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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못 낸 적? 많지. 30만 원만 밀려도 득달같이 ‘집 비우라’고 통지서가 날아 와. 복지 공무원이 온 적은 없어.” 14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70대 여성 A 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두루마리 휴지가 한 포대 들려 있었다. 버려진 종이컵을 모아 주민센터에 가져다주고 받아온 것이라고 했다. 이 아파트는 월세가 열여섯 달 치나 밀렸지만 복지 안전망에 포착되지 않은 ‘봉천동 탈북 모자’가 살던 곳이다. 이처럼 월세가 아무리 밀려도 체납 정보가 정부에 통보되지 않는 소외된 임대주택이 전국에 161만 가구가 넘는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탈북 모자인 한모 씨(42·여)와 김모 군(6)이 굶어 숨진 지 두 달가량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로 지난달 31일 발견된 이 아파트는 민간 사업자가 재개발로 신축한 것을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사들여 저소득층에 빌려주는 ‘재개발임대’ 아파트였다. 공공 임대주택의 일종이다. 한 씨는 월세를 못 내 2017년 1월 임차 계약 해지까지 당했다. 이것만 보면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에 꼭 맞는 대상처럼 보인다. 공공 임대주택 월세를 석 달 이상 연체한 사람에게 복지 서비스를 연계해주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한 씨의 월세 체납 정보는 보건복지부에 통보되지 않았다. 이는 복지부가 공공 임대주택의 여러 유형 중 영구임대와 국민임대, 기존주택 매입임대 등 세 종류의 주택에 사는 사람만 월세 체납 정보 수집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아파트에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이유에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국 임대주택 245만9760가구 중 이 세 종류에 해당하는 건 84만4598가구(34.3%)뿐이다. 민간 임대주택(100만2922가구)은 물론이고 임대 기간이 5∼50년인 공공 임대주택(35만1096가구)이나 행복주택(1만5866가구) 등 나머지 161만5162가구는 사각지대에 있다. 한 씨 모자처럼 재개발(재건축 포함) 임대주택에는 6만4161가구가 산다. 이들이 한 씨 모자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도 월세 체납 정보가 당국에 통보되지 않는다. 한 씨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80대 여성 B 씨는 “혼자 사는 입장이라 월세가 밀리고 하면 나라(정부)에서 한 번씩 나와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재개발 임대아파트에 살던 A 씨(80·여)가 숨진 지 열흘 이상 지난 상태로 아파트 화장실에서 발견된 일도 있다. 봉천동 주민센터 담당자가 한 씨 모자에게 서울시 ‘육아교육 서비스’를 안내하기 위해 올 4월 한 차례 아파트를 방문했던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복지부와 관악구에 따르면 담당자는 인기척이 없어 현관문에 메모와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왔지만 끝내 답신이 없자 관리를 종료했다. 복지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한편 탈북자 단체들은 이날 한 씨 모자의 죽음과 관련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당국에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기로 했다. 비대위는 “한 씨가 전남편으로부터 임신 중에도 가정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한 씨 모자의 부검이 끝나면 ‘북한인권탈북단체총연합’을 통해 장례를 치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김은지 eunji@donga.com·박상준·위은지 기자}

정부의 복지 안전망이 제대로 설계됐다면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굶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모 씨(42·여)와 김모 군(6) 모자를 구할 기회가 최소한 다섯 차례는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숨진 지 두 달가량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에서 지난달 31일 발견된 한 씨 모자의 통장 속 잔액은 올 2월 1만4108원에서 3858원으로 줄어들었다가 5월 마침내 바닥이 났다. 하지만 그 사이 한 씨 모자의 집 현관문을 두드린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한 명도 없었다.① 아파트 월세 체납, 1년 넘게 ‘깜깜’ 정부는 2014년 2월 생활고를 겪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의 사건 이후인 2015년 12월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복지제도가 워낙 다양하고 자격 기준과 신청 절차도 제각각이어서 여기서 소외된 가정을 ‘위기가구’로 선정하고 직접 찾아가 수급 방법을 안내하겠다는 취지였다. 대표적인 게 공공임대주택 월세가 3개월 이상 밀린 경우다. 이러면 지역개발공사 등은 연체자 정보를 보건복지부에 공문으로 알리고, 복지부는 관할 주민센터로 전달해 상담과 조사를 벌이도록 해야 한다. 한 씨는 2009년 12월 탈북민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수료하고 같은 달 서울주택도시공사(SH)로부터 아파트를 임차했다. 이후 월세가 여러 차례 밀려 2017년 1월부터 임차 계약이 해지됐지만 퇴거 조치를 당하진 않았다. 숨진 채 발견됐을 당시엔 월세(16만4000원)가 16개월 치나 밀린 상태였다. 그런데도 한 씨가 위기가구로 분류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아파트가 ‘재개발임대’ 유형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보 수집 대상 아파트의 유형을 영구임대와 국민임대, 매입임대 등 세 가지로 한정했다. 이들 아파트에 취약계층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산다는 이유였다. 이 때문에 한 씨처럼 재개발임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은 월세가 아무리 밀려도 복지부에 통보되지 않는다. 현실과 맞지 않는 기준이다.② 관리비 체납 통보, 뒤늦게 추진 한 씨는 전기요금도 16개월간 내지 못했다. 전기료를 3개월 이상 체납한 사람의 정보는 한국전력공사가 복지부에 통보해야 한다. 한 씨는 여기서도 제외됐다. 한 씨의 임대아파트에선 전기료를 가구마다 따로 내지 않고 관리비에 포함시켜 관리사무소가 한꺼번에 걷어서 낸다. 한전이 개별 가구의 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니 위기가구 발굴 정보에서도 누락되는 구조다. 이는 지난해 4월 ‘증평 모녀 자살’ 사건 때 이미 지적됐던 허점이다. 복지부는 당시 아파트 관리사무소로부터 직접 관리비 체납 정보를 수집하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③ 기초생활 수급 탈락, 조사 대상서 제외 한 씨는 탈북 직후 기초생활 생계급여를 받다가 아르바이트 등으로 벌이가 생기면서 2013년 9월 수급이 끊겼다. 정부는 기초생활 수급에서 탈락한 사람들도 위기가구로 보고 관리하고 있지만 한 씨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복지부가 ‘최근 1년 내에’ 기초생활 수급 자격을 잃은 사람들만 관리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씨는 남편과 함께 중국으로 갔다가 현지에서 이혼하고 지난해 10월 김 군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후로는 이렇다 할 고정 수입이 없었다. 이처럼 기초생활 수급 자격을 잃고 수 년 뒤 형편이 어려워진 경우는 현행 제도로 찾아낼 수 없다는 뜻이다.④ 고용보험 자격 상실, 처음부터 가입 안 해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 가입자 자격을 잃은 뒤 이를 다시 취득하지 않고 실업급여도 받지 않는 실업자의 정보를 복지부에 보내고 있다. 한 씨는 이 과정에서도 제외됐다. 한국에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던 2013년 당시에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오히려 안전망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얘기다.⑤ 영양 공급 지원, 몰라서 신청 못 해 저체중 등 위험 요인을 지닌 만 6세 미만 아동에게 보충식품을 제공하는 ‘영양플러스’ 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적이 있으면 위기가구로 분류된다. 하지만 한 씨는 이런 혜택이 있다는 사실조차 안내받지 못했다. 관할 보건소가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홍보하고 있지만 저소득층을 방문하며 권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웃 A 씨는 “한 씨는 항상 베이지색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며 이웃과 말도 섞지 않았다. 복지 혜택을 스스로 찾아다닐 만한 기운도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조건희 becom@donga.com·김은지·서형석 기자}
