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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이 시작되기 전 ‘기괴한’ e메일을 받았어요. ‘고소공포증이 있습니까?’ ‘잠수가 가능합니까?’ 나 노래하러 가는 게 아니었나…. 처음엔 웃음만 나왔죠.”(소프라노 임선혜) 하이든의 오라토리오(종교적 음악극) ‘천지창조’에 출연하는 임선혜(사진)는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20일 열린 간담회에서 독특한 기억을 떠올렸다. ‘천지창조’가 청각을 넘어 서커스와 대형 조명쇼를 연상시키는 시각의 향연으로 펼쳐진다. 인천 연수구 아트센터 인천이 설립 후 첫 시즌 개막 공연으로 3월 1, 2일 오후 5시 선보이는 ‘천지창조’는 스페인 카탈루냐의 비주얼 아트그룹 ‘라 푸라 델스 바우스’의 작품이다.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무대 위의 반투명 막에는 혼돈을 묘사하는 조명과 함께 ‘태초에 우주는 한 점으로 뭉쳐 있었다’ ‘혼돈’ 등의 문구가 투사된다. 성서의 창세기와 과학이 묘사하는 우주의 탄생을 함께 아우르는 콘셉트다. 이윽고 ‘빛이 있으라’는 외침과 함께 환하게 조명이 터지며 막이 열린다. 36개의 풍선 및 같은 숫자의 태블릿PC로 표현한 문자와 조형 속에 독창자들은 때로 공중에 높이 매달려, 때로는 수조 속을 첨벙이며 신의 의지와 인간의 탄생을 노래한다. 두 시간 가까운 공연 내내 눈이 쉴 틈이 없다. 독창적 무대를 연출한 카를로스 파드리사는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 연출가로도 유명하다. 이 공연을 ‘창조’한 라 푸라 델스 바우스는 40년 전인 1979년 카탈루냐의 몰라에서 탄생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무대효과로 공연자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다. 푸치니 ‘투란도트’, 베르디 ‘아이다’ 등 오페라뿐 아니라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등 기악음악도 무대에 올리며 전 세계 극장과 베로나 원형경기장 등 야외무대까지 종횡무진하고 있다. 성경의 창세기와 밀턴의 ‘실낙원’을 기본 텍스트로 세상의 시작과 신의 의지를 찬미한 하이든의 ‘천지창조’는 독창자들이 처음에는 세 명의 대천사로, 후반부에는 아담과 이브로 출연한다. 웅장한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귀로 체험하는 최고의 흥분을 전한다. 합창단은 바다를 표류하는 ‘난민’으로 세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구원에 이르게 된다. 라 푸라 델스 바우스는 2017년 액상프로방스에서 이 ‘천지창조’를 처음 선보였고, 독일 함부르크 엘필하르모니홀과 프랑스 필하모니 드 파리 등이 설립 후 첫 개막 시즌에 이 작품을 초청했다. 임선혜는 2003년 낙소스 레이블로 발매된 ‘천지창조’ 음반에 참여해 그래머폰 매거진으로부터 ‘독창자의 기량과 목소리의 젊음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e메일에 어떻게 답했을까? “나는 새로운 시도에 흥미가 있고 심지어 재미있어하는 사람이다. 연출력으로 나를 설득시켜 달라, 그렇게 답신을 보냈죠. 연출진의 모험심, 반짝이는 눈빛, 그리고 음악에 대한 진정성에 매료됐어요!” 가수가 돋보이는 연출도 아니고, 어떤 자세들은 정말 불편했지만 출연진이 연출진의 제안에 최대한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는 웃으며 회상했다. “연출가 카를로스 파드리사가 저와 함께 한국에도 가져가고 싶다고 했는데, 결국 한국 콘서트홀의 개관 작품으로 참여하게 되었네요. 파드리사도 기뻐했어요!” 연주에는 김성진이 지휘하는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과 그란데 오페라합창단, 베이스바리톤 토마스 타츨과 테너 로빈 트리칠러가 참여한다. 김성진 지휘자는 “하이든의 작품 자체가 정밀하게 드러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2만∼10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시벨리우스 스페셜’ 콘서트 이틀째 연주가 열린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앞에는 흰 눈이 깔렸다. 시벨리우스는 이날 연주된 교향곡 6번 서두에 대해 ‘첫눈의 냄새를 생각나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는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는 시벨리우스의 관현악곡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자 이날 첫 곡으로 연주된 교향시 ‘핀란디아’에서 가장 개성적인 해석을 드러냈다. 도입부 두 번째 주제에서 목관과 현의 각 음마다 분명한 강세를 주었고, 목관으로 제시된 ‘찬가’ 주제를 현이 받는 부분에서는 볼륨을 줄여 웅대한 울림보다 실내악적인 간명한 합주를 부각시켰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협연한 양인모 역시 간결하고 날렵한 시벨리우스를 선보였다. 악장마다 템포를 다소 당겨 잡았고, 2악장 주선율을 비롯해 느리고 ‘깊다’고 해석돼 온 선율들도 활 전체를 써서 빠르게 그었다. 대부분의 연주자가 활 속도를 늦추고 깊이 누르면서 풍성한 비브라토로 북방의 고독감을 강조하는 데서 살짝 비켜 나왔다. ‘시벨리우스적인 시벨리우스’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는 면모였다. 만족할 만큼 큰 볼륨은 아니었지만 솔로부가 관현악에 묻혀 버리는 부분은 없었다. 반대로 얘기하면, 묻히지는 않았지만 만족할 만한 음량은 아니었다. 콘서트 후반부, 시벨리우스 만년의 교향곡인 6번과 7번이 진행되면서 벤스케는 자신의 진면모에 한층 다가갔다. 6번의 첫 악장에서 이 곡 특유의 운동성이 충분히 강조되지 않았지만 곡이 진행될수록 앙상블은 차갑게 정밀해졌고, 실내악풍의 정교함이 부각된 현 합주에 관악이 광대한 배경화를 더해주는 멋진 순간들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미네소타 교향악단 악장이자 벤스케의 부인인 에린 키프가 악장석에 앉아 농밀한 합주를 이끌었다. 6번 교향곡 4악장 말미의 정교한 세레나데풍 합주의 아름다움은 오래 잊히지 않을 순간이었다. 7번 교향곡 후반부에 춤곡 주제가 들어올 때 순간적으로 현과 금관이 맞아들지 않았지만 이어지는 투명한 앙상블과 목관의 명인기는 다시금 청중을 두근거리며 숨죽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거대한 혼란의 음형(音型)이 울려 퍼진 뒤 1악장의 주요 주제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 주제는 거부하는 듯한 저음 현악기의 선율에 밀려 사라진다. 이어 2악장, 3악장의 주제들도 차례로 ‘거절된다’. 앞 악장의 주제들이 어떤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물러난다는 느낌이 또렷하다. 작곡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베토벤이 남긴 이 작품의 스케치를 보면 모든 것이 확연해진다. 초안에서는 저음현 대신 바리톤 독창이 ‘가사’를 가진 노래로 각 악장의 주제에 응답한다. 1악장 주제가 나온 뒤, 바리톤은 ‘지금 필요한 것은 이보다 더 밝은 것’이라며 퇴짜를 놓는다. 2악장 주제 다음엔 ‘생기가 더 있을 뿐 더 낫지는 않소’, 3악장 아다지오 선율 뒤엔 ‘너무 달콤하오, 더 활기찬 것이 필요하오’라고 선언한다. 