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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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칼럼64%
인사일반13%
미국/북미7%
국제일반7%
국제경제3%
국제인물3%
여행3%
  • [책의 향기]낯선 땅에서 삶의 소용돌이를 마주하다

    ‘고급지다.’ 틀린 표현인 거 아는데, 굳이 이렇게 부르고 싶다. 이 소설, ‘…스럽다’랑은 어울리지 않는다. 정희승 작가의 사진을 품은 외피도 근사하지만, ‘캉탕’은 작품 자체가 기품 있다. 저자로선 듣기 거북할 수 있겠으나, 살짝 지적 허영을 충족시켜 준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난해할 거란 선입견은 가지지 말자. 오히려 플롯은 꽤나 단출하다. 마음의 병 비슷한 게 생긴 주인공 한중수.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J의 조언을 듣고 여행을 떠난다. J의 외삼촌 핍이 사는, 대서양 어딘가 이름 모를 항구 캉탕으로. 그 낯선 땅에서 한중수는 생경한 사람과 풍경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 밋밋한 여정은 심연에 폭풍을 감추고 있다. 외지인에겐 당황스러운 제주 날씨를 닮았다. 특유의 습기를 머금은 채 부산스레 변하는 하늘처럼. 맑다가 흐리고, 거칠다가 여릿한 삶의 소용돌이가 순식간에 발목까지 차오른다. 스스로 물속으로 뛰어드는, 혹은 주저하는 갈림길에 서서. “미로와 같은 복잡한 행로, 근원을 알 수 없는, 예기치 않은, 대비할 수 없는 덮침. 나는 그런 것을 경계한다. 그런데 경계한다는 것은 예감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캉탕’의 또 다른 매력. 괜한 처연함에 빠져들지 않는다. 굵디굵은 문장이 낯간지러운 하소연에 그칠 수 있었던 자기고백을 묵직한 울림으로 바꿔 놓는다. 게다가 ‘모비 딕’과 ‘오디세이아’와 ‘성경’, 그리고 살짝 양념으로 뿌린 ‘그리스인 조르바’. 소설 속에서 어지러이 뒤섞인 텍스트가 어느새 한껏 버무려진 향연으로 흥을 돋운다. 의외로 끝자락엔 반전(?)도 숨어있는데, 별것 아닌 양 툭 튀어나오는 맛이 꽤나 야무지다. 책을 덮은 뒤 인터넷에서 ‘캉탕’을 뒤져봤다. 혹시 ‘깡땅’은 아닐까, 프랑스 어디쯤이 아닐까. 잠깐 범인을 쫓는 탐정 기분을 내며. 영 실마리를 찾지 못하다, 문득 다시 책을 손에 들어 본다. 뭔가 변했다. 처음부터 이리 무거웠던가. 얼마큼인진 모르겠지만, 마음 몇 그램쯤 뺏어갔을지도. 그럼 떠날 때가 돌아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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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성인영화계에서 벌어진 왠지 낯설지 않은 풍경들[광화문에서/정양환]

    미아 칼리파. 26세 미국 여성. 생소하겠지만 서구에선 꽤 알려진 ‘셀럽’(명사)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약 1700만 명. 한 성인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해 이라크에서 발생한 시위에도 그 이름이 등장했다. ‘칼리파가 정치인보다 낫다’는 피켓이 거리에 나섰다. “무능한 그들과 달리, 최소한 위안과 안식을 줬다”나. 그는, 포르노배우다. 칼리파는 2014년 데뷔(?)부터 화제였다. 하긴 스타 탄생이 시간에 구애받던가. 곧장 미 성인사이트에서 인기 순위 정상을 찍었다. 레바논 출신인 그는 특히 중동에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몇 달 동안 10여 편을 찍은 뒤 돌연 은퇴했다. 텍사스대를 나온 그는 스포츠캐스터를 준비한단다.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끈 건 지난달. 수많은 언론이 그를 다뤘다. 워싱턴포스트와 가디언, 인디펜던트…. BBC 라디오는 주요 대담 프로에도 초대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미아 칼리파는 성산업(sex industry)에서 가장 성공한 배우다. 지금까지 그의 영상은 수십억 명이 시청했다. 그런데 받은 돈은 고작 1만2000달러(약 1460만 원)였다.” 누가 봐도 문제긴 하다. 젊은 여성이 그런 일을 감수하고 편당 140만 원쯤이라니. 안타깝고 속상하다. 반면 제작사는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사회적 비난이 폭발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지지와 격려의 물결이 거대한 파도로 번졌다. 칼리파는 여기에 마지막 눈깔을 그려 넣는다. “다시는 저처럼 힘없는 여성 희생자가 나오지 않길 바랍니다.” 과연 그럴까. 실은 이후 분위기는 다소 묘하다. 일단 칼리파가 피해자가 맞느냔 반론이 나왔다. 몇 년 전 직접 계약서를 썼고 강제성도 없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지우고 싶은 과거”라더니, 지금도 유명세를 십분 활용한다. 개인 SNS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게재물이 넘쳐난다. 그 덕에 SNS로 버는 수익만 1년에 200만 달러가 넘는다. 그가 단박에 인기를 얻은 과정도 짚어보자. 중동계였던 칼리파는 포르노에 ‘히잡’을 쓰고 나온 최초의 배우였다. 또 그걸 저질농담 소재로 삼았다. 자신은 가톨릭 신자면서. 이 노이즈마케팅이 성공의 핵심 비결이었다. 당연히 이슬람 사회는 난리가 났다. 하지만 그는 타인의 종교를 모독한 전력을 사과한 적이 없다. 오히려 SNS에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린 사진을 띄웠다. 완벽한 ‘내로남불’이다. 물론 이런 정황이 구질구질한 성산업을 옹호해줄 이유가 되진 않는다. 굳이 따진다면 그쪽이 훨씬 거대 악이니까. 하지만 때론 위선(僞善)에 받는 상처가 더 크다. ‘을 코스프레’에 속아 응원했는데, 속살은 갑이라면 배신감은 그지없다. 게다가 이 소란, 서로에겐 수지맞는 장사였다. 출연 영상은 다시 조회수가 치솟았다. 칼리파는 1400만 명이던 팔로어가 보름 만에 300만 명 남짓 늘었다. 광고 제의도 쏟아졌다. 그동안 진짜 보통사람은? 열심히 쌈짓돈 쓰고 구독자도 올려줬다. 이쪽저쪽 편 가르고 혈압만 올려댔다. 그렇게 을과 을이 피 터질 때 갑과 갑은 짭짤했다. 제정신 차리지 않는 한, 세상은 언제나 이 모양이다. 정양환 문화부 차장 ray@donga.com}

    • 201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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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으로 건강한 미래세대 계승할 것”

