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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1시경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한 무인빨래방. 인적이 드물어진 새벽을 틈타 고교생 A 군(16) 등 청소년 3명이 점포에 들어왔다. 수상한 거동을 보이던 이들은 곧장 세탁기에 달려있는 현금보관함에 다가가 도구를 이용해 자물쇠를 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성공하지 못했다. 서초구 폐쇄회로(CC)TV 통합관제센터에서 늦은 시간에 10대들이 빨래방에 들어가는 걸 수상하게 여겨 인근 파출소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곧장 출동한 경찰은 A 군을 현장에서 체포했으며, 외투와 모자 등을 내버려둔 채 달아난 나머지 2명의 뒤를 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 군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경기 안산에 사는 청소년들로 파악됐다. 도주한 2명도 특정돼 곧 검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크게 늘어난 ‘무인점포’에서 절도 등 범죄 발생이 잦아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28, 29일 강남에 있는 무인점포 20곳에 ‘최근 절도 등을 당한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17곳이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며 인건비 절감과 비대면 서비스 차원에서 상주 직원을 두지 않는 가게들이 증가했지만, 지키는 이가 없다보니 손쉽게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무인점포가 크게 늘어난 것도 영향을 끼쳤다. 국내 편의점체인 4개만 기준으로 해도 2018년 94개였던 무인점포는 지난해 말 743개로 8배 가까이 늘었다. 최근엔 무인빨래방과 무인커피전문점, 무인아이스크림가게 등도 선보이며 숫자는 훨씬 많아졌다. 전문가들은 “당연히 CCTV 등의 보완장치가 있겠지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심리적 부담을 덜어줘 쉽게 범행을 마음먹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는 무인점포에서 절도를 저지르는 이들 가운데 청소년이 적지 않는 점과도 이어진다. 경찰 관계자는 “사람이 없다보니 10대도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조용한 주택가 점포들이 특히 취약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충남에선 청소년 5명이 대전과 청주, 천안 등을 돌아다니며 5차례에 걸쳐 300만 원어치 금품을 훔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송파구에서 무인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는 B 씨(41)는 “10대로 추정되는 4명이 약 2분 정도 현금보관함을 뜯으려다가 실패하고 나가는 모습이 CCTV에 잡힌 적이 있다”고 전했다. 무인점포는 절도의 고충만 겪는 게 아니다. 술에 취한 시민들이 가게에 들어와 노상방뇨나 구토를 저지르고 가는 일도 빈번하다. 최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무인빨래방에선 20대 4명이 새벽에 술판을 벌이고 흡연까지 하다가 경찰에 붙잡힌 적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선 경찰들은 “무인점포 탓에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지구대 경찰은 “범죄가 잦다보니 무인점포는 반드시 순찰 루트에 포함시킨다. 순찰차에서 내려 직접 살펴보는 범죄예방진단 활동도 벌인다”고 전했다. 한 파출소 측은 “범죄예방은 당연히 경찰 업무지만, 무인점포는 직원이 없어 사사로운 것까지 다 챙겨야 해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무인점포라 사람이 없더라도 항상 감시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그래야 범행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다소 주춤하지만, 청계천은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자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봄 날씨가 짙어지며 점심 산책을 나서는 직장인이나 아이들 손을 잡은 가족 나들이도 부쩍 늘었다. 그런 청계천이 요즘 밤마다 대형 술집으로 바뀌고 있다. 여기저기서 술판이 벌어져 거리 두기는커녕 마스크 착용이나 5인 이상 집합금지도 지켜지지 않는다. 물론 코로나19 장기화로 술 한잔 나눌 곳 찾기 마땅찮은 시민들의 스트레스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밀집 음주는 감염 위험도 높을뿐더러, 원래도 청계천은 음주가 금지돼 있다. 하지만 관련 기관들은 대책을 묻자 아쉽기 짝이 없는 반응을 보였다. “밤에 청계천에서 술을 마신다고요? 전혀 몰랐습니다.” 청계천이 흘러가는 종로구와 중구, 동대문구, 성동구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청계천은 서울시 소관”이라고 답했다. 그나마 성동구는 낮에는 마스크 착용을 정기적으로 단속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는 어떨까. 시 관계자는 25일 통화에서 “조례에 따라 서울시설공단에 시설 관리 책임을 위탁했다. 방역 관련 업무도 공단이 맡는다”고 했다. 청계천 이용·관리에 관한 조례에도 ‘시설 관리와 운영 업무를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니 잘못된 말은 아니다. 문제는 방역을 담당한 시설공단은 아무런 단속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공무원들처럼 과태료 부과도 할 수 없으니 시민에게 계도해도 별 효과가 없다. 그마저도 청계천에 상주하는 현장 안전요원은 7명뿐이다. 11km나 되는 청계천변을 7명이 순찰하니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서울시와 관련 구청들이 코로나19 방역에 손놓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가뜩이나 인력 부족에 애먹고 있으니 최대한 짐을 나누고픈 심정도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간 서울시와 4개 구가 청계천으로 얻은 관광수익이나 시민·구민들이 누린 혜택을 생각하면 무작정 뒷짐 지고 있을 처지는 아니다. 게다가 청계천에서 감염이 발생하면 결국 비용과 노력이 배로 들어간다. 다행히 서울시는 26일 “청계천과 한강공원 방역 강화를 검토 중이다. 우선 관할 구청과 협의해 단속 공무원을 추가 투입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방역은 내 책임 네 책임을 따질 시기는 이미 지났다는 걸 우리는 지난 1년 넘도록 뼈저리게 배워왔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무슨 축제나 행사라도 열린 줄 알았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야외라지만 저렇게 가득 모여 술 마셔도 괜찮나요?” 23일 금요일 오후 10시 반경 서울 종로구 청계천.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던 회사원 박모 씨(47)는 청계천 쪽에서 나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무심코 다가갔다가 깜짝 놀랐다. 청계천 주변과 계단 등을 사람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다수 시민들은 마스크를 벗거나 턱까지 내린 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박 씨는 “과장이 아니라 술 냄새가 바깥 도로까지 진동할 정도였다”며 “어떻게 별다른 제재 없이 이런 게 가능한지 의아했다”고 전했다. 최근 서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250명을 넘어서는 등 감염 우려가 커졌지만 청계천에 인파가 몰리며 방역수칙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강공원과 대학 캠퍼스 등에서 문제로 지적됐던 5인 이상 모임 또는 마스크 미착용 등이 서울 도심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식당 등의 오후 10시 이후 영업은 막아놓고, 이는 단속 안 하면 무슨 소용이냐”는 자영업자들의 볼멘소리도 나온다. 동아일보가 23, 24일 밤 청계천 주변을 돌아봤더니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고 술자리를 갖는 시민들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 24일 오후 10시∼11시 30분 1시간 반 동안 청계천관리처가 세운상가 인근부터 청계광장까지 약 1.6km 구간에서 302명에게 음주 금지 및 방역수칙 준수를 계도할 정도였다. 청계천은 원래 서울시 조례에 따라 코로나19가 아니어도 음주가 금지된 구역이다. 하지만 해가 떨어지는 오후 7시쯤부터 이런 규칙은 쓸모가 없어졌다. 곳곳에서 술판이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술집이 문을 닫는 오후 10시 전후부터는 괜찮은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다. 방역수칙 위반은 숫자를 세기도 힘들 정도였다. 빽빽하게 들어앉아 1m 이상 거리 두기는 애당초 물 건너간 상황. 24일 밤 청계천관리처로부터 마스크 부실 착용 지적을 받은 시민은 175명에 이르렀다. 5인 이상 집합금지를 어긴 이들도 상당했다. 청계천관리처 관계자는 “단속 권한이 없어 주의를 줘도 그때뿐”이라며 “오히려 큰소리치고 멱살을 잡아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청계천 산책로 800m에 230명 인파… 대부분 음주-5인이상 모임도밤 10시 청계천은 거대한 술판“여긴 야외라서 5명 이상 모여도 되는 줄 알았어요.” 24일 밤 서울 청계천 관수교 인근에서 술을 마시던 남녀 6명은 서울시설공단 청계천관리처 관계자가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고 자제를 요청하자 당황하는 눈치였다. 일행 중 하나인 대학생 이모 씨(22)는 관계자가 자리를 떠난 뒤 “일행이 많아 일부러 식당에 안 가고 청계천에 왔다”며 “실외에서도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적용되는 줄 몰랐다”고 머쓱해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방역수칙을 준수했느냐 여부가 아니다. 바깥이라도 사람들이 밀집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언제든 전파될 수 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당연하다. 코로나19는 비말(침방울)로 전염되기 때문에 야외라도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특히 야외 확진은 감염 경로마저 불분명해 역학조사도 쉽지 않다. 