여름철(6∼8월) 물놀이 사고는 8월에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청이 2017, 2018년 2년 동안 물놀이 사고와 관련된 119구급활동 내용을 분석한 결과 전체 940명의 이송 환자가 있었는데 이 중 162명(평균 81명)이 8월에 집중됐다. 그 다음으로는 7월에 126명(평균 63명), 6월 92명(평균 46명)이었다. 올해도 8월의 경우 7일까지 벌써 20명이 물놀이 사고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돼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7월에는 47명, 6월엔 39명의 물놀이 사고 이송 환자가 있었다. 2017년과 2018년 물놀이 사고 이송 환자들의 연령대를 보면 50대가 166명(17.7%)으로 가장 많았고, 20대 134명(14.3%), 40대 131명(13.9%), 60대 129명(13.7%) 순이었다. 박세훈 소방청 구급정책협력관은 “수온이 낮은 계곡이나 바다에서 오랜 시간 물놀이를 하면 저체온증이 발생하기도 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행정안전부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물놀이 사망사고를 분석한 결과, 전체 사망자(165명)의 약 21.8%인 36명은 안전 부주의로, 17%인 28명은 ‘음주 수영’을 하다 목숨을 잃어 안전수칙만 잘 지켰다면 사고를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지난달 3일 수도권의 한 경찰서 상담실에서 마주 앉은 안모 씨(20)와 고모 씨(40·여)는 눈을 맞추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 아래위층 이웃으로 만난 안 씨와 고 씨는 2년 가까이 이어진 ‘층간소음 갈등’으로 심신이 피폐해져 있었다. 소음을 참다못한 아래층 안 씨가 6월 7일 위층 고 씨의 현관문에 킥보드를 집어던지자 고 씨는 안 씨를 재물손괴 혐의로 신고했다. 그간 인터폰으로 험한 말만 주고받았던 양측이 지난달 3일 처음으로 마주 앉은 것이다. 이 자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질신문이 아니라 양측의 갈등 해소를 위한 ‘대화 모임’이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다툼을 여러 차례 수사해본 경찰은 안 씨를 처벌해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감정의 골이 더 깊어져 다른 물리적 충돌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안 씨와 고 씨를 설득해 자리를 만들고 대화 전문기관 ‘비폭력평화물결’에 중재를 맡긴 것이다. 안 씨의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릴 적부터 소리에 민감했던 안 씨가 층간소음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털어놓았다. 고 씨가 눈물을 흘리며 말을 받았다. 안 씨를 신고한 후 여섯 살 난 딸이 보복의 불안에 떨어 폐쇄회로(CC)TV까지 설치했다는 얘기였다. 안 씨의 눈에도 물기가 돌았다. 안 씨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불안을 드려 죄송하다”며 다시는 협박이나 욕설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오랜 갈등이 봉합되는 순간이었다. 안 씨와 고 씨의 만남은 경찰청이 4월 말부터 서울 경기 지역의 15개 경찰서에서 시범 도입한 ‘회복적 경찰 활동’으로 성사됐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만큼 피해자의 상처를 회복하고 당사자들의 화해를 돕는 게 중요하다는 ‘회복적 사법’을 처음으로 경찰 단계에 도입한 것이다. 지난달 말까지 54건의 만남 요청이 접수돼 이 중 32건에서 화해나 변상 등의 형태로 조정이 완료됐다. 대화 모임이 특히 빛나는 건 가해자가 10∼13세 촉법소년이라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때다. 지난달 8일 서울 중부경찰서에선 빌라 현관문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일을 반복했던 A 군(14) 등 중학생 5명과 피해자 B 씨(63)가 마주 앉았다. 사소한 장난이라고만 생각했던 A 군은 와병 중인 B 씨의 아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듣고 눈물로 잘못을 뉘우쳤다. 오랜 기간 친분을 맺은 이웃 사이의 사건에서도 효과가 나타났다. 서울 성동구의 한 편의점에서 팩 소주를 훔쳐 가곤 했던 이웃 장모 씨(49)를 고민 끝에 신고한 점주 신모 씨(51·여)가 그랬다. 대화 모임을 통해 장 씨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신 씨는 “관계가 껄끄러워질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경찰청은 이 제도를 10월 말까지 시범 실시한 뒤 내년에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은지 기자}
고유정(36·수감 중)의 전남편 살해사건에 대한 초기 수사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고 경찰이 7일 스스로 밝혔다. 경찰청은 합동 현장점검단을 꾸려 사건 초기 제주 동부경찰서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조사한 결과 수사팀이 고유정의 거짓말에 쉽게 휘둘려 초동 대처가 지연됐다고 평가했다. 고유정은 5월 25일 제주시의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모 씨(36)를 살해하고 이틀 뒤 강 씨 가족의 실종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강 씨가 펜션에서 걸어서 나갔다”며 수사팀을 속였다. 고유정이 펜션에 향수를 과도하게 뿌리는 등 수상하게 행동한 점을 감안하면 수사팀이 고유정의 범행 가능성을 의심하고 행적을 추궁했어야 한다는 게 점검단의 판단이다. 점검단은 수사팀이 펜션 인근의 폐쇄회로(CC)TV를 뒤늦게 확인하고 고유정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할 때 중요한 증거물인 졸피뎀 처방전을 빠뜨린 것도 부실 수사로 봤다. 이에 따라 점검단은 고유정 사건을 지휘한 박기남 전 제주 동부경찰서장(현 제주경찰청 정보화장비담당관)과 이 경찰서 형사과장, 여성청소년과장을 감찰에 넘기기로 했다. 이들 3명 중 박 전 서장은 고유정 검거 영상을 경찰청에 보고하지 않고 언론에 제공한 데 대해서도 감찰을 받을 예정이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지난달 3일 인천 계양경찰서 상담실에서 마주앉은 안모 씨(20)와 고모 씨(40·여)는 눈을 맞추지 않았다. 안 씨는 주먹을 꽉 쥐고 있었고, 고 씨는 충혈된 눈으로 천장을 쳐다봤다.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아래위층 이웃으로 만난 안 씨와 고 씨는 2년 가까이 이어진 ‘층간소음 갈등’으로 심신이 피폐해져 있었다. 소음을 참다못한 아래층 안 씨가 6월 7일 위층 고 씨의 현관문에 킥보드를 집어던지자 고 씨는 안 씨를 재물손괴 혐의로 신고했다. 그간 인터폰으로 험한 말만 주고받았던 양측이 지난달 3일 처음으로 마주앉은 것이다. 이 자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질신문이 아니라 양측의 갈등 해소를 위한 ‘대화 모임’이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다툼을 여러 차례 수사해본 경찰은 안 씨를 처벌해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감정의 골이 더 깊어져 다른 물리적 충돌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안 씨와 고 씨를 설득해 자리를 만들고 대화 전문기관 ‘비폭력평화물결’에 중재를 맡긴 것이다. 안 씨의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릴 적부터 소리에 민감했던 안 씨가 층간소음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털어놓았다. 고 씨가 눈물을 흘리며 말을 받았다. 안 씨를 신고한 후 여섯 살 난 딸이 보복의 불안에 떨어 폐쇄회로(CC)TV까지 설치했다는 얘기였다. 안 씨의 눈에도 물기가 돌았다. 안 씨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불안을 드려 죄송하다”며 다시는 협박이나 욕설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오랜 갈등이 봉합되는 순간이었다. 안 씨와 고 씨의 만남은 경찰청이 4월 말부터 서울 경기 지역의 15개 경찰서에서 시범 도입한 ‘회복적 경찰 활동’으로 성사됐다.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만큼 피해자의 상처를 회복하고 당사자들의 화해를 돕는 게 중요하다는 ‘회복적 사법’을 처음으로 경찰 단계에 도입한 것이다. 지난달 말까지 54건의 만남 요청이 접수돼 이 중 32건에서 화해나 변상 등의 형태로 조정이 완료됐다. 대화 모임이 특히 빛나는 건 가해자가 10~13세 촉법소년이라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때다. 지난달 8일 서울 중부경찰서에선 빌라 현관문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일을 반복했던 A 군(14) 등 중학생 5명과 피해자 B 씨(63)가 마주앉았다. 사소한 장난이라고만 생각했던 A 군은 와병 중인 B 씨의 아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듣고 잘못을 눈물로 뉘우쳤다. 경기 동두천시에선 사회봉사 등 처분도 내릴 수 없는 9세 어린이 사이의 폭행 사건을 경찰이 나서서 중재한 사례도 있다. 오랜 기간 친분을 맺은 이웃 사이의 사건에서도 대화 모임의 효과가 나타났다. 서울 성동구의 한 편의점에서 팩 소주를 훔쳐가곤 했던 이웃 장모 씨(49)를 고민 끝에 신고한 점주 신모 씨(51·여)가 그랬다. 대화 모임을 통해 장 씨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를 받은 신 씨는 “관계가 껄끄러워질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라며 안도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성동서 이효정 경장은 “대화 모임은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 제도를 10월 말까지 시범 실시한 뒤 내년에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심보영 경찰청 피해자보호기획계장은 “검찰과 법원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지만 그땐 당사자끼리 갈등이 너무 깊어 회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라며 “경찰 단계에서 사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갈등 해결과 조정을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경찰이 원룸 출입문 주변에 비밀번호를 적어두지 말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택배, 음식배달업체 등에 보냈다. 배달 편의를 위해 적어둔 비밀번호가 범죄에 악용돼 원룸 거주자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경찰청은 18일 ‘원룸 비밀번호 노출 관련, 범죄예방 협조 요청’ 공문을 18일 한국통합물류협회, 편의점 택배업체, 배달서비스 업체 등 11곳에 발송했다고 19일 밝혔다. 경찰청은 공문에서 “원룸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이슈화되는 상황에서 공동 현관 비밀번호가 무방비로 노출되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며 “택배, 배달기사가 편의를 위해 현관문 도어록이나 우편함 등에 비밀번호를 기재하는 경우가 없도록 주기적으로 교육해 달라”고 요청했다. 원룸 건물 중에는 거주자가 한 번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기사들이 건물 현관문 주변에 적어두고 드나들 때마다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각 지역 경찰서는 대학가 및 여성 1인 가구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관내 원룸 건물의 현관문 도어록및 우편함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안전한 주거 환경을 위해서는 현관 비밀번호 보안을 지키려는 원룸 거주자들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당부했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현직 국회의원의 운전비서가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가 뒤따르던 차량에 들이받히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음주운전 사실이 들통 났다. 