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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의 취업제한 제도가 이르면 다음 달 부활한다. 다만 판사의 재량으로 재범 우려가 적다고 판단한 성범죄자는 어린이집 등에 취업할 수 있도록 해 논란이 예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30일 이 같은 내용을 의결해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 올릴 예정이다. 성범죄자 취업제한 제도는 강간 등 청소년성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돼 벌금형 이상이 확정된 범죄자가 출소 후 일정 기간 어린이집이나 병·의원 등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2012년 도입 후 성범죄자 4만여 명이 이에 따라 취업제한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가 “재범 가능성과 죄질에 따라 취업제한 기간에 차등을 둬야 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려 효력을 잃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11월 △판사가 성범죄자의 재범 우려를 개별적으로 판단해 취업제한 기간을 1∼30년 범위 내에서 각각 적용하고 △위헌 결정에 따라 취업제한이 풀린 기존 성범죄자도 1∼5년의 취업제한 기간(3년 초과 징역은 취업제한 5년, 3년 이하 징역은 취업제한 3년, 벌금형은 취업제한 1년 등)을 소급 적용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 제2소위원회는 28일 정부안보다 후퇴한 취업제한 제도에 합의했다. 취업제한 기간의 상한을 30년이 아닌 10년으로 줄이고, 법관의 판단에 따라 아예 취업제한 조치를 받지 않는 예외조항을 만들었다. 이에 일부 법사위원들은 “성범죄 전과자의 손에 아이들을 맡겨선 안 된다”며 반발했지만 헌재 결정의 취지를 고려해 양보한 것으로 전해졌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질병관리본부는 전남 순천시 순천만국가정원에 생명나눔의 숭고한 가치와 의미, 기증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생명나눔 주제정원’을 조성했다고 28일 밝혔다. 이 정원은 뇌사 장기 기증 서약 등 생명나눔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기획했다. 순천시는 이를 위해 661m²(약 200평) 규모의 터를 제공했다. 생명나눔 주제정원에 가장 먼저 들어선 조형물은 이제석광고연구소가 만든 ‘생명 이은 집’이다. ‘장기기증은 뇌사 기증자의 일부가 새롭게 살아갈 집(이식 수혜자의 몸)을 선물하는 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 추가로 조형물을 설치할 계획이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뇌사자 573명이 기증한 콩팥, 간, 췌장 등 2319개의 장기가 이식 대기자에게 전달돼 새 생명을 찾아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인구 100만 명당 뇌사 장기 기증자는 11.9명 수준으로 스페인(43.4명) 미국(31명) 등에 크게 못 미친다. 이식 대기 중 사망자는 하루 3명꼴이다. 기증 서약은 한국장기조직기증원(1577-1458) 등을 통해 할 수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강간 등 성범죄를 저지르면 일정 기간 어린이집, 병원 등에서 일하지 못하게 하는 ‘성범죄자 취업제한’ 제도의 부활 여부가 8개월 만에 다시 논의된다. 국회는 음란물 공유 등 비교적 경미하거나 재범 위험이 적은 범죄자의 경우 판사가 예외적으로 취업을 허용해 줄 수 있도록 하는 완화책도 검토 중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2소위원회는 28일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을 상정해 취업제한 조항의 부활 여부를 심의한다. 성범죄자 취업제한은 강간, 추행, 불법촬영(몰래카메라) 등 청소년성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돼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범죄자가 출소(혹은 벌금형 확정) 후 10년간 아동 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에 취업할 수 없게 하는 제도다. 어린이집, 유치원, PC방뿐 아니라 의료기관도 취업제한 시설에 해당된다. 의료인은 환자를 촉진(觸診·손으로 만져 진단하는 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범죄자 취업제한 제도는 지난해 3월 이후 효력을 잃은 상태다.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가 “범죄자마다 재범 가능성과 죄질이 다른데 취업을 일률적으로 10년간 제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다. 이 때문에 이 제도가 도입된 2012년 이후 성범죄로 실형을 받은 4만2821명이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성범죄자의 취업을 제한하되 그 기간은 판사가 재범 위험성을 감안해 개별적으로 적용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올해 3월 국회에 제출했다. 취업제한을 명령할 수 있는 최장 기간은 전자발찌 부착 기간의 상한과 일치시켜 종전(10년)보다 긴 30년으로 정했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원들은 “이대로라면 새 법을 시행해도 ‘침해(직업 선택 자유)의 최소성’을 어겼다는 이유로 또다시 위헌 심판대에 오를 수 있다”며 법안 논의 자체를 피해 왔다. 법사위는 28일 성범죄자의 취업을 제한하면서도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지키기 위한 대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음란물 유포죄(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와 같은 경미한 성범죄자의 취업은 판사가 허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갈수록 성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취업제한 완화책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성범죄자는 2012년 4738명에서 지난해 1만1168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성범죄자 신상공개 명령의 경우 검사와 판사에게 재량권을 준 결과 법원이 면제·기각하거나 검찰이 청구조차 하지 않은 사례가 10건 중 4건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천정아 변호사(법무법인 소헌)는 “취업제한을 자영업자 등으로 늘려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올해 초 경기도의 한 중증외상센터에 40대 남성 환자가 실려 왔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 2m 아래 지하도로 굴러떨어진 환자였다. 의료진은 각종 골절을 우려해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했다. 다행히 추가 부상은 없었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이 병원이 청구한 건강보험 진료비 중 60만 원을 삭감했다. “결과적으로 이상이 없었으니 불필요한 검사였다”는 이유에서다. 중증외상센터 의료진 사이에선 이렇게 환자 검사 결과가 좋으면 “꽝 나왔다”고 말한다. 급박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진료가 ‘과잉진료’로 매도당하는 데 대한 자조적 표현이다. 최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가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 오청성 씨(25)의 수술을 집도한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환자를 살릴 때마다 적자가 커진다”고 호소했다. 그 배경에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의 불합리한 진료비 삭감 기준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가 삭감당한 진료비는 지난해에만 5억 원 이상이었다. 부산대병원은 10억 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은 3억 원이었다. 