    “옥한흠 목사를 생각하며 복음으로 건강한 미래를 세우는 세대 계승을 이뤄 나갈 사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청렴한 목회자였던 고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1938∼2010)를 기리는 기념예배가 2일 경기 안성시 사랑의교회 수양관에서 열렸다. 이날 오전 사랑의교회(담임목사 오정현)가 주최한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 9주기 기념예배’는 옥 목사의 발자취를 기억하며 고인의 철학과 비전을 나누는 자리였다. 주관은 국제제자훈련원과 은보옥한흠목사기념사업회, 제자훈련목회자네트워크(전국대표 이기혁 목사)가 맡았다. 400여 명이 참여한 이날 예배는 이기혁 대전새중앙교회 목사가 사회를, 박정식 은혜의교회 목사가 대표 기도를 담당했다. 고인이 생전에 함께했던 사랑의교회 포에버찬양대가 특별 찬양을 했다. 오정현 목사는 이날 “평생의 스승으로 사랑받고 사랑했던 옥 목사의 9주기 기념예배에 마음을 모아줘 감사드린다”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 사는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착한 양이 되고 생명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착한 목자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인의 부인인 김영순 여사도 인사말을 통해 고인이 떠난 지 9년이나 지났는데도 잊지 않고 함께 예배한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1938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옥 목사는 1978년 서울 서초구에서 사랑의교회를 개척해 크게 성장시켰다. 2003년 오 목사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정년을 5년이나 앞당겨 은퇴했다. 당시도 대형 교회의 세습이 사회적 논란이었던 시기라 이 결정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고인은 생전에 복음주의 계열의 교회지도자로 평신도 신앙 훈련에 열정적인 목회자였다. 균형 잡힌 성경 해석과 기품 있는 설교로 ‘설교의 모범답안’이라고도 불렸다. 2005년 CBS가 한국기독교선교 120주년을 맞아 시행한 조사에서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 부문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오 목사는 “옥 목사가 주창해 1978년부터 지금까지 제자 훈련 1만3000여 명, 사역 훈련 1만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며 “고인의 사랑과 기도를 지렛대 삼아 일사각오로 유지를 더욱 굳건히 하겠다”고 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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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괜찮아, 성장통이야’… 열세 살의 뜨거운 여름

    실은, 별일이 일어난 건 아니다. 그해 그 여름방학. 열세 살 비나는 심기가 불편했다. 단짝 오스틴은 한 달이나 축구캠프로 떠나 버리고. 딱히 할 일이 없던 비나는 외롭고 쓸쓸하다. 하지만 친구의 부재가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줄이야. 그리고 돌아온 친구. 하지만 왠지 서먹한 기분을 감출 수 없는데…. ‘올 썸머 롱’은 정말 사건이랄 게 없다. 주변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일뿐이다. 심심해서 단짝의 누나랑 시간을 보내고, 언제나 자신을 위로하던 음악을 듣는다. 하지만 우린 알지 않나. 겉으론 아무 일 없어도 10대의 하루는 천변만화한다. 그리고 ‘어느새 벌써’ 아이들은 한 뼘씩 쑥쑥 자라난다. 이 그래픽노블은 참 정겹다. 오랜만에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처음 읽었던 기분을 떠올렸다. 행간에 숨은 아이들의 맑은 감정이 당차고 보드랍다.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아이스너상 수상자라더니 역시 작가의 내공이 만만찮다. 이 여름이 끝나고 나면 비나와 오스틴은 또 어떤 청춘으로 커 나갈까. 부제인 ‘나의 완벽한 여름’이 세상의 모든 청소년에게 허락되는 세상이 됐으면. 문득 비나의 기타 연주가 들어보고 싶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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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상은 과학이자 철학… 종교를 떠나 이 시대에 꼭 필요하죠”

    “명상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과학이자 철학이에요. 한 사람이라도 더,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시작해야 합니다. 이 좋은 걸, 종교가 걸림돌이 돼 못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어요?”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세계명상센터 참불선원. 가본 적은 없어도 들어는 봤다는 은마아파트 인근에 있는 선원은 아파트만큼 낡은 건물인데도 왠지 쾌적했다. 살짝 과장하자면, 깊은 산중 사찰에 들어선 기분이랄까. 선방(禪房)에서 만난 참불선원장 각산 스님(59)의 “빈객(賓客) 덕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서”란 농도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실은 스님이 7월 한국명상총협회를 창립하고 회장까지 맡았다는 소식은 다소 의아했다. 한국 불교 명상의 보급에 앞장서 온 그는 이미 국내외에서 세계적인 명상 수행자로 입지가 탄탄하다. 그런데 굳이 종교를 내세우지 않고 명상 모임을 만든 이유가 뭘까. 그걸 또 스님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속세에서 치를 마지막 책무”라고까지 했다. ―거두절미하고 협회는 왜 만든 겁니까. “경북 영주에 있는 한국문화테마파크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의뢰한 적이 있어요. 뜻이 좋아서 흔쾌히 받아들였는데, 중간에 무산돼 버렸습니다. 참여 기업 중 하나가 ‘종교적 색채’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다는 겁니다. 서양에선 세계적 기업들이 명상 코스를 채택 못 해서 안달인데, 이게 뭔가 싶습디다. 그럼 좋다, 종교 신앙 상관없이 명상을 제대로 보급할 기구를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죠.” ―참가 인사들이 무척 다채롭습니다. “한국자연의학연구원장 이시형 박사, 정신건강 전문의 전현수 박사 등 분야가 다양합니다. 손진익 엘베스트그룹 회장과 김선오 경남자동차산업협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도 다수 참여했죠. 다들 종교는 물론 명상을 접한 출발점도 다릅니다. 대표적으로 이 박사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예요. ‘이 좋은 걸 모두와 나누자’란 마음이 딱 하나의 공통분모입니다. 앞으로 목사님 신부님도 적극 영입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되나요. “일단 이달 29∼31일 ‘대한민국 명상포럼’을 개최합니다. 명상도 종교나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한 전통을 지니고 있어요. 세계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았습니다. 이에 발맞춰 함께 연구하고 모색하는 포럼을 통해 올바른 방법을 찾아보자는 취지지요. 다양한 방식을 소개하는 ‘명상 뷔페’라고나 할까요. 이후엔 저변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겠죠. 명상 지도자 양성, 한국명상수련원 건립 등이 핵심 과제입니다. 뭣보다 청년과 10대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제도 마련에 집중하려 합니다.” ―젊은 세대를 위한 교육에 관심이 커 보입니다. “당연하죠. 나라의 미래가 그들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청소년이나 20대는 너무 스트레스가 극심합니다. 외부 요인도 크지만 심적인 여유가 없어요. 부모와 자녀가 함께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면 그보다 더 고마운 게 어디 있겠습니까. 명상은 일종의 놀이교육도 될 수 있어요. 또한 학습능력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되죠. 영주에 세울 한국명상수련원도 비슷한 취지입니다. 프랑스 테제공동체 같은 수행공동체를 통해 힐링을 전하고 싶습니다. 종교와 관련 없이 열린 수행 공간을 제공하는 거죠.” ―협회가 명상을 통해 전하고픈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지혜입니다. 명상은 어려운 게 아닙니다. 집이나 사무실에서도 잠깐씩 호흡에 집중하면 됩니다. 생각을 멈출 순 없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자기만의 언어로 좋은 생각을 하는 거죠. 5분, 10분만 하면 고요하고 시원해집니다. 자연스레 안목과 통찰이 깊어집니다. 상대방을 바라보고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어요. 그럼 삶의 지혜가 늘어나는 거죠.” ―앞으로도 할 일이 무척 많습니다. “벌여 놓은 게 많긴 합니다, 허허. 하지만 제 목표는 얼른 ‘흔적’을 지우는 겁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출가자의 본분으로 돌아가야죠. 너무 속세에서 포교 활동을 오래 했어요. 총협회도 몇 년 내로 안정되면 당장 직함을 벗어던질 겁니다. 덕망과 인품을 갖춘 분들이 많아요. 20여 년 달려왔더니 저도 ‘번 아웃 증후군’이 생겼어요. 공익을 위해 나서긴 했지만, 이제 잘 마무리하고 싶을 뿐입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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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무미건조한 리듬으로 읊조리는 실험적 문장들

