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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무용 작품 8편이 11일부터 관객들과 만난다. 올해 선정한 무용 작품은 주제를 상징적 ‘오브제’를 통해 전한다. 댄스프로젝트 딴 딴따 단(Tan Tanta Dan)의 ‘평안하게 하라’(11∼13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가 포문을 연다. 최진한 안무가가 매일 묵상하며 외는 “평안하게 하소서”라는 독백에서 시작해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과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 충돌하며 ‘평안’에 다가가는 움직임을 표현했다. 프로젝트 그룹 ‘노네임소수’는 ‘블랙’(19, 20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을 선보인다. 최영현 안무가는 조명의 역할을 확장해 무용수의 신체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는 도구로 활용한다. 최지연 무브먼트가 선보일 ‘플라스틱 버드’(내년 1월 9, 10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인간 문명으로 생명력을 잃어가는 자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날 수 있었으나 날지 못한 거대한 ‘날개’가 무대 위에 등장한다. 김남식&댄스트룹-다(Da)의 ‘호모 모빌리쿠스’(내년 1월 16, 1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휴대전화를 핵심 주제이자 소재로 택했다. 한 공간에 마주했지만 서로의 눈 대신 휴대전화 액정을 바라보는 무용수의 시선은 인간성 상실을 말한다. 나머지 작품 4편은 추후에 소개할 예정이다. 올해 ‘창작산실’은 무용 8편을 포함해 연극 5편, 전통예술 3편, 뮤지컬 4편, 창작오페라 1편 등 총 21개 작품을 선정했다. 공연은 내년 3월까지 이어진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중국집에서 먹는 짜장면이라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집에서 끓여 먹는 짜장라면이라고 생각한다.”(윤제균 감독) 한국영화감독조합(DGK)과 중구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제5회 충무로영화제 디렉터스 위크’의 마지막 날인 5일, 윤 감독(51)은 영화가 지닌 본연의 가치를 강조했다. 윤 감독을 비롯해 이준익(61), 김홍준(64), 임필성 감독(48)이 ‘한숨 토-크: 코로나 시대 감독살이’를 주제로 모여 앉았다. 이야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영화 산업이 맞은 위기에 반해 넷플릭스 등의 OTT 산업은 급성장하는 현실을 진단하면서 시작했다. 두 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진행된 행사에서 윤 감독은 “코로나19로 영화가 내리막을, OTT가 오르막을 겪고 있지만 그게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마치 짜장라면을 처음 먹었을 땐 ‘이젠 중국집에 갈 일이 없겠는데’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계속 먹다 보면 다시 좋은 중국집에 가서 제대로 된 짜장면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극장이 생산자 주도적이라면 OTT는 소비자 주도적이라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 권력이 이동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폐쇄적인 한국 영화 시장은 미국 직배사들의 개방 압력에 대한 반작용의 힘으로 성장했고 대기업이 들어오면서 제작비나 박스오피스 등 시장이 투명해졌다. 새로운 자극은 위기처럼 보이지만 위기가 없으면 기회도 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두 감독은 최근 준비하던 영화 얘기도 꺼냈다. 이 감독은 지난해 가을 흑백 영화 ‘자산어보’ 촬영을 마치고 올 초 개봉을 준비하며 후반작업을 진행하다 우여곡절 끝에 내년 2월로 개봉일을 잡았다. 윤 감독 역시 지난해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영화 ‘영웅’의 촬영을 끝내고 올여름 개봉을 준비했으나 일단 내년으로 연기했다. 이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예고편이 나왔는데 내년 설에는 개봉할 수 있을지 또다시 불안하다”면서도 “한숨쉬는 게 나쁜 건 아니다. 인생에서 한 번 잠시 한숨을 깊게 쉬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맞이하는 준비 단계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윤 감독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힘들다”면서도 “한국 감독들이 관객이 극장에 올 수밖에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리라 믿는다”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한국인이 외국에서 현지인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야 케이팝 등에 힘입어 한국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늘면서 “그러면 한국인이냐” 묻는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밖에서 보기에 한중일(韓中日) 삼국의 문화적 특성은 구분하기 힘들 만큼 비슷하다. 한국인이 느끼는 바 또한 비슷할 터. 좋든 싫든 예부터 동아시아에서 얽히고설키며 젓가락 유교 한자문화 등을 공유하는 세 나라는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저자는 책 제목인 ‘안타고니즘(길항작용)’이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차용해 삼국의 애매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조명했다. 길항작용은 생물체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에서 두 개의 요인이 동시에 작용해 서로 그 효과를 부정하는 개념이다. 한성대 ICT디자인학부 교수로 오랫동안 삼국의 공예품을 토대로 세 나라 ‘문화의 유전자’를 연구해온 미술과 디자인 전문가인 저자는 한 나라의 문화를 만드는 공동체의 심리와 역사는 서로 밀고 당기는 길항작용으로 이뤄진다고 본다. 문화는 다시 미술, 건축양식, 축제, 옷과 장신구에 영향을 끼쳐 나라별 특성이 생겨난다. 저자는 길항작용을 이론적 도구로 삼아 삼국의 공예품과 건축물에 드러난 현상을 조명한다. 책에서는 중국의 개방과 폐쇄라는 특성을 토루(土樓)라는 고유한 주택양식으로 보여준다. 축소와 확장이라는 일본의 이중적 특성은 불단(佛壇)을 통해 조명했다. 한국을 설명할 때는 ‘덤벙’과 ‘강박’이라는 키워드를 꺼내들었다.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격식을 벗어던졌으면서도 예술성이 뛰어난 18세기 김후신의 ‘대쾌도(大快圖)’와 고려불화를 예시로 들었다. 이 나라 사람의 기질은 어떻고, 저 나라의 국민성은 어떻다는 견해는 당연히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저자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는 “규정에 반대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게 나오게 마련이다. 진정한 의미의 기질론은 우(優)와 열(劣)을 가르려는 준비가 아니다. 도리어 현실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살펴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뮤지컬에서 배우의 목소리가 한 척의 배라면, 음악은 바다와 같다.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 배를 따스하게 품다가도 어느새 거친 파도 속으로 몰아넣어 격정에 휩싸이게 만든다. 이 변덕스러운 바다를 지나 목적지까지 맛깔나게 항해하는 건 배우의 몫. 뮤지컬 음악감독은 선원들을 유혹하는 신화 속 요정 세이렌처럼, 때론 포세이돈처럼 이 바다를 지휘한다. 객석에선 잘 보이지 않는 ‘피트’에 서있는 그를 오케스트라, 배우들은 끝없이 살핀다. 한국 뮤지컬의 바다를 20여 년간 지켜온 ‘믿고 듣는’ 김문정 음악감독(49)이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로 돌아왔다. 이 작품의 지휘봉을 처음 잡은 건 2005년. 그는 “매 공연, 연습 때마다 인생 교훈을 하나씩 배워 가는 작품이다”라며 “익숙한 연주가 나태함으로 보이지 않도록 고삐를 조이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이어 “많은 남자 배우들이 ‘라만차’를 ‘최애작(최고 애정하는 작품)’으로 꼽을 만큼 남심(男心)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고 덧붙였다. ‘맨 오브 라만차’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각색한 작품으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백발 기사의 여정을 그렸다. 가슴 뛰게 하는 노랫말, 스페인 황야를 옮겨 놓은 듯한 무대, 감동적 줄거리가 어우러진 수작으로 꼽힌다. 