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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미취학 아동의 성(性) 관련 사건을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경기 성남시 어린이집 사건에서 가해 아동 부모와 피해 아동 부모를 중재하거나 아동 심리 상담 등 사후 관리할 수 있는 기관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5일 보건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복지부는 3일 여성가족부와 긴급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 일반적인 성폭력 사건은 여성가족부의 해바라기센터에서, 아동학대는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전담한다. 초등학교부터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운영된다. 하지만 성남 사건의 피해 부모는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어린이집 내에서 해결하기도 어렵고, 만 10세 이하 아동은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어서 경찰도 개입이 힘들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군구 단위로 아동심리 전문가 등을 포함한 전담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피해 아동뿐 아니라 가해 아동의 심리 치료도 포함시키고, 가정에서의 성폭력 예방 교육 매뉴얼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내년 3월부터 소매점에서 개인별 화장품을 직접 만드는 ‘맞춤형 화장품’ 제도가 세계 최초로 시행된다. 화장품 제조자 표기 의무도 사라진다. 보건복지부는 5일 이 같은 내용의 ‘K뷰티 미래 화장품산업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기준 세계 4위인 화장품 수출 규모(약 7조5000억 원)를 한 계단 끌어올리고 화장품 관련 일자리를 2022년까지 7만3000개 늘리는 것이 목표다. 맞춤형 화장품은 판매점에서 피부 측정과 상담 제조 테스트를 거쳐 고객이 원하는 화장품을 만들어주는 제도다. 얼굴형에 맞는 마스크팩도 제조할 수 있다. 이를 담당할 조제관리사 제도가 신설되면 신규 일자리 5000개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업계 요청을 받아들여 제조사 표기 의무도 삭제한다. 그동안 화장품 용기에 제조원이 노출돼 해외 경쟁사가 제조사와 직접 계약해 유사 제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수출에도 타격이 됐다. 신기술 및 기초 소재 연구개발(R&D) 투자도 확대한다. 세계 수준 대비 86.8%인 국내 기술 수준을 2030년까지 95%로 높이고, 일본 원료 수입 비중을 지난해 23.5%에서 18%로 낮출 방침이다. 이를 위해 R&D 분야에 내년에 77억 원, 이후 매년 200억∼30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20대의 절반가량은 결혼할 생각이 없고, 10명 중 6명은 출산을 원치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보건복지협회는 4일 ‘청년세대의 결혼과 자녀, 행복에 대한 생각’을 주제로 한 저출산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대 미혼 남녀 각각 500명씩 온라인 설문조사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저출산과 고령화 극복 과제를 연구하는 사단법인으로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전신이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9.3%는 ‘결혼하고 싶지 않은 편’이라고 답했고 8%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다. 특히 여성의 57%가 결혼에 부정적이었다. ‘꼭 결혼하겠다’는 응답은 11%로 남성(26.4%)의 절반에 그쳤다. 그 이유로는 ‘양성불평등 문화’(30.5%),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다’(29.1%) 등을 들었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응답은 56.9%에 달했다. 특히 여성의 71.2%가 출산에 부정적으로 답해 남성(42.6%)과 인식차가 컸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이유로는 ‘우리 사회가 아이를 키우는 데 적합하지 못하다’가 36.4%로 가장 많았고, 24.1%는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비혼(非婚)이나 혼자 사는 것에 47.8%가 긍정적이라고 답해 부정적 의견(6.9%)과 큰 차이를 보였다. 60.3%는 동성혼을 찬성했으며 혼인관계 외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내용의 생활동반자법(가칭)에 69.1%가 찬성했다. 신언항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은 “결혼과 출산에 대한 청년층의 기치관이 크게 변하고 있지만 사회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양성평등 문화를 정착시키고 양육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아침에 일어나거나 옆으로 누울 때 하늘이 빙빙 도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석증(耳石症)이 의심되는 증상이다. 2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이석증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2014년 30만3656명에서 지난해 37만2654명으로 연평균 4.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환자가 26만4539명으로 남성의 2.4배로 집계됐다. 이석증은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귓속 전정기관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한 돌이 반고리관을 자극해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질병이다. 이석증의 절반은 교통사고, 낙상 등 외부 충격을 받았거나 난청 등 귀 질환을 앓을 때 발생한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특별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이석증 환자가 골감소증과 골다공증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비타민D 부족이 이석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중장년 여성들이 이석증에 많이 걸리는 이유다. 지난해 50대 이상 여성의 1.8%, 40대 여성의 1%가 이석증 치료를 받아 전체 평균(0.7%)보다 발병률이 높았다. 정준희 건보공단 일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폐경기 후 호르몬 변화로 골밀도가 감소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경기 성남시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는 5세 여자 어린이가 같은 반 남자 어린이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피해자 아버지라고 밝힌 A 씨가 ‘아동 간 성폭력사고 시 강제력을 가진 제도를 마련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A 씨는 “제 딸은 어린이집에서, 그리고 아파트 단지의 어두운 자전거 보관소에서 같은 반 남자아이에게 강제추행을 당해왔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이어 “가해자 부모, 아이, 가해자와 동참해 피해자를 둘러싼 3명의 아이, 아이의 고통을 무시해버리고 무마하려 한 어린이집 원장과 선생을 반드시 처벌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청원에는 2일 오후 7시 현재 14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어린이 부모 측은 “부풀려진 사실이 있다”며 허위사실 유포와 관련해 법적 