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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소녀가 세계 최고의 체스 선수가 되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의 인기가 뜨겁다. 지난달 23일 공개된 지 4주 만에 6200만 계정이 시청하면서 넷플릭스 미니 시리즈 사상 최고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오늘의 한국 TOP10 콘텐츠’ 2위에도 오르며 한국 시청자까지 사로잡고 있다. 장기나 바둑도 아닌 체스에 한국 사람들마저 빠져든 이유는 뭘까. 윌리엄 호버그 총괄프로듀서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체스에 대한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했다. 한 인간이 역경을 극복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뤄 체스 문외한에게도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남자들의 세계에 놓이게 된 고아 소녀에 대한 인간적인 이야기이자 천재가 치르는 대가가 관객을 끌어당기는 것”이라고 했다. 윌터 테비스(1928∼1984)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드라마가 체스를 다루는 방식은 정교하다. 배우들이 체스에 거의 문외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체스를 두는 ‘스피드 체스’ 장면까지 완벽히 재현했다. 이는 대부분의 체스 장면이 전설적인 러시아 체스 선수 가리 카스파로프와 미국의 유명 체스 코치 브루스 판돌피니의 조언하에 설계됐기 때문이다. 그는 “(두 사람은) 토너먼트의 사소한 디테일까지 진짜처럼 만들고자 하는 제작진의 백만 가지 질문들에 답변해 줬다”고 했다. 제목인 퀸스 갬빗은 체스 말인 ‘폰’을 내어 주는 대신 전개 속도를 높이는 체스 시작 방법으로, 주인공의 승부사적인 면모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작품은 체스 세계에 여자가 사실상 전무하던 1950, 60년대를 다룬 만큼 ‘여성 서사’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위대함으로 나아가는 한 인물의 여정을 그린 것이며 그 주인공이 여성일 뿐”이라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리뷰를 인용해 이를 부인했다. 주인공 베스 하먼 역을 맡은 애니아 테일러조이에 대한 찬사도 쏟아진다. 주로 공포영화에서 활약하던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를 묻자 그는 “흥미로운 얼굴을 지닌 배우가 필요했다. 놀라운 눈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 워낙 똑똑한 사람”이라고 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천재 역이기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배우의 눈을 통해 드러나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에 잠긴 조용한 순간에도 많은 이야기를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실제 하먼이 체스판 앞에서 깍지 낀 손등 위에 턱을 올려놓고 정면을 응시하는 장면은 천재성과 함께 홀로 싸워 나가야 하는 이의 아픔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장센도 감각적이다. 모델 출신인 테일러조이가 짧은 곱슬 단발에 허리가 잘록한 치마를 입고 나와 1950, 60년대 유행했던 디올의 ‘뉴 룩’을 보여준다. 독일 베를린에서 주로 촬영해 전후(戰後) 분위기를 짙게 드러냈다. 작품은 기획부터 제작까지 30여 년이 걸렸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 역을 맡은 체스 마니아 히스 레저가 감독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2008년 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중단됐다. 다시 영화 제작이 추진됐지만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그는 “‘예스’를 받기까지 30년이 넘게 걸린 여정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시즌2에 대한 요구가 많지만 그는 “딱 알맞게 끝났다는 느낌이다”라며 선을 그었다. 소설의 대부분을 다뤘고 원작자 테비스가 세상에 없는 만큼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건 부담이 크다는 것. 그는 “만찬 같은 작품이었다. 그 자체로 완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한 고아 소녀가 세계 최고의 체스 선수가 되는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이 화제다. 지난달 23일 공개된 지 4주 만에 6200만 계정이 시청하면서 역대 넷플릭스 ‘미니 시리즈’ 사상 최고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오늘의 한국 TOP10 콘텐츠’ 2위에도 오르며 체스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시청자들까지 사로잡고 있다. 장기나 바둑도 아닌 체스에 한국 사람들마저 빠져든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한 윌리엄 호버그 총괄 프로듀서에게 들어봤다.●‘체스 팬’만 즐기는 작품 넘어서윌리엄 호버그 총괄 프로듀서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체스에 대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했다. 체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한 인간이 역경을 극복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뤄 체스 문외한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남자들의 세계에 놓이게 된 고아 소녀에 대한 인간적인 이야기”라며 “천재가 치르는 대가에 대한 이야기가 관객을 끌어당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체스를 다루는 방식은 꽤나 정교하다. 배우들이 체스에 거의 문외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체스를 두는 ‘스피드 체스’ 장면까지 완벽히 재현했다. 이는 대부분의 체스 장면이 전설적인 러시아 체스 선수 가리 카스파로프와 미국의 유명 체스 코치 브루스 판돌피니의 조언 하에 설계됐기 때문이다. 그는 “(두 사람은) 토너먼트의 모든 사소한 디테일까지 진짜처럼 만들고자하는 다양한 제작진의 백만 가지 질문들에 답변해 줬다”고 했다. 체스에 대한 정교함은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이 작품의 제목인 퀸스 갬빗은 체스 말인 ‘폰’을 내어 주는 대신에 전개 속도를 높이는 체스 시작 방법으로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의 승부사적인 면모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체스를 전혀 모르는 관객에게도 그런 존중이 전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작품은 체스 세계에 여자가 사실상 전무하던 1950, 60년대를 다룬만큼 일각에선 ‘여성 서사’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 남성들의 세계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뻔하게 느껴질 수 있다”며 “그러나 탁월하게도 퀸스 갬빗은 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위대함으로 나아가는 한 인물의 여정을 그리고 있으며 그 여정의 주인공이 여성일 뿐이다”라는 LA 타임스의 리뷰를 인용해 답을 대신 했다.●작품 빛낸 주인공 ‘안야 테일러 조이’주인공 베스 하먼 역할을 맡은 안야 테일러 조이에 대한 찬사도 쏟아지고 있다. 영화 ‘23 아이덴티티’ 등 주로 공포 영화에서 활약하던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를 묻자 그는 “흥미로운 얼굴을 지닌 배우가 필요했다. 