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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2012)은 20세기가 1차 세계대전(1914년 발발)과 함께 시작돼 소련의 붕괴(1991년)로 끝났다며 ‘짧은 20세기’라고 규정했습니다. ‘지극히 자의적인’ 10년 단위 구분을 해볼까요? 한국은 아마도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로 시작해 1997년 외환위기로 끝나는, ‘짧은 90년대’를 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간 ‘한국의 세대 연대기’(최샛별 지음·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는 1970년대생을 ‘X세대’로 봤습니다. X세대는 문화적 시각으로 성격을 규정하는 특이한 세대죠. 앞선 ‘베이비붐 세대’나 ‘86세대’와도, 뒤의 ‘촛불 세대’나 ‘88만 원 세대’ 같은 규정과도 다릅니다. 그들의 청년기 역시 봄 비슷한 시절은 생각보다 짧았던 겁니다. 최근 발간된 ‘우리 시대의 스테디셀러’(이근미 지음·이다)를 보니, 1990년대에는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로마인 이야기’ 등 대중적 역사서와 함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스테디셀러로 등장했습니다(출간일 기준). 자기계발서의 이 같은 인기는 당시까지는 전에 없던 사건이었죠.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소가 나무 아래서 풀을 뜯는다. 안개가 자욱하다. 평화로운 전원 풍경으로 보일 수도 있는 사진이지만 앞에 선 주름 가득한 남자의 눈빛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밀짚모자를 쓰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초로의 이 남자는 피로함과 짜증스러움, 권태로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권태균(1955∼2015)의 사진 ‘소 주인’(1982년 경북 안동 촬영)이다. 남자는 무얼 잃어버린 것일까? 권태균은 사진전 ‘노마드’를 2010∼2013년 열었다. 엮은이는 “‘노마드’ 시리즈는 1980년대 산업화의 격랑에 휩싸여 전통과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이 땅의 사람들을 담고 있다”고 했다. 1988년 출범한 이래 사진 출판의 외길을 걸어온 눈빛출판사가 한국 현대 사진 역사 70여 년의 궤적을 정리한 책이다. 다양한 세대와 장르의 사진가 80여 명의 작품이 담겼다. 부제 ‘한국 사진의 작은 역사 1945∼2018’에 걸맞게 책을 펴면 광복을 맞은 1945년 8월 15일 당일 오후 전남 광양경찰서 무덕전(武德殿)에서 열린 시국수습군민회의 사진이 먼저 독자를 맞는다. 눈빛출판사가 1989년 낸 이경모(1926∼2001)의 사진집에 실렸던 것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노산 이은상(1903∼1982)을 비롯한 남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건물 안에 둘러앉았고, 밖의 아낙네도 창틀 안으로 상체를 들이민 채 귀를 기울이고 있다.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광복의 풍경이다. 첫 장인 ‘역사를 말하는 사진’은 이처럼 사진이 격랑의 현대사를 얼마나 함축할 수 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전화(戰禍)에 휩싸인 서울, 4·19혁명 당시 발포하는 경찰, 5·18민주화운동 시민과 계엄군의 모습은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역사를 웅변한다. 여러 사진 속 얼굴은 한국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엮은이는 1956년 리얼리즘을 표방한 사진 그룹 ‘신선회’의 결성을 “사진사(史)적 대사건”으로 평가했다. 신선회의 좌장 격인 이형록(1917∼2011)의 사진 ‘거리의 구두상’(1956년 서울 남대문시장) 속 남자는 광이 나는 신사화를 늘어놓고 팔면서 정작 자신은 낡은 신발을 양말도 없이 신은 채 바지 밑단을 걷어붙였다. ‘자매들’(1958년 서울 면목동) 속 여자아이들은 지프차가 먼지를 내며 달리는 신작로에서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동생을 포대기로 업어 돌보고 있다. 거장 최민식(1928∼2015)이 찍은 가난한 이들의 얼굴과 김기찬(1938∼2005)이 포착한 1970, 80년대 서울 골목의 정겨운 풍경을 거쳐 사할린 한인의 눈물을 담은 새고려신문(사할린 한인신문) 이예식 기자(69)의 사진까지, 어느 한 장 뺄 것 없이 참으로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만든다. 심규동(30)의 2016년 사진 ‘고시텔’ 속 다리를 쭉 뻗지 못하는 청년의 모습은 오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한국 사진이 여기 다 담겨 있다’는 듯한 자신만만한 제목 값을 한다. 눈빛출판사 대표이기도 한 엮은이는 “사진은 다른 예술 장르 못지않게 부단히 한국인의 삶의 흔적을 기록해 온 주요 매체이며, 광복 이후 면면한 전통의 계보 속에서 앞선 세대의 사진을 극복하며 발전해 왔다”고 말했다. 눈빛출판사는 20일까지 ‘스페이스 22’(서울 강남구 강남대로)에서 창립 30주년 기념전을 연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청소년이나 일반인을 위한, 의대 수업의 ‘맛보기’ 같은 책이다. 세포, 순환계, 호흡계, 비뇨기계, 소화기계, 내분비계, 신경계 순으로 인체의 구조와 기관의 작동 원리를 그림과 함께 소개했다. “코와 입의 공간을 아래쪽으로 연장시켜 보면 코가 입의 위쪽에 자리하고 있으니 당연히 기관(氣管)이 식도의 뒤쪽으로 지나가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식도가 기관의 뒤쪽에 놓여 있습니다.” 음식물이 기관으로 잘못 넘어가려 하면 사레가 들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행히 우리 몸에는 그런 일을 방지할 수 있는 ‘후두덮개’가 있다. 후두덮개가 제 기능을 못해 음식물이 기관으로 넘어가면 폐렴이 생길 수 있다. 평상시 단위 무게당 혈류량이 가장 많은 장기는 신장이다. 뇌보다 7배 넘게 많다. 이는 신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보여준다. ‘고대인들은 뇌와 심장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세포막의 이온 통로란 어떤 것일까’ 등 여러 의학적 지식이 담겼다. 