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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다섯 살 딸과 함께 경기 용인시의 한 공공 어린이 물놀이장을 찾은 한모 씨(43)는 가슴이 철렁하는 경험을 했다. 딸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올 때 남자 초등학생이 바로 뒤에서 따라 내려왔다. 남자아이의 발에 등을 맞은 딸은 미끄럼틀 위로 붕 뜬 채 바닥으로 떨어져 무릎에 찰과상을 입었다. 안전거리를 확보하도록 현장을 통제해야 할 안전요원은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었다. 한 씨는 “딸이 크게 울고 있는데도 안전요원은 당황하며 ‘아르바이트생이라 잘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공공 물놀이장을 찾는 가족 단위 이용객이 늘고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되고 가격도 저렴해 인기를 끈다. 하지만 안전관리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할 시군구는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물놀이장을 찾은 학부모들은 “안전요원이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 오히려 불안하다”고 호소한다.안전요원을 믿을 수 없다 보니 학부모들이 안전은 물론 수질 위생까지 돌보는 실정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3시경 서울 구로구의 한 공공 물놀이장에선 학부모가 나서서 물 위에 떠다니는 이물질을 건져내고 있었다. 아이들 70여 명이 뛰어놀던 물속에는 배달음식점 전단지가 떠다니고 있었다. 같은 시각 물놀이장을 관리하는 안전요원은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 방학을 맞은 대학생 등 단기 아르바이트생 위주로 채용하다 보니 안전요원의 책임성과 전문성이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의 한 구에서 운영하는 공공 물놀이장의 경우 안전요원 24명 중 수상안전요원이나 인명구조원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따르면 전문자격증이 없어도 수상안전 관련 강의를 8시간 이수하면 안전요원이 될 수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8시간 교육만으로는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며 “심폐소생술을 비롯해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전문 안전요원을 최소한 1명 이상은 둬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요원이 형식적 역할에 그치지 않도록 자격을 강화하고 관할 시군구도 철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의 생명이 걸린 문제다. 잠시만 방심해도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이소연 사회부 기자 always99@donga.com}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지하 배수터널에서 안전점검을 하던 작업자 3명이 터널 안으로 들어온 빗물에 휩쓸려 1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공사 측은 구청으로부터 “터널 입구가 열려 빗물이 유입될 것”이라는 취지의 통보를 받았을 때 “터널 안에 직원이 있다”고 구청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고도 ‘안전 불감증’이 인명 피해를 부른 ‘인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소방재난본부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날 오전 7시 40분 서울 강서구 화곡동 가로공원로를 거쳐 양천구 목동 공영주차장까지 이어지는 지하 배수터널에 빗물이 유입됐다. 빗물은 삽시간에 길이 3.6km의 지하터널을 채웠다. 지하 40m 깊이에 있는 배수터널 안에서 시설물을 점검하던 3명이 물살에 휩쓸렸다. 작업자 3명은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가 2013년 5월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진행한 ‘신월 빗물 저류 배수시설 확충 공사’에 참여했던 하도급 업체와 시공사 직원들이었다. 2013년 5월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공사를 마친 뒤 7월 한 달 동안 시범 운전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공사 후 터널 안에 남은 전선을 수거하기 위해 최근 하루에 한 번씩 터널 안을 점검했다고 한다. 이날도 오전 7시 10분 터널 안에 들어갔다. “작업자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조대는 출동 2시간여 만에 작업자 중 한 명인 구모 씨(65)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미 숨진 상태였다. 터널 안에 함께 있던 시공사 현대건설 직원 안모 씨(30)와 하도급 업체 직원인 미얀마 국적의 A 씨(24)는 31일 밤 늦은 시간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구조대 관계자는 “터널 안에는 몸을 피할 만한 공간이 없고 튜브 등의 안전장치도 없다”고 말했다. 이날 배수터널 안으로 빗물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건 터널을 지상과 연결하는 입구 2곳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 터널 입구는 지상의 하수관로가 빗물로 50∼60%까지 차오르면 자동으로 열린다. 이렇게 해서 하수관로에 가득 찬 물을 지하 배수터널을 통해 안양천으로 흘려보낸다. 그런데 이날 오전 폭우가 쏟아지면서 하수관로가 차올랐고 배수터널의 입구가 자동으로 열린 것이다. 터널 안에 직원들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구청 관계자들이 터널 입구를 수동으로 닫을 수도 있었다. 구청 관계자는 “작업자가 터널 안에 있다고 시공사로부터 통보받은 적 없다”고 했다. 발주처인 서울도시기반시설본부는 이날 오전 7시 31분 시운전 업체에, 오전 7시 38분에는 현대건설에 터널 입구가 열릴 것이라고 알렸다. 그런데 시공사 측은 터널 안에 작업자가 있다는 사실을 구나 시에 전달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날 현장 공사팀장 역할을 맡았던 현대건설 직원 안 씨가 오전 7시 50분경 작업자 2명을 데리러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안 씨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사흘 전 시범운전을 할 때 (터널 끝까지) 물이 도달하는 데 49분 정도 걸려 (인부들을 데리고) 충분히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터널 내부가 지하라서 작업자들과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시공사의 ‘풍수해 대비 계획서’에는 ‘평시에도 비상 연락체계를 점검’ ‘강우 상황 파악해 터널 내 근로자 사전 대피’라고 적혀 있다. 경찰은 시공사 측이 폭우가 예상되는데도 배수터널 안 작업을 강행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기상청은 이날 오전 5시 서울 지역에 이틀간 5∼40mm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고도예 yea@donga.com·이소연·한성희 기자이소정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무허가 증축은 클럽만의 얘기가 아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27일 무허가 복층 구조물의 붕괴로 2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서구 치평동의 C클럽처럼 건물 내부 구조를 몰래 뜯어고쳤다가 행정당국에 적발된 건축물은 지난해 말 기준 1064개에 이른다. 이 중엔 병원이나 학원처럼 노인과 어린이가 이용하는 시설도 적지 않다. 서울시는 이런 위법 건축물에 철거 명령을 내리고 이를 따르지 않은 건물주에게 지난해에만 86억 원의 이행강제금을 물렸다. 그런데 이 중 징수된 금액은 52억 원에 그쳤다. 건물주가 재산을 숨기고 “돈이 없다”며 버티면 이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두 차례 이상 철거 명령을 어기면 관할 행정기관이 건물주를 건축법 위반으로 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위법 건축물 1064개 중 서울시나 담당 구가 건축법 위반으로 고발한 사례는 지난해 기준 12건뿐이다. 광주 C클럽 사고 직후 국토교통부는 불법 증축 건축물을 적발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일제 점검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시행할 지방자치단체에선 벌써 한숨이 들린다. 우선 건물주를 민선 구청장이나 시장이 적극적으로 고발하기 껄끄러워한다. 표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또 담당 공무원 수는 적고 단속할 건물은 많은데 실제 점검 현장에선 건물주가 협조하지 않으면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시의원이 술 냄새를 풍기며 시의회 본회의에 참석했다가 주민의 신고로 음주운전 사실이 들통났다. 시의원은 처음에 “택시를 탔다”, “후배가 운전했다”고 둘러댔지만 음주 상태로 차를 모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확인됐다. 12일 경기 고양경찰서에 따르면 40대 여성 A 씨는 10일 오전 10시경 고양시의회 건물 안에서 마주친 김서현 의원(43·더불어민주당)한테서 술 냄새를 맡았다. A 씨는 “음주운전을 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 의원은 “택시를 타고 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심이 든 A 씨는 주차장으로 가 김 의원의 차량이 주차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A 씨는 “음주운전이 의심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시의회로 출동한 경찰은 김 의원을 인근 지구대로 연행해 음주 측정을 했다.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0.05%로 나왔다. 김 의원은 “어제 술을 마시긴 했지만 (오늘 시의회로 올 때) 운전은 후배가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날 경찰은 김 의원을 일단 돌려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1일 김 의원의 자택인 고양시 일산동구 아파트로 찾아가 주차장 CCTV를 확인했다. CCTV엔 김 의원이 10일 오전 9시 33분 차를 몰고 와 주차장에서 내리는 모습, 5분 뒤인 오전 9시 38분에 다시 차를 몰고 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11일 김 의원을 음주운전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입건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2000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온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A 씨(41)의 지난 19년은 지옥과 같았다.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A 씨에게 손찌검을 했다. 두 딸이 옆에서 지켜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A 씨는 남편의 폭음을 말리다가 남편이 던진 소주잔에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다. 