전 9시 40분경 숨진 김모 양(4)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나 외부 손님 때문에 정신이 없어 잊어버렸다”고 진술했다. 김 씨가 김 양의 결석 사실을 출결담당 교사에게 전달했더라면 김 양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 동두천경찰서는 20일 어린이집 담임교사, 인솔교사, 원장, 운전기사 등 4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다음 주초 이들 중 원장을 제외한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서울 강서구 어린이집에서 생후 11개월 된 아이를 짓눌러 사망하게 한 사건과 관련해 강서경찰서는 어린이집 보육교사 김모 씨(59·여)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20일 구속했다. 김 씨의 구속 여부를 심사한 서울남부지법 김병철 영장전담부장판사는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어린이집 안전사고가 연달아 발생한 것과 관련해 보건복지부에 철저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유사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복지부가 완전히 해결할 대책을 조속히 세워서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관련 대책을 다음 주 국무회의에 보고해 안건으로 상정하라”고 지시했다. 김자현 zion37@donga.com·한상준 / 동두천=윤다빈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지난 한 주 동안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19일 발표한 전국 성인 남녀 15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긍정’이라고 답한 비율은 61.7%였다. 이는 지난주 조사(68.1%)보다 6.4%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앞서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일주일 새 가장 많이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지난해 5월 5주 차의 6.0%포인트였다. 이에 대해 리얼미터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비난이 집중됐던 지난 주말을 경과하며 약세가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직군별 조사에서는 자영업 직군에서 지지율이 60.9%에서 48.7%로 급락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6월 둘째 주 75.9%를 기록한 뒤 5주 연속 하락세다. 취임 후 가장 낮은 지지율은 평창 겨울올림픽 직전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이 불거졌던 1월 4주 차의 60.8%다. 권역별 정당 지지율은 자유한국당이 부산·경남·울산에서 36.6%의 지지율을 기록해 더불어민주당(31.2%)을 제쳤다. 이 지역에서 한국당이 민주당을 앞선 것은 2016년 11월 이후 1년 8개월여 만이다. 전국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41.8%), 한국당(19.5%), 정의당(10.2%), 바른미래당(7.0%), 민주평화당(3.5%) 순이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 육성 방안’ 발표 행사의 사례 발표는 1형 당뇨(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정소명 군의 어머니 김미영 씨가 맡았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김 씨는 해외 사이트를 뒤져 바늘로 피를 뽑지 않고도 혈당을 잴 수 있는 혈당측정기를 구매한 뒤 측정한 데이터를 스마트폰으로 전송해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었다. 그는 또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다른 소아당뇨 가족들에게 혈당측정기를 구매해주고, 앱을 제공했다. 이 일로 김 씨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검찰은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목적이 아니다”라며 김 씨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청와대는 김 씨의 사례가 의료기기 분야의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탁상규제’라고 보고 발표를 맡긴 것이다. 김 씨가 “1형 당뇨인이 부끄럽지 않도록, 사회적 편견이 없어지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며 발표를 마무리하자 문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아픈 아이를 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고 속상했을까 싶다”며 “소명이 어머니의 이야기는 의료기기 규제에 대해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안겨주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김 씨와 정 군의 옆자리에 앉아 행사를 지켜봤다. 또 정 군이 좋아하는 프로야구 선수인 KIA 타이거즈 양현종, 이범호 씨의 사인이 새겨진 야구 글러브와 배트를 선물하고 정 군을 격려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경제 정책 방향을 놓고 불협화음을 빚어온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격주로 정기 회동을 갖고 정책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 2기를 맞아 갈등설을 봉합하고 혁신성장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자는 차원이다. 18일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장 실장과 김 부총리는 6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조찬을 함께했다. 두 사람이 공식 회의가 아닌 별도의 자리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정태호 대통령일자리수석비서관, 윤종원 경제수석, 고형권 기재부 1차관도 동석했다.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은 출장으로 불참했다. 이 자리는 정 수석의 제안으로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앞으로 격주에 한 번씩, 금요일 아침에 만나 현안을 논의하자”고 합의했다. 청와대와 기재부 간 ‘3+3’ 회동을 통해 견해차를 좁히고 각종 경제 정책을 빠르게 이행하자는 취지다. 두 번째 회동은 20일로 예정돼 있었지만, 김 부총리가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출국하면서 미뤄졌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집권 2기 조직 개편을 준비 중인 청와대가 교육문화비서관을 교육비서관과 문화비서관으로 분리하는 방안을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대입제도 개편을 앞두고 교육정책에 대한 청와대의 정책 조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또 자영업비서관은 일자리수석실 산하에 신설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날 “사회수석실 산하에 교육비서관과 문화비서관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며 “이는 교육개혁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정부는 8월 말 대학수학능력시험 과목 구조 개편 등을 포함한 대입제도 개편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청와대가 교육정책을 전담할 교육비서관을 신설하는 것은 앞서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과정에서 잡음이 컸던 점을 감안한 조치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교육문화수석실 산하에 교육비서관과 문화체육비서관을 별도로 뒀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사회수석실 산하에 두 자리를 통합해 교육문화비서관을 두는 식으로 조직을 축소했다. 