베토벤이 남긴 아홉 곡의 교향곡을 분석하고 해설한 책은 여럿이다. 이 책이 탁월한 부분은 베토벤이 남긴 스케치들을 추적해 각각의 곡이 착상되고 발전되며 최종 결과물로 탄생되는 점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점이다. 교향곡 3번 ‘영웅’의 경우 우리는 힘차게 두 번 울리는 E플랫장조 화음과 함께 빠르고 당당한 3박자로 이 곡을 맞이한다. 그러나 초안에는 느린 4박자 도입부가 있었다. 이 부분을 떼어버리면서 이 작품은 앞의 두 교향곡과 전혀 다른 면모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이 각 교향곡의 성립 과정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5번 교향곡은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베토벤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말했다는 비서 신들러의 전언이 의심을 받으면서 이 제목은 잊혀져 왔다. 저자는 비슷한 시기에 ‘운명의 목을 꽉 움켜쥐겠다’고 쓴 베토벤의 편지를 인용하며 신들러의 전언에 신빙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다. 6번 ‘전원’ 교향곡 작업 즈음에 지인들에게 거듭 밝힌 자연에의 찬미는 이 ‘음악 성자’의 내면을 한층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일반적인 음악 애호가보다는 베토벤을 한층 구조적 분석적으로 이해하고픈 열광적 애호가부터 그의 작품을 연주하려 준비하는 음악인들에게 더 도움이 될 한 권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테너 마르셀로 알바레스(사진)의 목소리는 청량하고 후련하다. 폰키엘리 오페라 ‘라 조콘다’의 아리아 ‘하늘과 바다’를 듣고 있으면 하늘과 바다의 푸른빛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등 세계 톱 오페라 무대를 누벼온 그가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19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달 27일로 57번째 생일을 맞는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데뷔 초기 리리코(서정적) 테너로 알려졌다가 더 힘이 실린 ‘리리코 스핀토’ 역할로 레퍼토리를 넓혔고 이어 ‘나쁜 남자’ 역들을 포함한 드라마티코(극적) 테너의 레퍼토리를 정복하고 있습니다. 계속 영역을 확장해 왔는데요. “저는 제 자신만의 감정을 살리는 방식으로 노래해 왔고, 대중이 반응을 보여주셨어요. 내년에 한층 무거운 베르디 ‘돈 카를로’ 역에 데뷔합니다. 앞으로 ‘드라마티코’의 상징과 같은 베르디 ‘오텔로’ 타이틀 롤을 맡고 싶습니다.” ―데뷔 전 이력이 흥미롭습니다. 30세 이전에는 오페라를 거의 몰랐다고 들었습니다. “젊어서는 가구를 만들었고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에 심취했습니다.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오페라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유명한 테너가 고향 코르도바를 방문한다기에 그의 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가능성을 인정받았어요. 이탈리아 노래는 몰라서 군가를 불렀죠.” 이후 그는 이탈리아의 명테너 주세페 디스테파노 앞에서 오디션을 봤고 디스테파노는 앞장서서 그의 앞길을 열어주었다. “‘내 젊은 모습이 생각난다. 음악적 직관력이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가 오페라 극장을 넘어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 데는 2008년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와 함께한 앨범 ‘Duetto’의 히트가 큰 역할을 했다. 리치트라는 그로부터 3년 뒤 오토바이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테너 두 명이 함께하기에,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지만 일단 시작하자 매우 쉽고 행복하게 녹음이 진행되었죠. 짧은 인연이었지만 리치트라는 재미있고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오페라 배역으로 그는 프랑스 혁명기의 열혈시인을 그린 조르다노의 ‘앙드레아 셰니에’를 꼽았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푸치니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처럼 자주 맡아온 역할의 노래 외에 찬도나이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 나야’ 같은 다소 ‘두껍고 쥐어짜는’ 극적인 노래도 선보인다. “찬도나이의 아리아는 로미오가 죽기 전 강렬하게 내면의 고통을 드러내는 노래입니다. 극적 성격만 내세우기보다는 주인공의 절망과 외침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중남미 출신 테너 붐이 일었다. 1960년대생인 라몬 바르가스와 호세 쿠라는 한국 무대에 섰고, 1970년대생인 롤란도 비야손과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 어떻게 중남미는 이렇게 많은 명테너를 배출했을까. “오늘날 세계는 모든 것이 빨라졌죠. 하지만 중남미에서는 차분하게, 천천히 일을 처리하는 전통이 남아 있어요. 그런 점이 좋은 가수들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번 프로그램에 스페인어 노래는 없다. “그래도 제 모국어로 된 깜짝 선물이 있을 겁니다. 대중이 큰 재미를 느낄 곡으로 골라보겠습니다!” 이번 공연은 카말 칸이 지휘하는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반주한다. 소프라노 강혜정이 푸치니 ‘라보엠’의 이중창 등에서 함께 무대에 선다. 7만∼23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2012년 2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1부 순서가 끝난 줄 알았던 관객들은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어린 소녀와 다시 무대에 나타나자 놀라움의 환성을 보냈다. ‘깜짝 협연자’였던 열두 살 피아니스트는 라벨의 협주곡 1악장을 협연해 갈채를 받았다. 지난해 7월, 18세의 그는 평창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솔로무대로 음악적 성장을 과시했다. 피아니스트 임주희(19)였다. 그는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정명훈 지휘로 23일 열리는 ‘원 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다. 그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만났다. ―이번에 협연할 슈만 협주곡은 낭만 협주곡의 정수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슈만이 부인 클라라를 염두에 두고 쓴 곡으로,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하고 풍부한 인간미가 느껴지죠. 