대응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 어린이 측 변호인은 “법률적인 검토를 마친 뒤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성남 어린이집 성폭력 사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의에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는데 과도하게 표출됐을 때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박 장관은 이어 “어른이 보는 관점에서의 ‘성폭력’으로 봐서는 안 되고 사실 확인 후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논란이 일자 복지부는 “전문가의 일반적인 의견을 인용한 것”이라며 “피해 아동과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성남시,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성남=이경진 lkj@donga.com / 박성민 기자}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남모 씨(79)는 지난달 13만8000원이 찍힌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받고 한숨을 내쉬었다. 2년 전 8만9000원 정도였던 건보료가 55%나 올랐기 때문이다. 79m²(약 24평)짜리 아파트의 공시가격이 최근 2년간 크게 오른 영향이었다. 김 씨는 한 달에 아파트 관리비와 식비, 경조사비 등으로 100만 원 이상을 쓰지만 수입은 국민연금 약 30만 원과 연금보험에서 나오는 15만 원이 전부다. 김 씨는 “모자란 돈은 은퇴 전 모아둔 것에서 조금씩 헐어 쓰고 있다”며 “자식들 결혼시킨다고 퇴직금을 많이 쓴 터라 수입의 3분의 1을 건보료로 내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고 하소연했다.○ 공시가 인상, 피부양자 탈락 ‘이중고’ 노년층은 은퇴 후 소득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건보료 부담은 오히려 늘어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피부양자 기준이 강화된 데다 올해 건보료 산정의 기준이 되는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서울 기준으로 14.02% 오르면서 건보료 폭탄을 맞은 은퇴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소득 외에 재산에도 건보료가 부과된다. 직장가입자는 보험료 절반을 회사가 부담하지만 지역가입자는 전액을 본인이 내야 해 보험료 인상의 부담이 더 크다. 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부과된 지역가입자 건보료는 가구당 평균 7.6% 올랐다. 전체 지역가입자 약 758만 가구 중 258만6380가구의 건보료가 올랐다. 집 한 채 외에 별다른 소득이 없는 은퇴자들에게는 건보료 인상이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도 별도로 내기 때문이다. 지난달 건보료가 17만3420원에서 20만810원으로 15.8% 오른 김모 씨(70)는 “40년 동안 산 주택의 공시가격이 올라 피부양자에서 탈락했다”며 “공시가격이 급등한 이유를 자치구에 문의했더니 ‘이의가 있으면 행정소송을 하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애로를 토로했다. 건보료 부담을 피하기 위해 지역가입자 전환을 최대한 미루는 은퇴자들도 생겨나고 있다. 2년 전 군(軍)에서 전역한 김모 씨(61)는 곧바로 4대 보험에 가입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월 300만 원이 넘는 연금 소득 때문에 건보료를 40만 원 이상 내야 할 처지였기 때문이다. 최근 피부양자에서 탈락한 70대 김모 씨도 요양보험사 자격을 취득해 직장가입자가 됐다. ○ 소득 파악 투명해져도 재산 보험료는 그대로 재산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것은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가 열린 1989년의 잣대다.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의 정확한 소득 파악이 어렵다는 이유로 집과 차량에도 건보료를 매겼다. 하지만 2009년 50%였던 소득 파악률이 2017년 92% 수준까지 올랐는데도 개선이 더디다. 재산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뿐이다. 일본은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만 운영하고 있고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정부도 2017년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발표하며 재산보다 소득 중심으로 부과 기준을 바꾸고 있지만 가입자의 체감도는 낮다. 재산에 부과하는 건보료의 비중은 아직 총 보험료의 45.5%나 된다. 2022년 2단계 부과 체계 개편안이 적용되면 건보료 부담을 호소하는 노년층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연금이나 금융소득 등 연소득이 2000만 원을 넘거나 재산이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 기준 3억6000만 원 초과이면서 연소득이 1000만 원을 넘으면 피부양자에서 탈락돼 지역가입자가 된다.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는 “60대 이상은 자산의 85% 정도가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쏠려 있기 때문에 노후의 보험료 부담이 더 크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역가입자들이 느끼는 형평성 문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건보료는 현금성 자산의 변동에 맞춰 부과하는 게 맞다”며 “건보료 인상 상한을 물가상승률로 맞추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재산 보유가 아닌 양도 차익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도 은퇴자들의 불만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은 일정 수준의 재산과 소득이 있는 노년층이 보험료를 더 내는 것은 고액 자산가들의 무임승차를 막아 건보료 부과의 형평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2022년 7월부터는 재산보험료 공제 한도가 과세표준 기준으로 5000만 원으로 확대되는데 이를 1억 원 정도까지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박성민 min@donga.com·위은지·전주영 기자}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막고 국민의 노후 보장 강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약 2년간 추진해 온 국민연금 개편이 20대 국회에서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국회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에게 인기가 없는 연금보험료 인상을 회피하면서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정부도 지난해 단일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국회로 공을 넘겨 연금개편 지연을 자초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5일 부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올) 9월에는 국회의원들 마음이 60%는 국회, 40%는 지역구에 가 있었는데 10월, 11월이 되니 95%가 지역구에 가 있다”며 “정책 이야기를 해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금 국민연금 개편 단일안을 정부가 국회에 제안해도 실효성이 없다”며 “결국 현실적으로 (내년 6월) 21대 국회가 구성된 뒤 본격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내년 6월이면 차기 대선이 2년도 남지 않는 시점이어서 정부가 보험료율(월 소득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율) 인상이 불가피한 연금개혁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표심을 고려하면 현 정부로서는 국민 부담이 커지는 연금개편 논의를 다음 정권으로 미루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연금개편의 책임을 다음 국회, 다음 정권으로 미루는 ‘폭탄 돌리기’가 반복될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국민연금 개편 논의가 지지부진한 배경에는 기금 고갈 예상 시점이 수십 년 이후이다 보니 재정 문제를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는 2088년까지 기금 투자 수익률이 평균 4.5% 수준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국민연금 적립금이 2057년에 고갈될 것으로 예측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올 9월 저출산과 고령화 속도, 낮아진 연금 수익률 등을 고려할 때 고갈 시점이 2054년으로 3년 더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보험료율을 1%포인트 높이면 재정 고갈 시점은 2∼4년 늦출 것으로 추산한다. 