이른바 ‘깜깜이 감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밀집된 술판, 방역수칙 요청해도 효과 없어 24일 오후 10시 반경 800m 정도 되는 청계천 광교와 관수교 사이의 인파를 세어봤더니 23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촘촘히 앉은 이들은 대부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특히 삼일교 밑 돌계단에서는 30여 명이 서로 어깨가 닿을 정도로 밀착한 모습도 보였다.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실내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계신 시민이 많다. 해당 지침은 실내외 구분이 없다”라고 우려했다. 야외라고 가볍게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었다. 남녀 예닐곱이 뒤섞인 한 무리는 생선회 등을 차려놓고 소주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떡볶이와 컵라면을 안주로 삼아 ‘소맥’을 즐기는 이들도 있었다. 거나한 술자리 탓인지 돌계단의 그늘진 구석에는 취객들이 버려놓은 쓰레기에 토사물 흔적까지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청계천관리처 관계자는 “시 조례인 음주 금지를 어기는 것도 모자라서 먹다 남은 술병이나 음식물 등을 그대로 버리고 가는 시민들이 너무 많다”며 “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시간이 한참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청계천은 모두 28명이 7명씩 교대로 근무하며 24시간 순찰한다. 총길이 11km에 이르는 청계천에서 안전요원은 7명뿐인 셈이다. 그마저도 방역수칙 준수와 음주 금지 등을 계속해서 알려줘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관리처 관계자들과 동행해봤더니 “술 마시면 안 된다”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안내를 받을 땐 지키는 척하다가 금방 다시 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단속 권한 없는 계도만으론 방역 한계” 청계천은 서울시 조례에 따라 서울시설공단이 관리 및 운영 책임을 맡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설관리와 운영 업무는 시설공단에 일임돼 있다”며 “일상적인 방역 업무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청계천은 종로구와 중구, 동대문구, 성동구 등 자치구 4곳으로 이어지지만 “방역 관리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현장 순찰 등 1차 방역은 서울시설공단이 맡고, 구청은 민원이 들어올 경우에 한해서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계천관리처는 계도만 가능할 뿐 과태료 부과 등 단속 권한이 없다. 행정지도를 할 순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따르지 않아도 제재할 수단이 없는 셈이다. 청계천관리처 관계자는 “실제로 ‘니들이 뭔데 시비냐’며 몸싸움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어 어쩔 수 없이 경찰에 신고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청계천 인근 상인들은 방역수칙의 형평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인근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43)는 “오후 10시에 손님을 내보내면 ‘청계천 가서 한잔 더 하자’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되면 업소들의 영업시간만 제한되고 있을 뿐 실제 방역 효과는 떨어지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조응형 yesbro@donga.com·오승준·박종민 기자}

“여긴 야외라서 5명 이상 모여도 되는 줄 알았어요.” 24일 밤 서울 청계천 관수교 인근에서 술을 마시던 남녀 6명은 서울시설공단 청계천관리처 관계자가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고 자제를 요청하자 당황하는 눈치였다. 일행 중 하나인 대학생 이모 씨(22)는 관계자가 자리를 떠난 뒤 “일행이 많아 일부러 식당에 안 가고 청계천에 왔다”며 “실외에서도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적용되는 줄 몰랐다”고 머쓱해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방역수칙을 준수했느냐 여부가 아니다. 바깥이라도 사람들이 밀집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언제든 전파될 수 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당연하다. 코로나19는 비말(침방울)로 전염되기 때문에 야외라도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특히 야외 확진은 감염 경로마저 불분명해 역학조사도 쉽지 않다. 이른바 ‘깜깜이 감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밀집된 술판, 방역수칙 요청해도 효과 없어 24일 오후 10시 반경 800m 정도 되는 청계천 광교와 관수교 사이의 인파를 세어봤더니 23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촘촘히 앉은 이들은 대부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특히 삼일교 밑 돌계단에서는 30여 명이 서로 어깨가 닿을 정도로 밀착한 모습도 보였다.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실내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계신 시민이 많다. 해당 지침은 실내외 구분이 없다”라고 우려했다. 야외라고 가볍게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었다. 남녀 예닐곱이 뒤섞인 한 무리는 생선회 등을 차려놓고 소주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떡볶이와 컵라면을 안주로 삼아 ‘소맥’을 즐기는 이들도 있었다. 거나한 술자리 탓인지 돌계단의 그늘진 구석에는 취객들이 버려놓은 쓰레기에 토사물 흔적까지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청계천관리처 관계자는 “시 조례인 음주 금지를 어기는 것도 모자라서 먹다 남은 술병이나 음식물 등을 그대로 버리고 가는 시민들이 너무 많다”며 “쓰레기를 치우는 데만 시간이 한참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청계천은 모두 28명이 7명씩 교대로 근무하며 24시간 순찰한다. 총길이 11km에 이르는 청계천에서 안전요원은 7명뿐인 셈이다. 그마저도 방역수칙 준수와 음주 금지 등을 계속해서 알려줘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관리처 관계자들과 동행해봤더니 “술 마시면 안 된다”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안내를 받을 땐 지키는 척하다가 금방 다시 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단속 권한 없는 계도만으론 방역 한계”청계천은 서울시 조례에 따라 서울시설공단이 관리 및 운영 책임을 맡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설관리와 운영 업무는 시설공단에 일임돼 있다”며 “일상적인 방역 업무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청계천은 종로구와 중구, 동대문구, 성동구 등 자치구 4곳으로 이어지지만 “방역 관리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현장 순찰 등 1차 방역은 서울시설공단이 맡고, 구청은 민원이 들어올 경우에 한해서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계천관리처는 계도만 가능할 뿐 과태료 부과 등 단속 권한이 없다. 행정지도를 할 순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따르지 않아도 제재할 수단이 없는 셈이다. 청계천관리처 관계자는 “실제로 ‘니들이 뭔데 시비냐’며 몸싸움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어 어쩔 수 없이 경찰에 신고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청계천 인근 상인들은 방역수칙의 형평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인근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43)는 “오후 10시에 손님을 내보내면 ‘청계천 가서 한잔 더 하자’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되면 업소들의 영업시간만 제한되고 있을 뿐 실제 방역 효과는 떨어지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조응형 yesbro@donga.com·오승준·박종민 기자}

“내 눈이 언제부터 이렇게 처져 있었지….” 서울의 한 대학 교수인 A 씨(60)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뒤 비대면 화상수업을 진행하다가 흠칫 놀랐다. 줌(ZOOM) 화면에 비친 자기 얼굴이 너무 낯설고 늙수그레해 보였다. 탄력을 잃은 왼쪽 눈꺼풀과 축 처진 눈 밑 주름이 특히 신경 쓰였다. A 교수는 고민 끝에 올해 개강을 앞두고 성형외과의 문을 두드렸다. 처진 눈꺼풀을 끌어올리는 등 수술을 받았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A 교수는 “평소 책 읽을 때 처진 눈을 치켜떠 눈물이 자주 났는데 그 증상도 나아졌다”고 말했다. ‘아저씨’ 혹은 ‘아재’라 불리는 중장년 남성에게 성형수술은 남의 얘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성형업계에서 40대 이상 남성들은 “성형업계의 떠오르는 큰손”(B성형외과 원장)이라 불릴 정도로 위상이 바뀌었다. 서울 강남에 있는 대형 성형외과 7곳에 문의했더니 모든 병원에서 “코로나19로 발길이 끊긴 해외 성형 관광객 대신 중년 남성들이 중요한 고객층이 되고 있다”는 답을 내놓았다. C성형외과에 따르면 남성 성형 고객 가운데 40대 이상의 비율이 2017년만 해도 28%에 그쳤지만 지난해 59%로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요즘 중년 남성들은 코로나19로 화상회의가 크게 늘어난 뒤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성형외과를 찾는 경우가 많다. 한 기업의 부장인 이모 씨(52)도 지난해 재택근무를 하다가 성형수술을 결심했다. 거울을 볼 땐 잘 몰랐던 ‘세월의 흔적’이 컴퓨터 화면엔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씨는 “화상회의만 하면 ‘피곤해 보인다’고 해 큰 스트레스였다”며 “1개월 정도 재택근무였는데 그 시간이면 부기도 다 빠진다고 해 결심했다”고 말했다. 레알성형외과의 한상훈 원장은 “화상카메라에는 평소 거울로 볼 때와 다른 각도로 얼굴이 비쳐 노화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코로나 때문에 외국 사는 손자와 화상통화를 하다가 손자 권유로 찾아온 어르신도 있다”고 전했다. 사회생활을 위한 ‘생존 전략’으로 성형을 택하기도 한다. 대기업 부장 김모 씨(49)는 “임원 승진을 앞두고 최근 눈매 교정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형업계에서 눈매 교정은 회사 등의 간부급 남성이 많이 찾고 있어 ‘CEO 성형’이라 불리기도 한다. “원래 좀 고집스러운 인상이란 평을 들었어요. 계속 맘에 걸렸는데, 또렷하고 선한 이미지로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코로나19로 팀 회의는 물론이고 간부회의도 화상으로 많이 해 더 신경 쓰였어요.” 중장년 남성의 성형수술 붐은 성형업계에 뜻밖의 매출 성장을 안겨주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업종별 카드 매출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이비인후과나 소아과 등 대다수 병원의 연간 매출이 감소했지만, 성형외과는 전년 대비 약 10% 증가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년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남성의 화장 등 외모 가꾸기를 중시한다. 이런 분위기를 중장년층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했다. 한 성형외과 원장도 “갈수록 온라인 모바일 영상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어 이런 분위기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승준 ohmygod@donga.com·조응형 기자}