비서가 몰던 차량 뒷자리에는 국회의원도 타고 있었다. 경찰은 국회의원이 비서의 음주운전을 알고도 방조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다. 18일 경기 동두천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25분경 동두천시 지하철 1호선 지행역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자유한국당 김성원 의원(46·사진)의 카니발 차량을 뒤따르던 K5 차량이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 김 의원은 서울 여의도 국회로 출근하던 길이었다고 한다. 사고가 나자 가해 차량인 K5 운전자 A 씨(40)와 김 의원의 운전비서 정모 씨(40)가 차에서 내렸다. 정 씨에게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을 확인한 A 씨는 현장에 있던 경찰에게 음주측정을 요구했다. 측정 결과 정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0.082%로 나왔다.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정 씨는 이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 의원 측에 따르면 정 씨는 전날 김 의원을 동두천 자택까지 태워다준 뒤 지인들과 밤 12시 무렵까지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18일 김 의원의 집에서 사고지점까지 약 1.5km를 음주상태로 운전했다. 정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음주 사실과 관련해 “(김 의원은) 알지 못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도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차량 탑승 후 1.5km 내외의 거리를 이동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며 “짧은 시간 수행비서의 음주 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고 사고 이후 병원에서 보좌관을 통해 음주 적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사고 당시) 나는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채혈도 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김 의원의 음주운전 방조 여부 확인을 위해 사고 장소 인근의 폐쇄회로(CC)TV와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할 방침이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A: 이 녹음 앱이 좋아요. B: 인터넷 쇼핑몰에서 펜 모양 녹음기를 구입했어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괴롭힘 금지법)’ 시행 첫날이던 16일 오전.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운영하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는 녹음기 얘기가 단연 화제였다. 1300여 명의 참가자가 모인 이 채팅방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이 모여 피해 경험을 공유하는 곳이다. 노무사의 상담을 받기도 한다. 상사의 모욕과 폭언에 시달려 온 직장인들은 피해 신고를 위한 증거를 모으기 위해 앞으로는 녹음을 습관화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괴롭힘 금지법에 따라 16일부터는 직장 상사의 괴롭힘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신고가 접수되면 사용자는 지체 없이 진상조사에 착수해야 하고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4년 차 직장인 박태희(가명·28·여) 씨는 4개월간 부서장의 괴롭힘에 시달렸다. 부장은 회의 때 박 씨만 배제했다. 박 씨의 연차휴가를 결재해주지 않기도 했다. 박 씨는 “상사의 괴롭힘을 신고하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아 사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면서도 “마지막 수단이라 생각하고 증거를 모아 신고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괴롭힘 금지법은 박 씨와 같은 절박한 ‘계란’들을 위한 법이다. 직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막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 졌다. 그런데 법에 규정된 ‘괴롭힘’의 개념이 모호해 이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들린다. 관리자급 직원들은 ‘정당한 업무지시를 할 때도 눈치가 보인다’, ‘인사고과 잘못 줬다가 보복 신고 당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한다고 한다. 대기업의 한 중간 관리자는 “혹시라도 말실수를 할까 봐 개인적인 대화를 일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행 첫날부터 이런 모호함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16일 모든 사업장에 구조조정, 성과 압박 등 기업의 정당한 경영활동도 ‘직장 내 괴롭힘 행위’로 취업규칙에 명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한국석유공사 직원들은 직급이 강등돼 월급이 깎였다는 이유를 들며 고용노동부에 진정했다. 법이 원래의 취지대로 을(乙)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작동한다면 직원과 회사, 상급자 하급자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반길 것이다. 하지만 괴롭힘 금지법이 상사의 정당한 업무지시까지 진정의 대상으로 삼고, 회사의 경영활동을 간섭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입법 취지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회사와 직원, 상사와 부하 직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다. 김은지 사회부 기자 eunji@donga.com}

“여기서부터는 통행이 허가된 차량만 다닐 수 있습니다.” 5월 27일 오후 2시경(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시 도심부에 있는 카보우르 길. 로마시 산하 교통기관 ‘로마 모빌리타’의 파브리초 벤베누티 연구원이 교통 표지판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흰색 바탕의 표지판 위로 빨간색 원이 그려져 있고 빨간색 원 위에는 ‘zona traffico Limitato’라고 적혀 있었다. 차량 통행 제한구역(ZTL)이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표지판 바로 앞에는 신호등과 함께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었다. 벤베누티 연구원은 “허가받지 않은 차량이 ZTL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단속하기 위한 무인카메라”라고 말했다. 허가받지 않은 차량이 ZTL 안으로 진입하면 80유로(약 10만6000원)의 벌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표지판 인근에는 수십 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었는데 ZTL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차들이었다. 카보우르 길은 세계적인 관광지인 고대의 원형 투기(鬪技)장 ‘콜로세움’ 인근에 있다. 벤베누티 연구원이 가리켰던 표지판에서 콜로세움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550m다. 고대 로마 유적지가 많은 로마 도심의 ZTL은 평일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차량 통행이 제한된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3시 사이에도 차량이 다닐 수 없다. 로마는 ‘도로’의 개념이 시작된 도시다. 고대 로마는 세계에서 가장 일찍, 가장 거대한 도로망을 구축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통행권을 법으로 보장한 곳도 로마였다. 로마법에는 개인이 사유지 위를 걸을 권리와 수레나 마차를 운전할 권리가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로마시는 차량 통행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로마 역사지구를 비롯한 여러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로마시에 등록된 차량 약 265만 대 중 6.5km² 면적의 도심 ZTL에서 운행할 수 있는 차량은 20만 대뿐이다. 전체 차량의 7.5%에 불과하다. ZTL 안으로 진입해도 되는 차량은 지역 주민이나 장애인, 관공서 소유 차량, 택시 등 영업 차량으로 제한된다. 로마에서 ZTL은 2001년 도심에 처음 지정됐고 현재는 6곳의 ZTL이 있다. 역사지구가 있는 도심부가 가장 엄격히 통제되고 외곽으로 갈수록 통행이 가능한 차량이 늘어나는 식이다. ZTL은 운전자들에게는 불편하다. 차량 통행이 가장 엄격히 통제되는 도심부는 차량 통행 수요가 많은 곳이다. ZTL 지정은 차량 통행을 강제로 제한하는 정책인 만큼 이에 반발하는 운전자와 시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도심부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불만이 크다. ZTL을 운영하는 로마 모빌리타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로마 모빌리타는 문화재 보호와 보행자 안전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이탈리아는 교통안전과 관련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나라다. 유럽교통안전위원회(ETSC)에 따르면 2016년 이탈리아의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5.4명이다. 유럽연합(EU) 평균 5.1명보다 많다. 로마 모빌리타에 따르면 2017년 이탈리아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3378명 중 219명(6.5%)이 로마에서 사고를 당했다. 