연금개편이 늦어질수록 미래 세대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연금개혁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교수는 “국민연금 개혁은 장관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사안”이라며 “국가 발전을 제대로 달성하려면 지지율을 비롯해 일정 부분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부산=위은지 wizi@donga.com / 박성민 기자}

“국민연금 개편안을 보완해 줄 수 있습니까?”(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 “여야 의원들과 정부가 같이 심도 있는 토론을 해 보고 싶습니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정부가 먼저 단일안을 제시해 주셔야지요.”(이 의원) 이달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간 이 의원과 박 장관의 질의문답은 최근 1년 동안 국회에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한 국민연금 개편 논의의 축소판이다. 정부와 국회 모두 개편 방향을 상대가 결정해주기만을 기대하며 시간만 허비한 것이다. 국민연금제도가 지속 가능하려면 보험료율(월급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율) 인상이 불가피한데, 누구도 ‘더 내고 덜 받는’ 인기 없는 연금개편을 위해 총대를 메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27, 28일 이번 정기국회의 마지막 법안심사소위를 열지만 국민연금 개편안은 이번에도 심사 대상이 아니다. ○ 국회와 정부 서로 공 떠넘기기 국민연금 개편 과제 중 보험료율 인상은 어느 정부에서나 쉽지 않은 과제였다. 1998년 6%에서 9%로 오른 보험료율은 20년 넘게 그대로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5.9%로 올리는 내용의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6년 보험료율 3.9% 인상안도 국회 반대에 막혔다. 이번 20대 국회도 국민연금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의지가 없었다. 지난해 12월 정부에서 4가지 개편안을 넘겨받았지만 단일안이 아니라며 논의를 거부했다. 올 8월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국민연금개혁특위도 10개월간의 논의를 거쳐 3가지 국민연금 개편안을 내놨다.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로,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5%로 올리는 노후 소득 강화 방안이 다수안으로 제시됐다. 이는 그동안 보험료율 인상에 줄곧 반대했던 노동계가 처음으로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였다. 국회가 다수안을 바탕으로 국민연금 개편을 논의할 수 있었지만 결과는 빈손이었다. 국민연금 개편 지연의 원인을 정부의 미온적 자세에서 찾는 전문가도 많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은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국민연금제도 개선안을 다시 짜도록 지시했다. 보험료율을 12∼15%로 올리도록 한 개선안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국민 노후 보장을 위해 소득대체율은 높이되 보험료는 최대한 덜 올리라는 주문인데, 국민 세금으로 재정을 충당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방안이었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안을 만들어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인기가 없는 정책이다 보니 경사노위와 국회에 책임을 떠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 개편 늦어지는 피해는 미래세대에 연금개혁이 늦어질수록 미래세대의 보험료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자가 전체 국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42.9%에서 2060년 27.3%까지 떨어진다. 반면 수급자 비중은 9.4%에서 37.8%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 가입자 100명이 부담할 연금수급자는 올해 18명에서 2060년 121.7명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올 8월말 현재 708조 원인 적립금의 고갈 시점도 정부 추산(2057년)보다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0.98명까지 떨어진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과 낮아진 기금운용 수익률을 고려할 때 2054년이면 재정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개혁이 미뤄지면 가입자들은 2057년 소득의 약 25%를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할 것으로 본다. 결국 연금개편의 성공 여부는 정부와 국회가 국민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는지가 결정한다. 지난해 1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에 반대하는 국민 의견(45.9%)은 찬성(23.6%)의 약 2배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국회에서 연금개편을 하지 못하더라도 내년 총선 이후 21대 국회가 구성되면 특별위원회를 꾸려 일정 시기 안에 연금 개편을 마무리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균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연금 개혁은 30년, 100년의 장기 계획을 갖고 국민을 끝없이 설득해야 하는 작업”이라며 “내년 총선에서 여야가 4년 임기 또는 일정 기간 안에 개편안을 만든다는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min@donga.com / 부산=위은지 기자}