단국대 의대 교수로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 등을 집필하기도 했던 저자는 “사실 의대 수업이 정말 극복 못할 만큼 어려운 건 결코 아니다”라며 “무척 어렵고 낯선 용어를 끝없이 외워야 하는 무료한 학문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연구와 실험 속에서 찾아낸 재미있는 과학적 사실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완도에서 신지대교, 장보고대교, 약산연도교 등 연륙교 3개를 건너면 조약도가 나온다. 전복 굴 미역 톳 다시마 양식이 활발한 인구 약 3500명의 섬이다. 삼문산에 자생하는 약초를 뜯어먹고 자란 흑염소도 유명하다. 완도 매생이 절반은 이 섬에서 난다. 주민들의 벌이가 괜찮다는 소문이 나자 “약 5년 전부터 젊은층 인구가 부쩍 늘고 있다”고 이승길 약산면 총무계장(51)이 귀띔했다.》 그러나 귀농·귀어(歸漁)를 고려하는 젊은 세대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아무래도 문화시설 부족이다. 박성진 씨(41)도 도시에서 생활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주민. 미역과 매생이 양식을 하며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운다. “완도읍에 영화관 생긴 게 지난해입니다. 전에는 영화 한 편 보려면 목포 장흥까지 나가야 했지요. 우리 섬은 아이들이 많은 편이어서 공부하고 놀 수 있는 시설이 절실해요.” 올해 초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이 섬에 작은도서관을 지을지를 심사하기 위해 찾자 마을이 술렁였다. 구릿빛 피부에 굵은 팔뚝을 가진 약산면(전남 완도군) 청년회원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KB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작은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심사 자리에서 청년회원들은 “도서관이 생기면 정말 열심히 운영하겠다”고 다짐했다. 청년회는 회의실로 쓰던 청년회관 2층을 내놨다. 기존 집기를 철거할 때, 책장을 들여놓고 리모델링할 때 섬 청년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그렇게 준비한 ‘약산 진달래 작은도서관’이 지난달 31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학교 도서관을 빼면 조약도(약산도)에 처음으로 생긴 도서관이다. 광주가 고향인 노현정 씨(33)는 도서관 개관식에서 “여기가 고향인 남편만 보고 내려오기는 했는데 문화시설이 없어 사실 많이 망설였다. 작은도서관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이런 시설이 늘면 섬으로 들어오는 젊은이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기뻐했다. 언니 집에 놀러왔다가 남편을 만나 약 3년 전 섬에 들어온 동생 현경 씨(31)도 말을 거들었다. “원래 소설책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한데 도서관이 없더라고요.” 자매는 그동안 친정에 갈 때마다 서점에서 책을 사오거나 스마트폰으로 e북을 봤다. “이제는 종이책 페이지 넘기는 맛을 제대로 다시 보겠네요.” 남편과 함께 귀향한 정순화 씨(35)는 “책을 사려고 강진까지 한 시간가량 차를 타고 나갔는데 도서관이 생겨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귀어 2년 차로 아이 셋을 키우는 청년회원 박수희 씨(40)는 도서관이 지역공동체에도 소중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작은도서관이 주민들이 마주치고 노하우도 공유하며 단합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도서관 개관을 가장 반기는 건 역시 아이들과 청소년들이다. 박제희 군(14)은 “TV에 PC방이나 영화관, 서점이 나오면 부러웠다”고 했다. 약산중 2학년 권혁 군(14)은 “주말이면 30분마다 오는 버스를 타고 완도읍에 있는 도서관까지 책을 빌리러 나갔다”며 “도서관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조약도=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제가 좋아하는 영미권 음악가, 작가, 철학자들은 다들 뿌리 깊은 역사적 연속성에서 나오는 자부심과 멋이 있더라고요. 한데 한국에서는 음악이든 뭐든 전통의 단절을 느꼈습니다. 일제강점과 전쟁을 겪은 탓이겠지요.” 밴드 멤버에 대한 선입견은 만나자마자 깨졌다. 록 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의 전범선 씨(27)는 출판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우리 역사에 연속성을 부여하고, 이런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통을 이은 ‘조선 록’을 표방하며 활동해 온 전 씨는 밴드 ‘꿈의 파편’의 전 멤버 고한준 씨(26)와 함께 최근 ‘두루미출판사’를 차리고 첫 번째 책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8900원)를 냈다. 두 사람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지난달 29일 만났다. ‘나의 단발…’은 동아일보 최초의 여성 기자 허정숙(1908∼1991)이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와 ‘신여성’, ‘별건곤’ 등에 쓴 글 10개를 골라 묶은 책이다. 허정숙은 당시 여성들의 단발운동을 주도하고 여러 여성단체를 만든 대표적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주세죽, 고명자와 함께 1920년대 ‘조선 공산당 여성 트로이카’로 불리기도 했다. 전 씨는 “신여성을 비난하는 이들의 모순과 위선을 고발한 허정숙의 글은 오늘날 페미니즘의 주장과도 같고, 단발은 탈코르셋 운동의 시작과 같은 것”이라며 “약 100년 전 글임에도 현재 청년 세대에게 호소력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주의만 남고 모두 숙청당해 사라졌잖아요. 남쪽도 독재 치하에서 사상이 오랫동안 억압됐죠. 남북이 각자 정권을 세우기 전, 조선에 존재했던 다양한 사상이 검열 등으로 ‘씨가 말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를 재발견하고자 합니다.” 두 사람은 ‘나의 단발…’을 필두로 배제된 사상가들의 글을 담은 ‘두루미사상서’ 시리즈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루미’라는 출판사 이름은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두루미처럼 사상의 단절을 깼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2013년 서울 홍익대 앞의 같은 클럽에서 공연하다 서로 역사, 철학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친해졌다. 