그런데도 A 씨가 남편과 갈라서지 못한 이유는 두 딸의 양육권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A 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결혼 이주여성들이 남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이혼을 요구했다가 양육권 소송에서 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법원은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아내를 폭행한 남편에게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아이를 직접 때리지 않았다면 양육권은 그래도 경제력이 있는 쪽이 가져야 한다’며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A 씨는 지난해 11월 남편이 자신의 목을 조르며 성폭행하려는 것을 본 큰딸(18)의 신고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A 씨는 뒤늦게 찾은 보호시설에서 “두 딸이 대학에 갈 때까지는 참고 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혼소송을 하면 양육권을 뺏길까봐 남편의 폭력을 참고 사는 결혼 이주여성은 A 씨만이 아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결혼 이주여성 920명을 조사해보니 42.1%는 가정 폭력을 경험했다. 그런데도 이들이 혼인 관계를 유지한 이유는 ‘자녀에게 피해를 줄 것이 걱정돼서’라는 응답이 52.8%(복수 응답)로 가장 많았다. ‘자녀를 양육하지 못할까봐 걱정됐다’(25%)는 대답이 두 번째로 많았다. 이를 잘 아는 폭력 남편들은 양육권을 협박 수단으로 쓴다. 베트남 출신 B 씨(28·여)는 결혼 후 5년간 이어진 남편의 폭력을 피해 2015년 8월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가 “애 데리고 도망간 베트남 아내들은 혼자만 쫓겨난다”는 남편의 협박에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B 씨는 그 뒤로 1년간 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다가 다시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는데, 법원은 남편에게 양육권을 줬다. 이주여성들 사이에선 “아이와 함께 살고 싶으면 참고 사는 방법밖에 없다”는 말이 조언처럼 나돌 정도다. 30대 이주여성 C 씨는 7년 동안 반복되는 남편의 폭력과 시어머니의 폭언을 견디지 못해 2017년 9월 보호시설에 입소했다. 하지만 C 씨는 이곳의 이주여성들이 그간 남편의 폭력을 피하려다 아이를 잃은 이야기를 들려주자 하루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베트남 출신 D 씨(27·여)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출했는데도 양육권을 잃었다. D 씨는 2016년 남편이 자신을 폭행하며 울고 있는 4세 아들을 향해서도 “너도 네 엄마랑 똑같다”며 고함을 치자 다음 날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이후 D 씨는 이혼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2017년 말 남편에게 양육권을 줬다. D 씨는 ‘경제력’을 입증하기 위해 현재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이와 함께 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법원이 아동학대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 앞에서 엄마를 폭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아동학대에 해당하는데, 아이를 직접 폭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양육권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얘기다. 유미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엄마가 맞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아동폭력에 해당된다”며 “아이가 자랄 정서적인 환경도 양육자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2000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온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A 씨(41)의 지난 19년은 지옥과 같았다.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A 씨에게 손찌검을 했다. 두 딸이 옆에서 지켜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A 씨는 남편의 폭음을 말리다가 남편이 던진 소주잔에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다. 그런데도 A 씨가 남편과 갈라서지 못한 이유는 두 딸의 양육권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A 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결혼 이주여성들이 남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이혼을 요구했다가 양육권 소송에서 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법원은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아내를 폭행한 남편에게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아이를 직접 때리지 않았다면 양육권은 그래도 경제력이 있는 쪽이 가져야 한다’며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A 씨는 지난해 11월 남편이 자신의 목을 조르며 성폭행하려는 것을 본 큰 딸(18)의 신고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A 씨는 뒤늦게 찾은 보호시설에서 “두 딸이 대학에 갈 때까지는 참고 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혼소송을 하면 양육권을 뺏길까봐 남편의 폭력을 참고 사는 결혼 이주여성은 A 씨만이 아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결혼 이주여성 920명을 조사해보니 42.1%는 가정 폭력을 경험했다. 그런데도 이들이 혼인 관계를 유지한 이유는 ‘자녀에게 피해를 줄 것이 걱정돼서’라는 응답이 52.6%로 가장 많았다. ‘자녀를 양육하지 못할까봐 걱정됐다(25%)’는 대답이 두 번째로 많았다. 이를 잘 아는 폭력 남편들은 양육권을 협박 수단으로 쓴다. 베트남 출신 B 씨(28·여)는 결혼 후 5년간 이어진 남편의 폭력을 피해 2015년 8월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가 “애 데리고 도망간 베트남 아내들은 혼자만 쫓겨난다”는 남편의 협박에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B 씨는 그 뒤로 1년간 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다가 다시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는데, 법원은 남편에게 양육권을 줬다. 이주여성들 사이에선 “아이와 함께 살고 싶으면 참고 사는 방법밖에 없다”는 말이 조언처럼 나돌 정도다. 30대 이주여성 C 씨는 7년 동안 반복되는 남편의 폭력과 시어머니의 폭언을 견디지 못해 2017년 9월 보호시설에 입소했다. 하지만 C 씨는 이곳의 이주여성들이 그간 남편의 폭력을 피하려다 아이를 잃은 이야기를 들려주자 하루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베트남 출신 D 씨(27·여)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출했는데도 양육권을 잃었다. D 씨는 2016년 남편이 자신을 폭행하며 울고 있는 4세 아들을 향해서도 “너도 네 엄마랑 똑같다”며 고함을 치자 다음날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이후 D 씨는 이혼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2017년 말 남편에게 양육권을 줬다. D 씨는 ‘경제력’을 입증하기 위해 현재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이와 함께 살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법원이 아동학대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 앞에서 엄마를 폭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아동학대에 해당하는데, 아이를 직접 폭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양육권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얘기다. 유미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엄마가 맞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아동폭력에 해당된다”며 “아이가 자랄 정서적인 환경도 양육자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SBS 8시 뉴스 앵커를 지낸 SBS 논설위원 김성준 씨(55·사진)가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경찰에 입건됐다. 8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따르면 김 씨는 3일 오후 11시 55분경 서울 지하철 2호선 영등포구청역 승강장에서 줄을 서 기다리던 중 앞에 서 있던 여성의 하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시민들은 김 씨가 1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여성의 하체를 몰래 촬영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김 씨는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현장에서 붙잡혔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처음에는 “(여성의 신체를) 몰래 찍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씨의 휴대전화에는 원피스를 입은 여성의 하체 사진이 저장돼 있었다. 그러자 김 씨는 “평소 사진 찍는 게 취미다. 술에 취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의 입건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선 그가 과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몰래카메라) 가해자가 잡혀 엄하게 처벌받으면 다른 사람들도 잘못하면 큰일 나겠구나 할 것 같다”고 한 발언이 다시 거론되기도 했다. 8일 SBS는 김 씨가 진행해왔던 라디오 프로그램 ‘시사전망대’를 폐지했다. 이날 SBS는 김 씨가 4일 제출했던 사표도 수리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6일 오전 9시. 경기 부천시의 자택에서 아침식사 준비를 하던 주부 A 씨(44)는 ‘쿵’ 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콘크리트 더미와 공사 건물 가림막이 집 앞 도로에 쏟아져 있었다. 철거 공사를 하던 맞은편에서 건물 외벽과 공사 건물 가림막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이곳은 평소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나는 통학로다. 다행히 주말이어서 사고 현장을 지나던 아이들은 없었다. 공사 현장 반경 600m 안에는 초등학교 2곳과 중학교 2곳, 연립주택, 아파트 단지가 있다. 학생과 주민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경찰과 부천시에 따르면 이날 사고가 난 철거 공사 현장에 대해선 한 번도 안전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건축주는 건물 도면과 공사 방법이 담긴 철거신고서만 주민센터에 제출했다. 철거 업체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잭서포트(지지대)를 설치하지 않았다. 잭서포트는 철거 공사 때 하중이 한쪽으로 쏠려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각 층 사이에 세우는 버팀목이다. 공사 현장엔 안전 책임자도 없었다. 사고가 난 건물은 올해로 지어진 지 32년째다. 