    “한 문장도 쓸 수가 없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문장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능력만큼은 상실하지 않은 것 같다. 한 문장도 쓸 수가 없다는 문장만큼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러니 앞의 문장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견딜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것은 한 문장도 쓸 수가 없다는 문장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단편 ‘한탄’에서) 점점 늪에 빠져드는 착각이 든다. 한 작가의 소설집 ‘연대기’는 문장마다 부비트랩이 설치돼 있다. 딱히 폭발하진 않는다. 피 흘리는 외상은 없다. 근데 피해가기 힘들다. 겨우 몇 줄 읽다가 허우적거린다. 또 몇 페이지 넘기다 고꾸라진다. 어떤 단편은 도대체 뭘 읽은 건지 몽롱해진다. 이게 작가의 의도라면 참으로 얄궂다. 물 한 통 없이 사막을 마주했다고나 할까. 해갈이 급선무인데 피부가 먼저 타들어간다. 소설 8편이 아니라, 기나긴 서사시 8마디를 읽은 기분. 그렇게 시집(?) ‘연대기’는 모래가 돼 스르륵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무미건조한 리듬의 촉감만을 남긴 채. “아무도 나의 행복을 염탐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의 불행을 염탐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도 나를 염탐하지 않았다.”(단편 ‘일곱 명의 동명이인들과 각자의 순간들’에서) 그래서인가. 시로 펄떡거리던 소설은 문득문득 에세이로도 폐부를 찌른다. 상처와 적의를 함께 드러내고, 봉합과 방치를 구분하지 않는다. 딱히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속박을 불편해한다. 그저 퍼덕거리다가 웅크리다가. 이런 비릿한 생경함을 만나는 건 언제나 반갑고 고맙다. 다만 한 작가로 특정할 수 없는 아쉬움도 입가에 맴돈다. 이 정서, 그리 낯설지 않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연장선이랄까. 그들은 부정하겠지만, 출구 없는 지식인의 침잠은 이제 좀 식상하다. 기껏 내러티브를 지웠다지만 그 역시 벌써 정형화한 종착역이 아닐는지. 언제까지 우리는 ‘하수구’만 들여다봐야 할까. 이제 좀 청명한 바람에 땀도 식히고 싶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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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 종정 “한일 정치인 대립 벗어나야”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인 진제 스님(사진)이 13일 “한일 양국 정치인은 대립을 벗어나 중도를 지켜 달라”는 내용의 교시를 발표했다. 조계종 종정이 외교 현안에 대한 교시를 내린 건 매우 이례적이다. 진제 스님은 이날 ‘국난극복을 위한 교시’에서 “한일 양국 정치인은 상대적 대립의 양변을 여의고 원융무애(두루 통하여 융합하는 불교의 이상적 경지)한 중도의 사상으로 자성(自性)을 회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스님은 또 “불교는 국가와 민족의 구분 없이 자비를 실현하고 생명평화를 보존하는 마지막 보루”라며 “한중일 삼국 불교는 한일 양국의 존엄한 안보와 경제를 위해 부처님께 정성으로 축원하자”고 덧붙였다. 조계종은 이와 함께 전국 사찰에 ‘한반도 평화와 국난극복을 위한 불교도 축원’의 현수막을 부착할 방침이다. 10월 열리는 한중일 불교대회에서 평화결의문 채택에 힘쓸 계획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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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 진짜 교훈은 빈틈없는 대비… 북핵, 이상주의 버리고 냉엄하게 봐야”

    “이순신 장군은 전쟁 중에도 백성의 생업을 챙기셨습니다. ‘갑질’을 하는 우방이라도 배려를 아끼지 않으며 승리를 위해 힘을 결집했습니다. 지금 정치지도자들은 장군의 말은 본받자고 얘기하면서 정작 뭘 보고 배운 걸까요?”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77·사진)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 그레이스홀에서 11일 열린 주일예배에서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8·15 광복절 74주년을 앞두고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이란 재앙이 온다’는 심정에서 이번 설교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동학혁명과 임진왜란을 자주 언급합니다. 두 역사에서 우리가 진짜 배워야 할 점은 철저하게 전투를 준비하고 적을 명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심각한 위협은 ‘북한의 핵 위협’입니다. 냉엄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대처해야 합니다.” 홍 목사의 이번 설교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는 지구촌교회 원로인 이동원 목사, 작고한 옥한흠 하용조 목사와 함께 ‘복음주의의 네 수레바퀴’로 불리는 개신교 원로다. 게다가 1993년 북한을 돕기 위해 최초로 설립한 민간단체인 남북나눔 이사장으로 활동해왔다. 1500억여 원 상당의 분유 및 의약품 등을 지원했고 방북 횟수만 60회가 넘는다. 때문에 ‘종북 좌파’란 오해까지 받기도 했다. “6·25전쟁을 겪었고 군사독재도 겪었지만 지금 상황 역시 매우 심각합니다. 정치권도 사회도 원로의 지혜는 사라지고 이상주의만 넘쳐나요. 특히 현 정부는 전문가는 보이지 않고 ‘전공자’만 목소리를 높입니다. 전공자는 현실을 모르고 실험할 뿐이에요. 진짜 책임을 지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홍 목사는 이번 설교를 준비하며 두 달 가까이 고민했다고 한다. 관련 서적을 찾아보며 공부도 새로이 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대한민국을 ‘불행의 역사’만 점철됐다고 보는 편협한 시각”이라며 “광복 뒤 70여 년 만에 이만큼 나라를 다진 ‘기적의 역사’를 부정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정치의 요체는 ‘국태민안(國泰民安)’입니다. 위정자라면 국민이 평안하게 사는 걸 목표로 해야 합니다. 상처를 봉합하지 않고 자꾸만 드러내는 정치는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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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과 무더위에 지친 심신 시낭송으로 달래요

    한여름 지친 마음을 시낭송으로 달래는 ‘2019 재능시낭송여름학교’가 15∼17일 전남 순천시 문화건강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다. 한국시인협회(회장 윤석산)와 재능문화(이사장 박성훈)가 주최하고 재능시낭송협회가 주관하는 재능시낭송여름학교는 해마다 협회 회원과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낭송 전문 여름캠프다. 올해는 유자효 시인을 비롯해 손택수 시인, 유지철 KBS 아나운서, 최재호 성우, 김종석 대경대 뮤지컬학과 교수 등이 강사로 참여한다. 올해는 첫날 15일 손 시인의 ‘시와 낭송의 미학’과 유 아나운서의 ‘시낭송과 준 언어’ 강연으로 포문을 연다. 16일엔 김 교수의 ‘자연스럽게 말하기 위한 화술 훈련’과 최 성우의 ‘체력, 호흡, 표현’ 강연이 기다린다. 순천만 습지와 김승옥문학관 등 문학관광 투어도 마련했다. 마지막 날엔 특별 시낭송경연대회 예심과 본심이 열린다. 이 밖에도 베테랑들이 15개조로 나눠 일대일 시낭송 지도를 하는 클리닉, 전국의 협회 회원들이 참가하는 시낭송 퍼포먼스 등을 즐길 수 있다. 재능시낭송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300여 명이 몰리며 성황을 이뤘던 여름학교가 올해는 더욱 관심이 커지며 벌써 300명 넘게 참가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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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히가시노 게이고 ‘가가 형사’ 마지막 이야기