전 씨는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서 미국 혁명사상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입대한 후 올 9월 제대했다. 고 씨는 건국대 철학과를 다니며 동서양 철학 고전 읽기에 푹 빠졌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좋은 책을 추천해 주다 고 씨가 1970년대 출간됐던 문학사 책을 복간하자고 제안하면서 의기투합했다. 고 씨는 “우리 세대도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인데 절판돼 구하기 어렵더라”며 “직접 복간하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 헌책방도 차릴 계획이다. 밴드, 출판, 책방 모두 안정적인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배고픈 분야만 골라서 한다고요? 열심히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죠.”(고 씨) “문화예술계에 뼈를 묻으려고 ‘조선 땅’에 돌아왔습니다. 제가 하려는 일이 공부를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전 씨)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항일 의병운동과, 내년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으로 이어지는 전국적 농민항쟁이었습니다.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기념하고, 세계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동학농민혁명 법정 기념일’을 ‘황토현 전승일’인 5월 11일(1894년 당시 음력 4월 7일)로 최근 결정하면서 2004년부터 이어진 기념일 제정 논의가 14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선정위원장을 맡은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70·사진)은 12일 “기념일 후보로 제시된 여러 사건들 모두 의미가 크지만, 황토현 전투는 동학농민군이 관군에 대승을 거둔 중요한 전환점으로 의의와 상징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전북 4개 지방자치단체가 추천한 ‘무장기포일’(4월 25일·고창군)과 ‘백산대회일’(5월 1일·부안군), ‘황토현 전승일’(정읍시), ‘전주화약일’(6월 11일·전주시) 등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여는 등 오랫동안 심사해왔다. 안 원장을 포함해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이승우 동학기념재단 이사장, 이정희 천도교 교령, 이기곤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이사장 등 선정위원들은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친 끝에 황토현 전승일로 의견을 모았다. 황토현 전승은 동학농민혁명의 절정 격이다. 물론 앞서 고부에서의 첫 봉기나 무장현 재봉기, 백산대회 등은 농민혁명에서 중요한 기점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 시점에서 봉기가 멈췄다고 가정한다면 혁명이 본격화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안 원장은 설명했다. 이후 전주화약 역시 일련의 혁명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고, 결국 일본군에 패퇴했기에 황토현 전승이 지닌 의의에는 못 미친다고 봤다. 안 원장은 “학술적으로는 ‘갑오농민전쟁’ 또는 ‘1894년 농민전쟁’이라는 표현이 옳다”면서도 “농민전쟁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생경하고, 관련 특별법 역시 ‘동학농민혁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 원장은 역사연구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으로 일하던 1989년부터 동학농민혁명이 100주년을 맞던 1994년까지 5년에 걸쳐 ‘1894년 농민전쟁 기념사업’을 학술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자주적, 독립적 개혁을 추진한 동학농민혁명은 우리 민족이 근대로 전환하는 분수령 같은 사건입니다. 만약 개별 지자체가 이벤트성 기념행사에 치우친다거나 예산 타내기에만 골몰한다면 조상들이 살신성인한 의미를 훼손할 수도 있습니다. 기념일 제정을 계기로 유적지 보존과 후대 교육이 더욱 활발해지기를 바랍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살벌한 전장이다. 조르고, 찌르고, 탐색하고, 속이고, 독을 살포한다. 싸우다 동맹을 맺는다. 구원을 요청하고 대가를 준다. 한데 전장은 고요하다. 전투의 주인공이 나무와 풀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숲은 평화로운 치유의 공간이지만 식물들은 그 안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인다. 일본 시즈오카대 교수인 식물학자가 식물이 환경, 다른 식물, 병원균, 곤충 등과 어떻게 싸우고 협력하면서 살아가는지를 조명했다. 식물의 싸움은 박진감이 넘친다. 책에 따르면 용수(뽕나뭇과 상록교목) 같은 식물은 원래 있던 식물에 올라타 자라는 전략을 택했다. 덩굴로 나무를 칭칭 휘감으면 원래 있던 나무는 햇볕을 받지 못해 시든다. 나무를 졸라 죽이는 것처럼 보여 교살식물이라고 부른다. 세상에서 가장 큰 꽃으로 알려진 라플레시아는 줄기도 잎도 없다. 그 대신 기생뿌리라는 기관이 포도과 식물의 뿌리를 파고들어가 영양분을 빨아먹는다. 기생식물이다. 지하에서는 화학전도 벌인다. 대부분의 식물은 뿌리에서 다양한 화학물질을 방출해 다른 식물의 싹이 트는 걸 방해한다. 숲의 풍성한 나무들은 이러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강자들인 셈이다. 약자에게는 약자의 생존전략이 있다. 사막에 사는 선인장, 빙설에 견디는 고산식물은 숲 대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 길가에 우거진 볏과 잡초 가운데는 마치 공기를 압축해 출력을 높이는 터보 엔진처럼 이산화탄소를 압축해 광합성 능력을 비약적으로 높인 것이 많다. 식물과 병원균의 전쟁은 ‘피가 마르는’ 공방전이다. 식물은 침투한 병원균이 방출하는 특정 물질을 감지해 방어체계를 가동한다. 병원균이 방어체계를 고장 내는 억제인자를 방출해 이에 맞서면 식물은 억제인자를 재빨리 감지해 방어체계가 작동되도록 체계를 수정한다. 그러면 병원균은 다시 새로운 억제인자를 발달시킨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싸움이다. 병원균의 침범을 막지 못한 세포는 스스로 사멸하는 방법으로 식물을 지키기도 한다. 공존과 협력도 한다. 