또 신설되는 자영업비서관은 경제수석실이 아닌 일자리수석실 산하에 설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일자리 감소로 경제 전체에 미친 파장이 컸던 것을 감안해 고용정책을 중심으로 자영업자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청와대는 △정책홍보 기능 강화를 위한 국정홍보기획비서관 신설 △혁신성장 분야를 담당할 혁신비서관 신설 등을 검토하며 조직 개편안을 막판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조직 개편안은 이르면 이번 주말 확정돼 다음 주초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한상준 alwaysj@donga.com·문병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 최영애 서울시 인권위원회 위원장(67·사진)을 내정했다. 최 후보자는 인권위 출범 이후 처음으로 구성된 공개후보추천위원회에서 공모를 통해 뽑힌 후보 3명 가운데 1명이다. 장관급인 인권위원장에 여성이 내정된 것은 처음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최 후보자는 30여 년 동안 시민단체와 인권위 등에서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에 앞장서 온 인권 전문가”라고 설명했다. 최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정식 임명되며 임기는 3년이다. 부산 출신인 최 후보자는 이화여대에서 기독교학과 여성학을 공부했으며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설립한 이후 2002년까지 소장을 지냈다. 2004년부터 4년간 인권위 상임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현재 사단법인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 이사장과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여성인권의 대모’로 꼽힌다. 최 후보자는 여자친구가 의붓아버지에게 10년간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남자가 그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김보은-김진관 사건’의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 사건은 성폭력특별법 제정의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3년 이른바 ‘우 조교 사건’으로 알려진 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의 지원도 맡았다. 앞서 인권위원장 후보추천위는 9일 최 후보자를 비롯해 유남영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장,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3명을 추천했다. 앞으로 인권위는 성차별 등 여성인권 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인권위 산하에 차별시정국을 신설하고 산하에 성차별시정팀 등을 신설하는 내용의 인권위 조직개편안을 심의 확정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한상준 기자}

“송영무 국방부 장관뿐만 아니라 군 전체에 ‘유야무야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6일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문건과 관련해 국방부, 기무사와 각 부대 사이에 오고 간 모든 문서와 보고를 즉시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10일 인도 방문 중 “문건 작성과 관련해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관련 문건을 청와대로 즉시 제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독립수사단 수사와 별개로 계엄령 검토 문건과 관련된 모든 경위를 문 대통령이 직접 파악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청와대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라 계엄령 문건 파문이 대대적인 국방개혁과 군 인적청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軍 수뇌부 겨냥한 靑의 강력 경고 이날 문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아직 (문건 작성의) 위법 여부도 판단하지 않고 있다. 문건 제출 지시는 군 통수권자로서 진상을 먼저 파악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변호사 출신인 문 대통령이 직접 2017년 3월 당시 문건 작성을 전후해 위법 사항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디까지가 문제인지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청와대는 “책임 소재는 조사가 끝난 뒤에 물어도 늦지 않다”고 밝혔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조사에 나섰다는 점만으로도 이날 수사를 시작한 군 독립수사단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군이 사실상 같은 사안을 동시에 들여다보게 됐기 때문이다. 중복 수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문건 제출 지시를 내린 것은 “군의 자체 조사 결과와 청와대의 조사 결과를 비교해 보겠다”는 의미다. 그 과정에서 군이 ‘제 식구 감싸기’와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면 절대 묵과하지 않겠다는 것. 사실상 청와대가 나서기 전에 군이 스스로 문제를 찾고, 문제가 있다면 과감하게 도려내라는 지시다.○ 4월 30일, 靑에서는 무슨 일이 또 문 대통령의 지시가 군뿐만 아니라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4월 30일 국방부와의 회의에서 계엄령 검토 문건을 인지하지 못한 참모들에게 “이번에는 제대로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 4월 30일 송 장관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은 청와대에서 기무사 개혁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송 장관은 계엄령 검토 문건을 별도로 보고하지 않고, 기무사의 과거 정치 개입 사례의 하나로만 보고했다. 국방부도 “(당시) 송 장관이 문건의 존재와 내용의 문제점은 언급했지만 문건을 청와대에 전달하진 않았다”라고 밝혔다. 회의에 앞서 국방부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에도 같은 보고를 했다. 청와대가 해당 문건의 인지 시점에 대해 “두부 자르듯 잘라 말할 수 없다”, “회색 지대가 있다”고 한 이유다. 송 장관이 청와대에 문건 관련 보고를 한 4월 말은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이 문건의 계엄령 검토가 ‘내란음모죄’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이 점화된 뒤다. 