올해 초 위암 수술을 받고 경기 지역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A 씨(52)는 최근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600만 원 넘는 진료비 청구서를 받아들었다. 몇 달 전만 해도 건강보험이 적용돼 본인부담금만 약 30만 원 냈는데 당황스러웠다. 원무과에서는 “요양병원에 청구하면 건강보험 적용분을 돌려준다”고 했지만 당장 약값과 재활치료비 내기도 빠듯한 A 씨에게 환급까지의 2, 3개월은 너무 길게 느껴진다. 최근 요양병원에 입원한 암 환자들이 외래 진료비 부담 때문에 퇴원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이달 1일부터 요양병원 환자들이 다른 의료기관에서 진료 받을 때 요양급여의뢰서가 없으면 진료비를 전액 부담하는 건강보험요양급여규칙이 시행되면서다. 의뢰서가 있어도 우선 진료비를 전액 내야 한다. 이 진료비 중 환자가 부담하는 5%를 제외한 나머지는 자신이 입원한 요양병원을 통해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받으려면 이전에는 없어도 됐던 수백만 원이 필요해졌다. 이 부담을 지기 어려운 환자들이 요양병원을 나간다. 건강보험 혜택은 그대로인데 왜 절차만 까다로워졌을까. 정부는 요양병원에서 발생하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요양병원 입원 환자들은 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아도 자신이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걸 알리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요양병원 입원과 외래 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가 중복 지급되는 일이 많았다. 이는 요양병원이 진료, 검사 등 개별 진료행위에 따라 수가(酬價)를 받는 행위별 수가제가 아니라 환자의 입원일수(日數)만큼 정해진 금액을 받는 정액 수가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받는 돈이 정해져 있으니 환자가 다른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는 게 요양병원 수익에 도움이 되는 구조다. 정부가 이런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칼을 빼든 것은 칭찬할 일이다. 다만 장기간 비싼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암 환자의 사정을 좀 더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최근 수도권의 한 요양병원에서는 환자 30여 명이 원치 않게 퇴원했다. 집에서 통원치료를 하면 예전처럼 본인부담금 5%만 내고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다. 올 6월 보건복지부가 시행규칙을 개정했을 때 이런 혼란은 예상됐다. 하지만 복지부는 제도가 시행돼 암 환자들의 반발이 커진 뒤에야 암 치료를 위한 외래 진료는 예외로 하겠다는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책은 취지가 좋더라도 디테일이 부족하면 환영받기 힘들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보건의료정책은 더욱 그렇다. 2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인 암 환자와 가족들이 ‘유전(有錢)입원, 무전(無錢)퇴원’을 외친 이유를 되새겨 봐야 한다. 박성민 정책사회부 기자 min@donga.com}

우리나라 초미세먼지(PM2.5)의 32%(연평균)는 중국에서 넘어오는 것이라는 한중일 환경당국의 첫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국 정부가 자국 미세먼지의 한국 영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은 2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동북아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 국제공동연구’ 요약 보고서를 공개했다. 한중일 3국 환경당국 연구진은 각국의 최신 초미세먼지 배출량을 토대로 상호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연구 대상지는 한국 3개 도시(서울 대전 부산), 중국 6개 도시(베이징 톈진 상하이 칭다오 선양 다롄), 일본 3개 도시(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다. ○ 한국 국내 요인 51%, 중국 영향 32% 3국 주요 도시의 초미세먼지 국내외 영향을 분석한 결과 2017년 기준으로 중국 배출원이 우리나라 미세먼지에 미치는 영향은 32%, 일본에 주는 영향은 25%로 나타났다. 자국에서 발생한 미세먼지는 중국 91%, 일본 55%, 한국 51%로 조사됐다. 반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기오염 물질이 중국에 주는 영향은 각각 2%, 1%에 그쳤다. 중국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넘어오는 미세먼지는 상당한 수준인 반면 한국과 일본에서 중국으로 가는 미세먼지는 미미한 것이다. 또 2000∼2017년 모니터링 결과 3국 모두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초미세먼지는 모두 하락세인 것으로 확인됐다. 2015년 대비 지난해 초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는 한국은 12%, 중국은 22% 하락했다. 일본은 2015년 대비 2017년 농도가 12% 떨어졌다. 당초 이번 연구 보고서는 지난해 6월 한중일 환경장관회의에서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중국 측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올 2월 조명래 환경부 장관과 중국 리간제(李干杰) 생태환경부장(장관)이 이달 23∼24일 일본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환경장관회의 이전에 발간하기로 합의하면서 발표가 결정됐다. 김철희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수치가 낮아도 장기간 일정 수준의 초미세먼지에 노출되는 것도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만큼 중국의 연평균 기여율을 공식화한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 고농도 때 영향은 중국 반대로 무산 이번 연구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점은 고농도 시기에 중국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지 규명하는 것이었지만 중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장윤석 국립환경과학원장은 “당초 3국이 합의한 공개 수준은 연평균 기여율 수치”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고농도 시기가 아닌 연간 평균치만 공개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 원장은 “어디까지 공개하느냐를 놓고 중국 측의 거부가 심해 설득하고 끌어낸 것이 이 정도”라며 “중국이 연평균 농도를 인정하고 공개한 것도 큰 의미”라고 말했다. 그간 환경부는 중국 등 국외 영향에 대해 ‘평상시는 30∼50%, 고농도 시기에는 60∼80%’라고 설명해 왔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도 올 3월에 “2월 중국 춘제(春節) 폭죽 행사 후 이틀 뒤면 우리나라 대기 중 연소산화물 물질이 최대 13배 늘어났다”고 밝혔다. 7월에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국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9.6%가 ‘중국 등 국외 영향’을 꼽았다. 그러나 중국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주로 침묵했다. 리 부장이 2월 한중 환경장관회의에서 “중국의 대기오염이 한국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대해 부인한 적이 없다”는 말을 한 것이 전부였다. 환경부는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초미세먼지 연구와 예보 분야에서 중국과의 접점을 찾아간다는 방침이다. 한편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이 20일 발표한 ‘고령화와 초미세먼지 건강 영향’ 보고서는 초미세먼지 탓에 2030년 서울에서 만 65세 이상 2133명이 기대수명보다 일찍 숨질 것으로 추산했다. 2015년의 1162명보다 83.6%(971명) 늘어났다. 이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2015년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해 추산한 결과다. 2015년 서울의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m³당 23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인 m³당 10μg을 초과했다.강은지 kej09@donga.com·사지원·박성민 기자}