“안마시술소를 빌려서 영업하다 보니 아무래도 기존 룸살롱보단 방이 좀 좁아요. 그래도 편하게 술 드시긴 괜찮아요.” 13일 밤 서울 강남구에 있는 A룸살롱은 정부의 유흥시설 영업 중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매일 ‘정상 영업’ 하고 있으니 언제든 찾아 달라”더니 “지하철 2호선 역삼역 근처에 오셔서 다시 연락을 달라”고 했다. “단속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수차례 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2일부터 서울·경기 지역과 부산에서 유흥시설 6종(유흥주점 단란주점 감성주점 등)의 영업을 모두 금지했다. 유흥주점에 속하는 룸살롱도 당연히 문을 열 수 없다. 하지만 인터넷 유흥정보 사이트에 이름을 올린 룸살롱들은 하나같이 ‘영업 중’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주변에 가서 살펴봐도 몰래 영업하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영업 중지요? 걱정 말고 오세요” 동아일보가 이날 확인한 룸살롱 6곳 가운데 2곳은 원래 영업장이 아닌 인근 안마시술소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A룸살롱 직원은 “안마시술소는 영업금지 대상이 아니라서 문을 열어둬도 별로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늦은 시간에는 더욱 조심스레 운영했다. 이 업소들은 오후 10시가 되자 외부 간판을 끄고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신경 썼다. 앞문은 잠그고 뒷문으로 조용히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해당 직원은 “기존 룸살롱보다 시설은 아무래도 떨어져 손님들이 불편한 점이 없지 않다. 그래도 친한 지인들끼리 몰래몰래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이 안마시술소를 영업장으로 택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고 한다. 원래도 ‘불법 영업’을 하던 곳이라 보안을 유지하기가 쉽다는 것. “‘숨겨진 비상구’ 등이 마련돼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유흥주점 밀집 지역은 경찰 등이 수시로 순찰을 돌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강남구에 있는 한 ‘룸살롱 골목’은 얼핏 봐선 쥐죽은 듯 조용했다. 간판도 모두 꺼져 길가는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건물 뒤쪽으로는 10∼20분 간격으로 짙은 색 승용차들이 조용히 드나들었다. 멀리서 지켜보니 고객으로 보이는 남성들이나 종업원으로 짐작되는 여성들이 타고 내렸다. 오후 9시 50분경 순찰차 1대가 룸살롱 정면에 서 있자, 이들을 태운 승용차는 한참 동안 주변 골목을 빙빙 돌더니 남성 2명을 태우고 룸살롱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다른 지역으로 옮겨 영업 이어가기도 인근에 있는 또 다른 룸살롱도 밖에서는 영업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건물 창문은 모두 검게 칠해져 있어 불빛이 새어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건물 뒤편에 설치된 환풍기 10여 대는 계속해서 돌아가 누군가 내부에 있다는 걸 보여줬다. 오전 1시경에는 룸살롱에서 ‘콜’을 한 듯 고객을 태우려는 택시 서너 대가 인근 골목에 서 있기도 했다. 해당 룸살롱 직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업소는 원래 1층부터 5층까지 다 영업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단속 때문에 1, 2층은 문을 닫고, 위층들만 손님을 받아요. 밖에서 봐선 절대 알 수 없죠.” 룸살롱 밀집 지역의 단속이 심해지자 아예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간 업소들도 있었다. B룸살롱 직원은 “송파구나 관악구로 가면 비교적 경찰이나 구청 눈을 피하기 좋은 동네들이 있다. 평범한 노래연습장을 룸살롱으로 꾸며 영업하는 곳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노래방 역시 영업금지 대상이 아니다 보니 오후 9시 반 정도까지 고객을 받은 뒤 문을 잠그고 영업을 이어간다고 한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강남구가 12일 역삼동의 한 룸살롱 업주와 직원, 손님 등 98명을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해당 업소는 지난달 24일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3차례 불법 영업으로 적발됐으나 건물 층마다 등록을 달리해둔 이른바 ‘쪼개기 영업’으로 영업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오승준 ohmygod@donga.com·조응형 기자}

《 환자는 급증하는데 백신은 없다.2021년 4월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다. 4차 유행이 가시화했지만 불 끄고 장소를 바꿔 가며 영업하는 일부 유흥시설로 인해 방역망 곳곳에 구멍이 나고 있다. 팬데믹 종식의 희망인 백신 접종은 지지부진하다. 일부 안전성 논란에 ‘자국 우선주의’가 확산하며 조기 접종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단속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몰래 영업’이라 QR코드도 안 찍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 우려가 커지면서 12일부터 정부가 수도권과 부산에서 유흥시설 영업을 중지시켰지만 최근 집단감염이 잇따랐던 룸살롱들은 불법 영업을 강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동아일보가 13일 오후 9시 이후 서울 강남에 있는 룸살롱 6곳에 문의한 결과, 모두 “룸에서 여성 종업원과 술을 마실 수 있다”고 답했다. 6곳 모두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QR코드 전자출입명부 등의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심야시간에 찾아간 강남구의 한 룸살롱은 비밀 스파이 작전을 방불케 하는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었다. 간판 조명은 모두 끄고 정문도 잠겨 있었지만 후문 주차장으로 승용차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고객을 실어 날랐다. 지정된 장소에 경찰 순찰차가 나타나면 다른 곳으로 가는 차량인 척 이동하기도 했다. 해당 룸살롱 직원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업소에서 떨어진 지역에서 손님을 태워 조용히 실어온다”고 말했다. 방역당국의 감시를 벗어나려고 아예 다른 장소에서 영업하기도 했다. 강남 지역의 또 다른 룸살롱은 “인근 안마시술소를 통째로 대관해 내부만 바꿔 운영한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달 18일까지 전국에서 유흥시설 집중 단속을 이어갈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일선 지구대·파출소는 물론이고 기동대 등 가용 경찰력을 최대한 투입해 불법 영업을 찾아내고 있다. 단순한 업태 위반이 아니라 코로나19 방역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인 만큼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밝혔다.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글로벌 악재’가 이어지면서 한국의 백신 확보 계획도 흔들리고 있다. 14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은 이탈리아 언론을 인용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내년에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백신의 수급 계약을 갱신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두 백신을 둘러싸고 제기된 희귀 혈전 부작용 논란 때문이다. 또 이날 덴마크 TV2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덴마크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접종을 영구히 중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전날 미국 제약사 모더나는 자국 내 우선 공급 방침을 밝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말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통화한 후 “5월부터 4000만 회(2000만 명)분을 공급받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에 백신을 우선 공급하게 되면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에 대한 공급이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14일 현재 정부가 도입 물량이 확정됐다고 밝힌 백신은 상반기 내 1045만 명분. 이 가운데 아스트라제네카가 533만7000명분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얀센 역시 2분기부터 600만 명분 도입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내에 실제로 들어온 백신은 화이자 포함 181만1500명분에 불과하다. 정부는 상반기(1∼6월) 중 1200만 명 접종이란 목표 달성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외에 얀센, 모더나, 노바백스 등과 계약한 백신 4600만 명분이 도입되면서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안전성 논란이 커지고 백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까지 국내에서 백신을 한 번이라도 접종한 사람은 123만9065명. 전체 인구의 2.2%다.조응형 yesbro@donga.com·오승준 기자 / 이미지 image@donga.com·조종엽 기자}