놀라운 눈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 워낙 똑똑한 사람”이라고 했다. 드라마 속에서 단순히 미인보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천재’ 역할을 맡아야 했기 때문에 복잡미묘한 감정이 배우의 눈을 통해 드러나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에 잠긴 것을 보기만 하는 조용한 순간에도 많은 이야기를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고도 했다. 그의 말대로 베스 하먼이 체스 판 앞에서 깍지 낀 손등 위에 턱을 올려놓고 정면을 응시하는 장면은 천재성과 아픔을 함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드라마 속 감각적인 미장센 역시 화제다. 1950,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만큼 모델 출신인 안야 테일로 조이가 짧은 곱슬 단발에 허리가 잘록한 치마를 입고 나와 당시 유행했던 디올의 ‘뉴 룩’을 보여준다. 독일 베를린에서 주로 촬영해 전후 분위기를 짙게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디자인과 의상과 카메라는 모두 하나고, 모든 것이 스토리와 캐릭터에 의해 결정된다”며 “작품의 배경 시기 또한 멋진 팔레트”라고 했다.●시즌2 기대엔 “알맞게 끝났다”이 작품은 기획 단계부터 30여년이 걸린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가 월터 테비스가 1983년 발표한 동명의 원작 소설을 읽고 빠진 영화 제작자 앨런 스콧은 1992년 판권을 구입했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 역을 맡은 히스 레저가 관심을 보여 감독을 맡을 예정이기도 했다. 히스 레저는 어린 시절 호주에서 체스 주니어 챔피언 자리에 오르기도 했을 만큼 체스 마니아다. 그러나 2008년 히스 레저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이 프로젝트는 엎어지고 말았다. 히스 레저의 작품이었다면 어땠을지 추측하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대신 묻자 그는 “그(히스 레저)가 이 작품을 맡으려 했던 것도 소설의 우수성 때문이다. 이 작품을 어떻게 연출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이후에도 이 작품은 장편 영화 제작이 추진됐다 비용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실패했다. 넷플릭스의 지원을 받은 뒤에야 당초 영화로 기획되던 작품은 드라마로 촬영됐다. 그는 “‘예스’를 받기까지 30년이 넘게 걸린 여정이었다”고 소회했다. 시즌 2에 대한 요구가 많지만 그는 “딱 알맞게 끝났다는 느낌이다. 그 자체로 완전한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이미 원작 소설의 대부분을 다뤘고 원작자 월터 테비스가 1984년 사망한 만큼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건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만찬 같은 작품이었다.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진정한 이유가 없다면 여기에 무엇인가 더한다는 것은 작품을 작위적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지난해 초 끝난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열심히 한 대로 보상받는다는 능력주의가 허물어지는 한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다뤘다. 드라마 속 ‘입시 코디네이터’는 성적 관리는 물론이고 아이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거리낌 없이 각종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사모님들’은 재력과 권력을 동원해 아이들 명문대 보내기에 나선다. 현실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드라마를 보다 보면 씁쓸하기보단 좌절이 먼저 밀려온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의 키워드를 뽑자면 공정이 아닐까 싶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은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공정’이란 말이 자주 들리는 요즘”이라는 추천사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면 이 책을 읽으며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2010년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당신은 고장 난 기차를 운전하고 있다. 5명이 있는 A선로와 1명이 있는 B선로 중 어떤 방향으로 기차를 틀 것인가’라는 잔인한 딜레마로 한국 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킨 저자가 이번에는 공정이라는 주제로 다시 한번 논쟁거리를 던진다. 저자가 공정을 다루기로 한 건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이 미국에서도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힘든 가정형편이나 제도적 지원 부족으로 백인 노동자층 자녀가 대학에 가지 못하고 수입이 줄면서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그는 본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는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정치인들이 한 가지 놓친 점은 능력주의 중심 사회에 내재한 모욕의 감정”이라며 “정말 학위가 없고 성공하지 못한 자는 업신여김 받아 마땅한가”라고 저자를 대신해 묻는다. 저자는 ‘미국판 스카이캐슬’로 알려진 미국 명문대 부정 입학 사건을 중심으로 능력주의의 환상을 부순다. 유명 입시 상담사 윌리엄 싱어가 할리우드 스타들의 자녀를 위해 시험 감독관들에게 돈을 찔러주고 답안지를 조작한 사건이다.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입학하는 ‘뒷문’에 더해 부정 입학이라는 ‘옆문’이 널리 퍼진 현실은 공정이 무너진 미국의 단면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공정성 관점에서는 뒷문과 옆문을 구분하기 어렵다. 둘 다 부자 부모를 둔 청소년이 더 나은 지원자가 되게끔 했으며 능력보다 돈이 앞선 사례”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특히 엘리트층에 대한 분노가 민주주의를 위험하게 만들 때 능력에 대한 환상을 더 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환호하는 승리자와 ‘지원받지 못해 실패했다’고 분노하는 패배자가 양극화하면서 포퓰리즘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세계화의 패자들이 왜 그토록 악에 받쳤는지, 왜 그토록 권위적인 포퓰리스트에게 빠져들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삶을 새롭게 정립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결속력과 존중의 힘이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며 독자에게 해법을 촉구한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공정 논쟁의 해법 역시 한국 독자들이 찾아야 하지 않을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배우 송강호(53)와 김민희(38)가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선정한 ‘21세기 최고 배우 25인’에 각각 6번째와 16번째로 포함됐다. NYT는 25일(현지 시간) 영화 비평가 마놀라 다지스와 앤서니 올리버 스콧이 게재한 기사를 통해 이같이 선정했다. NYT는 송강호에 대해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기생충’에서 가난한 가장을 연기하면서 대부분의 미국 관객에게 주목을 받게 됐다”고 평가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라고 자라는 캔버스 같다. 붓질을 아무리 해도 더 칠할 공간이 있다. 