“중국에서 발생한 페스트가 한국까지 전염될 가능성은 없나요?” 최근 중국에서 페스트 확진을 받은 환자가 3명으로 늘면서 이 같은 불안감을 보이는 시민이 적지 않다. 우리 보건당국은 “국내 전파 가능성이 희박해 과도한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당부하고 있다. 페스트는 여전히 치사율이 높은 병이지만 조기에 발견하면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하다. 페스트는 주로 페스트균을 가진 쥐벼룩에게 물려서 감염된다. 또는 페스트균에 감염된 야생동물과 접촉하거나 사람의 콧물, 가래 같은 분비물을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다. 페스트의 80∼90%는 림프샘 페스트다. 이때 치료가 늦어지면 폐 페스트나 패혈증 페스트로 발전한다. 패혈증 페스트로 진행되면 신체 일부가 괴사해 까맣게 변해서 흑사병(黑死病)으로 불리게 됐다. 한국은 아직 페스트균이 발견된 적이 없는 페스트 청정구역이다. 올 상반기 페스트 유행지역인 마다가스카르를 다녀와 발열 증세를 보인 의심 환자가 있었지만 페스트는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페스트는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전 대륙에서 발생하고 있다. 2010∼2015년 3248명이 페스트에 걸려 584명이 숨졌다. 2017년에는 마다가스카르에서 2417명의 환자가 발생해 209명이 숨졌다. 중국에서는 2010년부터 올해 현재까지 환자 13명이 발생해 이 중 5명이 사망했다. 페스트는 예방 백신이 없다. 하지만 증상이 나타난 뒤 대체로 40시간 내, 폐 페스트는 24시간 내에 항생제를 투여하면 치료할 수 있다. 잠복기(1∼7일)에는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때 치료받지 않았을 때 림프샘 페스트의 치명률(致命率·특정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은 50% 이상, 폐와 패혈증 페스트는 30∼100%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치사율은 각각 5∼15%, 30∼50%로 낮아진다. 보건당국은 중국의 페스트가 한국으로 전파될 확률은 희박하다고 판단한다. 중국의 페스트 확진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에게서 추가 의심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고 이들과 접촉한 한국인도 현재로서는 없다. 페스트가 발병한 네이멍구(內蒙古)와 한국 사이에 직항 노선도 없다. 곽진 질병관리본부 신종감염병대응과장은 “국가 생물테러에 대비해 100만 명분의 항생제가 비축돼 있어 조기에 발견하면 즉시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페스트 유행 지역에서 귀국할 때는 야생동물과 접촉해선 안 되며 귀국 후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질병관리본부(1399)나 보건소에 신고해야 한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초중고교생 5명 중 1명(20.8%)은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았다. 32.3%는 자퇴까지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자녀의 이런 생각을 알고 있다는 부모는 각각 11.2%, 11.4%에 그쳤다. 아동복지전문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18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다. 유엔아동권리협약 30주년(11월 20일)을 맞아 부모와 자녀 2187쌍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다. 부모들은 자녀가 고민을 털어놓을 대상으로 어머니(58.1%)를 가장 많이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음은 친구(19.4%)였다. 아버지를 택할 것으로 기대한 응답은 10.3%에 그쳤다. 자녀들의 생각은 달랐다. 고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어머니를 찾겠다는 의견은 37.9%로 부모의 기대와 차이가 컸다. 그 대신 친구를 선택한 답변이 37.8%로 비슷했다. 아버지(5.8%)를 꼽은 자녀는 ‘없다(8.2%)’보다 적었다. 소통이 원활한 가정에서는 우울감을 느끼는 자녀가 10.8%에 불과했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에선 26.6%나 됐다. 이는 진로나 생활 태도 등 부모의 지나친 간섭의 영향도 커 보인다. 이성교제와 스킨십에 있어서도 부모와 자녀의 생각은 큰 차이를 보였다. 부모들의 44.7%와 79.1%는 자녀의 이성교제와 스킨십에 반대했다. 하지만 자녀들은 ‘괜찮다’는 응답이 각각 73.6%, 61.1%로 높았다. 이필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부모와 자녀의 단절을 막으려면 자녀를 보호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며 “자녀와 소통이 활발할수록 자녀의 행복감과 자아 존중감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사랑의 매’는 아직도 효과적일까. 체벌이 자녀 훈육에 도움이 된다는 부모의 기대와 달리 체벌받은 아이들은 우울감을 더 많이 느끼고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 등 역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아동복지전문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19∼25일 아동 학대 예방 주간을 맞아 학부모와 초중고교생 자녀 2187쌍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이 조사에서 부모에게 맞아본 아동의 15.3%는 ‘평소 죽고 싶은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이는 체벌 경험이 없는 아동(7.7%)의 거의 2배에 달했다. ‘슬프고 우울하다’는 응답도 체벌 경험이 있는 집단(28.7%)이 없는 경우(16.9%)의 약 2배였다. 부모의 체벌 방식과 이유를 납득하는 자녀는 37%에 불과했다. ‘부당한 체벌에 억울하고, 부모가 감정적으로 체벌했다’(37%), ‘체벌 순간만 벗어나고 싶다’(17.5%) 등 부정적 답변이 63%였다. 8.5%는 ‘더 엇나가거나 누군가에게 분풀이하겠다’고 답해 극단적인 적의를 드러냈다. 체벌은 아동 학대의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정익중 이화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이 체벌에 둔감해지면 (부모는) 더 큰 폭력을 쓰게 되고 결국 아동 학대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김모 군(12·경북 포항시)은 2년 전 겪은 일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아버지는 공부를 안 한다는 이유로 김 군을 외딴 마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2시간 거리인 집까지 혼자 걸어오게 시켰다. 오후 10시 가까운 시간이라 막차도 끊긴 때였다. 그 후로도 김 군의 집에서는 고성과 폭행이 반복됐다. 지켜보다 못한 이웃들은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김 군은 “얼마나 잘못해야 벌을 받는지 모르는 게 가장 싫었다”고 말했다. 자녀를 체벌하는 부모들은 “내 자식 잘되라고 매를 드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속내는 다른 경우가 많다. 자녀의 말과 행동을 고친다는 명목 아래 그저 빠르고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17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아동 학대 예방 주간(19∼25일)을 맞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설문 대상 부모의 절반가량(50.3%)이 ‘체벌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10명 중 3명(29.2%)은 여전히 ‘대화보다 체벌이 효과적’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체벌이 ‘훈육’에 그치지 않고 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달 대구에서 아들(3)의 머리를 벽에 부딪쳐 숨지게 한 아버지는 “싸우는 걸 훈계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15일에는 인천에서 20대 미혼모가 딸(3)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빗자루와 주먹으로 때려 숨지게 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체벌이 가져오는 ‘폭력의 대물림’을 우려했다. 