로마가 ZTL과 같은 강제적인 조치를 통해 보행자를 보호하려는 이유다. 로마는 또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ZTL뿐 아니라 무인 과속단속 카메라를 확충하는 등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조치들로 로마 시내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와 교통사고 사망자는 크게 줄었다. 2008년 한 해 2만2636건이 발생한 교통사고는 2017년 1만6208건까지 떨어졌다. 28.4%가 줄어든 것이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313명에서 219명으로 줄어 30% 감소했다. 로마 모빌리타의 산드로 프란칼란치 기술개발 담당자는 “교통사고 사망자 없는 로마를 만드는 것이 로마 모빌리타의 가장 큰 목표”라며 “도심에서는 차량 주행 속도를 낮추고, 차도를 좁혀 인도를 넓히는 등 안전한 교통 환경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서울시가 로마의 ZTL과 유사한 ‘녹색교통 진흥지구’ 사업을 추진 중이다. 강북 한양도성 내부 도심권의 차량 통행을 줄이고 보행자 편의를 향상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차도를 줄이는 대신 보도를 넓히겠다는 것이 녹색교통 진흥지구 사업이다. 운행 차량이 줄어들면 현재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약 40%를 차지하는 보행자 사망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동기획 :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교통문화 개선을 위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로마=김은지 eunji@donga.com / 서형석 기자}

“여기서부터는 통행이 허가된 차량만 다닐 수 있습니다.” 5월 27일 오후 2시경(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시 도심부에 있는 카버 길. 로마시 산하 교통기관 ‘로마 모빌리타’의 파브리지오 벤베누티 연구원이 교통 표지판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흰색 바탕의 표지판 위로 빨간색 원이 그려져 있고 빨간색 원 위에는 ‘zona traffico Limitato’라고 적혀 있었다. 차량 통행 제한구역(ZTL)이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표지판 바로 앞에는 신호등과 함께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었다. 벤베누티 연구원은 “허가받지 않은 차량이 ZTL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단속하기 위한 무인카메라”라고 말했다. 허가받지 않은 차량이 ZTL 안으로 진입하면 80유로(약 10만6000원)의 벌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표지판 인근에는 수십 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었는데 ZTL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차들이었다. 카버 길은 세계적인 관광지인 고대의 원형 투기(鬪技)장 ‘콜로세움’ 인근에 있다. 벤베누티 연구원이 가리켰던 표지판에서 콜로세움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550m다. 고대 로마 유적지가 많은 로마 도심의 ZTL은 평일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차량 통행이 제한된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밤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 사이에도 차량이 다닐 수 없다. 로마는 ‘도로’의 개념이 시작된 도시다. 고대 로마는 세계에서 가장 일찍, 가장 거대한 도로망을 구축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통행권을 법으로 보장한 곳도 로마였다. 로마법에는 개인이 사유지 위를 걸을 권리와 수레나 마차를 이용해 운전할 권리가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로마시는 차량 통행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로마 역사지구를 비롯한 여러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로마시에 등록된 차량 약 265만 대 중 6.5㎢ 면적의 도심 ZTL에서 운행할 수 있는 차량은 20만 대뿐이다. 전체 차량의 7.5%에 불과하다. ZTL 안으로 진입해도 되는 차량은 지역 주민이나 장애인, 관공서 소유 차량, 택시 등 영업 차량으로 제한된다. 로마에서 ZTL은 2001년 도심에 처음 지정됐고 현재는 6곳의 ZTL이 있다. 역사지구가 있는 도심부가 가장 엄격히 통제되고 외곽으로 갈수록 통행이 가능한 차량이 늘어나는 식이다. ZTL은 운전자들에게는 불편하다. 차량 통행이 가장 엄격히 통제되는 도심부는 차량 통행 수요가 많은 곳이다. ZTL 지정은 차량 통행을 강제로 제한하는 정책인 만큼 이에 반발하는 운전자와 시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도심부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불만이 크다. ZTL을 운영하는 로마 모빌리타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로마 모빌리타는 문화재 보호와 보행자 안전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벤베누티 연구원은 “시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ZTL 주변에 주차시설과 버스 전철 등 대중교통 노선을 확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교통안전과 관련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나라다. 유럽교통안전위원회(ETSC)에 따르면 2016년 이탈리아의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5.4명이다. 유럽연합(EU) 평균 5.1명보다 많다. 로마 모빌리타에 따르면 2017년 이탈리아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3378명 중 219명(6.4%)이 로마에서 사고를 당했다. 로마가 ZTL과 같은 강제적인 조치를 통해 보행자를 보호하려는 이유다. 로마는 또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ZTL뿐 아니라 무인 과속단속 카메라를 확충하는 등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같은 조치들로 로마 시내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와 교통사고 사망자는 크게 줄었다. 2008년 한 해 2만2636건이 발생한 교통사고는 2017년 1만6208건까지 떨어졌다. 28.4%가 줄어든 것이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313명에서 219명으로 줄어 30% 감소했다. 로마 모빌리타의 산드로 프란찰란시 기술개발 담당자는 “교통사고 사망자 없는 로마를 만드는 것이 로마 모빌리타의 가장 큰 목표”라며 “도심에서는 차량 주행 속도를 낮추고, 차도를 좁혀 인도를 넓히는 등 안전한 교통 환경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서울시가 로마의 ZTL과 유사한 ‘녹색교통 진흥지구’ 사업을 추진 중이다. 강북 한양도성 내부 도심권의 차량 통행을 줄이고 보행자 편의가 향상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차도를 줄이는 대신 보도를 넓히겠다는 것이 녹색교통 진흥지구 사업이다.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 환승체계도 강화해 운행 차량을 줄이는 게 목표다. 운행 차량이 줄어들면 현재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약 40%를 차지하는 보행자 사망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로마=김은지 eunji@donga.com/서형석 기자}

10일 오전 7시 30분. 경기 수원시 지하철 분당선 청명역 3번 출구 앞 버스 정류장. 서울 강남지역으로 출근하는 회사원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G5100번 광역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가 정류장 전광판에 떴다. 남은 자리가 없다는 ‘잔여석 0’ 표시도 함께 떴다.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 앞에서 출발해 지하철 2호선 강남역까지 운행하는 G5100번 버스가 곧 도착했다. 전광판 안내대로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버스 운전사는 승객들을 태웠다. 도로교통법상 광역버스가 입석 승객을 태우고 달리는 건 위법이다. 게다가 이 버스는 2층 버스로, 최고 제한속도 110km인 경부고속도로를 경유한다. 2층 광역버스는 2014년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사회 전반에 안전조치를 강화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도입됐다.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버스의 입석 승객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2층 버스의 좌석 수는 기존 광역버스(41∼45석)보다 많은 70여 석이다. 하지만 이런 2층 버스도 입석 승객을 태우고 달리고 있다. 본보 취재팀이 9, 10일 이틀간 출퇴근 시간대에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2층 버스 6대를 직접 타 본 결과 이 중 4대가 입석 승객을 태웠다. 9일 오후 6시경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정류장을 출발해 경기 김포로 가는 8601A번 2층 버스. 이 버스는 지하철 2호선 당산역 정류장을 지나자 입석 승객이 20명을 넘어섰다. 2층 버스는 일반 버스보다 천장 높이가 낮고 통로 폭이 좁아 입석 승객들의 자세는 불안정했다. 키가 큰 남성 승객은 버스가 덜컹이면 천장에 머리를 찧기도 했다. 버스가 급정거할 때면 입석 승객들은 모두 “어, 어” 하는 소리를 내며 운전석 쪽으로 몸이 쏠렸다. 버스가 커브길에 들어서면 입석 승객들은 좌석 등받이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간신히 버텼다. 자리에 앉지 못한 승객들은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에 몰려 앉기도 했다. 계단에 앉은 승객들은 버스가 정차하고 출발할 때마다 이리저리 몸이 쏠렸다. 버스 운전사는 수시로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안내방송을 했다. 하지만 2층에 앉은 59명 중 안전벨트를 맨 승객은 1명뿐이었다. 