독보리는 네오타이포듐속(屬) 사상균이 체내에 살게 해주고 균이 만드는 독소는 가축들로부터 독보리를 지켜준다. 콩과 식물은 뿌리혹을 만들어 뿌리혹박테리아가 살도록 하고 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흡수할 수 있도록 암모니아로 고정시킨다. 공생이다. 놀랄 만큼 기발한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식물은 보통 독을 생산해 곤충을 물리친다. 하지만 쇠무릎지기라는 식물은 오히려 곤충의 탈피를 촉진하는 성장호르몬과 같은 물질을 만들어 천적인 유충이 빨리 성충이 되도록 돕는다. 유충의 성장 기간을 단축시켜 자신이 먹히는 기간을 줄이는 것이다. ‘빨리 먹고 떨어지라’는 전략이다. 식물은 지금과 같은 지구 환경을 만들어낸 존재다. 식물은 약 30억 년 동안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어 오존층을 만들어냈다. 지구에 쏟아지는 자외선이 감소하면서 수많은 생물이 출현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인류가 화석연료를 태워 이산화탄소를 대량 배출하고 기온을 높이는 한편 오존층에 구멍을 뚫어 지구 환경을 식물 탄생 이전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꼬집는다. 저자 말마따나 그런 방식으로 다른 생물을 멸종시키고 승자가 되어 인류가 얻을 세계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세계화와 동시에 배타적 민족주의가 극성을 부립니다. 경제성장률 증가 수치와 별도로 삶은 더 불안해지지요. 세계적으로 국가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최근 번역 출간된 ‘레트로토피아: 실패한 낙원의 귀환’(아르테)은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의 유작으로 이 같은 문제를 성찰합니다. 사는 게 힘들면 ‘옛날이 좋았다’며 실제로는 좋지도 않았던 옛날을 그리워하게 마련입니다. 저자는 “미래에 의지하는 대신 아직 죽지 않은 과거에 비전(vision)이 존재한다고 본다”며 ‘향수병의 세계적 유행’을 비판합니다. 선진국에서도 다음 세대가 현 세대보다 더 가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저자는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가 ‘불평등으로의 회귀’를 막는 무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세금 인상을 우려하는 우파뿐 아니라 전통적 좌파도 이 제도가 복지국가의 해체를 추동할 것이라며 탐탁지 않아 하지요. 최근 국민연금 제도 개선 논의에 불이 붙었습니다. 해체될 만한 복지국가를 가져 본 적이 없는 우리는 어느 길을 택해야 할까요. 남들이 가보고 돌아 나온 ‘낙원’?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길?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살벌한 전장이다. 조르고, 찌르고, 탐색하고, 속이고, 독을 살포한다. 싸우다 동맹을 맺는다. 구원을 요청하고 대가를 준다. 한데 전장은 고요하다. 전투의 주인공이 나무와 풀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숲은 평화로운 치유의 공간이지만 식물들은 그 안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인다. 일본 시즈오카대 교수인 식물학자가 식물이 환경, 다른 식물, 병원균, 곤충 등과 어떻게 싸우고 협력하면서 살아가는지를 조명했다. 식물의 싸움은 박진감이 넘친다. 책에 따르면 용수(뽕나무과 상록교목) 같은 식물은 원래 있던 식물에 올라타 자라는 전략을 택했다. 덩굴로 나무를 칭칭 휘감으면 원래 있던 나무는 햇볕을 받지 못해 시든다. 나무를 졸라 죽이는 것처럼 보여 교살식물이라고 부른다. 세상에서 가장 큰 꽃으로 알려진 라플레시아는 줄기도 잎도 없다. 대신 기생뿌리라는 기관이 포도과 식물의 뿌리를 파고들어가 영양분을 빨아먹는다. 기생식물이다. 지하에서는 화학전도 벌인다. 대부분의 식물은 뿌리에서 다양한 화학물질을 방출해 다른 식물의 싹이 트는 걸 방해한다. 숲의 풍성한 나무들은 이러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강자들인 셈이다. 약자에게는 약자의 생존 전략이 있다. 사막에 사는 선인장, 빙설에 견디는 고산식물은 숲 대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 길가에 우거진 벼과 잡초 가운데는 마치 공기를 압축해 출력을 높이는 터보 엔진처럼 이산화탄소를 압축해 광합성 능력을 비약적으로 높인 것들이 많다. 식물과 병원균의 전쟁은 ‘피가 마르는’ 공방전이다. 식물은 침투한 병원균이 방출하는 특정 물질을 감지해 방어체계를 가동한다. 병원균이 방어체계를 고장 내는 억제인자를 방출해 이에 맞서면 식물은 억제인자를 재빨리 감지해 방어체계가 작동되도록 체계를 수정한다. 그러면 병원균은 다시 새로운 억제인자를 발달시킨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싸움이다. 병원균의 침범을 막지 못한 세포는 스스로 사멸하는 방법으로 식물을 지키기도 한다. 공존과 협력도 한다. 독보리는 네오타이포듐속(屬) 사상균이 체내에 살게 해주고, 균이 만드는 독소는 가축들로부터 독보리를 지켜준다. 콩과 식물은 뿌리혹을 만들어 뿌리혹박테리아가 살도록 하고, 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흡수할 수 있도록 암모니아로 고정시킨다. 공생이다. 놀랄 만큼 기발한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식물은 보통 독을 생산해 곤충을 물리친다. 하지만 쇠무릎지기라는 식물은 오히려 곤충의 탈피를 촉진하는 성장호르몬과 같은 물질을 만들어 천적인 유충이 빨리 성충이 되도록 돕는다. 유충의 성장 기간을 단축시켜 자신이 먹히는 기간을 줄이는 것이다. ‘빨리 먹고 떨어지라’는 전략이다. 식물은 지금과 같은 지구환경을 만들어낸 존재다. 식물은 약 30억 년 동안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어 오존층을 만들어냈다. 지구에 쏟아지는 자외선이 감소하면서 수많은 생물이 출현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인류가 화석연료를 태워 이산화탄소를 대량 배출하고 기온을 높이는 한편 오존층에 구멍을 뚫어 지구환경을 식물 탄생 이전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꼬집는다. 저자 말마따나 그런 방식으로 다른 생물을 멸종시키고 승자가 되어 인류가 얻을 세계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중환(1690∼1756)은 사대부가 사는 곳은 인심이 고약하고, 사대부가 살지 않는 곳을 주거지로 선택해야 한다고 극단적인 얘기를 했지요. 