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종

김윤종 부장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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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먼 나라’ 같지만 한국의 미래상이 담겨있는 ‘이웃나라’입니다. 저와 함께 뉴스의 ‘배낭여행’을 함께 떠나실까요?

zozo@donga.com

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칼럼94%
행정3%
인사일반3%
  • “털린 보석값만 1조5000억” 독일경찰, 도둑에 6억5천만원 현상금

    25일 독일 드레스덴의 그뤼네게뵐베 박물관에서 발생한 1조5000억원 규모의 고급 보석 도난 사건이 미궁에 빠지고 있다. 급기야 독일 검경은 이번 절도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50만유로(약6억5000만원)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 독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작센주 검찰과 경찰청장은 공동성명을 통해 “25일 발생한 박물관 도적단과 관련된 단서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50만 유로의 보상금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재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후 40여명의 수사인력을 투입해 범인을 찾고 있는 중이다. 특히 사건 당일 박물관 내 폐쇄회로(CC)TV에 찍힌 2명의 용의자의 신원을 분석하고 있다. 2명의 도적은 25일 도끼로 박물관 유리창과 유리 쇼케이스를 깨고 수백 개의 고급 보석을 훔쳐갔다. 이중에는 49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힌 ‘드레스덴 화이트’라는 유명 보석 예술품도 포함돼있다. 드레스덴 화이트의 가치는 약 137억 원에 달한다. 또 박물관 밖에서 아우디A6 차량을 대기해둔 공범 2명에 대한 수사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찰은 현재 시민들로부터 범인 인상착의 등 200개가 넘는 제보를 받은 상태다. 또 이번 사건이 거대 조직범죄와 연관돼있을 가능성도 수사를 하고 있다. 실제 2017년 베를린 보데 박물관에서 발생한 거대 금화 도난 사건은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범죄조직과 연관돼 있었다. 작센주 특별수사팀은 최근 보데 박물관 수사팀과도 접촉해 당시의 절도범들에 대한 정보, 보석도난 관련 수사기법 등을 논의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문제는 암시장에 보석들이 풀려 회수하기 어려워졌을 가능성이다. 25일 도난 당한 보석 공예품들에는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진주 등 다양한 보석 수백개가 박혀있다. 이를 떼어내 따로 팔 경우 도난당한 보석공예품으로 알아내기 어렵다. ‘그뤼네 게뵐베’는 18세기 작센왕국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가 만든 박물관이다. 수많은 고급 보석 작품들이 소장돼 ‘유럽의 보석상자’로 불린다. 이 박물관 보안에만 연간 800만 유로(103억 원)가 투입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일 대규모 도난이 일어나자 독일 현지 언론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예술품 도난 사건”라고 한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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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바니아 최악 지진… 유럽국 구조대 급파

    발칸반도의 소국 알바니아에서 93년 만에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26일 오전 3시 54분경 수도 티라나에서 북서쪽으로 34km 떨어진 곳에서 규모 6.4의 강진이 발생해 27일 오후 1시 현재 최소 26명이 숨지고, 650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지중해 지진대에 있는 알바니아에선 9월에도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했다. 지진이 반복되다 보니 건물을 지탱하는 철골 구조가 약해졌고, 이번 지진으로 건물 수백 채가 한꺼번에 무너져 피해가 더 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첫 지진 후 100여 차례 여진이 지속됐으며, 인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 남쪽 79km 지점에서도 26일 규모 5.4의 강진이 관측됐다. 구조대원들은 27일에도 건물 잔해에 갇힌 생존자 구조 작업을 벌였다. 주민들도 맨손으로 돌무더기를 치웠다. 그 과정에서 티라나와 수마너 지역에서 50여 명이 구조됐다. 진앙에 가까워 피해가 컸던 수마너 지역을 찾은 일리르 메타 알바니아 대통령은 “모두 힘을 합쳐 사태를 극복하자”며 구조를 독려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27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의 수요 일반 알현(연설)에서 알바니아 지진 피해를 언급하며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 이탈리아, 그리스, 루마니아, 세르비아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구조대를 급파했다. 프랑스, 터키는 특수병력을 파병했다. 알바니아 정부는 27일을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그리스 지진학자 에티미오스 레카스 씨는 영국 가디언에 “알바니아가 가난한 국가이다 보니 건물의 노후화 등으로 상태가 나빠 피해가 더 컸다”며 “추가로 규모 5.9의 여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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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처럼… ‘유럽의 보석상자’ 털렸다

    독일 드레스덴의 그뤼네게뵐베 박물관에서 100여 개의 고급 보석이 도난당하는 ‘영화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 dpa통신에 따르면 25일(현지 시간) 오전 4시 50분경 ‘유럽의 보석상자’로 불리는 박물관에 2명의 도둑이 들었다. 복면을 한 이들은 총 10여 개 전시실 중 가장 화려한 ‘보석의 방’에 잠입해 도끼로 유리 쇼케이스를 깬 뒤 18세기 초 바로크 양식의 보석 3세트를 훔쳐 밖에서 대기하던 공범들과 함께 달아났다. 도둑들은 박물관 인근의 전기 연결 장치에 화재를 일으켜 일대 전기 공급이 끊어지게 만든 뒤 박물관에 침입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도난당한 보석 세트에는 수백 개의 다이아몬드와 루비 등이 박힌 브로치,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등으로 치장된 작센 왕국의 국왕과 왕족들의 검, 177개의 진주로 만든 목걸이 등 진귀한 보석 100점이 포함됐다. 가치로는 총 10억 유로(약 1조3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독일 매체 빌트지는 전했다. 가장 유명한 41캐럿 크기의 ‘그린 다이아몬드’는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임대된 덕분에 봉변을 피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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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마니아 대선 결선투표… 요하니스 現대통령 재선

    24일 동유럽 루마니아 대선에서 친(親)유럽연합(EU) 성향의 클라우스 요하니스 현 대통령(60·사진)이 연임에 성공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집권 국민자유당(PNL) 후보인 요하니스 대통령은 이날 대선 결선 투표에서 63%의 지지율을 얻어 37%에 그친 사회민주당(PSD) 비오리카 던칠러 전 총리에게 압승했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후 지지자들에게 “시민들의 승리”라고 화답했다. 독일계 후손인 요하니스 대통령은 물리학 교사로 일하다 정계에 입문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고향인 중부도시 시비우 시장 등을 거쳐 2014년 대선에서 처음 권좌에 올랐다. 그는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에서도 사법개혁 및 법치주의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극우 민족주의 및 친러 성향이 강한 PSD가 과거 30여 년간 집권하면서 각종 부정부패 스캔들을 일으킨 점을 겨냥한 행보였다. AFP는 요하니스 대통령의 재선으로 동유럽의 민족주의 발호에 대한 우려가 다소 수그러들 것으로 평가했다. 최근 헝가리, 폴란드 등에서는 국수적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정당들이 득세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인권 등을 강조하는 EU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고 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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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 록밴드 ‘콜드플레이’ “새 앨범 홍보 투어 안한다”…6000억 수익 포기 이유는?