이 때문에 “송 장관은 물론 청와대 참모진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는 이날 청와대 회의 직전 이 문건에 대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먼저 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책상에 계엄령 문건이 올라온 것은 회의 두 달여 뒤인 지난달 28일이었다.○ ‘인적청산’ 등 대대적 개혁으로 이어질 듯 청와대는 이 문건에 대한 대응을 송 장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군 전체의 문제로 보고 있다. 만약 문건 작성 및 보고 과정에서 군이 조직적으로 불법 사실을 알고도 묵과했다면 대대적인 후속 조치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문건이 여당 일각의 주장대로 ‘내란음모죄’ 소지가 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앞두고 업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계엄령 준비를 가능하게 했던 군 지휘체계에 대한 개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군 조직 내 주요 파벌에 대한 조사와 대규모 쇄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밝히며 “군 통수권자로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의 수사개입 논란이 불가피한데도 자체 조사에 나서면서 청와대가 이번 사안을 단순한 법적 다툼의 사안이 아닌 군 조직 자체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게) 보고 누락’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배치된 사드를 철수할 수도 없었고, 지난 정권의 군 수뇌부를 겨냥할 수도 없었다”며 “하지만 온전히 국내 문제인 계엄령 문건 파문은 그 결과가 다를 것”이라고 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에 대해 사실상 포기 선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결과적으로 대선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최저임금의 인상 속도가 기계적 목표일 수는 없으며 정부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의 인건비 급등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을 감안해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가능한 한 조기에 최저임금 1만 원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올해와 내년으로 이어지는 최저임금의 인상폭을 우리 경제가 감당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사정 모든 경제주체들이 함께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보면서 인상폭을 조절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과 동시에 최저임금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 문 대통령은 “소상공인들의 경영이 타격받고 고용이 감소하지 않도록 일자리 안정자금뿐 아니라 상가임대차보호, 합리적인 카드 수수료와 가맹점 보호 등 후속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가 18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때 이런 내용의 자영업자 대책을 함께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조찬 간담회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 “최저임금이 하반기 경제 운용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부총리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두 자릿수에 이른 것과 관련해 시장과 기업의 경제 심리에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대내외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10.9%라는 인상폭이 지나치게 높아 김 부총리가 주장해 온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속도조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의 적정 인상폭과 시기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이뤄지지 않은 채 최저임금 인상률이 결정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으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학계, 소상공인 등 다양한 계층이 중립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최저임금위를 구성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 / 한상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사실상 포기하고 속도 조절을 시사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현장과 동떨어져 있는 한계를 인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신규 채용을 지금보다 더 줄이면 임금을 높여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를 이끌어 낸다는 소득주도성장의 틀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정부 내에 감돌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제상황이 쉽지 않다는 내부적 판단이 내려진 상황에서 뒤늦게 끌려가듯 공약을 수정하기보다는 미리 공약 달성이 어렵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과 괴리된 정책 한계 인정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여야 4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최저임금 정책의 1년간 효과를 살펴보고 속도를 조절할지, 그대로 갈지 결론을 내겠다”고 했다. 최저임금 속도조절 가능성을 처음 시사한 셈이다. 최근 수출 내수 고용의 동반 부진으로 정부가 목표로 삼은 3% 성장이 어려워지면서 정부 전반에 최저임금 속도조절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년에는 최저임금을 19.8% 인상해야 하는데 경기 악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현재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이는 불가능한 목표라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는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소상공인·자영업자 단체들이 반발에 나서며 최저임금이 ‘을(乙) 대 을’의 싸움 구도로 흐르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청와대는 공약 파기에 대한 사과의 대상을 최저임금 수혜를 볼 저소득층에 맞추면서 최저임금 인상 기조에 대해선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병 주고 약 주는 보완책들 이날 각 경제부처는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을 수습하기 위해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노동자와 중소기업, 소상공인은 공동운명체”라며 “임금이 오른 만큼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해 달라. 