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이헌재 기자

동아일보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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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중요하지 않은, 하지만 누군가에겐 재미있을지도 모를 스포츠의 뒷담화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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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나이퍼’ 장성호 “계단 오르기로 짧고 굵게 땀 흘려요”[이헌재의 인생홈런]

    한국 프로야구에서 1998년부터 2006년까지 9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한 장성호 KBSN 야구해설위원(47)은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칠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확한 타격 덕분에 ‘스나이퍼’라는 별명도 얻었다. 20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친 그는 2016년부터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로 벌써 9년 차 해설위원이다. 2012년 한 스포츠 케이블TV에서 열린 이벤트 당구대회 출전이 그가 해설자가 된 계기였다. 지금이야 당구 중계가 일상화되어 있지만 당시엔 당구 해설을 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날도 해설자가 따로 없어 경기에 출전한 야구 선수들이 번갈아 중계석에 앉았다. 평소 언변이 좋았던 그는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그곳에서 찾았다. 그는 “굉장히 흥미로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은퇴가 다가올수록 큰 소리로 책을 또박또박 읽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고 했다. 야구 해설은 그에게 천직이다. 그는 “팬들이 궁금해할 만한 부분을 공부해서 알려드리는 희열이 있다. 준비한 만큼 좋은 해설이 나올 때 너무 재미있다”며 “요즘 야구는 시시각각 변한다. 덕분에 한 번도 해설 권태기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현장 중계를 하고, 경기 후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 한두 차례 출연한다. 3년 전부터는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KUSF) U리그 왕중왕전 해설도 시작했다. 그는 “작년 어느 날엔 프로야구 하이라이트에 출연하고 토론 프로그램 녹화까지 한 후 딱 두 시간 눈을 붙이고 오전 9시에 열리는 대학야구 해설을 하러 나갔다. 그럴 땐 해설이 나의 숙명이라는 느낌도 든다”고 했다. 왕성한 활동의 배경에는 꾸준한 자기 관리가 있다. 요즘도 그는 여전히 주 4, 5회 운동을 한다. 집에서 가까운 서울 한강변을 걷는 것도 좋아하고, 아내와 함께 인왕산과 안산 등 높지 않은 산도 종종 오른다. 하지만 빠지지 않는 뱃살이 그의 고민이다. 장성호는 “운동을 꾸준히 하니까 아픈 곳은 없다. 그런데 운동을 하니 입맛이 돌고 먹성이 좋아진다”면서 “음식 조절과 절주의 필요성을 느낀다. 뱃살만 좀 빼면 내 삶이 완벽에 가까워질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올해부터 계단 오르기를 본격적으로 해 볼 작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던 몇 해 전 그는 계단 오르기 효과를 톡톡히 본 적이 있다. 당시 다니던 피트니스센터가 문을 닫자 그는 집이 있는 아파트 31층을 걸어서 올랐다. 그는 “지하 주차장 3층에서 31층까지 두세 번을 오르내렸다. 시간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 등을 쓰면서 기분 좋게 땀을 흘릴 수 있었다. 계단 오르기는 짧은 시간 안에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기 체중을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배웠다. 계단 오르기는 나의 신체를 고스란히 쓰는 운동이다. 최소한 이틀에 한 번은 계단을 오르려 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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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뱃살만 빼면 완벽한 인생”, ‘스나이퍼’ 장성호가 9년차 해설자로 사는 법[이헌재의 인생홈런]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도 10년 가까이 3할을 쳤다’고 말할 수 있는 선수는 3명쯤 된다. 10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한 박용택(전 LG)이 선두 주자다. ‘양신’이라는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양준혁(전 삼성)은 9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마지막 주인공은 장성호(47·전 KIA)다. 장성호는 1998년부터 2006년까지 9년 연속 3할을 쳤다. 2004년과 2005년에는 정확히 타율 0.300을 맞췄다. ‘스나이퍼’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정교한 왼손 타자였다. 타격 시 오른쪽 발을 크게 들어 올리는 특유의 레그킥을 하면서도 공을 방망이 중심에 제대로 맞혔다. 공을 골라내는 선구안 역시 뛰어났다. 20년간의 선수 생활 동안 통산 1101개의 볼넷을 골라내는 동안 삼진은 879개밖에 당하지 않았다. 선수 생활 말엽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면서 그는 통산 타율 0.296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아쉬워하는 건 통산 타율 3할이 아니라 99개에 멈춘 통산 도루 수다. 선수 생활 내내 그에겐 ‘발이 느리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뛸 수 있을 때 뛰었고, 착실히 도루 숫자를 늘려나갔다. 장성호는 “이왕이면 100개 또는 200개처럼 딱딱 끊어지는 게 좋지 않나. 하지만 99도루는 내게는 의미가 있는 기록이다. 아마 장성호가 도루를 100개 가까이 했다는 걸 아는 야구팬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장성호에 대한 또 다른 편견 하나는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라는 것이었다. 이는 평소 잘 웃는 그의 모습에서 비롯됐다. 그는 원래 웃는 상인데다가 실제로도 잘 웃었다. 수비 실책을 하고도, 병살타를 치고 난 뒤에도 얼굴에 미소를 짓곤 했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그는 엄청난 승부욕을 갖고 있던 선수였다. 훈련 및 경기에도 진지하게 임하는 스타일이었다. 스스로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훈련도 열심히 했고, 동시에 노는 것도 열심히 놀았다”고 말한다. 그가 여느 은퇴 선수들처럼 야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100% 최선을 다했따고 하긴 어렵겠지만 선수 생활 내내 후회 없이 방망이를 돌렸다고 생각한다. 은퇴한 이후에도 배트를 잡고 스윙을 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스프링캠프에 가기 전에 몸을 만드는 꿈을 꾸곤 한다. 그는 “나뿐 아니라 프로 선수라면 모두 열심히 훈련한다. 손바닥이 까지고, 근육에 알이 배기는 게 일상이다. 요즘도 훈련하는 꿈을 꾸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어 일어나곤 한다”고 했다. 20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친 그는 현재 KBSN의 야구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은퇴 이듬해인 2016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도 벌써 9년차 해설위원이다. 2012년 한 스포츠케이블TV에서 열린 프로야구 선수 당구 대회에 출전한 게 그가 해설자가 된 계기였다. 지금이야 프로당구가 출범하며 당구 중계가 일상화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당구 해설을 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날도 따로 해설자가 없어 경기에 출전한 야구 선수들이 번갈아 중계석에 앉았다. 평소 위트가 있고, 언변이 좋았던 그는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그곳에서 찾게 됐다. 장성호는 “굉장히 흥미로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은퇴가 다가올수록 나름 준비를 했던 것 같다.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던지, 발음을 정확히 하면서 또박또박 읽는 연습을 했다”고 했다. 수시로 해설자들이 바뀌는 가운데 그는 큰 사건, 사고 없이 9년째 중계석을 지키고 있다. 제2의 인생이 된 ‘야구 해설가’는 그에게는 천직이다. 그는 “팬들이 잘 모르거나, 궁금해 사실 만한 부분을 내가 공부를 해서 알려드리는 희열이 있다. 준비한 만큼 좋은 해설이 이뤄질 때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야구 해설을 위해 그는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가진다. 정치와 경제, 사회, 영화, 심지어는 날씨까지 야구 해설을 위한 좋은 소재가 된다. 야구 공부도 열심히 한다. 메이저리그 사이트들을 찾아보고, 야구 인플루언서들의 글도 꼼꼼히 읽는다. 궁금한 게 있으면 동료 해설위원이나 기록원들에게도 수시로 물어본다. 그는 “현대 야구는 시시각각 변한다. 몇 년 전부터 세이버매트릭스(야구 통계학)이 관심을 끌었고, 시프트와 발사각도 등도 유행했다. 최근에는 메이저리그에서 도입한 피치 클락 등이 큰 화제”라며 “야구가 계속 바뀌고 있으니 싫증이 날 틈이 없다. 내게 해설 권태기가 없는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프로야구 정규 시즌 때 그는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현장 중계를 하고, 한두 차례 경기 후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야구의 참견’이라는 야구 토론 프로그램에도 나가고, 야구 유튜브도 운영한다. 그는 “매번 출연할 때마다 새롭게 얘기할 거리가 나온다. 야구의 세계가 넓고 깊다는 걸 새삼 느낀다”고 했다. 3년전부터는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KUSF) U리그 왕중왕전 해설도 시작했다. 프로야구 중계와 시간이 겹치는 걸 피하기 위해 오전 9시 경기를 위주로 중계를 잡는다. 작년 어느 날엔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하고, 야구의 참견 녹화까지 끝난 뒤 새벽 3시에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전 9시 대학야구 중계를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는 “딱 두 시간 눈 붙이고 중계를 하러 나갔다. 힘은 들었지만 ‘내 위치에서 아마추어 야구를 위해 할 수 있는 하자’는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야구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갈 길도 멀다. 하지만 프로야구 중계에 비해 할 얘기는 훨씬 많다. 가끔씩 누가 봐도 생각지도 못한 플레이가 나오곤 한다. 대체 어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아마추어 야구가 처한 어려운 현실과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맛볼 수 있는 매력들을 더 많이 알려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새해 목표 중 하나는 뱃살을 빼는 것이다.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에도 그는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유지해 왔다. 요즘에 일주일에 4, 5번은 운동을 한다. 한 번 운동을 할 때는 근력 운동 20분, 유산소 운동을 40분 가량 한다. 집에서 가까운 한강을 가볍게 걷는 것도 좋아하고, 아내와 함께 서울의 인왕산과 안산 등 높지 않은 산을 오르는 것도 즐긴다. 행주산성 둘레길 등도 종종 간다. 하지만 살찌는 건 막기 힘들다는 게 그의 호소다. 장성호는 “운동을 꾸준히 하니까 몸이 아픈 곳은 없다. 그런데 운동 덕분에 입맛이 좋아지고 먹성이 좋아진 것 같다”며 “한 번 찐 살이 잘 빠지지 않아 고민이다. 결국 음식 조절과 절주가 핵심인 것 같다. 뱃살만 좀 빼면 내 모든 삶이 완벽에 가까워질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뱃살을 빼고 하체를 강화하기 계단 오르기를 본격적으로 해 볼 작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가 한창이던 몇 해 전 그는 계단 오르기 효과를 본 적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당시 그가 다니던 피트니스센터도 문을 닫았는데 그는 아파트 31층을 걸어서 올랐다. 그는 “지하주차장 3층에서 31층까지 두세 번을 오르내렸다. 시간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 등을 쓰면서 기분 좋게 땀을 흘릴 수 있었다. 계단 오르기는 짧은 시간 안에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그가 사는 아파트는 36층 건물이다. 지하 6층에서 꼭대기인 36층까지 오르면 42층이 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기의 체중을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배웠다. 계단 오르기는 내가 갖고있는 신체를 고스란히 쓰는 운동이다. 올해 최소 이틀에 한 번은 계단을 오르며 한다”고 말했다. 장성호는 현재 자신의 삶에 무척 만족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행복을 계속 누리려면 건강해야만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물론 해가 갈수록 더 깊이 있는 해설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껏 해온 웃음 있는 해설을 놓치고 싶진 않다”며 “재미와 내용을 동시에 주는 해설자가 되려 더 노력하겠다. 그런 고민을 뺀다면 지금처럼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는 것 같다. 지인들에게도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곤 한다”고 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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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세 최형우, 최장 2년 22억