전국 권역외상센터 9곳의 삭감 진료비를 합하면 5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중증외상 환자가 가장 많이 받는 수술은 끊어진 혈관을 이어 붙이거나 찢어진 장기를 봉합하는 것이다. 귀순 병사 오 씨도 총에 맞아 소장과 폐에 구멍이 났고, 오른팔과 왼쪽 겨드랑이의 혈관이 여러 군데 터졌다. 그만큼 고난도 수술이지만 정부는 수가를 높여주기는커녕 오히려 수술비를 삭감한다. 가장 치명적이라고 판단한 부위 1곳의 수술만 진료비를 100% 지급하고, 나머지는 50∼70%만 주는 식이다. 같은 사고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면 2차, 3차 수술비도 삭감한다. 자동차 사고를 당한 환자라면 병원의 부담은 더 커진다. 건강보험 환자에게 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하면 그 비용을 환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 반면 자동차보험 환자는 ‘급여’ 진료만 받을 수 있다. 그 외의 치료비는 아예 환자나 보험사에 청구할 수 없다. 실제 한 권역외상센터는 교통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은 20대 환자에게 인공피부를 이식했다가 진료비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불필요하게 비싼 재료를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국공립병원을 포함한 대다수 의료기관은 삭감된 진료비를 의료진의 성과급 등에 반영한다.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한 의료진일수록 오히려 손해를 보는 셈이다. 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의 의료행위를 유형별로 분석해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사설 구급차나 소방헬기로 환자를 옮길 때 사용한 약이나 의료기기에 대해 병원이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는 문제점 등을 우선 개선할 방침이다. 하지만 자동차보험의 급여 기준은 국토교통부가 담당하고 있어 제도 개선이 ‘반쪽’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권역외상센터 지원을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의 추천이 20만 건을 넘어 정부의 종합대책이 나올지 주목된다. 청와대는 특정 청원의 추천이 한 달 내 20만 건을 넘으면 담당부처 장관이 구체적 답변을 하도록 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회의를 시작했다. 권역외상센터 지원 확대와 국회에서의 예산 확보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답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유근형 기자}

“잘했고, 잘할 거야.” 최근 이런 문구가 적힌 대학수학능력시험 교재의 표지 시안이 수험생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 시안은 수험생 대상 설문에서 스트레칭법 등이 그려진 다른 표지보다 4배 이상 많은 지지를 받았다. 23일 ‘불수능’에 이어 대입 논술과 면접고사까지 마친 학생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위로와 응원이라는 점을 보여준 결과다. 수능 후 허탈감이 자칫 우울증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주의할 점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과 함께 알아봤다.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한 뒤에는 성패와 무관하게 큰 허탈감에 시달릴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계에서는 이를 ‘성공 우울(success depression)’이라고 표현한다. 성인 중 일부는 회사에서 높은 직위에 오르거나 내 집 마련에 성공했을 때 이런 증상을 보인다. 사회 경험이 적은 고교생은 10여 년간 준비해 온 수능을 마친 뒤 더 심한 고통을 호소할 수 있다. 이런 증상이 우울증으로 악화돼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거나 대학 입학 후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 대학 신입생 중에는 “인생의 목표를 잃은 것 같다”며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청년이 적지 않다. 중고교 때는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착각 속에서 학업에 매진하지만, 정작 대학 생활이 기대에 못 미치면 ‘약속한 보상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중고교 때와는 달리 스스로 목표를 정해야 하고, 또다시 남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데서 막막함에 사로잡히는 일이 흔하다. 반건호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등산할 때도 체력을 80%만 써야 내려올 때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한국 수험생은 젖 먹던 힘까지 수능에 전부 쏟아붓도록 교육을 받는다”며 “평소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가 탄탄하지 않아 지지 기반이 약한 아이들은 더 큰 허탈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허탈함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겪을 수 있는 변화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진다는 점을 자녀가 알 수 있도록 정서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초경을 시작한 딸에게 “숨길 일이 아닌 축하할 일”이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수능 후 허탈함도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급격한 신체 리듬의 변화를 운동과 취미생활로 조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수능 전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사당오락(四當五落)’을 주문처럼 되뇌며 잠을 줄이는 일이 흔해 자칫 시험을 마친 뒤 수면과 식사습관이 흐트러질 수 있다. 장형윤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큰일을 치른 후 잠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걱정할 게 없지만 지나치다고 생각되면 앞으로의 일정을 가늠하며 하루 계획을 조금씩 다시 세우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북한 귀순 병사 오모 씨(25)의 상태가 호전돼 24일 오후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대수술을 거쳤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오 씨는 주말인 25일 혹은 26일경 일반병실로 옮길 예정이었지만 발열이 없는 데다 호흡과 맥박, 혈색이 좋아 중환자실 치료를 중단해도 괜찮을 것으로 의료진이 판단했다. 오 씨는 현재 묽은 미음(쌀죽)을 먹고 있다. 조만간 두부 등 연한 고체음식을 먹을 정도로 몸 상태가 회복될 것이라고 병원은 밝혔다. 오 씨는 18일 오전 자가 호흡을 시작했고 이후 의식을 회복했다. 병원은 오 씨의 상태를 면밀히 지켜본 후 군 당국과 협의해 1개월 내에 군병원으로 이송할 계획이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아이 몸이 아직 이렇게 따뜻한데, 왜 심장이 멈췄다는 겁니까!” 30대 남성이 이렇게 울부짖자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의 외상소생실(T-Bay)은 적막에 잠겼다. 지난달 높은 곳에서 떨어져 급히 외상센터로 옮겼지만 수술실까지 가지도 못한 채 숨진 다섯 살 아이의 아버지였다. 외상전담(헬기 출동) 간호사 송서영 씨(36·여)가 ‘환자의 가족 앞에서 무너지면 안 된다’며 눈물을 참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환자를 옮기다가 무릎에 멍이 든 건 나중에야 깨달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헬기로 환자를 실어 나르며 응급소생술을 하는 송 씨는 이처럼 크고 작은 부상뿐 아니라 정신적인 압박에 시달린다. 