    세계적인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가 환경을 위해 새 앨범 홍보 투어를 사실상 하지 않기로 했다. 대형콘서트를 개최하면서 발생하는 다량의 온실가스와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다. 콜드플레이 리더 크리스 마틴은 21일(현지시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신보 ‘에브리데이 라이프’(Everyday Life)의 발매 콘서트를 2회만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보통 해외 유명 밴드는 신보를 발매하면 전 세계를 다니면 이를 알리는 콘서트를 연다. 콜드플레이도 직전 앨범인 ‘어 헤드 풀 오브 드림스’(A Head Full of Dreams) 발매 당시 전 세계 8개 지역에서 112회 공연을 가졌다. 이를 통해 5억2300만 달러(약 6166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22일 발매된 ‘에브리데이 라이프’ 홍보 콘서트는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만 두 번 번씩 열기로 했다. 콜드플레이 입장에서는 엄청난 수익을 주는 콘서트 투어를 과감히 포기한 셈이다. 마틴은 “우리 투어가 친환경적이면서도 그 자체로 수익성이 있을지 앞으로 1~2년간 시간을 갖고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공연을 하다보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가 많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콜드플레이의 경우도 지난 앨범 투어에만 직원 109명이 동원되고 트럭 32대를 사용했다. 영국에서만 음악 공연으로 매년 400만 t의 온실가스가 발생한다고 BBC는 전했다. 항공 뿐 만이 아니다. 공연에 오가는 관객들이 버리는 쓰레기, 이들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 매연가스도 만만치 많다. 콜드플레이 지난 앨범 투어에는 관객 540만 명이 동원됐다. 공연장에 설치되는 대형 세트도 문제다. 또 다른 유명 밴드 ‘U2’는 2009년 당시 공연에서 색다른 형태의 무대를 연출하기 위해 트럭 120대를 동원했다. U2가 당시 공연으로 발생시킨 온실가스 양은 우주선이 화성을 왕복할 때나 발생하는 탄소량과 같은 수준이었다. 이에 콜드플레이를 비롯해 해외 유명 뮤지션들은 더 친환경적인 공연을 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콜드플레이의 경우 새 앨범 ‘에브리데이 라이프’ 발매 예고 광고는 웨일스 지방 신문의 동네광고 지면에 실었다. 또 상징적으로 25일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한차례 공연을 하고 수익금은 환경단체에 기부할 방침이다. U2는 수소 연료전지 사용, 기타 줄 재활용 등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세계적 밴드 ‘라디오헤드’의 전력량을 줄이기 위해 무대조명을 LED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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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대와 성매매 의혹 앤드루 왕자 “모든 공직 사퇴… 당국조사에 협조”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의혹을 받아 온 영국 앤드루 왕자(59·사진)가 결국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BBC 등에 따르면 앤드루 왕자는 20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영국 여왕의 허락을 받아 모든 공무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며 “나와 관련된 의혹에 대한 사법 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인 그는 영국 허더즈필드대 총장직을 비롯해 각종 비영리단체와 기관의 왕실 후원자 업무를 맡아 왔다. 그는 앞서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미국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친분을 유지했다. 그 과정에서 2001∼2002년 엡스타인이 보낸 10대 안마사 버지니아 주프레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앤드루 왕자는 16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주프레와 함께 찍은 앤드루 왕자의 사진이 인터넷에서 확산되는 등 ‘거짓 해명’이란 역풍이 커졌다. 앤드루 왕자와 함께 일해 온 기업이나 민간단체들이 후원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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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이팝-한식… 한류 모든것 한번에 즐겨요”

    “한국문화는 전통적이면서도 현재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자주 접하고 싶었는데, 좋은 장소가 생긴 것 같습니다.” 20일(현지 시간) 오후 8시. 프랑스 파리 중심가인 샹젤리제 거리에 위치한 ‘파리코리아센터(Centre Culturel Cor´een)’에서 만난 파리 시민의 말이다. 기존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을 이전해 확장한 이곳은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총 3756m²)로 만들어졌다. 파리에 있는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은 1980년 에펠탑 맞은편 트로카데로 광장에 설립된 후 39년간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 지역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중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상 1층과 반지하로 이뤄진 비좁은 공간(총 753m²) 탓에 2000년대 들어 한류로 커진 문화 수요를 감당하는 데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가 839억 원을 들여 새로 지은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관광공사 파리지사도 함께 입주하면서 이름을 ‘파리코리아센터’로 바꿨다. 이 건물을 리모델링한 건축가 안태준 씨는 “한국문화가 모든 것을 잘 흡수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외관을 하얀색으로 꾸몄다”며 “파리에 또 하나의 광화문을 만든다는 콘셉트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기존 문화원보다 5배나 커진 공간에는 118석의 공연장을 비롯해 대규모 전시실(500m²), 한국문화·한식 체험관, 강의실 등 시설이 구비됐다. 개원식에는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장관, 비베트 로페즈 상원의원, 조아킴 손포르제 하원의원을 비롯해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종문 주프랑스 한국대사, 영화배우 배두나 씨 등 양국 인사 500여 명이 참석했다. 파리 시민들도 찾아와 개원 행사로 준비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씨의 미니 클래식 공연, 한국 민속품 전시, 한식 체험 등을 즐겼다. 펠르랭 전 장관은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와 케이팝은 물론 패션 한식 화장품 등 한국문화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관심이 매우 크게 증가했다”며 “프랑스인들이 한국문화를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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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단체인줄 알았더니 英집권당 트위터

    12월 조기 총선을 앞둔 영국이 ‘가짜 트위터’ 논란에 빠졌다. 집권 여당인 영국 보수당이 자신들의 선거용 공식 트위터를 마치 중립적 시민단체의 팩트체크 계정인 것처럼 만들어 야당 대표의 정책과 발언을 검증하는 내용을 올렸기 때문이다. BBC 등에 따르면 ‘팩트체크UK(factcheckUK)’란 계정의 트위터는 19일(현지 시간)부터 제1 야당인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의 발언과 노동당 정책들을 나열하면서 사실관계가 맞는지를 검증하는 듯한 메시지를 연달아 올렸다. 특히 이날 있었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코빈 대표 간 TV토론 중 나온 코빈 대표의 주장을 집중 파헤쳤다. 일부 유권자들은 선거철 정책을 검증하는 시민단체들이 만든 팩트체크 소셜미디어 계정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보수당의 선거용 공식 트위터가 명칭만 변경한 것이었다. 이는 선거철 정책 검증을 하는 시민단체들에 의해 밝혀졌다. 야당을 비롯해 시민단체들은 보수당이 사실상 유권자를 기만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영국 선거위원회는 “유권자들은 선거와 관련된 정보에서 투명성과 진실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며 보수당의 행태를 문제 삼았다. 트위터 본사까지 나서 “사람들을 호도할 수 있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규칙이다.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추가적인 시도가 있다면 수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보수당은 비판을 의식한 듯 이 트위터 계정 이름을 보수당 선거 캠페인 본부로 수정하고 보수당 로고도 넣었다. 그러면서도 “기만행위는 아니다”고 반박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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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계 극우들의 성지化막아야” 히틀러 생가 경찰서로 리모델링