플라멩코, 도입부 노래인 멜리스마(한 음절의 가사에 여러 음정이 있는 장식적인 노래), 기타의 이국적 선율이 특징이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의 음악은 진한 빨간색이다. 유려하게 흘러가다 갑자기 리듬을 잘게 쪼개고, 콘트라스트(대조)를 강하게 몰아친다. 드라마를 윤기 있게 만드는 음악적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는 류정한, 조승우, 홍광호 배우가 돈키호테 역으로 출연한다. “세 사람 모두 이 작품에 갖는 애정이 남달라요. 연습실에만 가도 보입니다. 류정한 씨는 그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요. 공연을 거듭할수록 생기는 저력과 여유랄까요. 조승우 씨는 완성도 높은 연기력을 가졌죠. 극 중 역할 변신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매번 놀랍니다. 홍광호 씨의 ‘꿀성대’가 노래하는 대표 넘버 ‘임파서블 드림’은 말할 것도 없죠.” 20년간 그를 거쳐 간 스타는 수없이 많다. 그는 이들의 목소리만 듣고도 그날 컨디션을 파악해 공연 시작 전까지 음악을 조율한다. 그날그날 처방을 내리는 ‘무대 위 의사’ 같다. 그는 “목 상태가 별로일 땐 곡을 짧게 끊기도 하고, 다음 마디로 템포를 빠르게 넘긴다. 소리가 큰 관악기를 써서 약점을 보완할 때도 있다”고 했다. 배우들도 ‘김문정’이라면 더 편안히 노래하며 무대에서 뛰놀 수 있다. 김준수도 출연작의 80% 이상을 그와 함께 했으며, 옥주현에게 김 감독은 ‘애인’이자 ‘선생님’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을 못 할 때 최정원 배우가 우스갯소리로 ‘너랑 내가 작품 공백기가 있는 걸 보면 진짜 큰일’이라고 하더라고요. 모든 국민이 힘든 시기, ‘라만차’의 선율로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어요.” 18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6만∼15만 원, 14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9·11테러 이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죠. 오랜 기간 브로드웨이가 문을 닫은 건 사상 처음일 겁니다.”(최윤하 PD) 토니상 주최 기관이자 공연제작자·극장주 협회인 ‘브로드웨이 리그(The Broadway League·BL)’의 국제위원회원들은 11월 10일(현지 시간) ‘코로나19 현황과 대응 방안’을 주제로 화상회의를 열었다. 3월부터 모든 공연장 간판을 내린 뒤 최소 내년 5월 30일까지 문을 닫는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한 긴급회의였다. 코로나19가 BL 회의 안건이 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국내 유일의 BL 회원사인 CJ ENM의 뉴욕 주재원으로 회의에 참가한 최윤하 PD는 “공연계는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정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전했다. 브로드웨이의 경우 경제대공황 중에도 극장 40%는 문을 닫지 않았다. 2001년 9·11테러 때도 이틀간 문을 닫았다가 3일째부터 문을 열었다. 테러에 굴하지 않고 ‘공연은 계속된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최 PD는 “지금 세계 공연계의 심리·경제적 충격은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샬럿 세인트 마틴 BL 회장도 앞서 “9만7000여 명의 노동자와 연간 148억 달러의 경제파급력을 가진 브로드웨이가 위기를 딛고 최대한 빨리 공연을 재개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BL 회의에서 ‘셧다운’ 없이 유일하게 공연을 지속하는 한국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롤모델이었다. 현지 인기작 위주로 진행하던 회의 판도가 달라진 것. 최 PD는 “늘 새로움을 찾는 브로드웨이는 방탄소년단, 영화 ‘기생충’의 활약에 이어 애틀랜타에서 열린 국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방역에 선방하며 공연을 지속하는 비결이 활발히 논의됐다. 해외 참가자들은 정보기술(IT), 마스크 착용, 정부의 빠른 초기 대응 등을 요인으로 들며 한국의 모범 사례를 이미 분석해놓은 상태였다. 최 PD는 “패널들은 한국에서라도 이어지는 공연을 지켜보며 대리만족하고 있다. 나는 위기에 똘똘 뭉치는 스태프의 협동심도 ‘선방 비결’로 꼽았다”고 했다. 해외 공연계는 여전히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멕시코 최대 공연 제작사 오세사의 줄리에타 곤살레스 대표이사는 “뮤지컬 ‘알라딘’은 1년 연기됐으며 직원의 45%는 무급 휴직 상태다. 팬데믹 확산세를 잡기 어렵다. 정부보다 개별 제작사나 개인의 방역 노력에 의지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일본은 극장 셧다운 이후 5000명 미만의 공연장에서 좌석 거리 두기 해제를 실험하고 있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예술 활동 소비를 장려하는 정부 의도가 반영됐다. 팬데믹에 비교적 선방한 독일은 작품 내용에 ‘코로나 프로토콜’을 반영할 예정이다. 배우 간 키스 장면과 깨무는 장면이 금지된다. 뱀파이어 소재의 ‘Dance of Vampire’를 준비하는 제작진은 장면 수정을 고민하고 있다. 무대 뒤에서도 제작 인원을 최소화하고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코로나 버전’을 준비한다. 철저한 방역 및 봉쇄정책을 펼친 호주는 좌석 거리 두기 없이 내년 공연을 열 예정이다. 뮤지컬 ‘겨울왕국’ 오디션이 진행 중이며 ‘물랑루즈’ ‘해리포터’ ‘해밀턴’ 등 대작들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최 PD는 “현재 확진자 수가 급격히 줄어든 호주가 주요 공연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했다. 또 코로나19와 흑인인권운동의 확산이 백인 위주로 흘러가던 브로드웨이의 풍토를 바꿀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최 PD는 전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9.11 테러 이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죠. 오랜 기간 브로드웨이가 문을 닫은 건 사상 처음일 겁니다.” (최윤하 PD) 토니상 주최 기관이자 공연제작자·극장주 협회인 ‘브로드웨이 리그(The Broadway League·BL)’의 국제위원회원들은 11월 10일(현지시간) ‘코로나19 현황과 대응 방안’을 주제로 열린 화상회의를 열었다. 3월부터 모든 공연장 간판을 내린 뒤 최소 내년 5월30일까지 문을 닫는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한 긴급회의였다. 코로나19가 BL 회의 안건이 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국내 유일의 BL 회원사인 CJ ENM의 뉴욕 주재원으로 회의에 참가한 최윤하 PD는 “공연계는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정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고 전했다. 브로드웨이의 경우 경제대공황 중에도 극장 40%는 문을 닫지 않았다. 2001년 9.11 테러 때도 이틀 간 문을 닫았다가 삼일 째부터 문을 열었다. 테러에 굴하지 않고 ‘공연은 계속된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최 PD는 “지금 세계 공연계의 심리·경제적 충격은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샬럿 세인트 마틴 BL회장도 앞서 “9만 7000여 명의 생계노동자와 연간 148억 달러의 경제파급력을 가진 브로드웨이가 위기를 딛고 최대한 빨리 공연을 재개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BL 회의에서 ‘셧다운’ 없이 유일하게 공연을 지속하는 한국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롤모델이었다. 현지 인기작 위주로 진행하던 회의 판도가 달라진 것. 최 PD는 “늘 새로움을 찾는 브로드웨이는 방탄소년단, 영화 ‘기생충’의 활약에 이어 애틀랜타서 열린 국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한국 콘텐츠의 입소문이 퍼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방역에 선방하며 공연을 지속하는 비결이 활발히 논의됐다. 해외 참가자들은 IT 기술, 마스크 착용, 정부의 빠른 초기 대응 등을 요인으로 들며 한국의 모범사례를 이미 분석해놓은 상태였다. 최 PD는 “패널들은 한국에서라도 이어지는 공연을 지켜보며 대리만족하고 있다. 나는 위기에 똘똘 뭉치는 스태프들의 협동심도 ‘선방 비결’로 꼽았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해외 공연계는 여전히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은 극장 셧다운 이후 5000명 미만 공연장에서 좌석 거리두기 해제를 실험 중이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예술활동 소비를 장려하는 정부 의도가 반영됐다. 팬데믹 피해가 큰 멕시코 및 중남미의 경우 상황은 더 암담하다. 