최근 귀순 중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를 극적으로 살려낸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22일 기자회견에서 “중증외상센터 간호사 중에는 이송 헬기를 타다가 유산한 사람도 있고, 손가락이 부러져 퇴직한 사람도 있다”며 “환자를 구하기 위해 매일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은 정작 인권의 사각지대에 내던져져 있다”고 토로했다. 이 병원 권역외상센터의 중환자실과 일반실에서 일하는 전담 간호사는 125명. 생명이 위태로운 중증외상 환자 100명을 돌보기 위해 간호사들은 매일 13시간 일하고 11시간 쉬는 맞교대 체제로 일한다. 송 씨는 센터가 생긴 2010년부터 줄곧 이 교수와 함께 사투의 현장을 지켜왔다. 헬기 출동은 항상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다. 경기 평택시의 한 건설 공사 현장에서 떨어진 40대 후반 남성 환자를 데려올 때가 그랬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착용시켰다. 그때 비가 억수같이 내리기 시작했다. 100m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환자를 살리기 위해 다시 헬기를 띄워야 했다. 2003년 외과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한 송 씨도 심한 스트레스 탓에 한 차례 병원을 떠난 적이 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2009년 첫아이를 낳고 나니 예전에 돌봤던 환자의 모습이 더 자주 떠올랐다. 갓난아기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30대 남성, 그 아이를 안은 채 눈물 흘리는 아내…. 송 씨는 이듬해 병원으로 돌아왔다. 가장 큰 버팀목은 외상센터 동료들과 두 딸의 존재다. 숨이 거의 남지 않았던 환자를 의료진이 똘똘 뭉쳐 살리고 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응급 환자를 돌보느라 아이들과의 약속을 어겼을 때도 다섯 살 난 둘째의 의젓한 한마디에 간신히 기운을 차린다. “괜찮아 엄마, 사람 살리고 온 거잖아.” ▼ 하루 13시간 사투 벌이는데… 정부는 예산 132억 깎았다 ▼ 중증외상센터는 간호사가 가장 기피하는 근무처다. 인력이 부족해 격무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송 씨처럼 중증외상센터에서 7년 넘게 버틴 간호사는 드물다. 모처럼 지원자가 와도 현실을 마주한 뒤 충격을 받아 사흘 안에 그만두는 사례도 많다. 중증외상센터의 간호사들은 환자를 이송하거나 수술하다가 다치는 일이 잦다. 내부 온도가 180도까지 올라가는 고압 증기 멸균기에서 급히 수술 도구를 꺼내다가 종종 화상을 입는다. 수술 중 환자의 혈액 등을 통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나 B형 간염, 매독균에 감염되는 일도 흔하다. 어느 날 숨이 차 폐 검사를 받아 보면 환자로부터 결핵이 옮은 상태라는 얘기는 중증외상센터 내에선 화제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의료진은 “HIV 검사 키트 등을 사용한 뒤 건강보험금을 청구하면 ‘불필요한 검사’라는 이유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삭감을 결정하는 일이 잦다”고 한숨을 쉰다. 마음의 상처는 몸의 것보다 더 오래간다.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끝내 숨지면 자책감이 밀려온다. 환자가 자녀 같은, 혹은 부모와 비슷한 연령대일 땐 더 심하다. 한 권역외상센터는 소속 간호사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위험도를 검사해 보니 상당수는 심리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전국 권역외상센터 9곳의 전담 간호사는 591명이다. 이들은 최대 708명의 환자를 동시에 돌봐야 한다. 모든 간호사가 24시간 근무한다고 가정해도 간호사 대비 환자의 비율이 0.7명인 미국 등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간호사 대비 환자 비율을 중환자실 1.2명, 일반실 2.2명으로 느슨하게 규정한 국내 기준을 지키는 것도 벅차다. 목포한국병원 권역외상센터 중환자실은 전담 간호사(19명)가 병상 수(20개)보다도 적어 7등급으로 나뉜 간호등급 중 6등급을 받았다. 중환자실과 일반실의 간호등급이 전부 1등급인 곳은 아주대병원뿐이다. 전문가들은 간호인력 부족의 핵심 원인으로 정부의 지원 체계가 전혀 없다는 점을 꼽는다.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되면 전담 전문의 1명당 연봉 1억2000만 원을 정부가 지원한다. 하지만 전담 간호사에게 지원되는 인건비는 한 푼도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응급의료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은 오히려 줄었다. 보건복지부의 내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중증외상 전문진료체계 구축, 취약지역 응급의료기관 육성 등에 쓰이는 응급의료 관련 예산이 올해 1250억 원에서 내년 1118억 원으로 삭감됐다. 복지부 전체 예산은 6조5788억 원이나 늘었지만 대부분 아동수당 신설과 기초연금 인상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특히 응급의학과와 외상외과 배정을 기피하는 전공의를 끌어 모으기 위한 ‘전공의 수련보조 수당’ 지원 예산도 30억 원에서 24억 원으로 줄었다. 이국종 교수는 “격무와 신체 및 정신적 피해에 시달리는 중증외상센터 간호사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줘야 ‘격무지 기피’ 현상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이미지·김윤종 기자}

아산사회복지재단은 23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대강당에서 제29회 아산상 시상식을 열고 상담기관 ‘한국여성의전화’에 대상을 수여했다.30년간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관련 법안 제정 운동을 펼쳐온 공로다.한센인에게 틀니를 제작해 제공하는 등 국민 건강증진에 기여한 한국구라봉사회에겐 의료봉사상이, 저소득층을 위한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등 경제적 자립을 도운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는 사회봉사상을 받았다.아산상은 1989년 정주영 아산재단 설립자의 뜻에 따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했거나, 효행을 실천한 개인이나 단체를 격려하기 위해 제정됐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간신히 도착한 나라가 이 꼴이라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22일 기자 브리핑에서 귀순 중 총상을 입은 오모 씨의 상태를 설명하기에 앞서 한국 응급의료 체계의 문제와 자신을 둘러싼 음해를 두고 120분간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응급의료 체계가 부실해 살 수 있는 환자가 죽어 나가는 곳이 과연 오 씨가 꿈꾼 국가이겠느냐”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금 모든 관심이 오 씨에게 집중돼 있지만 우리 센터에는 150명의 중증외상 환자가 입원해 있고 이 중 50명은 임시 병상에 누워 있다”며 “‘30분 내 이송’ 체계가 없어 병원 문턱도 밟지 못하고 죽는 환자는 더 많다”고 말했다. 이어 오 씨 몸에서 기생충을 발견한 사실을 공개한 뒤 일각에서 제기된 ‘인권 침해’ 논란에 강하게 반박했다. 이 교수는 “의료진은 환자의 인권인 ‘생명 앞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변과 피가 튀는 수술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환자의 인권을 생각한다는 분들이 그런 정성의 100분의 1이라도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우리를 불쌍하게 여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석해균 선장을 수술한 뒤 “위중하지 않은 환자를 데려다가 ‘쇼’를 했다”는 일각의 비판을 의식해 당시 석 선장의 상태를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석 선장의 몸에 난 총상과 수술 뒤 고름으로 붕대가 부풀어 오른 모습 등이 담긴 사진이었다. 경쟁 병원 의사가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 보건복지위원들에게 보낸 e메일도 공개했다. 