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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신경세포 전기 신호의 작용의 총합과 마찬가지인 것일까? 뇌 과학과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의 발전은 인간을 이해하는 지평을 크게 넓혔다. 그러나 그에 따라 인간 정신을 모두 그 같은 방식으로 해명할 수 있다는 믿음도 커졌다. ‘나는 뇌가 아니다’는 28세에 독일 본대학 철학과 석좌 교수가 된 철학자가 이 같은 편향을 반박하는 책이다. 신경중심주의는 “인간의 중추신경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계속 늘리면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 “종의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장점들을 재구성하면 인류의 행태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사랑은 호르몬의 작용이고, 진화해 온 짝짓기 행동의 일종이다. 문학, 건축, 음악 등은 동물이 지닌 놀이 충동의 복잡한 버전에 불과하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은 번식과 생존 투쟁에 내몰린 동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정신적 자유에서 존엄이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물론 뇌가 없다면 정신도, 의식도 없다. 그러나 뇌가 곧 정신은 아니다. 두 다리로 페달을 밟아 자전거를 타지만, 다리를 이해한다고 자전거 운전법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심야의 철학 도서관’도 인간의 의식을 탐구하는 심리철학자들의 책이다. 책은 도서관에 숨어든 두 학생의 대화 형식을 빌린다. “공기 중에 어떤 화학물질이 있느냐는 객관적 사실의 문제지만, 그 물질의 냄새는 우리 마음이 그 물질을 어떻게 지각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야” “그저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의 문제야”와 같은 식이다. 과학은 마침내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과 의식을 모두 설명해 낼 수 있을까? ‘물리적인 것이 전부’라는 물리주의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책은 이 같은 물리주의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틀이 과학 내에는 없다는 논증을 소개한다. 또 데카르트, 앙투안 아르노, 데이비드 흄 등 철학자와 신학자의 주장을 통해 의식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로봇도 사랑을 할까’는 결이 좀 다르다. 프랑스의 기술철학자인 장 미셸 베스니에와 ‘트랜스휴머니스트’의 대화 형식인 이 책의 부제는 ‘트랜스휴머니즘,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고민해야 할 12가지 질문들’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능력을 개선할 것을 주장한다.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인간인 시대인 휴머니즘 시대가 지나가고, 첨단 기술로 신체 능력을 증강한 인간들이 나타나는 포스트 휴머니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술만이 해결책이라는데 반대하는 베스니에는 인공지능을 경계한다. “모든 지능이 계산으로 환원되고, 모든 생명체는 충분히 계산을 한 후에 방향을 정하고 반응하며 결정한다…. 한데 그 과정을 아주 신속하게 해치우는 기계들이 있다. 그런 기계들을 구상해 제작한 건 우리의 지능이었지만, 이제는 우리의 발명품에 의해 추월당했다.” 반면 로랑 알렉상드르는 “인공지능의 발달과 트랜스휴머니즘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지체 없이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칭찬과 비난을 30년 이상 연구해 온 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과 교수의 책이다. ‘인정받고 싶지만 평가에 매달리긴 싫은 당신에게’라는 프롤로그 제목이 눈길을 끈다. 사실 저자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여기든 상관없다’라고 생각하는 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내가 나를 어떻게 여기느냐’는 타인의 판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 자체가 타인과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인간의 뇌는 다른 사람의 판단에 주목하도록 진화돼 왔다. 중요한 건 스스로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다. 저자는 “대체로 자기 방어와 편견은 스스로의 자존감은 보호하면서 상대방의 자존감은 약화시킨다”며 “이를 정확히 분별해야 올바른 판단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칭찬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칭찬은 약과 같아서 적절한 용법과 용량을 지키지 않으면 부작용이 크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과제의 결과물보다 해결하려는 끈기와 노력에 칭찬의 초점을 맞추는 게 좋다. 부모의 칭찬이 자신을 통제하는 수단이라고 느끼는 아이는 오히려 반발하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법’을 소재로 한 책들이 적지 않게 출간되고 있는 요즘이다. 이 책에는 딸 둘을 키운 어머니의 따스한 성찰이 배어 있다. 원제는 ‘Passing Judgement’.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원로 국어학자인 고영근 서울대 명예교수(82·사진)가 고대부터 오늘날 남북한과 재외동포의 우리말 문법을 망라한 ‘우리말 문법, 그 총체적 모습’(집문당)을 최근 펴냈다. 950쪽에 이르는 이 책은 우리말의 역사적 변화형과 방언, 여러 공간적 변이형을 5년에 걸쳐 연구해 담은 노작(勞作)이다.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명예교수실에서 만난 고 교수는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이 지은 ‘우리말본’을 20대 중반에 꼼꼼히 읽으며 ‘나도 이런 책을 써봤으면…’ 하는 꿈을 가졌는데, 이제 내 학문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책을 냈다”고 말했다. “중앙아시아와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여기, 거기’라는 말을 ‘잉에, 긍에’라고 하기도 합니다. 15세기 중세 국어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지요. 특히 변방인 옛 6진(六鎭·조선 세종 때 두만강 하류 지역에 설치한 여섯 진) 지역 출신의 말이 그러합니다. 고려인의 말은 러시아어와 중국어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우리말’은 한국어와 조선어(북한·중국 동포의 말), 고려어 등으로 분화한 것을 모두 포괄한다. 고 교수는 이번 책이 “이 같은 변이와 그 원인을 한 체계 위에서 총체적으로 서술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표준어인 문화어 문법도 서술 대상으로 삼았다. 고 교수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공동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모두가 사용할 독일어 규정을 합의한다”며 “남북한의 정체(政體)가 통일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언어문화는 통합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석국어학상(2004년), 삼일문화상(2008년) 등을 받은 고 교수는 현재 국제학술지 ‘형태론’ 편집고문과 ‘이극로박사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언어 연구에서 ‘계통론(공통의 조어·祖語나 언어 사이의 친족 관계를 연구)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봤다. “일례로 모음조화 현상이 과거에는 알타이 어족의 특징이라고 했지만 아프리카의 여러 언어나 프랑스 방언에도 다 나타난다는 게 드러났지요.” 