멕시코 최대 공연 제작사 오세사(Ocesa)의 줄리에타 곤잘레스 대표이사는 “뮤지컬 ‘알라딘’은 1년 연기됐으며 직원의 45%는 무급 휴직 상태다. 팬데믹 확산세를 잡기 어렵다. 정부보다 개별 제작사나 개인의 방역 노력에 의지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유럽 최대 공연 제작사인 스테이지 엔터테인먼트는 국가별 대응 정책을 소개했다. 팬데믹을 비교적 선방한 독일은 작품 내용에 ‘코로나 프로토콜’을 반영할 예정이다. 배우 간 키스 장면과 깨무는 장면이 금지된다. 뱀파이어 소재의 ‘Dance of Vampire’를 준비하는 제작진은 장면 수정을 고민하고 있다. 무대 뒤에서도 제작 인원을 최소화하고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코로나 버전’을 준비한다. 철저한 방역 및 봉쇄정책을 펼친 호주는 좌석 거리두기 없이 내년 공연을 열 예정이다. 뮤지컬 ‘겨울왕국’ 오디션이 진행 중이며 ‘물랑루즈’ ‘해리포터’ ‘해밀턴’ 등 대작들이 관객과 만날 준비 중이다. 최 PD는 “현재 확진자수가 급격히 줄어든 호주가 주요 공연시장으로 급부상 중”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불거진 위기가 브로드웨이 및 세계 공연계 풍토를 뒤바꿔 놓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최 PD는 “감염병과 흑인인권운동의 확산은 백인 위주로 흘러가던 공연계 문제를 건드렸다. 수면 아래 잠겨있던 숙제가 터져 나온 브로드웨이는 변혁 중”이라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3000년 전 나라를 빼앗긴 트로이 여인들의 울음은 창(唱)과 비슷했을까. 왕, 남편, 아들을 떠나보내고 노예로 팔려갈 상황에 처한 여인들. 소리꾼은 이 비극을 애절한 창으로 그리며 상실의 한(恨)을 자극한다. 그리스 비극과 한국 판소리가 만난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의 절규는 세계가 인정한 울음이 됐다. 2016년 국내 초연 이후 싱가포르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해외투어에서 호평 받은 싱가포르 출신의 연출가 옹켕센(57·사진)이 다시 한국을 찾았다. 2017년 이후 3년 만에 다음 달 3일부터 10일까지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 중이다. 12일에는 주요 곡을 엄선한 콘서트 형태 공연도 연다. 24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만난 그는 “‘뉴클래식(신고전)’을 만들겠다는 의지엔 변함이 없다. 하루빨리 현장에서 호흡을 맞춰 보고 싶었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그는 화상회의로 제작진과 합을 맞춰 보다가 최근에야 자가 격리를 마치고 연습실에 합류했다.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연주를 들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그는 “판소리에는 가사뿐만 아니라 갈라지는 목소리에서도 풍부한 감정이 있다”고 했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에우리피데스의 기원전 5세기 동명 희곡을 창극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전쟁에서 소외된 평범한 여인들의 삶을 조명했다. 배삼식 작가가 극본을 썼고, 소리를 짜는 작창(作唱)을 한 명창 안숙선은 극 중 혼령인 ‘고혼(孤魂)’ 역으로 유태평양과 함께 출연한다. 영화 ‘기생충’의 음악감독 정재일이 작곡했으며 김금미 김지숙 이소연 김준수 등 소리꾼이 주요 배역으로 참여한다. 이들을 유려한 화음으로 엮어낸 건 옹 연출가의 판소리 사랑 덕분이다. 해외 진출을 노리고 제작한 만큼 여러 문화권에 ‘먹히되’ 판소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연출이 주효했다. 그는 매번 “판소리를 잘 모른다”고 하지만 웬만한 한국인보다 한국전통음악에 정통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3000년간 이어온 이야기에 더해진 판소리 전통을 생각하면 팬데믹은 작은 먼지에 불과할 뿐”이라고 했다. 이어 “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케이팝과 판소리 모두 강렬한 한국적 감정선이 있다. 원색의 강렬함을 가진 작품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집에서 벽돌만 남기고 벽지, 장식을 걷어내듯 판소리 외의 것들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옹 연출은 창극을 싱가포르의 음식 ‘로작(rojak)’으로 표현했다. 과일, 채소 등을 섞어 신맛, 새콤달콤함, 쌉싸름함 등 여러 맛을 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판소리로 서양의 오페라나 뮤지컬로 만든 게 창극이죠. 100년간의 실험을 거쳐 ‘로작’ 같은 매력을 갖게 된 창극을 사랑합니다.”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5만 원, 8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실연으로 아파하거나 누군가와 관계가 꼬였을 때, 혹은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고 느꼈을 때 우린 서정성 짙은 노랫말과 멜로디를 찾는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그룹 ‘동물원’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로 33년간 노래하고 있는 저자가 노래 77곡을 골라 그 노랫말에 곁들여 마음의 위로와 치유를 건네는 단상을 담았다. 조용필 최백호 김광석 이적 워너원같이 묵직한 톱 가수부터 Z세대 아이돌까지, 루이 암스트롱, 퀸, 비틀스,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 해외의 레전드부터 최신 팝까지, 다양한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가수들의 노래다. 독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는 곡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분류한 것이 매력 포인트. ‘희망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한 이에게는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를 추천하고, 인생의 새로운 시작점에 서서 조바심 내는 이에게는 김동률의 ‘출발’을 권한다.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잊고 싶을 땐 린다 론스탯의 ‘블루 바유(Blue Bayou·푸른 포구)’가 제격이다. 제대로 사과하는 법이 필요할 때는 엘턴 존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다. 감성에 호소하는 곡 뒤에 냉철한 조언도 덧붙였다. 사과할 땐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와 구체적 약속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리학과 노래를 버무린 ‘텍스트 버전 라디오 DJ’다. 동아일보에서 2016년부터 올 8월까지 100회 연재한 ‘김창기의 음악상담실’을 바탕으로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전동 커피 그라인더가 30초면 커피가루를 곱게 갈아내고, 이마저 기다리기 힘들어 조지 클루니가 ‘10초 완성’ 캡슐커피를 마시며 “왓 엘스(What else·뭐가 더 필요해)?”를 외치는 시대. 누군가는 수동 그라인더에 커피콩을 넣고 5분 넘게 드르륵 드르륵 콩이 갈리는 감촉과 소리의 거친 질감을 즐긴다. ‘커피 그라인더 덕후’ 이승재 씨(50)는 직접 갈아 마시는 커피 맛에 빠져 한때 수동 그라인더 3000여 점을 갖고 있었다. 일부를 처분해 현재 약 1600점을 소장 중이다. 서울 중구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근처에 만든 전시관 겸 카페 ‘말베르크(Malwerk)’에서 그라인더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말베르크는 독일어로 그라인더 핵심 부품 ‘원뿔형 분쇄추’를 뜻한다. 이 씨는 “콜라만큼 세계적 음료가 된 유럽 커피의 역사는 그라인더를 보면 된다. 프랑스 자동차회사 푸조도 원래 그라인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저도 바쁠 땐 전동 그라인더를 쓴다”며 웃었다. 그에게 그라인더 ‘입덕(덕후 입문)’ 이야기 등을 들었다. ―왜, 언제부터 그라인더에 빠졌나. “국회의원 비서관을 하다가 1998년 독일로 사회학 공부하러 떠났다. 정작 사회학 대신 바이오매스 산업에 눈을 떠 2005년 관련 사업체를 냈다. 거주하던 도르트문트는 석탄과 철광이 많이 나는 공업지대였는데 벼룩시장에 수동 그라인더가 많아 인테리어용으로 하나둘 사들였다. 2012년 알고 지내던 독일 어르신의 18세기 수집품 여러 점을 1800만 원에 산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멍 때리면서’ 커피콩을 갈면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주요 수집품을 꼽는다면…. “푸조의 1840년 제품, 2차 세계대전 때인 1939년 포탄과 탄피로 만든 독일제 황동 그라인더, 1900년대 초 가정용 벽걸이형 그라인더, 독일 레나르츠(LEHNARTZ)사 시리즈가 있다. 1차 세계대전 때 제작된 보리차용 그라인더도 있다.” ―주로 어디서 구매하나. “2018년 귀국 전까지는 유럽의 벼룩시장에서 주로 샀다. 