    프로야구 KIA의 간판타자 최형우가 41세 나이에 다년 계약에 성공했다. 비(非)자유계약선수(FA) 다년 계약으로는 역대 최고령이다. KIA는 최형우와 1+1년 총액 22억 원(연봉 20억 원, 옵션 2억 원)에 계약했다고 5일 발표했다. 최형우가 올해 옵션을 달성하면 내년 계약은 자동 연장된다. 최형우는 불혹이던 지난해에도 타율 0.302, 17홈런, 81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통산 1542타점으로 이승엽 두산 감독(1498타점)을 넘어 한국프로야구 통산 최다 타점 1위에도 올랐다. 최형우의 드라마 같은 야구 인생은 지난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MLB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작년 11월 “한때 팀에서 방출됐던 선수가 최다 타점 신기록을 작성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최형우의 인생 역정을 전했다. 2002년 프로 데뷔를 했던 팀 삼성에서 방출당했다가 군 제대 후 삼성에 재입단한 최형우는 이후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왼손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2016년 FA 자격을 얻어 KIA와 4년 100억 원에 계약하면서 처음으로 FA 100억 원 시대를 열었다. 2017년부터 KIA에서 뛴 그는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은 2020년 말에는 3년 총액 47억 원에 재계약했다. 이번 계약으로 최대 9년간 KIA 유니폼을 입게 된 최형우는 “다년 계약이라는 좋은 조건을 먼저 제시해 준 구단에 감사하다”며 “선수 생활 마지막 날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았던 선수로 타이거즈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심재학 KIA 단장은 “최형우는 뛰어난 성적은 물론이고 클럽하우스 리더로서 동료 선수들에게 항상 모범이 된 선수”라며 “앞으로도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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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년 만에 삼성 떠나는 뷰캐넌… “내 몸엔 언제나 푸른 피 흐를 것”

    지난해까지 4년간 프로야구 삼성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외국인 투수 데이비드 뷰캐넌(35·사진)이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뷰캐넌은 5일 아내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띄운 영상편지를 통해 “내 몸에는 언제나 푸른 피가 흐를 것이다. 팬 여러분은 언제나 우리 가족의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2020년 삼성 유니폼을 입은 뷰캐넌은 지난해까지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며 선발진을 이끌었다. 지난해에도 30경기에 등판해 12승 8패, 평균자책점 2.54의 빼어난 성적을 남겼다. 4년 통산 성적은 113경기 54승 28패, 평균자책점 3.02다. 삼성 구단은 뷰캐넌과 재계약을 추진했으나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뷰캐넌은 다년 계약을 원했는데 구단은 외국인 선수 샐러리 캡(연봉 총액 상한)을 이유로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적극적인 팬 서비스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뷰캐넌은 “삼성에서 은퇴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팬 여러분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꼭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삼성은 4일 새 외국인 투수로 데니 레이예스(28)를 총액 80만 달러(약 10억5000만 원)에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인 레이예스는 지난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뉴욕 메츠에서 뛰며 9경기에 등판해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7.78을 기록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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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년 450만달러 고우석, 5년 2800만달러 마쓰이와 ‘마무리 경쟁’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는 4일 구단 소셜미디어에 고우석(26)의 입단 소식을 전하며 한국어로 “고우석 선수, 샌디에이고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샌디에이고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고우석이 2년 총액 450만 달러(약 59억 원)에 계약했다고 전했다.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 시스템을 통해 미국에 진출한 한국 선수 가운데 이보다 적은 돈에 계약한 선수는 최향남(53)밖에 없다. 최향남은 롯데에서 뛰던 2009년 세인트루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태평양을 건넜다. 고우석의 계약 규모는 좀 더 커질 수 있다. 3년 차인 2026년에 상호 옵션에 따라 300만 달러에 계약을 1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AP통신에 따르면 고우석은 출전 경기 수와 성적에 따른 보너스 계약도 별도로 했다.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룬 고우석이지만 진짜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당장 2월 스프링캠프부터 마무리 투수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팀의 마무리로 뛰었던 조시 헤이더(30)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나간 뒤 샌디에이고는 작년 말 일본프로야구 라쿠텐의 마무리 투수 마쓰이 유키(29)를 5년 2800만 달러(약 367억 원)에 영입했다. 왼손 투수인 마쓰이는 174cm의 크지 않은 키에도 시속 150km대의 빠른 공과 다양한 변화구를 던진다. 지난 시즌 개인 최다인 39세이브를 올리는 등 일본에서 10시즌 동안 통산 23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을 기록했다. 지난해 불펜 요원으로 활약했던 오른손 투수 로베르토 수아레스(33)도 강력한 경쟁자다. 지난해 5년간 총액 4600만 달러(약 603억 원)에 샌디에이고와 계약한 수아레스는 4승 3패 8홀드 평균자책점 4.23으로 계약 첫 시즌을 마쳤다. MLB.com은 “세 선수가 마무리 투수 자리를 두고 경쟁할 것이다. 마무리 자리를 누가 꿰차든 세 선수 모두 경기 막판 중요한 순간에 등판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몸값만 놓고 보면 고우석이 세 선수 중 가장 열세다. 스프링캠프부터 구위와 실력으로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는 수밖에 없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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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욘 람-릴리아 부, 美골프기자단 선정 ‘올해의 선수상’