슈만이 제일 행복했던 시기가 나타나 있다고 생각해요.” 임주희는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과 2014년 두 차례 협연했고 2017년에도 그가 지휘하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세 차례 협연했다. “정 선생님은 연주자에 대한 믿음이 강합니다. 배려가 연주의 인간미로 배어나오는 지휘자라고 생각해요.” 원 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는 롯데문화재단이 18∼28세 연주자들로 구성한 악단. 임주희는 “동년배 연주자들과의 협연은 처음”이라며 “열정과 도전 정신은 기성 악단보다 강하지 않을까요?”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콘서트 후반부에는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러시아 거장 게르기예프와는 열두 살 때 협연하기 이전부터 인연이 깊었죠? “아홉 살 때 제 연주 DVD를 보시고 이듬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 페스티벌에 협연자로 초청하셨어요(게르기예프는 예정보다 두 차례나 더 임주희와 협연했다). 요즘도 늘 제 근황을 물어보세요.” 그는 초등학교 때 서울대 장형준 교수에게서 배웠고 졸업 후 홈스쿨링을 하며 신수정, 강충모를 사사하고 있다. “음악과 함께 있으니 혼자였던 적은 없었어요. 훌륭한 선생님들께 수업을 받으면서 스스로 깊이 있게 공부하는 법도 배웠으니 만족해요.” 그는 곧 미국에 유학할 예정이다. 그의 SNS 친구들이 감탄하는 점 하나가 그림 실력. 피아니스트 손열음을 비롯해 지인들의 초상화들을 공개해 왔다. “휴대전화 앱에서 손가락으로 그려요. 음악가 등 관심 가는 사람의 사진을 찾아보고 캐릭터와 맞는 사진을 골라 그리죠.” 다른 기회에 연주하고 싶은 작품이 있는지 물었다. “열 살 때 프랑스 안시 페스티벌에서 카롤 브파의 작품을 초연한 적이 있어요. 이번에 브파가 제 이름으로 작곡한 곡을 헌정받았어요. 곡 이름이 ‘Ju-Hee Lim’이에요. 언젠가 무대에서 꼭 들려드리고 싶어요.”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부제인 ‘똑똑한 식물과 영리한 미생물의 밀고 당기는 공생 이야기’가 책의 온전한 개요를 전달한다. “식물은 지적 생물이다.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 이 책은 외부 자극에 대한 식물의 대응을 다루며, 이것을 가능하게 한 미생물과의 오랜 동행을 소개한다.”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은 감자밭에 변을 섞는다. 원작 소설에서 이는 단지 영양분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자의 생육에 필요한 미생물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식물과 미생물의 공생 중 가장 알려진 것은 콩에 기생하면서 공기 중 질소를 붙잡아 공급하는 ‘뿌리혹박테리아’의 사례다. 콩은 대가로 뿌리혹박테리아에게 안온한 집을 주고 영양분도 제공한다. 둘의 관계가 늘 편한 것은 아니다. 콩과 식물은 ‘손님’이 과도하게 늘어나지 않도록 억제하고, 늘 ‘신분증’을 요구하며 불편한 단계에 이르면 가차 없이 손님을 죽여 버린다. 식물과 미생물의 협업과 적대관계에 곤충이 개입하는 사례, 작물의 생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면역에 드는 스트레스를 적당히 줄여주어야 한다는 연구결과 등이 흥미롭게 읽힌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식물과 미생물의 공생관계를 하나의 큰 유기체로 보아야 한다는 ‘홀로바이옴(holobiome)’이라는 개념을 전한다. 인간과 미생물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현역 최고의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는 핀란드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가 서울시향과 시벨리우스의 곡 네 작품만으로 저녁 무대를 마련한다. 14, 15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19 서울시향 시벨리우스 스페셜’ 콘서트다. 2월 마지막 날에 만 66세가 되는 벤스케는 스웨덴 BIS 레이블로 두 차례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을 낸 바 있다. 1997년 라티 교향악단, 이어 2016년 그가 현재 음악 감독으로 재직 중인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함께였다. 라티 교향악단과 내놓은 교향곡 6, 7번 음반은 “타고난 시벨리우스 해석가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다듬어진 연주”(그라모폰 가이드)라는 호평을 받았다.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전집 중 1, 4번 앨범은 2013년 그래미상 관현악부문상을 받았다. 이번 콘서트는 북유럽 음악 최대 거장이자 자연주의자, 범지구적 환경주의자로 재해석되고 있는 관현악 거장 잔 시벨리우스(1865∼1957)의 다양한 면모를 집약한다. 초기 작품으로 민족주의적 열정을 분출하는 교향시 ‘핀란디아’,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인 D단조 협주곡, 일곱 곡의 교향곡 가운데 마지막 두 곡을 연주한다. 시벨리우스 교향곡은 후기로 갈수록 압축되고 간결해져 6, 7번 교향곡은 각각 25분, 20분 남짓에 불과한 길이지만,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자연의 시를 들려준다. 교향곡 6번의 서두에 대해 작곡가 자신은 “이 선율은 내게 첫눈의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겨울의 계절감과도 맞아떨어지는 선곡이다. 대중적으로 인기 높은 바이올린 협주곡에는 2015년 이탈리아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이자 이 콩쿠르에서 9년 만에 탄생한 1위 수상자인 양인모(23)가 협연자로 나선다. 그는 2018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돼 다양한 솔로 무대를 선보였고,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 전곡 실황을 도이치 그라모폰(DG) 음반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연주에 앞서 11일에는 벤스케가 이끄는 서울시향 지휘 마스터클래스가 열린다. 1만∼7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젊은 여성 둘이 잘 손질된 정원을 걷고 있다. 들리는 대화는 깎아낸 듯한 한국어다. “콩쿠르에 상위 입상해서 솔리스트로 살게 되면 행복할까?” 듣던 이의 고개가 돌아간다. “아니래. 행복하지 않다고들 하잖아.” 바이올리니스트의 성공을 향한 노력과 애환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편이 상영 중이다. ‘이차크의 행복한 바이올린’은 ‘솔리스트로 행복하게’ 살아온 거장 이차크(이츠하크) 펄먼의 일상과 활동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파이널리스트’는 2015년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 진출한 젊은 연주자 12명이 벨기에 왕실의 영지에 격리돼 결선을 준비하는 8일의 과정과 결선 연주, 시상식을 담았다. 