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신석호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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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석호 전무입니다.

kyle@donga.com

취재분야

2025-11-19~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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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연평도 포격 도발]임준영 상병 감투정신 화제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이 있던 23일 해병대 연평부대에서 철모가 불에 타 녹는줄도 모르고 북한 포진지를 향해 대응포격을 한 임준영 상병(포7중대)의 감투정신이 해병대원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훈련 중 기습을 당한 임 상병은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직감적으로 대응사격을 위해 K-9 자주포를 포상에 위치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적의 포격으로 곳곳에서 터지는 포탄의 화염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화염과 굉음 속에서도 적에게 즉각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폭발로 인한 뜨거운 화마(火魔)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뿐인 임 상병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군 포격이 빚어낸 화염은 임 상병을 휘감았고 철모 외피에 불이 붙어 철모는 타들어 갔다. 급기야 불길은 철모의 턱 끈을 타고 내려왔다. 턱 끈과 전투복이 불길로 까맣게 그을렸지만 임 상병은 대응사격에 여념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임 상병은 입술 위쪽 부분(인중)에 화상을 입었다. 임 상병은 “오로지 적에게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나니 철모와 턱 끈이 타버린 상태였다”고 말했다. 임 상병의 군인정신은 25일 불에 탄 철모를 쓴 채 연평부대 피해복구 작업을 하던 임 상병을 발견한 부대 지휘관들에 의해 알려졌다.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은 이날 “폭격과 화염의 공포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해병대 정신을 발휘한 임 상병의 철모를 해병대 감투정신의 상징으로 삼아 영원히 해병대 박물관에 보관하라”고 지시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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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연평도 포격 도발]숨막히는 남북관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올 8월 이후 잠시 회복되는 듯했던 남북관계는 다시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이번 도발로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인 연평도 주민들까지 피해를 본 사실에 국민의 대북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건과 이에 대한 정부의 5·24 대북 조치로 남북관계는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전면 단절됐었다. 하지만 올해 8월 중순 북한의 신의주 지역 등에 집중된 수해 피해를 계기로 남북관계는 회복되는 추세였다. 남측이 수해 지원을 제의하고 북측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남북 당국 간 공식 대화의 물꼬가 트였고, 이는 55호 대승호 석방과 이산가족 상봉행사로 이어졌다.남북관계의 회복엔 6월부터 물밑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남북 당국 간 비공식 접촉도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체제유지 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와 남한의 국가정보원 등 정보 당국의 비밀 접촉에서 남북한은 천안함 사건의 해결과 남북관계 정상화의 길을 모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8월 이후 관계회복 국면에서 남북 군사회담, 적십자회담 등 당국 간 공개 접촉이 이뤄진 것도 비밀접촉의 결과라는 관측이 나왔다.그러나 북측이 천안함 폭침사건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등에 대해 성의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남측의 요구를 무시하고 대신 연간 이산가족상봉 3, 4차례 정례화의 대가로 쌀 50만 t과 비료 30만 t,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만 추구하면서 당국 간 대화가 다시 난항에 부닥친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터졌다.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은 군사적 도발과 대화 제의를 반복하며 남한의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는 ‘때리고 어르기’식 이중전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북한은 25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에 있는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적십자회담을 개최하기로 약속한 상황에서 돌연 군사 도발을 감행했다.북한은 2009년 이후 상반기에는 군사적 도발을, 하반기에는 정상회담 등 대화 제의를 하는 등 6개월 주기의 이중전략 패턴을 보였다. 북측이 올해 6월부터 남북 당국 간 비밀접촉을 제의해 왔다고 보면 10월까지 5개월 동안의 짧은 대남 유화기를 정리하고 다시 무력 공세로 돌아선 셈이 된다.이번 사건으로 대북 협상파들의 입지는 상당히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1990년대부터 우라늄 농축 기술을 개발한 사실이 드러났고, 이번 사건으로 체제 생존을 위해서는 남한 민간인의 대량 살상도 감행할 수 있음이 증명됐기 때문이다.시민사회 내부에서도 당분간 반북한 정서가 강화되고 북한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단체인 자유주의진보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우리는 북한의 도발을 단호히 규탄하며 이명박 정부에 북한이 도발한다고 해서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포기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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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연평도 포격 도발]책임 떠넘긴 北… 발표 ‘격’은 낮아

    북한은 23일 남측이 먼저 군사적 도발을 해 대응조치로 연평도에 해안포 공격을 했다고 책임을 남측에 떠넘겼다.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군 최고사령부는 연평도 해안포 공격에 관한 ‘보도’에서 “남조선이 거듭된 경고에도 23일 13시부터 연평도 일대의 우리 측 영해에 포사격을 가하는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면서 “우리는 군사도발에 강력한 물리적 타격으로 대응하는 단호한 군사적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오후 7시 발표된 이 보도는 연평도 해안포 사격 이후 나온 북한의 첫 언급이다. 북한에서 보도는 주요 사안에 대해 기관이나 단체가 입장을 표명할 때 쓰는 형식으로 ‘담화’나 ‘성명’보다 격이 낮다.최고사령부 보도는 이어 “도발자들의 불질을 무자비한 불벼락으로 다스리는 것은 우리 군대의 전통적 대응방식”이라며 “남조선은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엄숙한 경고를 똑똑히 새겨들어야 한다”고 위협했다.이 보도는 “앞으로 조선 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 존재할 것”이라면서 “남조선이 조국의 영해를 0.001mm라도 침범하면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무자비한 군사적 대응타격을 계속 가할 것”이라고 협박했다.북한군은 1999년 6월 15일의 1차 연평해전 직후 열린 판문점 장성급 회담에서 서해에 새로운 해상분계선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어 9월 2일 총참모부 ‘특별보도’를 통해 북방한계선(NLL) 무효화를 선언한 뒤 ‘인민군 해상 군사통제수역’을 설정했다.북한이 일방적으로 정한 이 수역의 경계선은 NLL 이남까지 내려와 있어, 연평도 등 서해 5도가 모두 북측 수역에 들어가게 된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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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연평도 포격 도발]北 왜 도발했나