이 e메일에는 “(이 교수가) 중증 환자도 아닌 석 선장을 데리고 와 멋진 쇼를 잘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교수는 “(석 선장 치료를) 과연 쇼라고 할 수 있느냐”며 “(오 씨의 상태를) 공개하지 않으면 6년 전과 같은 논란이 벌어질까 봐 상태를 일찍 공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17일 ‘(이 교수가) 인격 테러를 저질렀다’고 비판한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이날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환자 정보 공개는 의료법 위반이고 북한군의 총격 못지않은 범죄”라는 글을 올렸다. 이후 논란이 확산되자 김 의원은 “이 교수를 공격한 걸로 된 것은 심각한 오해다. 존경하는 의사에게 무리한 메시지를 보낸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수원=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오모 씨(25)가 한국 노래 중 소녀시대의 ‘Gee’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 등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22일 기자 브리핑을 열어 “강건한 친구라 잘 견뎌줬고 이번 주에 일반실로 옮길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에 따르면 오 씨는 18일 오전 인공호흡기를 뗀 뒤 19일 저녁부터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다. 이 교수가 한국 노래 3곡을 들려주자 오 씨는 소녀시대의 ‘Gee’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21일부터는 TV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면 자극을 받을 수 있어 영화 전용 채널만 틀어주고 있다. ‘CSI’ 등 미국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이 교수는 전했다. 오 씨는 영화 ‘트랜스포터’를 보던 중 배우가 빠르게 운전하는 장면이 나오자 “나도 운전을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이 교수가 “(JSA 귀순 도중 차가) 왜 도랑에 빠졌느냐”고 묻자 오 씨는 그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이 교수는 전했다. 의료진은 오 씨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지 않도록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오 씨에게) 대한민국 국민이 자기 팔 찔려가면서 헌혈한 혈액 1만2000cc를 수혈했다. 국민 여러분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1만2000cc는 성인 3명의 몸속에 있는 혈액 전체를 합친 양이다. 오 씨는 이 사실을 전해 듣고 “고맙습네다”라고 말했고, 이 교수는 “(회복되면) 세금을 많이 내야 된다”며 농담을 건넸다. 이 교수는 “18세 때부터 군에만 있던 친구라 손이 빨래판처럼 거칠지만 얼굴은 배우 현빈처럼 잘생겼다”며 “군대는 이제 싫다고 해 공부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병실에는 오 씨의 안정을 위해 소형 태극기를 걸어두기도 했다. 오 씨의 초기 손상중증점수(ISS·15점 이상이면 생명 위험)는 22점으로,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18점)보다 높았다고 한다. 총알이 관통한 왼쪽 어깨는 신경이 손상돼 당초 절단할 위기였지만 다행히 회복하고 있다. 하지만 수술로 봉합한 내장이 마비돼 ‘장폐색’이 나타날 우려는 여전히 있다. 이 교수는 군에 합동신문을 한 달 뒤로 미뤄 달라고 요청했다.수원=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 군인이 의식을 회복한 뒤 의료진에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복수의 정부 및 병원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군인은 19일 전후 의식을 회복한 뒤 치료받고 있는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의료진에 비교적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으로 “25세이고, 오OO입네다”라고 신분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오 씨는 그러면서 “여기가 남쪽이 맞습니까?” “남한 노래가 듣고 싶습니다”라며 의사소통을 이어갔다.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은 실제로 노래를 들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오 씨는 북한군 내 정확한 소속과 직책, 출신 등에 대해선 아직 말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 씨는 21일엔 “TV를 보고 싶다”고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먹을 것을 달라”거나 “여기가 아프다”며 구체적인 신체 부위도 지목하는 등 상태가 많이 호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 관계자들은 오 씨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한국 영화를 틀어주고 남한에 있음을 알려 주려고 병실 내 잘 보이는 곳에 태극기도 걸어뒀다고 한다. 주치의인 아주대 이국종 교수는 2011년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치료했을 때도 의식 회복을 돕기 위해 병실에 태극기를 걸어뒀다. 인공호흡기를 벗은 오 씨는 산소공급용 마스크를 쓴 채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아주대병원 관계자는 “수술 후 봉합 부위가 터지는 등 상태가 나빠지면 호흡기를 다시 달아야 할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이 정도까지 회복된 환자가 권역외상센터에서 (치료 도중) 사망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진을 투입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예방 치료를 병행할 예정이다. 오 씨는 간혹 횡설수설하는 등 다소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이고 있다. 의료진은 일반적인 수술 후유증일 가능성과 함께 PTSD의 전조 증상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손효주 hjson@donga.com·조건희 기자}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한 연명의료결정법의 정식 절차에 따라 스스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포기한 환자가 처음으로 나왔다. 정부는 새 법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TV 광고를 방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21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한 40대 여성 암 환자 A 씨가 최근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거부한 채 숨졌다. 이 환자는 말기암 판정을 받았을 때부터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왔고, 지난달 23일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이 시행되자 연명의료계획서를 제출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회복할 가망이 없고 2, 3일 내로 숨질 것으로 예상되는 임종기 환자가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내년 2월 전면 시행된다. A 씨는 숨지기 몇 달 전부터 중환자실에 입원해 가족과 마지막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말 같은 병원의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길 계획이었지만 중순부터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의료진과 가족은 A 씨가 의식을 잃자 평소 뜻을 받들어 인공호흡기 등을 착용시키지 않는 ‘연명의료 유보’ 결정을 내렸다. 