    ‘이 서평, 써야 할까?’ 읽기 전부터 참 난감했다. 해리 포터 마지막 시리즈 ‘죽음의 성물’ 때가 떠올랐다. 어차피 기다린 사람들은 다 사볼 텐데. 괜한 덧붙임은 거추장스럽다. 그런데도 이리 주절주절 대는 건 나름 이유가 있다. 히가시노 월드에서 ‘기도의 막이…’는 분명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품이다. 1986년(현지 기준) 첫 등장한 주인공 ‘가가 교이치로’의 긴 여정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모두 10권에 이르는 가가 형사 시리즈는 ‘갈릴레오 시리즈’와 함께 히가시노의 양대 산맥이라 부를 만하다. 갈릴레오는 천재 물리학자가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가는 신박함이 무기. 반면 가가는 뭔가 설렁설렁한데 하나씩 퍼즐을 완성해가는 짜임새를 지녔다. 혹자는 가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매력으로 들기도 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히가시노 작품은 대부분 그런 정감이 넘치는 편이다. 굳이 다른 특징을 꼽자면, 가가 시리즈는 여러 재료가 뒤섞였는데도 하나하나가 맛이 살아있다. 추리소설의 묵직함을 지녔으되 일상의 살내음도 잃지 않는다.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 거리라 해도 결국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지 않나. 문체나 구성은 하드보일드(hard-boiled)지만, 마음 한구석에 ‘슴슴한’ 여운을 남기는. 그런 뜻에서, 가가 시리즈는 ‘소프트보일드(soft-boiled)’란 독창적 장르라고 억지를 부려보고 싶다. ‘기도의 막이…’는 마지막 권이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재밌다. 그래도 기왕이면 여덟 번째 작품 ‘신참자’를 먼저 읽으면 더 풍미가 살아난다. 가가의 최근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으니. 물론 ‘악의’나 ‘붉은 손가락’도 명성만큼 끝내준다. 첫 작품 ‘졸업’도 놓치면 아쉽긴 한데. 아, 그러고 보니 정작 ‘기도의 막이…’가 어떤 내용인지는 하나도 얘기하질 못했다. 이 책 줄거리는…. 한마디만 하자.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다!” 그냥 보는 게 낫겠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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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문화재는 한국 전통문화의 뿌리”

    “불교문화는 한국 전통과 역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와 불교계가 합심해서 잘 보존하고 키워 나가자.”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9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본사인 전북 김제시 금산사를 방문해 전 조계종 총무원장인 송월주 스님을 예방했다. 월주 스님은 원행 현 총무원장의 은사다. 박 장관은 이날 금산사 주지인 성우 스님의 안내를 받아 국보 제62호인 미륵전과 보물 제26호인 방등계단 등 불교문화재를 둘러봤다. 이후 월주 스님과 함께 뇌묵처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지구촌공생회 15주년 특별전시회’도 관람했다. 이 전시회는 50년간 깨달음의 사회화를 화두로 정진한 월주 스님의 행적을 모은 것이다. 박 장관은 방명록에 “월주 큰스님의 한국 불교 발전과 민주화, 그리고 자비행 등 사회 곳곳에 끼치신 공적과 가르침을 깊이 새기겠다”고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월주 스님은 환담에서 특히 불교문화재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을 당부했다. “불교문화재는 단순히 종교적 차원을 넘어 한국 전통문화에 깊은 뿌리인 만큼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박 장관은 이에 깊은 공감을 표했으며 동행한 정재숙 문화재청장도 “정부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호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주 스님은 또 해외여행객도 큰 관심을 보이는 템플스테이 활성화도 언급했다. 금산사가 템플스테이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걸 강조하며 관광 차원에서도 중요하단 점을 설명했다. 이날 배석한 이우성 문체부 종무실장은 “여러 덕담과 당부를 나누는 등 매우 좋은 분위기의 환담이었다”며 “불교문화의 발전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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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감기처럼 전염되는 사회적 감정, 어떻게 조절할까

    일단 시비부터 걸고 가자. 이 책, 띠지가 영 그렇다. ‘미국판 스카이캐슬’이란 문구는 별로다. 화제작을 언급하면 관심을 좀 더 끌긴 하겠지. 한데 ‘감정은 어떻게 전염되는가’는 드라마와 전혀 결이 다르다. 물론 엇비슷한 상황이긴 하다.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서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그 부촌 말이다. 그곳 명문인 헨리 건(Henry M Gunn) 고등학교 학생들이 연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도 다섯 명이나 기차에 몸을 던져서. 같은 지역 주민이자 심리학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 비극을 파헤쳐 보리라 맘먹는다. 근데 아이들은 같은 학교에 다닌단 사실 말고는, 공통점도 접점도 딱히 없었다. 심지어 바깥에서 볼 땐 너무나 번듯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왜 ‘연쇄자살(cluster suicide)’이란 늪에 빠져버린 걸까. 저자는 이 문제의 근원을 ‘사회전염(social contagion)’ 측면에서 접근해 본다. 개념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전염되면서 타인이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을 일컫는다. 보통 전염이라 하면 다소 부정적 뉘앙스가 있는데, 사회전염은 가치중립적이다. 임상역학자 게리 슬럿킨은 이를 ‘좋다’ ‘나쁘다’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할 일은 사회전염은 물론 전염의 힘이 미치는 곳까지 철저히 파헤쳐 사회 안녕에 이바지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전염은 매우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연쇄자살을 놓고 보면, 부촌 특유의 성공에 대한 압박감과 연관이 깊다. 첫 사건이 ‘점화 단서’가 돼 다른 아이의 감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높다. 학업 스트레스나 집단 히스테리가 어떻게 작용했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염병은 단순한 치료제로 해결할 수 없을 공산이 크다. 이 책은 바로 이 대목에서 큰 매력을 지녔다. 단순히 형식적인 대안 찾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 정책이나 사회운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실효성을 따진다. 저자는 이게 정답이라 확언하진 않지만 ‘공동체’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택시 운전사에서 바리스타까지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훈련을 받고 사회전염의 ‘단속단’이 되고 징후를 감시하고 필요한 자원을 어떻게 확보할지 알아야만” 이런 참극은 예방과 대처가 가능하다고 본다. 저자는 이런 결론을 오랫동안 공들여 현장을 취재하며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문제를 종합적이고 전체적으로 보는 건 상찬할 일이다. 하지만 ‘개인의 비극’은 분명 각기 다른 이유와 상황을 지녔다. 감정의 전염은 잘 다뤘지만, 각자를 움직인 감정의 ‘변이’는 너무 개략적으로 본 게 아닐는지. 다소 소설처럼 형식을 구성하다 보니 너무 화자의 시선에 매몰되는 느낌도 없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아니겠지만. 미국이건 한국이건, 채 피지도 못하고 스러진 청춘들이 안타까울 뿐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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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차산업-AI 시대의 그늘, 명상으로 치유”… 내달 29~31일 동국대서 ‘명상포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한국의 참선과 명상이 사회 제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입니다.” 한국 명상의 세계화를 이끌어온 한국명상총협회(회장 각산 스님·사진)가 다음 달 29∼31일 서울 중구 동국대에서 ‘2019 대한민국 명상포럼’을 개최한다. 이번 포럼은 인공지능(AI) 시대에 맞는 명상법을 모색하고, 한국의 정신문화와 명상을 세계에 알리자는 취지로 마련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전국선원수좌회 대표인 의정 스님을 비롯해 금강선원 조실 혜거 스님, 각산 스님 등이 명상 강연을 한다. 또 이시형 신경정신과학 박사와 안희영 한국심신치유학회 명예회장, 킴 킴 마이크로소프트 수석그룹장 등 국내외 명상 대가가 대거 참가한다. 각산 스님은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세계가 명상의 시대를 맞은 지금, 한국 전통 불교의 간화선 명상법을 세계에 알릴 기회”라며 “다양한 세미나와 심포지엄을 통해 참선과 명상의 나아갈 방향을 심도 있게 짚어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이시형 박사도 “명상은 사회가 격변하는 요즘 같은 때일수록 정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권장했다. 포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세계명상센터 참불선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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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 염원 새긴 십육만 도자장경… 그 마음 부처에 닿는 날 곧 오겠죠”