고 교수는 “우리말은 종결어미로 문장의 형태가 결정되는 특징이 있다”며 “언어 유형론(계통에 관계없이 구조를 기준으로 언어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연구)의 측면에서도 몽골어, 만주어와도 다른 주목할 만한 언어”라고 강조했다. 정년퇴임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노(老)학자의 학구열은 ‘마르지 않는 샘’이다. 그는 이번 책을 쓰기 위해 2013년부터 매일 5, 6시간씩 작업했다. 기초연구 성격의 논문도 해마다 서너 편씩 발표했다. 고 교수는 “옛날 같으면 세상을 떴을 수도 있는 나이지만, 마냥 놀 수는 없고 원래도 공부가 취미다”며 “이제 한국 언어철학사를 써볼까 싶다. 우리 것을 연구해 성과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없더라”라고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공장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찍어내고 이를 대량 소비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 ‘메이커’(제품을 직접 만들고 개발하는 이)들의 시대가 올 거예요.” 지난해 창간된 만들기 키트 중심의 과학 잡지 ‘메이커스’(동아시아) 책임편집자 이동현 팀장(37)이 말했다. 메이커스는 1, 2호에서 미니 플라네타륨(별자리 투영기)과 이안 반사식 카메라를 독자가 만들어보는 키트를 배송하더니 3호인 최근호에서는 ‘무려’ 인공지능(AI) 스피커를 내놨다. 최근 서울 중구 소파로 사무실에서 만난 이 팀장은 ‘메이커’들이 각종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고, 개발한 제품을 사업화하는 문화가 국내에도 생기고 있다고 했다. “메이커들은 라면 수프를 뜯어서 털어주는 로봇을 만들기도 하고, 3차원(3D) 프린터로 장난감 전자레인지를 딸에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메이커들의 1차적인 동기는 재미죠. 하지만 이런 흐름이 모여 산업 구조의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봅니다.” 이 팀장은 잡지 메이커스가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과학은 손으로 하는 것”을 표방하며 창간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에는 이 같은 ‘키트 잡지’가 활성화돼 있지만 국내에는 거의 없다. 메이커스 1, 2호는 일본의 키트 잡지 ‘어른의 과학’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일본의 키트를 들여왔다. 이번 AI 스피커 키트는 KT와 협업해 처음으로 국내에서 기획해 만들었다. 잡지와 동봉된 박스를 열면 초소형 컴퓨터인 ‘라즈베리파이’와 음성인식 보드(보이스키트), 마이크, 스피커, SD카드 등이 들어 있다. 설명서를 따르면 조립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다운로드한 운영체제(OS)와 예제 프로그램 코드를 가동하면 KT의 ‘기가지니’와 동일한 음성인식 AI로 연결돼 일반 AI스피커와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코드를 입력하면 음성 명령을 통해 레고로 만든 자동차를 제어할 수도 있다. 코딩을 공부하면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하다. 이 팀장은 “KT의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스타트업 기업과 전문 개발자들도 이번 키트를 많이 찾고 있다”며 “음성인식 기술이 생활을 크게 바꿀 것으로 전망되는데, 완성품을 사서 쓰기보다 직접 제품을 만들어보면서 변화에 앞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커스는 드론이나 3D프린터를 만들 수 있는 키트를 향후 아이템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 팀장은 포스텍을 졸업하고 철강 제조 기업에서 일하다가 수년 전 출판 편집자로 전직했다. “제가 과학책을 많이 좋아했거든요. 대학 시절 일본 잡지 ‘어른의 과학’을 보고, 우리도 이런 잡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그런 잡지를 만들게 됐네요. ‘덕업일치’(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신조어)인 셈이죠.” 이 팀장은 한국인도 일본인 이상으로 특이한 물건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계기가 없어서 그렇지, 한번 뭔가를 만들어보고 ‘손맛’을 느끼면 계속하게 될 겁니다. 뭔가를 만들고 싶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초심자를 위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중국 송나라 성리학설을 집대성한 책으로 세종대왕의 애독서이기도 했던 ‘성리대전(性理大全)’이 최근 전 10권으로 완역 출간(도서출판 학고방·사진)됐다. 윤용남 성신여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이끈 연구진은 2010년부터 8년간 작업한 끝에 성리대전을 완역했다. 성리대전은 중국 명나라 영락제 대인 1415년 편찬돼 1419년(세종 1년)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성리학뿐 아니라 문학 역사 역학(易學) 예학(禮學) 음악 교육학 어학 정치학 천문학 등 당시 사상이 총망라돼 있다. 세종은 유교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성리대전의 도입과 보급에 힘썼다. 윤 교수는 역주자 서문에서 “인간 중심의 서양 철학이 일군 서양 문명을 넘어 미물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세상을 향한 길이 성리대전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게 맥주다. 유럽의 수많은 양조장과 맥주 공장 순례 경험을 바탕으로 맥주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기원전 1800년경 만들어진 수메르의 점토판에는 현존 최고(最古)의 맥주 제조법이 새겨져 있다. 오늘날 라거 맥주가 맥주의 표준처럼 자리 잡은 건, 한자동맹(14세기 결성된 북부 독일 중심의 도시 동맹) 상인들이 영주가 독점한 ‘그루트’(허브 혼합물) 대신 홉(hop·삼과의 덩굴식물)을 넣고 발효 방식을 바꿔 보존성을 높인 데서 연원한다. 19세기 초 흑맥주 기네스의 탄생은 영국이 아일랜드에 부과한 무거운 양조세와 관계가 있다. 세금을 피하려고 맥아 대신 볶은 보리를 사용했기에 기네스는 탄 맛이 난다. 맥주를 사랑했던 ‘가곡의 왕’ 슈베르트(1797∼1828)는 맥줏집을 무대 삼아 새 가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간지 기자를 거쳐 국내에서 처음으로 하우스맥줏집을 창업한 저자의 필력이 좋은 맥주만큼이나 시원 쌉싸래하다. 부제는 ‘맥주에 취한 세계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둘 모두 ‘칼잡이’가 쓴 피비린내 나는 책이다. ‘진실을…’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범 오즈월드의 재부검에 참여했던 미국 법의학자가 본 여러 사건의 진실을 다뤘다. ‘메스를…’은 네덜란드 외과 의사가 수술이 발전해 온 역사 속의 여러 흥미로운 장면을 포착했다.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알려진 대로 스스로 옆구리에 총을 쏴 목숨을 끊은 것일까? ‘진실을…’ 저자 빈센트 디 마이오는 어느 여름날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반 고흐가 사실은 총을 가지고 놀던 10대 청소년들로부터 총을 맞았다는 주장을 2011년 책으로 펴낸 저자들의 전화다. 논쟁이 심화하자 총상 전문가에게 자문한 것. 기록을 검토한 디 마이오는 “모든 의학적 가능성을 고려하면 반 고흐는 자신을 쏘지 않았다”고 했다. 먼저 고흐의 총상 부위다. 왼쪽 팔을 내리면 팔꿈치가 닿는 가슴 부위에 총알이 들어갔는데 권총 자살자 중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더구나 오른손잡이인 고흐가 그 부위에 총을 쏘는 건 상당히 어색하다. 만약 그랬다면 총구가 피부와 직접 닿거나 5cm 이내여서 피부가 뜨거운 가스와 그을음, 흑색 화약의 부스러기에 의한 화상을 입었어야 하지만 상처 부위 피부 상태에 대한 증언에는 그런 얘기가 없다. 옷에 그을음이 있었다는 증언도 없다. 이는 총이 적어도 50c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사됐다는 뜻이다. 