생산성이 늘지 않으면 추가적인 임금 인상은 어렵다”고 호소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노사정이 함께 노력해 달라는 대통령의 주문과 맥이 닿아 있는 발언이다. 홍 장관은 “노동계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물건을 사주는 운동을 전개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소상공인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김대준 소상공인연합회 노동인력환경위원회 위원장은 “무작정 소상공인의 인내를 요구하기보단 실질적 대책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저임금 인상 영향을 크게 받는 외식업과 편의점 가맹본부 중 6곳의 불공정 행위 조사에 착수했으며 하반기에는 200개 대형 가맹본부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17일부터는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하도급업체가 대기업 등 원사업자에게 하도급 대금 증액을 요청할 수 있는 내용의 개정 하도급법이 시행된다. 기획재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 연장 시행, 소상공인 및 영세 중소기업 카드 수수료 인하, 근로장려세제 확대 등 재정을 투입한 민심 달래기 정책을 추진 중이다. 다만 정부가 소상공인연합회 등이 요구한 카드 수수료와 가맹점 수수료 인하 방침을 강조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금융사에 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나올 수도 있다. 특히 금융사 노조들이 카드 수수료 인하에 반대하고 있는 만큼 최저임금 인상이 ‘노노(勞勞)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보다 사회안전망 구축이 우선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속도조절이 공식화한 만큼 내년부터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전에 인상 폭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임금 인상에 대한 시그널을 미리 시장에 줬다면 병 주고 약 주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며 “최저임금을 올리는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또 다른 행정 절차가 동원되는 건 여러모로 낭비”라고 말했다.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에 지나치게 매몰되다 보니 다른 복지 정책 대신 최저임금 인상에만 매달린다는 비판도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경제구조를 개혁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대신에 최저임금에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사회안전망 구축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로 노인이나 취약계층에 저임금 일자리를 제공하면 이들이 나중에 노동시장에서 나가야 할 때 더 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 / 김성규·한상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3일(현지 시간) “(북-미가) 국제사회 앞에서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이행과 종전선언 시기 등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북한과 미국에 지난달 12일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조속히 이행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한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참여를 공개 제안하는 등 북한의 ‘정상 국가화’ 조치를 담은 ‘아세안 구상’을 내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싱가포르 오처드호텔에서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EAS)가 주최한 ‘싱가포르 렉처’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과정이 결코 순탄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거와는 지금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실무협상 과정에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논쟁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북-미 양 정상이 직접 국제사회에 약속을 했기 때문에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정상들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 신속한 비핵화 이행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을 정상 국가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욕이 매우 높았다”며 “김 위원장이 비핵화의 약속을 지킨다면 자신의 나라를 번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이 비핵화 이행 방안을 더 구체화하고 한국과 미국은 이에 상응하는 포괄적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한다면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갈 경우 아세안이 운영 중인 여러 회의체에 북한을 참여시키고 북한과의 양자 교류 협력이 강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싱가포르에서 북한이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나 미국, 러시아가 참여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에 참여할 길을 열어주자고 공개 제안을 한 것. 지난해 9월 독일에서 내놓은 ‘베를린 구상’에 이어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비전’을 내놓은 ‘싱가포르 렉처’에서 북한의 정상 국가화 제안을 담은 ‘아세안 구상’을 제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 경제협력에도 속도를 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도 (싱가포르처럼) 대담한 상상력을 실천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자 한다”며 “한국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또 하나의 기회가 있다. 바로 남북 경제협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하루빨리 평화체제가 이뤄져 (남북)경제협력이 시작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12일 문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 수행단과 함께 한 달 전 열린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찾았던 ‘마리나베이샌즈 전망대와 가든스바이더베이를 깜짝 방문했다. 예정에 없던 일정으로 역사적인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을 되새겨 후속 이행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당부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5박 6일의 인도·싱가포르 순방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이날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싱가포르=한상준 alwaysj@donga.com / 문병기 기자}