지금은 건축주가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만 하면 철거 공사를 할 수 있다. 서울시만 2017년 2월부터 지상 5층 높이이거나 지하 2층 깊이인 건물 철거 때 사전 심의를 받도록 했다. 내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자치단체의 안전 심사를 거쳐 허가를 받아야만 건물을 철거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뀐다. 하지만 ‘철거 허가제’가 내년 5월부터 시행되더라도 지하층 포함 5층 이하 건물은 여전히 안전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6일 사고가 난 부천의 철거 건물처럼 3층 높이 건물을 철거할 때는 여전히 신고서 한 통만 자치단체에 내면 되는 것이다. 5층 이하 건물에는 현장 ‘감리’를 둘 의무도 없다. 5층 이하 건물이라고 해서 사고 위험이 적은 건 아니라는 게 철거 업체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 철거 업체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안전 조치가 미흡한 5층 이하 건물에서 사고가 날 위험이 더 크다”며 “안전하게 철거하려면 층마다 ‘잭서포트’를 설치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건물 높이가 낮다는 이유로 굴삭기를 이용해 한 번에 철거하는 무리수를 둘 때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서구에서는 4층 건물 철거 도중 인부 한 명이 건물 벽에서 떨어진 콘크리트에 깔려 숨졌고 같은 해 6월 서울 동작구에서는 철거 중이던 4층 건물이 무너져 행인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본보가 6, 7일 이틀 동안 서울시내의 5층 이하 건물 철거 공사 현장 7곳을 둘러본 결과 공사 잔해물이 인도 쪽으로 튀지 않도록 가림막을 설치해 놓은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5층이 넘는 건물에 대해서만 안전 심의를 하고 허가제로 운영하겠다는 건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며 “도심에 있거나 인도에서 가까운 건물이라면 층수에 관계없이 안전 심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도예 yea@donga.com·이소연 기자}

4일 오후 1시 50분경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이곳의 한 건물 입구에 입간판이 있었다. 입간판에는 입술 반영구 문신을 하기 전과 후를 비교하는 사진과 함께 문신 시술별 가격대가 쓰여 있었다. 기자는 이 건물 5층에 있는 문신숍으로 올라가봤다. “오늘 문신 시술을 받을 수 있나요?” 직원에게 물었다. “오늘은 안 된다”고 했다. 직원은 달력을 보더니 “내일(5일) 오후 7∼8시가 유일하게 비어 있고 그 뒤로는 9일까지 예약이 다 찼다”고 말했다. “8일에는 중국인 여행객 3명이 예약돼 있다”고도 했다. 가게 내 한 방에서는 손님이 문신 시술을 받고 있었다. 대기실에선 예약 손님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가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문신숍이 또 있었다. 여기도 들어가 봤다. 한 여성 손님이 문신 시술을 받기 위해 간이침대에 앉아 있었다. 가게 주인은 “인터넷에 따로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지나다가 들르는 손님만 하루에 10명 정도 된다. 지금 와 있는 손님도 예약 없이 찾아온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주인은 손님이 기다리는 간이침대 쪽으로 향했다.○ 의사 외 문신 시술은 불법 기자가 찾아갔던 두 가게 주인들(문신사)의 영리목적 문신 시술은 불법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문신 시술이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 수사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비의료인들의 문신 시술을 단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신사들은 불안감 속에 영업하고 있다. 언제 단속에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구에서 17년간 반영구 문신 시술을 해 온 김모 씨(51·여)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1년마다 가게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한자리에서 오래 영업하는 문신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반영구 문신 시술을 하는 양모 씨(31·여)는 올해 1월 손님에게 돈을 뜯겼다. 시술을 다 받은 손님이 계산할 때가 되자 갑자기 돌변해 돈을 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했다. 손님은 “신고당하면 벌금 물고 가게 문도 닫아야 한다”며 겁을 줬다. 결국 양 씨는 300만 원을 건넸다. 양 씨는 손님을 공갈범으로 신고할 수도 없었다. 신고를 하면 자신의 불법 문신 시술도 단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속을 피하려고 포털사이트에 엉뚱한 주소를 올려놓는 곳도 있다. 4일 기자는 포털사이트에 등록돼 있는 주소를 보고 서울 강남의 한 타투숍을 찾아갔다. 그런데 해당 주소지에는 타투숍이 없었다. 가게로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곧바로 ‘○○건물이 보이면 다시 전화하세요’라는 문자와 함께 약도 한 장을 보내줬다. 약도에 나와 있는 ○○건물 앞에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타투숍 주인은 “거기서 좀 더 직진하면 나오는 △△건물 지하 1층으로 오세요”라고 안내했다.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 병원에서 시술하는 문신사도 있다. 병원이 고용한 이들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문신 시술을 하더라도 의사가 아닌 문신사의 시술은 불법이다. 지난해 중반부터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성형외과에서 일하고 있는 문신사 박모 씨(38·여)는 “의대까지 나와서 주사 놓고 수술하는 사람들이 뭐 하러 손기술 익혀서 문신 시술을 하겠느냐”며 “강남에 있는 성형외과에서 반영구 문신 시술을 하는 건 거의 100% 문신사가 하는 걸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 배우고 가르치는 건 합법 의사가 아닌 사람이 문신 시술을 하는 건 불법이지만 문신 시술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용학원에서는 네일, 헤어, 메이크업 관련 수업뿐 아니라 문신 시술 관련 수업을 함께 진행하는 곳도 많다. 고용노동부가 2015년 발표한 ‘신직업 추진 현황 및 육성계획’을 보면 17개 신직업 중에는 ‘타투이스트(문신사)’가 포함되기도 했다. 대구의 한 미용학원에서는 한 달에 20명이 넘는 수강생이 ‘반영구 문신술’ 수업을 듣는다. 이 학원 운영자는 “의사가 아니어도 문신 시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건 합법이고 시술은 불법이라 수강생들에게 편법을 알려줄 수밖에 없다”며 “메이크업 자격증을 따서 가게를 차려 미용업으로 신고한 뒤 ‘숍인숍(Shop In Shop·매장 안에 매장을 여는 것)’ 형태로 반영구 문신 시술 영업을 하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문신사법’을 만들어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도 합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문신사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대한문신사중앙회 회원 등 500여 명이 집회에 참가했다. 문신사중앙회 경기성남지회 이향민 위원은 “단속과 신고 때문에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일하는 문신사가 전국에 2만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 영국 미국 등은 자격·면허제 해외에서는 의사가 아니어도 위생이나 안전, 감염 관련 교육을 받으면 문신사 자격을 주고 이들의 시술행위를 합법화한 나라들이 있다. 영국은 정부가 정한 위생·안전 관련 교육과정을 거치면 문신사 자격을 준다. 미국도 일부 주에서는 위생교육과 혈액매개 감염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 문신시술 면허를 발급해준다. 미국에서는 뉴욕시가 1997년에 처음으로 유효기간 2년짜리의 타투 면허증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처럼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불법으로 봐왔던 일본에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오사카 고등법원은 지난해 5월 의사 면허증 없이 문신 시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문신사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18, 19대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문신사 면허와 교육, 위생관리 의무 등을 담은 문신사법을 대표 발의했지만 입법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의사들은 시술 과정에서의 감염 우려 등을 이유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측은 “문신 시술은 피부 손상을 유발할 수 있고 감염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비의료인의 시술은 위험하다”며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인데 비의료인인 문신사에게 국가자격증까지 주면서 이들의 시술을 합법화하는 것은 우려스럽고 위험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김재희 기자}

4일 오후 1시 50분경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이 곳의 한 건물 입구에 입간판이 있었다. 입간판에는 입술 반영구 문신을 하기 전과 후를 비교하는 사진과 함께 문신 시술별 가격대가 쓰여 있었다. 기자는 이 건물 5층에 있는 문신숍으로 올라가봤다. “오늘 문신 시술을 받을 수 있나요?” 직원에게 물었다. “오늘은 안 된다”고 했다. 직원은 달력을 보더니 “내일(5일) 저녁 7~8시가 유일하게 비어 있고 그 뒤로는 9일까지 예약이 다 찼다”고 말했다. “8일에는 중국인 여행객 3명이 예약돼 있다”고도 했다. 가게 내 한 방에서는 손님이 문신 시술을 받고 있었다. 대기실에선 예약 손님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가게와 걸어서 5분 거리에 문신숍이 또 있었다. 여기도 들어가 봤다. 한 여성 손님이 문신 시술을 받기 위해 간이침대에 앉아 있었다. 가게 주인은 “인터넷에 따로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지나다가 들르는 손님만 하루에 10명 정도 된다. 지금 와 있는 손님도 예약 없이 찾아온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주인은 손님이 기다리는 간이침대 쪽으로 향했다.●의사 외 문신시술은 불법 기자가 찾아갔던 두 가게 주인들(문신사)의 영리목적 문신 시술은 불법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문신 시술이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 수사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비의료인들의 문신 시술을 단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신사들은 불안감 속에 영업하고 있다. 언제 단속에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구에서 17년간 반영구 문신 시술을 해 온 김모 씨(51·여)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1년마다 가게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한 자리에서 오래 영업하는 문신사들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반영구 문신 시술을 하는 양모 씨(31·여)는 올해 1월 손님에게 돈을 뜯겼다. 