    남자 골프 세계 랭킹 3위 욘 람(30·스페인)이 미국 골프 기자단이 선정한 2023년 최고의 선수로 뽑혔다. 미국골프기자협회(GWAA)는 2023년 올해의 남자 선수로 람을 선정했다고 3일 발표했다. 람은 기자단 투표에서 1위 표 48.9%를 받아 33.0%를 얻은 빅토르 호블란(노르웨이)을 제쳤다. 지난 시즌 상금왕이자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는 1위 표를 18.1%밖에 얻지 못해 3위로 밀렸다. 람은 지난해 4월 메이저대회 마스터스를 포함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모두 4차례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람은 작년 말 PGA투어를 떠나 LIV 골프로 이적하기로 했지만 미국 골프 기자단은 람에게 표를 몰아줬다. 람은 “1년 내내 모든 대회와 모든 샷을 따라다니는 기자들에게 인정받은 기쁨을 오래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올해의 여자 선수로는 릴리아 부(27·미국)가 뽑혔다.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메이저대회 2승을 포함해 4승을 따내며 올해의 선수와 상금왕에 오른 부는 1위 표 72.9%를 받았다. 시니어 무대인 PGA 챔피언스 투어에서 메이저대회 3승을 비롯해 6승을 쓸어 담은 스티브 스트리커(57·미국)는 시니어 부문 올해의 선수상 주인이 됐다. 세 선수 모두 기자단 선정 올해의 선수상 수상은 처음이다. 시상식은 4월 마스터스 개막 하루 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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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LB 서울개막전, 여행 가서라도 봐야 할 새해 스포츠 이벤트”

    3월 20, 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개막 시리즈(사진)가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꼽은 ‘여행을 가서라도 봐야 할 새해 스포츠 이벤트’에 선정됐다. 포브스는 2일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를 포함해 돈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볼만한 2024년 주요 스포츠 이벤트 5개를 소개했다. 이 매체는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가 서울에서 정규 시즌 개막전 두 경기를 치른다. 서울에서 MLB 정규 시즌 경기가 열리는 건 처음”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1월 말부터 티켓이 판매될 예정이지만 고척돔은 1만6744석에 불과해 서둘러야 한다”며 “다저스엔 오타니 쇼헤이와 야마모토 요시노부, 샌디에이고엔 김하성과 다루빗슈 유, 마쓰이 유키 등 아시아 출신 선수들이 많아 한국과 일본 팬들의 큰 관심을 끌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브스는 이와 함께 미국프로골프(PGA)투어 AT&T 페블비치 프로암(2월), 윔블던 테니스대회(7월), 파리 올림픽(7∼8월), 포뮬러원(F1) 월드챔피언십 최종전인 아부다비 그랑프리(12월)도 소개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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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강 외인 트리오’ KT, 왕좌 복귀 부푼 꿈

    프로야구 10개 구단 외국인 선수 구성이 거의 마무리돼 가는 가운데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팀 KT가 최강의 외인 트리오를 구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T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왼손 투수 벤자민(31)과 오른손 투수 쿠에바스(34)로 ‘원투펀치’를 꾸린다. 여기에 2020년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수상자인 외야수 로하스(34)가 외국인 타자로 합류한다. 벤자민은 지난해 15승 6패 평균자책점 3.54를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2022년 대체 외국인 선수로 처음 한국에 왔을 때보다 구위가 한층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는 벤자민은 3년째 같은 유니폼을 입는다. 잠시 공백이 있었지만 쿠에바스 역시 6년 연속 KT 소속으로 뛴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KT에서 뛰었던 쿠에바스는 2022년 초반 팔꿈치 부상으로 팀을 떠났다. 그러다 지난해 대체 외국인 선수로 복귀해 12승 무패 평균자책점 2.60의 성적으로 승률왕에 올랐다. 시즌 초반 최하위까지 추락하기도 했던 KT는 쿠에바스의 합류 후 상승세를 타며 정규시즌을 2위로 마쳤다. KT는 2020년까지 4년간 KT 유니폼을 입었던 로하스를 총액 90만 달러(약 11억7000만 원)에 다시 영입했다. 로하스는 한국에서 통산 타율 0.321, 132홈런, 409타점을 기록했다. 2020년에는 타율 0.349, 47홈런, 135타점으로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다. 로하스는 2021년 일본프로야구 한신으로 옮겼지만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2년 뒤 방출됐다. 이후 멕시코리그와 도미니카공화국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왔다. KT 관계자는 “한국을 떠난 뒤에도 꾸준히 지켜봤다. 여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익숙한 팀에 온 만큼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KT는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LG에 1승 4패로 패했다. 선발진에서 우위였지만 타선에서 LG의 화력에 밀렸다. 로하스가 예전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강백호(25)가 제 컨디션을 찾는다면 KT는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정상을 노려 볼 만하다. 한편 1일 현재 KT를 포함해 7개 팀이 3명씩의 외국인 선수 구성을 완료했다. 계약을 마친 26명 가운데 17명(65.4%)이 ‘경력자’다. KIA는 2명, NC와 삼성은 1명 자리를 아직 채우지 못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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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헌재의 인생홈런]‘바람의 아들’ 양용은 “무게 줄이고 횟수 늘려 근력 유지”

    ‘바람의 아들’ 양용은(52)은 2022년부터 50세 이상 선수들이 출전하는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투어를 주무대로 뛰고 있다. 아직 우승은 없지만 지난 2년간 준우승 1회, 톱5 5회, 톱10 11회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지난 시즌엔 124만 달러(약 16억 원)의 상금을 벌어 이 부문 15위에 올랐다. PGA 정규투어 카드가 없는 양용은이지만 1년에 한 번은 모든 골퍼들이 꿈꾸는 메이저 대회에 출전한다. 2009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꺾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평생 출전권을 얻었기 때문이다. 선수로서의 의욕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는 “당장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지만 아직 골프가 너무 재미있다”며 “새해에는 챔피언스투어에서 우승해 보고 싶다. 상금 순위도 10위 안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2월 중순 시작하는 새 시즌을 앞두고 그는 집이 있는 미국 하와이에서 체력을 키우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유럽 등을 다니기에 고루 좋은 장소를 찾다가 몇 해 전 하와이에 터를 잡았다. 그는 “이곳 날씨가 너무 좋다. 한겨울에도 따뜻하다. 은퇴 이후까지 고려한 결정”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사흘 훈련, 하루 휴식 일정으로 훈련을 진행한다. 훈련일엔 체력 훈련과 샷 연습을 번갈아 한다. 오전에 체력 훈련을 하면, 오후에 필드에 나가는 식이다. 가장 공들이는 건 역시 체력 훈련이다. 50대가 되면서 근력이 예전 같지 않은 걸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고교 때 잠시 보디빌딩을 했던 그는 한때 고중량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3대 500’(스쾃,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중량을 합쳐 500kg의 무게를 드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3대 300’ 정도는 가뿐히 해냈다. 하지만 그 여파로 10년 전쯤 목 부위에 부상을 당했다. 그는 “무게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무게는 줄이고 횟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운동을 한다. 중년 이후엔 근력을 키우는 것보다 유지만 해도 괜찮은 것 같다”고 했다. 한때 벤치프레스로 80kg 이상 무게를 한 번에 10∼12회씩 들어 올렸던 그는 요즘은 30∼40kg 정도의 무게를 든다. 그 대신 3, 4세트를 하던 걸 5, 6세트로 늘렸다. 그는 “확실히 몸에 무리가 덜 가면서도 운동 효과는 뛰어나다”고 했다. 몸무게도 7kg가량 줄였다. PGA투어에서 뛸 당시 90kg에 육박하던 몸무게가 지금은 83kg 정도 나간다. 그는 “딱히 음식을 가리진 않는다. 삼시세끼를 잘 먹지만 튀긴 음식과 탄산음료 등은 가능한 한 입에 대지 않는다. 먹는 양도 좀 줄였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체중 관리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한다. 예전엔 필드를 걸을 때 발바닥이 종종 아프곤 했는데 체중 감량 후엔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 생활을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60세까지는 투어를 다닐 것 같다”면서 “바쁘게 이동하는 걸 빼면 이 세상에 골프 선수만큼 좋은 직업은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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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장 볼보이→美하와이 집주인…‘야생마’ 양용은 “골프가 내게 준 선물들”[이헌재의 인생홈런]