저자는 “반 고흐가 죽고 싶어 했는지, 죽음을 기꺼이 수용했는지 어땠는지 나는 모른다”며 “그러나 법의학적 사실은 그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걸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맡았던 많은 사건에서 사람들은 법의학적 진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었다고 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이 오즈월드가 아니라 그와 똑같이 생긴 소련 요원 알렉이라는 음모론이 1975년 제기됐을 때도 그랬다. 법정 다툼 끝에 1981년 10월 4일 오즈월드의 시신을 무덤에서 파내 두 번째 부검에 들어간다. 그 결과 치아의 모양도 기록과 일치했고, 저자가 머리를 분리하고 두개골을 조사하자 오즈월드가 어릴 적 유양돌기염 치료를 받았던 흔적이 그대로 나타났다. ‘메스를…’에도 오즈월드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에는 암살 용의자인 그가 미국 댈러스의 경찰서 주차장에서 호송차로 이동하다가 잭 루비라는 남자에게 총을 맞고 죽기 직전 수술을 받은 이야기다. 저자는 공개된 수술 기록을 바탕으로 수술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집도의는 오즈월드의 대동맥에 생긴 구멍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막고 클램프(수술 도구의 하나)를 설치하는 등 지혈에 성공했으나 끝내 오즈월드는 사망했다. 저자는 외과 의사들이 최악의 악몽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mors in tabula’(수술 중 사망)라고 했다. 이 밖에도 포경 수술 전문가로부터 치료받은 프랑스의 루이 16세, 특이한 병으로 사망한 교황들, 출산의 고통으로 수술에 마취를 도입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든 영국 빅토리아 여왕, 내시경을 사용한 수술의 발전 등 수술 역사에서 중요한 28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외과 의사가 수술 전 손을 씻기 시작한 것이 불과 150년밖에 안 됐지만 오늘날은 수술실을 멸균 환경으로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규칙이 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신간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책의 향기’이다 보니 개정판이나 증보판은 아무래도 눈길이 덜 가게 마련입니다. 이번 주에는 눈에 띄는 책들이 있네요. ‘작가정신’은 신화연구가였던 고(故) 이윤기 작가(1947∼2010)의 8주기를 맞아 그가 남긴 소설, 에세이, 인문서를 1종씩 개정해서 출간했습니다. 각각 ‘진홍글씨’ ‘이윤기가 건너는 강’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입니다. 이윤기 작가의 글을 좋아하던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겁니다. ‘의학계의 계관 시인’으로 불렸던 올리버 색스(1933∼2015)의 책 ‘색맹의 섬’(알마)도 개정판으로 나왔습니다. 주민들 상당수가 색맹인 사회를 찾아 저자가 미크로네시아를 여행한 기록이 담겼습니다. 색스가 생전에 가장 사랑하는 책으로 꼽았다고 하네요. 개정판은 새 장정과 판형으로 단장하거나 문장과 맞춤법을 다듬어 냅니다. 글이 들어가고 빠지거나 출판사가 바뀌기도 합니다. 공들인 개정판은 책이 거의 새로 태어난 셈이지요. 이윤기 작가의 기일은 27일, 올리버 색스는 30일입니다. 작가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을 떠났지만, 그들이 이 세상에 남긴 책은 새로운 생명을 얻습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직관을 믿지 마세요. 판단과 결정에서 편향을 피하려면 데이터를 가지고 확인해야 하고, 그럴 수 없다면 다른 이의 판단을 가지고 확인해야 합니다.” 행동경제학이 탄생하는 과정을 다룬 신간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김영사·1만8500원)의 저자 마이클 루이스(58)는 e메일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평소 직관을 믿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경제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주체를 가정하고, 그 바탕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84)과 아모스 트버스키(1937∼1996)가 창시한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의 판단에 감정과 심리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걸 밝혔다. 루이스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쓰겠다고 한 뒤 카너먼이 인터뷰를 편하게 받아들이기까지는 거의 5년이 걸렸다고 한다. 루이스는 “카너먼은 책에 자신이 너무 드러나 망자인 트버스키의 역할이 과소평가될까 우려했다”고 말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바로 이해할 수 있게 직관적으로 도안하는 것부터 남자 소변기에 파리를 그려 넣어 변기 가운데로 볼일을 보게 하는 ‘넛지’ 디자인, 미국의 연금 자동 가입 방식 등 각 분야의 변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두 학자는 ‘지난 200년 동안 경제학적 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들’로 평가되기도 한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거의 한 몸처럼 협력하며 연구 성과를 냈습니다. 논문에서 각자가 기여한 부분이 어디인지 정확히 구분이 안 될 정도였죠.” 둘은 ‘애증’의 관계이기도 했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건 생존한 카너먼뿐이었지만 사실 소심한 성격의 카너먼보다 자기 확신이 강한 트버스키가 오랫동안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루이스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체계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수를 재평가해 좋은 성적을 내는 과정을 그린 논픽션 ‘머니볼’(2003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본질을 추적한 ‘빅숏’(2010년)의 저자이기도 하다. 두 책은 모두 영화로 만들어졌다. “‘머니볼’에서는 왜 선수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안 나오지만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는 이 같은 인간의 오판에 답을 제시합니다.” 그는 학부에서 예술사를 전공하고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그는 “경제학자들보다 인지심리학자들과 함께 있을 때 마음이 더 편하고, 심리학자들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고 중요하게 들린다”고 덧붙였다. 책의 원제를 ‘언두잉 프로젝트(The Undoing Project)’로 지은 이유는 “두 사람의 연구가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다룬 위대한 ‘되돌리기(Undoing)’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판단의 편향에 관해 내공이 깊은 그도 오류를 피할 수는 없는 듯하다. 자신의 삶을 행동경제학적으로 돌아볼 때 후회되는 판단이나 비합리적인 결정이 있는지 물었다. “연애나 주식 투자에서 ‘매몰비용’을 무시하는 데 실패했어요. 단순히 내가 그것에 투자를 했다는 것 때문에 적절한 기간보다 더 오래 그 상태를 유지하려 했거든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그동안 건국 시점 관련 논쟁이 역사적 사실과 이를 기념하는 일조차 구별하지 못한 채 정치적 논리에 얽매여 왜곡돼 왔다는 연구가 나왔다. 1948년 건국은 역사적 ‘사실’이며 ‘1919년 건국론’은 오히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중앙정부’라고 강조하기 위해 만든 기억과 기념의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60·사진)는 22일 한국근현대사학회 학술대회 ‘독립운동, 그 기록과 기념의 역사’에서 발표할 예정인 ‘역사적 시간과 기억의 방식: 건국 원년과 연호 문제의 관점 전환을 위하여’에서 이같이 밝혔다. 