시술을 다 받은 손님이 계산할 때가 되자 갑자기 돌변해 돈을 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했다. 손님은 “신고당하면 벌금 물고 가게 문도 닫아야 한다”며 겁을 줬다. 결국 양 씨는 300만 원을 건넸다. 양 씨는 손님을 공갈범으로 신고할 수도 없었다. 신고를 자신의 불법 문신 시술도 단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속을 피하려고 포털사이트에 엉뚱한 주소를 올려놓는 곳도 있다. 4일 기자는 포털사이트에 등록돼 있는 주소를 보고 서울 강남의 한 타투숍을 찾아갔다. 그런데 해당 주소지에는 타투숍이 없었다. 가게로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곧바로 ‘○○건물이 보이면 다시 전화하세요’라는 문자와 함께 약도 한 장을 보내줬다. 약도에 나와 있는 ○○건물 앞에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타투숍 주인은 “거기서 좀 더 직진하면 나오는 △△건물 지하 1층으로 오세요”라고 안내했다.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 병원에서 시술하는 문신사도 있다. 병원이 고용한 이들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문신 시술을 하더라도 의사가 아닌 문신사의 시술은 불법이다. 지난해 중순부터 강남구 논현동의 한 성형외과에서 일하고 있는 문신사 박모 씨(38·여)는 “의대까지 나와서 주사 놓고 수술하는 사람들이 뭐하러 손기술 익혀서 문신 시술을 하겠느냐”며 “강남에 있는 성형외과에서 반영구 문신 시술을 하는 건 거의 100% 문신사가 하는 걸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배우고 가르치는 건 합법 의사가 아닌 사람이 문신 시술을 하는 건 불법이지만 문신 시술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용학원에서는 네일, 헤어, 메이크업 관련 수업뿐 아니라 문신 시술 관련 수업을 함께 진행하는 곳도 많다. 고용노동부가 2015년 발표한 ‘신직업 추진 현황 및 육성계획’을 보면 17개 신직업 중에는 ‘타투이스트(문신사)’가 포함되기도 했다. 대구의 한 미용학원에서는 한 달에 20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반영구 문신술’ 수업을 듣는다. 이 학원 운영자는 “의사가 아니어도 문신 시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건 합법이고 시술은 불법이라 수강생들한테 편법을 알려줄 수밖에 없다”며 “메이크업 자격증을 따서 가게를 차려 미용업으로 신고한 뒤 ‘숍인숍(Shop In Shop·매장 안에 매장을 여는 것)’ 형태로 반영구 문신 시술 영업을 하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문신사법’을 만들어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도 합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문신사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대한문신사중앙회 회원 등 500여 명이 집회에 참가했다. 문신사중앙회 경기성남지회 이향민 위원은 “단속과 신고 때문에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일하는 문신사가 전국에 2만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영국, 미국 등은 자격·면허제 해외에서는 의사가 아니어도 위생이나 안전, 감염 관련 교육을 받으면 문신사 자격을 주고 이들의 시술행위를 합법화한 나라들이 있다. 영국은 정부가 정한 위생·안전 관련 교육과정을 거치면 문신사 자격을 준다. 미국도 일부 주에서는 위생교육과 혈액매개 감염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 문신시술 면허를 발급해준다. 미국에서는 뉴욕시가 1997년에 처음으로 유효기간 2년짜리의 타투 면허증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처럼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불법으로 봐왔던 일본에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오사카 고등법원은 지난해 5월 의사 면허증 없이 문신 시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문신사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18, 19대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문신사 면허와 교육, 위생관리 의무 등을 담은 문신사법을 대표 발의했지만 입법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의사들은 시술 과정에서의 감염 우려 등을 이유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측은 “문신 시술은 피부 손상을 유발할 수 있고 감염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비의료인의 시술은 위험하다”며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인데 비의료인인 문신사에게 국가자격증까지 주면서 이들의 시술을 합법화하는 것은 우려스럽고 위험한 일”이라고 밝혔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A 씨(77·여)의 집 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공중화장실에서나 날 것 같은 지린내가 났다. 집 안 곳곳엔 대변이 말라붙어 있었다. A 씨는 방 한가운데 힘없이 누워 있었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이틀 전 사회복지사가 찾아와 밥을 차려준 뒤로 끼니를 챙겨준 사람이 없었다. 나흘 전인 지난달 30일 기자가 서울 구로구에 있는 A 씨 집을 찾았을 때의 장면이다. A 씨는 홀몸 치매노인이다. 혼자서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냉장고 속 반찬도 꺼내 먹지 못한다. 하지만 A 씨를 돌봐줄 가족은 없다. 그는 열아홉에 부모를 잃었고 결혼은 하지 않았다. 오빠는 몇 년 전 숨졌고 작년 여름까지 자신을 돌봤던 여동생도 치매를 앓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돈 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치매 때문에 공과금을 내야 한다는 것도 모른다. 올 5월에는 ‘전기와 물이 끊길 것’이란 계고장을 받았다. 그때는 복지센터 관계자가 자기 돈으로 공과금을 대신 내줬다. 이 관계자는 A 씨의 법적인 보호자가 아니어서 A 씨 예금으로는 공과금을 내줄 수 없다. A 씨가 기초생활수급자라면 정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소득이 적고 가족이 없는 치매노인에게 법적 보호자인 ‘후견인’을 정해주는 ‘치매 공공후견제’를 지난해 9월부터 시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 씨는 자산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 후견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가 홀몸 치매노인들을 돕겠다면서 ‘치매 공공후견제’를 시행한 지 10개월이 됐다. 하지만 홀몸 치매노인들은 A 씨처럼 집 한 채만 갖고 있어도 후견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치매 공공후견제’의 지원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소득이 적은 치매노인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치매노인의 재산과 신상을 관리해 줄 공공후견인에게 매달 20만 원을 준다. 이런 적은 보수로는 후견인을 구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보니 저소득 치매노인 중에서도 가장 사정이 딱한 극소수만 후견 지원을 받고 있다. 치매 공공후견제가 시작된 지난해 9월 이후 지금까지 치매노인 25명이 지원 대상자가 됐다. 정부는 이 제도를 시행하기로 하면서 2018년 12월까지 치매노인 900명이 후견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치매노인이 자산을 갖고 있어도 후견인을 정해 줄 방법은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치매노인의 후견인을 정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하고, 법원이 적절한 전문가를 후견인으로 정하면 된다. 이런 절차를 거치면 후견인에게 주는 보수는 정부 예산이 아니라 치매노인의 재산에서 지급된다. 하지만 본보가 각 지역 치매안심센터 33곳을 확인한 결과 30곳의 담당자들은 이런 절차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알고 있다고 말한 담당자들은 “저소득층이 아닌 노인에 대해 후견 신청을 해 줄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치매노인한테 후견 신청을 직접 하라고 안내했다”고 답했다. 충북 청주의 한 마을에서 ‘알부자 농사꾼’으로 불린 B 씨(92) 부부는 올해 1월 부부 모두 치매 상태로 이웃에 발견됐다. 곧바로 자치단체와 치매안심센터에서 부부의 사정을 알게 됐다. 하지만 자산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6개월 동안 후견인이 정해지지 않고 있다. 6억 원의 자산이 있는 부부는 장롱 속에 현금을 쌓아두고도 치매로 인해 음식을 사먹지 못한다. 지역 복지관에서 식사를 챙겨주지 않는 야간이나 주말이 되면 부부는 오물 범벅이 된 방에서 하루 종일 굶는다. 부부는 치매요양병원에 들어갈 돈이 있지만 입소를 결정하고 비용을 내줄 법적 보호자가 없다. 경기 고양시에서 혼자 살던 C 씨(80·여)는 지난해 8월 치매 증상이 악화돼 정신병동에 강제로 입원하게 됐다. C 씨 명의로 된 4억 원대 아파트를 처분하고 예금 5000만 원을 꺼내 쓰면 평생을 치매요양병원에서 보낼 수 있다. 하지만 C 씨의 재산을 처분하고 시설에 입소시킬 후견인이 없다. 망상 증세가 심해져 이웃 주민을 때리던 C 씨는 노년을 폐쇄병동에서 보내게 됐다. 후견 사건을 주로 맡는 사단법인 온율의 배광열 변호사는 “자산이 많은 치매노인이라도 자치단체장이 도장만 찍으면 법원에 치매노인의 후견을 신청할 수 있다”며 “후견이 필요한 치매노인이 있다면 저소득층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조건 방치할 게 아니라 자치단체장이 적극적으로 후견을 청구해야 한다”고 했다. 고도예 yea@donga.com·이소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이틀째인 30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방한 찬반 집회가 열렸다. 방한을 찬성하는 보수단체들은 미국 국기 성조기를 들고 “생큐, 트럼프”를 연호했다. 반대하는 진보단체들은 “노(NO) 트럼프”를 외쳤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회원 50여 명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북-미 싱가포르 성명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실현하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평소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폐기 등을 주장해 왔다. 이들은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까지 삼보일배 행진을 하려다 경찰의 제지로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삼보일배를 했다. 평통사 측은 “경찰이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며 언성을 높였다. 평통사 회원들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담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의 차량이 미군 용산기지로 가기 위해 오후 1시 50분경 세종대로를 지날 때 “No Sanction(대북제재 중단)!” 등을 외쳤다. 트럼프 대통령 차량을 향해 물병 등이 날아드는 일은 없었다. 