나에게 그는 무궁무진한 다이아몬드 광산”이라고 했다. NYT는 김민희에 대해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2015년)를 언급하며 “두 남녀가 만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생기는 변화에 대해 절묘한 뉘앙스를 살린 김민희의 연기가 영화의 중심에 있다”고 했다. 선정된 배우 25명 중 미국 배우 덴절 워싱턴이 첫 번째,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두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국가 사적 제6호인 경주 황룡사 터에서 통일신라시대 금동봉황장식 자물쇠(사진)가 출토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황룡사 서회랑 서편 발굴조사에서 통일신라, 고려시대 자물쇠 3점이 나왔다고 25일 밝혔다. 특히 길이 6cm의 금동봉황장식 자물쇠는 봉황의 비늘과 날개 깃털 등의 문양을 세밀하게 표현해 매우 정성스럽게 만든 귀중품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의 철제 자물쇠, 통일신라시대의 청동제 자물쇠도 함께 발견됐다. 서회랑 서편은 황룡사 터 중 유일하게 조사되지 않은 지역이다. 이곳은 승려의 생활공간이나 사찰 운영과 관련된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넓지 않은 조사구역 내에서 자물쇠 3점이 출토된 것은 이례적이다. 서회랑 외곽 공간의 기능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걸그룹 블랙핑크의 히트곡 ‘불장난’에 맞춰 동그라미가 정신없이 쏟아져 내려왔다. 케이팝 리듬 게임에서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눌러야 하는 ‘노트’들이었다. “우리 엄만 매일 내게 말했어”라는 첫 가사에 맞춰 파란색 노트가 떨어지자 기자는 열심히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했다. 오랫동안 누른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노란색 노트가 내려올 땐 손가락을 좌우로 바삐 움직여야 했다. 두 손바닥을 마찰시키며 불을 일으키는 듯한 모습을 표현한 불장난 하이라이트 안무 그대로였다. 17일 서울 서초구 달콤소프트를 찾아 체험해 본 케이팝 리듬 게임 ‘슈퍼스타 YG’는 이처럼 실제 케이팝 가수들의 콘서트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음악에 맞춰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있자니 어느새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흥이 올랐다. 곁에서 지켜보던 중년의 사진 기자 선배마저 “한번 해보고 싶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케이팝 가수들의 노래를 기반으로 한 ‘케이팝 리듬 게임’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 게임사 달콤소프트가 여러 소속사와 손을 잡고 만든 ‘슈퍼스타’ 시리즈다. 레드벨벳, 엑소, 소녀시대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의 노래로 만든 ‘슈퍼스타 SMTOWN’은 앱 장터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로드 수가 500만 회 이상이다.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팬들이 가장 만족하고 있는 건 ‘익숙한 노래’다. 리듬 게임은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노래가 낯설면 쉽게 즐기기 힘들다. 요즘 오락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본 리듬 게임 ‘태고의 달인’에선 제이팝이나 일본 애니메이션 OST가 흘러나온다. DDR 등 추억의 게임은 1990년대 가요가 담겨 케이팝에 익숙한 10, 20대에겐 익숙하지 않다. 케이팝 팬들은 먼저 가수들을 콕 집어 게임사에 리듬 게임 출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팬심’을 만족시키는 장치들도 케이팝 리듬 게임에 빠져들게 하는 요소다. 가수들이 직접 쓴 글씨가 게임에 들어가 있고, 노트를 잘못 눌렀을 땐 이를 위로하는 가수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목표 점수를 달성하면 가수의 사진이 담긴 카드를 주며 보상하기 때문에 게임 내에서 ‘덕질’(마니아 활동)에 빠지기도 한다. 달콤소프트 관계자는 “아티스트와 팬을 더 가깝게 연결하는 것이 게임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했다. 인기에 힘입어 소속사들도 자체 리듬 게임 개발에 나서고 있다. 최근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게임사 수퍼브를 인수한 뒤 내년 초 발매를 목표로 리듬 게임 ‘리듬 하이브’를 만들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 ‘아미’의 구매력을 게임 시장까지 끌고 오겠다는 것이다. 수퍼브 관계자는 “리듬 하이브를 통해 BTS 등의 음악을 즐기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했다. 케이팝 리듬 게임이 음악과 게임 시장의 수요를 모두 만족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게임사 입장에선 인기 가수들의 흥겨운 노래가 리듬 게임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다. 소속사는 가수들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수익을 다각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FNC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리듬 게임을 반복해서 하다가 가수의 노래 가사를 줄줄 외우고 팬이 된 게이머들이 다수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아티스트와 팬이 직접 대면하는 이벤트를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게임은 국내외 케이팝 팬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그는 누구이며, 어떻게 대통령이 됐는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이야기일 것 같지만 아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트럼프: 미국인의 꿈’의 시작에 나오는 질문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1970년대 뉴욕에서 호텔 재건축 사업에 뛰어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후 부동산, 카지노, TV쇼 등을 통해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얻어 끝내 대통령에 오른 일대기를 다룬다. 넷플릭스가 2018년 3월 공개한 작품이지만 최근 한국 넷플릭스에서 ‘지금 뜨는 콘텐츠’ 상위권에 포진했다. 최근 미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 대통령 관련 영상 콘텐츠가 소비되는 ‘역주행’ 현상이 일고 있다. ‘트럼프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지지한다’는 뜻의 트럼프주의가 왜 생겼는지를 간접적으로 다룬 영화 ‘힐빌리의 노래’에 국내 영화 팬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1일 극장 개봉 이후 “저물어 가는 트럼프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꼭 봐야 할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힐빌리는 미국 중서부 및 북동부의 쇠락한 공업지역인 ‘러스트 벨트’의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디트로이트에서 알코올의존증 환자인 어머니와 트레일러에서 학대를 받으며 유년기를 보내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된 J D 밴스의 동명 회고록을 바탕으로 했다. 이 영화는 힐빌리의 성공담보다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는 힐빌리의 현실을 조명한다. 