    북한이 12일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 시설을 공개한 데 이어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을 감행한 것은 미국과 남한에 대한 특유의 동시다발적 ‘벼랑 끝 전술’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잇단 도발은 임기를 2년 정도 남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한국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달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패한 뒤 정치적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상황이다. 미국 행정부 내에서는 ‘전략적 인내’ 이후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던 상황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임기 중 최대 치적으로 기록될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끝낸 뒤 임기 후반 국정운영의 기조를 검토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북한은 정확히 이 시기를 조준했다. 특히 북한이 원심분리기 시설 공개를 통해 우라늄 핵개발이라는 대외 시위(示威)를 했음에도 한미 양국이 대북 강경 자세를 누그러뜨리기는커녕 오히려 대북 제재를 강화할 태세를 보이자 밀어붙이기식 연쇄 도발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으로선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 추가적인 무력시위나 비무장지대(DMZ) 침범 등 무력 도발도 감행할 수 있다. 북한은 통상 12월에는 정책의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조용히 ‘총화(반성하고 토론하는 일)’를 하고 새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대외 강경조치는 그동안의 대외 유화정책을 내년 상반기쯤 위협 정책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대체적인 전망과 달리 그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외부의 전망보다 빨리 대외 공세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무엇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체제 조기 구축을 위한 조급증을 반영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올해 9월 28일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외부에 얼굴을 드러낸 김정은은 주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정책적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 강경파가 충성경쟁 차원에서 대미, 대남 공세 카드를 들이밀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번 공세는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것으로 알려진 지난해 초부터 계획된 것이라는 징후도 농후하다. 김 위원장은 김정은의 생일인 1월 8일 후계자 지명 교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군 총참모부는 그 직후인 1월 17일 성명을 내고 대남 군사대결 등 군사조치 3개항을 발표했고 이후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도발의 강도를 높여왔다. 이번 도발은 김정은의 등장과 함께 벼락 승진을 한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과 김영철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장, 그리고 서해 NLL 인근의 작전 수행을 책임지고 있는 김격식 인민군 4군단장 등의 합작품일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영호와 김영철 등이 9월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부위원장을 맡은 당 중앙군사위 요직에 포진함에 따라 대남 강경책을 펼칠 것을 우려해 왔다. 2007년 4월부터 인민군 총참모장으로 일했던 김격식은 지난해 2월 4군단장으로 부임한 뒤 김 위원장의 특명을 받고 서해 NLL 무력화 작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김 위원장은 그가 부임할 때 “남조선에 본때를 보여줘라. 잘하고 오라”며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지 폭발 사건을 진두지휘한 인물로 알려졌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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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원심분리기 공개’ 파문]北‘핵엄포’ 문답풀이

    Q. 정부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 시설을 공개한 것에 대해 오래전부터 관련 사실을 파악해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언제부터 어떤 정황을 근거로 얼마나 자세한 정보를 파악한 것일까. A. 정부 고위 당국자는 22일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은 오랫동안 주시해 왔고 의구심을 가져왔던 부분”이라며 “새롭거나 놀랄 만한 상황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염려해 왔던 부분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북측 관계자들은 12일 북한 영변 핵시설에서 원심분리기를 목격한 시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에게 “우라늄농축 시설을 지난해 4월부터 건설하기 시작했고 얼마 전 운용을 완료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 당국자는 “그렇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라늄농축 설비를 그렇게 단시간에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미 1990년대부터 UEP를 시작했으며 2001년엔 원심분리기 제작용 알루미늄 강관 2600여 개를 남천강무역회사를 통해 러시아로부터 반입한 사실이 한미 정보당국에 포착됐다. 북한은 2002년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방북했을 당시 UEP의 존재를 사실상 시인했다. 이후 북한은 관련 의혹을 부인했지만 2004년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북한의 UEP 개발을 지원했다고 시인했다. 이어 2005년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칸 박사가 1990년대 초부터 북한에 원심분리기 본체와 관련 부품, 설계도를 보냈다고 폭로했다. 그런데도 북한이 헤커 소장 등을 통해 원심분리기 2000개를 공개하기 전까지 한국과 미국은 북한 UEP의 수준이나 규모 등 구체적 실체에 대한 정보는 입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도 22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북한 발표의 진위를 파악할 정도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지를 묻자 “명확하게 확인은 되지 않아 추가 확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까지도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 경수로 건설 및 UEP 수준 등에 대한 질문에 “1990년대 파키스탄으로부터 원심분리기 20여 기를 도입했다는 것 외에 실제로 확인되는 것은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여 왔다. 결국 북한의 잇단 우라늄 농축 발언이 단순히 ‘블러핑(허풍)’이 아님은 알고 있었지만 이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는 갖고 있지 못했던 셈이다. Q. 북한은 12일 영변을 방문한 헤커 소장에게 원심분리기를 공개하면서 설비를 자체 제작했다고 말했다. 믿을 수 있는 말일까. A. 북한 관계자들은 헤커 소장에게 “모든 부품은 국내에서 제작됐다”고 주장했다. 헤커 소장이 현장에서 ‘원심분리기가 P-1형(파키스탄 개발)이냐’고 묻자 북한 책임자는 “아니다. 다만 네덜란드의 알메로와 일본의 로카쇼무라를 모델로 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1998년부터 2001년 사이에 칸 박사로부터 구형 원심분리기(P-1형) 20대와 신형 원심분리기(P-2형) 설계도를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거론한 네덜란드는 칸 박사가 핵 기술을 빼낸 곳이다. 하지만 일본과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네덜란드와 일본을 거론한 것은 핵 능력의 수준이나 출처가 정확하게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전략 차원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부 당국은 북한의 원심분리기가 파키스탄의 P-2형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란과의 핵 기술 거래 의혹도 해소되지 않고 있어 이란과의 연계 가능성도 있다. 결국 북한이 ‘자체 제작’을 강조한 이면에는 파키스탄 또는 다른 국가와의 핵 관련 의혹을 불식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Q. 헤커 소장은 20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북측 고위 관계자가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뮈니케가 문제 해결의 좋은 출발점’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를 들고 나오는 의도는 무엇인가. A. 북-미 코뮈니케는 2000년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미국 고위 관리들과 함께 발표한 것으로 북-미 간 관계개선이 기본 내용이다.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등 적대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새삼 미국과의 적대관계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북-미 코뮈니케 얘기를 꺼낸 것은 북핵 문제는 북-미 간에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관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한미 간의 공조에 균열을 내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과 양자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꺼리고 있어 북-미 코뮈니케와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북한의 우라늄 농축 활동은 미국이 우려하는 핵 확산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남북관계의 개선을 기다리기보다 기존 대북정책의 변화를 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Q. 북한이 이후 추가로 들고 나올 수 있는 핵 카드는 무엇인가. A. 북한이 지난해 2차 핵실험을 한 뒤인 6월 1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우라늄 농축 사실을 시인한 이후 이번에 핵심 설비인 원심분리기 공개 카드를 꺼내든 것은 전형적인 ‘살라미 전술’이다. 핵 카드를 여러 단계로 쪼개 단계적으로 공개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번 카드가 먹혀들지 않거나 추가로 위협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우라늄 농축 작업을 거친 농축우라늄 표본을 제3자나 언론을 통해 공개할 수 있다. 현재 터파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경수로 건설사업의 세부 공정을 공개하는 방법도 있다. 내년 상반기쯤엔 3차 핵실험을 단행할 수도 있다. 이후에도 북한이 활용할 카드는 남아 있다. △핵무기(폭발장치) 실물 공개 △이를 핵탄두로 장착한 미사일 시험발사 △핵무기 실전 배치 △핵무기와 물질, 기술의 제3국 이전 위협 등이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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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원심분리기 공개’ 파문]농축 설비, 영변 山아래서 만들어 옮긴듯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21일 지적한 대로 북한이 공개한 영변 핵 단지의 원심분리기 시설 외에 비밀리에 다른 지역에서 우라늄 농축 설비를 구축했다면 그곳은 영변 핵 단지의 서남쪽 수리봉(해발 301m) 아래인 평북 영변군 서위리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이 원심분리기 설비를 목격한 장소는 북한의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50MW 시험용 원자로가 있는 이른바 ‘분강지구(분강노동자지구)’인 것으로 보인다. 묘향산에서 흘러내린 지천(支川)이 아래 청천강으로 흘러가면서 영변 시가지를 싸고도는 지역으로 영변 시가지에서 서남쪽 방향에 있다. ISIS는 지난해 4월 이 지역에 원심분리기 설치 공장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제의 설비가 어디선가 이전해 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한미 정보당국은 이미 2008년 초 북한이 우라늄 농축 공장을 건설해 가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며 이 지하시설의 위치로 서위리를 지목했다. 남북이 공동으로 펴낸 조선향토대백과사전에는 약산동과 서산리 인근을 포함하는 ‘분강지구’라는 지명은 나와 있지 않지만 수리산 밑의 서위리는 정식 행정구역으로 표시돼 있다. 수리봉 아래에 있어 북한이 비밀 지하시설을 만들어 운영하기 쉬운 지형인 데다 분강지구와 가까워 북한이 이곳에서 원심분리기 설비를 만든 뒤 현재의 자리에 옮겼을 가능성이 크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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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원심분리기 2000개 가동”]전문가 분석