    1년에 단 4차례 열리는 남자 골프 4대 메이저대회(마스터스, US오픈, PGA챔피언십, 디 오픈)는 모든 골퍼들에겐 ‘꿈의 무대’다. 엄격한 자격조건을 통과한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이 이 대회들에 초청받는다. 그런데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메이저대회 평생 출전권을 가진 선수가 있다. 제주 출신의 ‘바람의 아들’ 양용은(52)이다. 양용은은 2009년 열린 PGA챔피언십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꺾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양용은은 대회 우승자 자격으로 자신이 원하면 언제나 이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일반 대회 우승도 쉽지 않지만 메이저대회 우승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김주형, 임성재, 김시우 등 후배 선수들이 종종 PGA투어에서 우승했지만 아직 메이저대회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양용은 이후 아시아 출신 메이저대회 챔피언은 2021년 마스터스를 제패한 마쓰야마 히데키(일본)가 유일하다. 메이저대회 우승자들은 이듬해 역대 챔피언들을 모아 식사를 대접하는 ‘챔피언스 디너’ 행사를 연다. 양용은 역시 매년 PGA챔피언십 챔피언스 디너의 초청대상이다. 사정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근사한 정장을 차려입고 행사에 참여해 왕년의 챔피언들과 옛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양용은은 “매년 15~20명 안팎의 챔피언들이 행사에 참여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내가 유일한 아시아 출신이다. 그런 점에서 뿌듯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 양용은은 골프를 늦게 시작했다.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그는 고교 때 학비라도 아낄 생각에 보디빌딩을 했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대학 진학도 꿈꾸기 어려웠다. 일찌감치 생활 전선으로 뛰어든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다리를 다치기도 했고,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일하기도 했다. 단기사병으로 군대를 다녀온 후 생활비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자리를 잡은 게 골프 연습장이었다. 숙식을 제공하는 제주의 한 골프 연습장에서 골프공을 줍고 각종 뒤치다꺼리를 하며 독학으로 골프를 익혔다. 어깨너머로 프로들의 샷을 배우고,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며 하루 12시간씩 공을 때렸다. 그는 “돌이켜보면 PGA투어 3승을 거둔 김주형 나이에 골프를 시작했던 것”이라며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 선수층이 그리 두텁지 않았다. 어쨌든 잘 견뎌내고 프로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1996년 프로에 데뷔한 뒤 그는 ‘야생마’처럼 전 세계를 돌았다. 2002년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SBS프로골프 최강전에서 우승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5승을 거뒀다. 유럽 투어에서도 2승을 거뒀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PGA투어에 진출해 2009년 혼다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거뒀고, 그해 PGA챔피언십을 제패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이동은 편하지만 아무래도 시장이 그리 크지 않다. 유럽은 대회 환경은 좋지만 이동하는 게 쉽지 않다. 유럽 각국을 쉴 새 없이 다녀야 하는데 한국 식당도 찾기가 힘들다”며 “역시 가장 좋은 건 PGA투어다. 물론 거의 매주 이동해야 하지만 잘 치는 만큼, 또 노력한 만큼 보상과 성취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용은은 2022년부터 50세 이상의 선수들이 출전하는 PGA 챔피언스투어를 주 무대로 뛰고 있다. 지난 2년간 52개 대회에 출전해 52번 모두 컷을 통과했다. 준우승 1회, 톱5 5회, 톱10 11회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는 “PGA투어가 모든 게 번잡한 대도시의 느낌이라면 PGA 챔피언스투어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골 분위기가 난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선수들과 플레이하니 한결 편안하고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이 무대 역시 승부의 세계다. 베테랑들도 우승컵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 시즌 124만 달러(약 16억 원)의 상금을 벌어 이 부문 15위에 오른 양용은은 “새해에는 꼭 한 번 우승을 해보고 싶다. 상금 순위도 10위 안으로 끌어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당장 은퇴해도 괜찮은 나이이긴 하다. 하지만 아직도 골프가 너무 재미있다”며 “언제까지 골프 선수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전까지,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이라며 웃었다. 새 시즌을 앞두고 양용은은 요즘 미국 집이 있는 하와이에서 체력을 키우고 있다. 그가 하와이에 집을 마련한 건 7, 8년 전이다. PGA투어 뿐 아니라 한국, 일본, 유럽 등을 고루 다니기 좋은 장소를 찾다가 하와이에 터를 잡았다. 그는 “무엇보다 이곳 날씨가 너무 좋다. 한겨울에도 기온이 20도 이상 올라갈 정도로 따뜻하다. 체력을 키우고 샷 연습을 하기에 좋다. 은퇴 이후까지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사흘 훈련, 하루 휴식 일정으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훈련일엔 체력훈련과 샷 연습을 번갈아 한다. 오전에 체력 훈련을 하면, 오후에 필드에 나가는 식이다. 가장 공을 들이는 건 역시 체력 훈련이다. 50대가 되면서 근력이 예전 같지 않은 걸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고교 때 잠시 보디빌딩을 했던 그는 한때 고중량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3대 500(스쾃,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중량을 합쳐 500kg의 무게를 드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3대 300’정도는 가뿐히 해냈다. 하지만 그 여파 때문인지 10년 전쯤 목 부위에 큰 부상이 왔다. 그는 “나도 모르게 무게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무게는 줄이고 횟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운동을 한다. 중년 이후의 나이에서는 근력을 키우는 것보다 유지만 해도 괜찮은 것 같다”고 했다. 한 때 벤치프레스로 80kg이상을 한 번에 10~12회씩 들어 올렸던 그는 요즘은 30~40kg 정도의 무게를 든다. 대신 3, 4세트를 하던 걸 5, 6세트로 늘렸다. 스쾃이나 데드 리프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확실히 몸에 무리가 덜 가면서도 운동 효과는 뛰어나다”고 했다. 몸무게도 7kg가량 줄였다. PGA투어에서 뛸 당시 90kg에 육박하던 몸무게가 지금은 83kg정도 나간다. 그는 “딱히 음식을 가려 먹거나 하진 않는다. 하루 세끼를 먹고 저녁에는 고기와 생선 등을 골고루 먹는다”며 “다만 튀김 음식과 탄산음료 등은 가능한 한 입에 대지 않으려 한다. 전체적인 먹는 양도 좀 줄였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체중 관리는 계속 하는 게 좋다는 걸 느끼고 있다”며 “90kg였을 때는 필드를 걸을 때 발바닥이 종종 아프곤 했는데 체중이 줄어든 후에는 발바닥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양용은은 2월 중순 시작되는 새 시즌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빡빡한 일정에 나흘 경기가 기본인 PGA투어와 달리 PGA챔피언스 투어는 상대적으로 경기 수도 적고 사흘 경기가 기본이라 한결 여유롭다. 예전에는 시간에 쫓겨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곤 했지만 지금은 아주 먼 거리가 아니면 아내와 함께 자동차로 대회장엔 간다. 그는 “다섯 시간 안쪽이면 대개 차를 운전해 대회장에 간다. 아내와 교대로 운전하며 더 긴 자동차 여행을 하기도 한다. 작년엔 차로 14시간을 이동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갈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60세까지는 투어를 다닐 것 같다”며 “그때까지는 집중해서 선수 생활을 하고 이후에 새로운 계획을 세워볼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골프장에 가는 게 즐겁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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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현진, MLB냐 한화냐… 복귀 땐 ‘역대 최고 몸값’ 유력

    새해 한국 야구의 최대 관심사는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6)의 거취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잔류할 수도, 원소속팀인 한국프로야구 한화로 돌아올 수도 있다. 선택은 류현진의 마음에 달려 있다. 류현진은 28일 손혁 한화 단장과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한화 구단 측은 “매년 이맘때쯤 해온 의례적인 식사 자리”라며 확대 해석을 피했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류현진의 한화 복귀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올해를 끝으로 토론토와의 4년 8000만 달러(약 1032억 원) 계약이 끝난 류현진은 현재 MLB 잔류를 염두에 두고 여러 팀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현지에선 뉴욕 메츠와 보스턴, 캔자스시티 등이 류현진의 새 팀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의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도 이달 초 “류현진은 내년 한국이 아닌 MLB에서 뛸 것”이라고 단언했다. 경쟁력은 여전히 충분하다. 팔꿈치 수술을 받고 8월에 복귀한 류현진은 11경기에 선발 등판해 3승 3패 평균자책점 3.46을 기록했다. 수술 전에 비해 구속이 다소 떨어졌지만 슬로 커브 등 새 구종을 던지며 빼어난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했다. 현지에서도 1년 1000만 달러(약 129억 원) 안팎의 몸값을 받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실제 계약까진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가장 큰 이유는 1, 2선발급이 아닌 류현진의 계약은 MLB 팀들에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엔 에이스급 투수가 먼저 자리를 찾아간 뒤 다른 선수들이 그 빈자리를 메우게 된다. MLB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는 여전히 블레이크 스넬과 마커스 스트로먼, 클레이턴 커쇼, 제임스 팩스턴 등 에이스급 투수가 남아 있다. 한화로서는 류현진이 돌아오길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2012년 말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 시스템을 통해 MLB에 진출한 류현진은 국내 복귀 시 한화로만 돌아올 수 있다. 류현진 역시 수시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한화에서 하고 싶다. 힘이 있을 때 돌아오고 싶다”고 밝혔다. 한화는 류현진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그가 마음을 굳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류현진이 돌아온다면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액을 받을 게 유력하다. 현재 해외파 복귀 최대 금액은 2022년 MLB에서 SSG로 돌아온 김광현이 받은 151억 원(4년)이다. 국내파를 포함해 총액 기준 최고 금액은 두산 포수 양의지가 지난해 이맘때 계약한 최대 152억 원(6년)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해부터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한화는 리그에서 두 번째로 몸값 총액(85억3100만 원)이 적어 돈을 쓸 여지가 상당히 있는 편이다. 그런데도 안치홍 영입 이후 FA 시장에서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어 ‘류현진 복귀를 염두에 두고 실탄을 아끼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내년 시즌 상위권 진출을 노리는 한화는 FA 대신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베테랑 외야수 김강민을 영입했다. 여기에 류현진까지 합류한다면 팀 전력 강화의 정점을 찍을 수 있다. 류현진의 복귀는 새해 한국 프로야구 흥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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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린골프로 글로벌 사업 다각화