“(북-미 협상의) 결과를 아무도 낙관할 수 없다.” 싱가포르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판문점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유해 송환 협상이 무산되는 등 북-미 간 냉기류가 갈수록 악화되는 가운데 ‘북핵은 하루아침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현실론을 앞세우며 참을성 있는 대응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 할리마 야콥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북-미 정상 간 합의는 잘 이뤄졌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실무 협상은 순탄치 않은 부분도 있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전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북-미 협상이 난관 끝에 결국 한반도 비핵화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유지했다. 문 대통령은 “북-미 간 협상은 이제 정상적인 궤도에 돌입했다”며 “결과를 아무도 낙관할 순 없으나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하고 북한의 안전보장을 위해 국제사회가 노력을 모아 간다면 북-미 협상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전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외교 소식통은 “문 대통령이 그간 북-미 협상에 대해 낙관론에서 현실적인 신중론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백악관 내에서조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두고 ‘최악의 상황’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북한의 태도에 대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전략”이라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북한이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을 비난했지만 그 내용을 보면 자신들은 성의를 다해 실질적 조치를 취해 나가고 있는데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불평”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후속 협상의 첫 관문에서부터 난관을 맞은 북-미 양측에 ‘역지사지’의 자세를 재차 강조한 것. 그러면서 “중요한 점은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상응 조치가 과거와 같은 제재 완화나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적대관계 종식과 신뢰 구축이라는 것”이라며 “이는 북한의 과거 협상 태도와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비핵화 이행에 대한 조건으로 과거 ‘살라미 전술’을 써가며 줄기차게 요구했던 대북제재 완화가 아닌 체제보장을 요구한 것 자체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스마트 제조업,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공동 연구개발 등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양국은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상호 진출 및 혁신 동력 공동 창출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싱가포르=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2일 영문 사설에서 ‘핵 무력 건설(building of nuclear force)’을 언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4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 대신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정책노선으로 채택한 뒤로 노동신문이 ‘핵 무력 건설’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더욱 큰 난관에 봉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노동신문은 이날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조선 혁명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하자(Let Us Accelerate Advance of Korean Revolution)’는 제목의 영문 사설에서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승리를 위해 중단 없이 전진해 온 패기로 사회주의 경제 건설의 전선에서 새로운 번영의 국면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설은 앞서 11일 노동신문 1면 톱으로 게재된 사설을 영문으로 옮긴 것이다. 노동신문은 전날 국문판 사설에서 ‘병진노선’이라고 표기한 대목을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의 병진(simultaneously pushing forward the economic construction and the building of nuclear force)’으로 표현했다. 북한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진 노동신문 등 대외 매체에서 ‘핵 무력’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노동신문 영문판도 최근엔 병진노선을 ‘두 전선의 병진(simultaneously pushing forward the two fronts)’ 정도로 표현해 왔다. 그동안 자제했던 ‘핵 건설’이란 표현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북한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빈손 방북’ 이후 비핵화 후속 조치와 종전선언 시기를 놓고 미국과 갈등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로부터 실질적인 체제 보장 조치를 받아내려고 특유의 ‘벼랑 끝 전술’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더군다나 북한은 이날 판문점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군 유해 송환 실무회담에도 일방적으로 불참했다. 이날 유해 송환 회담에 참석하기로 한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및 미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전 판문점에 도착했으나 북측 협상단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회담이 무산됐다. 북한은 그 대신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에 15일 장성급 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싱가포르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리셴룽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 간) 실무협상은 순탄치 않은 부분도 있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북한의 현재 태도는)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불평이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전략이다”라고 말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정은 / 싱가포르=한상준 기자}