    “우리 후손에겐 이 서운암의 도자대장경(陶瓷大藏經)도, 장경각(藏經閣)도 나라와 불교의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남을 겁니다.” 서운암에 오른 성파 스님은 순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린아이처럼 뿌듯한 맘을 감추지 못한다고나 할까. 경전 등을 보관하는 건물인 장경각 서까래를 올려다볼 때나, 도자로 만든 경전을 쓰다듬을 때도. 그늘진 실내건만 눈빛이 형형했다. 훗날이 아닌 지금 봐도, 도자대장경은 대단한 걸작이다.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 있는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을 일일이 새겨 도자기 판으로 구워냈다. 양면에 경전을 담은 팔만대장경을 도자기 1면씩만 넣다 보니 ‘십육만대장경’이 됐다. 한 판 크기는 가로세로 약 52×26cm, 무게는 대략 4kg. 성파 스님이 1991년 이 불사를 일으켜 일일이 확인하며 2000년에 마무리했으니 무려 10년이 걸린 역사였다. 도자기 전문가인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도 여러 번 이곳을 찾아 “이 많은 도자를 이리 네모반듯하게 완성한 건 굉장한 기술이다. 불심으로 이룬 위대한 업적”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대장경을 봉안한 장경각을 완공한 건 그 뒤로 또 한참 뒤인 2013년. 모두 합치면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2년이 더 흘렀다. 장경각 역시 허투루 짓지 않았다. 옻칠 전문가인 스님이 건물에 쓰인 모든 목재와 단청에까지 옻칠을 했다. 기와 역시 손수 구운 도자 기와다. 웬만해선 엄두도 못 낼 이 큰 일을 성파 스님과 통도사는 왜 한 걸까. “우리 불교는 전통적으로 호국불교입니다. 나라를 위해 피땀을 아끼지 않았죠. 팔만대장경은 불심으로 대동단결해 몽골을 물리치자는 의도였지 않습니까. 도자대장경은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만들었습니다. 그 마음이 부처에 닿는 날이 머지않았겠지요?” 양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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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파 스님 “능히 할 수 있으면서 하지 않는 것이 자제고 실천”

    깊은 밤 선잠을 깨우던 비는 더 매서워졌다. 19일 오전 6시 경남 양산시 통도사. 아직 도시는 일과를 시작하기 전이건만. 경내는 진즉부터 분주하다. 아침 공양을 끝낸 스님들은 오전 일과를 찾아 총총. 객은 멋쩍게 널찍한 방을 차지하고 앉았다. 풍경 소리도 감추는 서늘한 빗줄기. 산안개를 머금은 앞뜰을 노스님과 하염없이 바라봤다. “빗속 운치도 꽤 그럴싸하죠?” 모락모락 차 한 잔이 이만하면 훈기를 되살렸을까. 그제야 성파 스님(80)은 지그시 말문을 열었다. 스님이 통도사 방장(方丈·선원 율원 강원 등을 갖춘 대형 사찰의 가장 큰 어른)에 추대된 건 지난해 봄.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했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 사찰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통도사. 그곳 방장의 1년은 분명 달랐을 터. 한데 스님은 “평생 여기서 기거했는데 바뀔 게 무어냐. 내 할 일 할 뿐, 다들 알아서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럼 방장에 오른 뒤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까. “아예 없진 않소. 사부대중(四部大衆) 눈치는 좀 보게 됩디다, 껄껄. 그 나름의 역할이란 게 있으니…. 하지만 기존에 떠오르는 모양대로 살고 싶진 않아요. 타의 모범이 돼야 한다느니, 그런 것도 없고. 난 방장을 꿈꾼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물 흐르듯 오다 보니 어느 날 자연스레 온 거죠. 이 자리에서도 뭘 어떻게 하기보단 꾸밈없이, 억지 없이 하는 겁니다.” ―승좌식(방장 취임식)을 안 한 이유도 그래서입니까. 그 비용으로 불우이웃을 도우셨죠. “뭐 대단한 일 했다고…. 방장이 어디 식을 치러야만 방장입니까. 형식에 얽매이면 집착밖에 얻을 게 없어요. 다만 능히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는 게 자제고 실천이니. 구애받지 말자고 했습니다. 특별한 게 아닙니다.” 이 대목은 짚을 필요가 있다. 승좌식은 결코 작은 행사가 아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방장은 8대 총림만 있는 자리다. 영축총림 통도사는 그중에도 핵심 사찰로 꼽힌다. 게다가 이런 결단은 가풍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5월 통도사 주지로 임명된 현문 스님도 고불식(告佛式)을 거절했다. “어른께서 물리치셨는데, 예의가 아니다”라며 역시 전액 기부했다. ―원래도 조예가 깊던 옻칠, 서화, 도예 등 예술 활동을 꾸준히 하신다 들었습니다. “그게 내 재주고, 전하는 가르침이오. 하던 걸 그대로 하는 거지. 근데 거창하게 예술이라 부를 거 없습니다. 그저 일상이고 생활이에요. 괜히 고급스럽게 포장하면 서민과 괴리감만 생겨요. (손수 옻칠한 바닥을 두어 번 두드리며) 벽에 걸고 감상하는 것만 작품이 아닙니다. 깔고 앉아 살아가는, 이게 다 문화의 향유인 거예요. 짙은 바탕에 사금파리처럼 무늬가 영롱하죠? 난 이걸 우주라 여깁니다. 광대한 우주를 올려다볼 것만 아니라, 등을 대고 누워 보는 거죠.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세상도 예술도 달리 보입니다.” ―요즘 속세는 꽤나 시끄럽습니다. 한일이나 남북 관계도 예사롭지 않고요. “산중에서도 간간이 뉴스를 듣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주위도 잘 살피지 못하는데 어찌 먼 곳을 논하겠습니까. 세상에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둘 처지는 아닙니다. 다만 전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격변을 몸으로 겪었던 세대지요. 현 상황에 너무 과잉반응하면 안 됩니다. 잘 살피되 일희일비는 피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알아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더군요.” ―괜한 걱정을 사서 한단 말씀인가요. “당연히 삶에는 최선을 다해야죠. 목표를 갖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과정은 보지 않고 성취에만 욕심을 냅니다. 틈이 없고 여유가 없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똑똑하고 지식도 풍부해요. 그래서인지, 먼저 계산부터 합디다. 이게 성공할지 여부부터 따지는 거예요. 불가에는 ‘문수의 지혜, 보현의 실천’이란 말이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상징이고, 보현보살은 실천의 상징이죠. 하지만 둘은 서로 대척점에 있지 않습니다. 이사무애(理事無碍). 이치와 행위는 둘이 아닌 거죠. 머리로만 움직이면 균형을 잃습니다.” ―공즉시색(空卽是色) 같은 건가요. 알 듯 모를 듯, 더 어지럽습니다. “요즘 부모는 아이의 장래를 미리 계획하고 맞춤 학습을 시킨다더군요. 제 딴엔 영리한 줄 알겠으나, 되레 망칠 수 있습니다. 어른이라고 자기 취향을 금방 찾겠습니까. 굴러가는 대로 부딪히고 모색해 봐야죠. 이것저것 다 시키란 뜻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얻는 데 한 길만 있으면 누구나 부처가 되게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칠도 하고, 글도 쓰고, 수행도 닦고, 자연스레 맞는 옷을 걸쳐가는 거죠. 내장에 탈이 났는데 다리를 치료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 어리석음을 피할 마음가짐은 뭘까요. “굳이 보탤 건 없겠지만…. 수직과 수평, 기준을 잡아야 합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나만 잘났다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이고 우주예요. 남 탓만 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보세요. 동서남북은 어딜 가도 동서남북이지만, 자리가 바뀐 건 바로 자신입니다.” 그새 빗줄기는 더 거세져갔다. 무겁던 엉덩이를 떼고 스님 ‘작업실’이 있는 서운암(瑞雲庵)에 오르기로 했다. 앞서 방을 나서던 스님. 성큼성큼 뒤뜰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가선 턱 하니 운전석에 앉는다. 통도사 방장 어른이 기사도 없이 직접 핸들을 잡다니…. “저보다 더 에너지 넘치고, 시대를 앞서가는 분”이라던 현문 스님의 말이 무르팍을 탁 친다. 굵은 빗방울에서 소탈한 흙냄새가 물씬했다.양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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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파 스님 “요즘 사람들 너무 많이 알아서 문제…일희일비 말아야”