    국내 스크린골프 대표 기업 골프존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2009년 해외 진출을 시작한 골프존은 일본 570여 개, 중국 210여 개, 미국 170여 개, 베트남 50여 개, 기타 국가 90여 개 등 해외에 약 1090개의 스크린골프 매장을 갖추고 있다. 최근 3년간 골프존의 해외 매출액은 2020년 262억 원, 2021년 519억 원, 2022년 750억 원으로 올해도 좋은 실적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 잠재력이 큰 미국 시장에는 최대 규모 복합 골프 문화 시설인 ‘골프존소셜’ 1호점이 올해 2월 뉴욕 팰리세이드센터에 문을 열었다. ‘골프존소셜’은 식음료를 즐기면서 스크린골프 게임을 할 수 있는 스포츠 펍 콘셉트의 복합 골프 문화 공간이다. 8월에는 뉴욕 스카스데일에 골프존소셜 2호점을 냈고, 내년에는 뉴욕 브루클린에 3호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골프 레슨에 대한 수요가 많고 골프 시뮬레이터의 성장 잠재력이 큰 일본 시장에도 주력하고 있다. 일본에는 2022년 하반기부터 국내에 비전 홈으로 출시돼 골퍼들의 큰 관심을 받은 가정용 골프 시뮬레이터 제품 ‘WAVE PLAY’를 선보이고 있다. 골프존의 실내 골프연습 시뮬레이터 ‘GDR’의 판매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15일에는 일본 골프 시뮬레이터 시장의 사업 확장을 위해 홋카이도 삿포로시에 로손엔터테인먼트 직영점 ‘유나이티드 골프존 파크’를 성공적으로 오픈했다. 토털 골프 문화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골프존은 23년간 쌓아 온 노하우를 기반으로 전 세계 골퍼들에게 새로운 골프 문화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글로벌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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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지애, 세계 15위로 마감… 첫 올림픽출전 보이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를 주무대로 뛰고 있는 신지애(35·사진)의 내년 목표는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지금 페이스대로면 신지애는 올림픽 첫 출전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마지막으로 26일 발표된 여자골프 세계 랭킹에서 신지애는 15위를 유지했다. 내년 7월 열리는 파리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는 6월 말까지 세계 15위 이내 순위를 지켜야 한다. 올림픽 여자 골프에는 국가당 2명이 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세계 15위 이내에 들면 한 나라에서 최대 4명까지 나갈 수 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골프가 정식 종목에 복귀한 뒤 2021년 도쿄 올림픽까지 한국 여자 골프는 모두 4명씩 출전했다. 각각 세계 6위와 7위인 고진영과 김효주는 안정권이다. 신지애 바로 뒤인 16위에는 양희영이 자리하고 있다. 양희영은 지난달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최종전 CME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신지애는 한국에서 20승, 미국에서 11승, 일본에서 28승을 거두며 한때 세계 랭킹 1위에 올랐지만 아직 올림픽 무대는 밟지 못했다. 올림픽 출전의 꿈을 오랫동안 품어 왔던 신지애는 최근 “내년은 파리 올림픽이 있는 해다. 한 번은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마지막으로 발표된 남자 골프 세계 랭킹에서는 김주형이 11위로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았다. 임성재가 27위로 뒤를 이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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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희영 LPGA 최종전 이글, ‘올해의 샌드웨지 샷’

    양희영(34·사진)이 지난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13번홀(파4)에서 보여 준 이글샷이 올해 최고의 샌드웨지 샷으로 뽑혔다. AP는 올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LPGA투어에서 나온 클럽별 최고의 샷을 선정해 26일 발표했다. 양희영이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13번홀에서 80야드를 남기고 58도 웨지로 친 두 번째 샷은 핀을 살짝 지나친 뒤 백스핀을 먹고 홀로 빨려 들어갔다.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던 양희영은 이 샷 한방으로 단숨에 분위기를 바꾸면서 단독 선두로 뛰어오른 뒤 하타오카 나사(일본)를 제치고 우승 트로피와 함께 상금 200만 달러(약 26억 원)를 거머쥐었다. 이전까지 한국과 태국 등에서만 LPGA투어 4승을 기록한 양희영이 미국 본토에서 거둔 첫 우승이었다. AP는 양희영의 샌드웨지 샷을 두고 “200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샷이었다”고 평가했다. 최고의 드라이버 샷으로는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3월 델 테크놀로지 매치플레이 2라운드 18번홀(파4)에서 때린 티샷이 뽑혔다. 매킬로이는 375야드 거리의 이 홀에서 강하면서도 정확한 티샷으로 공을 그린 1.2m 앞에 떨어뜨린 뒤 버디를 잡았다. 매킬로이가 7월 스코티시 오픈 최종 라운드 18번홀(파4)에서 날린 두 번째 샷은 ‘최고의 2번 아이언샷’으로 선정됐다. 2번 아이언으로 친 이 샷은 맞바람을 뚫고 200야드를 날아가 핀 3m 옆에 떨어졌다. 최고의 퍼트로는 닉 테일러(캐나다)가 6월 RBC 캐나다오픈에서 기록한 22m 이글 퍼트가 선정됐다. 테일러는 토미 플리트우드(잉글랜드)와 벌인 4차 연장전에서 기적 같은 이글 퍼트를 성공시키며 캐나다 선수로는 69년 만에 이 대회 정상에 올랐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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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번’ 양보받은 오타니, 팀동료 아내에 포르셰 깜짝 선물