새 법은 새로운 연명의료를 받지 않는 ‘유보’와 이미 받고 있는 연명의료를 그만두는 ‘중단’의 무게가 같다고 본다. 2009년 대법원이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인공호흡기 제거’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뒤 의료 현장에서는 의료진이 가망 없는 환자의 가족으로부터 ‘소생술 포기서(DNR)’를 받아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따지면 법적 근거가 없었다. A 씨는 지난해 2월 제정된 연명의료법에 따라 DNR가 아닌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고 연명의료 대신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인 첫 환자인 셈이다. 하지만 시범사업 시행 한 달이 넘도록 A 씨처럼 연명의료계획서를 낸 환자는 5명에 불과하다. 말기(수개월 내 사망 예상)나 임종기 환자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도 작성할 수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쓴 사람이 1648명인 것과 대조적이다. 말기, 임종기 환자는 이미 의식을 잃어 스스로 계획서를 쓸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가족과 허심탄회하게 연명의료 결정 여부를 논의한 적이 없으면 병세가 악화한 뒤에도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선뜻 상의하기 어려운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새 법이 전면 시행된 뒤 연명의료계획서가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개정안 검토를 요청했다. 말기 판정을 받지 않은 환자도 연명의료계획서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환자가 중단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시술의 종류를 체외막산소공급(에크모), 혈압 조절제 투여 등으로 넓히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당초 의료계에서는 환자에게 말기, 임종기를 통보하기 어려운 국내 정서를 감안해 가족이 연명의료계획서를 대신 작성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새 법의 가장 기본적인 취지라는 이유였다. 의식이 없는 환자의 평소 의중을 증언해 줄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의 경우 병원윤리위원회가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해주자는 제안도 마찬가지 이유로 기각됐다. 남은 과제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실질적으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환자와 가족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그 취지를 널리 알리는 일이다. 현재는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일부 대형 병원만 새 법을 숙지하고 있을 뿐, 요양병원과 요양원 등 중소 병원에선 관련 인식이 높지 않다. 복지부는 ‘생명윤리’ 예산을 늘려 이르면 연말에 연명의료결정법의 취지를 홍보하는 내용의 TV 광고를 방영할 계획이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윤종 기자}

눈은 충혈됐고 파란 수술복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환자를 돌보다 짬을 내 식당에 앉은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48)은 “언제 집에 다녀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귀순 중 총상을 입은 북한군 오모 씨의 2차 수술을 마친 다음 날(16일)이었다. 수술에 방해가 되지 않게 테이프로 칭칭 감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숟가락을 놓고 일어났다. 다시 환자에게 돌아갈 시간이었다. 오 씨가 병원에 도착한 뒤부터 의식을 되찾기까지 일주일간 이 교수와 동료들은 ‘또 다른 전쟁’을 치렀다. 13일 오후 4시 14분, 이 교수는 “중증외상 환자가 실려 오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40분 뒤 미군 항공의무후송팀 ‘더스트오프’의 헬기가 외상센터 앞마당에 내려앉았다. 이때만 해도 이 교수는 환자가 미군인 줄 알았다. 이 교수가 수술실로 들어간 것은 오후 5시 23분. 피로 흥건한 수술실 바닥에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찰박’ 소리가 났다. 혈액형을 검사할 시간이 없이 O형 혈액 4유닛(약 1.5L)을 수혈하고 복부를 열었다. 길이 27cm의 기생충이 발견된 것은 이때였다. 의료진 사이에서 작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부러진 오른쪽 골반까지 맞추고 첫 수술을 끝낸 것은 오후 11시 5분. 몸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지 못했지만 일단 환자의 숨을 붙여놓은 뒤 다음 기회를 노려야 했다.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해적의 총에 맞은 석해균 선장을 치료할 때도 상처 부위를 열었다가 덮기를 4차례 반복했다. 오 씨의 몸에서 총알을 꺼낸 건 15일 오전 9시 40분부터 시작된 2차 수술 때였다. 오 씨는 수술 사흘 뒤부터 의식을 찾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수술방 안에는 삶과 죽음만 있다. 무승부는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왼쪽 눈의 망막혈관이 파열돼 실명 직전인 상태인데도 “환자를 포기할 수 없다”며 메스를 놓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세상이 그를 응원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 씨의 몸에서 기생충을 발견한 사실을 공개하자 일각에서 “인격 테러”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최근엔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적폐세력’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2012년엔 아주대병원이 권역외상센터 지정에서 탈락했다. 이 교수는 당시 경쟁 병원 의사들이 “이 교수가 쉽게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두고 쇼를 한다”는 내용이 담긴 e메일을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에게 돌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는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를 좋아한다. 미식축구 감독 역할을 맡은 알 파치노는 마지막 게임을 3분 앞두고 선수들을 모아 “인생은 1인치의 게임이고, 우리는 한 번에 1인치씩 끝까지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한꺼번에 많은 것을 바꿀 수 없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면 서서히 바뀐다”고 말했다.조건희 becom@donga.com·최지선 기자}

귀순 북한 병사 오모 씨(25)를 치료하고 있는 의료진은 이 병사가 심한 총상을 입고 두 차례나 대수술을 받은 점을 감안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예방 치료를 병행한다고 21일 밝혔다. 오 씨는 의식을 회복했고 인공호흡기도 떼어내 말을 할 수 있는 상태로 호전됐기 때문에 총상 입은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PTSD를 치료하기 위해서다. PTSD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위급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이 사건 후에도 지속적으로 당시의 공포와 혼란을 떠올리거나 집중력이 떨어지고, 환각까지 경험하는 일련의 증상을 말한다. 심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거나 자기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해리(解離·Dissociation) 현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오 씨는 현재 “남한 노래가 듣고 싶다”고 하다가도 갑자기 횡설수설하는 등 불안정한 의사 표현 상태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장시간 마취와 수면에서 깨어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술 후유증으로 보인다. 