도 교수는 주해본과 정본 백범일지를 편찬한 백범 김구 연구의 권위자다. 도 교수는 “‘1919년 건국론’은 긴 논쟁에서 오해가 생긴 것처럼 김구와 임시정부가 주도한 게 결코 아니다”라며 “이 전 대통령이야말로 이러한 기억의 창시자이자 주도자였다”고 밝혔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이 글로 지금껏 벌어진 논쟁이 끝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19년 건국론, 반공 위해 제기”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民國) 임시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민국 연호(年號)는 기미년에서 기산(起算)할 것이오….” 이 전 대통령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의 의장으로서 발표한 ‘개회 식사(式辭)’에서 1919년 건국을 분명히 했다. 도 교수는 “이처럼 ‘1919년 대한민국 건국, 1948년 재건’이 기본 기조”라며 “임시정부 부활을 강조한 건 대한민국이 ‘완벽하게 한국 전체를 대표하는 중앙정부’라고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조선노동당과 인민위원회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에 정통성이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1948년 7월 24일 이승만 대통령 취임사, 8월 15일 정부수립 기념사, 이승만이 주도해 삽입한 제헌헌법 전문(前文) 등에서도 1919년 건국론이 줄곧 유지됐다. 도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 원년을 1919년으로 끌어올리려 한 건 분단된 한반도가 남(南)에 의해 통일돼야 한다는 욕망의 표현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1919년 건국론에는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의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대한민국이 임정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취지도 담겨 있다. “기미년 3월 1일을 기하여… 4월 16일 13도 대표가 경성에 비밀히 모여 국민대회를 열고 임시정부를 조직하여 전문(全文)을 인쇄하여 세계에 발포하니 이로써 임시정부는 귀한 피로 만들어진 것이다.”(1945년 11월 28일 이 전 대통령의 임정 요인 귀국 환영사) 도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은 1919년 3·1운동은 그가 정부의 영수인 ‘집정관 총재’로 추대된 한성임시정부로 귀결됐다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반쪽 기억으로 미래 감당 못해” 도 교수는 역사적 사실은 ‘1948년 건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19년을 건국으로 보면) 신채호 등 임시정부에 반대했던 독립운동가는 어떻게 되며 1945년까지 일제 국적을 가지고 한반도에서 신음하던 2000만∼3000만 동포는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1948년 건국’을 주장하면 ‘친일부역의 은폐’를 위한 것이란 기계적 도식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비약이 심하다는 게 도 교수의 판단이다. 역사적으로 김구와 임시정부는 ‘임정 법통론’을 통한 건국을 도모했지만 실패했고 이승만은 5·10선거를 통한 대한민국의 건국을 주도했다. 도 교수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기억’의 문제”라며 “‘1919년 건국’이 ‘사실’이라며 반대 의견을 제기한 게 적잖은 혼란을 야기했다”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1919년 건국론’을 이끌어온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1919년 건국론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정하면 민족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괴뢰국이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광복절 경축사에서 지난해와 달리 “2019년 건국 100주년을 맞는다”는 표현을 하지 않은 건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북한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북한은 임시정부를 “정치적 야욕을 채워 보려는 투기 행위의 산물” 등으로 비난해 왔다. 도 교수는 “건국 연도 문제는 남북과 좌우가 민족운동사를 공동으로 기억, 기념하는 과제와 연결돼 있다”며 “친일과 반일, 우익과 좌익, 남과 북의 대립 구도의 ‘반쪽’ 역사 기억 방식으로는 향후 역사적 변화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양복쟁이 바지에 대님을 써야 될 건가/…/연미복 입고 당나귀를 타야만 격인가.” 1930년대 유행한 ‘꼴불견 주제가’다. 일본과 서양에서 건너온 근대 문물과 조선의 전통이 식민지 조선에서 충돌하는 모습을 ‘꼴불견’이라며 풍자했다. 새로울 것 없는 얘기지만 한국의 근대는 ‘식민지 근대’로 시작됐다. 일제 강점을 겪은 한국은 일본을 통해 서구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다. 예술 분야뿐 아니라 언어, 기술, 학문, 교육, 종교 등 각 분야의 식민지적 근대성을 ‘번안’이라는 키워드로 조명했다. ‘번안’은 원래 특정 장르의 작품을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바꾸거나, 배경과 인물을 바꿔 현실에 맞는 배경과 형태를 갖추는 작업이다.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인 저자는 번안을 예술 작품뿐 아니라 사회변동기에 바깥으로부터 들어온 문화를 수용자에 맞게 바꾸는 일을 지칭하는 말로 폭넓게 사용한다. 이런 맥락에서 번안은 밀가루, 패션, 고무신, 모자, 주택, 라디오, 대중미술, 만화, 유흥업 등 일상 속 문화 전반에서 일어났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근대어, 이 기사를 쓰는 데 사용한 단어에도 일본어 ‘번안’의 흔적이 가득하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근대 사상을 번역하기 위한 개념어를 만드는 데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이 번역한 개념어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중역(重譯)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다. 그건 약이면서 독이었다. ‘번역의 고통’을 건너뛴 대가로 구어와 문어의 틈이 더 벌어지고 한자어는 더욱 늘어났다.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도 ‘번안’은 계속됐다. 요즘도 조미료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미원’은 식민지 때 이식된 일본의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산업화 시기 국내 기업들의 손에 재이식된 것이다. 기업들은 1930년대 아지노모토가 조선에서 펼친 광고 방식을 모방하고 상표 디자인과 용기를 차용했다. 이 같은 ‘식민지적 근대성’을 단순히 청산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돈가스’ 역시 애당초 일본이 ‘번안’한 서양 요리로 1930년대 조선에서 보급되기 시작한 음식이다. 이제 돈가스는 일상의 우리 음식으로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저자는 “원천이 서양이든 일본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돈가스의 근원을 확인하고, 변형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그 배경과 앞으로 변형할 모양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돈가스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게다. 모방에서 독창성도 나온다. 