    북한이 ‘우라늄 농축 시설 보여주기’ 카드를 들고 나온 배경엔 6자회담 등에서의 북-미 대화를 앞두고 협상의 지렛대를 높이는 한편 핵 능력을 키우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 문제가 핵 확산 문제로 커질 수 있다며 정부와 국제사회의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북-미 대화 지렛대 키우기김성한 고려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는 21일 “정부와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원심분리기를 보여주며 거꾸로 화답했다”며 “국제사회의 제재 국면을 협상 국면으로 돌려놓되 유리한 국면에서 협상을 하려는 의도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정책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상황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나자 선수를 쳐서 상황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6자회담을 앞두고 몸집을 불리는 것이 작은 의도라면 핵보유국으로 가는 것이 큰 의도”라며 “경수로 건설을 명분삼아 우라늄 농축을 합법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며 앞으로 수소폭탄 프로그램도 만지작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사회 핵 안보에 심각한 위협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우라늄 농축을 통해 핵을 개발하는 것은 선진국에게도 어려운 기술”이라며 “북한이 실제로 핵 개발을 할 정도의 기술과 시설을 갖추었는지, 이번에 공개된 시설이 제대로 작동되는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한 교수는 “국제사회의 제재국면에서 원심분리기를 수백∼2000개 설치해 가동하고 있다면 외부의 도움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란의 우라늄 농축 기술이 이전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 북-미 협상하되 ‘살라미 전술’ 극복해야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북한은 이미 지난해 4월 중유 공급이 중단되자 우라늄 농축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에서 핵은 단순히 협상의 대상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제거하지 않고 북한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성과를 얻기 어렵다”며 “6자회담 틀 속에서 북-미 양자가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김성한 교수는 “북한은 지금까지 핵 관련 문제를 일으킨 뒤 그 당시까지의 활동을 동결하는 합의를 하고 정치 경제적 대가를 챙긴 뒤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다시 합의를 어기고 문제를 만드는 방식을 반복해 왔다”며 “한국과 국제사회가 공조해 북한의 이 같은 ‘살라미(salami) 전술’을 뛰어넘을 새로운 전술을 들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우 연구위원은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을 통해 중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하도록 하는 것과 유엔을 통한 제재 정도이지만 큰 효과를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 201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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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올해 개정된 경제관련법 살펴보니…