    나치 독일을 이끈 아돌프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생가가 130년 만에 경찰서로 개조된다. 극우주의자들의 성지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영국 BBC 등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정부는 북부 지방 브라우나우암인에 위치한 히틀러 생가를 개조해 경찰 건물로 쓰기로 최근 결정했다. 이달 중에 전 유럽연합(EU) 건축가를 대상으로 설계 공모를 받아 리모델링을 시작할 계획이다. 히틀러가 태어난 집은 유럽 내에서 논란의 대상이었다. 히틀러는 1889년 4월 20일 17세기에 지어진 아파트 형태의 건물에서 태어났다. 히틀러 가족은 3년간 이곳에서 살다 이사를 갔다. 히틀러는 1938년 오스트리아를 나치 독일에 병합시킨 후 빈으로 가는 길에 자신의 생가를 찾기도 했다.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면서 네오나치주의 추종자 등 극우주의자가 대거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극우세력의 성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생가에 대한 소유권 확보에 나섰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1970년대부터 건물을 임차해 복지시설로 활용해 왔다. 2011년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리모델링 공사를 추진했지만 100년 가까이 히틀러 생가를 소유해 온 게를린데 포머 씨의 매각 거부로 임차 관계가 종료됐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2016년 이 건물을 강제 매입하는 내용의 법을 만들어 소유권을 확보했다. 포머 씨에게 보상금으로 81만 유로(약 10억5000만 원)를 제시했다. 소유권을 확보했지만 건물의 용도에 대한 치열한 대립이 이어졌다. 나치의 만행을 비판하기 위해 폭파하자는 의견과 가정폭력 화해의 공간이나 자선단체 사무실 등 공익적 장소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긴 논의 끝에 경찰서로 개조하는 방안이 결정된 것이다. 볼프강 페쇼른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은 “경찰서로 리모델링하기로 한 것은 이 건물이 나치주의를 기념하는 장소가 절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리는 신호”라고 밝혔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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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0유로 청년세대의 하소연… 비관론 확산 막는 고민 필요[광화문에서/김윤종]

    12일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 위치한 대학에서 일어난 일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회고록 출간을 기념하는 강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학생 50여 명이 강연장에 들어와 회고록을 찢기 시작했다. “당신은 살인자”란 외침 속에 종잇조각이 강연장에 휘날렸고, 올랑드 전 대통령은 학교를 떠나야 했다. 릴뿐만이 아니다. 파리를 비롯해 리옹, 보르도 등 프랑스 주요 도시의 대학에서 학생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집단 시위에 나선 이유는 또래의 분신 사건 때문이다. 리옹2대학에 다니는 아나스 씨(22)는 8일 학생식당 앞에서 분신을 시도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다. 그는 “굶는 게 힘들다”며 생활고를 호소하고 “불평등에 맞서자”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해 올랑드 등 전·현직 프랑스 대통령들을 비판했다. 이에 공감한 학생들이 개선책을 요구하며 집단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를 보며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프랑스 청년들이 정말 그렇게 힘들까’란 의구심이 들었다. 프랑스는 복지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춰진 나라다. 실제 아나스 씨의 학비는 무료였고, 월 450유로(약 58만 원)의 생활장학금도 받았다. 잘사는 나라의 나약한 복지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떠나지 않았다. 프랑스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파리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상당수는 최대 월 500유로(약 64만 원)의 장학금을 받고 있다고 했다. 부모의 지원이 있으면 버틸 만하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은 집세, 교통비 등으로 쓰고 남은 돈 100유로(약 13만 원) 정도로 한 달 식비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었다. 프랑스 최대 학생단체 FAGE에 문의하니 학생의 20.8%가 빈곤 위기에 놓여 있고, 50%가 생활비를 이유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 마할 씨(21)는 “장학금에 의존하다 보니 우리끼리 ‘500유로에 목맨 세대’라고 한다”며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해 졸업이 늦어지고, 빈곤 기간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집세가 너무 올라 부담이라는 대학생 소피 씨(22)는 “기성세대는 융자를 받아 집을 여러 채 만든 후 임대해 재테크를 한다. 학생들이 저렴하게 살 곳이 없다”며 화를 냈다. 기자가 거주하는 파리15구 부동산에 따르면 20m²(약 6평)도 안 되는 원룸 월세가 600∼800유로에 달했다. 프랑스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연 1000만 원이 넘는 등록금과 좁은 취업문 등 한국 상황과 비교하며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했던 기자의 태도 자체가 젊은이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꼰대의 전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자리 부족과 양극화로,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청년세대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도 다시 보게 됐다.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가 42개국의 1983∼2002년생에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물은 결과 한국은 100점 만점에 27점에 불과했다. 프랑스 23점, 영국 29점, 독일 28점 등 유럽 선진국도 낙제점이었다. 청년 문제는 특정 국가와 사회를 넘어선 세계적 난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청년들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말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 기성세대가 무엇을 내려놔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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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코-그리스-이란도 반정부 시위 활활

    체코, 이란, 그리스, 프랑스, 칠레…. 지구촌 각국에서 거센 반(反)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의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BBC는 17일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시위가 일어나는 이유로 불평등, 소득 불균형, 부패를 지목했다. 블룸버그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연대하기가 쉬워졌다는 점을 꼽았다. 특히 과거 시위는 노동자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소비자가 중심이라며 “물가 상승으로 고통을 받는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나가 됐다”고 진단했다. BBC 등에 따르면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는 16, 17일 25만 명의 군중이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65) 퇴진을 외쳤다. 1989년 공산정권 붕괴를 이끌어낸 민주화운동 ‘벨벳혁명’ 30년 만의 대규모 시위다. 재벌 출신인 바비시 총리는 2017년 12월 집권 후 유럽연합(EU)으로부터 200만 유로(약 25억77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아 자신이 소유한 기업에 불법으로 줬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비리 의혹을 파헤치던 법무장관을 해임한 뒤 측근을 새 장관에 앉혀 민심의 분노를 샀다. 중남미 칠레에 이어 중동 산유국 이란도 ‘50원의 분노’에 휩싸였다. 15일 정부가 휘발유 가격을 L당 1만 리얄(약 100원)에서 1만5000리얄(약 150원)로 올리겠다고 밝히자 분노한 시민들이 3일째 시위를 벌였다. 휘발유 가격은 낮지만 수십 년간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아온 이란 서민들에게는 큰돈이다. 이 와중에 정부가 인상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휘발유도 한 달에 60L로 제한했고, 이를 초과해 구매할 경우 L당 3만 리얄(약 300원)로 현재보다 3배나 되는 가격을 적용하기로 하자 민심이 폭발 직전에 있다. 16, 17일 양일간 수도 테헤란 등 주요 도시 10여 곳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 8만7000명이 참가했으며, 이날까지 12명이 숨졌다. 17일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강력한 진압을 천명해 추가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이미 1000명이 넘게 체포됐고, 인터넷 접속도 전면 제한됐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1973년 군사독재에 항거했던 대학생 봉기 46주년을 맞아 17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10일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사퇴한 중남미 볼리비아에서는 16, 17일 양 일간 모랄레스 지지파와 반대파가 거세게 충돌했다. 같은 날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도 ‘노란조끼’ 시위 1주년을 맞아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파리=김윤종 zozo@donga.com /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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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 ‘노란조끼 시위’ 다시 타오르나