입석 승객은 2층에도 있었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2층의 입석 승객은 버스가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몸을 휘청거리다가 급히 손잡이를 잡았다. 9일 오전 7시 30분경 용인시 지하철 분당선 기흥역 정류장을 거쳐 강남역으로 가는 5003번 버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 버스도 17명의 입석 승객을 태우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이 버스 승차 문에는 ‘2층 버스, 입석 금지’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같은 원심력을 받더라도 무게 중심이 높으면 전복될 가능성이 더 크다. 또 승객을 많이 태우면 브레이크의 정지력이 떨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58)는 입석 승객을 태우고 달리는 2층 버스의 위험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2층 버스는 높이가 일반버스(3.2∼3.55m)보다 높은 3.99m다. 이 때문에 일반버스에 비해 커브길에서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실제로 지난해 2월 홍콩에서는 커브길을 돌던 2층 버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19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경기도가 2015년 10월 김포시에 처음 도입한 2층 광역버스는 7월 1일 현재 경기도 내 16개 시, 47개 노선에 걸쳐 193대가 운행 중이다. 하지만 광역버스 입석 승객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용인시에 사는 신모 씨(34·여)는 “자리에 앉아 가려고 출근할 때 40분이나 일찍 집을 나서는데도 한 번도 앉아서 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안전 문제가 지적된 입석 승객을 없애기 위해 2층 버스를 도입했지만 승객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며 “승객들이 ‘서서라도 가겠다’고 차에 오르면 기사들이 말리기는 어렵다”고 했다. 경기도는 올해 안에 2층 버스 운행을 233대까지 늘릴 예정이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서현정 인턴기자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4년박종민 인턴기자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매장 내 1회용 컵(플라스틱 컵) 사용이 금지돼 있습니다.’ 3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커피전문점. 계산대 옆으로 이런 내용의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환경부와 ‘1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맺은 이 가게는 ‘텀블러를 이용하는 고객에게는 100원의 할인 혜택을 준다’며 고객들의 동참을 부탁하는 안내도 함께 하고 있었다. 하지만 플라스틱 컵 사용이 금지돼 있다는 안내와는 달리 매장 내 손님들이 마시는 음료는 거의 대부분 플라스틱 컵에 담겨 있었다. 이날 기자가 이 가게를 찾아갔을 때 매장에 있던 10명의 손님 중 9명이 플라스틱 컵을 테이블 위에 두고 있었다. “손님이 따로 얘기를 하면 머그잔에 음료를 담아 드린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기본적으로 플라스틱 컵에 담아 내준다.” 이 가게 직원은 손님이 원할 경우에만 머그잔을 사용한다고 했다. 이 가게 바로 옆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10명의 손님이 마시고 있는 음료는 모두 플라스틱 컵에 담겨 있었다. 두 커피전문점 뒤편 골목에 놓여 있는 커다란 비닐봉투에는 플라스틱 컵 수십 개가 들어 있었다.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등의 식품접객업소에서 1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이 금지된 지 곧 1년이 된다. 환경부는 지난해 8월 1일부터 커피전문점, 패스트푸드점 등에서의 플라스틱 컵 사용을 금지했다. 제도 시행 직후 각 지방자치단체가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면서 플라스틱 컵은 대부분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단속이 느슨해지자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는 매장이 다시 늘고 있다. 본보는 3일과 4일 서울 강남구, 마포구, 성동구 등에 있는 커피전문점 16곳을 둘러봤다. 이 가운데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가 운영하는 매장 5곳에서는 1회용 플라스틱 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정부와 협약을 맺은 일부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규제 대상이 아닌 1회용 플라스틱 빨대까지 종이 빨대로 바꿔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회사 브랜드의 커피전문점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의 경우 절반 이상이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고 있었다. 11곳 중 6곳이 거의 모든 손님에게 음료를 플라스틱 컵에 담아 내주고 있었다. 음료를 머그잔에 담는 경우는 손님이 뜨거운 음료를 주문할 때였다. 4일 오후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는 손님 13명이 모두 플라스틱 컵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처럼 매장 내 손님들에게 플라스틱 컵을 제공하는 커피전문점이 다시 늘고 있는 건 지방자치단체의 단속이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1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에 대한 규제가 시작된 지난해 8월 이후 지자체는 위반 사례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지난해 8∼12월 5개월 동안 3만3960차례나 현장 점검을 했다. 하지만 올해 1월부터는 단속이 뜸해져 현장 점검과 구체적인 수치조차 없다. 플라스틱 컵 사용에 대한 단속이 느슨해진 건 1회용 비닐봉투 사용 규제와 관련이 있다. 환경부는 올해 1일 1일부터 전국의 모든 대형 마트와 대형 슈퍼마켓에서 1회용 비닐봉투를 사용할 수 없게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부터 시행된 비닐봉투 사용 규제를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다 보니 단속 인력이 한정된 지자체에 플라스틱 컵 사용까지 집중적으로 단속하라고 요구하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도 “단속 인력이 부족해 플라스틱 컵 사용 규정 위반에 대해서는 신고가 들어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본격적인 여름철에 대비해 매장 내에선 다회용 컵을 제공하도록 직원교육 횟수를 늘리는 등의 노력을 해달라고 당부하겠다”고 밝혔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강은지 기자서현정 인턴기자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4년}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친 ‘잠원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 당시 공사 현장에 감리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감리(監理)자는 공사 현장을 지키면서 건축주가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한 계획서대로 공사를 진행하는지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이다. 7일 서울 서초경찰서와 잠원동 붕괴 건물 철거업체 등에 따르면 사고 당일인 4일 감리자는 공사 현장을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소장과 인부들은 경찰에서 “철거공사 감리를 맡은 정모 씨(87)는 사고 당일뿐 아니라 공사가 시작된 이후 현장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잠원동 건물은 6월 29일부터 철거공사를 시작했고 붕괴 사고가 난 4일은 공사 6일째였다. 서초구는 지난달 이 건물 철거공사에 대한 두 번째 심의를 진행하면서 현장에 감리자가 상주하는 조건을 달아 공사를 허가했다. 앞서 서초구는 업체가 제출한 철거계획서를 한 차례 반려한 적이 있다. 정 씨가 감리 일을 친동생(73)에게 떠맡긴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정 씨는 ‘고령인 데다가 공사현장 한 곳에만 붙박이로 있을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잠원동 철거공사 현장에는 나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 씨가 감리 일을 맡긴 동생도 사고 당일 공사 현장에 없었다. 서초구는 정 씨가 감리 일을 동생에게 맡긴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현장소장과 건물주 등이 붕괴 1, 2일 전에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철거공사 진행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건물 붕괴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대화 내용도 경찰이 확보했다. 윤다빈 empty@donga.com·김은지 기자}