경찰은 이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현장에 투척 방지 그물망을 설치했다. 2017년 11월 첫 방한 당시 트럼프 대통령 탑승 차량이 세종문화회관 앞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한 시위대가 도로를 향해 물병과 야광봉을 던져 트럼프 대통령이 탄 차량이 반대편 차로에서 역주행을 했었다. 보수단체들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 방한 환영행사를 열었다. 우리공화당(전 대한애국당) 등으로 구성된 ‘박근혜 대통령 무죄 석방 1000만 국민운동본부(석방운동본부)’ 소속 300여 명(경찰 추산)은 오전 9시부터 서울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한미동맹 강화를 주장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얼굴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위 러브 USA” 등을 외쳤다. 단상에 오른 조원진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는 “북한은 핵 폐기를 할 의사가 없다. 한미동맹 강화만이 대한민국이 살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 첫날인 지난달 29일에도 방한 찬반 집회가 곳곳에서 있었다.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는 이날 낮 12시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와 트럼프 대통령 환영행사를 열었다. 석방운동본부도 서울역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 방한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같은 날 오후 5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민중공동행동 등이 주최한 ‘NO 트럼프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합의해 놓고 대북제재를 존속해 남북협력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불법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던 김 위원장은 구속된 지 6일 만인 지난달 27일 보증금 1억 원을 내는 조건으로 풀려났다.김재희 jetti@donga.com·구특교·이소연 기자}

불법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던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위원장(54·사진)이 구속적부심을 통해 27일 풀려났다. 21일 구속된 지 6일 만이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오상용)는 27일 보증금 1억 원을 내는 조건으로 김 위원장의 석방을 결정했다. 구속적부심은 구속된 당사자 등의 요청으로 구속 결정이 합당한지를 다시 한 번 가리는 절차다. 재판부는 김 위원장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이사를 갈 경우 법원에 알려야 하고 해외로 나갈 때도 반드시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김 위원장은 조사나 재판을 위해 검찰과 법원이 정하는 시간과 장소에 출석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법원은 김 위원장을 다시 구속할 수 있고 보증금도 몰수할 수 있다. 재판부는 김 위원장을 풀어주면서 “증거를 없애거나 핵심 증인을 위협할 우려가 없다”고 설명했다. 21일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판사가 “도주 우려가 있다”고 한 데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6시 45분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에서 풀려난 김 위원장은 “검찰과 경찰이 얼마나 무리하게 민노총의 비판을 가로막으려 하는지 확인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구치소 앞에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올랐다. 민노총은 지난해 5월 21일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늘리는 데 반발해 집회를 하다가 국회로 들어가 농성했다. 올해 3월 27일과 4월 2, 3일에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국회에 난입하려 했다. 경찰이 김 위원장의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는 이 4차례 집회에서 경찰관 79명이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도예 yea@donga.com·이소연 기자}

“딱 세 잔밖에 안 마셨는데…. 억울합니다.” 25일 0시 20분. 서울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인근 영등포공원 앞 도로. 흰색 벤츠 차량에서 내린 강모 씨(37)는 음주운전 단속을 하던 경찰관에게 언성을 높였다. 음주측정을 위해 차량 뒤편으로 이동하라는 경찰의 말에 강 씨는 “친구 생일이라 맥주 딱 세 잔 마셨다”고 했다. “대리운전을 부르려고 했는데 50분 넘게 안 잡혀 어쩔 수 없었다. 영등포역에서 집까지 5분밖에 안 걸린다.” 강 씨의 항변은 계속됐다. “면허 취소입니다.” 음주측정기에 뜬 강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확인한 경찰관이 말했다. 측정기엔 0.096%라고 찍혔다. 30분 전이었다면 면허 정지 100일에 해당하는 수치다. 하지만 이날부터는 면허 취소에 해당했다. ‘윤창호 씨 사망사고’를 계기로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이날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개정 도로교통법에 따라 면허 정지 기준은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에서 0.03% 이상으로, 면허 취소 기준은 0.1% 이상에서 0.08% 이상으로 엄격해졌다. “취소 수치 아니잖아!”라며 고함을 치는 강 씨에게 경찰은 단속 기준이 강화된 사실을 설명했다. 하지만 강 씨는 “윤창호가 누군지도 모른다. 시민들 전부 (기준) 강화된 걸 모를 거다”며 “면허 취소는 말이 안 된다. 채혈을 원한다”고 했다.○ “어제까진 면허 정지, 오늘부턴 면허 취소” 본보는 25일 0시부터 오전 2시까지 서울 강남구와 마포구, 영등포구에서 실시된 경찰의 음주단속 현장을 찾았다. 음주단속 현장에서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8∼0.1% 미만으로 나와 면허가 취소된 운전자들이 잇따랐다. 마포구 양화대교 북단 진입로 부근에서 음주단속에 적발된 또 다른 강모 씨(33)는 “한 시간 전에 테킬라 네 잔을 마셨다”고 했다. 강 씨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83%로 측정돼 면허가 취소됐다. 경찰은 “어제 같았으면 면허 정지 100일인데 오늘부터는 면허가 취소됩니다”라고 강 씨에게 설명했다. 25일 하루 전국에서는 운전자 93명이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는데 이 중 32명은 강화된 단속 기준이 적용되면서 면허가 취소된 경우다. 단속 기준이 강화되기 전이라면 훈방 조치됐을 혈중알코올농도 0.03∼0.05% 미만의 13명은 면허가 정지됐다. 단속에 걸리자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운전자도 있었다. 0시 20분경 강남구 영동대교 남단에서 단속에 걸린 서모 씨(37)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76%로 나왔다. 단속 기준 강화 전과 마찬가지로 면허 정지 100일에 해당하는 수치다. 서 씨는 “소주 세 잔밖에 안 마셨다”며 소리를 질렀다. 서 씨는 인적 사항, 음주 측정 결과 등이 담기는 ‘주취운전자 정황진술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서는 “사람들 없는데 가서 하자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음주운전자들은 단속 구간을 지도에 표시해주는 ‘음주단속 알림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며 단속 구간을 피해가는 ‘꼼수’도 부렸다. 해당 앱에는 음주단속이 진행되는 구간이 표시된다. 실제로 이날 단속이 진행된 강남구 영동대교 남단 구간이 앱에 노출돼 경찰은 단속 구간을 옮겨야 했다.○ “어제 낮에 마신 술인데…” 오전 1시 50분경 오토바이를 몰던 이모 씨(29)는 혈중알코올농도 ‘0.095%’로 면허가 취소됐다. 이 씨는 24일 오전까지 친구와 둘이서 소주 한 병 반을 나눠 마셨다고 했다. 이 씨는 “술이 다 깼는데 이렇게 나올 리가 없다. 어제 마신 술인데 왜 오늘 측정을 해서…”라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30시간 전에 마신 술이 몸속에 계속 남아 면허가 취소될 뻔한 경우도 있었다. 0시 5분경 마포구의 한 단속 현장을 지나던 택시운전사 박모 씨(69)는 음주 측정에서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 정지 수치를 살짝 밑도는 0.022%가 나왔다. 박 씨는 “일요일(23일) 낮 한두 시까지 친구 3명과 소주 대여섯 병을 나눠 마셨고 어제(24일)는 술을 안 마셨다”고 했다. 단속 현장의 마포경찰서 경찰관은 “전날 마신 술이라도 면허 정지 수치가 나올 수 있다”며 “이분도 아슬아슬했다. 숙취 운전도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음주운전 단속 기준이 강화된 첫날 아침 대리운전을 부르는 건수도 증가했다. 전날 밤 술을 마신 직장인들이 직접 운전대를 잡는 대신 대리운전을 찾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울산·부산지역 대리운전업체 A사의 콜센터 관계자는 “25일 출근 시간대인 오전 6시부터 8시 사이 콜이 평소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고 말했다. 변경된 음주운전 단속 기준이 교통경찰업무관리시스템(TCS)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바뀐 기준에 따르면 면허 취소 수치인데도 시스템에서는 면허 정지로 등록되거나, 면허 정지 수치가 나왔는데도 예전의 훈방 조치 기준이 적용돼 입력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0시∼오전 8시 총 153건의 단속 중 26건에서 오류가 발생해 수기로 처리했다. 오전 10시부터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고 밝혔다.김재희 jetti@donga.com·이소연·박상준 기자}

“그날 이후론 계단 근처에도 못 가요. 무조건 엘리베이터를 타지.” 17일 경남 진주시 가좌동의 한 아파트 3층 복도. 주민 김모 씨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김 씨의 집 한 층 위 406호에 안인득(42)이 살았다. 두 달 전인 4월 17일 새벽. 안인득은 자기 집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아파트 2층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대피해 내려오는 주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12세 소녀를 포함해 5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당시 김 씨도 화재경보기 소리에 놀라 계단으로 대피하기 위해 비상구 문을 열었다. 김 씨는 바닥에 피가 흥건한 것을 보고 더 놀라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이 3층이라 운동 삼아 항상 계단으로 다녔었다. 그런데 이제는 무섭다.” 김 씨는 그날 이후 계단으로 다니지 않는다. 안인득에 의한 방화·살인 사건이 있은 지 두 달이 지난 17일. 희생자가 발생한 층 복도와 계단 벽면은 흰색 페인트로 다시 칠해졌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불안해하는 주민들을 위해 단지 내 조명 밝기를 높였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벨 눌러도 모른 척…‘경계’가 일상인 주민들 안인득이 살았던 406호는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4층엔 세 집만 남았어.” 한 인부가 화재로 그을린 내장재를 뜯어내며 말했다. 방화·살인 사건이 있기 전 4층엔 모두 8집이 살았다. 다섯 가구가 이사를 간 것이다. 안인득과 같은 동에 살았던 79가구 중 모두 12가구가 이사를 갔다. 희생자가 있었던 다섯 집은 모두 떠났다. 