이들 힐빌리가 왜 트럼프를 지지하는지 설명하는 작품으로 해석되고 있다. 올 9월 넷플릭스가 공개한 다큐 ‘익스플레인: 투표를 해설하다’도 인기다. 2016년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경쟁과 선거 제도를 다룬 이 작품은 올해 미 대선이 절정에 이르던 이달 초 한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블로그에서 화제가 됐다. “다큐를 다시 보면서 미 대선의 선거인단 제도를 이해했다” “왜 트럼프가 우편투표를 반대하는지 공부한다” 등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트럼프 콘텐츠 역주행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트럼프에 대한 관심이 여전하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가 이번에는 졌지만 왜 4년 전에는 승리했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욕망이 미 대선을 계기로 살아났다는 얘기다. 한 블로거는 ‘힐빌리의 노래’를 언급하며 “트럼프주의를 이해한 뒤에야 (트럼프) 비판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드웨어적으로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대중화로 예전 작품의 ‘다시 보기’가 쉬워졌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다큐멘터리나 현실이 반영되는 영화일수록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 때마다 다시 소비된다는 것.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영화는 항상 시대와 나란히 가는 콘텐츠”라며 “영화가 계속 사랑받는 건 대중의 마음을 읽어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제3국 분쟁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 고립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대신 조 바이든 당선인의 새 행정부가 들어서면 한미동맹이 어떻게 변화할지 관심이다. 바이든 당선인의 선택에 따라 한국의 동북아시아 전략도 출렁일 터다. 그가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에 헌화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그에게 한미동맹을 언급한 일이 화제가 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한미동맹을 더 깊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정독해 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국제안보 전문가인 저자는 6·25전쟁을 통해 한미동맹과 냉전의 의미를 고찰한다. 70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아픔인 역사를 제3자의 시각과 풍부하고 실증적인 자료로 냉철하게 분석한다. 국방부 등 미 정부 안보기관에서 일한 경험을 밝혀 분석의 신뢰도를 더 높인 것은 물론이다. 이 책은 1990년대 이전 6·25전쟁을 다룬 역사서들이 미국과 한국 사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보완했다. 옛 소련 해체 이후 쏟아진 러시아의 6·25전쟁 관련 기밀자료를 비롯해 중국 북한 등에서 최근 접근 가능한 아카이브까지 망라해 분석했다. 여기에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등 주요 인물의 전기와 회고록을 더해 이들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와 과정을 추적한다.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정부의 ‘항미원조전쟁’ 주장의 허구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저자는 “공산 측의 결정과 정책을 분석함으로써 좀 더 완전하고도 통합된 서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트루먼 미 대통령의 참전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미국이 강력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지 않으면 한국전쟁이 세계대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사비 증강에 반대했던) 트루먼 대통령과 보좌진이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추가 세출(예산) 획득을 위해 제시했던 최악의 상황을 (6·25전쟁이) 쉽게 정당화하게 된다”며 사실상 방위비를 부담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본다. 저자 말대로 공산세력 봉쇄를 천명한 ‘트루먼 독트린’이 냉전시대를 버티게 했다면 ‘바이든 독트린’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어른 같으면서도 포근하고 편안해요. 같이 가는 멤버들이 만만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하다 보니 성웅이 형밖에 생각이 안 났어요.” 지난달 18일부터 tvN에서 방영 중인 여행 예능 프로그램 ‘바닷길 선발대’에서 배우 김남길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출연자로 배우 박성웅을 섭외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서로의 성격을 잘 아는 만큼 한정된 공간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야 하는 요트 여행에 딱 맞는 동반자라는 것. 박성웅은 “함께 가기 정말 편한 동생이 누군지 고민하니 너밖에 없었다”며 배우 고아성을 섭외했다. 김남길이 여행 예능 ‘시베리아 선발대’를 같이 찍은 배우 고규필까지 섭외하는 데 성공하며 출연자 4명이 11박 12일 동안 망망대해를 떠도는 언택트 여행이 시작된다. 진짜 친구들끼리 출연하는 이른바 ‘찐친 예능’이 인기를 끌고 있다. 찐친 예능에선 먼저 출연을 결정한 이가 다른 출연자를 직접 섭외하는 과정이 담기면서 이들의 우정이 자연스레 시청자들에게 전해진다. 출연자들은 서로 가까웠지만 전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미안함을 긴 여행 시간 동안 풀어내며 감동도 선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예능 제작 방식이 언택트로 바뀌고 있는 상황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4년 시작한 ‘꽃보다 할배’ 시리즈가 노년 배우들이 낯선 이들을 만나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만남’에 초점을 뒀다면, 최근 예능은 가까운 사람들끼리 제한적 공간에서 지내며 이야기를 나누는 ‘힐링’으로 바뀌고 있다. 휴양지에 캠핑카를 끌고 가는 ‘바퀴 달린 집’, 출연자의 고향을 찾아가는 ‘서울촌놈’도 그렇다. 방송사는 혹시 생길지 모를 갈등을 염려하지 않아도 돼 진짜 친구들의 출연을 반기고 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언택트 여행 예능은 출연자들끼리만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만큼 ‘케미’(호흡)가 망가지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친한 멤버들로 구성하면 촬영 중 멤버 간 다툼이나 이로 인해 불거지는 논란을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다들 아기 낳을 때 저승사자 한두 번씩 왔다가고, 아무리 입맛 당겨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못 마시잖아요. 저 역시 고생하며 두 녀석 다 돌까지 모유 수유로 키웠던 기억이 나네요.” 최근 어린 자녀를 둔 엄마나 임신부가 회원의 다수인 온라인 맘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2일부터 방영된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보고 자신의 출산 경험을 떠올린 것. 이 글에는 “울고 힘들던 출산 직후가 생각난다” “남편이랑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등 댓글이 이어졌다. 