관광지 인근 벼룩시장 말고 소도시의 깊숙한 장터에 가면 ‘진짜 물건’이 많다. 2010년대 들어 중국인들이 그라인더를 찾으면서 꽤 줄었다. 요즘엔 이베이 등 온라인 사이트에서 주요 판매자를 찾는다. 유럽이나 미주의 웬만한 제품은 다 있는데 포르투갈 제품만 아직 못 찾았다.” ―입문자를 위해 추천한다면…. “먼저 사용 빈도를 따져야 한다. 혼자 사용하면 아무래도 빈도가 낮아 청소나 관리가 힘들다. 혼자 쓴다면 소형 ‘핸드밀’이 적당하다. 여럿이 자주 사용한다면 큰 나무 그라인더도 괜찮다. 녹슬지 않게 관리할 수 있다면 쇠로 된 제품도 추천한다. 한 손으로 들거나 다리 사이에 낀 채로 쓰는 것보다는 수평 상태에서 편하게 고정할 수 있는 것이 적합하다.” ―그라인더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주기적으로 생쌀을 한 줌씩 넣고 갈아주면 커피 찌꺼기가 나오는 게 보인다. 쌀 자체에 지방을 제거하는 성질이 있다. 습기 있는 데에 보관하지 말고, 안 쓸 때는 그라인더 안에 방습제를 넣으면 녹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전동 커피 그라인더가 30초면 커피가루를 곱게 갈아내고, 이마저도 기다리기 힘들어 배우 조지 클루니가 ‘10초 완성’ 캡슐커피를 마시며 “왓 엘스?(What else?·뭐가 더 필요해?)”를 외치는 시대. 누군가는 수동 그라인더에 커피콩을 넣고 5분 넘게 드르륵 드르륵 콩이 갈리는 감촉과 소리의 거친 질감을 즐긴다. ‘커피 그라인더 덕후’ 이승재 씨(50)는 직접 갈아 마시는 커피 맛에 빠져 한때 수동 그라인더 3000여 점을 갖고 있었다. 현재는 일부를 처분해 약 1600점을 소장 중이다. 놓아둘 공간이 부족해 서울 중구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3호선 동대입구역 근처에 전시관이자 카페 ‘말베르크(Malwerk)’를 만들어 그라인더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말베르크는 독일어로 그라인더 핵심 부품인 ‘원뿔형 분쇄추’를 뜻한다. 최근 말베르크에서 만난 이 씨는 “콜라만큼 세계적 음료가 된 유럽 커피의 역사는 그라인더를 보면 된다. 프랑스 자동차회사 푸조도 원래 그라인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물론 저도 바쁠 땐 전동 그라인더를 쓴다”며 웃었다. 그에게 그라인더 ‘입덕(덕후 입문)’ 이야기와 구매 및 관리법 등을 들어봤다. ―왜, 언제부터 그라인더에 빠졌나. “국회의원 비서관을 하다 1998년 독일로 사회학 공부를 위해 떠났다. 정작 사회학 대신 바이오매스 산업에 눈을 떠서 2005년 관련 사업체를 냈다. 거주하던 도르트문트는 석탄과 철광이 많이 나는 공업지대였는데 벼룩시장에 수동 그라인더가 많았다. 인테리어용으로 하나둘 사들였다. 2012년 알고 지내던 독일 어르신의 18세기 수집품 여러 점을 1800만 원에 산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멍 때리면서’ 커피콩을 갈면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주요 수집품을 꼽는다면…. “푸조가 만든 1840년 제품, 2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된 1939년 버려진 포탄과 탄피로 만든 독일제 황동 그라인더, 1900년대 초 가정용 벽걸이형 그라인더, 독일 레나츠(LEHNARTZ)사 시리즈가 있다. 1차 세계대전 때 제작된 보리차용 그라인더도 있다.” ―주로 어디서 구매하나. “2018년 귀국 전까지는 유럽의 벼룩시장에서 주로 샀다. 관광지 인근의 벼룩시장 말고 소도시의 깊숙한 장터에 가면 ‘진짜 물건’들이 많다. 2010년대 들어 중국인들이 그라인더를 찾으면서 물건이 꽤 줄었다. 요즘엔 e베이 같은 온라인사이트에서 주요 판매자를 찾는다. 유럽이나 미주 국가의 웬만한 제품은 다 있는데 포르투갈 제품만 아직 못 찾았다.” ―입문자를 위해 추천한다면…. “가장 먼저 사용 빈도를 따져야 한다. 혼자 사용하면 아무래도 빈도가 낮아 청소나 관리가 힘들다. 혼자 쓴다면 소형 ‘핸드밀’이 적당하고 여럿이 자주 사용한다면 큰 나무 그라인더도 괜찮다. 녹슬지 않게 관리할 수 있다면 쇠로 된 제품도 추천한다. 한 손으로 들거나 다리 사이에 낀 채로 사용하는 제품보다는 수평상태에서 편하게 고정할 수 있는 것이 적합하다.” ―그라인더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주기적으로 생쌀을 한줌씩 넣고 커피 대신 갈아주면 좋다. 그러면 커피 찌꺼기가 나오는 게 보인다. 쌀 자체에 지방을 제거하는 성질이 있다. 습기 있는 데에 보관하지 말고, 안 쓸 때는 그라인더 안에 방습제를 넣으면 녹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김기윤기자 pep@donga.com}

올해로 20돌을 맞은 ‘공연 명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와 LG아트센터가 실감 나는 영상으로 랜선 관객들의 감성을 촉촉이 적시고 있다. 20주년을 맞아 대면 공연 축제를 기획했던 SPAF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LG아트센터 역시 기획공연들을 영상 상영으로 바꿨다. 12일 개막한 SPAF의 작품들은 29일까지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네이버TV를 통해 후원 개념으로 최소 5000원 이상만 내면 된다. 23일 누적 후원자 수는 2200여 명이다. 해외 초청 공연을 취소한 대신 영상에 공을 들였다. 기존에 촬영을 끝낸 작품 외 공연들은 ‘연두 픽처스’가 촬영을 맡았다. 무대 중앙을 휘젓는 카메라 워크의 생동감이 뛰어나 “마치 NT LIVE(영국 국립극단의 연극 영상 작품)를 보는 것 같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28, 29일 공개 예정인 프랑스 안무가 제롬 벨의 ‘갈라’는 최대 기대작이자 유일한 해외 안무가의 작품이다. ‘농 당스(non-danse)’라는 장르, 말 그대로 ‘춤이 아닌 춤’을 추구한다. ‘저자로부터 부여받은 이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등이 대표작. 새로운 춤 접근법을 제시하며 비전문가 20여 명의 ‘행위’로 작품을 꾸렸다. 비전문 무용수들은 영상을 통해 자신의 몸짓을 벨에게 선보였고, 국내 김윤진 임소연 안무가의 협업 끝에 작품을 완성했다. 27일 안무가 안은미는 SPAF 20주년을 기념해 ‘나는 스무살입니다’를 선보인다. 20년간 축제 참여작들의 기억을 모아 형상화했다. 26일 공개하는 음악극 ‘13 후르츠케이크’는 성 소수자 13인의 삶을 조명한다. 25일 최진영 안무가의 ‘NOT FOR SALE’은 산업화로 인한 변화를 돌아보며 인간, 인공지능(AI),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시대적 화두인 여성 서사도 담겼다. 24일 김혜진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딸에 대하여’가 공개된다. 혐오와 배제가 익숙해진 엄마와 딸들의 이야기다. 28일 허성임 안무가의 ‘넛 크러셔’는 여성의 몸이 어떻게 상품화되는지 보여주며 ‘여성이 아닌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해 묻는다. 앞서 21일 ‘1일 1범’ 신드롬을 일으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기가 막힌 흥’도 화제였다. 무당이 작두 위에 올라서는 굿에서 영감을 받아 오금저림과 흥을 표현했다. 극단 신세계의 ‘나는 광인입니다’를 비롯해 김성훈 안무가의 ‘Pool’과 ‘판소리 필경사 바틀비’도 호평을 받았다. LG아트센터는 앞서 온라인 공연 시리즈인 ‘컴온’의 시즌 1, 2를 통해 42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공연 팬들 사이에서 검증받은 온라인 공연 명가로 통한다. 이 시대 가장 핫한 안무가이자 ‘무용 천재’로 꼽히는 크리스탈 파이트의 ‘검찰관’은 27, 28일 네이버TV를 통해 유료로 중계된다. 검찰관 공연 영상은 올해 초 아르테TV의 촬영팀이 작업을 마쳤으며, 5월 BBC를 통해 방송됐다. 처음부터 방송용으로 촬영돼 무용수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생생함을 자랑한다. 다음 달 11, 12일 상영하는 티모페이 쿨랴빈 연출가의 연극 ‘오네긴’은 러시아에서 상을 휩쓴 작품. 쿨랴빈 연출가는 교과서적 원작 해석에서 탈피해 무채색 무대 위에서 19세기 고전 캐릭터들을 현대 인물로 되살려냈다. 영상은 2018년도 러시아 공연 플랫폼인 ‘스테이지 러시아’를 위해 제작됐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펍에 들어간다. 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 일단 메뉴판을 볼 것도 없이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한다. 뽀얀 거품이 살짝 덮인 노란 빛깔의 이 음료가 테이블에 도착하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탄산의 따끔함과 목을 꽉 채우는 포만감이 느껴질 때까지 한 모금, 두 모금 쭉 들이켠다. 갈증이 해소됐다고 느껴질 때쯤 “크아” 소리를 뱉으며 잔을 내려놓는다. 그때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른다. ‘이 신묘한 음료는 도대체 어떻게,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책은 맥주의 참맛을 아는, 그리고 맥주를 마시며 이 의문을 품은 맥주 ‘덕후’가 썼다. 저자는 현재 덕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맥주 비평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전 세계 맥주 공장을 누빈다. 