펄먼은 1945년 건국 직전의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걷지 못하게 됐다. 열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해 바이올린 명교사 도로시 딜레이를 사사했고 1964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영화는 두 번째 조국인 미국의 야구장에서 국가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시작으로, 부모와 스승에 대한 회상, 학창 시절부터 그를 점찍은 평생의 짝이자 부인 토비와의 자잘한 대화, 빌리 조엘과의 협연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비춘다. “연주에 대해 계획을 하지 않아요. 계획을 하면 얽매이게 되니까요.” 자기 세계를 완전히 확립한 70대 대가는 그렇게 말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파이널리스트’에서는 철저한 계획과 준비의 세계가 펼쳐진다. 영화의 원제는 ‘Imposed Piece’. 지정곡이라는 뜻이다. 디지털 기기를 반납하고 갇힌 결선 진출자 열두 명은 처음 보는 창작곡 악보를 받아들게 된다. 기교적으로 극한을 요구하는 이 곡을 8일 동안 연습해 마지막 날 자신이 선택한 협주곡과 함께 오케스트라와 협연해야 한다. 이해의 지정곡은 스위스 작곡가 야렐의 ‘구름처럼 가벼운’. 열두 명 중 한국인은 세 명이다. 본디 친해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이지윤 ‘언니’와 임지영이 카메라를 오랫동안 차지한다. 이지윤은 임지영의 바이올린 현까지 갈아주는 ‘해결사’를 자처한다. 물론 콩쿠르에 대해서는 한 치 양보 없는 경쟁자다. 마침내 결선 연주가 끝나고, 수상자들이 호명되는 순간. 외국인들에게 비슷하게 들리는 두 사람의 이름이 해프닝을 빚어낸다…. 두 영화의 카메라가 유지하는 시선은 비슷하다. 연주자로부터 한발 떨어져 그들의 기쁨과 침울함, 치열함과 평화를 가만히 지켜본다. 때로는 주인공을 화면 구석에 둔 채 ‘딴청’을 부리거나 아예 목소리만 놔두고 주인공을 빠뜨린다. 그런 담담함이 음악가들 내면의 뜨거움을 오히려 부각한다. 단지 예상할 만한 주제들, ‘이차크’에서는 장애 극복과 이민자로서의 삶, ‘파이널리스트’에서는 치열한 경쟁 너머의 우정, 그 이상을 굳이 담아내려 하지 않은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파이널리스트’에서는 이지윤 임지영, 나란히 결선에 오른 김봄소리 외에도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과 김남윤, 피에르 아무아얄과 후나이위안은 물론이고 2012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모리 후미카, 2015년 이 콩쿠르 결선에 오른 왕샤오의 얼굴이 반갑다. 이지윤은 2012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 4위를 차지했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은 2021년 3월에 개최된다. 올해 3월 24∼30일에는 이 콩쿠르 성악 부문 경연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30)와 2005년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자인 폴란드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34)가 2월 23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듀오 리사이틀을 연다. 드뷔시와 시마노프스키의 바이올린 소나타, 포레 소나타 1번 등으로 프로그램을 꾸몄다. 2월 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시작해 캐나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폴란드로 이어지는 투어의 일환이다. 그 감흥을 미리 느껴볼 수 있다. 최근 도이체 그라모폰(DG)이 이 투어에서 연주할 프로그램으로 음반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음반사는 두 사람의 영상 인터뷰도 공개했다. 블레하츠의 말이다. “2016년 10월 TV로 중계되는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를 보았어요. 마침 안식년이라 연주가 없어 콩쿠르 전 과정을 집중해 감상할 수 있었죠. 콩쿠르 기간 내내 봄소리는 나의 ‘No.1’, 가장 좋아하는 참가자였어요. 마침 실내악을 함께 연주할 파트너를 찾고 있었는데, 봄소리가 완벽한 파트너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김봄소리는 이 콩쿠르에서 조지아 출신인 베리코 춤부리제에 이어 2등으로 입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e메일에, ‘내 이름은 라파우 블레하츠이고 피아니스트입니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이거 실화냐’고 생각했죠. 가짜 e메일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한 채 답신했는데, 매우 진지한 응답이 돌아왔어요. 정말 놀랐죠. 나와 함께 연주하고 녹음까지 하고 싶다니!” 두 사람이 녹음한 포레와 드뷔시의 소나타에는 섬세함과 자유가 깔려 있다. 독일 음악의 엄정한 형식미를 넘어서고자 19세기 프랑스 음악가들이 모색한 섬세한 자유다. 블레하츠는 웅숭깊고 광대한 배경을 깔아둔다. 언제 페달이 바뀌는지 알아채지 못하게 풍성한 푸른 화음이 쏟아지고, 그 위에 김봄소리의 현이 선연하게 날아오른다. 죄고 풀어주는 활의 속도가 허식 없이 자유롭다. 언뜻언뜻 남국적인 나른함이 묻어난다. 한껏 따뜻해졌을 때, 서릿발 같은 시마노프스키의 소나타에 한 방 얻어맞는다. 찬물을 뿌리고 돌아서는 듯 또렷한 색상 변화다. 마지막 트랙으로는 2월 리사이틀에서 연주할 모차르트 소나타 24번 대신 쇼팽의 쓸쓸한 녹턴(야상곡) C샤프단조를 넣었다. 원곡은 피아노 독주곡이다. 김봄소리는 늘 쇼팽을 연주하고 싶었고, 나탄 밀스타인이 편곡 연주한 이 곡에 심취했다고 말했다. “블레하츠의 반주는, 마치 쇼팽이 다시 나타난 것 같았어요.” 5만5000∼12만1000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멜로디카 두 대가 연주하는 세계 명곡, 그랜드피아노 다섯 대가 무대에 오르는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슈베르트의 최후를 무대에 재현하는 ‘겨울 나그네’…. 쉽게 만날 수 없지만 오히려 더 쉽게 다가오는 콘서트들이 2월 강원도 곳곳을 수놓는다. 올해 네 번째를 맞는 ‘대관령겨울음악제’. 2월 7일부터 16일까지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콘서트홀과 강릉아트센터를 중심으로 열린다. 대관령겨울음악제 손열음 예술감독은 ‘지금 여기’를 올해 키워드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고전의 가치는 ‘지금 여기’에 살아 숨쉬어야 하는 만큼 한정된 지역과 시대를 벗어나려 했습니다. 클래식에 뿌리를 두면서도 새로운 앙상블들을 소개합니다.” 오프닝 콘서트는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실내악 갈라 ‘NOwhere: NOWhere’.