나이든 산모의 산후조리원 적응기(記) ‘산후조리원’이 3040 여성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최고 시청률은 3.3%이지만 마니아층이 형성돼 ‘작품성 높다’는 입소문을 타고 있다. 아이를 낳아본 여성들은 “군대 다녀온 남자들이 ‘진짜사나이’ 보듯 산후조리원을 보며 울고 웃는다”는 반응이다. 예비 엄마들이 “출산이 무섭다”고 하면 위안을 주는 댓글이 올라온다. 대부분의 드라마 시청자들이 주인공에게 몰입해 서사 위주로 시청 소감을 나눴다면, 이 드라마는 자신의 경험을 비슷한 처지의 다른 시청자와 나누며 소비한다는 특징이 있다. 임산부 사이에서 ‘출산 3대 굴욕’이라 불리는 관장, 제모, 내진 경험을 현실적으로 표현한 에피소드같이 출산 관련 내밀한 사례를 희화화하지 않는 연출도 공감을 사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학벌과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완모’(완전한 모유 수유)만이 대접받는 산후조리원 모습을 통해 일과 출산 사이에서 고민하는 3040 여성의 심리를 잘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흥미 위주로 보던 시청자들은 임신과 출산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에 대한 토론도 벌이고 있다. 한 맘카페에는 “산후조리원에서 누군가 불쑥 내 가슴을 주무르며 ‘아직 딴딴하고 열이 난다’거나 ‘아이가 물기 힘들 것 같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사람이 아니고 젖소인가”라는 글이 올랐다. 한 여성은 “주위 사람들이 ‘카페인을 섭취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해 카페에서 그냥 나왔다. 하지만 임신부도 하루에 커피 한 잔은 괜찮다”고 주장했다. 김지수 작가는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고 곧장 ‘엄마 모드’가 되지 않는다”며 “엄마도 일, 성공, 사랑에 대한 욕망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솔직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전란(戰亂)은 전방뿐 아니라 후방에서도 벌어진다. 코로나19에 의료진이 전방에서 치료를 하며 맞서 싸운다면 국민은 경기 침체와 방역으로 인한 어려움을 견디며 후방에서 버틴다. 1592년 임진왜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방에서 이순신 장군과 의병들이 왜적에 맞서 싸우는 동안 백성들은 빈곤, 역병과 사투를 벌였다. 이 책은 조선시대 양반 오희문이 임진왜란 당시 썼던 일기 ‘쇄미록’을 번역해 축약한 것이다. 원본은 전쟁 직전인 1591년 11월부터 1601년 2월까지 9년 3개월에 걸쳐 쓴 기록인 만큼 분량이 51만9973자로 방대하다. 이를 사학과 교수인 해설자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한 권으로 추려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류성룡의 ‘징비록’이 전방의 이야기라면 쇄미록은 전쟁에 직접 참가하지 않은 평범한 양반이 써 내려간 후방의 기록이다. 책은 임진왜란의 시작부터 펼쳐진다. 왜선 수백 척이 부산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이야기를 공식 보고서가 아니라 소문으로만 듣는 이의 두려움이 흘러넘친다. 피란을 떠나다 어머니, 처자식과 헤어진 뒤에는 “무슨 마음으로 차마 수저를 들고 음식을 넘기랴. 하늘이여! 땅이여! 망극하고 망극하도다”라고 통곡한다. “오늘은 노모의 생신이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심금을 울린다. 개인의 일기인 탓에 위정자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만일 주상께서 도성을 굳게 지키고 장수에게 명하여 방어하면서 강을 따라 위아래로 목책을 많이 설치하고 먼저 배를 침몰시켜 길을 끊게 했다면, 적이 아무리 강하고 날래다고 한들 어찌 강을 날아서 건널 수 있겠는가”라며 선조의 의주(義州) 피란을 비판한다. 당시 관료 중에 대놓고 “이것을 헤아리지 않고 먼저 도망쳤으니 심히 애석하다”고 쓸 수 있었던 자는 없었을 것이다. 전란이 끝난 뒤에도 질병, 가난 등으로 백성들의 고난은 이어졌다. 집안사람이 홍역에 걸리자 오희문은 “오늘이 큰 명절날인데도 신주에 차례조차 올리지 못했다. 방문한 이웃 마을 사람들에게 역병이 들었다고 말로만 전송하니 탄식한들 어찌하겠는가”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와아아아, 와아아아, 보건교사다 잽싸게 도망가자, 죽게 생겼다 잽싸게 도망가자.” 올해 9월 넷플릭스가 공개한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OST 한 구절이다. 이 음원은 반복되는 멜로디와 가사 덕에 중독성이 높아 10대 학생들 사이에서 “수능 전에 듣지 말아야 하지만 계속 듣게 되는 수능금지곡”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정식 발매도 안 됐지만, 이 음악이 나오는 유튜브 조회수가 170만 회에 달할 정도다. 다음 달 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다가오면서 이른바 ‘수능금지곡’이 관심을 받고 있다. 수능금지곡은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아 집중력이 필요한 시험을 보기 전엔 피해야 하는 음악을 뜻한다. 10대 학생들이 단체로 한 공간에 모여 야간 자율학습을 하거나 카페처럼 소음이 있는 곳에서 공부를 할 때 외부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아 특히 유의해야 한다. 수능금지곡의 기원은 아이돌 그룹의 ‘후크송’이다. 아이돌 음악은 주로 10대 학생들이 즐기다 보니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됐다. SS501의 ‘U R Man’의 가사 “아임유어맨 아임유어맨 그대여”에서 시작해 소녀시대의 ‘지’, 슈퍼주니어 ‘쏘리 쏘리’, 샤이니 ‘링딩동’으로 퍼져나갔다. 5년 전부터는 음악의 장르가 확대됐다.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음원 차트보다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접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의 구전동요를 한국 유아교육 업체가 편곡, 개사해 내놓아 유튜브에서 조회수 70억 회를 넘긴 동요 ‘상어가족’이 대표적이다. 기업들이 내놓은 CM송도 수능금지곡에 오른다. 올해는 삼성증권의 “월급은 섭섭해, 이자는 서운해, 시작을 시작해”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는 동원참치의 “참치, 요리로 참치, 조리로 참치, 이건 맛의 대참치”가 유행했다. 지난해 수능 강의 업체인 ‘대성마이맥’은 자체적으로 만든 수능금지곡 ‘마이맥송’을 내놓기까지 했다. 해외에서는 특정 노래를 자주 들어 머릿속에서 계속 멜로디가 반복되는 것을 ‘귀벌레 현상’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교육 업체 이투스 관계자는 “음악의 멜로디와 가사는 집중력을 분산시킬 뿐 아니라 수능시험장에서는 음악을 들을 수 없다”며 “공부할 때는 음악을 듣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출판계에 꿈같은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베스트셀러 소설 기근’ 시대에 한 장편소설이 출간 4개월 만에 11만 부가 팔린 것. 더구나 서른 살 작가의 첫 작품이다. 작가의 등용문이라 여겨지는 신춘문예나 공모전에 응모한 적도 없다. 홀로 써서 스스로 편집과 표지 디자인을 한 뒤 직접 팔다가 ‘대박’을 터뜨렸다. 꿈을 사고파는 백화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 판타지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과 이미예 작가(30) 이야기다. 10일 서울 마포구 쌤앤파커스에서 이 작가를 만났다. 매일 8시간씩 푹 자는 것을 좋아하고 밤새워 일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그는 전날에도 숙면을 취한 듯 활력이 넘쳤다. 이 작가는 전형적인 공대생이다. 부산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엔지니어로 4년 9개월 일했다. 