인도 방문을 마치고 싱가포르 국빈 방문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목표”라고 밝혔다. 종전선언 시기를 놓고 북-미가 이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연내 종전선언 체결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11일 보도된 싱가포르 최대 일간지 스트레이츠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시기와 형식 등에 대해서는 북한,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며 현재 남북 및 북-미 간 추가적인 협의가 지속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인터뷰는 6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방북하기 직전인 4일 청와대에서 진행됐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고 난 뒤에야 종전선언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만큼 정부가 종전선언에 대한 북-미 중재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양측의 요구사항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며 “종전선언 등 이견이 있는 점을 놓고 이제 본격적으로 접점을 찾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 이후 주한미군 철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한미 동맹의 문제이지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논의될 의제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 연합 군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연이어 중단되고 있지만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문제는 논의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에도 북-미 비핵화 협상이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문 대통령은 북한의 행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 입장을 표명했고,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등 실천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을 평양 방문에 대해선 “당장 (방북을) 준비하기보다는 우선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을 이행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1일 인도 뉴델리를 출발해 다음 순방지인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문 대통령은 2박 3일 동안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 비핵화 협상이 탄력을 받도록 협조를 당부할 예정이다. 한국 대통령의 싱가포르 국빈 방문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5년 만이다.싱가포르=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고대 아유타국(國)의 허 황후(皇后)와 인도 고승 마라난타를 통해 한국으로 전파됐고, 전통 문화의 뿌리가 됐다.” 인도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간) 뉴델리에서 열린 람 나트 코빈드 인도 대통령과의 국빈 만찬 인사에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두 나라의 오랜 인연을 꺼냈다. 허 황후는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와 기원후 48년 가야 김수로왕과 결혼해 가야의 첫 왕비가 됐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허 황후 이야기는 이번 문 대통령의 국빈 방문 중 여러 차례 등장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이날 공동언론발표에서 “수천 년 전에 슈리라트나(허 황후의 인도 이름) 공주가 김수로왕과 혼인하게 됐다. 정말 놀라운 것은 지금 이 시점까지도 수십만 명의 한국인은 바로 이분들의 후손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9일 삼성전자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 축하 영상에도 허 황후를 매개로 인도와 한국이 과거부터 각별한 사이였다는 내용이 담겼고, 이날 두 정상이 채택한 한-인도 비전성명의 첫 항목은 “양국 간 깊은 역사적 유대를 상징하는 허 황후 기념공원 사업 추진 등 다양한 교류 활성화”다. 이런 배경에는 문 대통령의 남다른 ‘가야사(史)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학창시절 역사학자를 꿈꿨을 정도로 역사를 좋아하고, 특히 고향인 부산·경남 지역을 무대로 한 가야사에 관심이 많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인 지난해 6월 청와대 회의에서 “국정 과제를 정리하면서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꼭 좀 포함시켜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간 신라사에 비해 연구자 수도 적고 정부 지원도 부족한 가야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달라는 지시다. 이에 문화재청은 올해 가야 유적 발굴·보수에 187억 원을 투입해 여야 간에 ‘문재인 가야사 예산’이라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뉴델리=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서면 브리핑이 곧 나옵니다.’ 청와대가 이 문자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별도 면담 사실을 공개한 것은 인도 현지 시간 9일 오후 7시 55분, 한국 시간 오후 11시 25분이었다. 면담 두 시간여가 지난 뒤다. 문 대통령을 수행해 동포 간담회에 참석 중이던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행사장에서 휴대전화로 급하게 언론에 서면 브리핑을 배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예상에 없었던 면담이라 청와대 참모들 대부분이 알지 못했고, 윤 수석도 배석하지 못했다”며 “나중에 면담 사실이 알려지면 불필요한 억측을 부를 수 있어 늦게라도 공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수석을 비롯한 공보라인도 면담 사실을 뒤늦게 전달받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결정된 일이라는 설명이다. 