    “우리는 여기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원치 않더라도 우리는 여기 있다.” 16일 ‘노란조끼’ 시위 1주년을 맞아 파리를 비롯해 리옹, 마르세유 등 프랑스 주요 대도시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부른 노래다. 이날 파리의 노란조끼 시위대는 오전부터 시내를 행진했다. 시위 1주년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 국기를 흔들고 북을 쳤다. 마크롱 대통령의 얼굴을 영화 속 악당 ‘조커’처럼 분장시킨 사진을 든 시위대도 있었다. 형광빛 조끼 뒤에는 ‘분노한 군중’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시위에 참석한 코렝탱 씨(28)는 AP통신에 “노란조끼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몽펠리에에서 파리로 왔다”고 했다. 16일 시위에 전국적으로 2만8000명이 참여해 이 중 147명이 체포됐다고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전했다. 노란조끼 시위는 지난해 11월 17일 프랑스 정부의 유류세 인상 계획에 반대하면서 시작됐다. 시위는 양극화와 기득권에 대한 분노로 확산되면서 매주 토요일 전국 도심에서 펼쳐졌고 마크롱 대통령 퇴진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대 280만 명에 달했던 참가자 수는 올해 중반 들어 수천 명대로 감소했다. 일부 급진층의 지나친 폭력 시위가 계속되자 시민들의 피로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노란조끼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 27%까지 하락했지만 현재 30% 후반대로 반등했다. 그럼에도 노란조끼 시위가 프랑스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올 9월 프랑스 정부는 가계가 부담하는 세금을 93억 유로(약 12조2000억 원)로 삭감하는 내용의 2020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10월에는 상류층 중심 엘리트 고등교육기관 그랑제콜에 차상위계층 선발을 늘리는 정책도 내놨다. 부의 대물림 고착에 대한 시위대의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프랑스 사회에서 사라지던 참여 민주주의 정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나타샤 씨는 “이제는 대의 민주주의보다 참여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했다. 시위에 다시 동력이 생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편에 시민들의 불만이 커진 데다 최근 리옹의 한 국립대 재학생이 생활고를 호소하며 분신하면서 대학생 시위도 전국적으로 확산 중이기 때문이다. 노란조끼 시위대는 다음 달 5일 연금 개편 반대 총파업과 연계해 집회를 열 계획이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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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불황에… “왜 우리 돈 걷어 다른 곳에 쓰나” 지역감정 폭발