    북한이 화폐개혁과 외환통제 정책 실패 이후인 올해 상반기에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조치를 강화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 4월 6일 ‘인민계획법’을 개정하면서 국가 계획의 정도를 이전보다 강화했다. 북한은 2002년 7월 1일 제한적인 경제개혁 조치인 ‘7·1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단행하기에 앞서 2001년 5월 같은 법을 개정해 국가 계획화의 정도를 일부 완화했으나 이번에 이를 모두 원상복구 조치했다. 개정법에는 북한 계획경제의 상징적인 지표로 2001년 법안에서 삭제됐던 ‘예비수자·통제수자’(기업이 보고하는 생산계획 숫자 및 국가가 확정한 생산량)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했다. 공장과 기업 등 개별 생산주체들이 국가계획 과정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한 2001년 신설 조항은 사라지고 계획이 일방적으로 위(중앙계획기관)에서 아래(개별 생산주체들)로 하달되게 한 과거 조항이 부활됐다. 개정법은 또 계획의 법적 이행의무를 강조하고 계획 수행의 우선순위에 수출제품 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최고지도자가 직접 조달을 지시한 물자인 이른바 ‘주석폰드’를 ‘중요대상’이라는 이름으로 부활시켰다. 김 위원장의 정치적 하사품 등 통치물자 조달을 위한 ‘주석폰드’는 북한의 계획경제 메커니즘을 형해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한편 북한은 올해 3월 30일 개정한 ‘평양시 관리법’에서 수도인 평양시의 국가적 계획 관리원칙을 명시하고 평양시의 관리 및 감독 통제 기관에 한국의 시청에 해당하는 인민위원회 이외에 중앙정부 기관인 국가계획위원회와 내각을 추가했다. 개정법은 또 평양 주민들이 시민증을 늘 가지고 다니도록 규정해 인구에 대한 관리 통제를 강화했다. 또 평양시를 기존의 ‘혁명의 성지’라는 표현 대신 ‘주체의 성지’ ‘조선 인민의 심장’ ‘나라의 얼굴’이라고 표현해 3대 세습 확립을 위해 수도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같은 일련의 보수적인 법개정에 비춰볼 때 최근 막이 오른 ‘김정은 시대’에도 7·1조치의 부활 등 경제적 개혁 정책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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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원 등 당국간 채널 끊기자… 北, 南 정치권과 비선 재가동

    북한 조선노동당 소속 대남정책 총괄부서인 통일전선부가 최근 다시 비선(秘線) 라인을 통해 남한 정치권 인사들과의 접촉을 시도하면서 쌀과 비료 등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을 독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대북 소식통은 16일 “한동안 활동을 멈췄던 통전부 비선 라인들이 최근 다시 ‘지난해 10월 임태희 노동부 장관(현 대통령실장)이 싱가포르에서 한 합의(정상회담 개최와 대규모 식량 및 비료 지원)만이라도 지키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북한은 지난해 12월 여권 중진들을 통해 정상회담 개최의 대가로 쌀 30만 t, 비료 30만 t을 요구했으며 지난달 26일 개성에서 열린 적십자회담에서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의 대가로 연간 쌀 50만 t, 비료 30만 t을 공식 요구했다.비선 라인이 다시 움직이는 것은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인 올해 6∼9월 간헐적으로 가동된 것으로 알려진 남측 국가정보원 등과 북측 국가안전보위부 사이의 ‘당국 간 비공식 채널’이 다시 끊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정부는 북측의 요구에 부정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와 같은 남북관계를 답습하면 우리는 영원히 평화를 갖지 못하고 북한은 영원히 가난을 면치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북한은 지난해 싱가포르 접촉에서 정상회담 개최 및 경제지원을 처음으로 요구한 이후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의 당국 간 비밀 접촉, 여권 중진 인사들과의 비선 접촉, 국정원 등과의 당국 간 비밀 접촉 등을 통해 끊임없이 같은 요구를 해왔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1년만에 드러난 대북 비선라인...왜 꼬였나▲2010년 8월3일 동아뉴스스테이션}

    • 201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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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원 정신과 의사 전진용 씨의 ‘탈북자와 사는 법’

    “병 보러(치료하러) 오셨나요? 아이쿠 바쁘시겠네요(고생하시겠네요).” 북한이탈주민(탈북자) 정착 지원시설 하나원에서 3년째 정신과 진료를 하고 있는 공중보건의 전진용 씨(34·사진)는 처음 만나는 환자에게 일부러 북한 말을 섞어 쓴다. 낯선 남한 땅에 와 미래를 걱정하는 탈북자들은 고향 말을 쓰는 전 씨에게 “선생님, 우리말을 어찌 그리 잘하시나요. 여기서 의사질(의사 생활) 많이 하셨군요”라며 닫혔던 마음을 연다고 한다. 전 씨는 “분단 65년 동안 남북한의 언어에도 차이가 커졌기 때문에 탈북자와 대화할 때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잘 이해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오해가 없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남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도 자존심 때문에 확인하거나 되묻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적극적이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위장병 환자에게 ‘내시경 검사를 해야 하니 금식하세요. 밥 먹지 마시고 물도 마시면 안 됩니다’라고 설명했는데 내시경 검사를 한 병원에서 ‘환자가 두유를 먹었다’고 불평해 왔어요. 환자에게 물었더니 ‘말하신 대로 밥하고 물은 안 먹었다’고 항변하더군요. ‘금식’이라는 말을 못 알아들은 거죠.” 전 씨는 정신과 의사로는 처음으로 2008년 4월 하나원 내 하나의원에 부임해 현재까지 탈북자 4000여 명을 치료했다. 그는 탈북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이들과 소통을 잘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사회주의 및 독재 체제를 거쳤고 1990년에는 수백만 명이 죽는 극심한 경제난이 있었다는 정도의 지식은 갖고 탈북자들을 대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탈북자들의 독특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피부 상처에 치약이나 된장을 바르는 습성은 의료시설이 열악한 북측에서 몸에 밴 생활이다. 공짜로 나눠 주는 물건은 한 번에 많이 챙기려 하고 가끔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인색한 것은 경제난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전 씨는 “하지만 ‘탈북자는 다 그렇다’는 과도한 일반화와 고정관념, 지나친 동정이나 관심 등은 그들의 정착을 더 어렵게 만든다”며 “이웃으로 자연스럽게 대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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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민주화위원장에 홍순경 씨, 황장엽 前비서 후임으로 선출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상임부위원장 겸 탈북자동지회 회장(72·사진)이 지난달 사망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후임으로 북한민주화위원장에 선출됐다. 홍 신임 위원장은 3일 자신을 포함한 부위원장 6명과 상무위원 3명이 참가한 위원장선거에서 김성민 부위원장(자유북한방송 대표)보다 많은 표를 얻어 선출됐다고 7일 탈북자들이 전했다. 그는 20일경 열리는 이사회의 추인을 거쳐 위원장에 공식 취임한다. 홍 신임 위원장은 태국 방콕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일하던 1999년 본국의 송환 기도를 피해 탈출한 뒤 2000년 입국했다. 이후 그는 국책연구소 연구위원 등을 지내며 황 전 비서를 최측근에서 보좌해 왔다. 이에 따라 황 전 비서의 사망 이후 탈북자사회는 홍 신임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지도체제가 이끌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민주화위원회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300여 개 탈북자단체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단체로 황 전 비서를 중심으로 북한 민주화운동을 펼쳐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명예위원장으로 김성민 강철환 허광일 안혁 씨 등이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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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軍실세 조명록 사망… 김정은 서열 5위→2위