전남아동보호전문기관 안지현 팀장은 “체벌하는 부모의 상당수는 ‘나도 그렇게 자랐다’고 항변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 아동이 동생을 상대로 부모의 체벌을 그대로 반복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체벌은 득보다 실이 큰 훈육법으로 여겨진다. 2016년 미국 텍사스대 엘리자베스 거쇼프 교수는 체벌의 효과와 관련해 1961∼2013년 진행된 111건의 연구를 분석했다. 유의미한 79건의 연구 중 78건에서 체벌이 아동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체벌을 받는 아동일수록 인지 능력과 자존감이 낮고, 반사회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소아과학회도 “체벌은 아동의 뇌 발달을 저하시킨다”며 체벌의 부작용을 경고했다. 현재 스웨덴 등 54개국이 자녀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체벌 금지를 위해 민법 915조 개정을 추진 중이다. 체벌을 정상적인 징계(훈육)의 범위를 넘어선 행위로 규정하는 것이다. 강지영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박성민 min@donga.com·위은지 기자}
중국에서 흑사병(페스트) 공포가 확산되면서 최근 중국을 다녀온 여행객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 보건당국은 잠복기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인의 감염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질병관리본부는 14일 “흑사병의 잠복기(1∼7일)를 감안할 때 한국 여행객들이 중국에서 흑사병에 감염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중국의 흑사병 확진 환자 2명이 이달 3일부터 격리 조치됐기 때문에 추가 감염자가 있다면 이미 증상이 나타났을 것이라는 얘기다. 흑사병은 사람의 체액이나 공기를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다. 흑사병은 설사 걸린다 하더라도 감염 이틀 안에 항생제를 투여하면 치료할 수 있다. 국내에는 항생제가 충분히 비축돼 있다. 반면 의료 시스템이 낙후된 국가에선 제때 치료받지 못해 치사율이 높다. 지역별로 림프절 흑사병의 치사율은 50∼60%, 폐 흑사병은 30∼100%에 이른다. 구토 오한 객혈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부부 사이인 중국 흑사병 환자 중 1명은 위독한 상태다. 남편이 지난달 25일 감염됐고, 간호하던 부인도 전염됐다. 중국 보건당국에 따르면 확진 전 환자들과 접촉했던 이들은 감염 예방 및 진단을 위해 격리된 상태로 현재까지 의심 증상이 나타난 환자는 없다. 부부가 떠난 뒤 네이멍구(內蒙古)에서도 추가 발병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흑사병으로 2014년 3명, 2016년과 2017년, 2019년 각각 1명이 숨졌다.박성민 min@donga.com·임보미 기자}

“한국의 신약 접근성은 세계 31개국 중 19위에 불과합니다. 신약을 더 손쉽게 처방받을 수 있어야 환자 생존율을 높이고, 국민과 정부의 의료비 부담을 낮출 수 있습니다.” 세계적 보건경제학자인 프랭크 리텐버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68·사진)는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해외 신약을 국내에 도입하는 데 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약 처방이 더 활발하게 이뤄지면 의료비뿐 아니라 근로시간 손실도 줄어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리텐버그 교수는 새로운 의약품 출시 후 특정 국가에서 상용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신약 접근성’으로 규정했다. 한국은 31개국 중 19위였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환자들에게 처방된 의약품 중 2005년 이후 출시된 신약의 비중은 2.1%에 그쳤다. 일본이 4.3%로 가장 높았다. 조사 대상 국가의 평균은 2.6%였다. 그가 신약 접근성을 강조하는 건 신약이 환자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리텐버그 교수는 “한국에서 2003∼2012년 출시된 신약의 영향으로 10년 동안 전체 환자의 기대수명은 1년, 암 환자의 기대수명은 2.78년 늘었다”고 말했다. 2015년 환자 기대수명은 2005년보다 4년 늘었는데, 이 가운데 1년이 신약 효과라는 설명이다. 신약 효과는 특히 암 치료 영역에서 두드러졌다. 리텐버그 교수는 “36개국에서 19종류의 암 사망률을 비교한 결과 신약 접근성이 높았던 상위 9개국의 환자 사망률이 접근성 하위 9개국보다 15%나 낮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나라별 보건의료비 지출, 교육 수준, 실업률 등의 변수를 최대한 통제해 통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것이다. 중증·희귀질환 환자들은 신약을 더 빨리, 더 낮은 가격으로 처방받게 해달라고 호소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해야 하는 정부는 급여화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리텐버그 교수는 “한국은 2017년 한 해 신약 출시로 입원 일수가 총 5000만 일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한국 정부가 이런 신약의 비용 효과를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령층 진료비가 건강보험 급여의 40%를 초과하는 한국 의료비 지출 구조도 신약 접근성을 더 높여야 하는 이유로 꼽았다. 리텐버그 교수는 “어떤 신약을 급여화할 것인지 정부가 빨리 의사결정을 내리고, 신약에 대한 환자의 본인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중국에서 쥐벼룩을 매개로 전염되는 흑사병(페스트) 환자가 발생해 한국 보건당국이 국내 유입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질본)는 13일 중국에서 발생한 흑사병에 대한 신속위험평가를 실시한 결과 국내로 전염될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은 4단계 중 가장 낮은 ‘관심’ 단계를 유지했다. 현지에서 추가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국내에 흑사병 환자 치료를 위한 항생제가 충분히 비축돼 있다는 판단에서다. 흑사병은 감염된 지 2일 안에 항생제를 투여하면 완치가 가능하다. 앞서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인민정부는 12일 “네이멍(內蒙古)구 자치구 시린궈러(錫林郭勒) 지역 (출신) 2명이 폐 흑사병으로 확진됐다”고 밝혔다. 질본은 흑사병 유행지역을 방문할 때는 쥐나 야생동물 접촉에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발열 두통 구토 등 흑사병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도 피해야 한다. 현재 페스트는 마다가스카르 전 지역과 콩고민주공화국 일부 지역에서 유행 중이다. 중국에서는 2009년 흑사병 환자 12명이 발생해 3명이 숨졌다. 국내에는 유입된 적이 없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경기 하남시에 사는 초등학생 정모 군(10)은 밤 12시 전에 잠드는 날이 거의 없다. 영어와 수학, 피아노 학원에 독서토론 준비까지 마치면 대개 오후 10시가 넘는다. 침대에서 한 시간 남짓 스마트폰으로 게임할 때가 거의 유일한 자유시간이다. 정 군은 “‘피아노와 독서는 공부가 아니라 취미’라는 엄마가 야속하다”고 말했다. 정 군의 초등학교 1학년인 동생은 학교에서 줄넘기등급제를 한다고 해서 줄넘기 학원에 다닌다. 이처럼 부모가 짠 시간표대로 하루를 보내는 한국 초등학생은 다른 나라 아동보다 스스로를 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국제아동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국제 아동 삶의 질 조사(ISCWeB)’에 참여한 22개국 아이들을 비교한 결과 한국 아동의 ‘주관적 행복감’은 19위(84.4점)에 그쳤다. 