    깊은 밤 선잠을 깨우던 비는 더 매서워졌다. 19일 오전 6시 경남 양산시 통도사. 아직 도시는 일과를 시작하기 전이건만. 경내는 진즉부터 분주하다. 아침 공양을 끝낸 스님들은 오전 일과를 찾아 총총. 객은 멋쩍게 널찍한 방을 차지하고 앉았다. 풍경 소리도 감추는 서늘한 빗줄기. 산안개를 머금은 앞뜰을 노스님과 하염없이 바라봤다. “빗속 운치도 꽤 그럴싸하죠?” 모락모락 차 한 잔이 이만하면 훈기를 되살렸을까. 그제야 성파 스님(80)은 지긋이 말문을 열었다. 스님이 통도사 방장(方丈·선원 율원 강원 등을 갖춘 대형사찰의 가장 큰 어른)에 추대된 건 지난해 봄.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해 해인사 송광사와 삼보(三寶) 사찰로 꼽히는 통도사. 그곳 방장의 1년은 분명 달랐을 터. 한데 스님은 “평생 여기서 기거했는데 바뀔 게 무어냐. 내 할 일 할 뿐, 다들 알아서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럼 방장에 오른 뒤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까. “아예 없진 않소. 사부대중(四部大衆) 눈치는 좀 보게 됩디다, 껄껄. 나름 역할이란 게 있으니…. 하지만 기존에 떠오르는 모양대로 살고 싶진 않아요. 타의 모범이 돼야 한다느니, 그런 것도 없고. 난 방장을 꿈꾼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물 흐르듯 오다보니 어느 날 자연스레 온 거죠. 이 자리에서도 뭘 어떻게 하기보단, 꾸밈없이 억지 없이 하는 겁니다.” -승좌식(방장 취임식)을 안 한 이유도 그래서입니까. 그 비용으로 불우이웃을 도우셨죠. “뭐 대단한 일 했다고…. 방장이 어디 식을 치러야만 방장입니까. 형식에 얽매이면 집착 밖에 얻을 게 없어요. 다만 능히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는 게 자제고 실천이니. 구애받지 말자고 했습니다. 특별한 게 아닙니다.” 이 대목은 짚을 필요가 있다. 승좌식은 결코 작은 행사가 아니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방장은 8대 총림만 있는 자리다. 영축총림 통도사는 그 중에도 큰 사찰로 꼽힌다. 게다가 이런 결단은 가풍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5월 통도사 주지로 임명된 현문 스님도 고불식(告佛式)을 거절했다. “어른께서 물리치셨는데, 예의가 아니다”며 역시 전액 기부했다. -원래도 조예가 깊던 옻칠, 서화, 도예 등 예술 활동이 꾸준하시다 들었습니다. “그게 내 재주고, 전하는 가르침이오. 하던 걸 그대로 하는 거지. 근데 거창하게 예술이라 부를 거 없습니다. 그저 일상이고 생활이에요. 괜히 고급스럽게 포장하면 서민과 괴리감만 생겨요. (손수 옻칠한 바닥을 두어 번 두드리며) 벽에 걸고 감상하는 것만 작품이 아닙니다. 깔고 앉아 살아가는, 이게 다 문화의 향유인 거예요. 짙은 바탕에 사금파리처럼 무늬가 영롱하죠? 난 이걸 우주라 여깁니다. 광대한 우주를 올려다볼 것만 아니라, 등을 대고 누워보는 거죠.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세상도 예술도 달리 보입니다.” -요즘 속세는 꽤나 시끄럽습니다. 한일이나 남북 관계도 예사롭지 않고요. “산중에서도 간간히 뉴스를 듣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주위도 잘 살피지 못하는데 어찌 먼 곳을 논하겠습니까. 세상에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둘 처지는 아닙니다. 다만 전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격변을 몸으로 겪었던 세대지요. 현 상황에 너무 과잉반응하면 안 됩니다. 잘 살피되 일회일비는 피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알아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더군요.” -괜한 걱정을 사서 한단 말씀인가요. “당연히 삶은 최선을 다해야죠. 목표를 갖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과정은 보지 않고 성취에만 욕심을 냅니다. 틈이 없고 여유가 없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똑똑하고 지식도 풍부해요. 그래서인지, 먼저 계산부터 합디다. 이게 성공할지 여부부터 따지는 거예요. 불가에는 ‘문수의 지혜, 보현의 실천’이란 말이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상징이고, 보현보살은 실천의 상징이죠. 하지만 둘은 서로 대척점에 있지 않습니다. 이사무애(理事無碍). 이치와 행위는 둘이 아닌 거죠. 머리로만 움직이면 균형을 잃습니다.” -공즉시색(空卽是色) 같은 건가요. 알 듯 모를 듯, 더 어지럽습니다. “요즘 부모는 아이의 장래를 미리 계획하고 맞춤 학습을 시킨다더군요. 제 딴엔 영리한 줄 알겠으나, 되레 망칠 수 있습니다. 어른이라고 자기 취향을 금방 찾겠습니까. 굴러 가는대로 부딪히고 모색해봐야죠. 이것저것 다 시키란 뜻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얻는데 한 길만 있으면 누구나 부처가 되게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칠도 하고, 글도 쓰고, 수행도 닦고, 자연스레 맞는 옷을 걸쳐가는 거죠. 내장에 탈이 났는데 다리를 치료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 어리석음을 피할 마음가짐은 뭘까요. “굳이 보탤 건 없겠지만…. 수직과 수평, 기준을 잡아야 합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나만 잘났다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이고 우주예요. 남 탓만 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보세요. 동서남북은 어딜 가도 동서남북이지만, 자리가 바뀐 건 바로 자신입니다.” 그새 빗줄기는 더 거세져갔다. 무겁던 엉덩이를 떼고 스님 ‘작업실’이 있는 서운암(瑞雲庵)에 오르기로 했다. 앞서 방을 나서던 스님. 성큼성큼 뒤뜰 소형 SUV로 가선 턱 하니 운전석에 앉는다. 통도사 방장 어른이 기사도 없이 직접 핸들을 잡다니…. “저보다 더 에너지 넘치고, 시대를 앞서가는 분”이라던 현문 스님의 말이 무르팍을 탁 친다. 굵은 빗방울에서 소탈한 흙냄새가 물씬했다. ▼ ‘십육만 도자대장경’ 불심이 이룬 걸작 ▼ “우리 후손에겐 이 서운암의 도자대장경(陶瓷大藏經)도 장경각(藏經閣)도 나라와 불교의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남을 겁니다.” 서운암에 오른 성파 스님은 순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린아이처럼 뿌듯한 맘을 감추지 못한다고나 할까. 경전 등을 보관하는 건물인 장경각 서까래를 올려다볼 때나, 도자로 만든 경전을 쓰다듬을 때도. 그늘진 실내건만 눈빛이 형형했다. 훗날이 아닌 지금 봐도, 도자대장경은 대단한 걸작이다.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 있는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을 일일이 새겨 도자기 판으로 구워냈다. 양면에 경전을 담은 팔만대장경을 도자기 1면씩만 넣다보니 ‘십육만 대장경’이 됐다. 한 판 크기는 가로세로 약 52X26㎝, 무게는 대략 4㎏. 성파 스님이 1991년 이 불사를 일으켜 일일이 확인하며 2000년 마무리했으니 무려 10년이 걸린 역사였다. 도자기 전문가인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도 여러 번 이곳을 찾아 “이 많은 도자를 이리 네모반듯하게 완성한 건 굉장한 기술이다. 불심으로 이룬 위대한 업적”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대장경을 봉안한 장경각을 완공한 건 그 뒤로 또 한참 뒤인 2013년. 모두 합치면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2년이 더 흘렀다. 장경각 역시 허투루 짓지 않았다. 옻칠 전문가인 스님이 건물에 쓰인 모든 목재와 단청까지 옻칠을 했다. 기와 역시 손수 구운 도자 기와다. 웬만해선 엄두도 못 낼 이 큰일을 성파 스님과 통도사는 왜 한 걸까. “우리 불교는 전통적으로 호국불교입니다. 나라를 위해 피땀을 아끼지 않았죠. 팔만대장경은 불심으로 대동단결해 몽골을 물리치자는 의도였지 않습니까. 도자대장경은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만들었습니다. 그 마음이 부처에 닿는 날이 멀지 않았겠지요?” 양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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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 문 강아지 안락사 논란 “세상에 안 무는 개는 없다”[광화문에서/정양환]