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첼리스트 레오나르트 엘셴브로이히 등이 차이콥스키 현악6중주를 비롯한 실내악 작품들을 들려준다. 9일에는 다섯 남매 피아니스트 앙상블 ‘파이브 브라운스’가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등을 연주하는 ‘랩소디 인 브라운’ 콘서트를 갖는다. 10일 강릉아트센터에서는 세 콘서트가 펼쳐진다. ‘멜로디<@Men’은 초등학교 교재로 낯익은 멜로디카 두 대로 ‘빌헬름 텔 서곡’ 등 명곡을 연주하는 콘서트. 듀오 ‘멜로디카 멘’은 직업 트럼페터와 작곡가로 이루어진 앙상블로 유튜브에 올리는 연주마다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정치용 지휘자가 이끄는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김연아가 올림픽에서 선보인 음악들을 중심으로 평창 겨울올림픽 1주년 기념음악회 ‘소녀, 여왕이 되다’를 연다. 같은 날 플루티스트 조성현과 송영주 피아노 트리오의 재즈 무대 ‘바로크 & 블루’도 공연된다. 15일에는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음악체험극 ‘겨울. 나그네’가 펼쳐진다. 안무가 김설진이 삶의 마지막 단계의 슈베르트를 연기하고 바리톤 조재경과 소년 가수 두 사람, 낭송자가 무대에 오른다. 음악제 기간 중 원주 치악예술관, 춘천 일송아트홀, 정선 파크로쉬 등에서 무료로 개최되는 ‘찾아가는 음악회’도 열린다. 유료 공연 1만∼5만 원.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재작년 12월,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은 평양에서 회담차 만난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이 책의 원서를 내밀었다. 두꺼운 역사책을 선물로 건넨 뜻은 무엇이었을까.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베르사유 조약 체결 100주년을 맞는 해. 이 전쟁의 기원을 읽는 시선들은 대부분 ‘독일의 호전성’에 초점을 맞춰 왔다. 유럽과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려는 독일 빌헬름 2세 황제의 야망이 파국을 불러왔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저자는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대신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났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 결론은 특정 당사자의 책임론을 비켜간다. 전쟁은 불가피한 귀결이 아니라 수많은 결정들의 연쇄적인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상황을 바꿀 수도 있었다. 위기를 피할 기회는 여러 차례였다. 동맹국인 오스트리아도 독일도, 연합국인 러시아 프랑스 영국도 상대방의 적의에 놀라 더 큰 적의로 대응했다. 우방의 의도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상대방이 피하기 바라며 기차가 마주보며 달려오는 게임이었다. 그 누구도, 빌헬름 2세마저도 전쟁을 벌일 뜻이 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 비극에 끌어들여졌다. 설계자는 없었다. 연구의 대부분은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위 계승자가 테러리스트의 총탄에 암살되면서부터 8월 초 열강들 사이에 선전포고가 연쇄 폭발하기까지 한 달 남짓 이어진 각국 권부와 군부, 외교가 핵심부의 움직임을 파헤친다. 그 전사(前史)는 세르비아 대민족주의를 촉발한 1903년 베오그라드 정변으로 시작된다. 이어 유럽 열강들의 손잡기가 1907년 러시아-프랑스-영국, 독일-오스트리아의 동맹으로 귀결되면서 대충돌의 필연적인 조건이 조성되고, 총성이 터진다. 황위 계승자를 잃었지만 오스트리아는 일을 키울 생각이 없었다. 선전포고 없이 베오그라드를 타격했다면 다른 나라들이 양해할 수도 있었지만 기회를 놓쳤다.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낸다는 결정은 사전에 누설됐고, 러시아의 강경책을 불러왔다. 러시아 역시 일을 키울 맘은 없었다. 동원령을 내렸지만 강력한 경고 정도로만 생각했다.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빌헬름 2세는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세르비아가 양보할 거라고 장담했다. 그는 호전적이기는커녕 분쟁이 임박할 때마다 몸을 사리는 군주였다. 프랑스와 영국도 결정자들의 우유부단과 눈치 보기는 똑같았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거대한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하다는 평판을 받는 지도자들 사이의 거래다. 판돈은 크고 속내는 다르다. 핵단추라는 거대한 위험물 위에서 진행되는 도박이다. 험한 말이 오갔던 지난날도 생생하다. 물론 좋은 결과를 누구나 기대하고 그래야만 한다. 그런 한편으로 나라 사이의 협상에 있어서 과단성의 부족과 과잉, 동맹에의 과신, 여론에 끌려다니기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100년 전과 오늘이 다르지 않다. 세계 전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장벽과 고립과 적대감이 늘어나는 이 시대에 대해 미래의 역사가가 ‘당시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파국은 피할 수 있었다’고 말하게 되지는 않을까. “1914년에 정치인들이 얻고자 다툰 상(賞) 가운데 그 무엇도 뒤이은 대재앙을 감수할 만큼 가치 있지 않았다. 1914년의 주역들은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sleepwalker)들이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공연 시작 15분 전. 빈 무대에 푸른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무대 위에 부연 안개가 피어올랐다. 홀로그램 영상이 아닌지 의심했다. 정시에 악단이 입장하고 첫 화음이 울리자 여인은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2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의 첫 내한공연 ‘전쟁과 평화 속에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독창회’가 주는 선입견을 깨는, 연극적인 연출이었다. 1부 ‘전쟁’, 2부 ‘평화’를 주제로 짜인 프로그램은 격렬한 마음의 동요와 위안을 그리는 바로크 오페라 아리아가 중심이었다. 2016년 말 발표된 같은 제목의 앨범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디도나토의 음성은 균질하면서도 유연하고 적절한 광택을 띠었다. 공명점을 자주 바꾸지 않으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비브라토와 어택(시작음을 들어가는 것)의 예민한 조절로 천변만화하는 분노와 절망, 위안의 색상을 그려냈다. 헨델 ‘아그리피나’ 아리아의 사이렌과 같은 긴 첫 음, 바로크 오보에와 짝을 이룬 기악적 발성은 고뇌하는 영웅을 눈앞에 보는 듯이 묘사해냈다. 무대 위에 장치된 조명과 프로젝터는 벽면에 온갖 추상적인 형상과 강렬한 빛을 쏘아 올렸다. 