    #장면 1 12일 프랑스 남부 A9고속도로. 수백 명의 시위대가 도로를 가득 메우자 교통이 마비됐다. 프랑스 전역을 달궜던 노란조끼 시위려니 했지만 이들은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주의 독립을 상징하는 깃발 ‘에스텔라다’를 흔들었다. “우리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한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 지난달부터 스페인에서 벌어진 카탈루냐 독립 요구 반(反)정부 집회가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지대까지 확산된 것이다. 스페인 대법원이 2017년 카탈루냐 독립을 추진했던 자치정부 지도부에게 최대 13년의 징역형을 선고하자 분리 독립 움직임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이었다.#장면 2 카탈루냐 독립기 에스텔라다는 이달 2일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 글래스고 조지광장에서도 휘날렸다. 그런데 참가자 7000여 명의 구호는 다른 것이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이 아니다. 우리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한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브렉시트를 추진하면서 스코틀랜드에서는 영국에서 독립해 EU에 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집회에 참석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대표는 분리독립 찬반을 묻는 제2의 주민투표 추진을 공식화했다. 일부 시위 참여자는 “카탈루냐 독립 운동과 연대해야 한다”며 에스텔라다를 흔들었다. 한 지역의 독립 움직임이 유럽 다른 지역과 연계 혹은 확산되면서 유럽 전역에 분리 독립의 불씨가 번지는 것이다.○ 왜 독립을 원하나 유럽인의 ‘자기소개 방식’은 지역 독립을 원하는 이유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유럽인 대다수는 스페인 사람, 영국인, 독일인 등 국적 중심으로 밝히는 대신 ‘작센주(독일) 사람’ ‘마드리드(스페인)인’ 등 지역 출신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스페인이 하나의 나라가 된 것은 1469년. 바르셀로나 중심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자와 마드리드 중심의 카스티야 왕국 여왕 이사벨의 혼사를 통해서였다. 언어와 문화, 역사의식은 이후에도 각각 전승됐다. 19세기까지 카스티야 귀족만 관료로 임명하는 각종 차별까지 생기자 ‘독립해야 한다’는 지역감정이 카탈루냐 사람들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와 함께 영국을 구성하고 있지만 조상이 다르다. 스코틀랜드는 켈트족,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 중심의 왕조를 이어왔다. 약 1500년 전 영국 본토를 차지했던 켈트족은 앵글로색슨족에 의해 북쪽으로 밀려난 후 탄압받았다. 1707년 단일 국가가 됐지만 잉글랜드에 대한 원한은 뼛속까지 박혀 있다. 유럽의 경기 침체가 ‘분리 독립’ 요구에 기름을 부었다. 유럽 전역은 2000년대 들어 재정위기에 빠졌다. 2015년 시리아 등 난민의 대규모 유입으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사회 불안이 커졌다. “왜 우리 돈으로 다른 지역을 먹여 살리나”라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카탈루냐 인구는 스페인의 16%인 750만 명에 불과하지만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한다. 스페인 중앙정부 세금의 약 19%를 감당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은 10% 미만이어서 불만이 크다. 스코틀랜드는 통계상으로는 잉글랜드보다 경제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독립을 하면 EU에 잔류하며 경제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약 200억 배럴(약 3조1780억 L)의 북해유전 중 80% 이상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스코틀랜드 분리주의자들이 “독립을 하면 훨씬 더 잘살 수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다른 유럽 국가의 사정도 비슷하다. 농업 지역인 이탈리아 남부는 밀라노, 베네치아가 있는 북부 경제 수준의 60%에 불과하다. 북부 도시들은 “왜 가난한 남부지역을 우리 돈으로 먹여 살려야 하냐”며 독립 투표를 요구해왔다. 2017년에는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도 했다. 독일 남동부의 바이에른 지역 역시 뮌헨이 위치한 가장 부유한 자치구로, 다른 지역과의 분리 욕구가 커지고 있다. 벨기에의 플랑드르, 스페인의 바스크, 프랑스의 코르시카 등 독립을 외치는 지역이 유럽에 10곳이 넘는다. 뉴욕타임스(NYT)는 “카탈루냐뿐 아니라 독일, 벨기에, 루마니아 등 많은 EU 회원국 내에서 중앙정부로부터의 독립 요구 움직임이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독립은 실현 가능한가 실제 독립 가능성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많다. 중앙정부의 반대뿐 아니라 독립을 반대하는 ‘소리 없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에스텔라다가 아예 보이지 않는 동네가 적지 않다. 버스 운전사 페드로 페르난데스 씨(55)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카탈루냐가 스페인을 떠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반대했다. 기성세대보다 지역감정이 옅은 젊은층도 비슷하다. 이안 다메손 씨(25)는 “난 바르셀로나 출신이지만 마드리드 친구가 많다”며 “지역뿐 아니라 스페인이란 나라 전체와 유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많은 카탈루냐 지역민이 분리 독립 후 나라가 제대로 운영될지, 기업들이 떠나지는 않을지, EU에 남을 수 있는지 등 현실적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이런 심리가 반영된 것이 2014년 열린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주민투표다. 당초 찬성이 많을 것으로 예측됐지만 투표 결과 반대(55.3%)가 찬성(44.7%)보다 많아 부결됐다. 독립국가가 된다고 지역민의 삶이 더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예산, 경제, 무역 등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국가수립 비용으로 2조 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가 차원의 각종 혜택도 상실한다. 카탈루냐는 인구가 750만 명에 불과하다. 플랑드르 지역 인구는 630만 명. 스코틀랜드는 520만 명 정도다. 인구가 1000만 명에 못 미치는 소국이 되면 경쟁력을 걱정해야 한다. 최근 카탈루냐 등의 움직임이 중앙정부에서 벗어나 지역의 특수성을 인정받으면서도 더 큰 공동체인 EU의 회원으로는 남고 싶어 하는 ‘상호모순’ 독립으로 규정되는 이유다. EU 회원국이 되려면 27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승인해야 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승인을 얻기도 어렵다. 이 경우 그간 누렸던 EU 회원국 간 이동의 자유, 자본 교환, 역내 관세 철폐와 같은 혜택이 사라지면서 무역, 금융 등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1944년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아이슬란드는 금융체계가 무너져 경제난을 겪었다. 안보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1960년 영국에서 독립한 키프로스는 이후 오히려 주변국들의 싸움터로 전락했다.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재추진에 대해 영국 여야는 모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스페인은 자치정부의 분리 독립을 불법행위, 반란, 폭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독립이 ‘꽃길’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유럽’은 사라지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당분간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유럽 사회는 ‘하나의 유럽(One Europe)’에서 ‘여러 지역의 유럽(Multi-track Europe)’으로 바뀌는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수십 년간 유럽은 ‘하나의 유럽’을 향해 맹렬히 달려왔다.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가 1958년 결성된 후 회원국이 크게 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67년 유럽공동체(EC)가 탄생했다. 1991년 마스트리히트조약이 맺어지면서 현 EU가 완성됐다. 공동 화폐인 유로화가 2002년 도입돼 정치, 사회를 넘어 경제 통합까지 마쳤다. 하지만 EU의 핵심 회원국인 영국이 2016년 탈퇴를 결정한 데다 각 지역의 분리 독립 움직임이 다시 강화되면서 이런 흐름이 변하고 있다.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EU 역시 회원국을 중시하는 동시에 유럽을 구성하는 작은 단위의 지역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협력관계를 강조하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유럽 내 독립 움직임은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분리주의 운동과는 미묘하게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따로 떨어져 나가겠다’는 분리주의 성향보다는 ‘우리 지역의 차별성을 인정해달라’는 지역주의 성향이 더 강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EU 집행부 내부에서 회원국 내 분리 독립 움직임을 반대하기보다는 중앙정부와 자치정부 간 분쟁 시 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EU는 어느 한쪽 편을 들 필요가 없다. 오히려 민주적 해결책을 통해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유럽이 ‘거대 공동체’로 존재하면서 그 안에 개별 지역 자율성이 균형을 이루는 ‘지역의 유럽’, 즉 멀티 체제의 유럽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금까지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것을 ‘하나의 유럽’ 안에 욱여넣으려 했다면, 앞으로는 공동체 안에서 개별 지역의 개성과 조화와 균형을 찾을 것이란 의미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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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당 독주 힘들어진 유럽… 극우정당이 연정 ‘킹메이커’로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지역이 늘어나는 가운데 유럽 주요국의 정치 지형도 중도 좌우파로 나뉘어 주요 정당에 표가 쏠리던 형태에서 여러 정당으로 분산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카탈루냐 독립이 주요 정치 현안인 스페인은 대표적이다. 이달 10일(현지 시간) 열린 스페인 총선은 4월에 이어 올 들어 두 번째 치러진 선거였다. 스페인에서는 4년간 무려 4번의 총선이 열렸다. 선거를 해도 의석이 과반을 차지하는 정당이 탄생하지 못했고, 연합정부를 구성하려 해도 정당들 간 의견 차가 심해 결국 다시 총선을 실시하는 일이 반복된 탓이다. 이번 총선에서 하원 전체 350석 중 120석을 얻었지만 과반(175석)을 얻지 못한 집권 여당인 중도좌파 사회당은 12일 급진좌파 포데모스와 연정을 구성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수개월간 지속된 무정부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군소 정당의 도움이 필요하다. 포데모스(35석)와 연정으로 155석이 돼도 과반에는 모자라기 때문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5월 치러진 벨기에 총선에서도 과반을 확보한 다수당 없이 의석수가 비슷한 정당들이 난립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연정이 구성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스웨덴 총선에서도 같은 이유로 무정부 상태가 4개월간 계속되다가 올 1월에야 가까스로 연정이 출범했다. 심지어 2017년 3월 네덜란드 총선에서는 과반 확보 정당 없이 13개 정당이 난립하면서 무려 208일간 무정부 상태가 지속된 후 가까스로 연정이 출범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정치 지형의 양극화로 기존의 중도좌파 혹은 중도우파 성향의 거대 양당에 표를 주는 유권자가 점점 감소하는 중”이라며 “어느 진영의 정당도 정부 구성을 위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현상이 유럽의 ‘뉴노멀(new normal)’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극우정당이 연정의 ‘킹메이커’가 되기 쉽다는 점이다. 이번 스페인 총선에서 제3당이 된 극우정당 복스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동맹’,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중도적 성향의 주요 정당이 이민 정책 등에서 극단적 정책을 펼치는 정당과 협력해야 하다 보니 사회적 갈등이 확대된다는 해석이 나온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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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방주의가 전쟁 불러” 트럼프 겨눈 마크롱

    “일방주의와 국수주의 확대는 전쟁을 야기할 뿐입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사진)이 12일(현지 시간) 열린 파리평화포럼 개막 연설에서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비판을 하고 나섰다. 올해 2회째인 파리평화포럼은 ‘다보스포럼을 능가하는 국제포럼을 만들겠다’며 지난해 시작한 마크롱 정부의 대표적 행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국 이익주의에 빠진 미국을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량 이민, 난민, 자원 부족, 기후변화 등 전 세계적인 문제를 다루려면 서로 더 많은 협력이 필요하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국제 시스템이 없는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일방주의는 위험하고 국수주의는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평화가 오고 가난이 줄었지만 새로운 불평등이 나타나 폐쇄적 국가주의와 일방주의가 확대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자국 이기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고 성토한 셈이다. 이날 포럼에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차기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등 30여 개국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미국에선 참석하지 않았다. 다른 참석자들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논조를 드러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일부 강대국들이 지나치게 일방주의적 행태를 보인다”며 “나의 비전은 분열된 세력을 화해시키는 유럽”이라고 말했다. 왕 부주석도 “일방주의, 보호주의, 포퓰리즘은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대화를 통해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거칠 것 없는 발언도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최근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2차대전 후 미국 주도로 창설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해 “뇌사 상태”라고 비판했다. 이런 그의 강성 발언은 2022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EU를 떠나려는 영국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은퇴를 앞둔 독일을 대신해 ‘프랑스가 유럽을 이끈다’는 외교 강국 이미지를 구축해 자국 내 지지율을 강화하려 한다는 것이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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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우정당만 띄워준 스페인 총선