서울 도심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 외벽이 무너지면서 건물 잔해가 인근 도로 차량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붕괴되는 건물 앞 도로를 지나던 차량에 타고 있던 20대 여성이 숨졌다. 같은 차에 타고 있던 30대 남성도 다쳤다. 두 달 전 가족 상견례를 한 남녀는 내년 2월 결혼할 예정이었다. 다른 차량에 타고 있던 60대 여성 2명은 머리를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4일 오후 2시 23분경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동궁빌딩 철거 작업 도중 외벽이 무너졌다. 이 때문에 30t가량의 건물 잔해물이 바로 앞 왕복 4차로 쪽으로 넘어졌다. 그리고 지하철 3호선 신사역 방면 2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 4대를 덮쳤다. 붕괴된 건물과 가까운 쪽인 1차로에는 아반떼와 레이 차량이, 2차로에서는 코나와 렉서스 차량이 앞뒤로 있었다. 아반떼와 코나 차량이 붕괴된 건물 잔해에 매몰됐다. 아반떼 차량 조수석에 타고 있던 이모 씨(29·여)는 사고 4시간 10분 만에 매몰된 차량에서 구조됐지만 숨졌다. 운전석에 타고 있던 황모 씨(31)는 3시간 36분 만에 구조됐다. 매몰 당시 의식이 흐릿했던 황 씨는 인근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겨진 뒤 의식을 되찾았다. 사고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인도의 전신주와 가로수도 덮쳤다. 건물 주변과 도로가 붕괴할 때 생긴 먼지로 뿌옇게 휩싸였다. 인근 주민들이 차량에 갇힌 사람을 구하기 위해 도로 쪽으로 뛰어들다가 전신주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보고 놀라 물러서기도 했다. 붕괴 여파로 전신주 3개가 넘어지면서 붕괴된 건물 옆 성형외과 건물을 포함해 주변 건물에 정전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수술을 받기 위해 성형외과에 있던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급히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 공급은 오후 7시 20분경 정상화됐다. 오후 2시 27분쯤 현장에 도착한 소방당국은 특수구조대 등 인력 98명을 투입해 구조작업을 진행했다. 굴착기 3대를 동원해 잔해물을 치웠지만 30t 콘크리트를 깨면 진동 탓에 추가 피해 위험이 커 2대는 구조물을 받치고 1대가 콘크리트를 깨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돼 구조 속도가 더뎠다. 붕괴된 건물은 1996년 10월 준공됐다. 지상 5층, 지하 1층 규모의 이 건물은 6월 29일부터 철거 공사가 시작됐다. 이달 10일까지 철거를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지하 1층은 주차장, 1층에는 카페, 2층에는 댄스스포츠 학원 등이 입주해 있었다. 이 건물은 5월 신축공사를 위해 건물을 철거하겠다고 서초구청에 알렸다. 하지만 서초구는 철거계획을 반려하기로 하고 건물주 측에 이를 알렸다. 이 건물은 철거계획을 보완 제출해 심의를 지난달 17일 조건부로 통과했다. 경찰 관계자는 “서초구에 제출된 첫 철거방법에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건물 안에서는 작업자 4명이 공사를 하고 있었다. 작업자들이 지하 1층 천장을 뚫던 도중 굉음과 함께 건물이 기울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천장을 뚫을 때 하중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건물 내 작업자들은 모두 대피했다. 경찰에 따르면 작업자들은 ‘건물이 무너질 조짐이 보여 건물을 벗어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건물을 벗어난 뒤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붕괴된 건물 인근 주민들은 며칠 전부터 사고 조짐이 있었다고 한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주민 B 씨는 “전날 새벽부터 건물에서 시멘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 인근 주민 이모 씨는 “건물 부근에서 2, 3일간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고 말했다. 신사역사거리에서 가까운 사고 현장은 평소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지만 사고 당시 인근을 지나던 보행자의 피해는 없었다. 사고 발생 당시에 찍힌 인근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다행히 붕괴된 건물 앞을 지나는 보행자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철거업체 관계자는 “우리도 이런 사고는 처음 겪는다. 건물 자체가 부실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5시 40분경 사고 현장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안전하게 구조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 윤다빈 empty@donga.com·구특교·박상준 기자 ▼ 숨진 여성 아버지 “내년 2월 결혼 앞두고…” ▼“내년 2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본보 기자를 만난 이모 씨(29·여)의 아버지는 두 눈이 충혈된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남자 친구인 황모 씨(31)가 운전하던 차량을 타고 서울 서초구 잠원동을 지나다 철거 작업 중 붕괴된 5층 건물 잔해에 깔려 숨졌다. 이 씨는 예비남편 황 씨와 함께 예물인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병원에 찾아온 황 씨의 가족에게 ‘우리 예비사위는 괜찮냐’고 물어봤다”면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이 씨보다 30분 먼저 구조된 뒤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황 씨는 한때 의식을 잃었다가 의식을 되찾았지만 다시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와 치료를 받고 있다. 황 씨가 운전한 차량은 이 씨 아버지 명의의 차량이었다. 사고가 난 지 3시간쯤 지난 오후 5시 30분경 경찰이 이 씨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경찰이 딸을 구출했다고 해 경찰서로 가고 있었다. 운전 도중 라디오에서 여성 1명이 사망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걸 듣고 ‘아뿔싸’ 했다.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경찰이 영안실 얘기를 해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비정규직으로 회사에 입사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 씨는 친구의 소개로 황 씨를 만나 2년 넘게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의 아버지는 “자립심이 강한 딸은 대학생 때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직접 벌어 썼다”며 “결혼할 때도 부모에게 ‘키워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결혼 비용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 씨의 아버지는 영안실로 찾아온 철거업체 관계자에게 “내일모레 결혼할 애가 죽었다. 공사를 어떻게 했길래 이러냐”며 오열했다. 박상준 speakup@donga.com·김은지 기자}

일본 정부가 한국을 겨냥해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 강화’를 발표한 것을 두고 국내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이런 반응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일본 경제제재에 대한 정부의 보복 조치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이 글 작성자는 “국민들부터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및 일본관광 불매로 대응해야 한다”며 “정부는 (일본의) 경제 제재와 관련해 관세 보복 관광 금지 또는 수출 규제 등 방법을 찾아 달라”고 주장했다. 이 청원에는 3일 오후 10시 30분까지 9808명이 참여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일본 기업들 명단을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퍼나르며 이들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불매운동 대상 일본 기업으로는 소니와 니콘 등 전자기기 기업뿐 아니라 유니클로와 세븐일레븐, 닛산 등 90여 곳이 거론됐다. 일본으로 여행을 가지 말자고 주장하는 누리꾼들도 적지 않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예약했던 일본 관광을 취소했다는 글이 잇따라 오르고 있다. 두 달 전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는 한 누리꾼은 2일 온라인 카페 게시판에 “일본 불매운동의 일환으로 오늘 (관광을) 취소했다”며 “항공 취소 수수료 24만 원을 시원하게 지불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누리꾼들의 이런 움직임이 한일 양국 간의 감정을 더 악화시키고 일본 기업과 연관된 한국 기업들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면 그 제품의 제조와 유통에 관여된 한국 회사와 직원들까지 피해를 본다. 감성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국익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요즘 20대, 30대는 결혼을 꺼리거나 아예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후의 삶이 미혼일 때보다 더 불행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스타트업 기업에 다니는 7년 차 직장인 김한별 씨(31·여)도 그랬다. 비혼주의자인 김 씨는 결혼해 아이를 낳게 되면 커리어를 쌓느라 쏟은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자유를 잃는 것도 결혼을 꺼리는 이유다. 그는 “결혼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뜻하지 않게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1인 가구와 비혼주의자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응답자들은 행복의 원천을 가족에게서 찾았다. 동아일보와 딜로이트컨설팅의 조사 결과 행복지수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 중 첫 번째는 ‘가족생활’이었다. 기혼자의 행복지수는 58.59점으로, 미혼자(51.72점)보다 높았다. 또 자녀가 많을수록 행복도도 올라갔다. 자녀가 없는 사람(58.76점)과 자녀가 한 명인 사람(56.92점)보다 자녀가 2명인 사람의 행복지수(59.03점)가 더 높았다. 자녀가 3명이면 행복지수는 62.31점까지 치솟았다. ‘다둥이 아빠’ 박대교 씨(31)는 “셋째가 태어나고 더 행복하다. 지금의 행복을 점수로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자녀 출산을 계획하기만 해도 행복도가 올라간다는 점이다. 자녀 계획이 없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47.10점으로, 1명을 계획한 경우(54.63), 2명을 계획한 경우(54.14)보다 크게 낮았다. 중앙대 심리학과 김재휘 교수는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행복을 느낀다”며 “가족이 늘어나면 사랑을 주고받을 상대가 늘어나 더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주말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1시간 미만인 사람의 행복지수는 45.87점으로 응답군 중 가장 낮은 반면 6∼12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의 행복지수는 60.67점으로 가장 높았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오늘도 행복하세요.’ 