    북한이 6일 사망한 조명록 인민군 차수(사진)의 장의위원회 명단을 7일 보도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다음으로 3대 세습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이름을 호명했다. 이는 김정은이 명실상부한 북한 권력서열 2위로 뛰어올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했다.조선중앙통신은 7일 조명록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방위 제1부위원장,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일을 위원장으로 하고 북한 고위 인사 170명을 위원으로 한 장의위원회 명단을 전했다. 김정은은 위원 170명 중 가장 먼저 호명됐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 총리,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 뒤를 이었다.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올해 9월 29일 당 대표자회 소식과 함께 기념촬영에 참석한 고위 인사의 명단을 전하면서 김정은을 김 위원장과 정치국 상무위원인 김영남 최영림 이영호 다음인 다섯 번째로 호명한 바 있다.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조명록 같은 고위급의 장의위원회 명단은 특별히 서열을 따진다”며 “김정은이 2인자임을 대내외에 확고히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노동신문은 4일 김정일 부자의 자강도 희천발전소 현지지도 장면을 보도하면서 김정은이 아버지 없이 시찰하는 장면을 부각시키는 등 후계자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정은 내년초 국방위 제1부위원장 오르나 ▼이에 따라 김정은이 내년 초 열릴 것으로 보이는 최고인민회의에서 조명록의 자리를 이어받아 국방위 제1부위원장 자리에 오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5월 당시 김일철 국방위 위원이 해임된 데 이어 조명록이 사망함에 따라 국방위 부위원장은 4명에서 3명으로, 위원은 8명에서 7명으로 줄어 충원 인사가 필요한 상황이다.한편 노동당 중앙위와 중앙군사위, 국방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는 6일 공동 명의의 부고를 내고 “조명록 동지가 장기간 심장병으로 2010년 11월 6일 10시 30분 82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했다”고 밝혔다.공군 출신으로 6·25전쟁 때 비행사로 참전했던 조명록은 공군사령관을 거쳐 1995년 10월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됐으며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에서 국방위 제1부위원장에 선임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은 권부의 2인자로 활동했다.특히 2000년 10월에는 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그러나 2006년 이후 건강이 나빠지면서 사실상 대외활동을 중단했다. 북한 매체가 보도한 그의 공개 활동은 2007년 2회, 2008년 1회, 2009년 3회, 올해 1회 등이었다.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국방위 제1부위원장의 역할은 김정각 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등이 대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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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이명박정부 출범이후 국군포로 상봉 불응

    정부가 3일 금강산에서 시작된 이산가족 상봉 2차 행사를 앞두고 국군포로와 납북자 26명의 생사 확인을 요청했으나 북측은 국군포로 1명의 사망 사실만 확인하고 나머지 25명에 대해서는 ‘생사확인 불가’라고 통보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이번에 생사 확인을 요청한 사람들은 2004년 12월 중국 옌지(延吉)에서 한국 영사관 진입을 앞두고 호텔에 머물다 중국 공안에 잡혀 강제 북송된 한만택 씨(77) 등 국군포로 10명과 1975년 8월 동해에서 형과 함께 납북된 어부 허정수 씨(57) 등 납북자 16명이다. 한 씨는 2005년 납북자 관련 단체들을 통해 육성녹음이 공개된 적이 있지만 현재는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까지 가족과 연락이 오간 것으로 알려진 허 씨에 대해서는 정부와 가족들이 지난해에도 상봉을 위한 생사 확인 신청을 했으나 북측은 ‘연락두절’이라고 통보해 왔다.이런 북측의 태도에 대해 정부는 지난달 26일 개성 자남산여관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성의가 부족한 것 아니냐’며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올해까지 정부가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생사 확인을 요청한 국군포로는 모두 121명으로 이 가운데 28명의 생사가 확인됐고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 14명 중 12명이 가족을 만났다. 정부가 같은 기간 생사 확인을 요청한 납북자 141명에 대해 북측이 생존을 확인한 경우는 17명에 불과했다. 이 중 16명이 가족상봉을 했다. 특히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두 차례의 상봉행사에서 남측의 국군포로 상봉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북측은 그 대신 남측이 국군포로가 아니라 이미 전사 처리한 ‘국군 출신’ 상봉자 5명(2009년 1명, 2010년 4명)을 북측 상봉자 명단에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북측이 국군포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측과의 협상에 활용하기 위해 ‘국군 출신’을 활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3일 금강산에서 시작된 2차 이산가족 상봉에서는 북측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한 국군포로 서필환 씨(1927년생)의 아들 3명이 남측의 삼촌 익환 씨(72)를 만났다. 이번 상봉행사는 1차 때와 같은 방식으로 5일까지 진행된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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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대포폰 민간사찰’ 논란의 전말은 外