    스페인 집권 사회노동당이 10일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반면 ‘스페인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정치인 산티아고 아바스칼(43·사진)이 이끄는 ‘복스’는 사회당, 제1야당 국민당에 이어 제3당으로 약진했다. 올해 4월에 이어 두 번째 총선을 치렀음에도 과반 정당이 탄생하지 못해 당분간 극심한 정국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1일 엘파이스 등에 따르면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중도좌파 사회당은 28%의 득표율로 하원 전체 350석 중 120석을 얻었다. 과반 176석에 턱없이 못 미칠 뿐 아니라 4월 총선(123석)보다도 3석이 줄었다. 중도우파 국민당은 88석을 얻어 4월(66석)보다 22석 늘었다. 특히 4월 1975년 민주화 후 사상 최초로 원내에 진입한 극우정당 복스는 이날 총선에서 4월(24석)보다 배 이상 많은 52석을 얻었다. 두 당은 모두 카탈루냐 독립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 스페인 대법원은 2017년 국민투표 등을 통해 분리 독립을 추진했던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전 지도부에 최대 13년의 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바르셀로나를 위시한 카탈루냐 주요 도시에서는 이들의 석방과 독립 승인을 요구하는 시위가 빗발쳤다. 타 지역에서는 분리 독립을 반대하는 맞불 시위가 이어졌다. 산체스 정권이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분리주의자를 강력히 처벌하고 하나의 스페인을 만들겠다”는 복스로 표심이 쏠렸다는 분석이 나온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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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총선서 집권 사회당 과반 확보 실패…극우성향 정당 ‘복스’ 약진

    스페인 집권 사회노동당이 10일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반면 ‘스페인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정치인 산티아고 아바스칼(43)이 이끄는 ‘복스’는 사회당, 제1야당 국민당에 이어 제3당으로 약진했다. 올해 4월에 이어 두 번째 총선을 치렀음에도 과반 정당이 탄생하지 못해 당분간 극심한 정국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1일 엘파이스 등에 따르면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중도좌파 사회당은 28%의 득표율로 하원 전체 350석 중 120석을 얻었다. 과반 176석에 턱없이 못 미칠 뿐 아니라 4월 총선(123석)보다도 3석이 줄었다. 중도우파 국민당은 88석을 얻어 4월(66석)보다 22석 늘었다. 특히 4월 1975년 민주화 후 사상 최초로 원내에 진입한 극우정당 복스는 이날 총선에서 4월(24석)보다 배 이상 많은 52석을 얻었다. 두 당은 모두 카탈루냐 독립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어 급진좌파 포데모스 35석, 카탈루냐 독립을 원하는 ERC 등 3개 분리주의 정당이 23석을 확보했다. 지난달 스페인 대법원은 2017년 국민투표 등을 통해 분리 독립을 추진했던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전 지도부에 최대 13년의 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바르셀로나를 위시한 카탈루냐 주요 도시에서는 이들의 석방과 독립 승인을 요구하는 시위가 빗발쳤다. 타 지역에서도 분리 독립을 반대하는 맞불 시위가 이어졌다. 산체스 정권이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분리주의자를 강력히 처벌하고 하나의 스페인을 만들겠다”는 복스로 표심이 쏠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라틴어로 ‘신의 목소리’를 뜻하는 복스는 강력한 카탈루냐 독립 반대, 반(反)난민, 반페미니즘, 낙태 및 동성애 반대를 외친다. 아바스칼 대표는 카탈루냐 못지않게 분리 독립 열망이 강한 바스크 지방의 빌바오 출신이다. 하지만 그가 소년이던 시절 국민당원이던 부친이 바스크 무장단체에 납치돼 죽을 뻔하면서 그의 성향은 출신 지역과 다른 방향이 됐다. 10대 때부터 국민당 청년조직에서 활동했고 2013년 “국민당보다 더 보수적이고 더 종교적이며 더 민족주의적 사회를 만들자”며 복스를 창당했다. 4월 총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016년 대선 슬로건을 본뜬 구호 ‘스페인을 다시 위대하게(Make Spain Great Again)’를 외쳤다. 언론 인터뷰에서 늘 “미국 유명 총기 브랜드 스미스앤드웨슨 권총을 집에 보유하고 있다”며 총기 보유 자유화를 외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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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한 장벽은 없다”…베를린 장벽 조각이 트럼프에 보내진 사연

    “베를린 장벽이 왜 여기 서있지?” 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 라파예트광장 옆 도로. 지나가던 시민들이 높이 3.6m의 콘크리트 덩어리로 된 장벽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30년 전 붕괴된 독일 베를린 장벽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궁금증과 함께 장벽에 써진 글씨를 읽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베를린 장벽에 새겨져있기 때문이다. 9일(현지시간) 독일 dpa통신 등에 따르면 비영리 시민단체 ‘열린사회’(Die Offene Gesellschaft)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기념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장벽 조각 일부를 선물로 보냈다. 이들은 모금을 자금을 모은 후 3일 베를린 장벽 조각을 구입했다. 이후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일인 9일에 맞춰 이 장벽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새겨 넣은 후 백악관으로 보냈다. 사실상 ‘베를린 장벽 편지’인 셈이다. 보낸 이는 ‘베를린 시민’으로 돼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이 장벽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헌신해온 사실을 당신께 일깨우려 이 조각을 보냅니다. 베를린 장벽은 이제 조각으로 남았습니다. 그 어떤 장벽도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존 F. 케네디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까지 미국은 이 장벽을 허무는 데 수십 년 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이 단체는 베를린 장벽 30주년을 맞아 장벽 없는 세상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장벽에 맞서는 장벽’(The Wall Against Walls)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멕시코 접경 지역에 이민자를 막기 위한 장벽을 만들어 중남미 국가로부터 유입을 막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메시지가 적힌 베를린 장벽을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일방주의와 고립주의를 주창하며 세계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미국의 폐쇄성을 ‘벽’에 비유한 셈이다. 그러나 백악관은 장벽을 받길 거부했다. 이에 장벽은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광장 가장자리에 임시로 놓여졌다. 열린사회 측은 “백악관이 계속 조각을 거부하면 조각을 가지고 미국 전역을 투어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뿐만이 아니다. 베를린 장벽 30주년을 맞아 독일 정치권에서도 일방주의로 치닫는 미국의 변화를 촉구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3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1989년 11월 9일 장벽 붕괴 당시 소련의 봉쇄 정책에 맞서 서베를린을 지키며 독일 통일을 지원한 미국의 행보를 언급하며 “미국이 국가 이기주의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존중받는 동반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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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통과 교류는 알레그로로, 통일은 안단테로