    “(그 개는) 안락사를 하는 게 옳을 겁니다.” 이 한마디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난리가 났다. 어떻게 강형욱이 이런 말을. 반려동물 가족들은 소위 ‘멘붕’에 빠졌다. 평소 ‘개통령’으로 불려온 강 훈련사. 다름 아닌 그가 살(殺)을 입에 담았기에 더 충격이 컸다. 배경은 이렇다. 최근 경기 용인시에서 폭스테리어가 세 살배기 여아를 무는 참사가 벌어졌다. 폐쇄회로(CC)TV를 보면 거의 ‘사냥하듯’ 달려든다. 게다가 그 개는 비슷한 전력이 여러 차례였다. 그런데도 반려인은 또다시 입마개 없이 외출했다. 강 훈련사는 “(이런 상태라면) 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상처가 될 수 있겠지만,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경고성’ 발언으로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요즘 반려동물 관련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나쁜 소식만 있진 않지만 개나 고양이를 놓고 옥신각신이 허다하다. 그건 아마 한국도 반려동물 양육인구 1000만 시대를 맞았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반려동물을 키우니 당연히 관심도 폭증한다. 문화 쪽에선 이런 흐름이 벌써부터 도드라졌다. 채널A ‘개밥 주는 남자’ 시리즈를 비롯해 다양한 반려동물 프로그램이 TV에서 인기다. 출판도 만만찮다. 관련 서적이 쏟아진다. 어떤 주는 영원한 강자 자기계발서보다 많다. ‘제2의 개통령’ 설채현 수의사가 쓴 ‘그 개는 정말 좋아서 꼬리를 흔들었을까?’는 지난달 출간해 벌써 3쇄를 찍었다. 최근 ‘노곤하개’ 등 반려동물을 다룬 인기 웹툰도 적지 않다. 뭣보다 SNS 월드는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몇몇 멍멍이, 야옹이가 스타가 된 뒤 숱하게 ‘내 새끼’를 봐달라며 게시물을 올린다. 보통은 사랑하는 자식을 자랑하고픈 거라고 믿고 싶다. 한데 아닌 경우도 심심찮다. 얼마 전 버려진 강아지를 돌보는 척 속이다가 누리꾼의 집중포화를 받고 사죄한 유튜버도 있다. 문제는 상당수가 반려동물과의 생활이 지닌 ‘좋은 면’에 치중한단 점이다. 이해는 간다. 지저분하거나 괴로운 모습을 누가 좋아하겠나. 특히 ‘돈벌이’가 목적인 이들은 더욱 그러할 터. 하지만 말 안 통하는 동물을 키우는 게 그리 쉬울까. 마침 네이버 웹툰 ‘개를 낳았다’가 5일 선보인 56화는 적나라했다.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반려생활이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어쩌면 폭스테리어 양육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가족 같은 존재를 죽일 수 없단 심정은 존중한다. 하지만 당신 가족의 좋은 면만 보고 나쁜 점은 등한시한다면, 그건 진정한 가족이 아니다. 기왕 가족이라 하니 인간으로 가정해보자. 법은 폭력사고를 일으키면 사회와 격리한다. 자격 없는 부모에게선 양육권을 뺏기도 한다. 설 수의사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물지 않는 개는 없다”고. “우리 애는 순해요”란 착각이 가장 위험하단다. 기계가 아닌 생명체인지라 100%란 없으니까.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책임져야 한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정받고 싶은가. 그럼 의무부터 다해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부모가 자식을 잘 키울 수 있을까. 정양환 문화부 차장 ray@donga.com}

    • 20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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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걸 기억하는 불운한 남자 그의 능력이 저주가 됐다