아파트는 정적에 잠겨 있었다. 601호 주민 A 씨(48·여)는 “며칠 전 술에 취한 주민이 소리를 질렀는데 평소 같았으면 창밖으로 한마디 했겠지만 그냥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술 취한 주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지만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몰라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6층에 사는 다른 주민 강모 씨(76·여)는 “이제는 누가 초인종을 눌러도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한다”고 했다. 뇌중풍(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106호 주민 편모 씨(54)는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편 씨는 “다른 사람이 언제든지 나를 공격해올 수 있는데 몸이 불편해 달아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그날 일 파노라마처럼 반복” 안인득의 손에 어머니와 열두 살 조카를 잃은 금모 씨(40·여)는 20년간 해온 치위생사 일을 최근 그만뒀다. 금 씨는 2주 전부터 어머니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금 씨는 “환자를 보던 중 저도 모르게 엄마 얘기를 꺼내면서 소리를 지르는 일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금 씨는 “소방관이 축 늘어진 조카의 두 팔을 잡고 계단으로 내려가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수없이 떠오른다”며 괴로워했다. 사건 발생 당시 안인득과 같은 층에 살았던 금 씨 오빠네 가족 역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금 씨의 오빠는 딸과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금 씨는 “이름이 안 좋아 우리 집에 이런 비극이 닥쳤나 싶은 생각까지 들어 오빠네 가족과 우리 가족 모두 개명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대피를 돕다가 안인득의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던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정모 씨(29)는 그동안 치료를 받아오다가 이달 1일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그날의 악몽은 아직도 몸에 새겨져 있다. 정 씨는 “며칠 전 안인득이 살았던 동의 한 가구 화장실을 점검할 일이 있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바라보는 순간 근육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고, 머리가 핑 돌면서 숨을 쉬기 힘들었다”고 했다. 16년간 딸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시각장애인 조카 최모 씨(19·여)를 잃은 강모 씨(54·여)는 조카를 보호하려다가 목과 어깨, 얼굴 등에 중상을 입었다. 성대 신경이 손상돼 목소리도 잃었다. 17일 만난 강 씨의 딸(31)은 “엄마는 병원에서 모자를 쓴 사람만 봐도 경기를 일으킨다”며 걱정스러워했다. 안인득은 범행 당시 모자를 쓰고 있었다. 강 씨는 3주 뒤 퇴원하면 딸의 집에서 지낼 예정이다. 강 씨의 딸은 “우리 가족에게 트라우마와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며 눈물을 보였다.진주=김재희 jetti@donga.com / 이소연 기자}

리틀 태극전사의 쾌거를 바라보는 감격과 환희에는 장소와 시간이 따로 없었다. 12일 전국에선 새벽잠을 잊은 축구 팬들이 폴란드 루블린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에콰도르의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4강전을 지켜보며 열띤 응원을 펼쳤다. 1만5243명이 들어찬 현지 경기장 곳곳에서도 “대∼한민국”의 응원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4월 화마에 휩쓸려 고초를 겪은 강원도 산불 피해지역 주민들은 축구대표팀이 세계무대에서 쓰는 드라마에 힘을 보탰다. 동해 시민 200여 명은 이날 동해시 웰빙레포츠타운 종합경기장에 모여 단체 응원을 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주민들은 무릎담요를 덮고 치킨을 함께 먹으며 응원 구호를 외쳤다. 이번 단체 응원은 동해시설관리공단이 강원 산불 이후 처음 기획한 문화행사였다. 오세일 전략기획팀장은 “산불 이후 동해시가 침체돼 있어 시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다”며 “결승전 때도 다시 한번 단체 응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팀 주장 황태현(20)이 뛰고 있는 안산은 연고지 시민 100여 명과 단체 응원을 했다. 황태현은 구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늦은 시간까지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우승까지 하고 돌아가겠다”고 화답했다. 대학가는 기말고사 기간이지만 또래들의 세계무대 정복을 응원하려고 뜬눈으로 밤을 새운 학생이 많았다. 경기 고양시 일산의 호프집에서 친구 5명과 경기를 관전한 대학생 이유민 씨(20·여)는 “젊은 선수들이 국가 위상을 높이는 모습을 보며 괜히 나까지 뿌듯했고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말했다. 치킨집들도 반기는 분위기다. 치킨업계에 따르면 최근 굵직한 축구 경기가 잇따라 열리면서 6월 주문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30∼40% 늘어났다. 결승전은 주말인 16일 오전 1시에 열려 치킨집들의 기대감은 더 커졌다. 대표팀 정정용 감독의 모교인 경일대(경북 경산시) 캠퍼스는 12일 대표팀의 결승 진출을 기념해 학생식당에서 재학생 모두에게 점심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경일대 관계자는 “결승전 때는 학교 단체 응원을 검토하고 있다”며 “대회가 끝나면 정 감독 초청행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폴란드 현장에도 한국 응원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폴란드로 출장을 온 박규정 씨(53)는 “해외 출장 중에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며 “결승전까지 보려고 귀국 스케줄 변경을 고민하고 있다”며 웃었다. 교민 오중열 씨(59)는 “티켓을 구하기 어려워 30즈워티(약 9400원)짜리 표를 판매 대행 사이트에서 약 7배 가격에 샀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폴란드 교민 사이에서는 이번 대회가 선물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루블린=이승건 why@donga.com / 이소연·박광일 기자}

“가슴까지 파인 옷 입었으면 쳐다보라는 거 아닌가요?” 수도권에 있는 한 공공기관 인사팀 소속인 40대 여성 A 씨는 올 3월 사내 강사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다 남성 상사가 여직원 가슴을 쳐다보는 삽화가 담긴 자료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제작한 성희롱 예방 교육 사례모음집이었다. 삽화에는 ‘직원의 몸을 쳐다보거나 평가하면 안 된다’고 적혀 있었다. A 씨가 “쳐다보는 건 괜찮다. 안 그럼 다 잡혀가란 소리냐”고 하자 직원들은 크게 웃었다. 그러나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가슴 등 특정 신체 부위를 쳐다보는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된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은 2014년부터 모든 직장에서 여가부의 사례모음집을 참고해 1년에 1회 이상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법률상 강사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어 요식행위처럼 이뤄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통상 성희롱 예방교육 경험이 일천한 사내 인사팀 직원이나 고위 간부가 사례모음집을 들고 교육하다 보니 도리어 성희롱적 발언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공기업에 다니는 B 씨(31)는 4월 팀장 주도로 회의를 하다가 시간을 쪼개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았다. 강사를 맡은 팀장은 ‘술자리에는 역시 여직원이 있어야지’라는 발언은 성차별적이라고 적시한 교본을 보더니 “이게 왜 문제냐? 이 말도 못하면 아무 말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직원들에게 “별게 다 문제네. 너희도 이게 불편하냐”고 따지듯 물었다. B 씨를 비롯한 팀원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교육은 그렇게 8분 만에 끝났다. 디자인 중소기업에 다니는 C 씨(25·여)는 지난해 12월 회사 강당에서 부사장 주도로 열린 성희롱 예방 교육만 생각하면 비참해진다. 부사장이 “‘술은 여자가 따라야 한다’는 말은 성차별적 발언”이라는 교본 내용을 읽었을 때였다. 직원들과 함께 교육을 듣던 대표가 여직원들을 둘러보며 “강제로 시킨 게 아니라 너희들이 알아서 따른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C 씨를 비롯한 여직원들은 마지못해 웃으며 “저희가 좋아서 한 거죠”라고 답해야 했다. 성범죄 피의자를 주로 변호해 온 변호사가 강사로 나서는 일도 있다. 대기업 계열사의 성폭력 예방교육 강단에 선 D 변호사는 “여직원이 아무리 예뻐도 동의 없이 스킨십을 하시면 좀 위험할 수 있다”며 줄곧 가해자 편에서 말했다. 교육 후에는 “혹시 성범죄로 고소당하면 저한테 연락하라”며 남직원 약 80명에게 명함을 돌렸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건수는 늘고 있다. 직장에서의 남녀평등을 목표로 하는 민간단체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상담 건수는 2014년 416건에서 지난해 763건으로 훌쩍 뛰었다. 여가부의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지난 3년간 여성 근로자의 8.1%가 직장 내 성희롱을 겪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강사 자격을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은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 장관이 승인한 전문 강사 등에게 성희롱 예방교육을 맡기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인지 감수성을 가진 전문가가 교육해야 성희롱과 성폭력 개념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소연 always99@donga.com·김재희 기자}