    “자, 각자 소개해보세요.” 10월 19일 오전 11시, 독일 베를린 글렘 거리에 위치한 장벽기념공원 인근 전시시설. 한 사람은 자신을 옛 동독 작센주 출신의 직장인이라고 밝혔다. 다른 사람은 출신지는 밝히지 않고 “학생”이라고만 소개했다. 서로 몇 마디 나누고 금세 친해진 이들은 도자기용 찰흙을 가운데 두고 악수했다. 두 사람의 손자국이 그대로 찍혀 나왔다. 전시시설의 한 직원이 말한다. “꼭 30년 전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고 동서 베를린 시민이 서로 손을 잡은 채 벽 위로 끌어올려줬답니다. 당시를 기억하고 서로 협력하자는 의미에서 이런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어요. 앞으로 총 1만957개(장벽 붕괴 후 30년간의 날짜 수)의 악수 조형을 모으는 게 목표입니다.” 전시시설 한쪽 벽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핸드 프린팅 조각 수백 개가 매달려 있었다. 현재 독일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11월 9일은 동서 냉전의 상징물인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 되는 날이다. 기자는 사흘간 베를린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듬해 이어진 독일 통일에 대한 독일인들의 기억을 추적했다. 통일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과 시행착오를 돌아보며 남북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찾기 위해서다. 10월 18~20일 만난 많은 통일 관련 관계자와 베를린 시민들은 당시를 “우연 같지만 필연”이라고 강조했다.“바로 지금부터입니다”시발은 1989년 11월 9일 오후 7시에 열린 동독 정부의 기자간담회였다. 동독 정부는 시민들의 개혁 요구가 계속되자 ‘민심 달래기’용으로 서베를린에 갈 수 있는 ‘여행 자유화’ 조치를 이날 발표했다. 당초 동독 정부는 비자 신청 후 허가를 받아야 자유화가 가능한 제한적 조치로서 10일부터 신청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정책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귄터 샤보브슈키 동베를린 공산당 대변인이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언제부터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바로 지금부터”라고 되풀이해 답했다. TV로 이 소식을 접한 동베를린 시민들은 곧바로 장벽으로 달려갔고, 동서베를린을 가르는 43km의 장벽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까지도 베를린 도심 곳곳에 3.6m 높이의 장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장벽 윗부분은 갈고리 줄을 던져 뭔가를 걸리게 한 다음 타고 넘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둥근 모양이었다. 군데군데 뜯겨져 나가 철골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구멍이 뚫린 곳도 많았다. 장벽이 붕괴된 후 베를린 시민들이 콘크리트를 떼어간 탓이다. 당시 상황을 좀 더 정확히 듣고 싶은 마음에 독일 통일 당시 동독의 마지막 인민의회(국회)에서 사회민주당(SPD) 원내총무로 활동한 리하르트 슈뢰더(76) 훔볼트대 명예교수의 자택을 방문했다. 그는 독일 통일조약 협상에 동독 측 대표로 참석해 독일 통일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베를린시 외곽에 위치한 슈뢰더 명예교수의 서재는 당시 기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당시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과정을 한반도 상황과 비교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노트북컴퓨터를 꺼내 1989년부터 1990년 사이 자신이 활동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통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강조했다. “서독 주민들은 동독에 자주 갔습니다. 동독 사람들도 제한적이긴 해도 서독을 방문할 수 있었어요. 편지나 소포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서로에게 보낼 수 있었고, 전화통화도 가능했죠. 무엇보다 상대 지역의 TV 프로그램도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동독 주민의 80%가 전파를 잡아 서독 TV 프로그램을 시청했다고 한다. 장벽 붕괴 전인 1989년 초 동독 내 전체 TV 시청률이 약 35%였는데, 동독 주민의 서독 TV 시청률도 20%가 넘은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슈뢰더 교수는 “더구나 장벽 붕괴 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개혁정책으로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붕괴되고 있었다”며 “여기에 동독 경제가 파산에 이를 만큼 최악이 되면서 통일 외에는 돌파구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로 ‘내전(內戰)’을 꼽았다. “서독과 동독은 서로 장기간 교류하다 통일했습니다. 그럼에도 동독을 먼저 개혁하고 동서독 교류를 확대한 다음 마지막에 베를린 장벽을 없애는 점진적인 통일이 이뤄졌다면 지금 훨씬 더 좋았으리라는 의견이 많아요. 그런데 한국은 남북이 싸우는 전쟁이 일어났고…. 이후 제대로 된 교류 없이 단절된 상태로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눈물의 궁전’에 눈물은 없었다슈뢰더 교수와 헤어지고 기자는 당시 동서베를린 시민들의 교류 흔적을 찾아 나섰다. 10월 19일 오후 먼저 베를린을 관통하는 슈프레강 인근에 있는 ‘트레넨 팔라스트’(눈물의 궁전)를 방문했다. 동베를린에 위치했던 이곳은 독일 통일 전 동서독 주민이 상대 지역에 사는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검문소였지만 현재는 작은 박물관이 됐다. 짧은 만남 후 긴 이별을 앞둔 가족들은 이곳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이곳의 명칭이 ‘눈물의 궁전’이 된 이유다. 안으로 들어가니 관람객 50여 명이 있었다. 한 학부모는 자녀에게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는 동서독 주민의 표정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동서독의 교류는 지금 남북한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다. 1949년 동독과 서독이 분단된 후 동독인의 서독 이동이 급격히 증가하자 동독 정부는 1961년 8월 베를린 장벽을 세웠다. 하지만 탈출자가 많고 불만이 커지자 양측은 1964년 11월 동서베를린 자유왕래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라 이산가족은 상대 지역에서 최대 30일간 지낼 수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전인 1980년대 말 동독은 연평균 100만 명 이상, 서독은 6배인 600만 명 이상이 상대 지역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 같은 교류가 결국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통일을 이루는 밑바탕이 됐다. 이 때문인지 시대의 아픔이기도 한 베를린 내 검문소는 지금 독일 젊은이와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됐다. 대표적인 예가 베를린 도심 한가운데 있는 ‘체크포인트 찰리’다. 1961년부터 베를린 장벽 붕괴 전까지 동서베를린 왕래자의 검문소였던 이곳은 늘 인산인해를 이뤘다. 바로 옆에는 맥도날드 매장이 있었다. 햄버거를 사 먹고 주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에게 장벽 붕괴는 부모 세대에 있었던,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거기서 만난 베를린 시민 아나 양에게 장벽 붕괴에 대해 묻자 “나는 지금 15세고, 태어나기도 전 일이라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분위기는 베를린을 관통하는 슈프레강을 따라 1.3km 남아 있는 장벽에 화가 100여 명이 그림을 그려 유명해진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10월 20일 찾은 이곳 역시 젊은이들에겐 ‘문화공간’일 뿐이었다.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입을 맞댄 모습을 그린 벽화 ‘형제의 키스’ 앞에서 만난 카티야(19) 씨는 “친구들과 함께 바람을 쐬러 왔다”며 “나는 그저 통일 독일에서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오시’와 ‘베시’의 갈등은 여전“통일은 완전한 상태가 아니며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장벽 붕괴 30주년 전 열린 독일 통일 29주년 기념식(10월 3일)에서 한 말이다. 장기간 동서독 교류를 통해 이룬 통일임에도 이후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의미다. 베를린에서 만난 많은 시민도 “여전히 정서적 장벽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게으른 ‘오시’(Ossi·동독놈)와 거만한 ‘베시’(Wessi·서독놈)의 갈등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 실체를 정확히 알고 싶어 베를린 카이저스베르테르 거리에 위치한 베를린자유대를 방문했다. 독일 국적자로, 독일 통일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해온 김상국(47) 한국학과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조만간 연구차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힌 그는 한국이 통일 과정에서 얻어야 할 교훈으로 ‘기대 심리의 관리’를 언급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3월, 동독 첫 자유선거인 인민의회 선거가 있었다. 당시 선거는 ‘빨리 일해 서독처럼 잘살자’는 공약을 내건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과 ‘빠른 통일은 동독에게 좋지 않으니 점진적으로 이루자’는 사회민주당(사민당) 간 대결구도였다. 동독인의 선택은 전자였다. 이후 1990년 10월 통일이 됐다. 하지만 후폭풍이 컸다. 막상 통일이 됐는데도 당장 동독 주민이 서독 주민처럼 잘살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통일 후 동서독 마르크화를 무리하게 통합하는 과정에서 직원 월급을 감당하기 힘들던 동독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 문을 닫고 말았다. 실업률이 급증했고, 동독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독으로 이동했다. 1989년 장벽 붕괴 당시 1700만 명이 넘던 동독 인구(베를린 제외)는 최근 1905년 수준인 1300만 명대로 감소했다. 독일 전체 인구 8200만 명의 15%에 불과한 수준이다. “현재 동독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서독지역의 75%가량입니다. 동독지역 주민이 아주 못살까요? 폴란드, 체코, 헝가리보다 훨씬 잘삽니다. 경제나 인프라는 동독지역이 거의 90%까지 서독지역을 따라 왔고, 각종 복지제도는 서독이나 동독지역이나 다 같아요. 그럼에도 상대적 박탈감이 워낙 크다 보니 동독 출신인 메르켈 총리조차 ‘서독 정치인’으로 생각합니다. 통일 과정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요와 경제적 요소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통일 과정에서 상대의 문화와 정서를 존중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줄여가야 ‘정서적 장벽’이 생기지 않습니다.”“소통과 교류가 먼저, 통일은 그 결과”실제로 9월 발표된 ‘독일 통일 현황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동독지역 주민의 57%가 “나는 독일의 2등 시민”이라고 답했다. 이런 불만은 독일 내 극우세력이 다시 급성장하는 자양분이 됐다. 10월 27일에 있었던 옛 동독지역 튀링겐주 지방선거에서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집권여당 기민당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AfD는 옛 동독지역인 작센주와 브란덴부르크주 선거에서도 각각 2위에 올랐다. 2012년부터 이민정책을 확대하자 “왜 우리보다 이민자나 난민을 우대하느냐”며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서독지역 주민은 “동독보다 못사는 서독지역도 많은데 왜 동독 출신은 불평만 하느냐”고 반발한다. 독일 정부는 30년간 2조 유로(약 2570조 원)를 동독지역 경제와 인프라에 투입했다. 이는 소득의 5.5%에 달하는 ‘연대세’로 서독지역 주민들 주머니에서 고스란히 나간 돈이다. 그렇다고 서독과 동독 모두 손해를 본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통일 이후 독일은 유럽연합(EU)의 맹주가 됐다. 한때 경제적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세계 4위 경제대국이다. 동서 분단 당시 독일은 유럽에 탱크를 굴리는 위험한 국가로 취급받았지만, 통일이 곧 독일산 벤츠가 전 유럽에 굴러다니는 원동력이 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고 베를린을 떠나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통일은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이 투입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는 한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독일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한국 사람들 역시 통일을 이루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큰 성취감과 저력을 느끼게 될 겁니다.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현재의 독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통일보다 먼저 필요한 건 평화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교류를 넓히는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과정은 이야기하지 않고 결과인 통일만 생각합니다. 앞뒤가 바뀌었습니다. 통일은 소통과 교류가 증대되고 양측의 교감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획득할 수 있는 결과물입니다.”베를린=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이 기사는 에 실린 기사입니다]}