피와 고통, 위안과 달콤한 바람을 노래하는 바로크 아리아들이 시각적인 감흥의 옷을 입었다. 무용수 마누엘 팔라초는 때로 주인공 마음의 분신으로, 때로는 바람결 같은 자연이나 연인으로 적절히 무대에 개입했다. 바로크의 극적 정신에 가뿐히 다가가도록 하는 섬세한 ‘가이드 투어’였다. 막심 예멜랴니체프가 지휘하는 일 포모도로 앙상블의 반주도 더할 나위 없이 정밀했다. 적당한 볼륨의 포근한 베이스 라인이 주는 화음 연결의 묘미와 목관의 표정 변화가 황금 사과처럼 빛났다. 첫 앙코르곡인 요멜리 ‘아틸리우스 레굴루스’의 아리아를 마치고 갈채가 계속 이어지자 디도나토는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 미 대선 직전에 이 ‘전쟁과 평화 속에서’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장벽과 고립, 불평등이 계속 심해지는 이 세계를 그냥 보고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우리에겐 어떻게 화합(harmony)을 이룰지 가르쳐주는 ‘예술’이라는 스승이 있습니다. 내일 떠오를 태양을 기대하며 이 노래를 들려드립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근대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 ‘내일(morgen)’을 불렀다. 작곡가의 시대와 동떨어진 바로크 합주의 반주로 듣는 느낌은 잔잔하면서도 마음을 격동시키는 마무리를 선사했다. ‘내일, 태양은 다시 빛나리라. 내가 가는 길 위에, 행복한 우리를 내일은 다시 결합시키리라.’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평양의 지하철. 서 있는 어린 남성의 스카프가 북한 소년단원임을 짐작하게 한다. 등에 멘 날렵한 백팩과 희미한 영문 상표는 이 낯선 사회에도 우리와 가까운 부분이 있음을 말해준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AP사진전: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에서 만나는 북한 사회의 단면이다. 세계 통신사의 대명사인 AP는 매일 2000장, 연간 100만 장의 사진을 전 세계에 공급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6개의 테마로 엄선한 200장을 선보인다. 3개의 메인 테마는 ‘보도사진’에 대해 가질 만한 편견을 부드럽게 밀어낸다. ‘너의 하루로 흘러가’에선 카메라가 따라간 새벽과 아침, 정오, 밤의 순간들이 이어진다. ‘내게 남긴 온도’는 역사적 장면 가까이 숨은 일상의 순간들을 인간의 체온으로 재현한다. ‘네가 들려준 소리들’에서 관람객은 미디어와 영상의 결합으로 배치된 사진들을 따라 들려오는 소리의 결을 체험한다. 이어지는 3개의 특별 테마 중 ‘키워드로 만나보는 AP의 순간’은 AP 역사의 보고다. 히로시마 폭격, 베트남전쟁, 1960년대 뉴욕 문화, 미소 우주 경쟁은 물론이고 비틀스, 알리, 에디트 피아프, 프레디 머큐리 등 슈퍼스타까지 지난 시대의 희귀한 사진들을 전시한다. ‘기자전’에서는 사진기자와 작가라는 ‘인간’을 중심으로 뜨거운 현장들을 만난다. 마지막 테마인 ‘북한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장소인 북한의 일상과 숨소리를 따라간다.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그들’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애잔함과 그리움이 겹친다. 관람객들은 엡손이 제공한 사진 전용 프린터를 활용해 자신만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출력해볼 수 있다. 3월 3일까지. 7000∼1만3000원.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브렉시트는 출구(Exit)를 잃었다. 장벽 건설을 둘러싼 트럼프와 의회의 대결은 미국 최장기 셧다운을 몰고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전야의 불편한 기시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새로운 경계선을 그리고 ‘우리 대(對) 그들’의 구도를 선명하게 제시한다. ‘그들’은 부자, 외국인, 소수집단도, 때로 정치인, 은행가, 언론인도 될 수 있다.” 예전에는 유대인이 ‘그들’이었을 것이다. 이 포퓰리스트들을 욕하고 한탄하면 답이 나올까. 저명 칼럼니스트이자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회장인 저자는 이들이 나온 배경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우리 대 그들’의 구도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 구도가 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책은 신자유주의적 세계주의의 공헌과 한계를 함께 논한다. 경제와 시장은 발전했으나 일자리와 중산층은 사라지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AI)의 발달로 더 심화될 것이다. 난민 증가로 문화적 정체성의 공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겪는 위기는 개발도상국에서 훨씬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장벽을 세울 것인가, 사회계약을 다시 작성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가 원하는 답은 자명하다. 국가와 시민의 합의인 새로운 사회계약은 불평등의 적극적 해소,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만드는 교육, 자발적 프리랜서의 증가에 대비한 사회안전망 개편 등을 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옆에 오래 두고 싶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음반이 생겼다. 피아니스트 최희연(서울대 교수)이 데카 레이블로 발매한 소나타 18, 26, 27, 30번 앨범(사진)이다. 차분하고 내성적이라 할 만한 선곡이다. 유려한 연결, 이지적이고 허식 없는 설계가 사려 깊은 친구와 정담을 나누는 느낌을 준다. 적절한 넓이의 거실에서 듣는 듯 풍성한 녹음도 음반의 완성도를 더한다. 최희연은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시연회에서 이 음반을 뵈젠도르퍼 피아노로 녹음했다고 밝혔다. “빈(Wien)적인 느낌을 잘 표현하는 악기죠. 우아하고 두텁지 않으면서 금빛을 띤다고 할까….” 뵈젠도르퍼는 1828년 오스트리아에서 창립됐다. 185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스타인웨이보다 25년 이르다. 1830년 황실 공인 피아노가 됐다. 20세기 들어 라흐마니노프 등 명기교로 열광을 일으키는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들이 더욱 조명을 받으면서 피아노 무대에선 밝고 화려한 음색의 스타인웨이가 표준을 이루게 됐다. 야마하, 파지올리 등 ‘후발’ 업체들도 스타인웨이의 구조와 음색을 모방하며 출발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뵈젠도르퍼는 보수적인 ‘빈 기질’의 피아노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빈 오케스트라들이 연주하기 어렵고 독특한 음색을 내는 ‘빈 호른’을 사용하는 것과 닮았다. 