일본 가수 사카모토 규가 1961년 발표한 노래 ‘위를 보고 걷자’는 미국으로 건너가 ‘스키야키’라는 제목으로 1963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이시스터즈’가 ‘위를 보고 걸어요’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저자는 “당시 미국에서 인기였던 ‘맥과이어 시스터즈’와도 스타일이 유사한 이시스터즈의 번안 가요 음반은 재즈 연주와 편곡이 아주 뛰어나며 가사의 번역도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8·15 광복절이 있던 이번 주에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관련 있는 책들이 꽤 되네요. ‘한중일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오누마 야스아키 등 지음·섬앤섬)는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의 책입니다. 그는 전쟁 책임을 지는 데서 독일이 일본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건 “국가 지도자가 알기 쉬운 형태로 자기반성과 사죄를 표명해 왔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파도와 바닷바람을 견디며 독도의 ‘주민’으로 살고 있는 식물을 관찰해 소개한 ‘독도의 사계절 식물 리포트’(김철환 등 지음·지오북)도 나왔습니다. ‘민초종용’은 세계적 희귀식물인 ‘초종용’의 일종인데, 국내에서는 울릉도와 독도에만 산다고 합니다. 독도의 식물들은 육지 식물처럼 화려하거나 환경의 영향으로 아름드리 그늘을 만들 만큼 자랄 수 없지만 ‘독도가 무너지지 않게’ 견고히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30대 만화가 지망생이 전국 75곳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그린 그림을 담은 ‘평화의 소녀상을 그리다’(김세진 지음·보리)도 나왔네요. 애쓰신 분들께 지면을 빌려 “정말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 전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양복쟁이 바지에 대님을 써야 될 건가/…/연미복 입고 당나귀를 타야만 격인가” 1930년대 유행한 ‘꼴불견 주제가’다. 일본과 서양에서 건너 온 근대 문물과 조선의 전통이 식민지 조선에서 충돌하는 모습을 ‘꼴불견’이라며 풍자했다. 새로울 것 없는 얘기지만 한국의 근대는 ‘식민지 근대’로 시작됐다. 일제 강점을 겪은 한국은 일본을 통해 서구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다. 예술 분야 뿐 아니라 언어, 기술, 학문, 교육, 종교 등 각 분야의 식민지적 근대성을 ‘번안’이라는 키워드로 조명했다. ‘번안’은 원래 특정 장르의 작품을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바꾸거나, 배경과 인물을 바꿔 현실에 맞는 배경과 형태를 갖추는 작업이다.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인 저자는 번안을 예술 작품 뿐 아니라 사회변동기에 바깥으로부터 들어온 문화를 수용자에 맞게 바꾸는 일을 지칭하는 말로 폭넓게 사용한다. 이런 맥락에서 번안은 밀가루, 패션, 고무신, 모자, 주택, 라디오, 대중미술, 만화, 유흥업 등 일상 속 문화 전반에서 일어났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근대어, 이 기사를 쓰는 데 사용한 단어에도 일본어 ‘번안’의 흔적이 가득하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근대 사상을 번역하기 위한 개념어를 만드는데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이 번역한 개념어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중역(重譯)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다. 그건 약이면서 독이었다. ‘번역의 고통’을 건너 뛴 대가로 구어와 문어의 틈이 더 벌어지고 한자어는 더욱 늘어났다.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도 ‘번안’은 계속됐다. 요즘도 조미료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미원’은 식민지 때 이식된 일본의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산업화 시기 국내 기업들의 손에 재이식된 것이다. 기업들은 1930년대 아지노모토가 조선에서 펼친 광고 방식을 모방하고 상표 디자인과 용기를 차용했다. 이 같은 ‘식민지적 근대성’을 단순히 청산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돈가스’ 역시 애당초 일본이 ‘번안’한 서양 요리로 1930년대 조선에서 보급되기 시작한 음식이다. 이제 돈가스는 일상의 우리 음식으로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저자는 “원천이 서양이든 일본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돈가스의 근원을 확인하고, 변형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그 배경과 앞으로 변형할 모양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돈가스 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게다. 모방에서 독창성도 나온다. 일본 가수 사카모토 큐가 1961년 발표한 노래 ‘위를 보고 걷자’는 미국으로 건너가 ‘스키야키’라는 제목으로 1963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이시스터즈’가 ‘위를 보고 걸어요’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저자는 “당시 미국에서 인기였던 ‘맥과이어 시스터즈’와도 스타일이 유사한 이시스터즈의 번안 가요 음반은 재즈 연주와 편곡이 아주 뛰어나며 가사의 번역도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동아일보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디지털인문학센터가 공동으로 8·15광복 이후 본보에 실린 기사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 70년 동안 우리 사회·문화의 변화상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이 센터가 개발한 ‘동아일보 코퍼스(말뭉치)’ 분석 시스템은 1946∼2014년 발간된 동아일보 기사 260만 건(약 4억100만 어절) 전체를 분석할 수 있다.○ 문화재에서 소비재 된 명품 ‘명품(名品) 브랜드’, ‘명품 가방’…. 신문지상에서 명품이란 단어가 등장한 건 1970, 80년대다. 당시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고급 럭셔리 제품이 아니라 박물관, 전시회, 청자 등 문화재와 관련된 단어들과 함께 쓰였다. “명품을 갖고 있는 수장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물건을 팔려고 내놓지 않아 일반 사람들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아니면 구경조차 할 수가 없다.”(동아일보 1985년 3월 2일) “고려청자의 빼어난 명품들을 한자리에 모은 ‘고려청자 명품전’.”(1985년 10월 15일) 최종택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는 “1980년대는 발굴조사가 전국적으로 펼쳐지면서 각종 국보·보물급 문화재가 출토돼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라고 말했다. 명품이 백화점, 시계, 패션 등의 단어와 함께 쓰이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이후다. 2000년대에는 브랜드, 매장, 제품 등 ‘고급 소비재’를 지칭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짝퉁 명품 밀수 단속 기사가 자주 등장하는가 하면 “샤넬 디오르 루이뷔통 프라다 페라가모 등 국내에서 ‘명품’으로 불리는 유명 해외 브랜드를 영어로 표현하면 럭셔리 혹은 프레스티지다”(2000년 1월 21일)처럼 명품의 정의를 소개하는 기사도 나왔다. ○ 혹한에서 폭염으로 요즘 냉방권이 기본권으로 등장할 만큼 더운 한국이지만 더위보다 추위가 큰 문제였던 시절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60년대 “새해에 접어들어 십육 일째 계속되는 강설과 십삼 년래의 혹한으로 대부분 교통망이 두절돼”(1963년 1월 17일) “폭풍설 몰고 혹한 엄습―전선엔 영하 29도”(1965년 1월 11일) 같은 기사들이 사회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1950년대 주요 키워드의 하나로 ‘동장군’이 꼽히기도 했다. 