당파로 갈라져 다른 당파를 인정하지 않고, 평민을 윽박지르기만 하는 조선 사대부에게 경종을 울리려 한 겁니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57)가 2012년부터 6년의 작업 끝에 200여 종에 이르는 이중환의 ‘택리지’ 이본을 정리하고 한글로 옮긴 ‘완역 정본 택리지’(휴머니스트)를 펴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만난 안 교수는 “이중환이 ‘조선에는 살 만한 땅이 없다’고 한 건 사대부들의 당파에 따른 편 가르기, 지역과 사농공상의 신분 차별에 절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중환은 남인 명문가 엘리트 출신이었지만 노론이 경종(景宗)의 독살을 기도했다는, 이른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에 휘말려 30대 나이에 죽을 지경까지 고문을 당하고 정계에서 축출됐다. 택리지는 그가 1751년경 국토의 지리 현상을 전면적으로 다룬 인문지리학의 고전이다. 지금까지 번역된 택리지는 거의 1912년 최남선이 편집·간행한 광문회본 택리지를 저본으로 삼았는데, 오탈자나 후대 첨가된 이야기 등이 적지 않았다. 최남선이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내용을 일부 편집하기도 했다. 일례로 기존에 ‘복거론(卜居論)’에서 “덕유산의 정기가 서린 줄기는 서쪽으로 뻗어서 마이산과 추탁산이 되고”라고 번역됐던 구절을, 안 교수는 “…마이산이 되고, 거칠고 탁한(麤濁·추탁) 줄기는 남쪽으로 뻗어서”라고 고쳤다. ‘추탁’ 앞쪽에 접속사 ‘이(而)’가 있는 판본이 옳다고 봤기 때문이다. 책에는 이 같은 교감 과정을 설명한 주석만 800개 가까이 달았다. 그것도 10분의 1로 간추린 것이다. 광문회본에서 ‘함경도’ 분량의 30% 가까이를 차지하는 ‘함흥차사’ 이야기도 후대 첨가된 것으로 보고 넣지 않았다. “한두 글자만 틀려도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국학에서 정본화는 기초이고 근간입니다. 정확한 판본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연구가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되지요.” 안 교수는 “유럽이나 일본은 주요 고전의 정본화를 오래전에 완료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거의 안 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중요성과 소모되는 공력에 비하면 우리 학계는 정본화 작업에 대한 대접이 박하다. 연구 성과 평가는 주로 논문 편수 위주다. 저술이나 번역도 약간 인정하지만 이본을 정리하고 정본 텍스트를 마련하는 일은 거의 성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연구비 지원도 받기 어렵다. 안 교수는 이본을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시력마저 나빠졌다. 택리지의 정본화는 박사과정 연구자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가능했다. 각 지역 서술에 등장하는 당대 유력 가문이 어느 집안인지도 일일이 찾아냈다. “택리지는 소외된 남인의 시각을 담은 당론서, 경제지리서, 여행가이드 등 성격이 여럿입니다. ‘전시에 피할 곳이 있나’를 살 만한 곳의 주요 기준으로 삼은 것을 보면,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전쟁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책이기도 하지요. 오늘날에도 극단적인 다툼과 불평등, 차별 탓에 사람들이 ‘이민 가고 싶다’는 푸념을 하지요? 당대 조선의 현실을 우려하고 개선을 촉구했던 이중환의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김난도 서울대 교수 연구팀은 해마다 ‘트렌드 코리아’(미래의창)를 내고 다음 해의 소비 트렌드를 예측합니다. 내년 소비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카멜레존’을 꼽았군요. “특정 공간이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원래의 기능을 넘어 새로운 정체성의 공간으로 변신하는 트렌드”라고 합니다. 실제 전통적인 리테일(소매) 공간과 문화 공간이 결합(컬래버레이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트렌드 코리아 2019’는 특히 책의 약진이 눈에 띈다면서 몰, 호텔, 기업 사옥 등이 책장을 들이고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꾸며 공간의 격조를 높이는 현상을 소개했습니다. 종이책 독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개중에는 건물 몇 층 높이를 터서 엄청나게 큰 책장을 들여놓은 곳들도 있지요. 책장은 방문자에게 이렇게 웅변하는 것 같습니다. ‘봐, 네가 모르는 지식과 정보가 이렇게나 많단다.’ 한데 궁금한 게 있더라고요.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책장 위쪽에 꽂힌 책들을 손님이 꺼내서 읽을 수 있나요? 타고 올라가서 책을 꺼낼 수 있는 사다리는 못 봤습니다만…. 혹시 위쪽에 꽂힌 사전이나 영인본 같은 책들의 책갑(冊匣) 안이 비어 있는 건 아니겠지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를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대법원이 최근 확정했다. 이에 따라 법원에 계류 중인 미쓰비시중공업 등 다른 일본 기업 상대 소송도 같은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다루는 ‘군함도’(하시마섬)가 바로 일제강점기 ‘미쓰비시광업’이 운영했던 사업장 가운데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로 불리지만 일본인 광부들은 ‘지옥 섬’이라고 불렀다. 이 섬에서 매일같이 얻어맞고 죽어 나가면서도 강제로 일해야 했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조명한 책이다. 군함도 생환 당사자와 그 가족의 생생한 인터뷰를 담았다. “바다의 섬. 죽음의 섬.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주 지긋지긋혀. 철창 없는 감옥살이를 지내다 보니까…나는 ‘주땡’이라고 탄 캐는 자리를 메우는 거 했어요.…하나는 주땡을 하다가 맞아서 죽어버리고. 두 명 죽는 걸 봤어.…(도망가면) 되려 붙잡혀 그 매를 다 맞는데 그냥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고름이 질질 나고. 배고 어디고 등짝이고 어디고 그 와이어 줄로 그냥 살 묻어나는 고무줄로 후려갈기는데. 왜놈들 참 독해요.” 1926년 태어나 1944년 11월 군함도로 끌려간 생환자 최장섭 씨가 지난해 6월 저자에게 털어놓은 증언이다. 책은 이 밖에 군함도에 있던 ‘위안부’의 흔적도 쫓는다. 