다른 피아노들이 판재를 구부려 옆면을 만드는 것과 달리 뵈젠도르퍼는 가문비나무를 깎아 붙여 만든다. 아래 음역은 깊고 풍성하며, 중고음역은 스타인웨이의 ‘화려한 블렌딩 음색’에 비해 명징하고 순수하다. 피아니스트 파울 바두라스코다, 빌헬름 바크하우스, 아니 피셔 등이 이 뵈젠도르퍼로 베토벤 소나타를 녹음했다. 최희연은 31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베토벤 소나타 8, 26, 27, 30번을 연주한다. 18번 대신 소나타 8번 ‘비창’을 넣었다. 이 연주회에서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연주한다. 그는 뵈젠도르퍼에서 낸 미묘한 효과를 희생하지 않고, 스타인웨이의 빛나는 음색은 더욱 살리기 위해 연구 중이다. 음반과 리사이틀의 악기 차이는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가 될 듯하다. 3만∼5만 원.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서울 예술의전당이 음악당(콘서트홀, IBK 챔버홀, 리사이틀홀)의 평일 공연 시작 시간을 오후 8시에서 30분 앞당긴다. 음악당과 달리 예술의전당 내 오페라하우스는 공연 특성에 따라 시작 시간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클래식 관련 게시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공연이 일찍 진행되면 공연 후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다. 지방 거주자가 돌아가기도 편하다”는 긍정적 의견과 “직장인은 공연을 예매하는 데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걱정이 엇갈린다. 다른 세계 대도시 콘서트홀 평일 공연 시간은 몇 시일까. 이 도시 직장인들도 퇴근 뒤 공연 관람에 부담을 느낄까. 중요 콘서트홀의 공연시간을 알아본 뒤 주요 업무지역에서 공연장까지의 소요시간을 ‘구글맵’ 대중교통 옵션을 적용해 살펴보았다. 영국 런던의 경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 바비컨센터와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있는 로열 페스티벌홀 등 중요 콘서트홀이 평일 오후 7시 반에 공연을 시작한다. 오후 6시에 출발할 경우 중심가인 트래펄가 광장에서 로열 페스티벌홀까지 지하철과 도보로 최소 7분이 소요된다. 런던 동부 금융가인 캐너리워프 지역에서는 23분. 시티 지역 바비컨센터는 트래펄가 광장에서 26분이 걸린다. 프랑스 파리 북부 ‘필하모니 드 파리’는 대부분 평일 공연이 오후 8시에 열린다. 필하모니 드 파리는 2015년 개관 당시부터 파리 중심가 직장인들에게 ‘멀다’는 불평을 들었다. 시내 중심 개선문에서 최소 31분이 걸린다. 파리 서부 업무지구 ‘라데팡스’에서는 37분이 걸린다. 미국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주홀인 링컨센터의 데이비드 게펀 홀은 평일 공연을 오후 7시 반에 시작한다. 뉴욕의 중심 타임스스퀘어에서는 버스와 도보로 최소 11분, 뉴욕 업무지구의 상징인 뉴욕증권거래소에서는 30분이 소요된다. 일본 도쿄의 오페라시티 콘서트홀과 산토리홀은 세계 주요 도시 중 가장 빠른 오후 7시에 평일 저녁 공연이 시작된다. 전철과 도보로 중심가인 긴자에서 오페라시티까지 35분, 산토리홀까지는 26분이 걸린다. 업무지구인 신주쿠 지역에서는 각각 22분, 35분이 걸린다. 서울은 어떨까. 다른 대도시와 같이 구글맵에서 오후 6시 출발하는 대중교통 옵션을 적용했을 때 강북 서울광장에서 예술의전당까지 최소 43분이 걸린다. 강남역 부근에서는 최소 23분,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지옥철’로 불리는 지하철 9호선과 버스를 갈아타며 최소 38분이 소요된다. 오후 7시 반에 공연을 시작할 경우 세계 주요 대도시의 평균 정도지만, 서울의 남쪽 경계 가까이 치우친 예술의전당의 위치가 부담이 되는 셈이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우리 극단은 최근 3년 연속 지원을 받아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작품들에 대해 연구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수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강량원 극단 동 예술감독) “지금도 대학로에서 많은 연극계 동료들이 주목받지 못하지만 열심히 작품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복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 장(場)에서 같이 공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서지혜 연출가)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 14일 열린 ‘KT와 함께하는 제55회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두 연출가는 찬찬히 수상 소감을 말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강량원 연출가(극단 동, 남산예술센터)와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프로젝트아일랜드)의 서지혜 연출가는 ‘연극할 수 있는 시스템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연극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연출상을 받은 김낙형 연출가는 “시간이 갈수록 잘하는 연출가가 되고 싶었다. 50세 정도에 스퍼트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나이에 좋은 상을 받아 힘이 된다”고 말했다. 연기상을 받은 강신구 배우는 “배우는 관객의 박수를 먹고 산다는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앞으로 30년 동안 더 박수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연기상을 받은 이수미 배우는 “연극이 없어도 사람이 살 수 있지만 연극은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하다. 사람을 살게 만드는 귀한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희곡상은 윤미현 작가, 무대예술상은 이태섭 무대미술가, 유인촌신인연기상은 임영준 남동진 배우가 각각 받았다. 새개념연극상은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감독, 신인연출상은 이은준 씨에게 돌아갔다. 특별상은 20년 넘게 연극 관련 책을 만들어 온 도서출판 연극과인간의 박성복 대표가 받았다. 올해 심사위원을 맡은 허순자 서울예술대 교수는 “출판문화에 대한 관심도 후퇴하는 환경에서 연극 관련 단행본과 학술지, 번역서, 각 학술단체의 학회지 등 연극에 관한 거의 모든 출판을 도맡아 해온 분”이라며 연극계를 대표해 특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심재찬 연출가, 이호재 배우, 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 윤광진 용인대 연극학과 교수(동아연극상 심사위원장), 동아연극상 협찬사인 KT의 이인원 상무, 박제균 동아일보 논설주간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아르테미스의 연주회를 자주 보러 다녔어요. 