다만 의료진은 PTSD의 전조 증상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오 씨는 PTSD 증상을 촉발하고도 남을 경험을 했다”며 “일관된 의사 표현과 안정적인 정착이 가능하려면 정서적 지지와 심리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총격에 따른 PTSD를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길게는 수십 년간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안보경영연구원이 2013년 국방부 의뢰로 제2연평해전(2002년 6월 29일)과 천안함 폭침(2010년 3월 26일)을 경험한 해군 부사관, 장교 6명을 조사했을 때도 5명이 수면장애와 정서적 마비 등 전형적인 PTSD 증세를 보였다. 제1연평해전(1999년 6월 15일)에 참전한 뒤 PTSD 진단을 받은 박모 씨(45)가 10여 년이 지난 뒤에도 환각에 시달리다가 집에 불을 지른 사건도 있다. 오 씨에게 폐렴과 패혈증 증세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추가적인 2차 감염만 없다면 건강하게 회복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인 조현민 흉부외과 교수는 “수술한 부위에 2차 감염이 발생하지 않고 아물어야 한다”면서 “영양 공급은 정맥주사로 하겠지만 봉합된 장이 제대로 아물면 구강으로 식사가 가능해 이때가 되면 환자 상태가 급속도로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회복에 따라 기생충 감염 치료와 B형 간염 치료도 병행할 예정이다. 신상도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간이나 콩팥 등 장기에 총상을 입은 것이 아니고 소장 부위 손상으로 40∼50cm 절제한 것이어서 사실상 금방 건강을 회복할 것”이라며 “현재 상태라면 조만간 일반병실로 옮기고 10일 정도 지나면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측은 22일 오 씨 상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브리핑할 예정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조건희 기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귀순하면서 총상을 입은 북한 군인이 최근 의식을 회복한 이후 처음으로 “여기가 남쪽이 맞느냐. 남한 노래가 듣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2차례 대수술을 받은 뒤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귀순 북한 군인은 최근 눈을 뜨며 의식을 회복했다. 18일부터 인공호흡 대신 자발 호흡이 가능할 정도의 회복세를 보이다 최근 의식을 되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군인은 의료진의 질문에 말을 알아듣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고 표정을 바꾸는 등의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점차 지나서는 간단한 말도 하며 의사를 표현했다. 이 군인은 첫마디로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잘 모르겠다는 듯 “여기가 남쪽이 맞습네까”라고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남한에 왔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뒤에는 “남한 노래가 듣고 싶습네다”라며 노래를 틀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 소식통은 “귀순 북한 군인의 나이가 젊어 걸그룹 노래 등 한국 가요를 주로 틀어주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듣고 귀순을 결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지만 정확한 경위는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번 의식이 돌아온 뒤부터는 회복 속도가 꽤 빠른 편”이라고 전했다.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 등 정보당국은 귀순 군인의 의식이 돌아오자 정확한 귀순 배경 및 경위, 신원 등을 확인하는 ‘중앙합동신문’을 진행하겠다고 알리며 의료진에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귀순 경위 등은 이 북한 군인이 총격으로 회복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중상을 입자 미스터리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귀순 군인 주치의인 이국종 교수 등 아주대병원 의료진은 “아직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로 조사를 받을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안정이 더 필요하다”며 합동신문을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손효주 hjson@donga.com·조건희 기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가 총상을 입은 채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북한 병사가 폐렴과 B형 간염, 패혈증 등의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귀순 병사가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관계자는 19일 “환자의 가슴 사진에서 폐렴이 진단돼 치료 중인 데다 B형 간염도 발견돼 간 기능이 좋지 못한 상황”이라며 “패혈증까지 걸려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폐렴은 총상으로 폐의 일부가 손상되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며 “패혈증은 엄청난 양의 혈액 주입과 복부 총상으로 인한 감염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B형 간염은 북한에 여전히 만연한 대표적인 질환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돼 발생하는 간의 염증 질환으로 방치하면 간경화, 간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병원 측에서 귀순 병사에게 사용한 혈액은 지금까지 40유닛(약 16L)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 몸 안의 전체 혈액이 4∼6L인 점을 감안하면 대략 3, 4배에 이르는 혈액을 투여한 것이다. 병원 측에 따르면 귀순 병사가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혈압이 70mmHg 이하로 떨어져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문의들은 “환자가 이런 상황을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귀순 병사는 상황이 너무 급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단층촬영(CT)조차 하지 못한 채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고 한다. 또 혈액형을 판정할 시간이 없어 응급용 O형 혈액을 수혈했다고 병원 관계자들은 전했다. 한편 병원의 다른 관계자는 “귀순 병사를 상대로 현재 3차 수술을 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15일 2차 수술 당시 몸속에 있던 총알을 전부 제거했고, 끊어진 혈관과 장기를 이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당분간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수원=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 조건희 기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가 총상을 입은 채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북한 병사에게서 기생충 수십 마리가 나온 데 이어 이 병사가 B형 간염, 폐렴, 패혈증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회복 여부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B형 간염은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간의 염증성 질환이다. 