10일 오후 9시 반경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 한 건물 지하의 A업소. “수백 명이 모여 춤을 추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과 구청 관계자 등이 현장에 출동했을 당시 이 업소는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 초기 양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100평 남짓한 지하에서 200명이 넘는 인원이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해당 업소는 구청에 일반음식점과 살사댄스 교습소(기타 실내스포츠시설)로 등록돼 있었다. 이 때문에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무슨 근거로 단속하느냐” “(춤) 배우러 왔는데 무슨 죄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완전히 구분돼 있지 않은 한 공간에서 술을 팔면서 손님들이 춤을 춰 미신고 유흥주점 영업이라고 봐야 한다”며 “면적당 제한 인원을 넘은 정황도 있기 때문에 감염병예방법 위반도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확진자 다시 느는데 유흥시설 북적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7∼11일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2178명에 이른다. 닷새 동안 계속해서 400명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 하지만 시민 수백 명이 적발된 A업소처럼 방역에 역행하는 사례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해당 업소는 영업 공간 가운데 일부만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고 지하 1, 2층 전체를 클럽처럼 불법 운영한 곳이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업주 A 씨를 식품위생법 및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하고, 직원과 손님 등 200여 명에게는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업소를 방문해 QR코드 인증을 한 208명 가운데 현재 199명의 신원을 확인한 상태다. 강남구는 적발된 입장객들에게 과태료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유흥시설 집단감염은 전국적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부산에서는 10, 11일 한 유흥업소발(發) 확진자가 23명이나 발생했다. 시 관계자는 “현재 부산의 유흥시설 관련 확진자만 이용자 83명과 종사자 68명을 포함해 372명”이라며 “12일부터 3주 동안 유흥시설 영업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고 전했다. 전국에서 집단감염이 이어지며 7∼11일 코로나19의 전체 신규 확진자는 5일 연속 600명을 넘었다. 일반적으로 일요일에는 코로나19 검사가 줄어 확진자 수도 감소하는 걸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일요일에 확진자가 600명을 넘어선 건 1월 10일(657명) 이후 13주 만이다.○ 학교와 학원에서도 집단감염서울과 경기에선 교육기관에서 집단감염이 잇따랐다. 서울시에 따르면 양천구에 있는 B학원에선 7일 수강생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원장 1명과 수강생 5명, 가족과 지인 4명 등 10명이 추가로 확진됐다. 특히 10일 확진된 수강생 5명은 양천구에 있는 같은 초등학교 학생들로 드러났다. 양천구 관계자는 “해당 학원 수강생과 종사자 등 232명을 대상으로 검체 조사를 실시하고, 해당 초교에서도 추가 접촉자가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성남시에서는 한 초등학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성남시 분당구의 C초교에서 지금까지 교사와 학생 등 1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역학조사 결과 확진된 교사는 2일 밤 지인과 함께 분당구의 한 노래방을 방문했다가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까지 해당 노래방에 관련자 24명이 확진되는 집단감염이 발생한 곳이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해당 초교 수업은 모두 원격수업으로 전환한 뒤 학생 및 교직원 1283명에 대한 전수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조응형 yesbro@donga.com / 성남=이경진 / 유근형 기자}

10일 오후 9시 반경 서울 지하철2호선 강남역 인근 한 건물 지하의 A업소. “수백 명이 모여 춤을 추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과 구청 관계자 등이 현장에 출동했을 당시, 이 업소는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 초기 양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100평 남짓한 지하에서 200명이 넘는 인원이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해당 업소는 구청에 일반음식점과 살사댄스 교습소로 등록돼있다. 때문에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무슨 근거로 단속 하느냐” “(춤) 배우러 왔는데 뭔 죄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업소 자체가 불법영업인데다 면적당 제한인원을 넘어 감염병예방법 위반이다. 학원이라 쳐도 취식 금지 방역수칙을 어긴 것”이라며 “손님들 모두 과태료 처분을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확진자 다시 느는데 유흥시설 북적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7~11일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2178명에 이른다. 닷새 동안 계속해서 400명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 하지만 시민 수백 명이 적발된 A업소처럼 방역에 역행하는 사례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해당 업소는 영업 공간 가운데 일부만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고 지하 1, 2층 전체를 클럽 형식으로 무허가 운영한 곳이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업주 A 씨를 식품위생법 및 감염병예방법 위반 등 혐의로 체포하고, 직원과 손님 등 200여 명에게는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업소를 방문해 QR코드 인증을 한 208명 가운데 현재 199명의 신원을 현재 확인한 상태다. 유흥시설 집단감염은 전국적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부산에서는 10, 11일 한 유흥업소 발(發) 확진자가 23명이나 발생했다. 시 관계자는 “현재 부산의 유흥시설 관련 확진자만 이용자 83명과 종사자 68명을 포함 372명”이라며 “12일부터 3주 동안 유흥시설 영업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고 전했다. 전국에서 집단감염이 이어지며 9~11일 코로나19의 전체 신규 확진자는 3일 연속 600명대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일요일에는 코로나19 검사가 줄어 확진자 수도 감소하는 걸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일요일에 확진자가 600명을 넘어선 건 1월 10일(657명) 이후 13주 만이다.● 학교와 학원에서도 집단감염서울과 경기에선 교육기관에서 집단감염이 잇따랐다. 서울시에 따르면 양천구에 있는 B학원에선 7일 수강생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원장 1명과 수강생 5명, 가족과 지인 4명 등 10명이 추가로 확진됐다. 특히 10일 확진된 수강생 5명은 양천구에 있는 같은 초등학교 학생들로 드러났다. 양천구 관계자는 “해당 학원 수강생과 종사자 등 232명을 대상으로 검체 조사를 실시하고, 해당 초교에서도 추가 접촉자가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성남에서는 한 초등학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성남시 분당구의 C초교에서 지금까지 교사와 학생 등 9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9일 이 학교 1학년 교사가 확진된 뒤 같은 반 학생 27명 가운데 7명이 10일 추가로 감염됐다. 게다가 확진 학생과 교내 축구교실에서 접촉한 다른 반 학생 1명도 확진돼 교내 감염으로 번질 우려까지 낳고 있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해당 초교 수업은 모두 원격수업으로 전환한 뒤 학생 및 교직원 1283명에 대한 전수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이경진 기자 lkj@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서울 노원구에서 스토킹하던 여성의 집에 침입해 어머니와 여동생 등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태현(25)에게 경찰이 현행법상 스토킹을 일컫는 ‘지속적 괴롭힘’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김태현에게 경범죄처벌법 위반(지속적 괴롭힘)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정보통신망침해 등) 혐의를 적용해 추가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 경찰이 김태현의 스토킹과 관련해 경범죄처벌법을 적용한 것은 현재 스토킹을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은 김 씨가 범행을 저지른 다음 날인 지난달 24일 국회를 통과해 9월부터 시행된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이라 법적으로 ‘스토킹 혐의’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 그 대신 현행법상 스토킹을 의미하는 지속적 괴롭힘 혐의를 적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태현은 그동안 진행된 4차례의 경찰 조사 과정에서 변호인 입회 없이 혼자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4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국선변호인이 선임됐지만, 경찰 조사에서 모두 변호인 입회 없이 조사를 받고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김태현은 상당수 혐의를 이미 시인하고 있어 변호인의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경찰은 김태현에 대한 2차례 프로파일러 면담 결과를 바탕으로 조만간 ‘사이코패스 검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경찰은 9일 김태현을 서울 도봉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하면서 얼굴을 가리지 않는 방식으로 실물을 공개할 방침이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김수현 newsoo@donga.com·조응형 기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신규 채용을 줄이는 나쁜 정책이다.” “아니다. 