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

김태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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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태언 기자입니다.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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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6~202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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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난 자의 ‘마지막 이사’를 돕는 이들 “유품에 담긴 ‘못다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정중하게 정리된 망자의 생전 흔적을 받아든 유족의 심정은 어떠할까. 14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10부작)은 유품정리사라는 다소 생경한 직업을 다룬다. 모든 인생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이 드라마는 닷새 만에 국내 넷플릭스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드라마는 아스퍼거 증후군(자폐증과 비슷한 발달장애)이 있는 그루(탕준상)와 그의 후견인 상구(이제훈), 그루의 친구 나무(홍승희)가 유품정리사로 일하며 세상을 떠난 이들이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산업재해, 고독사, 스토킹 범죄, 노인 동반 자살 등 사회적 사건 속에서 주목받지 못한 채 쓸쓸히 떠난 망자들을 조명한다. 20일 인터뷰한 무브 투 헤븐의 윤지련 작가는 “범죄사건 등이 소재가 되는 만큼 수사물이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범죄 장면이나 처벌 과정보다 고인들의 삶이 더 궁금했다”고 밝혔다. ‘어떤 마음으로 돌아가셨을까.’ ‘아쉬움은 없었을까.’ 작가의 고민은 자극적인 콘텐츠들 속에서 빛을 발하는 휴먼 스토리로 이어졌다. 윤 작가의 이번 작품은 그의 이전 대표작인 반올림3(2006∼2007년), 꽃보다 남자(2009년) 등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유품정리사 소재는 2015년 읽은 김새별 작가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에서 착안했다. 그는 “사실 당시 ‘드라마를 다시 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였다. 김새별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다시 글을 쓰고 싶게 했다. 이번 작품을 쓰면서 나도 많이 위로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집필에 앞서 철저히 사전조사를 했다. 한국, 미국, 일본의 유품정리사 사례를 취재했다. 유품정리사 3명을 인터뷰하고 업무 현장에도 따라갔다. 가장 기억에 남은 건 70대 노인의 고독사였다고 한다. “고독사 에피소드 집필을 마친 상태였는데 현장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어요. 수많은 물건들이 각자 한마디씩 내뱉는 것 같았죠. 하루에 이만큼 약을 드셨구나, 젊을 때는 이런 일을 하셨겠구나…. 불과 몇 시간 만에 모르던 분의 인생을 엿본 것 같았습니다.” 윤 작가는 “사회적 편견과 유족의 반대에도 고집스레 고인의 마음을 전달하려는 유품정리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감정 변화가 없고 배운 대로 행동하는 아스퍼거 증후군 캐릭터(그루)를 창조했다. 그는 “담담히 유품을 전달하며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게 그루”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죽음이 집값 하락의 원인인 양 여겨지는 사회에서 망자를 오로지 한 인간으로만 바라보는 그루는 윤 작가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윤 작가는 그루 캐릭터를 만든 뒤 상구와 나무, 주변 인물들의 서사와 관계성을 촘촘히 엮어 나갔다. 회차별로 이야기 전환이 잦은데도 시청자들이 주인공들에게 몰입할 수 있는 이유다. 권투를 한 상구는 그루에게 흑기사가 되고, 나무는 그루의 감정을 사회적 언어로 통역해 준다. 그는 “시청자들에게도 이 드라마가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나도 배우들도 시즌2에 대한 바람이 크다”고 덧붙였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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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도 부모도, 완벽한 사람일순 없어요”… 오은영의 ‘인생수업’

    한 여성이 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공부를 하고, 명문대를 졸업했으며,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 후로도 엄마는 동료나 애인의 스펙을 따져 물었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을 만나 10년간 결혼생활을 했지만 아이 낳기가 두렵다. 엄마 같은 엄마가 될까 봐. 남편과 아이가 자기 때문에 불행해질까 봐. 뒤틀린 관계로 살아가는 부모와 자녀들에게 소통하고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56)가 나섰다. 가정의 달을 맞아 채널A가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금요일 오후 8시)에 이어 내놓은 ‘요즘 가족 금쪽 수업’(일요일 오후 7시 50분)을 통해서다. 오 박사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배우 신애라가 차례로 실제 사연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강연 형식이다. 8일 첫 방송 이후 두 번째 방송 만에 ‘치료 받는 기분’이라는 호응이 나오고 있다. 20일 전화 인터뷰로 만난 오 박사는 “많이들 좋은 영향을 받으셨다고 하니 자체 평가로는 ‘지축을 흔들었다’고 표현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런 그의 소감은 예능계의 현주소와 맞닿아 있다. 연예인 가족이 나오는 오락형 육아 프로그램만이 가족 예능의 맥을 잇고 있는 상황에서 강연 형식의 가족 예능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는 “시청률만 생각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코로나19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진 시기에 자신과 가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금쪽’ 시리즈는 작품별 차이를 통해 위로의 폭을 넓힌다. ‘금쪽같은 내 새끼’가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이라면, ‘금쪽 수업’은 성인이 된 나를 이해하기 위해 삶을 되돌아보는 인생 수업에 가깝다. 16일 방송에서 배우 이윤지가 “부정적인 감정 표출이 어렵다”고 상담하자 오 박사는 “부정적 감정도 나쁜 게 아니다. 그동안 착하게 잘 커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어릴 때도 듣지 못했던, 그리고 어른이라 더 듣기 힘든 위로였다. 오 박사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아이 시절에 자신을 투영해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의 장단점을 이해하게 된다”며 되돌아보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문제를 부모 탓, 가정 탓으로만 돌리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분명 부모는 자식을 사랑했지만 그 방법이 잘못됐을 거다. 용서하란 말은 아니다. 그저 부모를 ‘불완전한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약점은 있으니 대화하고 깨우치면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방송과 강연 등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며 오 박사는 지금 시대 가족에게는 감정 소통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고 한다. 그는 “시대에 따라 가정환경은 달라지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부모는 자식에게 중요한 사람이고, 자식은 부모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기대한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방식에 변화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육아 회화’를 강조한다. ‘제대로 안 할 거면 하지 마!’라고 말하기보단 ‘열심히 하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해’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전자처럼 말하면 알아듣고 분발할 거라 착각하지만 감정이 상할 뿐이다. 오늘 하루 한마디만 달라져도 나중에는 전혀 다른 곳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며 실천해보기를 권한다. 그는 가족의 기본은 ‘마음을 나누는 인생의 대화를 하는 관계’라고 말한다. 힘들 때 진솔하게 버팀목이 되어줄 거란 바람이 있기에 엄마, 아빠, 아이를 호명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일렁인다. 금쪽 시리즈를 통해 저마다의 상처를 극복하고, 따듯하게 결속돼 있는 동시에 각자 개인으로 존중해주는 가족이 늘고 있다. 별다를 것 없어도 매회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눈물을 쏟아내는 이유일 테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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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각의 조각가’ 김종영의 동양적 뿌리 찾아서…