근현대사 문제를 꾸준히 취재해 온 기자인 저자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가 2016년 6월 활동을 종료한 뒤 정부의 관련 피해 조사가 사실상 중단된 것이나 매한가지인 게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영화 ‘군함도’ 개봉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비극을 소재로 한 소설, 만화, 뮤지컬 등 문화 콘텐츠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로 남으려면 기록으로 보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를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대법원이 최근 확정했다. 이에 따라 법원에 계류 중인 미쓰비시 중공업 등 다른 일본 기업 상대 소송도 같은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다루는 ‘군함도’(하시마)가 바로 일제강점기 ‘미쓰비시 광업’이 운영했던 사업장 가운데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로 불리지만 일본인 광부들은 ‘지옥 섬’이라고 불렀다. 이 섬에서 매일같이 얻어맞고 죽어나가면서도 강제로 일해야 했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조명한 책이다. 군함도 생환 당사자와 그 가족의 생생한 인터뷰를 담았다. “바다의 섬. 죽음의 섬.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주 지긋지긋혀. 철장 없는 감옥살이를 지나다 보니까…나는 ‘주땡’이라고 탄 캐는 자리를 메우는 거 했어요.…하나는 주땡을 하다가 맞아서 죽어버리고. 두 명 죽는 걸 봤어.…(도망가면) 되려 붙잡혀 그 매를 다 맞는데 그냥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고름이 질질 나고. 배고 어디고 등짝이고 어디고 그 와이어 줄로 그냥 살 묻어나는 고무줄로 후려갈기는데. 왜놈들 참 독해요.” 1926년 태어나 1944년 11월 군함도로 끌려간 생환자 최장섭 씨가 지난해 6월 저자에게 털어놓은 증언이다. 책은 이밖에 군함도에 있던 ‘위안부’의 흔적도 쫓는다. 근현대사 문제를 꾸준히 취재해 온 기자인 저자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가 2016년 6월 활동을 종료한 뒤 정부의 관련 피해 조사가 사실상 중단된 것이나 매한가지인 게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영화 ‘군함도’ 개봉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 비극을 소재로 한 소설, 만화, 뮤지컬 등 문화콘텐츠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로 남으려면 기록으로 보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의 3·1운동은 중국인이 민족 독립을 추구하고 국가 형성(nation-building)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참조할 대상으로 점차 중국의 민족 혁명 담론에 편입됐다.”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한완상)와 한국사회사학회(회장 정일준)는 2, 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3·1운동 100년, 한국 사회전환의 시공간 지평’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이번 학술대회는 3·1운동이 근·현대 한반도와 동아시아 사회의 문명사적 전환에 미친 영향을 탐구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기조연설을 맡은 리궁중(李恭忠) 중국 난징대 교수는 “3·1운동은 중국의 거울이 됐다”며 “독립국가 개념 형성에 중요한 촉매였고 지속적으로 중국인에게 격려를 줬다”고 밝혔다. 리 교수는 미리 공개한 연설문 ‘거울로서의 이웃 나라: 현대 중국 민족주의 담론에 나타난 3·1운동’에서 당시 중국 신문기사와 시평, 민족·계급혁명 담론에 드러난 3·1운동의 모습을 검토했다. 그는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1919년 학생 시위로 촉발돼 일제에 맞선 민족운동)의 본보기와 전주곡 역할을 했으며 20세기 전반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김학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발표문에서 3·1운동의 중요성을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대립했던 냉전 이전 근대 민족주의 독립운동’으로 평가했다. 그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한반도 분단 이전 기억을 되살리는 한편 아시아적 차원에서 한반도 문제의 공감대를 넓히는 계기로 삼자”고 제안했다. 나가타 아키후미(長田彰文) 일본 조치대 교수는 기조연설문 ‘3·1운동과 국제관계’에서 “3·1운동은 직접적으로 ‘무단통치에 대한 불만의 구체화’가 원인이었지만 파리강화회의 등의 국제적 요인 위에서 일어났다”고 했다. 이 밖에 유선영 성공회대 교수는 ‘3·1운동 이후의 전회(轉回)들: 식민지민의 보편적 인류 되기의 역정’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 ‘3·1운동 전후 동아시아 지역변동 속의 조선 식민지의 특수성’(백승욱 중앙대 교수)과 ‘3·1운동의 기억과 한국 민주화운동’(오제연 성균관대 교수) 등의 발표도 진행한다. 정일준 회장(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은 “공간적으로는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전체, 시간적으로는 이후 100년을 대상으로 3·1운동의 의미를 조망하는 학술대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완상 위원장은 축사에서 “3·1운동의 역사적 함의를 되새기는 걸 넘어 21세기 한국 사회의 향방과 전망을 밝히는 단서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개성 부기(簿記)는 15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만들어진 서양의 부기보다 적어도 200년은 앞서 13세기부터 사용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건 우리 민족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과도 맞먹는 일이에요.” 1916년 발간된 개성 복식 부기의 해설서이자 교재인 ‘실용자수(實用自修)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治簿法)’이 영문으로 번역돼 출간됐다. 제목은 ‘The Sagae Songdo Chibubeob for Practical Use and Self-Study’. 