고용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2021년 창간기획 ‘극과 극―청년과 청년이 만나다’ 두 번째 주제는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인 취업에서 선택했다. 갈수록 좁아지는 고용시장에 치여 청년들이 느끼는 압박감과 절망감은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다.특히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20, 30세대에게 공정성 시비로 번지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017년부터 이어진 찬반양론은 젊은 세대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여전히 식을 줄 모르고 있다.두 번째 무대에 오른 청년 심규환 씨(24)와 나수빈 씨(23) 역시 정규직 전환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다. 금융 관련 공기업 입사를 꿈꾸는 심 씨와 노동 전문 변호사를 준비하는 나 씨는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교수팀이 개발한 ‘정치·사회 성향조사’에서도 보수와 진보로 엇갈렸다.‘MZ세대(밀레니얼+Z세대)’ 10명에게 들어본 취업에 대한 생각에서도 공정성은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다만 정치·사회 성향 조사에서 나눠진 보수 성향의 청년 5명과 진보적인 청년 5명이 얘기하는 공정은 다소 차이를 보였다.“노력 대신 정책으로 정규직 문턱 넘어… 불공정 처사에 허탈”“최소한의 고용안정 보장 못 받는다면 그거야말로 불공정” “취준생(취업 준비생)에게 정규직 공채 문턱은 점점 높아지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부 정책 덕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건 불공정하죠.”(심규환 씨·24) “공채를 거치지 않았다고 최소한의 고용 안정도 보장받지 못하는 거야말로 불공정한 것 아닐까요.”(나수빈 씨·23) 규환과 수빈은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연구팀이 만든 ‘정치·사회 성향 조사’에서 보수에서 21번째, 진보에서 2번째로 나왔다. 해당 조사 결과 값은 가운데를 중도로 두고, 보수와 진보 각각 1∼50단계를 부여한다. 성향이 강할수록 숫자가 작아진다. 두 청년은 77이나 벌어진 성향 값만큼 직업과 노동을 바라보는 생각이 달랐다. 공기업 취업 준비생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지망생. 규환은 “일찍 퇴근해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가 되고파 안정적인 공기업을 원한다”고 말했다. 대학 새내기 때 학내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학생모임을 만들었던 수빈은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변호사를 꿈꾼다”고 했다. 사전 인터뷰에서도 쓰는 ‘단어’부터 차이가 났다. 규환은 직업의 연관어로 ‘보상’(8회) ‘노력’(6회) ‘정당함’(3회)을 이용했다. 그에게 취업이란 “정당한 노력으로 성취할 보상”이었다. 반면 수빈은 취업과 함께 ‘권리’(8회) ‘요구’(4회) ‘연대’(3회)란 단어들을 썼다. “서로 연대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의 한 북카페에서 일대일로 만났을 때도 이런 차이는 쉽사리 극복되지 않았다.○ “정규직 전환으로 취업문 좁아져” vs “비정규직 비난해선 안 돼”▽규환=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 이후 신규 채용이 30%나 줄었단 기사를 봤어요. 최근 한 공기업은 4명 뽑는 데 지원자가 2800명이 몰렸다고 해요.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취준생들은 허탈함을 느낍니다. 공기업 준비하는 학생들끼리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정규직 공채 준비하지 말 걸 그랬다” “진작 비정규직으로 아무데나 들어갈 걸 후회스럽다” 등의 얘기를 해요. ▽수빈=저도 학생이고, 주변 취준생 친구들 고충을 많이 들어요. 당연히 답답한 마음은 공감합니다. 그렇다고 비난의 화살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고 봐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신규 채용을 줄이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에 함께 요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규환=비정규직 노동자분들의 처우 개선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기업도 한정된 비용을 가지고 경영활동을 해야 하는 조직이잖아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서 신규 채용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일까요. 특히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그로 인한 재정 악화가 발생하면 고스란히 국민에게 세금 부담으로 돌아올 텐데요. ▽수빈=기업의 본질이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내는 데 있다는 건 동의하죠. 하지만 결국 기업도 사람이 있어야 돌아가는 거잖아요. 왜 비용을 줄인다고 할 때마다 가장 먼저 인건비, 구조조정부터 고려해야 하느냐는 거예요.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약자들의 인건비부터 줄이려고 들잖아요. 고위직들이 가져가는 몫에 대해선 별로 언급하지 않는 거 같아요. 이건 문제가 있죠. ▽규환=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회사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갖추고 더 많은 보탬이 되는 사람,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이가 그만큼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건 자연스러운 거죠. 공기업 정규직 입사자들을 보면, 모두 각종 자격증에 영어 성적도 갖춰야 해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전공시험에 면접까지 보고 어렵사리 입사해요. 그에 비하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요. ▽수빈=능력에 따라 처우가 다른 거는 당연히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왜 그 차이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의 차이로 구분돼야 하는 건가요. 아직 학생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월급이 차이 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쳐요. 하지만 고용 형태라는 ‘신분’ 때문에 당장 내일 잘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건 부당해요. 비정규직 역시 똑같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이들인 건 마찬가지인데 너무 비참하잖아요.○ “일자리 넉넉했다면 우리가 이리 다퉜을까”접점을 찾기 어려워 보였던 청년들의 대화는 시간이 흐르며 ‘공유 단어’는 확실히 늘고 있었다. 사전 인터뷰에서 수빈만 16차례 언급했던 ‘노동자’를 규환도 대화 과정에서 6번 입에 담았다. 반대로 규환이 사전 인터뷰에서 7번 얘기했던 ‘기업’을 수빈이 25차례나 썼다. 하지만 같은 어휘를 쓴다고 공감대를 찾아간다고 보긴 어려웠다. 규환은 “노동자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수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부의 정규직 전환 방식이 절차적으로 공정했는지는 여전히 부정적”이란 태도를 견지했다. 수빈 역시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기업 입장을 이해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정규직 전환은 꼭 필요하다. 특히 공공기관은 노동자 권리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했다. 1시간이 지나도록 ‘현실’에서 평행선을 달리던 규환과 수빈은 뜻밖에도 주제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에서 공감대를 찾았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 편하게 사담을 나누던 청년들이 금방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미래세대에 대한 고민이었다. ▽수빈=규환 씨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게 목표라 했죠? 저도 요즘 다음 세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그들은 우리처럼 각박한 현실에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규환=100% 동의해요. 우리 세대를 ‘공정 세대’라 부르잖아요. 근데 왜 이렇게 공정에 목을 매는지를 모르는 거 같아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니 작은 거에도 민감한 거예요. 노력해도 결과는 적은데 ‘내 몫’마저 뺏기는 거 같으니 억울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죠. ▽수빈=맞아요. 가정일 뿐이지만 취업시장 상황이 지금보다 조금만 나았어도, 우리끼리 이런 주제로 다투지 않았을 거예요. 서로 방향은 다르지만 결국 이렇게 모여서 얘기를 하는 것도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그러는 거잖아요. 