    아침에 현관 문을 열었더니 고급 스포츠카 한 대가 선물로 와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최근 북미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액인 10년 7억 달러(약 9121억 원)에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오타니 쇼헤이(사진)가 등번호 17번을 자신에게 양보한 팀 동료 조 켈리의 아내에게 포르셰 차량을 선물했다. 켈리의 아내 애슐리 켈리는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타니에게서 온 깜짝 선물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개했다. 영상에서 애슐리는 집 앞에 주차된 은색 스포츠 세단을 보고 놀란다. 이때 한 남자가 “당신을 위한 차다. 오타니가 준 선물”이라고 말한다. 2019년부터 17번을 달았던 켈리는 오타니의 다저스 이적설이 나올 때부터 등번호 양보 의사를 선뜻 밝혔다. 애슐리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오타니 영입 캠페인’을 벌이며 남편의 등번호를 99번으로 바꿔 달기도 했다. 오타니의 다저스 입단 계약 후 켈리도 “오타니가 지금처럼 활약한다면 분명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것이다. 그게 나도 명예의 전당에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MLB에서는 등번호를 양보 받은 선수가 원래 주인에게 선물을 하는 게 관례다. MLB에서 16년을 뛴 후 2021년 한국프로야구 SSG에 입단한 추신수도 등번호 17번을 양보한 이태양(현 한화)에게 2000만 원 상당의 명품 시계를 선물했다. 선물 대신 현금을 준 사례도 있다. 왕년의 도루왕 리키 헨더슨(65)은 1993년 토론토로 이적하면서 터너 워드가 달고 있던 24번을 얻기 위해 현금 2만5000달러(약 3258만 원)를 건넸다. 지금도 적지 않은 돈이지만 당시로선 상당한 액수였다. 2014시즌 도중 세인트루이스로 트레이드된 존 래키는 등번호 41번을 선뜻 양보한 팻 네식에게 베이브 루스(1895∼1948)의 친필 사인볼을 선물했다. 2012년 피츠버그에 입단한 A J 버넷은 대니얼 매커친의 딸 대학 등록금을 대주기로 약속하고 등번호 34번을 넘겨받았다. 당시 MLB 최저 연봉을 받고 있던 매커친은 아내의 배 속에 있던 딸 대학 등록금을 먼저 요청했고 버넷이 이를 받아들였다. 등번호 양보를 거부한 경우도 있다. 1989년 뉴욕 메츠로 이적한 사이영상 수상자 프랭크 바이올라가 16번을 양보해 달라고 하자 드와이트 구든은 “뭐든지 다 줄 수 있지만 등번호만은 안 된다”며 거부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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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헌재의 인생홈런]60대 현역코치 김광수 “펑고 잘 치려 수시로 악력 운동”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 OB 베어스(현 두산)에는 스타 선수가 많았다. 그런데 당시 팀 내 최고 연봉 자리를 종종 차지했던 선수는 김광수(64)였다. 165cm의 단신으로 홈런이나 안타를 많이 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수비와 주루, 작전 수행 등 팀이 필요로 하는 역할을 해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선수 생활을 한 11년 동안 그는 한 번도 타격 부문 타이틀을 차지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은퇴 한 해 전인 1991년에 50도루로 이 부문 2위를 했다. 정식 타이틀은 아니지만 1987년엔 볼넷 1위(54개)에도 올랐다. 그는 “사실 내가 발이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었다. 체구도 작고 힘도 약했다. 대신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려 했다. 열심히 지켜보니 어느 순간 상대 투수의 습관이나 포수의 약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1993년 지도자가 된 후에도 그는 남들보다 야구를 더 깊고 치밀하게 보려 노력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명장들인 김인식, 김경문, 김성근 전 감독 등이 그를 코치로 중용한 이유다. 2017년 한화를 마지막으로 잠시 그라운드를 떠났던 그는 얼마 전 김태형 롯데 신임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그는 65세가 되는 내년에도 벤치코치로 손자뻘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리게 된다. 그가 다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던 건 신체적,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일구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꾸준히 야구와의 끈을 이어왔다. 야구장을 찾아 선수들이 예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경기의 흐름은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를 관찰했다. 모교인 선린인터넷고에서 인스트럭터를 맡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한 시즌을 버틸 수 있는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경기나 훈련이 없는 날 그는 목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파트 단지 내 사우나에 가서 반신욕을 20분가량 한 뒤 냉탕에서 잠시 몸을 식힌다. 이후 다시 사우나에서 20분가량 땀을 낸 뒤 냉탕으로 마무리한다. 하체 근력은 가벼운 등산으로 유지한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함께 서울의 아차산과 청계산, 경기 하남의 검단산 등을 오른다. 산에 가지 않을 때는 집 주변에 있는 서울 올림픽공원 등을 걷는다. 그는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순발력과 스피드는 떨어진다. 하지만 관리하는 만큼 노화를 늦출 수 있다. 어떻게든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선수 시절 그를 당대 최고의 2루수로 만든 것도 반복된 훈련이었다. 프로 첫해 그는 김성근 전 감독의 펑고(수비 훈련을 위해 쳐 주는 땅볼)를 받았다. ‘펑고의 달인’이라 불리던 김 전 감독은 한번 방망이를 잡으면 1000개가 기본이었다. 김 코치는 “하루에 1000개를 치는 사람도 대단했고, 그걸 받는 사람도 대단했다”며 “처음엔 공을 따라 몸이 움직였다. 그런데 하루 1000개씩 공을 받다 보니 언젠가부터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며 웃었다. 지도자로 30년간 펑고를 쳐 온 그는 요즘도 수시로 악력기를 든다. 그는 “펑고를 치려면 손아귀 힘이 떨어지면 안 된다”며 “야구장에 나가는 건 언제나 즐거웠다. 선수들과 오랫동안 행복한 야구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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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펑고 1000개를 받으면…” ‘65세 코치’ 김광수가 말하는 반복의 힘[이헌재의 인생홈런]

    ‘날다람쥐’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김광수 프로야구 롯데 코치(64)는 홈런을 많이 치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타율이 아주 높지도 않았다. OB 베어스(현 두산)에서 뛴 11시즌 동안 통산 홈런은 27개였고, 통산 타율 역시 0.249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역 유니폼을 입고 있는 동안 그는 여러 차례 팀 내 최고 연봉을 받았다. 방망이는 약했지만 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는 탄탄한 수비와 상대의 허를 찌르는 주루, 그리고 뛰어난 작전 수행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신장(165cm)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대 최고의 2루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1992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지도자로 변신한 후에도 그는 묵묵히 현장을 지켰다. 1993년 OB 수비코치를 시작으로 고양 원더스 수석코치, 한화 이글스 수석코치 등을 지냈다. 한국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명장들인 김인식 전 감독, 김경문 전 감독, 김성근 전 감독 등 ‘3김(金)’을 모두 보좌했다. 국제대회에도 여러 차례 나서 한국 야구의 영광을 함께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김경문 전 감독을 도와 한국의 9전 전승 금메달에 힘을 보탰다. 이승엽, 이대호 등이 결정적인 홈런을 치고 들어올 때 3루 주루코치로 하이파이브를 나눈 게 바로 그였다. 2015년 프리미어12때는 김인식 전 감독과 함께 초대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그리고 10월 말 그는 이번엔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빛나는 김태형 롯데 신임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2017년 한화 이후 6년 만의 그라운드 복귀다. 그는 내년 시즌 김 감독을 보필해 롯데의 부활을 돕게 된다. 보직은 선수단의 분위기를 추스르고, 김 감독에게 조언을 하는 역할의 벤치코치다. 그는 “감독님이 전화로 ‘같이 한 번 해보시죠’라고 제안을 해 주셨다. 현장에 복귀하게 돼 너무 행복하다. 내가 그동안 인생을 나쁘게 살지 않았던 것 같다. 롯데의 야구를 하나로 만드는 게 내 임무다. 하루하루를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에게 김 코치는 8년 선배다. 1995년 두산의 우승 때 김태형 감독은 포수 마스크를 쓴 선수, 김광수 코치는 수비코치였다. 하지만 김 감독은 팀내 소통을 위해 선뜻 먼저 손을 내밀었다. 김 감독은 “감독이 모든 걸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못 보는 부분을 누군가는 볼 수 있어야 팀이 강해진다”고 김 코치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1982년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 원년 멤버인 김 코치는 내년에 65세가 된다. 1993년 처음 코치 생활을 시작했으니 내년엔 코치로서 보낸 시간도 30년이 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그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여전히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일구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꾸준히 야구와의 끈을 이어왔다. 종종 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보며 선수들이 예전과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경기의 흐름은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를 관찰했다.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등을 찾아 아마선수들의 모습도 지켜봤다. 모교인 선린인터넷고에서 인스트럭터를 맡기도 했다. 그는 예전부터 어린 선수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내는 친화력이 좋은 코치였다. 이제는 손자뻘의 어린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려야 한다. 그는 “운동장에서는 즐겁고 행복하게 운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결과도 함께 얻어야 한다”며 “우리는 프로다. 프로라면 어느 정도 고통이 따르는 건 당연하다. 준비한 과정이 혹독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평소 자신의 지론을 밝혔다. 돌이켜보면 그가 수비 하나만큼은 당대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혹독한 과정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상하관계가 엄격하던 중학생 시절 그는 한 1년 선배의 수비 파트너였다. 그가 공을 던지면 그 선배가 공을 치는 훈련을 했는데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더란다. 그래서 그는 “제가 100개 연속 공을 받으면 끝내는 걸로 하자”라고 먼저 제안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훈련을 끝내기 위해 그는 집중력있게 수비를 했다. 그는 “하나라도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에 혼신의 힘을 다했던 것 같다. 의도치 않게 수비 연습을 많이 하게 됐다”고 했다. 고교 때는 ‘의도치 않게’ 배팅볼을 던지며 집중력을 키웠다. 당시 1학년들은 3학년에게 배팅볼을 던졌는데 당시엔 배팅볼 투수를 위한 보호망이 없었다고 한다. 방망이에 제대로 맞은 공은 곧바로 투수를 향해 날아오곤 했다. 그는 “일단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자칫하다간 한 방에 갈 수 있으니 어떻게든 공을 피해야 했다”며 “나중에는 몸쪽 깊은 쪽으로 공을 던지는 노하우가 생겼다. 그렇게 던져야 강한 타구가 내 쪽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그런 게 송구 연습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결정적인 건 프로 입단 후 김성근 감독을 만난 것이었다. 김 감독은 당시 OB 투수코치였지만 코치가 부족했던 당시엔 투수코치도 야수들에게 펑고를 쳐주곤 했다. ‘펑고의 달인’이라 불리던 김 감독은 한 번 방망이를 잡으면 쉽게 놓는 법이 없었다. 하루 1000개가 기본이었다. 점심 식사 후 시작하면 저녁 먹기 전까지 펑고를 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김 코치는 “하루에 1000개를 치는 사람도 대단하고, 그걸 받는 사람도 대단하다”며 “처음엔 공을 따라 몸이 움직였다. 그런데 하루 1000개씩 공을 받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수비 뿐 아니라 주루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은퇴 한 시즌 전인 1991년에 무려 50개의 도루를 했다. 마지막까지 경합 끝에 도루왕은 이순철(해태)에게 내줬지만 그해 도루 2위에 올랐다. 그런데 세간의 평가와 달리 그는 스스로는 준족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사실 내가 그렇게 발이 빠른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투수들의 습관이나 포수의 약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며 “나는 체구도 작고 힘도 떨어지는 선수였다. 대신 경기의 흐름을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읽으려 노력했다”고 했다. 그렇게 평생 장점은 살리고, 모자라는 부분은 채우면서 살아온 그는 건강 관리에도 열심이다. 더구나 훈련 때나 경기 내내 서서 있어야 하는 ‘현역’ 코치로 한 시즌을 버티려면 강인한 체력이 있어야 한다. 경기나 훈련이 없는 날 그의 하루는 목욕으로 시작한다. 아파트 단지 내 사우나에 가서 반신욕을 20분 가량 한 후 냉탕에서 몸을 식힌다. 이후 다시 사우나에서 20분가량 다시 땀을 낸 후 냉탕으로 마무리한다. 다리 근력은 가벼운 등산으로 유지한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함께 서울이나 인근의 아차산과 청계산, 검단산 등을 오른다. 산에 가지 않을 때에는 집 주변에 있는 서울 올림픽공원 등을 한 두 시간 가량 걷는다. 그는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순발력과 스피드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관리하는 만큼 노화를 늦출 수 있다”며 “어떻게든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움직을 수 있을 때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수시로 악력기를 이용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양손에 악력기를 들고 TV를 보곤 한다”며 “선수들에게 펑고를 쳐주려면 손아귀 힘이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펑고는 무척 단순해 보이지만 제대로 하려면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선수가 다리를 움직이게 쳐줘야 한다. 10cm 안팎의 차이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선수가 팔을 쫙 펴서 잡으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게 좋은 펑고다. 언제까지가 될 지 모르지만 나도 선수들과 함께 야구장에서 오래 재미를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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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 고진영’ 꿈 GO!… 아마 최강 15세, 세계 강자와 결전