“가슴까지 파인 옷 입었으면 쳐다보라는 거 아닌가요?” 수도권에 있는 한 공공기관 인사팀 소속인 40대 여성 A 씨는 올 3월 사내 강사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진행하다 남성 상사가 여직원 가슴을 쳐다보는 삽화가 담긴 자료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제작한 성희롱 예방교육 사례모음집이었다. 삽화에는 ‘직원의 “을 쳐다보거나 평가하면 안 된다’고 적혀 있었다. A 씨가 “쳐다보는 건 괜찮다. 안 그럼 다 잡혀가란 소리냐”고 하자 직원들은 크게 웃었다. 그러나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가슴 등 특정 신체 부위를 쳐다보는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된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은 2014년부터 모든 직장에서 여가부의 사례모음집을 참고해 1년에 1회 이상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법률상 강사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어 요식 행위처럼 이뤄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통상 성희롱 예방교육 경험이 일천한 사내 인사팀 직원이나 고위 간부가 사례모음집을 들고 교육하다보니 도리어 성희롱적 발언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B 씨(31)가 다니는 공기업에서는 4월 팀장 주도로 회의를 하다가 시간을 쪼개 성희롱 예방교육을 했다. 강사를 맡은 팀장은 ‘술자리에는 역시 여직원이 있어야지’라는 발언은 성차별적이라고 적시한 교본을 보더니 “이게 왜 문제냐? 이 말도 못하면 아무 말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직원들에게 “별게 다 문제네. 너네도 이게 불편하냐”고 따지듯 물었다. B 씨를 비롯한 팀원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교육은 그렇게 8분 만에 끝났다. 디자인 중소기업에 다니는 C 씨(25·여)는 지난해 12월 회사 강당에서 부사장 주도로 열린 성희롱 예방교육만 생각하면 비참해진다. 부사장이 “‘술은 여자가 따라야 한다’는 말은 성차별적 발언”이라는 교본 내용을 읽었을 때였다. 직원들과 함께 교육을 듣던 대표가 여직원들을 둘러보며 “강제로 시킨 게 아니라 너희들이 알아서 따른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C 씨를 비롯한 여직원들은 마지못해 웃으며 “저희가 좋아서 한 거죠”라고 답해야 했다. 성범죄 피의자를 주로 변호해온 변호사가 강사로 나서는 일도 있다. 대기업 계열사의 성폭력 예방교육 강단에 선 D 변호사는 “여직원이 아무리 예뻐도 동의 없이 스킨십 하시면 좀 위험할 수 있다”며 줄곧 가해자 편에서 말했다. 교육 후에는 “혹시 성범죄로 고소당하면 저한테 연락하라”며 남직원 약 80명에게 명함을 돌렸다. 성희롱 예방교육이 부실한 만큼 성희롱 피해 건수는 늘고 있다. 직장에서의 남녀평등을 목표로 하는 민간단체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상담 건수는 2014년 416건에서 지난해 763건으로 훌쩍 뛰었다. 여가부의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지난 3년간 여성 근로자의 8.1%가 직장 내 성희롱을 겪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 자격을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은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 장관이 승인한 전문 강사 등에게 성희롱 예방교육을 맡기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인지 감수성을 가진 전문가가 교육해야 성희롱과 성폭력 개념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2001년 8월 6일 오전 10시. 서울 중랑경찰서 관내 한 파출소로 한 통의 신고전화가 걸려 왔다. “모르는 남자가 흉기로 위협하며 성폭행을 하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중랑서 강력2팀 형사는 신고자가 불러준 주소지 원룸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청소를 막 끝낸 것처럼 말끔했다. 흉기를 든 남성이 침입한 집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방 한쪽에는 매트리스가 반듯이 깔려 있었다. 선반 위 두루마리 휴지와 TV 리모컨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피해 여성은 신고를 하면서 ‘남자한테 저항하는 과정에서 다쳐 피를 흘렸다’고 했다. 하지만 집 안은 이상할 정도로 깨끗했다. 집안 곳곳을 살피던 경찰은 휴지통에서 정액이 묻은 휴지를 발견했다. 경찰은 성폭행이 있었는지 물었다. “흉기로 위협하면서 성폭행을 하려 했지만, 실제 성폭행은 없었습니다.” 경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성폭행 피해는 없었다’고 여성이 딱 잘라 말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정액 묻은 휴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넘겼다. 침입 남성에게는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당시 여성이 거주하던 주택가 골목엔 폐쇄회로(CC)TV가 없었다. 경찰이 남성의 인상착의에 대해 물었지만 여성은 “정신이 없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은 피해 여성 집 주변을 탐문하면서 두 달간 수사했다. 하지만 용의자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은 그해 10월 이 사건을 미제 사건 리스트에 올렸다. ‘그놈’이 남긴 건 정액과 피가 묻은 휴지가 전부였다.○ 17년 만에 밝혀진 ‘그놈’ 2018년 4월 15일. 중랑서 강력3팀 앞으로 한 통의 공문이 도착했다. 대검찰청이 보낸 것이었다. 공문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01년 중랑구 강간미수 사건의 성명 불상 피의자 DNA와 수형자 중 한 명의 DNA가 일치한다.’ 강력3팀장은 곧바로 경찰서 지하 1층 서고로 갔다. 미제 사건 서류들을 모아 놓은 캐비닛이 여기에 있다. ‘그놈’은 다른 특수강도강간 범죄로 2010년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살인과 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수형자의 DNA를 수사기관이 보관하도록 하는 ‘DNA 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이해 4월부터 시행됐다. ‘그놈’의 DNA도 데이터베이스(DB)에 올랐다. 국과수가 원래 갖고 있던 DNA 정보와 DB에 등록된 수형자 DNA 대조 작업을 벌이던 중 ‘그놈’ 신원이 17년 만에 밝혀졌다. 2010년부터 DNA 등 가해자와 관련된 과학적 증거가 남아 있는 성범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10년 더 연장돼 잡기만 한다면 처벌할 수 있었다. 법이 바뀌지 않았다면 사건의 공소시효(10년)는 2011년 8월이었다. 수사팀은 재수사에 착수했다. 17년 전 작성한 피해자 진술조서와 현장 증거사진 등을 다시 샅샅이 훑었다. 그런데 수사팀은 뭔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사건 당일 피해 여성의 집에서 정액이 묻은 휴지가 발견됐는데도 피해자 진술조서에는 “성폭행은 당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남성에게 저항하다 다쳐 여성이 피까지 흘렸다고 돼 있는데 바닥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신원을 확인한 ‘그놈’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에 대한 여성의 설명이 절실했다. 수사팀은 피해 여성을 찾기 위해 전국 곳곳을 훑었다. 그러다 경찰은 여성이 한국을 떠나 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사팀은 여성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수도권의 한 도시로 찾아갔다. 하지만 어머니도 여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없었다. 인근을 수소문하던 중 만난 여성의 한 친척은 “가족들이 모두 외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수사팀은 2001년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들의 근무지까지 찾아갔지만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들었다. 수사팀은 결국 재수사에 착수한 지 넉 달 만인 2018년 8월 ‘그놈’을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그런데 넉 달 뒤 강력3팀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공항경찰대 관계자였다. 2019년 2월 여성이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온다고 알려줬다. 강력3팀장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여성의 친척을 통해 알게 된 어머니 거주지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성의 어머니는 딸보다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따님이 18년 전 서울에서 있었던 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입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어머니는 딸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수사팀은 전화도 하고 문자도 남겼다. 하지만 여성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메시지에 답도 없었다. 그러다 하루 뒤 수사팀 한 형사의 휴대전화에 발신지가 외국인 번호가 떴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여성은 ‘이번에 남편도 한국으로 같이 들어가기 때문에 만나기 곤란하다’고 했다. 그래도 경찰은 계속 설득했다. ‘그놈’을 처벌하려면 피해자 진술이 꼭 필요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일은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다’라는 말도 건넸다. “인천공항에서 뵈어요.” 5분가량에 걸친 통화 끝에 여성은 수사팀과의 만남을 받아들였다. 여성은 “조용한 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18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그놈’ “처벌을 원치 않으시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처벌을 원하신다면 끝까지 수사하겠습니다.” 강력3팀 수사관 2명은 올해 2월 인천국제공항에서 여성을 만나 이렇게 얘기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처벌을 원합니다.” 여성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168∼170cm의 키에 스포츠머리, 베이지색 반팔티, 흰색 반바지. 여성은 18년 전 ‘그놈’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수사팀은 올해 2월 인천공항에서 여성을 만났다. 그리고 1시간 30분에 걸쳐 18년 전 있었던 일에 대해 들었다. “옷 안 벗으면 죽여 버린다”는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여성은 자신의 얼굴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그놈’과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여성은 반사적으로 오른손으로 칼날을 꽉 쥐었고 손에서는 피가 흘렀다고 했다. 수사팀은 “여성이 당시 성폭행이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성폭행은 없었다’던 예전의 진술을 바꾼 것이다. 18년 전 기억을 떠올리던 여성은 진술을 하다 멈추기를 몇 차례나 반복하면서 띄엄띄엄 얘기를 이어갔다고 한다.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피해자 진술을 다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경찰에게 여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18년 전 자신이 왜 ‘성폭행은 없었다’고 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할 것 같았다.’, ‘문단속을 제대로 안 해서, 아침 9시까지 자고 있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나를 질책할 것 같았다.’ 여성은 성폭행 피해를 부인했던 이유를 경찰에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피해자 진술을 확보한 경찰은 3월 ‘그놈’을 소환했다. 특수강도강간 범죄로 10년간 수감돼 있다 2013년 출소해 자유의 몸이 돼 있었다. 경찰서로 온 그는 18년 전 사건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수사팀은 증거자료 하나를 내밀었다. 2001년 중랑구의 한 원룸 휴지통에서 나온 혈흔의 DNA와 ‘그놈’의 DNA가 일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혐의는 강간미수가 아닌 강간치상이었다. 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그는 지난달 법정에 섰다. 진술을 마친 여성은 자리를 뜨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날 일, 제 탓이 아니라는 생각이 이제야 듭니다.”이소연 always99@donga.com·김재희 기자}