    깎지 않는 조각가. 수식어만으로도 우성 김종영(又誠 金鍾瑛·1915∼1982)은 유달랐다. 구태여 깎지 말라는 ‘불각(不刻)의 미’는 김종영이 한평생 읊었을 철학이다. 그의 고유함은 한동안 많은 평론가들의 이목을 끌어왔지만 한편으로는 그 뿌리가 무엇인지 쉽게 간파되지 않는다는 말이 따라다녔다. 묵은 질문의 실마리가 될 전시가 찾아왔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김종영미술관은 개관 20주년을 맞아 7일부터 특별전 ‘김종영의 통찰과 초월, 그 여정’을 열고 그의 작품을 서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시선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김종영의 작품세계를 연구해온 원로 평론가 옥영식 선생과의 공동 연구 결과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김종영 선생은 동서양을 관통하는 추상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 고유의 우주관을 표현해낼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 같다”며 “양과 음, 하늘과 땅과 사람 등 생성의 원리를 다룬 동양 사상이 작품 곳곳에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김종영의 명성을 드높인 작품 ‘새’에서부터 그의 고뇌는 드러난다. 이 작품은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작품으로 한국 최초의 추상 조각이다. 당시 김종영은 동양 철학자 우암 김경탁(1906∼1970)의 논고 ‘실생 철학의 구성’(1953년)을 읽고 평생 소장했는데, 그 내용은 음양조화론과 맞닿아 있었다. 음양조화론과 함께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가 통용됐다는 점을 접목해 보면 새의 머리 부분은 하늘, 수직으로 선 새의 가슴과 다리는 각각 사람과 땅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시각과는 상이하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은 작품 제목이 비슷하다는 이유 등으로 서양 현대조각의 아버지인 브른쿠시의 ‘공간의 새’와 연관된 작품이라고 해석했다. 그가 활동하던 1950년대는 우리나라에 서구 미술이 유입됐고 김종영 또한 이를 능동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김종영 관련 논문 중 상당수가 그의 작품과 서구 작품 간의 형태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어떤 영향 관계가 있었는지 살피는 것에 집중돼 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우주관을 염두에 두면 날아가려는 순간의 모습을 포착한 브른쿠시의 새는 김종영의 새와는 전혀 달리 보인다. 조각뿐 아니라 회화에서도 그의 작품관을 엿볼 수 있다. 1961년에 그린 드로잉 작품은 화면을 위아래로 나눠 마주 본 채 누워 있는 여인을 담았다. 수많은 드로잉 작품 중 하나로 여겨졌던 이 그림에서 새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그림 위와 아래에 모두 영문으로 이름을 쓰고 그 옆에는 각각 상형문자로 ‘山’과 ‘水’를 썼다는 사실이다. 바탕색은 각각 양과 음의 색인 갈색과 파란색이다. 미술관은 주역(周易)에서 아래가 물이고 위가 산인 산수몽괘(山水蒙卦)가 있는 점을 볼 때 이 작품 또한 동양 사상을 품고 있다고 분석한다. 불각도인(不刻道人)이라는 그의 정체성은 여러 실험의 결정체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에서 “표현은 단순하게, 내용은 풍부하게”라고 방향성을 설명했다. 그의 절제적 표현은 작가의 이념 등을 표현하지 않고 재료 자체에 관심을 두는 서구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다고 해석할 수 있다.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 어긋나게 포개 놓아 단순미의 극치라고 평가받는 ‘작품 80-6’도 노자 도덕경 등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시선을 달리하면 해석이 달라진다. 이번 전시는 김종영의 작품을 김종영의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작품을 새로 톺아볼 시발점이 될 것이다. 다음 달 27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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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이 10m ‘공주 신원사 괘불’ 서울 첫 나들이

    목을 완전히 젖혀야 전체를 볼 수 있는 높이와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밝은 색조. 숭유억불에 갇혀 왠지 소박할 것만 같은 조선시대 불화에 대한 편견은 첫눈에 사라졌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공주 신원사 괘불’(국보 제299호)은 높이 10m, 너비 6.5m, 무게 100kg에 이른다. 괘불(掛佛)은 규모가 있는 사찰에서 특별한 법회나 의식을 치를 때 야외에 걸어놓는 대형 불화를 말한다. 신원사 괘불은 1664년 6월 조성 이후 이번 전시까지 단 두 차례만 외부에 전시됐다. 첫 전시는 2005년 경남 양산 통도사의 성보박물관에서 이뤄졌다. 이번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지난달 28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조선시대 괘불은 그림에 능한 승려(화승)들이 그렸다. 신원사 괘불은 17세기 충청도에서 주로 활동한 화승 응열(應悅)이 만든 첫 번째 괘불이다. 그를 포함해 총 5명의 화승이 그렸다. 응열은 9년 후 충남 예산 수덕사 괘불도 그렸다. 괘불은 한번 제작하면 오랫동안 사용해 화승 1명이 2개 이상을 그린 예가 드물다. 신원사 괘불은 응열의 독특한 개성이 잘 드러난다. 기존 괘불들이 구름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한 것과 달리 화폭에서 등장인물 수를 줄이고 부처 주변의 빛을 강조했다.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위대함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섬세하게 장식한 옷과 반짝이는 구슬이 부처의 몸을 감싸고 있다. 색을 칠한 뒤 꽃이나 기하학 무늬를 더했는데 부처를 공경한 화승들의 정성이 느껴진다. 괘불에 그려진 부처는 ‘노사나불(盧舍那佛)’. 초록색 광배 위에 쓰인 한자를 통해 알 수 있다. 노사나불은 불교에서 오랜 수행을 거쳐 부처가 된 보신불이다. 그런데 불화 하단의 화기(畵記)에는 ‘석가모니불을 그렸다’고 적혀 있다. 이는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이 서로 다른 몸으로 태어나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전했지만, 결국 같은 여래라는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부처를 둘러싼 주변 인물도 찬찬히 살펴볼 만하다. 아래는 붉은 얼굴을 한 사천왕(불법을 수호하는 4명의 수호신)이 사방을 지키고 있다. 사천왕 주변에는 깨달음의 과정을 겪는 보살인 월광보살, 일광보살, 지장보살, 관음보살이 절구를 찧는 토끼가 그려진 달, 붉은 태양, 지옥에 있는 중생을 구해주는 구슬, 현실에 있는 중생을 위해 감로수를 담은 정병을 각각 들고 있다. 위쪽에는 부처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5명씩 무리를 지어 찾아온 십대제자들이 있다. 그 위로는 공경의 마음을 담아 복숭아를 공양하는 천인(天人) 2명이 있다. 부처와 눈을 맞추며 그림을 살피다 보면 종교적 장엄함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불교사상을 잘 모르는 이라도 숨은그림찾기처럼 즐길 만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9월 26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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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수학은 항상 옳다는 말에 속지 말 것