글을 쓰고 싶어 퇴사하고는 웹소설을 연재했지만 반응이 없어 며칠 만에 그만뒀다. “조회수가 10도 안 나와서 의기소침하다 그만뒀다”는 그의 말에는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책 쓰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 재취업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경력 단절이 생겨서인지 번번이 떨어졌지요.” 작가가 좌절하며 겪어낸 사회생활 경험은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겼다. 별다른 스펙도 없는 주인공 페니는 ‘아무리 좋아봐야 꿈은 꿈일 뿐이다’라는 도발적인 자기소개서로 꿈 백화점에 가까스로 취업한다. 신입사원으로 층마다 다른 꿈을 파는 꿈 백화점의 사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잠들어야만 입장 가능한 백화점’에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꿈을 팔며 보통사람들의 욕망을 마주하고 삶을 이해해 간다. 사회생활을 처음 하게 된 젊은 여성이 세상을 배워 나가는 판타지에 20대 여성들이 먼저 호응했다. “백화점에서 허둥지둥 일하는 페니의 모습이 회사에서의 내 모습 같다”는 것. 사건 위주로 진행되는 빠른 전개와 대화 위주의 구성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초보 독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베스트셀러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처럼 ‘꿈’(이상)과 ‘판다’(현실)라는 이질적인 단어가 조합된 제목도 눈길을 확 잡았다. 쌤앤파커스 관계자는 “재미있는 책은 독자들이 먼저 찾아낸다”고 말했다. ‘해리포터’를 통해 영미권 판타지에 익숙해진 젊은 독자들의 눈높이를 맞췄다는 분석도 나온다. 킥 슬럼버, 와와 슬립랜드, 아가냅 코코 같은 소설 속 등장인물 이름은 잠을 뜻하는 영어에 기반을 두고 지었다는 특징이 있다. 이 작가는 “어렸을 때 해리포터를 읽었던 20대들이 향수를 느끼며 제 작품을 찾아준 것 같다”고 했다. 소설은 가벼워 보이지만 꿈에 대한 깊은 생각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던 그는 사례 위주로 구성된 것을 보고 꿈은 여전히 공통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가는 “허무맹랑하지 않는 한에서 새롭게 해석해 봐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이 유치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 유치한 게 좋다”고 말했다. 책은 크라우드 펀딩과 전자책으로 ‘만난’ 독자들의 요청으로 종이책이 출간되는 ‘역주행’ 신화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이렇게 흘러가도 될까 싶을 정도로 잘된 덕분에 저로서는 완벽한 ‘정주행’”이라고 했다. 하루에 30분 책 읽을 시간 내기도 힘든 시대지만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소설을 쓰고 싶단다. 문학상에 대한 갈증이 있느냐고 묻자 “엘리트 코스를 밟아 작가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다. 독자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그의 꿈은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반도체는 언제까지 잘나갈까요? 삼성전자도 계속 잘나갈까요?” EBS가 지난달 19일 유튜브 채널로 공개한 경제예능 프로그램 ‘쩐문가들’은 이런 질문으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이어 경제전문가들이 등장해 삼성전자의 강점과 약점, 미래에 대해 유머를 섞어가며 분석한다. 일반인들이 주식을 대대적으로 매수하던 이른바 ‘동학개미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영상은 조회수 12만 회를 넘었다. 파일럿 프로그램이지만 “EBS의 펭수 다음으로 재미있다” 등의 댓글이 달리며 정규방송으로 편성해 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제와 예능을 버무린 경제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재테크 정보를 제공하는 SBS ‘돈워리스쿨’은 지난해 시즌1의 인기에 힘입어 올해 시즌2를 방영했다. 올 1월까지 방영된 KBS ‘슬기로운 어른이 생활’도 연예인의 소비생활을 분석해 경제지식을 쉽게 전달한다는 취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카카오TV는 올 9월부터 방영하고 있는 ‘오늘도 개미는 뚠뚠’은 주식 투자에 매번 실패한 방송인 노홍철이 주식의 기초지식을 배우며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줘 공감을 샀다. 최근 경제 예능 프로그램은 과거와 달리 경제보다 예능에 방점을 둬 ‘문턱’을 낮췄다는 특징이 있다. 그동안 경제 관련 프로그램이 숫자나 통계에 주로 의존했다면 요즘은 출연자들이 경제 관련 이슈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만담하듯 전달한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나누는 수다처럼 가볍게 접하도록 했다. 구독자 90만 명이 넘는 유튜브 경제 채널 ‘슈카월드’의 슈카 등이 유튜브 하듯 유머를 적당히 섞어가며 편하게 진행하기에 시청하는 데 부담이 적다. 출연자가 논란이 될 만한 의견을 얘기할 때는 ‘개인 의견입니다’ 같은 자막을 넣는다. 한 편의 분량을 10∼20분으로 짧게 편집하기도 한다. 이 같은 현상은 2030세대에서 부(富)에 대한 터부가 사라지면서 투자 열풍이 거센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내 인생은 한 번뿐)’를 외치는 젊은 세대가 주식과 부동산에 뛰어드는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이들은 월급만으로 집을 살 수도 없고 안정적인 미래를 계획할 수도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경제적 여유를 가지려면 재테크가 필수라는 절박함이 방송 프로그램에까지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경제 예능은 객관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부동산 예능을 표방한 MBC ‘돈벌래’는 4부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9월 시작했으나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2부만 내보내고 막을 내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달 초 ‘돈벌래’에 대해 “10억∼20억 원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 외에는 큰 실망감, 박탈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됐다”며 행정지도(권고)를 내리기도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영화 스태프가 주황색 농구공을 들고 등장한다. 그런데 농구공에 최신형 스마트폰이 노란색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돼 있다. 이어 등장한 남자 배우가 농구공을 건네받는다. 잠깐 고민하던 남자 배우는 하늘 위로 농구공을 던진다. 스마트폰이 깨지지는 않을까. 지난달 5일 유튜브로 공개된 영화 ‘하트어택’ 메이킹 필름에는 이처럼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삼성전자가 새 스마트폰을 홍보할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스마트폰이 다양하게 쓰이는 영화 촬영 현장을 생생히 엿볼 수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충현 감독은 “큰 카메라나 장비로 담을 수 없는 앵글이나 움직임을 스마트폰으로 담을 수 있게 돼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스마트폰 영화’가 달라지고 있다. 2010년 아이폰4로 촬영한 첫 스마트폰 영화 ‘애플 오브 마이 아이’가 등장할 때만 해도 혁신의 가능성을 점치는 정도였고, 실제 변화는 크지 않았다. 2011년 박찬욱 감독이 아이폰4로 촬영한 영화 ‘파란만장’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단편상을 수상했지만 영화계에선 ‘연습용’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폰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발달하면서 전기를 맞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소프트웨어’의 발달이다. 