    “고진영 선배가 롤모델이에요. 경기를 차분하게 풀어가는 모습을 닮고 싶어요.” 수줍어하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단단한 의지와 함께 자신감이 느껴졌다. 국내 여자 아마추어 골프 최강자 이효송(15·마산제일여중3)이 ‘제2의 고진영’(사진)을 향한 첫발을 내딛는다. 이효송은 21일부터 사흘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폰독인다 골프장에서 열리는 아시아골프리더스포럼(AGLF) 시몬느 아시아퍼시픽컵에 출전한다. 국가대항전 성격을 지닌 이 대회엔 세계적인 선수들이 대거 나선다. 참가가 확정된 58명 중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최저 타수 1위인 아타야 티띠꾼(태국), LPGA투어 통산 6승의 하타오카 나사(일본)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신인왕 김민별과 이 부문 3위 황유민 등도 출전한다. 올해 2승을 포함해 KLPGA투어 통산 8승을 기록 중인 이다연, 통산 6승의 이소영도 출전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대회는 개인전과 함께 2명이 한 팀을 이뤄 치르는 단체전도 진행한다. 개인전에는 55만 달러(약 7억1000만 원), 단체전엔 20만 달러(약 2억6000만 원)의 상금이 걸려 있다. 이효송은 “세계적인 선수가 많이 나오는 만큼 배운다는 자세로 치고 싶다”며 “10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세계아마추어 팀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두 살 위 (김)민솔 언니와 함께 금메달을 땄다. 이번 대회 단체전에서도 언니와 한 팀을 이뤄 잘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이효송은 한국 아마추어 골프계에선 이미 이름난 강자다. 6월 국내 최고 권위의 강민구배 한국 여자 아마추어 골프선수권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최종 라운드에서는 10언더파를 몰아치며 최종 합계 19언더파 269타로 한 라운드 최소타와 대회 최소타 기록을 모두 새로 썼다. 이 대회에서 두 번 우승한 것도 정일미(1989, 1993년) 이후 30년 만이었다. 이효송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지금까지 개인전 우승 트로피 43개를 모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골프 영재’의 모습을 자랑하기도 했다. 당시 비거리 230m의 드라이버샷과 정교한 아이언샷, 정확한 퍼팅으로 박수를 받았다. 할아버지 이승배 씨는 이효송이 초등학생 때 훈련할 곳이 마땅치 않자 밭으로 쓰던 집 앞마당을 미니 골프장으로 만들어 주는 등 정성을 쏟았다. 그린뿐 아니라 벙커까지 갖춘 이곳에서 이효송은 쇼트게임과 퍼팅을 연마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제2의 박인비’로 불렸던 이효송은 전인지 박성현 등 세계 무대에서 성공한 선배들의 뒤를 따르는 게 목표다. 그는 “박인비 프로님은 포커페이스가 너무 멋있고, 전인지 프로님은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 좋아했다”며 “박성현 프로님이 2017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걸 보고 나도 큰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 롤모델은 여자 골프 역대 최장 기간 세계랭킹 1위 기록(163주)을 갖고 있는 고진영이다. 이효송은 “아직은 부족한 게 많다. 쇼트게임과 퍼터를 보완해야 하고 멘털도 더 강해져야 한다”며 “KLPGA투어에서 우승을 많이 해 이름을 남긴 뒤 LPGA투어로 가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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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슬링 전설 박장순 “모든 힘의 원천은 복근”[이헌재의 인생홈런]

    2016년 세계레슬링연맹(UWW)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박장순 삼성생명 감독(55)은 한국 레슬링의 전설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레슬링 남자 자유형 68kg급 은메달을 시작으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74kg급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같은 종목에서 은메달을 추가했다. 한국 투기 종목 선수 가운데 올림픽 3연속 결승 진출은 박 감독이 유일하다. 그런 박 감독을 가장 괴롭힌 건 ‘체중 조절’이었다. 1990년 초 유럽 투어 때는 아무리 해도 살이 빠지지 않자 자신의 코를 주먹으로 때려 코피를 낸 적도 있다. 단 1g이라도 줄여보려 한 것이다. 그는 “대회가 열린 러시아 시베리아는 밤에 영하 40도까지 내려갔다. 흐르는 쌍코피를 휴지로 틀어막고 운동장을 뛰고 또 뛰었다. 그만큼 간절했고, 그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결국 체중을 맞춘 그는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해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후 체급을 74kg급으로 올렸다. 그리고 5전 6기 끝에 해당 체급 최강자이던 케네스 먼데이(미국)를 꺾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은퇴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74kg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먹는 만큼 운동을 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려면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한다. 선수들과 똑같이 일주일에 두세 번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고 했다. 선수 시절 그는 ‘줄 타고 오르기’의 장인이었다. 11m 높이의 줄을 한 번에 10번씩 오르내렸다. 그걸로는 성이 차지 않아 15kg 원반을 달고 줄타기를 하기도 했다. 그가 잘하지 못했던 건 달리기였다. 당시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선수들은 불암산 정상까지 뛰어오르곤 했는데 그는 레슬링 선수 중 꼴찌를 도맡아 했다.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지만 그는 요즘도 집이 있는 남양주 별내에서 불암산까지 등산을 한다. 그는 “선수 때는 불암산 산신령님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면서 운동을 했다. 요즘도 옛날 생각을 하며 불암산에 오르곤 한다”고 했다. 쉬는 날엔 아내와 함께 종종 여행을 떠난다. 최근에도 강원도 강릉과 양양을 다녀왔다. 그는 “평일에 선수들을 열심히 지도한 뒤 휴일엔 모든 걸 비우고 재충전을 한다”며 “선수들에게도 운동할 때는 최선을 다하고, 쉴 때는 화끈하게 쉬고 오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복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복근에 힘이 떨어지면 몸 전체가 처진다는 것. 그는 “굳이 피트니스센터에서 복근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소파 위에서나 방석을 깔고 앉아 엉덩이를 붙인 채 발을 반복해서 들어 올리는 가벼운 동작으로도 충분하다”며 “한 달만 꾸준히 하면 복근을 통해 에너지가 생기고, 굽어 있던 어깨가 펴지는 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바닥에 엎드린 채로 양손과 양발을 들어 올리는 동작도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좋다”고 덧붙였다. 아버지 같은 지도자가 되려는 그의 인생 최종 목표는 선수촌장이다. 그는 “선수로서, 또 지도자로서 행복한 인생을 보냈다. 언젠가는 선수촌장으로 내가 살아온 인생과 노하우를 후배 선수들과 함께 나누는 꿈을 꾼다. 그날을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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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베리아 쌍코피’의 전설…레슬링 박장순은 그만큼 간절했다[이헌재의 인생홈런]