    열두 살 아이에게 몇 살이냐고 묻는다. 우리라면 한 손으로 손가락 한 개를, 다른 손으로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일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전 파푸아뉴기니의 오크사프민 원주민 아이라면 오른쪽 귀를 만졌을 것이다. 이들은 숫자 개념이 없기에 특정한 신체 부위를 가리켜 수를 세기 때문이다. 수렵 채집의 물물교환 사회에서 숫자는 필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일부 원주민이 농장과 광산의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들은 화폐경제를 익히기 위해 수학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사례는 수학은 보편적 언어라는 통념의 한계를 보여준다. 통상 만국 공통의 언어는 없지만 ‘1+1=2’라는 사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3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지원을 받은 외계지적생명탐사 프로젝트에서 과학자들이 셈법 체계에 대한 정보를 외계에 보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수학은 사회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언어다. 수학도 사회적 산물이기에 불공정한 룰에 때로 이용된다. 미국 일부 주가 사용하는 재범 예측 프로그램 COMPAS가 내린 2개의 결정이 대표적이다. 수사 과정에서 나온 질의응답 등을 바탕으로 COMPAS는 물건을 훔친 10대 흑인 소녀에게 과거 경범죄 전과를 고려해 10점 만점에 8점을 부여했다. 재범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값의 물건을 훔친 중년 백인 남성에게는 3점을 부여했다. 그에게 무장 강도 전과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COMPAS에 입력된 변수가 빈곤 정도, 실업 여부, 미래에 대한 낙관 등 소수 인종에 불리한 데이터로 구성된 데 따른 것이다. 수학적 알고리즘에 편향이 들어가는 건 이를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서 여성이나 유색인종의 진출은 극히 부진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여성과 유색인종 집단에 재능을 가진 이가 적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현재의 사회 시스템이 이런 상황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백인 남성 위주의 집단에 비백인 여성이 진입하기는 상대적으로 힘들며, 들어가더라도 만만치 않은 텃세에 시달릴 가능성이 클 것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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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 디지털 옷 입고 ‘화려한 외출’

    궁궐의 화려한 단청 옆으로 연꽃과 모란꽃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린다. 9일 ‘궁중문화축전’이 열린 서울 종로구 경복궁 경회루 서쪽 소나무 숲. 20여 개의 야외 빈백에 30여 명이 거의 누운 자세로 편하게 앉아 있었다. 이들 앞에는 80인치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TV 8대가 놓여 있었다. 화면에는 조선 궁궐과 단청, 연꽃 등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미디어아트 ‘조선의 문화, 꽃으로 피다’가 재생되고 있었다. 자칫 딱딱하게 받아들이기 쉬운 문화재에 첨단 기술이 말랑말랑한 감성을 불어넣고 있다. 궁중문화축전 미디어아트는 주로 전각이나 문루에 영상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구나 네온관 같은 조명기구를 문화재 위에 직접 걸어놓으면 훼손 우려가 있어서다. 주재연 궁중문화축전기획운영단 감독(56·사진)은 “단순한 영상 투사가 아닌 문화재 유형별로 맞춤형 콘텐츠를 보여주고자 한다”며 “건조물은 평면이 아니기에 형태에 따라 화면 비율을 달리해야 한다. 건물 기둥, 지붕, 문 등과 어울리는 각각의 콘텐츠를 투사하는 방안을 기획 중”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미디어아트가 문화재 고유의 색을 가린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주 감독은 “색과 이미지 변형은 작가의 작품세계”라며 “미디어아트는 궁궐 건축과 역사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단인 만큼 이를 통해 문화재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 감독은 올 하반기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합친 융합예술을 기획하고 있다. 경복궁 흥례문 앞에 강원 원주 한지로 만든 등불이나 전남 담양 대나무로 조성한 숲을 만들고 그 위에 영상을 입히는 식이다. 그는 “올해부터 궁중문화축전이 매년 두 번씩 열리는 만큼 봄에는 체험 프로그램을, 가을에는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궁궐 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지난해 축전 대표 프로그램 ‘창경궁, 빛이 그리는 시간’은 창경궁 산책로에 사슴이 뛰노는 장면을 홀로그램으로 연출해 호평을 받았다. 그는 “현재 축전에서는 전체 공간의 20% 남짓만 활용하고 있다”며 “관객들이 숨은 공간들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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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물시계 복원하고 바닷속 고려청자 발굴… 극한직업을 아시나요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은 유튜브 문화유산채널에 ‘극한직업’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 전통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있는 ‘극도로 한국적인 직업’을 소개하는 코너다. 이 중 고(古)천문학자와 수중 발굴 조사원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다.○교과서 속 ‘천문의기’가 눈앞에 고천문학자는 과거에 일어난 천문현상이나 조상들의 천문학 연구 방식 등을 탐구하는 직업이다. 김상혁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장(50)은 천문우주학 석사 과정에 들어간 1998년부터 고천문학 연구에 몸담았다. 당시 석사 지도교수였던 이용삼 충북대 교수가 세종대왕 때 천문 관측기구인 간의(簡儀) 연구 등에 매달린 영향이 컸다. 두 사람은 이후 천문의기(天文義器·옛 천체 관측기기) 복원에 나섰다. 김 센터장의 천문의기 복원 작업은 정사(正史)를 살피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조선시대 천문의기는 대부분 왕실에서 사용됐다. 이와 관련된 눈에 띄는 인물이 있으면 역사기록을 통해 그의 가계와 교우관계, 사회상 등을 광범위하게 알아본다. 동아시아 등 주변국에 대한 자료조사도 기본. 한자, 일본어, 아랍어로 쓰인 옛 문헌은 관련 분야 학자와 함께 연구한다. 이후 여러 문헌을 토대로 천문의기 설계도면을 만들고 시제품을 만든다. 최근 그가 복원한 건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인 흠경각루(欽敬閣漏)다. 총 6년에 걸친 연구 끝에 2019년 복원한 흠경각루는 세종시대 제작된 자격루와 쌍벽을 이루는 물시계다. 김 센터장은 “흠경각루는 장영실이 세종을 위해 천상(天上)의 세계를 표현한 ‘천상 시계’”라며 “당시로선 최첨단 기계장치가 가미된 조선 최고의 시계”라고 강조했다. 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과학기기의 명칭만 접하는 게 아쉬웠다는 그는 “최근 천문의기 복원이 진행되며 국민들이 우리의 과학기술사를 직접 살펴볼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아직까진 연구 성과가 조선 초기에 몰려 있는 만큼 문헌에만 전하는 중후기 천문의기에 대한 실체 규명에도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바닷속 영롱한 빛깔의 고려청자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동아시아에선 선사시대부터 해상 교류가 이뤄졌다. 고대, 중세에 이르기까지 각종 물건을 실어 나르다 침몰한 배들이 여럿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최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를 주축으로 문화재 당국이 수중 발굴에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는 이유다. 노경정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 학예연구사(40)는 학부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다. 노 연구사는 2007년 연구소 입사 후 잠수와 수중 촬영, 탐색 등을 배웠다. “물은 마시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는 그는 옛 시대상을 온전히 갖고 있는 침몰선이 타임캡슐과 같다는 생각에 수중 발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같은 해 10월 그는 충남 태안군 대섬에서 도자기가 보인다는 어민 제보를 받고 현장에 처음 투입됐다. 그때 푸른 바닷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고려청자와 목간을 봤다. 노 연구사는 “그 광경이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워 호흡기를 놓칠 뻔했다”고 한다. 물속에서 2만5000점의 도자기를 걷어내자 이를 운반한 당시 선원의 인골이 드러나기도 했다. 보통 수중 발굴은 기후와 수온을 감안해 매년 4∼10월에 진행한다. 지난해 12, 13세기 중국 남송(南宋) 무역선의 대형 닻돌이 발견된 제주 신창리 수중 발굴의 경우 올해는 4∼6월에 실시되고 있다. 2019년 시작된 신창리 수중 발굴은 내년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올 7월에는 2011년 도굴범 검거를 계기로 시작된 전남 진도 명량대첩로 해역 발굴이 이뤄진다. 이곳은 고려시대 전남 강진에서 생산된 고급 청자를 개경으로 운송하는 루트로, 명량해전이 발발한 울돌목과 가까워 청자, 총통, 돌 포탄 등이 함께 발견되고 있다. 노 연구사는 “우리가 바다에서 발굴하는 흔적은 어찌 보면 당시 사람들에게는 큰 불행이었겠지만 이로 인해 밝혀지지 않은 과거를 후세에 전달할 수 있다”며 “수중 발굴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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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공점퍼-청바지 입고… ‘오스카’ 윤여정 귀국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74)이 트로피를 안고 8일 오전 귀국했다. 윤여정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걸쳤던 항공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들어왔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고려해 공식 행사나 인터뷰 없이 짧게 손을 흔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2주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윤여정은 앞서 7일 소속사 후크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여우조연상 수상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고, 여전히 설레고 떨린다. 미국에서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잊지 못할 거 같다. 같이 기뻐해주고 응원해준 많은 분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귀국 소감을 미리 전했다. 소속사 측은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우선으로 지원할 예정”이라며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여러분 앞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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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협력할 동지냐, 타도할 적이냐… 중국을 보는 두 시각