최근 스마트폰은 촬영 당시 자동 보정 기능이 웬만한 카메라 못지않게 뛰어나다. 역광일 때는 밝기를 낮추고, 배우의 피부 톤도 주변 환경과 어울리게 조정해 매끈한 영상을 찍는다. 덕분에 영화 후보정 작업이 편해졌다. 특히 로맨스물처럼 배우 얼굴을 클로즈업해 촬영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중요하다. 하트어택의 김상일 촬영감독은 “같은 장면을 영화 촬영 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찍어 비교해 보면 스마트폰이 더 예쁘게 찍힌다”며 “촬영 후 배우 얼굴을 보정하는 걸 영화계에선 ‘닦는다’라고 표현하는데 닦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조명과 음향의 ‘하드웨어’도 탁월하게 개선됐다. 초기에는 촬영은 스마트폰으로 해도 조명과 음향장비는 별도로 준비해야 해 제작비가 일반 상업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면 최근 출시된 스마트폰은 화질뿐 아니라 녹음 음질과 조명 효과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이고 있다. 일반 카메라는 1대에 3, 4명의 보조 인력이 붙어야 하는데 스마트폰은 카메라 감독 1명만 있어도 될 정도다. ‘이야기’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19일 공개된 영화 ‘언택트’에선 남자 배우가 TV를 통해 브이로그를 찍는 여자 배우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이 브이로그 장면은 모두 스마트폰 셀카로 촬영됐다.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찍는 스마트폰의 앵글이 서사 진행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 같은 장점 덕에 저예산 영화를 중심으로 스마트폰 촬영이 급속히 늘고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 영화 촬영 강의가 생기고,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홍보를 위해 스마트폰 영화제를 개최한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스마트폰은 가볍고 이동이 편하며 값이 싸기 때문에 여러 대를 구입해 다양한 앵글을 찍을 수 있다”며 “코로나19로 TV나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시청하는 이들이 늘어 압도적인 화질과 음향이 덜 중요해진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이후 가장 특수를 누린 건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일지도 모른다. 빙그레 메로나, 오리온 초코파이, 농심 신라면, CJ 비비고 만두 등 세계에서 활약하는 한국 음식은 이미 낯설지 않다. ‘케이푸드(K-FOOD)’라는 말까지 나오는 시대다. 음식인문학자인 저자는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1876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 145년을 둘러보며 대체 케이푸드는 어디서 시작됐고, 어디로 가는가를 고찰한다. 책은 자부(自負)에서부터 시작한다. 짜파구리의 인기에 대해 “그들이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 한국이 세계 식품 체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평가엔 애국심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예찬에서 그치진 않는다. 일제강점기 일본산 조미료에 의해 평양 물냉면의 국물 맛이 정해졌다는 ‘슬픈’ 역사부터 1980년대 강남 땅값의 폭등이 갈비구이를 파는 초대형 고급 음식점의 등장을 이끈 씁쓸한 단면을 두루 살펴본다. 양상추 샐러드, 피망 잡채가 나오는 한정식 집의 현실을 통해 케이푸드가 나아갈 길을 고민한다. “전통 음식이 최고라는 상투적인 구호가 정부 학계 언론 재계를 가리지 않고 무성하다. 그러나 ‘폐쇄적인’ 음식민족주의가 지난 100여 년간 숨 가쁘게 시대를 헤쳐 온 한국인의 식생활과 음식에 담긴 어두운 그림자를 거둬 낼 해답은 아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엔씨소프트는 자회사 클렙을 통해 내년 초 K팝 팬덤 플랫폼 ‘유니버스’를 한국과 해외 시장에 동시 출시할 계획이라고 5일 밝혔다. 유니버스는 팬들이 모바일에서 온·오프라인 활동을 하며 놀이터처럼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커뮤니티다. 엔씨소프트는 자체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공급할 예정이다. 엔씨소프트가 보유한 게임 캐릭터 제작 기술로 K팝 스타의 아바타를 가상공간에 구현해 팬들이 스타와 직접 소통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팬 커뮤니티 플랫폼인 ‘위버스’를 통해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소속 스타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급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네이버에서는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브이라이브(VLIVE)’로 스타의 실시간 방송을 볼 수 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난 오랫동안 파리로 이사 가는 걸 꿈꿨어. 그들 대통령은 젊고, 섹시하고, 학교 선생이랑 결혼했잖아.” 미국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 시카고 본사의 여자 상사는 파리 지사로 발령 난 주인공 에밀리(릴리 콜린스)를 이처럼 부러워한다. 에밀리에게는 파리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일과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이 드라마는 지난달 2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직후 한국에서 인기 콘텐츠 3위에 오르며 인기를 끌고 있다. 20, 30대 직장 여성의 일과 사랑을 가볍게 다루는 ‘치크리트(칙릿)’가 되살아나고 있다. 젊은 여성을 뜻하는 속어 치크(chick)와 문학(literature)을 합친 칙릿은 1999년 영국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시초로 본다. 2000년대 한국에서도 ‘내 이름은 김삼순’(2005년) ‘달콤한 나의 도시’(2006년)처럼 평범한 노처녀 이야기로 생산됐지만 2010년대 들어 사라졌다. 하지만 최근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년) ‘섹스 앤 더 시티’(2008년) 같은 옛 칙릿 작품을 보고 감상을 공유하는 현상이 일고 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온갖 클리셰가 다 들어 있다”는 일부 평론가의 혹평에도 오드리 헵번처럼 차려입은 에밀리의 옷과 장신구가 인기를 끈다. 이 작품으로 데뷔한 남자 주인공 루커스 브라보는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100만이 넘는 섹시스타로 떠올랐다. 시즌2에 대한 요구도 거세다. 칙릿의 ‘부흥’에는 코로나19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해외여행을 갈 수 없는 시청자들이 작품들의 배경인 파리 뉴욕 등을 ‘방구석 랜선 여행’으로 대리만족한다는 얘기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층은 이국적인 배경의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소비한다”며 “예전에 방문했던 여행지를 그리워하는 현상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상대적으로 어렵고 진지한 작품이 많은 데 대한 반작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직장 여성들이 ‘예쁜 쓰레기’라는 자조적 평가를 내놓으면서도 퇴근 후에는 칙릿을 소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끈 청춘드라마 ‘스타트업’ ‘청춘기록’ 등 여성 주인공이 활약하는 작품을 칙릿의 일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젊은 여성이 일과 사랑을 통해 성장한다’는 주제 의식은 청춘물과 칙릿의 공통점이다. 