채팅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종종 주고받는 말이다. 30대 회사원 김주환 씨(가명)는 이 문자를 보여주며 “행복이 뭔지 고민된다”고 했다. 김 씨는 대학 졸업 후 친구들이 선망하는 A은행에 입사했다. 연봉은 7000만 원이 넘는다. 연인과는 곧 결혼할 예정이다. 부모님은 건강하신 편이다. 그럼에도 그는 “고객들에게 대출을 권유하는 일을 하는데, 정작 나는 대출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집을 사기 힘들다”며 “굳이 행복 점수를 매기면 100점 만점에 40점 정도인 거 같다”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지난해 12월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동아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55.95점이었다.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15년 이래 가장 낮았다. 경제적 만족도나 심리적 안정감이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감을 높일 수 있을까?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인 2020년까지 한국인의 행복을 탐구하는 ‘행복원정대 2020 프로젝트’를 통해 그 해답을 알아봤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지난 한 해 대한민국의 소비와 문화 트렌드를 표현한 신조어다. 타인의 평가나 거시적 경제지표보다 스스로의 만족감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이처럼 달라진 행복의 기준에도 불구하고 2018년 한국인의 행복도는 이전보다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지난해 12월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동아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55.95점으로, 2015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았다. 지표를 처음 개발한 그해 동아행복지수는 57.43점이었다. 이어 2016년 57.90점, 2017년 58.71점으로 계속 상승했으나 지난해 처음으로 꺾인 것이다.○ ‘심리적 안정감’ 결핍된 한국인 직장인 박지윤 씨(가명·32)는 요즘 유럽 국가로 유학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늦깎이 유학길에 오르는 건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다. 결혼 무렵 그는 대출을 받아 3억 원짜리 빌라를 전세로 얻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자가 실직을 하면서 생활이 쪼그라들었다. 상사와 고객의 ‘갑질’이 난무하는 직장생활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자신마저 관두면 생활이 더 어려워질 거란 생각에 꾹 참았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막연한 불안감’이다. 부부가 건강하면 지금처럼 빠듯하게 생활해도 먹고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라도 아프면 어떻게 하지?’ ‘경기가 더 나빠지면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애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고민이 날로 커졌다. 1년을 고민한 그는 사회보장체계가 잘 되어있고 워라밸이 좋다는 유럽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20대 이상 104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심층설문을 한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키워드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2017년에는 행복지수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인으로 △경제적 만족도 △가족생활 △건강 순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족생활 △경제적 만족도에 이어 △심리적 안정감이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현재 상황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방증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솟아오르는 집값, 높아진 실업률, 갈등으로 치닫는 정치 등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하다는 인식이 커졌다”며 “불안이 커질수록 ‘안정’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안정감이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다 보니 상대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았다. 20대의 행복지수는 52.64점이다. 30대는 55.23점, 40대는 55.81점, 50대 이상은 59.24점으로 연령이 높을수록 행복지수도 상승했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20대는 치열한 학업과 취업 경쟁에서 느끼는 불확실성이 크다”며 “취업을 한다 해도 집값이 비싸 내 집을 갖기 어렵고, 자연스럽게 결혼도 어렵다는 비관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분석했다. 특히 ‘내 집 마련’과 행복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동아행복지수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족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그룹에서 자가 거주자가 세입자보다 행복지수가 높았다. 회사원 박모 씨(35)는 “작년에 집값이 너무 뛰는 것을 보며 지금이라도 빚을 내서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출 규제가 심해 물거품이 됐다”며 “나 같은 젊은이에게 ‘내 집 마련’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일상이 변해야 행복감 커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도를 높일 수 있을까? 당장 고가의 아파트가 하늘에서 떨어질 리 없다. 월급을 많이 받으면서 일은 힘들지 않은 ‘꿈의 직장’을 갖는 것도 꿈같은 얘기다. 전문가들은 일상 속 ‘작은 행동의 변화’가 행복감을 높이는 첫걸음이라고 조언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행복을 높이는 방안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선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부터 줄여야 한다. 최근 스마트폰에서 피처폰(전화와 문자메시지만 되는 휴대전화)으로 바꾼 한혜미 씨(22)는 삶의 만족감이 크게 높아진 케이스다. 시험 준비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소셜미디어를 멀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들과 비교하는 습관이 사라졌다. 그는 “눈이나 손목 등 육체적 피로도도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행복과 거의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스마트폰을 1분마다 한 번 하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52.01점이다. 반면 △스마트폰 사용 간격 1∼5분 52.41점 △5∼10분 55.69점 △10∼30분 56.43점 △1∼3시간 56.89점으로 그 간격이 길수록 행복도가 높아진다. 스마트폰이 아예 없는 이들의 행복지수는 57.28점으로 가장 높았다. 밝게 자주 웃는 것도 중요하다. 하루 6번 이상 웃으면 행복지수가 65.86점에 이른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 번 웃으면 50.74점, 아예 웃지 않으면 43.32점에 머문다. ‘사랑 표현’도 하루 2∼5회를 하면 행복지수가 61.07점까지 올라가지만 한 번도 안 하면 50.76점에 그친다. 행복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도 중요하다. 소소한 취미를 갖는 건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일하는 시간 외의 여가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61.74점이나 되지만 취미가 없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49.01점으로 뚝 떨어진다. 어떤 취미를 갖느냐도 행복에 영향을 준다. 이왕이면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 수 있는 활동이 좋다. ‘행복한 그룹’으로 분류된 이들은 주로 음식이나 운동, 여행, 목욕, 명상 등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답했다. 반면 불행한 그룹의 취미는 음주나 TV 시청 등으로 나타났다. ▼ 1046명 심층설문… 객관적 지표에 주관적 요소 결합 ▼ ‘동아행복지수’ 어떻게 개발했나동아일보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만든 ‘동아행복지수’는 소득, 직장, 연령 등 객관적 지표와 개인의 심리적 안정, 인간관계, 건강 등 주관적 요소를 결합해 2015년 개발했다. 유엔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에서 발표하는 국가별 행복지수는 대체로 국내총생산(GDP) 같은 거시경제 지표를 바탕으로 산정한다. 국가 간 비교에는 적합할 수 있지만 국민 개개인의 행복감을 분석하는 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동아행복지수는 지난해 12월 지역과 남녀, 연령 등을 고려해 20대 이상 1046명을 온라인에서 심층 설문한 결과를 바탕으로 산출했다. 이번 조사에선 검색 트래픽 정보와 소셜 데이터 등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소비, 투자, 여가, 문화 등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도출했다.김수연 sykim@donga.com·김윤종·김은지 기자}