    최근 국내 대기업이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추진한 ‘한중 문화타운 조성사업’이 반중 여론으로 무산됐다.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중국풍 소품 등이 부른 시청자 반발로 2회 만에 폐지됐다. 중국의 과도한 자국 중심주의로 촉발된 반중 정서가 미중갈등 구도에서 한국의 대응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적인 동아시아 연구 석학 에즈라 보걸은 신간 ‘중국과 일본’에서 약 1500년에 걸친 중일관계를 돌아보며 중국과의 공존을 모색했다. 지난해 90세로 영면에 든 보걸은 하버드대 교수 시절 아시아센터 소장을 지내며 동아시아와 미국의 관계를 연구했다. 그는 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을 일컬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고, 일본 정부의 군 위안부 역사 왜곡에 반대하는 등 급격한 우경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보걸은 이 책에서 “외부인이 조금 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역사를 검토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에 따르면 중일은 6세기 이래 현재까지 갈등과 협력을 거듭하며 교류를 통해 상대방의 성장을 견인해왔다. 고대 일본은 중국 승려를 통해 불교, 건축 등 다방면의 지식을 흡수했다. 근대에 와선 청일전쟁을 계기로 문호 개방에 소극적이던 중국이 일본을 근대화의 모델로 삼았다. 중일전쟁에 이어 냉전기간 양국은 대립했지만 경제 교류의 폭은 꾸준히 넓혔다. 특히 미중 데탕트 시대가 열린 1972년 이후 일본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는 등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중소분쟁을 계기로 소련에 맞서 중국, 일본, 미국이 공유해온 전략적 이해관계는 1991년 소련 붕괴로 사라졌다. 탈냉전 이후 군사력을 꾸준히 증강한 중일은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분쟁을 맞는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에 위협을 느낀 일본은 미중갈등 구도에서 미국에 밀착하는 양상이다. 이에 중국은 과거사를 내세워 일제로부터 침략 경험을 공유한 한국 등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이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가 주변국에 의해 과장됐다고 본다는 점이다. 저자는 “일본인들은 조상들이 나쁜 짓을 했다면 선천적으로 나빠서가 아니라 선택권이 거의 없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저자는 과거사에 대한 양국의 인식 전환을 제안하며 2007년 중일 정상 간 합의를 상기시킨다. 당시 이들은 양국 간 고위급 교류 확대와 더불어 다방면의 협력안을 제시했다. 신간 ‘보이지 않는 붉은 손’은 보걸의 시각과 대척점에 있다. 중국 공산당은 자본주의 세력을 분열시켜 사회주의를 퍼뜨리려는 이른바 ‘통일전선’ 공작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들과의 진정한 협력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이 2013년 조 바이든 당시 미 부통령의 아들 헌터의 사업을 암암리에 도우며 바이든을 포섭하려고 시도한 사실을 예로 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역점을 두는 일대일로 역시 경제위기에 몰린 빈국들을 끌어들여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포석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동아시아 외부 저자들의 상반된 대중(對中) 시선은 중국과 역사·지리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한국의 고민이 그만큼 깊어질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 분명한 건 중국 혹은 일본에 의해 동아시아 역내 질서가 불안정해질 때 한국의 번영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교훈일 것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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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 장미 쥔 여왕-21세기 스타가수… 초상화에 담긴 시대를 보다

    셰익스피어, 다윈, 뉴턴, 비틀스, 데이비드 호크니…. 500여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역사를 빛낸 인물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78점의 초상을 모은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 전문 미술관인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전시품이 국내에 소개되는 건 처음이다. 결혼을 거부하고 단독 통치를 한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는 권력자인 여왕을 신성한 존재로 부각하려는 의도가 담겼다. 이 작품은 1575년경 궁정과 대신들의 의뢰를 받아 궁정화가 니컬러스 힐리어드의 화실에서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왕이 쥐고 있는 붉은 장미는 가문을 상징하며, 불사조 모양의 보석은 ‘결혼하지 않은 여왕’을 뜻한다. 이는 엘리자베스 1세가 왕조를 계승해 지속시켜 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낸다. 아이작 뉴턴의 초상화는 실제 뉴턴이 사망할 때까지 소장한 작품이다. 당시 동료를 비롯해 각종 기관에서 뉴턴 초상화에 대한 수요가 많았고, 뉴턴은 기꺼이 그 대상이 돼 줬다. 여러 영국 국왕을 그린 화가 고드프리 넬러의 손에서 태어난 이 작품은 넬러와 뉴턴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시점에 그려졌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은 뉴턴의 천재성을 드러낸다. 모델이 되길 좋아했던 뉴턴이나 소설가 찰스 디킨스와 달리 찰스 다윈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초상화 속에서 정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다소 어색한 이유다. 이 초상화를 그린 존 콜리어는 다윈을 둘러싼 논쟁에서 그를 옹호했던 토머스 헉슬리의 사위다. 초상화는 1881년 제작된 작품을 다시 그린 것이다. 다윈의 장남이 초상화미술관에 이를 기증하며 보낸 서신에서 “모작으로서 원본을 능가한 작품”이라 평한 바 있다. 국립초상화미술관은 현재 30세로 ‘Shape of you’ 등 유명 곡을 쓰고 활동하는 가수 에드 시런의 초상을 전시하며 그가 지닌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2016년 사망한 이라크 출신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초상은 시시각각 변한다. 하디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을 만들고 여성 건축가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그의 얼굴은 액정표시장치(LCD) 화면에 나타나는데, 윤곽선은 그대로인 반면 하디드와 배경을 채운 색들은 매번 다르게 채워져 영원불멸하는 존재처럼 묘사됐다. 현대에 들어 초상은 그 방식과 역할에 혁신을 맞았다. 유명 동화 작가 루이스 캐럴은 사진 형식의 초상예술을 초기에 주창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다니던 대학의 학장 딸을 사진에 담았고, 훗날 이 소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썼다. 유명한 프랑스 군인이자 외교관이었던 슈발리에 데옹의 초상은 정체성을 탐색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그는 태어나 49년을 남자로 살았으며, 나머지 33년은 여자로 살았다. 초상은 그가 여자로 살 때 그렸다. 공적으로 남녀 양성으로 살았던 인물의 모습이 국립초상화미술관에 전시되기는 그가 처음이다. 누군가를 묘사하는 것 이상으로 초상은 시공간, 죽음을 초월해 실제 인물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양수미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각각의 작품들과 눈을 맞추고 강렬히 다가오는 인물을 발견하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8월 15일까지. 성인 9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 6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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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학 웹툰, 하루 15시간 그려도 매일 설렙니다”