역자는 노병탁 미국 퍼듀대 종신교수(명예교수·79), 정기숙 계명대 명예교수(81), 전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56)다. 22일 노 교수가 머무르고 있는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이들은 “서양 못지않은 훌륭한 회계제도가 과거 우리나라에 존재했다는 것을 알리고자 번역에 나섰다”고 말했다. 원저는 문필가, 출판인으로 활동했던 현병주(1880∼1938)가 개성상인으로 추정되는 김경식, 배준여라는 인물의 도움을 받아 지은 것. 동양권 최초이자 유일한 고유 부기 해설서로 평가된다. 1928년에 2, 3판이 발간되기도 했다. 개성 부기는 일제가 서양식 부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도록 하면서 점차 사라졌지만 1940년대까지는 실무에서 사용했다. “일부 중국 학자는 개성 부기가 한문으로 돼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사실 동아시아 3국 가운데 일본은 고유한 복식 부기가 아예 없었고, 중국은 개성 부기보다 훨씬 체계화가 덜된 것이 있었을 뿐인데 말이지요.” 정 교수는 “개성 부기는 한자와 이두(吏讀·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표기법)가 섞여 있는데, 이두까지도 노 교수가 모두 영어로 옮겼다”며 “이걸 보면 중국 학자도 개성 부기가 한국의 독자적인 것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역본에는 개성 부기의 개요와 개성상인의 특징, 사회적 여건, 원저자인 현병주의 생애 등을 설명하는 장을 추가했다. 책에 나온 예제 등을 서양식 부기로 바꿔 설명하기도 했다. 노 교수는 현대 미국 회계제도에 영향을 준 주요 논문을 상당수 발표한 회계학자다. 그 역시 각종 물품명과 특수기호를 설명하는 영어 단어가 없을 때 뜻을 온전히 옮기는 게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노 교수는 “개성 부기는 개성상인의 합리적 사고와 철저한 상도덕, 투명성을 복합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협업은 한국학의 세계화에도 모델이 될 수 있다. 영문으로 된 한국학 논문이나 저서, 자료의 양이 절대적으로 적은 게 현실. 전 교수는 “한국계로 미국 등 해외의 주요 대학 명예교수로 있는 분들이 한국학 연구 결과를 영역하거나 자료를 연구하는 데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공인회계사회는 10월 31일을 ‘회계의 날’로 지정하고 한국회계학회, 한국경영학회 등과 함께 31일 ‘제1회 회계의 날’ 기념식을 연다. 기념 세미나에서 ‘세계 최초·최고의 복식 부기 사개송도치부법’이라는 주제 발표가 진행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김일성은 나라를 성공적인 전쟁국가로 만들려 했고, 김정일은 물려받은 재산(나라)을 지키려 군사독재국가를 만들었지요. 김정은 대에 와서, 이것(나라)을 받아서 뭘 해요? 개발을 시켜야지. 김정은이 ‘경제 발전하는 길은 미국과 손잡는 거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군인과 당 지도부를 설득한 게 북한 정치의 일반적인 흐름입니다.” 북한 공산주의운동 연구 1세대이자 김일성 연구의 대가인 서대숙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87)가 최근 평생 모은 독립운동·공산주의 사료 수천 점을 한신대와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그는 여러 차례 방북했고, 북한 고위층과도 친분이 있다.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 머무르고 있는 그를 25일 만났다. 서 교수는 “북한이 드디어 자기들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임했다. 굉장히 중요한 변천기”라며 “북한에 ‘빨리 변하면 변할수록 이익을 얻을 것’이라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 뒤에도 핵무기를 어떻게든 은닉해서 보유하려 할 것이라 본다. 하지만 서 교수는 “미국을 상대로 그런 정치(속임수)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할 거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오래전부터 북한의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했지만 정권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북한이 자본주의 국가와 경제 교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방은 독재에 위협이 되지 않을까. 김 위원장은 무슨 자신감으로 개방을 밀어붙이는 걸까. 서 교수는 “일가족이 나라를 쥐고 흔드는 독재체제이니, 한꺼번에 북한의 정세가 좋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최근 북한 내부 행사를 보면 김정은이 아버지나 할아버지 대 인사들을 보호해주고, 그들이 김정은을 지지하는 게 보여요. 김정일은 집권 뒤 처음에 숙청을 (대대적으로) 했어요. 하지만 김정은은 없애버린 사람이 장성택 말고는 별로 없어요.” 때문에 김정은 정권은 현재 상당히 안정적이란 분석이다. 서 교수는 “김정은은 건재한 원로들의 지지를 얻었기에 자기 파벌이 없고, 필요도 없다”며 “엘리트들을 ‘매니퓰레이트(manipulate·조종하다)’하는 게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류가 변화를 가져올 것만은 틀림없다. 서 교수는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미국에 북한 유학생을 지원하는 재단이 설립될 것이고, 엘리트들이 미국에서 공부해 북한에서 교수가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주체사상이고 뭐고…(흔들릴 것)”이라면서도 “믿을 수 없는 지도자를 믿고 오늘날까지 고생하면서 살아온 게 또 북한 인구의 대부분”이라고 했다. 서 교수가 이번에 기증한 자료는 책 ‘해방 후 10년 일지’(조선중앙통신사·1955년) 등을 비롯해 희귀한 것이 적지 않다. 그는 “공부할 때 모으고 버리지 않고 뒀다 뿐이지 돈을 많이 투자한 건 아니라서 다 기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그는 향후 남북이 다가서는 과정에서 여러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 교수는 “한국인들은 북한이 문을 열기만 하면 돈벌이를 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데, 녹록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 엘리트를 재교육하는 데도 막대한 노력이 든다. 전쟁과 대립의 역사 속에서 왜곡하거나 망각했던 기억들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내 원(願)이 한반도 통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거예요. 