《‘오늘도 행복하세요.’ 채팅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종종 주고받는 말이다. 30대 회사원 김대원 씨는 이 문자를 보여주며 “행복이 뭔지 고민된다”고 했다. 김 씨는 대학 졸업 후 친구들이 선망하는 A은행에 입사했다. 연봉은 7000만 원이 넘는다. 연인과는 곧 결혼할 예정이다. 부모님은 건강하신 편이다. 그럼에도 그는 “고객들에게 대출을 권유하는 일을 하는데, 정작 나는 대출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집을 사기 힘들다”며 “굳이 행복 점수를 매기면 100점 만점에 40점 정도인 거 같다”고 말했다. 남들이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데도 스스로 ‘불행하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동아일보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지난해 12월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동아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55.95점이었다.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15년 이래 가장 낮았다.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만족도나 심리적 안정감이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감을 높일 수 있을까?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인 2020년까지 한국인의 행복을 탐구하는 ‘행복원정대 2020프로젝트’를 통해 그 해답을 알아봤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지난 한 해 동안 대한민국의 소비와 문화 트렌드를 표현한 신조어다. 타인의 평가나 거시적 경제지표보다 스스로의 만족감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이처럼 달라진 행복의 기준에도 불구하고 2018년 한국인의 행복도는 이전보다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지난해 12월 한국인의 주관적 행복도(동아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55.95점으로, 2015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았다. 지표를 처음 개발한 그해 동아행복지수는 57.43점이었다. 이어 2016년 57.90점, 2017년 58.71점으로 계속 상승했으나 지난해 처음으로 꺾인 것이다.● ‘심리적 안정감’ 결핍된 한국인 직장인 박지윤 씨(32·가명)는 요즘 유럽국가로 유학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늦깎이 유학길에 오르는 건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다. 결혼 무렵 그는 대출을 받아 3억 원짜리 빌라를 전세로 얻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자가 실직을 하면서 생활이 쪼그라들었다. 상사와 고객의 ‘갑질’이 난무하는 직장생활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자신마저 관두면 생활이 더 어려워질 거란 생각에 꾹 참았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막연한 불안감’이다. 부부가 건강하면 지금처럼 빠듯하게 생활해도 먹고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라도 아프면 어떻게 하지?’ ‘경기가 더 나빠지면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애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 고민이 날로 커졌다. 1년을 고민한 그는 사회보장체계가 잘 되어있고 워라밸이 좋다는 유럽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20대 이상 104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심층설문을 한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키워드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2017년에는 행복지수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인으로 △경제적 만족도 △가족생활 △건강 순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족생활 △경제적 만족도에 이어 △심리적 안정감이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현재 상황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방증이다.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솟아오르는 집값, 높아진 실업률, 갈등으로 치닫는 정치 등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하다는 인식이 커졌다”며 “불안이 커질수록 ‘안정’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안정감이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다보니 상대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았다. 20대의 행복지수는 52.64점이다. 30대는 55.23점, 40대는 55.81점, 50대 이상은 59.24점으로 연령이 높을수록 행복지수도 상승했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20대는 치열한 학업과 취업 경쟁에서 느끼는 불확실성이 크다”며 “취업을 한다 해도 집값이 비싸 내 집을 갖기 어렵고, 자연스럽게 결혼도 어렵다는 비관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분석했다. 특히 ‘내 집 마련’과 행복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동아행복지수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족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그룹에서 자가 거주자가 세입자보다 행복지수가 높았다. 회사원 박모 씨(35)는 “작년에 집값이 너무 뛰는 것을 보며 지금이라도 빚을 내서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출 규제가 심해 물거품이 됐다”며 “나 같은 젊은이에게 ‘내 집 마련’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일상이 변해야 행복감 커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도를 높일 수 있을까? 당장 고가의 아파트가 하늘에서 떨어질리 없다. 월급을 많이 주면서도 일은 힘들지 않은 ‘꿈의 직장’을 갖는 것도 꿈같은 얘기다. 전문가들은 일상 속 ‘작은 행동의 변화’가 행복감을 높이는 첫걸음이라고 조언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행복을 높이는 방안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선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부터 줄여야 한다. 최근 스마트폰에서 피처폰(전화와 문자메시지만 되는 휴대전화)으로 바꾼 한혜미 씨(22)는 삶의 만족감이 크게 높아진 케이스다. 시험 준비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소셜미디어를 멀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남들과 비교하는 습관이 사라졌다. 그는 “눈이나 손목 등 육체적 피로도도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행복과 거의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스마트폰을 1분마다 한번 하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52.01점이다. 반면 △스마트폰 사용 간격 1~5분 52.41점 △5~10분 55.69점 △10~30분 56.43점 △1~3시간 56.89점으로 그 간격이 길수록 행복도가 높아진다. 스마트폰이 아예 없는 이들의 행복지수는 57.28점으로 가장 높았다. 밝게 자주 웃는 것도 중요하다. 하루 5번 이상 웃으면 행복지수가 65.86점에 이른다. 이와 대조적으로 1번 웃으면 50.74점, 아예 웃지 않으면 43.32점에 머문다. ‘사랑 표현’도 하루 2~5회를 하면 행복지수가 61.07점까지 올라가지만 한번도 안 하면 50.76점에 그친다. 40대 회사원 박재훈 씨는 무뚝뚝한 표정을 바꾸려 노력한 끝에 행복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박 씨는 아내로부터 초등학생 딸의 고백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빠의 표정이 어두워 어느 순간부터 말을 걸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들은 뒤 박 씨는 딸이 있을 때마다 거실과 식탁에서 의도적으로 크게 웃었다. 박 씨는 “처음에는 아빠가 오버한다고 생각하던 딸이 어느 순간부터 함께 웃기 시작해 가정 분위기가 좋아졌고, 자녀와의 대화도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말했다. 행복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도 중요하다. 소소한 취미를 갖는 건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일하는 시간 외의 여가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61.74점이나 되지만 취미가 없는 사람의 행복지수는 49.01점으로 뚝 떨어진다. 어떤 취미를 갖느냐도 행복에 영향을 준다. 이왕이면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 수 있는 활동이 좋다. ‘행복한 그룹’으로 분류된 이들은 주로 음식이나 운동, 여행, 목욕, 명상 등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답했다. 반면 불행한 그룹의 취미는 음주나 TV 시청 등으로 나타났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설립과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민철기)는 25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에게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해양수산부의 김영석 전 장관과 윤학배 전 차관에게는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유무죄를 떠나 재판부로서도 세월호 특조위가 여러 가지 이유로 별다른 성과 없이 활동을 종료하게 된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특조위의 동향을 파악하라고 지시한 부분에 대해 재판부는 “대통령비서실과 해수부 장차관의 강대한 권력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이뤄진 범행”이라며 “결과적으로 위원회는 뒤늦은 시점에 구성되어 각종 방해와 비협조 등에 시달리다가 별다른 성과도 내지 못하고 활동을 마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다른 권력기관에 의한 정치적 공세가 특조위 활동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