“처벌을 원치 않으시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처벌을 원하신다면 끝까지 수사하겠습니다.” 서울 중랑경찰서 강력3팀 수사관들은 올해 2월 인천국제공항에서 한 여성을 만나 이렇게 얘기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처벌을 원합니다.” 여성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18년 전 중랑구의 한 원룸에서 있었던 성폭행 사건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 여성은 2001년 8월 자신이 살던 원룸에 침입한 뒤 흉기로 위협한 30대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여성은 ‘성폭행 시도는 있었지만 실제로 당하지는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사실과 달랐다. 이 여성은 성폭행을 당했다. 피해 사실에 대한 진술을 확보하지 못한 경찰은 난관에 부닥쳤다. 결국 이 사건은 미제 사건 리스트에 올랐고 영원히 묻힐 뻔 했다. 하지만 ‘2001년 중랑구 강간미수 사건의 성명 불상 피의자 DNA와, 수형자 중 한 명의 DNA가 일치한다’는 한 통의 공문이 강력3팀 앞으로 도착했고 곧바로 경찰의 재수가 시작됐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여성은 만나기를 꺼려했지만 경찰은 끈질기게 설득했다. 여성은 마음을 돌렸다. 2001년 8월의 진실을 확인한 경찰은 18년 전 그놈‘을 붙잡았다. 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그놈‘은 지난달 24일 법정 피고인석에 섰다. 2001년 8월 6일 오전 10시. 서울 중랑경찰서 관내 한 파출소로 한 통의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남자가 흉기로 위협하며 성폭행을 하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중랑서 강력2팀 형사는 신고자가 불러준 주소지 원룸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청소를 막 끝낸 것처럼 말끔했다. 흉기를 든 남성이 침입한 집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방 한 켠에는 매트리스가 반듯이 깔려 있었다. 선반 위 두루마리 휴지와 TV 리모컨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피해 여성은 신고를 하면서 ‘남자한테 저항하는 과정에서 다쳐 피를 흘렸다’고 했었다. 하지만 집안은 이상할 정도로 깨끗했다. 집안 곳곳을 살피던 경찰은 휴지통에서 정액이 묻은 휴지를 발견했다. 경찰은 성폭행이 있었는지 물었다. “흉기로 위협하면서 성폭행을 하려 했지만, 실제 성폭행은 없었습니다.” 경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성폭행 피해는 없었다’고 여성이 딱 잘라 말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정액 묻은 휴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넘겼다. 침입 남성에게는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당시 여성이 거주하던 주택가 골목엔 폐쇄회로(CC)TV가 없었다. 경찰이 남성의 인상착의에 대해 물었지만 여성은 “정신이 없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은 피해 여성 집 주변을 탐문하면서 두 달 간 수사했다. 하지만 용의자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은 그해 10월 이 사건을 미제사건 리스트에 올렸다. ‘그놈’이 남긴 건 정액과 피가 묻은 휴지가 전부였다. ●17년 만에 밝혀진 ‘그놈’ 2018년 4월 15일. 중랑서 강력3팀 앞으로 한 통의 공문이 도착했다. 대검찰청이 보낸 것이었다. 공문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2001년 중랑구 강간미수 사건의 성명 불상 피의자 DNA와, 수형자 중 한 명의 DNA가 일치한다.’ 강력3팀장은 곧바로 경찰서 지하 1층 서고로 갔다. 미제사건 서류들을 모아 놓은 캐비닛에 여기에 있다. ‘그놈’은 다른 특수강도강간 범죄로 2010년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살인과 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수형자의 DNA를 수사기관이 보관하도록 하는 ‘DNA 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이해 4월부터 시행됐다. ‘그놈’의 DNA도 데이터베이스(DB)에 올랐다. 국과수가 원래 갖고 있던 DNA 정보와 DB에 등록된 수형자 DNA 대조 작업을 벌이던 중 ‘그놈’ 신원이 17년 만에 밝혀졌다. 2010년부터 DNA 등 가해자와 관련된 과학적 증거가 남아 있는 성범죄의 경우 공소시효를 10년 더 연장하도록 법이 바뀐 것도 수사팀에게는 행운이었다. 법이 바뀌지 않았다면 사건의 공소시효(10년)는 2011년 8월이었다. 법 개정으로 공소시효가 2021년까지로 늘었다. 수사팀은 재수사에 착수했다. 17년 전 작성한 피해자 진술조서와 현장 증거사진 등을 다시 샅샅이 훑었다. 그런데 수사팀은 뭔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사건 당일 여성의 집에서 정액이 묻은 휴지가 발견됐는데도 피해자 진술조서에는 “성폭행은 당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남성에 저항하다 다쳐 여성이 피까지 흘렸다고 돼 있는데 바닥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신원을 확인한 ‘그놈’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에 대한 여성의 설명이 절실했다. 수사팀은 피해 여성을 찾기 위해 전국 곳곳을 훑었다. 그러다 경찰은 여성이 한국을 떠나 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사팀은 여성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수도권의 한 도시로 찾아갔다. 하지만 어머니도 여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고 없었다. 인근을 수소문하던 중 만난 여성의 한 친척은 “가족들이 모두 외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수사팀은 2001년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들의 근무지까지 찾아갔지만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단 들었다. 수사팀은 결국 재수사에 착수한 지 넉 달 만인 2018년 8월 ‘그놈’을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그런데 네 달 뒤 강력3팀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공항경찰대 관계자였다. 2019년 2월 여성이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온다고 알려줬다. 강력3팀장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여성의 친척을 통해 알게 된 어머니 거주지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성의 어머니는 딸보다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따님이 18년 전 서울에서 있었단 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입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어머니는 딸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수사팀은 전화도 하고 문자도 남겼다. 하지만 여성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에 답변도 없었다. 그러다 하루 뒤 수사팀 한 형사의 휴대전화에 발신지가 외국인 번호가 떴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여성은 ‘이번에 남편도 한국으로 같이 들어가기 때문에 만나기 곤란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경찰은 계속 설득했다. ‘그놈’을 처벌하려면 피해자 진술이 꼭 필요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일은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다’는 말도 건넸다. “인천공항에서 뵈어요.” 5분가량에 걸친 통화 끝에 여성은 수사팀과의 만남을 받아들였다. 여성은 “조용한 곳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한다. ●18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그놈’ 168~170cm의 키에 스포츠 머리, 베이지색 반팔티, 흰색 반바지. 여성은 18년 전 ‘그놈’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수사팀은 올해 2월 인천공항에서 여성을 만났다. 그리고 1시간 30분에 걸쳐 18년 전 있었던 일에 대해 들었다. “옷 안 벗으면 죽여 버린다”는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여성은 자신의 얼굴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그놈’과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여성은 반사적으로 오른손으로 칼날을 꽉 쥐었고 손에서는 피가 흘렀다고 했다. 수사팀은 “여성이 당시 성폭행이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성폭행은 없었다’던 예전의 진술을 바꾼 것이다. 18년 전 기억을 떠올리던 여성은 진술을 하다 멈추기를 몇 차례나 반복하면서 띄엄띄엄 얘기를 이어갔다고 한다.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피해자 진술을 다 듣고 자리에서 일러나려던 경찰에게 여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18년 전 자신이 왜 ‘성폭행은 없었다’고 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할 것 같았다’, ‘문단속을 제대로 안 해서, 아침 9시까지 자고 있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나를 질책할 것 같았다.’ 여성은 성폭행 피해를 부인했던 이유를 경찰에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피해자 진술을 확보한 경찰은 3월 ‘그놈’을 소환했다. 특수강도강간 범죄로 10년간 수감돼 있다 2013년 출소한 ‘그놈’은 다시 자유의 몸이 돼 있었다. 경찰서로 출석한 ‘그놈’은 18년 전 사건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수사팀은 ‘그놈’ 앞으로 증거자료 하나를 내밀었다. 2001년 중랑구의 한 원룸 휴지통에서 나온 혈흔의 DNA와 ‘그놈’의 DNA가 일치한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그놈’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혐의는 강간미수가 아닌 강간치상이었다. 결국 ‘그놈’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때 범행을 인정했다. 법원은 ‘그놈’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재판에 넘겨진 ‘그놈’은 지난달 법정 피고인석에 섰다. 여성은 2001년 8월 6일 아침의 일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여성은 18년 전 일을 수사팀에 다 털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야 그날 일은 내 탓이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합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