서로 생각이 달라도 출발은 비슷한 거네요. 지금 현실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는 공감은 청년 모두 다르지 않은 거 같아요. ▽규환=하… 정말 그래요. 정규직 일자리가 많았다면, 다들 열심히 노력하면 보상받을 수 있었다면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되는 것에 반대하겠어요. 결국은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싶네요.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열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청년들은 결국 서로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했다. 서로가 그리는 공정 사회도 여전히 달랐고, 그를 위해 각자 제시한 방법도 엇갈렸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둘은 “서로의 자리에서 노력해 좋은 결실을 맺도록 응원하자”며 눈을 빛냈다. 카페를 나서는 청년들은 바빠 보였다. 규환은 극과극 대화에 참여하려 미뤄뒀던 스터디 모임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서둘러 달려왔다던 수빈도 오후 일정이 있다며 총총 사라졌다. 이날 대화는 그들의 가슴에 무엇을 남겼을까. 꿈꾸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청년들의 어깨가 이제 그만 처져 보이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조응형 yesbro@donga.com·전민영·권갑구 기자}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는 ‘공정성 세대’라고도 불린다. 현재 청년들은 역대 어느 세대도 겪어보지 못한 구직난과 주거난 등을 겪다 보니 더욱 공정함에 민감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 관련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 10명도 찬반과 보수·진보 성향 가릴 것 없이 공정을 언급했다. 하지만 진보 청년 5명과 보수 청년 5명이 생각하는 공정은 다소 차이를 보였다.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연구팀이 만든 ‘정치·사회 성향 조사’에서 보수 성향을 나타낸 청년 5명은 공정성의 연관어로 ‘기회’ ‘능력’ ‘결과’ ‘책임’ 등의 단어를 주로 썼다. 공기업 입사를 희망하는 최모 씨(25)는 “공정하다는 건 자원의 분배 과정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각자가 노력한 만큼 합당한 결과를 얻어갈 수 있도록 투명한 경쟁을 보장하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고 말했다. 반면 진보 성향을 보인 청년 5명에게선 ‘다양’ ‘개인’ 등과 같은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취업준비생인 박모 씨(29)는 “각자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개인이 개인으로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이상적이다”며 “그렇기 위해서는 사회적 소수나 약자들도 동등한 시민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게 공정성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청년 10인의 인터뷰 전문을 분석한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보수 청년들은 능력과 노력에 따라 납득할 수 있는 대가를 받는 것을 공정함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반면 진보 청년들은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해 배경, 학벌, 연령, 성별에 관계없이 다양한 계층에게 기회가 제공되는 것을 공정으로 여겼다”고 분석했다. 진보와 보수 공통적으로 공정을 얘기하며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사람’과 ‘사회’였다. 청년들은 “공정은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가치’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생 이모 씨(26)는 “조국 사태부터 최근 부동산 투기 의혹까지 공정성 논란이 점점 더 불거지는데, 이러다 우리 사회 전체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김모 씨(27)는 “많은 이가 납득할 수 있어야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데, 한국사회는 점점 서로를 납득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달라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공정이란 가치는 점점 멀어지는 게 아닐까”라고 우려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만큼 취업과 관련해 다양한 얘깃거리를 양산한 이슈도 드물다. 하지만 ‘직접 당사자’들이 느끼는 무게와는 비교하기 힘들다. 공채로 공기업에 입사한 청년들과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인 청년들은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지만 이들의 얘기를 듣기란 쉽지 않았다. 당사자야말로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줄 유일한 이들이지만, 조직에 속해 있는 처지라 공개적으로 개인 의견을 밝히는 데 부담이 컸다. 이 때문에 A공기업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김직원 씨(26)와 국공립단체에서 계약직 공연프로듀서로 일했던 박계약 씨(27)는 극과극 일대일 대화 처음으로 모두 가명으로 무대에 올랐다. 혹시나 모를 피해를 방지하고, 더욱 솔직한 심정을 듣기 위해서였다. ‘정치·사회 성향 조사’에서 진보 6번째가 나온 계약 씨는 비정규직의 비애를 겪은 이답게 정규직 전환에 찬성했다. 어렵게 공채 바늘귀를 통과한 직원 씨는 보수에서 37번째로 정규직 전환에 반대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28일 인터넷 화상회의를 통해 마주했다. ▽계약=국공립예술단체에서 1년 정도 계약직으로 일하며 소외감을 느낄 때가 많았어요. 주요 프로젝트들은 보통 1년 이상 진행하는데 참여 자체를 할 수 없었죠. 이듬해 예산을 짜는 업무에서도 빠졌어요. 업무량은 비슷한데 중요한 일에선 배제되는 거죠. 급여나 복지는 당연히 격차가 컸고요. ▽직원=공기업 입사에 들인 땀방울을 무시할 순 없어요. 토익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 시험만 어려운 게 아니라 준비에만 몇 년이 걸러요. 정책이 바뀌었다고 그런 자리를 비정규직이 따내는 걸 보며 솔직히 억울한 맘이 들었어요. ▽계약=하지만 주위 시선보다 더 힘든 게 있을까요. 계약직으로 일하면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어요. 자신감이 확 떨어지는 거죠. 뭔가 해보고 싶은 기획이 있어도 선뜻 말 꺼내기 어려워요. ‘곧 나갈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직원=비정규직을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안 된다는 건 아니에요. 조건을 갖춘 이들은 뽑아야죠. 그런데 우리 회사를 보면, 계약직으로 입사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분들 중에 태업하는 분들도 있어요. 대놓고 ‘계약직인데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식이에요. 제가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는 건, 능력이나 성실성을 검증하는 절차 없이 일괄 전환하는 거예요. ▽계약=경험한 게 달라서 생각도 갈라지네요. 저는 계약직으로 막 입사했을 때도 업무량이 엄청났어요. 기획을 맡으면 온전히 책임져야 했어요. 당연히 ‘농땡이’는 불가능했죠. 작은 업무라도 재계약이 걸려 있단 생각에 더 쫓기는 맘이 들었어요. ▽직원=저도 정규직 입사 전에 6개월 정도 인턴으로 근무해본 경험이 있어요. 불안한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정책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싶은 거죠. ▽계약=현 기업들의 정규직 공개 채용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너무 형식적인 줄 세우기만 시키는 게 아닐까요. 젊은이들을 ‘취업 포인트’ 쌓는 기계로 여기는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경쟁이 격해지는 것도 있어요. ▽직원=공감하는 대목이에요. 저도 여러 번 공채에 지원하면서 늘 비슷한 자기소개서를 내고 엇비슷한 과정을 거쳤어요. 개인의 창의력을 평가받는 자리는 아니었죠. ▽계약=치열한 경쟁을 거쳐 정규직으로 입사한 분들이니 누군가가 훨씬 쉽게 그 자리를 얻는 것처럼 보이면 화가 날 거 같아요.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마다 가진 능력은 다양하잖아요. 대학입시처럼 합격과 탈락을 가를 게 아니라 기업이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뽑는 ‘맞춤형 채용’이 된다면 다들 납득하지 않을까요. ▽직원=그건 공채로 뽑힌 이들도 공감할 거예요. 입사하기 위해 정말 많은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땄지만 막상 실무에 들어가면 쓸모없는 게 많아요. 현장에서 필요한 지식은 입사해서 완전히 새로 배워야 하죠. ▽계약=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는 만큼 기업들도 채용 방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좋은 사람을 뽑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건 알아요. 하지만 수십 년째 크게 바뀌지 않은 방식으로 채용이 이뤄지고 있는 건 문제 아닐까요. 좀 더 정교한 채용이 이뤄지면 청년끼리 공정한 채용을 두고 싸울 일도 줄어들 것 같아요.조응형 yesbro@donga.com·전남혁·이지윤 기자}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위)가 2일 천안함 피격 사건을 재조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합조단)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좌초설을 계속 제기한 신상철 씨의 진정을 지난해 12월 수용해 재조사 개시를 결정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자 이를 뒤집은 것이다. 진상위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진정 사건에 대해 위원회 전체회의 결과 7인 위원이 모두 참석해 만장일치로 ‘각하’ 결정했다”고 밝혔다. 