맥주 맛을 평가하고 찬양하며 돈도 버는 부러운 직업을 가졌다. 월스트리트저널, 잡지 GQ에 그가 맛본 맥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런데 여기서 만족하지 못했다. 집에서 직접 원하는 맛의 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홈 브루어’이기도 하다. 수천 가지 맛의 맥주에 탐닉하던 어느 날 그는 다시 근본으로 돌아간다. ‘맥주는 어디서 시작됐는가.’ 맥주는 “인류가 존재해온 시간만큼” 똑같이 존재했다. 그의 맥주 탐구 여정은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술을 빚던 사원 노동자의 삶에서 시작한다. 이어 약초를 맥주에 접목한 북유럽의 샤먼, 수도승, 농부, 맥주 공장을 세운 런던의 기업가, 미국 이민자, 라거를 미국으로 가져온 독일 이민자, 맥주 광고인까지. 맥주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여덟 개 집단의 흔적을 찾아 기록한 ‘맥주 역사서’라 할 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꼽히는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야만인 부하 엔키두의 이야기가 나온다. “엔키두는 배가 부를 때까지 음식을 먹었다네. 맥주를 일곱 잔을 마셨다네. 그의 정신은 느슨해졌고 익살스러워졌다네.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가득했고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네.”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바빌로니아에서는 곡물로 빵을 만드는 중간 과정에서 맥아(malt)가 탄생했다. 이를 활용한 수백 가지 레시피도 나왔다. 맥주도 그중 하나. 저자는 과거 방식을 재현한 양조장을 찾아 고대인이 했던 방식으로 야자수, 홉, 꿀 등을 넣어가며 우여곡절 끝에 맥주를 만든다. 신맛이 강하던 맥주도 점차 먹을 만한 수준으로 다듬어진다. “맥주 맛을 표현할 때 널리 인정된 133개의 ‘맥주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맥주도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나무 맛이 나는’ 맥주도 있다. 북유럽 게르만족 샤먼들은 썩은 보리, 기생 곰팡이, 버섯도 맥주에 넣었다. 강한 맛을 가진 맥주는 이들에게 마법 물약이나 마찬가지였다. 벨기에 수도원, 영국 런던의 펍을 찾아 특수한 맥주에 탐닉하는 모습도 나온다. 초기 미국에서 유행하던 ‘감 맥주’를 찾다가 저자가 직접 만들어보는 장면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요소요소마다 그가 드러낸 해박한 맥주 상식은 ‘맥주에 미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하는구나’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이야기는 맥주에서 그치지 않는다. 로마제국, 서유럽, 북유럽, 미대륙을 거치며 변천한 맥주는 서양 역사를 관통한다. 수도승과 이민자들이 물처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묘약처럼 만들어 마셨던 맥주는 인류사와 맞닿아 있다. 저자는 지금도 맥주를 찾아 나선다. 그는 맥주 전성시대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전망했다. “애주가들은 여전히 목마르다. 브루어가 더 많은 스타일을 만들어낼수록 애주가들은 더 다양한 맛을 떠올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리라.”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객석에서 자는 사람이 없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123 12 123 12 123 123.’ 무용수들이 어딘가 ‘불편한’ 느낌의 칠채 장단을 입혔다. 전문 무용수도 이해하기 힘든 이 홀수박(拍) 장단은 징을 일곱 번 친다고 해 칠채라는 이름이 붙었다. 굿판이나 웃다리 농악에서 주로 쓰며 끝날 듯 멈추지 않는 역동성이 특징이다. 칠채는 이재화 안무가(32·사진)를 만나 처음 무용 무대에 올랐다. 2018년 쇼케이스 때부터 ‘조선의 EDM(일렉트로닉댄스음악)’ ‘록 페스티벌’이라 호평받은 작품은 흥을 최고조로 터뜨릴 채비를 마쳤다. 20∼2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서 선보일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의 이 안무가를 11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이 안무가는 “어려서 장구를 배워 칠채 장단은 알고 있었는데 박자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무용에서는 좀체 쓰이질 않더라. 한 장단으로만 작품을 만든다면 절대 질리지 않을 장단이 필요했고, 그게 칠채였다”고 했다. 그의 안무에 무용수 7인과 악사 7인, 음악감독 허성은, 정가(正歌) 보컬 박민희, 소리꾼 김준수가 합류해 ‘가무악칠채’를 완성했다. 2010년 제40회 동아무용콩쿠르 일반부 한국무용창작 부문 금상을 받은 그는 2014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했다. 2018년 그가 호기롭게 이 작품을 만든다고 하자 우려도 많았다. “박자가 너무 어려워 포기하고 싶었다”는 그에게는 무용수들과 합을 맞춰볼 음원도 없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북과 징 소리를 직접 내려받아 음원과 박자도 만들었죠.” 그를 믿고 ‘한번 해보자’며 의기투합한 무용수, 악사들 덕에 작품은 빛을 봤다. 기존 30분짜리 작품은 정가 음악을 추가해 1시간으로 늘어나 풍성함을 더했다. “30분 동안 숨 막혀 죽을 만큼의 긴장감과 타격감을 객석에 주고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길이를 늘려 공연을 잠시 ‘비우는’ 정가도 넣었고, 후반부에 가장 강한 드럼과 기타 소리를 더해 무용수와 연주자가 반(半) 미친 상태로 보이는 강렬함을 표현했습니다.” 무용수로도 참여해 루프스테이션(소리의 일정 구간을 반복 재생하는 기기)까지 연주하는 그는 전통의 현대화에 목마르다. ‘이재화 안무가님’이라는 호칭이 세상에서 가장 어색하다는 그이지만 무대에 쓰일 소품, 레이저 장비까지 꼼꼼히 챙기며, 연출 욕심도 많다. “모르는 게 더 많지만 답습하는 것을 넘어 제 생각을 소박하게 정리해 표출하는 무대면 만족해요.”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난 나쁜 남자입니다. 팬들은 무대 위 나를 죽도록 미워하겠죠.” 깊은 눈동자, 처진 눈꼬리, 풍성한 백발에 푸근한 미소를 날리는 ‘꽃중년’ 같은 이 남자. 하지만 진한 분장에 검은 사제복을 입고 미간을 팍 찌푸리는 순간, 마치 스위치를 켜듯 사랑에 미친 나쁜 남자로 돌변한다. 10일 개막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권력의 상징이자,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탐하는 대주교 ‘프롤로’ 역의 다니엘 라부아(71)가 한국 무대에 처음 선다. 그는 이번 출연진 중 ‘노트르담 드 파리’ 초연에 참여했던 유일한 배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원조 프롤로의 내한 소식에 일찌감치 기대감을 모았다. 그를 보러 유럽, 중국, 대만으로 ‘원정 덕질’에 나서야 했던 국내 팬들도 환호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 체류 중인 그는 개인 일정 변경으로 12월부터 공연에 합류한다. “제일 고통스러운 건 다른 배우들보다 늦게 관객과 만나는 것”이라는 그를 최근 e메일로 만났다. 다니엘은 “모든 공연장이 멈춘 지금, 한국은 유일하게 라이브 공연을 지속하는 걸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먼저 한국을 경험한 리샤르 샤레스트(그랭구아르 역)와 안젤로 델 베키오(콰지모도 역)가 ‘절대 놓쳐선 안 되는 멋진 곳’이라고 극찬했다.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파리’를 각색한 작품은 1998년 프랑스 파리 초연부터 메가 히트였다. 기네스북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첫해를 보낸 공연’으로 등재됐으며 연이어 세계 공연장을 휩쓸었다. 혼란한 사회상, 이방인의 소외를 시적 가사로 표현한 ‘성스루 뮤지컬’(대사 없이 노래로만 극을 전개하는 작품)로 OST 앨범은 1000만 장 이상 팔렸다. 프롤로가 다른 주인공들과 부른 노래 ‘Belle’(아름답다)은 프랑스 차트에서 44주간 1위를 지켰다. 당시를 떠올리던 다니엘은 “음악은 좋아도 유행하던 노래 스타일이 아니라 솔직히 금세 망할 줄 알았다. 긴 여정을 함께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20주년을 기념해 의상, 안무, 무대 등에 변화를 준 새 버전이다. 그는 “원작의 감성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안무도 조금 바뀌었는데 한번 찾아보면 흥미로울 것”이라며 숙제도 내줬다. 다니엘은 프롤로를 ‘나쁜 남자’로 정의했다. 종교적 권위와 힘으로 모든 걸 지배하던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정작 자신의 마음은 통제하지 못한다. “사랑, 감정 앞에 무너지기 쉬운 인물입니다. 나쁜 남자지만 사실 인간적이죠. 