북한은 자기들만 옳다고 하지 말고, 남한도 북한을 배타적으로 대하지 말고…. 북한 사람도 같은 동포고, 슬기로운 백성입니다. 기회를 주면 꽃이 필 묘목들이에요.” 한편 서 교수의 자료를 기증받은 한신대는 “북한 사회와 문화, 생활사 연구에 필요한 자료들이 많아 통일 뒤 문화 통합 정책에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공원에서 시를 만나요. 일요일 6시.” 공원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소년 다니엘은 이런 안내문을 보고 동물 친구들에게 시가 무엇인지 묻기 시작한다. “시는 아침 이슬이 반짝이는 거야.” 거미와 청설모, 개구리, 거북이를 비롯한 친구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시를 말해준다. 공원의 동물로부터 들은 구절을 다니엘이 사람들 앞에서 읊자,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완성된다. 다니엘에게 시는 어려운 게 아니라 ‘연못에 비친 노을’처럼 주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가을빛 물씬한 그림과 아름다운 문장이 조화롭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늘어지게 잠을 자던 고양이 한 마리.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깨어나더니 밤을 맞이한다. “틀림없어. 오늘 밤이야.” 온 동네 고양이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숲에 모여들고 어떤 순간을 기다린다. 고양이들이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보자 밤하늘을 뒤덮은 구름이 바람을 타고 살짝 흩어지는데…. “우와 나왔어!” 고양이들은 도대체 무엇에 그렇게 경탄하는 것일까. 고양이들만 알고 있는 밤의 이야기란 어떤 것일까. 고양이들의 미묘한 표정과 생김새를 섬세하게 표현한 그림이 인상적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빗소리는 주룩주룩 빈 당에 가득한데/낮 꿈을 막 깨고 나서 붓을 바삐 찾노니”(목은 이색의 ‘우중·雨中’에서) 가을비가 추적이는 날, 점심시간에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마감 시간이 빠듯하군요. 시구처럼 혼몽함이 가시지 않은 채 바삐 자판을 놀립니다. 이 시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시의 온도’가 골라줬습니다. 날씨에 어울리는 한시가 알아서 튀어나오는 시대입니다그려. 파전에 막걸리가 생각나는 계절이고 습기입니다. 술과 관련된 한시를 엮은 ‘한시 속의 술 술 속의 한시’(홍상훈 지음·연암서가), ‘오직 술’(김재연 지음·향원익청) 같은 신간은 이런 심정을 노리고 낸 것일까요. 한시를 유려하게 옮겨 온 저자의 ‘김풍기 교수와 함께 읽는 오언당음’(교유서가)에도 손이 갑니다. 당시(唐詩) 선집을 평설과 함께 번역했습니다. “텅 빈 모래섬에 저녁 안개 끼는데/가을 강 위에서 달을 마주했다/또렷한 저 모래 위의 사람/달 속에서 외로이 물을 건넌다”(유장경, ‘강 위에서 달을 마주하다’). 김 교수는 평설에서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음…. 뜨끈한 국물에 소주가 나을까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만보산 이백 명 동포는 안전하고 평안합니다.…우리가 조선에 와 있는 중국 사람 8만 명에게 하는 일은 곧 중국에 있는 백만 명 우리 동포에게 돌아옴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중국 사람을 미워하고 그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일을 단연히 중지하십시오! 동포여! 정신을 차려 앞뒷일을 헤아리십시오.…호떡장사, 로동자같은 중국 사람들이 무슨 죄이길래….” 동아일보가 1931년 7월 7일 1면에 실은 사설 ‘이천만 동포에게 고합니다’이다. 중국과 조선 민족을 이간질하려는 악의적 선전에 휘둘리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만주를 침략하려는 일제의 음모로 중국 지린성 창춘현 완바오산에서 한중 농민들이 충돌하는 ‘만보산(萬寶山) 사건’의 진상이 와전되자 조선 전역에서 화교(華僑) 배척이 벌어졌다. 평양에서는 3000명 넘는 군중이 중국인 민가를 습격하고, 돌을 던지고, 화교를 폭행했다. 집계에 따라 다르지만 당시 조선인의 손에 죽은 화교 사망자만 200명가량에 이르렀다. 조선의 화교 경제가 한때 초토화한 엄청난 사건이지만 역사 서술에 등장하는 경우가 드물다. 오늘날에도 한국에서 화교가 화제에 오르는 건 연예인이나 기업인의 국적 정도다. 화교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 존재한 외국인 노동자이자 상인이지만, 그들을 배척하고 없는 이들처럼 취급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한반도 화교사’는 1880∼1940년대 한반도 화교의 역사를 종합한 연구서이고, ‘화교가 없는 나라’는 이를 대중적으로 풀어 쓴 책이다.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명성황후의 요청으로 청나라 군인 3000명이 조선에 파견됐다. 이때 함께 건너온 상인들이 한국 화교의 시작이다. 예나지금이나 이주의 주요 동기는 임금 격차다. 1920년대 초 기준 조선 농부의 임금 수준은 중국 산둥성보다 약 2.8배 높았다. 광산과 공장의 노동자 수요도 많았다. 화교들이 조선으로 밀려들었다. 화교 용어에 삼파도(三把刀)라는 말이 있다. 식칼과 가위, 면도를 가리킨다. 화교들은 이 세 종류의 칼을 지니고 이주해 중화요리점, 양복점, 이발소를 차렸다. 일제강점기 중화요리점은 화교배척사건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성장했고, 1960년대까지도 전국 중화요리점 95%를 화교가 경영했다. 1897년 ‘독립신문’에 광고를 낸 ‘원태양복점’의 주인도 화교다. 1900년대 생겨난 화교 이발소는 저렴하고 서비스가 좋아 조선인과 일본인 이발소들이 규제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할 정도였다. 화교는 주단포목(면직, 마직, 견직물을 통칭) 판매의 3할을 차지할 정도로 세력을 형성했다. 1938년 노래 ‘왕서방 연서’에 등장하는 ‘비단이 장수 왕서방’이 바로 그들이다. 이 밖에도 화교들은 솥과 양말 제조, 채소 재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시장의 ‘큰손’이 됐다. 명동성당의 시공을 주도한 건축기술자도 벽돌 건축 기술을 갖고 있던 화교다. 책은 이 같은 화교의 역사를 차근차근 서술해 나간다. 저자는 “근대사를 일본의 침략·식민통치와 민중의 저항 구도로만 서술하면 화교의 경제, 사회활동은 설 자리를 잃는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