    에이머스 데커. 2m 가까운 거구. 한때는 잘나가는 형사였다. 한데 ‘악마’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뒤 추락. 노숙자로 전전하다 끝내 복수에 성공했다. 덕분에 FBI 특수수사팀에 합류. 쉼 없이 범죄와 싸워 왔다. 그런 그가 펜실베이니아주 배런빌이란 소도시에 온 건 나름 휴가였다. 갈 곳 없던 데커를 동료인 알렉스 재미슨이 언니네로 데려갔다. 여전히 쉴 줄 모르고 머리엔 일 생각만 가득하던 그때. 아니나 다를까. 바로 옆집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건, 처음도 끝도 아니었다. ‘폴른…’은 2016년 국내에 선보인 소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시리즈 4편이다. 변호사 출신인 저자가 만든 ‘풍운아’ 데커가 중심인물. 이 시리즈는 3권까지 세계에서 약 1억3000만 부가 판매됐다. 국내에선 10만 권 이상 나갔다. 이 작품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주인공 데커다. 프로미식축구 선수였으나 첫 게임에서 머리를 다치며 은퇴한 불운한 사내. 그 대신 한 번만 보면 모든 걸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이란 선물(?)을 얻는다. 물론 이건 극악한 형벌이기도 하다. 범죄수사엔 너무나 쓸모 많은 재능이지만, 가족 살해현장이 24시간 사진처럼 눈앞에 떠오르니까. “데커는 누가 자신의 가족을 앗아갔는지 알아냈고, 살인자는 결국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이는 데커가 치렀던 대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숨을 내쉬는 마지막 순간까지 치러야 할 대가.” 데커는 외양이나 재능은 다 가진 듯 보이지만, 실은 구멍이 숭숭 뚫린 심장을 가진 이다. 아마도 저자는 이 독특한 주인공에게서 현대사회를 비춰 보려는 게 아닐까. 물질도 정보도 풍요롭지만, 공허하기 짝이 없는. 게다가 ‘폴른…’의 배경인 배런빌을 포함해 이 시리즈엔 미국의 퇴락한 도시들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榮華)의 잔상은 그대로 남았으되 속에선 대책 없이 곪아가는 세상. 시리즈 책 표지처럼 ‘푸른 어둠’만이 하염없이 깔려 있다. 행여나 과한 의미 부여가 오해를 불러일으키진 말자. 이 책은 재밌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도 “발다치 소설 가운데 최고”라고 했단다. 솔직히 그 양반 의견에 100% 동의하진 않지만, 쫄깃쫄깃한 건 틀림없다. 주인공한테 휴가조차 배려하지 않는 저자는 독자에게도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데커를 슈퍼히어로로 만들어준, 모든 걸 기억하는 능력이 이번 작품에서 새로운 양상을 마주한다. 물론 우리는 안다. 이 시리즈가 여기서 끝일 리 없다. 어차피 데커는 또다시 범죄를 해결하겠지. 한데 언제는 그걸 몰라서 범죄소설을 읽었나. 갈수록 무더워지는 여름, 이만큼 빠져드는 작품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다만 혹시 모르니, 문단속은 잘한 뒤 읽으시길. 범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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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마블 영웅들이 쓰는 새로운 서사의 시작

    올봄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본 관객이라면 이런 생각을 했음직하다. “이제 마블은 어디로 가는 걸까?” 작품이 맘에 들었건 아니건, 엔드게임은 제목처럼 한 시대를 종언했다. 하지만 이게 끝일 리가 있나.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에피소드가 또 등장할 터. 그런 시점에서 그래픽노블 ‘시빌 워Ⅱ’는 또 다른 서사시의 출발을 가늠해볼 좋은 스포일러가 돼줄지도 모르겠다. 실은 전작 ‘시빌 워’(2009년 국내 출간)는 마블에겐 너무나 고마운 존재였다. 슈퍼맨 배트맨이 포진한 DC코믹스에 비해, 다소 ‘사이즈’가 작다는 세간의 평가를 한방에 뒤집어줬다. 2016년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개인적 은원과 감정에 초점을 맞췄지만 원작 만화는 훨씬 크고 심오한 주제를 버무려냈다. ‘아이언맨 vs 캡틴 아메리카’ 대립 구도를 통해 집단 혹은 국가의 이익(안보)과 개인의 자유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쉽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시빌 워Ⅱ’는 또 다른 난제를 갖고 돌아왔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범죄를 예방해 다수의 안전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그게 가능하다 해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죄를 묻는 게 정의일까. 이번엔 아이언맨과 캡틴 마블이 중심이 돼 대립각을 세운다. 그리고 또 한번 내전으로 피를 흘린다. 솔직히 말하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전작의 충격은 기대하기 어렵다. 더 많은 희생과 더 많은 반전이 있는데도 그렇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작품을 읽지 않고는 마블 세계관의 향배를 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아쉽다곤 했지만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뜻이지 졸작이란 얘긴 아니다. 엔드게임은 의외로 ‘슬펐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나. 하지만 우리는 안다. 1세대가 떠났다고, 디즈니나 마블이 그리 호락호락 물러설까. ‘시빌 워Ⅱ’는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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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노동과 차별로 얼룩진 生… 청소년 현장실습생의 기록

    글자 한 자 떼기가 참으로 조심스럽다. 300쪽도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은 손 위에서 자꾸만 부풀어 오른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어쭙잖은 깜냥에 누가 되진 않을까. 돌덩이가 켜켜이 쌓여간다. 그래도… 그간 그 무게를 비켜난 채 살아왔기에. 지금이라도 귀를 열고 문장을 곱씹는다. 이 책은 알지 못하는, 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2014년 대기업에서 일하다 목숨을 끊은 김동준 군. 2017년 생수공장에서 사고로 숨진 이민호 군. 그리고 또 수많은 청소년의 죽음. 그들은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등을 다니다 ‘현장실습생’이란 이름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건 장시간 노동과 차별, 게다가 폭력까지. 주 원인이 사고였든 자살이든, 결국 사회가 빚은 그늘에 갇혀서 삶을 멈춰버렸다. 세상의 잔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을 ‘예외’로 치부한다. 감추고 외면하고 회피한다. 오히려 상처를 후벼 판다. 다른 아픔을 양산할지 모를 시스템도 여전히 돌아간다. 심지어 아이를 가슴에 묻은 부모를 가족이나 친구조차 보듬지 못한다. 그 굴레는 반복을 넘어 더 거세지고 인정 없다. 그리고 그걸 이 땅은 ‘현실’이라 부른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일상적인 폭력 안에 놓여 있어요. 일상적인 폭력이 수많은 종류로 뻗어 있어서 온갖 죽음으로 발현되고 외로움으로 발현돼요. 우리가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거예요. 이게 이 사건의 본질 중 하나예요.” 물론 이 책은 절망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남겨진 이들과 또 다른 ‘아이들’의 헌신과 용기를 보며 내일을 꿈꾼다. 그 미래를 잃어버린 아이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자며…. ‘겸손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저자는 2년 넘게 취재와 집필에 공들였다고 한다. 이런 인터뷰 정리가 여간 까다롭지 않는데, 소문으로 들어 갖고 있던 기대보다 훨씬 대단한 필력을 지녔다. 그건 분명 고뇌와 진심의 산물이리라. 문득 책을 덮고 나니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겉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 김동준 군의 유품인 듯한 노트 한 권. 거기엔 ‘Be Happy’란 글자가 큼지막하다. 제발, 그러길. 그곳에선 행복해라.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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