우린 주어진 대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약점을 갖고 있잖아요. 그는 우리의 ‘다크 사이드(dark side)’입니다.” 캐나다 프랑스어권 지역에서 자란 그는 뮤지컬 배우 외에도 가수, 작가, 시인, 작곡가로 활동한 종합예술인이다. 특히 가수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캐나다 퀘벡의 ‘펠릭스 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월드뮤직어워즈(WMA)와 프랑스 음악 시상식(Victoire de la Musique)에서도 수상했다. 프롤로와 무대 밖 다니엘을 비교해 달라고 하자 “저는 엄격한 금기나 규율과는 거리가 먼 자유로운 사람이다. 특권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 ‘프롤로’와는 다르다. 그저 노래하고, 책 읽고, 운동하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인간”이라고 했다. 그는 “팬이야말로 저를 가치 있게 만드는 존재”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그가 ‘무대를 찢는다’고 평가받는 1막 마지막 넘버에서 그는 객석을 바라보며 절규한다. “당신은 나를 파멸시킬 거야!” 내년 1월 17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6만∼16만 원, 8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난 나쁜 남자입니다. 팬들은 무대 위 나를 죽도록 미워하겠죠.” 깊은 눈동자, 처진 눈 꼬리, 풍성한 백발에 푸근한 미소를 날리는 ‘꽃중년’ 같은 이 남자. 하지만 진한 분장에 검은 사제복을 입고 미간을 팍 찌푸리는 순간, 마치 스위치를 켜듯 사랑에 미친 나쁜 남자로 돌변한다. 10일 개막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서 권력의 상징이자,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탐하는 대주교 ‘프롤로’ 역의 다니엘 라부아(71)가 한국 무대에 처음 선다. 그는 이번 출연진 중 ‘노트르담 드 파리’ 초연에 참여했던 유일한 배우. 세계서 가장 유명한 원조 프롤로의 내한 소식에 일찌감치 기대감을 모았다. 그를 보러 유럽, 중국, 대만으로 ‘원정 덕질’에 나서야 했던 국내 팬들도 환호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 체류 중인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일정 변경으로 12월부터 공연에 합류한다. “제일 고통스러운 건 다른 배우들보다 늦게 관객과 만나는 것”이라는 그를 최근 e메일로 만났다. 다니엘은 “모든 공연장이 멈춘 지금, 한국은 유일하게 라이브 공연을 지속하는 걸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먼저 한국을 경험한 리샤르 샤레스트(그랭구와르 역)와 안젤로 델 베키오(콰지모도 역)가 ‘절대 놓쳐선 안 되는 멋진 곳’이라고 극찬했다.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파리’를 각색한 작품은 1998년 프랑스 파리 초연부터 메가 히트였다. 기네스북에 ‘역사상 가장 성공적 첫 해를 보낸 공연’으로 등재됐으며 연이어 세계 공연장을 휩쓸었다. 혼란한 사회상, 이방인의 소외를 시적 가사로 표현한 ‘송스루 뮤지컬(대사 없이 노래로만 극을 전개하는 작품)’로 OST 앨범은 1000만 장 이상 팔렸다. 프롤로가 다른 주인공들과 부른 노래 ‘Belle(아름답다)’은 프랑스 차트에서 44주간 1위를 지켰다. 당시를 떠올리던 다니엘은 “음악은 좋아도 유행하던 노래 스타일이 아니라 솔직히 금세 망할 줄 알았다. 긴 여정을 함께 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20주년을 기념해 의상, 안무, 무대 등에 변화를 준 새 버전이다. 그는 “원작의 감성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안무도 조금 바뀌었는데 한 번 찾아보면 흥미로울 것”이라며 숙제도 내줬다. 다니엘은 프롤로를 ‘나쁜 남자’로 정의했다. 종교적 권위와 힘으로 모든 걸 지배하던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정작 자신의 마음은 통제하지 못한다. “사랑, 감정 앞에 무너지기 쉬운 인물입니다. 나쁜 남자지만 사실 인간적이죠. 우린 주어진 대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약점을 갖고 있잖아요. 그는 우리의 ‘다크 사이드(dark side)’입니다.” 캐나다 프랑스어권 지역에서 자란 그는 뮤지컬 배우 외에도 가수, 작가, 시인, 작곡가로 활동한 종합예술인이다. 특히 가수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캐나다 퀘벡의 ‘펠릭스 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월드뮤직어워즈(WMA)와 프랑스 음악 시상식(Victoire de la Musique)에서도 수상했다. 프롤로와 무대 밖 다니엘을 비교해달라고 하자 “저는 엄격한 금기나 규율과는 거리가 먼 자유로운 사람이다. 특권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 ‘프롤로’와는 다르다. 그저 노래하고, 책 읽고, 운동하며 행복하한 일상을 보내는 인간”이라고 했다. 그는 “팬이야말로 저를 가치 있게 만드는 존재”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그가 ‘무대를 찢는다’고 평가받는 1막 마지막 넘버에서 그는 객석을 바라보며 절규한다. “당신은 나를 파멸시킬거야!”내년 1월 17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8세 관람가김기윤기자 pep@donga.com}

캄캄한 무대, 막이 오르고 조명이 켜졌을 때 관객이 가장 먼저 보는 것? 배우의 몸이다. 연기나 대사보다 관객은 배우의 몸을 통해 직관적으로 캐릭터를 읽기 시작한다. 구석에 쭈그려 앉은 배우를 보면 말이 없어도 처연함을 느끼듯 몸도 정서와 감정을 드러낸다. 극에서 배우의 몸짓, 동작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연극계 ‘움직임 감독’의 활약이 돋보인다. 다양한 작품에서 배우의 움직임을 지도하는 남긍호(57) 김윤규(49) 이윤정(44) 감독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인간의 몸이라는 질료에서 움직임을 끌어내 (역의) 존재감을 살려내는 역할”이라며 “서고 앉는 자세에 따라서도 목소리 톤, 감정, 눈빛이 달라진다”고 입을 모았다. 각각 마이미스트, 무용수, 안무가 출신으로 ‘몸 쓰기의 달인’인 이들은 특정 장면의 대본에만 ‘갇혀’ 있던 움직임을 무대 위로 소환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사만으로 뭔가 부족할 때 몸 연기나 군무를 짤 정도로 극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전체적 움직임은 물론이고 배우의 이미지와 동선을 살피며 그에 어울리는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공연 중인 국립극단 ‘발가락 육상천재’의 남 감독은 “달리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비사실적이며 익살스럽게 그렸다. 같은 의상을 입은 배우 두 명을 무대 여기저기서 빠르게 등장시켰다가 퇴장시켜 한 사람인 듯 보이게 하는 트릭도 넣었다”고 했다. 연극깨나 본 관객에게도 움직임 감독이라는 호칭은 생소하다. 프로그램 북의 제작진 크레디트에 ‘움직임 지도’ ‘움직임 디자이너’로 표기되거나 ‘안무’ ‘안무 감독’으로 뭉뚱그려질 때도 있다. 다만 무용이나 뮤지컬 안무와 달리 연극의 몸짓을 설명하기엔 ‘움직임’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립극단의 차기작 ‘햄릿’을 맡은 김 감독은 “연극에선 ‘배우가 움직인다’는 느낌이 튀지 않아야 한다”며 “배우의 신체조건 성별 연령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인 동작이 장면 안에서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했다. 움직임 감독의 역할 확장은 몸을 통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중시하는 현대 연극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 감독은 “옛날엔 ‘이 장면을 그냥 현대무용처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거나 ‘왜 움직여야 하느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걷고 뛰고 숨쉬는 움직임 모두 디자인 대상”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대본의 텍스트 뒤에 숨은 연극 말고 몸을 전면에 내세운 연극이 세계적 추세”라고 덧붙였다. 이는 오늘날 드라마투르그(dramaturg·극작술 연구자)의 분화 과정과 비슷하다. 창작부터 제작, 캐스팅, 리허설, 공연 후 평가까지 관여하는 드라마투르그의 일은 과거 연출이나 프로듀서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전문성이 강조되며 각각 나뉘게 됐다. 국내 첫 드라마투르그는 1999년 ‘파우스트’의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다. 사례비도 없었고 팸플릿에서 이름조차 빠졌다. 움직임 감독의 역할은 아직 부수적이다. ‘있으면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따로 비용을 지불할 여력은 없다. 국·공립극단이나 대형극 또는 신체극 중심의 극단에서만 일을 맡겼다. 