    남의 명의로 개설한 휴대전화인 ‘대포폰’은 대개 자신이 통화 당사자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쓰인다. 그래서 대개는 범죄행위에 이용되는 사례가 많다. 이런 대포폰을 ‘민간인 불법사찰’을 주도했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용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더구나 이 대포폰은 청와대 행정관이 넘겨준 것이라고 한다. 국가기관 소속인 이들은 도대체 대포폰으로 무얼 하려 했을까. ■ 청목회 로비 대상으로 확인된 의원들은‘의원 후원회 계좌로 입금하는 대신 현금봉투와 회원 명단을 의원실에 직접 건넸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가 청원경찰법 개정을 위해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을 전달한 방법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부 의원은 이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뒤 계좌에 입금하지 않고 있다가 로비 의혹이 터진 뒤 다시 돌려주기도 했다. ■ 北‘국군포로’ 대신 ‘국군출신’ 상봉으로 전환?2000년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위해 남측이 생사확인을 요구한 국군포로와 납북자에 대해 북측은 대부분 ‘생사확인 불가’라고 통보해 왔다. 북측은 특히 남측이 요구한 국군포로의 상봉은 거부하고 이미 전사 처리된 ‘국군 출신’을 상봉행사에 내보내고 있는데…. ■ 인터넷 콘텐츠 저장소 ‘클라우드 서비스’ 각광웹상에 저장된 콘텐츠를 데스크톱,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기기에 상관없이 꺼내 본다. 저장 공간은 무한대나 다름없다. 이동하면서 업무를 처리하는 데도 적합해 주목받고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다. 그러나 한편으론 데이터 전송속도 개선과 취약한 보안 등 문제점도 제기된다. ■ ‘세계 최고 악단’ 로얄 콘세르트헤바우 지휘자 인터뷰 영국 음반 전문지가 꼽은 세계 10대 오케스트라 목록에서 1위와 6위를 차지한 악단은 한 지휘자가 수장을 겸직하고 있다. 마리스 얀손스(67·사진)다. 이 조사에서 ‘세계 1위’ 악단으로 꼽힌 로얄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12, 13일 내한공연을 펼치는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 美‘돈 풀기’ 기대감에 원화-주가 동반 강세금융시장의 눈과 귀가 온통 미국에 쏠리고 있다. 3일(현지 시간)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시장에 얼마나 돈을 풀 것이냐에 따라 한국 금융시장의 움직임이 달라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풀린 돈이 한국으로 유입돼 환율 금리 물가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201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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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석호]‘반북 좌파’의 커밍아웃을 환영한다

    북한이 9월 28일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시대착오적인 3대 세습을 공식화한 ‘역사적 사건’은 뜻하지 않은 ‘남한 진보 좌파 진영’의 자중지란을 초래했다. 친북을 넘어 종북(從北)이라 지탄받아 온 민주노동당이 다음 날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논평을 내놓자 진보 좌파 진영을 대변해 온 경향신문이 10월 1일자 사설에서 “민노당은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라며 반박하고 나선 것이 발단이었다. 한 달이 흘렀지만 이른바 ‘반북 좌파’와 ‘친북 좌파’의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북한의 3대 세습 시도를 비판해온 한겨레신문과 진보신당, 일부 민주당 의원이 가세하자 ‘친북 좌파’ 진영은 이를 배신이나 변절인 양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반북과 친북의 함수관계를 놓고 다양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 논쟁은 진보 좌파 진영만의 것일 수 없다. 그것은 1945년 민족분단과 1950년 6·25전쟁 후의 남북 냉전구도가 고착화시킨 남한 내 정치 지형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2×2 매트릭스’로 단순화해 x축을 친북이냐 반북이냐(북한에 대한 인식과 태도), y축을 보수 우파냐 진보 좌파냐(경제사회 이슈에서 시장과 국가의 비중에 대한 의견)로 나눌 때 한국의 정치판은 그동안 ‘반북 우파’와 ‘친북 좌파’의 이분법이 지배했다. 자본주의 세계 정치경제사에서 시장우선주의와 국가우선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우파와 좌파의 대립은 보편적인 것이다. 만인 대 만인의 무한경쟁으로 시장의 폐단이 극에 달할 때 국가를 우선시하는 좌파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것이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불러 국가의 비효율성이 커지면 다시 우파에 힘이 실렸다. 현재의 패러다임인 우파 신자유주의도 강자 독식의 무한경쟁과 함께 약자를 배려한 사회안전망을 강조하는 절충의 한 형태다. 하지만 좌파의 이념을 독식한 북한이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키자 남한은 강고한 반북 우파 진영을 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남한 군부 권위주의 독재정권들이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화 세력을 억압하면서 ‘386세대’를 중심으로 좌파의 이념이 들불처럼 번졌고 이들이 대안 체제로 북한을 실제보다 미화하면서 ‘친북 좌파’의 대오가 형성됐다. 이후 이들은 북한 사회주의 체제가 김일성 김정일 1인 독재라는 가장 극우적인 퇴행체제로 변질돼 가는 것을 보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최근 반북 좌파의 모태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자주를 앞세운 친북적 민족해방(NL) 진영과 경쟁하면서 노동자 계급투쟁에 무게를 둬 온 민중민주(PD) 진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한 주류 사회 비판을 위해 반북의 목소리를 숨겼던 이들이 북한의 3대 세습을 계기로 전면에 등장한 것은 가히 정치적 ‘커밍아웃’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반북 논쟁은 진보 좌파의 분화를 촉진하고 결국 진보 좌파의 진화로 귀결될 수 있다. 그래서 이 논쟁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건전한 반북 좌파들이 합리적인 반북 우파들과 생산적인 논의를 하며 우선 한국사회의 기형적이고 협소한 이념적 정치적 공간을 넓히길 기대한다. 이는 남한이 주도하는 바람직한 통일에도 기여할 것이다. 아직도 북한을 두둔하는 종북주의자들의 입지가 줄어들면 3대를 이어 낡은 수령 절대주의 독재국가를 유지하려는 북한의 우군도 세가 약화되기 때문이다.신석호 정치부 차장 kyle@donga.com}

    • 201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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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이산가족 상봉]‘죽은’ 국군출신 4명 살아있었다

    지난달 30일부터 이틀째 금강산에서 진행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나온 북측 상봉자 97명 가운데 4명이 6·25전쟁 당시 참전했던 국군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 이래 상봉 과정에서 북측에 생존한 것으로 확인된 국군 출신은 31일 현재 모두 17명(국군포로 추정 6명 포함)으로 늘어났다. 정부는 지난달 20일 북측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위원장 장재언)에서 최종 통보받은 북측 상봉자 100명의 명단 가운데 최고령자인 이종렬 씨(90)를 포함해 이원직(77) 윤태영(79) 방영원 씨(81) 등 4명이 국군 병적기록부에 등록된 국군 출신임을 확인했다. 이들은 6·25전쟁에 참전했다 행방불명돼 1957년 일괄적으로 전사자로 처리됐으며 이번 행사에 나와 남측 가족들을 만났다. 이종렬 씨 등은 정부가 북측에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국군포로 500여 명의 명단에는 없는 인물로 북측에 살게 된 정확한 경위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들 4명의 존재가 추가로 확인되면서 정부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북측에 생존하고 있는 참전 국군들에 대한 정확한 실태 조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일 오전 상봉으로 2박 3일 일정이 모두 끝나는 1차 상봉행사에는 북측에서 상봉자 97명과 수행 가족 13명 등 110명이 나왔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금강산에 간 남측 가족 436명 등 총 546명이 60년 만에 혈육의 정을 나눴다. 행사는 지난달 30일 오후 단체 상봉과 환영만찬, 31일 오전 개별 상봉과 공동 점심식사, 오후 단체 상봉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3일부터 5일까지 진행되는 2차 상봉에서는 남측 상봉자 96명이 북측 가족 207명을 만날 예정이다.금강산=공동취재단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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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G20 정상회의 D-10]G20이후 대북관계는