20, 30대뿐만 아니라 10대 여성까지도 칙릿에 맛을 들이고 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칙릿에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주는 도발적인 서사의 매력이 있다”며 “10대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웹드라마도 칙릿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셜록 홈즈는 유명한 탐정이자 학자이며 화학자이고, 저의 오빠랍니다.” 앳된 얼굴의 소녀가 이렇게 말하자마자 등 뒤로 세계적인 탐정 ‘셜록 홈즈(홈스)’가 조용히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이어 셜록 홈즈는 소녀와 함께 차근차근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 영화 ‘에놀라 홈즈’는 9월 23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직후 한국에서 인기 콘텐츠 5위를 차지했다. 한국 시청자들 사이에선 “여동생을 주인공으로 삼아 기존 셜록 홈즈의 서사를 잘 스핀오프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30여 년 전 영국 작가 아서 코넌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의 인기는 여전하다. 지난달에만 한국에서 9권의 셜록 홈즈 시리즈가 번역 출판됐다. 올해 6월 이다해 작가가 코넌 도일의 생가를 방문한 뒤 낸 책 ‘코넌 도일’(아르테)은 추리소설 마니아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올해 7월 대학로에서는 연극 ‘코믹추리극 셜록 홈즈’ 시즌2가 시작됐다. 이처럼 홈즈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는 건 ‘캐릭터’의 매력 덕이다. 명석한 두뇌와 냉철한 판단력으로 대변되는 홈즈가(家)의 인물들이 추리물의 주인공으로 각광받는다. 배우가 캐릭터의 후광을 받기도 한다. BBC 드라마 ‘셜록’의 주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긴 얼굴로 한국 시청자들에게 ‘오이형’으로 불리며 인기 배우가 됐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로 넷플릭스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밀리 보비 브라운이 에놀라 홈즈 역할을 맡은 것도 홈즈 이야기가 흥행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홈즈가 드라마나 영화 같은 서사로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셜록 홈즈는 ‘추리의 대명사’이기에 상호로도 쓰인다. 전국에 55개 지점이 있는 국내 최대 프랜차이즈 방탈출 카페 셜록 홈즈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권충도 대표는 “회사명으로 여러 이름을 고민했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셜록 홈즈보다 직관적인 상호는 없었다”며 “2015년 처음 회사를 설립한 후 급격히 성장한 데에는 이름 덕도 크다”고 했다. 하지만 홈즈의 인기는 한국 추리 콘텐츠의 빈약함을 드러내는 지표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웹소설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장르물이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 추리물을 대표하는 캐릭터와 대표 작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추리 소설을 쓰는 한 웹소설 작가는 “일본은 만화 캐릭터로 김전일과 코난, 소설 작가로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를 키웠다”며 “한국에서 추리물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매력적인 주인공과 베스트셀러 작가를 키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국민 드라마 ‘허준’(1999∼2000년)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허준(전광렬)이 자신의 몸을 해부하라는 유언장을 남기고 자결한 스승 유의태(이순재)의 몸을 해부하는 장면이다.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허구적 설정이지만 당시 시청자에게 꽤나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만약 정말 허준이 스승을 해부했다면 멀쩡했을까. 다시 찾아보니 드라마 속에는 허준이 유의태의 몸을 가를 때 사용한 작은 칼을 ‘소독’하는 과정이 없다. 만약 드라마대로라면 허준이 유의태의 몸에서 옮겨온 균에 감염돼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물론 허준이 살던 1539∼1615년은 조지프 리스터가 살던 1827∼1912년보다 200여 년 전이니 칼을 소독하는 장면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조지프 리스터는 소독의 아버지다. 이름이 생소하다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구강 세정제 ‘리스테린’을 떠올려보자. 이 브랜드는 1879년 소독의 중요성을 강조한 리스터의 미국 강연을 들은 조지프 로런스가 만든 소독액이다. 제약업체 ‘존슨앤드존스’ 역시 리스터의 강연에 참석한 로버트 존슨이 살균한 붕대와 실을 공급하면서 유명해진 업체다. 이처럼 리스터의 성과는 우리 삶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리스터는 ‘외과의 나폴레옹’으로 불리는 제임스 사임 밑에서 수련의(醫) 생활을 거쳤다. 본격적으로 의사가 돼서는 병원을 초토화하곤 했던 질병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가 고민했던 건 특히 감염이었다. 당시 영국은 해부를 통해 외과의술을 배웠는데 그 과정에서 의대생들이 질병에 감염되는 경우가 잦았다. 감염 경로에 대한 지식조차 없어 장갑이나 보호용구 없이 해부수업이 진행됐다. 수업을 끝낸 의대생들 옷에 살, 내장, 뇌 조각이 달라붙은 경우도 흔했다. 왜 외과 수술 중 감염이 발생하는지 고민하던 그는 자신만의 살균제를 만들었다. 이 살균제 덕에 해부나 수술 이후 감염으로 사람들이 죽는 경우가 크게 줄어들었다. 리스터가 살균제를 상용화한 뒤에 살아남기 시작한 건 환자와 의사 모두였던 것이다. 의학사를 다룬 저술활동을 해온 저자는 ‘의학적 관음증’에 빠진 당시 사람들 묘사를 통해 독자를 끌어당기기도 한다. 1846년 12월 21일 런던의 한 병원 수술실에서 환자의 허벅지 절단수술이 벌어지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군중 수백 명이 모이는 장면을 생생히 그리며 독자를 몰입시킨다. “수술실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밀치고 드잡이를 하는 것이 투견장이나 극장에서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하는 짓과 별다를 바 없다”는 묘사에는 당시 사람들이 지닌 외과의학에 대한 호기심과 공포, 환상이 모두 담겨 있다. 과거 영국 이야기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금도 리스터의 제안은 유효하다. 감염을 막기 위해 손세정제를 쓰고, 비누로 손을 꼼꼼히 씻으며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데엔 그의 덕도 빼놓을 수 없다. 리스터가 소독법을 발전시키지 않았다면 인류는 더 힘들게 병마와 싸우고 있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 주의사항이 있다. 수술실에 대한 생생한 묘사 때문에 잠들기 전에 읽다간 악몽을 꿀 수도 있다. “생생하고, 끔찍하다” “좀 잔인하다”는 해외 언론의 평가처럼 읽다 보면 오슬오슬 한기가 몰려오기도 한다. ‘경고: 잔인함!’이라는 책 표지 주의사항이 대수롭지 않은 독자들이여, 책장을 넘겨보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