    2012년, 대학 만화과를 갓 졸업한 젊은이가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성형학 세미나 현장에서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일이었다. 누군가 다가와 대뜸 “메디컬 일러스트도 그릴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성형외과 전문의라고 했다. 젊은이는 “그려본 적은 없지만, 그려보겠다”고 했다. 당찬 이 젊은이는 현재 네이버 웹툰 상위권을 장식하는 작가가 됐다. 2019년 12월 연재를 시작한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의 홍비치라 작가(32)다. 인천에 있는 작업실에서 4일 홍 작가를 만났다. 그는 최근 중증외상센터 1부를 마치고 연재 이후 첫 휴재에 들어갔다. 3주간 가족, 지인들과 휴식을 취한 것도 잠시. 그는 22일 시작하는 2부 연재를 앞두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10m² 정도 되는 작업실 곳곳에는 주인공 백강혁 그림과 참고자료인 책 ‘CIBA 원색도해의학총서’ 세트(정담) 등이 있었다. 자신이 의학 정보를 시각화하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불리는 데 대해 홍 작가는 “샛길로 빠졌지만 하고 싶은 일과 이어졌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만화가를 꿈꾼 그에게 23세에 들어온 7장의 인체 삽화 의뢰는 뜬금없었다. 당시 의학지식이 전무했기에 의뢰인에게 많은 조언을 듣고 1장당 100번 넘게 수정했다. 그에게는 우연처럼 찾아온 귀인이었다. 순정 만화체인 캐릭터와 지극히 현실적인 장기 그림이 어우러진 중증외상센터는 홍 작가의 정체성과 닮았다. 그는 메디컬 일러스트 일을 겸하며 2014년 로맨스물인 ‘카사노바의 키스’로 데뷔했다. ‘카사노바…’를 연재할 즈음 메디컬 일러스트 업체인 비치라코믹스를 창업했고, 2018년 로맨스물 ‘루나’를 연재했다. 그러다 2019년 한산이가 작가의 웹소설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를 읽고 웹툰으로 만든다는 소식에 자청했다. 일주일에 한 편을 그려내기 위해 그는 휴일도 없이 하루 15시간 이상 일한다고 했다. 가장 어려운 건 원작을 각색하는 것. “웹툰 한 회를 만들려면 1만5000자인 소설을 5000자로 압축해야 해요. 그 작업을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는 매일이 설렌다고 한다. 그는 “제 인생에 이렇게 많은 의사들과 함께 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제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그려냈을 때 성취감이 크다”며 “앞으로도 저만의 색깔로 사람들에게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인천=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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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놓고 범법행위라는데… K-다크히어로物 ‘사적복수’로 인기몰이

    “한 주 수고들 하셨습니다. 모범택시 타고 드라이브 한번 가셔야죠. 오후 10시 출발입니다.” 매주 금요일 밤, SBS 드라마 ‘모범택시’ 시청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정모’를 한다. 그들이 모범택시를 기다리는 이유는 화끈한 액션과 통쾌함 때문. 드라마가 답답한 현실의 탈출구라는 것이다. 최근 한국형 다크히어로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다크히어로물의 특징은 주인공이 자신의 행위가 불법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 모범택시에서는 “법 테두리 안에서 사라져야 좋은 거죠.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범죄가 되는 거니까”라는 강하나 검사(이솜)의 대사를 통해 김도기(이제훈) 등의 사적 복수가 범법행위임을 명확히 한다. 김도기 등은 범죄 집단에 잠입해 관련자들을 죽이거나 납치한 뒤 장기매매까지 시도한다. tvN ‘빈센조’는 더 적나라하다.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는 부제 하에 빈센조는 비리를 저지르는 바벨그룹뿐 아니라 바벨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자신도 악한 자로 규정한다. 다크히어로는 선량하게만 그려졌던 과거 히어로와 대비된다. 한국판 슈퍼히어로물로 각광받았던 KBS ‘각시탈’(2012년)에서 종로경찰서 형사 이강토(주원)는 일제에 맞서 싸우며 조선인에게 위로를 주는 인물이지만, 이름 없는 영웅의 운명을 택했다. 현실적인 캐릭터도 속속 등장했다. KBS ‘김과장’(2017년)에서 회계 부정의 대가인 김성룡(남궁민)은 악을 처단하며 개과천선하고, OCN ‘경이로운 소문’(2021년)에서 소문(조병규) 등은 생명을 연장하는 조건으로 악귀 사냥꾼인 카운터가 됐지만 진심으로 임무에 임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유일무이하고 무결한 히어로에 대한 숭배보다는 조금씩 결핍을 갖고 살아가는 일반인도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흐름이 강해졌다. 다크히어로물은 이에 더해 악을 빠르고 통쾌하게 처단하는 방법이 폭력이라는 현실을 꼬집는다. 빈센조 19회에서 “장한석(옥택연) 같은 인간을 징벌할 최선의 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차선의 법도 없고요. 그래서 변호사님의 차악을 따르는 거예요”라는 홍차영 변호사(전여빈)의 대사가 그렇다. 다만, 악을 처단하는 폭력적 방법에 무감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피해를 입은 약자들의 사건 이후 삶까지 조명한다는 점이 코리안 다크히어로물의 특징이라는 분석도 있다. 모범택시는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공분을 산 조두순 사건, 웹하드 양진호 회장 갑질 사건, 염전 노예 사건 등을 다룬 후 5회 말 히든 트랙에서 각 회차에 나온 피해자들이 서로 스쳐지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피해자들이 일상을 계속 이어가고 있으며 어디에나 피해자가 있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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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한국 전쟁의 참상 파헤친 여성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15일 21명의 여성이 유서를 쓰고 북한으로 향했다. 이들은 북한 주민들의 전쟁 피해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국제민주여성연맹 한국전쟁 조사위원회’ 소속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반(反)식민주의를 주창하며 만들어진 여성단체로, 6·25전쟁 당시 북한 지역을 조사한 첫 외부 조사단이었다. 저자는 그동안 활동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발자취를 추적했다. 21명의 여성 조사위원은 덴마크와 알제리, 아르헨티나, 중국 등 18개국에서 왔는데, 이 중 6명은 당시 소련, 동독 등 공산권 출신이었다. 이들은 열흘간 신의주, 평양 등 10여 개 도시를 조사했다. 중공군 참전 후 연합군의 전방위 폭격으로 인해 폐허 속 토굴을 파고 사는 주민들을 목격했다. 이들은 정당한 사유로 시작된 전쟁이라도 정밀폭격이 아닌 인구밀집지역에 대한 폭격은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매카시즘 등 반공주의로 인해 소련의 선전 팸플릿으로 폄하됐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이 책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제3세계 여성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자 한 이들을 통해 냉전사와 여성주의, 평화운동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조사위원들은 현장 조사 때 “전쟁이 언제 끝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들이 한반도를 방문한 지 70년이 지난 현재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이 안타깝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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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족도 올라간 온라인 축제… 코로나 끝나도 계속될듯