이로 인해 귀순 병사의 간 효소 수치가 매우 높은 상황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귀순 병사의 높은 간 수치가 B형 간염 탓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전반적인 영양실조에 다량의 출혈로 인한 대량 수혈이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초기 수술 시 의료진 20여 명은 귀순 병사가 B형 간염에 걸린 사실을 모르고 투입된 만큼 의료진의 건강 검진도 필요한 실정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한광협 소화기내과 교수는 “기생충 감염으로 영양부족이 나타났을 테고, 출혈이 심하면 간에 일시적인 허혈성 장기 손상이 오는 만큼 이로 인한 간 수치 증가 가능성이 높다”며 “B형 간염 치료보다 환자의 상태를 최대한 안정시키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환자에게 온 폐렴도 계속 지켜봐야 한다. 일단 총상으로 생긴 일시적인 폐렴인 데다 젊기 때문에 회복력이 높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김승준 교수는 “많은 수혈을 받다 보면 폐 손상으로 폐부종 및 폐렴 증상이 오기 쉽다”며 “항생제를 적절히 투여하고 수액을 조절하면 폐렴 치료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개 폐렴은 1, 2주 정도 지나면 몸의 상태에 따라 회복 여부가 결정된다. 귀순 병사가 앓고 있는 패혈증은 회복 여부의 핵심 관건이다. 패혈증은 세균에 감염돼 발열, 빠른 맥박, 호흡수 증가, 백혈구 수 증가 또는 감소 등 전신에 걸쳐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상태이다. 패혈증이 악화돼 쇼크가 일어나면 치사율이 30%까지 치솟는다. 최근 가수 최시원 씨의 개에게 물려 갑자기 사망한 한일관 대표 김모 씨의 사망 원인이 패혈증이었다. 귀순 병사가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관계자는 “이미 급한 불은 끈 상황이기 때문에 패혈증으로 인한 쇼크가 올 가능성은 낮다”면서 “하지만 언제든 상태가 악화될 수 있는 만큼 계속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손상 부위를 한꺼번에 수술하지 않고 출혈 감염 등 생명과 관련된 부위를 우선 수술하는 이른바 ‘대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 순서상 귀순 병사의 기생충 감염 치료는 시급한 상태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1, 2차 수술 때 이은 혈관과 내장이 얼마나 빨리 회복될지,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떼고 자발 호흡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전망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경계가 한층 삼엄해졌다. 19일 지상 1층과 지하 1층의 출입구는 보안 인가를 받은 사람만 접근할 수 있도록 문이 잠겨 있었다. 외상센터 내 중환자실로 통하는 길목은 군인으로 보이는 사복 차림의 경호원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미군도 검문을 받은 뒤 들어가야 한다”며 “귀순 병사의 병상 옆은 군과 국가정보원 소속 경호원이 항상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귀순 병사의 주치의인 아주대병원 이국종 외과 교수는 22일경 환자 상태에 대해 공식 브리핑을 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1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교수는 병사 개인정보 노출 논란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귀순 병사가) B형 간염 감염자임에도 변과 기생충을 그대로 만져야 했다”며 “그런데도 일부에선 ‘환자 정보를 공개했다’ ‘환자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비판을 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사전에 (관계 당국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공개한 것인데도 욕을 먹으니 욕먹을 팔자인가 보다”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의료계에선 귀순 병사를 치료한 아주대병원처럼 권역외상센터를 늘리고 의료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권역외상센터는 외상외과, 신경외과, 응급의학과 등으로 구성된 전문 외상팀이 항시 대기하다가 생명이 위독한 외상환자를 빠르게 집중 치료하는 시스템이다. 현재 운영 중인 외상센터는 전국에 9곳뿐이어서 중증 외상환자가 일반 응급실을 찾았다가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쳐 숨지는 일이 적지 않다.수원=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조건희 기자}

“급체인가….” 최근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자주 쓰려 별 생각 없이 동네 의원을 찾은 양모 씨(43)는 ‘큰 병원에 가보라’는 주치의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서둘러 옮긴 응급실에서 내린 진단은 급성심근경색증(심장 발작). 평소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던 양 씨로서는 뜻밖이었다. 의료진이 제때 막힌 혈관을 뚫은 덕에 큰 화는 피할 수 있었다. 나흘 후 퇴원한 양 씨는 “고기보다 야채를 많이 먹고 꾸준히 운동하라는 조언을 흘려 넘길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에 바람 잘 날 없는 뇌심혈관 심장은 크게 3개의 심장혈관(관상동맥)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받고 활동하는데, 이 중 하나라도 막히면 심장 근육의 조직이나 세포가 죽는다. 이것이 급성심근경색증이다. 혈전(피가 굳은 덩어리)이 혈관을 완전히 막지는 않았지만 혈액의 흐름을 방해하는 경우엔 협심증이 생긴다. 최근처럼 급격히 기온이 낮아지면 급성심근경색증과 협심증의 위험이 높아진다. 심장내과 전문의들은 그 이유를 ‘피가 끈적끈적해지는 탓’이라고 표현한다. 낮은 기온 탓에 혈액의 응집력이 높아지고 고혈압 등 지병이 악화되면 급성심근경색증의 위험이 더 높아진다는 뜻이다. 평소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기름진 식단을 피하면 혈관 안쪽 벽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지만, 찬 바람이 급성심근경색증의 예기치 않은 도화선이 되는 경우가 있다. 혈관이 막혔을 때 생기는 증상은 병변이 뇌일 때 더욱 심각해진다. 뇌혈관이 막혀 혈액과 산소가 공급되지 못해 생기는 허혈성 뇌중풍(뇌경색·단일 질환 중 사망원인 1위)이 대표적이다. 뇌는 몸속 산소의 30%가량을 소모하고 혈관도 빼곡히 들어차있기 때문에 치매 등 뇌 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뇌경색의 위험도 더 높아진다. 포항 지진과 같은 재난 발생 시 재난 후 스트레스로 인한 뇌심혈관 질환 위험이 특히 높아진다.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뇌심혈관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피해 지역 반경 50km 내에 거주한 사람의 급성심근경색증 발병률이 34%, 뇌중풍은 42% 증가했다고 밝혔다. 1995년 한신(阪神)·아와지(淡路) 대지진 당시 인근 지역 고혈압 환자의 혈압이 평균 11mmHg 증가했다. 신상도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급성심근경색증은 진도가 높은 지역에서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심장발작 멈춰라” 응급실 안에 또 응급실 급성 뇌심혈관 질환의 핵심은 빠른 치료다. 가슴 통증 등 증상이 처음 나타난 후 3시간 내 병원으로 옮겨 막힌 혈관을 뚫어야 생존율이 높아진다. 급성심근경색의 경우 6시간을 넘기면 숨질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지고 회복하더라도 폐 부종 등 합병증에 시달릴 수 있다. 뇌경색을 방치하면 손상된 뇌 세포가 살아나지 않아 지체장애에 빠질 수 있다. 서울 세브란스병원은 지난달 30일 20억 원을 들여 응급진료센터 내에 ‘응급심혈관중재술실’을 설치했다. 응급실 내에 심혈관조영술 장비를 설치하고 심장내과 전문의를 상주시켜 환자가 스텐트 삽입 및 풍선 확장술을 받기까지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다. 기존엔 응급진료센터를 찾은 환자가 시술을 받으려면 150m가량 떨어진 심장혈관병원으로 옮겨야 했고, 그 과정에서 환자가 숨진 일도 있었다. 