알바니아(97.2점) 그리스(94.1점) 몰타(91.7점)가 1~3위였고, 대만(84.0점) 네팔(83.2점) 베트남(82.4점)만 한국보다 낮았다. 한국 3171명 등 40개국에서 만 10세 아동 약 9만 명이 참여한 이번 조사는 데이터 취합이 끝난 22개국을 비교했다. 연구진은 돈, 시간 사용, 학습, 관계, 안전한 환경, 자신에 대한 만족 등 6개 지표로 행복지수를 비교했다. 한국 아이들은 시간 사용에 대한 만족감이 22위로 가장 낮았다. 여러 가지 학원 수강 등 높은 사교육 부담이 가장 큰 원인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초등학생의 82.5%가 사교육을 받았고 주당 사교육 시간은 평균 6.5시간이었다. 한국 아동은 상대적으로 집과 학교에서도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안전한 환경 지표는 16위였다. 이 지표의 세부항목인 가정 및 학교 안전과 학교 내 괴롭힘도 각각 18위로 하위권이었다. 특히 외모와 건강 등 자신에 대한 만족감은 20위로, 자존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책임자인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봉주 교수는 “경제적 풍요로움보다 자존감과 대인관계에 대한 만족감이 아동의 행복을 더 크게 좌우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경남 창원에 사는 박모 씨(66·여)는 1년에 서너 번씩 서울행 KTX를 탄다. 2년 전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서울아산병원에서 경과도 확인하고 다른 혈관 질환은 없는지 검사를 받기 위해서다. 집 근처에도 대학병원이 있지만 이른바 ‘빅5’로 불리는 큰 병원에서 진료받기를 박 씨와 가족 모두 원했다. 박 씨는 “담당 의사는 건강이 많이 회복됐으니 가까운 병원에 가도 괜찮다고 하는데 건강보험 덕분에 검사 비용 차이가 크게 없어서 계속 다니기로 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넓혀 국민 의료비 부담을 낮추겠다는 ‘문재인 케어’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났다.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면서 박 씨처럼 만족하는 국민이 많다. 큰 병원을 이용하려면 내야 했던 선택진료비가 폐지됐고 각종 초음파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도 건강보험이 부담해 준다. 고도비만 수술, 한방 추나요법, 병원 2·3인실 이용도 건강보험으로 보장되면서 환자 부담은 실제로 줄었다. 하지만 의료 현장의 얘기는 좀 다르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의료 전달 체계를 흔든다” “지속 가능성이 없다” 같은 경고음이 끊이지 않는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돼 서울과 지방의 의료 양극화가 심해졌고 늘어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지 장기 계획이 없다는 얘기다. 현 정부 임기 내 보장성 70% 달성이라는 목표만 좇다 보니 속도와 우선순위를 세밀하게 조정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빈번해진 과잉 진료, 의료 쇼핑 정부는 올 7월 문재인 케어 도입 2주년 성과를 발표했다. 올 4월까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 의료비 6조8000억 원 중 28%(1조9000억 원)를 급여화해 혜택을 본 국민이 연인원 3600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올 상반기 국민 1인당 월평균 급여비는 10만3261원으로 사상 처음 10만 원을 넘었다. 낸 보험료 대비 혜택 받은 급여 비율은 지난해 1.17배까지 꾸준히 올라 2010년 1.19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런 성과 너머의 그늘도 보인다. 자신이 부담할 진료비가 낮아지자 꼭 필요하지 않은 검사나 진료를 받는 과잉 진료는 더 잦아졌다. 병원에서는 “본인 부담금이나 비급여 항목은 실손보험으로 처리하면 된다”며 추가 진료를 권한다. 대형병원은 더 많은 의료행위로 실적을 낸 의사에게 성과급을 주는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 대형병원 전문의는 7일 “병원에 돈을 더 많이 벌어다 줘야 좋은 의사로 평가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는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손해보험업계 상위 5개사의 실손의료보험 청구금액은 올 상반기(1∼6월) 본인부담금 1조4500억 원, 비급여 진료 금액 2조6500억 원이었다. 전년 동기에 비해 각각 14.2%, 6.9% 상승했다. 정부가 의료비 부담을 줄인 것 이상으로 국민 주머니에서 돈이 더 빠져나갔다는 의미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비급여 항목을 줄였더니 새로운 비급여 항목이 창출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며 “보장성을 더 강화해도 정부 목표인 70%에 도달하기 어려울 만큼 비급여 증가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는 “본인 부담이 적다 보니 공동의 재원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와 ‘공유지의 비극’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대형병원은 웃었다’ 지난 2년의 보장성 강화가 상급병원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대형병원은 환자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상반기 전국 42개 상급종합병원 급여비는 5조723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3% 급증했다. 종합병원도 16.8% 증가해 전체 급여비 증가폭(14.4%)을 웃돌았다. 병원은 11.0%, 의원은 12.4% 증가해 대형병원 쏠림이 심화된 것을 볼 수 있다. 홍윤철 서울대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예방의학교실 교수)은 “의료 전달 체계가 왜곡돼 대형병원은 환자가 넘치지만 동네 병의원은 존폐 위기에 놓인 곳이 많다”며 “만성질환 환자의 대형병원 진료를 억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같은 급여비 증가폭은 앞으로 더 가팔라질 확률이 높다. 요즘 의료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내년 도입될 척추 MRI 급여화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직장인과 학생의 상당수가 허리와 목 통증을 호소하는데 척추 MRI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건강보험 지출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허리디스크 환자는 약 198만 명, 척추관협착증 환자는 약 165만 명으로 추산된다. 급속한 고령화도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총 진료비는 31조8235억 원으로 사상 처음 30조 원을 돌파했다. 총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8%였다. 올 상반기 노인 진료비는 17조4575억 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41.6%를 차지했다. 전년 동기 대비(15조97억 원) 16.4%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노인 인구가 20%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2030년에는 노인 진료비 비중이 6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20조 적립금, 2023년 반 토막 건강보험 재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7년 연속 당기흑자를 낸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지난해 1778억 원 당기적자로 돌아섰다. 