    지겨울 대로 지겨워진 문장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인해 본 행사는 온라인으로 대체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부터 각종 축제들이 비대면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오프라인 행사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한동안 “온라인 축제가 무슨 축제냐”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사진 전시나 영상 스트리밍 위주의 온라인 축제는 체험형, 쌍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콘텐츠 소비자들도 호응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된 뒤에도 온라인 축제는 이어질까.○ 코로나 이후 온라인 축제의 미래 서울 영등포구는 지난해 벚꽃축제를 전면 취소했다. 올해까지 축제를 중단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영등포구는 추첨을 통한 오프라인 축제와 더불어 온라인 벚꽃축제를 기획했다. 이 축제는 ‘참여형’ 특색이 뚜렷했다. 온라인 봄꽃 축제장에 입장하면 미션을 수행하거나 먼저 접속한 이의 메시지를 구경하는 식이다. 26일 기준 조회 수가 약 62만 회에 달할 정도로 입소문을 탔다. 영등포구는 코로나19가 끝난 뒤에도 온라인 벚꽃축제를 이어갈 계획이다. 박정호 영등포문화재단 팀장은 “올해 오프라인 축제 대신 온라인 축제에 참여하는 이들의 높은 만족도를 확인했다”며 “향후 온라인 축제 비중이 줄 순 있지만 콘텐츠 자체는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이어 “온라인 축제가 애피타이저가 돼 오프라인 축제 참여를 유도하거나, 오프라인 축제 참석자들이 온라인으로 다시 모이는 등 두 개의 축제가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련 업계도 온라인 축제의 지속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VFX(시각특수효과) 업체인 엔진비주얼웨이브의 송재원 R&D연구소장은 “그간 실제 효용을 확신할 수 없어 지지부진하게 진행된 온라인 축제가 이번 코로나 사태로 검증된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 온라인 접속자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화된 콘텐츠와 광고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일부 영역에서 온라인 축제 시장은 확산세였다. 엔진비주얼웨이브가 2019년 11월 제작한 멜론 뮤직어워드(MMA)의 증강현실 콘텐츠는 오프라인 페스티벌 참석자가 느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례로 방탄소년단(BTS)이 ‘소우주’를 부를 때면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공연하는 듯한 컴퓨터그래픽(CG) 연출이 더해졌다. 세계 팬들은 “색다른 감각을 선물 받았다”는 등의 호평을 내놓았다.○젊은층 놀이문화·한류와의 시너지 기대 MZ세대의 놀이문화가 변화하는 것도 온라인 축제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XR(eXtended Reality·확장현실) 업계 관계자는 “10, 20대들에게 맞는 온라인 축제가 있다”며 “그들에게는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게 축제가 아닐 수 있다. 이 갈증을 해결하는 게 우리의 숙제”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메타버스(Meta+Universe·3차원 가상세계)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 가상 아바타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가상세계에서 서비스와 재화의 교환을 즐긴다. 네이버 계열사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국내 대표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축제의 면모를 상상하게 한다. 이 플랫폼은 사용자의 90% 이상이 10대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가상세계에서 전시회를 열거나 여행을 다닌다. 현재 세계 가입자가 2억 명을 돌파하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축제의 미래는 한류의 글로벌화와도 맞닿아 있다. CJ ENM은 지난해 6월 한류 콘서트 ‘케이콘’의 온라인 버전 ‘케이콘택트’를 내놓았다. 일본, 미국 등 해외 현지에서 팬들과 소통한 케이콘은 온라인을 통해 팬과의 일대일 통화와 같이 다양한 소통방식을 취하고 있다. 김동현 CJ ENM 컨벤션라이브사업부 국장은 “지역형 콘서트로 그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코로나 발발로 인해 시공간에서 자유로운 콘서트 모델이 구체화됐다”며 “오프라인의 경우 3, 4일에 약 10만 명이 한류를 즐길 수 있다면 온라인에선 훨씬 많은 팬을 확보할 수 있어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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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달 반 걸린 금가프라자, 배우들 디테일까지 고려”

    tvN 드라마 ‘빈센조’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마 한두 개가 아닐 테다. 다만 분명한 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에 주연인 빈센조 까사노(송중기) 홍차영(전여빈) 장준우(옥택연)만 있지는 않다는 거다. 그 어딘가 ‘금가프라자’의 상인들이 있다. 금가프라자는 드라마의 기둥이었다.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가 애초 한국행을 택한 건 금가프라자 지하에 있는 금괴를 찾기 위해서였다. 재건축을 빌미로 건물을 무너뜨릴 계획이었으나 건물 소유권을 바벨그룹에 빼앗기게 된다. 그 후 바벨의 비리들을 알게 되면서 전면전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빈센조와 협력하는 금가프라자 상인들의 개성과 능력이 빛을 발한다.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송중기가 “우리 드라마의 주인공은 금가프라자 사람들”이라고 말한 이유다. 드라마의 정체성을 품은 이곳 세트장은 한지선 미술감독이 가장 공들인 장소다. 그는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톡톡 튀기에 세트장은 티 나지 않게 자연스러웠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가 해석한 금가프라자는 낡아 보이긴 해도 상인들이 소중히 다뤘을 것 같은 장소였다. 한 미술감독은 프라자 내 빈센조와 홍차영의 근무지인 법무법인 ‘지푸라기’를 정돈된 분위기로 연출하려 노력했다. “통상 서류가 너저분하게 널린 작은 상가의 로펌 느낌이 아니라 애정을 갖고 가꾼 곳이라 생각했다”는 것. 디테일한 해석은 공간별로 확연한 차이를 만들었다. 프라자 내 제일세탁소에는 빛바랜 네임스티커, 이탈리아 식당 아르노에는 고가 와인들, 밀실에는 실제 무게의 8분의 1로 제작된 금괴 소품을 각각 준비했다. 댄스교습소 고스텝의 경우 래리강을 연기하는 김설진 배우가 현대무용가인 걸 감안해 그의 물건을 소품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금가프라자는 단순히 오밀조밀한 생활공간이 아니다. 강제퇴거 용역과 상인들이 대치하거나 킬러와 빈센조가 추격전을 벌이는 등 신경 쓸 구석이 많았다. 한 미술감독은 액션신 등 동선을 고려해 복도를 일반적인 상가보다 넓게 설계했다. 그는 “약 6600m² 규모의 스튜디오였기에 제작 기간만 두 달 반이 걸렸다”고 말했다. 빈센조의 등장을 알리는 라이터도 그가 만들었다. 한 미술감독은 작가 등과 상의해 빈센조가 마피아임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까사노 가문 문양을 라이터에 새겼다. 그는 “저작권 문제로 칼, 방패, 독수리 날개 등 여러 가문의 상징을 섞어 만든 문양”이라며 “다만 빈센조가 한국에서 사용하는 라이터에는 악마 문양을 넣어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는 드라마 부제를 부각했다”고 설명했다. 세심하고 대담한 공간 연출은 빈센조가 호평을 받는 데 큰 몫을 했다. 이 드라마 연출을 맡은 김희원 감독은 영상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돈꽃’(2017년)과 ‘왕이 된 남자’(2019년)의 메가폰도 잡았다. 한 미술감독은 김 감독과 함께 두 작품 제작에 참여해 영상미의 숨은 주역으로 꼽힌다. 그는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욕심이 난다.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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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엄사 목조삼신불좌상 국보 지정