각하 결정은 오전 11시 회의 개시 후 30분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이인람 위원장은 전날(1일) 전사자 유족 등을 면담한 뒤 “사안의 성격상 최대한 신속하게 각하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결정할 예정”이라면서 긴급회의 개최를 예고한 바 있다. 진상위는 각하 이유에 대해 “진정인(신 씨)이 천안함 사고를 목격했거나 목격한 사람에게 그 사실을 직접 전해 들은 자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부터 1일까지 신 씨가 진정인 요건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재조사를 결정했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돌연 번복한 경위에 대해 진상위 관계자는 “유족 면담 등의 결과를 두루 고려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군 안팎에선 유족과 생존 장병의 반발, 비난 여론 확산 등 파장이 커지자 진상위가 ‘백기’를 든 걸로 보고 있다. 진상위의 재조사 결정을 접한 유족들은 즉각 철회와 사과를 요구했고, 전준영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장은 소셜미디어에 “나라가 미쳤다. 몸에 휘발유 뿌리고 청와대 앞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인터넷에도 진상위와 정부를 비판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특히 군은 지난해 12월 진상위로부터 재조사 개시 결정문을 통보받고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실무 선에서 전결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진상위가 국방부 조사본부에 통보한 19건의 결정문에 천안함 재조사 건도 포함돼 있었는데 실무자가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전결 처리했다는 것이다. 진상위의 재조사 결정에 대해 “타 기관 업무에 대해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던 군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사안의 중대성을 간과하는 바람에 유족과 생존 장병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논란을 키웠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진상위가 논란이 불거진 지 이틀 만에 각하를 결정한 데 대해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이번 사태가 정치적 역풍으로 번지자 청와대가 진화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는 이날 브리핑에서 “위원회 결정 과정에는 청와대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면서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당시 장병들에게 위로와 함께 깊은 경의를 표했다. 이것이 대통령의 진심”이라고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함장 장병들에 대한 보답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성우 천안함 46용사 유족회장은 “진정이 접수된 때부터 지난해 말 조사 개시를 결정하게 된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위원회 차원에서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에게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천안함 생존 병사 안재근 씨(30)는 “대통령이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생존 장병들을 돕겠다’고 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위원회의 재조사 소식을 듣게 돼 배신감을 느꼈고 먼저 간 전우들에게 죄책감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2015년 북한군의 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예비역 중사도 2일 페이스북에 “천안함 재조사가 무슨 말이냐”며 “북한이 왜 그리도 좋냐”고 분노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박효목·조응형 기자}
이달 초 서울 강남의 다가구주택에서 대낮에 5억 원이 넘는 현금을 훔쳐 달아났던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집에 거금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인으로부터 듣고 범행에 가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이달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한 다가구주택에서 현금 약 5억7000만 원을 훔쳐 달아난 혐의(특수절도)로 A 씨 등 4명을 최근 검거했다. 이들은 모두 구속 수감돼 19일 검찰에 송치됐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 씨는 피해자의 지인으로부터 피해자 집에 거금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B 씨와 범행을 공모한 뒤 집을 찾아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피해자를 지켜봤다. 피해자가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몰래 촬영해 도어록 비밀번호를 알아냈다고 한다. A 씨 등은 또 다른 2명도 범행에 끌어들였다. 이들에게 “집에서 돈을 가지고 나오면 3000만 원을 주겠다”며 빈집털이를 청탁했다. 실제로 범행 당일 피해자가 집 앞에서 마주쳤던 두 사람이었다. 이들은 피해자가 소리치며 뒤쫓았으나 재빨리 현장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A 씨와 B 씨는 두 사람이 돈을 훔쳐낸 뒤 약속대로 이들에게 각각 3000만 원을 줬고, 나머지는 약 2억5000만 원씩 나눠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집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실제 범행을 저지른 두 사람의 신원을 파악했다고 한다. 이 2명을 먼저 검거한 뒤 차례로 A 씨 등도 붙잡았다. 일당 중 일부는 피해자에게 돈을 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는 도둑맞은 돈을 투자 목적으로 마련해 집에 보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해군 장교가 서울 강남에서 음주운전으로 택시를 들이받은 뒤 그대로 달아났으나 자신의 집 주차장에 차를 세운 채 잠들어 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해군 A 중령(51)을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과 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중령은 27일 오후 10시 31분경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가 지하철 압구정로데오역 인근 도로에서 교통 신호를 받고 대기 중이던 택시를 뒤에서 들이받은 혐의다. A 중령은 사고 뒤 별 다른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나 영등포구에 있는 자신의 주거지까지 운전한 혐의도 받고 있다. 사고를 당한 택시기사는 허리 등에 경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대면 조사 일정 등을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서울경찰청은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10일까지 ‘보이스피싱 집중 대응팀’이 집중 단속을 벌여 전국 52곳에서 불법 사설 중계기 161대를 철거했다”고 21일 밝혔다. 중계기를 설치, 관리한 보이스피싱 국내조직원 1명도 구속했다. 불법 사설 중계기는 해외에서 건 인터넷전화를 ‘010’ 국내 휴대전화 번호로 바꾸는 데 쓰인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광고를 내 사람을 모은 뒤 월 15만∼20만 원씩 주고 주거지에 사설 중계기를 설치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지난해 서울에서 하루 평균 25건이 발생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11월 해당 범죄를 전담하는 집중 대응팀을 설치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은 수사 대상인 해당 전·현직 직원들이 경기 광명·시흥지구의 신도시 선정과 관련된 내부 정보를 토지 거래에 이용했는지가 핵심이다. 경찰 역시 정부합동조사단이 수사를 의뢰한 20명의 연관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수사 대상자들 가운데 2명이 추가로 전북지역본부에서 근무했던 사실이 드러난 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로써 해당 본부 근무 경력을 가진 이들이 7명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신도시 개발 정보 유출의 주요 경로로 의심받는 과천의왕사업본부(또는 과천사업단)와 1명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게다가 전북지역본부는 12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본부장급 전문위원이 근무한 곳이기도 하다.○ 같은 지역본부 출신끼리 공동 토지 매입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이 입건한 LH 전직 직원인 A 씨와 B 씨는 2018년 1월 경기 광명시 노온사동에 임야 3174m²를 3억 원에 공동 매입했다. 이 땅은 모두 6명이 공동명의로 이름이 올라있다. A 씨와 B 씨는 각각 6분의 1과 12분의 1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B 씨도 가족으로 추정되는 이의 지분을 합치면 6분의 1이 된다. A 씨는 2010년 전북지역본부로 발령을 받았고, 2012년에는 전북지역본부의 혁신도시사업 관련 부서에서 근무했다. 한 광역자치단체의 정책실명제 자료에는 2013년에도 A 씨가 전북지역본부에 근무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가 있다. 2000년대 중반 전북지역본부에서 한 차례 근무한 경력이 있는 B 씨는 2011년 전북지역본부 부장급으로 발령받았다. 두 사람과 함께 땅을 매입한 C 씨도 2016∼2017년 전북지역본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전북지역본부가 주목받은 계기는 12일 전북본부장을 지낸 전문위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전문위원은 유서에 “2018∼2019년 지역 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해당 본부에서 뭔가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추정되는 대목이다. 경찰에 따르면 현재 수사 중인 13명 가운데 전문위원과 전북지역본부에서 근무한 시기까지 겹치는 이들은 3명이다. 