정부의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따르면 올해 3조1636억 원, 내년 2조7275억 원 등 2023년까지 6년간 9조6932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국민연금처럼 쌓아놓고 굴리는 적립식이 아니라 그해 들어온 보험료 수입만큼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재정 운영 원칙이라는 주장이다. 그동안 과도하게 쌓아둔 측면이 있는 건강보험 재정을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계획된 적자’라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설명이 절반만 맞는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말 기준 약 20조 원의 누적 적립금은 2023년이면 반 토막 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이후의 재정 조달 계획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법으로 정한 국고 지원 규정을 지킨 적이 없다. 현행법은 매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의 20%(14%는 국고로, 6%는 담뱃세로 조성)를 건강증진기금으로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2007∼2019년 국고 지원율은 15.3%에 그쳤다. 인구 구조 변화를 감안하면 건강보험 재정 전망은 더 비관적일 수 있다. 고령인구는 급증하고 보험료를 납부할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계속 감소해 보험료 수입으로는 급여비 지출을 감당하기 버겁다. 이상이 교수는 “재정 안정을 위해서는 올해 6.46%인 건강보험료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2∼13% 수준까지 올려야 하는데 정부가 국민에게 이를 설득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장성 강화라는 생색은 이번 정부에서 내지만 그 부담은 미래 세대가 짊어지게 될 우려가 큰 것이다.○ ‘과잉 진료 근절’이 지속 가능에 필수 전문가들은 문재인 케어가 지속 가능하려면 진료비 지불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과잉 진료의 원인이 되는 행위별 수가(酬價) 제도 개선이 핵심이다. 행위별 수가 제도는 진료나 수술 같은 개별 의료행위마다 서비스 비용을 책정하는 것이다. 병원이 의료행위를 많이 할수록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다. 환자도 모르는 새 불필요한 진료 항목이 추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입원비와 처치료, 약값을 하나로 묶어 미리 가격을 정하는 신(新)포괄수가제 확대가 관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현재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민간과 공공을 합쳐 68곳뿐이다. 환자들을 동네 병의원으로 이끄는 유인책도 늘려야 한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현재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의사는 원하는 처방을 마음대로 내리고, 환자도 가고 싶은 병원을 골라서 가는 것이 당연시되는 구조”라며 “서울과 대형 의료기관 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동네 병의원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강화하는 주치의 제도 도입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정책사회부 기자 min@donga.com}

지난해 넘어지면서 어깨 관절을 다친 김모 씨(70·여)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집 근처에도 척추·관절 전문 병원이 있지만 아들이 “병원비 차이가 크지 않다”며 큰 병원을 권했다. 지난해 7월부터 대형병원 2, 3인실 입원비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진료비 부담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동네 병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비용이면 큰 병원을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를 비롯해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급증한 것은 이처럼 대형병원의 문턱이 낮아진 영향이 크다. 국민 의료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문재인 케어’가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늘리고 동네 병·의원부터 상급종합병원까지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를 흔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대형병원 쏠림, 과잉 진료 부작용 6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2018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 급여비는 58조7489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9% 늘었다. 증가폭은 역대 최대치다. 2016년에도 10.8% 급증했지만 이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의료 이용이 일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임신·출산 지원 등 현금으로 나가는 돈과 건강검진비 등을 더하면 건강보험공단 지출은 63조1683억 원으로 사상 처음 60조 원을 넘었다.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범위가 넓어지자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환자를 진료실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낳았다. 지난해 11월부터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가벼운 두통에도 MRI 촬영을 요구하는 환자가 늘었다. 서울의 또 다른 대학병원은 MRI 검사를 받으려면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한다. 이 병원 관계자는 “입원환자들은 외래환자 예약을 피해 새벽에 검사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과잉 의료’는 급속한 고령화와 맞물려 건강보험 재정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인 1인당 의료비는 일반 성인 의료비의 2.5∼3배다. 지난해 총인구의 13.9%를 차지한 노인 인구가 쓴 의료비는 총 진료비의 40.8%나 됐다. 고혈압 등 12개 만성질환 환자의 진료비가 10.1% 급증한 31조1259억 원으로 처음 30조 원을 넘은 것도 건강보험 재정에는 적신호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는 “2030년 노인 인구 비율이 20%가 되면 노인 진료비는 총 진료비의 60%를 넘고, 보험료를 낼 생산가능인구는 연간 30만 명씩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며 “재정 조달 계획이 마련되지 않으면 현 수준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유지하기 벅차다”고 말했다. 실제 2011∼2017년 흑자를 낸 건강보험 재정은 지난해 1778억 원의 당기적자로 돌아섰다. 올해도 3조1636억 원의 큰 적자가 예상된다. 보건복지부가 추산한 2022년까지 적자 규모는 8조6467억 원에 이른다.○ 낸 보험료의 1.17배 돌려받아 지난해 국민 1인당 연평균 건보료는 105만6782원으로 처음 100만 원을 넘었다. 그 대신 1인당 급여로 돌려받은 혜택도 123만8582원으로 크게 늘었다. 보험료 낸 것의 1.17배를 급여로 돌려받은 셈이다. 2010년 1.19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1인당 월평균 입·내원 일수는 1.72일로 전년보다 1.6% 증가했고 하루당 진료비는 7만4084원으로 전년보다 8.1% 올랐다. 건강보험 통계에서도 저출산 여파가 나타났다. 지난해 신생아가 한 명이라도 태어난 분만기관 수는 567곳으로 2016년 607곳, 2017년 581곳에서 계속 줄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