    전남 구례 화엄사의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이 국보로 지정된다.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의 삼신불(三身佛)로 구성된 유일한 조선시대 불상으로 앞서 2008년 보물로 지정됐다. 17세기 불교 사상과 미술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불상들은 모두 3m가 넘는 대형이다. 1635년(인조 13년) 유명 조각승이던 청헌과 응원, 인균 등이 제작했다. 화려한 연꽃 대좌(臺座)와 팔각형 대좌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있는 불상은 굵은 선으로 중후한 느낌을 살렸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최근 불상에서 발견된 복장 유물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화엄사를 재건하면서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삼신불을 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때 왕실 인사와 승려 580명 등 총 1320명이 시주에 참여했다. 문화재청은 “17세기 제작된 목조불상 중 가장 크고, 불교 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중요한 문화재”라며 “예술성 측면에서도 조선 후기 불상 중 단연 돋보인다”고 평가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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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겸재 단원 모네 샤갈… ‘이건희 컬렉션’ 올여름 시민에 공개전시

    이건희 26兆 유산의 60% 내놓는다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이 26조 원에 달하는 유산 중 60%를 사회에 기부하거나 세금으로 납부한다. 상속세 12조 원을 포함해 의료 기부 1조 원,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포함해 총 15조∼16조 원에 달하는 규모다. 28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은 삼성이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거듭 강조한 고인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환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며 기부 계획을 밝혔다. 1조 원 기부는 한국의 의료 발전에 쓰인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한국 최초의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등에 7000억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3000억 원은 소아암과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개인 소장 미술품 2만3000여 점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한다. 국보 14건과 보물 46건, 클로드 모네와 파블로 피카소, 김환기, 박수근 등 국내외 작가의 걸작이 포함됐다. 미술계 관계자는 “실제 경매에 들어가면 5조 원이 넘을 것”이라며 “값을 매길 수 없는 진귀한 컬렉션”이라고 평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예술성, 사료적 가치가 높은 주요 예술품을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한 것은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역대급 수준이다. 6월부터 순차적으로 전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이 내야 할 상속세는 12조 원대로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이달부터 5년 동안 6차례에 걸쳐 낼 계획이다. 상속세 역시 세계적으로도 역대 최대 수준이다. 유족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유족은 지분을 지키면서 상속세를 내느라 제2금융권 신용대출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수조 원대의 사회 환원에 나선 것은 이 회장의 뜻을 잇기 위해서라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사회가 기대하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겸재 단원 모네 샤갈… ‘이건희 컬렉션’ 올여름 시민에 공개전시미술품 2만3000점 대규모 기증국보-보물 60건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립현대미술관, 모네 작품 첫 소장지역미술관 5곳-서울대에도 기증, 감정액 2조 추정… 정부도 “역대급”삼성이 기증하는 2만3000여 점의 소장품은 양과 질 모두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선 삼성 측과 기증 논의를 시작한 올 초까지만 해도 이 정도 규모의 컬렉션이 오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귀속될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약 2만1600점은 지금까지 기증된 유물(약 5만 점)의 43%에 달하는 규모다. 이 중 1급 유물로 통하는 국가지정문화재가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다. 이번 기증 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의 최대 기증은 고 동원 이홍근 선생이 1980, 81년에 내놓은 4941점이었다. 문화재계에선 박물관 기증품 중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와 단원 김홍도(1745∼?)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를 첫손에 꼽는 이가 많다. 조선 회화사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그림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문화재계 인사는 “겸재와 단원의 그림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이들의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며 “기증품들은 이런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영조 27년(1751년) 겸재가 그린 인왕제색도는 가로 138.2cm, 세로 79.2cm의 대작으로, 인왕산에 비가 내린 후 안개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담았다. 거대한 암벽을 그릴 때 아래로 붓을 내리긋는 대담한 필치가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중국 산수화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의 산수를 직접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추성부도는 단원이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의 시를 읽고 그 감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단원 그림의 상당수가 작자나 연도 미상인 데 반해 이 그림은 단원이 1805년 동지 사흘 후 그렸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이수미 국립광주박물관장은 “단원의 말년 작으로 그의 쓸쓸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시적인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계 일각에선 기증품 수량과 질을 감안할 때 박물관에 별도의 전시실을 두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박물관 관계자는 “별도의 기증관을 만들 계획은 아직 없다”며 “기존의 주제별 상설전시관에 기증품을 분산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은 두 그림을 포함해 이건희 컬렉션 중 대표작 40, 50점을 추려서 올 6월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 이어 내년 10월경 전시품을 수백 점으로 늘려 이건희 컬렉션 명품전(가칭)을 개최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클로드 모네, 마르크 샤갈 등 국내외 거장의 근현대 미술품 1400여 점이 기증된다. 강렬한 붉은색 배경에 울부짖는 듯한 황소가 힘찬 기운을 뿜는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는 작가가 헤어진 가족과 곧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시기에 그려 당당한 기세가 돋보인다. 김환기가 한국 전통미에 주목하며 그린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소박한 정취를 풍기는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년)도 포함됐다. 클로드 모네의 대표작인 수련 연작 중 ‘수련이 있는 연못’(1919∼1920년)도 눈길을 끈다.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모네가 그린 대작(가로 2m 세로 1m)으로 미술계에선 400억 원대의 가치를 지녔다는 추정이 나온다. 이로써 미술관은 이중섭의 황소와 모네 그림을 처음 소장하게 됐다. 미술관은 올해 8월 서울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명품전’(가제)을 시작으로 9월 과천관, 내년 청주관에서 전시를 연다. 이 밖에 삼성은 대구미술관, 제주 이중섭미술관, 강원 박수근미술관 등 지역 미술관 5곳과 서울대에도 143점을 기증하기로 했다. “수집 어렵던 근대미술품 대거 보강… 엄청난 선물”전문가 “희소가치 높은 작품들로 박물관-미술관 도약 계기 기대”‘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의 수준을 크게 높이게 됐다. 박물관은 보유 문화재의 스펙트럼을 넓히게 됐고, 미술관은 희소가치가 높고 수집하기 어려웠던 근대미술 작품을 대거 보강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진우 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은 “발굴 매장 문화재가 대부분이었는데 우리 역사 시대 대부분을 아우르는 회화, 공예 등 문화재를 고루 소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 작가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거장의 작품을 상설전으로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우리 국민의 문화 향유권이 한층 높아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는 “세계 미술계의 시간표가 어떻게 짜여졌는지 항상 볼 수 있어야 예술적 안목을 키워 한국 미술을 국제화할 수 있다”며 “대단히 중요한 작품들이 기증돼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삼성이 ‘한국의 메디치가’에 비견될 정도의 역할을 해 한국 박물관과 미술관이 큰 도약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단숨에 마련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미술계 인사들은 이번 기증이 이뤄진 배경에는 이 회장이 일찌감치 기증을 염두에 두고 걸출한 미술품들을 수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기도 한다. 이 회장은 과거 일본 오쿠라호텔의 뒷마당에 있던 조선 왕조 왕세자의 공부방인 자선당의 기단을 구입해 정부에 기증하기도 했다. 1997년 펴낸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동아일보사)에서 국립박물관을 관람한 경험을 전하며 “상당한 양의 빛나는 우리 문화재가 아직도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실정이다. 이것들을 어떻게든 모아서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손효림 기자 / 김상운 sukim@donga.com·김태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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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익장 배우들 활약에… 접었던 꿈, 다시 펼치는 실버세대