    어느 종목이건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의 훈련량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동료 선수들조차 안쓰럽게 쳐다보는 종목이 하나 있다. 바로 레슬링이다. 레슬링 선수들은 쉴 새 없이 뛰고, 구르고, 기구를 들고, 상대를 메친다. 태릉선수촌 시절 레슬링은 가장 먼저 운동을 시작해 가장 늦게 끝나는 종목이었다. 안 그래도 힘든 레슬링 선수들을 더 괴롭히는 건 ‘체중 조절’이다. 힘을 쓸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 그런데 체중 종목인 레슬링은 잘 먹으면서도 자기 체급의 체중을 정확히 맞춰야 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박장순 삼성생명 감독(55)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체중 조절을 잘 이용해 한국 격투기 종목 선수로는 유일하게 올림픽 3개 대회 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박 감독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레슬링 남자 자유형 68kg급에서 은메달을 땄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74kg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같은 종목 은메달을 수확했다. 레슬링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금메달)을 달성한 그는 2016년 세계레슬링연맹(UWW)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어린 시절 그는 체구가 작은 편이었다. 원래 씨름 선수였지만 몸집이 작아 레슬링으로 전향했다. 대전체고를 졸업한 그는 경량급인 56kg급 선수로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오니 피자, 치킨 등을 평소 보지 못했던 음식들이 차고 넘쳤다. 박 감독은 “얼마나 맛있는 게 많던지 밥을 세 공기씩 먹었다. 몸무게가 10kg 이상 늘고, 키도 10cm이상 컸다. 잠자고 있던 몸속의 힘이 살아나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엔 68kg급으로 출전했다. 당시 그는 앞만 보고 뛰었다. 대회 전 어느 날 선수촌에서 그는 러닝으로 몸을 풀고 있는데 옆에 한 흑인 선수가 같이 뛰고 있더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수는 당대 최고의 육상 스타 칼 루이스(미국)였다. 그는 “사실 올림픽이 그렇게 큰 대회인 줄 몰랐다. 칼 루이스가 누군지도 몰랐다. 매트 위에선 상대 선수가 누구든 힘과 패기로 밀어붙였다”고 했다. 은메달을 딴 후 그는 남자 74kg급 경기를 보러 갔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화려한 기술로 매트를 평정하던 케네스 먼데이(미국)가 금메달을 따는 걸 눈앞에서 본 것이다. 마음 속에선 “저 선수와 한번 붙어보고 싶다”는 불길이 솟아올랐다. 당장 74kg으로 체급을 올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체급을 올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1990년 초 열린 유럽 투어였다. 첫 대회가 열린 러시아에서 그는 체중 조절에 애를 먹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살이 빠지지 않았다. 절망한 그는 화장실에서 자신의 코를 주먹으로 때려 코피를 냈다. 그렇게 단 1g이라도 줄여보려 한 것이다. 이 모습을 본 당시 코치는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그냥 운동장을 뛰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 시베리아는 밤에 영하 40도까지 내려갔다. 흐르는 쌍코피를 휴지로 틀어막고 운동장을 뛰고 또 뛰었다. 그만큼 간절했고, 그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어떻게든 체중을 맞춘 그는 그 대회 금메달을 땄다. 우승을 한 건 좋았지만 1m도 넘는 대형 트로피를 받은 게 또 다른 문제였다. 이후 프랑스와 터키, 미국 등을 돌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동을 거듭할 때마다 트로피는 한두 군데씩 부서지기 시작했고, 한국에 오기 전 그는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트로피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해 베이징 아시아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후 그는 체급을 74kg급으로 올렸다. 74kg급에서 만난 ‘우상’ 케네스 먼데이와의 대결은 연전연패였다. 첫 만남에서 폴로 패했다. 이후에도 좀처럼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고무적이었던 건 맞대결이 거듭될수록 점수 차가 좁혀졌다는 거였다. 5번째 대결에서는 팽팽한 대결 끝에 연장전에서 패했다. 그는 오기가 생겼다. 먼데이를 이기기 위해 바르셀로나 올림픽 3개월 전부터는 친구도 만나지 않고, 외출도 하지 않으며 수도승처럼 살았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했던가. 그는 운명처럼 올림픽 결승에서 먼데이를 다시 만났다. 그가 세운 작전은 ‘버티기’였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경기 종료 15초를 남기고 그는 태클을 시도해 먼데이를 쓰러뜨렸다. 1-0 승리였다. 5전 6기 끝에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박 감독은 “여전히 먼데이를 존경한다. 먼데이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나도 있을 수 있었다”며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 크다. 내 인생을 바꿔준 선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감독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같은 종목에서 은메달을 따고 은퇴한 후 국가대표 트레이너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삼성생명 레슬링단 감독이 됐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국가대표 감독을 맡기도 했다. 74kg급 선수로 은퇴한 그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74kg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지도하는 선수들과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함께 훈련한다. 그는 “순간 스피드만큼은 지금도 자신 있다. 스피드가 있으면 기술이 완벽하지 않아도 경기를 주도해 나갈 수 있다”며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려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체중이 더 늘지 않게 몸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다. 타고난 장사였던 박 감독은 선수 시절 레슬링 선수들이 많이 하는 ‘줄 타고 오르기’의 장인이었다. 11m 높이의 줄을 한 번에 10번씩 오르내렸다. 그걸로는 성이 차지 않아 15kg 원반을 발에 매고 줄타기를 하기도 했다. 그는 “나뿐 아니라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라면 대부분 서울에서 부산까지 줄을 탔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가 잘하지 못했던 건 달리기였다. 당시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선수들은 불암산 정상까지 뛰어오르곤 했는데 그는 레슬링 선수 중 꼴찌를 도맡아 했다. 다시는 쳐다보지도 싫을 것 같지만 그는 요즘도 가끔 집이 있는 남양주 별내에서 불암산까지 등산을 하곤 한다. 그는 “선수 때는 불암산 산신령님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면서 운동을 했다. 요즘도 가끔 불암산 등산을 하며 불암사에 들르곤 한다”고 했다. 쉬는 날엔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곤 한다. 최근에도 강원도 강릉과 양양을 다녀왔다. 그는 “평일에 열심히 선수들을 지도한 뒤 휴일에는 마음을 비우고 재충전을 한다”며 “선수들에게도 운동할 때는 최선을 다하고, 쉴 때는 화끈하게 쉬고 오라고 한다”고 했다.그는 일반인들에게 ‘복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별과 나이를 떠나 복근에 힘이 떨어지면 몸 전체가 처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굳이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기구를 들며 복근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집에서 소파 위에서나 방석을 깔고 앉아 엉덩이를 붙인 채 발을 반복해서 들어 올리는 가벼운 동작으로도 충분하다”며 “TV를 볼 때든, 쉴 때든 이렇게 한 달 만 꾸준히 하면 복근을 통해 에너지가 생기고, 굽어 있던 어깨가 펴지는 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바닥에 엎드린 채로 양손과 양발을 들어 올리는 동작도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아주 좋다”고 덧붙였다. 20년 가까이 삼성생명 감독을 맡고있는 그는 침체에 빠진 한국 레슬링 자유형의 미래를 여자 레슬링에서 찾고 있다. 삼성생명은 2021년 여자 자유형 레슬링팀을 창단했고, 소속 선수 천미란이 4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여자 자유형 50㎏급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4위에 오른 천미란은 내년 파리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박장순은 “일본은 여자 레슬링 강국이다. 우리도 못할 게 없다. 좋은 선수들을 잘 키워 새로운 메달밭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 같은 지도자가 되려는 그의 인생 최종 목표는 선수촌장이다. 대한체육회 이사도 맡고 있는 그는 “선수로서, 또 지도자로서 행복한 인생을 보냈다. 언젠가는 선수촌장으로 내가 살아온 인생과 노하우를 후배 선수들과 함께 나누는 꿈을 꾼다. 그날을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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