면담에 대해 청와대는 “영접과 테이프 커팅식까지만 예정된 (이 부회장과의) 일정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대기실 밖에서 기다리던 이 부회장을 (그냥 서 있으라며) 외면할 수 없어 들어오라고 해서 이야기를 나눈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조한기 대통령제1부속실장과 홍현칠 삼성전자 서남아 담당 부사장을 배석시킨 것도 ‘독대’ 논란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반면 한 참모는 “재계 서열 1위 기업 총수와의 면담을 문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결정하겠느냐”며 “진행 중인 이 부회장의 재판과는 별도로 재계 리더를 통해 투자와 일자리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재계에 전달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청와대는 준공식에서 이 부회장의 자리를 행사장 가장 앞줄인 문 대통령 오른편 세 번째 자리에 준비했다. 또 두 정상의 참석에 대한 감사 연설은 홍 부사장이 했지만 공장 안내는 이 부회장이 맡았다. 대통령 근접 수행은 청와대 경호·의전 파트와의 사전 조율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러모로 청와대가 이미 삼성과 이 부회장을 향한 유화 제스처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준공식에 참석한 이 부회장의 표정도 화제였다. 문 대통령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제안으로 지하철로 이동해 도착이 늦어지자 행사장 입구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던 이 부회장의 모습이 현지 방송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처음으로 문 대통령을 영접해 90도로 인사할 때만 해도 이 부회장의 표정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준공식이 끝난 뒤 공장을 안내하는 이 부회장의 표정은 밝았다. 뉴델리=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기업 활동에서 겪게 되는 어려운 점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겠다.”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간) 뉴델리의 총리 영빈관에서 열린 ‘한-인도 CEO(최고경영자) 라운드 테이블’에서 다시 한 번 기업 애로 해소를 강조했다. 청와대 참모들에게 “기업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라고 당부했던 문 대통령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주요 대기업 CEO 앞에서 이 같은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 문 대통령이 전날 취임 이후 처음으로 재계 서열 1위인 삼성전자 행사에 참석해 이재용 부회장과 개별 면담을 한 데 이어 이틀 연속 ‘기업 기 살리기’ 행보에 나서면서 집권 2기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변화가 본격화했다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文,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되게 하겠다” 한-인도 정상회담 직후 열린 이날 CEO 라운드 테이블에는 문 대통령과 함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참석했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인도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계획을 밝히며 모디 총리에게 “수출 세제 지원과 무역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은 수소전기차 등 미래자동차 산업 협력을 위한 부품관세 인하를 건의하는 등 양국 재계 인사들의 요구 사항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이 현지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들이 모디 총리에게 직접 애로사항을 건의하고 지원을 당부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해결사’로 나선 셈이다. 문 대통령은 양국 재계 인사들의 발언에 하나하나 답변하며 “한국과 인도가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협조하겠다. 한국 정부는 기업의 애로사항에 대해 항상 들을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모디 총리도 국내 대기업의 요청에 직접 답변했다. 문 대통령 취임 후 해외 순방에서 열린 기업인 행사에 외국 정상이 함께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구 13억 명의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내수 시장을 가진 인도 공략에 공들이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에 확실한 힘을 실어준 것이다. 두 정상은 양국 주요 기업인이 참석한 이 행사를 위해 정상 오찬 시간도 30분 줄일 만큼 큰 의지를 보였다. 문 대통령이 이번 인도 방문에서 경제 분야에 집중한 것은 미중 무역갈등 속에 인도의 경제적 중요성이 매우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부흥’을 핵심 경제정책으로 내건 모디 총리 역시 문 대통령의 순방을 통해 국내 대기업과 획기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 이재용-마힌드라 연쇄 면담으로 진보·보수 고려 이런 문 대통령의 기업 행보 무대가 단순히 인도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경제정책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하지만 이번 행보가 집권 2기를 맞아 기업과의 소통 강화를 통한 규제혁신과 혁신성장 강조의 연장선에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기에는 문 대통령의 핵심 경제 공약인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주도성장’이 대기업의 지원 사격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깔려 있다. 문 대통령이 전날 이 부회장을 별도로 만나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달라”고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서도 “한국에 더 많이 투자하고 노사 화합을 통해 성공하는 모델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틀 연속 ‘일자리와 투자’를 강조한 것이다. 마힌드라그룹은 쌍용자동차의 최대 주주다. 이에 마힌드라 회장은 “지금까지 쌍용차에 1조4000억 원을 투자했는데 앞으로 3, 4년 내에 1조3000억 원 정도를 다시 투자하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쌍용차 해고자 문제를 언급하며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를 고려하는 행보를 보였다. 먼저 마힌드라 회장에게 다가간 문 대통령은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는 노사 간 합의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쌍용차 문제를 직접 언급해 잇따른 친기업 행보로 정부 경제정책이 ‘우클릭’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일부 지지층의 불만을 달랜 것이다. 또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면담이 ‘삼성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진보 진영 일각의 지적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일은 일이고, 재판은 재판”이라며 “이번 순방이 특정 기업 관련 재판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뉴델리=한상준 alwaysj@donga.com / 문병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