이들은 2, 3급 직원으로 당시 주거복지사업단이나 토지판매업무 관련 부서에서 일했다. 2018년 2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각각 광명·시흥지구 내 농지를 매입했다. B 씨는 또 다른 토지를 매입한 현직 전북지역본부 직원과도 연결돼 있다. 숨진 전 본부장과 근무 시기가 겹치는 3명 가운데 1명이다. 해당 직원의 부인은 2017년 7월 노온사동의 1623m² 농지를 다른 2명과 함께 공동으로 매입했다. 이들 중 1명이 B 씨의 지인으로 파악된다. 7명 중 나머지 1명은 2014년 전북지역본부에서 근무한 뒤 2015∼2018년 경기지역본부 과천사업단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 직원은 2018년 4월 경기 시흥시 무지내동 5905m²를 매입했다.○ 경찰, 의혹 직원들 내사 착수 경찰 수사의 핵심은 이들이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어떤 비밀로 이익을 취했는가 하는 점이다. LH 직원으로 근무하며 3기 신도시에 대한 정보가 어떠한 경로로 흘러들어 갔는지 규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9일 경찰이 LH 본사의 전산망을 압수수색해 이메일과 메신저 내용 등을 확보한 것도 이를 위한 증거 확보 차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합수본)는 주말 동안 정부합동조사단으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은 20명을 검토해 이들 가운데 아직 입건되지 않은 7명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2명)와 경기남부경찰청(3명), 경기북부경찰청(1명), 전북경찰청(1명)으로 배당해 내사하도록 지시했다. 경찰 관계자는 “근무지 등을 고려한 것”이라며 “중대범죄수사과에 배당된 2명의 경우는 이미 수집된 첩보가 있어 두 사안을 함께 살펴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명·시흥지구 일대 10개 필지를 매입해 ‘선생님’으로 불리던 인물과 함께 토지를 매입했던 2명이 경기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서 토지를 추가로 매입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들은 지난해 4월 과림동의 558m² 크기 대지와 연면적 485.31m² 크기의 2층 건물을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권기범 kaki@donga.com·조응형·박종민 기자}

정부합동조사단과 경찰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조사하던 와중에도 경기 광명·시흥의 신도시 개발예정지에서는 투기로 의심되는 정황이 지속적으로 목격됐다. 경기 광명시 옥길동의 3355m² 규모 밭에서는 10일 나무 식재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곳은 광명·시흥 일대 10개 필지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LH 경기지역본부 3급 직원의 옥길동 땅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이다. 인부들은 7일부터 4일간 이곳에 무궁화와 단풍나무 등을 심고 잡초가 자라지 않게 부직포를 덮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곳은 지난해 8월 총 6명이 지분을 쪼개 매입했다. 그 전까진 한 농민이 1982년부턴 38년간 보유했다. 인근 주민들은 “땅 주인이 와서 밭을 살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무 심기 작업도 모두 용역업체 인부들이 했다”고 말했다. 용역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의뢰받은 대로 나무를 심기만 했다. 의뢰한 사람에 대해서는 모른다”며 말을 아끼다가 “갑자기 안 심던 나무를 심은 걸 보면 투기가 아니겠느냐”라고 귀띔했다. 이 토지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사용 목적을 뜻하는 지목 항목이 ‘논(畓)’으로 표기되어 있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달 말부터 덤프트럭이 동원돼 흙을 메워 밭으로 만드는 작업이 진행됐다고 한다. 한 토지 전문 감정평가사는 “투기 목적으로 땅을 매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손이 많이 가는 논농사를 짓기가 어려워 논을 매입한 경우 밭으로 바꾼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실이 11일 광명시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해당 토지 소유주들은 땅을 매입하며 제출한 농업경영계획서에 주 재배 예정 작물은 ‘벼’로, 노동력 확보 방안은 ‘자기노동력’으로 기재했다. 재배 예정 작물을 사실과 다르게 적거나 직접 농사를 지을 것처럼 써놓고 실제로는 작업 인부를 동원하는 것은 투기 의혹을 받는 LH 직원들이 사용했던 수법이다. 신도시 개발예정지인 시흥시 과림동에는 최근 투기 의혹이 불거진 뒤 묘목 식재 등 작업이 중단된 곳도 있다. 이날 과림동의 한 논에는 중앙에 직사각형 형태의 녹색 펜스가 쳐져있고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철골 등 자재가 쌓여 있었다. 이곳은 1978년 이후 거래가 없다가 올 1월 2명에게 분할돼 거래됐다. 인근의 한 업체 관리인은 “2월 중순까지 한창 이런저런 작업을 하더니 2월 말부터 갑자기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고 있다”며 “투기 관련 뉴스가 계속 나오니 몸을 사리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과림동은 LH 직원들이 매입한 땅 중 7개 필지가 포함된 곳이다. 과림동 주민에게 “LH 직원에게 소개를 받아 산 땅”이라고 공공연히 밝힌 땅 소유주도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과림동의 1056m² 규모 밭을 매입한 한 소유주는 동네 주민에게 인사를 하면서 “LH에서 이곳을 사면 곧 개발제한이 풀린다고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취재팀이 해당 소유자의 밭에 가보니 대형 비닐하우스 안에 150cm 높이의 대추나무 묘목들이 1m 간격으로 심어져 있었다. 한 주민은 “(땅 주인이) LH 직원과 친하다고 얘기하더라”라며 “밭을 산 뒤 대추나무 묘목을 심어놓고 올해 1월 그 위로 비닐하우스를 덮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무가 커야 하는데 빽빽이 심어놓고, 그 위로 비닐하우스를 덮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다. 나무를 키우려는 목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조응형 yesbro@donga.com / 광명·시흥=이지윤·오승준 기자}

정부합동조사단과 경찰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조사하던 와중에도 경기 광명·시흥의 신도시 개발예정지에서는 투기로 의심되는 정황이 지속적으로 목격됐다. 경기 광명시 옥길동의 3355㎡ 규모 밭에서는 10일 나무 식재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곳은 광명·시흥 일대 10개 필지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LH 경기지역본부 3급 직원의 옥길동 땅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이다. 인부들은 7일부터 4일간 이 곳에 무궁화와 단풍나무 등을 심고 잡초가 자라지 않게 부직포를 덮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 곳은 지난해 8월 총 6명이 지분을 쪼개 매입했다. 그 전까진 한 농민이 1982년부턴 38년 간 보유했다. 인근 주민들은 “땅 주인이 와서 밭을 살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무 심기 작업도 모두 용역 업체 인부들이 했다”고 말했다. 용역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의뢰받은 대로 나무를 심기만 했다. 의뢰한 사람에 대해서는 모른다”며 말을 아끼다가 “갑자기 안 심던 나무를 심은 걸 보면 투기가 아니겠느냐”라고 귀띔했다. 이 토지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사용 목적을 뜻하는 지목 항목이 ‘논(畓)’으로 표기되어 있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달 말부터 덤프트럭이 동원돼 흙을 매워 밭으로 만드는 작업이 진행됐다고 한다. 한 토지 전문 감정평가사는 “투기 목적으로 땅을 매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손이 많이 가는 논농사를 짓기가 어려워 논을 매입한 경우 대부분 밭으로 바꾼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실이 11일 광명시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해당 토지 소유주들은 땅을 매입하며 제출한 농업경영계획서에 주 재배 예정 작물은 ‘벼’로, 노동력 확보 방안은 ‘자기노동력’으로 기재했다. 재배 예정 작물을 사실과 다르게 적거나 직접 농사를 지을 것처럼 써놓고 실제로는 작업 인부를 동원하는 것은 투기 의혹을 받는 LH 직원들이 사용했던 수법이다. 신도시 개발예정지인 시흥시 과림동에는 최근 투기 의혹이 불거진 뒤 묘목 식재 등 작업이 중단된 곳도 있다. 이날 과림동의 한 논에는 중앙에 직사각형 형태의 녹색 펜스가 쳐져있고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철골 등 자재가 쌓여있었다. 이곳은 1978년 이후 거래가 없다가 올 1월 2명에게 분할돼 거래됐다. 인근의 한 업체 관리인은 “2월 중순까지 한창 이런저런 작업을 하더니 2월말부터 갑자기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고 있다”며 “투기 관련 뉴스가 계속 나오니 몸을 사리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과림동은 LH 직원들이 매입한 땅 중 7개 필지가 포함된 곳이다. 과림동 주민에게 “LH 직원에게 소개를 받아 산 땅”이라고 공공연히 밝힌 땅 소유주도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과림동의 1056㎡ 규모의 밭을 매입한 한 소유주는 동네 주민에게 인사를 하면서 “LH에서 이곳을 사면 곧 개발제한이 풀린다고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취재팀이 해당 소유자의 밭에 가보니 대형 비닐하우스 안에 1m 50㎝ 높이의 대추나무 묘목들이 1m 간격으로 심어져있었다. 한 주민은 “(땅주인이) LH 직원이랑 친하다고 얘기하더라”며 “밭을 산 뒤 대추나무 묘목을 심어놓고 올해 1월 그 위로 비닐하우스를 덮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무가 커야 하는데 빽빽이 심어놓고, 그 위로 비닐하우스를 덮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다. 나무를 키우려는 목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조응형기자 yesbro@donga.com이지윤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