실제 1940∼1980년대까지는 기사에서 ‘혹한’이 사용된 빈도가 높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역전돼 ‘폭염’이 더 많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은 기록적 무더위를 맞은 1977, 1994, 2012년 사용이 급증했다. “35년래의 폭염이 밀어닥친 7월의 마지막 주말, 전국은 온통 용광로처럼 들끓어 올랐다.”(1977년 8월 1일)○ ‘공매’→‘학과’→‘게임’ 인기 이동 ‘인기’와 함께 쓰인 단어는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을까. 예나 지금이나 ‘배우’ ‘가수’ ‘영화’ 등 대중문화의 주인공들이 상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1950년대에는 ‘비료 공매(公賣)에 최고 인기’(1958년 4월 30일) 기사처럼 ‘공매’도 한 문장에서 ‘인기’와 함께 자주 사용됐다. 1980년대 인기와 가장 관련된 단어는 ‘학과’였다. 1981년 대입 전형 방식이 본고사에서 학력고사로 바뀌며 선시험 후지원 방식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대학 지원에서 치열한 눈치작전이 벌어졌고 끝내는 ‘일류대 인기학과 미달’이라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말았다”(1981년 5월 25일)는 보도는 당시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산업화가 진전되며 취업이 비교적 유리한 상경계열, 공학계열 학과를 선호하던 현상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90년대 이후부턴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급격히 성장한 ‘게임’이 인기와 자주 쌍을 이뤘다.○ 여전히 입시 지옥 중인 대한민국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지옥’은 내내 ‘입시’와 함께했다. 1960년대 ‘입시 지옥’은 대학 입시보다는 중학 입시 관련 단어와 함께 쓰인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에는 대중교통 관련 ‘승차’가 지옥과 높은 빈도로 자주 쓰였다. 1980년대까지 ‘팀장’이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는 ‘0’에 가까웠다. 2000년대 급증한 ‘팀장’은 2010년대에는 ‘과장’을 추월했고, ‘부장’과의 간격도 좁혔다. 과장과 팀장이 2000년대 각각 어떤 업무 관련 단어와 함께 자주 언급됐는지 살펴보면 정책, 행정, 지원 등은 ‘과장’이 주로 맡았다. 전략, 투자, 마케팅, 홍보, 분석 등은 ‘팀장’이 맡았다. 스포츠에서 ‘씨름’은 1980년대 평균적으로 ‘골프’보다 기사에서 더 자주 언급됐지만 1988년을 기점으로 역전된다. 1995년 무렵부터 급증한 골프의 사용 빈도는 1998년 이후 박세리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잇달아 우승하며 정점을 찍었다.유원모 onemore@donga.com·조종엽 기자 ▼ 외환위기땐 ‘소주’, 2002 월드컵땐 ‘맥주’ ▼정말 맥주는 기쁨의 술, 소주는 슬픔의 술이었을까. 신문에 자주 실린 주류들을 비교하면 실제 관련성이 보인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있을 때 소비량이 는다는 속설처럼 올림픽, 월드컵 때 맥주는 신문에 가장 많이 언급됐다. 2002년이 최고치다. ‘서민의 술’ 소주는 외환위기를 겪던 1990년대 후반 언급이 급격하게 늘었다. 동아일보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소비 부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단연 저가 품목의 선호 경향이다. 주류시장도 맥주 위스키 시장 우위에서 소주의 약진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1999년 1월 25일)고 보도했다. 사실 맥주는 1950년대 이후 신문에 가장 많이 언급된 주류다. ‘가짜 맥주’를 만들던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거나 1970년대 ‘한독맥주’의 주식 위조사건 등 사회 문제와 관련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막걸리는 1980∼2000년대에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2010년 ‘막걸리 붐’을 타고 다른 주류를 압도하면서 반짝 최고치를 찍은 후 다음 해부터 다시 빈도가 줄어들었다. 외식은 어떨까. 불고기는 1960, 70년대 부동의 1위였다. 1980, 90년대 들어 불고기를 추월한 햄버거와 피자는 인스턴트 음식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2010년대 빈도가 하락했다. ‘서민 음식’ 삼겹살은 1990년대가 돼서야 빈도가 늘기 시작했다. 전형주 장안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무역 자유화로 외국산 식품들이 들어오면서 가격이 낮아졌고 고기 전문점도 이때 많이 생겨났다”고 분석했다. 유행은 돌고 도는 듯하다. ‘미니스커트’의 빈도는 가수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나 신드롬을 일으킨 1967, 1968년이 최고치였다. 이후 1992, 1997, 2003, 2007, 2012년 등 약 5년 주기로 언급이 많아지는 현상이 반복됐다. ‘나팔바지’도 1993년 언급이 늘어난 뒤 비슷한 주기로 등락을 되풀이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1950년대 신문에서 ‘대한민국’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유엔’으로 밝혀졌다. 1960∼90년대에는 대한민국과 같은 문장에 등장한 단어로 ‘정부’가 1위였다가, 2000년대 들어 ‘국민’이 1위로 올라섰다. 정부에서 국민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으로 해석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7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디지털인문학센터가 공동으로 1946∼2014년 동아일보 기사에서 ‘같은 문장에서 대한민국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를 분석한 결과 이렇게 나타났다. 1950년 3월 5일자 동아일보는 “대한민국은 유엔 감시하 선거를 통하여 수립되었던 것이며 유엔 총회는 한국의 유일한 합법적 정부로서 규정한 바 있는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번 연구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구축한 ‘동아일보 코퍼스(corpus·연구를 위한 말뭉치)’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활용했다. 같은 문장에 함께 쓰인 정도가 높다는 건 두 단어의 연관성이 강하다는 걸 뜻한다. 이도길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이 시스템은 직관이 아니라 철저히 단어의 양적 사용 양상을 토대로 추출된 결과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6·25전쟁 발발 뒤에는 유엔군 참전 관련 기사가, 1950년대 중후반에는 유엔 가입 시도와 좌절에 관한 기사가 많았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 유엔이 한국의 부흥과 재건을 돕기 위해 설립한 ‘운크라(UNKRA·유엔한국재건단)’가 꼽히기도 했다.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유엔은 1948년 12월 12일 한국 독립을 승인하는 등 한국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산파였다”며 “막대한 전후 원조가 유엔의 이름으로 이뤄졌고, 도움받는 이들에게 유엔의 표지는 수호천사와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빅데이터에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이룬 우리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1960년대까지도 ‘춘궁기’가 주요 키워드에 올랐고, 1980년대를 기점으로 단어 ‘전자’의 사용 빈도가 ‘쌀’을 앞섰다. ‘민족’이란 키워드 대신 ‘시민’이 점차 성장해 민주주의의 주체로 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신문은 사회 변화를 보여주는 근현대의 가장 기본적인 사료다.