완벽한 하모니, 소름 끼치는 앙상블… 황홀했죠. 거기 함께한다니.”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이 현악4중주단 멤버이자 오케스트라 악장, 솔리스트로 ‘1인 3역’을 시작한다. 그는 6월부터 독일 정상이자 세계 최정상급 현악4중주단으로 꼽히는 아르테미스 4중주단 멤버로 활동한다. 2017년 시즌부터 세계 정상급 관현악단인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동한 데 이은 2년 만의 낭보다. 연주를 위해 일본에 있는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작년 가을에 제1바이올리니스트인 비네타 사레이카가 문자로 연락을 해왔어요. 제2바이올리니스트인 앤시아 크레스턴이 떠날 예정인데 함께할 생각이 있느냐고요. 처음엔 가능할까 싶었어요.” 4중주단 활동은 처음이었고, 악장 활동도 1년을 갓 넘긴 시점이었다. 사레이카는 국제콩쿠르 결선에서 만난 적 있었다. 만나 이야기해 보니 ‘함께하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두 바이올리니스트가 번갈아 제1바이올린을 맡자는 제안도 마음을 끌었다. 연습실에서 합주를 맞춰 보며 확신이 왔다.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10년을 맞춰 온 앙상블과, 새로 맞추는 앙상블은 다르죠. 함께해 온 시간만큼은 단숨에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니 정말 열심히 해야겠지만, 우선 신이 났어요.” 6월에 첼리스트 에카르트 룽게도 이 4중주단을 떠난다. 1989년 창립 때부터 함께해 온 원년 멤버다. 네덜란드 첼리스트 하리트 크레이흐가 새 멤버가 된다. 단원 절반이 바뀌는 셈이다. “관객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죠.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는데 너무 좋은 대답을 들었어요. ‘예술은 발전이다. 멤버 교체는 새 색깔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배우는 과정이다’라고 하더군요.” 아르테미스의 매력은 뭘까. “서서 연주하죠. 움직임부터 달라요. 각자가 출중한 솔로이면서 서로 잘 반응하는 모습이 강렬한 인상을 줘요. 같이 하기로 한 뒤 또 연주를 보러 갔는데, 역시 잘했다 싶었어요.” 그가 두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큰 배려를 해주셨어요. 악장 일을 반으로 줄여주겠다고.(악장은 세 사람이 맡고 있다.) 단원들이 바로 지금도 축하 문자를 보내고 있네요.(웃음)” 그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안주하기 싫어하고 늘 발전하려는 에너지를 가진 악단’이라고 말했다. “수석지휘자 피셰르 이반은 ‘귀를 열어주는’ 지휘자였죠.(2019년 시즌부터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새 수석지휘자로 활동한다.) 체계적으로 리허설을 잘하는 분이셔요. 몇 마디 말로 곡의 이해도가 확 높아지죠.” 그는 ‘자유롭고 편하고 국제적인’ 베를린 생활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학업을 마친 뒤 여기서 살고 있는데, 여러 나라 말이 들리고 젊은 사람이 살기 좋아요. 계속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싶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우리 모두는 시간여행자들이며, 함께 미래를 향해 여행하는 동반자들이다. 그 미래가 우리가 방문하고 싶은 곳이 되게 하려면 함께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2018년 3월 수많은 과학적 업적과 영감을 인류에게 남기고 별세했다. 유고집인 이 책에서 그는 ‘왜 거대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라고 물으며 10가지의 질문을 한다. 앞과 뒤의 질문들은 그 층위에 차이가 있다. 앞부분의 다섯 질문은 인류의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그가 성찰한 우주의 모습을 담았다. 뒤의 질문들에서는 인간이 앞으로 실행해야 할 과제와 목표에 강조점을 뒀다. 우주를 식민지로 만들어야 하는가, 인공지능(AI)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이 큰 질문에 대해 그가 내놓는 대답은 뉴스에 민감한 교양인에게는 새롭지 않다. 지난해 그의 별세와 영어판 출간으로 주요 내용이 소개되었고, 우주를 개척해야 한다는 호소나 AI 및 유전자 편집에 대한 기대와 그 위험에 대한 경고 역시 호킹이 만년에 거듭 제기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 후에도 최근 중국에서 유전자를 편집한 아기가 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등 그가 제기한 문제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유전자 편집에 대해 호킹은 긍정적 관점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외계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긴 여행이 가능하도록 수명을 늘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설계’된 우월한 인간 아래 기존 인류가 겪을 문제들을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널리 알려졌듯이 그는 인간이 지구를 떠나야 한다고 촉구한다. 1000년 단위로만 보더라도 지구에 인류의 존재를 위협할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 또 AI가 인간의 의지와 충돌하는 자체 의지를 갖기 전에 통제할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수몰 예정 지역에 개미탑이 있다면 딱한 노릇이다. 인류를 그 개미들의 입장에 처하게 하지 말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파이프오르간 사용이 중단됐다. 세종문화회관 김성규 사장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파이프오르간의 노후화가 심해져 1월부터 사용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9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공연 중 파이프오르간을 사용하는 공연은 없다. 김 사장은 “파이프오르간만 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3개월간 닫은 채 보수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극장 무대 보수 공사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적절한 시기를 조율 중이다”라고 밝혔다. 예상 수리 비용은 4억9500만 원이다. 김 사장은 “올해 활성화할 시민참여 예술 펀드레이징에 파이프오르간 수리를 포함시켜 일부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파이프오르간은 1978년 4월 세종문화회관 개관과 함께 선을 보였으며 당시 동양 최대 규모로 독일 칼 슈케사가 제작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