    이달 11일과 12일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가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나오는 이런 전망에 일부 보수 진영도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는 게 당국과 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국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비롯한 대외정책 전환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명박 정부도 G20 회의 이후 정국을 이끌어가기 위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도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남한과 북한 정부에 대해 관계개선을 공식 비공식적으로 촉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에서도 북한이 김정은 후계구도 확립을 위한 대내외 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상황이므로 남한이 먼저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해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지난달 27일 열린 세종국가전략포럼에서 “북한이 후계구도의 안정을 위해 군사적 모험주의보다 합리적 정책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남북 대화의 최상위 기구인 정상회담을 먼저 제의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우리의 구상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천안함과 금강산 사건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상황에서 G20이 끝났다는 이유로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모든 것은 북한 하기에 달렸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꾀한다고 해도 넘어야 할 구조적인 제약이 많다. 북한은 당장 연간 이산가족 상봉 3, 4회 개최의 대가로 쌀 50만 t과 비료 30만 t, 연간 3000만 달러의 외화수입이 예상되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구한 상태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북한이 남측의 국군포로 납북자 송환 요구 등에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야 경제 지원의 명분이 생기고 관계개선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정부 당국자는 “남측의 거듭된 요구에도 국군포로 납북자는 ‘체제문제’여서 북한이 쉽게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29일 강원 철원군 남측 최전방 초소에 총격을 가한 북한이 G20을 목전에 두고 도발의 강도를 높일지도 G20 이후 남북 관계에 영향을 미칠 변수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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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이산가족 상봉]국군출신 북녘 4人, 60년만에 南가족과 포옹

    6·25전쟁이 터지자 이종렬 씨는 태어난 지 100일 된 금쪽같은 아들을 뒤로한 채 국군에 입대했다. 당시 서른이던 그는 올해 아흔이 됐고 아들 민관 씨는 환갑을 맞았다. 입대하던 날 학교에 다녀오던 열다섯 살 동생에게 “나 갔다 오마”라고 한 것이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 나타난 아버지 이 씨는 백발에 부축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쇠약했다. 한쪽 눈의 시력은 잃었고 다리는 전쟁 때 총에 맞아 불편한 상태였다. 60년 만에 아버지를 만난 민관 씨는 애써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제사까지 모셔왔는데…”라며 오열했다. 자신을 빼닮은 아들을 아버지는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 말문을 제대로 열지 못했다. 북한에서 뇌출혈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이 씨는 1989년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휠체어를 탄 아들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10분이 지나서야 힘들게 입을 열었다. “민관아, 민관아. (한참이 지난 뒤) 너를, 네 어머니, 우리 가족을 60년간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다.” ‘국군 장병’ 이종렬은 이렇게 60년 만에 다시 가족의 품에 안겼다. 그는 전쟁 중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고 가족들은 그의 기일을 꼬박꼬박 챙겨 왔다. 하지만 이 씨는 살아남았고 북측에서 결혼해 6남매를 낳고 살아왔다. 이 씨가 북에서 낳은 아들 명국 씨(55)는 “아버지가 낙동강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북한 정부가 1993년 그에게 ‘전국노병대표자’ 증명서를 줬다는 것 정도가 파악된 사실의 전부다. 역시 국군 출신으로 북한에서 살다 이산가족 상봉장에 나온 이원직 씨(77)는 남측의 누나 이운조 씨(83)와 이원술 씨(72) 등 동생 3명에게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 산소에도 못 가보고…”라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경북 구미가 고향인 이 씨는 6·25전쟁 때 청도로 피란을 갔다가 그곳에서 국군에 징집된 후 소식이 끊겨 역시 전사자로 처리됐다. 스무 살 때 군대에 갔다가 전사자로 처리된 윤태영 씨(79)는 상봉장에 나온 남측 동생 4명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얼굴을 확인하다 막내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애통해했다. 남측의 동생들은 부모의 영정을 윤 씨에게 보여줬다. 동생들은 형의 전사 통보를 받기는 했지만 전사 시기를 정확히 몰라 9월 9일을 기일로 정해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면사무소 사환으로 일하던 중 전쟁이 터지자 국군에 자원입대했다 전사자로 처리된 방영원 씨(81)도 형수 이이순 씨(88)를 만나 28년 전 세상을 떠난 형의 소식을 들었다. 방 씨는 또 누나 방순필 씨(94)가 아직 살아있지만 한 달 전부터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이번에 오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이들 국군 출신 4명은 모두 국방부 병적기록부에는 올라 있지만 우리 당국이 북한에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국군포로 500여 명의 명단에는 들어 있지 않다. 정부는 북측이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측 상봉자 100명의 신원을 통보한 지난달 20일 이들이 국군 출신이며 전사자로 처리된 사실을 확인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북측에서 생활하게 됐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금강산=공동취재단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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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이산가족 상봉]상봉 행사 이모저모