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됐다가 1945년 12월 복간 이후 지속 발행하고 있는 정론지 동아일보는 사료로서 가치가 특히 높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도 분석 도구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동아일보 코퍼스’는 이도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김일환 성신여대 국문학과 교수(민족문화연구원 공동연구원) 등이 2009년부터 연구해 탄생했다. 1946∼2014년 발간된 동아일보 약 260만 기사(약 4억1000만 어절) 전체를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연구팀은 같은 기간 ‘물결21’이라는 사업을 통해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의 2000∼2013년 신문 기사 5억9200만 어절을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미 공개하기도 했다. 신문 기사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기사 문장을 형태소로 분리하고, 품사 정보를 ‘태깅’(부착)하는 게 필요하다. 이 교수는 먼저 ‘KMAT’라는 기계학습 기반의 자동 형태소 분석, 품사 태깅 도구를 개발해 ‘21세기 세종계획’으로 확보된 한국어 언어 자료를 학습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형태소 분석 모델을 만들어냈다. 이 교수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기사는 맞춤법이 오늘날과 많이 달라 별도 작업이 필요하다”며 “추후 완성되면 100년가량의 시간대에서 언어적, 사회·문화적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데이터가 확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공기어(共起語·문맥상 함께 등장하는 단어) 분석이 가능한 품사 범주를 확대하고 인명·지명·단체명·사건 명칭을 구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교하게 보완하면 가까운 미래의 추세 예측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80년 ‘서울의 봄’은 짧았지만, ‘민주화’는 7년 뒤 마침내 봉우리를 이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을 맞아 본보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디지털인문학센터가 공동으로 ‘동아일보 코퍼스(연구를 위한 말뭉치)’를 분석한 시스템은 연도별로 특정 단어가 본보 기사에 등장한 ‘빈도’를 그래프로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변화상을 상징하는 단어 ‘민주화’가 쓰인 빈도 그래프는 군부독재 시절 숨죽이던 민주화의 열망이 폭발하는 과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민주화’ 키워드의 빈도는 살짝 늘었다가 이내 수그러든다. 빈도가 그래프에서 작은 봉우리를 이룬 건 1980년 ‘서울의 봄’. 유신체제가 막을 내린 뒤 전국에서 민주화 요구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동아일보는 신년호 특집 기사에서 “경제성장을 다소 늦추고 생활수준 향상을 지연시키더라도 자유선거에 의한 국민의 정치 참여와 인권을 신장시키는 민주화가 바람직하다는 얘기다”(1980년 1월 1일)라고 보도했다. 신군부가 비상계엄으로 짓밟은 ‘민주화’가 다시 급증하는 건 1985년부터다. 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1985년 2월 총선에서 선명 야당의 기치를 내건 신한민주당이 직선제 개헌을 어젠다로 제시하고 돌풍을 일으킨 영향”이라며 “그래프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며 ‘민주화’가 정점을 찍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민족’보다 ‘시민’의 꾸준한 성장 민주주의의 성숙은 ‘시민’이란 단어의 사용 빈도 증가에서도 확인된다. ‘시민’은 1950∼2000년대 꾸준히 빈도가 늘었다. 처음에는 같은 문장에 ‘서울’ ‘회관’ 등이 함께 주로 등장하다가 1990년대 이후 ‘단체’와 ‘운동’ ‘연대’라는 단어와 함께 많이 쓰였다. 시민단체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벌인 낙천·낙선 운동의 위법 논란이 ‘뉴 밀레니엄’의 벽두부터 주요 뉴스로 등장하기도 했다. 오 교수는 “단순히 시(市)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던 시민이 자율성과 자발성을 지닌 민주주의의 주체로 등장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1980년대 시민과 함께 ‘광주’가 같은 문장에 가장 많이 쓰인 건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광주 시민의 한(恨)’에 대한 기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시민의 성장은 ‘민족’의 퇴조와 대조된다. 1940, 50년대 민족은 시민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고, 1980년대까지도 시민과 비슷한 추세로 사용됐으나 이후 계속 하락세다. 이는 글로벌화를 거치며 민족주의의 힘이 약화된 것을 보여준다. 감성적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주장의 호소력이 떨어진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성 평등의 부각, ‘반공 대(對) 진보’ ‘자유’는 1960, 70년대까지 ‘세계’와 같은 문장에서 함께 쓰인 경우가 많았다. 냉전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지칭한 ‘자유세계’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됐던 것.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무역’의 비중이 높아졌다. ‘평등’과 함께 한 문장에 쓰인 연관어로는 ‘자유’ ‘사회’ ‘원칙’ ‘법’ 등이 많았다. 특히 1980년대 이후 ‘교육’이, 1990년대 이후 ‘양성’과 ‘남녀’가 함께 많이 등장한 건 평등한 권리의 내용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어 ‘진보’의 출현 빈도가 늘면서 1989년부터 ‘반공’과 역전되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민주화 이전에는 반공주의 내에서 여야가 갈라졌지만 민주화 이후 보수 대 진보로 정치 구도가 바뀌는 것과 관련이 있다”며 “이 구도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생겨난 뒤 정착했다”고 말했다.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1899∼1959)이 간첩으로 내몰려 사형당한 뒤 1960년대에는 ‘혁신 정당’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많이 사용됐으며, ‘진보 정당’이라는 말은 민주화 뒤 ‘민중당’ 등이 등장하면서 다시 쓰였다는 설명이다.○ ‘3김’의 정치 역정, 그래프에 그대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의 이름이 기사에 언급된 빈도 그래프에는 그들의 정치 역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원한 2인자’ 김종필이 본보 기사에 나타난 빈도는 1963년 권력의 2인자로 국회에 진입해 6·3한일회담반대운동으로 2차 외유를 떠나는 이듬해까지가 정점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1980년대까지 모두 ‘민주화’와 그래프 모양이 대체로 비슷해 ‘라이벌이자 동지’였음을 실감케 한다. 1987년 이들의 빈도는 정점을 찍었지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뒤 하락했다가 당선(김영삼 1992년, 김대중 1997년) 시기 다시 번갈아 상승한다. 두 사람은 1980년 ‘서울의 봄’ 전후를 제외하면 유신 말기, 신군부 집권 초기인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수감과 가택연금 등으로 신문에서 이름이 언급되는 횟수가 극도로 떨어진다. 