하지만 14일 출근길에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으로 지하철역 앞에서 쓰러진 황모 씨(44)는 오전 11시 23분경 세브란스병원 응급진료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중재술실로 옮겨져 11시 50분경 곧장 스텐트 삽입 및 풍선 확장술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 5월 119구급대와 함께 ‘뇌졸중 응급 진료 시스템’을 만들어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뒤 막힌 혈관을 뚫기까지 걸리는 평균 시간을 46분에서 20분으로 단축시켰다. 119 구급대원이 뇌졸중(뇌중풍) 의심 환자를 발견하면 곧장 서울아산병원 뇌졸중센터 의료진과 연락할 수 있는 24시간 전용 핫라인을 만든 뒤, 뇌졸중 환자의 혈전용해술 시행률은 종전 9.8%에서 15.8%로 높아졌고, 뇌출혈 등 합병증 발병률은 12.6%에서 2.1%로 줄었다. 고려대 안암병원은 실신하거나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당직의가 해당 환자의 심전도 결과를 스마트폰으로 심혈관센터의 전문의에게 전송한다. 급성심근경색증 진단과 시술 결정을 앞당기기 위해서다. 전상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혈관이 막히면 1분당 뇌세포 190만 개가 죽고, 한 번 손상된 뇌세포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며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거나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등 뇌졸중 증상을 보이면 곧장 혈전제거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귀순한 북한 병사 A 씨가 기생충뿐 아니라 B형 간염, 폐렴까지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북한 내 감염병 실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 내 감염병 실태를 감시하기 위한 예산은 한 해 3000만 원 수준에 불과해, 통일 이후 ‘아웃브레이크(감염병 대유행)’ 사태에 대처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질병관리본부(KCDC)의 ‘북한이탈주민 건강관리사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자 중 A 씨처럼 B형 간염을 앓는 사람의 비율은 남성은 12.4%, 여성은 10.4% 수준이다. 국내 B형 간염 유병률(남성 3.6%, 여성 2.7%)보다 각각 3.4배, 3.8배로 높다. 북한에서 결핵에 새로 걸린 환자는 2010년 인구 10만 명당 432명에서 2015년 561명으로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결핵 발생률이 가장 높은 한국(인구 10만 명당 80명)의 7배나 된다. 귀순 병사가 앓는 폐렴은 총에 맞아 생긴 것으로 추정되지만 만성 폐렴은 북한에서 흔한 질병이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북한에서 숨지는 1∼5세 영유아는 한 해 1만여 명으로, 폐렴은 이들의 사망 원인 중 약 14%를 차지한다. 한국에선 2014년부터 영유아 및 65세 이상 노인의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무료로 지원해 환자가 줄고 있다. 북한에서 흔한 기생충 감염도 한국에선 농작물 관리를 강화하며 줄고 있다. 1971년 84.3%에 달했던 장내 기생충 감염률은 2012년 2.6%로 낮아졌다. 현재 보건당국은 중국 옌볜(延邊) 등에 ‘해외 거점 실험실’을 설치하고 북한 내 감염병 환자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2014∼2015년 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시 등 8곳 주민 734명을 조사한 결과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쥐를 통해 감염되는 신증후군출혈열 바이러스 감염자는 64명(8.7%)이었다. 국내에선 전체 인구의 0.001%에 해당하는 500여 명이 환자로 신고된 것과 대조적이다. 신증후군출혈열은 치료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15%에 이른다. 하지만 해외거점 실험실을 통한 북한 감염병 감시 예산은 몽골, 베트남, 필리핀 사무소 등을 통틀어 연간 1억여 원에 불과하다. 이 중 중국 지역에 할당된 예산은 3000만 원이 채 안 된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예산과 인력 부족은 물론이고 중국의 폐쇄적인 생물자원(병원체 등) 반출 제한 탓에 깊이 있는 연구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김영훈 고려대 의대 통일보건의학협동과정 교수는 “감염병으로 인한 북한 주민의 조기 사망률은 한국인의 4.7배다. 인적 교류에 대비해 남북 통합 질병관리본부를 만들어 감염병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여기 ○○○ 선생님 있나요?” 지난달 경기의 한 학원으로 서류 봉투를 든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그와 눈이 마주친 강사 A 씨(20대 후반)는 숨이 턱 막혔다. 그 중년 여성은 올해 초 A 씨를 성폭행한 혐의(강간)로 기소된 남성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수강생이 보는 앞에서 “합의서에 서명해 달라”고 압박하던 이 중년 여성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퇴거명령 불이행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자 그제야 교실에서 나갔다. A 씨는 “지옥 같았던 피해의 순간이 머릿속에 되살아났다”고 호소했다. A 씨처럼 성폭력 사건 후에 가해자 등으로부터 2차 피해에 시달려 정신적 고통을 겪는 피해자가 적잖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영기 장형윤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2014년 이후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를 찾은 17세 이상 성폭력(성폭행 및 강제추행) 피해자 105명을 6개월씩 추적 조사한 결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위험 점수(51점 만점)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한 수준(20점 이상)이었던 이들이 전체 105명 중 70명이었다고 12일 밝혔다. 이들 중 47명은 6개월 지난 후에도 PTSD 위험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수사와 재판이 끝나지 않은 피해자의 고통이 컸다. 피해자 중 1심까지 종료된 17명의 평균 PTSD 위험 점수는 사건 직후 평균 23.3점에서 재판 후 11.8점으로 대폭 줄었다. 반면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피해자는 위험 점수의 감소 폭이 3.3점에 불과했다. 스스로 느끼는 신체적 건강 상태도 재판 종료 피해자는 10점 만점에 9.1점이었지만, 재판 진행 중 피해자는 5.7점 수준이었다. 연구팀은 피해자가 수사와 재판이 길어질수록 가해자 측의 집요한 합의 요구에 시달릴 위험이 높아질 뿐 아니라 반복되는 조사와 증언 과정에서도 큰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지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한 30대 여성은 “경찰이 조사 중 ‘당신이 그렇게 (가해자) 앞에서 붙어 다니니까, 쉬워 보이니까 당한 것 아니냐’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피해 사실을 모르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수시로 형사로부터 전화를 받아야 했다는 피해자도 있다. 경찰은 △2차 피해를 초래하는 발언을 피하고 △추가 조사 시엔 미리 협의한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피해조사 매뉴얼’을 두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가해자 측의 접근을 막을 제도가 미흡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한 성폭행 피해 여성은 “가해자의 가족이 집으로 찾아와 합의 요구서를 편지함에 두고 갔는데, 경찰에 신고했더니 ‘직접적인 위협이 없어서 달리 조치할 게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장형윤 교수는 “성폭력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혼란과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인권 보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