    • 201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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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 대표로 왔다” 마크롱에 “美 견제” 손맞잡은 시진핑

    “나는 전체 유럽인을 위한 사절입니다.” 4∼6일 중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한 말이다. 프랑스를 넘어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중국과 글로벌 파트너가 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셈이다. 이는 유럽이 일방주의로 갈등을 유발하는 미국 대신에 중국 비중을 크게 늘리려는 행보로 풀이된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AP통신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과 시 주석은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에어버스사 항공기 구매와 엔진 개발 협력, 농업 분야 협력 강화, 무역과 금융 확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중국-프랑스 관계 행동계획’에 합의했다. 이날 양국이 체결한 경제협력 규모만 150억 달러(약 17조3900억 원)에 달한다. 두 정상은 무역전쟁, 이란 핵문제, 기후변화 등 국제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국은 유엔을 비롯해 주요 20개국(G20) 등 다자주의 안에서 협력을 강화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마크롱 대통령도 “한 나라의 고립된 선택은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자국 이익만 좇으며 고립주의와 일방주의에 매진하는 미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4일 지구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국제협약인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한 것에 대해서도 “EU와 중국, 러시아는 협약을 잘 지키고 있다”며 미국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장악한 세계 금융의 균열도 예고됐다. 시 주석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중국은 최근 프랑스에서 유로화 표시 채권 40억 유로(약 5조1154억 원)를 발행했다”며 협력 강화를 강조했다. 이번 정상 회담은 ‘프랑스와 중국’을 넘어 ‘EU와 중국’ 차원의 의제들도 다룬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도 자국뿐만 아니라 아냐 칼릭제크 독일 교육부 장관, 필 호건 EU 무역위원, 에어버스 등 유럽 주요 기업 대표 30여 명과 함께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 역시 마크롱 대통령을 ‘유럽의 대표’ 차원에서 황제급 의전을 펼쳤다. 시 주석은 5일 수입박람회 개막식 연설 직후 프랑스 전시관부터 방문해 마크롱 대통령과 와인을 마셨다. 이날 저녁에는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 함께 상하이의 전통정원 위위안(豫園·예원)에서 마크롱 대통령 부부와 산책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 역시 6일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협력 강화를 약속했다. 중국 지도부 서열 1, 2위 인사들이 동시에 외국 지도자를 만나 협력 강화를 외친 건 최고의 의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코넬대 경제학자 출신 에스와르 프라사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중국본부장은 AP통신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제 다른 나라들에 신뢰받지 못하는 파트너”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다자주의에 대한 반감, 국제협정 거부, 오랜 동맹에 대한 적대감이 미국의 영향력을 잠식했다”고 말했다.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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