김, 이 감독은 “‘이 장면만 봐달라’거나 무료로 품앗이하듯 해달라고 요구할 때도 있지만 연출과 협력하는 부분이 점차 늘고 있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남 감독은 “몸 잘 쓰는 한국 배우가 많다. 움직임 감독의 역할은 배우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캄캄한 무대, 막이 오르고 조명이 켜졌을 때 관객이 가장 먼저 보는 것? 배우의 몸이다. 연기나 대사보다 관객은 배우의 몸을 통해 직관적으로 캐릭터를 읽기 시작한다. 구석에 쭈그려 앉은 배우를 보면 말이 없어도 처연함을 느끼듯 몸도 정서와 감정을 드러낸다. 극에서 배우의 몸짓, 동작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연극계 ‘움직임 감독’의 활약이 돋보인다. 다양한 작품에서 배우의 움직임을 지도하는 남긍호(57) 김윤규(49) 이윤정(44) 감독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인간의 몸이라는 질료에서 움직임을 끌어내 (역의) 존재감을 살려내는 역할”이라며 “서고 앉는 자세에 따라서도 목소리 톤, 감정, 눈빛이 달라진다”고 입을 모았다. 각각 마임이스트, 무용수, 안무가 출신으로 ‘몸 쓰기의 달인’인 이들은 특정 장면의 대본에만 ‘갇혀’ 있던 움직임을 무대 위로 소환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사만으로 뭔가 부족할 때 몸 연기나 군무를 짤 정도로 극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전체적 움직임은 물론 배우의 이미지와 동선을 살피며 그에 어울리는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공연 중인 국립극단 ‘발가락 육상천재’의 남 감독은 “달리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비사실적이며 익살스럽게 그렸다. 같은 의상을 입은 배우 두 명을 무대 여기저기서 빠르게 등장시켰다가 퇴장시켜 한 사람인 듯 보이게 하는 트릭도 넣었다”고 했다. 연극깨나 본 관객에게도 움직임 감독이라는 호칭은 생소하다. 프로그램 북의 제작진 크레디트에 ‘움직임 지도’ ‘움직임 디자이너’로 표기되거나 ‘안무’ ‘안무 감독’으로 뭉뚱그려질 때도 있다. 다만 무용이나 뮤지컬 안무와 달리 연극의 몸짓을 설명하기엔 ‘움직임’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립극단의 차기작 ‘햄릿’을 맡은 김 감독은 “연극에선 ‘배우가 움직인다’는 느낌이 튀지 않아야 한다”며 “배우의 신체조건 성별 연령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인 동작이 장면 안에서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했다. 움직임 감독의 역할 확장은 몸을 통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중시하는 현대 연극의 흐름과도 맞닿아있다. 이 감독은 “옛날엔 ‘이 장면을 그냥 현대무용처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거나 ‘왜 움직여야 하느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걷고 뛰고 숨쉬는 움직임 모두 디자인 대상”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대본의 텍스트 뒤에 숨은 연극 말고 몸을 전면에 내세운 연극이 세계적 추세”라고 덧붙였다. 이는 오늘날 드라마투르그(dramaturg·극작술 연구자)의 분화 과정과 비슷하다. 창작부터 제작, 캐스팅, 리허설, 공연 후 평가까지 관여하는 드라마투르그의 일은 과거 연출이나 프로듀서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전문성이 강조되며 각각 나뉘게 됐다. 국내 첫 드라마투르그는 1999년 ‘파우스트’의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다. 사례비도 없었고 팸플릿에서 이름조차 빠졌다. 움직임 감독의 역할은 아직 부수적이다. ‘있으면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따로 비용을 지불할 여력은 없다. 국·공립극단이나 대형극 또는 신체극 중심의 극단에서만 일을 맡겼다. 김, 이 감독은 “‘이 장면만 봐 달라’거나 무료로 품앗이하듯 해달라고 요구할 때도 있지만 연출과 협력하는 부분이 점차 늘고 있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남 감독은 “몸 잘 쓰는 한국 배우가 많다. 움직임 감독의 역할은 배우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김기윤기자 pep@donga.com}

2014년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13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 ‘코스모스’에 닐 타이슨 박사가 처음 등장했을 때 대중의 반응은 엇갈렸다. 누군가는 칼 세이건의 후계자로 등장한 이 인물에게 환호했지만, 다른 이들은 낯선 흑인 남자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말솜씨는 웃기고 유려했으며 때론 대중 앞에서 거리낌 없이 춤도 췄다. 이전까지 점잖게 우주를 설명하던 백인 아저씨 칼 세이건과는 아무래도 결이 달랐다. 하지만 그는 지금 ‘칼 세이건의 후계자’라는 별칭을 넘어 ‘가장 유명한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그의 통찰과 대중 눈높이에 맞춘 친절한 설명에 미국이 매료됐다. 1400만 트위터 팔로어를 보유한 그가 팟캐스트 ‘스타토크’를 진행하며 대중과 주고받은 편지글 101편을 책으로 엮었다. 닐 타이슨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던져진 질문은 우주를 넘어 종교, 철학, 삶으로 확장한다. 마치 그에게 몰려든 전 세계인의 사상 철학 인생의 고민거리에 대한 구루(guru·종교적 현자)의 말씀을 모아놓은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제목이 보여주듯 철저히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연구와 합리적 추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를 ‘우린 왜 여기 존재하는가’ ‘죽은 아버지가 제게 말을 걸었다’는 질문부터 ‘당신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과거 욕한 적이 있다’는 고백에도 그는 과학에 기초해 ‘친절히’ 답한다. 실제 그가 받는 e메일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팬레터를 빼면 그의 이론에 대한 맹목적 비난도 많다. 그럼에도 상대의 오류를 쉽고 유쾌한 방식으로 바로잡아내는 탁월함을 드러낸다. 대중이 비과학적 오류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사고할 힘을 갖게 하고 싶다는 책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한 듯싶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앞이 안 보이는데 댓글은 어떻게 다냐고요?” 최근 빠르게 인기가 상승한 유튜브 채널 ‘원샷한솔’의 운영자 겸 진행자인 김한솔 씨(27)가 댓글로 종종 받는 질문이다. 김 씨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마주앉은 사람의 형체조차 식별하기 힘들다. 김 씨 같은 시각장애인 유튜버의 활약이 근래 눈에 띄게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하자 장애인의 일터, 쉼터인 안마원, 복지관 운영이 불안정해졌다. 이에 유튜브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이들이 많다. 최근 1만7000명까지 구독자가 늘어난 채널 ‘원샷한솔’은 장애인 일상에 관한 궁금증을 말 그대로 한 방에 풀어주며 호평받고 있다.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고기를 구워먹나’ ‘카페에서 어떻게 주문할까’ 등 장애인 일상을 조명했다. 27일 서울 광진구 작업실에서 만난 채널 운영자 김 씨와 제작PD 김소희 씨(25)는 “유튜브에서 이제 시각장애는 불편이 아닌 개성”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까지도 구독자 수가 1만 명이 넘는 시각장애인 유튜버는 단 1명에 불과했다. ‘누구나 방송한다’는 모토를 가진 유튜브마저도 이들에게는 큰 벽이나 마찬가지였다. 김 PD는 “유튜브가 시각장애인에게는 미지의 영역일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은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는 “적절한 효과음이나 배경음악은 저보다 한솔 씨가 잘 찾고, 자막 타이핑도 한솔 씨가 전담한다 ”고 설명했다. 김한솔 씨는 영상에 달린 댓글도 직접 확인한다. 보이스오버(voiceover·목소리 해설) 기능을 통해서다. 김 씨는 “영상이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된다는 반응을 보면 뿌듯하다”고 했다. 비장애인이 제작한 영상과 가장 큰 차이는 눈 대신 귀로 검증한다는 것.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영상을 이해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영상’이 콘텐츠의 특징이다. 김 씨는 “소리만 들어서 내용이 연결되지 않는다고 느끼면 영상 순서를 재배열한다. 소리 없이 화면만 나오는 부분엔 내레이션을 넣는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선 시각장애인 유튜버들이 일찌감치 큰 호응을 얻었다. 구독자 10만 명 이상의 시각장애인 채널도 많다. ‘Molly Burke’는 구독자 203만 명을 보유한 채널이다. 메이크업, 야외 스포츠 등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담아낸 영상이 큰 인기다. 시각장애인 대상 동영상 제작 강좌를 연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의 유현서 평생교육팀장은 “국내서도 시각장애인 유튜버가 늘어나는 추세다. 유튜버 수업도 꾸준히 수요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김 PD는 “유명한 시각장애인 유튜버가 나오면 다른 이들도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어 연쇄적으로 세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솔 씨는 “코로나19로 일상이 단절된 시대, 유튜브는 단순한 대화수단을 넘어 장애인이 세상과 마주하고 힘을 얻는 매력적인 소통창구”라고 답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생활디자인과 4학년}