    지난해 10월 이후 12개월 만에 다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참석자들은 60여 년 만에 혈육의 정을 나눴다. 지난달 30일 첫 상봉에서 오열하느라 할 말을 못다 한 가족들은 31일 개별상봉에서는 한결 진정된 표정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남측 최고령자인 김례정 씨(96·여)는 지난달 30일 오후 단체상봉에서 북측 딸 우정혜 씨(71)를 만났다. 김 씨는 정혜 씨를 보고 “너를 어떻게…꿈에서만 보고…”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혜 씨는 “한시도 어머니를 잊은 적이 없다”며 큰절을 올렸고 김 씨는 “내가 너를 보려고 지금까지 살았나 보다”라고 말했다. 오빠 우영식 씨는 “고맙다. 우리를 찾아주어서…”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씨는 6·25전쟁으로 서울이 점령당한 뒤 영식 씨와 정혜, 덕혜 씨(69) 등 남매를 친할아버지가 있는 황해도 연백으로 피란 보냈다. 그러다 1951년 1·4후퇴 때 영식 씨만 남으로 내려오고 정혜 씨는 그곳에 남은 것. 영식 씨는 연백을 떠날 때 자신을 뒤따르던 여동생에게 “금방 다녀올게”라며 등을 돌린 것이 내내 한이었다고 말했다. 정혜 씨와 함께 북측에 남은 덕혜 씨도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가 전쟁 종료 후 낳은 아들인 우원식 전 민주당 국회의원(53)은 “노환으로 바깥출입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상봉장에 오셨다”고 말했다. 정혜 씨는 어머니는 돌아가셨을 것으로 여기고 오빠를 찾기 위해 상봉신청을 했다가 어머니를 만나 상봉의 꿈을 이뤘다. 정혜 씨는 북측에서 잘살고 있다는 점을 알리려는 듯 훈장과 상장, 상품 등을 챙겨왔다. ○…6·25전쟁 당시 세 살이던 남측 고배일 씨(62)는 31일 오전 북측의 아버지 고윤섭 씨(81)와 개별상봉을 마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인 것 같은데 저승에서 영혼으로 만나면 아버님을 꼭 붙잡고 놓아드리지 않겠다”며 흐느꼈다. 고윤섭 씨도 울먹이며 “꼭 그러자”고 화답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고배일 씨는 “아버지께서 치아가 없어 음식을 잘 못 드셨는데 미국으로 같이 갈 수 있다면 치아를 다 해드릴 수 있을 텐데…”라며 취재진 앞에서 한동안 오열했다. ○…31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개별상봉에서 북측 오빠 정기형 씨(79)는 남측에서 온 세 여동생 기영(72) 기옥(62) 기연 씨(58)의 큰절을 받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동생들은 전쟁 때 아버지 대신 북측으로 맨발로 끌려간 오빠에게 “모진 고생을 하게 해 미안하고 고맙다”며 오빠에게 양복과 구두 네 켤레를 선물했다. 정 씨는 고향인 경기 안성에 인민군이 내려와 아버지를 일꾼으로 끌고 가려 하자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가 가면 안 된다”며 아버지 대신 길을 나섰다. ○…6·25전쟁 당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북측 언니 송완섭 씨(78)를 60년 만에 만난 남측 여동생 송미섭 씨(74)는 선물로 구식 태엽시계 5개를 준비했다. 송미섭 씨는 “전자시계는 2, 3년마다 건전지를 갈아야 하지만 태엽시계는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서울 시내 시계방을 다 뒤졌지만 못 구해 특별 주문제작을 했다”고 말했다. ○…31일 오후 공동상봉에서는 서로 다른 가족으로 이번 행사에 참가했던 8촌 형제가 만나는 기쁨을 안았다. 북측 사촌 여동생을 만나러 온 남측 김운한 씨(88)는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 1층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서 북측 김제국 씨(83)가 어릴 적 고향 경북 영주에서 헤어진 8촌 동생임을 알아보고 부둥켜안았다. ○…31일 오후 금강산호텔 2층 식당에서 열린 공동오찬에서는 동생을 만나러 온 북측 이창식 씨(80)와 아들 이경렬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향의 봄’과 ‘반갑습니다’ 등의 노래를 불렀다. 북측 양강도 지역에서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경렬 씨는 “다 함께 부르자”며 분위기를 띄웠고 다른 가족들도 노래와 박수로 화답하면서 흥겨운 분위기가 연출됐다.금강산=공동취재단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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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총격 3시간전 “南 대화거절땐 파국적 결과”

    29일 북한군의 남측 최전방초소(GP) 총격 사건에 대해 정부와 군 당국은 일단 북한 병사의 오발에 무게를 두면서도 의도적 도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최근 남북관계의 흐름을 짚어 보면 북한의 의도적인 도발을 의심할 수 있는 징후들이 나타난다.북한은 지난달 7일 55대승호와 선원을 석방하고 10일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하는 등 유화공세를 편 뒤 남북 대화 과정에서 그 의도를 드러냈다. 북한은 같은 달 24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을 하면서 노골적으로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했다. 26일 개성에서 연 남북 적십자회담에서는 노골적으로 쌀 50만 t과 비료 30만 t을 요구했다.그러나 남측은 금강산관광 재개 요구에 대해 “관광객 피격 사망과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측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요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기존 원칙을 고수했다. 또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 정부 차원의 대규모 대북 쌀 지원은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이번 북한의 총격은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우발을 가장한 도발’을 선택해 남측의 반응을 떠보려 했을 수 있다.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앞둔 상황에서 북한으로선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의 저강도 무력행사를 통해 정상회의의 안전 개최를 위협하고 국제사회에 ‘한반도 리스크’를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북한은 과거에도 한국의 중요 행사 때마다 무력 도발을 감행한 전력(前歷)이 있다. 북한은 2002년 6월 29일 한국과 일본에서 월드컵 축구대회가 한창 열리던 상황에서 제2차 연평해전을 일으켰다. 또 1987년 11월 KAL기 폭파 사건은 다음 해로 예정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염두에 둔 테러행위였다.이날 총격을 불과 3시간 앞두고 나온 북한의 대남 위협 발언도 의도적 도발 가능성을 의심하게 한다. 남북 군사회담 북측대표단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측이 북한의 군사실무회담 개최 제의를 거부한 데 대해 “(남측의) 대화 거절로 초래되는 북남 관계의 파국적 후과(결과)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통감하게 될 것”이라며 ‘무자비한 물리적 대응’을 위협했다. 북한은 그동안 한국군이 군사분계선(MDL) 일대 11곳에 대북 심리전 재개를 위한 확성기를 설치한 것에 대해 물리적 타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해 왔다.신석호 기자 kyle@donga.com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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