당시 본보는 ‘재야인사’라고 에둘러 지칭하면서 두 사람의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박대통령은 지난해 한해(旱害)로 인한 절량농가가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고 만약에 절량농가가 생길 경우에는 군수를 책임 지워 파면하겠다고 말했다.”(1969년 2월 6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즈음부터 70여 년간 동아일보에 나타난 빅데이터는 대한민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이로 인한 사회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팀이 분석한 1960년대 주요 키워드에는 ‘절량농가(絶糧農家)’도 있다. 양식이 떨어진 농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춘궁기를 겪던 우리 사회가 식량생산조차 안정되지 못한 상황임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쌀’에서 ‘전자’로 농업에서 공업으로 주요 산업이 변화하는 과정도 ‘쌀’ 등의 단어가 기사에 언급된 빈도 추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광복 이후 1950년대까지 ‘쌀’의 중요성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쌀’의 빈도는 1970년대 ‘자동차’에 역전당하고, 1980년대에는 ‘전자’도 쌀을 앞선다. 2000년대 이후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조’, ‘배급’, ‘차관’, ‘수출’의 사용 빈도는 우리 경제의 성격 변화를 그대로 드러낸다. 1940년대만 해도 사용 빈도가 원조-배급 순이었고, 수출과 차관은 단어 사용이 미미한 수준. 그러나 수출과 차관이 50년대 들어 배급을 앞서더니, 60년대 이후는 원조도 앞선다. 차관은 60년대, 수출은 70년대 단어 사용 그래프가 정점을 찍는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1950년대 미국의 원조 물자와 미군 용역 등을 통해 투자 여력을 쌓기 시작한 한국 경제가 1950년대 말 원조 삭감 이후 해외 차관으로 필요한 자금을 끌어오고, 정책적으로 1980년대까지 ‘수출이 살길’이라고 강조하며 부족한 국내 저축을 커버하는 모습이 그래프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강남, ‘제비’에서 ‘아파트’로 부동산 뉴스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강남’은 어떨까. 1950년대는 ‘강남’이란 단어의 사용 빈도 자체가 적었다. 그나마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봄’이라는 문장이 많다. 1960년대까지도 ‘제비’나 ‘영등포’가 ‘아파트’나 ‘학원’보다 높은 빈도의 공기어로 등장해 한강 남쪽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70년경부터 ‘강남’의 사용 빈도는 급격한 증가한다. ‘부동산’, ‘고속버스’, ‘터미널’ 등이 같은 문장에서 함께 많이 사용됐다. 1990년대엔 ‘서초’, ‘송파’ 등 강남 주변 지역의 명칭이 10위 안에 들었고,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아파트’와 ‘부동산’이 ‘서울’과 ‘지역’을 제외하고 같은 문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로 나타났다. 2010년대 강남과 한 문장에서 많이 등장한 ‘스타일’은 짐작하는 대로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때문이다. 대중가요의 전 세계적인 유행을 통해서도 ‘강남’이 단순한 지역을 넘어 고유명사화(化)되고 사회·경제 및 차별화된 특정 문화 계층으로 규정됐다는 게 드러난다. ○ ‘애국’ 청년에서, 청년 실업 ‘청년’의 초상도 시대에 따라 변화했음이 동아일보 빅데이터 분석에서 드러난다. 청년과 함께 같은 문장에 쓰인 단어로 1950∼70년대에는 ‘애국’ ‘반공’ ‘경찰’ 등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서북청년단’, ‘조선민족청년단’과 같은 경찰을 보조하는 관제적 성격을 띤 단체가 활발히 활동했던 당시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1980∼90년대에는 ‘학생’과 ‘대학생’이 함께 많이 등장했다. 집회 시위와 관련된 보도들이 적지 않았다. 즉 학생운동의 주체로서 청년을 지칭하는 양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한 문장에서 쓰이는 연관어로 ‘일자리’와 ‘실업’ ‘취업’이 폭증해 선두그룹을 차지했다. 주목할 점은 소년, 장년, 노년과 같은 연령을 표현하는 단어들은 청년과 함께 등장한 단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기훈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부원장)는 “‘청년’이란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단순한 연령이나 세대를 나타내는 개념이라기보다 정치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집단을 의미했다”며 “2000년대 이후 젊은이들은 ‘비(非)주체화’되고 실업과 연결되는 사회 문제의 대상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세대가 지금까지 정치적 역할을 하고 있는 건 과거 한국 사회가 더 젊은 사회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덧붙였다.조윤경 yunique@donga.com·조종엽 기자}
“경영진단평가…계속 나쁜 결과가 나와서 좋은 결과 나올 때까지 (평가)업체 바꿔가며 여러 번 했었죠.”(웹툰 ‘가우스 전자’에서) 개선점을 찾기 위한 테스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골대를 옮기는’ 건 세계 최강 미군이라도 다르지 않나 봅니다. 신간 ‘레드팀’(마이카 젠코 지음·스핑크스)과 ‘레드 팀을 만들어라’(브라이스 호프먼 지음·토네이도)가 공통적으로 소개한 일화가 있네요. 2002년 미군 역사상 최대 비용이 들었다는 군사개념 개발 훈련 ‘밀레니엄 체인지 2002’. 가상의 적군인 ‘레드 팀’은 모의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쾌속정의 자살폭탄 공격으로 순식간에 미군의 첨단 이지스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가상 함선 19척을 침몰시킵니다. 그러자 이 ‘워 게임’을 주관하는 군 고위층은 레드 팀의 대공사격과 무기고에 있는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했을 뿐 아니라 아예 레드 팀 사령관을 물러나게 합니다. 그리고 짜인 각본대로 이기지요. 요즘 뉴스를 보면 참 여러 분야에서 ‘독립성’이 필요하다 싶습니다. 시험지를 스스로 채점하면서 틀린 답을 고치는 아이의 모습은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보수주의 원류로 꼽히는 18세기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1729∼1797)부터 미국의 네오콘까지 보수주의 사상을 결산한 개설서다. 책에 따르면 버크의 보수주의는 권력의 전제(專制)화를 막는 게 기본이었다. 제도와 관습을 지키고, 자유를 유지하며, 사회와 정치의 민주화를 바탕으로 질서 있는 점진적 개혁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바꿔 말하면 “추상적이고 자의적인 과거의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자유를 위한 제도를 파괴하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한다면 그것은 결코 보수주의라 말할 수 없다.” 이 같은 저자의 시각은 진창에 빠진 한국 보수주의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저자는 보수주의의 지반이 흔들리는 건 역설적으로 진보주의라는 ‘라이벌’을 잃은 탓이라고 봤다. 보수주의는 일관된 이론 체계라기보다 프랑스혁명 이래 진보주의에 대항해 스스로의 논리를 구축했다. 그러나 오늘날 진보주의는 프랑스혁명의 자코뱅파, 사회주의 혁명을 목표로 했던 마르크스주의자, ‘큰 정부’ 주도의 사회 개량을 추진한 ‘리버럴파’ 등이 모두 크게 쇠퇴해 더 이상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일본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 교수인 저자는 자신은 보수주의자가 아니고, 보수주의를 비판할 목적으로 책을 쓰지도 않았다고 했다. 비교적 평이하게 쓰였고, 두께에 비해 내용이 알찬 것도 매력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