“왜 내 작품을 자꾸 이렇게 난도질하는 거냐.” 최근 방송 중인 Mnet의 힙합 오디션 예능 ‘쇼미더머니’ 시즌9에 출연한 래퍼 스윙스는 지난달 2화 방송이 끝난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악마의 편집’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제작진은 프로그램 막바지에 그의 경연 무대를 배치하면서 전체를 다 보여주는 대신 일부 장면만을 편집한 채 방송을 마무리했다. 언뜻 보면 다음 에피소드를 궁금하게 만들지만 시청자 대부분은 그가 경연에서 큰 실수를 저지른 듯한 분위기로 받아들였다. 실제 상황은 달랐다. 그가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 것. 스윙스는 방송 다음 날 “날 예능적으로 이용하는 거 좋다. 다 돈 벌고 보는 사람도 할 말 많아지면 그게 엔터테인먼트”라면서도 “그런데 내 음악을 있는 그대로 좀 내보내주면 시청률이 내려가냐. 왜 그렇게 과욕을 부리냐”며 제작진을 비판했다. 다음 화 방송에 이어 무삭제 버전 유튜브 영상을 접한 시청자들도 “일부러 논란인 것처럼 만드는 건 진짜 옛날 스타일이다. 촌스럽다”며 배신감을 나타냈다. 몇몇 해외 시청자 역시 “각본이 짜여진 예능 편집은 드라마랑 다를 게 없다”고 밝혔다. 한편으로는 이 프로그램에 수차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흥행의 키를 쥔 스윙스의 불만 표출이 짜여진 각본에 따른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견해도 있다. 동시에 덜 유명한 참가자였다면 편집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제작진의 작전이 통한 걸까. 프로그램의 클립 영상 조회 수는 네이버 유튜브 등에서 2000만 회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 시즌 영상에 비해 회당 300만 회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경연,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속 악마의 편집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특히 과도한 편집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피해자들이 잇따라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실상을 폭로하고 있고 시청자들은 악마의 편집에 흥미보다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악마의 편집은 본래 상황을 오해하도록 왜곡하는 편집을 비판하는 인터넷 용어에서 나왔다. 촬영한 순서를 재배치하고 자막 및 배경음악을 삽입하며 주변 반응을 짜깁기하는 등 편집을 할 때 의도를 갖고 특정 분위기로 몰아간다. 2010년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서 한 출연자가 악의적 편집으로 비판을 받았던 사실이 알려지며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이 널리 알려졌다. 악마의 편집은 출연자들의 경쟁심을 유발하는 서바이벌 예능이나 관찰·리얼리티 예능에서 주로 사용된다. 극적 상황이나 갈등을 연출하거나 출연자별 캐릭터를 설정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한 출연자의 공연이 끝난 후 이와 상관없이 재채기를 하다 인상을 찌푸린 다른 참가자의 얼굴을 비춤으로써 ‘무대를 심각하게 망쳤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식이다. 여러 화면을 병치시킬 때 맥락, 연결 장면에 따라 같은 장면이라도 전혀 다른 정서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쿨레쇼프 효과’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 유튜브 채널 ‘VOTUS’에는 2015년 방송된 Mnet의 ‘언프리티 랩스타’의 래퍼 ‘졸리브이’가 등장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래퍼 ‘치타’와 함께 오른 합동 공연에서 실력이 없어 무대를 망친 장본인에 비호감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비판받았다. 그의 영상은 수차례 편집, 확대 재생산되면서 놀림거리가 됐다. 그가 공연하는 사이사이 찌푸린 심사위원들의 얼굴이 나가면서 무대가 엉망인 것같이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저는 ‘랩 대결 최강자’라는 캐릭터로 설정됐다. 무대가 떨려 과도하게 흥분했던 건 맞다”면서도 “방송을 보면 다른 래퍼의 공연에는 심사위원들이 화색인데 제가 공연할 때만 심하게 정색한다. 제 앞에 있는 사람이 저렇게 정색하며 공연을 보는데 어떻게 제가 그걸 무시하고 공연을 하겠냐. 좀 이상하지 않냐”고 해명했다. 실제 촬영 중 몇몇 심사위원들이 그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네는 장면도 있었지만, 그 장면은 방송되지 않았다. 과거 MBC ‘진짜사나이 여군 특집’에 출연했던 맹승지도 대표적 피해자다. 그는 훈련소 입소 과정에서 배꼽티에 핑크색 트렁크를 들고 간 ‘무개념녀’로 전파를 탔다. 고된 훈련 과정 중 “원래 여자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라는 발언은 편의를 봐달라는 요청으로 비치며 뭇매를 맞았다. 유튜브 채널 ‘까레라이스TV’에 출연한 그는 “소속사에서 어떤 프로그램 출연인지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다른 참가자처럼 고데기, 인형, 트렁크 등 특정 소품을 지참하라고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또 훈련에 대해선 “헬스장에서 배운 대로 무릎을 댄 채 팔굽혀펴기를 하면 훈련을 완수할 수 있을 것 같기에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한 말인데 ‘난 여자니까 우대해 달라’는 식으로 편집돼 인생 최대의 욕을 먹었다”고 말했다. Mnet의 쇼미더머니 시즌5에 출연했던 래퍼 ‘원썬’도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에서 웃음거리가 된 과거를 털어놨다. 그는 방송에서 자신의 연륜, 경력만 강조하는 ‘꼰대’로 비치며 대중의 욕설과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그는 “누군가 희생양으로 삼을 베테랑 1세대 래퍼가 필요했던 것 같다. 제가 맡았던 역할은 쇼미더머니에서 바보였다”고 했다. 숱한 논란, 폭로, 비판에도 악마의 편집이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화제성과 시청률이 도덕적 논란이나 무관심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한 방송국의 예능PD는 “시청자에게 기대감도 줘야 하고, 화제성도 얻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비판이 있더라도 일정 수준의 편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악마의 편집은 유독 약자에게 가혹하다. 인지도가 있는 사람은 사전 조율을 거치는 편이지만 출연 기회 자체가 중요한 약자들은 전권을 제작진에 맡기기 때문에 피해가 반복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원칙상 출연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방송에 나갈지 사전 동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잘못된 방송 관행으로 모든 연출권이 PD에게 있고, 출연자는 이에 이의를 제기하면 눈치를 봐야 하는 풍토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쿨레쇼프 효과 ::소련의 영화감독 겸 이론가 레프 쿨레쇼프가 주창한 ‘숏(shot)’ 편집의 효과. 숏과 숏을 병치시키는 과정에서 편집에 의해 맥락에 따라 색다른 의미와 정서적인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한 이론. 똑같은 표정의 인물도 함께 보여지는 이미지에 따라 완전히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