    8일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받는 이는 tvN ‘나빌레라’ 제작진, 보낸 이는 자신이 60대라고 했다. 이 60대는 가지런한 글씨로 편지 한 장에 자신의 일상을 고백했다. 그는 이렇게 전했다. “최근에 음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예순을 훌쩍 넘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서야 난생처음 피아노, 성악을 배우다 보니 여간 힘들지 않더군요. 너무 늦었단 생각에 포기해야 하나 갈등하던 중에 나빌레라를 봤습니다. 저도 모르게 박인환 배우님에게 동화돼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보기로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예전 같지 않은 체력과 사회에서 소외되어 가는 듯한 기분 때문에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용기 내 도전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년 배우들의 활약이 중장년층의 생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들은 70세에 발레에 도전하는 심덕출(박인환)을 보고 마음 한구석에 접어놨던 꿈을 꺼낸다. 74세의 나이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을 보며 삶을 버틸 용기를 얻는다. ‘내리막길 인생’으로 치부됐던 이들에게 노년 배우들의 발자취가 희망으로 비치는 것이다. 27일 중장년층이 주를 이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59세 남성이라고 밝힌 이는 “나빌레라를 보다 학창 시절 발레를 전공한 아내가 환갑을 1년 앞두고 다시 발레학원에 등록했다. 참 자랑스럽다”고 썼다. 드라마를 연출한 한동화 PD(49)는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중장년층에게 가벼운 응원보다는 깊은 감동으로 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70년이란 세월을 보낸 ‘진짜 덕출’이 필요했고, 박인환 나문희 선생님 덕에 주름 하나, 대사 한마디로도 진정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나리’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중장년층 관객들이 많은 것 또한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느끼기 위한 이유가 크다. 지난주 미나리를 관람한 김용상 씨(65)는 “한국에선 이미 ‘국민배우’ 반열에 오른 윤여정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 뒤늦게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기에 궁금해서 영화를 봤다”며 “지금까지 봐 온 윤여정의 연기 중 가장 진짜 같았다. 시간과 연륜이 헛되이 지나가는 게 아니라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생각에 위안이 컸다”고 밝혔다. 최근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는 최모 씨(66·여)도 “전공이 공학이었는데 젊을 때 한 일은 비서였다. 같은 여성으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꾸준히 도전했고, 그걸로 상까지 받은 윤여정이 ‘멋진 동년배’로 보였다. 죽을 날 받아놓은 양 심심하게 살아오던 우리에게 희망이 됐다”고 말했다. 미나리를 향한 중장년층의 관심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28일 CGV 데이터전략팀에 따르면 미나리는 타 영화 대비 50대 이상 예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미나리가 개봉한 지난달 3일부터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인 25일까지 미나리의 50대 이상 예매율은 26%였다. 같은 기간 미나리를 제외한 다른 영화들의 50대 이상 예매 관객은 15%였다. 타 영화에 비해 50대 이상 관객 비중이 11%포인트나 높은 것.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에는 미나리 예매 관객의 50대 이상 비율이 26%에서 27%로 1%포인트 소폭 상승했다. 황재현 CGV 커뮤니케이션팀장은 “50대 이상은 당일 현장 구매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들의 예매율이 전체의 26%에 달하는 건 매우 높은 수치”라고 설명했다.김태언 beborn@donga.com·김재희 기자}

    •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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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팔거산성서 7세기초 신라 목간 11점 첫 출토

    대구 팔거산성에서 7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목간(木簡·나무막대로 제작한 문서) 11점이 출토됐다. 대구에서 신라시대 목간이 나온 건 처음이다. 팔거산성이 신라시대 행정·군사거점 중 하나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다. 28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화랑문화재연구원이 최근 팔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 11점에 대해 적외선 사진촬영을 실시한 결과 11점 중 7점에서 글자가 발견됐다. 1호 목간에선 ‘壬戌年’(임술년), 6호 및 7호 목간에서는 ‘丙寅年’(병인년) 글자가 각각 확인됐다. 주변 유물과 문헌을 검토한 결과 임술년은 602년, 병인년은 606년으로 각각 추정됐다. 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이른바 ‘간지(干支) 목간’은 유적 연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돼 의미가 적지 않다. 보리와 벼, 콩과 같은 곡식 이름도 목간에서 확인됐다. 이는 조세 등 물자가 팔거산성에 집중되었음을 보여주는 근거다. 신라시대 왕경(王京)인 경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팔거산성에 군사기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팔거산성은 금호강과 낙동강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7세기 초반 신라 왕경 서쪽을 방어하기 위한 전초기지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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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겸재 피카소 모네…이건희 컬렉션 6월에 볼수있다

    삼성이 이번에 기증하기로 한 2만3000여 점의 소장품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 수 있는 컬렉션이라는 게 문화계의 시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귀속될 소장품 약 2만 점은 지금까지 기증된 유물(약 5만여 점)의 43%에 달하는 규모다. 박물관 소장 유물(43만여 점) 기준으로는 전체의 약 5%에 이르는 수량이다. 이 중 1급 유물로 통하는 국가지정문화재가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문화재들이지만 박물관 안팎에선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와 단원 김홍도(1745~?)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를 첫 손에 꼽는 이들이 많다. 조선 회화사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그림 중에서도 대표작이자 대작으로 통하는 문화재들이기 때문이다. 문화재계 인사는 “겸재와 단원의 그림들이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한 작품이 거의 없었다”며 “두 작품은 이런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걸작들”이라고 평가했다. 영조 27년(1751년) 겸재가 그린 인왕제색도는 가로 138.2㎝, 세로 79.2㎝의 대작으로, 인왕산에 비가 내린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담았다. 거대한 암벽을 그릴 때 아래로 붓을 내리긋는 대담한 필치가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중국의 산수화를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조선의 산수를 직접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단원이 그린 추성부도는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의 시를 읽고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을밤 책을 읽다가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는 시를 그림 왼쪽에 행서체로 썼다. 단원 그림 상당수가 작자나 연도 미상인데 반해 이 그림은 단원이 1805년 동지 사흘 후 그렸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이수미 국립광주박물관장은 “단원의 말년작으로 그의 쓸쓸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시적인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계 일각에선 기증품 수량과 질을 감안할 때 박물관에 별도 기증관을 세우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박물관 관계자는 “현재로선 별도의 기증관을 세울 계획은 없다. 기존 주제별 상설전시관에 기증품을 분산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은 두 그림을 포함해 이건희 회장 컬렉션 대표작 40, 50점을 추려서 올 6월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 이어 전시품을 수백 점으로 늘려 내년 10월경 명품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으로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등 국내외 거장들의 근현대미술 1600여 점이 기증된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년)을 비롯해 강렬한 붉은 색 배경에 울부짖는 듯한 황소가 힘찬 기운을 뿜어내는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가 포함됐다. 끌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9~1920)은 대표작인 수련 연작 가운데 하나다. 가로로 긴 화폭에 연못의 수면과 수련만 담았고, 수면에 반짝이는 빛을 묘사했다. 이로써 미술관은 이중섭의 황소, 모네의 그림을 처음 소장하게 됐다.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년)은 신화 속 존재인 켄타우로스들이 복부 구멍에서 아기들을 꺼내는 장면을 묘사했다. 전교한 기술과 균형감 있는 구도가 돋보인다. 삼성 측은 대구미술관, 제주 이중섭미술관, 강원 박수근미술관 등 지역 미술관 5곳과 서울대에도 143점을 기증하기로 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김태언 기자beborn@donga.com}

    •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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